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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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27166)

[젠더 트러블] 젠더는 반복된 일단의 행위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2808169)

이성애와 성 범주와 관련해 이 글과 연관이 있는 예전 글의 링크를 올려둔다. 먼댓글이 없어져서 많이 아쉽다.

평소에는 자주 못 만나던 교회의 구역 식구들이 연말에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가 아는 가장 착하고 순한 엄마들 중에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야무진 집사님 1인이 그러는 거다. 아침에 아이들 깨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10분만, 5분만. 딱! 5분만. 5분 뒤를, 그리고 10분 뒤를 말할 때, 그 시간에 맞춰 아이를 깨워야 하는 사람인 나는, 그 시간 동안 '대기'할 수밖에 없고. 대기하는 동안 내 시간은, 그렇게 그냥 흘러가 버리니, 그렇게 잃어버린 내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 그녀의 토로였다. 어느 집이든, 어느 집의 엄마든 겪어내는 일이기에 모두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끄덕. 맞아요, 진짜! 진짜 그래요. '엄마, 나 5분 뒤에 깨워줘요!'의 상황이 이 책이 말하는 바로 그 '상황', 그 situation이다.

아침에 제시간에 착실히 일어나 작업장으로 착착 걸어 들어가는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가장 중요한,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맡는다. 전통적인 핵가족 모델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산층에 속하는 백인 여성은 돌봄노동을 주로 맡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여성의 일'로 여겨진다. 돌봄노동의 핵심은 '감정노동'일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 인정을 원하는 우리의 정서 욕구를 채우는 데 무임금 재생산 노동이 필수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무임금 재생산 노동은 개별화된 욕구 충족을 통해 개개인의 차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에 한없이 복잡하다. (100쪽)


나는 인간이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 그런 시도 자체가 모순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한다. 인간은 입속으로 무언가를 넣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에게 생존을 의탁한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인간 식물'만이 올곧이 존엄하고 완벽한 자존이 가능하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한다. 출생 직후 극도로 유약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신생아 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녀, 친구와 이웃으로부터 얻는 정서적 지지, 정서적 도움이 생존에 필요하다. 생필품이라 할 만한 것들은 국가의 범위를 넘어 다른 국가의 사람들, 다른 국가의 노동자들을 통해 얻어진다. 아침에 먹은 바나나는 스미후루 감숙왕 바나나.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요는 이러한 도움, 이러한 돌봄이 여성의 것, 여성'만'의 것으로 강제되고,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있다. 그것이 왜 여성의 일인가. 왜 여성만의 일인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곧 여성만의 영역이었던 출산에서 여성은 비로소 탈출하게 될 것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예언했던 바로 그 해방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출산은 여성, 가임기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하지만, 출산을 제외하고 다른 영역에 있어서 여성이 할 수 없는, 즉 남성에게 가능하고 여성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동시에 여성이 할 수 있는데 남성이 할 수 없는 일이란 것도 없다.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 아이 목욕시키기와 밥 먹이기, '어린이집 데려다주기'와 '자전거 뒤쪽 잡아주기'의 어느 지점이 '여성적'이란 말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여성의 성역할'로서의 돌봄노동을 의미한다. 이를 '여성적'인 일로 규정함으로써 남성 집단 전체가 받게 된 이익, 남성으로써 누리는 특권에 대한 제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면 이제는 이런 인식이 상식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스스로, 그리고 사회적 압력과 문화의 이름으로 '여성적인 일'에 복무한다. 복무할 것을 요청받는다. 요청받은 수행을 반복한다. 평생에 걸쳐.

이 지점에서 이성애 로맨스가 중요하다.

여기에 이성애 로맨스와 가정이 삶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홍보가 따랐다. 이성애 결혼이 곧 좋은 삶이 되었고, 모두가 핵가족이라는 규범적 재생산 제도를 원하는 듯 보인다. 이성애는 무임금 노동의 자연화다. 이성애를 통해, 젠더화된 노동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며 좋은 것이 된다. 로맨스 이데올로기는 감정노동을 일이 아니라 보상으로 보이게 한다. (120쪽)


왜, 왜 이성애가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가. 될 수 있는가. 여성이 남성을,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잠깐. 누가 여성인가? 누가. 누가 남성인가. '누가' 남성이 될 수 있는가. 누가 누구를 '여성'이라고 혹은 '남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모니크 위티그가 주장한대로, "성 범주는 남성이 여성의 재생산과 생산을, 결혼 계약으로 실제 여성 개인을 전유하는 이성애 사회의 생산물이다(<스트레이트 마인드>, 51쪽) 즉, 일방을 남성으로, 다른 한쪽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인간의 성을 오직 두 가지 방식으로 한정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인위적으로 범주화된 두 종의 인간,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고, 이성애만을 긍정하며, 또한 이성애 결혼을 권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가 공고화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로의 이행에서 젠더 관계를 이념적으로 재정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던 “여성 논쟁”에서는 두 개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 첫째로 남성과 여성 간의 차이를 극대화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형을 더욱 명확하게 구분 지은 새로운 문화적 규준이 구축되었다. 둘째로 여성은 과도하게 감정적이고 욕망이 넘치며 자기통제능력이 부족한 만큼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남성의 통제 아래에 놓여야 한다는 명제가 확립되었다. (『캘리번과 마녀』, 164쪽)




They call it love.

