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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고 싶었는데. 그건 안 될 듯싶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아니 지구상의 상위 10%의 부자들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변화를 이룰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테고. 기술 발전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 평범한 시민들은, 힘없는 국가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이 책에 대한 쓸쓸한 후기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졌을 때, 1국뿐만 아니라, 2국 그리고 3국을 졌을 때 바둑 기사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1국 그리고 2국에 패했을 때, 이세돌 9단은 가까운 바둑 기사들을 호텔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 최고의 프로 기사들이 모여 밤새도록 알파고의 수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수를 고민했다. 한 바둑 기사는 이세돌 9단의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모두 모여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와서 이세돌 9단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그는 갈 수 없다고 답했다. "제가 지금 너무 충격을 받아서요, 가도 큰 도움이 못 될 것 같습니다." 한국 대표, 세계 대표가 아니라, 인류의 대표, 인간의 대표였던 이세돌 9단의 3연패는 그들의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그들의 인터뷰는 바둑 기사만의 말이 아니라는걸,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앞에 선 인간. 실패와 패배 앞에 당황한 인간.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나는 바둑을 게임, 스포츠의 일종으로 여겼다. 바둑과 자주 비교되는 체스는 이미 인공지능에게 손쉽게(?) 패배한 이후였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을 뿐이지, 그것이 계산의 영역이고 확률의 문제라면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에서 체스처럼 바둑도 컴퓨터에게 패하게 될 거라 가볍게 생각했더란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어나가다 보면, 바둑 기사들, 4세에서 7세 사이에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바둑을 자신의 업으로 삼을 만큼 바둑을 잘하고, 좋아하는 바둑 프로기사들은 바둑을 단순한 승부의 세계가 아니라, 예술과 철학의 영역으로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승패는 중요하다. 상금은 1등이 제일 많이 받는다. 성공이 가져오는 명예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삶, 일상, 시간과 젊음을 모두 다 바쳐 바둑에 올인할 수 있는 데에는 이 분야의 1등이 되겠다는 성공에 대한 집념 이상의 것이 존재했다. 바둑을 둘 때의 기본자세와 바둑을 두는 과정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대국에 직접 임했던 사람들은 그 당시에 그런 선택, 그런 수를 두었던 자신만의 무수한 사고 과정을 소중히 여겼고, 대국을 밖에서 관찰했던 사람들 저마다의 해석과 판단이 존재했다. 결론은 누군가의 승리와 누군가의 패배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과정 전체는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드라마,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나름의 독특하고 독보적인 철학을 포함하고 있었다.


5챕터 <언어라는 도구 너머에서>에서 소설가 장강명은 바둑계 내에서 통용되는 여러 단어들이 실제로는 구체성을 띠지 않고 모호하게 이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문학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그 주장이 구체화된다.

1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인간 소설가들은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보고 소설 쓰는 법을 배운다. 사전에서 소설의 정의를 찾아보고 문학 비평서로 좋은 소설의 요건을 배운 뒤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다. 그런 걸 보면 소설에는 패턴이 있으며, 인공지능이 그 패턴을 발견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소설 전체의 패턴을 찾으라고 하지 말고 로맨스 소설이나 공포 소설의 패턴을 찾으라고 하면 더 빨리 찾을지도 모르겠다.(135쪽)












이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닌가. 소설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어떤 이야기의 변주다. 2014년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에서 썼듯이,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새로운 구조와 참신한 설정,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소재가 등장할 수 있다. 그런 소설이 인간 소설가에 의해 발명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인류 대표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를 한 알파고 리는 알파고 마스터로 진화했다. 세계 랭킹 1위 커제는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국에서 1국과 2국을 패하고, 3국에 임했을 때는 거의 울먹이면서 바둑을 뒀다.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해 1승을 거둔 인류 최후의 인간이다. 그러고 나서. 그러고 나서? 알파고 제로가 등장했고, 알파고는 바둑계를 은퇴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양복 입고 마주 앉아 심사숙고해 바둑알을 내려놓는 인간 대표와의 세기의 대결이 지루해져, 단백질 구조 예측을 연구하기 위해 떠났다. 바둑계는? 알파고가 휩쓸고 간 바둑계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다. 바둑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아빠는 아직도 텔레비전의 바둑 중계를 즐겨보신다. 아마 5단인 우리 집 아롱이와의 한판 승부를 염두에 두고 매일 실력을 갈고닦고 계시는... 알파고 파문 이후에도 아빠는 여전히 바둑을 좋아하시고 즐겨 하신다. 하지만, 바둑 기사들, 아빠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바둑 기사들은 이제 알파고 이전의 그 바둑 기사들이 아니다. 그들은.... 변했다. 초반 50수를 인공지능의 추천대로, 외워온 그대로 빠르게 두는 그들은, 이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인공지능과 함께 바둑을 두는 인간 바둑 기사들이다.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그 영향을 받는다. 내가 수렵채집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고집하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나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 (187쪽)

