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는 가톨릭의 힘이 줄어들며 대형 종교화가 사라졌지만 이들도 개신교인이었기에 그림에 종교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성경 시편) 103장 15~16절에는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라고 쓰여 있다. 꽃은 자체로 아름답지만 조만간 시들 수밖에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므로 현재의 영화가 한시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그림에 넣은것이다.
- P34

그렇다면 그림의 관람자는 그림의 의미를 안다고 해야 할까, 모른다고 해야 할까? 안다고 하면 이미 많은 이들이 알면서도 모르는척한 일을 경험한 사람이 된다. 모른다고 하면 살롱전에서 선정한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렇게 불편한 그림을 왜 그렸는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난감한 기분을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니 비평가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에 동참할 수밖에. 이 그림은 포르노그래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없는 것이다.
- P44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에서는 한 판메이 헤런이라는화가의 국가 반역죄 재판이 열린다. 전쟁 당시 나치의 2인자 괴링에게 국보급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매각한 죄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판메이헤런은 법정에서 자신이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그려 위작을 판매했다고 실토한다. 전쟁 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비평가들의 명성에 해를 입히려고 페르메이르 작품을 연습해 속여왔으며, 괴링에게 판매한 작품도 자신도 그린 것이라고 증언한다. 실제로 그는 경찰의 감시하에 위작을 그려 국가를 배신한 혐의를 벗지만 우습게도 괴링에게 받은 돈도 위조지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 P73

마지막으로 당시 대부분의 초상화에서 측면이나 정면을 그리던 정형을 벗어나 몸은 약간 측면, 시선은 정면을 향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그린다. 편안하게 자세를 취한 그녀는 그림을 보는 이를마주 보며 웃는다. 〈모나리자>가 그려지기 전에는 어떠한 초상화도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어주지 않았다.
- P87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글을 읽지 못했고, 화가들은 글 대신 성경 내용을 설명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조토는 달랐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이며, 사람의감정, 표정, 동작을 그녀 지식이 아닌 감징을 전달했다. 또 원근법이재발견되기 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풍경, 건물과 같은 배경 요소를최초로 도입한다.
- P116

밀레는 들판을 노래한 화가였다. 작품에 담긴 밀레의 예술관이아닌 경매 전쟁, 해석의 논란, 20억 장 이상의 복사본 등 자극적인소재로 〈만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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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심우찬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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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에 대해서 딴지부터 걸고 싶다.

19세기말, 그 시대를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르는 건 그들 맘이겠지만,

그게 꼭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언제든 아름답고 또 언제든 추하다 

딱히 어느 시대라고 해서 특별히 더 아름답지도, 특별히 더 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19세기말의 유럽 역시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시대일 뿐이다.

산업혁명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향유되었고, 또 한편으로 그것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무수한 식민지를 착취한 결과였던 시절.

모든 것이 넘쳐나고 여기저기 돈이 뒹굴고 다니지만, 그 맞은편에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가난한 이들의 삶은 비참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였던 시절.

거기다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경쟁과 대립 역시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시절.

다만 신흥계층인 부르조아들의 넘쳐나는 돈으로 인해 온갖 문화투자와 상품소비가 과하게 넘쳐 흘러 문화적 성취들만큼은 활발하던 시절이라고 할까?

산업이 그러했듯 문화에서도 온갖 실험과 새로운 생각, 새로운 표현들이 나오고 또 용인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다른 시대보다 좀 더 역동적이엇던 시대 이미지를 제목으로 붙이는 것이 오히려 책의 내용에 더 맞지 않을까?

그러면 책이 안 팔리려나? 


그래도 제목에 비해서 실제 책의 내용은 어느정도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목에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덕분에 이 책과 이 시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의외로 책은 벨 에포크 당시와 그 시대를 살았던 셀럽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의 분위기를 맘껏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 이 인물은 알폰소 무하를 읽으면서 익숙한 인물이다.

코르티잔인 어머니의 삶을 반복하거나 수녀가 되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한다는건 이 시대 여성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보석세공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르네 랄리크처럼 처음 듣는 이도 있지만 명품의 대명사처럼 얘기되는 루이 뷔통이 여행용 트렁크를 만드는데서 시작되는 탄생과정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페미니즘의 태동과 각기 다른 운동들의 형태, 거기에 관여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더더욱 흥미롭다. 

