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이 이야기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뿌리 없이 중생’들의 상처로 얼룩진 삶을 좇으면서 인간은 측정 가능한 존재인가? 인간의 거죽은 영혼과 연결돼 있는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MW의 건조하고 경멸감마저 느껴지던 보고서가 막판에 달라지는 것을 보면 울컥함과 동시에 ‘가시성은 하나의 멍에’라는 말이 더 크게 와닿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5-12-24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에게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무슨 행동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파울리 부인에게 대니는 대니일 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다른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그게 문제라고 부인은 덧붙였다. -<어느 아이 이야기>
 
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소설은 첫 문장만 읽고도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존 밴빌의 <오래된 빛>이 그랬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Billy Gray was my best friend and I fell in love with his mother.’ 이 도발적인 첫 문장만으로도 오호라? 싶은데 그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은 더욱 흥미롭다. 잇따라 좋은 문장들의 향연이 펼쳐지기에 알 수 없는 흥분에 싸인다. 이건 정말 틀림없이 대단한 작품이겠구나 싶은 그런 예감이 고개를 든다. <오래된 빛>의 첫 페이지가 나에게 선사한 느낌이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말하기는 쉽다. 말 자체는 수치를 모르고 절대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은, 어디 보자, 여든셋, 여든넷이려나? 그 정도는 고령도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면 어찌될까? 그건 탐구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더. 우리는, (존 밴빌, <오래된 빛>, p.13) 


열다섯 소년과 서른다섯 성인의 사랑.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와의 사랑. 이런 소재라면 거부감이 먼저 들 수 있다. 성인과 미성년자의 사랑이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느냐고, 심지어 친구의 어머니, 미시즈 그레이는 유부녀이다. 남편, 그러니까 빌리의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다. 빌리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도 아닌 것이다. 성인이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는 사랑이라고 윤색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다. 그런 이야기 중 으뜸으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있다. 밴빌의 <오래된 빛>의 시작 부분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떠오른다. 헌데 나는 <롤리타> 또한 전체적인 감상평은 ‘아름답다’로 남겼다. 그 작품 또한 첫 문장이 강렬하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문학동네, 2013, p.17) <롤리타>는 <오래된 빛>의 소년과 성인 여성의 그것처럼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적절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작품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년이라는 기필코 지나가 버릴 세계, 지나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세계, 열망하지만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세계, 이미 잃어버린 세계, 영원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끝없는 열망, 동경… 이런 것들이 한 편의 시(詩)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체가, 문장이, 표현이 아름다우면 그 내용이, 소재가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묘사하는 것, 그것을 찬양하거나 옹호함으로써 그 세계를 동조하는 것은 하는가? 이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런 세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술, 특히 문학을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 특히 그러한 잣대를 가장 큰 기준으로 삼고 판단하는 것을 반대한다. 얼마 전 읽은 제임스 우드 또한 그렇게 말한다.   



소설은 수집할 수 없는 데이터에 대한 멈추지 않는 실험이다. 내가 소설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텍스트와 근접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소설에서의 진실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이고 그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렸다. 우리는 믿으라는 요청을 받지만 언제라도 그 요청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다. (...) 소설에서의 믿음은 언제나 ‘마치.....인 것처럼’의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은유적 믿음이며 실제 믿음과 유사할 뿐이다. (제임스 우드,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p.45)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다. 소설의 세속적 충동은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것이며, 소설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이라는 주식을 거래하는 위대한 상인이다. (같은 책, p.50)


그렇다. 내가 소설을 사랑하는 까닭은 문학은 종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결국 한없이 많은 자유가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탐하는 것은 죄이다. 미시즈 그레이가 앨릭스를, 또는 앨릭스가 친구의 어머니를 욕망하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윤리에 어긋나며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한 죄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기에 자신이 저지르는 마음속의 죄를 알고 번민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속죄한다. 여러 번 그 죄를 그치기를, 죄로부터 멀어지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들의 갈등과 번뇌에 동조하다가도 실패하고 마는 그 순간 안타까워하거나 함께 절망하거나 또는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그들의 죄지음에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제임스 우드의 저 말처럼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소설의 세속적 충동’을 목도하면서 우리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삶도 반추하는 것이라.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당신의 삶을 내가 어떻게 그 종교적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것들. 