사랑이라 부르며 요구되는 착취 속에 여성들은, 대부분의 여성은 이 명령을 내재화했다. 자신을 희생하라는 요구, 규범적 여성성의 핵심적 요구에 부응했다. 오랜 기간 그것이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를 거부한 여성은 폭행당했고, 살해당했고, 미친년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온다.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순응하기를 거절하는, 다른 사람을 위한 재생산을 거부하는(182쪽), 자주적으로 살기로 결정한 새로운 세대가 온다.


돌봄 노동에 관한 부분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이 다루어야 하는 기본 전제를 정연하게 정리한 책이어서 1독을 권한다. 논의는 돌봄 노동 거부를 넘어 가족 해체까지 나아가는데, 4인 핵가족의 한 사람이며, 정형화된 삶의 규준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가족', 다른 '공동체', 다른 '그 무엇'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기에 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표지에 속으면 안 되는데, 읽다 보면 사실 이렇게나 예쁜 분홍분홍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된다. 아니, 우리가 요구받는 그 무엇, 친밀함과 다정함, 그리고 사랑이 이렇게 분홍분홍한 것은 사실이니, 그런 측면에서 제대로 된 선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 책, 실비아 페데리치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데리치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좋은 모델이자 레퍼런스가 된다는 건 신나는 일일 것 같다. 페데리치님, 그거 아세요? 알바 갓비가 페데리치님 좋아한대요. 분홍분홍하대요!





즉 노동 행위가 주체를 존재하게 한다. 주체는 기억, 욕망, 습관을 통해 안정된 실체로 드러난다. 이런 것들은어떤 유형의 노동을 능숙하게 반복하면서 내면화된다. 주체는 사회적으로 성립된 자아를 사회보다 앞선 진정한 것으로 경험하게 된다. 감정노동의 경우에 특히 그렇다. - P45

이성애는 재생산 노동의 자연화고, 재생산 노동에는 자본주의의 자연화가 따른다. 페미니스트는 이런 자연화에 도전해야 한다. - P125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맞서 투쟁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본과 국가의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 비용을 지속적으로 늘 리는 주거와 보육 서비스의 무상 지원같이 새로운 사회적 욕구를 만드는 것이다. - P130

사회학자 디무트 엘리자베트 부벡DiemutElisabet Bubeck이 말하듯, 모든 여성은 직접 착취당하지 않아도 젠더에 기초한 착취에 취약하다. 이성애 제도는 자본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이로운 방식으로 착취한다. - P141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 노동은 자주적 주체성과 병립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이런 유형의 노동이란 다른 사람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보다는 그러한 욕구가 노동 주체를 순응시키는 힘이된다. 따라서 자주적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재생산 노동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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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3-12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본주의에 찌들어 살고 있지만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찔러야 할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특히 우리 여성들이 고통스러운건 자본주의 탓이다. 이성애 역시 자본주의가 강제했다!! 그런데 한 개인이 그걸 어떻게 쳐부수지? 이러다보면 다시 굴레에 빠지게 되고.. 여하튼 자본주의 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책을 읽기를 매우 좋아하는바, 이 책도 제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제목이 좀 음... 저같은 꼴페미에겐 순하게 느껴졌거든요. 이미 다 아는, 속터지는 내용일 것 같다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매운맛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합니다!!

단발머리 2025-03-13 15:2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에 공감됩니다. 결론은 자본주의로 가는데 이걸 이길 힘이 우리 문화에, 우리 시대에 가능할까 생각할 때 저는.... 불가능하다 쪽이거든요. 근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현재에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파국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매운맛이긴 한데, 우리가 전에 읽었던 책들(페데리치, 달라코스타, 크리스틴 델피)이 있어서 그래도 잘 넘어갑니다.
도전은 항상 환영이구요!

다락방 2025-03-12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에 교회 집사님 얘기요, 아이들을 5분후에 깨워주고 또 깨워주는 일. 이것 자체는 사실 어느 집에서나 일어나는 일상이잖아요. 그런데 ‘그렇다면 아이를 깨워야 하는, 대기하는 나의 그 시간은 어디서 보상받나‘ 에 대해서는 제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서, 그 부분에 대해 큰 깨달음 얻고 갑니다. 아마 저는 누군가를 깨워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 식의 생각은 마땅히 언젠가 나와야할 것이었고, 그 집사님께 베티 프리단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어쩐지 잘 맞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3-13 15:29   좋아요 0 | URL
그 집사님은 전업주부의 이상이며 소임(?)으로 여겨지는 자녀 교육에서 ‘세속적‘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시고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자기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아주 잘하던 분이라 다시 공부하는데도 잘하시더라구요.(부럽네욬ㅋㅋㅋㅋㅋㅋㅋ)
베티 프리단 좋은 선택이네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은 아니신데 독서 모임도 하시고 그러거든요^^

