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로모프 1 대산세계문학총서 10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지음, 최윤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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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도 너무 많기에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가끔 그런 책들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읽은 이반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도 그런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시 읽어도 재미나고 웃겼다(특히 자하르와의 티격태격). 재독의 장점은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것이랄까. 물론 이게 단점이 될 때도 있다. 예컨대 10대 시절 푹 빠져 읽었던 헤세의 작품들을 성인이 되어 다시 읽으니 견디기 힘든 점들이 마구 보이는 것이나,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20대가 아닌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읽으니 중2병에 오그라들 것 같았던 것이나 등등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오블로모프>는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다시 읽어도 명작은 명작이구나 싶은. 이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덜 읽힐까 싶은 안타까움도 들고 그렇다. 1859년에 이 책이 간행되었을 때 러시아 문단에서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톨스토이는 진정 위대한 작품이라고 치켜세운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혐오스러운 작품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나는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오블로모프>에 대해서라면 톨스토이와 의견이 같다. 세상에나, 내가 톨스토이랑 의견이 일치할 때가 있다니! 아무튼 <오블로모프>는 명작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내가 백수였다. 백수가 되기 전에 몸담았던 직업에 진력이 나서, 넌더리가 나서 몸서리를 칠 때였다. 시기적절. 그래서 그때, 이 책은 더 진하게 와 닿았던 것이리라. 오블로모프, 그러니까 일리야 일리치 오블로모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의 전형이다.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스스로 무엇 하나 할 수 없게, 아니 하지 못하게 키워졌다. 양말이나 신발조차 하인이 신겨줘야 한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대개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러시아 지주의 무능함, 또는 러시아의 무능력한, 마비된 정신을 비판하는 작품이라 평가받는다(투르게네프의 <루진>,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이 다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오블로모프 계열의 작품에 속한다),

 

<오블로모프>는 실내복을 입고 누워있는 오블로모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작품이 끝나갈 무렵에도 이 인간이 다 떨어진 낡은 실내복에 감싸여 침대에 누워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게을러도 이렇게 게으를 수가 없다, 저렇게 살다간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굶어죽기 딱이다 싶어진다. 그런데 어떻게 이 게으름뱅이가 1(478), 2(369) 장장 800쪽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이야기의 진전이 있기는 있나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야기는 흘러간다. 나처럼 심심한 스토리에도 빠질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자못 그의 일생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게으름뱅이가 무려 연애도 한다는 것. 아니 게다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한 여자만 후리는 게 아니다. 내가 이번에 재독하면서 놀란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게으름뱅이가 두 여자나 후린다는 것을 어떻게 잊고 있었던가?! .....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읽었을 땐 이 인간의 게으름, 무한 나태에 놀라고 제 주인의 그런 꼴을 깐죽대는 자하르의 입담에 웃느라 나머지 존재들은 희미하게 기억하고 말았는가 보다. 물론 오블로모프의 절친 슈톨츠나 이 인간의 마음을 빼앗는 여인 올가의 존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 여자, 여주인이자, 하녀인 그녀 아가피야의 존재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이 부분, 오블로모프의 사랑이랄까 러브스토리가 좀 색다르게 다가왔다.

 

처음 읽을 때도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오블로모프가 올가를 결국 떠나보내고 마는 장면이었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변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상대는 물론 나의 단점도 극복해보고 싶고 바꿔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지극한 사랑이나 애정이 아니라면 인간이 스스로 변화를 꾀하기란 쉽지 않다. 오블로모프 또한 한때 그렇게 되고자 애쓰기는 한다. 여기서 잠깐 소개하자면 올가는 오블로모프의 친구 슈톨츠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로 슈톨츠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오블로모프가 걱정이 된 나머지 그를 좀 잘 감시(?)해달라고 부탁하는 인물이다. ‘일리야가 제발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수시로 산책도 같이 해주고 책도 읽게 이끌어주고 아무튼 방 안에 누워만 있지 않게 잘 좀 부탁한다고 맡기고 떠나는 여성이다.

 

대부분의 여성에게 오블로모프는 딱히 매력적인 이성은 아닐 것이다. 곤차로프의 펜으로 그려진 오블로모프의 외모는 그렇게까지 쳐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자들이 보기에 뭔가를 추진하는 힘이나 활동적인 면이나 야망이나 뭐 이런 건 하등 찾아볼 수도 없는, 남성적인 매력이라곤 1도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사교계의 초대를 받아도 얼굴을 내미는 일도 극히 드물 뿐만 아니라 어쩌다 나와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구석에 월 플라워 신세로 서서 과자조각이나 잔뜩 입에 처넣다가 들키고 마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올가는 어쩌다 이런 남자에게 반하는 것일까? 귀엽다고 느낀 것 같다. 과자를 잔뜩 입에 처넣은 그 모습이. 그런데 그 이전에 슈톨츠로부터 이 남자에 관해 이런저런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블로모프, 일리야 일리치만의 장점이라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아닐까. 한없이 선량한 존재. 그는 타인을 비방하는 법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그래서 사교계의 그 의미 없는 만남, 뒤에서는 서로 비방하기 바쁜 만남을 거북해한다). 종종 지성적으로도 빛난다. 단지 게을러서 그걸 꾸준히 추동하는 능력이 없을 뿐........ 게다가 예술적인 감수성도 충만하다. 그런 면을 알아본 게 올가 그녀이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실내복 차림으로 종일 침대에만 누워 지낼 수는 없는 법. 물론 그런 날도 있겠지만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만 사는가? 아니, 그럴 수도 있다. 두 사람이 뜻만 맞는다면. 대지주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자기 재산 관리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다 맡겨 놓고 재산이 어떻게 줄줄 새는지 점검조차 하지 않는다면 남의 배만 불리고 자기는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더욱이 한쪽은 평생 실내복 차림으로 집안에만, 방안에만, 침대에만 머물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가는 오블로모프를 사랑했음에도 평생 실내복 차림으로 침대에만 누워 지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와 결혼식도 치러야 하고 모임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이사도 가야 하고, 애도 낳아서 키워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오블로모프에게는 너무나 큰 장애물이다. 넘고 또 넘어도 넘을 수 없는 백두산 넘어 에베레스트산이다.

 

그러니까 오블로모프는 올가를 사랑해도 결국 자기의 그 단점(올가가 보기에는)을 극복하거나 바꿀 만큼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세든 집의 여주인이지만 나중에는 오블로모프의 하녀가 되기를 자청한 아가피야를 곁눈질로 흘끔흘끔 훔쳐보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예전에는 그런 장면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오블로모프가 올가와 사랑에 빠진 중에도 아가피야의 건강한 몸뚱아리나 일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탐스러운 팔꿈치를 바라보며(그러다 결국 한 번은 소심하게 만지기까지 한다!) 혼자 미소를 짓는 게 눈에 들어온다.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어라 굼벵이가 팔꿈치를 훔치네...?!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노라니 예전과 달리 이 게으름뱅이에게 좀 미운 감정이 든다. 주제에 한눈을 파네? 싶은. 한편으론 어쩌면 이 인간은 올가처럼 뭔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여성이 사랑해주는 것보다는, 그런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중이나 들어주면서 우쭈쭈해주는 유모 같은 여자, 그러니까 자기의 할머니, 어머니, 유모를 이을 여자, 이 셋 모두를 합친 존재인 엄마 같은 여자라면 누구라도 괜찮았던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사랑보다 누워있기, 변화보다 머물기, 그저 가만히 있기가 인생 모토인 인간. 그의 곁에 슈톨츠든 올가든, 아가피야든, 자하르든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밥은커녕 밥 떠먹을 숟가락조차 찾지 못해 굶어죽고 말 인간.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인간. 그가 바로 오블로모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아가피야랑 사랑...아니 섹스를 했단 말이다. 이게 난 참 이번에 진짜 놀라웠던 점인데....... 이 에너지 없는 인간이, 침대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인간이 어떻게 섹스를 한 것이란 말인가? 다들 알다시피 섹스도 엄청난 중노동이 아닌가? 길을 걷다 문득 이 장면을 상상해본 것이다. 이 굼벵이가 여자를 덮쳤다고...? 남성상위가 가능하...다고? 열정에 넘쳐서 끌어안았다고??? 아무리 상상을 해도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한 거여?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가피야가 덮친 게 아닐까.........? 여성상위?? 아니면 아가피야가 손으로 해주다가...... (그만 하자 이런 상상........) 아무튼 너무나 놀라운 반전이었다. 오블로모프, 너란 남자. 할 줄도 아네.

