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퍼가기 시대 -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 서구 미혼모 잔혹사 1
캐런 윌슨-부터바우 지음, 권희정 옮김 / 안토니아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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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필요한 것은 정부로부터 받는 양육 지원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사 줄 수 있는 두 명의 부모이며, 그들은 아기에게 사랑 외엔 줄 것이 없는 미혼 엄마가 줄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권유하고, 회유하고, 강요하며, 수치심을 주고, 병명을 붙여 진단하고, 몰아붙이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입양 복지사는 이미 알지도 못하는 낯선 부부에게 (돈을 받고) 아기를 구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는 미혼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저항하면 자신들에게 아기를 넘기라고 위협한다. 미혼모는 사람들이 사랑보다 돈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61쪽)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아동 복지'라는 이름으로 미혼모의 아기에 대한 대대적인 입양 정책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극한의 경험 속에서 취약한 상태에 빠진 미혼모들, 특히 10대의 미혼모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족들, 남자 친구, 애인과 분리되었고,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삶과 미래를 결정해야 했다. 친화적인 태도로 미혼모들을 도와주던 복음주의 기독교 여성 종사자들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회 복지사들에게 그 역할을 빼앗겼다. 아기와 엄마간의 교감과 소통을 강조하던 이전의 기독교 여성들과는 달리 사회 복지사들은 미혼모들에게 아기를 키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며, 더 '훌륭한' 부모에게 아기를 입양 보낼 것을 강요했다. 아기를 위해, 아기의 미래를 위해 입양을 선택한 미혼모들은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괴로워했다.이 책의 저자도 그런 미혼모 중의 한 사람이다.

문제는 수요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돈벌이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아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왜, 왜 아이가 필요할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기 퍼가기 시대'가 시작되던 미국 사회에서 무자녀 부부는 불완전하고 그 삶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완벽한 가족 신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자녀가 많은 가족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녀가 없는 가족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가운데 아이가 없는 부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압박에 노출되었다(Reid 1956). (110쪽)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이는 너무 당연한 말이다.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완벽한 가정'의 그림 속에는 아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상화된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 아기가 필요했다. 어떤 아기인가. 사람들이 원하는 아기는 파란 눈의 백인 여자아기였다. 입양 가능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부부였고, 이들은 자신들과 닮은 파란 눈의 백인 여자아기를 원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렌즈>에는 주인공 챈들러와 모니카가 나온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아기를 갖지 못한 이 부부는 여러 번의 다양한 시도 끝에 두 사람 모두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10대 미혼모(금발, 파란 눈의 백인)의 아기들(쌍둥이)의 입양을 위해 입양 신청 절차를 진행한다. 드라마 속에서 이 과정은 아름답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어리고 미숙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진 10대 미혼모가 경제적 여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좋은 부모가 될 열의와 사랑을 가진 두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결정'을 통해 아기들을 입양시키기로 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이 책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아기를 빼앗긴 미혼모의 고통은 새로운 아기를 얻는다고 해서 희석되지 않는다. 영원히, 그녀들은 잃어버린 아기를 그리워한다.

이러한 비도덕적 입양 강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 아기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기를 원하는 백인 중산층 부부의 아내였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아기를 원한다. 나를 닮은, 남편을 닮은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기를 원한다. 우리 가정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기는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것, 주문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아기는 남녀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여성의 희생으로 완성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 나는, 우리 가정에는 아기가 필요하다. 아기를 줄 수 있는 여성을, 아기를 주고자 하는 여성을 찾아보자. 그 여성은 자신의 아기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아기는 혼외자이고, 경제적 불안 속에 성장할 것이 뻔하다. 그 아기를 우리 집에 데려온다면? 나는 그 아기를 내 아이처럼, 아니 내 아이로 키워낼 자신이 있다. 그 아기는 우리 가정에서 자랄 때 더 행복할 것이다. 그 아기는 우리의 아기가 되어야 하며, 내게는 그 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미혼모에게서 그 아이를 빼앗아야 한다.


