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와 훈 -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6세기까지, 유라시아 세계의 지배자들
김현진 지음, 최하늘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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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흉노란? 

 흉노는 대개 야만족, 그리고 초지의 유목민, 침략자, 내륙아시아 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편견이다. 흉노가 있었던 내륙아시아란 중앙아시아, 러시아 서부와 동부와 북부를 아우르고 몽골과 내몽골, 지금의 중국 서북부의 광대한 지역이다. 기후도 단지 초지가 아니다. 이렇게 영역이 광대하니 기후도 사막, 극한, 온대림, 침엽수림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후가 다양하니 거주민도 농경민, 목축민, 도시민, 수렵민으로 다양하다. 민족도 그러하다. 동북아시아인, 이란계, 인도계, 동유럽계, 게르만계가 모두 흉노에 나타난다.

 흉노는 잦은 교역과 이주를 했기에 수많은 언어와 민족, 종교가 다층적일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의 모든 지역에 접한 만큼 다른 지역 태생과 다르게 모든 종교와 사상의 중심지에 방문하고 접근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종교와 사상 역시 다양하고 관용적이었다. 

 유라시아의 초원 유목민은 초지를 따라 돌아다니기에 명확한 영토관념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고정된 초지를 오가며 생활하는데 비교적 확실한 영토관념을 갖고 있었다. 정치체제 역시 통념과 다르게 엄격했다. 

 흉노의 정치체제의 정점은 선우다. 하지만 실제 행정업무는 골드후가 담당했다. 그리고 지방관으로 좌현왕과 우현왕을 두었는데 좌현왕은 동부의 통치자, 우현왕은 서부의 통치자였다. 이중 흉노는 전통적으로 동부를 중시했기에 선우의 후계자를 좌현왕으로 삼았다. 또한 그 아래에 4개의 지방관직을 두었다. 서쪽에 우도기왕과 우도지왕 동쪽에 좌도기왕과 좌도지왕이다. 이들 역시 선우의 아들 내지는 형제였다. 이들 왕의 밑에는 육각왕이라는 최고 귀족이 존재했고 그 아래에는 24만기라는 제국내 최고 지방 총독이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토착관리가 존재했는데 이들은 사실상 말단 지방의 행정관이자 세금징수관 역할을 하였다. 

 

2. 흉노와 중국

 흉노의 선우 묵특은 반란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집권한다. 그리고 반대 가족과 귀족을 모두 숙청한다. 그는 동의 동호와 서의 월지를 격파하고 30만 대군을 양성한다. 기원전 200년 중국은 통일한 한 고조는 강력한 위협인 흉노에 도전했지만 백등산 전투에서 패배하여 한은 사실상 오랜 기간 흉노의 조공국으로 전락한다. 묵특은 한 문제 시기 신장을 정복하고 카자흐 일대의 26국을 정복하는 등 위세가 대단하여 한 문제 역시 조공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 

 중의 한제국은 BC134년부터 무려 70년간 흉노에 조공한다. 그러다 한 무제 때에 이르러 흉노가 정치적 혼란에 이르자 반격한다. 군신 선우가 죽자 그의 동생 이지사가 정통 후계자인 좌현왕 어단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어단은 한나라에 항복하고 한 무제를 여세를 몰아 묵특 선우에게 1세기 전에 빼앗긴 오르도스 지방을 탈환한다. 그리고 수많은 흉노의 부왕들이 이지사에 반발해 한에 투항한다. 

 그럼에도 흉노는 아직 강성하여 한과 1세기 가량 일진일퇴를 벌인다. 서기 60년 한은 흉노를 격파해 타림분지를 장악한다. 흉노의 패배는 복속부족인 오손과 오환의 이탈을 불러왔다. 흉노는 잦은 패배와 내부 반란으로 흔들렸고 그러자 백년간 선우가 8명이나 등장하는 대혼란기에 빠진다. 흉노는 묵특시기에 거대화하여 남북으로 분리되었는데 혼란기에 북의 질지와 남의 호한야 선우가 살아남았고 이중 호한야가 한나라에 항복해 봉신이 되고 많다. 그리고 호한야는 한과 연합해 질지를 격파한다. 

 하지만 한의 혼란기가 오고 외척인 왕망이 일시적으로 한을 멸하고 신을 건국하는 혼란기가 오자 흉노는 주변 부족을 다시 복속하고 영토를 회복한다. 하지만 남과 북의 분리가 항구화한다. 그리고 남흉노는 중국의 동맹화하고 만다. 그리고 선비족이 등장한다. 선비는 중국과 동맹을 맺고 흉노를 침공한다. 서기 87년 한, 선비 연합군은 흉노 선우를 살해한다. 그러자 55개 흉노 부락이 한에 투앟한다. 서기 89년 한의 두헌이 몽골고원에서 다시 선우를 격파하고 흉노 귀족과 병사 1만 3천을 죽이자 무려 20만의 흉노인이 한에 투항한다. 이후 2세기간 힘을 잃은 흉노는 튀르크, 강거, 선비, 오손에 포위되는 형국이 되고 만다. 

