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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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작가의 글은 항상 생각도 해보지 못한 낯선 결말과 환경으로 독자를 이끈다. 상상의 극한이 어디일까? 그가 그려낼 수 있는 다른 세상, 다른 생각의 극한은 어디일까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가다. 그래서 나는 김초엽작가의 모든 작품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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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7-03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빛의 속도로~,라는 책이 엄청 팔리고 있지요. 인기 작가는 뭔가 다르다는...
 
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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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 유명한, 엄청 유명한 정신과 상담박사의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울컥하고 화가 난 적이 있었다. 박근혜 탄핵 당시 태극기부대의 노인들이 이런 저런 횡포를 부리고 다닐 때의 이야기였는데, 그분들도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외로움이 크다는 것. 그래서 그분들의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다보면 그분들도 그렇게 막나가지는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강연의 주제가 '경청'이었던듯....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은 가정이든 주변에서는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그런 노인분들이 대체로 자기 집에서 어떤지를 알거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같은 건 듣지 않고 늘 똑같은 주장과 얘기를 하고 하고 또하고... 그에 대해 반론을 얘기하면 버럭 화내고, 욕하고,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러니까 정신과박사님이 몇 시간 투자해서 경청하신 그 얘기를 그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몇 십년동안 주구장창 듣고 듣고 또 듣고, 그러다가 한마디 했다가 욕 처듣고 이런 과정을 몇십년을 했을거라는거다. 그런 가족들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라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다른 가족들에게는 폭력이 될수도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화가 났던건 결국 내 경험이 투영되어서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말하는 사람은 늘 아버지였는데 아버지와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다른 가족이 일방적으로 들어야했고 그 듣는 얘기도 어찌 그리 수십년을 변하지 않는지.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진짜 "식사하셨어요? 아픈덴 없으시고요?"하면 끝이다. 난 아버지와 그 외의 대화를 할 시도조차 안한다. 


  내가 이 곳 서재에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분명히 '다름에 대한 존중'일 것이다. 어떤 책을 읽어도 그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인상깊으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과 품격은 다름을 차별이 아니라 차이로 이해하고 존중하는데서 나온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한 다리 건너서 남 얘기 할 때는 그리 쉬운 것이 막상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로 오면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치 내 아버지와 나처럼 말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아버지가 살아온 삶이 나와 다르고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주변 조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기 싫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치졸한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게 이렇게 어렵다.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건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에 실린 단편 <스무드>를 읽으면서 든 생각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듀이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생긴것만 한국인이지 그는 한국어를 할줄도 모르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냥 미국인이다.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 지독한 무지에 기반한 편견과 혐오까지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숙소에서 나와 길을 걷다가 우연히 태극기부대와 마주친다. 그는 숙소로 돌아갈 길을 찾고 있는 중인데 성조기를 든 무리를 발견하고 저들이라면 나를 도와서 숙소가는 길을 알려줄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접근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어는 안 통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만 깊어간다. 어느새 듀이는 한국의 태극기부대에 호감을 갖고 있는 외국인 기자쯤으로 여겨지는 것 같고, 듀이는 이들을 뭔가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오인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나머지 감각으로만 인지하는 태극기 부대의 모습은 적대도 없고 흥겹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다. 우리는 한발짝 떨어져서 보는게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 한 발짝은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넓은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정도로 넓은 보폭일 때가 많다. 쉽지 않은 것이다. 내부로 한가운데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쉽지말이다. 그런데 한국 작가가 자신의 세상 한 가운데에 이방인을 데려오고 그리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스꽝스럽지만 쉽지않은 한 걸음이고, 그 걸음이 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비론따위 개한테 줘도 그 비겁하고 더러운걸 왜 사랑스러운 개한테 주냐고 따지고 싶은 나이지만, 양비론이 아니라 이 미칠거같은 극우들의 행태들을 해결하는데 우리는 뭔가 다른 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거다. 내 아버지와 나와의 대결은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므로 아마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거다. 그래도 내 아버지와 나는 가족이고 성인이므로 극단적인 대립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대로 가도 딱히 더 나빠질 일은 없을듯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정쩡하게 뭔가 개선하려 하다가는 예전의 그 피터지는 싸움을 늙은 아버지와 해야 할 판이므로....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노인들의 태극기부대에서 이십대 청년들의 태극기부대로 진화하고 있다. 손놓고 있으면 걷잡을 수 없는 폐악이 될터이다. 결국 모든 각도에서 우리는 지금 현재를 볼 필요가 있는데 성해나 작가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어떤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시선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을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내게는 이 작품이 크게 와 닿았다. 


