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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
토니 모리슨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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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넬”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다짐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읽어나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넬”이 아니라 “술라”라는 게 확실해졌다. 나는 넬이 아니고, 술라다. 문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실존적으로.

나는 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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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2-15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볼래요. 올려주신 부분이 훅- 치고 들어오네요.

땡투~

단발머리 2015-12-15 18:08   좋아요 0 | URL
저는 토니 모리슨의 첫번째 책이었는데요.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데도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어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저한테는 어려웠던....
이렇게 100자평만한 리뷰만 남깁니다.

저는, 다락방님의 리뷰를 기다리는 걸로...

cyrus 2015-12-15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보다 차별을 많이 받은 존재가 `흑인 여자`입니다. 앨리스 워커의 《더 컬러 퍼플》도 이러한 문제점을 고발한 소설입니다.

단발머리 2015-12-16 08:4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여자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은데, `흑인 여자`라니요.
전에 인터뷰집에서 읽었던 토니 모리슨의 말이 자꾸 떠오르더라구요.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는데 자꾸 망설여진다.
나는 그런 사람, 흑인 여자이며 작가인 사람을 보지 못 했다. ....


추천해 주신 책을 찾아봐야겠어요. <더 컬러 퍼플>이라고 하셨지요^^

에이바 2015-12-1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컬러 퍼플 좋아요. 저는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도 좋더라고요...

단발머리 2015-12-17 07: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컬러 퍼플> 읽어보려구요.
읽을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참 시간은 빨리 흘러가고.... 그러네요.

<빌러비드>는 여러번 손에 잡았는대도 시작을 못 했어요.
내용은 대충 아니까요. 무섭기도 하고 그 묵직한 충격과 감동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더라구요.
내년에는... ㅎㅎ 내년에는 읽어야죠. 토니 모리슨 좋아요.

보슬비 2015-12-2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빌러비드`와 `가장 푸른눈`만 읽어보았는데, 둘다 너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그녀의 책은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쉽게 손이 안가기도 해요. 읽으면 완전 빠져들지만서도...ㅠ.ㅠ
`술라`도 언젠가.....

단발머리 2015-12-29 09:40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이 작고 예뻐서 <술라>를 읽었는데, 잘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토니 모리슨을 시작한 것이니까요.

사실, <빌러비드>와 <가장 푸른 눈>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시작을 못 하겠더라구요.
보슬비님과 같은 이유 때문인데.... 시작해야죠. 저도 완전 빠져들고 싶어요. *^^*

해피북 2016-01-0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읽을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다는 글에 덧붙여 알아가야할 작가도 많은거 같아요. `빌리버드`는 도서관에서 얼핏 본것 같은데 토니 모리슨 저자가 여성분이시라는거 처음 알게되었어요. ㅋㅂㅋ~~

단발머리 2016-01-03 21:0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토니 모리슨 작품은 이 책 하나만 읽어봐서요.
노벨문학상 작가의 위엄을 아직 맘껏 누리지 못했네요.
읽을 책은 많고, 작가도 많고.... 흐음.... 바쁘군요~~~~ ㅎㅎ
 
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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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미쳐야 미친다』, 『오직 독서 뿐』, 『삶을 바꾼 만남』등의 책으로 익숙한 이 책의 저자는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다. 이 책은 ‘책벌레’와 ‘메모광’이라는 접근이 쉬운 편안한 주제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선인들의 삶을 운치 있는 한시와 함께 보여준다.

먼저, 책벌레. 책벌레라 함은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하는데, 하나는 책을 갉아먹고 사는 책 속 벌레를 말하고, 또 하나는 생업을 위한 다른 일을 제쳐두고 오직 책읽기만을 그 업으로 하는 ‘책바보’를 말한다.

먼저 진짜 책벌레 이야기. 책벌레 중에 특별한 것으로 맥망이라는 벌레가 있다고 한다. 당나라 고사에 따르면, 두어 즉 책벌레가 책 속에 있는 신선이란 글자를 세 차례 이상 갉아먹으면 변화해서 맥망이란 벌레가 되는데, 변화한 책벌레 맥망은 하늘 별에 쬐어 비추면 환골탈태하여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것이다.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사람 ‘책벌레’에 적용하면 일면 이해가 된다.