 흉노를 격파한 선비는 흉노와 다르게 제국을 형성하지 못한다. 남흉노는 선비와 오환 중국에 끼인 상태였다. 삼국시대 위의 조조는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남흉노의 선우를 낙양에 인질로 삼고 우현왕으로 하여금 흉노를 다스리고 남흉노를 5부로 나누어 중국인이 흉노를 다스리게 했다. 이는 흉노에 매우 굴욕적 처사였다. 

 이후 조씨의 위나라가 멸망하고 진이 들어선다 서기 292년 진에 내전이 일어나자 흉노가 반발한다. 그들은 304년 유연의 통치아래에서 독립을 선언한다. 유연은 자신이 흉노와 중국의 통치자라 주장하며 308년 중화황제로 즉위하며 5호 16국 시대를 연다. 이후 유총이 311년 낙양을 점령하고 진 회제를 회계공으로 격하시킨다.316년 흉노는 장안마저 점령하고 면제도 사로 잡아 회평후로 격하시킨다. 그리고 두 전직 황제는 결국 처형된다. 나머지 진황가는 장강으로 도망쳐 망명국가인 동진을 건국한다. 이로써 중국은 서부는 전량이 통제, 북동부는 선비가 통제, 나머지는 모두 흉노가 통제하는 형국이 이른다. 

 북중국을 통일한 유총은 318년 죽는다. 흉노는 지배층이 다시 분열하여 유총의 아들 유환이 장인인 군준이 살해당한다. 하지만 유요가 군준을 제거하고 유요는 국호를 한에서 조로 변경한다. 하지만 갈부의 석륵이 이탈하여 후조를 세운다. 석륵과 유요의 대결에서 석륵이 승리하고 그는 야만적 통치를 일삼아 한인을 탄압한다. 이후 한인 염민이 권력을 장악하여 갈인 20만을 대량 학살하고 350년 대위를 건국해 흉노시대를 종결한다. 351년 모용씨의 선비국가 전연과 저의 국가 전진이 북중국의 옛 흉노땅을 차지한다. 


2. 중앙아시아의 흉노

 남흉노는 중국의 복속된 후 오히려 시기를 잘타 북중국을 장악하지만 북흉노는 선비에 패한다. 하지만 그들은 절멸되진 않았다. 이들은 알타이 지방에 살아남아 중앙아시아로 진출한다. 중앙아시아엔 쿠샨이 있었다. 구샨은 사산조페르시아의 속신으로 쿠샨샤로 불리며 존속하다 4세기 훈의 침입을 받는다. 4세기가 되자 알타이와 우랄 산맥 사이의 모든 국가와 부족이 훈에 정복된다.

 용어가 자연스레 흉노에서 훈으로 바뀌었는데 중앙아시아의 훈은 흉노에서 유래했다. 결정적 증거는 흉노의 도구인 훈식 청동솥이다. 

 중앙아시아의 에프탈 왕조는 스스로를 훈이라 칭했다. 하얀색은 유목민에게 서쪽을 의미하기에 흉노에게 중앙아시아는 서쪽이고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훈은 백훈이라 불리기도 한다. 에프탈 훈은 페르시아와 공통의 적 키다라를 물리친다. 그리고 에프탈은 이후 페르시아를 침공해 그들이 차지한 키다라 영토를 모두 빼앗고 페르시아를 속국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에프탈은 사실상 중앙아시아 일대의 모든 백훈계 집단의 지배자가 된다. 

 페르시아는 484-550년까지 훈제국에 연공을 상납한다. 에프탈 훈은 페르시아를 복속하고 동으로 확장해 영토가 페르시아, 카슈미르, 쿠챠, 캬슈카르, 호탄에 이른다. 5세기 후반에는 간다라와 인도북서부를 지배하기까지 한다. 6세기 중반 에프탈 훈은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로 동으로는 신장, 남은 인도 중부, 북은 카자흐 초원, 서는 동로마에 이른다. 

 그러다 6세기 중반 돌궐이 나타난다. 에프탈 훈은 유연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유연이 돌궐에 멸망한다. 에프탈에 복속되어 있던 사산조 페르시아는 돌궐과 연합하고 양자에 끼인 에프탈 훈은 결국 페르시아의 후스라우 1세에 항복한다. 에프탈 붕괴 후 돌궐과 사산페르시아는 충돌하고 그 공백에서 다양한 백훈계 집단이 등장한다. 백훈은 높은 수준의 문화를 자랑했다. 이들은 종교적 다원주의를 지향했고 높은 문화수준과 세계주의를 보였으며 아프간의 바미얀 석굴은 백훈 시대의 작품이다. 


