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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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 또는 노스탤지어. 아름답고 눈물 난다. 어둠에서 별을 꿈꾸듯 부조리한 러시아에서 샤를로트(할머니)라는 중립지대를 통해 사랑과 자유의 프랑스를 꿈꾼 소년의 성장담이자 외롭고 높고 쓸쓸한 할머니의 생 이야기. 작가가 참 낭만적이다. 나에게 ‘그 문체’를 알려준 마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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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27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찾아내야 하는 건 일화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책장 위에 멋지게 배열된 단어들 역시 내가 찾아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하고, 동시에 훨씬 더 자연스러운 그 무엇, 그러니까 일단 시인에 의해 계시되면 영원불멸한 것이 되는 가시적 세계 내의 심원한 조화였다. 그 뒤로 내가 이 책 저 책 읽으며 찾아다녔던 것은 바로 이것,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의 이름이 바로 ‘문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프랑스 유언>, p,178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완전함을 찾아서
요헨 쾰러 지음, 김새날 옮김 / 마르코폴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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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손을 지배한다’의 증명 미켈란젤리. 요즘 더욱 꽂혀서 즐겨 듣는 그의 음악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읽음. 제자는 물론 음반 프로듀서 등 그 주변의 다양한 인물을 만나 미켈란젤리의 초상을 그려나간 점이 좋았다. ‘피아노를 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라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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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위대한 신 브라운 /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날개가 있네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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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능력이 없어서/사랑해선 안 될 대상을 사랑해서 파멸. 강렬한 전개 비극적 정서의 지배 처연한 마무리... 유진의 전매특허를 맛봄. ‘가면‘으로 정체성과 이중 심리를 탐구한 <위대한 신...>, 흑백결혼으로 인종문제를 폭로한 <하나님의 자녀들...> 두 작품 다 굉장히 밀도 높다. 역시 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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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나 B.로 불린 에르퀼린 바르뱅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외 옮김 / 앨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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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성(性)이란 우리에게 꼭 필요한가? 성에 얽매이지 않았을 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던 바르뱅, 그의 생이 강요된 성의 진실에 무릎 꿇는 순간부터 어떻게 망가뜨려지는지 목도하노라면 푸코의 이 질문은 책을 읽는 내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의 글 자체는 몹시 적지만 의미 있는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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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23 10: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르뱅의 삶을 통해 푸코가 도달하는 결론은, 동성애 운동이나 퀴어운동이 기존의 정체성 정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이 하나의 진실로 고정되는 순간 삶의 가능성이 어떻게 폐쇄되는지를 목격한 그는, 동성애를 억압된 본질, 해방해야 할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분명한 거리를 둔다.
푸코에게 문제는 “누가 동성애자인가”가 아니라 성이 어떻게 삶을 조직하도록 강제하는가이다. (...) 푸코가 제안하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다. 그는 “동성애를 통해 어떤 관계를 만들 수 있는가, 어떤 관계를 발명하고 다양화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동성애는 밝혀야 할 정체성이 아니라, 관계의 형식을 실험할 수 있는 하나의 위치이다. (...)
푸코에게 동성애는 하나의 욕망 유형이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관계 질서 바깥에서 다른 양식의 삶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계기이며, 무엇을 욕망하는가보다 어떤 관계를 욕망하게 되는가를 묻게 하는 위치다. 성은 내면의 진실로 해석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배치를 다르게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의 매개로 전환된다. (pp.51~52)
 
시골 소녀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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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쓰레기장’을 벗어나 여기저기 다니며 진짜 삶을 갈망한 시골소녀들. 헌데 더블린은 그들에게 더 축축한 쓰레기장은 아닐까. 미성년 소녀와 성인(유부남)의 사랑을 어찌봐야 하나 난감한데 문장 만큼은 진짜 기막히다. 외설시비로 금서였다는데 그 장면 때문이라고? 아일랜드도 참 답답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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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3-24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답한 그 지점이 궁금하군요 🤔

잠자냥 2026-03-25 09:3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 책 폴스타프 님 리뷰가 있는데요, 거기 구구절절 써 있기는한데, 제가 느낀 지점하고 똑같은 부분이라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폴스타프 님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도대체 어떤 장면인데 그러냐고? (중략....)

그러면 어느 수준의 성적 묘사인데 그리 수모를 당하고, 엄마가 평생 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중략....)


어느 정도 묘사인지 빨리 말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둘은, 둘만 하숙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마주보고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은 정말로 할 거야, 하고 말 거야. 이러다가 드모리에 씨가 도티의 전신 나신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홀랑 벗었고, 도티 역시 나도 보고 싶어요, 요 지랄을 해 드모리에의 늙은 몸도 홀랑 벗었더니, 역시 당신 생각대로 그냥 흐물흐물 한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도티가 만져보니까 몽글몽글한 게 귀여웠더라, 뭐 이런 수준이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 그걸 지칭하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다. 저 장면입니다. (저 둘의 관계는 미성년 소녀와 40대 유부남- 물론 미성년자...이긴 하지만 저 장면을 연출할 때는 성년으로 막 진입한 때이긴 합니다. 그리고 작품이 쓰인 시대가 1960년대 아일랜드라는 점을 감안하십쇼.)

건수하 2026-03-30 10:47   좋아요 1 | URL
40대와 늙은이라는 형용사가 마음에 걸립니다 (...)

미성년에 비하면 당연하지만
요즘 60은 청춘이라는 말 너무 많이 들었나봐요

(제가 40대라서 그런 것 아님)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