책만 읽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밖에 나가 돈벌이를 하기에 어려운 형편이거나, 아니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경우도 있겠다. 책만 읽는 이 ‘책벌레’는 ‘신선’이란 글자, 즉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고, 배고픔을 잊게 하고,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대해 알려주는 진리를 찾아 책 속을 헤매이고 헤매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궁극에 다다른다. 진리를 찾은 후에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그는 단순한 책벌레 두어가 아니다. 별빛을 받아 환골탈태하여 하늘로 오를 수 있는 맥망이 된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인정과 박수가 없다 해도, 이제 그는 책만 보는 ‘책바보’가 아니다. 하늘로 오를 만한 ‘책신선’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책벌레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조선, 중국, 일본의 장서인 처리법 비교와 책벌레로부터 책을 수호하기 위한 은행잎과 운초이야기, 책갈피에 압사당해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청나라 모기 이야기, 칼라인쇄 투인본 이야기, 작가만 볼 수 있는 빨간 책 이야기와 요술처럼 사라지는 오징어먹물 이야기 등 책을 사랑하며 살았던 선인들의 지혜와 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보기 좋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메모 관리법에 대한 것이다.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라면, 『메모의 기술』, 『메모 습관의 힘』, 『뇌를 움직이는 메모』등 여러 권의 책이 이미 출간되어 있다. 연말이라 그렇겠지만, 인터넷서점, 커피숍, 의류점을 넘어 이제는 치킨집에서도 선물로 다이어리를 제공한다. 산뜻한 색상과 다양한 디자인의 수첩이 차고 넘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첩은 고흐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수첩계의 명품, ‘몰스킨. 이 뿐이랴. 핸드폰에는 메모 기능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고, 메모앱 또한 다양하다. 떠오르는 생각, 지나가는 생각, 단상, 느낌을 메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 메모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다음은?

다이어리나 수첩을 잘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 축에 든다. 메모를 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작은 수첩에 적은 메모는 그냥 그대로 가볍게 흩어지기 쉽다. 애지중지 예쁜 다이어리도 몇 년 지나고 나면 먼지와 함께 퇴색한다. 메모를 어떻게 적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나도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전, 메모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책 속의 키워드를 간단히 적는 정도다.

 

책 속의 구절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메모 관리법은 ‘책상 옆의 상자들’이라는 글에 나온다.

나무 궤짝에는 경전에 관한 메모를 담고, 옹기에는 역사에 관한 메모를 담았다. 메모가 쌓이면 편차를 정한다. 같은 크기의 낱장에 한 장 한 장 써서 던져놓았으므로, 엮을 때 순서만 정해 묶으면 거의 가제본 형태의 책이 된다. (145쪽)

 

맞다. 바로 이거다. 같은 크기의 종이, 한 장씩 나뉘어지는 종이로 된 수첩을 준비하는 거다. 메모를 적은 후에 주제별로 정해진 곳(나무궤짝 혹은 옹기가 없으신 분은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었다가 많이 모였을 경우, 꺼내서 분리한다.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 있는지, 중요한 생각은 없는지, 살펴보고 또 분류해본다. 이 방법은 저자가 지하철 자리에 앉아, 소파에서 TV를 보며, 화장실에서 앉아 번역하고 메모한 것을 모아 책으로 엮은 방법 그대로이다. 아주 효율적인 메모법이라 나도 실천해보리라 생각하며, 바로 검색. 알록달록 인덱스 수첩을 이용하면 되겠다. 몰스킨에게 한없이 뒤지는 외모의 부족함을 효율성으로 이겨내리라.

리뷰를 작성할 때, 나의 염려 아닌 염려는 ‘인용’이 너무 많다는 거다. 지나칠 수 없는 좋은 구절이라 아쉬운 마음에 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리뷰에 인용하는데, 가끔은 인용구의 수가 너무 많고 인용할 내용 또한 하염없이 길어져, 나의 작업이란 건 ‘베끼기’로 시작해 ‘베끼기’로 끝나는 건가, 허무해질 때가 많다. 그런 내게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이 있다. 인용해본다.