 이 소설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갈등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익히 알고 있던이라는 말은 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소재가 뻔하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뻔하지 않으면 새롭고 힘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너진다. 하지만 극적인 무너짐은 없다. 모두 은밀하거나 노골적이거나 안타깝거나하는 각기 다른 질감의 욕망을 쫓다가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냥 찌질하게 또는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이 책 속 인간들의 욕망은 우리 모두가 겪어본것들이다. 남들과 다른 또는 남들은 싫어하지만 나만은 그의 진가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팬심. 위대한 작가를 나만 알아본다는 팬심이 무너지는 과정은 나의 한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이다. 무당을 통해 신구세대 교체의 과정을 자해적인 칼춤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저 헤비메탈 음악을 쫒다가 현실의 막막함에 무너지는 청년들을 통해 우리가 한 때 가졌던 그 많던 꿈과 욕망들이 그리고 그 무너져 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어디에도 낭만이란 한 톨도 없이 허무하고 폭력적으로 무너져 갈 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무수히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그 모든 욕망의 끝을 나는 얼마나 낭만으로 감추고 살았는지. 그 적나라하고 허무한 끝을 보는 기분이 씁쓸하지만 사실 그게 내가 살아온 날들이니 받아들이고 다시 삶과 세상을 다르게 들여다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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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7-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엄청 핫한 작품을 읽으셨군요~! 수록된 작품들이 현재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나 봅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체험할수 있다는게 장점인거 같아요~!!
 















책을 읽다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책 제목조차 <아주 오래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다. 백수린 작가의 이 에세이 속에서 작가는 반려견 봉봉이 나에게 온전한 신뢰를 주는구나라는걸 느끼며 봉봉과 온기를 나누는 그 순간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낀다. 산다는건 정말 별거 아닌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나날들 중 어느 한 순간은 빛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담담하지만 찬란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서 연이어서 2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은 소설 <봄밤이 모든 것>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백수린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너무 궁금해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었다. 2권의 책을 같이 읽으면 소설과 에세이가 하나로 섞인다. 에세이로 풀어내는 작가의 생활이 그대로 소설이 되었구나, 소설조차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느껴지는 그런 느낌까지..... 


 원래는 나는 뭐라고 할까? 순한 맛 책이라고 할까? 너무 착한 사람들만 나오는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은 순한 맛을 좋아하고, 사람도 순한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순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정말 순한 사람이 좋아요라고 말하면서 양심이 조금 찔리긴 한다. 책을 읽는 이유야 백 개 천 개도 댈수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현실의 세계와는 다른 사람, 다른 세계를 만나는 맛이니까... 어쨌든 그래서인지 순한 맛의 책보다는 차라리 매운 맛이 좋다. 뭐 그렇다. 


그래서인지 요즘 인기있는 한국 작가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격찬을 하는 책이 내게는 취향이 아니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알라딘 서재 친구 책나무님 추천덕분에 이 책을 선택하고 소설 앞쪽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 책도 취향이 아닌것 같아 살짝 머뭇거렸는데 첫 작품 <아주 환한 날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작가에게 폭 빠져버렸다. 어쩌면 나는 사랑에 빠진걸지도 몰라.....


<아주 환한 날들>은 혼자 사는 나이든 여성이 주인공이다. 남편은 먼저 떠났고, 딸과는 어디서부터인가 어긋나서 소원하다. 하루의 일정을 정하고 꼬박꼬박 운동하고 문화센터 강연도 듣고 흐트러지지 않은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잊고자 하는 그런 노년의 여성에게 어느 날 사위가 와서 앵무새 한 마리를 맡긴다. 새를 돌볼 생각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 여성에게 사위는 한 달만 봐 달라고 사정사정하며 어린 앵무새를  맡기고 간다. 그리고 뻔하게도 여성은 앵무새와 사랑에 빠진다. 이토록 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는 작가의 빛나는 문장으로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이 짧은 단편은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봄밤의 모든 것 36쪽


내가 지금 새로운 사랑에 빠지고싶은 것도 아닌데 나는 사랑에 빠진 노년의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는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그녀에게 완전히 감정이입 해버렸다. 


<빛이 다가올 때>에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은 계속된다.


