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가는 칵테일 바가 있어요. 바 이름은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칵테일 바 사장님이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감명 깊게 읽어서 가게 간판에 소설 제목을 새겼습니다. 이곳러시아에서 온 바텐더가 일하고 있습니다. 바텐더의 이름은 율리아입니다. 사장님과 동료 바텐더들은 그녀를 리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리아 님이 저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어요. 이 작가의 책’, 정말 재미있어서 세 번이나 읽었다면서요. 리아 님이 추천한 책은 러시아 작가의 소설이었어요. 이 소설은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문학 전문가들이 걸작으로 손꼽는 작품입니다.


리아 님은 러시아 소설을 아주 좋아해서, 원작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도 봤다고 했습니다. 이 작가’를 좋아해서 모스크바에 있는 이 작가’ 박물까지 방문했답니다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와 톨스토이(Tolstoy)가 지루하다면서 이 작가를 추켜세웠어요.


러시아를 가본 적이 없는 저는 내심 러시아에서 이 작가가 정말로 대단한가?’라고 느낄 정도로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 작가생전에 글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굴욕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이 작가스탈린(Joseph Stalin) 정권을 풍자하는 희곡을 썼습니다. 스탈린의 검열관들은 그가 쓴 문제의 희곡을 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소설마저 출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에 아부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 작가의 명예를 난도질하는 수준의 평론을 쓰면서 공격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박탈된 이 작가스탈린에게 직접 전화를 겁니다. 작가는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했고, 러시아에 남아야 한다면 일자리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조국을 떠날 결심을 확고히 하지 못한 작가는 망명 요청을 철회했고, 스탈린은 그에게 새 직장을 주선했습니다. 작가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조감독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작가의 작품 해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했고, ‘소련에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 소설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직감했던 것일까요? 병마와 싸우고 있던 작가는 죽기 3주 전까지 이 소설을 쓰는 데 열중했습니다. 결국 작가는 이 소설을 완성했고194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은 작가가 죽은 지 26년 후에 처음으로 인쇄되었습니다. 1966, 월간 문학 잡지 모스크바 소설의 일부가 실렸습니다. 잡지에 실린 소설은 완전한 원본이 아닌 검열관의 가위질을 심하게 당한 반쪽짜리 글이었습니다. 이랬던 이 작가가 지금은 러시아인들이 즐겨 읽는 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출판할 수 없는 소설은 러시아 문학 교과서에 실렸고, 연극과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년 2월의 세계 문학]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609번째 책]

* 미하일 불가코프, 정보라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타(민음사, 2010)




러시아 출신 바텐더 율리아가 추천한 소설. 출판할 수 없는데도 작가가 죽을 때까지 집필에 전념했던 소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 문학 작품미하일 불가코프(Mikhail Bulgakov)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 소설입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시간상으로 간격이 큰 두 개의 장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는 1930년대 소련의 모스크바, 또 다른 하나는 예수(예슈아 하-노츠리)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게 되는 빌라도(Pontius Pilate) 총독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예르샬라임)입니다.


모스크바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작가입니다. 소설 제목의 거장(master)’은 이 익명의 작가를 가리킵니다. 작중의 거장은 예수와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씁니다. 계속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예루살렘 이야기는 거장이 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예루살렘 이야기는 소설 속의 작은 소설입니다. 거장이 쓴 예루살렘 이야기는 비평가의 혹평을 받고, 실망한 거장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마르가리타(Margarita)는 거장의 연인이자 조력자입니다. 소설 제목만 보면 두 사람의 애정 관계를 묘사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가코프는 독자들의 예상을 깨고,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존재를 등장시킵니악마 볼란드(Woland)와 그를 따르는 수행원들입니다. 소설의 구조가 복잡해졌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모스크바와 예루살렘), 인간(거장과 마르가리타)-악마(볼란드 일행)-소설 속 인물(빌라도와 예수/예슈아 하-노츠리)’로 이루어진 3중의 작중 인물이 나옵니다.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437번째 책]

괴테, 전영애 옮김《파우스트》 (도서출판 길, 2019)


* 괴테정서웅 옮김《파우스트》 (민음사, 1999)







거장과 마르가리타괴테(Goethe)의 장편 운문 희곡 파우스트를 모티프로 한 소설입니다. 거장은 파우스트(Faust), 마르가리타는 그레트헨(Gretchen), 볼란드는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 비슷합니다재미있게도 파우스트거장과 마르가리타두 작가가 죽을 때까지 여러 번 고쳐 쓴 필생의 역작입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12월의 세계 문학]

* 보리스 사빈코프, 정보라 옮김, 창백한 말(빛소굴, 2025)

 


* 보리스 사빈코프, 정보라 옮김, 테러리스트의 수기(빛소굴, 2025)

 


* 보리스 사빈코프, 연진희 옮김, 검은 말(빛소굴, 2025)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번역자소설가 정보라입니다. 정보라 작가는 지금도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을 꾸준히 번역하고 있습니다









2024<세속> 12월의 문학 작품이었던 보리스 사빈코프(Boris Savinkov)창백한 말은 정보라 작가가 번역했습니다. 작년에 표지가 바뀐 창백한 말, 이 소설의 프로토타입으로 알려진 테러리스트의 수기》(국내 초역)가 출간되었고, 절판되었던 검은 말이 복간되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8월의 세계 문학]

안톤 체호프강명수 옮김 갈매기》 (지만지드라마, 2019)








러시아 희곡 하면 대부분 독자는 체호프(Anton Chekhov)를 먼저 떠올립니다2024년 <세속> 8월의 문학 작품은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였습니다.



