바로 여기. 아기를 갖고자 하는 나의 욕망과 아기를 자신의 힘으로 키우고자 하는 미혼모의 욕망이 충돌한다. 타인의 욕망에 반하는 나의 욕망은 어느 지점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 나는 어느 선까지 나의 욕망을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가. 나의 욕망을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 입양 복지사 로우에 따르면, 입양 부모들은 입양할 아이를 고르기 위해 미혼모 시설에 직접 방문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들은 "엄마들의 극심한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입양의 날 느끼게 될 행복"을 망쳐 버리기 때문이다.(210쪽)

… 입양 부모는 친모를 계속 비가시화하고,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런지 그 동기를 오랫동안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도 누군가의 희생이 전제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212쪽)

백인 중산층 부부들은 '모른 척' 하기로 한다. 미혼모의 딱한 사정을 '못 본 척'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행복,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게 된 행복은 진짜가 아니다. '아기 퍼가기 시대'는 그렇게, 미혼모들의 눈물과 불행을 통해 완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구원된 입양 아동은 감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입양된 아이들이 친부모에 관해 묻거나 친부모를 찾으려 하면 나쁜 아이이거나 은혜를 모르는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입양인들은 과거에 대해 알 권리가 없고, "부도덕한" 미혼모와 살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도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양부모도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생긴 것이다(Marshall & McDonald 2001). - P90

1940년대 말 백인 신생아 입양을 원하는 불임 백인 부부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신생아를 빨리 입양하고자 하는엄청난 수요"와 입양할 아이를 빨리 확보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미혼모를 번식 기계로 여기는 경향이 점차 커졌다"(Young1953). - P113

또한 입양 보내진 아동의 인종적 차이는 확연하다. 1963년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백인 신생아의 약 70%가 입양 보내졌지만, 흑인 아동의 경우는 5%에 그쳤다(Winston 1963). 1964년 입양보내진 아기 중 백인은 70%, 흑인은 4%였다. 이 해 미혼모 중 백인은 42%로 기록된다. - P193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실망하고, 자신도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사회는 어떤 엄마에게 임신은 잘한 일이고, 어떤엄마에게 임신은 잘못한 일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라 하고, 어떤 엄마에게는 슬퍼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행동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에게는 자신보다 아기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하고, 어떤 엄마에는 아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녀는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경험에서 고립되어있다. 그녀가 느끼는 슬픔은 해결될 수 없다. 홀로 어떻게든그것과 함께 살아야 한다. (Roland 2000:9-10)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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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2-23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참 할말이 많은 책인 거 같아요.
두 아이를 평범한 가정에서 키워낸 저이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빼앗긴 수많은 엄마들에게
무어라 할말이 없을만큼 마음이 아픕니다.
진정으로 누군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날이 올까요.
아이를 보내는데 적극적이었던 입양보호사나
스노우화이트에 푸른 눈만을 선호하는 입양가정에도 엄마라는 여성이 있었음에 분노합니다!

단발머리 2025-02-25 07:50   좋아요 1 | URL
저는, 거부하고 싶은< 제도로서의 모성>이 어떤 사람에게는 소중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많이.... 복잡했습니다.
다른 아이를 낳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에 대해서도 오래 생각했구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미혼모들에게 입양을 강요한 입양 보호사들은 정말 나쁜 사람, 사기꾼이 맞는 것 같아요. 잃어버린 시간들은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다락방 2025-02-24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프렌즈에도 저런 에피소드가 나왔었군요. 입양이 언제부턴가 주객전도가 된것 같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혹은 기타 다른 이유들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은 있을 수 잇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럴 경우에 좋은 집으로 입양을 가는 것도 방법중 하나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입양을 원하는 수요가 크다 보니 이제 그렇게 아기를 ‘팔기‘ 위해서 미혼모가 필요해져버린 상황이 된걸로 생각되거든요. 그게 그 과정에서 분명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는 전쟁과 평화 읽느라고 잠깐 멈춤 상태입니다. 곧 따라갈게요!!

단발머리 2025-02-25 07:54   좋아요 1 | URL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여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한 가정에서 양육받는 것이 그 아이에게 더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요. 취약한 미혼모들의 아이를 빼앗기 위해 그들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게 가장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정서적 지원이나 응원이 어렵더라도, 경제적인 부분이 채워지면 미혼모들이 용기 내어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현재 러시아를 여행하신다고 들었어요. <전쟁과 평화> 평화롭게 마치시고, 완독 행렬에 참여하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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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백인도 인종차별당할 수 있나>와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인상깊었다.

