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여동생과 나
우리집 여자 셋은 유난히 사이가 좋다.
그럼에도 여자 셋만 여행을 가는건 각자의 사정상 쉽지 않았었다. 일단 친정아버지가 계시고....
이번에 내가 그냥 단호하게 호텔 예약하고 셋이서 가자고 했는데 정말 어제는 며칠 전 읽은 올랜도처럼 신난다 신난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동생이 얘기하기를 어제는 퇴근하는데 입이 안다물어져서 사람들이 복권 당첨이라도 된줄 알더라고.... ㅎㅎ


하여튼 이번에는 전주 호텔을 예약.
친정 부모님과 가는 여행은 항상 대가족모드라 리조트 아니면 펜션이어서 사실 늙으신 엄마는 호텔을 처음 가는거다.
엄마가 너무 좋아하셔서 일단 성공이고 흐뭇하고....


호텔 2층창에 새겨진 저 문구
그래 전주 오길 잘했어.

그런데 호텔이 처음인 엄마를 위해서 두달전에 이 호텔 예약할 때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아보려고 와인과 치즈 플래터를 룸서비스로 미리 주문했었다.
생각보다 이 와인 세트가 가성비가 좋아서 좋아라 주문하고 호텔에서 폼잡고 와인 마셔야지했는데....
그리고 내가 호텔 예약할 때 무슨 이벤트같은게 있었던거 같은데 그건 생각도 안하고 그냥 예약 끝.

오늘 호텔 와서 체크인 하니까 당연히 주문하신 와인 세트는 언제 올려드릴까요 해서 지금요하고 받기로 하고 끝났나 했더니 이것 저것 쿠폰을 더 준다.
요건 어디 가면 와인 선물 줄거예요. 그리고 또 이건 카페쪽 가면 맥주로 바꿀 수 있어요.
아니 이겟들이 다 뭐예요?
고객님이 예약하신 패키지에 다 들어 있는거예요?
뭐라고요? 아 정말 신난다 신난다
그래서 받은 것 모두가 아래 사진이요.

와인 2병에 캔맥주 3개 치즈 플래터 그리고 여행용 와인잔 2개까지...
완전 술잔치
엄마는 맥주 한잔도 다 못드시고, 동생도 많이 먹지는 못하고 너 혼자서 저거 다 먹으면 꽐라 되겠다. ㅎㅎ

따로 주문했던 와인이 생각보다 맛있어 엄마와 여동생이 너무 좋아하고, 결국 맥주까지 클리어
나머지 와인 한병은 고이 집으로 가져가기로....

나는 내가 늘 술에 진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공짜 술만 가득 주는 패키지를 나도 모르게 선택할줄이야.... ㅎㅎ
눈내리는 좋은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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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2-01-20 0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 알콜량이 상당해보이는데요?^^ 행복한 여행 다녀오시길.

바람돌이 2022-01-20 11:36   좋아요 1 | URL
아침에 콩나물국밥으로 해장하고 커피 테이크아웃 해와서 호텔방에서 한옥뷰보며 먹으니 아침까지 완벽합니다.

페넬로페 2022-01-20 01: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 모녀의 여행!
정겹고 따스합니다.
저도 엄마, 언니랑 여행 자주 다니는데 담엔 전주 한 번 도전해봐야겠어요^^
좋은 추억 쌓으시길 바래요^^

바람돌이 2022-01-20 11:37   좋아요 2 | URL
전주 제가 묵은 호텔은 라한호텔이구요. 한옥마을을 둘러보기는 최고의 위치이고 주차 서비스가 좋습니다. 이 호텔은 호텔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는게 이런 저런 혜택들이 좀 있어 더 좋더라구요.

hnine 2022-01-20 04: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주 가길 잘했어~ 라며 나중에 세모녀분 추억하실 멋진 이벤트가 되었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01-20 14:32   좋아요 1 | URL
엄마가 너무 좋아하세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있는 여행입니다. ^^

새파랑 2022-01-20 06: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부럽네요. 럭셔리한 여행을 하셨군요~!! 그런데 전주에서는 막걸리를 드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

바람돌이 2022-01-20 11:40   좋아요 3 | URL
아 새파랑님 이런 뼈때리는 소리를.... 사실은 저녁밥먹으면서 막걸리는 이미 한사발 먹고 와서 이게 2차라는.... ㅠㅠ

잠자냥 2022-01-20 1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면 다 먹어드릴 수 있는데! ㅋㅋㅋㅋㅋ