* 미하일 불가코프, 강수경 옮김, 백위군 (희곡)(지만지드라마, 2019)

 

* [절판] 미하일 불가코프, 유승만 옮김, 백위군(열린책들, 1996)



















* 미하일 불가코프, 정막래 옮김, 조이카의 아파트(지만지드라마, 2019)

 

* [절판] 미하일 불가코프, 김혜란 옮김, 조야의 아파트. 질주(책세상, 2005)

 

















*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현암사, 2017)

 

* 이현우,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현암사, 2014)

 

* 이현우,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 세계 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는 즐거움(오월의봄, 2012)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으며 지금도 세계 문학 강의를 하는 서평가 로쟈이현우 님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극작가가 체호프와 불가코프라고 했습니다













불가코프의 희곡 백위군동명의 장편 소설을 개작한 작품입니다. 소설 백위군번역본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고, 희곡 버전의 백위군은 출간되었습니다. 1926년 초연 당시 제목은 <투르빈 가의 나날>이었습니다. 백위군은 스탈린이 열다섯 번이나 봤을 정도로 불가코프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희곡입니다. 그러나 불가코프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조이카의 아파트(조야의 아파트)질주(도망) 공연 이후로 불가코프는 반 소비에트 작가로 비판받기 시작했고, 앞에 언급한 대로 스탈린의 눈밖에 나고 말았습니다.



















* 이현화, 불가불가(지만지드라마, 2019)

 

* 양승국 엮음, 한국 희곡선 2(민음사, 2014)

<불가불가>가 수록되어 있음

 

 


불가불가(不可不可)’라는 독특한 제목이 붙은 국내 희곡이 있어요. ‘불가불가작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중요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불가불가극중극이 나옵니다. 극중극에 등장하는 왕은 결단력이 부족해서 대신들의 견해에 의존합니다. 왕이 대신들에게 의견을 물으면 대신들은 불가불가라고 대답합니다왕은 대신들이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불가불가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배우 2] 

경은 어떠시오?

 

[배우 5] 

, 소신 말씀이오니까?

 

[배우 2] 

경의 의견을 듣고 싶소.

 

[배우 5]

불가불가(不可不可)하온 줄 아뢰옵니다.

 

[배우 4] 

? 무어라하셨소?

 

[배우 5] 

불가불가

 

[배우 3] 

아니, 대감, 불가불, , 아니면 불가, 불가?

 

[배우 5] 

불가불가



(이현화, 불가불가중에서, 14)




극 중 대사 불가불가 쉼표를 어느 위치에 쓰고,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불가불, 가는 어쩔 수 없이 찬성할 수밖에 없다라는 뜻입니다. 불가, 불가는 강한 부정에 가까운 결사반대를 뜻합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처음 접한 <세속> 독자님들의 본심은 불가불, 일까요, 아니면 불가, 불가일까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기 어려운 소설입니다. 저는 1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요, 적응하기가 쉽지 않군요. 읽었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요. 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읽으셨으면 합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책을 덮고,완독 불가, 불가코프(불가코프의 소설 완독하기 싫다)’를 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야기가 지루하고, 어려워도 완독 불가불, 가코프(어쩔 수 없지만, 불가코프의 소설을 완독해야겠다)’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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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2-17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가불가 완독불가
세상에 이런 책이 수두룩하네요.
적어주신, 스탈린에게 전화한 내용의 희곡이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요.
 
개미들의 행성 - 여섯 개의 다리로 이룩한 위대한 제국
주잔네 포이트지크.올라프 프리체 지음, 남기철 옮김 / 북스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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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디아 가문(Buendía family) 사람들은 

마콘도(Macondo)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좁다란 섬처럼 생긴 도시 마콘도에 4년 넘게 비 바람벽이 푹푹 내린다

그칠 줄 모르는 거대한 비 바람벽에 쓸쓸한 고독만이 오고 간다.

[주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백 년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이 얽섞인 도시 마콘도에서 부엔디아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부엔디아 가문이 6세대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근친혼이다. 가문의 대부(大父)이자 마콘도를 개척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José Arcadio Buendía)사촌 우르술라(Úrsula)와 결혼한다. 친척들은 근친혼의 저주를 무시한 두 사람 사이에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까 봐 우려한다.