3. 유럽의 훈

 훈과 조우하기 전 유럽의 게르만은 매우 기초적 수준의 정치 사회체제를 갖고 있었다. 때문에 게르만은 강력한 무력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의 권위가 약하고 정치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아 로마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고트인은 4-5세기 백년간 훈의 지배를 받고 중앙아시아 초원의 문화 및 전통의 영향을 받아 로마에 큰 위협이 되었다. 게르만 역시 훈의 영향을 받고나서야 로마를 위협할 만한 공성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훈은 유럽에 진출해 가장 강력한 알란 세력을 먼저 흡수한다. 훈이 확장하자 테르빙기 고트가 다음 목표였다. 루마니아에 훈이 이르자 로마는 위협을 느끼고 테르빙기 고트를 구원하려 하였지만 훈에 패배한다. 로마식 군제는 초원의 새로운 전술에 비해 후진적이었다. 내륙아시아의 초원군은 강한 기마술과 영국 장국보다 사거리가 2배인 합성궁을 이용한 강력한 궁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훈의 승리로 다뉴브 강 일대의 훈의 통치가 확립되자 이 지역 게르만의 로마로의 이주가 촉발된다. 훈은 겨우 10년 만에 헝가리 서부에서 볼가강 유역을 지배하고 안정화한다. 훈은 370-380년 점령지를 안정시키고 395년 확장하여 캅카스를 따라 사산조 페르시아와 로마를 공격한다. 

 유럽의 훈은 동아시아의 흉노가 점차 동진한 것이기에 그들과 매우 유사한 정치체제를 가졌다. 442-447년 사이 유럽 훈의 아틸라는 형을 암살하고 최고자리를 찬탈한다. 447년 아틸라는 동로마를 침공하여 발칸반도의 70개 도시를 함락한다. 이때 발칸은 철저히 파괴되어 5세가 말까지 사실상 황폐화되어 버려진다. 수도가 위협받은 동로마는 일시불로 금8100 로마파운드(2648kg)을 일시불로 상납하고 막대한 포로 몸값도 지불한다. 그리고 로마는 베오그라드에서 불가리아 스미슈토르까지의 동서500km 남북은 다뉴브가에서 150-200km에 달하는 상당한 영토를 훈에 강탈당한다. 

 훈은 동로마는 지속적으로 괴롭혔으나 서로마의 아예티우르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440년대 중반 아예티우르는 훈의 지원을 통해 갈리아를 통제하던 중 라인 강 연안의 프랑크 내부까지 손을 뻗치다. 사실 갈리아에 대한 양자의 입장은 달랐다. 아예티우르는 훈의 힘을 빌려 자신이 갈리아의 프랑크를 통제한다 생각했고, 훈은 훈대로 아예티우르를 이용해 자신들이 갈리아를 통제한다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예티우르가 선을 넘은 것이다. 아예티우르와 훈은 갈리아에 서로 다른 왕위 계승자를 지원하며 공조체계가 붕괴하다. 

 양자는 전쟁을 벌이고 로마의 기록은 이를 로마의 승리로 남겼다. 하지만 사실상 훈의 승리로 보인다. 452년 아틸라가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아예티우르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이 그 방증이다. 갈리아에서 패퇴한 국가가 중심지를 침공하는데 수수방관한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로마는 갈리아에서 중국의 한과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처럼 연공을 바치고 훈을 물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승리로 기록한 것이다. 

 아틸라 사후 훈은 내전에 돌입한다. 아틸라가 무리하게 정권을 찬탈한 후폭풍이었고 그가 급사했기에 이렇다할 후사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위 내내 아틸라는 그의 정치적 기반은 서부 출신 귀족을 내세웠고 그가 죽자 동부 귀족들이 반발을 했다. 훈은 아틸라 사후 내전에도 사라지지 않고 460년대에로 로마를 압박했다. 하지만 뎅기지흐의 실패로 467-469년 훈은 해체한다.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 대장 오도아케르는 훈계일 가능성이 높다. 오도아케르의 아버지인 에테크는 게르만계 어원이 아니다. 이는 튀르크, 몽골계 어원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 이름은 훈울푸스인데 이는 훈 늑대라는 뜻이다. 중앙아시아 즉, 튀르크, 몽골 문화권에서 늑대는 토템이자 신화적 조상으로 숭배된다. 

