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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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건 외롭고 쓸쓸한 일이라고 작가는 계속 얘기하지만, 그런데 막상 그 외로움을 읽다보면 나의 외로움이 치유되는 역설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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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순양함 무적호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정인.필리프 다네츠키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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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우주순양함 콘도르호가 레기스 3 행성에 착률 후 실종된다.

무적호는 바로 그 콘도르호를 찾고 레기스 3행성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우주 순양함이다.


소설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물론 헐리우드 감성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나라면 솔라리스보다 이 우주순양함 무적호를 더 영화화하고 싶었을 듯한데...

첫 장면 레기스 3 행성에 도착한 우주선의 선내가 깨어나는 장면의 묘사는  sf영화의 시작 장면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승무원들은 동면 상태에 있고, 중앙 모니터의 제어 콘솔 불빛들이 하나 둘씩 깜박이기 시작하고, 프로그램들이 구동되는 소리가 웅웅거리기 시작한다. 온갖 기계들이 슬슬 작동을 시작하며 갖가지 진동과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동면상태의 승무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하는..... 진짜 영화에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이 소설이 1964년 출간된 작품이니 아마도 영화들이 그의 소설에 빚졌다고 보는게 맞을 듯하다.


레기스 3 행성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콘도르호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100여명의 승무원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불안감을 안고 레기스 3에 도착한 무적호는 서서히 이 알 수 없는 행성에 대한 탐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오토마톤 기계들이라든가, 로봇이라든가에 대한 묘사들, 새로운 행성의 모습에 대한 묘사, 무적호 내부의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의 역할과 생각 등등이 종횡무진으로 펼쳐지는데 작가의 천재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순간이다.

스타트렉이 처음 방영된게 1966년,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한게 1969년, 스타워즈가 처음 나온게 1977년이니 우주에 대한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와 맞물리고 있다.

그러면 뭔가 묘사가 어색하거나 촌스럽거나 하는거라도 있었는데 어찌나 세련된지 이 소설이 1960년대 작이라걸 도저히 실감할 수가 없다. 


탐사대원들은 드디어 콘도르호를 찾아내고 승무원들까지 찾아내지만 진실은 더더욱 미궁이다.

발견된 승무원들 중 일부는 살아있으나 기억과 지능을 모두 잃어버리고 완전히 갓 태어난 어린아이 수준으로 돌아가있다. 

일부 승무원들은 우주선 내에 식량을 산처럼 쌓아놓고도 굶어죽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바다쪽에만 약간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육지쪽에는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누가 콘도르호를 공격한걸까?

계속 조사를 계속하던 중 불행히도 콘도르호의 승무원들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이 무적호 승무원들에게도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지능을 잃어버리는 사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사태에 대해서 무적호 내의 과학자들의 가설 싸움이 벌어진다.

과학자들의 의견 전쟁, 행성탐험에서 고군분투하는 승무원들, 미지의 적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동시에 우리가 아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를 보여준다. 

책에서는 은하계 중심설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는 우리 은하계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기는 우주관이라고 설명된다. 

바로 딱 감이오는게 인간 중심설의 우주판이다. 

이 세계의 중심을 인간으로 보는 세계관의 폐해가 지금 지구를 죽이고 있는걸 목도하는 이 순간, 그 우주판 쌍둥이인 은하계 중심설을 만나는 마음은 착잡하다.

하지만 작가 렘은 은하계 중심설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한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 무방하지만, 수백만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방사력과 물질력을 제외하고 누구한테도,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이 행성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존재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복합체와 비교해서 월등하지도, 그렇다고 열등하지도 않다. (253쪽)


이 행성의 주인은 오래전에 멸망한 생명체들이 버리고 간 기계들.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스스로 진화하고 변신하면서 이 행성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기계의 진화라니? 인간의 도움없이 어떻게 기계가 진화한다는거지?

이 황당한 가설을 또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렘은 기계의 진화와 존재를 통해 인간 역시 따지고 보면 단백질 복합체 아니냐고? 다른 존재와 비교해서 뭐가 그리 월등하냐고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이런 주제의식은 <솔라리스>의 주제의식과 닿아 있다.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는 엄청나게 넒고 깊게 펼쳐져있고, 그것은 이 지구안에서도 마찬가지다.

