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가부장들


성서에서 나타나는 가족구조는 가부장적 가족이다. 최초기에는 가부장이 그의 가족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부인은 남편은 '바알' 혹은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모세의 십계명에는 부인은 하인들, 가축과 함께 남편의 소유물 중 하나여으며,아버지는 딸을 노예나 매춘부로 팔수도 있었다. 군주제 시대가 되면서 가족구성원의 생사에 대한 아버지의 권력은 제한된다.

그러나 당시의 재산 소유구조는 씨족중심이었으며, 이는 당연히 이 재산의 유지와 보존 책임을 가부장에게 위임했고,이는 가족 내에서 가부장의 권력을 강화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지위는 당대의 메소포타미아보다 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빌로니아 여성들은 재산 소유, 매매계약 체결, 법률행위의 권리가 있었고 남편의 유산에 대해 지분을 가질 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존경과 강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좀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닌 여성에 대한 이야기 - 롯과 레위의 이야기에서 롯과 레위를 손님으로 맞은 집주인들은 손님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딸과 첩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마음대로 해도 되니 손님은 그냥 두라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한다. 

또한 유대교에서 여성들은 제례기능에 있어서도 극히 적은 기회만을 부여받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여사제들이 여성신을 모시고, 남사제들이 남성신들을 모신던 것과 대비된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하느님은 아버지 하느님으로 불리우는 유일신이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느님 아래 세워진 이 새로운 질서는 히브리인들과 성서를 그들의 도덕과 종교지침으로 삼은 모든 사람에게 여성들은 하느님께 직접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제9장 언약


창세기는 유일한 창조자 야훼가 당시 주변의 어떤 신들과도 달리, 어떤 여성신과도 제휴하지 않고 절대적 창조자로 자리매김한다. 따라서 이제 생명을 위한 모성적 원천이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야훼는 아담을 창조하고 그에게 이름짓는 권력을 부여하였으나, 이브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라는 이름 역시 아담에 의해서 명명된다. 

창세기의 상징적 의미 중 아담은 땀흘려 일해야 하는 벌을, 이브는 출산과 양육의 고통을 부여받는다. 부과된 처벌이 남성에게 일을 부담으로 만들지만, 여성은 타고난 섹슈얼리티의 자연적 결과인 여성의 출산하는 몸에 대해서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성을 존재 자체로 죄의 결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한다. 


하느님에 대한 남성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변화는 언약에 대한 이야기에서 일어나며, 여성을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언약의 의례, 즉 할례는 개별 남자아이와 각 가족의 언약 의무에 대한 재헌신을 상징화한다. 

하느님이 대지와 그 자손에 대해 아브람과 한 약속에서 아브람의 '씨'에 대해 축복하는데 이는 생식력이 여성으로부터 남성으로 옮겨짐을 승인하는 의미가 된다. 또한 남자의 재생산 능력과 하느님의 은총의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남성에게 가장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서 할례가 위치하게 된다. 결국 할례에 함축된 상징성은 강력한 가부장적 여운을 갖게 된다. 그것은 이제 생식력이 하느님 안에 그리고 인간 남성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토지와 권력을 그것과 연결시킨다. 

또한 에덴동산에서 쫒겨나면서 아담은 여자에게 이브라는 이름을 주고 명명한다. 이는 이제 그녀가 뱀(다산의 여신 또는 자유로운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 자체)과의 관계를 끊고 남편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 일신사상의 혁명적 측면은, 유일하며 보이지 않고 말로 나타낼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에 있었으며, 이 사상은거룩함의 증거인 의례를 거부하고 대신 윤리적 가치에 충실하고 이를 실천할 것을 요구하였다. 종교집회를 위한 장소로서 유대교 회당(synagogue)이라는 대단한 발명을 해낸 것과, 한 분파의 사제들에 의해독점된 제의의 실천 대신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면 누구든 성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유대인들의 종교를 이동성 있고 전파 가능하고융통성 있는 공동의 것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이것은 유대인들의 생존을가능하게 만든 이 종교의 특성이기도 하였다. - P293

성서적 이야기에서 주로 나타나는 가족구조가 가부장적 가족이라는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P295

최초기에는 가부장이 그의 가족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 부인은 남편에게 ‘바알‘ 혹은 ‘주인님‘ (master)이라고 불렀으며, 이와 비슷하게 그는 그의 집과 밭의 ‘바알‘로도 불려졌다. 모세의 십계명에는 부인이 하인들, 황소, 그리고 당나귀와 함께 남편의 소유물 중 하나로 목록에 올라 있다. - P295

이 시기에는 아버지가 딸을 노예나 매춘부로 팔 수도 있었는데, 이후 금지되었다. 군주제 시대가 되면서 가족구성원의 생사에 대한 아버지의 권력은 더 이상 무제한적이거나 무제약적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전에 비해 딸들의 위치가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 P296

우리는 구약성서 내용이 유대 부족들이 연합체에서 국가형성기로 넘어가면서 여성들의 공적·경제적 역할의 점진적 제한, 종교적 기능의 축소,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제 증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 P308