 유럽에 남긴 가장 큰 훈의 유산은 무엇보다 프랑크 왕국이다.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계 왕국으로 훈과는 민족적 거리가 있지만 게르만은 훈의 유럽 진출시기 수백년간 훈의 침략을 가장 먼저 받고 그들의 용병으로 편입되는 등 가장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을 차지할 만한 정치체제와 군사력을 훈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실상의 계승자에 가깝다. 프랑크 왕국은 유럽을 차지한 후 놀랍게도 대왕이 왕국을 분할해 주요 영지를 형제와 사촌에 분배했다. 클로비스 1세는 왕국을 4개로 분할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영역을 4개로 분할하는 것을 바로 동아시아때부터 기원한 흉노의 정치적 전통이다. 실제 5세기 초반에 이베리아를 점령한 알란도 영토를 4개로 나누었다. 그들은 흉노에 가장 먼저 흡수된 유럽 집단이었다. 그리고 흉노는 4개의 영역을 지배하는 지방의 왕들 아래 강력한 지방 군사귀족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지를 받아 기득권을 유지하였는데 이것이 중세 유럽의 봉건영주다. 중세시대 유럽의 중무장 기사는 귀족 계급과 동의어였다. 중세 기마 엘리트는 마상 사냥을 즐겼다. 사냥, 궁수, 매부리기 등의 취미를 즐겼는데 이는 로마시대에는 전혀없는 유럽 본연의 것이 아닌 초원의 문화다. 즉, 게르만이 흉노 지배귀족집단의 문화와 풍습을 이어 받은 것이다. 그리고 초원인들은 당연히 육식을 즐겼는데 이도 물려받아 중세의 유럽 귀족들은 강한 육식성향이 있었다. 훈식의 강한 예의 범절과 궁정의례 또한 강한 상무정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흉노, 훈은 매우 강한 군사력을 가졌기에 중국에서도, 중앙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도 중심국가인 한과, 페르시아, 로마를 사실상 정벌하여 차지할 만한 충분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흉노와 훈 이후에 등장하는 내륙 아시아에 기반한 국가들은 그러한 행위를 한다. 하지만 훈은 그러지 않았다. 훈은 사실상 농경 국가의 정복을 통한 무리한 확장보다는 그들에게 조공을 강제해 부를 착취하고 교역을 통해 부를 얻고, 힘을 유지하며 주변을 복속하여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제국을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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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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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문학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천명관의 '고래', 류츠신의 '삼체'다. 그리고 이 중 딱 하나를 고른다면 그것은 역시 '삼체'다. 삼체는 여러 모로 놀라웠다. 우선 경직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이렇게 창의적인 작가의 작품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장르 소설일지라도 책이 상당한 두께를 자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두께도 추리소설 처럼 살짝 색깔만 바꾸어 중언부언하지 않고 매번 다른 이야기 같다는 것.(1-2-3권은 매번 중심인물이 완전히 바뀌며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 간격도 수백년에 달한다) 그리고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야기의 소재와 차원이 너무나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 삼체의 프리퀄 격인 구상섬전은 아마도 삼체인의 본격적인 존재를 알아차리기 이전의 시기를 다루는 듯 하다. 구상섬전은 사실상 삼체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분위기나 중요한 단서와 인물로 삼체와의 연관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구상섬전은 세상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둥근 형태의 불빛 덩어리다. 색은 적색, 보라색, 노란색등으로 다양하고 안에는 전자기장이 있는 듯하기도 하고, 플라스마로 가득차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이것은 맑은 날에도 나타나지만 비오는 날에 더 잘나타나며 기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물체를 마음대로 투과한다. 영어로는 라이트닝 볼이고, 한자로는 구상섬전인데 이것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국인 천이의 집에 갑자기 나타난다. 

 그날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호우가 심한 날이었다. 천이 가족은 식탁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구상섬전이 집벽을 뚫고 갑자기 나타나 부모를 재로 만들어 버리고는 굉음을 내며 사라져 버린다. 현상은 상당히 신기했는데 부모는 재가 되었지만 천이는 무사했고 반면 천이의 안쪽 조끼는 타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냉장고는 멀쩡했는데 그 안에 냉동되있던 닭고기와 해산물은 모두 익어벼렸다. 

 하여튼 이 일은 천이의 인생을 바꾸어 버린다. 그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평생을 부모를 앗아간 구상섬전을 연구하는데 바치기로 한다. 구상섬전을 연구하던 천이는 소령 린윈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과학자이자 군인이었는데 평생을 신무기 개발에 천착하는 사람이었다. 린윈은 번개를 신무기로 개발하려는 조직에 몸담고 있었고 이는 천이와의 중요한 접점이었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군 조직과 연구소의 힘을 총동원하지만 구상섬전을 모델화하고 현실세계에 구현하는데는 힘이 턱없이 부쳤다. 여기에는 막대한 컴퓨티 파워와 이를 뒷받침할 자금이 필요했다. 린윈은 머리를 써서 세티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외계인을 찾는 이 프로그램을 해킹해 수많은 전 세계사람들이 무료로 기부하는 컴퓨팅 파워에 자신들의 구상섬전 프로그램을 돌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곳 적발이 되고, 그들은 한 러시아 과학자로부터 초대 메일을 받는다.

 러시아를 방문한 그들은 놀랍게도 냉전시대부터 러시아가 대규모 시설에서 구상섬전을 연구했고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구현했음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연에 가까웠고 결국 그들은 자연상태보다는 분명히 구상섬전을 높은 빈도로 출현시키긴 했지만 그것을 위한 분명한 수학적 모델링이나 변수조건을 갖고 있지 못했고 그런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현상은 천이를 좌절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린윈은 그렇지 않았고 그녀는 과학자 딩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 딩이는 관점을 전환시켰다. 구상섬전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활성화하는 것 뿐이라고. 관점의 전환으로 그들은 주어진 조건하에서 두 대의 헬기를 동원해 아크전기막을 펼쳐 구상섬전을 발견해낸다. 더 나아가 딩이는 구상섬전을 포획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비활성화된 상태의 구상섬전의 포획이 시작된다. 