부제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작가 소개에 쿠르드계 영국인이라 나오는데, 아버지가 아랍계이고, 어머니가 백인이다. 이 소개가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저자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을 '유색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혹은 적어도 스스로 백인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49쪽에, 자신의 피부색이 밝아서 백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다는 에피소드가 이를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을 백인, 백인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 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책은 백인 여성이라면 쓸 수 없는 종류의 책이다. 독특한 경험에서 나오는 분노와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선명한 해답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역인종차별과 역성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인종차별, 성차별이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억압(oppression)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는데, 억압이란 세상이 혼란하거나 복잡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 설계의 일부로서 작동하며, 이를 통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24쪽)한다. 특권과 억압이 가능한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특정 집단의 종속과 착취가 사회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성과 젠더 위계 안에서는 남성이 특권을 누리고, 유색인종은 인종 위계 안에서 억압을 당한다(24쪽).

이러한 억압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이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권. 1991년까지도 영국에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죄는 '성립될 수 없다'라는 것이 법적 견해(30쪽)였다.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혀 임신부의 임신 중지 권리는 폐지되었다. 연방대법원 다수의견서에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17세기 법학자 매슈 헤일을 인용하는데, 그는 마녀의 술수에 대한 책을 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던 사람(31쪽)이다. 억압받는 집단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구조적이다.

인종차별 역시 이러한 억압의 역사적 기준에 부합하는 실례라고 여겨진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백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 다른 대륙으로 옮겨 살게 되고, 죽을 때까지 노동하며,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으로 삶을 끝냈던 바로 구조를 통해 유럽과 북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충분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새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영국에서는 1833년 노예페지법으로 노예제를 종식시킨다. 인도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반란 등을 이유로 노예의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이제 더 이상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할 수 없는 노예 주인들에게 '재산'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한다. 재무부가 190억 달러 상당의 돈을 빌려 그 비용을 충당했는데, 2015년에야 이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예의 노동은 온전히 주인의 것이어서 노예들은 일하고, 쓰러지고, 죽어 나갈 때도 무급이었지만, 이제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 주인들에게는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이, 충분히, 넉넉하게 이루어졌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화이트파워'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블랙파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이중 기준이 아니라 두 진술의 맥락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걸파워'와 '맨파워'의 즉각적이고 뚜렷한 차이를 생각해 보라.) 백인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권력은 너무 자주 백인의 것이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백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중요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동어반복일 뿐이다.(147쪽)

9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천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신자유주의적 전환(neoliberal diversion)'이다. 환경 오염을 필두로 한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는 구조적인 것인데, 자선 단체 기부, 공정 무역 초콜릿 소비, 친환경 세제 사용 등으로 화제를 전환함으로써 개인적 해결책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결함을 가리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사례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의류 재봉사들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망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그냥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남반구의 유색인종이다. 남반구 인구, 저임금 노동자, 환경이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경제가 그 평가절하를 바탕으로 삼아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시스템에는 자명하다. 세계의 공장들은 남반구에 있고 그곳의 인력은 주로 저임금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350쪽)

겉치레에 불과하다.에 밑줄을 긋고 책상 위 펼쳐둔 책 위에 머리를 박는다.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안 해도 너무 안 한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엄마들의 대화는 시작이 아이들 공부 이야기고, 반드시 공부 이야기로 수렴한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중진국에서 자랐고, 이제 선진국에서 살지만, 얘네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얘들이에요. 뭐든 가졌고, 이제 더 필요한 게 없어요. 우리는 제 1세계에요. 우리나라 GDP 좀 떨어졌던데, 그래도 세계 13위에요. 세계 13위. 세계 13위 국가의 수도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어떨 거 같아요. 돌아가자.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챕터가 '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나.

토지 사용에 초점을 맞춰보자. 세계는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육류를 적당히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덜 필요할 것이다. (2) 육류를 많이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경작지나 목초지를 더 만들기 위해 숲을 벌목해야 할 것이다). (3) 육류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국가들. 세상 모두가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으면 무슨 수를 써도 농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놀랍지도 않겠지만 이 분류는 국가별 국민 1인당 부(富)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1)에는 태국, 중국, 스리랑카, 이란, 인도가 포함된다. (2)에는 독일, 영국, 멕시코, 한국이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의 전형적 식생활이(3)과 맞아떨어진다. (332쪽)

