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 AI를 움직이는 우아한 수학
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노승영 옮김 / 까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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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며칠 전부터 인스타그램이 이상하다한 번 마주치면 우리 마음에 끔찍한 잔상을 남기는 잔인한 동영상이 불쑥 튀어나온다짧은 영상들(short-form)을 보여주는 플랫폼(Reels)에 들어가서 영상을 연달아 보고 나면 해로운 동영상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들, 고어(gore) 영화에 나온 장면, AI로 만들어진 기괴한 이미지들. 2월 마지막 날, 인스타그램은 불쾌한 영상들의 폭주를 멈추지 못했다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메타(Meta)해로운 영상들을 걸러내지 못한 알고리즘의 오류 문제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오늘 해로운 영상들이 또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심사를 관찰하고, 수집한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모아서 분류한다알고리즘이 모은 자료들은 모든 사람을 끌어당긴다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을 금방 찾을 수 있다그런데 최근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뜻밖의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에 본 적 없는 해로운 영상들을 제대로 검열하지 못한 채 보여주고 있다알고리즘은 왜 우리가 원하지 않은 정보를 아무렇게나 보여주는 오류를 일으킬까?


나는 알고리즘 전문가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오류의 구체적인 원인을 모른다하지만 나는 알고리즘 오류와 관련된 한 가지 진실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이 진실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다. 그것은 바로 알고리즘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진실이다. 완벽해 보이는 알고리즘도 때때로 틀릴 때가 있다. 모든 알고리즘 전문가도 인정하는 진실이다.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실수하고 틀리는 알고리즘에 왜 수학이 필요한지를 알려준다우리에게 친숙한 알고리즘은 전산공학(컴퓨터 공학) 용어로 알려졌지만, 이 용어는 수학에서 시작되었다알고리즘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 또는 절차를 뜻한다. 수학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가 패턴(pattern)’을 찾는 일이다패턴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알고리즘 최근린(最近隣) 또는 NN(nearest neighbor) 알고리즘이라고 한다AI가 일하는 방식은 마치 수학자들이 자연 현상에서 패턴을 찾는 일과 같다.


수학을 모르는 AI는 패턴을 식별할 수 없다. AI는 수학을 공부한다. 컴퓨터 시스템이나 기계가 패턴을 감지하고, 분류하기 위해 수학을 학습하는 과정을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이라고 한다우리에게 친숙한 컴퓨터를 포함한 대부분 기계는 수학을 학습하면서 발전했다.


매년 꾸준히 공부한 사람도 가끔 문제를 풀다가 오답을 낼 때가 있다. 틀렸으면 다시 문제를 풀어서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한 번 오류를 일으킨 AI는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 이때 AI는 이전에 배웠던 수학을 반복하는 학습을 하지 않는다. 배운 적이 없는 새로운 수학을 공부한다. 따라서 AI가 학습하는 수학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AI가 지금까지 공부한 수학 분야들을 소개한다. 기계 학습의 필수 수학 과목은 미적분, 확률 통계, 행렬 등이다.


AI는 똑똑해지려고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오류와 실수를 줄이려고공부한다. 대부분 사람은 점점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AI의 등장을 두려워한다영화 속 AI는 인간을 조종하는, 냉철한 악당으로 묘사된다그러나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알고리즘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수준에 도달해도 또다시 실수한다기계가 왜 수학을 공부하는지 이해한다면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다. 한 번 실수하면 수학(數學)을 수학(修學, 受學)[주1]하는 AI. 수학으로 단련하는 AI는 차갑지도 않고, 기계적이지 않다.


AI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 속에 있는 편견을 알지 못한다. AI 기술자는 AI가 기계 학습을 할 때 자료의 편견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꾸준히 학습하고, 알고리즘을 교정하는 AI가 아니다.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편견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편견을 의심하지 않고, 편견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공부하지 않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오류를 고치지 않는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학습하는 AI, 

정확하지 않은 가짜 정보에 갇힌 답 없는 인간


, 이제 누가 악당이지?







<cyrus가 만든 주석과 정오표>




[1] 수학(修學): 학문을 닦음

수학(受學): 학문을 배우거나 수업을 받음.