모나리자 2022-01-2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옥마을 같은데요? 예전 학창시절 오목대에서 배트민턴 치던 추억이 떠올라요.ㅎ
전주의 명품 비빔밥도 드셔야죠~ 제주도 여행에 전주 여행까지 좋은 시간 보내시는군요.^^

그레이스 2022-01-20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주에서 와인과 치즈플래터 ?! ㅎㅎ
너무 좋으시겠어요
얼마전에 제주도도 다녀오셨던데 ... 이번 겨울은 추억쌓기 중이시네요~♡

scott 2022-01-20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바람돌이님 멋진딸! ㅎㅎ제주도 찍고 전주로 어머니 모시고 슈웅~~~ 전주 호텔의 포근하고 푸짐함이 느껴집니다!춥지만 않다면 전주 자전거로 둘러 보는거 추천 하고 싶은데!! 멋진 사진 많이 찍고 ! 추억 가득 만들어 오세요 ^^
 
















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전기를 쓰는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가 문제다. 비타는 올랜도라는 젊은 귀족 남성이 돼야 한다. 리튼도 써야 한다. 사실 그대로. 그러나 환상적이어야 한다. (울프 일기 195쪽)


이 짤막한 일기 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의 시작을 알 수 있다.

걸작 <등대로>를 쓰고 난 이후 지친 몸과 마음을 풀어주고자 약간 장난스런 기분으로 쉬는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이 바로 <올랜도>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를 주인공의 모델로 하면서 연대기를 쓰듯 또는 연애편지처럼 가볍게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의 시작은 다른 버지니아 울프의 책처럼 어렵지 않다.


16세기 끄트머리 이제 열일곱살이 된 올랜도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아름다운 귀족 소년이다.

얼마나 귀족이냐고?

그의 집에 엘라자베스 1세가 방문할 정도로.....

그 여왕의 방문의 날 그는 여왕을 만나러 가는 길에 식탁옆에서 종이와 맥주를 마주한 뚱뚱하고 초라해보이는 남자를 스쳐지나가는데 그는 바로 세익스피어.

그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은 문학에 대한 올랜도 평생의 희구를 암시한다.


여왕은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그를 궁정으로 불러 궁정귀족의 지위를 주고 그는 귀족청년으로서 승승장구한다.

그가 러시아의 공주 사샤를 만나기 전까지는....

약혼자가 있음에도 사샤에게 빠져드는 올랜도, 첫사랑은 너무도 강력하여 그의 눈과 정신 모두를 멀게 하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걸 버릴 수 있는 청년으로 만든다.

세상에 어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이 광기야말로 젊음의 특권인것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사샤는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많은 것이 복잡해보이는 여인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주인공은 올랜도이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둘이서 떠나자고 약속한날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그날 내린 비로 런던의 얼음이 모두 녹아 런던은 대홍수에 휩싸인다. 

사나운 흙탕물이 쏟아지는 광경 속 수많은 집들과 사람들이 하염없이 떠내려가면서 보이는 온갖 광경의 묘사는 압권이다. 

떠내려 가는 얼음조각들 위에서 무릎을 꿇은 사람,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이, 성경을 읽는 사람, 개과천선을 맹세하며 기도하는 사람, 멍한 사람, 허세를 부리며 노래하는 사람, 아일랜드인에게 이 재해의 책임을 돌리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 자신의 은주전자 같은 보물들이 가라앉는걸 차마 보지 못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 한 페이지의 묘사에 온갖 인간의 모습이 모두 자리잡은듯 하다.

이전 <등대로>에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결국 올랜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러시아로 떠나는 사샤의 배다.

첫사랑의 배신 앞에 놓인 올랜도에게 다다른건 부서진 옹기 하나와 지푸라기 하나(59쪽)다.

그의 젊음의 한 때가 끝났다. 


나는 <올랜도>를 반쯤 장난스런 문체로,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환상은 주의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울프 일기 201쪽)


아직은 그래 아직은 괜찮다. 읽을만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일기에서 얘기하듯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지 않은가말이다.

실연 후 올랜도는 궁정에서 쫒겨나다시피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잠에 빠진다. 

이번의 첫 잠은 그리 길지 않다. 일주일.

첫사랑의 아픔이란 격렬할 뿐 그리 깊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의 생활은 고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고독해지는 순간 자기 내면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고, 올랜도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필생의 작업이 될 그의 단 하나의 작품 <참나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쓰야할지 모른다.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들은 어쩌면 울프 자신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랜도는 그래서 도움을 줄 사람을 구하기로 하고, 이 때 등장하는 인물이 니콜라스 그린이라는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야말로 뻔뻔한 사기꾼에 가까운 이로 올랜도의 글에는 관심이 없다.