무엇보다 다산이 강조한 공부법은 초서다. 초서란 책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한 권을 통째로 베끼기도 하고,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옮겨 적기도 했다. 그렇게 베껴 쓴 책은 수초 또는 총서란 이름으로 묶어 정리시켰다. (105쪽) ... 총서란 초서집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 말은 하나도 없고 자기가 읽은 책을 베껴 쓴 것들이다. 여기에 자신의 호를 붙이고 총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 묶음 정도의 의미다. ... 주견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방식은 인내심도 길러주고 베껴 쓰는 과정에서 공부의 안목이 열리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109쪽)

 

다산이 자신의 아들들과 제자들에게 강력 추천한 공부법은 ‘초서법’인데, 초서란 책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자기 말은 하나도 없고 자기가 읽은 책을 베끼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에 자신의 호를 붙여, 『치원총서』, 『양포총서』, 『유암총서』, 『순암총서』, 『춘각총서』라고 이름을 정해 책으로 만들고 이것이 어엿이 후대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고,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에 빠져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 느낌과 생각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훌륭한 텍스트’를 만났기에 얻어지는 것이지, 나에게서 스스로 ‘만들어진 것’, 내가 중심이 되어 ‘창조한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 즐겁기 때문에 아무도 강제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또 쓰는 것이다. 늘어가는 인용구에, 아무것도 스스로는 창조하지 못한다는 누추함에 울적해지려는 찰나, 읽고 베낀 책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 후대에까지 전하는 다산의 제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래, 베낀 책에도 이름을 다는데, 인용구 많다고 낙심할 필요 없다.

나의 인용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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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2015-11-3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리뷰가 쏙쏙 들어와서 꼭 읽고싶어집니다.

단발머리 2015-12-01 08:38   좋아요 1 | URL
아... potato님, 반가워요.
많이 부족한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5-11-3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씨를 잘 쓰시는군요,^^
저도 손글씨 빠르고 깨끗하게 잘 쓰고 싶은데 잘 안되어서, 단발머리님의 메모속 글씨가 너무 부러워요,^^
오늘은 조금 날이 풀렸다고 하는데, 따뜻하고 편안한 하루 되세요^^

단발머리 2015-12-01 08:39   좋아요 0 | URL
위의 사진은 미리 생각하고 적은게 아니라서, 제 마음에는 안 들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연습할껄...하고 있습니다. ㅎㅎ

아무개 2015-11-3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잠시 독서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얼마전까지 리뷰나 페이퍼를 쓰면서 내 생각은 없고 인용구만 가득한 글을 보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힘이 쭉~빠졌었는데
마지막 `인용구`를 보니 힘이 불끈! 납니다.

늘 좋은 리뷰 감사해요*^^*

단발머리 2015-12-01 08:40   좋아요 0 | URL
네... 그 마지막 인용구가 힘을 주지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걸 소설로만 안 옮기면 되겠다,싶습니다.
출처만 정확히 밝히면 될것 같구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15-11-3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구!
저도 베껴 옮기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길어져 아예 인용구를 안적어요ㅜ
하지만,남들이 쓴 인용구를 읽으면 그책에 대한 이미지가 증폭되어 더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긴 합니다

님의 손글씨도 이쁘군요?^^

단발머리 2015-12-01 08:42   좋아요 0 | URL
저는 인용구를 빼고 나면 뭐.. 쓸게 없어서요.
짜증날 때도 많았는데, 다산의 제자들 보고서는 힘을 내게 되네요.

제, 손글씨는 부끄러워요. T.T

cyrus 2015-11-3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니까 서평쓰기를 잠시 귀찮아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어요.

단발머리 2015-12-01 09: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계속 정진해 주세요.
cyrus님의 리뷰 <책 읽는 여자>를 제가 얼마나 재미있게, 신나게 읽었는지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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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습니다, 라고 끝나면 동화다. 요즘에는 동화도 이렇게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다. 어떤 사람이 문학에서 희망을 찾겠다고 했을 때, 희망만을 맞딱뜨리는 건 아니라고 조언할 수는 있겠지만, 꼭 못 찾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도 지나치다 생각하면서, 소세키의 소스케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부부 사이다. 6년을 함께 살았는데, 말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일이 없다.둘의 사랑은 세상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두 사람은 생사를 걸고 싸워야 했다(189쪽).