* 12




 

 수학자 유지니아 쳉수학은 실재일까?(Is Math Real?)라는 책[주2]에서 수학을 배우는 과정이 점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꼬물꼬물 발을 내디디면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가 느닷없이 뒤를 돌아보고서 어느덧 높은 산에 올랐음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약간의(때로는 다량의) 지적 막막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학에서 진전을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주2] 번역본: 유지니아 쳉, 성수지 옮김, 수학, 진짜의 증명: 우리 삶의 방정식을 구하는 수학의 즐거움(드루, 2024).





* 75




 

 오차를 제곱하여 평균하는 방법은 통계 및 미적분과 관계된 또 다른 이점이 있지만, 아직은 들여다볼 때가 아니다. 목표는 이 제곱 평균 오차(Mean squared error)’[주3]를 필터의 매개변수에 대해 최소화하는 것이다.



[주3] 정확한 명칭은 평균 제곱 오차. 제곱 평균 속도(mean square velocity)’라는 과학 용어가 있지만, 평균 제곱 오차와 관련이 없다. 제곱 평균 오차라고 단 한 번이라도 적힌 교재나 문헌이 있으면 이 주석은 틀린 것이다.





* 107




 


 토머스 베이스의 탄생 연도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에는 유쾌한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0.8의 확률로 1701년에 태어났다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사망일은 확실하다. 1761417[주4] 영국 로열 턴브리지 웰스에서 사망했다.


[원문]




 There’s delicious irony in the uncertainty over Thomas Bayes’s year of birth. It’s been said that he was “born in 1701 with probability 0.8.” The date of his death, however, is firmly established: April 17, 1761, at Royal Tunbridge Wells in England.



[주4저자와 번역자 모두 사망 날짜를 잘못 적었다토머스 베이스(베이츠)의 사망 날짜는 47이다위키피디아(Wikipedia)‘Thomas Bayes’ 항목의 주석(Note 1)베이스의 사망 날짜가 잘못 알려진 이유가 있다.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Thomas_Ba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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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영 2025-03-03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자입니다. 오류를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오표에 반영했습니다.
http://socoop.net/WhyMachinesLearn/corrections/

꼬마요정 2025-03-0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도움 되는 리뷰입니다. 누가 악당일지는 바로 알겠습니다. 근데 결코 쉬운 책이 아닐텐데 cyrus 님 리뷰만 보면 읽을만 한데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ㅎㅎ
(땡투 드렸어용^^)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 문학

차학경 《딕테

김경년 옮김, 현대문학 (2024)







2025년 2월 28일 금요일저녁 8시~10시 20분

장소: 인더가든



<세계문학>을 만든 독자들

조약돌, 향기,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지난주 수요일 저녁에 카페 <small talk>의 주인장 김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김 사장님은 철학책 독서 모임(니체, 미셸 푸코, 레비나스)을 함께 했던 분입니다. 우리는 고요한 어둠이 채워진 <small talk>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말을 주고받는 중에 김 사장님은 본인이 선호하지 않는 독서 모임을 얘기했습니다. 김 사장님은 참석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확인하는 대화가 많은 독서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런 모임에 책은 뒷전입니다. 결국 모임 참석자들의 돈독한 관계를 확인하는 사교 모임이 되고 맙니다. 김 사장님의 말에 저도 이런 유형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쑥 걱정이 들었습니다. 독서 모임을 꾸리기 시작한 지 이제 일 년 지난 제가 다른 독서 모임을 비판할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세계 문학 속으로> 2월의 책 딕테》는 독자들이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에요. 독서 모임을 만들기로 결정한 독자들은 딕테》를 읽는 내내 무엇을 얘기하면 좋을지 생각을 엄청 많이 했을 거예요(그리고 본인의 결정을 후회했을 겁니다)책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그 책이 어떤지 얘기할 수 없습니다. 책과 친해지지 못한 독자들은 독서 모임에 나오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로 일관합니다. 어떤 독자는 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김 사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딕테를 다시 펼쳤어요. 이틀 후에 있을 독서 모임에 겉도는 독자들이 한 분이라도 나오지 않게 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2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는 조약돌 님과 향기 님입니다. 두 분과의 인연은 2년 전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서 시작되었어요. 만나자마자 두 분은 책이 어렵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두 분의 반응을 이미 예상했었습니다독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제가 고른 책이 어렵다, 재미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사소한 감정이 아닙니다. 감상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에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가 스며 들어 있어요. 저는 책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눈여겨보면서 다음 독서 모임을 위해서 함께 읽을 책을 신중하게 고르려고 합니다.