SF의 공간을 현실로 가져온다면 결국 타인과 자연세계에 대한 우월성을 기반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한 경고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적호의 항해사 로한의 마지막 읊조림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그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316쪽)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것이 다일지도.....

인간의 오만이 닿을 수 있는 비극의 순간을 실감나게 그리며, 다른 세계의 존재를 손에 잡일 듯 보여주는 렘의 세계의 다른 번역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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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26 16:2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뭔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의 리뷰네요 ~!! 이 책이 쓰여진 시기룬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2-06-27 10:20   좋아요 1 | URL
책 자체가 굉장히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다만 헐리웃 액션 느낌이 아니니까 영화로 만들어도 돈은 안될듯요. ㅎㅎ요즘 요 책 모티브로 게임도 만들어졌더라구요. 렘 책은 읽을수록 이 사람은 지금 사람이 아닌가 착각하게 돼요 ^^

페넬로페 2022-06-26 2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기묘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 작품이 1964년에 씌여졌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솔라리스도 읽고 싶은데 책이 차곡차곡 쌓여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겠어요 야호!

바람돌이 2022-06-27 10:22   좋아요 1 | URL
굉장히 신비스럽고 기묘해요. 페넬로페님 정확하게 읽으셨네요. ㅎㅎ 인간이 전혀 알지 못하는 행성의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솔라리스보다는 쉽게 읽혀요. 재밌기로는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가 최고고요. ^^

그레이스 2022-06-26 2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상상이상의 sf소설이 막 쏟아짐요
작가들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바람돌이 2022-06-27 10:22   좋아요 0 | URL
전에는 안 읽던 sf장르까지 읽어야 하니 읽을 책이 진짜 막 쏟아지네요. 세상에는 훌륭한 작가가 왜이리 많은지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27 0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렘은 일찍부터 미래를 내다본 작가같아요~ 생각할수록 경이롭고 신기합니다. 얼마 전 구입한 우주일지 읽어볼 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ㅎㅎ 재미날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6-27 10:23   좋아요 1 | URL
우주일지 실망하지 않으실거에요. 진짜 재밌어요. ㅎㅎ
렘 아이큐가 180이라는데 아이큐가 저정도 되면 이런 책을 쓸수도 있구나하고 그냥 수긍해버릴렵니다. ㅎㅎ

mini74 2022-06-27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타니스와프 램 전도사 바람돌이님 ㅎㅎ 전 바람돌이님따라 우키요에랑 우주일지 읽고 있어요 ~ 재미있네요 *^^*

바람돌이 2022-06-27 10:25   좋아요 1 | URL
와 저 진짜 램 너무 좋아서 이제 다 읽은 3부작 말고 오래전에 출간된 다른 책들 찾고 있어요. 다행히 우리 동네 주변 도서관들에 다 한권씩 있네요. 절판된 책이 도서관에 있을 때 기쁨이란...... ㅎㅎ 미니님 같이 읽어주셔서 완전 완전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2-06-27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렘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은 안 샀네요.

다다음달에 중고책으로 풀리게
되면 땡겨 올라구요 :>

<솔라리스>는 예전에 읽었고,
다른 책은 사두긴 했는데 못 닐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2-06-27 11:50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은 넘쳐나니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항상 고민이지요. ㅎㅎ
이욘 티히는 솔라리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서 처음 읽을 때는 이거 같은 작가 맞아 했었어요. 하지만 가장 재밌다는....
우주순양함 무적호는 솔라리스와 같은 계열인데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희선 2022-06-28 0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계가 스스로 진화했다고 하다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마란 법은 없겠지요 지구에서도 사람이 가장 대단한 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서 지금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후변화가 너무 심해졌어요 몇해 사이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러다 인류만 사라지는 거 아닐지...