자만에 가까운 자의식에 가득찬 이 인물은 자신이 필생의 역작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줄 후원자가 필요했을 뿐.....

니콜라스 그린과의 관계 역시 당연하게 인간에 대한 환멸과 배신으로 끝난다.

올랜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 없이 누군가에 기대 삶의 기쁨을 찾거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그린과의 관계가 보여준다. 여인이든 시인이든 관계의 끝이 허망한 것은 똑같다.

2장에서 올랜도의 삶은 고독을 지나 이제 다른 인생의 기쁨을 찾기 위한 온갖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파티, 집장식, 전원생활 등등등....

그러나 그가 진정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그의 조용한 방에서 <참나무, 한수의 시>를 쓰고 또 쓸 때이다.

지워지는 것이 많아 늘 처음 시작점과 쓰여진 양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글은 현란함은 다듬어지고, 그의 장광설은 억제되었으며, 산문의 시대가 따뜻한 샘을 얼어붙게하고 있었다. (101쪽)

이런 올랜도에게 다시 자칭 루마니아의 대공부인 해리엇 그리젤다라고 하는 여인이 찾아온다.

올랜도의 초상화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며 올랜도의 집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는 매일 찾아오는 이 여인의 존재는 수상쩍다.

그 수상쩍음이 무엇이었는가는 책의 뒤편에 다시 등장한다.

기대하시라...... 입이 딱 벌어진다. 

어쨌든 이 여인의 구애는 올랜도를 곤혹스럽게 하고 도피하고싶게 만든다.

올랜도는 이제 터키 대사가 되어 터키로 떠난다.


<올랜도>, 이것이 이번 가을의 중심 과제다. 평론을 쓰고 있을 때는 하루나 이틀 아침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다. 오늘 아침에 제3장을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뭔가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농담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이한 문장이 좋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시도해본 양식도 마음에 든다. 물론 깊이가 너무 없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겨놓은듯. (울프 일기 202쪽)


깊이가 없다뇨. 

버지니아 언니 책 중에 이정도로라도 책장이 넘어가 주는 책은 이 책밖에 없었다고요.

그리고 이걸 평이하다고 하다뇨. 그저 등대로나 델러웨이 부인에 비해서 읽기가 좀 나은건 맞지만 이걸 평이하다고 하면 언니의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건가요?

그럼에도 언니의 문장은 여전히 사람을 혹 빨아들이니 그냥 계속 깊이가 없는 채로 가주시는건 어떨지요라고 막막 주장하고 싶은데.....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게 있던가? 책도 내가 작가가 아니니 뜻대로 안 될게 뻔하고말이다.


터키대사로 콘스탄티노플로 간 올랜도는 매일 아무 의미없는 형식적인 외교적인 절차를 되풀이한 덕분에 공을 인정받아 공작도 되고 출세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는 어디서나 화제 만발이고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하다.

그리고 공작의 관을 쓰던 날 올랜도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그의 꿈속에 순결, 정절, 겸손의 여신들이 들어와 올랜도에게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붓고, 진실을 외치는 고함들속에서 올랜드는 깨어난다.

이제 그는 여자가 되었다. 

이제 올랜도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집시와의 방랑이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다가 이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여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에 대한 올랜도의 생각은 "여성들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 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139쪽)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남성으로서의 올랜도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이제 올랜도에게 다가온다.

자유롭게 살던 남성 올랜도는 여성적 미덕들로 추앙받는 것들이 그저 참고 견디는 훈련을 통해 강제된 것일 뿐이며, 남성일 때는 중요하지 않던 옷이 여성일 때는 다른 사람의 존중과 친절을 얻어 낼 때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심지어는 이제 여성이 된 그녀는 남성이 없이는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인간 올랜도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여성 올랜도는 남성 올랜도와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전에 올랜도를 터키로 가게 했던 지겨운 루마니아 대공부인 해리엇이 다시 등장한다.

심지어 남자로.... 그는 해리엇 대공부인이 아니라 해리 대공이었던 것이다.

올랜도처럼 성별이 바뀐 것은 아니고 같은 성별인 올랜도의 초상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가 여장을 하고 올랜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의 집 근처로 왔던 것.

이제는 올랜도가 여자가 되었으니 그는 여장을 멈추고 남성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인다.

아 이정도면 찐사랑인가?

올랜도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이 올랜도만을 바라고, 그는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므로 올랜도는 그런 맹목적인 구애에 당혹해하고 벗어나고싶을 뿐이다.

사실 이게 현실이지. 그리고 올랜도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맹목적인 사랑에 기대어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올랜도는 올랜도 자신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찾고 있다.

