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온종일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과 놀았다. 즐거우면서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지젝이 쓴 책 《잉여향유》가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 진행되었던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지정 도서라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읽었다.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여덟 번째 모임(12월) 지정 도서]
* 슬라보예 지젝, 강우성 옮김 《잉여향유: 당황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 (북스힐, 2024년)
어영부영 이 책, 저 책 읽는 못된 독서 습관 때문에 독서 모임 지정 도서에 열심히 눈길을 주지 못했다. 결국 《잉여향유》 를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지젝이 많이 인용하고 언급하는 헤겔(Hegel), 마르크스(Karl Marx),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사상을 깊게 이해하지 못해서 읽는 속도가 더디었다.
* 이찬용, 배세진 감수 《마르크스주의 입문: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기 위해》 (오월의봄, 2025년)
* 피터 싱어, 노승영 옮김 《마르크스》 (교유서가, 2019년)
* 한형식 《마르크스 철학 연습: 세상을 직시하게 하는 한 권의 철학》 (오월의봄, 2018년)
* 미카엘 뢰비 · 엠마뉘엘 르노 · 제라르 뒤메닐 함께 씀, 배세진 옮김 《마르크스주의 100단어》 (두번째테제, 2018년)
* 양자오, 김태성 옮김 《자본론을 읽다: 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유유, 2014년)
* 김수행 《자본론 공부: 김수행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 이야기》 (돌베개, 2014년)
* 존 몰리뉴, 천형석 옮김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입문》 (책갈피, 2013년)
잉여향유는 라캉이 고안한 정신분석학 용어다. 잉여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잉여가치(Mehrwert, surplus value)’와 관련이 있다.

노동자가 일을 해서 상품을 만드는 시간은 상품의 가치와 동일하다. 상품이 팔리면서 나온 이익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고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노동 시간을 늘린다. 노동자의 일이 늘어날수록 상품의 가치가 증식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가가 획득하는 ‘잉여가치’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생기는 잉여가치로 이익을 얻는다.
* 칼럼 닐, 이미라 옮김 《라캉을 읽기 위한 기본》 (yeondoo, 2025년)
* 숀 호머, 김서영 옮김 《라캉 읽기》 (은행나무, 2014년)
* 브루스 핑크, 이성민 옮김 《라캉의 주체: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 (도서출판b, 2010년)
* 김석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년)
* 딜런 에반스, 김종주 옮김 《라깡 정신분석 사전》 (인간사랑, 1998년)
향유(jouissance, 주이상스)는 ‘쾌감’을 뜻하는 용어다. ‘향락’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주이상스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애매한 개념이다. 소크라테스(Socrates)가 시민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철학을 했듯이 라캉은 자신의 사상을 말로 설명하는 강의와 세미나를 중시했다. 그의 이름이 저자로 표기된 저작물은 강연과 세미나 내용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주이상스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고통스러운 과도한 쾌락’이다. 지나치게 쾌락에 빠지면 자기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른다. 극단적인 욕망의 끝은 죽음 충동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주이상스는 ‘죽음으로 향하는 통로’이면서도 동시에 ‘죽도록 즐기고 싶은’ 매혹적인 쾌락이다.
지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잉여향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한다. 그가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된 사상의 도구 틀이 너무 많다. 앞서 언급했듯이 헤겔, 마르크스, 라캉을 자주 사용하며 이 세 사상가를 다르게 해석한 동시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가지고 온다.
* [절판] 자크 라캉, 홍준기 · 이종영 · 조형준 · 김대진 함께 옮김 《에크리》 (새물결, 2019년)
《잉여향유》 1장에서 유심히 읽은 내용은 <과학 없이도 자본주의도, 자본주의에서의 탈피도 없다>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서 지젝은 라캉의 《에크리》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과학과 진리>라는 강연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과학에는 기억이 없다. 일단 구성되면, 과학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순환 경로를 조작한다. 달리 말하면, 과학은 정신분석이 진지하게 작동시키는 진실의 차원을 망각한다.
(《잉여향유》, 88쪽)
과학을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과학은 구성되었을 때는 태어날 때의 우여곡절을 망각한다. 즉 정신분석이 거기서 명백히 작용시키는 진리 차원을 말이다.
(라캉, 《에크리》, <과학과 진리> 중에서, 1029쪽)
라캉이 바라본 과학은 합리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반면에 정신분석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주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며 주체의 무의식에도 주목한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 주체를 규명하는 과학이다.
지젝은 라캉이 표현한, ‘기억 없는 과학’을 여러 번 강조하면서 과학을 비판한다. 그의 비판 지점들을 열거하자면, 주체의 차원을 폐제하는(폐지해 없애 버린다) 과학, 진실로 둔갑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외면하는 과학의 태도, 연구 결과가 오용되는 상황에 신경 쓰지 않는 과학자들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과학이다.
과학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에 우려하는 심정으로 과학을 강도 높게 비판한 지젝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는 과학은 사실이라고 규정한 라캉의 견해에 반대한다.
라캉의 의도와 다를 수 있지만(오독할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기억하지 않는 과학’을 이렇게 해석한다. 미신과 종교를 비판하면서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과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와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많다. 우생학, 성차별, 실험 조작, 비윤리적 실험, 원자 폭탄이나 무기 개발에 협조한 과학자들, 담배 회사와 손잡고 흡연의 해로움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과학자들. 그런데도 여전히 과학은 과거의 문제점들을 답습한다. 따라서 라캉이 말한 ‘기억하지 않는 과학’은 성찰하는 주체가 없는 학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지식을 성찰하는 주체가 없는 상태의 과학은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휩쓸린다.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연구실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 생각이 완전히 멈춰진 학문이 아니다. 연구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과학을 성찰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과학의 치명적인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과학자들이 잊고 싶은 과학의 어두운 면을 누누이 언급하고, 대중에게 알린다. 그러면서 예비 과학자들에게 과학적으로 성찰하는 태도를 가지라고 당부한다.
* 스티븐 제이 굴드, 홍욱희 · 홍동선 함께 옮김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년)
*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인간에 대한 오해》 (사회평론, 2003년)
미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과거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포장된 사이비 학문, 양심을 저버린 과학자들, 우생학을 지지한 과학자, 성차별을 옹호한 과학을 비판한 글을 주로 썼다. 굴드처럼 과학의 약점을 기억하는 과학자는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인간다운 삶’과 자연과 공생하는 관계를 모색하는 과학을 지향한다. 그리고 과학이 성숙해지려면 과학을 비판하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젝은 오늘날 과학은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과학 그 자체가 이 일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잉여향유》, 92쪽). 그는 여기서 또다시 라캉을 인용한다. 기억이 없고, 진실의 차원을 무시하는 오늘날의 과학은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못한다. 지젝은 과학이 개선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과학과 진리>는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진행된 라캉의 세미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라캉이 생각한 과학은 너무 오래됐고 낡았다. 그때의 과학은 오늘날의 과학은 다르다. 그런데도 지젝은 과학에서 비롯된 문제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해 왔고, 개선하기 위해 자성의 목소리를 낸 과학의 노력마저도 불신한다. 과학을 오해하고 있는 듯한 지젝의 냉소적 태도가 불만스럽다.
<끔찍한 오역에 관한 cyrus의 주석>