 린윈은 구상섬전의 무기화에 착수한다. 구상섬전은 각각이 독특한 파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것이 활성화했을 때 어느 것을 공격하느냐를 결정했다. 어떤 구상섬전은 생물을 어떤 것은 컴퓨터 칩을 어떤 것은 식물을 공격했다. 처음엔 하나하나를 알 수 없어 동물을 죽이는 잔인한 실험을 했지만 곧 마이크로파와 대응함을 알게되어 구상섬전을 평화롭게 분류할 수 있었고 무기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상섬전의 또 다른 특성이 밝혀진다. 구상섬전은 목표 공격물을 반드시 파괴했는데 놀랍게도 관측장비나 관측자가 없는 경우 명중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는 관측자가 없는 경우 파동함수로 변해 확률구름처럼 존재하는 양자의 특성이다. 즉, 구상섬전은 거대한 양자로 전자였던 것이다. 딩이는 이런 개념을 제시했고 구상섬전 자체가 매우 거대했기에 이를 굉전자로 개념했다. 

 굉전자 개념은 놀라웠다. 굉전자의 존재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굉원자와 굉중성자의 존재를 상정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커다란 원자가 이 세계에 같이 상존한다는 것이었고 그런 우주는 어떤 평행우주인지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구상섬전은 강력했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전자인만큼 상대방이 전자기막을 펼칠경우 쉽게 교란에 방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구상섬전의 타케팅 공격 가능성에도 중국군 상부는 구상섬전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상섬전은 첫 사용은 그래서 전쟁이 아닌 테러 진압이었다. 중국의 원전은 한 테러 집단이 장악한다. 그들은 반과학 단체로 글자 그대로 인간이 중세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는 집단이었다. 그러면서도 테러를 위해서는 과학적 무기의 사용에 망설임이 없었다. 원전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견학을 와있었고 원전이 폭발할 경우 치명적 피해가 예상되었다. 린윈은 망설임 없이 인간을 죽이는 구상섬전을 사용한다. 테러범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희생된다. 그리고 천이는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린윈을 떠나게 된다.

 천이는 대학에서 기상학을 연구했다. 그나마 구상섬전과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상섬전의 발견은 토네이도의 발견과 관련이 있었는데 그는 이 연구를 미국에서 하면서 미국의 토네이도 제거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된다. 토네이도는 발생과정에서 대기의 냉각이 큰 역할을 하는데 천이의 토네이도 예측 장치를 기반으로 해당 지역에 열발생 미사일을 발사해 토네이도를 원천 제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부메랑으로 날아온다. 중국에 전쟁이 일어난다. 책엔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침공국은 미국의 그 동맹으로 추정된다. 토네이도 제거장치는 역으로 토네이도 발생도 가능하다. 토네이도 발생이 생길만한 지점을 포착해 냉각을 추진하는 미사일을 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으로 중국의 항공모항과 연안함대는 궤멸적 타격을 입고 이 과정에서 린윈의 연인 주싱천이 사망한다. 그는 항모의 함장이었다.

 전쟁은 중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린윈은 구상섬전의 사용을 주장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관철되지 않는다. 그러다 한번의 기회가 돌아온다. 린윈가 그 부대는 어선으로 위장해 적의 항모 선단 한가운데에서 구상섬전을 발사한다. 모두 적의 회로를 태우는 구상섬전이었다. 하지만 적은 구상섬전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전자기 막으로 이를 모두 막아낸다.

 이후 딩이와 린윈은 굉원자핵을 발견한다. 이는 매우 가느다랗고 긴 막이었다. 이는 전자인 구상섬전 만큼은 당연히 적었지만 그들은 연구 끝에 굉원자핵도 여러 개를 포획할 수 있었다. 딩이는 굉원자핵들을 최소 5미터 이상 떨어드렸다. 원자핵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핵융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굉원자핵은 실제 세계의 원자핵과 다르게 매우 간단한 조건은 초속 400m정도의 움직인 만으로도 융합을 일으킬 수 있었다. 현실세계의 핵융합이 발생시키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굉원자핵의 핵융합은 가공할만한 무기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이는 린윈을 과도하게 흥분시켰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위험했다. 굉원자핵도 굉전자인 구상섬전처럼 파장에 따라 특정한 것만을 공격했다. 구상섬전의 경우 에너지가 비교적 작아 피해범위가 적었지만 굉원자핵융합은 그것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런 우려로 중국군 당국은 전쟁의 교착에도 이 실험을 허용하지 않지만 린윈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실험을 강행하다. 딩이는 실험 반경 수백미터는 완전히 파괴되고 이후에는 타게팅 물질이 파괴될 것으로 보았다. 린윈이 사용한 굉원자핵은 전자회로를 목표로 삼는 것이었다. 중국군사령관이면서 린윈이 아버지는 이를 막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지시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실험은 강행되었고, 미사일은 회로가 타버려 공중폭파되었다. 핵융합의 위력은 커서 중국의 1/3까지 공격의 여파가 퍼져 해당지역이 농경사회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이일로 린윈은 사망한다.