수이 2025-03-12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182쪽 문장들 소리내어 방금 읽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혼한 까닭에 접해서 다시 읽어보았고 지금 제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읽어보았어요. 저는 한 번도 그런 투사로 살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주입받은 그대로 충실한 이성애에 사로잡혀 멋진 왕자랑 비스무리한 경제력 있고 근사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면서 알콩달콩 펭귄새끼들보다 더 어여쁜 새끼들을 내 품 안에서 온전하게 보다듬으면서 따뜻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었던 거 같아요. 물론 이게 시나리오대로 딱딱 갈 수가 없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건 구남편 덕분이긴 하지만요. 동시에 저게 내 욕망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시에 아 내 시나리오대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걸 정확히 알았고 어떤 욕망의 결로 흐르건 간에 돌봄노동과 주체성을 병합시키도록 하자. 이대로 살다간 미쳐 죽건 속터져 죽건 둘 중 하나다 그렇게 일단 내질렀던 거 같아요.

단발머리 2025-03-13 15:32   좋아요 0 | URL
저는 모든 사람이 투사로 살아야한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요. 일단 제가 투사가 될 기질이 약한 사람이고요. 소시민적 이상을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근데 우리가 내내 읽는 페미니즘의 교훈은... 그런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건데, 설사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그 억압과 무게를 감당하는 여성은 많지 않으니까요.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같은 분투의 시간이 필요하죠.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어요.

수이 2025-03-1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페데리치 언니도 그렇고 알바 갓비도 그러하긴 한데 저는 완독 후 좀 더 깊은 회의감에 사로잡혀서 아 내 한계는 여기까지로구나 그걸 명확하게 알았어요. 돌봄노동에 사로잡혀 정신 없이 살아가는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가까이 하게 되면서 더 주체성과 돌봄노동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됐고 여자가 아무리 똑똑해봤자 결국 한국 여성의 삶은 정해져 있는 거 같아, 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또 곰곰. 어딘가에 해방의 길이 있으리라는 건 알겠는데 이걸 병행해가는 여성들(물론 돌봄노동하는 남성들도 마찬가지고)이 만족할 수 있는 때가 다다르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를 후_일 거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어요. 결국 욕망의 결이 아닐까 싶어요. 둘 다 운 좋게 해나가리라 여겼는데 그 친구(유학간 친구)도 그렇고 지난 제 삶을 봐도 그렇고. 지금 카페에 말린 장미 다발이 데코로 놓여져 있는데 말린 장미로 살아가고픈 이들은 아무도 없겠죠. 17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를 낳아 키웠고 그것만 따지고들어도 아쉬울 건 없는데 17년 동안 말린 장미로 집 안에서 살았던 거 같아요.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 싶어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단발머리 2025-03-13 15:41   좋아요 0 | URL
해방의 길이 생각보다 멀리, 저기 저 길 끝, 골목 돌아가면 나오죠. 나이가 40대는 지나서야...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서. 지난 일을 후회하는 건 의미 없지만, 사무치는 후회와 원망과 회한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테고요.

한편으로 저는... 전업 주부 엄마에게 요구되는 그 무게. 아이의 공부와 진로와 관련된 압박(이 책에 소개된 감정노동, 즉 다정함으로 아이를 다독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는 것)이 상당하니까요.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대치맘의 라이딩 생활 같은 거요. 오늘 기사에는 어떤 연예인이 아이 사교육비를 공개했는데(물론 어마무시한 금액) 사람들 반응이 또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고요. 이런 것들을 엄마들에게 요구하면서, 자유롭게 살아라, 제 자신을 찾아라,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요.
이건 전교 1등해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 아닌가 말입니다. 공부에, 예체능에, 아이 체력도, 아이 교우 관계까지 관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너 자신을 살아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가능하냐고요. 우주 최강 슈퍼맘이라도 힘들겠단 말입니다.

2025-03-12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13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기 퍼가기 시대 -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 서구 미혼모 잔혹사 1
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 권희정 옮김 / 안토니아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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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필요한 것은 정부로부터 받는 양육 지원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사 줄 수 있는 두 명의 부모이며, 그들은 아기에게 사랑 외엔 줄 것이 없는 미혼 엄마가 줄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권유하고, 회유하고, 강요하며, 수치심을 주고, 병명을 붙여 진단하고, 몰아붙이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입양 복지사는 이미 알지도 못하는 낯선 부부에게 (돈을 받고) 아기를 구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는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저항하면 자신들에게 아기를 넘기라고 위협한다. 미혼모는 사람들이 사랑보다 돈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61쪽)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아동 복지'라는 이름으로 미혼모의 아기에 대한 대대적인 입양 정책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극한의 경험 속에서 취약한 상태에 빠진 미혼모들, 특히 10대의 미혼모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족들, 남자 친구, 애인과 분리되었고,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삶과 미래를 결정해야 했다. 친화적인 태도로 미혼모들을 도와주던 복음주의 기독교 여성 종사자들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회 복지사들에게 그 역할을 빼앗겼다. 아기와 엄마간의 교감과 소통을 강조하던 이전의 기독교 여성들과는 달리 사회 복지사들은 미혼모들에게 아기를 키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더 '훌륭한' 부모에게 아기를 입양 보낼 것을 강요했다. 아기를 위해, 아기의 미래를 위해 입양을 선택한 미혼모들은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했다.이 책의 저자도 그런 미혼모 중의 한 사람이다.

