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10월의 세계 문학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627번째 책]
아서 C. 클라크
김승욱 옮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황금가지
2017년
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장소: 인더가든
<10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북 큐레이터(도서 추천)]
김성현
[진행, 북클럽투르기, 윤색, 사진]
최해성
[참여]
조약돌, 김성현, 히시마, 천성은, 배러(첫 참석)
※ 북클럽투르기(bookclubturgy, bookclubtur+記)
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북클럽투르기’는 공연 제작을 위해 희곡과 연극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에서 따온 말입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에 했던 독서 모임.
가수 이용은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연인과 헤어져야 했던 그날을 슬퍼하면서
<잊혀진 계절>을 노래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남긴 채
헤어졌지요.
잊힐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과학 소설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은 흔하지 않아요. 10월의 문학 작품을 추천한 김성현 님은 과학 소설 마니아입니다. 성현 님은 여러 생각이 솟아나게 만드는 과학 소설의 매력을 독서 모임을 통해서 알리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과학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대요. 그리하여 주제와 분야의 경계가 없는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약칭 ‘세속’)을 만든 독자들을 위해 과학 소설의 고전을 추천하게 됐습니다.
* 아이작 아시모프, 김옥수 옮김 《아이, 로봇》 (우리교육, 2008년)
* 로버트 하인라인, 김상훈 옮김 《스타십 트루퍼스》 (황금가지, 2014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쓴 영국의 작가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는 과학 소설의 거장 중 한 사람입니다. 과학 소설 마니아들은 이구동성으로 과학 소설의 거장을 세 명으로 압축해서 거론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와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입니다. 아시모프의 대표작은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다양한 성격의 로봇이 등장하고, 인간을 위협하지 않으며 인간의 명령에 따르는 로봇을 제시한 ‘로봇 3원칙’이 언급된 연작 소설 《아이, 로봇》입니다. 하인라인의 대표작은 영화가 더 유명한 《스타십 트루퍼스》입니다. 사실 이 세 거장은 워낙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에 이들의 대표작을 한두 편만 고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 아서 C. 클라크, 심봉주 옮김 《아서 C.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황금가지, 2011년)
* 아서 C. 클라크, 심봉주 옮김 《아서 C. 클라크 단편 전집 1950-1953》 (황금가지, 2011년)
* 아서 C. 클라크, 고호관 옮김 《아서 C.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황금가지, 2011년)
* 아서 C. 클라크, 고호관 옮김 《아서 C. 클라크 단편 전집 1960-1999》 (황금가지, 2011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장편 소설입니다. 클라크는 단편 소설도 많이 썼어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51년에 발표된 단편 소설 『파수병』(The Sentinel)을 작가가 확장해서 쓴 작품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말하기를, 『파수병』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시작점입니다. 이 단편 소설은 《아서 C. 클라크 단편 전집 1950-1953》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클라크의 단편 전집은 총 네 권입니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말년에 쓴 작품들을 발표 연도순으로 엮여 있어요.

성현 님은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 만든 동명의 영화를 무려 두 번(!)이나 봤답니다. 모임에 처음 오신 배러 님도 학부생 시절에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소설 못지않게 유명해요. 그런데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이‥… 너무 길어요. 영화를 끝까지 다 보면 2시간 정도 걸립니다(공식적으로 알려진 상영 시간은 2시간 22분입니다). 처음에 봤을 땐 지루했고, 몇몇 영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대요. 원작 소설을 읽으니까, 난해하게 느껴진 영화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 박태웅 《박태웅의 AI 강의 2025: 인공지능의 출현부터 일상으로의 침투까지 우리와 미래를 함께할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한빛비즈, 2024년)
* [품절] 박태웅 《박태웅의 AI 강의 2025: 챗GPT의 실체부터 AI의 진화와 미래까지 인간의 뇌를 초월하는 새로운 지능의 모든 것》 (한빛비즈, 2023년)
성현 님은 AI(인공 지능)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전에 AI를 알고 싶어서 정보통신업계에 오래 몸담은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이 쓴 책을 읽었다고 했어요. 책 제목은 《박태웅의 AI 강의》입니다. 이 책은 2023년에 출간되었어요. 이듬해에 최신 AI 관련 정보가 추가된 《박태웅의 AI 강의 2025》가 나왔어요.

소설과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빌런(villain)은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입니다. HAL은 Heuristically Programmed Algorithmic의 약자입니다. 빌런은 ‘악당’을 뜻하는 단어인데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를 뜻하기도 해요.
소설 초반부에 묘사된 HAL은 우주 탐사선 디스커버리호(discovery)를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똑똑한 관리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HAL의 사악한 참모습이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HAL은 탐사선에 탑승한 데이비드 보먼(David Bowman)과 그의 동료들을 감시합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켜서 승무원들을 살해합니다. HAL은 자신의 살인 행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결국 보먼이 유일하게 살아남게 됩니다.
HAL은 집착이 강합니다. 이 기계의 유일한 목적은 자신에게 입력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HAL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힘과 능력을 쏟았다. 자신에게 입력된 프로그램을 완전히 실행하는 것에 그는 집착 이상의 열의를 갖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실행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존재 이유였다. 보통의 생명체처럼 욕망이나 열정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질 일이 없는 그는 지금까지 절대적인 집중력으로 오로지 그 목적만을 추구해 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에서, 237쪽)
HAL을 인간으로 비유하면, 오직 자신만 살기 위해서 부덕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소시오패스(Sociopath)에 가깝습니다. 소설과 영화가 나온 1960년대 말은 인공지능이 신기술 분야로 한창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당시 인공지능을 둘러싼 독자와 학자들의 장밋빛 관심을 어둡게 전환한 소설입니다. 소설이 나오기 전에 사람들은 이미 인공지능의 문제점을 우려했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전망했습니다. 성현 님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AI의 범죄 행위를 처음으로 묘사한 스릴러 소설’이라고 평했습니다.
