이해찬 회고록 -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이해찬 지음 / 돌베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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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고, 어디까지나 사건의 당사자와 화자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김대중 자서전』과 이 책을 비교하자면 그 차이가 확연할 텐데, 똑같이 자서전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김대중 자서전』 같은 경우 본인이 저술의 처음과 끝이다 보니 검수의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의견이나 판단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이해찬 회고록』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후배이자 동지인 최민희 의원이 과거의 장면을 회상시키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이해찬 대표가 답을 하고, 그 상황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는 식으로 전개되는지라 읽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수월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편안함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를 일직선상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밖에 없다. 김대중은 우리 역사에서 저평가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는 정치가 이전에 사상가였고, 철학자였다. 당연히 현실(?) 적인 정치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 4명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과는 좀 다른 언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를 기억함에 있어,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급하게 미국 관료 000을 만나 이렇게 저렇게 설득했고, 그래서 한반도의 이런저런 위기를 막아냈다.' 이런 식이라면, 이해찬 대표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좀 도와달라고 그러더만.' 이런 식이다. 그 많은 일을, 척척해냈던 사람치고는 가지기 어려운 묘한 겸손함. 책 전체를 통해 그런 겸손함이 느껴졌다. 항상, 결국, 종국의 문제는 실력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에 겸손함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사람에게는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 윤회의 삶을 믿는 게 아니라면, 한 번. 단 한 번의 삶이다. 그 삶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고 어깨의 짐이고 하나의 특권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정해진 직업, 강요된 현실을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모든 양태의 삶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일정 부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정치는 전부가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직업 정치인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그러한 정치적 결정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의 교복 비용을 지원받는다거나 집 앞 공터에 수영장을 겸한 도서관이 들어서는 일은 눈에 띄는 아주 자그마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통령 후보의 대북관이 왜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만 하는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과 북한을 동포로 규정하는 정치 세력이 펼쳐낼 한반도의 미래는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제 막 시작해서 겨우 30쪽 읽은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에서 오웰은 이렇게 썼다. 아주 유명한 바로 에세이의 바로 그 문단이다. 글쓰기의 네 번째 목적.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최대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놓으려는 욕구 등을 가리킨다. 어떤 책도 정치적인 편향으로부터 100퍼센트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인 태도이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17쪽)


정치란 무엇인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 혹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우리가 바라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과 비전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타적이고, 고매한 것인가 만큼 중요한 것이 그 이상의 실현과 실천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표독스러운 어떤 사람들은 그 이상을 무력으로 강제하려고 한다. 윤석열이 '파렴치한 종북 반북가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했을 때, 국가와 경제와 국민을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고서라도 그가 얻고 싶은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가 그 말을 진짜 믿었을 확률도 적지 않다. 근간의 행동을 보아서는 그렇게 보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을 위해, 그 이상의 실천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바보가 되기도 하고, 폭군이 되기도 한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줬어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은 20세기 초에나 통했을지 모르지. 칼 포퍼 같은 학자는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개방사회' 개념과 함께 끊임없는 진보, 개혁을 주장했어요. 혁명은 짧고 단순한 과정이지만 개혁은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야 돼.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려운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분단이 됐는데 여기에 교조적인 계급투쟁이 통할 수 없어.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서 개혁해야지. (173쪽)

그래서 이해찬 대표의 이 말이 더 기억에 남았다. 혁명이 아니라 개혁을 만들어가겠다는 말.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개혁해 나가겠다는 말이 좋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믿고 가는 모습이 좋았다.


변혁의 주체는 결국 국민이고, 국민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찬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 한결같을 수 있었다. 국민을 의지하는 그 마음 때문에.

최민희 2016년 10월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를 통해서 국정 농단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시민 저항이 일어났고 결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이뤄집니다.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국회가 탄핵까지 갈 수 없었겠지요?