육식만 문제일까. 하지만, 육식이 문제의 핵심인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고. 내가 불편할 정도로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았고,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실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실천은 반드시 필요하다. 요는 실천할 게 너무 많다는 것.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고기를 잘 먹던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식단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도 놀랐다. 이게 실천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불균형한 식단으로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빈혈 판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더 먹어야만 했는데, 다행히 초등학교 식단에는 고기가 많이 나와서 점심시간을 고기 먹는 시간으로 정했다. 우리 집에 육식인간은 1인이고, 그 1인조차 양이 적은 편이라 그 어느 집보다 '고기 안 먹는 집'이 되었다.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마리아 미즈는 고기, 새우, 유제품, 그중에 치즈를 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치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지난주에 마트에 나가보니 칵테일 새우가 특가 세일이어서 가격이 저렴했는데, 다음에 사자 하고 미뤄두었다(요리하기 싫어서 아님). 마리아는 고가의 사치품, 화장품의 사용을 자제하라 말했다. 특히 립스틱을 사지 말 것을 권고했다(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권합니다) 근데 저번 주에 립글로스 너무 이쁜 거 발견해서 참다 참다 결국 하나 샀다. 다 못 쓴 립스틱 많은데, 많은데... 하면서 샀다.

어디 그뿐일까. 옷 사지 않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고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지역 물품 이용하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전력/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이걸 말고도 너무 많아 여기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도 지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호소를 기후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유럽에서 이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는 핀란드인데, 수도인 헬싱키만 봐도 노숙자가 크게 줄었다. 핀란드의 '주거 우선' 정책은 주거권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다. 사람은 일단 살 곳이 안정되면 다른 문제(이를테면, 약물 중독)도 해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선 단체와 지방 의회가 변화를 꾀하기 위해 열심히 로비를 했더라도 결국 법안을 제정하고 수만 명의 삶을 순식간에 변화시킨 것은 정부의 힘이다. 노숙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고,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339쪽)

정치적 선택과 정부의 책임. 정부는 정치적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다. 장관과 각 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3,000명이라고 했던가, 5,000명이라고 했던가. 그 이외에 정부 외 정부 출연기관까지 합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그 일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은 자신과 비슷한 정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임명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들의 작태를 보라. 윤석열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자신과 국가의 존망이 달린 탄핵 심판을 헌법 재판소에서 받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는 위인의 인권을, 국회 연설 때 국회의원들이 무시하고 박수 안 쳐서 비상계엄 발동했다는 위인의 인권을, 계엄군이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 도리어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하는 위인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아이고야.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정치 묻히기 이제 그만!


하지만, 정치다.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고, 정부는, 행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이 원하는 삶', 다수가 바라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한다. 일해야 한다. 우리가 주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 수급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40여만 원)에 5만 원을 더해 앞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문정부 때였다. 지금은 태양광 기업이 모두 중국기업이라 그 사업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크게 들린다. 윤정부 시대다. 식료품이 이동한 거리는 탄소발자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아보카도보다 사과를 먹는 것이 지구를 위해,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이다. (가끔은 먹을 수도 있다, 나도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내가 혼자 한살림을 이용하는 것과 학교 급식 물품이 한살림 물품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영역, 미미한 영역에 기업과 정부가 개입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연을 살리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겉치레에 불과한 페미니즘,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발전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럼 너는?'이라는 비판에 더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가정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너는? 제3세계 아동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슬람 세계 여성 인권 문제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 대해서는, 너는 할 말이 없어? 그것만 중요한 문제라는 거야? 딱 그것만?"이라 묻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온 세계에 산재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자신이 없다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그 헛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오늘, 바로 오늘의 실천을 이어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절망하지 않으면서, 이 상황이나 현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더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 일단 탄핵 인용의 날에, 박수 기다리던 위인에게 큰 박수 보내드리고, 그리고 나서 시작하자. 바로. 그리고 나서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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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2-1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좋아요 일빠 💋 읽기는 점심 먹고난 후

단발머리 2025-02-13 12:09   좋아요 0 | URL
🥙🥗🥘🫕🍣🍜🍱🥟차린거 없지만 많이 드세요~~

다락방 2025-02-13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글 너무 좋습니다. 이 책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한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니, 얼마나 좋은 리뷰인가요!

저는 밑에서 두번째 단락이 참 특히나 좋네요. 뭔가 하겠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비판을 쉽게 하는것 같아요. 뭔가 하지 않으면 비판 받을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뭔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완벽하기 위해 안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안하는거지. 하여간 저도 제가 생각한 길을 뚜벅뚜벅 가는 걸로..

그나저나 저는 육식도 육식이지만 탄소발자국에 대해 죄인입니다.