딕테는 차학경 작가의 자서전적인 글입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독자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시도합니다. 역자와 작가의 친오빠가 쓴 해설은 차학경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재구성한작가의 시선으로 딕테를 읽는다고 해서 딕테에 친근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한 달 전인 1<세계 문학 속으로> 모임을 마무리할 때 딕테를 읽을 때 차학경 작가를 찾기 위해서 읽지 말고, 그 글에서 드러내는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읽어보라고 제안했어요. 이때 제가 했던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독자들이 있다면, 독서 모임을 능숙하게 진행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딕테를 쉽게 읽는 저만의 방식을 소개한 글 한 편 쓸 걸 그랬나 봐요.


딕테77쪽에 프랑스어로 쓴 문장이 나옵니다.

 

 


방출하라. Ne te cache pas. Révéle toi. Sang. Encre.


 


프랑스에서 태어난 말을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자신을 감추지 말라. 자신을 드러내라. 혈액. 잉크.” 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딕테와 친해지면서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발견했어요딕테》는 독자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읽는 책이라고 확신했어요.


저는 향기 님에게 <세계 문학> 2월 모임에 꼭 참석하라고 부추겼어요. 향기 님은 러시아어를 전공했어요.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외국어 원서를 즐겨 읽는 독자입니다차학경 작가는 어린 시절에 거대하고 낯선 땅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을 제2 고향으로 인식하면서 살아가 보려고 했지만, 모국어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외국어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차학경 작가는 영어를 미국인처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을 입으로 흉내 내는 짓(딕테, 13)’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는 딕테를 읽은 향기 님이라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작가의 고충을 어느 정도 이해할 거로 생각했어요. 향기 님은 중국어의 성조(聲調, tone)를 최대한 정확하게 내기 위해서 거울 앞에 서서 중국어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어요. 거울에 비친 입 모양을 확인하면서 성조를 연습했던 거죠.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2025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김재홍 옮김 · 해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그린비, 2023)




딕테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두 분의 근황과 딕테감상을 충분히 확인했다고 해서 독서 모임을 일찍 마무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딕테를 가방에 넣고, 제가 참석하지 않은 ‘다른 독서 모임의 책을 꺼냈어요. 그 책은 바로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명상록이었어요. 이 책이 올해 첫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였어요


<일글책>이 고른 번역본은 김재홍 번역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명상록의 원제입니다. 마르쿠스는 연약한 자신의 참모습을 돌아보기 위해 잉크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을 썼어요역자 김재홍 교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단체인 정암학당의 공동 이사입니다.


지난달 <세계 문학> 모임이 끝난 후에 조약돌 님은 저에게 명상록에서 자살을 긍정하는 대목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거든요자살에 대한 철학자 마르쿠스의 견해를 어떻게 보는지 물으셨어요그때부터 김재홍 교수의 명상록을 읽기 시작했어요마르쿠스는 스토아학파 철학자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자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정의하는 자살은 이성에 맞는 벗어남입니다. 조약돌 님은 스토아 철학적인 자살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어요. 우리는 스토아학파의 자살할 권리를 주제로 철학적인 대화를 하면서 모임을 마무리했어요.






 

 











* 캐시 박 홍,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마티, 2021)





딕테함께 읽어야 하는 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책이 한국계 이민자 출신의 미국 작가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마이너 필링스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차학경 작가의 죽음을 이르게 한 성폭력 및 살인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미국 사회와 동료 예술가들의 미온적인 반응(차학경의 죽음을 예술적으로 미화하는 태도)을 지적하면서 미국의 유색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고발합니다


마이너 필링스210딕테의 내용 일부가 언급된 문장이 나옵니다. 차학경 작가는 딕테에 미국 하와이에서 이주 한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과 독립운동가 윤병구(1880~1949)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보낸 탄원서(편지)를 인용합니다.



 




 차(학경)딕테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번역하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의 사진에 설명 붙이기를 거부한다. 독자는 나름대로 단서를 연결해 퍼즐을 풀어가는 탐정이 된다.


