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노경아 옮김 / 느린서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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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노동과 돌봄이 분리되지 않았고(정확하게는 분리될 수 없었고) 자본주의는 이 2가지를 공간적으로 완벽하게 분리해버렸다. 시장은 돌봄을 노동(급여를 받아 가치를 창출하는 시장에서의 노동)에서 쫒아내벼렸고, 따라서 돌봄은 가족애라는 신성 명제의 등장과 함께 온전히 여성의 의무로 규정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빠나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딸이 10대 초반부터 공장에 가서 돈을 버는 K장녀 신화의 등장, 며느리가 된 여성이 병든 시부모나 남편을 봉양하는 효부 신화같은 것들이 노동을 노동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좀 오래된 이야기인데 내 여동생은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서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10여년간 돌아가실 때까지 돌봤다.  이렇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 구청에서 연락이 왔단다. 효부상을 주고 싶다고.... ㅎㅎ  이 건은 친정어머니의 "그런 상 받으면 뒷말만 많이 나오고 귀찮기만 하다. 니가 뭐 하나만 조금 삐끗해도 효부상 받은게 맞니 틀리니 하는게 사람들이다. 하나도 좋을거 없다"라는 강경한 말씀과 딱히 핅요도 없고 웃긴 상이라는 여동생의 냉소로 결국 여동생은 이 상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게 이 시대의 이런 상도 친정어머니를 돌보거나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경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거 같다. 아니면 그런 경우 자체가 희귀했던거 같다.

  

 어쨌든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내가 제대로 아는게 아니었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은 도표를 보았을 때다.



  

  이 도표에 의하면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배출하는 산업 폐기물과 노동 시장이 부려먹을 대로 부려먹고 더 이상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때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노인, 환자, 장애인은 동률의 선에 위치한다. 자본주의의 공장들이 산업 폐기물을 아무렇게나 버렸듯이, 쓸모없어 진 노동력도 배출하고 나면 그들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시장은 관심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시장이 노동력 제공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거나 아니면 그 시장의 세금을 계속 받아먹은 국가가 노동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당연한 거 같은데 시장도 국가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되면 불만이 생길 테니 이 불만은 가장 싼 방법으로 무마한다. 그게 바로 효부상이니 뭐니 하는 장치들이다. 국가가 나서서 가족 이데올로기를 알아서 홍보해주고 효부상이니 뭐니 하는 장치를 통해 시장의 잔인함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이전의 나의 생각은 돌봄 노동이 노동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것을 복지 시스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저런 도표 하나로 너무 명쾌해진다. 돌봄 노동이 노동으로 취급되지 못한 것은 자본주의 시장 자체의 원죄였음을.... 결국 산업 폐기물이 지구를 황폐화 시키듯, 임금 노동을 할  수 없는, 또는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돌봄의 부재는 모든 인간의 삶을 황폐화 시킬 것이다. 고령화 사회라는 것은 결국 환자와 노인과 장애인이 증가하는 것의 다른 말이니 말이다.


  여전히 지금도 자본주의는 시장에서 밀려난 노동력에 대한 돌봄노동을 가정과 여성의 문제로 밀어내고 있다. 여성의 인권, 정치적 권리, 사회적 평등은 일견 많이 나아진듯하다가도 돌봄노동의 영역에 가면 오히려 더 많은 부불노동(무임금 노동)으로 채워진다. 작가가 말하는 페미니즘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에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은(중략) 왜 인간의 생명을 낳고 기르고 그 죽음을 돌보는 노동(재생산 또는 돌봄 노동)이 다른 모든 노동의 하위로 취급되는가 하는 근원적 문제다. 이 의문이 풀릴 때까지 페미니즘의 과제는 사라지지 않을 뿐이다. -27쪽,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재인용, 1990


  나는 항상 페미니즘은 세상을 보는 시각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왔다. 철학은 결국 세상을 보는 시각이고, 페미니즘은 기존의 철학의 시선이 놓친 틈을 기꺼이 벌려서 "자 보라고 이게 사소한 틈이 아니야. 이 틈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해 왔으니 이제라도 제대로 보자고"라는 말로 느껴왔었다. 짧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페미니즘의 문제를 확인하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명제,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명제를 확인한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상이 페미니즘이다.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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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6-05-15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 도서들 확인하러 알라딘에 접속하면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눈여겨 보곤 했는데, 이 책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책을 통해서 배우는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이 우에노 지즈코에요. 바람돌이님이 인용한 문장은 저도 공감합니다. 제가 우에노 지즈코를 존경하는 이유가 한 문장에 나와 있습니다. ^^

