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그래피 -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안드레아 드워킨 지음 / 동문선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분노로 타오르고 명석하면서도 신랄하다. 드워킨은 ‘포르노그래피의 권력=강간자 겸 구타자의 권력=남자의 권력’이라 말한다. 포르노그래피가 만들어지는 한 모든 여자가 그렇게 소비된다는 말은 많은 걸 생각케한다. 이런데도 과연 포르노를 대하면서 쿨한 게 개방적이고 멋진 태도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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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15 2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만 이 책에서 다루며 분석하는 포르노그래피는 대부분이 사진(그나마 실려 있지도 않아서 묘사한 문장을 읽으면서 상상해야 하는 고역…)과 텍스트(포르노 소설) 위주라 포르노 영상이 만연한 현 시대에 읽기엔 좀 낡은 느낌이 들기는 한다.

다락방 2026-03-15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 어떻게 구해 읽으셨어요!!?? 저는 도서관 상호대차로 읽었는데요. 잠자냥 님도??

잠자냥 2026-03-15 21:17   좋아요 1 | URL
아뇨 <제2의 성> 매춘 관련 장 읽다 너무 이 책 읽고 싶어져서…. (전부터 찾았지만 저희 동네는 도서관에 이 책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진짜 이런 짓 안 하는데 ㅋㅋㅋㅋㅋ 샀습니다. 중고셀러에게……😹 다섯 배는 더 줬네요. 흐흑…. 이 책은 원서 자체도 구하기가 힘든데 아마 저자가 아예 절판시킨 게 아닌가 싶어요.

잠자냥 2026-03-15 21:19   좋아요 0 | URL
아무튼 사드 후작 장을 읽고 나니 사드 문학을 쿨하게 소비하는 문학 지식인들의 태도에 좀 환멸이 드네요…😹

건수하 2026-03-16 00:06   좋아요 1 | URL
우와 저도 이거 여쭤보려했어요. 잠자냥님 요즘 중고셀러에게 웃돈주고 책 사고 계셔……

요즘 포르노는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는데) <포르노랜드> 다락방님이 추천하실겁니다. 이것도 거의 20년된 책이지만요.

다락방 2026-03-16 07:20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은 포르노랜드 를 이미 읽으셨습니다!!

건수하 2026-03-16 08:25   좋아요 1 | URL
역시!

잠자냥 2026-03-16 09:59   좋아요 0 | URL
중고셀러에게 웃돈 주고 사는 건 이 책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ㅋㅋㅋ 그나마 그것도 이달의 리뷰/페이퍼 당선된 적립금으로 산 거라서 일단 저도 공짜(?)로 읽었다고 봐야 하나...?

아무튼 이것보다 먼저 읽은 <성 정치학>은 중고셀러한테 산 책은 아니고,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구판으로 사둔 지는 오래인데 이번에 읽었네요. 개정판 나왔을 때 좀 사고 싶긴 했으나(케이트 밀렛 얼굴의 표지가 구판보다 더 좋아 보여서 ㅋㅋ) 역자가 완전 똑같기도 하고, 제가 그 출판사 불매 중이라 개정판 굳이 안 샀어요(그 출판사는 사내 권력형 성폭력이 있었는데 그 이후 참 대처가....)

다락방 님이 답변해주신 것처럼 <포르노랜드>는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드워킨 <포르노그래피> 읽다 보니 이 책에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포르노랜드>는 영상 비판 위주라서 훨씬 더 요즘 책 같긴 하고요. 아무튼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사드나 바타이유 같은 포르노 문학을 소비하는 태도에 대해서 좀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던져준 게 의미가 있었어요. 사드와 바타이유는 이른바 문학 지식인들이 ‘자유’나 ‘개인의 성 해방’의 관점에서 칭송하는 분위기가 많은데 그게 과연 온당한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드워킨은 보부아르나 손택의 사드, 바타이유 칭송도 좀 비판하기는 하더라고요.

참 혹시 건수하 님 <포르노그래피> 이 책 궁금하시면 제가 발송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개인 정보 오픈이 부담스러우시면 나중에 다락방 통해서 전달해드릴게요. (엥?)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3-16 10:10   좋아요 1 | URL
아, <성 정치학> 그런 연유가 있었군요... 전 표지가 다르길래 설마 이게 개정판인가? 아님 잠자냥님이 이전판을 갖고 계셨나 했었어요. 출판사 이름을 기억해두겠습니다.

