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커리어 그리고 가정
2012년의 이 옛날 사진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나서 첫 페이지를 찍어둔 것이다. 그때 써둔 페이퍼를 찾아보니 이 페이지가 특히(!) 마음에 들어 출판사에 전화를…. (제가 이렇게 자주 출판사에 전화하는 사람이었네요. 몰랐어요, 나도) 지금 사도 저 페이지는 똑같나요? 물었더니 초판 일부에만 저 부분이 들어간 거라고 해서 눈물을 머금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러니까 저 책이 내게는 장하준의 첫 번째 책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그대로 두지 말고 ‘공정하게’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공평한 ‘경기장’을 만들자는 주장이 너무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은 책은 대중에게 더 ‘다가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요리 혹은 식재료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이전의 관점을 놓치지 않고 주장에 대한 여러 경제학 통계와 그에 대한 ‘장하준식’ 해설이 곁들여 있다. 특히 아내의 권유에 따라 용기를 내어 기술했다는 <챕터 13장 고추>의 ‘돌봄 노동’ 부분이 눈에 띈다.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 셋째, 관점과 관행의 변화는 제도 변화를 통해 공고히 해야 한다. 무보수 돌봄노동에 대한 인정과 인식 변화는 복지체제의 변화로 공식화되어야 한다. 양성 모두에게 유급 돌봄휴가(어린이 양육하기, 노인 돌보기, 병든 친척과 친구 돌보기 등을 위한)를 더 길게 허용해야 하며, 집에서 풀타임으로 아이를 돌보는 부모나 보수를 받는 일을 하는 부모 모두에게 값싼 보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63쪽)
보이지 않는 모든 종류의 돌봄 노동이 여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것이 무료로 이루어지는 현실에 대한 진단. 돌봄 노동을 가시화하는 여러 방식에 대한 논의 또한 이어진다. 여성의 임금이 상승했을 때 가정 경제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주장과 논거가 이어지는데, 이 당연한 말을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를 좁히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직군에 여성이 더 쉽게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것, 보수를 받는 돌봄 노동의 임금 상승을 위해 최저 임금을 올리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262쪽).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 역시 ‘성별 임금 격차의 핵심 원인을 밝혀낸'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정한 이웃님이 선물해 주셔서 고이 모셔놓고 있는데, 이어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2. 녹색 평론 184호
일론 머스크가 내놓은 테슬라 로봇 ‘옵티머스 2세대’는 보완할 부분이 몇 가지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충분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물체(신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에 자신의 뇌를 다운로드해서 다른 행성(구체적으로는 화성)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의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구가 녹색이기를 바라는 마지막 바람은 이 책에서 구체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녹색평론> 사서 읽는 사람 아닌데 정희진 선생님 글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구입했다. 물론, 다 읽지는 않고 정희진 선생님 글’만’ 읽었다. [딜레마가 아닌 파국;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발전주의에 대한 비판과 기술 발달로 인해 인류가 얻게 된 핵무기라는 결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라는 게 가능한가.
나는 물건을 파괴하지 않는 아류 러다이트주의자다. 다시 말해 '멈춤'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찰적 과학자의 질문, "다시 한번 묻는다. 인공지능 그리고 그다음을 이어갈 또다른 과학의 발전은 계속 인류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하면 할수록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 이익을 보는 이들은 지구를 버리고 화성에 가서 살고 싶은 극소수 자본가뿐이다. (198쪽)
인류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끝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녹슬지 않는 새로운 몸을 입고 화성으로 이사 가려면, 일론 머스크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트렌드 코리아 2024
베스트셀러 읽는 엄마라서(나의 끈질김을 보라. 우리 집 얘들은 제 글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하고자 합니다. 얘들아, 나의 끈질김을 보라!) 일 년에 한 번은 꼭 훑어본다. 자세히는 안 보고 쓱~~ 본다. 신문도 안 읽고, 주간지도 안 읽는 나여서, 그래서 본다. 2024년, 내년의 트렌드는 무엇인가. 영어 알파벳 조합에 따라 키워드 10개를 꼽았단다. 여기에도 보이는 ‘돌봄경제’.
4. 나일 강의 죽음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처음 읽는 아가사 크리스티. 작은애가 중학생일 때, 집 근처 새 도서관에서 반짝반짝 새 책으로 시리즈 빌려다 주던 사람이 바로 나인데. 이번에는 내가 읽으려고 빌렸다. 처음에 예상한 사람이 범인인 것은 맞았는데, 아가사의 설명 따라가다가 잠시 헷갈렸다. 두 권 정도 더 읽어야겠다 싶다.
5. Nine Lives / The Kind Worth Saving / The Christmas Guest
피터 스완슨은 이 책까지 총 3권 읽었고, 두 권 더 주문해서 (알라딘 미안, 교보가 만원이 싸더라) 총 다섯 권이다.
첫 페이지에 9명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여남이 섞여 있고, 나이도, 직업도, 사는 지역도 제각각이다. 5분의 1 정도 읽으면서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는데 모두 ‘having an affair’, '불륜 중'. 전문 용어로 ‘바람을 피고 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3명이나 죽었다. (이런!!) 유튜브에 오디오북이 있어서 어제는 찬찬히 읽다가 맘이 급해서 오늘은 줄거리만 따라 허겁지겁 읽어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어렸을 때 읽던 책 이야기를 하는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나온다. 한 명은 크리스티 소설을 다 읽었다고 하고, 한 명은 그 중에서 어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제목이 기억 안 난다고 하니, 다른 사람이 제목(<The A. B. C. Murders>)을 알려주는 훈훈한 장면이 이어진다. 아가사 크리스티 딱 한 권 읽은 사람이고, 내가 읽은 책은 언급이 안 되었지만 뿌듯한 마음에 혼자 웃었다. 아무도 없어서 크게 웃어도 되는데 조용히. 이럴려고 내가 아가사 크리스티를 한 권 읽은 거야.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