그렇게 나는 열다섯 소년 앨릭스와 서른다섯 유부녀 미시즈 그레이의 삶으로 들어간다. 사춘기 소년에게 어떻게 친구의 엄마가, 서른다섯의 여자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저 나이의 내게 서른이 넘은 어른들은 늙음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 나이가 되도록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한 존재. 앨릭스 또한 미시즈 그레이를 처음 봤던 때를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들은 우리가 그다지 눈여겨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제들은 달랐다. 누이들까지도. 하지만 어머니들은 아니었다. 모호하고 형체 없고 성별 없는 어머니들은 앞치마와 약간 삐져나온 헝클어진 머리, 희미하지만 똑 쏘는 땀 냄새에 불과했다. 그들은 늘 배경에서 희미한 정체로 빵 굽는 그릇이나 양말을 들고 무슨 일을 하느라 바빴다. 미시즈 그레이를 특별히, 분명하게 의식하기 전에도 나는 틀림없이 그녀 근처에 수도 없이 있었을 것이다.’ (p.26)

그런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까 자전거를 탄 여자가 그녀가 아니었다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앨릭스는 열다섯 이전, 열 살인가 열한 살 즈음에 우연히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성당에 가는 여인을 목격한다. 성당 앞 마당가에 다다른 자전거. 4월의 어느 봄날, 봄바람에 자전거 탄 여인의 치마가 허리까지 훌렁 올라간다. 그 광경을 줄곧 지켜본 어린 소년, 앨릭스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망설임도 없이,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입술을 알파벳 ‘O자’로 만들면서 경쾌하게 웃고 지나간다. 이 강렬한 기억…. 수년 후, 빌리의 집에서 느림보 빌리를 기다리다 미시즈 그레이를 마주치게 된 앨릭스는 미시즈 그레이가 바로 그때 그 여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기억은 불확실하다. 앨릭스는 자전거 탄 여자가 미시즈 그레이인지 아닌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단지 그때의 그 강렬한 인상의 여인이 미시즈 그레이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첫 사랑의, 소년의 첫 사랑의 신화가 신화로서 탄생해, 오롯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림보 친구 때문에 등굣길이면 늘 빌리의 집에서 기다리는 처지가 되는 앨릭스. 앨릭스에게 빌리의 이 느림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날 또한 빌리를 기다리다 우연히! 앨릭스는  방문이 조금 열린 빌리 부모의 침실 안 부부욕실에서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목격한다. 일은 그렇게 벌어지게 예정된 것이었을까? 이때부터 앨릭스는 거침없이, 완벽하게 그레이 여사, 친구의 엄마, 빌리의 엄마, 미시즈 그레이를 욕망하게 된다. 아니 그런데, 뭐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한번 흘낏 봤다고 사랑에 빠진다고? 당신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앨릭스, 아니 밴빌은 이렇게 쓴다. ‘만일 당신이 코웃음을 치며 그래 봐야 벌거벗은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리다는 것, 경험을 갈망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갈망한다는 게 무엇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p.55)