인공지능의 발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설득력이 있다. 내가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은 내 삶을 구속해 올 것이다. 아롱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내 주위에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나와 친한 언니, 딱 두 명이었다. 엄마 핸드폰을 자기 핸드폰으로 혼동할 수 있는 나이여서, 나는 굳이 구식 핸드폰을 고수했다. 특별한 필요가 있지도 않아서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아롱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 같은 반 엄마들은 모두 전체 카톡방에서 의논을 하고 결정을 하는데, 나만 그 방에 없다 보니.... 그냥 따... 가 된 게 아니고, 대표 엄마가 나에게만 따로 문자를 보내야만 했다. 그게 미안해서 아이패드를 사고, 아이패드에 카톡을 깔았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얼마나 많이 바꿔왔는지에 대해서는 더 쓸 필요도 없겠다. 나는 인스타를 하지 않는데도, 인스타를 본다. 이런 식이다.

332쪽의 주장, "다만 나는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며,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그 속도를 더 가속시키고 있다고 느낀다."가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결론으로 느껴지기는 한데, 나는 233쪽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주관적 효용이 외부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 그러한 평가와 변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될 수도 있다는 점. 그걸 지적한 지점이 놀랍고 참신했다.


인공지능에 관련된 책을 연거푸 읽었고,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더라도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싶다.






































내가 막을 수 없는 미래가 내 앞에 당도했을 때, 나의 고민과 염려가 내 앞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겠지만, 그냥 생존 말고, 그냥 사는 것 말고,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말하고 고민하고 연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인 구달은 우주로 보내고 싶은 사람으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를 꼽았다던데, 내가 죽기 전에 머스크가 죽기를 바라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는지에 대해 더 고민해 봐야겠다. 교양 인문학, 미래학이라 분류되는 이 책은 작년 6월에 출간되었다. 미래를 예상하고픈 사람들 모두에게 1독을 권한다.


미래를 예상하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부족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예언하고, 예상하고, 전망했던 뛰어난 소설가들이 우리 인류에겐 넉넉히 있다고 한다. 그래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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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19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하, 저는 받아들이기 싫어서인지 도무지 읽을 의욕이 생기질 않네요. 제가 받아들이기 싫어도 이미 제 삶에 깊이 침투해있지만 말입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한테 공부하라고 하더라고요. 도망갈 순 없고, 설사 여기서 도망쳐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요. 인공지능 세상이 저는 .. 싫어요 ㅠㅠ

그렇지만, 추천하신 책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0 08:38   좋아요 0 | URL
이게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거 같아요. 저도 받아들이기 싫고.... 사실 뭔지 모르겠는 것도 많은데 그래도 좀 읽어둬야겠다 싶어요. 조금은 알고 있어야지, 어떤 순간에.... 야~ 그건 아니지 않니? 하고 말할 수 있을 거 같구요.
해야할 게 많네요, 우리가....

망고 2026-05-19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때 바둑중계를 열심히 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세돌님을 응원하며ㅠㅠ 그때는 챗지피티 같은 것들을 또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인공지능을 이렇게 내가 가까이 두고 직접 쓰게될 줄 몰랐는데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합니다 벌써부터 소설은 인공지능이 쓰기 시작했더라고요 공모전 당선작이 그래서 논란이 되기도 하고...
저는 인간이 쓴 소설이 좋지만 앞으로는 그걸 구분할 수나 있을까요? 아아...모르겠어요 😭

단발머리 2026-05-20 08:41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그 때 바둑중계 보고 그랬는데. 전 그 때 방송이 좀 오버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인공지능이 이기겠지, 그렇게 봤거든요. 근데 걔네가 그거만 하는게 아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으로 들어오니깐요.
전, 인공지능이 써낸 소설이 이미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인간이 쓴 소설이 좋은데 말입니다. 히잉 ㅠㅠㅠ 소설마저 뺏기는 건가요....

독서괭 2026-05-2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롱이가 바둑 5단이라고요?? 옴마나 신기해라. 전 바둑을 전혀 몰라서요. 너무 어려워보여서 엄두도 안 냈는데.. 이제는 바둑기사들이 인공지능이 알려준 걸 외워서 빠르게 둔다니 씁쓸하네요 ㅜㅜ
제인 구달은 그들을 우주로 ‘보내버리고‘ 싶은 건가요? ㅋㅋㅋㅋㅋㅋ
인공지능 발전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긴 한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AI 안쓰다가 여행계획 짜는 것 땜에 제미나이 쓰기 시작하니 세상 편해서 맨날 써요. 잘만 쓰면 참 좋은 도구이긴 한데 말이죠…
 



나들이를 다녀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떠나는 길. 도착하니 양평이었고, 차에서 내리니 <이재효 갤러리>였다.

