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을 비롯한 여타의 생물을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운반하기 위한 생존기계로 묘사하였다. 이 묘사에 의하면 생명체의 목적은 유전자의 전달을 위해 번식이 가능한 시점까지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남아 번식에 성공하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자신의 대를 이은 후대 생존기계의 성장 및 번식까지 지원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유전자 운반 과정에 필요한 기간이 바로 생명체의 수명이 된다. 이 기간이 지나가면 생명체는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여 지구의 자원으로 돌아가 재순환한다. 그래서 책 '생물은 왜 죽는가'는 죽음을 진화의 산물, 즉 선택된 것으로 생각한다. 죽음은 유전자를 운반하는 생존기계 입장에선 존재의 사라짐을 의미하며 끔찍한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입장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다. 

 만약 생존기계가 계속 존속한다면 진화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진화는 유전자의 복제과정에서 일어난 긍정적 변이가 후세대로 이어져 적응도를 높여 생존기계가 번식 때까지 성공적으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생존기계는 번식과 생존에 어려움이 많은데 갖가지 기생충과 질병, 경쟁, 환경의 압박 등으로 인해서다. 진화는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존기계의 유전자 복제 성공 확률을 높여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앞 세대의 계속된 사라짐과 그를 닮은 후세대의 영속적 등장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앞 세대의 죽음은 다음 생존 기계가 살아나가는 터전을 제공한다. 지구상의 생물체가 모두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생태학적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면 다음 세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앞세대와 자원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때문에 앞선 세대의 죽음은 다음 생존기계의 번영에 역시 반드시 필요한 전제다.   

 그래서 유전자는 생존기계가 생존과 번식을 마치면 사라지게 끔 만들어 놨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노화로 나타난다. 노화는 생존기계의 여러 작동 매커니즘에 손상이 생기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치명적 질환이나 결함이 나타나는 상태다. 책 '노화의 종말'에서는 생명과 건강을 연장하는 방법이 등장한다. 이 방법은 세포의 수선 기능을 활성화하는데 춥게 지내기, 소식하기, 격렬히 운동하기 등이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은 바로 혹독한 외부 환경을 의미한다. 식량의 부족과 추위, 먹잇감의 부족으로 인한 오랜 사냥과 채집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 딱 빙하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혹독한 환경은 개체로 하여금 아직 번식에 적합한 시기가 아님을 깨닫게 하고 더 나은 시기를 위한 수선의 시기를 맞게 한다. 이로 인해 젊음이 좀 더 유지되고 수명이 연장되는 것인데, 이것만 봐도 생존 기계의 목적과 노화가 유전자의 복제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의 생존 기계들은 상이한 환경에서 무척이나 다양하게 진화했다. 이들은 에너지를 얻는 방식(생산, 착취), 사는 환경(땅속, 물, 하늘, 육상), 크기 등이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그 서로 다른 모습 만큼이나 수명도 천차만별이다. 책' 사피엔스의 죽음'은 바로 이런 생존기계들의 노화와 죽음, 수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존 기계들은 불과 몇 시간이나 하루 만을 생존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마치 영원히 살 것 마냥 수 백년을 존속하기도 한다. 식물은 차치하고 육상생물의 경우 대개 수명은 성장을 마무리 하고 첫 번식에 성공하는 시점의 3배 정도가 된다. 그래서 생쥐는 성년이 되어 첫 번식을 하기까지 1년 정도가 걸리기에 수명이 3년 정도이고, 인간은 20-25년 정도가 걸리기에 70세 정도가 자연적 수명이 된다. 딱, 1배가 아니고 3배 정도 되는 것은 번식이라는 것이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은 아무래도 생존기계에게 2-3번 정도의 번식 기회를 더 주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매우 빨리 사망하는 생쥐나 인간만큼이나 오래사는 코끼리 같은 종들의 평생 심장 박동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는 신진대사의 차이로 생쥐는 심장 박동이 매우 빠르고 높은 신진대사를 보이며, 코끼리는 느린 심장박동과 낮은 신진대사율을 보인다. 그만큼 생쥐는 활성산소가 몸에 빠르게 축적되어 노화가 훨씬 빠르게 일어나고 코끼리는 그만큼 노화가 늦다. 더군다나 생쥐는몸의 크기가 작기에 몸의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넓어 외부공기와 닿는 신체면적이 넓다. 즉, 체온 유지를 위해 더 높은 신진대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코끼리는 몸의 크기가 크기에 부피가 크고 그에 비한 표면적인 상대적으로 작아 외부 공기에 노출되는 범위가 적다. 체온 유지에 더 유리한 셈이다. 