그렇게 해서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는 몇 번의 마주침과 우연한 순간들이 부딪쳐 가까워지게 되고 빌리와 빌리의 여동생, 아버지가 모두 집을 비운 그날 그 집에서 마침내 정사를 나누게 된다. 이런 일이 한 번에 그쳤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리라. 해프닝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여름 내내 이어진다. 앨릭스가 숲속의 한 폐가, 그들이 ‘코터의 집’이라고 부른 그 장소를 발견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때로는 빌리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운 그곳에서, 또 때로는 미시즈 그레이가 몰고 온 차 안에서 또 때로는 코터의 집에서 등등으로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은, 욕망은 불꽃을 피운다. 이 두 사람의 일탈은, 이웃끼리 너무나 잘 알고 지내는 이 작은 마을에서 계속 비밀리에 유지될 수 있을까? 아직 미성숙한 앨릭스는 앨릭스대로, 그런 앨릭스를 번번이 유혹하고 그 욕망에 굴복하고 마는 서른다섯의 성인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대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위험한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들의 금기와도 같은 사랑을 지켜보면서 그 세속적 충동을 목격하면서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기쁨 또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오래된 빛>에는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앞서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화자인 나(앨릭스)는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로 퇴물 연극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한 영화제작사가 주연 배우로 출연해줄 것을 의뢰해오면서 앨릭스의 현재의 삶과 과거, 소년 시절 그 오래된 기억 속의 일들이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그 모든 관계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은 그들 각자의 관계에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점이다. 소년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가 그러했고 앨릭스의 딸 ‘캐스’와 딸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악셀 판더’와의 나이 차이도 그러하며, 하필이면 딸의 연인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해체주의 비평가 ‘악셀 판더’ 전기 영화를 찍기로 결정한 앨릭스 앞에 나타나는 또 다른 주연 여배우 ‘돈 데번포트’의 나이 차이 또한 그러하다. 그 각각의 관계는 사랑이기도 하고 이해(理解)이기도 하고 추앙이기도 하며 또 때로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마다의 상실이 존재한다. 꽃피는 생이 있으면 시들어 가는 인생도 있으며, 이미 저물어 버린 생도 있다. 찬란한 여름이 가고 쓸쓸한 가을이 오듯 모두가 언젠가는 “이제 집에 가야 할”(p.321) 때가 온다. ‘방황하는 아이’들 모두가 그러하다. 소년은 그렇다 쳐도 미시즈 그레이는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 앨릭스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쯤, 그 비밀이 밝혀져 한층 더 처연하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은 ‘한 해가 찬란한 절정에 오른 그때 이미 이울 채비를 하고’ 있었구나....


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끝나지 않는 저녁과 하얀 밤의 시간이었다. 소년으로 존재하며 세상의 그런 날씨 속에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알아보지 못했던, 또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한 해가 찬란한 절정에 오른 그때 이미 이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시간과 시간의 사라짐을 제대로 보았다면 아마 나의 심장을 가시처럼 찔러대는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시야에 끝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끝이 없었고, 여름의 슬픔은 무르익어 빛나는 사랑이라는 사과의 뺨에 번지는 희미한 혈색, 흐릿한 거미집 그늘에 불과했다. (p.161)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5-12-2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직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도 아내가 친구의 어머니였으며 24세 연상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될 듯하네요.
처음 만났을 때, 산들바람 부는 언덕에서 자전거 타고 오며 약간의 실례를 멋지게 넘기는 그런 여성을 사춘기 남자애가 자기 마음 속에 한 그림으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건 찐따지요. 안 그래요? ㅎㅎㅎ

잠자냥 2025-12-24 09:42   좋아요 0 | URL
마크롱은 그렇다 치고... ㅋㅋㅋ 국내에서 최근 문제되고 있는 사건 아시죠? ㅋㅋㅋ 류중일 감독 전 며느리인가 뭐 그 사람하고 제자하고... 아휴. 뉴스에 그만 보도되면 좋겠어요! 문학도 아닌데 너무 자세히 묘사되니까 드럽.....네유 ㅋㅋㅋㅋㅋㅋㅋ

자전거 탄 여인의 그 경쾌한 태도는 어떤 어린이가 봐도 유쾌하고 강렬한 기억이었을 거 같아요. 어른이 그렇게 대범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5-12-2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끝나지 않는 저녁과 하얀 밤의 시간이었다. ‘, ‘하지만 나는 어렸고 시야에 끝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끝이 없었고, 여름의 슬픔은 무르익어 빛나는 사랑이라는 사과의 뺨에 번지는 희미한 혈색, 흐릿한 거미집 그늘에 불과했다.‘

와- 문장 진짜 끝내주네요!!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하고 있는것 같아요!!


저는 문학에서 범죄를 소재로 다룬다고 해서 그것이 안된다거나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자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되어 그 경험과 생각을 대신해볼 수도 있을테지요. 다만, 그런 소재를 삼아서 하는 이야기가 그것을 ‘조장‘하는거라면, 그건 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저에게 소녀와의 사랑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아동대상 성범죄가 소재이지만, 책속에서 험버트는 충분히 알고 있었고, 나보코프 역시 계속해서 언급하잖아요. 롤리타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 롤리타의 뻗어나갈 미래를 성인 남자가 좌절시킨 것이라는 것을요.