도시에서는 아니겠지만 산이 있는 곳, 흙이 있는 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돌, 나무 그리고 쇠(주의: 총, 균, 쇠 아님)를 가지고 만들어낸 장관에 서울쥐는 참말로 놀라고 말았다. 나무는 훤칠하고, 돌은 앙증맞은 모습 그대로 귀하고 예쁜데... 사람은, 우리 인간은 왜 그 돌에 굳이 구멍을 내어 철사로 엮어서 그 돌들을 묶어 내리는 걸까. 나무를 고르고 자르고 문지르고 붙여서 이 예쁜 무엇을 만들어내는 걸까. 자연은 온전하고 완벽하지만, 인간은 그에 반드시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 하고, 또 다른 인간은 그러한 인간의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데. 자연에서 왔으되 자연은 아니며, 자연적인 것은 아니되, 자연스러운 이 무엇을, 오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 때, 닉네임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옆에 앉아 있는 큰아이의 헤어스타일에 착안해 닉네임을 정했다. 그러니깐 그때 단발머리는 내가 아니고 큰아이였다. 서재의 이름도 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바탕화면도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화면 그대로 쓰는 게으른 사람인지라 성의 없이 '책이 있는 풍경'이라고 지었다. 풍경이라 하자면, 자연적인 정취가 묻어나야 할 텐데, 내 사진은 김치냉장고 위 아니면 집 근처 커피숍 사진이라 풍경이라 부르기 민망하기는 했다.

갤러리를 돌아보고 커피숍 2층에 올라왔는데,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별로, 아니 전혀 없어서, 집에서부터 굳이 챙겨간 나의 소중한 신간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냥 그 자체를 감상해도 좋으련만, '책이 있는 풍경'의 서재 주인이라 그런지 책이 있는 사진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이를테면, 이렇다.





오후에는 <뮤지엄 산>에 갔다. '책이 있는 풍경'의 만행은 그곳에서도 이어졌다. 4권을 구매했는데, 소설가 정찬 님의 책은 오두방정 컨셉과는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3권만 촬영에 참여했다.







이제 책을 읽을 일만 남았다. 장강명 책 마저 읽어야 하고, 헨리와 알렉스의 사랑싸움 마저 구경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신간으로 넘어간다. 계획은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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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17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작품들이 정말 근사하네요. 그러다가 책이 등장하면 더 근사해진다고, 저 역시 그렇게 느낍니다. 나들이 하기 좋은 날씨죠. 요즘 날씨는 진짜 축복같아요! 저도 헨리와 알렉스 계속 읽어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다른 젊은여남의 사랑에 잠깐 휘둘리다 왔습니다. OFF CAMPUS...

단발머리 2026-05-20 08:43   좋아요 0 | URL
책과 커피와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하면 세상 완벽하죠. 갑자기 캐나다뷰가 떠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운데 자리는 꼭 책이어야 합니다.

저도 헨리랑 알렉스 계속 읽어야 해요. 끈끈한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네요.

닷슈 2026-05-17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주 양평이군요

단발머리 2026-05-20 08:4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

독서괭 2026-05-17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갤러리도 책이 있는 풍경도 넘 멋집니다!! 힐링 제대로 되셨을 듯요~
단발머리님은 닉넴과 서재명 탄생 비화 ㅋㅋㅋ 대충 지었다 ㅋㅋ
저도 헨리와 알렉스 진행중입니다. 10장 들어갔어요~

단발머리 2026-05-20 08:44   좋아요 1 | URL
네, 간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닉네임과 서재명 대충 지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는 비밀 아닌 진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장이면 많이 읽으셨네요. 부러워요, 독서괭님! 자주와요, 독서괭님!