구시대의 유물이면서 벨 에포크를 활짝 피게 만든 살롱문화를 이끌었던 여성들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고...

언제든 인간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온전히 그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해준다.


메리 메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 4권짜리를 읽기 전에 워밍업삼아 선택한 책이었지만 이 책대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즐겁게 맛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또한 책의 곳곳에 당시의 음악과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는 QR코드를 같이 올려주어서 동영상과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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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10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라는 어감이 멋진것 같아요. 프랑스어는 왠지 좀 고급스럽게 느껴져요 ㅎㅎ

바람돌이 2021-10-11 20:41   좋아요 2 | URL
그래서 프랑스어가 18세기 19세기 유럽 궁정어가 됐겠죠. 그 때는 궁정인들은 프랑스어로 얘기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귀족이라고 햇대요. ^^ 하지만 프랑스어가 성조가 좀 세잖아요. 그래서 말을 빨리하거나 하면 굉장히 시끄럽더라구요. 영화볼 때요. ㅎㅎ

프레이야 2021-10-10 2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 책 <프랑스여자처럼>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더더 스타일리스트다운 내용이네요.
인간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늘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되어요. 인간은 개별적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기도 하니까요. 그나저나 워밍업 독서라니 계획 세워 읽으시나 봐요.
무조건 화이팅입니다, 바람돌이 님.^^

바람돌이 2021-10-11 20:43   좋아요 2 | URL
아 저는 이 저자 책은 처음이었어요. 패션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시라 그런지 일반 역사가들과는 좀 다른 시각들이 신선했습니다. 계획은 아니고요. 제가 한국인든 외국이든 근대쪽에 관심이 좀 많아서 보려고 찜해둔 책이거든요. 책탑들 사이 사이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붕붕툐툐 2021-10-10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돌이님 대장정을 앞두고 계시는군요! 이번엔 어떤 작품일까 완전 기대됩니다~!!😍

바람돌이 2021-10-11 20:44   좋아요 1 | URL
대장정이라뇨. 앞에 읽었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 비하면 다 껌입니다. ㅎㅎ
지금 바로 파리의 예술가들 시리즈를 읽을 건 아니고요. 이번 달에는 제 2의 성을 조금씩 조금씩 매일 매일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책은 아직 배송중이군요. 연휴가 길어서요. ㅎㅎ

초딩 2021-10-12 0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세가를 멋지게 그리고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셨네요~~~
무하에 대해서 저도 읽고 싶어요 :-)
그리고 qr로 자료 링크를 삽입하는거 참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바람돌이 2021-10-12 01:22   좋아요 0 | URL
19세기의 화가, 문학작가, 배우, 무희 등등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초딩님도 편안한 밤 되세요. ^^

희선 2021-10-12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벨 에포크 들어보기는 했지만 잘 모르기도 하네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이 좋았어, 하고 말하기도 하니...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네요


희선

바람돌이 2021-10-12 01:20   좋아요 1 | URL
벨 에포크시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우디 앨런일까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딱 그 얘기잖아요. ㅎㅎ 저는 뭐 굳이 그 시대로 가고싶다는 생각은 안하는데 그래도 영화속에서 유명 작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주인공을 보니까 좀 황홀할 거 같긴 하더라구요. ^^
 
작은‘한국전쟁’들 -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푸른역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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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작은 한국전쟁들 26페이지)


이 소년들은 누구일까? 동그라미 안의 소년은 왜 저렇게 괴로워 보이고, 오른쪽 끝의 소년은 무언가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걸까? 모든 소년이 하나같이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건 왜일까?


제주도의 양일화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20일(16세 때) 제주읍 친척집으로 가다가 대한청년단에게 잡혀, 제주 4.3무장대를 도왔다는  혐의를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끔찍한 고문을 받은 후 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졌다.

인천소년형무소로 보내진 소년범들은 166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1950년 6월 29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소년형무소에서 후방의 대전형무소로 이감중이던 소년들이었던걸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로 이감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전쟁에서 이른바 사상범으로 분류된 이들 대부분은 흔적도 못 남긴 채 사라졌다.

이곳에 있었던 양일화 할아버지처럼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다. 

한국전쟁에서 몇명이 어떤 이유로 죽었다는 통계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런 구체적인 얼굴들이다.

통계숫자를 대할 때와 달리 사진속 저 소년의 눈빛과 절망어린 몸짓을 대하는 순간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되고, 이들의 고통과 억울함이 가슴을 때린다.