일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이, 이야기를 꼬고 또 꼬아서 성인 남자와 어린 아이를 사랑하게 해놨는데, 거기엔 이런 사연이 숨어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막을 건 아니라고 하는 걸로 읽혀서 굉장히 불쾌했어요. 그러니까 소재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것들은 충분히 문학이 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걸 소재삼아 무슨 말을 하려는가는, 비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5-12-24 09:5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진짜 문장이 장난 아닙니다. 제가 오죽하면 원서 찾아서 미리보기로 원문을 읽어봤겠어요. 근데 번역도 잘한 것 같습니다. 다락방 님 이 책 사두신 거 같은데 한국 오면 바로 읽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문학이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건 제한이 없는 것 같아요. 부친살해(<카라마조프>)도 다루는 마당에 뭐가 금기이겠습니까! 다만 독자가 그걸 제대로 해석하거나 받아들일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최근에 뭐죠? 엡스타인 사진이 추가로 공개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사진 속 여성들 신체에 <롤리타>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기사 보고 참....... 문학을 좃또 모르는 인간들이 어디서 주워듣고 이딴 식으로 써먹는다 싶어서 정말~~~~~ 불쾌하고 한심했습니다. 에효.

잠자냥 2025-12-24 09:55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따로 적어둔 문장 하나 더 맛보기로 던져줄게요. 이 작품은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으르릉! 하는 작품입니다.


내가 평생 사랑했던 아우라 넘치는 모든 여자는, 지금 나는 사랑했다는 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나에게 자신의 자국을 남겼다. 옛 창조의 신들이 진흙을 빚어 우리를 만들었을 때 인간의 관자놀이에 엄지 지문을 남겼다고 하는 것처럼. 바로 그렇게 나는 내 기억의 밑면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 나의 여자들-그들 모두를 여전히 내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각각의 특정한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거리의 분주한 군중 사이에서 밀 색깔의 머리카락으로 덮인 머리가 멀어져가는 모습, 혹은 위로 올라간 늘씬한 손이 특정한 방식으로 흔들리며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이 흘끗 눈에 띄곤 한다. 호텔 로비의 맞은편에서 짧은 웃음소리 한 토막 또는 귀에 익은 따뜻한 억양으로 말하는 단어 딱 한 마디가 들리곤 한다. 이런저런 것을 만나는 순간 그녀는 그곳에 있다. 생생하게, 덧없이. 그러면 나의 심장은 늙은 개처럼 기어올라와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pp.147~148)

다락방 2025-12-24 11:49   좋아요 1 | URL
네, 롤리타를 읽은 많은 남자 평론가들과 독자들이 험버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서, 나보코프가 독자의 수준을 모르는채로 글을 쓴 것이 죄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엉망이면 .. 하- 너무 짜증나네요.

주신 문장에서도 특히 마지막, ‘이런저런 것을 만나는 순간 그녀는 그곳에 있다. 생생하게, 덧없이. 그러면 나의 심장은 늙은 개처럼 기어올라와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가 진짜 너무 좋네요.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크-

페넬로페 2025-12-23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읽고 있는데 존 밴빌의 문장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잠자냥 2025-12-24 09:54   좋아요 1 | URL
오! 읽고 계시는군요! 정말 아름다운 문장의 향연입니다. 마음껏 즐기세요!

망고 2025-12-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즈 그레이는 대체 왜 그런건데요? 읽어봐야 알겠죠 저는 성인 여성이 어린애한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게 문학 작품 속에서라도 이런 소재가 나오면 정말 모르겠어요ㅠㅠ 하지만 내가 모르겠다고 해서 이런 소재가 소설에 쓰지 말란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그 안에도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테니까 작가가 의도한바가 있겠죠
문장이 참 아름다운 소설인 듯 합니다
별 다섯개라 솔깃하지만 올해 이런 소재는 이제 그만 읽기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12-24 09:54   좋아요 1 | URL
망고 님, 이 책은 몇 년 후에라도 꼭 읽어보세요. <레슨>의 여파가 가신 후...? ㅋㅋㅋㅋ 이 작품이 좀 거시기하다면 존 밴빌 <바다> 도전! 망고 님 영미문학 좋아하시니까 틀림없이 존 밴빌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예 원서로 도전은 어떠신지? <바다>는 일단 제가 읽어볼게요(한국어 번역본으로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12-24 12:28   좋아요 1 | URL
저 찾아보니까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이게 ˝바다˝ 로군요 저 읽었는데 기억 하나도 안 나고 별도 두개 줬네요ㅋㅋㅋㅋ