망고 2026-05-17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단발머리님이 단발머리가 아니라니 대충격!
사진 너무 좋네요 책까지 있으니까 더더😍
근데 나무들 이어놓은 무늬가 저만 좀 징그러워 보이는 거겠죠🥶

단발머리 2026-05-20 08:46   좋아요 1 | URL
제가 오프에서 알라딘 서재 이웃님들 만나면 제일 먼저 듣는 인사가 ㅋㅋㅋㅋㅋ 어?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아니시네요? 라고 ㅋㅋㅋㅋㅋㅋ저는 긴 단발이라고 항상 우깁니다. 가끔 길이 조절 실패하면 단발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외출을 자제하고요.
나무들 이어놓은 무늬가 사실 좀.... 그렇죠? 실제로 보면 조금 덜한데, 사진으로는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ㅋㅋㅋㅋ
 














한국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첫 번째 역사적인 대국을 벌이기 전날, 아롱이가 다니는 바둑 학원에는 방송국 기자와 카메라가 찾아왔다. 이세돌이 직접 가르치거나 운영하는 학원은 아니지만, 이세돌과 인연이 있는 원장님이 이세돌의 양해를 얻어 운영하고 있는 바둑학원의 이름이 '이세돌 바둑학원'이니까. 게다가 서울에 위치해 있으니, 아이들도 많다고 하니, 여차저차 방송국으로서는 안전하고 편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카메라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은 밝고 활기찼다. 모두들 이세돌 9단이 이길 거라 말했고, 다 같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이세돌, 화이팅!'을 외쳤던 것 같다. 충격적인 1국 패배 이후에도 이세돌 9단은 두 번을 더 졌고, 4국에서 한 번 이겼는데, 이건 알파고와 인류의 대결에서 영원히 기억될, 단 한 번의 유일한 승리였다.

올해 초, 팔란티어에서 시작해 인공지능, 그리고 AGI로 이어지는 읽기와 쓰기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텐가. 그런 생각들. 내 고민과 혼란은 AGI의 '의사 결정'에 대한 부분이었다.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알고리즘 분석과 검색 기능의 확장에 더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로 기능할 수 있는가. 오래오래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인지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능을 소유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른 것이 아닌가. 장강명의 이 책은 2025년 6월에 출간되었다. 빨리 읽었어야 했다. 알라딘의 황금손 언니가 전자책 보여주며 이거 읽고 있다고 했을 때, 바로 읽었어야 했다. 읽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무력한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텐데...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이야기는, 그런 치열한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 즉 그 시점에 해당 분야의 일류라고 볼 수는 없는 사람들, 현장의 최전선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인문학 포럼 같은 데서 할 것 같다. 그 포럼에서는 이런저런 논의가 오가겠고 어쩌면 깊은 통찰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말들은 기본적으로 무력한 언어들이다. 그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들은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져 있어서, 그런 인문학 포럼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80쪽)

그랬다. 맞았다. '인공지능이 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인공지능에 대한 현재의 연구 개발 과정이 인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은 나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질문이다. 프린터에 빨간 불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는 사람, 맥북 스크린샷 단축키 뭔지 물어보는 사람, 윌리엄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루시 맞냐고 물어보는 사람. 이런 사람이나 고민할 문제인 것이다. 실전은 다르다. 프로는 다르고, 현실은 다르다.

바둑계에서는 '기풍'이나 '바둑의 미학적 아름다움', '예술과 철학'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없다. AI 포석을 빨리 외우는 사람, AI 와의 일치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 치열한 승패의 세계에서 승자가 되었다. 저자인 장강명은 소설가니까 인공지능이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를 고민한다.

이런 전망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의 문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은 그걸 하면 된다. 2016년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프로기사들이 했던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바둑, 인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바둑은 무엇이었나? (25쪽)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지어낸 산문체의 문학 양식을 소설이라 부른다. 오토픽션이 아니더라도 소설 속에는 작가의 경험, 생각, 심정, 감정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속의 인물은 먹고, 일하고, 마시고, 달린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다시 사랑하고 질투한다. 소설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가끔, 그 세계가 실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잭 리처의 양치질에 우리가 그렇게나 집착하는 이유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바둑계 내부의 천재형과 노력형의 간극이 좁아졌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에 정통한 인공지능, 아니 유사 이래 축적된 인류의 모든 정보를 다운받은 인공지능은, 소설을 쓸 수 없을까. 인간답지 않은 소설 밖에 쓸 수 없을까.


인공지능이 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순간. 소설이 소중하고, 잭 리처가 소중하고, 스트라우트가 소중한 지금 이 시간.