 

사랑에는 에너지가 꾸준히 필요하다. 오블로모프에겐 잠시 타오르는 열정, 열정에 빠진 척 연기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그걸 계속 추동할 의지도 여력도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나보다도 당신의 실내복이 당신에게 더욱 간절해지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떡하느냐고 울부짖던 올가의 예상이 104% 맞아떨어졌다. 헌데 그 사이에 신통방통하게도 애 만드는 신기는 발휘한 오블로모프여. 러시아의 잉여조차 이 세상에 제 씨앗은 놓고 가는구나.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번식욕이여.... 그리고 그 씨앗은 애비인 오블로모프보다는 양육자인 슈톨츠에 가까운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모두가 칭송하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슈톨츠. 이 인간은 도리어 참 무매력에 가깝다는 점에서 (곤차로프도 슈톨츠를 딱히 애정 어린 눈으로 묘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작품의 오묘한 묘미는 여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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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2-0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뱅이는 아니겠지만 백수 잠자냥도 두 명을 후리지 않았던가요... 의외의 공통점!

잠자냥 2026-02-02 17:30   좋아요 1 | URL
……😹😹😹
 
또 여기인가 GD 시리즈
사카모토 유지 지음, 이도희 그림, 이홍이 옮김 / 알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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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사2의 새로운 취미(?)는 텔레비전을 켜고 유튜브로 <세상에 이런 일이>, <현장르포 특종세상> 같은 철지난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 고양이 호더(Hoarder) 방송 위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방송에 나오는 ‘호더’의 대부분이 몹시 열악한 상황에서도 동물을 보호(수집/저장하는....수준)하는 사람들이라 그랬는지 어느덧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불안에서 비롯된 저장강박증이 있는 노숙인이나 산속에서 움막을 짓고 살거나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무인도에서 몇 년째 생활하는 사람들 위주로 추천을 해줬고, 이제 집사2는 아예 이런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나도 옆에 앉아서 몇 번 같이 봤는데, 나는 워낙 인간 혐오자인 데다가 이런 방송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시니컬한 말만 쏟아내기 일쑤였다. 이런 방송의 취지가 뭐야? 아무리 노숙자라 해도 남의 사생활 취재/보도하는 게 대체 뭘 위한 거야? 저렇게 살고 싶지 않을뿐더러-일단 너무 지저분해....능력도 안 되는데 동물 좀 그만 주워와! 집 청소 좀 하고 살아! 아니 왜 다들 저장강박이냐? 쓰레기 좀 그만 모아! 근데 저렇게 산속 깊이 또는 무인도에 들어가서 살 정도면 범죄자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등등 남의 감상 방해하는 말만 중얼거리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내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는 편인데 집사2는 이런 방송을 몇 시간이나 시청하더라. 그 심리가 궁금해서 그런 방송이 그렇게 재밌느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참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기도 하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런 사람들 돕는 일하면서 살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든다고 하더라.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 집사2가 크게 격노하는 지점은 다 죽을 것 같은 노인들이 혼자 방치되어 사는 장면을 볼 때이다. 자식들은, 가족들은 대체 뭐하기에 부모를 저렇게 내버려 두는가 싶어서 한숨을 내쉰다. 집사2가 이런 말을 하면 또 나는 반문한다. 근데 그럴 만한 일이 있으니까 자식이나 가족들도 버린 게 아닐까... 하면서 나는 우리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빠도 지금 우리하고 다 절연하고 사는데, 그 인간이 어떻게 살지... 저 지경으로 살지는 않아도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은 자식들은 뭐하기에 저렇게 애비를 내버려두느냐 뭐 그러겠지만 우리 아빤 그래도 싸다고 생각하는데...... 라고 말하면 집사2도 더 대꾸를 하지는 못한다. 

이런 프로그램에 자의든 타의든 출연하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다 보면 대개가 가족과 같은 가까운 이들로부터 상처받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은둔하거나 노숙인 생활을 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 기억 때문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은둔하기도 한다. 스스로 주는 형벌이랄까.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생 자체가 상처로구나 싶어진다. 태어남으로써 지구에 해를 끼치기 시작하고, 태어남으로써 타인에게 자의든 타의든 상처를 주고 또 그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 존재 자체가 상처투성이인 것이다. 

사카모토 유지의 <또 여기인가>에도 존재 자체가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품 배경은 일본 도쿄 외곽의 한 주유소, 이 주유소에 등장하는 인물은 고작 네 명뿐이다. 주유소 점주인 스물다섯의 지카스기, 그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다카라이(31세/여)- 여기에 손님인 듯 나타나는 네모리(42세/남)와 시메노(25세/여). 이 네 사람이 주유소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상처를 주고받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 희곡이기에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저마다의 상처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여름 저녁의 주유소, 점주인 지카스기와 아르바이트생 다카라이는 무료한 듯 서로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대화라기보다는 서로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불쑥 손님이 찾아든다. 중년의 남자 네모리와 지카스기 또래의 여자 시메노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인가 싶기도 한데 중년의 남자가 느닷없이 지카스기에게 폭탄을 던지듯이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카스기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배다른 형이라는 게 아닌가. 

이때부터 이 무료하기 짝이 없던 주유소에는 색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왜 아니겠는가, 난데없이 나타난 중년의 남자가 내가 네 이복형이다! 하는데. 게다가 형이라는 작자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더 혼란스럽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인간’(네모리는 아버지를 시종 ‘그 인간’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는데 아무래도 의료사고인 것 같다면서 지카스기에게 병원을 고소하자고 설득에 나선 것이다. 네모리와 동행한 여자 ‘시메노’는 그 병원의 간호사로, 네모리의 주장에 따르면 의료사고가 날 당시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그런데 지카스기의 반응이 좀 신기하다. 느닷없이 나타난 배다른 형 때문인지, 아버지의 의료사고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인지 그는 시종일관 다른 일에 주의를 빼앗기며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한다. 지카스기는 왜 그럴까? 아버지에게 일말의 애정도 없어 보이는 네모리는 왜 갑자기 나타나 의료소송을 하자는 것이며 시메노와 다카라이는 이 극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조금씩 궁금해진다.
 

시메노 : 네모리 씨 소설은 10대들한테 특히 인기가 있대요. 자극적인 설정에 잔혹한 묘사에 기분 나빠지는 결말이 특히 먹히나 봐요. 이 책도요. 열네 살짜리 여자애가 마지막에 자살하는 내용이에요. 자살해서, 구원받아요. (.....) 마에바시에서 열네 살짜리 여자애가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이랑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했어요. (....) 주인공이 숲속에서 목숨을 끊으면서 이런 말을 해요 깊은 숲속에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진다 해도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무는 쓰러지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래요. 아무도 모르게 죽으면 그건 죽는 게 아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죽음 속에 살고 있는 거다... 이런 걸, 이딴 아저씨가 쓴 시 나부랭이에 공감해서 마에바시에 살던 열네 살짜리 여자애가 죽었어요. 수색대가 시체를 찾았는데.
네모리 : 꼭 내가 죽였다는 듯이 말하네요.
시메노 : 그쪽이 쓴 소설을 읽고 죽었잖아요.
네모리 : 소설에서 비가 왔다 쳐요. 그걸 읽은 날, 비가 와서 빨래가 젖었어요. 그게 내 탓이에요? 내가 가서 빨래 걷어줘야 돼요? (pp.98~99)


스포일러가 될까 봐 줄거리를 다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몇몇 대사가 마음을 훔친다. 곰곰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가인 네모리는 지카스기처럼 주변에 관심이 없는 인물조차도 ‘책 만드는 사람’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그런데 현재의 그는 경제적으로도 쪼들리고 그러다 보니 이혼 위기에 놓인 중년의 가장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싶은데, 시메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작품을 읽고 작품 속 주인공을 모방해 한 소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럴 때 해당 작품을 쓴 작가는 어떤 심정일까? 네모리는 사건이 일어난 후 기자회견에서 부적절한 말을 한다. 자기의 진심이 어떻든 간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고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욕을 먹는 것으로도 부족해 연재하던 작품은 다 끊기고 그의 책도 전부 서점에서 퇴출당한다. 그리고 더는 소설 의뢰도 들어오지 않는다. 시메노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느냐고 따지는데, 네모리는 거기에도 여전히 부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이 인물 자체가 속마음이 어떻든 겉으로는 냉소 그 자체이다. 개인적 상처가 많아서일 것이다. 