 우습게도 이 사건은 전쟁의 종결을 불러왔다. 미국과 우방은 이 실험을 파악하고 최악의 겨우 지구 전체가 정보화사회에서 후퇴할 것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내에서 자기들도 죽을 것을 각오하고 대규모의 전자장비를 노린 굉핵융합을 한다면 이 파장은 지구 전체로 퍼지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죽은 린윈이 그의 아버지에게 나타난다. 구상섬전이나 굉원자핵의 에너지에 죽은 사람들은 사실 죽었다기보다는 그들의 파장에 공명한 상태다.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고 재가되는 것인데 그렇기에 양자구름처럼 확률적인 상태로 존재한다. 

 물론 린윈은 그렇다면 관측자가 분명한 자신의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딩이는 천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라운 말을 한다. 일반 물질은 그렇지만 관측의지가 분명한 상태의 물질은 그것을 넘어서는 힘이 있기에 오래도록 붕괴상태를 버틸 수 있다고. 

 천이는 이런 일련의 사건 이후, 결혼을 하고 평온히 살아간다. 그리고 소식을 듣는다. 지하 깊은 곳에서 굉입자를 통한 실험이 이뤄졌는데 관측자나 관측장비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양자 붕괴현상이 일어났다고. 이는 분명한 관측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었는데 몇번의 실험이 더 일어나자 그 관측자는 돌연 이를 눈치챘는지 사라졌다고. 그리고 이 관측자는 외계인으로 추정된다고.

 책에는 분명히 나오지 않지만 이 관측자는 아마도 삼체세계에서 지구로 이미 보내놓은 관측자이거나 아니면 지구 문명의 발전을 막기 위해 모든 실험을 방해하는 지자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류츠신은 구상섬전과 삼체 세계의 연결을 위해 이런 부분과 딩이를 연결해 놓았다. 

 책은 너무나도 재밌었고, 깊은 여운과 놀라운 상상력,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준다. 양자중첩은 마치 죽은 사람의 영혼이 현실세계에 언제든지 나타나거나 주변에 있을 수 있게끔 하는 생각을 주며 과학과 영성을 연결시키는 느낌마저도 준다. 무척 재밌는 책이며, 삼체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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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아이들이 온다 - 세계적 교육혁신가의 알파세대를 위한 21세기형 미래교육
마크 프렌스키 지음, 허성심 옮김 / 한문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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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마크프렌스키는 미래에 필요한 4가지 요소로 새로운 역량강화 신념, 사회참여실현, 기술 및 팀과의 공생, 자기 이해와 고유성을 제시한다. 그는 지금 교육이 낡은 프레임이 빠져 있다 생각한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전통적인 것인 소위 학문 중심의 학습이 중요하고 효과적이란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테크놀로지가 학생의 성장과 학습에 방해요소라는 생각이다.

 테크에 대해 요구되는 새로운 관점은 그것이 중독을 일으키긴 하지만 서서히 진화한 인류의 새로운 신체부위로 여기는 관점이다. 인간에겐 상상력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현실화하기 어려웠지만 테크교육으로 상당부분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는 지구를 덮고 있으며 끝없이 정보를 내고 받는 추가적은 층이며 아이디어를 실체화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청소년들에게는 대다수의 기존 일자리의 대체자가 되는 것이 요구되었다. 때문에 경험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만큼 경험보다는 혁신과 발견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청소년에게 해야할 질문은 너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맡고 깊냐?가 된다.

 또 다른 낡은 프레임은 모든 청소년에게 학문 중심 교육이 유용하고 모두가 이를 받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벗어나 모두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사실 학문교육은 학문에 적성이 있는 소수에게만 유용했고, 대다수 청소년에겐 교육의 실패이자 제약이었다. 학문 중심 교육에서는 교육을 적게 받은 사람은 일종의 열등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 관점에서 교사나 교수가 하는 일은 학생의 학습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교육자가 이런 방식으로는 실제 학습이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학생이 그것을 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최종목표 및 교육과정을 변경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래와 지금은 역량 강화의 시대다. 이 시기는 학문 중심의 형식 학습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목표라고 여기지 말고 진짜 세상에 유용한 일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정도 여겨야 한다. 과거 학위는 3가지를 증명했다. 상당히 복잡할 일을 할 수 있고, 업무 완수까지 집요하게 일에 집착하고,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타인에게 필요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량강화시대에는 새로운 2가지 증명이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일은 계속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의 학습은 많은 경우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학습을 위한 학습이나 반복이 아니다. 무언가를 실현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평생역량을 제시한다. 이는 숙달에 평생이 걸릴 수 있으며, 한 번 획득한 기술을 일반적으로 평생 유지되는 특성을 갖는다. 역량강화 시대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새 기술을 새로운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 중요하기에 이런 것들이 강조된다. 