<포르노그래피>는 물론 궁금하지만, 제가 요즘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다른 분이 원하시면 저는 양보(?)하겠습니다. 개인정보 노출은 뭐 잠자냥님께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응?).

 
엘살바도르 플란 델 호요 케냐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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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했을 때부터 원두에서 베리향이 확 올라온다. 첫 맛은 역시 크랜베리 그리고 마무리는 초콜릿. 아이스로 더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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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정치학
케이트 밀렛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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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반부는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다(밀러/메일러 까기). 한남 작가의 젖가슴 타령 못지않은 백남 작가들의 음부 타령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밀렛. 남근 타령 프로이트에 관한 비판도 속 시원! 문학작품을 기존의 시선과 다르게 분석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는 점은 이 책의 강력한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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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13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에 관한 밀렛의 평 중 하나.

하디 자신도 이에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불확실성은 수를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측은한 인물로, 괴짜이자 불감증인 여자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성 혁명 문학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먼저 결혼과 성적 소유라는 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으며 이혼을 손쉽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하디의 소설은 대부분 이러하다. 그중에서도 <이름 없는 주드>는 이미 결혼이 부패해버린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이혼할 수 있다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다음으로 하디는 수라는 인물을 통하여 성 정치학에 항거한 총명한 반역자를 창조했으며 그러한 반역자가 패배했을 때의 무기력함까지도 잘 이해했다고 칭송받을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혁명과 같은 투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혁명에 참여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서술하는 작가에게도 혁명은 어려운 일이다. 계급 체계를 공격할 때 <이름 없는 주드>는 아주 확고해 보이지만 성 혁명의 문제로 향할 때는 작가 또한 불안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락방 2026-03-13 16:55   좋아요 1 | URL
아 너무 좋습니다. 성 정치학도 좋고 쥬드도 좋고 잠자냥 님과 제가 이 두 권을 모두 읽었으며 감상을 나눌 수 있다는 것도요!!
 
발코니
장 주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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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사변적 이야기를 하던 주네가 정치적으로 작심하고 쓴 작품. 유곽을 드나들며 여성을 착취하는 인물들이 주교, 법관, 경찰 등 국가 권력임을 조롱&비판한다. 현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기법은 무대 위(유곽)나 무대 밖(유곽 밖/현실)이나 다를 바가 없음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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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12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편 케이트 밀렛은 <성 정치학>에서 주네의 <발코니>를 이렇게 평가한다.

-<발코니>는 혁명과 반反혁명에 대한 주네의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배경은 어느 유곽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실패로 끝난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곽의 단골손님과 주인이 이전 정부의 역할을 하도록 설득된다. 포주와 여성 역할 남창 세계의 인간적 관계를 탐구한 주네는 어떻게 성적 계급이 인종적・정치적・경제적 불평등주의의 모든 형태들을 대체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발코니>는 남성과 여성 혹은 이를 대체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 착취와 억압을 건드리지 않는 혁명이란 아무 쓸모가 없음을 보여준다. 주네는 섹슈얼리티라는 근원적 인간관계를 그로부터 생겨난 모든 정교한 사회적 구성물의 핵심 모델로 간주함으로써, 그것이 그 자체로 가망 없이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제도화된 불평등의 원형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생득권에 따라 그중 한 집단에 지배권을 주면서 사회 질서는 이미 억압 체제를 확립한 동시에 정당화했다고 주네는 확신한다. 이러한 억압 체제는 인간의 사유와 경험의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인간관계의 형태에 잠재하여 타락하게 한다.

다락방 2026-03-15 15:24   좋아요 0 | URL
제가 성정치학 읽고 발코니도 사뒀거든요? 아직 안읽었습니다..

