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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이드 - 여성혐오 살해의 모든 것
다이애나 E. H. 러셀.질 래드퍼드 엮음, 전경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페미사이드는 가장 극단적 형태의 성차별적 테러리즘이며, 그 동기는 여성에 대한 혐오, 경멸, 쾌락 또는 소유 의식이다. 페미사이드는 여성에 대한 신체 절단 살인, 강간 살인, 그리고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구타, 서유럽의 마녀사냥이나 인도의 신부와 과부 살해,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는 ‘명예살인’을 아우른다. 이 국가들에서 처녀성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남성 친척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여성혐오 살인사건들을 페미사이드라고 부르면, 살인이나 살해처럼 성별이 드러나지 않는 용어들이 만들어내는 모호한 베일을 걷어버릴 수 있다. (44쪽)
매리앤 헤스터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서의 16~17세기 잉글랜드 마녀광풍>에서 16세기와 17세기 잉글랜드에서 마녀의 주술에 대한 비공식적 비난이 공식적인 마녀사냥으로 변하게 된 까닭으로 첫째, 종교, 경제, 정치 측면에서 사회의 중요한 변화 과정 속에서 ‘경제적 자원’을 둘러싼 남녀 분쟁을 꼽았다. 둘째, 인구의 통계학적 특징의 변화를 들었는데, 인구 형태가 크게 변화하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 남자의 직접적인 통제권을 벗어나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고자 적극적으로 남자들과 경쟁했던 여자들의 등장을 이유로 들었다. 셋째, 이전에 ‘남성’ 영역이었던 몇몇 분야가 여성에게 잠식되는 것이 가시화됨으로 지도층에 속한 여성에 대한 비난과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성서 해석에 있어 여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강화됨으로써, 여성들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통제하지 않을 경우 그들이 사회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우려가 있었다고 판단했다.(71쪽)
마녀의 정의는 성적인 관점에서 구성된 여성 행위에 관한 통념을 따른 것이기에 기존의 통념을 벗어난 여성 섹슈얼리티 행사는 마녀 고발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여성들의 삶은 마녀 고발이라는 위협을 통해 근본적으로 통제되었으므로, 어떤 여성이든 마녀가 될 수 있었다. 마녀사냥은 남성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남성 우위를 지속하려 했던 수많은 시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악과 마법에 대한 미신적 믿음이 강력했을 때 기존의 통념을 넘어선 위험한 여성들은 ‘마녀’가 되었다. 악과 마법에 대한 미신적 믿음이 희박해진 세대에는 ‘마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을 만들어내어 통념을 넘어선 여성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마녀화’한다.
가부장제의 견고한 신화와 스위트홈에 대한 믿음은 여성들에게 ‘집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생각을 강요한다. 하지만, 실제는 반대다.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한 장소는 가정이며, 가장 위험한 사람 역시 가정에 같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도 너를 가질 수 없다” : 여성 파트너 살인사건에서의 권력과 통제>에서 재클린 C. 캠벨은 1975년 1월 1일부터 1979년 12월 31일까지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서 일어난 모든 살인사건을 분석했으며, 페미사이드 사건(총65건)을 가해자-피해자 관계 친밀도에 따라 분류했다.
남성에게 살해된 전체 여성의 80퍼센트가 살인범을 잘 알고 있었다. 72퍼센트는 집 안에서 살해됐다. 페미사이드 발생 이전에 피해 여성들은 자신을 살해한 남자에게 육체적 학대를 당해왔으며, 그 중 일부는 사디즘과 과도한 폭력에 노출되었다. 고문에 가까운 폭력 행위 이후에 살인이 이루어졌다. 페미사이드는 언제 일어났는가. 반복적인 폭력 행동과 고문 행위가 ‘살인’으로 결론지어지는 때는 언제인가. 그녀가 떠나려 할 때다.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 살인자를 떠나려 할 때 페미사이드가 발생한다.
이 장에 제시된 통계자료는 전유한다는 소유와 권력과 통제, 이 세 가지가 남녀 파트너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핵심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소유 전통과 권력을 향한 남성의 욕구가 발취되어 끔찍할 만큼 폭력적인 결말에 이른다. 페미사이드에 담긴 메시지란 결국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죽임으로써 여성 파트너에 대한 통제라는 자신의 특권을 수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219쪽)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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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페이지가 넘는 『페미사이드』가 과거에 대한 책이었으면 좋겠다. 잔혹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 무지몽매하고 잔인했던 역사에 대한 책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도 진행 중인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극적인 과거의 이야기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