나는 다음 장에서 언약의 시초부터 그 공동체는 남성공동체로 정의되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공동체의 남성적 성격은 제례기능에 있어서 극히 적은 기회만을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는데, 그 이유는메소포타미아의 전통에서 여사제들은 여성신들을, 남사제들은 남성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 P310

전능한 하느님 아래 세워진 이 새로운 질서는 히브리인들과 성서를 그들의 도덕과 종교적 지침으로 삼은 모든 사람들에게 여성들은 하느님께 직접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 P311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그 지역에 살았던 다른 부족들의 창조설화와는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우주와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유일한 창조자는 야훼다. 이웃부족들의 주요 신들과 달리, 야훼는 어떤 여성신과도제휴하지 않으며, 가족적 연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우주의 창조와 지구상의 생명을 위한 모성적 원천(maternal source)이라는 것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전혀 반대로,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인간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무엇과는 완전히 다르다. - P316

성서에서 성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은유는 남자의 갈비뼈로 창조된여자에 관한 은유와, 신의 은총에서 인간의 타락을 초래한 유혹자이브에 대한 은유이다. 이 두 은유는 여성의 종속을 신이 승인했다는 증거로써 2천년 동안 인용되어왔다. 동시에 이들 은유는 그 자체만으로 성별관계에 관련된 가치와 실천을 정의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 P318

창세기 이야기의 상징적 의미는 둘 다 야훼의 개입을 통해 신성한 물질들이 스며들었지만, 흙에서 창조된 아담과, 인간 몸의 일부에서 창조되었으며 고대 다산 여신들의 후계자인 이브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분법은 야훼가 벌로써 노동의 성별분업을 명한 타락 이야기 속에서강화된다. 아담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 속에서 일할 것이며, 이브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낳고 후손을 키울 것이다. 부과된 처벌이 남성에게 일을 부담으로 만들지만, 여성을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도록 한 벌은 여성의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자연적 결과인 여성의 출산하는 몸에 대해서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323

하느님에 대한 남성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변화는 언약에 대한 이야기에서 일어나며, 여성을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언약과 함께 인간들은 역사시대로 들어가게 되고 그 이후로는 그들의 집단적 불멸성이야훼와 맺은 언약의 한 측면이 된다. 시간과 역사를 통한 인간들의 변천은 야훼의 약속을 수행하는 표시이며, 그들의 행위와 활동은 언약에 있는 그들의 의무에 비추어 해석되고 판단된다. 언약은 또한 글자 그대로,
12개의 흩어진 부족들을 하나의 국가로 뭉치게 하는 것이다. 사원건물에앞서, 언약의 성궤는 그들의 종교생활의 중심이다. 언약의 의례, 즉 할례(circumcision. 남성 성기의 포피를 절제하는 것 -옮긴이)는 개별 남자아이와 각 가족의 언약 의무에 대한 재헌신을 상징화한다.1)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언약에서의 여성부재는 결코 우연한 것도,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 P328

창세기에서 일어난 일은, 가부장적 의미를 강화하도록 오래된 은유를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아브람의
‘씨‘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은 생식력이 여성으로부터 남성으로 옮겨짐을신이 승인하는 것이다. - P329

할례에 함축된 상징성은 강력한 가부장적 여운을 갖고 있다. 그것은이제 생식력이 하느님 안에 그리고 인간 남성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토지와 권력을 그것과 연결시킨다.  - P334

따라서 이브를 다시 이름짓는 것 혹은 그녀 이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바로 타락한 아담의 첫번째 행위이다. 타락한 이브는 어머니로서 그녀의 새로운 구속적(的) 역할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그녀의 선택폭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둘 다 하느님에 의해 부과된 조건으로서, 그녀가 뱀과 관계를 끊고남편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 P341

성서적 이야기의 무게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여성들은 오직 남성들의 중재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언약에 포함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어머니-여신이 죽고 그녀가 하느님 아버지와가부장제 아래에서 은유적 어머니 (metaphorical Mother)로 대체된 역사적 순간이 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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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고대의 종교의식과 여성숭배의식에서 나타난 종교의례(다산을 기원하는 신성결혼의식같은)를 매춘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

또한 이것을 사원 근처에서 이루어진 상업적 매춘과 동일시 하는 것의 문제는 매춘의 기원 문제나 매춘 자체의 개념 문제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신성결혼은 그야말로 인간세계에서의 다산을 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이며 이러한 의식에 참여했던 여성들 대부분의 지위는 상당히 높았으며 존중받았다. 또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엔키두를 인간사회로 이끄는 여성 매춘부 하림투는 야성의 문명화를 이끄는 존재이다. 여기서의 전제는 섹슈얼리티는 문명화시키는 것이며, 신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상업적 매춘의 등장은 여성들의 노예화와 계급의 형성 및 강화에서 직접적으로 유래된 것 같다. 그 결정적 계기는 대규모의 전쟁으로 인한 포로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노예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체무노예가 더해진다.