 과거 20세기의 교육은 낡은 성장 프레임을 갖고 있다. 우선 5세까지로 양육 및 어린의 신념 문화가 전달된다. 6-20세는 학생으로 학교에서 학문 중심으로 공동체의 문화, 역사, 주제를 학습한다. 이후는 직업 및 이력 단계로 직업을 찾아 일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프레임은 다음과 같다. 시작 및 이해단계로 자기 이해와 역량강화의 신념, 자기만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단계다. 다음은 확장-사회참여 실현에의 적용 단계로 자신의 고유한 장점과 흥미를 기반으로 진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서로 보완하며 세계 여러 청소년들과 팀을 이뤄 연결되는 시점이다. 마지막 실현단계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완수한 사회참여 프로젝트에서 얻은 관계망을 결합해 자신에게 의미 있고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평생의 직업을 찾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도 변화해야 한다. 이제 부모는 자녀의 고유성과 독특한 부가가치를 배라학게 돕고 아이의 역량강화를 위해 어릴 적부터 자기 이해를 돕고 표현할 권한을 부여하고 디지털 기술과 새로운 공생관계를 허용해야 한다. 

 역량 강화 시대를 위한 새로운 기본 능력 프레임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시민으로 사회참여 실현의 순환고리를 실천한다.

 유용한 일의 실천-더 나은 세상 만들기-과정을 개선할 방법 고려하기-다시하기의 순환고리다.

 그리고 이 순환고리를 위해서 시민은 지속적인 변화에 대비해야 하고

 이 순환고리를 위해 신뢰와 존중, 자율, 협력, 친절이 바탕이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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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급쟁이 배당 부자가 되었다
환상감자(이은호) 지음 / 길벗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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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치권에서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부담완화가 논의 중이다. 한국인은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몰려 있는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미국 같은 경우는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연금 계좌 등을 통해 주식으로 부유하고 있다. 미국 기업은 배당에도 충실한 편이라 그들은 은퇴 자금의 상당 부분을 아마도 배당을 통해 얻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도 미국에 투자할 수 있고, 그렇기에 배당소득을 통해 은퇴를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해보자는게 저자의 주장이고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배당소득을 위한 ETF들이 등장한다. 한국의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으로 구성된다. DB형은 확정급여형으로 회사가 정해진 퇴직급여를 확정하여 보장, 책임 지급한다. 그렇다보니 보수적으로 운영하여 수익률이 고작 2%에 불과하다. DC형은 확정기여형이다. 말장난 같은데 회사가 매년 연봉의 1/12를 개인의 퇴직 연급 계좌에 납입하고 개인은 그것을 스스로 상품을 골라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식투자에 자신감이 있고 더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DC형을 골라야 한다.

 주식투자를 고도의 이성과 합리적 계산이 따르는 것 같지만 감정을 가진 인간이 하기에 감정노동에 더 가깝다. 실제 자산의 가격은 합리적 이유로도 오르지만 비합리적 광풍과 열기에 의하는 바도 크다. 그리고 그런 비이성적 풍파를 견디는 것도 결국 감정의 영역이다. 그래서 투자에는 원칙이 중요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투자방식이 단순해야 한다. 

 너무 복잡하면 이러저래 휘둘리기 쉽상이다. 자신만의 원칙을 하나 발견해 그것만 지켜도 충분하고 이는 일관되고 간단해야 한다.

 2. 시간을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화폐를 남발하는 시기다. 그래서 자산은 경제성장 이상으로 가치가 자라난다. 배당을 통한 복리투자로 자산을 늘리자는 이야기다.

 3. 투자에는 정답이 없다.

 실제로 그렇다. 공부에도 답이 없듯, 투자도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4. 예측을 믿지 마라

 예측은 늘 현시점에서 보는 것이기에 빗나간다. 

 5. 주식투자는 여유자금으로 한다.

 전재산을 투자하거나 생활비를 쪼개고, 레버리지를 땡기는 것은 금물이다. 이렇게 급하게 들어간 돈을 수록 감정에 휘둘리고,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투자가 어렵다.

 6. 추천받은 종목은 가장 빨리 팔게 된다.

 그렇다. 추천 종목은 내가 잘 모르는 것이기에 약간의 등락에도 쉽게 판다.

 7. 주식은 감정노동

 8. 원금이 적을 수록 주식보다는 노동소득에 집중한다.

