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는 산문집이 쉽다. 소설보다는 산문이 쉽게 읽힌다. 그 산문집이 강연을 엮은 것이라면, 더 술술 읽힌다. 그 내용이 ‘책읽기’에 대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나,의 물음이 책장을 넘겨줄 것이다. 그 대답이 좋아하는 작가의 것이라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직진본능.
김영하의 3부작, 『보다』, 『말하다』에 이은 완결판 『읽다』를 읽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소설을 읽는 이유는 ‘도피’를 위해서다.
2015년 12월 4일 금요일 오후 4시 23분, 이승우의 데뷔작이자 그의 20대를 만들었던 『에리직톤의 초상』을 펼쳤을 때, 전업주부이자 기혼여성, 초등생 두 아이의 엄마, 아직 스스로 젊다고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괘념치 않는 ‘동남아’(동네에 남아있는 아줌마)인 나는, 신학을 전공했으되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아 애인에게 버림받고, 그녀의 귀국 소식에 허둥지둥 칠보산 기도원으로 피신했다가 좁다란 산길에서 그녀와 마주친 그 남자가 되는 것이다. 깊은 산 속 막다른 길에서 옛애인을 만나 당황하는 그 남자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는 것. 간접경험,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간접경험이 아니다. 읽는다는 건, 이 세계를 넘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인물들에 매료되고 자기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에마 보바리로 바꾸어놓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한번 읽어버린 소설은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67쪽)
소설 속의 인물을 따라가다가 그를 좋아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리고 그를 미워하던 중에,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사이에 그/그녀는 우리의 의식에 침투한다. 우리는 그 글을 읽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도 위험한 일인가 보다.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 책을 읽는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결국에 독서는, 독서 경험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 이 위험한 일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한가지 더.
『글쓰기의 최소 원칙』에서 김영하는 말한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은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지요. 거기서 저는 기본적인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해방감이죠. ...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되는 글을!" (293쪽)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 밖에 없는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을 ‘읽고 있다’는 거다.
<필립 로스>
1998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해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국가예술훈장(National Medal of Art)을 받았고, 2002년에는 존 더스패서스, 윌리엄 포크너, 솔 벨로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는,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다.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 상을 세 번 수상했다. 2005년에는 “2003∼2004년 미국을 테마로 한 뛰어난 역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을 노린 음모』로 미국 역사가협회상을 수상했다. 펜(PEN) 상 중 가장 명망 있는 두 개의 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불멸의 독창성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나보코프 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솔 벨로 상을 받았다.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최초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총 9권)을 출간했다. (알라딘 작가 소개)
나는 작년에 필립 로스를 처음 알았고, 그의 책을 10권 정도 읽었다. 작년 ‘올해의 작가’가 필립 로스였고, 올해 ‘올해의 작가’ 역시 필립 로스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소설을 찾아 읽는다. 좋아서 읽는다면, 그의 소설을 읽는데 장황한 작가소개가 왜 필요하겠는가. 이유는 하나다. 이 사람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기 위해서다. 성에 대한 노골적 묘사, 성애에 대한 무조건적 집착은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과에 비하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기 위해서다. 읽기 불편한 몇몇 장면들 때문에 그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도덕하거나 사회적 통념과는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나는 왜 매력을 느끼는가? 나는 괴물인가?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혹시 나는 너무 어두운 심연을 지나치게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내가 이런 이야기에 매혹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135쪽)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에 밑줄을 긋는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산다. 남편과 아이들과 그렇게 사는 내가, 일흔이 넘는 나이에 30대 초반의 유부녀에게 매혹되어 그녀를 유혹하려는 『유령퇴장』을, 평범한 아내 뿐 아니라 충실한 아내조차 버리고 나이 쉰에 새로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가정을 버린 『에브리맨』을, 시들어가는 육체에 사그라들지 않는 욕망의 이야기 『죽어가는 짐승』을 읽는다는 거다. 읽고, 찾아서 또 읽는다.
필립 로스를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 나는 왜 필립 로스를 읽는가. 왜, 나는 필립 로스를 좋아하는가. 주위에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필립 로스를 읽는다고 해서 나를 다르게 보지 않는다. 『포트노이의 불평』, 『휴먼스테인』, 『전락』을 읽는다고 말할 때, 사람들을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서울과학관 의자에서, 탐앤탐스 구석 자리에서 종종 책을 덮어야만 했다. 나는 내가 원해서 들어갔던 그 세계에서 탈출해야 했고, 잠시 숨을 돌려야만 했다.
평범한 내가, 필립 로스가 창조한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남자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답을 찾아야한다. 답을 찾기 위해서 필립 로스를 더 읽어야한다. 답을 찾아야 하니까.
친절한 알라딘이 정리해준 바에 따르면, 나는 작년보다 책을 덜 샀다. 사는 것보다 읽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작년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지도 않다. 제일 반가운 건 이것.
올 한 해 ***님이 사랑한 작가는 강신주입니다.
아무렴요, 강신주는 사랑입니다.
현재 스코어 : 필립 로스 - 강신주 - 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김/영/하
김영하의 『읽다』를 읽고 나서 읽고 싶어 반드시 찾게 된다는 책 두 권을 찾아본다.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