남은 문제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그리고 존중받지 못할 여성들과 남성들의 교제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였다. 바로 여기서 베일이 등장한다. 이제 베일의 사용여부에 의해서 존중받는 여성/존중받지 못하는 여성의 구별이 완성된다. 이것의 의미는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들'과, 남성들에 의해 보호되지 않은 채 거리에 나가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자유롭게 파는 '평판이 나쁜 여성들'로 나눠지고 이것이 여성들에게는 기본적인 계급구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역사적으로 여성들 사이에 계급동맹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였고, 페미니스트 의식이 형성되는 것도 막았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 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는 토대 중 하나이다. 


6장 - 여신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과 여신의 계급격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지체가 있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여신에게 빌었고, 여신에 대한 제의를 진행하는 여사제들의 권력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기원에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신성함과, 치유의 힘을 포함해 생명을 주는 섹슈얼리티의 신비함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국가의 발달과 왕권의 강화는 종교적 신념과 상징들에것 어머니-여신상의 격하, 그녀의 남성 배우자/아들의 우위와 그들의 지배, 그후 그가 폭풍-신과 합쳐져서 유일한 남성적인 창조자 하느님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문자의 발명을 통한 기록하기, 이름짓고 개념짓기와 같은 상징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개입이 있었다.언어에 의한 추상화의 능력은 눈에 보이는 어머니-여신-다산의 능력을 뛰어넘어 남신의 능력을 추상적 개념들로 대체할 수 있는 도구를 쥐어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재생산 및 성적 권력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가치가 절하되고 상품화되었든지간에 그들의 본질적 평등성은 여신들이 살아 있고 인간의 생활을 관장한다고 믿어지는 한 생각과 감정에서 사라질 수 없었다. 




매춘의 기원이 섹슈얼리티에 대한 태도변화와 특정한 종교적 신념에서 시작되며, 성적 관계에 영향을 미쳤던사유재산의 제도화 및 노예제의 제도화가 일어난 시기의 경제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변화한다고 한 그의 통찰력에 주목해야 한다.  - P225

 아시리아학 학자들은 여신을 의인화(擬人化)하거나 재현하는 신성결혼(SacredMariage)에 매년 참가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계급의 여성들이라고 생각한다.
신성결혼 예식의 토대에 깔려 있는 것은 땅과 사람의 다산성이 다산여신 (fertility goddess)의 성적 권력을 찬양하는 데 달려 있다는 신념이었다.  - P227

사원매춘부는 사회가 인정한 역할이다. 그녀의 역할은 영예로운 것이다 사실상 야성의 남성을 문명화시키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바로 그녀이다. 여기서의 전제는, 섹슈얼리티는 문명화시키는 것이며, 신들을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매춘부는 ‘여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다른 여성들로부터 구분당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야성의 남성을 길들이는 일종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문명의 도시로 따라온다. - P237

상업적 매춘은 여성들의 노예화와 계급의 형성 및 강화에서 직접적으로 유래된 것 같다. 기원전 세번째 천년에 있었던 군사적 정복은 포로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와 노예화의 원인이었다. 노예제가 제도로 확립된에 따라, 노예 소유주들은 자신의 여자노예들을 매춘부로 대여하였고,
어떤 주인들은 상업적 매춘굴을 설립하였다.  - P238

남은 문제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과 존중받지 못할 여성을 어떻게 확실하고 영구적으로 구분할 것인가였다. 동시에 해결책이 필요했던 또 다른 문제는 ‘존중받지 못할‘ 여성으로 규정된 여성들과 남성들이 교제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였다.  - P239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들‘과, 남성들에 의해 보호되지 않은 채 거리에 나가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자유롭게 파는 ‘평판이 나쁜 여성들‘로 나눠진 것은 여성들에게는 기본적인 계급구분이었다.
그것은 하층계급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성적 억압과는 대비되는 상층계급 여성들의 제한된 특권을 표시했고, 여성들을 두 개의 집단으로 분리하였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여성들 사이에 계급동맹이 형성되는 것을방해하였고, 페미니스트 의식이 형성되는 것도 막았다. - P248

그렇기 때문에 위계와 계급특전은 국가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데근본적이었다. 따라서 감히 베일을 쓰고 거리에 나타나는 매춘부는 불온한 병사나 노예만큼이나 사회질서에 큰 위협이었다. 딸들의 처녀성과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정절을 지키는 부인들은 사회질서의 중요한 특성이되었다. 그때까지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가장들에게 남아 있었던 여성의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MAL§40을 통해 국가에게 맡겨졌다. 기원전1250년경부터 줄곧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쓰는 것에서부터 산아제한과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는 가부장적 권력의 본질적 특성이 되어왔다.  - P249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 중 하나이다. - P249