 작은 동물의 수명이 대개 짧은 것은 이들의 생존율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제든지 포식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하고, 또 빠른 성장을 위해 신진대사가 높으며, 가급적 한 번에 많은 새끼를 낳는다. 하지만 큰 동물은 포식될 확률이 낮거나 자신이 포식자일 확률이 높고, 그렇기에 오래도록 성장하는 것이 가능해, 몸의 크기를 더욱 크게 할 수 있다. 성장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생존율이 높기에 자식을 적게 낳고, 양육기간도 길어진다. 때문에 자연스레 수명이 길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을 나는 조류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크기도 작고 하늘을 날기에 높은 신진대사를 보이지만 수명이 길다. 이는 이들이 작음에도 하늘을 나는 이점으로 인해 포식자를 만날 확률이 극히 낮아 오래도록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사피엔스의 죽음에는 재밌는 구절이 나오는데 자연상태에서는 완벽한 것과 죽음, 두 개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망가진 상태의 생존기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개체가 오래도록 살아남아 노화나 질병의 조짐이 보이면 약해지게 되고 이로 인해 바로 사냥감이 되거나 무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때문에 자연상태에서는 늙음이나 노화는 잘 관찰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노화와 질병은 이런 자연의 압박에서 벗어난 인간 문명의 발명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암이나 치매, 심혈관 질환 같이 나이가 들어 대부분의 인간에게 나타나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치명적인 병들은 대부분 번식기인 젊은 시절엔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발병 유전자들은 그 생존기계를 반드시 죽음으로 몰고가는 치명성에도 진화의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유전되어 문명사회의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언급한 것처럼 생존기계의 죽음은 복제를 해야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선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만 번식의 성공 이전에는 유보되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생존기계는 죽음에 대해 양가적인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면서도 일면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실제 인간은 고통과 죽음을 근심하면서도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서 이를 금기시하거나 거부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때가 되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의무나 순리처럼 여기거나 오히려 유한하기에 인간의 짧은 삶은 빛내주는 것처럼 여기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런 생각은 미래 문학에서도 많이 반영되는 것 같은데 책 '작별 인사'와 책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많은 순록떼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미래 사회 인간이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해짐에도 이럴 거부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간의 갈등 상황이 늘 등장한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인간에게는 때가 되면 죽음을 마땅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생존기계로서 그것을 강하게 거부하면서도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정신적 적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한 인간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죽음이 많이 권장되어 왔는데 이는 과거 문명의 과학기술 수준이 지금처럼 그다지 높지 못할 때 생산성이 떨어지고 부양의 대상이 된 노인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사회의 존속에서 더 유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양자가 동시에 그리고 서로 맞물려 작용해서 인간이 죽음을 초연히 맞는 태도를 형성하는데 기여한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먼 훗날, 아니면 생각보다 가까울 수 도 있는 미래에 개개인의 인간이 영속성을 선택할 수 있어 마침내 생존 기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벗어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는 장치로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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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엔 간신히 100권을 읽었다. 연간 책 100권은 늘 매년 나의 독서 기준이자 목표다. 늘 여러 곳에서 더 읽는 분들을 보며 따라가고자 하지만 나의 현실적 한계는 아무래도 연간 100권 안팎이다. 올해 읽은 책을 정리해보았다.