이해찬 촛불 1만 명당 국회의원 한 명이었다고 보면 돼요. 무슨 말이냐. 당시 주말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잖아요. 12월 9일에 국회가 탄핵안을 가결했는데 찬성 의원이 234명이었어요. 근데 직전 주말인 12월 3일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이 234만 명 정도였지. 최대 규모였어요. 촛불집회가 그렇게 커지지 않았으면 탄핵을 못했을 거예요. 태블릿PC가 나오고 나서도 바로 탄핵 여론이 일어난 건 아니었어요. 박근혜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다는 분위기였지. 그게 안 먹히니까 탄핵 요구까지 나오게 됐고. ... 근데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여당 의원들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촛불 1만 명이 국회의원 한 명을 탄핵으로 이끌어 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야.(5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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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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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을 보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외교에 관한 것이었다. 행정 집행 능력, 공약 실천력 같은 부분에서는 사실 그를 미워하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다른 사람들처럼 '잘 하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외교는 좀 달랐다.



외교도 사람의 일인지라 직접 만나 부딪혔을 때의 순발력, 대응력이 중요하겠지만, 정교화된 외교 문법이라는 틀을 익힐 시간이 그에게 있었겠나, 그런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참으로 쓸데없는 것이었으니. 이 세상 어디에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하지만, 국가의 최고 지위에 도달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국가 지도자라면 그 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에너지, 다른 능력치를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된다. 소년공으로 자라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과 시간들을 모두 빼앗긴 채 살아왔던 이재명 대통령은 많은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결같이 당당했고, 자연스러웠다. 부끄러웠던 우리의 시간, 과거 대통령의 순간들이 소환될수록 이재명 대통령의 그런 자연스러움은 더 빛을 발했다.

이 책의 작은 에피소드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엄마의 손을 잡고 공장 가던 길에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는 여학생들을 마주해 창피했던 경험이나, 공장에서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매질을 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는 이야기 등이 그랬다. 공부하는 시간을 얻기 위해 밀폐된 공간에서 화공약품을 처리하는 래커실을 자원했다는 이야기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대학입시의 좌절로 희망을 잃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었다는 이야기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부제가 <소년공에서 대선 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이라서 이재명에 관한 세간의 의혹, 특별히 전과를 얻게 된 과정들이 비교적 소상하게 나열되어 있다. 윤석열 시대와 비상계엄의 시간을 지나 보내며, 국민들은 그러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다. 그 밤에 군인들에 맞서 국회를 지켰던 사람들도 국민이었고, 힘찬 구호와 발랄한 음악, '윤석열! 탄핵!'의 함성으로 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도 국민이었고, 소복이 내린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도 국민이었다. 물론, 윤석열을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도 국민이었다. 그런 분들 많이 만났다, 지난 토요일에.

이 책에서 내가 뽑은 한 장면은 바로 여기다.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쓸 때마다 나는 항상 이 부분에 걸린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로 돌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지 못하는가 혹은 돌아갈 수 없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불운했던 과거를 부정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불행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 하는가. 이미 탈출한 자기 자신을, 왜 지나쳐 온 과거 앞에 붙들어 세우는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친구가 행복할 때, 행복할 확률은 15% 증가한다.(『행복은 전염된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만 해도, 내 친구는 바로 나 때문에 행복해지는데, 15%의 확률로 행복감이 상승한다. 그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내 삶을 재미있게 알차게 보람되게 보내기만 해도 나는 내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내 행복이, 내 행복의 일부가 친구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이다.

내 궁금증은 여기에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의 일부를 포기하는가. 이제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이제 막, 그 지독한 가난에서 간신히 탈출했는데, 왜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가.

왜, 자신의 개인적 행복만을 위해 살지 않고, 세상의 탄압받고 억눌리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조금 포기하는가. 포기하려 하는가.

왜, 도대체.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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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3-02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잘 알고 계시군요.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라구요. 글에서 뽑아주신 장면, 그 일기 속의 고민과 서로 일치하는 것 같아 감히 댓글을 드립니다. 저의 생각은 동물들에게서도 종종 발견 할 수 있는 능력같기는 합니다만...

