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키운 여자들>은 천재라고 알려진 이들의 아내, 애인, 누나의 이야기다. 그녀들의
재능이 배우자, 애인, 스승, 남동생 등에 의해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그녀들의 업적이 어떻게 차근차근
감추어졌는지 기술하고 있다.
당시의 재능 있는 여성들이
종종 그러했듯, 해답은 처녀 시절의 경험에 있다. 즉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결혼생활에서는 이 재능을 잘 조절하여 자신의
직업에 잘 유용하게 사용한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208쪽).
천재들은 그녀들이 평범한 여자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천재과’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들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결혼 후 자신의 일과 연구, 예술
작업과 창작 활동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에너지를 배우자, 애인의
작업에 전적으로 쏟아냈던 여성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업적을 쌓아 올릴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은
천재로 기억되고, 그녀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결혼 전에 두 사람은 공동
출판물에 ‘아인슈타인-마리치’라고 서명했으나, 결혼 뒤에는 공동서명이 아닌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대신했다. 밀레바는 이에 별다른 반감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우린
둘 다 하나입니다.”라는 말 뿐이었다(159쪽).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밀레바의 마음이 이해된다. 출생 시부터 눈감는 그 날까지 여성들은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양보’를
강요 받는다. 하물며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왜 희생을 마다하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젊음과 지성, 그리고
에너지를 남편과 애인, 스승을 위해 모두 다 바쳤고, 스스로는
그렇게 소진해 버렸다.
천재의 배우자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천재였던 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 혹은 두 명의 아이가 아니라, 많은 아이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출산과 양육이 그녀들에게 큰 짐이 되었을 거라 예측한다.
게다가 예니 마르크스 개인에게
극도로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녀는 일곱 아이들을 출산했는데, 그
중 네 명은 이미 젖먹이 때나 어린아이 때 죽고 말았다. (44쪽)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어렵다. 적어도 4년 혹은 5년
동안은 잠시도 쉴새 없이 아이를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죽을 각오를 무릎 쓰고 낳은 아이, 갖은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의 죽음을 보는 일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사랑스런 아이를 잃었을 때의 고통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의 죽음을 네 번이나 경험했을 때, 그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다섯 시간 이상 잔 적이 거의 없이, 톨스토이의 원고를 정서하고 수정하며 교정과 편집, 출판에까지 관여했던
소피아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 나는 생각했다. 왜 천재적인 여성은 없는
것일까? 작가 중에도, 화가나 작곡가 중에도, 그것은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의 모든 열정과 재능을 가족과 사랑과 남편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아이를 낳아 다 키우고 나면, 예술가적인 욕구가 깨어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더
이상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더욱더 정신적이며 예술적인 재능과 힘을 발전시킨다. (109쪽)
주디스 서먼은 『제2의 성』의 소개글에서 이렇게 썼다.
Her
pious martyrdom indelibly impressed Simone, who would improve upon Virginia
Woolf’s famous advice and move to a room of her own – in a hotel, with maid
service. Like Woolf, and a striking number of other great women writers,
Beauvoir was childless. <The Second Sex, Introduction>
그렇지 않은 여성,
그러니까 아이들 낳고 키웠으면서도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여성 작가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름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는 남성이거나 혹은 아이를
낳으면서 또는 아이를 낳은 후에 산욕열로 죽게 된 작가이거나….
토요일 밤은 뜨거웠다. 우리가 느끼는 울분과 슬픔은 똑같았지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건 의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만남의 자리에서 받게 된 선물들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한 듯 하다. 우리는, 돈이 우리의 독립성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의식하고 있으며(로또),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몸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할 것이라는 사실(타이레놀 콜드), 그럼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크리스마스 미니부케)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자본의 힘을 인정하지만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여성과 여성의 몸에 대해 우리의 언어로 말하겠다는 고집, 그리고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하겠다는
결심들이 우리가 앉았던 자리, 아니 그 너머까지 가득했다.
뜨거운 밤이었다.
우리의 모든 말을 담아내기에는 짧은 밤이었지만,
시원한 밤이었다.
우리는 마음 속의 뜨거운 것을 토해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