잠자냥 2026-03-15 21:09   좋아요 0 | URL
알고 있따! 이 책으로 땡투 나야…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 -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
퍼트리샤 그레이홀 지음, 송섬별 옮김 / 물결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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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좋아하거나(이때 좋아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그 또는 그녀의 ‘글’을 뜻한다) 관심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라면 회고록이나 그에 관한 전기라든가 일기 같은 글들을 읽지 않는다. 작가의 사생활을 굳이 알아내서 작품 감상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럼에도 회고록, 전기, 일기 같은 것을 읽은 작가들이 종종 있다, 손택, 치버, 카버, 소세키 등등이 떠오른다. 요즘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일기와 노트 1941-1995>를 사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는 중이다(다음 달에 사자...). 아무튼 그러니까 이 정도 유명세를 지녔거나, 이 정도로 내가 그들의 작품을,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전기, 일기, 회고록 등은 웬만해서는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읽은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는 위와 같은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다. 저자 ‘퍼트리샤 그레이홀’은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작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내게 무명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없으니까. ‘의학과 사랑 그리고 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에 관한 소개 글을 읽어보자. ‘의사, 에세이 작가, 소설가. 2022년 출간한 에세이 <침대와 침대를 오가며>로 다수의 독립출판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2023년 배우자와 공동 집필한 <황금빛 노년과 은빛 희망(Golden Years and Silver Lining)>을 선보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25년 <우리가 머물 곳(A Place for Us)>, 2026년 <프레임드(Framed)>를 연달아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사이자, 에세이스트. 소설가라고도 덧붙여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 또한 그저 의사가 쓴 병원/환자에 관한 에세이라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뻔해 보이므로. 그런데 이 책에는 다른 키워드가 덧붙여져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던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온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청년기 회고록이다. 만일 이 회고록이 그의 노년기까지 이어진다면(저자는 현재 일흔을 넘겼다),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딱 저자의 청년 시절 방황이 일단락되고 또 다른 생이 펼쳐지는 지점에서 마무리 된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에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은 정신질환으로 취급받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사형선고였다.”(p.19)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사는 이들도 많아졌고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 또한 많아진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동성애자들은 혐오 또는 차별이 일상적인 세계의 벽장 속에 숨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동성애가 금기시 되어 발각되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나라 또한 존재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단지 그 성이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임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청교도 국가, 1960~70년대의 미국 또한 그다지 진보한 사회는 아니었다. 게이나 레즈비언은 정신질환을 가진 자들이었고 그러므로 그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마땅했다. 그런 시대, 그런 세계에 퍼트리샤 그레이홀, 이 책의 저자는 태어난다. 
  
퍼트리샤 그레이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녀의 성정체성을 알고 지지해주느냐(마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그 가정처럼)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몇 년째 깊은 우울증에 빠져 가족을 방치한 채 자기 삶을 지탱해나가기도 버거워 보인다, 어머니 혼자 퍼트리샤와 그의 여동생 두 자매를 돌보다시피 한다. 어머니는 퍼트리샤한테 여자아이다운 꾸밈을 강요하며 여성스러운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혹시라도 조금만 이상해 보이면, 정상적인 소녀다움에서 벗어난 행동이나 취향을 드러내면 어머니는 극렬하게 혐오를 드러내며 딸을 야단친다. 이런 호모포비아 가정에서 퍼트리샤는 더 고립감을 느낀다. “내가 애리조나에서는 하나뿐인 레즈비언”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며…. 그 고립감을 벗어나고자 자신과 같은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곳,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리라 마음먹는다.