근친혼의 저주는 가문의 일곱 번째 후손 아우렐리아노(Aureliano)를 집어삼킨다. 돼지 꼬리가 달린 아우렐리아노는 가문의 6대손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Aureliano Babilonia)그의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Amaranta Úrsul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우르술라는 부유한 남편을 버리면서까지 조카를 사랑했지만, 아우렐리아노를 출산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한다. 돼지 꼬리 아기마저 죽게 되자, 충격을 받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밤새도록 거리를 헤맨다. 동이 틀 무렵에 정신을 차린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아내와 아기의 시체가 방치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끔찍하게 매장되는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다. 마당에 있는 개미 떼들이 바싹 마른 아기의 시체를 땅에 파놓은 소굴로 끌고 간다. 이 상황을 지켜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는 부엔디아 가문의 저주와 관련된 예언을 떠올린다. 




가문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주2]




마르케스는 세상의 모든 개미 떼가 아기의 시체를 끌고 간다고 묘사했다. 텍스트를 마주 보다가 불쑥 튀어나온 나의 특이한 궁금증. 아기의 시체를 운반할 정도로 힘이 센 개미 떼는 환상이 빚어낸 곤충일까, 아니면 실제로 볼 수 있는 곤충일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갓난아기의 시체는 개미 떼의 식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미는 먹잇감을 독차지할 수 없다. 파리와 송장벌레도 썩어가는 시체를 좋아한다. 이처럼 시체를 먹고 사는 곤충을 시식성 곤충(屍食性 昆蟲, carrion insect)’이라 한다곤충학자들은 시체를 좋아하는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개미, 파리, 송장벌레가 없으면 썩지 못한 시체들이 엄청 많이 널려 있었을 것이다. 시식성 곤충은 자연의 청소부. 시체를 청소하는 곤충 또는 동물을 스캐빈저(scavenger)’라고 한다. 그들이 있어서 시체의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완전히 분해된 시체는 식물의 영양분이 풍부한 흙이 된다.


개미는 보기보다 힘이 세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먹잇감을 혼자서 또는 동료 일개미와 협력해서 옮긴다. 자신보다 몸집이 크고 살아있는 먹잇감을 발견하면, 정예 부대처럼 공격을 감행하는 군대개미가 있다. 하지만 개미 떼가 갓난아기의 시체를 운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개미집 밖은 위험하다. 개미의 천적들이 많다.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종의 개미들을 만나면 싸워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일개미는 떠돌다가 객사한다. 지쳐서 죽거나, 아니면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죽는다.


독일의 두 개미 연구자가 함께 쓴 개미들의 행성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 사회 이야기[주3]이 책에 나오는 일개미를 보면 친근함이 느껴진다. 열심히 일한 일개미도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빈둥거린다. 근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빈둥거리는 노동자를 질책하고, 찰나의 여유를 게으른 태도로 인식한다. 하지만 휴식은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개미들은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출 줄 안다.


개미 제국은 계급이 뚜렷한 모권 사회다. 여왕개미는 수컷 개미를 만나 결혼 비행을 하고 알을 낳는다. 수컷 개미는 오직 여왕개미와의 짝짓기하기 위해 태어났다. 황홀한 결혼 비행이 끝나면 수컷 개미는 죽는다. 여왕개미가 되지 못한 자매들은 일개미로 살아간다. 일개미가 하는 일이 엄청 많다. 제일 중요한 임무는 미래의 여왕이 태어날 개미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개미알은 곰팡이와 병균에 취약하다. 일개미들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개미알이 저장된 곳을 청소한다.


인간의 눈에는 여왕이 되지 못한 일개미들이 불쌍해 보인다. 아늑한 궁전과 같은 개미집에서만 지내는 여왕개미가 죽도록 일하는 자매들보다 호사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미 제국을 일군 것은 일개미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기계처럼 산다. 일개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 한다. 개미 제국의 사회 형태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민주주의.


식량을 찾으러 개미집을 떠나는 일개미들은 늙은 암컷이다. 단지 그들이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아서 위험한 임무를 전담한다. 늙은 일개미의 몸속에 활력을 넘치게 만드는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발밑에 지나가는 일개미들은 자신이 속한 군체(群體)를 위해 희생하는 베테랑이다일개미는 동고동락하는 자매를 각별하게 대한다. 도토리 개미(Temnothorax Nylanderi)는 병든 개미를 여왕개미 못지않게 보살핀다. 아프리카 마타벨레 개미(Megaponera analis)는 다른 개미 떼와 싸우다가 다친 자매를 버리지 않는다. 집으로 데려와서 자매를 치료한다.



하찮다는 이유만으로

심심풀이로 개미를 죽이려는 당신에게 묻는다

개미 함부로 발로 밟지 마라

일개미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연탄과 같다. 