소스케 부부는 세상의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서로 껴안아 몸을 녹이는 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오요네가 소스케에게,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하고 말했다. 소스케는 오요네에게,

“참아야지 뭐”하고 말했다. (50쪽)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덧칠해버렸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걷고 있는 앞길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볼 일이 없을 거라며 체념하고, 오직 둘이서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었다. (51쪽)

그들은 부모를 버렸다. 친척을 버렸다. 친구를 버렸다. 크게 보면 일반 사회를 버렸다. (190쪽)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역시나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이렇게 하려고 했으나, 아무렴, 안 되면 말고. 오늘 누구를 만나려 했으나, 비 오면 말고. 오늘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입이 안 떨어지니 안 하고 말고. 나는 이런 주인공이 좋아, 소세키의 소설을 읽는데, 『그 후』에서는 남성성 폭발,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남자주인공을 만나게 됐고, 적극적인 그 남자에 반해 소세키가 더 좋아졌다.

『문』은 대체로 『그 후』의 다음이야기로 많이 읽힌다고 하던데, 나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문』의 남자주인공도 좋아하게 됐다.

소스케와 오요네.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담너머 웃음소리 넘겨가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게 살았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고(253쪽), 자신들은 좋은 일을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믿으면서, 이제 자신들의 인생에서 화려한 색채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 체념한 것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264쪽)

이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봄이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올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 내일없는 절망에 빠져있지는 않지만, 어설픈 희망 또한 기대하지 않는 것. 봄만큼 겨울을 느끼며 사는 것.

이게 소스케가 사는 법이다. 소스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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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11-25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이 서로 아끼는 마음이 번지르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 두사람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간절해 지더라구요.

단발머리 2015-11-26 13: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게 참 신기했어요.
처음에 두 사람이 같이 지내는 걸 볼때는 서로 그렇게 아끼는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세상에... 딱 서로만 보고 반대와 무시, 질시를 이겨냈더라구요.
오직 사랑의 힘으로...

둘이 같이 있으니 행복할꺼예요. ㅎㅎ
 
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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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는, 여가 없이 정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현대사회는 왜 바쁜 삶을 높이 평가하는가. 우리는 왜 바쁘게 살아가는가. 바쁘지 않을 때 왜 죄책감을 느끼는가. 여가란 곧 게으름을 의미하는가. 게으름은 잘못된 것인가. 한정된 시간,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란 무엇인가.

두 번째로는 워킹맘,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하루가 35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워킹맘들의 행복찾기에 대한 안내이다. 육아와 일을 한 사람, 하나의 육체 안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이뤄갈 것인가. ‘이상적인 노동자’이면서 ‘좋은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꿈의 나라, 워킹맘들의 천국 덴마크에서는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많다. 첫째는 공감 때문이요, 둘째는 부러움, 셋째는 당위요, 넷째는 절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희망 때문에. 공감과 부러움, 당위와 절망 그리고 희망 때문에 줄을 긋고, 옮겨 적는다.

 

1. 여가 없는 삶

“육체노동이든 공장노동이든 간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일해야 하는 일들은 모두 하층계급의 몫이다. 하층계급에는 노예들, 생계를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자 대부분이 포함된다.(64쪽)

고대부터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의미의 여가를 보냈던 사람들은 물론 엘리트 남성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교육을 받지 못한 빈곤층과 노동계급도 어느 정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83쪽) 지금은 어떤가. 우리 모두 바쁘게 살아간다. 하루라도, 1시간이라도, 1분이라도, 1초라도 허투루 보내는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 우리의 시간표는 활동과 약속으로 가득차있다. 쉬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잠시 휴식을 취하겠다고 자리에 앉아 손에 핸드폰을 잡는 순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는 도파민의 엄정한 지휘 아래 원치 않는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리기를 ‘기대하는’ 동안 우리의 뇌에서는 달콤한 마약 같은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강력한 중독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가 짧거나, 생각이 완결되지 않았거나, 메시지가 도중에 끊겼을 경우에 우리는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이때 급격히 증가하는 도파민은 우리 몸속을 돌아다니며 더, 더,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욕구에 불을 붙인다. (101쪽)

그렇다면 나는 왜 바쁠까, 나는 왜 바쁘게 살고 있을까.