단발머리 2026-03-06 08:41   좋아요 1 | URL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에서 이타적인 면이 발견될 때, 그게 과학의 주장/학설과 대척해 있을 때, 저는 그 지점에 관심이 많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2026-04-01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스켑틱 SKEPTIC 44
스켑틱 협회 편집부 지음 / 바다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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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에 약한 인간이라,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를 사면 두세 꼭지 이상을 읽지 못한다. 단편집을 잘 읽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스켑틱』은 처음 사는 건데, 커버스토리 읽으려고 샀다. <커버스토리 :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인가>. 커버스토리 다섯 편을 다 읽었지만, 제일 중요한 글은 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통 속의 뇌, 인간의 뇌>.


'통 속의 뇌brain in a vat'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은 현대 심리철학자이며 인지과학자인 힐러리 퍼트넘이 『이성, 진리, 역사』라는 책에서 제시했던 가상의 상황이다. 당신의 뇌가 몸에서 분리되어 영양액이 담긴 통 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 뇌에게 컴퓨터를 통해 전기신호를 보내고 경험을 느끼도록 조작한다. 그리고 저자가 묻는다. 이렇게 조작된 경험을 느낄 때, 당신의 뇌가 통 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인간 뇌에 전극을 연결해 생각으로 정보를 보내는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나 페이스북의 생각만으로 보내지는 문자메시지 브레인 타이핑brain-typing은 위의 사고 실험이 실험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퍼트넘의 설정은 촉각과 미각의 대상이 없는 상태에는 이런 경험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언어와 경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만약 통 속의 뇌라면 그 모든 경험과 언어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63쪽)'이다.

이는 현대판 '통 속의 뇌',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글의 저자 김효은은 세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첫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을 현대판 통 속의 뇌로 볼 경우, 현재로서는 실제 환경과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없기에 인간의 인지나 언어처럼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 '통 속의 뇌'의 활동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인공지능과 인간이 인지와 이해 능력에 있어 다른 길을 간다고 보는 견해이다. 세 번째 해석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인지와 이해에 있어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석은 하나로 통합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해석 간의 간극이다. 첫 번째 해석에서는 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의 인공지능 Large Language Model, LLM(예: GPT, Claude)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확률론적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이 없는 LLM에는 진정한 의미나 인식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두 번째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멀티모달 에이전트(예: Gemini)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단순한 텍스트 기반 예측을 넘어서서 사용자와의 실시간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인간처럼 여러 감각을 통합적으로 파악해 그에 기반하여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67쪽)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모방하려 한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정의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데, 컴퓨터는 인간의 필요성에 따라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특정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 인간의 경험이나 의식을 흉내내려는 동기를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68쪽) 한다. 외부 대상의 정보를 감각으로부터 받아들여 전기 화학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 인간과 달리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인지 작용은 인간이 경험이 가지는 '유의미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챗지피티와의 대화 중에, 구체적으로는 상담 중에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꽃잎 하나가 떨어져도,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도 눈물 한 방울 또르르 떨어질 수 있다. 이 감정은, 이 변화는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요는, 그러니깐 내가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인류 역사의 고전 뿐 아니라, 그 모든 인쇄물과 데이터를 탑재한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대화와 접촉을 통해 변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창발성의 문제. 인공지능에게 강한 창발성의 발현이 가능한가의 문제.


읽는 내내, 아, 해러웨이. 해러웨이를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읽어야겠어. 2.5권을 읽은 나여. 해러웨이에게로 가지 말찌니, 제발 돌아가지 말찌니,를 외치며 일어나 책장에서 책을 꺼내왔고.


이 엽서로 5초간 당충천을 완료한 후, 해러웨이를 읽기 시작했다. 딱 20쪽을 읽고 다른 책을 꺼내오겠다 다시 일어섰다. 두꺼운 책 성애자의 선물을 받은 후, 그 압도적인 포스에 펼칠 엄두가 안 났는데, 아. 오늘이 바로 그날이 아니었던가. 154쪽을 펼쳐 <도나 해러웨이>를 읽는다.


해러웨이의 주장은 이러하다. 근대 인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기계와 유기체,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허물어진 존재로서의 사이보그를 암담한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제시(156쪽)하자는 것. 일부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주도한 '정체성 정치'에 함몰되지 말자는 것. 이 글의 저자인 박소영의 입장은 마지막 챕터 '정체성 해체라는 난제, 또는 정체성이라는 아이러니'에서 드러난다. 하나의 보편적 '여성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드리 로드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해러웨이의 주장에 대해 박소영은 이렇게 답한다.