희선

바람돌이 2022-06-28 10:28   좋아요 1 | URL
우주는 넓고 넓으니 무슨 일인들 못일어날까요. 그걸 또 문학으로 상상해내는 작가들도 대단하고 과학자들도 대단하고요. 또 한편으로 우리가 살아갈 이 지구를 계속 망가끄리는게 또 우리라서 슬프고 그렇네요. ㅠㅠ
 

이해하시겠지요, 선장님? 즉 무생물진화가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기계 장치의 진화 말입니다. - P175

함교에 있는 어느 누구도 움직이거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복수심에 가득 찬 만족감을 느꼈다. 그 감정이비이성적이라고 해서 강도까지 약한 것은 아니었다. - P224

만일 호르파흐가 앞에 서 있었다면, 지금 당장 모두 말해 버렸을 것이다.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정복‘이나 ‘용맹스러운 인간의 생존‘, 사지로 보내져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위한 복수심, 이것들이 얼마나 웃기고 황당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그냥 경솔했고, 우리가 가진 캐넌포와 센서에 대한 자만으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에 대가를 치르고있을 뿐이다. 우리의, 순전히 우리만의 잘못이다. - P252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무방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방사력과 물질력을 제외하고 누구한테도,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이 행성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존재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불리는단백질 복합체와 비교해서 월등하지도, 그렇다고 열등하지도 않다. - P253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그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 P316

 흐릿한 하늘을 배경으로 쏟아지는 불빛 속에서자기 자리를 지킨 채 우뚝 서 있는 우주선은 너무도 장엄하였으므로 단연 무적호라고 할 만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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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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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좋은 글이란 끝부분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자신없는 말투라니....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을 거 같아서....)

어쨌든 내생각!

예전에 좋아하던 만화들 중 와 너무 재밌어. 천재야 이러고 열광하면서 보다가 마지막회에서 그 열기 전체에 확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수습불능형 잔반처리 불가능형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윌리엄 트레버 이 사람 진짜 이야기 끝문장 만들기의 천재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쭈욱 늘어놓는데 아 심심해, 도대체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뭐야 하면서 하품하며 책 보다가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 아! 하면서 이 주옥같은 문장은 뭐지? 내가 심심해하던 순간들을 이 사람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묘사한단 말이야? 하면서 소설을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게 한다.

그 때 보이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결국 사건과 사물과 사람을 보는 눈이다. 

얼마나 깊이있게 진심으로 사건과 사물과 사람을 즉 세상을 대하는가?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이야기 <고인 곁에 앉다>에서 에밀리는 자신이 아니라 말을 기를 수 있는 땅을 가진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의 주검 앞에 있다. 그저 병에 걸려 죽었을 뿐.... 지역의 종교단체 사람 둘이 와서 에밀리 홀로 지내는 밤을 위로한다. 간간히 에밀리는 남편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주 흔한 이야기....비록 앞에 앉은 종교단체 사람들은 에밀리가 고인의 흉을 보는 듯하여 당혹스러울지 몰라도 이야기 자체는 특별할게 하나도 없다.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사느냐 말이다. 

그러나 새벽이 밝아오고 이야기는 끝나고, 종교인 여성들은 돌아가고 이제 에밀리가 혼자 남는 시간이다.


에밀리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커튼을 걷었고, 하루가 밀려들었다. 그날 밤이 불러낸 유령이 이곳에 있었다.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28쪽)


이 짧은 단편의 마지막 3줄은 소설을 완전히 반전시켜 버린다. 죽은 남편의 흉을 보며 넋두리하던 그저 흔한 여자 에밀리는 사실은 껍질을 벗고 있었음을, 비록 남편이 다 말아먹어 땅이 없을지라도 오늘의 에밀리는 어제의 에밀리가 아님을. 이제 에밀리에게는 그것이 어떤 형태라 할지라도 에밀리 자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유령은 이제 떠났음을 이토록 짧은 문장에서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해버리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정녕 뭐지? 위대한 작가 맞구나....


단편 <전통>에서는 명문 기숙학교를 둘러싼 잡다한 전통들이 이리저리 등장하고 비웃음당하고, 소년들에 의해서 은밀하게 신봉되고 하지만 진짜 전통이 무엇인지는 글의 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기숙학교가 존재하는 한, 소년들이 이곳을 거쳐가는 한 언제나 어디서나 은밀하게 존재하고야 말 전통이며, 그래서 살짝 얼굴 붉히며, 사는게 그런거지, 아이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라고라고 수긍하게 된다. 