 그렇다. 자산 가격이 폭등하다보니 툭하면 직장을 때려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은 사실 안정적 소득원으로 소중한 보루다. 돈 좀 만졌다고 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미국 주식, 특히 s&p500은 꾸준히 장기 상승해왔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정체구간이 있었다. 1927-1958, 1960-1980, 2000-2013 의 10년이 훌쩍 넘는 세 기간은 증시가 정체였다. 만약 그 초입기나 직전에 투자를 했다면 도저히 오를 것 같지 않은 자산에 돈이 묶였을 것이다. 이를 언더워터 기간이라 한다. 그리고 하락도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은 -5%이후 5%가 오르면 원금을 회복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락하면 원금 자체가 변하기에 그만큼을 회복하려면 더 올라야 한다. 실제 -20%는 25%, -30%는 42%, -50%는 100%, -80%는 400%의 상승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큰 하락은 상당한 회복 기간을 요한다. 때문에 투자에 있어서는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하락수준을 설정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주식은 굉장히 유망한 투자처다. 이유는 3가지다. 기축 통화인 달러를 사용하기에 증시가 안정적이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지만 미 증시는 이를 한참 상회하는 42% 수준이다. 그만큼 자산이 몰렸다는 이야기다. 또한 미국은 기술패권국이다. 세계의 첨단 기술이 실천되고, 개발되며 증시자체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명하다. 혁신이 계속되어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주식투자 이득에는 TR과 PR이 있다. PR은 주가 변동만을 고려한 수익률이다. 반면 TR은 주가의 변동률에 배당률을 포함한 것이다. 배당금을 주식에 다시 투자할 수 있기에 TR을 고려해야 한다. 주식초보자가 장기 투자자로 정착하는데는 대개 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3년의 시간은 상승장 뿐만 아니라 하락장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하락은 20-30%까지 펼쳐질 수 있는데 이런 인고의 시간으 견뎌내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장기투자자로 거듭날 수 있다. 이 기간의 하락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주식시장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주식은 감정노동인 만큼 하락장을 버텨내는 적립식 투자와 배당이 중요하다. 적립식 투자는 일정 금액을 꾸준히 구매하는 것이기에 시장 변동성의 영향이 적다. 일정 주식수가 아니고 금액이기에 비싸면 덜 사고, 싸면 많이 사게되어 평단가를 자동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배당은 하락을 버티는 힘이다. 주식이 하락해도 배당이 하락하는 법은 거의 없기에 배당금은 하락중의 손실을 보충해주고, 생활비를 부여하여 사람이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미국 주식은 모든 게 좋지만 국내투자자 입장에서는 양도소득세가 22%나 된다는 점이 무척 크다. 250만원을 공제하나 매우 적다. 국가는 해외투자를 장려하지 않고 국내투자를 유도하는 셈인데 사실 효과는 크지 않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엄청난 해외투자가 매년 막대한 배당 및 투자 회수금으로 돌아와 노쇠한 국가를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되는 만큼 한국도 달리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그리고 미국 주식에 대한 배당세금은 15%로 원천 징수된다. 국내상장 미국 주식 투자의 경우 양도세는 피할 수 있지만 양도차익에 대해 15%의 배당세율이 적용된다. 즉, 해외투자는 과세를 피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한국엔 노후 장려를 위해 연금 저축 계좌가 있다. 이는 소득이 있는 개인은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납입한도는 연간 최대 1800만원이며 세액 공제는 900만원이며 IRP계좌와 합산한다. 세액공제는 납입액의 13.2-16.5%이며 소득에 따라 다르다. 55세 이후 연금 수령 시 10년 이상 분할 수령하면 세율이 3.3-3.5%로 낮다. 투자는 펀드와 ETF가 가능하나 인버스라 레버리지는 안되고 해외주식 및 부동산 투자도 안된다. 계좌는 개설 후 5년을 유지해야 한다.

 IRP는 근로자나 퇴직금 수령자가 가입 가능하다. 연간 최대 1800만원을 납입이 가능하나 연금저축 계좌와 합산이다. 세액공제한도도 같다. 납입액의 13.2-16.5%가 세액공제되며 역시 55세 이후 3.3-3.5%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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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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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색스가 타계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우리 집엔 그의 책이 몇 권 있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임에도 말이다. 그러다 도서관 사서의 추천으로 이 책을 보게되었다. 색스의 책이라고는 생각치 못했고 얇은 바쁜 시기에 보기 좋은 책으로 여겼기에 잡았다.

 책은 올리버 색스의 책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서전을 남겼지만 이 책은 가장 마지막 시기, 그리고 최후의 진단을 받은 후의 6개월 여간의 책이라 가장 얇으면서도 어쩌면 깊을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이다. 80이 되면 쇠퇴의 징후가 뚜렸해진다. 또래의 1/3은 이미 죽었다. 반응이 살짝 느려지고, 주변 사람의 이름이 가물가물해지며 에너지를 아껴써야 한다. 80이 된 사람은 긴 인생을 경험했다.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이다. 이 정도 살게 되면 한 세기가 어떤 시간인지 상상하고 체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억지스럽고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을 탐구하고 평생 겪는 시간과 감정을 하나로 묶는 시간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또래의 죽음을 자주 경험했다. 내 세대가 퇴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죽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갑작스러운 분리처럼, 내 일부가 뜯겨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라진 사람들의 빈자리는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그들은 유전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있고 생각하는 존재이자 동물로 살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색스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나이를 원소 주기율표에 맞춰서 생각했다. 80살이면 원소기호 수은처럼 말이다. 그는 심지어 친우에게 80선물로 밀폐된 수은을 보냈다. 받은 친구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나중에 그 선물에 감사하며 건강을 생각해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보냈다. 색스의 삶이 그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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