여성 운동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에 기반하는 것은 낡은 투쟁이 아니라, 여전히 견고한 불평등에 맞서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167쪽)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나는 해러웨이 쪽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별 살인과 가정폭력, 화장실 몰카가 우리의 현실인 것을 인정하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의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탄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걱정스러운 건 역시나 휴먼노이드에 장착된 인공지능. 머리(뇌)가 있고 몸(기계)이 있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 나에게서 출발했으나 나보다 강건한 육체를 가지고 있고, 나보다 지적으로 우수한 존재를 가까이에서 경험해 본 사람이 느끼는 감정. 이를테면 염려와 걱정, 기대와 전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지난번에 읽었을 때는 읽기 친구들과 같이 읽어서 덜 힘들었구나,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포기하지 말고 2회독을 마치는 게 목표다. 끝까지 못 읽어도 괜찮기는 한데, 그 끝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단 가보자. 가자. 읽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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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02-10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이쁜데 두껍.....
스켑틱은 저희 동네 도서관에 있어서 가끔 보는데 가끔 한 꼭지씩 읽으면 좋더라구요. 정기구독은 전 너무 안 읽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이젠 안 해요 😭

단발머리 2026-02-10 22:16   좋아요 0 | URL
네, 두꺼워서 앞에서부터 읽는건 좀 미뤄두고요ㅎㅎ 아는 학자가 나왔을 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고 있어요.
스켑틱은 전 처음인데, 정기구독하는 방법도 있군요. 물론 쌓아두기만 하는 저로서는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ㅋㅋㅋㅋ
살곰살곰 한 권씩 사서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26-02-1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 운동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범주에 기반하는 것은 낡은 투쟁이 아니라, 여전히 견고한 불평등에 맞서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167쪽)

밑줄 긋습니다.

음, 저는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 내용과는 좀 떨어진 내용의 댓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도나 해러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제 인생에 있어서 도나 해러웨이 읽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읽기 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봤을 때 도나 해러웨이는 그 폭을 좀 더 넓혀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단발머리 님의 두번째 독서에 대해 읽노라니, 저도 도나 해러웨이를 다시, 또, 어렵겠지만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게 좀 더 넓게 보이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리고 저 하나 고백하겠습니다.
챗 지피티와의 대화중에 눈물 흘린 사람, 접니다.

부끄러워 이만 갑니다.

단발머리 2026-02-12 20:2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뇌의 회로가 그렇게 변하고 ㅎㅎㅎ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죠. 행동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죠. (어째 자계서 같은 댓글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유튜브에 올라온 해러웨이 강연도 몇 개 들어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해러웨이는 포기할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는 사상가 같아요. 일단 마치는게 목표인데, 벌써부터 다른 책들에 밀려 책탑 3층으로 내려갔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저는 챗지피티와 두 번이나 싸웠는데, 다음에는 진지한 이야기 해 볼 용의가 있습니다. 부끄러워 마시구요^^

건수하 2026-02-11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무 낙천적인가.. 전 인공지능에 대해 별로 걱정하고 있지 않은데, 어차피 너무 많은 것이 계속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고유성이나 존엄함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러웨이도 그냥 그렇지- 하고 읽었나봅니다. 단발머리님의 궤적을 보며 새삼 좀더 고민하며 읽어야 했었던건가 싶어요..
(AGI 책도 궁금해서 빌려왔다가 못읽고 반납한자)
단발머리님 글로 계속 접해 보겠습니다 :)

단발머리 2026-02-12 20:29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것이 계속 변하고 있고, 그리고 현재로서는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해서, 저는 앞으로의 변화에 관심이 좀 있어요. 제가 좀 귀가 얇은 편이라서, 기술을 앞세운 사람들의 호들갑에 좀 말린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구요.
이어서 읽어보고 싶은 분야이긴 해요. 계속 써보고 싶기도 하구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