<그라일리스의 유산>은 책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다. 잘나가던 은행원이 책이 좋아 지역도서관 분관을 맡는다. 수입이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으므로 아내는 당연히 싫어한다. 그런데 이 곳에서 책을 빌리러 오는 여성을 만나고 둘은 자주 만나 같이 책얘기를 한다. 그녀의 집에서 만나는 둘의 모습은 남들에게 보일 때는 불륜이겠지만, 책 좋아하는 나같은 이가 보면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녀가 커피를 내오고 둘은 내리는 비나 차가운 봄의 햇살을 함께 바라보고 그리고 책속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의 순간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120쪽)


제대로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고, 같이 해본 것이 너무나 적은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이토록 아름다운 조사(弔詞)를 본적이 없다. 기만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아름답게도 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단편이자 표제작인 <밀회>에서도 반복되는데 쇼윈도에 비치는 연인들의 마지막 포옹을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묘사한다. 흔한 불륜이 그 장면 하나로 세기의 사랑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언어가 가지는 힘이 무엇인가를 절절히 깨닫게 하는데 만약 윌리엄 트레버라 이런 불륜에 대한 소설을 좀 더 많이 썼더라면 나라도 멋진 불륜을 찾아 어디 거리로 헌팅을 나가지 않을까?


모든 이야기들이 마지막 순간을 예비하고 그려지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결로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저녁 외출>이다. 데이트 업체 매칭을 통해 만난 남녀의 저녁모습에 대한 스케치 같은 단편이다. 혼자 사는 여성이 이 만남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우정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받고 호감이 가면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도 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각자 하고 싶은 또는 할 수 있는 말만 하며 빙빙도는 하루 저녁의 외출은 문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롭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읽어가다보면 책속의 단어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모든 말이 외로워 외로워로 치환되는 듯한 느낌. 그래서 주인공 여자를 꼭 안아주고싶은 느낌이다.


많은 단편들 중 어느 것도 윌리엄 트레버가 삶이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없다.

산다는 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또한 누구든지 은밀한 비밀 하나쯤 꼭꼭 숨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외로움은 배가 된다.

그럼에도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는 일은 절망과 전혀 관계없다.

외롭고 쓸쓸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을 소망하고 노력하고, 그럼으로써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작가는 그의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조금 외로워도 돼 괜찮아 이렇게 나를 다독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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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22 17: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동감이에요 바람돌이 님 ^^

바람돌이 2022-06-22 22:16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님 동감 표시에 어깨가 으쓱으쓱입니다. ^^

레삭매냐 2022-06-22 1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고서 여적
리뷰를 미루고 있네요...

한 편에 대한 기억이 진
하게 남네요.

삶은 그렇게 외로운 모양
인가 봅니다.

바람돌이 2022-06-22 22:17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의 한편은 뭘까요? 저는 사실 첫 작품인 고인곁에 앉다가 제일 좋았어요. ^^
삶이 외로우니까 우리나라에서 책읽는 사람의 삶은 더 외로우니까 우리 모두 여기서 수다 떨고 있는거겠죠? ^^

새파랑 2022-06-22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바람돌이님도 윌리엄 트레버의 세계로 들어오셨군요. 트레버의 단편은 여운이 장난아닌거 같아요. 저도 이책 너무 좋더라구요~!!

바람돌이 2022-06-22 22:18   좋아요 3 | URL
저 펠리시아의 여정도 진짜 좋았는데 이번 단편은 더 좋더라구요. 트레버의 세계 계속 계속 들어가 보겠습니다. ^^ 새파랑님과 이곳의 지인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트레버를 몰랐겠죠.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말입니다. ^^

미미 2022-06-22 2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단조롭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 끝에 반전매력!
여성에 대해서도 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돌이님 리뷰 읽으며 다시금 감동의 기억이 돌아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06-22 22:20   좋아요 2 | URL
트레버는 남녀를 불문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대한 문학가들 중에 괴팍한 사람 많잖아요. 근데 트레버는 안 그랬을 거 같아요. 굉장히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얘기를 굉장히 잘 들어주는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 혼자서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

그레이스 2022-06-22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조사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문장이 너무 좋네요.