병든 일개미는 자신을 정성껏 간호한 자매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집을 떠난다. 외근하는 일개미는 개미집에서 일하는 젊은 자매들을 생각한다.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산해서 젊은 자매들이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든다.[주4]



개미를 잘 모르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 발밑에 지나가는 조그만 누구를

알고 사랑하는사람이었느냐

[주5]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 오늘 215일은 시인 백석의 기일이다. 올해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광복 이후 백석은 고향인 평안도에 거주했고,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에 정착했다. 월북 시인으로 낙인찍힌 백석의 시집은 출판 금지 도서로 지정되었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백석은 다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백석이 생존했는지 아니면 사망했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북한 내에서의 시인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남한 연구자들은 시인이 1963년에 숙청당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백석의 생애를 연구한 기자 출신의 작가 송준은 어렵사리 취재한 끝에 백석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본인이 쓰고 1994년에 출간된 백석 평전을 다시 쓰는 일에 착수했다백석은 1996년에 사망했다. 송준이 다시 펴낸 백석 평전 시인 백석(흰당나귀, 2012년, 절판)에 따르면 백석은 심한 감기에 걸려 21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백석 평전(다산책방, 2014)을 쓴 안도현 시인과 다른 연구자들은 시인이 1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주장한다.





[주1]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소개한 서평의 머리글은 백석의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중략)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민음사, 2016년), 96~97쪽-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중에서

안도현 풀어씀, 《사슴》 , 59쪽 -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 년의 고독 2, 민음사, 303.





[주3] 최재천개미 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 절판)의 부제.



※ 《개미 제국의 발견서평

[개미가 작다고 얕보지 마라]

2014426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6990026




[4, 5] 서평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연탄 한 장 시구절을 접붙여서 썼다. ‘알고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최재천 교수가 글과 강연에서 늘 강조하는 말, ‘알면 사랑한다를 인용, 변형한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4), 11쪽 -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중략)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연탄 한 장중에서

외롭고 높고 쓸쓸한, 12~13-





* 227

 

 노예 사육 개미들은 어차피 약탈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험성을 피할 수 없기에 많은 수의 노예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큰 군체를 선택하여, 가능한 한 적게 전투를 치루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루는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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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15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가 만약에 인간이 밟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만한 크기에 자아를 가지고 진화가 되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ㅎㅎ

cyrus 2026-02-16 21:57   좋아요 1 | URL
인류가 멸망했거나, 살아 있어도 개미의 노예가 되었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개미 종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 종이 있습니다. ^^

서니데이 2026-02-1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개미의 생활사를 보니 한 조직을 위해서 여왕도 일개미도 모두 일정 역할을 끝내면 결말이 좋지 않은 것 같네요. 아마 벌들의 세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cyrus 2026-02-16 21:59   좋아요 1 | URL
수컷 개미가 제일 불쌍해요. 정말로 짝짓기만 하고 죽으니까요. 그런데 예외로 결혼하고도 죽지 않는 수컷 개미 종이 있다고 합니다. ^^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월의 세계 문학








퍼시벌 에버렛

송혜리 옮김

제임스

문학동네

2025




2026년 1월 30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20분

장소: 인더가든









<1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북 큐레이터(도서 추천)]

정현정, 조약돌, 최해성

 


[진행북클럽투르기윤색]

최해성



[사진]

김성현, 최해성



[<세계 문학> 독자]

정현정, 조약돌, 김성현히시마

꽃잎(첫 참석), 윤지현(첫 참석)

 


 


※ 북클럽투르기(bookclubturgy, bookclubtur+)

 

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북클럽투르기는 공연 제작을 위해 희곡과 연극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에서 따온 말입니다.








<인더가든>(In the Garden)은 널따란 카페입니다. 수제 케이크와 쿠키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 문학 전문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세속’)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이 되면 번화가에 있는 널따란 정원으로 갑니다. <세속>이 정원에 드나든 지 정확히 일 년이 되었어요. <세속>을 위해서 대화하기 편한 자리를 마련해주는 <인더가든> 모녀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 <인더가든>두쫀쿠를 만들었어요. 두쫀쿠는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입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들도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디저트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만든 케이크와 쿠키를 자주 먹을 정도로 디저트를 좋아합니다책을 읽거나 서평을 쓸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와 함께 디저트를 먹습니다. <인더가든>의 두쫀쿠도 먹어봤어요. 올해 첫 모임을 만든 <세속> 독자님들을 위해 독서 모임장인 제가 두쫀쿠를 샀습니다.



















* 마크 트웨인, 김욱동 옮김 허클베리 핀의 모험(민음사, 1998)




퍼시벌 에버렛(Percival Everett)의 장편소설 제임스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의 모험안티테제(Anti these)’입니다. ‘테제가 명제라고 한다면, 안티테제는 명제와 대립합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톰 소여(Thomas “Tom” Sawyer) 탈출한 흑인 노예 (Jim)을 도와주는 동료입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숨을 죽이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러운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그러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음을 고쳐먹는 일에 대해서 신경을 끄기로 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중에서, 김욱동 옮김, 461)

 

 

허클베리 핀은 도망친 짐을 신고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합니다그는 짐의 우정과 자유를 위해 지옥에 가기로 결심한 것이죠탈출한 노예를 방조하는 일은 노예제에 반하는 비도덕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은 노예제를 옹호하는 가짜 도덕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립니다허클베리 핀의 지옥행은 국가와 학교, 교회가 합심해서 만든 노예제를 뛰어넘어 자유로 도약하는 중대한 전환점입니다.