가부장제의 제도화가 어떻게 서로 다른 계급 여성들 사이에 뚜렷하게 정의된 경계를 만들어냈는지 보았다. 국가는 성문법 조문들의 확립과정에서 상층계급 여성들의 성적 권리를 제한하고 결국에는 완전히 없애버린 반면, 그들의 재산권을 증대시켰다.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평생 동안의 종속상태는 ‘자연스럽고‘ 신이 부여한 것으로 생각될 만큼 법과 관습 속에 공고히 확립되었다.  - P253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종속과 여신의 계급격한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지체가 있었다. 천년 이상의 기간 동안 신들의 신전에서 남신과 여신들의 지위변화를 추적해 볼 때, 심지어 최고의 여신들이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을 때조차 일상적 생활과 대중적 종교 속에서 여신들과 그들을 섬기는 여사제들의 권력은 계속 위력을 발휘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여성들을 종교적으로, 교육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종속시켰던 사회들에서 여신들의 영적 ·형이상학적 권력이 여전히 활동적이고강했다는 것은 놀랄 만하다. - P254

우리는 청원자들이 여신들을 전능하다고 보았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귀한 돌로 장식하여 그녀에 대한 찬미로서 바친 여신 음문의 상징 속에서, 그들은 여성 섹슈얼리티의 신성함과, 치유의 힘을 포함해 생명을 주는 섹슈얼리티의 신비함을 찬양하였다.  - P256

나의 주장은 증대하는 군사주의와 쟁기농경의 발달이 친족관계와 성별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처럼, 고대적 형태의 국가발달과 강력한 왕권이 종교적 신념과 상징들에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변화의 유형은, 먼저 어머니-여신상의 격하 그리고그녀의 남성 배우자/아들의 우위와 그들의 지배, 그후 그가 폭풍신(storm-god)과 합쳐져서 남신들과 여신들의 신전에 우두머리이자 유일한 남성적인 창조자 하느님 (Creator-God)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 변화가 일어난 곳이 어디이든 창조의 권력과 다산성의 권력은 대여신으로부터 하느님(God)에게로 이전된다. - P259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역사의 어느 시기에 창조의 개념이바뀌었다는 것이다. 창조는 여성의 다산성이 가진 신비한 힘의 단순한발휘라는 의미에서, 종종 양성의 신적 존재들이 개입하는 의식적 행위로변화하였다.  - P268

이름짓기라는 개념 속에서처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의 상징화는 창조력의 유일한 원리인 어머니 여신으로부터의 이탈을 단순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P269

여성의 다산성이라는 상식적이고 관찰 가능한 사실에서 이탈하는 것과, ‘이름‘과 ‘개념‘ 속에 표출될 수 있는 상징적 창조력을 개념화하는 것은, 말하자면 더 높은 수준의 사고이다. 그것으로부터 우주의 ‘창조적 정신‘(creative spirit) 개념으로 옮겨가는 것은 그다지 큰 비약이 아니다. 그러나 추상성을 만들어내고 추상적 개념들을 대신하는 상징들을 창조하는 능력에서의 일보전진은 분명 일신주의로 향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 P269

여성들의 재생산 및 성적 권력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가치가 절하되고상품화되었든지간에 그들의 본질적 평등성은 여신들이 살아 있고 인간의 생활을 관장한다고 믿어지는 한 생각과 감정에서 사라질 수 없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남신들 속에서 찾았던 것처럼 여신들 속에서 그들과닮은 점을 찾아냈음이 틀림없다. 여사제들의 권력과 신비로움은 사제들의 것만큼이나 막강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남성들과 다른 기능 및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여성들이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 사이를 여전히 중재하는 한 인간존재로서 이들의 본질적 평등함은 침범될 수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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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6-21 08:10   좋아요 0 | URL
누가 제 말을 뭘로라도 써주면 무조건 가문의 영광으로 아는 사람입니다요. 제가. ㅎㅎ 그런데 하물며 단발머리님이 쓰겠다고 하시는건데 더더더 영광입니다. ^^

단발머리 2022-06-21 08:11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영광이지요.
그럼 먼댓글 트랙백도 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례할게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06-21 08:13   좋아요 0 | URL
네네네~~~ㅎㅎ
 















5장 부인과 첩


-함무라비 법전, 중기 아시리아법, 히타이트법, 성서율법에 대한 분석

남자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으 그의 가족, 하인, 그리고 /또는 노예가 대신 받도록 대체할 수 있는데 이는 왕가가 순장의 방식으로 권력을 표현했던 것처럼 계급위계의 발달에서 이 원리가 서민 및 일반 가구의 가장들에게까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계급사회의 형성기에 일반적으로 남성의 계급 지위는 그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여성의 지위는 그녀의 성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를 접할 수 있다. 


히브리의 언약율법에서 남성채무노예는 6년 후 자유로 풀려날 수 있으나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아니다. 그가 가족과 함께 머무는 것을 택한다면 그는 영원히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오늘 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기막힌 규정인데 이에 대한 해석으로는 가족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생각해봐야 할 거같다. 오늘날에는 가족에 일종의 신성 내지는 절대성이 부여되어 있지만, 이 시기에는 남자와 그의 가족들이 노예가 되면서 가족은 완전히 해체되는 것으로 봐야하는걸까? 그러므로 여성과 어린 자녀들은 새로운 주인의 노예 내지는 첩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새로운 가족체계안으로 포섭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층계급의 가족들은 딸들의 결혼을 가족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동종결혼 또는 상향결혼이 일반화 되었으며, 여성은 아들의 생산에 의해서 확실한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즉 여성들은 자손을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가치가 부여되었으며, 한 남성에 대한 평생에 걸친 종속이 제도화 되었다.