바람돌이 2022-06-22 22:20   좋아요 4 | URL
문장의 밀도만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문장이었어요. 뭔가 스파크가 팡하고 터지는 듯한..... ^^

scott 2022-06-23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오! 이 문장, 어떤 작가가 산문으로 썼었던 적이 !ㅎㅎ

윌리엄 트레버 21세기 위대한 작가 중 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돌이님 <불륜>에 꽂혀 버리시다니

외출, 여행이 필요 합니다 ^ㅅ^

바람돌이 2022-06-23 11:43   좋아요 2 | URL
좋은 문장은 누구나 알아볼테니까요. ㅎㅎ
제가 불륜에 꽂힌건 순전히 트레버때문.... 트레버 효과 사라질때까지 당분간 외출 자제입니다. 외출 가서 잘난놈 보면 따라갈지도.... ㅎㅎ 하지만 그건 너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 으~~~~귀찮아요

감은빛 2022-06-23 15: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첫문장을 잘 쓴 글에 끌리더라구요. 첫문장이 평범하거나 별로라면 뒤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가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글의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역시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죠. 저도 바람돌이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이 좋은 글 덕분에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2-06-23 18:49   좋아요 2 | URL
첫문장이 좋은 글은 가슴이 막 떨리죠. 근데 저는 첫 문장이 너무 좋은데 뒤로 갈수록 힘이 빠져 실망스러운 때가 많더라구요. ㅎㅎ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포인트도 다른 지인들이 많아서 이곳은 참 좋은 곳입니다. ^^

yamoo 2022-06-24 0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짧은 단편의 마지막 3줄은 소설을 완전히 반전시켜 버린다...뭔지 궁금하네요. 이런 소설은 다시 읽을 수밖에 없더라구요. 밀회...읽어 봐야겠어요. 좋은 작품 소개 감사드립니다!!

바람돌이 2022-06-25 16:07   좋아요 0 | URL
평범한 이야기가 한 여성이 자아를 완전히 회복하는 빛나는 순간으로 바뀌는 마법? 심심한 듯하다가 막판에 저렇게 멋있어 지는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었습니다. ^^

페크pek0501 2022-06-24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에 대해 쓰신 마지막 문단에 꽂힙니다.
저도 찾아보면 그의 단편이 있을 듯해요.

바람돌이 2022-06-25 16:08   좋아요 1 | URL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체로 굉장히 외로운데 읽다보면 오히려 위로받는 느낌이랄까요? 좋네요. ^^

mini74 2022-06-24 17: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것 아닌 이야기같지만 그 속에 위로와 공감. 바람돌이님리뷰에 저도 공감합니다 ~

바람돌이 2022-06-25 16:09   좋아요 0 | URL
맞죠? 읽은 분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느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ㅎㅎ 사람들의 생각은 워낙 다양하니 또 다르겠지요. 이걸 또 다르게 읽는 분의 얘기도 듣고 싶어요. ^^

희선 2022-06-25 01: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 소설은 마지막까지 봐야 참맛을 알겠습니다 그런 걸 알아봐야 하는데, 어쩐지 저는 잘 모를 것 같네요 사는 건 쉽지 않고 다 외롭겠지요 그래도 살아가야겠지요 언제나 소통이 잘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2-06-25 16:10   좋아요 0 | URL
음 희선님이라면 윌리엄 트레버의 참맛을 저보다 더 잘 알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희선님의 예리한 감각 있잖아요. ^^ 소통이 잘 되는 경우보다 안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게 현실이라 좀 씁쓸하긴 해요. ^^
 

"여러분이 오신 집에는 슬픔이 없어요."
"아, 그래요." 캐슬린이 말했다. 그녀의 커다란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래요." - P21

에밀리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커튼을 걷었고, 하루가 밀려들었다. 그날 밤이 불러낸 유령이 이곳에 있었다. 한때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 - P28

 올리비에는 교실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면서 부당한 보복을 예상했으나 자신이 스스로의추측을 발설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러지 않는 것은, 자기생각을 비밀로 감추는 것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 P34