초반에 그려지는 퍼트리샤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동성애자로서의 자각, 그럼에도 호모포비아적인 엄마(와 가족), 주변 환경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사느라,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애쓰는 삶이 참으로 애처롭게 그려진다. 이성애자인척 하느라 좋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하고 만 장면이 있다. 그녀가 나이 든 남자에게 섹스를 허락하고 마는 장면이다. 사실 퍼트리샤는 자신에게 다가온 잘생긴 또래 남자와 연애를 해보기도 하지만(결국 그의 여동생에게 반하고 마는 퍼트리샤!) 집요하게 섹스를 원하는 남자 친구를 거부하다 관계는 끝나고 만다. 그런데 그 이후 이 중늙은이랑 섹스를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 이 남자와의 관계 때문에 임신하고 마는 퍼트리샤. 미성년자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으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이다. 그런 때 퍼트리샤는 임신중지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십대 소녀, 미성년자임에도 성인과의 그루밍 관계에서 성착취를 당하고, 결국 임신, 임신중지를 겪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처참한 심정으로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연애 상대를 만날 기회를 갖게 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이렇다 할 직업도 돈도 거주지도 마련하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겁다. 일상에 이렇게 허덕이는데 연애라고, 사랑이라고 잘 될 리가 있을까. 그럴 때 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난다. 인간의 생에는 한두 번 쯤은, 운이 좋으면 몇 번쯤은 꼭 도움이 되는 만남이 있다. 이 무렵의 퍼트리샤에게도 그랬다. 그렇게 삶을 낭비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공부하고 대학을 가라고 말하는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퍼트리샤는 이 충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가고,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한다. 의대에 진학했으니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까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퍼트리샤가 의대에 진학한 당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의대생 100명 중 여학생은 다섯 명이 전부이다. 보스턴에서 인턴 과정을 수련할 때는 그가 유일한 여성이다. 1970년대 의료계는 남성 중심적 위계로 움직였으며, 기득권 진입의 기회 역시 남성들이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다. 오랜 세월 공고하게 유지된 남성들만의 카르텔에서 여성인 그가, 심지어 동성애자인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일과 사랑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일구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의학 수련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 만성적인 피로와 감정 고갈을 겪으면서 소진된 나날을 보내던 퍼트리샤는 남성 동료들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서 얻는 것과 같은 돌봄과 지지를 바란다. 그런 안정적인 연애를 갈망하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이 책에는 ‘케이트 밀렛’이 찬조 출연하기도 한다. ㅋㅋ) 성해방이 꽃을 피운 시기라 연애에서의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관계에 관한 갈망이나 “아내 운운” 발언은 당시의 기조와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퍼트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이나 발언이 문제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안정적인 관계에서 에너지를 얻고 싶은 것을 어찌하랴. 퍼트리샤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성공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레즈비언은, 게이는, 동성애자는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불행한 삶을 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는 사회의 저주, 경고, 편견을 모두 깨버리고 싶다. 

그런데 참 재미나다. 인간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라 드디어 그런 관계를 가꿔나갈 수 있는 여자(캐스)를 만났는데 도리어 퍼트리샤는 한눈을 팔기 시작한다. “한때 나는 배려심 있고 잘 챙겨주는 여자를 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커리어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여자, 내 눈에 섹시하고 호감 가는 여자를 원했다. 그 모든 특성을 다 가진 한 여자만 만나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p.266), 캐스를, 또 다른 연인을 속이며 또 때로는 대놓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거나 일시적인 연애 관계에 놓이면서 퍼트리샤는 자신을 폴리아모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비열하기조차 한 존재이다. 그렇게 침대와 침대를 오가던 퍼트리샤에게 제대로 임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다니’- 지금껏 퍼트리샤를 매혹했던 여자들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이 여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녀. 

헌데 ‘다니’는 퍼트리샤와 사귀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동성애자는 니가 처음이야!” 레즈비언이면서도 그간 헤테로 여자만 사귀었다는 다니가 너무나도 신기한 퍼트리샤....는 다니의 그 말이 지닌 의미를 곧 깨닫는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가릴 것 없이 끌어들이는 이 마성의 여자는 정말이지 문젯거리, 위험한 존재는 사실을…. 어느덧 퍼트리샤는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던 ‘캐스’의 입장이 되어 ‘다니’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지만 다니는 그럴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인다. 전 여친도 만나고 새 여자도 만나고 커플 상담사도 꼬시고 그러면서도 퍼트리샤 너 없이는 못산다 하고…대환장 파티다. 퍼트리샤는 다니에게서 지나간 시절, 폴리아모리를 외쳤던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퍼트리샤와 다니, 이 커플은 퍼트리샤의 바람처럼 안정적이고 독점적인 커플을 이룰 수 있을까? 퍼트리샤는 자신이 원하던 바로 그 ‘아내’를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가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 인간의 속성이 그렇다.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애정은 물론이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응?)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자신은 사랑하는 그 대상에게 그런 존재인가? 그렇게 온 마음과 에너지, 시간 등등 정성을 다해 그 상대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퍼트리샤도 그랬을 것이다. 안정적인 관계, 따뜻한 돌봄과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게 하기를 꺼리던 사람, 이기적이고 철없는 사랑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녀. 그리고 때로 그 말은 폴리아모리라는 말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 스스로도 “20대 시절의 나는 믿을 만한 사람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가 나 자신에게 주어야 마땅할 사랑과 수용, 돌봄을 연인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p.430)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 고백이 단지 고백으로만 끝났다면 허무했으리라. 그녀는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 끝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퍼트리샤의 이 다짐은 성공할까? 인간은 사랑에 실패했을 때 관계에 실패했을 때, 상대, 타인으로부터 문제를 찾는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은 과연 그 또는 그녀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사랑은 물론 삶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한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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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3-09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o 치버 카버 소세키 🎵 ㅋㅋㅋㅋ래퍼인줄ㅋㅋㅋㅋ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저도 읽고 한방 맞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나는 안 그러면서 상대방이 그러기를 원했던 이기적인 마음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하지만 행동하긴 어려워요 어려워ㅠㅠ