일과 쫓기는 삶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세계화, 인구비율의 변화, 성역할의 변화, 바쁨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 경제적 불안, 남은 직원들이 더 많은 일을 감당하게 만드는 정리해고, 늘어나는 생활비와 가계부채, 정체된 임금, 자녀 양육에 드는 높은 비용.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대학 등록금(대학등록금 1980년부터 현재까지 893퍼센트나 상승했다). 이런 것들이 일과 소비의 악순환을 고착시킨다. (119쪽)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 쉴새 없이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좋다, 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물론 일해야 쉴 수 있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일은 기본이다.

하지만, 일하는 건 좋은 것이지만, 일하는 중간 휴식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건 좋은 것이지만, 50분 공부하고 나서 10분 쉬는 것도 좋은 일이다.

쉼 없는 연습, 쉼 없는 공부, 쉼 없는 노동은 우리 뇌의 리듬과 자연스러운 재편성 주기를 엉망으로 만드는데(426쪽) 반해, 긍정적인 마음과 휴식시간은 창의적인 통찰을 얻을 확률을 높여준다.(427쪽) 우리가 생활의 속도를 늦추고 잠시 시간을 내서 지금 있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 줄 알게 되면 우리의 복잡한 뇌는 문자 그대로 커진다. 그리고 뇌의 공포 중추는 작아진다.(438쪽)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대한민국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2위이다. OECD 회원국 평균 1770시간보다 354시간 길다. 노동시간이 제일 짧은 독일 노동자들에 비해 753시간, 즉 하루 8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할 때 94일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독일보다 연간 94일 더 일하는 한국인, OECD 회원국 장시간 노동 2위/작성자 윈플러스경영개발원

즉, 일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했음에도,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 400만 시대‘가 이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다. 더해서 문화의 ‘향유자’로서가 아니라 상품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하에서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스스로의 삶을 조정하고 누리며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옆집, 윗집, 아랫집을 맹목적으로 따라하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계속 부러워하며 또 다른 소유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누리려는 자세, 현재의 시간을 행복하게 채우려는 노력 말이다.

 

2. 아이를 낳았어요

프랑스의 경우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들은 소르본 대학 교수들과 똑같은 공무원 신분이다. 반면 미국 보육교사들의 평균 임금은 주차관리원이나 호텔 웨이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162쪽)

둘째는 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 다녔는데, 그 곳의 선생님들도 공무원 신분이다. 엄마들 말로는 “네~ 네~ 어머님~”의 사립유치원 선생님들과 다르다고,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 때문에 좀 꼿꼿하다던데, 실제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보냈다. 방학때는 종일반 아이들만 돌봐준다고 하던데, 문제는 학기 중 하원시간이 5시여서 직장에 다니는 엄마, 아빠가 그 시간까지 아이들을 데리러 올 수 있을지 많이 궁금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24분까지 일합니다. 여기에 5를 곱하면 정확히 37시간이 나와요.” (346쪽)

꿈의 직장 정도가 아니라, 꿈의 나라 덴마크 이야기이다. 덴마크에서는 9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 24분에 퇴근한단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고, 엄마들은 직장에서 실력있는 ‘동료’로 일할 수 있으며, 아빠들은 빛의 속도로 자라나는 자녀들의 성장 과정을 엄마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장 퇴근 시간 엄수, 어린이집 이용 시간 확대.

 

3. 결단이 필요한 순간

그 때 나는 육아휴직이나 단축근무를 얻어내기 위해 싸우는, 또는 주양육자 역할을 하면서 집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아빠들과 인터뷰를 하느라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대화를 옆에서 듣더니 15살 조카 와이어트가 말했다. “멋있네요.” 그러자 남편 톰이 곧바로 대꾸했다. “나라면 그냥 일을 하겠어.” 우리 아버지는 남자가 아이를 돌본다는 발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는 당황한 기색으로 나에게 충고했다. “브리짓, 네가 이해를 잘 못 하는 것 같구나. 남자들의 인생에는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단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의사가 될까? 변호사가 될까?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같은 것들을 결정해야 해.” 나는 조용히 반문했다. “그러면 아빠, 여자들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184쪽)