제임스에서 지옥으로 가기로 결심한 사람은 허클베리 핀이 아니라 짐입니다. 짐은 백인들이 어리숙하게 행동하는 그를 부를 때 쓰는 이름입니다. 흑인 노예들은 주인인 백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가혹한 학대를 피하려고 일부러 스스로 낮췄습니다. 은 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백인들의 시선이 뭉쳐져서 생긴 가짜 이름입니다. 주인공에게 어울리지 않은 가명(家名)인 거죠.


제임스의 흑인 노예는 제대로 말할 줄 알고, 생각이 깊습니다. 그리고 글을 쓸 줄 압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임스입니다그는 자신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말로만 강조하는 백인 철학자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각성한 제임스는 팔려 간 가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세속> 독자들은 제임스가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혔다고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전에 제가 추천한 문학 작품들은 대체로 문장이 어렵고, 난해했고, 이야기의 분위기가 엄청 무거웠거든요


조약돌 님백인들의 기분을 맞추는 대로 살아간 흑인 노예들의 삶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생을 마친 흑인들은 평생 자신의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똑똑했지만 온통 하얀 세상 앞에서 좌절하여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흑인들도 있을 거예요. 교육을 제대로 받은 흑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고 백인의 언어를 습득해 보지만, 점점 더 백인 같은 인간이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백인은 언어에 능통하고 똑똑해진 흑인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결국 흑인은 백인들이 칠해놓은 하얀 세상 속에 갇혀서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 프란츠 파농, 노서경 옮김 검은 피부, 하얀 가면(문학동네, 2022)

 

* 프라모드 K. 네이어, 하상복 옮김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앨피, 2015)

 

* 이경원 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한길사, 2015)

 

* [절판] 알리스 세르키, 이세욱 옮김 프란츠 파농(실천문학사, 2013)





저는 약돌 님의 견해에서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의 탈식민주의 철학을 덧붙여보려고 합니다파농이 누군지 소개하기에 앞서, 제임스에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평등의 의미를 언급한 대목을 기억하십니까? 제임스는 꿈속에 나타난 볼테르와 철학적 논쟁을 펼칩니다. 그는 볼테르가 말한 평등의 한계를 비판하고 거부합니다. 제가 그 문장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인도 유럽인의 방식으로 쉽게 교육받을 수 있을 거야. 인간은 본래 타고난 모습을 넘어서 예절과 기술을 배움으로써 동등해질 수 있다네.”

 “그게 평등의 의미. 바로 동등해질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거라네. 마르티니크에 있는 흑인이 프랑스어를 배워서 프랑스인이 되듯, 인간은 평등에 필요한 기술을 획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동등해질 수 있다네.”

 “난 당신이 싫어요.” 내가 열과 오한 속에서 말했다. [중략]

 “어쨌든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네. 그게 내 요점이고, 하지만 우리가 악마라고 부르는 모습이 자네 아프리카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하네.” 


(제임스중에서, 72)





저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프랑스인이 되려는 마르티니크 출신 흑인을 언급한 볼테르의 말을 보는 순간, 프란츠 파농이 떠올렸습니다. 마르티니크(Martinique)는 카리브해에 있는 섬으로, 프랑스의 영토입니다. 과거에 프랑스 식민지였고, 이 섬에 파농이 태어났습니다. 파농은 프랑스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프랑스어를 배운 흑인들의 정신을 분석했습니다. 파농의 분석에 따르면 백인의 언어를 쓰는 흑인은 자신을 백인이라고 믿었습니다. 백인 행세를 하면 검은 피부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흑인 정체성을 탈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착각했습니다. 여전히 백인은 프랑스어에 유창한 흑인을 차별했습니다. 파농은 백인의 삶, 백인의 언어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흑인의 종속된 삶을 하얀 가면으로 비유했습니다. 파농의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흑인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하얀 가면을 쓴 흑인의 정신적 파산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임스는 대처 판사(Judge Thatcher)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서 책에 담긴 유럽 백인 철학자들의 생각을 만났습니다. 처음에 노예제에 비판하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했지만, 제임스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유럽 철학을 섭렵하면서도 철저히 비판적으로 접근합니다. 제임스가 볼테르와 존 로크(John Locke)의 견해에 반박하는 태도는 프랑스 유학 시절 파농의 삶과 일치합니다. 파농은 하얗게 칠한 유럽 철학의 장점을 흡수하되, 흑인 차별과 흑인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유럽 백인 우월주의를 경계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철학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러한 치열한 탐색 끝에 나온 철학이 바로 탈식민주의입니다. 탈식민주의는 제국주의와 서구 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철학입니다.


