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하는 아쉬운 마음에 짧게라도(?) 올려본다.
1. 올해의 작가 : 캐럴라인 냅
올해의 작가는 캐롤라인 냅이다. 두 권을 아껴가며 읽었고, 세 번째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밤늦게 책장을 넘기다가 갑자기 불어대는 눈물 바람에 읽기를 멈추고 고이 보관 중이다. 아껴 읽을 만한 작가를 얻어서 기뻤고, 그가 이렇게나 일찍 세상을 저버리게 만든, 그가 사랑했던 술과 담배를 한없이 원망했다. 아름다운 문장을 짓는 이 세상 모든 작가에게 감히, 권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과하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만, 그의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나로서는 또한 당연한 결론이다. 과음은 몸에 해롭습니다.
2. 올해의 페미니즘 : 투쟁의 페미니즘
역시나 보부아르다. 시작점이 보부아르이고 마침표도 보부아르. 그녀가 말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 세계를 바꿀 책임이,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만큼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결국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3. 올해의 키워드 : 우울
내가 우울해서가 아니고(걱정하는 친구가 있어서 다시 한번 반복해본다^^), 친구의 우울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여성이 기질적으로 남성보다 더 우울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억압 속에서 여성이 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여성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처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내 고통의 범위와 타인의 고통의 범위가 서로 겹쳐지지 않을 때, 어느 선까지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지. 고통의 호소에 대해 타인은 어느 정도까지 이른바 ‘받아’ 줄 수 있는지. 진정한 공감이 정말 가능한지. 완벽한 이해 없이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정확하고 적확한 답을 찾지는 못해서 내년에도 ‘우울’ 읽기는 계속될 듯하다.
4. 올해의 발견 : 심채경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은 올해의 발견, 심채경. 이전 리뷰에서도 써 놓았지만 152쪽에서 153쪽까지 보이저 1호의 우주 항해에 대한 부분은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나만 알고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예쁘고 가슴 시린 장면이다.
5. 올해의 소설 : 지구 끝의 온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 김초엽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좋은 소설이었고, 한국에서도 계속 SF 소설에 대한 도전이 이루어질 것 같아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행성어 서점』도 읽어볼 참이다. 구입해서^^
6. 올해의 원서 : 영어 편
친구들과 함께 읽는 원서 모임에서 읽은 책 중에서 이렇게 세 권을 골라보았다. 『Olive, again』은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은 책이고, 뜨거운 밤낮을 선사해준 브리저튼의 저자 줄리아 퀸에게도 감사드린다. 오바마는 참 말이 많고 길고. 설명은 자세하고 상황은 구체적이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를 상관으로 모시는 이 세상 모든 직장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7. 올해의 원서 : 프랑스어 편
올해 같이 읽은 네 권 중에 한 권만 고르라고 하면, 사강의 책을 고르고 싶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하나의 사랑이 떠오르고, 또 하나의 사랑이 사그라지는 장면에 열일곱, 열여덟, 뜨겁지는 않았으되 사랑은 분명했던 그 시절을 다시금 살 수 있었다. 나는 사강을, 그의 뜨거운 사랑을 사랑한다.
8. 올해의 노래 : no body, no crime
둘이 마주 앉아 점심을 먹을 때면 식탁 위에 노트북을 놓고 음악을 들었는데 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였다. 심드렁하던 내가 <Me!>라는 대중적인 노래를 좋아하자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는 테일러 왕팬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가 좋아하면서도 내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찾던 테일러 팬이 추천한 노래이고 처음 듣는 그 순간부터 좋아했던 노래다. 에스티는 자신의 남편이 바람난 것 같다며 둘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나에게) 말했는데, 그 후로 에스티가 실종됐다. 범인은 그 남편 같은데, no body, no crime. 증거가 없다. 테일러는 천재 같다. 아니, 천재가 분명하다.
9. 올해의 기록 : 책탑
조금씩 읽어 이만큼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두 어권을 빼고 책탑 사진 찍어보았다. 근사한 배경도 아니고, 아주 어려운 책들도 아니지만, 책장 사진, 책상 사진, 책탑 사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용기 내어 올린다. 역시 한 권만 고르라고 한다면, 제일 두꺼운 책, 사피엔스를 고르겠다. 넘나 오래 걸렸다.
10. 올해의 소감 : 이렇게 또 한 해가...
작년 2월부터 몰아닥친 코로나 여파로 작년은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고, 2021년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했는데, 올해는 좀 더 복잡한 심경이었다. 바이러스가 인간을 매개체로 삼기에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존재가 인간이 되어버린 지금, 인간과 인간과의 물리적 거리가 중요해진 지금. 자발적 선택이었으되 가정이라는 공간 속에서 완벽하게 ‘사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이명박의 모토로 널리 알려진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한 한 해이기도 했다. 경험해봐야 안다고 말하는 건 노인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어떤 일들을 직접 겪어보니, 옆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경험’과 ‘느낌’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카페인에 예민한 심장이라 하루에 1.5 잔 커피양에 유의하는 편인데, 커피 마시지 않아도 작은 새의 심장처럼 미친 듯 팔딱거리는 심장의 요동침을 경험했다. 걱정과 불안이, 염려와 희망이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인 양 눈앞에서 활개 치는 모습도 생중계로 관람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라는 것. 나 역시 평범한 욕심쟁이이고, 노멀한 속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나 그런 다짐을 위해 애쓰는 것보다 솔직하게, 그냥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인데. 나는 그 와중에도 굳이 우아한 어떤 사람이고 싶어서 참고 도닥이고 또 참았고. 결국 마지막에는 장엄한 눈물의 바다에 잠기기도 하였으나. 삶은 또 이어지고 새로운 꿈을 꾸고, 또다시 웃게 되고, 장칼국수가 무슨 맛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찾아오지 않은 이너피스를,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감사다. 힐러리가 말한, 정희진쌤이 말한, 성경에서 그렇게나 강조하는 감사. 나는 또다시 이 한 해를 감사하고,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알라딘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맞이하는 새 아침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감사한다. Thank you for ever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