예술 건축[8권]-컬러의 말,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조선미술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인간다움의 순간들,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미학수업


사회[17권]-포르노 판타지, 반도체 삼국지, 미스터 프레지던트, 동자동 사람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표류하는 세계, GEN Z,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 세계질서, 검찰국가의 탄생, 대면비대면외면, 있지만 없는 아이들, 실직 도시, 차브, 악을 기념하라, 플랫폼은 안전을 판매하지 않는다, 일하는 딸, 일본이 온다


경영 투자[7권]-기후 위기 부의 대전환, k배터리 레볼루션,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위기의 역사, 더 플로, 스포츠 카드


과학[18권]-빛의 물리학, 협력의 유전자,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기후미식, 기후위기 인간, 생물은 왜 죽는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최종경고 6도의 멸종,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기후 1.5도 미룰 수 없는 오늘,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나우 시간의 물리학, 인간의 본능, 판구조론,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아무도 본적 없는 바다


문학[12권]-원청, 쿼런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백조와 박쥐, 매니페스토,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신들은 죽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작별인사, 이토록 평범한 미래, 폴른, 파견자들


교육[20권]-왜 지금 국제바깔로레아인가, 미래학교 수업 생각의 힘 기르기,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2022년 이후 한국 교육을 말하다, 교사에게 강요된 침묵, 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 블렌디드 수업디자인, 우리가 교문을 바꿨어요, 챗GPT 교육혁명, 비폭력대화, 그림책으로 펼치는 회복적 생활교육, 학습하는 학교, 미래교육, 학생중심수업을 위한 협력적 수업 설계, 천천히 스미는 독서교육, 진짜 이기적인 교사, 교사 교육과정과 수업디자인, 학습격차를 위한 새로운 도전, AI가 바꾸는 학교수업 쳇GPT활용 교육, 발도르프 학교 수학 수업


역사[5권]-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박시백의 고려사1-4권


인문철학[5권]-현대 철학의 최전선, 문학이 필요한 시간, 줌인 러시아, 회복력 시대,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


지리[2권]-심장지대,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미래[4권]-로봇의 지배, GPT제너레이션, 미래의 부, 인공지능 시대 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경제[2권]-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세상 친절한 금리 수업


올해는 작년에 비해 과학책과 사회분야 책을 많이 보았다. 교육은 늘 그렇듯 많이 보았고, 문학은 다소 줄였다. 2023년 본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책 10권을 꼽아봤다.


10. K배터리 레볼루션

배터리 산업은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이며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배터리의 원리와 경쟁력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작년 초와 재작년 말 이미 한국 2차 전지 산업 주식투자를 요청했고, 그 말을 따른 자들은 상당한 수익을 얻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의 도전이 무척 크지만 한국 배터리가 향후 반도체 이상으로 한국 경제의 중심을 차지할 것을 강하게 역설한다.



9. 인간다움의 순간들

이진숙의 책이다. 개인적으로 미술사를 서술하는 작가 중 최고봉이라 생각한다. 시대의 미술을 통해 반했는데 이 책은 대충 인상주의 까지를 다룬다. 시대의 미술 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 다른 작가에 집중해 또 다른 저작을 내는게 놀랍다. 






8.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인상주의 부터 현대미술 직전까지를 다룬다. 근대 미술을 복잡하게 다루는 만큼 무척 재밌다. 101시리즈는 3권이 마지막으로 현대미술을 다룰 듯 하다. 기다려진다.\







7.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준의 또 다른 건축책이다. 사실 난 이 책이 그의 책 중 가장 좋았다. 거장들의 다양한 건축물에 대해 그들의 철학과 삶을 잘 담아냈다. 유명 건축물이 생긴 이유와 그 사조에 대해 즐길 수 있다. 강력 추천이다.





6. 악을 기념하라

악을 기념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굴곡진 역사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악의 시설이 많다. 이를 잘 보존하고, 기억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과업이다. 독일의 훌륭한 사례를 들며 시민사회의 힘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5.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진화의 또 다른 촉발 요인인 성선택에 관한 책이다. 동물의 사례가 중심이지만 인간의 사례도 조금은 다루며 재미를 더한다. 생물은 유전자 전달을 위해 태어난 만큼 성선택은 무척 중요하며 강력한 진화유발 요인이다.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오래전에 본 연애 이후 상당히 재미난 성선택 진화론 책이다.




4.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책 자체는 나온지 조금 되었으나 진화상 형성된 인간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은 크게 3가지로 모듈화하고 세분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인간의 물건 구매와 직결된다. 사람의 성향을 나누어 이를 구분하고 이것이 성별과 나이에 따라 변화해감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경영을 하는 사람은 필독서다.