하층계급이 경우 남녀 자녀들은 재산이 되었고, 노예나 하향결혼으로 팔려갔다. 이 경우 그들은 출생가족내의 모든 재산권을 포기하게 하며, 아들의 동종결혼을 위한 경제적 기반마련에 이용되었다. 


남성의 간통에 대해서 무한히 느그러운데 반해, 여성의 경우 간통은 남편의 재산권에 대한 위반으로 받아들여져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부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남편의 사적인 관할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인 법정으로 확대되었다. 강간의 경우에도 이를 금하고 있지만 여러 법들에 공통인 것은 모두 피해를 본 측은 남편 혹은 강간당한 여성의 아버지라는 원칙이 들어있다. 여기서 실제 피해자인 여성의 자리는 없다. 그러므로 여성은 강간범과 결혼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덧붙여서 - 저자도 말하듯이 법으로 무언가를 규정짓는다는 것은 실제 사회에서 그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함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203쪽에 나오는 예 -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은 모두 사형, 딸을 강간한 아버지는 도시에서 추방, 결혼 전 아들의 어린 신부를 강간한 아버지는 벌금형, - 시아버지가 결혼한 아들의 부인을 강간하면 사형

저 예들에서 실제 저런 근친 강간이 인류역사 초기에도 빈번하게 일어났다는것에도 놀라지만 그 저변에 깔려있는 남녀차별적인 인식은 어쩔꺼나..... 더 놀라운건 이런 인식이 지금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다는 것,

법이 하는 일은 허용 가능한 행위에 제한규정을 두고, 우리에게 그 법 아래에 놓여 있는 사회구조에 대한대강의 지침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따라서 주어진 사회의 가치들에 대해 실제보다 더 잘 묘사하고 있다. - P184

 분명히 당시에 남성들은 처벌을 받아야 할 경우 자기 대신 보내는 그런 방식에 가족구성원들―즉, 여성들과 남녀 자녀들을 편입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인, 노예, 그리고 가신들을 왕이나 여왕과 함께 같은 무덤에 묻는 것은 다른 사람을 편입시키는 권력의 오래된 표현 중 하나였다. 그 권력은 처음에는 스스로를 신이나 신의 직접적인 사자로 생각한 통치자들에게만 있었다. 계급위계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이 원리가 서민 및 왕가가 아닌 가구의 가장들에게까지 확대되었음을알고,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 기간 동안 그런 가장들은 항상 남성들이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 P186

 우리는 계급사회가 형성되는 이 시기의 많은 다른 예들에서남성의 계급지위는 그의 경제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여성의 지위는그녀의 성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리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수천년 동안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던 원리다. - P188

가족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아들들과 딸들에게 상속권을 주는 것이 곧 그들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 P192

가족경제에서 여성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점차 높아졌다. 그들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물건들의 생산자이자 자녀생산자이며,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며, 가내노동자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적서비스가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바뀌게 된 사람들이었다. 사물화된 것은여성 자신들이 아니라, 여성들의 성적 서비스와 재생산 서비스이다. - P195

재산이 충분치 못하거나 없는 하층계급 가족에게 개인들(남녀 자녀들)은 재산이 되었고, 노예나 하향결혼으로 팔려갔다.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그들이 출생가족에서의 모든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같은 계급 소녀와 아들의 결혼이 아들의 여자형제를 팔아서 가능해짐으로써 이런 혼사는 사실살 그 여자형제에게는 구매에 의한 결혼을 만들어냈다. - P196

간통과 처벌의 잔혹함 정도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의 비대칭과는 별도로, 이 법들의 놀라운 점은 성적인 문제들에 대한 규제와 관련하여 국가(왕)에게 주어진 권위가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인의 섹슈얼리티에대한 통제는 이전에는 분명 남편의 사적인 관할 안에 있는 문제였다.  - P200

강간을 금한 여러 가지 법들에는 모두 피해를 본 측은 남편 혹은 강간당한 여성의 아버지라는 원칙이 들어 있다. - P202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천년이라는 기간에, 가부장적지배가 어떻게 사적 관습에서 공적 법으로 옮겨갔는가를 보게 된다. 이전에는 남편과 가족의 가장에게 주어졌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이제는 국가가 규제하는 사안이 되었다. 물론 이 속에서 일반적인경향은 국가권력이 증가하고 공적 법률이 확립되는 것이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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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부장제의 창조] 의도하지 않았던 일의 결말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06-21 13:14 
    나는 여기서 결정론을 주장하거나 의식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건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으며, 그것은 남성들도 여성들도 의도하지 않았던 특정한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사회라는 대담한 신세계를 출범시킨 현대남성들이 오염이나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관련된 결과들을 알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과정을
 
