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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평점 :
지하철을 탔다. 고등학생 세 명이 내 앞에 섰다. 같이 노래방을 가는 길이다. 노래를 오래오래 부르자고 이야기한다. 이젠 뻔히 아는 일이지만,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을 제일 많이 한 애들은 중학생이고, 제일 잘하는 애들은 고등학생이다. 내 앞의 아이들은 고등학생들이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왼쪽 귀에 귀찌를 4개 했다. 오른쪽 귀에도 귀찌 4개. 그 옆에 아이는 귀찌 4개, 구멍은 3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귀찌를 했다. 맞은편의 아이는 한 개만 했다. 구 형태의 딱 달라붙는 귀찌를 한 개 했다. 이런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의 외모를 단속하는 강력한 힘은 학교에서 내려오는 꾸밈 금지 규칙이 아니라 또래와 미디어로부터 형성되는 꾸밈 압박이기 때문이다. (110쪽)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같은 중학교를 다니는데, 큰아이가 다닐 때만 해도 아이들은 피부화장에 틴트 정도를 기본으로 생각했다. 검사가 집중되는 주간에는 아이들이 선생님을 피해 도망다니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물론 벌점 대상이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이루어진 학생 용모와 복장에 대한 설문 조사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학부모와 교직원은 한 마음이었으나, 학생들은 일치단결하여 색조화장을 포함한 전면적인 화장 허용과 갈색계통의 염색 허용, 체육복 등교 등의 쾌거를 이룩해냈다. 체육복 등교는 언제나 환영이다. 학교에 가는데 정장에 가깝게 디자인된 교복을 입을 필요가 어디 있나. 하지만, 체육복 입고서도 퍼펙트 신부 메이크업으로 하교하는 환한 얼굴의 중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 없다.
탈코르셋이 페미니즘 확산의 가장 효과적인 운동이 되리라는 데 동의한다. 전쟁은 항상 여성의 몸 위에서 일어난다. 정결하지 않은 몸, 혐오스러운 몸의 대상은 여성의 몸이었다. 임신과 출산이 강제되는 것도 여성의 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임신결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여성몸의 소유권이 남성에게 있어왔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다. 전시강간은 일부 군인들의 탈선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장려되는 효과적인 전쟁 시나리오 중의 하나였으며, 강간은 여성을 움츠려 들게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이별을 선언하는 여성은 ‘너와의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 네 나체 사진을 유포시키겠다’라는 협박에 수도 없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며, 다이어트, 성형, 미용, 화장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이 모든 전쟁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여성의 몸이다. 탈코르셋은 이 여성의 몸 위에서 이루어진다.
탈코르셋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한다. 선택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건 아닌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너무 소극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외모를 포함해 아름다운 외연의 추구가 인간만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의무가 의무가 아니기 위해서는 더 이상 기본값이 기본값이 아니어야만 한다. 각자의 원판 위에 선택지를 하나 추가한다 해도 발 디딘 판을 교체하기 전까지 의무는 선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인이 사회로부터 언제 자신에게 부여되었는지도 모르는 의무를 수행해 다시금 이 값을 공고히 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설정된 기본값은 사회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시작은 꾸밈의 중지이다. 일상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꾸밈의 중지가 사회운동이 되는 까닭이다. 내가 꾸밈을 중지한 이후에 비로소 사회가 여성 개인에게 부여한 기본값을 인식하고 그것의 재조정을 개인적으로 경험했듯,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얼굴에 부여된 기본값의 사회적 재조정을 꾀한다. (43쪽)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서 탈코르셋 운동은 코르셋을 벗어버리는 데 있다. 서양 여성 복식의 일부로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내장을 파열시켰던 도구인 코르셋(119쪽)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의 몸에 강요되었던 모든 종류의 고통을 거부한다. 주머니가 없는 인형옷 같은 여성복, 길이도 밑위도 짧은 불편한 여성용 바지, 청순한 여성의 필수아이템 긴 머리카락,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매번 선사할 뿐만 아니라 기형적 발 변형을 일으키는 하이힐, 눈 건강에 치명적인 마스카라, 안구건조증을 유발하는 렌즈 착용,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살인적 다이어트.
페미니즘 담론 중에 어느 것이 쉬울까마는, 외부의 실천을 표방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더 쉽지 않다. 탈코르셋을 한 타인의 외형은 그것만으로도 여성들의 외모/꾸밈 강박을 직면시킨다.(228쪽) 탈코르셋 하지 않은 사람은, 탈코르셋 한 사람을 보고 ‘의지를 가지고 꾸미지 않기로 선택’한 한 사람을 을 보게 된다.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스스로의 용기 없음을 알아차린다.
가부장제의 존속을 가능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낭만적 이성애에 기반한 결혼과 가정이다. 이성애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성 구분/구별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각종 꾸밈이다. 여성임을 드러내는 몸가짐, 외양, 말투. 그 견고한 성을 부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무기가 탈코르셋이다.
나의 인지부조화는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는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기도 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어가면서 했던 고민들이 다시 뿌옇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혼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크리스찬이어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고용되어 급여 받는 일을 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 숱한 고민의 밤에 더해, 또 다른 물음이 내게 묻는다. 탈코르셋하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을까.
탈코르셋 운동이 문제에 맞서 직접 행동하자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기조를 이어받은 운동이라는 점은 이부분에서 특히 시사적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안기는 고통으로부터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자신의 마음밖에 없어 마음먹기를 달리함으로써 문제를 받아들이던 여성은2015년 이후 기존의 접근을 버리고 직접 행동을 취했다. 이와 같은 행동주의는 규범적 여성성에 대해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을 고수하던 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접근 대신 탈코르셋이라는 외부의 실천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강박증 치료에는 행동치료가 쓰이고 있다. 지속적 행동으로 일어나는문제는 행동으로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강박증 치료에서는강박행동을 다르게 생각하는 대신 강박행동을 참는 반응예방법과 두려움을 직면하는 노출치료의 결합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6쪽)
탈코르셋이 치료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의 기조로 일어난 행동주의가 여성 개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치료하는 데 가장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설명될 수 있는 까닭이다. 혜민은 두려움을 직면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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