(마이너 필링스중에서, 210)

 


루스벨트라는 성()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두 명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이승만과 윤병구가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는 1905년에 써졌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책 속에 있는 오류와 오역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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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3-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에 독서 모임 하시는군요. 차학경 <딕테>는 소개를 읽어보고 난해할 것 같았는데, 모임도서로 읽으면 각자의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여러 책들을 구매하거나 고르다보면 늘 비슷하거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게 됩니다만, 모임으로 정해진 책을 읽으면 조금 더 다양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25-03-03 16:49   좋아요 1 | URL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하는 독서 모임이에요. 사실 독서 모임을 주말에 하고 싶은데, 이러면 주말에 개인적인 일(독서, 글쓰기, 서울 여행)을 할 수 없어서 금요일 저녁에 하게 됐어요. ^^

페크pek0501 2025-03-0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에서 책 얘기가 끝나고 나서 멤버들의 일상 이야기를 듣는 게 좋던데요. 남들은 어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남들 얘기에 경청하는 게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은 심리 상담사였는데 많은 사례를 들려 줘서 견문 넓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화전가 - 배삼식 희곡
배삼식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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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여자는 꽃이다.” 옛날에 이 문장은 외모가 수려한 여자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 찬사는 시들해졌다. 이 말 속에 여성의 참모습을 외모로 판단하는 시선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외모가 ’과 같은 말이 되는 순간 여성은 남성의 눈과 마음에 끼워 맞춰진 대상화(objectification)가 된다. 남성을 위해 꽃이 된 여성은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하지만 극작가 배삼식 <화전가>(花煎歌)를 희곡으로 읽고, 연극으로 보고 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빛바랜 찬사를 다시 쓰고 싶다<화전가>에 나오는 여인들은 꽃다운 인생을 살다 간 화녀(花女).







연극 <화전가>

극단 구리거울


2025221~22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연출] 

김미정



[출연진]

 

닭실 할매김 씨: 이경자

고모: 허세정

장림댁: 김정연

금실이: 석효진

박실이: 박나연

봉아: 이연주

영주댁: 이연진

독골 할매: 김미향

홍다리댁: 이혜정(극단 나무의자 소속)





<화전가>의 시간은 19504이다. 한반도 땅이 포탄을 맞고 두 개로 찢어 갈라진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다닭실 할매김 씨의 환갑 잔치를 열기 위해 오랜만에 여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세 딸(금실이, 박실이, 봉아)두 며느리(장림댁, 영주댁), 고모 권 씨, 행랑어멈(나이 든 하녀) 독골 할매, 혈연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함께 지낸 홍다리댁여인들의 고향인 경북의 반촌(班村)에 따스한 봄의 기운이 돌아오지만, 매캐한 전운이 봄을 짓누른다마음이 미지근한 김 씨는 환갑 잔치가 달갑지 않다그러나 여인들은 화목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결국 김 씨는 자신을 위한 화연(花宴) 대신에 모두가 즐기는 화전(花煎)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인들의 화전놀이가 시작되기 전날은 경신일(庚申日)이다. 이날 밤(庚申夜: 경신야)이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술을 마시면서 노는 풍습이 있다. 도교 신앙에 의하면 사람 몸에 기생하는 삼시(三尸)라는 벌레가 있다. 경신일은 삼시가 승천하는 날이다. 하늘에 올라간 삼시는 천제(天帝: 최고 신)에게 자신이 기생한 사람의 죄를 일러바치는데, 그 사람은 목숨을 잃는다. 경신일에 사람이 잠들면 삼시가 하늘에 올라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삼시의 승천을 막아 천수를 누리기 위해 경신야에 잠을 자지 않는다. 김 씨와 여인들은 소주 한 말을 함께 마시면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여인들은 각자 마음속에 뭉쳐진 여러 가지 감정들을 분출한다. 과거에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섭섭했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아홉 명의 여인 중 가장 젊은 피인 막내딸 봉아는 가족들이 잠을 못 자게 방해한다.



[봉아] 내가 몬 자게 할 기다.

[금실이] ?

[봉아] 언니 오래 살라꼬.

[금실이] 참 빌.

[봉아] 아무도 못 잔다, 오늘은. 자기만 해 바라. 가만 안 둘 기다.