잠자냥 2025-12-24 13:20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 🤣🤣🤣

망고 2025-12-24 14:21   좋아요 0 | URL
책이 어디있더라📚 뒤적뒤적
 
사랑의 한 페이지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2
에밀 졸라 지음, 이미혜 옮김 / 빛소굴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신의 냄새’를 알아차리는 존재가 노파와 아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졸라는 가난으로 추악해지는 인간(페튀 할멈)의 흉측한 모습과 질병에 시달리는 인간(잔)의 병적인 심리 묘사엔 대가인 듯. ‘신기할 것도 욕망도 없는 길’만이 남아 있는 엘렌의 삶이 참 쓸쓸하다. 마지막의 그 선택도 답답...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5-12-2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표지가 참 예뻐요. 에밀 졸라라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5-12-22 15:13   좋아요 0 | URL
표지 잘 만든 거 같아요. 전자책으로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자책] 보존지구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시킨 보존지구의 관광가이드로 나선 20년째 무명작가의 웃프고 애잔한 삶. 확실히 도블라토프는 러시아 작가 중에선 결이 다르긴 하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슬픈 소설이라는데 난 왜 낄낄&큭큭& 피식거리게 되는지? 인생살이의 웃기고도 슬픈 면을 이렇게 잘 포착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12-2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결을 나도 느끼고 싶군요. 다른 결이 있긴 있는 거지요? ㅎㅎ

잠자냥 2025-12-20 17:35   좋아요 0 | URL
네! 도블라토프는 심드렁 유머가 일품입니다!

Falstaff 2025-12-2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표지가 완역이었군요. ㅎㅎㅎ 저는 축약본 표지인 거 같아서 그동안 무조건 패스 했었는데 말입죠.

잠자냥 2025-12-20 17:36   좋아요 0 | URL
네 완역입니다. ‘천줄읽기’라고 되어 있는 게 축약본이더라고요.

다락방 2025-12-2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이 책은 언제 읽은 거에요? 잠자냥, 몸이 두 개인걸로 밝혀져 충격!!

잠자냥 2025-12-20 17:36   좋아요 0 | URL
안 알랴줌! 🤣
자면서 읽음 🤣🤣🤣

페넬로페 2025-12-2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출판사 홍보대사 이신가요?

잠자냥 2025-12-20 1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다른 출판사에서 안 나오는 책들 찾아 읽다보니…😹
 
검은 말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0
보리스 사빈코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빛소굴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녹색군, 적군, 백군, 우리는 모두 ‘깃털’이 아닐까?’ 올가도 그루샤도 그에겐 과연 무엇이었나. 멀리 있을 때만 그 존재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유리 니콜라예비치(조지)- 결국 이상만 좇는 깃털은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이념도 사랑도 혁명도 죽음 앞에서는 허무하고 덧없기 짝이 없구나....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5-12-1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전자책 작가 소개(맨 앞)에 ‘보리스 사빈스키‘라고 되어 있음....😹

망고 2025-12-19 13:03   좋아요 0 | URL
코프가 아니고 스키? 스키가 더 친숙하긴 하지만...😸

잠자냥 2025-12-19 14:11   좋아요 1 | URL
이눔! 망고스키!🤣

망고 2025-12-19 14:19   좋아요 1 | URL
⠀⠀|\    /|
⠀⠀| ヽー-く⠀ |
⠀⠀|      |
⠀⠀|  Ò  Ó |
⠀⠀ ヽ˝  ^  ノ
⠀⠀ /⠀⠀⠀⠀⠀⠀⠀

잠자냥 2025-12-19 14:41   좋아요 1 | URL
/ᐠ_ ꞈ _ᐟɴʏᴀ~

Falstaff 2025-12-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빈코프, 이 인간도 결국 권력추종형 속물일 뿐이어서 작품은 별개로 참 실망이었습니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것이지만요.

잠자냥 2025-12-19 15:53   좋아요 0 | URL
아나키스트가 권력추종자라니 참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