바람돌이 2026-05-15 13:04   좋아요 0 | URL
여러분들이 우에노 지즈코의 책 이야기를 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이 마침 분량이 작아서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강연을 모은 책이었는데 분량보다 훨씬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습니다.다른 책도 챙겨서 읽어야겠구나 했어요. 저 한문장은 정말 강렬하죠. 중요한 것을 한마디의 명제로 압축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진정한 능력인듯합니다. ^^

희선 2026-05-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쓰신 제목이 좋네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먼 듯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늘어난다면 조금 달라지겠지요


희선
 
방문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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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기이함이 주는 긴장감, 열폭하게 하는 FBI, 자기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뇌하는 잭 리처. 이 3가지가 별 5개를 주고싶게 한다. 그러나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의 느슨함과 갑작스러움, 범인이 마지막 범죄를 왜 했을까에 대한 개연성부족이 별 1개를 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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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리처의 팬들은 이번 책을 좋아할 것이고, 이 책으로 리처에게 입문한다면 실망이라고 말할 듯....그러니까 이번 책은 팬심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리처를 사랑하므로 이번 책은 별 5개로 좋았다.

다락방 2026-04-2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으로 리처 입문하면 좋아할 수 없을거란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는 좋았습니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저도 리처 팬인지라.. 하핫

바람돌이 2026-04-27 22:54   좋아요 0 | URL
팬심을 이기기는 힘들죠. ㅎㅎ 고뇌하는 리처라니 어찌 반하지 않을까요 ? 다음편에는 또 길 떠나는 리처? 아니면 런던 간 리처? 여전히 기대됩니다. ^^
 
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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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 힘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힘을 빼는 일이다.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을 준 글을 읽을 때 독자는 빨리 지친다. 글이 주는 지나친 무거움, 과잉된 비장함 이런 것이 신경의 피로를 빨리 가져오고, 굳이 이렇게 비장하게 얘기해야 될까라는 질문이 자꾸 떠오르다보면 문맥을 놓치고 산만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끝까지 그러했다면 아마도 다 읽어내지는 못했으리라.... 이 소설에는 선생님과 아가씨, 2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은 선생님의 진술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좀 훌륭한 문장 쓰기 연습 공책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힘을 준 문장들의 연속이어서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인내를 갖고 읽어보자. 2부에서는 아가씨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문장들에 지나치게 들어간 힘이 좀 빠지기 시작하는데 난 오히려 여기부터가 좋았다.


  첫 번째 화자인 선생님이 하는 다음 말에서 이 소설의 주제는 이미 제시된다. 이 즈음에서는 독자인 나는 투란도트나 인어공주 이야기의 예를 읽으면서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것인가하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이 일의 처음은 '읽는'데에서 비롯했기에, 나는 그 행위의 목적어가 어떤 사태와 사람에 닿아 있다 할지라도,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 15쪽


  그러나 조금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작가가 말하는 읽는 행위와 그 행위에 필연적으로 잠재한 오독은 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우리도 흔히 마음을 읽는다고 하지 않나? 이 책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일,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는 이들과 그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중 하나인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접촉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읽는다. 찔리고 베이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만지면 그의 기억이 파도처럼 나의 온몸으로 넘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읽어내는 기억, 마음은 거짓 없는, 오독의 가능성이 없는 진짜 마음일까? 기타 선생님의 상처를 통해 기억을 읽어야 할 때 아가씨는 미친 듯이 외친다.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그게 안되면 그냥 상관없는 다른 걸 생각해, 애인 얼굴이라도 떠 올리라고.... 정말로 아가씨는 기타 선생님의 기억을 읽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능력조차도 상대가 마음을 감추려고 한다면, 우리가 읽는 것은 결국 오독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것은 읽기의 불가능성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면 사람의 마음, 그것도 내 옆에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가씨는 오언에게 " 절대로 네 마음은 읽지 않아"라고 하지만 이미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을 읽고 있다. 그렇게 상처를 헤집지 않아도 그의 표정, 말투, 몸짓만으로도 아가씨는 오언의 마음과 진심을 아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우리는 다 알고 느낄 수 있다. 흔히 사기꾼의 말에 넘어간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나를 속였는지 모른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 사기꾼이 감쪽같은게 아니라, 그의 사기를 통해 얻을 댓가에 눈이 먼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마음만 읽은  결과가 사기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진심이면 상대의 진심도 보인다. 아가씨의 너만은 읽지 않겠어는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이지. 너의 마음을 몰라가 아닌 것이다. 