3.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질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벌어지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새 잊힌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젤렌스키가 무려 40만을 징병한다고 하며 이 전쟁은 벌써 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단기전으로 끝날 거랑 예상과 다르게 장기로 이어지고 있고 힘의 균형을 이뤄 양측간 피해가 커지고 있다. 책을 통해 악마화한 러시아와 푸틴, 그리고 선으로 보이는 젤렌스키 진영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다문화 다민족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무리한 동진등이 전쟁의 진짜 이면이다. 그걸 알 수 있어서 좋았다.



2. 회복력 시대

기후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 우리의 세계는 다시 회복력 사회로 접어들어 모든 것의 패러다임을 다시 바꿔야 한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제러미 러프킨은 상당히 종합적인 학자로 모든 것을 꿰고 있단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작년 엔트로피에 이어 이번 책도 인상깊게 보았다.




1. 리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우주는 대체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주는 책이다. 아직 모든게 밝혀지지 않아 우주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은데 저자는 우주를 작은 격자가 이어진 구조로 본다. 이 격자로 이산이동을 하기에 원자는 점프를 할 수 밖에 없고, 빛은 유한한 속도를 지니며, 이 격자가 퍼지는 것이 우주의 팽창이다. 시간은 이 격자로 물체가 이동하기에 과정이 생겨 발생하는 부산물 같은 것이다. 무척 재미난 해석이었고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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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역사는 독특한 점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왕조의 수명이 유독 길다는 것이다. 신빙성이 부족하지만 고조선은 거의 2천년, 고구려, 백제 700년 정도, 신라는 900년, 발해 200년, 고려 500년, 조선 500년이다. 중국은 거의 대부분의 왕조가 200-300년 정도의 수명을 보인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무척이나 긴 편이다. 고작 200년이었던 발해의 수명이 상당히 의례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최근의 왕조는 역시 조선과 고려다. 둘 다 강역이 한반도 정도로 만주 지역을 상실한 왕조였고 역사도 500년 정도로 비슷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거의 조선에만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사극이나 영화, 책 등의 저작물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 주제다. 이유는 아무래도 두 가지 일 듯 하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훨씬 가까워 관심과 공감이 가고(조선은 가깝게는 100년에서 멀면 500년 전이지만 고려는 여기에 500년을 더 멀리 해야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는 막강한 기록물 덕분에 창작물로 다루기 무척 편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한 책을 조금 보았지만 고려 관련 저작물이 적어서 인지 나도 고려에 관해 본 책은 위 6권 정도가 전부다. 물론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공영방송에서 고려-거란 전쟁이 인기 속에 방영 중이기에 박시백의 고려사를 오늘 들춰보았다. 박시백은 조선왕조실록도 거의 10년 동안 그렸는데 기록이 풍부해서 1권 당 거의 왕 1명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려사는 역시 기록이 부족해서 딱 5권으로 끝나는 듯 하다. 4권까지의 내용이 원갑섭기이니 아마도 5권이 마지막일 것이다.

 고려는 조선과 제법 다르다. 조선은 유교 국가였고, 유지기간 내내 중원이 안정되었기에 철저히 사대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제는 고려보다 발전했고 능력주의 국가였지만 지나친 유학에 대한 신봉이 자주성과 스스로의 발전, 국제관계에서의 뒤쳐짐을 낳았다. 특히, 근대 들어 해양세력의 대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중국에만 의지한 나머지 임진왜란을 겪고 급기야는 일본에 의해 망국하고 말았다. 

 고려는 불교국가다. 물론 이는 신앙과 기복의 측면이고 통치이념은 조선 만큼은 아니지만 유학에 의지했다. 유지 기간 내내 중국이 안정되지 못했기에 자주성은 조선보다 강했지만 강한 북방왕조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당했다. 그래서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국시에 걸맞지 못하게 만주로의 진출을 커녕 내내 방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골품제와 매달렸던 신라에 달리 과거제를 도입하여 신분제가 진일보 하였다.