* 칼 세이건, 홍승효 옮김 《브로카의 뇌: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20년)
[피터 박스올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788번째 책]
* 칼 세이건, 이상원 옮김 《콘택트》 (사이언스북스, 2001년)
조약돌 님은 1960년대의 과학 기술과 천문학 지식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읽었어요. 약돌 님은 클라크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셨어요. 저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과학 소설인 척하는 과학책’으로 느껴졌어요.
칼 세이건(Carl Sagan)은 ‘문학적인 글을 쓰는 과학자’로 유명합니다. 그가 쓴 책을 보면 문학 작품들을 인용하곤 합니다. 필사하기 좋을 정도로 상당히 멋진 문장들을 남기기도 했어요. 그리고 NASA가 주도한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SETI)를 소재로 한 《콘택트》(Contact)라는 과학 소설도 썼어요. 세이건이 쓴 유일한 과학 소설입니다. 번역본 앞표지로 사용된 사진은 1997년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 포스터의 일부입니다.
세이건이 과학 소설 마니아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브로카의 뇌》라는 책에 수록된 『과학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세이건의 과학 소설 취향을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은 과학 소설 비평문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세이건은 자신이 읽은 과학 소설들에 대해 간략하게 논평합니다. 그가 선호하는 과학 소설은 ‘과학 지식을 거의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유사 과학을 비판하는 과학자답게 세이건은 비과학적인 묘사가 있는 과학 소설을 비판적으로 봅니다.
*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고호관 · 박상준 · 박병곤 · 지정훈 옮김
《SF 명예의 전당 1: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년)
* [절판] 박상준 엮음, 《토탈호러》 (1993년, 서울창작)
세이건은 과학 지식을 제대로 아는 작가로 클라크를 언급합니다. 세이건이 추천한 클라크의 작품은 단편 소설 『90억 가지 신의 이름』(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1953년)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네 권의 단편 전집에 없어요. 번역된 작품이 실린 책은 두 권뿐입니다. 여러 명의 작가가 쓴 단편 공포 소설을 모은 《토탈호러》와 과학 소설 앤솔러지 《SF 명예의 전당 1: 전설의 밤》입니다. 《토탈호러》는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서 지금은 구하기 힘듭니다.
* 브라이언 콕스, 박병철 옮김 《블랙홀: 사건지평선 너머의 닿을 수 없는 세계》 (RHK, 2025년)
* 킵 손, 박일호 옮김 《블랙홀과 시간여행: 아인슈타인의 찬란한 유산》 (반니, 2019년)
* 킵 손, 전대호 옮김 《인터스텔라의 과학》 (까치, 2015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웜홀(Wormhole)’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우리말로 풀이하면 ‘벌레 구멍’이에요. 웜홀은 두 개의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가상의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차원의 공간을 이용하는 지름길에 희망을 품었다. 똑바른 길보다 더 빠른 길이 공간과 공간을 이어 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프린스턴 대학의 어떤 수학자가 지난 세기에 만들어 낸 그럴듯한 말을 즐겨 사용했다. 우주의 웜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중에서, 274~275쪽)
웜홀은 실제로 관측되지 않았고,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웜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웜홀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과학자가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입니다. 독일에 태어난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상대성 이론과 중력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제자 네이선 로젠(Nathan Rosen)과 함께 웜홀 아이디어를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웜홀의 형태를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웜홀’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ald Wheeler)입니다. 1957년에 휠러는 자신의 논문에 ‘웜홀’을 처음으로 썼어요. 클라크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학술 용어였던 ‘웜홀’을 소설에서 언급한 것이지요. 과학에 대한 작가의 관심도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휠러는 ‘블랙홀’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휠러의 제자인 킵 손(Kip Thorne)은 블랙홀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 자문을 맡았습니다. 세이건과 절친한 사이라서 세이건이 소설 《콘택트》에 쓸 때(이 소설에도 웜홀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 제이미 그린, 손주비 옮김 《우리를 찾아줘: 생명의 존재를 밝히는 눈부신 여정, 처음 만나는 우주생물학》 (위즈덤하우스, 2025년)
히시마 님은 과학 소설을 이렇게 정의했어요. 인류의 근본(기원)을 질문하게 만드는 소설. 네, 공감합니다. 과학 소설의 매력이자 장점, 즉 우리가 과학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를 제대로 말씀해 주셨어요.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학문인 ‘우주생물학’을 소개한 《우리를 찾아줘》라는 책에 히시마 님의 견해와 맞닿은 문장이 있어요.
과학 소설은 지식의 경계가 우주로 향하는 바깥이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도록 안내한다.
(《우리를 찾아줘》 중에서, 40쪽)
과학 소설이 많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학 소설을 둘러싼 독자들의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과학 소설을 상상력에 중점을 둔 문학으로 여기는 독자들이 많아요. 저도 한때 과학 소설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문학’으로만 인식했어요. 그런데 과학 소설을 가볍게 보는 인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과학 소설의 ‘과학’은 희미해집니다. 과학과 문학이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는 경계가 형성됩니다. 과학과 문학이 서로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과학자도 과학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과학 소설에 드러난 ‘과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지식입니다. 과학 소설은 한마디로 말하면 ‘과학스러운 소설’입니다. 이제 독자들이 과학 소설의 ‘과학’에 더 많이 주목해 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