 
단발머리 2022-06-16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의문이 점점 깊어졌거든요. 아니, 이렇게 여성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이러한 강력한 규제, ‘법률‘이 인류 역사 초기부터 이렇게나 견고했단 말인가. 또 한 번 절망하게 되는 지점입니다.
바람돌이님 지적처럼, 근친 강간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구요. 결국 우리 문명, 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메소포타니아 지역의 고대 문화에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아직도 앞부분입니다. 바람돌이님, 기다리세요. 부지런히 따라 갈게요^^

바람돌이 2022-06-17 15:26   좋아요 0 | URL
무언가를 복종시켜본 경험, 지배해본 경험은 정말 힘이 세다고 생각합니다. 편하잖아요. 그 편함을 인간의 이기심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거고, 점점 당연시 하면서 강화시켜 가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성의 지배에 대한 경험이 노예제를 더 쉽게 이루게 했다는 저자의 관점에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여성 억압의 역사도 일률적이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북방 유목의 영향이 많던 발해같은 경우 여성의 목소리가 굉장히 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거든요. 그에 반해 평지 농경문화가 우세했던 백제 같은 경우 남편 계백에 의해서 가족의 생사여탈이 주어져버리는 경우도 보이고요. 자연환경이나 인문적 환경 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여성억압의 역사 또한 강도를 달리하고 부침을 겪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단발머리님이 올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빨리 읽을겁니다. 마음은요. ㅎㅎ
 
















3장 대역(代役)부인과 볼모


메소포타미아 초기 문명에서 왕들은 자신의 딸들을 신전의 여사제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게 하였고,

수메르의 북쪽 돗 마리에서 나온 왕실문서모음집에 의햐면 엘리트 여성들에게 경제, 정치적 활동을 크게 허용했음을 알 수 있다. - 계약 체결, 법정 소송 제기, 입양, 재산 매각, 임대, 법적 거래 등


이러한 여성의 '대리'역할은(저자는 이것을 대역(代役)부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번역이 참 적당하지는 않은것 같다) 왕권통치의 초기개념의 일부를 이루며, 국가기구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여서의 지위와 역할 또한 제약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성 가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인의 권력은 왕의 의지와 변덕에 좌우되었고, 전쟁이나 권력투쟁에서 왕이 패했을 경우 전리품이 되었다. 

결국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국가의 제도화 이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발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4장 여성노예


노예제는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지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남성들은 이러한 경험을 노예제 이전에 바로 자기 집에서 여성들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먼저 체험하였다. 따라서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쟁에서 먼저 노예가 된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었으며 남성전쟁포로들이 노예가 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피정복여성에 대한 강간은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었으며, 가부장제와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이다. 노예제에서부터 축첩제도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포로 여성들의 포획자의 가구에 통합시켜서 포획자가 그 여성들의 충성스런 서비스와 그 자손들을 확보하는 사회적 도구가 되었다.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이 노예제를 제도화하는데 개념적 모형을 제공한 것처럼, 가부장적 가족은 구조적 모형을 제공하였다. 노예제는 노예를 열등한 사람으로 고착시키고, 언제나 종속시킬 수 있었던 여성 역시 노예와 비슷한 것처럼 열등하게 보였다. 







여성의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친족기반에서 계급기반 사회구조로의 변화이다.  - P101

왕의 부인과 딸이 남편과 아버지를 위해 맡는 ‘대리‘ 역할의 발달을 추.
적하다 보면, 또 다른 문화와 장소 -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의 접경지대인 수메르의 북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던 도시 마리 (Mari)에서나온 증거들을 참고할 수 있다. 기원전 1790~174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왕실문서모음집은 엘리트 여성들에게 경제 · 정치적 활동을크게 허용한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재산을 소유·관리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증인으로 참여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입양, 재산매각, 빚을얻거나 주는 등의 사업과 법적 거래에도 참여하였다. - P119

 마리에서 나온 문서들이 남성과여성 예언자의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마리사회에서 엘리트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지위에 있었음을 말해 준다. - P120

여성의 ‘대리‘ 역할이 왕권통치의 초기개념의 일부를 이룬다는 것은 흥미를 끌며, 국가기구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여성의 지위와 역할 또한제약을 받게 되었다는 나의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 P120

지배엘리트들의 왕권찬탈자로서의 이해관계로 인해, 그들이 확립한권력의 형태는 이를 관찰한 어떤 사람이 쉽게 ‘세습적 관료주의‘
(patrimonial bureaucracy)라고 불렀던 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들의권력이 얼마나 안정적일지 여부는 권력의 중요한 하급지위에 가족구성원들을 얼마나 많이 임명하느냐에 달려있었다.이 초기시대에 그런 가족원들은 매우 종종 여성 - 부인, 첩, 딸들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들은 남편/아버지/왕을 섬기는 최상위 신하들이 되었다. ‘대역부인‘ (wife-as-deputy)의 역할은 이렇게 출현하였으며, 이 시기 이후 그런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계속 등장하게 된다. - P128

여성들은 가장 안전하고 고위층 출신이고 자신감에 차 있을지라도스스로 남성의 보호에 의존하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사회계약의여성세계이다. 자율을 거부당한 여성들이 보호에 의존하고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 P130