(3경신야 2중에서, 92)

 


경신야에 잠을 청하는 일은 작은 죽음을 상징한다. 죽음은 인간의 수명뿐만 아니라 시간도 멈추게 한다살아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오거나, 이런 행복한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봉아는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경신야와 화전놀이는 아홉 여인이 함께 경험한 화양연화(花樣年華). 아홉 여인의 화양연화는 순수하고 소박해서 아름답다. 여인들은 커피를 함께 마시고, 초콜릿을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먹는다그리고 쓴맛이 강한 커피에 넣으려고 준비한 설탕 가루를 손바닥에 부어 맛보기도 한다행복한 순간은 물에 녹는 설탕 가루와 같다. 결국 행복한 순간은 흐르는 시간에 금방 녹아버리지만, 달콤한 여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화전가>화녀전(花女傳)’이다아홉 명의 화녀는 어수선한 일상을 잠시 제쳐두고, 함께 행복을 느낀다. 혼자 피는 꽃보다 여러 송이의 꽃이 다 같이 활짝 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cyrus의 주석>







봉아는 극이 시작되자마자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소네트 15, 그것도 영어 원문으로 된 시를 고모 앞에서 읊으면서 등장한다. 극 중반부에 봉아는 잠에 취한 상태로 T. S. 엘리엇(T.S.Eliot)의 장시 <황무지>의 첫 구절을 영어로 낭송한다.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황동규 옮김, 황무지, 민음사)




국문학자 양주동(1903~1977) 선생은 1955<황무지>가 수록된 T. S. 엘리옽 시전집(탐구당)을 펴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대한민국에 출간된 모든 책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 T. S. 엘리옽 시전집의 서지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저장된 서지정보가 무조건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양주동 선생 이전에 우리말로 번역된 엘리엇의 시가 실린 문헌(단행본이 아닌 문학잡지)이 있을 수 있다.

 

화전가의 시간적 배경은 양주동 선생의  T. S. 엘리옽 시전집》이 나오지 않은 19504월 하순이다. 봉아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황무지>를 영어로 읽을 줄 아는 똑똑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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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2-26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셰익스피어 소네트랑 엘리엇의 황무지까지, 흥미롭네요!

cyrus 2025-03-01 21:10   좋아요 1 | URL
봉아가 낭독하는 셰익스피어와 엘리엇의 시구는 희곡의 주제를 떠올리게 해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
 





세계 문학 전문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20246월 마지막 금요일 밤에 태어났습니다. 독서 모임이 태어난 요람은 술과 책을 파는 책방이었어요. 하지만 그 책방은 지난달에 문을 닫았어요. 새로운 가게가 책방을 덮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독자들의 책과 문학 사랑은 언제나 펼쳐져 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독자들은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여 올해도 책과 생각을 펼치려고 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박인용 옮김, 보통의 독자(함께읽는책, 2011)




저를 포함해서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에 한 번이라도 참석하는 분들 모두 독자입니다.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도 단순해 보이는 단어에 다양한 의미를 넣어주고 싶어요. 제가 선호하는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말한 보통의 독자와 비슷해요. ‘보통의 독자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독자예요. 여기서 울프가 표현한 문학 훈련은 문학 강연과 같은 교육입니다. 보통의 독자는 혼자 낯선 책에 다가가서, 스스로 생각하면서 책을 여러 번 쓰다듬은 독자입니다. 이런 독자(獨子)가 바로 보통의 독자(讀者)’입니다. 저는 보통의 독자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라고 부르고 싶어요.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독자들이 만든 독서 모임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부터 제가 아닌 다른 독자들이 추천한 책을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3, 6, 9월은 다른 독자들이 추천한 책을 읽는 달입니다. 문학 분야의 책 이외에 인문학, 사회과학, 과학, 예술 분야의 책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3월의 세계 문학 도서를 추천한 독자는 조약돌님입니다. 조약돌 님은 20231월 토요일 아침에 시작된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정회원입니다. 지금도 꾸준히 <일글책>에 오십니다. 그 밖에 현대 철학 독서 모임도 참석하는데, 니체(Nietzsche)와 라캉(Jacques Lacan) 등을 읽기도 했습니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3월의 세계 문학]

* 페터 빅셀, 이용숙 옮김, 책상은 책상이다(위즈덤하우스, 2018)

 

* [구판 절판] 페터 빅셀, 이용숙 옮김, 책상은 책상이다(예담, 2001)




약돌 님이 추천한 책은 스위스의 소설가 페터 빅셀(Peter Bichsel)의 단편 소설집 책상은 책상이다입니다. 이 책의 표제작 <책상은 책상이다>는 제가 중학생 시절에 만난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입니다. 작가 이름은 몰라도 <책상은 책상이다>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이야기는 단순해요. 한 남자는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는 대신에 양탄자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사물의 이름 바꾸는 일에 흥미가 생긴 남자는 의자를 시계, 신문을 침대라고 부릅니다. 책상은 책상이다에 실린 단편 소설들 속 주인공 모두 평범하지 않습니다. 열차 시간표만 암기하는 남자,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자신이 발명했다고 믿는 발명가. 지구가 정말로 둥근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남자.