<세속> 독자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정현정 님 다름을 인정하는 방식이 서투르면 타자를 배제하거나 배척하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남성 중심적 사고가 많이 반영된 사회일수록 남성의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오랫동안 남성의 언어는 여성을 통제하는 권력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윤지현 님남성 언어의 권력화를 지적했고, 이에 따라 여성은 남성의 언어에 종속된 채 스스로 말하기를 검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고 말했습니다.































* 유진 피터슨, 김순현 · 윤종석 · 이종태 · 양혜원 옮김 메시지 묵상 모세오경(복있는사람, 2023)

 

* 유진 피터슨, 김순현 · 윤종석 · 이종태 · 양혜원 옮김 메시지 묵상 신약(복있는사람, 2023)

 

* 크리스틴 헤이스, 김성웅 옮김 구약 읽기: 역사와 문헌(문학동네, 2022)

 

* 데일 마틴, 권루시안 옮김 신약 읽기: 역사와 문헌(문학동네, 2019)




이번 모임은 다른 모임에 비하면 종교에 관한 대화의 비중이 컸습니다. 소설에서 제임스는 자신을 (Ham)의 저주를 타고난 희생자라고 표현합니다(80). ‘함의 저주구약성경》 『창세기 920~27을 뜻합니다.

 

함은 대홍수를 피하려고 거대한 방주를 만든 노아(Noah)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입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포도밭을 가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재배한 포도로 술을 만들었고,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버리는 바람에 벌거벗은 상태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함입니다. 그는 큰형 (Shem)과 막내 야벳(Japheth)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두 사람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아버지의 하체를 천으로 가렸습니다. 잠에서 깬 노아는 벌거벗은 자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형제들에게 알린 함을 저주했습니다. 노아가 내린 저주로 인해 함의 후손들은 두 형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 김형인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살림, 2003)




노예제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은 함의 저주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그들은 성경 속에 노예를 지배해야 하는 타당한 근거가 있다면서 과장된 견해를 내세웠습니다. 이에 맞서서 노예제를 비판하는 기독교 종파신약성경마태복음712, 누가복음631을 인용했습니다













* [절판] 대한성서공회 편집부 새 한글 성경과 시편(대한성서공회, 2021)



* 대한성서공회,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마태복음 712절, 16쪽

 

 “그러므로 남들이 여러분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여러분 자신들도 그대로 남들에게 해주세요.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이니까요.”



대한성서공회,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누가복음 6장 31절, 155쪽

 

 남들이 해주기를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똑같이 남들에게 해주세요.”



* 유진 피터슨, 메시지 묵상 신약55쪽(마 7:12), 168쪽(누 6:31)

 

 “여기, 간단하지만 유용한 행동 지침이 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지 자문해 보아라. 그리고 너희가 먼저 그들에게 그것을 해주어라. 하나님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설교를 다 합한 결론이 이것이다.”




두 구절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의미와 맞닿아 있습니다. 노예제에 반대한 기독교인들은 노예제가 양심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어기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어떤 분은 독서 모임에 종교를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무신론자이고 비종교인입니다. 그러나 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지성적인 태도로 종교를 과격하게 비난하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저는 성경이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서양 문학과 기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종교적 영향이 짙게 나타난 문학 작품이 상당히 많이 있고요, 작가들은 성경 속 구절을 인용하여 문장을 쓰기도 합니다.

 






























* 유진 피터슨, 김순현 · 홍종락 · 이종태 · 양혜원 옮김 메시지 묵상 시가서(복있는사람, 2023)

 

* 김동훈 옮김 욥의 노래(민음사, 2016)

 

* 에라스뮈스, 김남우 옮김 우신 예찬(열린책들, 2011)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류시화 옮김 기탄잘리(무소의뿔, 2017)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장경렬 옮김 기탄잘리(열린책들, 2010)

 

* 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옮김 고백록(한길사, 2025)




구약성경》의 시가서에 해당하는 『욥기(Book of Job)욥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정현정님이 기독교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에라스뮈스(Erasmus)우신예찬은 권위에 취한 기독교를 우화 형식으로 풍자한 작품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Tagore)기탄잘리는 고전 목록에 포함되는 작품이며 비종교인이 읽을 수 있는 종교 문학 작품입니다(현정 님은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기탄잘리를 추천했습니다). 조약돌님은 최근에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지정 도서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고백록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중세 문학사와 중세 철학사에도 거론되는 기독교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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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2-02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cyrus님!
독서 모임의 리더는 이 정도로 깊은 것을 알고 계시고 탐구하시는군요.
대구에 살면 꼭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두쫀쿠 먹어 봤는데
그냥 한 번이면 될 것 같았어요.

cyrus 2026-02-15 18:03   좋아요 1 | URL
독서 모임 대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책과 무관해서 독서 모임 후기를 쓸 땐 제가 아는 책에 대한 정보를 추가해요. 그래야 세계 문학 전문 독서 모임 분위기가 나거든요.. ㅎㅎㅎ