그녀의 내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혼재해 있어, 하나의 성이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다음에는 다른 성이 우위에 서고(167쪽) 있는 중이다.


<올랜도>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쩌다 그처럼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마치 태어나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밀쳐낸 듯하다..... 정신은 풍자적이고, 구조는 환상적이다. 정확히 그렇다. (울프 일기 206쪽)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빨리 썼다. 이 책은 전체가 농담이다. 그러나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울프 일기 212쪽)

다루고 있는 소재가 더 재미있으며, 인생에 더 애착이 있으며, 더 폭이 넓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장난삼아 시작했던 일이 뒤에 가서는 진지해진 것이다. 그래서 통일성이 부족해졌다. (울프 일기 218쪽)


<올랜도>에서 시간은 순차적인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

300년을 산 올랜도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잠이 들고 어느 지점에서 훅 시간이 지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100년전의 사람이 그대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맹목적으로 올랜도에게 구애하는 루마니아 대공이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300년의 시간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미리 포기하고 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듯이 이 책은 환상에 그 구조를 두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고 하는 질문은 살짝 접어두어야 한다.

5장에 이르면 이제 19세기다. 

5장의 시작은 19세기 영국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영국의 기후 변화와 그것이 인간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 남녀의 성차가 오히려 강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현실등을 묘사하는데서는 그녀가 얼마나 민감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신 내에서 자아를 완성해가는 올랜도는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인생! 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 남편!"이 아니라...

그러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시대정신은 여성에게 철저하게 억압적이었고, 이전의 보다 느슨한 사회를 살아왔던 올랜도에게는 구속과 패배로 느껴진다.(여기서 영국인인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 나라의 각 시대에 대한 평가도 엿볼수 있다.특히 여성의 위치에 입각한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복장이 크리놀린 드레스라면 올랜도에게 이 드레스는 자유로운 삶을 구속하는 억압에 다름 아니다.(크리놀린 드레스는 옷 자체로 여성억압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허리를 극단적으로 조이는 모습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리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이 드레스는 이후 어떤 저택에 화재가 났는데 남자들은 다 무사히 탈출했는데 크리놀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작은 문을 통과하지 못해 대부분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이후 엉덩이 부분만 부풀린 버슬 드레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영화 올란도의 한 장면>


소설 <올랜도>에서는 이처럼 곳곳에서 복장을 매개로 한 여성 억압과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는 곳이 등장한다.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예리한 시선이 미치지 않은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잠시 올랜도는 시대정신에 굴복해 결혼을 열망하지만 이 열망은 진정한 열망이 아니라 시대에 어떻게든 편승해보려고 결혼을 열망하는 듯이 자신을 속여보기도 하고, 몰래 결혼반지로 유행하는 스타일의 금반지를 사서 손가락에 끼워보기도 한다. 

또한 점차 자신을 잃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지는 자신의 행동양식, 마음의 변화에도 당황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정말 버지니아 울프만이 할 수 있는 서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자연과 주인공의 마음을 교차시키면서 온갖 비유들을 모두 주인공의 심리변화에 복속시키는 길고 긴 서술이 장황하지 않게 주인공의 마음에 독자가 깊이 감정입하도록 고조시키는 글쓰기의 힘은 박력 그 자체다.

이러니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 빨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든 모두가 예상하듯이 올랜도는 자랑스럽게 이런 굴복에서 벗어난다.

올랜도가 누구인가?

300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온갖 삶의 과정과 심지어 여성과 남성의 삶까지 모두 섭렵한 인물이 아닌가?

이런 인물이 비인간적인 시대적 억압에 굴복한다면 이 소설은 살아남지 못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잃어간다는 초초감속에서 헤매이는 순간 올랜도에게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 

그들은 만난지 몇 분만에 약혼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쉘, 당신은 여자예요!" 그녀가 외쳤다.

"당신은 남자예요, 올랜도!" 그가 외쳤다.(221쪽)

어느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이 남자에게도 올랜도에게도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다.

그들은 둘 다 남자일수도 여자일수도 있는 그저 자존감과 자신의 고유성과 삶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된다.

올랜도와 달리 이 남자에게는 어떤 구체성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는 올랜도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바람이 불면 항해를 위해 떠난다.

사랑과 결혼이 서로의 삶의 형태를 간섭하지도 바꾸지도 않는다.

각자 자기의 삶을 살고 그리고 사랑한다.

이제 올랜도는 자신의 필생의 과업인 <참나무>시를 완성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234쪽)


올랜도는 이제 마음껏 "신난다. 신난다."를 외칠 수 있는 인간, 세상이 바뀌어도  불변하는 것이 있음을 자각하고 누릴 수 있는 인간, 삶의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으로 드디어 태어난다.