지카스기 : 맨 처음 어렸을 때는 물감 물을 만들었어요. 푸딩 컵에 물 담고 물감 풀어서. 여러 색으로 물감 물을 만들어서 나란히 세워놓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보고 있으면 마시고 싶어졌어요.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제일 맛있었던 건 노란색이에요. 그리고 하늘색, 그다음이 보라색. (........) 평범한 사람은 자기가 무서워질 때 어떻게 해요? 전철역 계단에서 유모차 보면 무섭지 않아요? 슈퍼에서 물건들 쌓인 거보면 무섭지 않아요? 주유소 무섭지 않아요? 오늘 차 타고 오는데, 어린애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거예요. 물감 물이 마시고 싶었어요. 브레이크 안 밟고 이대로 쭉 가면 쾅 부딪히겠다, 싶어서. (pp.177~178)


냉소적인 형과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할 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어딘가 어긋난 것 같은 동생. 이 두 형제에게는 어떤 상처가 있기에 이런 것일까? 지카스기는 물감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코 마시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오래된 건미역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도 기어이 먹고 탈이 난다.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결국 그걸 하고 마는, 어떤 면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사카모토 유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로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다.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너나할 것 없이 저마다의 상처와 기억을 안고 각자 주어진 삶 안에서 고군분투하듯이 살아간다. 각자의 시점이나 생각으로 인해 똑같은 상황도 달리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그러다 보니 오해가 쌓인다. 이 작품에서도 네모리는 네모리 대로, 지카스기는 또 그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고 살아갈수록 인생은 더 버거워지는 것만 같다. 게다가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네 사람 모두 인간으로서 완벽하지도 않다. 네모리의 말처럼 다들 “공장에서 나오는 하자품” 같은 존재들로 “인간이니까 그냥저냥 살기는 하는데, 북오프에 팔러 가져가면 퇴짜 맞고 다시 가져와야 하는”(p.144), 그런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다시 제자리라서 “또 아아, 여기인가? 맨날 여기야.” 한탄을 할지라도, “웃기지 말라 그래, 인간이 마음 따위에 질 거 같아?”(p.185) 으름장을 놓으며 삶과 일대격투를 벌일 듯 싸우다가도 결국 번번이 패배하고 만다. 그래서 무너져 버리게 되는데도 그래도 살아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오해로 파묻힌 더미에서도 진실이 반짝이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상처투성이인 ‘너’, ‘당신’이 안쓰러워 어쩐지 끌어안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안쓰러움, 연약함을 끌어안고 보듬어주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처투성이 노숙인들의 삶을 지켜보다가 일말의 숨겨진 진실 같은 게 드러났을 때 아아, 하면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인간을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것은, 퍽퍽해도 버티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연민과 이해의 순간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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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1-1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만 보고 코믹한 책인가 했는데 진지한 내용이었네요😭 무서우면 물감물을 먹다니 무슨 심리일까요...차라리 색색깔 음료수를 마시지...ㅠㅠ

잠자냥 2026-01-14 11:19   좋아요 0 | URL
코믹한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아뢰오~ ㅋㅋ

다락방 2026-01-12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냥 님의 이 리뷰를 아주 즐거이 읽기는 했지만, 만약 제가 이 책을 읽는다면 잠자냥 님처럼 별다섯을 주는 그런 감상을 받았을까, 라고 생각하면 아닐 것 같아요. 가끔 잠자냥 님의 글을 읽다보면, 잠자냥 님은 스스로를 비관적이라고 표현하시고 또 냉소적인듯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시도하는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리뷰는 어쩐지 잠자냥 님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츤데레.....

독서괭 2026-01-14 09:33   좋아요 0 | URL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을 뿐이고 제가 느끼기에도 잠자냥님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있는 것 같아요. 이해를 깊이 하려다 보니 더 기대치가 낮아지는 것 같긴 합니다만..ㅜㅜ 괜찮아, 고양이가 위로해주니까! ㅎㅎ

잠자냥 2026-01-14 11:22   좋아요 1 | URL
독서괭/ 느끼지 마!! ㅋㅋㅋㅋㅋ
다락방/ 다락방 님이 읽으면 별 넷??

호시우행 2026-01-1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타인의 불행이나 사망을 이용해 돈벌이 내지는 득을 보려는 행동을 하려는 자를 나는 경멸합니다.

잠자냥 2026-01-14 11:24   좋아요 0 | URL
저런 프로그램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촬영 대상이 되는 분들은 처음에는 다들 자기 찍지 말라고 완강히 거부하는데... 그래도 막 설득해서 찍고 그러는 게 도대체 뭘 위한 것인가... 싶더라고요. 뭐 건강 상태 체크해주고, 가족들 연락해보고 이러는데 사실 절연하고 사는 가족 입장에서는 그것도 안 반가울 것 같거든요(제가 본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아들이 제작진에서 전화하니까 번호 바로 바꿨더라고요....... 허허허. 그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독서괭 2026-01-1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카스기는 자기파괴적인 사람인가요? 무섭다고 느낄때, 피하거나 막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파괴를 하려는 것인가..
혼자 방치된 노인이 무조건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게 공감이 되네요. 에휴..

잠자냥 2026-01-14 11:26   좋아요 1 | URL
지카스기 비밀은 비밀! ㅋㅋㅋ
사카모토 유지 저 작가의 작품에는 그런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다 사연이 있다....이유가 있다... 이런 시선이랄까.

구단씨 2026-01-1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우울한 느낌이 드는 책인데, 한편으로는 하염없이 끌리는 책이네요.
저도 잠자냥님과 비슷하게 말합니다.
저 노인이 저렇게 살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 노인이 그렇게 사는 것에 괜한 다른 가족 탓을 하지 말라고요.

잠자냥 2026-01-19 17:34   좋아요 0 | URL
책 자체는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아요! 코믹한 부분도 좀 있고 결국 희망적입니다. 희곡이라 금방 읽기도 하니 한번 읽어 보세요!
 
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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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첫 문장만 읽고도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존 밴빌의 <오래된 빛>이 그랬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Billy Gray was my best friend and I fell in love with his mother.’ 이 도발적인 첫 문장만으로도 오호라? 싶은데 그다음 이어지는 문장들은 더욱 흥미롭다. 잇따라 좋은 문장들의 향연이 펼쳐지기에 알 수 없는 흥분에 싸인다. 이건 정말 틀림없이 대단한 작품이겠구나 싶은 그런 예감이 고개를 든다. <오래된 빛>의 첫 페이지가 나에게 선사한 느낌이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말하기는 쉽다. 말 자체는 수치를 모르고 절대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은, 어디 보자, 여든셋, 여든넷이려나? 그 정도는 고령도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면 어찌될까? 그건 탐구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더. 우리는, (존 밴빌, <오래된 빛>, p.13) 


열다섯 소년과 서른다섯 성인의 사랑.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와의 사랑. 이런 소재라면 거부감이 먼저 들 수 있다. 성인과 미성년자의 사랑이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느냐고, 심지어 친구의 어머니, 미시즈 그레이는 유부녀이다. 남편, 그러니까 빌리의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있다. 빌리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도 아닌 것이다. 성인이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는 사랑이라고 윤색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다. 그런 이야기 중 으뜸으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있다. 밴빌의 <오래된 빛>의 시작 부분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떠오른다. 헌데 나는 <롤리타> 또한 전체적인 감상평은 ‘아름답다’로 남겼다. 그 작품 또한 첫 문장이 강렬하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 리. 타.’(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문학동네, 2013, p.17) <롤리타>는 <오래된 빛>의 소년과 성인 여성의 그것처럼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적절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작품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년이라는 기필코 지나가 버릴 세계, 지나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세계, 열망하지만 좀처럼 가질 수 없는 세계, 이미 잃어버린 세계, 영원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끝없는 열망, 동경… 이런 것들이 한 편의 시(詩)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체가, 문장이, 표현이 아름다우면 그 내용이, 소재가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성년자와 성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묘사하는 것, 그것을 찬양하거나 옹호함으로써 그 세계를 동조하는 것은 하는가? 이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런 세계를 인정하고 동조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을 때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술, 특히 문학을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 특히 그러한 잣대를 가장 큰 기준으로 삼고 판단하는 것을 반대한다. 얼마 전 읽은 제임스 우드 또한 그렇게 말한다.   



소설은 수집할 수 없는 데이터에 대한 멈추지 않는 실험이다. 내가 소설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텍스트와 근접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소설에서의 진실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이고 그것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렸다. 우리는 믿으라는 요청을 받지만 언제라도 그 요청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다. (...) 소설에서의 믿음은 언제나 ‘마치.....인 것처럼’의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은유적 믿음이며 실제 믿음과 유사할 뿐이다. (제임스 우드,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p.45)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다. 소설의 세속적 충동은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것이며, 소설은 평범한 인간의 일상이라는 주식을 거래하는 위대한 상인이다. (같은 책, p.50)


그렇다. 내가 소설을 사랑하는 까닭은 문학은 종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는 결국 한없이 많은 자유가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탐하는 것은 죄이다. 미시즈 그레이가 앨릭스를, 또는 앨릭스가 친구의 어머니를 욕망하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윤리에 어긋나며 도덕적으로도 지탄받아 마땅한 죄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기에 자신이 저지르는 마음속의 죄를 알고 번민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속죄한다. 여러 번 그 죄를 그치기를, 죄로부터 멀어지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들의 갈등과 번뇌에 동조하다가도 실패하고 마는 그 순간 안타까워하거나 함께 절망하거나 또는 갑자기 근엄한 표정으로 그들의 죄지음에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제임스 우드의 저 말처럼 ‘세속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 사이를, 삶의 순간들과 삶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소설의 세속적 충동’을 목도하면서 우리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삶도 반추하는 것이라.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당신의 삶을 내가 어떻게 그 종교적 잣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것들. 