문제는 수요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돈벌이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아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왜, 왜 아이가 필요할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기 퍼가기 시대'가 시작되던 미국 사회에서 무자녀 부부는 불완전하고 그 삶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완벽한 가족 신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자녀가 많은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녀가 없는 가족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가운데 아이가 없는 부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압박에 노출되었다(Reid 1956). (110쪽)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이는 너무 당연한 말이다.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완벽한 가정'의 그림 속에는 아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상화된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 아기가 필요했다. 어떤 아기인가. 사람들이 원하는 아기는 파란 눈의 백인 여자아기였다. 입양 가능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부부였고, 이들은 자신들과 닮은 파란 눈의 백인 여자아기를 원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렌즈>에는 주인공 챈들러와 모니카가 나온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아기를 갖지 못한 이 부부는 여러 번의 다양한 시도 끝에 두 사람 모두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10대 미혼모(금발, 파란 눈의 백인)의 아기들(쌍둥이)의 입양을 위해 입양 신청 절차를 진행한다. 드라마 속에서 이 과정은 아름답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어리고 미숙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진 10대 미혼모가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좋은 부모가 될 열의와 사랑을 가진 두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결정'을 통해 아기들을 입양시키기로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이 책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아기를 빼앗긴 미혼모의 고통은 새로운 아기를 얻는다고 해서 희석되지 않는다. 영원히, 그녀들은 잃어버린 아기를 그리워한다.

이러한 비도덕적 입양 강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 아기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기를 원하는 백인 중산층 부부의 아내였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아기를 원한다. 나를 닮은, 남편을 닮은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기를 원한다. 우리 가정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기는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것, 주문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아기는 남녀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여성의 희생으로 완성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 나는, 우리 가정에는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를 줄 수 있는 여성을, 아기를 주고자 하는 여성을 찾아보자. 그 여성은 자신의 아기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아기는 혼외자이고, 경제적 불안 속에 성장할 것이 뻔하다. 그 아기를 우리 집에 데려온다면? 나는 그 아기를 내 아이처럼, 아니 내 아이로 키워낼 자신이 있다. 그 아기는 우리 가정에서 자랄 때 더 행복할 것이다. 그 아기는 우리의 아기가 되어야 하며, 내게는 그 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미혼모에게서 그 아이를 빼앗아야 한다.


바로 여기. 아기를 갖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아기를 자신의 힘으로 키우고자 하는 미혼모의 욕망이 충돌한다. 타인의 욕망에 반하는 나의 욕망은 어느 지점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나는 어느 선까지 나의 욕망을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가. 나의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 입양 복지사 로우에 따르면, 입양 부모들은 입양할 아이를 고르기 위해 미혼모 시설에 직접 방문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마들의 극심한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입양의 날 느끼게 될 행복"을 망쳐 버리기 때문이다.(210쪽)

… 입양 부모는 친모를 계속 비가시화하고,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런지 그 동기를 오랫동안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도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212쪽)

백인 중산층 부부들은 '모른 척' 하기로 한다. 미혼모의 딱한 사정을 '못 본 척'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행복,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게 된 행복은 진짜가 아니다. '아기 퍼가기 시대'는 그렇게, 미혼모들의 눈물과 불행을 통해 완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구원된 입양 아동은 감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입양된 아이들이 친부모에 관해 묻거나 친부모를 찾으려 하면 나쁜 아이이거나 은혜를 모르는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입양인들은 과거에 대해 알 권리가 없고, "부도덕한" 미혼모와 살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양부모도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Marshall & McDonald 2001). - P90

1940년대 말 백인 신생아 입양을 원하는 불임 백인 부부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신생아를 빨리 입양하고자 하는엄청난 수요"와 입양할 아이를 빨리 확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미혼모를 번식 기계로 여기는 경향이 점차 커졌다"(Young1953). - P113

또한 입양 보내진 아동의 인종적 차이는 확연하다. 1963년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백인 신생아의 약 70%가 입양 보내졌지만, 흑인 아동의 경우는 5%에 그쳤다(Winston 1963). 1964년 입양보내진 아기 중 백인은 70%, 흑인은 4%였다. 이 해 미혼모 중 백인은 42%로 기록된다. - P193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실망하고, 자신도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사회는 어떤 엄마에게 임신은 잘한 일이고, 어떤엄마에게 임신은 잘못한 일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라 하고,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행동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자신보다 아기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하고, 어떤 엄마에는 아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녀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경험에서 고립되어있다. 그녀가 느끼는 슬픔은 해결될 수 없다. 홀로 어떻게든그것과 함께 살아야 한다. (Roland 2000:9-10)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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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2-23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참 할말이 많은 책인 거 같아요.
두 아이를 평범한 가정에서 키워낸 저이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빼앗긴 수많은 엄마들에게
무어라 할말이 없을만큼 마음이 아픕니다.
진정으로 누군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날이 올까요.
아이를 보내는데 적극적이었던 입양보호사나
스노우화이트에 푸른 눈만을 선호하는 입양가정에도 엄마라는 여성이 있었음에 분노합니다!