단발머리 2025-02-13 12:38   좋아요 0 | URL
이 리뷰가 좋은 리뷰였으면 좋겠지만서도 이 책이 참말로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척 논리적이고 신중한 스탠스인데, 이걸 실제에 응용하려면 한 번 더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밑에서 두번째 단락은, ‘흑인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대부분 백인들)의 반응‘인데요.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 읽다보면 페미니즘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쩔 때는 ‘똑같다‘라고 여겨질 정도잖아요.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왜 ‘말‘만 하냐고 그러잖아요.ㅋㅋㅋㅋ 옳은 ‘말‘이라도 한다는게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면 ‘나쁜 말‘을 하라는 건지. 자신들의 나쁜 말을 옹호하는 그 자세야말로 더 비윤리적인데 말이지요.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 보편화 가능성>의 두 번째 챕터 제목은 이렇습니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사기극.
사기극이라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5-02-1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도 공감 백배!

단발머리 2025-02-13 12:49   좋아요 1 | URL
저도 알라딘서재지기 잠자냥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어요. 좋은 선택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기립박수 준비했습니다. 같이 하시죠~~ 👏👏 👏👏👏

은하수 2025-02-13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정말 작은거라도 실천이 중요하단걸 다시 깨닫게 되네요.
이 글 읽으면서 저도 마리아 미즈 생각했는데... 언급해주시니 또 한번 더 실천하겠다는 의지...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하는 계기가 되구요.

이노무 정치... 정말 중언부언 말도 안되는 논리로 헌법재판소에서 변론하는 거 보면 속이 터져요.
검찰총장 시킨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진짜 원망했어요. 그거 안했으면 대통령 안나왔을텐데... 하면서요.
거두절미하고...
제발 우리나라에도 의식있고 무식한 말고 ˝유식한˝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5-02-13 19:3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한 가지 실천하고요 (부끄러워 비밀로), 저녁은 냉파했습니다.

저도 문재인 대통령 원망 많이 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건 좋은 거지만, 아.... 온 나라가 아주 난리법석 ㅠㅠㅠ
유식한 대통령, 똑똑한 대통령, 말 통하는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탄핵 심판 마저 하고요.
 
Tell Me Everything (Hardcover)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Random House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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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주요한 축이 루시와 윌리엄이었다면, 이 책의 주요한 축은 루시와 밥이다. 조금 더하자면, 매트와 올리브. 만약 주인공을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밥. 올리브와 루시의 이야기 중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 역시 소중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의 주인공은 밥이다. 이 책은 밥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과 우정이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멀리 있는 감정인가는 새롭지 않은 문제다. 나는 남사친이 없어서 그런지 편안하고 친근하며 나를 지지해 주는 남자, 그런 친구에 대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독한 프로이트주의자인 필립 로스의 말처럼, 남녀 사이의 일은, 중요한 단 한 가지 일은 섹스 뿐이다, 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한 나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혹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 정도이다.


Jim sat forward again. "Of course she's in love with you. You two take walks all the time, and you talk, right?" Bob nodded. "I always remember reading - it was years ago now - an article in which a famous director said: There is nothing sexier than talking. I always remember that. And that's what you and Lucy do - you talk. All right, now listen, Bobby. Don't tell her you're in love with her. Do not have that conversation with her. (277p)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자원은 인간이다. 제일 큰 즐거움은 대화에서 온다.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시간은 1분이, 아니 1초가 버겁다. 설사 애정하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내 말을 '알아듣는' 너를 발견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성관계는 없다. 환상은 실재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바로 그러하므로. 소통 불가능의 세계에서 맛보는 합일의 순간은 특별하다. 다만, 그런 순간은 찰나일 뿐이니. 스침에서 마주침으로의 그 순간은 더더욱 소중하다.


지금, 이 사람.

현재, 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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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2-01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화만큼 섹시한 건 없다!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남자 있을까요? 혼자 떠드는 거 말고, 진짜 대화!
루시에 올리브까지~~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25-02-01 21:49   좋아요 2 | URL
다정하신 독서괭님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바닷가의 루시>입니다. 그 때 제가 윌리엄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했는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는 윌리엄 별로 안 나오는데다가 좀 별로인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게 윌리엄의 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쓸쓸한 이 내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님, 어서 어서 오시구요. 전 <내 이름은 루시 바턴>으로 후진해서 가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02-02 09:05   좋아요 1 | URL
후진도 좋네요 ㅎㅎㅎ

수이 2025-02-0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사친을 만들어요, 말할까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도 남사친들 만난지 너무 오래 전이라 내게도 있던가 남사친. 단발님 근처에는 그러고 보니 다들 여성들뿐이군요. 블루베리가 너무 적습니다. 조금 더 팍팍 넣어요. 교회 잘 다녀오시구요, 라고 시계를 보니 벌써 아멘 하고 있을 시간.