그렇게 나는 열다섯 소년 앨릭스와 서른다섯 유부녀 미시즈 그레이의 삶으로 들어간다. 사춘기 소년에게 어떻게 친구의 엄마가, 서른다섯의 여자가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저 나이의 내게 서른이 넘은 어른들은 늙음 그 자체였다. 어떻게 저 나이가 되도록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한 존재. 앨릭스 또한 미시즈 그레이를 처음 봤던 때를 잘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들은 우리가 그다지 눈여겨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제들은 달랐다. 누이들까지도. 하지만 어머니들은 아니었다. 모호하고 형체 없고 성별 없는 어머니들은 앞치마와 약간 삐져나온 헝클어진 머리, 희미하지만 똑 쏘는 땀 냄새에 불과했다. 그들은 늘 배경에서 희미한 정체로 빵 굽는 그릇이나 양말을 들고 무슨 일을 하느라 바빴다. 미시즈 그레이를 특별히, 분명하게 의식하기 전에도 나는 틀림없이 그녀 근처에 수도 없이 있었을 것이다.’ (p.26)

그런 존재를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그러니까 자전거를 탄 여자가 그녀가 아니었다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앨릭스는 열다섯 이전, 열 살인가 열한 살 즈음에 우연히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성당에 가는 여인을 목격한다. 성당 앞 마당가에 다다른 자전거. 4월의 어느 봄날, 봄바람에 자전거 탄 여인의 치마가 허리까지 훌렁 올라간다. 그 광경을 줄곧 지켜본 어린 소년, 앨릭스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망설임도 없이,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입술을 알파벳 ‘O자’로 만들면서 경쾌하게 웃고 지나간다. 이 강렬한 기억…. 수년 후, 빌리의 집에서 느림보 빌리를 기다리다 미시즈 그레이를 마주치게 된 앨릭스는 미시즈 그레이가 바로 그때 그 여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기억은 불확실하다. 앨릭스는 자전거 탄 여자가 미시즈 그레이인지 아닌지 확신하지는 못한다. 단지 그때의 그 강렬한 인상의 여인이 미시즈 그레이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첫 사랑의, 소년의 첫 사랑의 신화가 신화로서 탄생해, 오롯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림보 친구 때문에 등굣길이면 늘 빌리의 집에서 기다리는 처지가 되는 앨릭스. 앨릭스에게 빌리의 이 느림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날 또한 빌리를 기다리다 우연히! 앨릭스는  방문이 조금 열린 빌리 부모의 침실 안 부부욕실에서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목격한다. 일은 그렇게 벌어지게 예정된 것이었을까? 이때부터 앨릭스는 거침없이, 완벽하게 그레이 여사, 친구의 엄마, 빌리의 엄마, 미시즈 그레이를 욕망하게 된다. 아니 그런데, 뭐 벌거벗은 여자의 몸을 한번 흘낏 봤다고 사랑에 빠진다고? 당신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앨릭스, 아니 밴빌은 이렇게 쓴다. ‘만일 당신이 코웃음을 치며 그래 봐야 벌거벗은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것뿐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리다는 것, 경험을 갈망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갈망한다는 게 무엇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p.55)

그렇게 해서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는 몇 번의 마주침과 우연한 순간들이 부딪쳐 가까워지게 되고 빌리와 빌리의 여동생, 아버지가 모두 집을 비운 그날 그 집에서 마침내 정사를 나누게 된다. 이런 일이 한 번에 그쳤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리라. 해프닝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여름 내내 이어진다. 앨릭스가 숲속의 한 폐가, 그들이 ‘코터의 집’이라고 부른 그 장소를 발견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때로는 빌리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운 그곳에서, 또 때로는 미시즈 그레이가 몰고 온 차 안에서 또 때로는 코터의 집에서 등등으로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은, 욕망은 불꽃을 피운다. 이 두 사람의 일탈은, 이웃끼리 너무나 잘 알고 지내는 이 작은 마을에서 계속 비밀리에 유지될 수 있을까? 아직 미성숙한 앨릭스는 앨릭스대로, 그런 앨릭스를 번번이 유혹하고 그 욕망에 굴복하고 마는 서른다섯의 성인 미시즈 그레이는 그녀대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위험한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들의 금기와도 같은 사랑을 지켜보면서 그 세속적 충동을 목격하면서 ‘인생을 확장하고 연장’하는 기쁨 또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

<오래된 빛>에는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앞서 이 작품의 첫 페이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화자인 나(앨릭스)는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로 퇴물 연극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한 영화제작사가 주연 배우로 출연해줄 것을 의뢰해오면서 앨릭스의 현재의 삶과 과거, 소년 시절 그 오래된 기억 속의 일들이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그 모든 관계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은 그들 각자의 관계에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점이다. 소년 앨릭스와 미시즈 그레이가 그러했고 앨릭스의 딸 ‘캐스’와 딸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악셀 판더’와의 나이 차이도 그러하며, 하필이면 딸의 연인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해체주의 비평가 ‘악셀 판더’ 전기 영화를 찍기로 결정한 앨릭스 앞에 나타나는 또 다른 주연 여배우 ‘돈 데번포트’의 나이 차이 또한 그러하다. 그 각각의 관계는 사랑이기도 하고 이해(理解)이기도 하고 추앙이기도 하며 또 때로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마다의 상실이 존재한다. 꽃피는 생이 있으면 시들어 가는 인생도 있으며, 이미 저물어 버린 생도 있다. 찬란한 여름이 가고 쓸쓸한 가을이 오듯 모두가 언젠가는 “이제 집에 가야 할”(p.321) 때가 온다. ‘방황하는 아이’들 모두가 그러하다. 소년은 그렇다 쳐도 미시즈 그레이는 왜 그랬을까? 그녀에게 앨릭스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을 읽을 때쯤, 그 비밀이 밝혀져 한층 더 처연하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은 ‘한 해가 찬란한 절정에 오른 그때 이미 이울 채비를 하고’ 있었구나....


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끝나지 않는 저녁과 하얀 밤의 시간이었다. 소년으로 존재하며 세상의 그런 날씨 속에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알아보지 못했던, 또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한 해가 찬란한 절정에 오른 그때 이미 이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시간과 시간의 사라짐을 제대로 보았다면 아마 나의 심장을 가시처럼 찔러대는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시야에 끝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끝이 없었고, 여름의 슬픔은 무르익어 빛나는 사랑이라는 사과의 뺨에 번지는 희미한 혈색, 흐릿한 거미집 그늘에 불과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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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12-23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직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도 아내가 친구의 어머니였으며 24세 연상입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될 듯하네요.
처음 만났을 때, 산들바람 부는 언덕에서 자전거 타고 오며 약간의 실례를 멋지게 넘기는 그런 여성을 사춘기 남자애가 자기 마음 속에 한 그림으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건 찐따지요. 안 그래요? ㅎㅎㅎ

잠자냥 2025-12-24 09:42   좋아요 0 | URL
마크롱은 그렇다 치고... ㅋㅋㅋ 국내에서 최근 문제되고 있는 사건 아시죠? ㅋㅋㅋ 류중일 감독 전 며느리인가 뭐 그 사람하고 제자하고... 아휴. 뉴스에 그만 보도되면 좋겠어요! 문학도 아닌데 너무 자세히 묘사되니까 드럽.....네유 ㅋㅋㅋㅋㅋㅋㅋ

자전거 탄 여인의 그 경쾌한 태도는 어떤 어린이가 봐도 유쾌하고 강렬한 기억이었을 거 같아요. 어른이 그렇게 대범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게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5-12-2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이고 한여름이었다. 끝나지 않는 저녁과 하얀 밤의 시간이었다. ‘, ‘하지만 나는 어렸고 시야에 끝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끝이 없었고, 여름의 슬픔은 무르익어 빛나는 사랑이라는 사과의 뺨에 번지는 희미한 혈색, 흐릿한 거미집 그늘에 불과했다.‘

와- 문장 진짜 끝내주네요!!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하고 있는것 같아요!!


저는 문학에서 범죄를 소재로 다룬다고 해서 그것이 안된다거나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자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그들이 되어 그 경험과 생각을 대신해볼 수도 있을테지요. 다만, 그런 소재를 삼아서 하는 이야기가 그것을 ‘조장‘하는거라면, 그건 좀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저에게 소녀와의 사랑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아동대상 성범죄가 소재이지만, 책속에서 험버트는 충분히 알고 있었고, 나보코프 역시 계속해서 언급하잖아요. 롤리타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 롤리타의 뻗어나갈 미래를 성인 남자가 좌절시킨 것이라는 것을요.