단발머리 2025-02-25 07:50   좋아요 1 | URL
저는, 거부하고 싶은< 제도로서의 모성>이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많이.... 복잡했습니다.
다른 아이를 낳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했구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혼모들에게 입양을 강요한 입양 보호사들은 정말 나쁜 사람, 사기꾼이 맞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시간들은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다락방 2025-02-24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프렌즈에도 저런 에피소드가 나왔었군요. 입양이 언제부턴가 주객전도가 된것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혹은 기타 다른 이유들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은 있을 수 잇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럴 경우에 좋은 집으로 입양을 가는 것도 방법중 하나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입양을 원하는 수요가 크다 보니 이제 그렇게 아기를 ‘팔기‘ 위해서 미혼모가 필요해져버린 상황이 된걸로 생각되거든요. 그게 그 과정에서 분명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는 전쟁과 평화 읽느라고 잠깐 멈춤 상태입니다. 곧 따라갈게요!!

단발머리 2025-02-25 07:54   좋아요 1 | URL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여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한 가정에서 양육받는 것이 그 아이에게 더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요. 취약한 미혼모들의 아이를 빼앗기 위해 그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게 가장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정서적 지원이나 응원이 어렵더라도, 경제적인 부분이 채워지면 미혼모들이 용기 내어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현재 러시아를 여행하신다고 들었어요. <전쟁과 평화> 평화롭게 마치시고, 완독 행렬에 참여하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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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백인도 인종차별당할 수 있나>와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인상깊었다.

부제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작가 소개에 쿠르드계 영국인이라 나오는데, 아버지가 아랍계이고, 어머니가 백인이다. 이 소개가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저자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을 '유색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혹은 적어도 스스로 백인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49쪽에, 자신의 피부색이 밝아서 백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다는 에피소드가 이를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을 백인, 백인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 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책은 백인 여성이라면 쓸 수 없는 종류의 책이다. 독특한 경험에서 나오는 분노와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선명한 해답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역인종차별과 역성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인종차별, 성차별이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억압(oppression)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는데, 억압이란 세상이 혼란하거나 복잡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 설계의 일부로서 작동하며, 이를 통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24쪽)한다. 특권과 억압이 가능한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특정 집단의 종속과 착취가 사회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성과 젠더 위계 안에서는 남성이 특권을 누리고, 유색인종은 인종 위계 안에서 억압을 당한다(24쪽).

이러한 억압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이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권. 1991년까지도 영국에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죄는 '성립될 수 없다'라는 것이 법적 견해(30쪽)였다.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혀 임신부의 임신 중지 권리는 폐지되었다. 연방대법원 다수의견서에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17세기 법학자 매슈 헤일을 인용하는데, 그는 마녀의 술수에 대한 책을 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던 사람(31쪽)이다. 억압받는 집단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구조적이다.

인종차별 역시 이러한 억압의 역사적 기준에 부합하는 실례라고 여겨진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백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 다른 대륙으로 옮겨 살게 되고, 죽을 때까지 노동하며,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으로 삶을 끝냈던 바로 구조를 통해 유럽과 북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충분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새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영국에서는 1833년 노예페지법으로 노예제를 종식시킨다. 인도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반란 등을 이유로 노예의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이제 더 이상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할 수 없는 노예 주인들에게 '재산'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한다. 재무부가 190억 달러 상당의 돈을 빌려 그 비용을 충당했는데, 2015년에야 이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예의 노동은 온전히 주인의 것이어서 노예들은 일하고, 쓰러지고, 죽어 나갈 때도 무급이었지만, 이제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 주인들에게는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이, 충분히, 넉넉하게 이루어졌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화이트파워'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블랙파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이중 기준이 아니라 두 진술의 맥락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걸파워'와 '맨파워'의 즉각적이고 뚜렷한 차이를 생각해 보라.) 백인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권력은 너무 자주 백인의 것이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백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중요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동어반복일 뿐이다.(147쪽)

9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천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신자유주의적 전환(neoliberal diversion)'이다. 환경 오염을 필두로 한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는 구조적인 것인데, 자선 단체 기부, 공정 무역 초콜릿 소비, 친환경 세제 사용 등으로 화제를 전환함으로써 개인적 해결책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결함을 가리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사례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의류 재봉사들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망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그냥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남반구의 유색인종이다. 남반구 인구, 저임금 노동자, 환경이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경제가 그 평가절하를 바탕으로 삼아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시스템에는 자명하다. 세계의 공장들은 남반구에 있고 그곳의 인력은 주로 저임금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350쪽)

겉치레에 불과하다.에 밑줄을 긋고 책상 위 펼쳐둔 책 위에 머리를 박는다.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안 해도 너무 안 한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엄마들의 대화는 시작이 아이들 공부 이야기고, 반드시 공부 이야기로 수렴한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중진국에서 자랐고, 이제 선진국에서 살지만, 얘네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얘들이에요. 뭐든 가졌고, 이제 더 필요한 게 없어요. 우리는 제 1세계에요. 우리나라 GDP 좀 떨어졌던데, 그래도 세계 13위에요. 세계 13위. 세계 13위 국가의 수도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어떨 거 같아요. 돌아가자.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챕터가 '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나.