서울 두쫀쿠 한 개 가격이 7천 원이던데 다음에 사서 먹기 망설여지는 가격이에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I’m on your side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s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 will lay me down



저는 당신 편이에요.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험한 물 위에 있는 다리처럼

제가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 노랫말 -







니체(Nietzsche)의 철학적 분신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인간이 위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인간을 다리(bridge)’에 비유합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장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아카넷, 2025)

 


[카페 스몰토크 <니체 읽기> 지정 도서(2022)]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펭귄클래식 독서 모임(<달의 궁전> 전신) 20113월의 책,

발제자: cyrus]

* 프리드리히 니체 ·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하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장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19)




목적에 맞춰서 행동하는 인간은 안정적으로 살아갑니다. 목적에 완전히 벗어난 삶의 경로를 피해 다닙니다. 반면에 다리형 인간은 유동적입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를 추구합니다. 그러려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변화를 시도해야 하며 과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다리형 인간은 몰락을 간절히 원합니다초인(Übermensch)이 되고 싶은 몰락하는 자는 과거가 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해체합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는 다리와 같은 독서 모임입니다. 과거에 읽은 책을 소환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습니다. ‘재독(rereading)’은 과거에 책을 보면서 느낀 것과 생각을 되돌아보는 행위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한 해 동안 한 번 완독한 책들의 목록을 만들려는 목적형 독서는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적인,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합니다.

















[서재를탐하다 & 읽다익다 <우주지감

이 작가의 책’ 20195월의 책, 추천 독자읽는 인간’ 천성은]

* [절판]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서재를탐하다 & 읽다익다 <우주지감

이 작가의 책’ 20196월의 책, 추천 독자읽는 인간 천성은]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4월의 세계 문학

추천 독자: 정현정]

*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을유문화사, 2009)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는 천성은 독자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천성은 독자의 별명은 읽는 인간입니다. 독서를 주제로 한 오에의 강연들을 엮은 책의 제목 읽는 인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책에서 오에는 예전에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전신운동을 하고 난 뒤의 상쾌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재독은 과거에 읽었을 때보다 더 깊이, 더욱 치열하게 읽어야 합니다. 다시 읽기는 과거에 읽으면서 몰랐던 책의 내용을 몇 번이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대구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 202511월의 소설]

* 앨리스 워커, 고정아 옮김 컬러 퍼플(문학동네, 2020)

 


* [절판] 앨리스 워커, 안정효 옮김 컬러 퍼플(청년정신, 2007)









<고라니 울고>는 김성현 독자와 정현정 독자가 소속된 독서 모임입니다. <고라니 울고>의 작년 11월 지정 도서는 미국 소설가 앨리스 워커(Alice Walker)컬러 퍼플이었습니다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소위 말하자면 흑인입니다. 젊은 시절에 흑인 민권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잊힌 흑인 여성 작가들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컬러 퍼플은 열네 살에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흑인 소녀가 정신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성공하면서 워커는 1983년에 전미도서상과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소설가로도 활동한 안정효가 번역한 컬러 퍼플을 읽었는데요, 이 책은 절판되었어요. 이 책의 앞표지에 소설 속 주인공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어요. 실루엣의 출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컬러 퍼플> 포스터입니다


소설 주인공은 처음에는 맞춤법과 문법이 어색한 흑인 토속 영어로 말합니다. 안정효 번역가는 흑인 영어 특유의 발음과 억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맞춤법이 틀린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61월의 세계 문학]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2025년 12월의 책]

* 퍼시벌 에버렛, 송혜리 옮김 제임스(문학동네, 2025)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7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천성은]

* 마크 트웨인, 김욱동 옮김 허클베리 핀의 모험(민음사, 1998)

 


* 마크 트웨인, 이화연 옮김 톰 소여의 모험(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올해 1월의 세계 문학 작품의 주인공은 흑인 노예 남성입니다. 이 남성의 이름은 제임스(James)’입니다. 백인들은 그를 (Jim)’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험심이 강한 백인 소년들이 구출한 흑인 노예로 기억합니다. 짐의 탈출을 도와준 소년들이 바로 허클베리 핀(Huckleberry “Huck” Finn)톰 소여(Thomas “Tom” Sawyer)입니다.


1월의 세계 문학은 퍼시벌 에버렛(Percival Everett)의 소설 제임스입니다. 작가는 앨리스 워커와 같은 조지아주 출신 흑인입니다. 제임스마크 트웨인(Mark Twain)허클베리 핀의 모험흑인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두 백인 주인공의 시선으로 흑인 짐과 노예제도를 바라본 고전입니다. 이와 반대로제임스의 제임스는 흑인 노예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를 관찰합니다.