소설, 소설을 읽어야겠다. 소설을, 인간이 쓴 소설을 읽어야겠다.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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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05-08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지에서만 전자책으로 야금야금 읽다보니 아직도 반밖에 못 읽었어요 전 ㅎㅎㅎ 장르가 뭔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읽는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그래서 빨리 읽고 싶기도 한데, 전자책은 손이 적극적으로 가진 않네요^^

단발머리 2026-05-09 18:01   좋아요 0 | URL
저는 실물로 갖고 싶어서 종이책인데요. 진도가 쭉쭉 나가지는 않아요. 쉽게 잘 쓰인 글인데도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네요.
나의 미래, 우리 인간의 미래.... 를 고민하자니 그렇습니다.
그래도 내용이 흥미로우니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누려보시길 바래요~~~~~

책읽는나무 2026-05-09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황금손 언니? 누굴까? 내가 생각하는 그 분일까? 상상을 좀 하다가…
암튼 저는 이 책 작년에 오디오북으로 처음부분 좀 듣다가 종이책으로 읽어야겠구나! 깨닫고 멈췄는데 멈춤 그 상태 유지네요.ㅋㅋㅋ
소재 때문에 재미가 있을까? 의문이 좀 들었었는데 단발 님의 글을 읽다보면 또 재밌을 것도 같고..^^
정보라 작가님에 이어 또 장강명 작가의 책도 단발 님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작가님들 단발 님께 감사 인사 좀 남겨주셔야 할텐데 말이죠.ㅋㅋㅋㅋ

단발머리 2026-05-09 18:05   좋아요 1 | URL
알라딘 황금손 언니는 <진리의 발견>과 <Intimations>와 <맨발의 소녀>를 강권하시는 분입니다 ㅎㅎㅎ
책나무님은 오디오북으로 시작하셨군요. 저는 한참 전에 사두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됐습니다. 얼른 읽을 것을.... 이런 생각도 들지만 다들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밀려왔던거 아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님들의 감사 인사를 받기에는 제가 판매율이 너무 저조합니다. 그래도 일단 정보라 작가랑 장강명 작가의 새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기는 했습니다*^^*

다락방 2026-05-1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트윗에서 그런 글 읽었어요.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싹 다 스캔해서 챗지피티한테 올려두고 이 문체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출판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했다고요.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이걸 강의하는 이 세상은 뭔가,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 이 세상은 뭔가.. 단발머리 님 말씀대로 잭 리처가 그리고 스트라우트가 소중해집니다. 너무너무요. 고전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있겠네요.

단발머리 2026-05-11 18:20   좋아요 0 | URL
그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강명 작가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그런 생각을 해봤던 거 같아요.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아주 늦은 건 아닌 거 같아서요. 생각해봐야 뾰족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저도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다락방님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살아남을 작가들은 독특하고 자기 색깔이 분명한 주인공을 이미!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아닐까 싶어요. 리처랑 루시처럼요. 그리고 해리 포터? ㅋㅋㅋㅋㅋ 새로운 작가가 나온다면.... AI와 얼마나 협력했을지.... 하아....
 














내게 부족한 건 경험이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나의 연애 경험 부족은 두 가지 양태를 띤다. 하나는 로맨스를 좋아하는 걸로 나타나고(대리만족),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잘 모르겠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이 소설의 몰입이 힘든 건 주인공들이 둘 다 남자여서는 아닌 것 같다. 내게 이입이 어려운 지점은 주인공 중 한 명은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찬란한 제국의 왕자님이고, 다른 한 명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너무 멀리 있는 그대들만의 애틋한 사랑이라서.

내가 밑줄 그은 문장은 여기다.

아주 많은 날에 헨리는 알렉스의 연락을 받고 재빨리 위트 넘치는 유머로 응수하는데 만족한다. 알렉스와 함께하는 시간, 배배 꼬인 알렉스의 생각들에 굶주리면서. 하지만 가끔은, 갑자기 다크 모드로 돌변해 보기 드물게, 이상하게 원한에 찬 독한 위트를 날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몇 시간 혹은 며칠 연락이 되지 않는다. (But sometimes, he's taken over by a dark mood, an unusually acerbic wit, strange and vitrified.) 알렉스는 이제 그럴 때가 슬픔의 시간이라는 걸 안다. 우울증이 덮쳐오는 시간, 헨리에게 모든 게 ‘너무‘ 해질 때 찾아오는 증상이다. 헨리는 그런 날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사실 알렉스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먹구름이 낀 헨리의 성질머리도, 햇살처럼 환한 헨리로 되돌아올 때도, 그 사이의 수백만 가지 색깔도 어차피 알렉스에게는 매력적일 뿐이니까. (160p/191쪽)

연애할 때 항상 알콩달콩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연애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바람이 솔찬히 불어오기 마련이다. 갑자기 다크 모드로 변해버리는 헨리를 지켜보며, 알렉스는 기다린다. 돕고 싶지만 도울 수 없기에, 성질머리 부리던 헨리가 환한 미소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어느 만큼, 얼마큼 오래 기다려 줄 수 있는가. 아니, 수백만 가지 색깔의 헨리는 언제까지 매력적일 텐가. 언제까지 아름다울 텐가. 알렉스는 헨리의 우울함을 이해한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다크 모드를 이해한다. 오고 가는 정황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배려와 이해는 언제까지 가능한가.