단발머리 2025-02-04 18:59   좋아요 0 | URL
남사친은... 제 생각에는 더 어릴 때 만들어야지 않을까요? 지금은 다 커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회는 잘 다녀왔습니다. 그 시간은 아직 출발 전이었구요! 그러나 아멘!
저녁 맛난거 먹어요~~

망고 2025-02-02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다 읽으셨군요 이 책도 너무 좋죠? ㅎㅎㅎ 루시와 밥의 사랑이 그렇게 끝났지만 루시가 마지막에 말하는 Love is love, 사랑이 다 다른 형태더라도 그건 다 사랑이라고, 밥을 사랑하지만 윌리엄에게서 느껴지는 안전한 느낌의 사랑도 사랑이라 루시가 선택한 길 즉 이 책의 결말이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단발머리 2025-02-04 19:01   좋아요 1 | URL
이 책 저도 너무 좋았어요. 아끼면서 미뤄지고 바빠서 미루다가 이번 연휴에 마저 읽었습니다. 저는 밥의 마음을 알 거 같았지만(어디까지나 추측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하지 않은게 너무 잘한거 같아요. 만약 그랬다면, 많이 후회할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루시의 고민과 갈들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해보았습니다.
다음 책, 우리 같이 기다려 보아요~~

다락방 2025-02-03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들은 섹스도 같은 성별과 하는데 친구며 연인이며 다른 성별이 뭐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대화가 통한다면 그걸로 기쁠 수 있다면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나이가 어떻게되든 좋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단발머리 님은 많은 분들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단발머리 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단발머리 님은 사람들에게 기둥이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아 맥락을 잘 파악하진 못했지만, 그리고 우정 역시, 사랑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랑이 우정의 한 형태일 수도 있고요.


단발머리 2025-02-04 19:0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다락방님! 대화가 통하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죠. 근데 함께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딱딱! 통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루시와 밥이 그렇거든요.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도 있고요.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제 친구들에게, 이웃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저번주 토요일에도 그런 좋은 시간이었는데, 가끔 너무 힘들때는 말이에요. 그냥 들어주는 것도 괜찮은거 같아요. 어차피 인간에게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한데.... 응, 그랬구나~~ 그런거요. 저번주 토요일에 그랬습니다^^

사랑과 우정이 참 비슷하지요. 사랑도 우정도 소듕합니다!

공쟝쟝 2025-02-05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에서 텔미, 에브리띵, 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우리는 구매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7 11: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르니깐요. 그게 가능하다고 하대요.
이건 루시가 밥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해줘요, 밥. 그간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내게 말해줘요!
 
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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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 서재에서 알게 된 『행복의 기원』을 읽었다.

다락방님의 글은 여기(행복의 기원, 음식과 사람, https://blog.aladin.co.kr/fallen77/15858376)에.


행복이란 안정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편안한 감정 양태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 속에서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그간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이다.

인간은 100% 동물이고, 지구상의 다른 동물, 아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고기와 매력적인 이성(딱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서 유성생식을 선택했던 생명체들이 더 고도의 진화 과정을 거쳤고, 더 많은 수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일단 이성이라고 쓴다). 살아남기와 짝짓기. 인간은 100% 동물이라거나 행복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작동하는 뇌의 속임이라는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인간이 생존확률만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만약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일생일대의 필생 작업, 메이팅을 완료한 상태에서 외부의 위협(추위, 더위, 눈, 비, 사나운 동물, 뱀 기타 등등)이 없고, 쾌적한 생활(샤워 시설, 수세식 화장실)을 영위할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와 배달앱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할까.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해야만 할까.

처음엔 행복할 수 있는데,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뇌의 보상 체계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더 강한 자극원에 노출되면 더 약한 자극원에 대한 보상의 정도가 급감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중독을 일으키는 자극원에 대한 뇌의 반응은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fMRI 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34쪽)

쾌락의 총량은 늘릴 수 없다. 더 강한 자극을 경험한 이상 이전의 '소소한' 행복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나는 이 책에서 반복되는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133쪽)'에 더해 '자족하는 마음'이 행복에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8을 가져도 부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6에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성장과 팽창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성향 역시 '타고 나는' 측면이 강하다.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겨 먹은' 성향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싶어서 가지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은 내내 그렇다. 그냥, 모든 상황에, 환경에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유전'의 문제로 돌아온다.