일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이, 이야기를 꼬고 또 꼬아서 성인 남자와 어린 아이를 사랑하게 해놨는데, 거기엔 이런 사연이 숨어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막을 건 아니라고 하는 걸로 읽혀서 굉장히 불쾌했어요. 그러니까 소재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그것들은 충분히 문학이 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걸 소재삼아 무슨 말을 하려는가는, 비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자냥 2025-12-24 09:5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진짜 문장이 장난 아닙니다. 제가 오죽하면 원서 찾아서 미리보기로 원문을 읽어봤겠어요. 근데 번역도 잘한 것 같습니다. 다락방 님 이 책 사두신 거 같은데 한국 오면 바로 읽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문학이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건 제한이 없는 것 같아요. 부친살해(<카라마조프>)도 다루는 마당에 뭐가 금기이겠습니까! 다만 독자가 그걸 제대로 해석하거나 받아들일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 최근에 뭐죠? 엡스타인 사진이 추가로 공개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사진 속 여성들 신체에 <롤리타>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기사 보고 참....... 문학을 좃또 모르는 인간들이 어디서 주워듣고 이딴 식으로 써먹는다 싶어서 정말~~~~~ 불쾌하고 한심했습니다. 에효.

잠자냥 2025-12-24 09:55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따로 적어둔 문장 하나 더 맛보기로 던져줄게요. 이 작품은 문학이란 이런 것이다... 으르릉! 하는 작품입니다.


내가 평생 사랑했던 아우라 넘치는 모든 여자는, 지금 나는 사랑했다는 말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나에게 자신의 자국을 남겼다. 옛 창조의 신들이 진흙을 빚어 우리를 만들었을 때 인간의 관자놀이에 엄지 지문을 남겼다고 하는 것처럼. 바로 그렇게 나는 내 기억의 밑면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 나의 여자들-그들 모두를 여전히 내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각각의 특정한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거리의 분주한 군중 사이에서 밀 색깔의 머리카락으로 덮인 머리가 멀어져가는 모습, 혹은 위로 올라간 늘씬한 손이 특정한 방식으로 흔들리며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이 흘끗 눈에 띄곤 한다. 호텔 로비의 맞은편에서 짧은 웃음소리 한 토막 또는 귀에 익은 따뜻한 억양으로 말하는 단어 딱 한 마디가 들리곤 한다. 이런저런 것을 만나는 순간 그녀는 그곳에 있다. 생생하게, 덧없이. 그러면 나의 심장은 늙은 개처럼 기어올라와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pp.147~148)

다락방 2025-12-24 11:49   좋아요 1 | URL
네, 롤리타를 읽은 많은 남자 평론가들과 독자들이 험버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서, 나보코프가 독자의 수준을 모르는채로 글을 쓴 것이 죄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너무 엉망이면 .. 하- 너무 짜증나네요.

주신 문장에서도 특히 마지막, ‘이런저런 것을 만나는 순간 그녀는 그곳에 있다. 생생하게, 덧없이. 그러면 나의 심장은 늙은 개처럼 기어올라와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가 진짜 너무 좋네요. 그리움에 잠겨 컹컹 짖는다.. 크-

페넬로페 2025-12-23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읽고 있는데 존 밴빌의 문장에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잠자냥 2025-12-24 09:54   좋아요 1 | URL
오! 읽고 계시는군요! 정말 아름다운 문장의 향연입니다. 마음껏 즐기세요!

망고 2025-12-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시즈 그레이는 대체 왜 그런건데요? 읽어봐야 알겠죠 저는 성인 여성이 어린애한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그게 문학 작품 속에서라도 이런 소재가 나오면 정말 모르겠어요ㅠㅠ 하지만 내가 모르겠다고 해서 이런 소재가 소설에 쓰지 말란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그 안에도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있을테니까 작가가 의도한바가 있겠죠
문장이 참 아름다운 소설인 듯 합니다
별 다섯개라 솔깃하지만 올해 이런 소재는 이제 그만 읽기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12-24 09:54   좋아요 1 | URL
망고 님, 이 책은 몇 년 후에라도 꼭 읽어보세요. <레슨>의 여파가 가신 후...? ㅋㅋㅋㅋ 이 작품이 좀 거시기하다면 존 밴빌 <바다> 도전! 망고 님 영미문학 좋아하시니까 틀림없이 존 밴빌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아예 원서로 도전은 어떠신지? <바다>는 일단 제가 읽어볼게요(한국어 번역본으로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12-24 12:28   좋아요 1 | URL
저 찾아보니까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이게 ˝바다˝ 로군요 저 읽었는데 기억 하나도 안 나고 별도 두개 줬네요ㅋㅋㅋㅋ

잠자냥 2025-12-24 13:20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 🤣🤣🤣

망고 2025-12-24 14:21   좋아요 0 | URL
책이 어디있더라📚 뒤적뒤적

독서괭 2025-12-2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저 롤리타도 안 읽었는데.. 읽어야겠따.. 문학은 소재를 자유롭게 가져가되 그걸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불쾌함 정도도 달라지는 것 같고..
아무튼 잠자냥님 리뷰 좋다…

잠자냥 2025-12-26 11:36   좋아요 1 | URL
꼭 읽어….🤣 존 밴빌 작품은 좀 추리소설 같은 면모도 많다고 하던데, 이 책도 조금 그래요.

관찰자 2026-01-04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주말내내 이 책을 부여잡고 다 읽었네요. 뭔가 콜미바이유어네임의 그 여름날이 떠오르면서, 나이든 알렉스에게도 소년알렉스에게도 미시즈그레이에게도 정신없이 이입이 되어서 홀딱 빠져버렸네요. 좋은 소설 추천해줘서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6-01-05 10:38   좋아요 0 | URL
관찰자 님 마음에도 들었다니 기쁩니다!
 
롤 베 스타인의 환희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남수인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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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잃어버림은 어떤 대상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체념이나 단념, 포기 등으로 상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쉽지 않을 때 사람은 종종 되찾기를 행한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잃은 대상 그 자체를 되찾거나 그와 똑같은 또 다른 대상을 새로이 구하는 것이다. A와 똑같은 A-A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잃어버린 A가 아니기에 A라고 할 수는 없다. 잃어버린 대상이 물건이라면 그와 똑같은 물건을 다시 구함으로써 잃어버림을 대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대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사람을 상실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토록 아파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생은 흐르고 사람들은 그 삶에 적응코자, 살아가고자 상실을 메꿀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한 사람을 잃고 난 후 그를 되찾지 않는 한 그와 똑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형태의 복원은 가능하겠지만.

뒤라스의 <롤 베 스타인의 환희 Le ravissement de Lol V. Stein>는 사랑의 상실과 그 복원의 불가능성을 말한다. 열아홉 소녀 ‘롤 베 스타인’은 어느 아침, 테니스장에서 ‘마이클 리처드슨’을 알게 된다. 그는 스물다섯. 롤은 그에게 반해 그와 약혼한다. 이 약혼 소식을 듣고 롤의 학교 친구인 타티아나는 믿을 수 없어한다. ‘롤이 송두리째 혼을 빼앗길 만한 어떤 이를 발견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가? 롤이 자신의 관심을 송두리째 쏟게 한 사람을, 또는 결혼까지 할 만큼의 관심을 끈 사람을 발견했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랴? 그 누가 롤의 미완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었으랴.’ 이것이 롤의 가장 친한 친구의 반응이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그도 그럴 것이 롤은 조금 남다른 소녀로 타티아나의 눈에 롤은 항상 뭔가 늘 비어있는 듯한, 뭔가가 부족한 아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없이 부드럽지만 매사에 지극히 무관심한 롤, 사람들은 롤이 결코 괴로움이나 고통을 느끼는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소녀다운 눈물조차 보인 적이 없다고. 롤은 예뻤고 학교에서는 누구나 너도나도 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롤은 ‘손가락 사이의 물처럼 붙잡을 수 없는 느낌’이며 ‘그녀의 일부는 주변사람들과 현재 순간으로부터 멀리 가 있는 듯’하다. 타티아나는 롤이 항상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롤의 마음이 ‘여기’에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롤의 남다른 점은 바로 감정이 머무는 곳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무심한 아이가 누군가에게 열광적으로 반해 약혼한 사실은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조차 믿을 수 없는 대사건인 것이다. 이윽고 타티아나는 마이클 리처드슨을 알게 되고 롤이 그에 대해 지닌 광적인 열정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틀렸나 보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구심은 남는다.