                                                           (출처 - 작은 한국전쟁들 183페이지)


상의를 탈의한 저 청년들은 누구인가?

전쟁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한 국군 포로들이다.

판문점을 통과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북한인민군 복장의 포로복 상의와 바지를 다 벗어버린 채 팬티만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죽음으로 애국을 입증하지 못하고 살아 귀환한 포로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직감해서인지 이들은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입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간 곳은 거제도 근처 작은 섬 용초도라는 곳에 있는 포로수용소였다.

포로 교환 이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따로 고위급 또는 열성분자 포로들을 수감했던 곳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사상의 건전성(?)을 또다시 입증해야 했다 

그것을 입증하지 못한 이들은 즉결처형됐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포로들의 이야기는 정말로 처음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강요되고 있는 사상검증, 시도때도 없이 소환되는 좌경용공의 마타도어는 결국 한국전쟁의 결과이다.


사진은 때로 백마디의 말보다 더 빠르게 진실을 전한다.

물론 사진은 그렇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저자가 모은 사진들은 대부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대부분 미군의 홍보전을 위해서 찍힌 사진들이다.

당연히 사진들은 원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이 찍힌 맥락을 읽어내야 한다. 

저자는 각각의 사진들의 맥락을 찾아가면서  잘 못 기록된 것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찾아 한국전쟁의 진실을 알려주고자 한다.

무엇을 위해서?

결론은 용산전쟁기념관에 이른다.

한국전쟁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곳은 아직도 내 생명 영원한 조국을 위해라고 외치면서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끝없이 상기시키는 공간이다.

그 속에서 일제의 군국주의적 자살특공을 살신보국의 애국주의 이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전쟁영웅을 찬미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지 곧 70년이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이 시작된 날 6월 25일을 기념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날 새벽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오던 북한군을 상기하면서 언제나 경계하고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으니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이며, 우리 사회내에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좌경용공분자들을 경계하고 타도해야 한다는 나라에 여전히 살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끝났다.

2차대전을 겪은 여러나라가 각각 자국의 종전일을 기념하듯이, 우리 역시 전쟁 시작일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날을 기념하는 것은 언제쯤 될 수 있을까?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 -용산 전쟁기념관이 평화박물관이 되고, 상기하자 6.25가 아니라 평화를 기억하는 7.27이 되는 날을 위해서 역사학자들이 여전히 이런 책을 쓰고 있다.

그냥 기억하라가 아니라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되새기는 책읽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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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8-06 16: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짜릿합니다.

적어 주신 대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바람돌이 2021-08-06 17:26   좋아요 5 | URL
그럼요 그럼요. 기억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가 중요한거 맞죠? 이렇게 제 의견에 동의해 주셔서 제 어깨가 들썩입니다. ^^

mini74 2021-08-06 17: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종전일에 대해서 정말 별 생각이 없었던것 같아요. 6월이면 붉은 글씨로 분노하며 포스터를 그리라 강요받던 80년대의 교육때문일까요. 평화보단 두려움과 증오를 배운 기억만 ㅠㅠ 그래서 조금 더 커서 접한 다른 이야기들은 충격이 컸어요. 초등 저학년땐 북한군이 정말 돼지머리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참 좋은 글이에요. 7월 27일을 기억하며.

바람돌이 2021-08-06 17:28   좋아요 5 | URL
아무도 종전일을 얘기하지 않으니까요?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막은게 여태까지의 우리 사회잖아요. ㅎㅎ 제가 대학 때 불온문서로 북한여행기를 읽었는데요. 아 진짜 저 자신한테 충격이었던게 뭐냐하면요.
그 여행기를 읽으면서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한거예요. ㅎㅎ 우리나라 반공교육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피부로 확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stella.K 2021-08-06 19: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바람님도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저도 요즘 한국전쟁에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왜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우리가 어떤 피해와 상처를 받았는지 또 그것을 통해 반공만을 고취시킨 것 외엔
우리나라 전쟁임에도 피상적 알고 있다 싶더군요.
이건 아무래도 사상 전쟁이고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란 생각이 듭니다.

