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겨레 및 한겨레 21에 쌓인 게 많아 원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여하튼 아직 절독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몇 개의 칼럼은 찾아 읽는다. <강준만
칼럼>, <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그리고 <정희진의 어떤 메모>가 그것이다. 최근 한 달여
<정희진의 어떤 메모>를 펼칠 때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 때가 많다.
시작은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다.
탁
전 교수는 앞서 펴낸 '남자마음설명서'에서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선 테러당하는 기분이다',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한손으로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등의 내용 등을
적어 비판을 받았다.
이에 탁 전 교수는 "10년 전 당시 저의 부적절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현재 저의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당시의 그릇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05/26/story_n_16814024.html>
탁현민의 사과는 당연하다.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것, 이런 생각을 글로 써서 책으로 출판했다는 것.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탁현민은 사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말했던
사람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고,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명확히 하자면, 이 글은 탁현민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은 아니다.
나는 탁현민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점 혹은 일정 부분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그가 지지하는 누군가(또한 내가 사랑하는
누구)를 도왔다는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지 않았고 후회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문제로 인해
자신이 도왔던 그 누군가가 곤경에 처한다면(혹은 불편해진다면), 그를
위해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옳다. 문제를 일으키기는 커녕,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라지기로 결정해 버린 양정철을 보라. 직을 맡아도, 맡지 않아도 자신에게 돌아올 숱한 공격,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을 그 모든 오해와 비난들. 그로 인해
대통령이 안게 될 부담을 모두 털어주고, 양정철은 그렇게 범인으로 돌아갔다. 탁현민은 사퇴하는 게 옳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정희진님은 두 주에 걸쳐 탁현민의 <남자 마음 설명서>에 대해 썼다. 원래는 세 주를 쓰려고 했는데, 내부적인 그리고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중단하게 됐다. 나는 정희진님을
존경한다.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녀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그녀의 선의를 믿는다. 나는 탁현민에 대한 그녀의 비판이 옳다고 생각한다. 탁현민을 응원한다는 문성근에게 실망했다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성별 권력관계, 메타 젠더에 관한
글을 써왔는데 사람들을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한다. 사회적, 성적 검열에, 자기
검열까지. 글을 쓸 수가 없다. 비판은 비난이 아니다. 개입하는 실천이다. 대다수 국민들처럼 나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국민으로서 걱정되고 여성으로서 항의하는 일이 왜 “자유한국당을
도와주는 일”이고 “노무현 시절의 조중동 행태”인가. (<정희진의 어떤 메모>
‘서울대’ 2017. 7.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00999.html>)
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빈다는 그녀의 말을 믿는다. 또 그녀 말대로
그녀는 비난이 아니라 비판으로서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녀의 말과 말들이 ‘자유한국당을 도와 주며’ ‘노무현
시절의 조중동 행태’로서 ‘작동’할 수 있음을 그녀가 정말 모르고 있는지. 그걸 알고 싶다.
이 나라는 이명박이라는 사람을 5년 겪고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다. 촛불 혁명이 아니었다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무엇보다 언론이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문재인 때리기에 혼연일체로 덤벼들었고 언론의
행태는 지금도 똑같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아니었다면 정권교체가 가능했을까. 촛불의 힘이 정권교체의 시작이며 끝이지만, 문재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원칙주의자로서의 신념, 도덕적 우위, 청렴성, 다년간의 국정 경험 등 그의 인생 걸음걸음이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이었기에 가능한 지점이 여럿 있었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사람, 평생을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왔다는 공정거래 위원장 김상조에 대해서도 국회는 임명을 반대했다. 유엔에서 ‘우리가 뼀겼다’고 말하는 외무부 장관 강경화는 끝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해야 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의 40년 전 개인 기록, 본인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는 법원 서류가 장관 후보 발표 후 빠른 시간 안에 언론과 야당 국회의원을 통해 공개됐다. 대통령이
알 수 없는 이유, 즉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드가 서둘러 배치됐다. 우리가 사는 나라가 이런 나라다. 대통령이 된 것도 기적이지만, 곳곳에 숨겨진 발목 지뢰들을 하나하나 헤쳐가야 하고, 그 와중에
국민들과 소통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해야 한다. 일본과는 크게 한 판 붙어야 할 판이고. 아무튼 그렇다. 탁현민 하나만 보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정희진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달려든다. 떼로 달려들어, 그녀를 공격한다. 그녀가 말한다.
지난주 예고(<남자 마음 설명서>에 대한 세 번째 글)대로 탁현민씨 책을 다루지 못했음을 사과드린다. … 나는 문해력이 없는 이들과 ‘17대 1’로 싸울 수 없었다. (<정희진의 어떤 메모> ‘피플’ 2017. 6. 17.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99154.html>)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그녀를 공격한 사람들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었을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탁현민 정도는 양보하라는 사람들, ‘나중에’를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희진에게 달려든다. 17대 1로 붙자고, 한 판 붙자고, 싸우자고 달려든다.
죽자고 달려든다.
사안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은 자기
이해에 따라 말하고 판단한다. 개 식용에 대해, 동물 육식에
대해, 환경 문제에 대해, 핵발전소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정보와 지식의 양이 다르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르니 각자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현재의 상황은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되었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어지던 (혹은 믿고 싶었던), ‘진보적’인
가치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여성 문제’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간의 갈등 때문에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오히려 간단하다. 하지만, 진보적인 남자들이 ‘진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여성 문제 ‘정도’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상황, 이런 시대에, ‘여성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 ‘꼴페미’라는 딱지를 붙이는, 붙이고야
마는 작태가 과연 옳은 것인가.
17 : 1로 덤벼드는 문해력 없는 사람들과 싸우고, 자기 검열 때문에 100매 가량의 글을 폐기하고, 탁현민씨 비판을 후회하고, 자신의 존엄을 위해 자살해야 했다고 말하는
그녀가 자꾸 자꾸 생각나, 마음이 불편하다.
문빠이며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스트이며 문빠이기를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정희진의 탄식 앞에서
아프다.
17 : 1로 싸우고 있는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는가.
아무도 없는가.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