약혼한 지 6개월쯤. 결혼식은 가을로 예정된 때. 학교를 졸업하고 롤과 타티아나가 티 비치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즈음 시립 카지노에서 하계 대 무도회가 열린다. 그리고 이날, 이 무도회는 롤에게 결코 잊기 어려운 기억을 안겨준다. 그녀 인생 최대의 비극이 바로 이날 일어나는 것이다. 무도회장에는 롤과 타티아나, 그리고 롤의 약혼자 마이클 리처드슨이 함께한다.  약혼자와 가장 친한 친구, 셋이 함께한 자리라면 즐거워 마땅할 텐데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가? 타티아나와 마이클이 눈이라도 맞나? 차라리 그렇다면 나을까? 무도회장에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등장한다. ‘안 마리 스트레테르’라는 이름의 여인. 그런데 마이클은 이 여자를 보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마이클은 여자와 춤을 춘다. 첫 번째 춤이 끝난 후에는 롤에게 돌아온다. 마이클은 한 번 더 여자와 춤을 춘다. 그런데 두 번째 춤이 끝난 후에는 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롤에게서 떠난다. 마이클이 여자의 손을 잡고 무도회장을 떠나는 순간 롤은 기절한다. 하룻밤 무도회에서 약혼자를 다른 여인에게 빼앗긴 롤 베 스타인. 롤은 이 사건으로 말을 잃는다. 사랑을 상실하고 언어마저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살아남는가. 롤은 결혼하다. 마이클이 아닌 다른 남자와. 그것도 우연히 만난 남자와 결혼해 고향을 떠나버린다. 10년이 흐른다. 그 10년의 세월 동안 롤은 감수성도 욕망도 잃어버린 채 무미건조한, 그저 차가운 질서만 따르며 살아간다. 롤이 모든 욕망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녀의 결혼 생활 10년이 말해준다. 롤은 단지 타인을 모방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는다. 차가운 기성품 취향…. 침실이나 거실 인테리어는 상점 진열장의 것을 그대로 본떴고, 롤이 가꾸는 정원은 동네의 다른 집 정원들의 복사판이다. 롤은 모방하고 또 모방한다. 다른 사람들, 다른 모든 사람, 최대한 많은 수의 다른 사람들을 모방한다. 이 텅 빔. 결핍과 구멍의 세월…. 그러나 애초부터 롤을 알지 못한 채 눈먼 결혼을 한 롤의 남편 ‘장 베드포드’는 그 10년 동안 어떤 결핍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비어 있는 사람은 롤, 마이클을 잃기 전, 학창 시절에도 ‘이미 뭔가 결여된 것이 있었’던 롤이다, ‘그때 벌써 이상하리만큼 불완전’했던 롤, 어떻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모습을 갈구하며 소녀 시절을 보낸 롤, 우정을 지속시킬 줄 몰랐으며 심심하다고 뭔가 재미있는 걸 해 보려 한 적도 없고, 소녀다운 눈물을 보인 적조차 없었던, 그리하여 감정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만 같았던 비어있음의 대명사와도 같은 롤 베 스타인의 공허만이 10년의 결혼 생활을 관통한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문득 어느 날 롤은 고향에 돌아온다. 거기에서 롤은 옛 친구 타티아나와 그녀의 정부(情夫) ‘자크 홀드’를 목격한다. 롤은 자크를 보는 순간 타티아나로부터 그를 빼앗기로 결심한다. 친구의 남자를 갖기로 마음먹는다. 롤은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롤과 타티아나, 자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롤은 자크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그 먼 시절의 상실을, 거세된 욕망을, 잃어버린 욕망을 되찾을까? 복원하게 될까?


우리는 잃어버린 환상, 실낙원a lost paradise을 결코 되찾을 수 없지만 되찾길 추구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애초에 우리가 이 낙원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사실, 우리는 결코 완전한 존재였던 적이 없으며 단순하고 마음이 태평하기만 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낙원을 되찾으려는 우리의 결심을 조금도 굽히지 못한다. 라캉은 이 실낙원을 ‘큰사물theThing’로 명명하는데, 이 대문자 T는 그것이 그저 평범한 환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매우 특별한 것임을 나타낸다.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욕망이 바로 이 큰사물이다. -마리 루티, <가치 있는 삶>, pp.94~95


<롤 베 스타인의 환희>를 읽는 동안 마리 루티의 몇몇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라는 바르트의 말(<사랑의 단상>)도 떠오른다. 뒤라스가 약혼자를 납치당한ravissement 여자, 사랑을 빼앗긴 여자, 욕망을 거세당한 여자 롤을 통해 사랑과 대상, 욕망의 문제를 사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그 도구에 불과하다.’(<사랑의 단상>) 말한 바 있다. 학창 시절 롤은 무언가를 강렬히 욕망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결핍된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어 있다. 그런 그녀가 단 한번 열광했던 대상은 약혼자이다. 그런데 이 약혼자를 다른 여자에게 ‘강탈당한ravissement’ 후 ‘빼앗긴’ 이후 그녀는 말을 잃고 모든 욕망을 잃어버린 듯 기계처럼 살아간다. 마이클이라는 대상을 욕망함으로써 주체였고 또한 마이클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대상이자 욕망의 주체였던 롤은 약혼자가 내팽개침으로써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존재, 언어도 생명도 잃어버린 존재로서 자기를 인식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자크 홀드-가장 친한 친구의 애인을 사랑하기로, 유혹하기로, 빼앗기로 결심하면서 다시 욕망하는 주체가 되고, 바라보는 자-자크 홀드 또는 자크 홀드와 타티아나를-로서 또한 주체가 된다. 더욱이 이번에는 빼앗는 위치이다. 자기의 욕망에 불을 댕길 대상, 즉 도구를 찾은 셈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타티아나일까? 타티아나는 그 여름의 무도회장. 그러니까 롤이 상실의 가장 큰 경험을 한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그럼으로써 그 상실의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히 지켜본 사람이다. 그렇기에 롤의 주체로서의 복원은 바로 거기, 잃어버린 공간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롤은 마이클을 잃어버렸으므로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며, 남아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다. 나는 동시에 욕망하며 욕구한다. 그 사람의 부재는 내 머리를 물속에 붙들고 있다. 그것은 사랑의 출발점, 내가 매혹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치러졌던 한 장례에 대한 공포이다.’(<사랑의 단상>) 무도회장에서 마이클이 떠남으로써 영원히 교환될 수 없었던 주체와 타자의 자리. 사랑의 출발점이었지만 장례식장이기도 했던 그 무도회장에서 롤은 다른 대상과 함께 사랑을 복기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복원에 이르기를 꿈꾼다. 

롤은 어딘가 비어 있었던 것 같은, 텅 빈 존재로서 살다가 한 번의 잃어버린 환상, 마이클이라는 실낙원a lost paradise을 만났으나 그것은 애초부터 잃어버린 환상이었으므로 사라짐이 마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체물을 찾는다. 그것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열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도 ‘큰사물theThing’의 환상적인 완벽함을 똑같이 복제해 낼 수 없기에 인간은 ‘큰사물theThing’의 대체물을 찾는 탐구를 끝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다. 롤은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녀는 환상이 부서졌던 공간을 찾아간다. 그리고 자크와 사랑의 행위를 함으로써 잃었던 언어를 되찾는다. 그러나 자크(A-A)는 마이클(A)이 아니다. 마이클을 사랑했듯이 자크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물, 잃어버린 환상을 대체할 다른 환상을 갖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 그리고 그와 함께 그 장소-10년 전의 무도회장을 찾아감으로써 롤은 변화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성공한다. 롤은 자크를 선택함으로써 잃어버린 자기 욕망을 되찾은 것이다. 그것이 롤에게는 중요하다.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정말로 단념해야 하는 날이 오면, 그때 나를 사로잡는 격렬한 장례는 바로 상상계의 장례이다.”(<사랑의 단상>). 이 상상계의 장례를 마침내 치를 수 있었으므로, 10년 전에는 기절해 버렸기에 종결지을 수 없었던 그 장례를 10년이 지나 복기함으로써, 롤은 욕망의 복원에 성공한다. 

롤의 환희ravissement는 예전의 약혼자, 그 사랑을 되찾아서도 아니며, 그 사랑을 지울 완벽한 환상을 맞닥뜨려서도 아니다. 대체물을 찾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의 대상을 욕망하는 자기 자신, 그 욕망의 복원에서, 파괴의 고통 속에서도 되살아남의 희열을 느꼈기에 환희로 나아간 것이리라. 롤이 자크와 계속 사랑할지는 알 수 없다. 연인으로 존재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잃었던 자기의 욕망을 되찾음으로써 더는 모방의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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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12-11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 2025-12-11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좋아요! 2 👍👍

독서괭 2025-12-11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좋아요! 3 👍👍 (사실 아직 안 읽음…)

잠자냥 2025-12-11 17:26   좋아요 0 | URL
🤣🤣🤣 알고 있다

독서괭 2025-12-12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을 줄 알았지만 역시나 너무 좋군요.. 가치있는 삶 나 읽었다! 큰사물 반갑다! ㅋㅋ
타티아나가 안 됐네요. 뜬금없이 나타난 옛친구가 내애인 뺏어가.. ㅠㅠ

잠자냥 2025-12-15 12:30   좋아요 0 | URL
타티아나 임자 있는 사람인 건 안
비밀…. 🤣🤣🤣

역시 프랑스 삼각/사각관계도 아니고….