 양성간의 가부장적 관계의 모체는 경제·정치적 발전이 국가를 충분히 제도화하기 전에, 그리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발달하기훨씬 이전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P130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 P138

스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 P138

수많은 요인들의 집합이 성적 비대칭과 여성과남성에게 불평등한 비중으로 부과되는 노동분업의 원인이다. 그로부터친족관계는, 결혼에서 여성들이 교환되고 여성은 남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지 않지만 남성은 여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는 사회적 관계들을 구축하였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은 가족을 위한 서비스를 위해 교환되거나 획득되는 물건이 되었으며, 따라서 집단으로서 여성은 남성보다 자율성을 덜 갖는 집단으로 생각되었다.  - P139

나는 피정복.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 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며,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상태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계급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가부장제 체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다. - P143

거의 천년 동안 ‘노예제‘에 대한 관념은 ‘여성‘이라는 바로 그 정의(definition)에 반영되는 양식으로 현실화되었고 제도화되었다. 이전 시기의 결혼교환에서 자신들의 성적 · 재생산 서비스가 사물화된 여성은공적 사적 영역과의 관계가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간주되면서 그 시대의 막바지를 맞이하였다. 남성은 그 계급위치가 강화되고 재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었다면, 여성의 계급위치는 성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 P166

 집단으로서의 남성에 대한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종속은 각 친족집단 내에서 복종, 즉 연장자에 대한 연소자의 복종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다. 순환적이며, 따라서 공평한 개인이 각각 복종과 지배에서 자기차례를 도는―이 형태의 복종은 집단적 복종을 위해 수용 가능한 모형으로 만들어진다. 자기들에게 강요된 새로운 종류의 복종이 동일한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여성들이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공고하게 확립되었음에 틀림없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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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기원들


세 가지 질문 

1. 여성종속은 보편적인 것인가? 가부장적 지배체제가 역사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면 , 달라진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끝낼 수 도 있는것 아닐까?

2. 여성종속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안적 모형의 사회는 과연 존재했는가?

3.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여성 종속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가부장제의 성립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한 앞선 연구들

엥겔스는 성별 노동분업의 변화와 사유재산제의 성립과 그것의 보호, 상속을 위해 부계 혈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의 성립을 논의했다. 또한 남성에 의한 경제적, 정치적 지배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도 관련이 있음을 역사적으로 파악했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간 금기에 의해 여성의 교환이 등장하고 이것이 여성의 상품화, 사물화와 관련된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이는 가부장제의 성립에 대해 경제적 요인 뿐만 아니라 상징과 의미체계의 요인으로까지 연구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하나 모성주의(maternalist) 이론이 있는데, 이는 19세기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모성본능과 모성실천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이타적이고, 이러한 특성으로 남성들의 파괴, 경쟁, 폭력으로부터 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모성주의에 의하면 가부장제가 있기 전에 대안적 모형이 존재했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고대종교에서의 어머니-여신상의 보편적 존재를 들 수 있고, 이것을 여성 권력의 실존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권제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 남성 위에서 권력을 보유하고, 그 권력이 공적 영역과 외교관례를 포함할 때, 또한 여성이 친척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인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가부장제의 정확히 반대편에서 모권제를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런 식의 모권제는 아직까지는 역사속에서 존재한 적이 없다.


터키에서 발굴된 카탈 휴유크 유적의 경우 가부장제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모형의 사회가 존재했음을 말해주지만 이것이 모권적 사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 초기의 이 유적을 통해 여성의 종속이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터키의 카탈 휴유크 유적에서 남성과 여성이 껴안고 있는 놀라운 조상이 발견되었다고(59쪽) 나와서 너무 궁금해서 찾아본 사진. 상체는 안고 있지만 하체는 거의 한몸인 것처럼 보이는 이 독특한 조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후기 신석기시대의 이 유적은 진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있는듯.... 





제2장 작업가설


과거에 대한 어떤 이론화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이 문명을 함께 건설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구문명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과 남성이 현재의 상황으로 이르게 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게 해준다.

단순화시킨다면 평등했던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왜 불평등으로 이행했는지 가부장제의 역사적 연원과 전개과정을 추적하게 해주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현재까지는 실재하지 않았던 모권제 사회를 계속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생물학적 성차에 의한 분업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강건함 따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재생산능력(임신, 출산)의 차이, 특히 여성이 아기를 젖먹여 키우는 능력에 의한 차이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의 짧은 수명을 전제로 할 때 부족의 생존과 관련된 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분업이 이후 시간이 가면서 문화적으로 생성, 강화되면서 남성지배가 역사적 현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농업혁명기 중 어느 시점에 성별노동분업형태의 비교적 평등했던 사회들은 근친상간 금기와 족외혼에 근거한 여성교환 관행과 사유재산제가 특징인 사회로 대체된다. 이 새로운 사회는 부계혈통과 부처거주제가 지배적이었으며, 생물학적 구분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위계에도 근거한 노동분업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해석을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접근법 개념적 틀은 결과를 결정짓는다. 그것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대답되기를 원하는 과거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 P33