  바로 여기, 안다고 해서 모든 마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데 삶의 괴로움이 있다. 너를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내 삶에 설정한 선을 무너뜨려야 할 때, 너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럴 때 인간은 과연 타인의 마음이 아무리 절절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삶과 마음을 무너뜨려야 함께 할 수 있는 삶은 과연 끝까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읽기의 어려움과 불가능성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읽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임을 내가 너의 마음을 받아들일지의 여부의 문제라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이 소설이 재밌는 것은 그 평범한 결론에 다다르는 여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진리란 결국 가장 쉬운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아가씨가 돌보게 된 어린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너무 평범하고 가볍다.


  그녀는 때린 아이의 어깨를 가만히 붙들고 말한다. 친구를 다치게 하면 안돼. 너 얘랑 친하잖아. 얘도 너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때리고 할퀴고, 상처를 주면 안 돼. 사과할 거지?    -344쪽


  그러니까 이토록 작은 진리에 이르는 것이, 그리고 상처주지 않는 온전한 마음의 교환이 사실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실은 쉬운 것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다만 그 쉬운 것에 도달하기 위해 무수한 오독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게 사람의 마음인 것인가? 내 마음을 아는 것도 어렵지만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서 초반의 그 힘이 잔뜩 들어간 문장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사람의 진심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작가는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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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4-29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와 닿는 바람돌이 님의 리뷰입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 읽으며 고개 끄덕끄덕.^^

그리고 구병모 작가의 만연체 문장은 참…뭐랄까요. 읽어나갈 땐 꽤나 부담스럽기도한데 다 읽고 나면 어? 좋은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자꾸 중독되는 걸까? 싶기도 하더군요.

바람돌이 2026-04-29 14:30   좋아요 1 | URL
구병모 작가의 책은 몇 권 더 읽어야 호불호가 가려질거 같아요.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내 스타일 아니라고해야 할지 좀 헷갈리더라구요. ㅎㅎ 나무님은 많이 읽으셨을테니 나무님의 좋은 느낌을 믿고 따라가겟습니다. ^^
 
세계문학 단편선 미니미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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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촌 레이첼>의 마지막은 내게는 전율이었다. 1951년의 작가가 21세기의 나를 질타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 혹시 이 여자가 살인범이 아닐까 의심하는 너는 뭐냐고, 너는 이미 젊은 과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이 소설 속 주인공을 보고 있었지 않냐고.... 통념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편견, 폭력적 시선에 대해 나에게 묻고 있었다. 그 순간 대프니 듀 모리에는 내 인생의 작가가 되었다. 


  그런 내게도 이 소설을 들 때는 약간의 머뭇거림은 있었다. 장편을 잘 쓰는 작가가 단편도 잘 쓰는 건 아니니 혹시라도 실망해서 내 인생의 작가에 시들해지면 어쩌나 하는 뭐 쓸 데 없는 걱정을 했었다는 말이다. 결론은 그가 쓴 글은 장편도 단편도 모두 같다는 것이다. 뻔히 주어진 주제, 예상 가능한 상황, 그럼에도 마지막의 전율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힘은 역시 대프니 듀 모리에라 감탄하게 만든다.