남편이 한 달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을 때는 또 어땠나? 남편은 칸다하르 외곽의 람로드라는 군사기지에서 찍은 자기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는 ‘숙소’, 즉 거대한 금속제 상자 앞에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물만 많은 인스턴트커피 한 잔과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남편이 부러웠다! (244쪽)

대개 쫓기는 삶의 시작은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이다. 내가 찾아본 전 세계의 다양한 시간활용 연구들에 따르면, 첫 아이의 탄생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여자의 생활은 근본부터 변화한다. 하지만 남자의 생활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251쪽)

“당신이 그렇게 차분할 수 있는 건 남들보다 ‘이상적인 엄마’에 가깝다는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러자 그래프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같은 일하는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괜찮은 엄마인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을 하죠. 나 같은 전업주부 엄마들은 날마다 이런 질문을 던져요. ‘이 정도로 충분한가?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걸까? 나도 일을 할 걸 그랬나? 내가 받은 교육은 다 무슨 소용이람?’ 양쪽 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거죠.“ 그렇다. 엄마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이 포기한 ‘저편의 삶’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281쪽)

모성에 대한 강요는 아이를 낳은 후에 ‘저절로’ 모성이 생기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한 모든 어머니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일하는 여성이 ‘방치되고 있는’ 자신의 자녀에게 갖는 죄책감을 가중시킨다. 전업주부라면 나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끝도 없는 집안 가꾸기와 살림살이,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를 잘 교육하는 게 제일 중요하게 여겨져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갖게 된다. “내가 받은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이람?”이 이에 대한 물음이자 답이다.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 한다. 이 쪽도, 저 쪽도 행복하지 못 하다.

아이들을 ‘근성 있고’ 행복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터는 부모들에게 자기를 희생하는 일부터 그만두라고 가르친다. 부모가 우울하면 아이들도 문제행동을 나타내기가 쉽고, 부모의 긍정적인 감정은 아이들에게도 전염된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감사’의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받는 혜택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334쪽)

‘감사의 마음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내 특기 아닌 특기며 전공 아닌 전공인데, 이것이 아이들을 ‘근성 있고’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이라니 정말 눈이 번쩍 뜨인다. 전공 심화 과정 착수.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읽고 싶은 책’에 추가한다. 

 

4. 야무진 부록

이 책의 부록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새로운 삶을 위한 작가의 제안이다. 나는 아래 문장들에 솔깃했다.

주저 없이 ‘페미니스트feminist'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자. 그리고 역사 속에서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의미는 여자들이 개성을 찾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49쪽)

행복이 우선이다. 행복은 성공과 성취로 이어진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나열해보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쳐라.

아이들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시간과 공간을 줘라. (452쪽)

집안의 먼지가 다 없어지고 냉장고자 꽉 찰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냥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자. 케첩으로 만든 스파게티와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454쪽)

저녁 식사 시간에 마음에 드는 구절, 바로 위의 454쪽을 소리내 읽어 주었더니, 남편이 고개를 들고 말한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유리한) 책을 읽고 있네.”

맞다. 이 책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나는 전업주부인데 아이들을 워킹맘처럼 먹인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한의 자유시간을 준다.(그래야 그 시간에 나도 놀 수 있다.) 나는 툭하면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초딩인 이 시간을 즐겁게 누리고 있다. 

 

5. 오늘의 다짐

나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걸 잊지 말자.(443쪽)

인생은 짧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 남은 시간에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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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11-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은 인간이야, 쥐야 전후로 저에게 언제나 좋은 엄마, 친구같은 엄마로 기억되고 있어요. 문학을 자연스레 논하는 자녀분들과 함께요.

단발머리 2015-11-12 15:09   좋아요 1 | URL
허걱, 이런 극찬을... @@
저에게 인간이야, 쥐야? 같은 주옥같은 문장을 선사해 주신 필립 로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저는 좋은 엄마, 친구같은 엄마는 아니예요.
막 애들을 방치하고, 싸우고, 놀고 그렇습니다.
웃긴 엄마가 제 지향점이예요.
다정하면서 웃긴 엄마. 아..... 어렵......