 박시백의 고려왕조 실록은 역시 태조부터 시작한다. 태조 왕건은 뛰어난 능력으로 통일을 이뤄낸다. 견훤은 강대한 적이었는데 태조는 구 신라 세력과 호족 세력에 유화책을 견훤은 강경책을 펼쳤다. 이것이 차이가 되어 태조에겐 여러 세력이 귀순해왔고, 견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견훤은 후계구도에 실패하고 큰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실각하며 통일이 이뤄진다 견훤이 후계를 제대로 세우거나 집안 단속 잘하기, 혹은 신라 세력에 유화책을 썼다면 통일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조의 이런 유화책은 통일엔 성공적이었지만 고려 초기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태조는 호족의 기득권을 모두 보장하고, 왕씨성을 남발했으며, 많은 호족 딸을 부인으로 삼는다. 그렇다보니 2대 임금 혜종, 3대 정종이 정치적 격랑에 휘말려 빠르게 승하한다. 아마도 암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대 광종이 강한 힘으로 노비안검법등을 시행하고 호족 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하자 안정을 찾는다. 고려 초기엔 중국의 정세가 흔들려 많은 중국, 발해, 여진, 거란 귀화인이 고려로 들어온다. 고려는 이들은 잘 받아들여 국력을 강화한다. 

 고려는 성종대에 이르러 상당히 안정된다. 하지만 거란이 침공한다. 이들은 북방을 평정하고, 송을 치려했는데 그려려면 후방의 고려를 평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거란에 적대적이었고 쉽게 호응하지 않았다. 이에 3차례에 걸친 침입이 이뤄지나 고려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거란은 진군할 때 마다 고려의 여러 성을 점령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진군해도 후방이 불안했고, 늘 늘 이로 인해 급습을 받거나 격퇴되었다. 3차침입에선 강감찬에 의해 귀주에서 10여만이 섬멸된다. 이 사건 이후 거란과 고려의 관계는 안정된다.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써주며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었고 거란 역시 고려의 매운 맛을 본 후 더이상 침공하지 않는다

 이후 준동한 것은 여진이었다. 윤관과 척준경을 필두로 이들을 어렵사리 제압하고 동북 9성을 쌓지만 워낙 성간 거리가 멀고 변방이라 관리가 어려웠다. 여기에 거란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소모된 상태였다. 결국 여진의 요청에 고려조정은 9성을 내준다. 20만 대군이 수년에 걸쳐 어렵게 얻어낸 땅이었다. 여진은 이후 거란을 멸하고 금을 세운다. 하지만 금은 요처럼 고려에 고압적이었으나 침공하지 않았다. 고려의 강성함, 그리고 여진황제의 조상이 고려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따른다. 하여튼 고려는 거의 100여년간 모처럼의 평화를 누린다

 하지만 평화는 내부에서 깨어진다. 어리석은 임금 의종이 즉위하는데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방탕했다. 고려판 연산군이랄까. 그는 재위 20년이 넘어 무신 정변에 의해 실각한다. 이후 고려는 난장판이 되는데 정중부, 경대승, 이의방, 이의민 등 집권자가 계속해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장판은 최충헌이 최씨무신정권 시대를 열며 안정된다. 최충헌은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정국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입맛대로 정부제체를 조직하고 세대를 넘어서는 장기집권 시대를 열게 된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 그리고 최항, 최의까지의 시대다. 그리고 이 최씨 집권 시기에 원이 일어선다. 초기 고려는 원, 거란과 협력하여 금의 잔당을 토벌하는 등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원은 고려에 슬슬 무리한 요구를 시작한다. 이에 원 사신 저고여가 살해당하고 이를 빌미로 고려를 침공한다. 고려는 최씨무신정권으로 인해 상당히 국력이 약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원은 사상 최강의 군대로 고려는 전역이 초토화된다. 고려 조정은 사신을 달래어 몇 차례 원의 군대를 물리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최우에 의해 강화도로 천도한다. 최우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선 원에 반드시 저항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최우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육지를 버리면서 백성들은 생지옥에 빠지게 된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식량이 부족했고 고려의 전술은 청야전술로 삶의 터전도 버려야 했다. 각지에서 살육 약탈이 일어났고, 원으로 끌려간 고려 백성만 수십만이었다. 이 기간은 거의 40년에 달하는데 어쩌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피해는 이 때에 비하면 오히려 약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최씨 정권이 최의 때에 끝나면서 강화가 이뤄진다. 고려 원종은 이후 황제가 되는 쿠빌라이이 잘 항복하면서 그의 관심을 산다. 그래서 고려는 작은 나라임에도 오래 버텼고 무엇보다도 항복을 잘 했기에 국력에 비해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쿠빌라이는 원종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었지만 남송과 일본의 점령에 집착한다. 남송은 정복하지만 일본 원정은 태풍에 의해 계속 실패한다. 고려는 배를 만들고 병사를 보내는등 시달리자만 쿠빌라이가 죽고나서는 이 문제가 끝난다.