결혼은 여남 모두에게 공히 예속적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남자에게만 가능했던 이혼(결정)이 여자에게도 가능해졌다는 정도일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의지로 이혼'할' 수 없었고, 오직 이혼 '당할' 수만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남자들이 중혼과 축첩의 형태로 사회적 역할에 복무하면서도 동시에 성적 자유를 누렸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결혼은 그 무엇보다 ’성적 억압’의 측면이 강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한다. 로맨틱한 감정을 동반한 현대의 결혼 개념은 비교적 최근의 사회적, 문화적 개념의 산물이다. 아주 오랫동안 결혼은 ‘애정 없이도 존속 가능한 동맹‘, 즉 사회적 계약의 한 가지 양태였다. 현재에 이르러서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을 확증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또한 빠른 속도로 동거와 같은 다른 삶의 양식도 보편화되고 있다.

나는 궁금했다. 알렉스는 헨리의 다크 모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줄 수 있을까.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티키타카와 미치도록 강렬한 섹스, 불같은 사랑과 참을 수 없는 그리움. 이런 열정적인 감정은 자주 찾아오고 여러 번 반복되는 헨리의 다크 모드 혹은 배배 꼬인 알렉스의 이상함을 계속해서 이겨낼 수 있을까.

결혼이 그 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니다. 동성간 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결혼하지 않고 동거 생활을 이어가는 이성애 커플도 증가하고 있다. 결혼이 답은 아니다. 그래서, 내 물음을 다시 정교화하자면.

그건, 그 사랑의 한계와 종착점에 대한 물음이다. 불같은 사랑은 사그라들고, 그렇게나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 사람의 어떠함이 이제는 참을 수 없는 무엇이 되었을 때, 되어 버렸을 때, 결혼이라는 제도로, 법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그 사람을 나에게, 나를 그 사람에게 묶어두지 않으려 할 때.

어느 때까지 그의 다크 모드를 참아줄 수 있는가.

그는 어느 때까지 그의 까탈스러움을 참아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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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5-06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헨리의 다크모드는 알렉스가 사랑고백 후 미래를 얘기하자 갑자기 도망가 잠수탈 때 절정에 달하는데요 알렉스는 그것도 잘 받아주더라고요😆 영국에 찾으러 가서 헨리 보자마자 넘 잘생겼어 목소리 넘 좋아 몸매는 황홀해 이러면서 불타오르고ㅋㅋㅋㅋㅋ애들이 어려서 그런가
암튼 헨리는 왕자라는 신분과 게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평생을 고민하던 캐릭터라 그의 다크모드를 알렉스는 이해를 해주는데 이제 제가 읽은 10장까지는 헨리의 고민도 나름 잘 정리가 되는 것 같고요😆
근데 그사세라 저역시 몰입이 힘든데 끝까지 읽어야겠죠😭

단발머리 2026-05-08 08:47   좋아요 1 | URL
잠수탈 때가 영화에서도 극적으로 그려지더라구요. 저는 그 때 알렉스가 영국까지 가는 거 보고 심쿵. 바다 건너 찾아가는 사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헨리가 알렉스를 만나게 참 다행이네요. 다크모드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라서요. 가끔 다크모드가 찾아오긴 하지만, 같이 다크모드이면 결말이 다를 수 있구요.

저는 읽고는 있는데 진도가 지지부진하다고 합니다. 베드신 때문은 아니라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10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약간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오늘 제가 쓴 페이퍼와도 좀 연결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읽고 있는데요, 단발머리 님이 말씀하신 그 지점에서 ‘그건 그러나 잠깐의 다크모드이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앤드류 솔로몬이 겪었던, 다른 우울증 환자들이 겪었던 우울증 정도의 깊이, 그 시간이라면, 그 기다림이 혹은 견딤이 가능할까요?

저는 그들에게 가사 노동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랑이 더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6-05-13 20:22   좋아요 0 | URL
우앗! <한낮의 우울>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그 책 참 좋았어요.

다크모드를 오래오래 기다린다는 건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상대방이 정신적으로 좀 건강한 사람이어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그들, 왕자님과 왕자님 같은 대통령 아들에게는 가사 노동이 필요없었죠. 그래서 사랑에 집중. 베드신에 집중 ㅋㅋㅋㅋㅋ
 














1964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 클로드 파스롱이 함께 저술한 이 책은 유럽 사회학 연구소에서 수행한 여러 연구와 공식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1960년대 프랑스의 교육체계와 학생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분석했다. (알라딘 책소개)

계급과 교육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점과도 일치한다. 남녀 7세 부동석에, 종아리 내놓고 다니는 여성에 대한 경시가 대세였던 조선이 대학 진학률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러버리는 대한민국으로 변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한 동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가.