'사람'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을 때,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초집단주의적 문화의 행복감이 그렇게 낮은지에 대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과도한 타인 의식을 그 주요한 요인으로 꼽았는데, 체면과 의례를 중시하는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되었고, 이제 이러한 문화들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던 회식 문화가 뮤지컬 감상과 고급 레스트랑 탐방으로 바뀌어가고, 1차부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르던 긴긴밤이 식사 후 티타임으로 바뀌어간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만남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유감의 중요성이 또 다시 등장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177쪽)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이 많아질 때 행복해진다고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부럽다. 그다음 방법은 만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과 자주 만나는 것인데, 좋아하는 친구를 자주 만나면 된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랑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부러워할 만한 경제 수준의 나라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친구들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쾌적한 나라에 산다. (179쪽)



100% 동감이다. 다만 이번 주에는 못 만난다. 이번 주에는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난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인 나는, 이 만남을 어쩔 수 없는 만남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나서, 나름대로 괜찮은,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심심하고 약간 지루하긴 하겠지만, 나름 재미있는 시간으로. 그렇게 이번 주를 보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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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1-26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다이렉트인 문장들입니다🙄

단발머리 2025-01-27 08:3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ㅋㅋㅋ 일단 시작이 좋아요. 2/4명이 쿨쿨ㅋㅋㅋ고요한 아침입니다! 😪

다락방 2025-01-31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며 행복하게 보냈습니다마는,
그 연휴, 다 어디 가버렸나요? (이상 회사에 출근한 사람 올림)

단발머리 2025-01-31 09:5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기가 최고죠.
그 연휴가 언제 그렇게 가 버렸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인데, 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을 때, 시간 빨리 흐르는 거죠? 알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눈발 날리던데 길 미끄러우니 점식 식사 하러 나가실 때 조심하세요, 다락방님!
 
토니 모리슨의 말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생애 처음과 마지막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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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 1요소는 바로 이 사진. 출처는 수이님.



토니 모리슨 뽐뿌의 제2요소는 바로 이 100자평. 출처는 유수님.


모리슨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빗발치는 궁금증은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어떻게 이런 거리를 유지하는지, 에 대한 것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 다만 인간적으로 여전히 궁금하다. 극단을 다루면서도 그에 시달리지 않고 의연하게 지켜내는 인간애에 대해서. 내가 오독한 게 아니라면 작가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영역이라 내내 힘주어 말하고 있다. (출처: 유수님 100자평)

나도 그게 궁금했다. 유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적나라한 응시와 동시에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게 궁금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의 삶.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그리고 그 위에 백인 남성을 지배자로 두고 살아야 했던 삶. 역사 속에 아로새겨진 고통과 슬픔을. 그 억울함을,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잊었던 걸까. 어떻게 이겨낸 걸까.

젠더, 계급, 인종은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어느 한 가지 요소가 다른 한 가지를 압도하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교차해 작용한다. 젠더와 인종이라는 측면, 특별히 흑인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는 『여성, 인종, 계급』을 읽고 정리한 적이 있다. (흑인 여성과 선택의 문제: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64842)

토니 모리슨의 말을 따라 읽다가, 그녀가 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낸 바로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이미 완성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여기 있고 떠나기 전에 존중받을 만한 일,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누군가를 돌보는 일, 타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까다로우며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무척 힘든 일입니다.

한편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45쪽)


그러니깐,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순수한 피해자라는 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자신의 맨얼굴만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원망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고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아픔과 고통에 직면할 수 있었을까. 그러니깐, 어떻게. 어떻게 그녀에게는 그 일이 가능했을까.


이런 인용이, 이런 접합이 적당한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라 이 책의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미국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삶을 이해하는데 이것만큼 적절한 이론이 없을거라 생각한다.