모든 수렵채집사회에서 여성들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무엇이었든간에 어떤 면에서 여성은 항상 남성에게 종속적이었음을알아야 한다. 여성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남성 위에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거나 혹은 여성이 성적 계약의 규칙을 규정하고 결혼교환을 통제하는사회는 단 한 곳도 없다. - P55

여성지배에 관련된 연구결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수 있다. 첫째, 사회에서 여성평등에 관한 증거의 대부분은 모계혈통적이고 모처거주 사회에서 나온 것으로 이들은 역사적으로 과도기 상태이며현재 사라지고 있다. 둘째, 모계제와 모처거주는 특정한 권리와 특혜를여성들에게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집단 내의 의사결정권은연장자 남성들에게 있다. 셋째 부계혈통적 계승이 곧 여성의 예속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모계혈통적 계승도 곧 모권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넷째, 오랜 시간을 두고 볼 때, 모계혈통적 사회는 경쟁적 착취적 기술경제체계에 적응할 수 없으며, 부계혈통적 사회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 P55

나는 여성이 남성과 함께가 아니라 남성 위에서 권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만이, 그 권력이 공적 영역과 외교관례를 포함할 때, 그리고 여성이 친척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필수적인 결정을 할 때 진정으로 모권제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의 나의 논의에서와 같은 맥락에서, 그런 권력은 사회의 가치와 설명체계를 정의하는 권력과 남성의 성적 행위를 통제하고 규정하는 권력을 포함해야만 할 것이다. 독자는 내가 모권제를 가부장제의 거울이미지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 정의를 사용하여 나는 모권제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결론짓고자 했다. - P56

 그러나 카탈 후유크는 우리에게 가부장제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모형의 사회가 존재하였음을 말해 주는 견고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모권적 사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앞에서 인용한 다른 증거에 이것을 더하면, 여성의 종속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다.  - P62

과거에 대한 어떤 이론화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이 문명을함께 건설했다는 가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최종결과로부터 시작해서거꾸로 추론하기 때문에 우리는 단일원인 ‘기원‘에 대해 물을 때와는 다른 질문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서구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구축과 사회 건설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는가?"
라고 질문한다.  - P69

나는 권력화 작업으로서의 과거찾기모권제 찾기를 포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제안한다. 오래된 과거 속의 여성에 대한 보상적 신화의 창조가 현재와 미래의 여성을 해방시켜 주지는 않는다.  - P69

그래서 우리의 탐색은 가부장적 체계의 역사에 대한 탐색이 된다. 남성지배체계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과, 그 기능과 양상이 시간이 감에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뚜렷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가부장제를 비역사적이고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않고 불변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신비화하였다. - P71

 만일 우리가 양성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여성의 예속을 종식시키려면,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모성‘ (motherhood), 모성의 구조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발생되는 관계들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 P81

 그 모든 복합성속에서 이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이론적 모형이 반드시여성 교환 관습을 고려해야만 한다. - P84

생존을 위해 여성들과 남성들은 인구학적으로 같은 수를 이루어야 했다.
메이야수는 분만할 때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부족들은 다른 집단들로부터 더 많은 여성들을 조달해야 했고, 또 여성들을 약탈하려는 경향은 부족간의 끊임없는 전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사문화(文化)가 출현하였다. 여성약탈의 또 다른 결과는 잡혀온 여성들이 그들을 잡아온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거나, 약탈부족 전체에 의해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성들이 정복하고보호했기 때문에 그들은 여성을 사물화하는 사람이 된 반면, 여성은 물건과 같이 소유물로 생각되었다―여성은 사물화되었다. 여성의 재생산능력이 처음에는 부족의 자원으로 인식되다가, 이후 지배엘리트가 생겨나면서 특정 친족집단의 재산으로 소유되었던 것이다. - P88

고고학적 증거에 기초하여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몇 개의 사실들이있다. 농업혁명기 중 어느 시점에, 생물학적 필요에 근거한 성별노동분업 형태를 가졌던 비교적 평등한 사회들이 근친상간 금기와 족외혼에 근거한 여성교환 관행과 사유재산제가 공통적인 특징인 더욱 고도로 구조화된 사회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살아남은 후자의 사회들은 부계혈통과부처거주제가 지배적이었던 반면, 이보다 이른 시기의 사회들은 종종 모계혈통과 모처거주적이었다. 부계제에서 모계제로 가는 반대의 과정을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 복잡한 사회들에서는 더 이상 생물학적 구분만이 아니라, 일부 남성들이 모든 여성들과 다른 남성들에대해 행사하는 권력과 위계에도 근거한 노동분업이 특징적이었다. 많은학자들은 여기에 묘사된 전환이 고대국가의 형성과 동시에 일어난다고결론내렸다. 30)이 시기와 함께 이론적 추정은 끝을 맺어야 하고, 역사적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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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06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앗 시작하셨고 벌써 이만큼이나 읽으셨군요.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2-06-06 16:14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려고 일단 빨리 시작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