그러나 <올랜도>는 확실하고 분명하고 압도적인 충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기분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울프일기 232쪽)


확실히 <올랜도>는 이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와는 많이 다른 책이다.

아마도 맘껏 상상하고 환상을 창조하고 싶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이 반영된 탓일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누가 봐도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라는 것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온갖 사물과 상황과 정경들을 주인공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서술이 버지니아 울프의 것이 아니라면 누구의 것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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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1-19 00:3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랜도를 울프 일기와 함께 읽었어요.
그래서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정말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면 이 소설을 누가 쓸 수 있을까요!
그냥 올랜도가 버지니아 같았어요^^

바람돌이 2022-01-19 00:57   좋아요 5 | URL
작년에 이어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에 계속 도전 중입니다. 읽다보니 올랜도가 처음과 뒷부분이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좀 고전햇어요. 그래서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사두었던 울프일기를 펼쳐 읽었는데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되더라구요. 버지니아는 이 책을 비타에게 헌정하고 그녀를 모델로 했다지만 저도 오히려 버지니아 그녀 자신으로 읽히더라구요.

새파랑 2022-01-19 00:36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은 <올랜도>를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 저는 울프 책중 이 책이 제일 어려웠어요 ㅎㅎ 시대와 공간이 급하게 변하다 보니 못따라가겠더라구요 ㅋ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셔서 더 좋았을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19 00:59   좋아요 5 | URL
이 책이 초반에 좀 읽기 쉬워서 오 버지니아 울프 언니 고마워요 읽다가, 뒷쪽에서 뒤통수 확 후려치는.... ㅎㅎ
그래서 저는 울프일기도 같이 읽었지만, 이 글 쓰면서 거의 책을 다시 보다시피 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등대로보다 더 어렵다는 느낌 이해가 가기도 해요. 뒷부분 읽으면서는 저도 막 그런 느낌이 들더라구요. ^^

희선 2022-01-19 0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랜도는 삼백년이나 살았군요 시간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다니...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을 즐겁게 쓴 것 같네요 자신도 올랜도처럼 되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결혼도 그때와는 많이 달랐겠습니다 이것도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는 거였겠네요


희선

골드문트 2022-01-19 06:23   좋아요 4 | URL
올랜도, 아직 살아 있어요. 어제 신도림역 3번 출구에서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민 온 건 아니고 잠깐 다니러 왔다고 BBC에서 얘기했던 게 기억나기도 하고요. 영어방송이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tella.K 2022-01-19 15:51   좋아요 1 | URL
골드문트님 또 취기가 오르셨나 봅니다. ㅋㅋ

다락방 2022-01-19 08: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울프 일기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된다니, 좋은 팁 얻어갑니다. 일단 그러면 울프 일기를 사야겠네요. 이런 참...

책읽는나무 2022-01-19 0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꿀팁이에요^^
예전에 울프 책 읽다가 어려워 포기했었는데 전작하려고 일단 조금씩 책 사다 놓기만 하고 있거든요. 올랜도 책 보니까 솔 책인 것 같아 반가웠어요. 저도 솔 출판사로 깔맞춤 결정 내려 현재 두 권 모셔 놓았습니다ㅋㅋㅋ
그런데 울프 일기도 미리 읽어야 하는군요??
아........

미미 2022-01-19 09: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울프일기는 조금 읽다 말았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는 줄 알았으면 <올랜도>읽을 때 같이 볼껄 그랬어요! 바람돌이님 이 글, <올랜도>를 앞으로 읽을 분들에게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줄 듯 합니다. 다시 감동이 살아나면서 한 번 더 읽은 기분이예요 ^^ <올랜도>도 재독하고 싶어졌어요!!

단발머리 2022-01-1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울프 전집읽기 계획 세우고 딱 두 권 읽었거든요. 아.... <올랜도> 읽을 때 일기도 같이 읽었어야 하는 것을.
바람돌이님 계속 읽으신다고 하시니 저도 슬쩍 다시 계획세워볼까 합니다.

stella.K 2022-01-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옷 때문에 불타죽다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까마득히 오래 전에 <댈러웨이 부인> 읽다 포기한 적이 있는데
<올랜도>는 정말 흥미롭네요. 울프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영화도 함 봐야겠군요.^^

그레이스 2022-01-19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타지같은 이야기 !
21년에 읽었는데 굉장히 오래된것 같은 건 소설내용때문일까요?
 