 한 번도 자신만의 욕망을 가져본 적 없던 언니가 그 때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걸 나로 하여금 마침내 깨닫게 했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이미 오래전 지나왔으나, 그런 시기가 틀림없이 내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오든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 71쪽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다 보면 작가의 생활이라고 딱히 나와 다르지 않다. 내가 매일 출근하고 묵묵히 내 일을 하고,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나가고, 그 사이 사이 주변 내가 사랑하는 이들로 인해 웃고 우는 것처럼 작가도 매일의 생계를 위해 고민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글을 쓰고 반려견 봉봉이와 산책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웃고 울고 그렇게 살아간다. 가끔은 내가 술안주가 맛있는 집을 찾아 돈버리고 몸버리는 쓸데없는 술집 탐방을 하듯, 작가는 아름다운 병에 든 꿀에 매혹되어 미세한 맛의 차이에 매혹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사실상 평범하고도 지리한 일상에 때로 허무해질 때가 많다. 이렇게 사는게 사는건가? 내 삶은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도 한편으로는 내일 또 출근해야 하는데 빨리 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 한 켠을 꽉 채우고 있는 동시에 매일 같은 출근을 참 지겹게도 매일 싫어하는 나에게 또 실망하고....


  그러니까 같은 일상에 매일 실망하는 내게 백수린 작가는 당신의 삶의 어느 순간은 분명히 아름다웠다고 얘기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말해준다. 심지어 그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하는 순간이 그렇게 드물지 않았다고 그래서 우리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거 아니겠느냐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소설은 소설로, 에세이는 작가의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으로.... 내가 표현하지 못한 나의 일상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잔잔히 잔잔히 얘기해주는 것이다. 


봄밤도 여름의 밤도 모든 계절의 밤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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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30 0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언제든 뭔가를 좋아하기도 하겠지요 그게 동물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게 있기에 살아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주 큰일 없이 사는 게 좋기는 하겠습니다 뭔가 일이 있으면 더 안 좋을 듯해요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던 때도 있었네요 그 시간이 지나갔지만, 그런 때 또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지금 즐겁게 살면 좋겠네요

바람돌이 님 유월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칠월 반갑게 맞이하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5-06-30 09:45   좋아요 0 | URL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쓸쓸하겠지요. 사랑의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온기를 나눌 수 있고 신뢰를 함께 한다면 그리 다르지 않을거 같습니다.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면서, 그 평탄한 삶의 소중함을 또 잊는게 우리 사람이니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이렇게 책을 통해 다시 깨닫습니다. 희선님도 오늘 마지막 6월의 날 편히 보내시고 칠월 반갑게 맞이하세요.

페크pek0501 2025-07-03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수린 작가의 ‘다정한 매일매일‘이란 에세이를 읽고 있어요. 단편 소설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좋았어요.
잘 쓰는 작가, 라고 생각해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
오찬호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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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던 것들은 더 디테일하게, 몰랐던 것들은 새롭게...수세식 변기, 에어컨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가 어떤 불편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불편한 마음과 작은 실천이 다가 아님을 자각하는것 . 그리고 다음은? 어쨌든 마음이 불편해져야 변화의 첫발을 뗄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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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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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를 고통에 잠식 당해 가는 여자 영혜와 그 고통을 지켜보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로지 꿈 이야기를 할 때만 나레이션으로 처리된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영혜의 고통이 무엇 인지에 관심이 없다. 독자도 영혜의 고통은 오직 그 나레이션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공 영혜가 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의 진행을 따라 가다 보면 영혜의 고통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다. 가부장적인 가족 내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었던 영혜에게 끊임없이 쏟아진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 결혼 생활에서 아내의 생각, 생활에 전혀 관심 없는 그저 가정부 또는 남편이 요구할 때 성욕의 대상으로만 보는 남편과의 관계.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성적 환상의 대상으로 영혜를 치환해버리는 형부. 이렇게 쓰다 보니 숨이 턱턱 막힌다. 그 모든 고통들에 대해서 한번도 영혜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직 꿈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왜 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아무도 들어줄 이가 없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계속되는 아버지의 폭력은 그저 참고 참아야 하는 것이지 어떻게 저항할 지 알 수 없다. 언니와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어린 영혜의 말이 유일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아무 힘없는 저항. 

  어린 시절 자신을 물었던 강아지를 잔혹하게 죽이고 탕을 끓여먹던 아버지와 주변의 모습에서 폭력을 폭력인줄 모르는 사회의 단면을 본다. 그것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영혜의 눈에 강아지와 자신은 하나로 오버랩되었을 것이다. 아 저항하면 저렇게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구나 같은..... 