바람돌이 2021-08-07 00:02   좋아요 4 | URL
한국전쟁의 논의에 대해서는 사실상 민감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조금만 말을 틀어도 다 실정법에 걸리기 딱 좋은 소재죠. 저도 이번에 한국전쟁 수업하고 나서 학부모한테 항의전화 걸려왔다는.... ㅎㅎ(학부모가 일베같던데요. 왜 맥아더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느냐 뭐 이런.... 아 진짜 미치겠어요. ㅎㅎ)
최근에 미국쪽에서 비밀문서로 묶여있던 것들이 많이 풀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쪽에서도 그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하고 결과를 내놓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인 면은 분명히 있지만 사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너무나도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는지라 그 한면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해요.
실제로 1948년 남북 단독정부 수립 이후 한국전쟁 일어나기 전까지 38도선에서 일어난 자잘한 전투 횟수가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520회정도입니다. 거의 매일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봐야죠. 결국 우리나라 내부의 대립도 심각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해요.

붕붕툐툐 2021-08-06 22: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한국 전쟁만 생각하면 부글부글합니다. 진짜 우리 민중들이 너무 가여워서요.. 바람돌이님 요즘 이런 책 많이 읽으시네용?^^
아직 한국전쟁이 완전한 종전이 아니어서 그런거 아닐까요? 얼른 종전선언을 해야하는데, 아직도 휴전 중인 거니까요.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1-08-07 00:06   좋아요 4 | URL
나치의 유대인 학살, 보스니아 내전, 시리아 내전, 아프리카의 내전들.... 뭐 이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종전선언 아마 쉽지 않을겁니다. 미국, 일본 중국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듯하구요. 실제로 국내의 보수세력들도 원하지 않을걸요. 태극기부대는 아직도 무찌르자 북한이잖아요. 실제로 전쟁나면 자기들은 싸우지도 않을거면서 말이죠. 어쨌든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 세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1-08-07 08: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설명을 사진으로 보니 더 와닿는거 같아요. 참 사상이라는게 뭔지 ㅜㅜ

바람돌이 2021-08-08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솔직히 한국전쟁을 사상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 전쟁에서 사상이 중요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그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해나갔던 핵심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상은 그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레이스 2021-08-07 08:3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마타도어를 양산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한 암투가 계속되고 있으니...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인거겠죠.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도 그 상황은 지속되지 않을까요? 분단선은 우리 안에 있어서 그 철조망을 걷어내지 않으면 평화로 나가는 한발자욱은 더디기만 할것 같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미래에 종전 평화 통일이 있는지 ...?!

바람돌이 2021-08-08 00:02   좋아요 2 | URL
분단과 증오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아직도 너무 많은거지요. 아직도 막대한 국방비만 생각해도 각이 나오는걸요. 그럼에도 다른건 몰라도 평화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므로 무조건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희선 2021-08-08 0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이 끝난 날은 있지만, 아주 끝난 것도 아니군요 여전히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으니... 평화롭게 통일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게 좋겠지요


희선

바람돌이 2021-08-08 01:41   좋아요 3 | URL
통일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통일에 부수적으로 딸려올 문제가 너무 많고 일단 남북이 너무 다르죠. ㅎㅎ 하지만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빨갱이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공포의 원체험과 냉전적 지식이 한국에서 자유세계로 발신되었다. 냉전 공포의 원체험과 지식은 자유진영의
‘상상적 공동체‘ 형성과 윤리 · 도덕, 그리고 정체성 내용의 주 재료가 되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그 공포의 정체는 ‘빨갱이의 만행(또는 악행)이 판치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빨갱이 ‘부지 (국가에 반역이 뇌는 일에 동조나 가담한 자) 낙인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빨갱이 점령으로 오염된 공간에 있던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오염되지 않았음을 필사적으로 자기 증명하지못하면, 물리적 · 사회적 죽음의 문턱으로 넘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245

이 공간은 한국이 앞으로 주도해나갈 탈냉전 · 탈분단과 평화 시대의전망에 불협화음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매년 200만 명(70만 명은 어린이와 청소년 · 학생)이 다녀간다는 용산 전쟁기념관 공간의 구조와 전시내러티브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차곡차곡쌓아가야 한다. 이 결과물들을 갖고 전쟁사가 아닌 평화사의 관점에서,
반공주의적 · 국가주의적 이념 · 정동 장치가 아닌 공공 역사교육의 장이라는 관점에서 평화기념관의 구조와 전시 내러티브를 바꿔야 한다.
- P283