잠자냥 2026-03-10 09:17   좋아요 1 | URL
yo 치버 카버 소세키 🎵
망고가 말했지~
˝나는 내가 함께하고 수영하고 싶은 그 여자가 되기로 했다.˝ 🤣

케이 2026-03-1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커플도 둘 중 하나는 전통적 의미의 아내 역할을 해주길 원하는군요? 결국 뒷바라지를 해주고 받는 건 성별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것인가봐요. 서로 도와주면 안되는 것일까요. 너무 이상적인 얘기긴 하지만. 전 동성 연애는 이성 연애보다는 서로 동등한 관계 유지가 되지 않을까 했거든요. 사랑이라 말하지만 그 사랑 역시 갑을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흑흑.
저도 잠자냥님 글로 처음 듣는 작가네요. 전 누구의 전기를 한번도 못 읽은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무려 레닌의 전기를 읽으려다 중도 포기 했던 일이 있습니다. 전 누군가의 일생 같은 거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잠자냥 2026-03-12 10:26   좋아요 1 | URL
권력이 작동하기도 하겠지만 커플 각자의 직업(누가 좀 더 여유로운가)이나 개인의 성격, 처한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의 작가는 의대생이었다가 의사가 직업이 되니까 워낙 일에 치여서 집에 돌아갔을 때 심정적으로 기댈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근데 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생기니까 싫어하더라고요?ㅋㅋㅋㅋ). 그걸 아내(당시 미국은 아내들이 대부분 전업주부였을 테니까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거 같고요. 아, 참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이성애 커플을 모델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까 이것도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무려 레닌의 전기라니! ㅋㅋㅋㅋㅋㅋ 말만 들어도 재미없을 거 같아요. 이 책은 저자의 일대기를 다루지 않고 정체성 깨달은 10대부터 시작해서고 방황하던 청년기에서 끝나서 좋았어요. ㅋㅋ

독서괭 2026-03-1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우 흥미롭군요. 미성년자 시절 성착취 넘 안타깝고요 ㅠㅠ 의대에서 수련하는 내용 얼마나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성차별 어마어마하게 당했을 것 같습니다..
연애 얘기도 흥미롭네요. 내가 주창하던 폴리아모리, 당해보니 이건 아닌 듯! ㅋㅋ 사랑이란 끌림이란 뭘까요.. 참

잠자냥 2026-03-13 09:54   좋아요 1 | URL
그래도 꽤 많은 비중이 나옵니다. 2부 의대에서 / 3부 의사 이 장이 특히 그렇고요.
연애 이야기 재밌어요. 특히 이성애자(라고 계속 주장하는) ‘질리언‘하고 밀당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우 이 여자가 너무 이랬다저랬다 대환장..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3-15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장기적 연애에 돌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함께하고 싶은 그 여자‘가 아니기 때문인거라고 이 글을 읽으니 생각하게 되네요. 저는 연인으로는 영 꽝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상대들이 저를 못견뎌한다, 가 아니라, 그래서 내가 애초에 걍 안한다.. 쪽이 되어버리는...

‘인간의 생에는 한두 번 쯤은, 운이 좋으면 몇 번쯤은 꼭 도움이 되는 만남이 있다.‘ 에 동의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들이 시절 인연이라 한때 만나고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은, 그런 인연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잠자냥 2026-03-15 21:1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일단 다락방은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중요한 줄 아뢰오~ 근데 그게 잘 맞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것입니다! 느슨하면서도 깊은 그런 관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