  소설은 개인 영혜의 고통과 절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영혜라는 한 인간의 고통일까? 그 시절 아버지의 폭력은 이집 저집 할 거 없이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저 일상이었고, 동네 남자 어른들이 키우던 강아지를 산에 데리고 가 두들겨패서 탕을 끓이던 것도 매년 있던 연례행사였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는 약하고 어리고 그리고 순둥이라고 불리는 또는 얌전하고 착하다고 불리는 아이들이었다. 영혜같은 아이들. 그들이 어른이 되며 정말 운좋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들은 분노와 절망을 몸 안에 차곡차곡 쌓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사실은 압도적인 폭력에 압도당하는 대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48년의 제주 4.3, 80년의 광주라는 거대한 폭력은 폭력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영혜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채식주의자에서 작가가 영혜의 고통을 지독하도록 보여주는 것에서 다음 작품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행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영혜가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폭력의 산물인 육식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해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행한다. 온 몸에 꽃을 그렸을 때 자신이 다른 존재로 피어나는 느낌은 그녀를 스스로 거꾸로 서서 땅을 짚은 손과 머리에서 뿌리가 자라고, 거꾸로 벌린 다리와 사타구니에서 가지고 솟아나오는 환상으로 이어간다. 폭력에 대한 개인의 저항은 이토록 무모하고 이토록 압도적인 슬픔을 자아낸다. 그것조차 실현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259쪽) 언니가 영혜에게 하는 이 말처럼 폭력에 대한 저항은 이토록 절망을 동반한다. 


  이 책을 읽으며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한 인간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약자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세월호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 앞에 가해지던 그 무수한 폭력에 대해서, 산업재해라는 그럴듯한 말로 가려진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자식과 부모 형제를 위해 오열하던 가족들 앞에서 그들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가해지던 폭력.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무관심도 외면도 협잡도 결국 모두 폭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이 책 <채식주의자>를 읽는 시간은 우리 안의 폭력에 대해 다시 한번 재고하는 시간이 된다. 소설은 영혜가 그 절망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의 절망 역시 그렇게 쉽게 벗어나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폭력을 폭력으로 정확하게 응시하는 데서 우리는 시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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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6-07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모두 그랬다는 말로 정리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 거 정말 싫은 말이네요 바람돌이 님이 영혜 마음을 들어줘서 영혜가 조금 낫지 않을까 싶군요 힘든 사람한테 뭔가 말하지 못해도,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5-06-07 21:11   좋아요 0 | URL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해주고 공감해주는거 쉬운 것 같았는데 정말 어렵다는걸 매일 느껴요. 영혜를 만난다면 어린 영혜를 만나서 손잡고 도망치자 해주고싶었어요

페넬로페 2025-06-08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너무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다 받아들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데 왜 너만 호들갑이냐고요. 폭력의 허용과 방종이 여지껏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 소설도 재독하고 싶어요.
어릴 때 우리집에서 기르던, 제가 사랑했던 똥개도 ㅠㅠ

바람돌이 2025-06-09 09:46   좋아요 0 | URL
왜 너만 호들갑이냐? 너만 참으면 된다 이거 진짜 폭력적인 말인데 이걸 폭력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써왔지요.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쬐끔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갈길이 머네요.
어릴 때 저희집은 강아지를 안 길렀는데 옆집에 사는 친구네 집 강아지는 해마다 바뀌었다는..... ㅠ.ㅠ

책읽는나무 2025-06-08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너무 힘겨워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좀 멀리했었던 것 같아요.
이젠 기억이 가물하기도 하지만 유명한 작품이 되었으니 다시 찬찬히 읽어 보려고 사다 놓긴 했는데 아직 재독은 못했네요.^^˝
어느 날 서점에서 어떤 젊은 커플이 채식주의자 책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걸 엿들었는데 여성이 이 책 읽긴 했는데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며 남친에게 얘길 하더라구요.
저도 맞아, 맞아. 고개 끄덕였었죠.
폭력과 절망을 정면에서 맞닥뜨리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정확한 시선으로 응시해야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 않나, 바람돌이 님 마지막 문장에 공감하게 됩니다.
덕분에 나중에 재독하게 된다면 예전보다는 좀 덜 힘들 것 같겠단 생각이 드네요.^^

바람돌이 2025-06-09 15:10   좋아요 1 | URL
정말 읽기 힘든 소설이었어요. 영혜가 자신이 어떻게 고통스러운지 조금이나마 얘기하는 장면이라도 나왔다면 독자가 읽으면서 느끼는 고통이 좀 적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한번도 영혜는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저 주변 사람들이 보는 영혜의 모습이 묘사될 뿐이지요. 그 말없음, 말못함이 진정한 고통인 것 같았어요. 나는 고통스러운데 누구도 그걸 힘들다고 인정해주지 않는 데 대한 반응이랄까? 아마도 그래서 더 힘들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한강 작가가 여성 일반이 지나온 고통의 시간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고통 그 자체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뭐라고 평가한다는게 저한테는 주제넘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둘을 제외하고는 여태 읽은 한강작가님 소설 중 가장 좋았어요.

솔직히 재독하시면 예전보다 더 힘들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저는 그럴것 같아서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