책읽는나무 2015-11-1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툭하면 웃음을 터트린다는 대목에서 내공이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 앞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횟수가 줄어요ㅜ
전업주부지만 워킹맘처럼 먹이기!!
이건 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어요^^

전업주부여도,워킹맘이어도 후회되고 죄책감이 드는 부분들이 똑같다는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여튼 아이들 이쁘게 키우시는 알라딘엄마들을 보면서 많이 배워요^^

단발머리 2015-11-12 18:44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아이들 먹이는 게 어려워요.
가까운데 사시는 엄마가 맛있는 거 자주 해주시니 실력이 안 늘기도 하구요(변명),
정말 근근히 먹고 삽니다. T.T

예전에는 위의 문장처럼 질문을 많이 했죠.
“내가 받은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이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덜하기는 하지만,
딸애가 혹 저를 `롤모델`로 삼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전 지금 행복하고, 집에 있는 엄마가 행복해 보이는 건 좋지만, 그래서 나도 집에.... 라고 말한다면,
전 이렇게 말할 것 같거든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살림을 한다고 해?
저, 이중적인가요? ㅎㅎㅎ
 
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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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이내에 가장 좋아하는 저자라면 강신주이고, 1-2년 이내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면 필립 로스다. 왜 필립 로스가 좋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의 문장을 빌려와 이렇게 답하겠다.

그녀           제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시는 거예요?

그             자네의 젊음과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자네가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유령퇴장』, 178쪽)

 

소통에 들어서는 속도, 말을 이어가는 방식, 말을 통해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필립 로스를 좋아한다. 『죽어가는 짐승』은 필립 로스의 작품 중 열 번째로 만나는 책이다.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 놈의 ‘섹스’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이 ‘섹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섹스’라고 생각한다.

‘나’는, 십오년 동안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확고한 규칙에 근거, 아이들이 기말시험을 다 치르고 성적이 나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명백한 유혹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말시험이 끝나고 점수까지 매기고 난 후,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평생에 걸쳐 읽은 책들, 아래층 거의 전체를 차지하며 늘어서 있는 양면 서가와 ‘내’가 연주하곤 하는 피아노를 보고,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은 ‘나’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일부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쿠바 출신이라는 것, 할머니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 할아버지는 저런 사람이라는 것. 이건 모두 좋은 일이다. 서로 친밀해지는 과정이다. ‘내’가 피아노를 치고 카프카의 원고를 갖고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자 아이들은 흥분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우회로일 뿐이다.(28쪽) 목표에 가 닿기 위한 일부분일 뿐이다. 없으면 기분 좋을 그런 부분, 목표는 오직 섹스 뿐이다.

 

꼭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28쪽)

 

정말 그러한가. 인간 사회에서, 생활에서 섹스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문제인가. 인간이 인간에게 매혹되는 건 오직 ‘섹스’의 가능성 때문인가. 그 때에만 매력을 느낄 수 있는가. 정말 섹스가 전부인가.

매슬로우의 ‘인간의 욕구 5단계’에서는 ‘섹스’를 ‘식욕, 수면욕, 배설욕구’와 마찬가지로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리적 욕구’로 분류한다. 인간적인 삶을 위한 전제라는 뜻이다. 자주 잊어버리는 기본 전제, 인간이 동물이라는 전제가 이렇게 확인된다. 동물로서의 인간을 생각할 때, ’섹스‘는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이에 더해 작가는 섹스야말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유한하고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의 삶 앞에서 구원의 힘은 오직 ‘섹스’에만 있는가. 인간 한계에 대한 저항은 ‘섹스’ 뿐인가.

오직 섹스를 할 때만 인생에서 싫어하는 모든 것과 인생에서 패배했던 모든 것에 순간적으로나마 순수하게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오직 그때에만 가장 깨끗하게 살아 있고 가장 깨끗하게 자기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야. 부패한 건 섹스가 아니야 - 섹스 아닌 나머지가 부패한 거야. 섹스는 단순히 마찰과 얕은 재미가 아니야.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해. 죽음을 잊지 마. 절대 그걸 잊지 마. 그래, 섹스도 그 힘에 한계가 있어. 나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아주 잘 알아. 하지만 말해봐, 섹스보다 큰 힘이 어디 있어? (88쪽)

 

죽음에 대한 복수로서의 섹스, 유한함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섹스에 대한 그의 견해는 물론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섹스만이 강력한 경험인가, 섹스의 경험만이 강력한가.

