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7천만 부 이상 판매된 잭 리처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이야기이자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평론가 재닛 매슬린, 세계적인 작가 마이클 코넬리 등이 잭 리처 시리즈 중 최고로 꼽은 책. 아마존 역대 잭 리처 시리즈 중 가장 많은 5,000여 건의 리뷰가 등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알라딘 책소개), 알라딘 인기서재 ㄷ님의 사랑을 받았던 바로 그 책. 잭 리처 시리즈, 『네버 고 백』.
친절한 네이버에서 ‘잭 리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잭 리처 : 네버 고 백’이 완성된다. 클릭해 보면, 11월 30일에 개봉예정인 영화 <네버 고 백>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톰 아저씨가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책 속의 잭 리처는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지만, ‘잭 리처, 네버 고 백’ 예고편을 보고 온 뒤라 ‘리처’라는 단어를 보고는 톰 크루즈를 연상하게 된다.
짧은 통화로 호감을 느꼈던 수잔 터너 소령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버지니아로 찾아온 잭 리처는, 모건 중령을 만나자마자 두 가지 죄목의 피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또 다른 누명을 쓰고, 영창에 갇히게 된 리처. 아직 이 여행의 목적이었던 터너를 만나지도 못한 상태다.
네 번의 예스 또는 노. 각각의 경우는 철저하게 독립적으로서 전후 경우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그 자체로는 모두 50대 50이지만 네 번 모두 예스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은 약 6퍼센트였다.
하지만 희망은 최선을 기대하며 품는 것이다. (104쪽)
네 번의 예스, 6퍼센트의 가능성이 있어야 리처는 터너를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녀와 함께 탈출하려는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 리처는 그 6%에 희망을 건다. 그 6%의 최선을 기대한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터너 소령을 만난다. 목소리만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을 드디어 만난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게 그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기다린 시간을 보상 받고도 남는다. 그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두 번째 생각이었다.
... 볼수록 멋있는 여자였다.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 리처는 다시 생각했다. (116쪽)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 머리속으로만 그렸던 사람, 보고 싶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났을 때, 처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기다린 보람이 있다라면,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라고 기다려준 사람이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계속 기다려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도 있겠지만, 어느 시간에, 어느 순간에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기다렸던 사람이,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고 말해준다면, 인생은 너무 근사해진다.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다. 꿈은 이루어지고, 그리고 사랑도 그렇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도 정치 이야기, 뉴스 이야기다. 쇼킹한 뉴스는 다 나왔지 않겠나 싶어 뒤돌아보면 더 어처구니없는 뉴스들이 떼로, 줄을 지어 쏟아진다. ‘기-승-전-최순실‘ 혹은 ‘기-승-전-하야‘의 국면이다. 전인권의 ‘상록수’의 감동을, 너무나 고운 목소리로 ‘박근혜 무기징역!’을 외치던 뒷줄의 어여쁜 여성분을 뒤로 하고, 뒤로 하고 싶어, 잭 리처를 읽었다. 그의 손을 잡고(나혼자 잡고) 구치소를 탈출해 황량한 시골, 넓디 넓은 미국땅을 같이 헤매고, 리처의 딸이 진짜 리처의 딸인지 확인하고,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는 그렇게 돌아왔다. ‘기-승-전-리처’의 결말을 이뤄보려 했다. 이뤄보려 했으나, 이런 구절이 또 발목을 잡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많은 건강한 시민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인 양 호도하는 세력이야말로 여론을 왜곡하는 ‘악의에 찬’ 세력이다. ... 이미 1978년에 프러시아의 철학자 칸트는 이처럼 ‘자신이 속한 국가 혹은 조직에 대한 비판 자체가 곧 배신이며 배반’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국민들의 불만은 자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족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증거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방하기 좋아하는 선동자들은 자기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이러한 순수한 동기의 정담을 혁명욕이나 급진주의 내지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동으로 간주한다.”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국 편역, 서광사, 1992년, 122쪽) (39-40쪽)
한 달간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게이트는 잠깐의 휴식시간도 없이 새로운 뉴스를 양산하고 있는데, 제일 충격적인 소식은 시크릿가든 길라임 가명 이야기도, 정유라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 사업을 도우라고 현대차 회장을 불렀다는 이야기도, 차움병원 대리진료 의혹도 아니었다. 제일 충격적인 그리고 부끄러웠던 이야기는, 최순실이 지인에게 했던 이야기를 기사화한 것이었는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데도 자꾸 전화를 해 귀찮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를 읽을 때, 나는 집에 혼자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박근혜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한결같았고, 변함 없었다. 내가 뽑지는 않았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박근혜는 (현재로서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전화를, 대통령이 직접 하는 그 전화를,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이 나라의 대통령을 귀찮아하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뽑지 않았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다. 최순실은, 최순실을 가족처럼 의지한 박근혜는 우리 국민을 그렇게 귀찮은 존재,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토요일마다 광화문으로, 각 지역의 집회 현장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현장에 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예전 같지는 않다. 유모차를 타고 온 아이들도, 아빠 무등을 탄 아이들도 무척이나 많다. 중고등학생들도 대학생들도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분들도 웃으며, 소리 높여 함께 구호를 외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12일 저녁, 친구와 함께 종로 3가 지하철역으로 들어섰을 때, 1회용 지하철 승차권을 사기 위해 길게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말해 준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부러 서울에, 광화문에 온 것이다. 그냥 나와 본 게 아니다. 약속을 취소하고, 선약을 뒤로 하고, 그리고 일부러 현장에 나온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이들의 노력과 연대가 승리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한다. 뒤로 가는 것 같지만, 후퇴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진보한다는 한홍구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국민들의 분노와 함성에 귀를 막고 있는 청와대가 마지막까지 안면몰수 버티기를 감행한다면, 날씨는 추워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적어지고, 그리고 급조된 사건들로 종편과 신문이 도배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는 걸까.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보람이 있었으면.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었으면. 우리도 리처처럼, 기다린 보람이 차고도 남는다, 말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