 죽음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곳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목격해온 폐허의 적막과고요는 어디까지나 살아서 그것을 목격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적어도 죽어가는 이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 P30

나는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셀을 만난다. 그는 무너져 내리는 도시를 지키며 소리 내어 웃고 있다. 파편들이셀의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아닌 라이오니가 있다. 죽어가는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는 셀의 손을 잡는다. 둘은 멸망을 맞이하고 있지만 불행하지 않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원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최후이자 유일한 존재였던 라이오니의 모습을,
- P53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은 플루이드를 우연히 경험한사람들, 모그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전환을 고민해요. 플루이드는 모그가 된다는 게 결핍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요. 변화인 거죠. 어쩌면 진보일 수도 있어요."
- P85

 그럴 때 움직임은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내재된것이었다. 근육 속에, 피부의 표면 아래, 혈관 속에. 마리와춤을 출 때 나는 구체성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웠다.
- P86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어떤 선택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않은 채 계속 모그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사회적인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분명히 그런 선택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시 시각을 회복했지만, 이제야 모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논쟁적인 선택은 모그에 관한 다른 논쟁들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모그들의 존재를 갑작스레 알아차렸고, 그 사실에 놀랐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은 그 사건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 P94

봐, 지금도 그 팔이 너를 만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포옹할 때 나는 세 번째 손을 이용해서 네 뺨을 쓰다듬어.
그런데 그게 사실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내가 어떤 틈새에 낀 존재 같다고 느껴, 진, 네 감정에 대해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냐. 내가 너라면,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도 생각했어."
- P118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 P126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조안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안도 그것을 느낄까.
아마도 말과 말 사이에 벽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단회는 생각했다. 조안과 숨그림자의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기위해서는 이중 통역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했다. 조안과의대화는 매우 느렸다.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 P169

"사람들이 나를 위해 대화를 멈춘 적 있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서로 주고받는 걸 중단한 적이 있어?
공기가 침묵으로 가득 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 그런 적이 없다면, 나는 여기 속한 적이 없는 거야."
- P174

우리의 긴 삶에 비하면 너희의 삶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 그러니까우리가 행성의 시간을 나누어 줄게.
그리고 그들은 오랜 잠에 빠져들었어요.
- P223

"그렇게 말하지만, 너도 이 순간을 잊게 될걸."
"어째서?"
"공동 지식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감정과 생각나 일상은 시시하고 단조로워. 기억할 가치조차 없을 거야. 우린 더위대한 세계를 만나게 될 거야."
- P237

그 이후로 나는 이브를 피했다. 공동 지식에 자신의 뇌를 넘기지 않겠다는 그 애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만약 이브의 말을 인정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헌신해온 이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이브는 몇 번이고 나를 설득하기 위해 내 집 앞에 찾아왔으나, 도저히 이브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 P262

한동안 이브는 격자 구조물의 어딘가에 남아 있겠지만, 나중에는 그 위에 새로운 정보가 덧씌워질 것이다. 모든 기억은 낡아가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 가치를 시험당하며, 남을 가치가 없는 기억은 지워진다.
- P264

인지 공간이 모든 지식을 제공하는데 왜 개별적인 인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별들을 기억하기에 하나의 인지 공간은 너무 작거든.
그래서 우린 그 기억들을 나눠 가져야 해.
- P266

불변하는 진리는 모두의 인지 속에서 동일해야 한다고사람들은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스피어가 정말로 분열일까? 스피어를 갖게 된 우리는 정말로 같은 격자를 보고도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공동 인지 공간을 거닐면서도각자의 스피어를 통해 진리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게 될지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진실을 만들어내는 다른 방법일 수도 있다.
만약 이 인지 공간이 우리의 확장된 사고라면, 그 사고가 우리의 개별적인 영혼에 깃들지 못할 이유는 어디 있을까?
- P268

우리는 다르게 보고 듣고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말로각자 다른 인지적 세계를 살고 있다. 그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잠시나마 겹칠 수 있을까, 그 세계 사이에 어떻게 접촉면 혹은 선이나 점, 공유되는 공간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난 몇 년간 소설을 쓰며 내가 고심해온 주제였다. 그 세계들은 결코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다. 우리는 광막한 우주 속을 영원토록 홀로 떠돈다.
- P322

하지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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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졌다. 힘이 쭉 빠졌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 색깔도 없었다. 지구는 죽어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공이 하나 튕겨져 나온 것처럼 구름에 다시 색깔이 나타났다. 그것은 섬광 같은 옅은 색깔에 불과했다. 빛은 그렇게 돌아왔다. 빛이 사라졌을 때 나는 뭔가 거대한 순종이라는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빛들이되돌아오자 갑자기 일어나는 것 같은, 빛은 놀랍도록 가볍고, 재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골짜기와 언덕 위에 되돌아왔다 - 처음에는 기적 같은 반짝임과 경쾌함으로, 그러고는 거의 정상으로, 큰안도감과 함께 (잠시 색깔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신선하고 다채롭게, 여기가 파랑색인가 하면 저기는 밤색, 모두가 새로운 색깔이어서, 마치 한 번 씻어내고 다시 칠을 한 듯했다 - 울프 주).
- P193