내 생각에 제일 중요한 동인은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분단. 이전에 한국을 구성하고 유지시켰던 유교적 관념의 아성이 일시에 붕괴되고, 자본주의 수입으로 인해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세계, 과거와는 다른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계급이 재생산되고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기제는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식민의 역사가 있었고, 전쟁이 있었다. 우리는 전부 '0'이었다. 해방된 조선에서 존경과 인정을 받은 집단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밖에 없어야 할 테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 가난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건사할 여유가 없었다. 약삭빠르게 대응한 친일파들은 자녀들을 야무지게 유학 보내고, 교육시키고, 나름 나름 결혼시켜 현재에는 명문 가문으로 변신한 경우도 있을 테다. 하지만, 전쟁 이후, 한국에서 상류층으로의 진입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그 무엇보다 '돈'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많은 인맥,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학연은 교육을 통해 완성된다. 상위 계층/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며 확실한 방법이 교육이었다. 입신양명의 전통은 명문대 입학으로 이어진다. 물론, 나는 이것이 한국의 임금 체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금 체계의 변혁만이 한국의 모든 문제의 근원인 대학 입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한국의 고질병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이런 나를 보라), 그것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여전히 학력은 무시하지 못할,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이 책의 주요한 주장들은 모르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알고 있는 사실들의 확인에 가깝다. 이 도표가 이 책 전체를 보여준다.


농민, 산업 노동자, 고용직, 하급 관리직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독서 카드를 덜 사용하고,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서 라틴어를 선택할 가능성이 낮고, 남은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한다. 상급 관리직, 자유 전문직 부모를 둔 학생들은 인류학과 제3세계에 관심이 많고, 바칼로레아 1차 시험에서 라틴어를 선택할 확률이 높고, 부모 집에서 같이 살며 경제적 조력을 충분히 받기에 여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


가장 '교양 있는' cultivés계층에서야말로 아마도 문화를 숭배하도록 설교하거나 문화적 실천에 입문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모가 대개는 문화적 열의 외에는 별달리 전수할 것이 없는 프티부르주아 계층과는 대조적으로, 교양 계급 classes cultivées은 문화에 대한 애착을 끌어내는 산발적인 자극들을 구사한다. 그것들은 일종의 은밀한 설득을 통해 훨씬 더 뛰어난 효과를 발취한다.(43쪽)


나는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에 밑줄을 긋는다. 노력 없이. 노력할 필요 없이.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둘째가 이만 년 만에 공부를 하겠다고 스카에 간다고 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간 게 아니고, 작년에 남편이 스카에 100시간을 결제해 둬서 아까워서 가야겠다 하고 갔다. 그래, 그렇게라도 그 시간을 쓰거라, 했는데, 둘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공부를 해볼까 하고 파일을 열었는데, 시험 범위에 버틀러가 있었고. 버틀러를 보니 엄마가 생각나 그 화면을 캡처해 보낸 것이었다. 아, 버틀러를 보고 엄마가 생각났다니. 일순 감동한 나는, 감동에 그치지 않고 버틀러의 신간을 찍어 보낸다. 버틀러 신간이되 아직 읽지 못한, 친구의 귀한 선물이라 김치냉장고 옆, 북 트롤리에 고이 모셔든 바로 그 버틀러를 말이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엄마를 생각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것만으로도 기특하고 신기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둘째가 캡처해 보낸 화면에는 버틀러가 있었다. 페미니즘 이론의 최상급, 바로 그 버틀러가 말이다. 둘째의 메시지가 이토록 반가운 것은 화면 속 인물이 버틀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둘째가 나를 생각했다는 사실 때문인가.

물 마시러 잠깐 나왔다가도 김치냉장고 위 책 무더기의 제목을 꼭 훑고 가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버틀러를 읽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신통방통한 바로 이 순간. 하지만, 만약 그 인물이, 아들이 화면을 캡처해 보낸 인물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김동률? 조인성? 전지현? 이었다면, 나는 버틀러 때만큼 즐거워했을까. 기뻐했을까. 흐뭇해했을까.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기쁨은 그 인물이 버틀러였기 때문이다. 정희진 선생님이어도 그랬을 것이고, 해러웨이여도 그랬을 것이고, 필립 로스여도 그랬을 것이지만. 그 인물이 버틀러여서 나는 기쁘고 즐거웠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읽고 쓰는 나이지만, 그래도 그 인물이 버틀러여서 기뻤던 건, 내 안에도 문화적으로, 지적으로 '상층부'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작은 기쁨이, 내가 그 무엇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노력했다면, 그것이 의도적 노력의 결과라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내가 교양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다. 왜냐하면, 나는 버틀러를 읽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버틀러를 읽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이렇게 발견하는 것이다. 혹은 발견되는 것이다. 초경량 미니 슬림 프티 부르주아지에도 속하지 못한, 속하지 못하는 이런 나를.