역사를 숫자로 기억한다는 것은 그 역사적 배경과 맥락은 삭제되고숫자가 지시하는 사건만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숫자는 하나의 상징이고 숫자와 함께 제시되는 화염과 탱크의 이미지는 바로 그날의 북한의불법 침입만 연상케 한다. 따라서 ‘6.25‘라는 명칭은 ‘6·25 전에 전개된한반도 분단과 내전 상황, 남북 간 국지적 교전 상황 모두 6·25 불법 기습 전쟁을 위해 발생한 것이라는 왜곡된 기억을 만든다. 전쟁기념관의건립 목적인 전쟁 준비 만반의 태세라는 전쟁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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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포착의 목적이 기록, 선전, 그 밖의 무엇이든 피사체가 보여주고들려주는 이야기에 온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빈약하고듬성듬성 구성된 공식 역사의 빈틈을 풍부하게 메워가며 진실에 접근할수 있다. 어떤 사진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사에서 환영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부정되지만, 머잖아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오를 새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 P22

정리하면 만주군 출신 군 수뇌부와 경찰의 일본 계엄령에 대한 이해와 역사적 경험의 계속이 계엄법 없는 계엄 선포를 현실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계엄 선포의 적법성과 불법성 논쟁을 떠나 계엄법 없는 계엄 포고가 만들어낸 법의 공백 공간에서의 적나라한 폭력에 주목해야 한다. 군은 계엄 지역을 외부와 차단하고 봉쇄한다. 언론을 강력히 통제하고, 치안 및 질서 유지를 이유로 성향에 따라 미리 분류해놓은주요 인사들을 예비검속(또는 예방구금)한다. 그 끝은 특정 공간의 초토화다. 그 공간에 잠시라도 스쳤던 주민들은 약식 군법회의, 또는 ‘손가락총‘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요동쳤다.
- P65

한국전쟁 동안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의 선포 · 운용 · 해제는 지역별, 시기별로 어지럽게 이뤄졌지만, 전반적으로 계엄 상태는 유지됐다. 그런데계엄 상태는 전쟁 상황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대부분 허구적 · 정치적계엄이었고, 설령 군사적 계엄이었더라도 그것이 적을 상대하는 전쟁수행에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 수행을 위한 여타의 전시법과 차별적인 계엄법의 진정한 효용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바로 군이 계엄 선포권자 대통령 아래에서 모든 행정, 사법, 심지어 입법의 권한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 P73

맥아더 주연의 전쟁 스펙터클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사진 1), 사진2>와 달리 그 뒤 사진 4장은 아군과 적군, 민간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전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았던 이야기들을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귀들이 많아질 때, 그 귀를 가진
‘우리가 많아질 때, 맥아더로 시작해 맥아더로 끝나는 인천과 섬, 바다.
의 냉전 경관을 평화 경관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상륙작전을재현하는 전쟁 축제가 월미도 공원과 바다에서 볼거리로 진열되는 모습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지고, 왜 불편한지 이성적으로 스스로 납득하고남을 설득할 수 있을 때, 자유진영의 세계평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냉전 분단 경계에 인접한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권에 진짜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 P107

종전을 간절히 바라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시작 중 하나가 국군의 날을 38선 돌파라는 시점과 연루시킨 기념의 정치로부터 해방시켜야 하지 않을까? 10-1, 더 나아가 6·25‘ 처럼 우리에게 너무나익숙한 기념의 시간은 점점 사라져야 할 기표다. 그렇지 않으면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더라도 38선은 여전히 분단(분리)과 적대 · 증오의 흔적으로 강력히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탈분단 평화는 요원한 것이다. 새로운 국군 창설의 날과 종전일을 기다린다.
- P117

백선엽이라는 영웅신화는 전사한 병사들과 군적 없이 동원된 학도병뿐 아니라 죄 없는 주민들과 피란민, 그리고 보급품과 부상병을 지게로 날라야 했던 노무자들의 주검으로 쌓인 것이다. 애국 명명 뒤에 가려진, 산더미를 이룬 주검의 사연들과 진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적지만,
한국전쟁의 영웅이 필요한 사람들은 많다. 여전히 우리는 전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 P151

판문점에서의 정전 합의로 한반도에 총성이 멎었지만, 용조도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군 인민군 포로들은 1953년 8월 일반포로 교환때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올라갔지만, 곧바로 새로운 포로들이 섬에들어왔다. 국군 귀환포로였다. 용초도 포로수용소가 국군 귀환포로 집결소로 용도 변경된 것이다.
- P176