이것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전기를 쓰는 한 방법이될지도 모른다. 아주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어떻게 쓰는가가문제다. 비타는 올랜도라는 젊은 귀족 남성이 돼야 한다. 리튼도써야 한다. 사실 그대로, 그러나 환상적이어야 한다. - P195

이 화끈거려, 늘 먹던 계란을 먹지 못했다. 나는 『올랜도』를 반쯤장난스런 문체로, 사람들이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분명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환상은주의 깊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 P201

『올랜도』, 이것이 이번 가을의 중심 과제다. 평론을 쓰고 있을 때는 하루나 이틀 아침을 제외하고는 결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없다. 오늘 아침에 제3장을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뭔가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농담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이한 문장이 좋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시도해본 양식도 마음에 든다. 물론 깊이가 너무 없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튀겨놓은듯. 
- P202

『올랜도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쩌다 그처럼 그 자체로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일까! 마치 태어나기 위해주위의 모든 것을 밀쳐낸 듯하다. 그러나 지금 3월 부분을 다시읽어보니, 실제는 그렇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바로 그 당시 내가 계획했던 대로의 엉뚱한 작품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정신은풍자적이고, 구조는 환상적이다. 정확히 그렇다.
그렇다. 여기 반복해 두겠다. 매우 행복한, 이상스럽게 행복한가을이다.
- P206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빨리 썼다. 이 책은 전체가 농담이다. 그러나 즐겁게 빨리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휴일 같은 것. 앞으로 다시는 소설을 쓰는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더욱 강해진다. 운을 맞춘 시의 단편이 떠오른다. 우리는 토요일에자동차로 프랑스를 횡단하고, 4월 17일에 귀국해서 여름을 지내게 될 것이다. 시간이 날아간다. 정말 그렇다. 여름이 다시 돌아오고, 나에게 아직 그 여름을 찬탄할 능력이 있다니. 세상이 다시 눈부시게 돌아가고, 푸르고 파란 색깔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주다니.
- P212

그렇다. 이제 『올랜도」는 끝났다. 10월 8일에 장난삼아 시작했던 것이 그런데 내 취향치고는 좀 길어졌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가 한 마리도 못 잡은 격이다. 농담치고는 너무 길고, 진지한 책치고는 너무 경박할는지 모른다.  - P212

그러나 유일하게 흥분되는 삶은 상상 속의 삶이다. 머릿속에서 자동차 바퀴가돌기 시작하면 돈도 별로 필요 없고, 드레스나 심지어는 로드멜의 집을 위한 찬장이나 침대, 소파도 필요 없어진다.
- P216

L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올랜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것이 『등대로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다루고 있는 소재가 더 재미있으며, 인생에 더 애착이 있으며, 더폭이 넓다고. 사실을 말하자면, 장난 삼아 시작했던 일이 뒤에 가서는 진지해진 것이다. 그래서 통일성이 부족해졌다.  - P218

리얼리티란 내 바로 앞에서 보는 어떤 것이다. 뭔가 추상적인 것. 그러나 언덕이나 하늘에 있는 것. 그것에 비하면 무엇 하나중요한 것이 없다. 그 안에서 나는 쉬고,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리얼리티라고 부른다. 그리고 때때로 리얼리티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찾는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일단 펜을 들고 쓰기 시작하면? 리얼리티는 하나인데, 우리가 글을 쓸 때는 리얼리티를 이런 것, 저런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내 재주인지도모른다. 아마도 그 재주가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리얼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에 이처럼 날카로운 감각을갖는다는 것은 드문 일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반복하거니와, 누가 알랴? 내가 이것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225

그러나 『올랜도는 확실하게 분명하고 압도적인 충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나는 장난을 하고 싶었다. 나는 공상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사물에 만화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 기분은 아직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나는 역사를 써보고 싶다. 이를테면 뉴넘 대학이나, 같은기분으로 여성운동에 관한 역사를, 이 기분은 내 안의 깊은 곳에있다. 적어도 반짝이며 절박한 상태로, 그러나 이것이 칭찬에 자극된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자극을 받은 것은 아닌가? 천재를쉬게 하기 위해서는 재능이 담당해야 할 직무가 있다는 것이 내지론이다. 내 말은 사람들은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이 단순한 재능일 때는 사용되지 않은 재능이다. 반면 재능이진지할 때는 일을 한다. 이처럼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쉬게 한다.
- P232