나는 ‘야한 비디오’를 즐겨보지 않는데(사실 그 자체), 가끔 보게 되는 야한 장면, 그 중에서도 밀도 높은 화면을 보게 되면 내가 아이를 둘 낳은 기혼여성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성의 세계’가 있는 건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물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별세계’가 있을 수도 있고, 화면 속 영상이란 임의로 조작된 장면이기에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게 무엇인가. 섹스는 어디까지나 섹스다. 섹스 그 자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섹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섹스 자체를 신성시하는 문화는 ‘처녀성’에 대한 강박을 여성에게 강요해 남성 우위의 문화를 강화한다. 섹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하고나 섹스할 수 있을테다. 우리가 아무하고나 섹스하지 않는 이유가 섹스가 우리에게 특별한 경험인 이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고 싶은 이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란, 필립 로스의 섹스론에 대한 나의 어설픈 대답이라면, 섹스의 향유란 삶의 중요한 한 가지 측면인 건 확실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읽기 어려운 몇 쪽이 있다. 내가 아무리 필립 로스를 좋아한다 해도 이 책을 집에 두어도 좋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서너 쪽 말이다. 안 되겠다, 이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야겠다, 결심 아닌 결심을 하고 나서 책을 살펴보니,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을 감추기 위해 책의 띠지를 고정한 스카치테이프가 보인다. 아, 팔 수 있겠나. 섹스에 대한 예찬, 섹스에 대한 숭배로 가득찬 이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 수 있겠나.

알라딘, 네가 받아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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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립 로스와 섹스
    from 공 음 미 문 2015-11-02 00:33 
    제가 필립 로스에게 가장 반발심이 드는 게 섹스문제인데요. 마치 소설계의 프로이트라고나 할까. 섹스의 가능성(로망)과 절망(현실)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드는 마초성이요! 모든 작가들은 대개 작품 속에 자신만의 딜레마가 있는데, 필립 로스는 "섹스"라는 생각입니다.
 
 
서니데이 2015-11-0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이나 강조가 있는 글은 역시 서재로 와서 읽는 편이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5-11-02 08:2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아직은 서재에서 글을 읽는게 더 좋더라구요.
오늘도 많이 춥네요. 따뜻한 차가 반가운 월요일 아침이예요.
좋은 하루되세요, 서니데이님^^

AgalmA 2015-11-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옮겨 생각해 볼 키워드라 먼댓글로 썼습니다. 댓글은 단발머리님 서재에 남겨주시면 됩니다. 번거롭게 해 드린 거라면 죄송요^^;;

단발머리 2015-11-02 08:40   좋아요 1 | URL
네, 먼댓글 봤어요. 번거롭긴요, 먼댓글 붙으니까 무언가 내용이 있는 페이퍼처럼 근사해 보이는데요^^

저는 미국에서 외국인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것에 대한 고민, 유태인 부모들의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필립로스의 절박함이`섹스에 대한 천착`으로 나타났다고 봐요.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억압된 자아를 표출하고 표현하고자 했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란 어디까지나 감정을 극한까지 밀어내는 힘이 있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는.... 뭐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아무개 2015-11-0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섹스중독처럼 병으로 까지 치닫을수 있는 중독성을 가졌으니
그 힘이 결코 가볍지는 않겠지만,
흠...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섹스 보다 더 큰힘이 없으니 섹스가 최고다...?

필립 로스는 <울분>을 읽어 봤을 뿐이고
저는 그냥 그랬을 뿐이고.....


단발머리 2015-11-02 10:46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필립로스를 이렇게나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요. 전, 조금 어려운 부분들은 막 뛰어넘고, 미국 역사나 정치인에 대해서도 좀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것도 잘 몰라서, 그냥 패쓰패쓰하면서...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현재로서...

<울분>은 저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작품이라서...
물어보신다면, 저는 <유령퇴장>이랑 <에브리맨>이 좋았다는.
하지만, 아무개님에게는 또 별로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 같은 예감.... ^^

2015-11-05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5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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