  작고 소담한 그리고 평화로워 보이는 표지와는 다르게 이 작은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공포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 -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새 떼를 보며 그들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나도 하늘을 날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는게 인간이다. 그런 새떼가 마치 누군가에 이끌린 듯이 엄청난 무리가 되어 인간 세상을 공격할 때 우리 지구의 정복자라 자만하던 인간들이 할 수 있는게 있기나 할까? 지금의 우리의 평화는 그저 새들이, 동물들이, 아니면 주변 이웃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책 없는 낙관에 근거한 건 아닐까? 너무도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새들의 공격과 인간의 대응을 읽으면 아마도 실제로도 그러하리라 하게 된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갔더니 낯선 이들이 집을 차지하고 있고, 집의 가구도 구조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나의 신분을 증명해 줄 이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왜 아무도 나를 모르지? 내 집은 어디에? 기숙 학교에 다니는 내 딸은 또 어디에? "침착해야 해. 심장이 이렇게 미친 듯이 뛰면 안돼. 당장이라도 목구멍에서 울음이 치솟을 것 같지만 그러면 안 돼."라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출구는 없다. 모두가 친절한 얼굴과 친절한 말로 나를 모른다고 한다. 마지막은 슬펐다. 계속 왜? 어떡해야 하지?를 끝도 없이 되뇌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헤매고 있을 앨리스 부인의 모습 때문에.... 그런 결말은 원치 않지만 우리의 끝을 우리는 모르는 거니까.


  마지막 작품은 시력 이상으로 수술을 하고 푸른 렌즈를 끼게 된 부인의 이야기다. 3개의 이야기 중 그나마 어쩌면 코믹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몇 달 만에 푸른 렌즈를 끼고 본 세상은 이게 무슨 말이야?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동물 머리를 하고 있다. 그나마 강아지는 낫다. 그토록 친절하게 나를 보살펴주던 의사와 간호사와 남편 모두가 무섭고 교활하고 언제든지 나를 공격할 거 같은 뱀과 독수리 등등의 머리를 하고 있다니..... 주인공의 공포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꽤 코믹한 상황 아닌가?


  3가지의 단편이 모두 나를 뺀 주변이 나를 공격할 때 내가 느낄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고, 예측 가능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작가의 필력은 대단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 어쩌면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읽을 때까지 내가 숨을 쉬었는지 돌아봐야 하는.....올해는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다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했는데, 이러면 또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을 먼저 다 읽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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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1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의 사촌 레이첼] 이 진짜 좋았어요. 제 경우에는 [레베카] 보다 레이첼이 더 좋았습니다. 크-
저도 대프니 듀 모리에 작품 다 읽어봐야지 싶어서 다른 책도 사두었는데 여태 안읽고 있네요. 하핫;;
<새>라는 단편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요. 히치콕의 새 도 생각나면서요 ㅠㅠ

바람돌이 2026-04-17 09:03   좋아요 0 | URL
저도 레베카보다 레이첼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ㅎㅎ
그리고 저도 원래 날개 달린것들을 무서워하는지라 히치콕의 영화도 안봤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도 두근두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히치콕의 새는 이 단편에서 모티브를 따온거고 많이 덧붙였겠다 싶더라구요. 소설은 공포스러웠지만 그 공포가 길지 않아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6-04-17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촌 레이첼>은 아직 안 읽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집이 있는데 다는 못 읽었답니다. <새>는 좀 충격이었어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왜? 왜? 이랬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공포인 듯 싶었어요. 어쩌면 인간이 하는 행위를 뒤집은 건가 싶기도 하구요. 저도 대프니 듀 모리에 책 다 읽고 싶어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6-04-17 09:08   좋아요 1 | URL
레이첼은 강력 추천합니다. 저는 레베카보다 훨씬 좋았어요. ^^
새는 그렇게 끝나는게 더 무섭지 않았나요? 그런 상황이 정말로 온다면 인간은 그냥 끝이겠구나 싶더라구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으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는 정말 무방비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배신도 아는 사람의 배신이 더 무섭고 고통스러운거겠죠.

단발머리 2026-04-17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프니 듀 모리에 좋아서 유명한 그 두 작품과 <희생양>, <인형>을 읽었어요. <새>가 유명한 작품이던데 무서워서 아직 못 읽고 있었는데, 바람돌이님 리뷰 보니 다시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를 뺀 주변이 나를 공격하는건 망상일텐데, 그게 여성의 목소리일 때, 저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거든요. 역시나, 대프니 듀 모리에입니다!

앗, 그리고 저의 최애도 <나의 사촌 레이첼>이에요~~

바람돌이 2026-04-17 09:12   좋아요 1 | URL
저도 희생양과 인형 찾아서 읽어보려구요. 이 단편집은 총 3편밖에 안 실린 미니미니 책인데 그 3편 모두가 좋았어요. 그 유명한 장편때문에 여성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읽었는데 여기 단편들은 그저 인간 보편으로 읽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 관점도 그 나름대로 충분히 이해가 갔고 저는 좋았어요.