독서괭 2025-12-15 13:09   좋아요 1 | URL
네….??

다락방 2025-12-14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좋아요! 4 (리뷰 다 읽음)

잠자냥 2025-12-1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너무……🤣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양장)
아서 밀러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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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다?! 내가 좋아하는 극작가이다?! (단, 사람 말고 그들이 쓴 작품) 둘 다 정답.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 작가는 비극을 그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극작가이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한정된 공간과 몇몇 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그로 인해 폭발하는 개인의 비극을 묘사하는 데 누구보다 뛰어나다. 

희곡은 무대 위 상연을 목적으로 하기에 공간의 제약이 크다. 때문에 많지 않은 인물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첨예한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테네시 윌리엄스를 비롯해 유진 오닐의 극에는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하긴 인간사에서 가족 내 갈등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가 또 어디 있으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아서 밀러 또한 그런 작가 중 하나이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나 유진 오닐에 비해 사회 문제를 살짝 더 첨가한 점이 조금 다르다고나 할까. 아서 밀러는 그 유명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서는 대공황의 불황으로 인해 몰락해가는 한 가장家長의 초상을, <모두가 나의 아들>에서는 어느 군수 업자와 그 일가의 몰락으로 전쟁과 자본의 문제를, <시련>에서는 작가 자신이 피해자였기도 했던 매카시즘 광풍을 고발한 바 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어떤 사회 문제를 건드리면서 개인의 비극을 그려내고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대공황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을 보여줌으로써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폭로한 <세일즈맨의 죽음>과 결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단지 이번에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바다 쪽에서 만을 바라보고 있는 슬럼가, 세상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물류를 삼키고 있는 뉴욕의 목구멍’ 바로 그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런 일자리조차 탐낼 수밖에 없는 이민자들의 붕괴되는 꿈(또 다른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그리고 있다고나 할까. 

이 작품에서는 고대 비극에서 곧잘 등장하는 코러스 역의 변호사 ‘앨피에리’의 존재가 신선하다.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이자, 주인공 ‘에디’의 불행을 전조하는 인물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경고를 주는 등 꽤 큰 비중을 맡고 있다. 엘피에리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 자신도 말하기를, 변호사는 전적으로 비낭만적인 직업이다. 그가 상대하는 이들은 주로 부두 노동자와 그들의 아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들,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은 보상 건, 퇴거, 가족 간 분쟁 등 가난한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들이다. 브루클린 부두 노동자들은 길에서 우연이라도 이 변호사를 만나는 일을 꺼려한다. 그 동네에서 “변호사나 신부를 길에서 만나는 건 재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재앙과 연관이 되어서만 고려 대상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엘피에리가 코러스 역을 맡고 있으니 비극은 예견된 셈이라고나 할까.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의 주인공은 ‘에디 카본’- 나이는 마흔, 거칠고 약간 과체중의 부두 노동자이다. 극이 시작하면 에디는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옥신각신하고 있다. 심한 실랑이는 아닌, 애정을 기반으로 한 투덜거림 정도랄까? 에디는 조카 캐서린의 옷차림을 지적 중이다. 너는 요새 너무 살랑살랑 걷는다, 가게에서 사람들이(주로 남자들이) 너를 쳐다보는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캐서린은 그런 에디, 그러니까 이모부의 잔소리가 딱히 싫지는 않은 듯 애교를 부리며 웃어넘긴다. 에디와 그의 아내 비어트리스는 부모를 일찍 잃은 캐서린을 어릴 때부터 친딸처럼 보살펴왔는데 이제 장성한 캐서린은 곧 일자리를 얻어 이 집, 그러니까 에디의 집에서 독립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런 중에 비어트리스의 사촌들이 머나먼 곳,  이탈리아로부터 배를 타고 와 에디의 집에서 한동안 함께 살기로 한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아하, 비어트리스의 사촌인 마르코와 로돌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불법 입국하는 이민자들인 것이다. 이민단속국에 걸리면 마르코와 로돌포는 물론 에디까지도 위험에 처할 것이 뻔한데도 사람 좋은 비어트리스는 사촌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해 자신들의 집에서 한동안 기거하게 한 것이다. 

마르코와 로돌포가 도착하면서부터 갈등은 조금씩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어떤 갈등일까? 에디가 이 사촌들에게 불법 입국을 빌미로 협박을 할까? 이민자인 이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깨닫고 좌절할까? 뜻밖에도(?) 문제의 근원은 캐서린, 아니 에디의 마음속에 있다. 캐서린은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전교생 중에 뽑혀 꽤 큰 배관 회사의 비서직(속기사)으로 취직하게 된다. 기뻐하는 비어트리스와 달리 에디는 불만을 쏟아내며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 동네는 해군 기지 옆이다. 동네가 마음에 안 든다. 배관 회사라니, 그들은 부두 노동자들이나 다름없다. 너는 결국 배관공들 또는 선원들과 쏘다닐 것이다. 그러려고 내가 캐서린 너를 학교에 보낸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사무실, 뉴욕의 빌딩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제발 여기, 브루클린과 똑같은 동네는 가지 말라 등등. 얼핏 보면 조카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나머지 걱정이 심한 이모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캐서린에게는 이모부. 그러니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이다. 에디는 마흔, 캐서린은 열일곱. 한집에 사는 이 남자의 마음속을 차지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인가? 캐서린인가? 조금씩 그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이 엿보이기 시작할 무렵 이탈리아에서 마르코와 로돌포, 젊은 남자 둘이 도착해 한 집에서 기거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마르코와 로돌포 두 형제 중 형인 마르코는 이미 결혼해 아내와 자식이 여럿이다. 미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할 생각밖에 없는 건장하고 성실한 남자로 에디는 그에게는 별 불만이 없다. 일 잘하는 좋은 일꾼을 소개해줬다고 브루클린 노동자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로돌포’이다. 로돌포는 이탈라이인 치고는 드문 금발에 노래도 잘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돈을 버는 족족 음반을 사거나 몸치장하는 데 다 써버린다. 일하는 곳에서는 물론 심지어 집에서도 종종 노래를 크게 부른다. 불법 체류자가 이런 짓을?!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마르코처럼 성실하게 일해서 집으로 돈을 보내거나 모을 생각은 꿈에도 없는 저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에디는 로돌프의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인다. 헌데 저 노래하는 카나리아 같은 놈한테 다들 불만이 없는 게 이상하다. 일하는 곳에서도 로돌포가 입을 열면 다들 웃기 바쁘다고, 녀석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은 톡톡히 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심지어 캐서린조차 녀석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흉허물 없이 지낸다. 점차 둘이서만 하는 외출이 잦아진다. 종종 밤늦게 들어오기까지 한다. 에디는 속이 바짝 타들어간다.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속 편히 털어놓을 수 없는, 그조차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질투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다. 분노의 불길이 치솟는다. 이 불길은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캐서린을 달래고 어른다. 그 녀석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와 결혼해서 영주권을 얻을 속셈이야. “이건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법이야.” 이민법이 시행된 이래로 계속 써먹는 수법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캐서린을 비롯해 주변 그 누구도 에디의 말을 듣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 아내 비어트리스조차 캐서린을 놓지 못하는 에디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비꼬며 경고를 할 뿐이다. 이제 자기도 참는 데 한계가 있노라고.

요리를 잘한다, 높은 음으로 노래를 한다, 춤을 춘다, 드레스를 만든다, 저놈은 분명 게이가 맞는데! 남자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는 호모 녀석인데 캐서린을 좋아하는 척해서 영주권을 따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니!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에디는 마침내 엘피에리를 찾는다. 법적으로 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불법 체류자, 금발 호모 녀석 로돌프를 제지할 방법은 없는지 상담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꺼내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에디 : 이틀 전날 저녁에 조카가 자기한테 너무 작아진 드레스를 꺼내 왔어요. 작년 한 해 동안 키가 부쩍 컸거든요. 그리고 이 친구가 드레스를 들고 가서 식탁에 놓더니 재단을 해요. 척척 자르더니 완전 새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그 모습이 천사처럼 예뻤어요-너무 예뻐서 그에게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요. (82~83쪽)



갖고 싶은 여자인 캐서린, 조카라는 이름 아래 영영 곁에 묶어두고 싶은 캐서린, 그런데 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호모 같은 놈 로돌포. 그런데 에디는 사실 로돌포에게도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캐서린을 빼앗아갈까 봐 적대적으로 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비정상적인 면, 이른바 남성적이지 않은 속성에 눈길이 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로돌포를 욕망하는 것이다. 에디에게 천사처럼 예쁜, 그래서 너무 예뻐서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사람은 캐서린인가? 로돌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확실한 것은 아내 비어트리스는 아니라는... 이 걷잡을 수 없는 에디의 금기와도 같은 욕망은 마침내 크나큰 비극을 불러온다. 