토지 사용에 초점을 맞춰보자. 세계는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육류를 적당히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덜 필요할 것이다. (2) 육류를 많이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경작지나 목초지를 더 만들기 위해 숲을 벌목해야 할 것이다). (3) 육류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국가들. 세상 모두가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으면 무슨 수를 써도 농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놀랍지도 않겠지만 이 분류는 국가별 국민 1인당 부(富)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1)에는 태국, 중국, 스리랑카, 이란, 인도가 포함된다. (2)에는 독일, 영국, 멕시코, 한국이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의 전형적 식생활이(3)과 맞아떨어진다. (332쪽)

육식만 문제일까. 하지만, 육식이 문제의 핵심인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고. 내가 불편할 정도로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았고,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실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실천은 반드시 필요하다. 요는 실천할 게 너무 많다는 것.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고기를 잘 먹던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식단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도 놀랐다. 이게 실천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불균형한 식단으로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빈혈 판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더 먹어야만 했는데, 다행히 초등학교 식단에는 고기가 많이 나와서 점심시간을 고기 먹는 시간으로 정했다. 우리 집에 육식인간은 1인이고, 그 1인조차 양이 적은 편이라 그 어느 집보다 '고기 안 먹는 집'이 되었다.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마리아 미즈는 고기, 새우, 유제품, 그중에 치즈를 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치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지난주에 마트에 나가보니 칵테일 새우가 특가 세일이어서 가격이 저렴했는데, 다음에 사자 하고 미뤄두었다(요리하기 싫어서 아님). 마리아는 고가의 사치품, 화장품의 사용을 자제하라 말했다. 특히 립스틱을 사지 말 것을 권고했다(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권합니다) 근데 저번 주에 립글로스 너무 이쁜 거 발견해서 참다 참다 결국 하나 샀다. 다 못 쓴 립스틱 많은데, 많은데... 하면서 샀다.

어디 그뿐일까. 옷 사지 않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고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지역 물품 이용하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전력/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이걸 말고도 너무 많아 여기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도 지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호소를 기후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유럽에서 이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는 핀란드인데, 수도인 헬싱키만 봐도 노숙자가 크게 줄었다. 핀란드의 '주거 우선' 정책은 주거권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다. 사람은 일단 살 곳이 안정되면 다른 문제(이를테면, 약물 중독)도 해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선 단체와 지방 의회가 변화를 꾀하기 위해 열심히 로비를 했더라도 결국 법안을 제정하고 수만 명의 삶을 순식간에 변화시킨 것은 정부의 힘이다. 노숙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고,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339쪽)

정치적 선택과 정부의 책임. 정부는 정치적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다. 장관과 각 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3,000명이라고 했던가, 5,000명이라고 했던가. 그 이외에 정부 외 정부 출연기관까지 합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그 일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은 자신과 비슷한 정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임명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들의 작태를 보라. 윤석열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자신과 국가의 존망이 달린 탄핵 심판을 헌법 재판소에서 받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는 위인의 인권을, 국회 연설 때 국회의원들이 무시하고 박수 안 쳐서 비상계엄 발동했다는 위인의 인권을, 계엄군이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 도리어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하는 위인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아이고야.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정치 묻히기 이제 그만!


하지만, 정치다.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고, 정부는, 행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이 원하는 삶', 다수가 바라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한다. 일해야 한다. 우리가 주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 수급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40여만 원)에 5만 원을 더해 앞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문정부 때였다. 지금은 태양광 기업이 모두 중국기업이라 그 사업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크게 들린다. 윤정부 시대다. 식료품이 이동한 거리는 탄소발자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아보카도보다 사과를 먹는 것이 지구를 위해,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이다. (가끔은 먹을 수도 있다, 나도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내가 혼자 한살림을 이용하는 것과 학교 급식 물품이 한살림 물품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영역, 미미한 영역에 기업과 정부가 개입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연을 살리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겉치레에 불과한 페미니즘,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발전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럼 너는?'이라는 비판에 더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가정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너는? 제3세계 아동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슬람 세계 여성 인권 문제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 대해서는, 너는 할 말이 없어? 그것만 중요한 문제라는 거야? 딱 그것만?"이라 묻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온 세계에 산재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자신이 없다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그 헛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오늘, 바로 오늘의 실천을 이어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절망하지 않으면서, 이 상황이나 현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더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 일단 탄핵 인용의 날에, 박수 기다리던 위인에게 큰 박수 보내드리고, 그리고 나서 시작하자. 바로. 그리고 나서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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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2-1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좋아요 일빠 💋 읽기는 점심 먹고난 후

단발머리 2025-02-13 12:09   좋아요 0 | URL
🥙🥗🥘🫕🍣🍜🍱🥟차린거 없지만 많이 드세요~~

다락방 2025-02-13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글 너무 좋습니다. 이 책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한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니, 얼마나 좋은 리뷰인가요!

저는 밑에서 두번째 단락이 참 특히나 좋네요. 뭔가 하겠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비판을 쉽게 하는것 같아요. 뭔가 하지 않으면 비판 받을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뭔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완벽하기 위해 안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안하는거지. 하여간 저도 제가 생각한 길을 뚜벅뚜벅 가는 걸로..