 

약돌 님은 다르게 보기의사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으로 책상은 책상이다를 추천했어요. 저는 이 책을 2014년에 읽은 적이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을 다시 만나면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책을 함께 펼쳤어요. 책상은 책상이다철학 소설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철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어요. 책상은 책상이다의 매력은 철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시선을 통과시킬 수 있는 투명한 책이라는 점입니다. 책은 투명할수록 독자들의 흥미로운 해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책상은 책상이다보통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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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2-25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은 책상이다!
제가 몇 살 때 였는지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때 엄청 인기있는 책이었어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네요.
미셸 푸코의 어떤 책을 펼쳤는지도 궁금해요^^

cyrus 2025-02-26 06:44   좋아요 1 | URL
중학생 시절에 국어 선생님이 <책상은 책상이다> 소설집을 추천해 주셔서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 읽고 있는 푸코의 책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입니다. ^^

stella.K 2025-02-2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독자 나도 가지고 있는데 여태 못 읽고있다. 읽어야하는데... ㅠ 책상은 책상이다 사 봐야겠다. 잘 지내지?

cyrus 2025-02-26 06:46   좋아요 0 | URL
저도 <보통의 독자>를 샀는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았어요.. ㅎㅎㅎ
 











2월 22일 토요일.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이날에만 내가 보고 싶은 연극이 무려 세 편이나 상연된다연극 한 편은 서울에서, 두 편은 대구에서 한다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 겹치는 데다가 서울과 대구를 오고 가는 시간도 부족하다결국 서울에서 하는 연극은 포기하고, 대구 연극 두 편을 관극(觀劇)하기로 했다.







내가 서울에 가서 보고 싶었던 연극은 일본 극작가의 작품이다. 매년 이맘때에 일본 극작가의 희곡 작품을 낭독극 형식으로 선보이는 현대 일본 희곡 정기 공연이 있다. 2002년 도쿄에서 시작된 정기 공연은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한다.






 










*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현대일본희곡집 7(연극과인간, 2016)

* 기타무라 소, 김유빈 옮김 호기우타(지만지드라마, 2024)




이번 공연에 공개되는 극작품은 마쓰이 슈(松井周) <지하실>기타무라 소(北村想)호기우타(寿歌). 공연 장소는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이다. 낭독 공연은 어제 금요일에 시작되었고, 첫 공연작은 <지하실>이었다.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 연속으로 연차를 쓰지 못하는 바람에 금요일에 상연된 <지하실>을 보지 못했다.

 















* 윤영선, 윤성호 죽음의 집(책공장 이안재, 2022)




<지하실>을 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의 연출가와 출연 배우 때문이다. <지하실>의 연출가는 윤성호. 작년에 내가 소극장에서 관극한 죽음의 집을 쓴 극작가다. 죽음의 집2007년에 세상을 떠난 극작가 겸 연출가 윤영선의 미완성 희곡이었는데, 윤성호가 완성했다.

















* 나탈리 사로트, 이광호 · 최성연 옮김 아무것도 아닌 일로(지만지드라마, 2023)




<지하실>의 출연진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박세인 배우문가에 배우다. 박세인 배우는 희곡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 공동 대표. 202312, <인스트립트>에서 역사적인 첫 번째 낭독극 공연이 진행되었는데, 작품은 바로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2인극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박세인 배우와 문가에 배우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공연의 페어(pair)’로 만났고, 나는 두 배우의 낭독극을 관극했다.


공교롭게도 연희동에서의 <인스크립트>의 삶은 오늘이 마지막이다<인스크립트> 시즌 2는 다음 달부터 혜화동 대학로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2년마다 대구에서 원로 연극제가 펼쳐진다대구 경북에서 활동하는 원로 연극배우들과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연극 축제다지난주에 이미 첫 연극 작품이 무대에 올랐는데, 경주 출신 극작가 손기호<복사꽃 지면 송화꽃 날리고>지난주 토요일 저녁 공연을 봤다. 

