우리의 코러스 엘피에리는 일찌감치 에디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섞어 놓았어.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해. 아내, 아이들-모든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하지만 가끔은… 사랑이 지나칠 때가 있어. 알지? 너무 지나쳐서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84~85쪽) 에디의 이 지나친 사랑은, 욕망은 결국 “가지 말아야 할 데”로 가버리고 만다.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엘피에리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모두가 아는데 결국 당사자만 모르는구나. 인간이 제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본인만 모르는 듯. 아니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게 인간인가. 그래서 가련한 존재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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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1-10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에디 욕망이 드글드글하군요. 파국이 안 올 수가 없네..
그나저나 잠자냥의 리뷰는 역시 멋있다고나 할까.

잠자냥 2025-11-10 20:19   좋아요 1 | URL
드글드를 욕망 에디 🤣ㅋㅋㅋㅋ
그나저나 독서괭의 댓글은 왠지 간지럽다고나 할까.

moonnight 2025-11-10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직접 읽는 것보다 잠자냥님 리뷰를 읽는 게 훨씬 재미나고 이해가 잘 되지 싶으면서도ㅎㅎ 일단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크나큰 비극이라니..결말 궁금@_@;;;

잠자냥 2025-11-10 20: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원작품이 더 흥미진진하겠지요! ㅎㅎ 결말 궁금하죠?! 짧은 작품이니 한번 읽어보세요! 근데 책값이 비싸서….😹

독서괭 2025-11-10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는너무비싸 지만지 르고싶어지는게문제 지만지 금까지안산사람나

독서괭 2025-11-10 20:35   좋아요 1 | URL
이러다 쫓겨나지 싶지만..지..

잠자냥 2025-11-11 09:48   좋아요 1 | URL
지만지 너무 비싸다는 괭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지에서만 나오는 작품들이 있어서 아예 안 살 수도 없지만 지는 비싸긴 하지만 지금까지 안 산 사람 나라는 말은 못 믿겠지만 지 .. 괭은 지만지 책 산 적이 있지만 지 구매 내역을 모르는군...ㅋㅋㅋㅋ

그래도 안 쫓겨나지 싶지만...지는 이 댓글을 과연 좋아할까 싶지만...지...

독서괭 2025-11-11 10:04   좋아요 1 | URL
🤣🤣🤣🤣🤣 장단 맞춰주는 잠자냥 ㅋㅋㅋㅋㅋㅋ 쫓겨나지 않아 다행이다 ㅋㅋㅋ
지만지는선물은 했지만지는 산적이 없는데유??

잠자냥 2025-11-11 10:09   좋아요 1 | URL
2024년 8월 7일에 잠자냥한테 요제프 로트, <성스러운 술꾼>(지만지) 선물했지만..지 선물은 산 걸로 안 치는 거지만...지 사긴 한 거잖아유...

독서괭 2025-11-11 10:18   좋아요 1 | URL
그럼 지금까지 안 가진 사람 나라고 수정해야겠지만.. 굳이 수정하진 않을 거지만 지를 잠자냥에게 선물한 걸 잊은 건 당연히 아님을 어필하고 싶지만… 지…

잠자냥 2025-11-11 10:46   좋아요 1 | URL
지만지 선물 어필받고..이제 그만 이 댓글 놀이 끝내고 싶지만 지....고 싶지 않지만 지... 누가 좀 말려주면 좋겠지만 지...🤣🤣🤣🤣🤣

독서괭 2025-11-11 10:57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일해야 하니까 그만 끝내주겠지만 지…금 나도 일을 해야하지만 지… 속적인 댓글놀이 희망하지만..지…그만하지…

잠자냥 2025-11-11 11:12   좋아요 1 | URL
괭&자냥, <다리에서 바라본 댓글>, 지만지

독서괭 2025-11-11 11:19   좋아요 1 | URL
🤣🤣🤣좋은 마무리지만..지…

페넬로페 2025-11-1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책값은 비싼데
끊임없이 희곡집 출간하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불행의 폭발이 여기에서 보여요.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이라 좀 더 객관적일까요?

잠자냥 2025-11-11 09:50   좋아요 1 | URL
아서 밀러 작품처럼 저작권 살아 있어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책이라면 좀 비쌀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저작권 소멸한 작품들도 왜 그렇게 비싸게 받는지는 좀 불만입니다요. ㅎㅎ
그래도 희곡뿐만이 아니라 조 아래 하인리히 뵐 작품처럼 여기서만 나오는 작품은 울며겨자먹기로 사보는 수밖엔 없지만요... ㅠㅠ

다락방 2025-11-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또 너무 재미있어서 이 책 사고 싶네요. 여기서도 이렇게 책이 막 사고싶어지면 어쩌라는건지.

읽다보니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국내 소설이 생각나네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여동생은 돈이 없어서 맨날 언니한테 돈 빌리면서 자기는 손톱 네일 받고 큐빅 박고 다녀요. 이 글 읽는데 그 장면이 생각났어요. 로돌포.. 부분에서요..
너무너무 싫어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혹은 그 사람의 어떤 면을 지독하게 욕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꼭 그런게 아니라 그런 경우도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내가 그 지점에 딱히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모두 그런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밝힙니다.

-이상 기네스 마시면서 공부하던 다락방 씀

잠자냥 2025-11-12 10:41   좋아요 0 | URL
다락방은 싱가포르에선 잠자냥 서재 접속 금지! ㅋㅋㅋㅋ

말씀하신 것처럼 포비아적 태도에는 왠지 그 대상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거나 신경 쓰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의 에디만 봐도 그래요, 주변 사람들은 로돌포가 노랠 잘 부르든, 드레스를 잘 만들든, 농담을 잘하든, 몸치장을 잘하든, 예쁘장하게 생겼든 그냥 그걸 유쾌하게 로돌포에게 있는 하나의 재주로 받아들이고 마는데 에디만 혼자 로돌포는 게이일거라고 막 집착하잖아요. 그런 특성이 게이들의 특징이라는 건 또 어떻게 그렇게 잘 안대요? ㅋㅋㅋㅋㅋ 영화 <브로크백마운틴>에서도 상대적으로 호모포비아적이었던 에니스(히스 레저)가.... 알고 보니 그날 밤 잭한테 넘어가는 거 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1-12 12:59   좋아요 1 | URL
저는 잠자냥 님 댓글 읽으니 영화 <아메리칸 뷰티> 생각나요. 거기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게이인줄 알고 막 화내고 혼내고 미쳐날뛰잖아요. 그런데 알고보니 아들이 게이가 아니라 자기가 게이가 되어버린.. 이거 비슷한 설정의 책도 있었어요. 청소년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엠 아이 블루?] 라는 책인데요, 혹시 읽어보셨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가 배경인 단편에서 학급에서 힘이 좀 센 아이가 게이를 경멸하고 혐오하거든요. 그런데 게이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파란색이 나타나는데, 이게 지금 오래 되어서 기억이 희미한데 파란색이 머리 위에 뜨던가, 하여간 그런데, 게이를 가장 혐오하던 학생에게 가장 큰 파랑색이 나타나요. 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어서, 그 점에서 질투와 시기가 나타나 미움으로 변질되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튼 오늘은 제가 좀 힘들어서 소고기를 먹어야겠어요. 소고기의 소울메이트는 뭐다? 와! 인! 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내일 하루종일 수업인데..)

잠자냥 2025-11-12 13:16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아메리칸뷰티> 그 아버지도 그렇죠! ㅋㅋㅋㅋㅋ 마자마자 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괜히 극렬하게 게이포비아적인 남자들은 좀 자기 욕망이나 성(적취)향을 곰곰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영화나 문학 속에서 극렬 게이포비아들은 결국 보면 게이에게 끌리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

소고기엔 와인! 그러나 낼 종일 수업이라면 반병만....

꼬마요정 2025-11-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비싼데… 흑흑 근데 생각보다 곧잘 사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장바구니로… ㅎㅎㅎ 리뷰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요. ㅎㅎㅎ

잠자냥 2025-11-12 10:38   좋아요 1 | URL
맛있어서 어쩔수가없다! ㅋㅋㅋㅋ
전자책으로 구매하시면 좀 더 쌉니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