조만간 레이첼 최애모임이라고 한번 개최해야 할까요? ^^

희선 2026-04-18 0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을 모른다고 하면 무서울 것 같네요 꿈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런 꿈 꿀 수도 있겠지요 다른 사람 머리가 동물이 되다니... 렌즈를 빼면 본래대로 보이는 건지...


희선

바람돌이 2026-04-22 16:06   좋아요 0 | URL
아 저 렌즈는 빼면 실명이기 때문에 못뺍니다. 저라면 어쩔까 생각해봤어요. 눈이 안보이는 동안 주인공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매우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눈 뜨자 마자 충격가 경악이 시작되는거죠. 음 그러고 보니 인생의 흔한 아이러니 같네요. ㅎㅎ
 

휴일인데 집에는 둘째랑 나밖에 없네....

휴일만 되면 방구석귀신이 되는 둘째를 '에잇! 방구석 귀신아! 햇빛 공격을 받아랏!' 하면서 끌고 집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투덜투덜에 입 나오기는 했어도 어쨌든 따라 나가 준다. 





벚꽃잎이 바람에 환상적으로 날리지만 카메라로 그 모습이 이쁘게 담기지는 않는다.

화사하게 피었을 때도 이쁘지만, 이렇게 새 잎이 나면서 질 때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도 아름답다.

공원에는 온갖 꽃들이 지천이다.

이제 새 가지와 새 잎이 나기 시작하는 수양버들과 보라유채가 화면에 꽉 차니 실제보다 더 예쁜듯도...

역시 사진은 사기야 



 


화려한 꽃무리가 질린다 싶으면 잘 보이지도 않게 피어 있지만 어떤 꽃보다도 예쁜 민들레의 노란색이 눈에 띈다.

그래 그래 니가 제일 예뻐


 




벚꽃 데크 길에는 가지들이 하천을 향해 낮게 자란다.

그래서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곳곳에 머리 조심이라고 붙여 놓았다.

이렇게....




하지만 나는 조심할 곳이 없구나. 모두 꼿꼿하게 서서 다 통과할 수 있다.

자고로 군자는 함부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법이다. ㅋㅋ



음 아무리 봐도 많이 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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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1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잎 한조각 날리어도 봄빛 줄거늘.....이라는 두보의 시가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바람돌이 2026-04-12 20:07   좋아요 1 | URL
앗 두보의 시 한 자락에 오늘 제 나들이의 품격이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수만 꽃잎이 휘날리는데 저는 슬프지 않고 꽃잎 한번 잡아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주책을 떨었네요. ㅎㅎ

scott 2026-04-12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 하늘은 청명 하네요. 서울은 황사 급습 ㅠㅠ

바람돌이 2026-04-12 20:08   좋아요 1 | URL
며칠 전에 비간 온 뒤 하늘이 청명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여기도 황사....ㅠ.ㅠ 올해는 황사가 유독 심하다 느껴졌는데 이것도 전쟁때문인지....

곰돌이 2026-04-12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처럼 말씀하시면 전 언제든 따라나갈 것 같아요! 나무들이 바람돌이님은 귀빈이라고 ‘머리조심’ 안 해도 되게 길을 훤히 열어줬네요? ㅎㅎ
투덜투덜 입은 나와도 늘 따라나와 주는 따님과 산책길 프리패스 특권을 누리는 바람돌이님 두 분 다 너무 귀여우세요!

바람돌이 2026-04-12 20:09   좋아요 1 | URL
그냥 제가 작은거지요. ㅋㅋ 오랜만에 딸래미랑 나가서 저만 좋았습니다. 투덜 투덜하는 딸래미는 딱히....ㅎㅎ

책읽는나무 2026-04-12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ㅋㅋㅋㅋ
일부러 높은 가지를 선택하신 거죠?^^
우리집도 이젠 딸들이랑 아들은 절대 산책길에 따라나서지 않는 나이가 됐네요.ㅜ.ㅜ
한 번 데리고 나가려면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것 같아요. 귀하신 몸들인지?
그래도 둘째 따님은 엄마를 따라 산책길에 함께 한다니 효녀네요. 효녀!^^
작년 가을이었나? 암튼 온천천?쪽 길을 걸었던 적 있었거든요. 와! 풍경이 정말 멋졌어요.
좋은 곳에 사시는구나! 감탄했더라는.^^