 고려는 제법 대접을 받았지만 원의 제후국으로 상당한 간섭을 받았다. 이전에 양계 지역이었던 곳들이 쌍성총관부와 동녕부로 원의 영토로 전락하고 삼별초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탐라도 빼앗긴다. 고려의 왕들은 원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어려서 원에서 자라나게 된다. 고려는 이전까지 중국의 왕조들에게 제후국을 칭하면서도 사실상 황제에 해당하는 정부조직과 칭호를 사용해왔는데 이게 모두 불가능해진다. 또한 왕은 원에 친히 입조하였고 원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왕이 교체되는 일도 많았다. 이러다보니 고려가 아닌 원에 충성하고 배신하는 자들이 많았다.

 원은 고려에 처녀를 요구하기도 하였으며 환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려는 이 때만 해도 조정에서 거세된 환관이 없었는데 원의 요구에 의해 환관과 처녀는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들 처녀와 환관이 원에서 처신이 좋았고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고려 여인들과 환관들이 원제국 내에서 상당한 권력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에 고려에서는 딸과 자식을 환관으로 만들어 원으로 자발적으로 보내는 일도 성행하게 된다. 

 책의 4권까지의 내용은 원간섭기 까지다. 이후 원이 무너지며 공민왕이 들어서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이 실패하며 조선으로 넘어가는 내용이 5권의 내용이 될 듯하다. 아무래도 조선왕조실록의 1권과 상당히 겹치게 될 듯한데 고려의 입장에서 망국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차별성을 두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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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보호자의 돌봄 아래서 시작한다. 이 때 보호자인 부모는 내가 무한한 돌봄과 보호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자식에게 무척이나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부모의 그늘은 정신적으로도 깊게 남아서 거의 평생을 간다. 그래서 사람은 다 늙은이가 되어서도 죽는 순간 부모를 찾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부모가 언젠가는 돌아가시리라는 걸 염두에 둔다. 하지만 이는 다소 막연한 생각에 불과해서, 막상 상황이 닥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실제로 오래도록 부모의 절대적 돌봄을 받다가 갑작스레 거꾸로 돌봄을 주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자식들은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에 대한 돌봄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식에 대한 돌봄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는 자식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자식이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장애인이 되어 더욱 많은 돌봄을 요구하는 상태가 되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책' 다시 만날 때까지'와 '내 인생의 무지갯 빛 스승', '자폐 아빠와 아들의 작은 승리'는 장애인 자식을 만나 자식의 인생을 산산히 갉아넣어가며 버티고 또 버티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를 거의 포기하면서도 자식을 놓치 못하고, 그리고 그러면서 자식과 더불어 자신의 매우 어려운 새 인생을 그려나간다. 

 돌봄 문제는 고령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심한 한국사회에서 가까운 시일내에 가장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할 것이 분명하다.(여기에 한국은 그 적은 출산률 속에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선천적 장애아들이 태어나고 있다.) 책 '일하는 딸들'에서는 이런 부모 돌봄 문제에 관한 책이다. 책에는 세계 최고 선진국이지만 복지에서만큼은 소홀한 미국답게 저자 자신이 돌봄을 직접 해결하고 고민해야할 여러 문제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소회가 담겨 있다. 