권력은 획득할 수 있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지점에서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권력관계는 다른 여러 관계에 내재해 있다. 경제 과정, 지식의 전수 관계, 성적 관계의 모든 요소에 그것은 존재한다. 권력은 그때마다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에서 작용하고,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산출한다. 권력은 아래로부터 온다. 위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체의 모든 곳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역학 관계" 그 자체다. (『야전과 영원』, 621쪽)


백인은 흑인을 지배했고, 이는 노예제도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말하는 가축쯤으로 여겼기에 흑인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강탈이 가능했다. 하지만, 백인은 흑인을 지배함과 동시에, 흑인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백인은 가능한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흑인을 억압했지만, 동시에 흑인을 무서워했고, 두려워했다. 흑인은 백인이 자신들의 노동력에 기대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걸 알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권력은 위로부터 오지만, 아래로부터'도' 온다.

그래서 내가 찾은 해답은 이거다. 그녀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를 '승리한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이, 흑인들이 승리했다고 믿었기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통을 밟고 일어설 수 있었다. 피해자라는 위치에 멈춰있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무언가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요점은 우리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마침내 승리한 아주 흥미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수세기 동안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우리가 다 죽어 없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의 이야기는 단지 생존의 이야기가 아닌, 상상을 초월하는 번영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고초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 결과 우리는 지금의 아주 특별한 문화를 갖게 되었고 이것은 토착의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38쪽)


그녀가 말하는 '우리'에 흑인 남성이 포함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당연하다. 흑인 여성은 그 모든 고통의 시간 속에 흑인 남성들과 함께했다. 아들을 둘 낳아 혼자서 기른 싱글맘의 위치에서, 모성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제2물결 페미니즘에 대한 저어되는 마음을, 아이 둘의 엄마인 나도 100퍼센트 이해한다.

식민지 경험, 전쟁 폐허의 땅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의 발전 이면에 강요되어왔던 '억척스런 어머니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모성의 신비화에 한결같이 반대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항상 흑인 남성을 보호해야만 했던(167쪽) 흑인 여성에게 모성이 작동된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또 다른 역사이고, 그림자일 것이다.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아이가 내게 주는 기쁨에 대해서. 두 사람만의 사랑과 숨겨둔 비밀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테니. 언제나, 한결같이. 모성은 어려운 문제다. 해답으로서의 사진을 여기에 남겨둔다.



왜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신지는 모르겠다. 듬직한 토니 모리슨과 보호해 주고 싶은 그녀의 두 아들이다.




흑인 페미니스트는 스스로를 ‘우머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간극이 있었죠. 둘은 달랐습니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보호했어요. 남자들이 일선에 나가 있었고 죽을 확률이 더 높았거든요. 실제로 저는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많은 여성이 대학을 가기 위해 가족을 설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공부를 시켰지만 딸은 공부를 하려면 몹시 애를 써야 했어요. - P167

아프리카게 미국인 사회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딸은 공부를 시켰지만 아들은 시키지 않았어요. 딸은 언제든 돌봄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교사라든가, 간호사라든가. 하지만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면 갈등에 직면하거나 꼼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었어요. 결코 쉽게 성공할 수가 없었어요.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상황은 이제 바뀌었지만 당시에 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하나의 유기체 같았어요.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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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9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5-01-09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유수님 백자평 찰진 거…

헤헤. 저는요. 토니 모리슨을 읽어보진 않았지만요, 저 잘못 읽으면 ‘정신 승리’로 읽힐 저 승리의 지점이요…, 언어를 (텍스트..! 르장드르식 텍스트!! 춤, 음악, 랩, 그림, 생산, 또…) 가졌다는 지점과도 매우 공명할 거라고 여겨집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과 그 반복… 그러면서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허튼 소리에 피식 비웃어버리는 것. 나는 거기에 사랑과 경외를 담습니다. 저 강인한 작가님과 그를 알아보는 안목있는 독자님께 박수를 치고 싶어지는 글였다요.

단발머리 2025-01-09 20:40   좋아요 0 | URL
찰진 백자평 아주 야무져요. 너무 좋죠~~~~

그러고 보니 흑인들은, 승리라고 불릴만한 것을 가진 흑인들은 그 모든 걸 가졌네요. 언어, 춤, 음악, 그리고 음식 문화. 이 책 읽으면서 그냥 제가 느낀 부분이에요. 오바마를 정말 친족처럼 생각해요. 거의 내 아들급.... 각 개인은 특별하고, 또 개인의 특성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겠지요. 근데 흑인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해서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삶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건 모리슨님처럼 열심히 사신 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이쯤에서 베짱이 눈물 한 번 닦고요)
안목 있는 독자가 될거에요. 제 꿈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1-1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