이것이 현실이었다. 클로헤시 신부가 알든 모르든, 이것이그가 가진 것이었다. 저스티나 케이시는 이 마을에 머물 것이다. 길포일 씨가 저스티나를 더블린 버스에 올라타지 못하게할 것이고, 매브가 저스티나를 감시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브레다 매과이어도 저스티나를 잊을 것이다. 비좁은 고해실에서는 또다시 불필요한 고해와 용서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자신에게서 신을 본 얼굴에서 만족감이 사라질 것이다. - P73

제프리가 자신의 부끄러운 사진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그에게 에벌린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벌린은 아무런 원망 없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에벌린의 어리석은일탈을 목격했을 때, 그 또한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 P102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지 않았으나,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 그들의우정으로 전과 달라진 방 안에는 그들의 삶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후회나 과거에 있었을지 모를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단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지않았다. 그녀는 지나간 과거를, 그는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을배신하지 않았다. 그녀가 커피를 내오면 그는 내리는 비나 차가운 봄의 햇살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고, 다시 와일드 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넓은 현관을 배경으로 계단 위에서 있었고, 그의 백미러에 보이던 그녀의 모습은 곧 버드나무로 바뀌었다. - P117

그 이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장식품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실을 속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도자기 한점도 받지 않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쓸 것이다.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 P120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우리의 대화는 불완전하거나 아예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자기들 사이에 작품을 만들었고, 그 안에 우리의 존재가 놓여 있다. 마치 모자이크 기술자가 만든 걸작처럼 빈틈없이 완성된 작품.  - P138

어리석었던 그때의 나는 이후에 내가 알게 된 것을 알지 못했다. 진실은, 그것이 인간의 정신을 찬미하는 것이라 해도, 말하기 끔찍한 내용이 있으면 퍼뜨리기 어렵다. 어둠은 빛의 당당한 광휘를 더욱 강렬하게 하지만 누가 그걸 알고 싶어 하겠는가? 결국 나는 내가 말해야 하는 일을 말할 수 있는 행운이내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 P145

자신의 친구가 된 성인 조각상들을 매일 아침 찾던 누알라는 그날 평소보다 코리의 작업장에 더 오래 머물렀다. 석쇠를든 성 로렌스, 메신저인 성 가브리엘, 아시시의 성 클라라, 사도성 토마스와 눈이 먼 성루치아, 성 카타리나, 성 아그네스,
코리는 누알라를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고, 조각상들이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려보내자 누알라는 처음으로 분노가 조금씩 흘러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감화되어 평온함에 잠긴 누알라는 조각상의 체념을 느꼈다. 실패한 것은 누알라가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 P182

 자기 앞에 펼쳐진창창한 시간, 언뜻 보게 될 다른 비밀과 배신들 때문에 울었다. - P200

그들은 피나가 깨달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존 마이클과 함께였다면 지금보다 더 외로웠을 것이다. 오래 이어진 사컴과 함께 계획한 미래, 서로에 대한 열정과 포옹은 가슴 저미는 기억으로 남았으나 괴로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사람이사랑한 것은, 너무나도 사랑한 것은 미국이었다. 사랑의 환상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도 미국이었고, 서로를 더욱 좋아하게만든 것도 미국이었다.  - P227

셰릴은 그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심지어 불안도 아니라는 것을 대프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늘어놓는 그의 행동에 교활한 술수가 있음을 알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도 적었기에 술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천성이 그와 함께 산책에 나서고 그의 과묵한 포옹을 받아들이게 했으며 자신의 동정이 그의 자양분임을 안다는 것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셰릴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대프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와클리 부부는 그의 존재를 몰랐다. - P250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괜찮은 거예요?" 말투에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야 할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사랑의 까다로운 특성을 잘 알았다. 사랑은 거의 언제나 잘못된 대상을 향했다. - P269

 두 사람은 순간 그 이미지에서 우아함이 드러나는 것을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 우아함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지않았을 것이다. 이 연애에서 자신들에게 우아함이 있었으리라짐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하지 않았으나 이해한 사랑의규칙은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내는 괴로움 속에서도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사랑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둘은 그 사랑을 지니고서 몸을 떼고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미래가 지금 보이는 것만큼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 그 미래 안에 여전히 두 사람의 과묵한 섬세함과 한때사랑이 만든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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