 미국도 고령화가 심각하긴 매한가지다. 인구 3억 4천만 미국 인구중 매일 1만의 미국이 65세가 된다. 2050년이면 이 고령층이 지금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170만명인 돌봄 제공자는 2030년엔는 무려 570만에서 66만에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에서 수행하는 재가 돌봄 서비스는 대부분 건강보험이나 저소득층 의료 보호예산으로 제공되는데 두 곳 모두 벌써 재정압박상태라 향후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고령하가 덜한 미국이 이럴진데 노인인구만 급격히 늘어날 한국은 어떨지 상상이 어렵다. 

 결국 이런 국가재정과 사회안전망의 빈큼은 가족의 무보수 노동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 무보수로 노인이나 18세 이상 장애인을 돌보는 미국인은 무려 4400만 이상이다. 이들은 대개 여성이고 40대 후반이다. 최근 남성 가족 돌봄 제공자도 늘고 있지만 아직 여성에 비하면 적다. 돌봄 제공자의 역할은 평균 4.6년이다. 그리고 이들이 돌봄에 투여하는 시간 주당 평균 24.4시간이다. 이 무보수 돌봄 노동자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돌봄에는 의료, 법률, 금융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돌봐야 하니 당연히 의료상식이 요구되고, 부모가 온정신이 아니거나 거동이 되지 않으면 당연히 법률적 대리와 금융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도움을 주는 곳은 공식적으로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돌봄 제공자들은 22%가 이로 인해 건강의 악화를 느끼게 된다. 

 이런 과도한 돌봄 업무로 돌봄 제공자의 70%는 자신의 직장 업무를 조정하게 된다. 그들은 부담이 적은 업무를 택하고 무급휴직을 하며, 조기 퇴직하기도 한다. 그런데 돌봄 노동자의 상당수가 40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40대는 인생 그 어느 순간보다도 가장 돈을 많이 필요로 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일의 감축으로 인해 이들은 많은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소득이 줄고 각종 직장 보험혜택도 줄기 때문이다. 

 돌봄은 끝을 알 수 있는 것와 아닌 것이 있다. 끝을 알 수 있는 돌봄은 노령화한 부모가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수년 내에 죽음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이며, 끝을 알 수 없는 돌봄은 자신보다도 어린 장애자식 돌봄이나 부모인 경우, 노화, 뇌졸중, 치매 등으로 인한 경우로 스스로 아무것도 할수 없어 돌봄이 필요하지만 당장 돌아가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다.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전자는 그래도 힘들지만 끝이 보이기에 버텨내게 되지만 후자는 정말로 언제까지 내가 이일을 해야하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기 가족을 돌보는 평균기간은 4년이지만 무려 15%가 10년 이상 이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돌봄을 해결하려면 사회적 노력과 개인적 노력 양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은 무급휴직을 허용하지 않는 몇 안되는 나라다. 사회적으로 이 가치를 인정하려 노력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족 돌봄 노동자는 무급으로 연간 무려 370억 시간을 사용한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무려 4700억달러의 비용이다. 그리고 미국의 기업은 기업에서 일하는 개인의 연간 돌봄 제공으로 생산성 손실이 무려 171억에서 336억 달러에 이른다. 때문에 현명한 기업 관리자라면 돌봄 제공 직원을 지원하여 이들이 생산성 손실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책에는 사회적 지원이 워낙 미비해서 그런지 개인적 방책을 강조한다. 개인이 돌봄에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사회가 돌봄을 강하게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서 이타적 이미지 심지어 축복이라 칭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압박과 기대에 개인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하나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다. 그 개인은 자신의 삶은 살아가는 사람이고 부모이자, 직장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고, 여기에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저자는 돌봄 노동자는 자신의 삶과 돌봄 사이에 정확한 경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음의 4가지 질문을 강조한다.

 1.우선 부모님에 대해 내가 아는 어떤 정보가 의사 결정에 유용한가. 

 2.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바탕으로 볼 때 갖아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3.부모님께 최선이라 판단되는 것은 무엇인가?

 4.돌봄제공자로서 내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부모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신호를 늦게 볼 수록 사태는 악화하고 돌봄의 강도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는 미개봉상태로 쌓은 우편물들, 잦은 부모의 넘어짐, 식사 생활의 변화(갑작스레 요리를 하지 않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냉장고에 있거나 냉장고거 텅비어 있음), 기억력의 감퇴, 정돈이 안된 상태, 운전 능력의 저하다. 이는 부모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 능력, 인지적 능력이 감퇴되었음을 보이는 징후다. 