그나저나 저는 육식도 육식이지만 탄소발자국에 대해 죄인입니다.

단발머리 2025-02-13 12:38   좋아요 0 | URL
이 리뷰가 좋은 리뷰였으면 좋겠지만서도 이 책이 참말로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척 논리적이고 신중한 스탠스인데, 이걸 실제에 응용하려면 한 번 더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밑에서 두번째 단락은, ‘흑인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대부분 백인들)의 반응‘인데요.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 읽다보면 페미니즘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쩔 때는 ‘똑같다‘라고 여겨질 정도잖아요.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왜 ‘말‘만 하냐고 그러잖아요.ㅋㅋㅋㅋ 옳은 ‘말‘이라도 한다는게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면 ‘나쁜 말‘을 하라는 건지. 자신들의 나쁜 말을 옹호하는 그 자세야말로 더 비윤리적인데 말이지요.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 보편화 가능성>의 두 번째 챕터 제목은 이렇습니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사기극.
사기극이라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5-02-1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도 공감 백배!

단발머리 2025-02-13 12:49   좋아요 1 | URL
저도 알라딘서재지기 잠자냥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어요. 좋은 선택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기립박수 준비했습니다. 같이 하시죠~~ 👏👏 👏👏👏

은하수 2025-02-13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정말 작은거라도 실천이 중요하단걸 다시 깨닫게 되네요.
이 글 읽으면서 저도 마리아 미즈 생각했는데... 언급해주시니 또 한번 더 실천하겠다는 의지...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하는 계기가 되구요.

이노무 정치... 정말 중언부언 말도 안되는 논리로 헌법재판소에서 변론하는 거 보면 속이 터져요.
검찰총장 시킨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진짜 원망했어요. 그거 안했으면 대통령 안나왔을텐데... 하면서요.
거두절미하고...
제발 우리나라에도 의식있고 무식한 말고 ˝유식한˝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5-02-13 19:3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한 가지 실천하고요 (부끄러워 비밀로), 저녁은 냉파했습니다.

저도 문재인 대통령 원망 많이 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건 좋은 거지만, 아.... 온 나라가 아주 난리법석 ㅠㅠㅠ
유식한 대통령, 똑똑한 대통령, 말 통하는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탄핵 심판 마저 하고요.
 
Tell Me Everything (Hardcover)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Random House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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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주요한 축이 루시와 윌리엄이었다면, 이 책의 주요한 축은 루시와 밥이다. 조금 더하자면, 매트와 올리브. 만약 주인공을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밥. 올리브와 루시의 이야기 중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소중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의 주인공은 밥이다. 이 책은 밥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과 우정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멀리 있는 감정인가는 새롭지 않은 문제다. 나는 남사친이 없어서 그런지 편안하고 친근하며 나를 지지해 주는 남자, 그런 친구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독한 프로이트주의자인 필립 로스의 말처럼, 남녀 사이의 일은, 중요한 단 한 가지 일은 섹스 뿐이다, 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혹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 정도이다.


Jim sat forward again. "Of course she's in love with you. You two take walks all the time, and you talk, right?" Bob nodded. "I always remember reading - it was years ago now - an article in which a famous director said: There is nothing sexier than talking. I always remember that. And that's what you and Lucy do - you talk. All right, now listen, Bobby. Don't tell her you're in love with her. Do not have that conversation with her. (277p)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자원은 인간이다. 제일 큰 즐거움은 대화에서 온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시간은 1분이, 아니 1초가 버겁다. 설사 애정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 말을 '알아듣는' 너를 발견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성관계는 없다. 환상은 실재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바로 그러하므로. 소통 불가능의 세계에서 맛보는 합일의 순간은 특별하다. 다만, 그런 순간은 찰나일 뿐이니. 스침에서 마주침으로의 그 순간은 더더욱 소중하다.


지금, 이 사람.

현재,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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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2-01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화만큼 섹시한 건 없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 있을까요? 혼자 떠드는 거 말고, 진짜 대화!
루시에 올리브까지~~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25-02-01 21:49   좋아요 2 | URL
다정하신 독서괭님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바닷가의 루시>입니다. 그 때 제가 윌리엄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했는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는 윌리엄 별로 안 나오는데다가 좀 별로인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게 윌리엄의 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쓸쓸한 이 내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어서 어서 오시구요. 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으로 후진해서 가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02-02 09:05   좋아요 1 | URL
후진도 좋네요 ㅎㅎㅎ

수이 2025-02-0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사친을 만들어요, 말할까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남사친들 만난지 너무 오래 전이라 내게도 있던가 남사친. 단발님 근처에는 그러고 보니 다들 여성들뿐이군요. 블루베리가 너무 적습니다. 조금 더 팍팍 넣어요. 교회 잘 다녀오시구요, 라고 시계를 보니 벌써 아멘 하고 있을 시간.