《동아일보》 보도(1953. 9. 19)에 따르면, 귀환군 집결소설치와 운영의 목표는 귀환포로들을 "사상적으로 확고한 인증을 받은 용사"로 거듭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포로들이 공산주의 "세뇌교육"
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사상 검증했다. 가령 적의 노래를 배우고 불렀거나, 강압에 의했더라도 노역에 동원되었기나, 수용소 자치위원장 또는간부로서 활동했거나 하는 식의 사항을 체크했다. 포로를 심문하고 동료를 고발하게 하고, 이를 다시 해명하게 하는 식의 부역자 색출 방식으로진행되었다. 국군 특무대와 함께 포로 심문을 수행했던 미군 방첩대CIC파견대가 생산한 각종 심문보고서와 요원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 P185

전쟁 동안 피란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버림받은 국민과비국민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대통령의 말에 피란가지 않았던 사람들은 3개월 동안 적 치하에 있었고, ‘역도들을 도운 자(부역자)라는 천형이 내려졌다. 적을 피해 피란했던 사람들이라고 크게처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미린민들 속 ‘오열‘, 불순분자, 흰옷을 입고변장한 적이 아님을 입증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골‘로 갔다. 미군 전선에는 얼씬도 거리지 말아야 했다. 미군은 살 길 찾아 이동 제한을 위반했던 피란민들에게 하늘과 땅에서 무차별 발포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 곳곳에 새겨져 있는 자유 피란민 서사, 즉 반공 자유를 찾아 공산당 마굴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우리‘
는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 P197

 반공 우익 청년단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원폭 투하 소문이 돌았다. 이렇게 볼 때, 미군과 국군의 흥남 철수 때 부두로 몰려들었던 20만 명의 피란민들 속에는 "공산 마굴을 피해 "자유의 땅으로 가는 반공 기독교 성향의 주민이나 자유 피란민들뿐 아니라 남북의 보복 학살의 틈바구니에서, 처참한 불의 바다를 만드는 쪽의뒤편에 가고자 했던 피란민들이 다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
- P206

헤스가 유럽과 한국에서 수많은 전투 출격 횟수를 기록하는 동안 고아원과 피란민들을 오폭한 적이 있고, 이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고아에게 특별한 관심과 배려를 베풀며 자신의 죄과를 용서받으려 했다는글도 있다. 뭐가 되었든 난 고아들의 아버지로서 최신을 다했던 그 마음은 ‘숭고한 구원자‘의 그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젠 그 마음마저 전쟁고아를 활용한 미군의 사상심리전 프레임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도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난 그렇게 사상심리전으로 재현된 구원 이미지가 대량 파괴의 이면이자 사후적 수습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군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적군뿐만 아니라 비전투 지역에 대량으로 인적·물적 피해를 낳았고, 점령 후에는 민간 구호와 원조(작전)를 수행하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했다. 이모순을 봉합하는 길은 하나였다. ‘적‘에겐 무자비한 파괴자이지만, ‘우리에겐 선의의 구원자라는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 P223

 여성사의 시각과 방법으로 한국전쟁을연구한 이임하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남성 국민을 ‘병사형 주제로, 여성 국민을 ‘위안형 주체‘로 젠더화했다. 위안 · 위무 위문은 위안하는 주체의 계급에 따라 민간 외교의 활동으로 지장된 오락, 유흥, 성의 제공인지, 유엔군 위안소에서 은혜로운 미군의 노고에 감사하고 보답하는유흥과 성의 제공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김활란, 모윤숙, 임영신, 박마리아 같은 여성 지도자들은 여학생이나대한여자청년단, 대한부인회의 젊은 여성들을 동원해 병사들을 위무·위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로 파티 대행업‘에 나서 유엔군 장교와외교관 등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위안 했다.
- P227

 이승만 정부,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전쟁, 일본 오키나와와 한국 점령에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군위안부‘ 제도의 관리 방식에 동화된 미군,
그들은 전쟁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포주‘의 위치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전쟁의 일상, 일상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살고자 한인생 전체가 국가가 관여한 성폭력으로 얼룩진 ‘위안부‘ 여성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대면하고 기록 기억하며, 응답해야 할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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