 우선 명성의 문제가 있다. 「올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써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하라고들 성화다. 사람들은 그 작품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나도 할 수만 있다면, 다른 특징을 잃지 않고 그런 특성들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대개 다른 특성을 희생시킨 결과다.
다시 말해 외면적으로 글을 쓴 결과다. 만약에 깊이 파내려간다.
면 이런 특성을 잃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내면적인 것과 의면적인 것에 대한 내 태도는 무엇인가? 어느 정도 글을 편안하게, 탄력을 받아 써내려 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외면성마저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둘을 합치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할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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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 P133

올랜도는 자기가 젊은 남자였을 때, 여자는 순종해야 하고, 순결해야 하며, 향기로워야 하고, 세련된 차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생각이 났다. 앞으로는 그런 요구들을 내가 몸소 감내해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여성으로서의 나의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타고나기를 순종적이지 않으며, 순결하거나 향기롭거나 세련된 차림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 없이는 인생의 즐거움 어느 하나 향락할 수 없는 이미덕들을 지겨운 훈련을 통해 얻을 뿐이다.  - P139

"내가 성숙해지고 있는 거야" 라고 그녀는 양초를 집어 들면서생각했다. "나는 새 환상들을 얻기 위해 이전의 환상들을 버리고있는 중인지도 몰라." 그리고 그녀는 긴 회랑을 걸어 내려가 침실로 갔다. 이것은 불쾌한 동시에 성가신 변화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굉장히 흥미롭다고 그녀는 장작이 타고 있는 난로 쪽에 두 다리를 뻗으면서 (거기에는 선원이 없었으니까) 생각했다. 그러고는 과거에 있어서의 자신의 발자취를 마치 큰 건물들이 줄지어선 대로를 보듯이 되돌아보았다.
- P155

우리는 옷이 팔이나 가슴의 형태를 갖도록 만들지만, 옷은 우리의 가슴, 두뇌, 혀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다. 이리하여 스커트를 입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지금, 올랜도는 눈에 띄게 변해, 심지어는 얼굴마저 달라져 있었다. 남자 때의 올랜도와 여자 때의 올랜도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은 틀림없는 동일 인물이지만, 어딘가 다르다.  - P166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 P167

그리고 또한 습기는 습기를 막을 재주가 없었으므로 - 목공예품으로 들어간 것처럼 잉크병에도 들어왔다 ㅡ 그 결과 문장이 불어나고, 형용사가 늘어나고, 서정시는 서사시가 되고, 한 칸 정도 길이의 에세이로 쓸 수 있었던 것이 열 권, 스무 권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 P202

이것이 그녀의 성미에 도통 맞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대공의 마차 바퀴 소리가 사라졌을 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외침은 "인생! 연인!" 이었지 "인생! 남편!" 이 아니었고, 앞 장에서처럼 그녀가 런던에 나와 세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도 이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대정신의 본성은 단호해서, 누구든맞서려는 자는 순종하는 자보다 더 효과적으로 때려눕히는 것이었다. 올랜도는 천성적으로 엘리자베스 시대 정신, 왕정복고 시대정신, 18세기 정신이 더 기질에 맞았으며, 그 결과 한 시대로부터 다른 시대로의 변화를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19 세기정신은 그녀의 성미에 전혀 맞지 않았으며, 그것은 그녀를 붙잡아 망가뜨렸고, 그녀는 그 손에 걸려 전에 없는 패배를 맛보았다.
인간정신은 스스로에게 맞는 할당된 장소가 있는 것 같았고, 사람은 각각의 시대의 소산이다.  - P214

 "나는 오랜 세월을 거쳐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명성도 찾아다.
녔지만 놓쳤고, 사랑은 아직 알지 못한다. 인생을 - 아니, 죽음이더 낫다. 나는 수많은 남자와 여자를 알아왔는데" 라고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아무도 이해하지는 못했다.  - P218

"그렇다면 좋다" 라고 올랜도는 이런 때 사람들이 그렇듯 유쾌하게 말하고는 또 다른 자기를 불러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 수용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한 개인은 수천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도, 전기에서는 예닐곱 개의 자아를 묘사하는 것으로 일이끝난 것으로 간주한다.  - P272

"기러기다!" 올랜도가 소리쳤다. "기러기 .…"
그러자 자정을 알리는 12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1928년 10월11일 목요일, 자정을 알리는 12번째 종소리였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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