결국 어떤 문화적 활동에 고유하게 문화적인 특질을 부여하는 것은 그 활동을 수행하는 개인적 방식이다. 조롱 섞인 경쾌함과 거침없음, 재치 있고 세련된 우아함, 규약에 따르는 자신감은 편안함, 혹은 가식적 편안함을 허용한다. 이는 상류계급 출신 학생들의 징표이기도 한데, 그런 매너는 거의 언제나 엘리트에 속해 있다는 기호 역할을 한다. - P42

프티부르주아(농민이나 노동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출신의 아이는 교양 계급의 자녀에게는 그냥 주어진 것을 고생스럽게 습득할 수밖에 없다. 스타일, 취향, 에스프리, 한마디로 삶의 기술과 방식 말이다. 이는 어떤 계급에게는 자연스러운데, 그것들이 바로 이 계급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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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4-24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님이 버틀러를 읽으셔서 어롱이에게는 그 취향이 그냥 주어졌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버틀러를 누가 쉽게 읽겠어요? 그치만 아 이거 우리집 김치냉장고 옆에 있는 우리 엄마 책이지 하고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과 버틀러가 누군지 모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두 권이나 사두고 읽지 못하고 있는자)

단발머리 2026-04-25 10:37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저는 항상 제 입장만 생각했는지라. 아롱이에는 버틀러가.... 아무렇지 않은 그냥, 그냥 버틀러겠네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아롱이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님이 선물해주신 책도 버틀러입니다. 곧 읽겠어요!!!의 결심을 다시 한 번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4-24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에 책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는 더 교양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고요. 그 책들을 읽는게 아니어도, 나중에 어떤 새로운 단어를 들었을 때 ‘어 들어봤는데?‘ 가 된다는거죠. 위의 아롱이 경우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집에 버틀러 책이 있고 또 엄마가 버틀러를 읽는 사람이고, 설사 엄마가 버틀러를 ‘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버틀러를 삶의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되면, 어? 우리 집에 있는데? 이렇게 되는거죠. 그 사람은 버틀러가 사람 이름이냐 새로 나온 빵이름이냐 갸웃하는 사람보다 일단 한 발 더 앞서 나가게 되는거죠. 저였어도 아주 기뻤을 것 같고 어쩐지 뿌듯했을 것 같아요. 멋진 엄마 단발머리 님, 잘 자라는 아롱님..

문제는, 저희 집에는 세상 교양있게 자라게 해줄만큼 책이 많은데, 그걸 보고 자랄 자식... 이 없다는 겁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늙으신 부모님과 같이 늙어가는 나... 샤라라랑~

단발머리 2026-04-25 11:2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지요. 저는 참말로 ㅋㅋㅋㅋㅋㅋ기쁘고 즐겁고 뿌듯했습니다. 위의 건수하님 댓글도 그렇고 다락방님도 댓글에서 말씀해 주셔서 더 확실히 알게 된 건데요. 제겐 멀었던 버틀러, 자랑스럽고 어려운 버틀러가 아롱이에게는 김치냉장고 위 책무더기 위의 그냥 그 버틀러라는데 생각이 미치니깐, 그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제게는 멀었지만 아롱이에게는 그냥 버틀러 ㅋㅋㅋㅋㅋ

제 아이들은 제 책의 제목을 알고는 있지만 읽지는 않거든요ㅋㅋㅋㅋ 다락방님들의 조카들도 다락방님 서재를 좋아하니깐 저와 같은 경우입니다. 제목만 아는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여 ㅋㅋㅋㅋㅋㅋ 예쁘게 건강하게 잘 자라다오!

햇살과함께 2026-04-25 1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지 않아도 서재에서 이름만 들어본 어려운 작가의 책 읽는 이런 페이퍼 보면 반가운 것과 같은 거겠죠 ㅎㅎ
단발머리님 읽는 난해한 책들 보며 저도 즐겁습니다^^

단발머리 2026-04-25 11:38   좋아요 1 | URL
헤헤헤~~ 역시나 우리 알라딘 이웃님들 따뜻한 댓글에 제가 ㅋㅋㅋㅋㅋㅋ 이런 페이퍼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난해한 책들, 책제목 열심히 전파하며ㅋㅋㅋㅋ 제가 함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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