단발머리 2025-02-04 18:59   좋아요 0 | URL
남사친은... 제 생각에는 더 어릴 때 만들어야지 않을까요? 지금은 다 커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회는 잘 다녀왔습니다. 그 시간은 아직 출발 전이었구요! 그러나 아멘!
저녁 맛난거 먹어요~~

망고 2025-02-02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다 읽으셨군요 이 책도 너무 좋죠? ㅎㅎㅎ 루시와 밥의 사랑이 그렇게 끝났지만 루시가 마지막에 말하는 Love is love, 사랑이 다 다른 형태더라도 그건 다 사랑이라고, 밥을 사랑하지만 윌리엄에게서 느껴지는 안전한 느낌의 사랑도 사랑이라 루시가 선택한 길 즉 이 책의 결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단발머리 2025-02-04 19:01   좋아요 1 | URL
이 책 저도 너무 좋았어요. 아끼면서 미뤄지고 바빠서 미루다가 이번 연휴에 마저 읽었습니다. 저는 밥의 마음을 알 거 같았지만(어디까지나 추측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하지 않은게 너무 잘한거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많이 후회할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루시의 고민과 갈들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해보았습니다.
다음 책, 우리 같이 기다려 보아요~~

다락방 2025-02-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들은 섹스도 같은 성별과 하는데 친구며 연인이며 다른 성별이 뭐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대화가 통한다면 그걸로 기쁠 수 있다면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나이가 어떻게되든 좋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단발머리 님은 많은 분들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단발머리 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단발머리 님은 사람들에게 기둥이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 맥락을 잘 파악하진 못했지만, 그리고 우정 역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랑이 우정의 한 형태일 수도 있고요.


단발머리 2025-02-04 19:0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대화가 통하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죠. 근데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딱딱! 통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루시와 밥이 그렇거든요.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도 있고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제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저번주 토요일에도 그런 좋은 시간이었는데, 가끔 너무 힘들때는 말이에요. 그냥 들어주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요. 어차피 인간에게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한데.... 응, 그랬구나~~ 그런거요. 저번주 토요일에 그랬습니다^^

사랑과 우정이 참 비슷하지요. 사랑도 우정도 소듕합니다!

공쟝쟝 2025-02-05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에서 텔미, 에브리띵, 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구매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7 11: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르니깐요. 그게 가능하다고 하대요.
이건 루시가 밥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해줘요, 밥. 그간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내게 말해줘요!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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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 서재에서 알게 된 『행복의 기원』을 읽었다.

다락방님의 글은 여기(행복의 기원, 음식과 사람, https://blog.aladin.co.kr/fallen77/15858376)에.


행복이란 안정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편안한 감정 양태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 속에서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그간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인간은 100% 동물이고, 지구상의 다른 동물,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고기와 매력적인 이성(딱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서 유성생식을 선택했던 생명체들이 더 고도의 진화 과정을 거쳤고,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일단 이성이라고 쓴다). 살아남기와 짝짓기. 인간은 100% 동물이라거나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작동하는 뇌의 속임이라는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인간이 생존확률만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만약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일생일대의 필생 작업, 메이팅을 완료한 상태에서 외부의 위협(추위, 더위, 눈, 비, 사나운 동물, 뱀 기타 등등)이 없고, 쾌적한 생활(샤워 시설, 수세식 화장실)을 영위할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와 배달앱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할까.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해야만 할까.

처음엔 행복할 수 있는데,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뇌의 보상 체계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더 강한 자극원에 노출되면 더 약한 자극원에 대한 보상의 정도가 급감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원에 대한 뇌의 반응은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34쪽)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더 강한 자극을 경험한 이상 이전의 '소소한' 행복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반복되는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133쪽)'에 더해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8을 가져도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6에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성장과 팽창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성향 역시 '타고 나는' 측면이 강하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 먹은' 성향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싶어서 가지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은 내내 그렇다. 그냥, 모든 상황에, 환경에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유전'의 문제로 돌아온다.


'사람'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을 때,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초집단주의적 문화의 행복감이 그렇게 낮은지에 대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과도한 타인 의식을 그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체면과 의례를 중시하는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되었고, 이제 이러한 문화들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던 회식 문화가 뮤지컬 감상과 고급 레스트랑 탐방으로 바뀌어가고, 1차부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던 긴긴밤이 식사 후 티타임으로 바뀌어간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유감의 중요성이 또 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177쪽)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많아질 때 행복해진다고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부럽다. 그다음 방법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과 자주 만나는 것인데, 좋아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면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랑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부러워할 만한 경제 수준의 나라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쾌적한 나라에 산다. (179쪽)



100% 동감이다. 다만 이번 주에는 못 만난다. 이번 주에는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난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나는, 이 만남을 어쩔 수 없는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서, 나름대로 괜찮은,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심심하고 약간 지루하긴 하겠지만, 나름 재미있는 시간으로. 그렇게 이번 주를 보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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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1-26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다이렉트인 문장들입니다🙄

단발머리 2025-01-27 08:3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ㅋㅋㅋ 일단 시작이 좋아요. 2/4명이 쿨쿨ㅋㅋㅋ고요한 아침입니다! 😪

다락방 2025-01-31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마는,
그 연휴, 다 어디 가버렸나요? (이상 회사에 출근한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5-01-31 09:5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기가 최고죠.
그 연휴가 언제 그렇게 가 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인데,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을 때, 시간 빨리 흐르는 거죠? 알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눈발 날리던데 길 미끄러우니 점식 식사 하러 나가실 때 조심하세요, 다락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