바람돌이 2026-04-12 21:45   좋아요 1 | URL
하하 그럴리가요? 저 나뭇가지 그냥 보면 수그려야 할 것 같이 낮다니까요? 근데 전 통과예요. ㅋㅋ
둘째가 저 따라 산책 나간거 올해 처음입니다. 차라리 큰 딸이 자주 나가요. 굳이 꼬시지 않아도 시간만 되면 나가줘요. 둘째 저 녀석은 게을러서 통 움직이지 않는 방구석 귀신이라니까요? ㅎㅎ
어쩌다 보니 온천천 이쪽과 저쪽에서 산게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온천천 때문에 딴데 이사갈 생각이 안나요. 처음에 자리를 운좋게 잘 선택한거죠 뭐. 그리고 제가 집 구할 때 이 동네 집값이 별로 안 비쌌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6-04-12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 상가 양쪽으로 쭈욱 벚꽃이 피었어요. 큰 길 양쪽으로 치킨집 빨간 식탁이 ㅋㅋㅋㅋㅋㅋ문전성시의 기적이 ㅋㅋㅋㅋ
옆에 이렇게 깨끗한 하천이라니 산책할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아요. 그래도 산책길 따라나선 딸롱이 너무 이쁜데요*^^*

바람돌이 2026-04-12 21:47   좋아요 1 | URL
벚꽃 철이 되면 길 주변 가게들이 터져 나가죠. 저희 동네도 한 2주동안은 사람들로 난리였어요. 그래서 전 오히려 그 기간에는 밥집도 우리 동네 말고 옆동네 가요. 웨이팅 너무 길어서.... ㅋㅋ
저 하천이 엄청나게 길어요. 끝에서 끝까지는 저도 못가봤어요. 어쨋든 집앞에 저런 하천이 있어서 좋기는 해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6-04-1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 지난 주 바람 불고 비오면서 벚꽃엔딩이 되버린... 그래도 간혹 남아 있는 벚꽃이 있더라구요. 저는 머리조심이라는 경고 문구를 못 보고 매번 부딪친 척이 수두룩하답니다. 키도 적당하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한 두번 한 게 아니라는!ㅋㅋ
어쨌든 좋은 계절입니다. 하늘도 파랗고 적당히 바람이 불고 볕은 따뜻하고~ 남은 봄을 만끽해야겠어요^^

바람돌이 2026-04-13 14:17   좋아요 0 | URL
벚꽃이 떨어져도 봄이지요. 벚꽃엔딩이후에 더 많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는걸요. ^^
화가님은 부딪일수 있군요. 저는 부딪히고 싶어도 못해요. 그것도 나름 슬픔입니다. 항상 아랫 공기만 마시는 자의 슬픔요. ㅠ.ㅠ

감은빛 2026-04-15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에 제법 거리가 있는 곳으로 배송을 다녀왔는데, 북한산 자락을 따라 돌면서 송추까지 편도 25분 이상 운전을 했어요. 길 양 옆으로 분홍색 꽃들이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더라구요. 서울에서는 이제 벚꽃이 대부분 지고 있었는데, 여기는 한창 만개한 모습이었습니다.

올 봄에는 여기저기 배송 다니면서 여러 동네의 벚꽃들을 구경했네요. 평소엔 꽃구경 따위 관심도 없는데, 올해도 관심이 없는 건 같지만 관심과 상관없이 일을 하면서 평생 본 것보다 더 많은 꽃들을 봤네요.

바람돌이 2026-04-15 10:28   좋아요 0 | URL
일로 여러 곳을 다니는것과 꽃놀이나 산책을 하면서 보는 풍경은 다르겠죠. 내 마음이 바쁠 때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그래서 감은빛님께 예쁜 벚꽃 많이 봐서 좋으시겠다라는 말씀은 못드리지만, 그래도 우리 마음 한 켠에 꽃 한번 보면서 아 봄이구나 하는 마음쯤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거 같아요. ^^

2026-04-18 0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22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