* [품절] 손기호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연극과인간, 2020)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2011년 서울 연극제 대상 수상작이다. 손기호의 희곡집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에 수록되어 있다. 이 희곡집에 표제작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가 실려있는데, 세 극작품은 경주를 배경으로 한 경주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는 경주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극 중 인물들은 사투리를 쓴다. <복사꽃 날리면 송화꽃 지고>노부부의 소탈하면서도 정겨운 대화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 배삼식 화전가(민음사, 2020)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셰익스피어 전집 10: 소네트. (민음사, 2016)





원로 연극제두 번째 작품은 배삼식화전가.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경북 안동의 어느 시골에 환갑을 앞둔 닭실할매김 씨를 위해 두 며느리와 세 자매는 환갑 잔치 대신에 화전놀이를 준비한다. 여인들은 술을 마시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나눈다화전가는 김 씨의 막내딸 봉이가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소네트 15을 읊으면서 시작된다.








내가 예매한 <화전가> 공연은 오후 3에 시작된다.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달서아트센터로 이동해서 저녁 7시에 하는 중국의 고전 잡극(雜劇) <회란기>를 관극한다. <회란기>는 서울시극단 단장 고선웅이 연출했다서울에 가면 볼 수 있는 연극을, 그것도 대구에서 오늘 하루만 하는 연극을 놓친다는 건 연극쟁이로서 어리석은 일이다.

















* 이잠부, 문성재 옮김 회란기(지만지드라마, 2019)

※ 흰색 표지로 된 구판은 2012년에 출간됨, 당시 출판사는 지식을만드는지식





<회란기>원제는 포 대제가 슬기롭게 석회 동그라미로 판결을 내린 이야기라는 뜻의 <포대제지감회란기>(包待制智勘灰闌記). 포 대제는 판관 포청천으로 알려진 포증(包拯)이다. 포청천은 포증의 별명이다. <회란기>의 포 대제는 남편을 독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친자식마저 빼앗기는 위기에 처한 여인을 구제한다


기생 출신의 장해당은 졸부 관리인 마균경의 첩이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수랑이라는 이름의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다. 반면 마균경의 본처 마 부인은 자식이 없어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마 부인은 남편 몰래 관청에서 일하는 조 영사(令史)와 바람을 피운다. 두 사람은 마균경을 죽이기로 모의한다.

 

마 부인과 조 영사의 계략에 걸려든 장해당은 간통녀로 오해를 받아 남편에게 학대당한다. 해당은 국 한 사발을 마균경에게 대접하는데, 마 부인은 국에 독약을 몰래 넣었다. 해당은 졸지에 남편을 독살한 과부가 되었고, 마 부인은 남편의 유산과 해당의 아들을 차지하기 위해 송사(訟事)를 신청한다. 마 부인과 조 영사는 송사에 이기기 위해 해당의 출산을 도운 산파들과 관아의 관리들을 매수한다. 궁지에 몰린 해당은 모진 고문을 받게 되고, 고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거짓 자백을 한다.


해당은 개봉부의 사령(使令)으로 일하는 친오빠를 우연히 만난다. 개봉부는 포 대제가 근무하는 관청이다. 해당의 친오빠는 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포 대제에게 판결을 의뢰한다. 개봉부에서 다시 만난 장해당과 마 부인. 포 대제는 석회로 바닥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그 안에 아이를 세우게 한다. ‘하얀 동그라미는 진짜 친엄마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한 장치다.

















*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브레히트 선집 1, 2, 3(연극과인간, 2015)

※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희곡 선집 3권에 수록됨



 

1924년 독일에 처음으로 번역된 <회란기>의 번안 제목은 하얀 동그라미.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포 대제의 재판 장면을 재해석한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썼다.








오늘 공연 관극을 위해 어젯밤부터 뜬눈으로 한국, 중국, 일본 희곡을 전부 다 읽었다. 이렇게 희곡을 몰아서 읽는 것도 흔치 않다. 게다가 놀라운 사실은 세 편의 희곡을 쓴 극작가와 연극을 만든 연출가 모두 브레히트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지하실>을 번역한 연극 전문 번역가 이홍이2015년에 상연된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번역했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의 연출가 정철원(극단 한울림 대표)대구시립극단 예술감독 시절인 2021년에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 엄마와 그 자식들>을 연출했다.

 

극작가 배삼식의 데뷔작1998<하얀 동그라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각색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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