《잉여향유》의 번역자는 지젝이 인용한 라캉의 《에크리》 문장을 직접 번역했다. ‘캔터’는 무한을 연구한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Georg Cantor)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독일인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어설프게 표기한 것은 가볍게 봐줄 수 있어도 끔찍한 오역은 지나칠 수 없다.

* 《잉여향유》 89쪽
그는 무한이라는 개념의 혁명으로 인해 내적 혼란을 겪어 광기의 극한으로 치닫고 심지어 식인 행위를 하게 된 캔터를 언급한다.
[원문]
He mention Cantor whose revolutionizing of the notion of infinity triggered an inner turmoil which pushed him to the limit of madness and even led him to practice coprophagia.
89쪽의 ‘식인 행위를 하게 된 캔터’는 오역이다. 칸토어는 혼자서 무한집합론을 연구했는데, 당시 동료 수학자들은 칸토어의 무한 연구를 평가절하했다.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칸토어는 말년에 우울증과 조현병에 시달렸고,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coprophagia는 대변을 먹는 ‘식분증’을 뜻한다.
* 존 D. 배로, 전대호 옮김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가없고 끝없고 영원한 것들에 관한 짧은 기록》 (해나무, 2011년)
* [절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함께 씀,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 애니 디 도나 함께 그림, 전대호 옮김 《로지코믹스: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RHK, 2011년)
* 아미르 D. 악젤, 승영조 · 신현용 함께 옮김 《무한의 신비: 수학, 철학, 종교의 만남》 (승산, 2002년)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와 《무한의 신비》는 칸토어의 삶과 업적을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 무한을 주제로 한 연구가 ‘정신 나간 연구’로 취급받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다.

《로지코믹스》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수학자로 유명하게 만든 저서 <수학의 원리>의 탄생 배경을 그래픽노블로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러셀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한 수학자들이 나오는데, 정신 질환에 걸린 칸토어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