제임스도 백인 앞에서 의도적으로 맞춤법이 틀린 채 말합니다. 소설에서는 흑인 영어를 노예 말투라고 번역했습니다실제로 흑인 노예들은 백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우스꽝스럽게 말했습니다. 우월감에 빠진 백인들은 문맹인 척하는 노예들을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202011~12월의 책]

 

[그라디언트 <이 작가의 책>

미국 근대 문학 읽기’ 202612월의 책

추천 독자: ‘읽는 인간천성은]

* 토니 모리슨, 최인자 옮김 빌러비드(문학동네, 2014)












천성은 독자가 이끄는 독서 모임 <이 작가의 책>의 올해 큐레이션은 미국 근대 문학 읽기입니다. 7월 지정 도서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고, 12월 지정 도서는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빌러비드입니다. 제가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에 활동했을 때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작품이 빌러비드였습니다.

 

제임스지금까지 소개한 다른 독서 모임 지정 도서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입니다. 컬러 퍼플빌러비드를 다시 읽고 싶거나 예전의 독서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 그리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빌러비드를 읽으려는 독자를 위해서 제임스를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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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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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형이상학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주1]은 에서 시작된다. 시각적 감각(aisthēsis)은 현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현상을 파악하면 현상에 대한 정보가 기억에 남는다. 현상을 여러 번 기억하면 현상을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경험(empeiria)이 된다. 시각적 감각을 즐기는 인간은 기억과 경험을 거쳐 학문적 인식에 도달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앎의 발전 단계.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동물을 구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동물은 기억과 상상에 의존하면서 살아가지만, 경험 능력을 쌓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분법 중의 하나다야생 동물을 길들이는 데 성공한 인간은 동물을 알기 위해 그들을 포획하고 관찰했다앎의 욕구가 점점 커지는 동시에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유일한 전지(全知)적 존재다. 유전공학 · 나노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로 유전병을 교정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다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되고 싶은 인간)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인간상이 아니다.[주2] 가장 똑똑한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온 인간은 전지전능한 지구의 주님이 되려고 한다. 지구의 주님은 학문이 더 발전하면 아직 밝혀내지 못한 자연의 수수께끼들이 풀릴 거라고 낙관한다. 과거에 인간이 동물과 지구를 괴롭히면서 일으킨 여러 가지 문제들도 주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전지적 주님은 자신만만하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천사와 이름은 같지만, 지구의 주님을 섬기는 시종이 아니다.[주3] 그는 전지적 존재가 되기 위한 용도로 학문에 접근하는 분위기에 경종을 울린다. 지구의 주님은 종교가 아닌 과학을 편애하는 과학주의자다. 과학주의는 과학만능주의와 같은 말이다. 과학주의자는 과학만 있으면 인간은 전지적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최악의 문제들(환경 파괴, 전염병 유행)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과학을 찬양하자는 지구 주님의 가르침을 거스른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이라면 죽을 때까지 만나야 하는 거대한 질문이 있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엄청 짧고 간단한 질문이지만,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만난 사람들이 밝힌 대답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를 알기 위한 질문은 한없이 크다가브리엘은 이 거대한 질문을 변형한다. 동물로 간주하는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이다는 마르쿠스의 변형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책이다이 책에서 마르쿠스는 인간을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재정의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겸손하다스스로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이라고 선포한 인간은 오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대로 동물로서의 인간은 앓을 지향하면서도 앎을 통해 얻은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그리고 자기 생각이 틀렸으면 고치려고 한다이러한 태도를 가브리엘은 인식적 겸손이라고 표현한다.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차분하다.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기억을 반복하면 경험이 된다호모 사피엔스는 생각의 오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의 오류를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슬기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류를 직시한 경험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겸손한 동물로서의 인간은 생각의 오류가 발생하면 게 눈 감추듯 지우지 않는다. 생각의 오류를 더 나은 생각으로 고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


최악의 호모 사피엔스는 지식을 무기로 삼아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고 죽인다. 그들은 타자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지식이 정확하지 않고, 틀렸음에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로서의 인간은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을 따르면서도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을 안다. 가브리엘이 제시한 앎의 발전 단계는 무지(無知)의 윤리에서 시작한다. 무지의 윤리는 정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 틀릴 수 있고, 그 지식을 통해 편집한 생각도 틀렸음을 인정한다. 우리가 괴물로서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무지의 윤리를 떠올려야 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많이 안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 않아도 되고, 모르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생전에 자신을 시인이 아닌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레이가 남긴 시구절[주4]은 인간은 동물이다의 한 줄 평으로 쓰기에 잘 어울린다.





Where ignorance is bliss,

‘Tis folly to be wise.


무지가 행복인 곳에서, 현명해지는 것은 어리석다









[1]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옮김, 형이상학, 31, 도서출판 길, 2017.



[2]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김영사, 2017.



[주3] 가브리엘은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다.

 


 천사가 그에게 대답했다. “나는 가브리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있어요. 그대한테 말해 주라고 나를 보내셨어요. 이 좋은 소식을 그대에게 알려 주라고요.” 


(누가복음 제119절, 새 한글 성경 신약과 시편, 대한성서공회, 136)



[주4] Ode on a Distant Prospect of Eton College (17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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