 저자는 더불어 돌봄 노동자이자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리장전을 제시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의 권리가 있다.

 당신은 경계를 설정한 권리가 있다.

 당신은 생활비를 벌 권리가 있다.

 당신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당신은 건강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당신은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로 지닐 권리가 있다.


 한국은 저출산에 급격히 고령화하고 있다. 수십년 내로 65세 이상 인구는 넘쳐나고 이를 돌볼 가족 돌봄 노동자마저도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한국은 노인 빈곤률이 세계 최고이고 국민 연금등의 사회 안전망도 형편없다. 이런 상황에 평균 수명은 세계 5위 안에 든다. 적은 가족 돌봄 노동자가 자신의 삶을 뒤로하고 부모의 부양에 뛰어들게 될 가능성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은 것이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이를 개인에게 맡기지만 말고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놔야 할 것이다. 부모 돌봄에 매달리게 될 젊은이가 출산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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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정말 수작이다. 처음 봤을 때도 좋았지만 가끔 TV로 재방을 봐도 눈을 떼기 힘들다. 영국의 한 탄광 마을 소년이 마초적 분위기 속에서도 하라는 권투는 안하고 춤에 눈을 떠 마침내 런던으로 진출해 프로 발레리노가 되는 자전적 이야기다. 명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는 영국 현대사의 갈등 국면도 놓치지 않는데 바로 빌리가 사는 마을이 탄광촌 더럼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와 형은 광부고 빌리가 사는 마을 집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게 생겼다. 막 집권한 대처 정권은 탄광을 정리하고 있었고 경찰력을 동원해 파업을 무력 진압했다. 강성하게 파업하던 빌리의 아버지는 빌리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정권에 굴복하여 일을 하러 나서고 그걸 본 큰 형은 오열한다. 

 이 모든 사단의 배후엔 신자유주의의 대두와 그것을 영국에서 실행한 마거릿 대처가 있었다. 그래서 2013년 대처가 죽었을 때 영국의 노동자나 평민들은 '마녀가 드디어 죽었다'라는 표현을 알 정도였다. 대처는 영국의 제조업과 노동조합을 파괴했으며 가장 강성했던 것이 광부였기에 이들 집단을 확실히 무너뜨렸다. 

 책 차브는 이런 무너진 영국의 노동 계층에 관한 책이다. 차브는 생소한 용어인데 아이를 의미하는 집시 언어인 차비(chavi)에서 유래한 용어다. 안 그래도 유럽에서 무시하는 집시의 언어 인데다 아이를 의미하는 용어이기에 차브는 오늘날 본래의 뜻을 넘어서 영국내의 급증하는 무식쟁이 하급쟁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2005년 처음 사전에 등재까지 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서구 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는 처음으로 상당히 균질한 집단인 소위 중산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우선 정치적으로 마침내 성별 빈부 신부를 넘어선 대중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게 되어 사회 지도층이 하층민의 눈치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는 지금과 달리 서구 사회도 상당수 노동자들이 서비스 업이 아닌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조업은 고용이 숙련공을 요구하기에 고용이 안정적이고 대우가 좋았다. 또한 균질한 노동조건을 갖추고 있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상대적으로 연대하기도 좋았다. 세 번째는 당시 경제가 케인즈 주의였다는 것이다. 세계대전마저 일으킨 대공황 이후 각국 정부와 경영층들은 노동자의 고용과 적정한 소득의 중요성이 가져오는 수요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임금이 상승하고 정부정책은 사회복지에 힘을 실었다. 게다가 당시는 공산주의와 냉전기간이었기에 체제의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복지는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이 모든 것이 무너진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불러온 스태그 플레이션으로 케인즈식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힘을 잃게 된다. 그 자리를 차지한 신 자유주의는 기업을 위한 자유를 중시하는 정책이었다. 임금이 높았던 서구의 제조업은 동아시아와 개도국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서구 사회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여기에 냉전도 사실상 끝나게 되어 마땅한 정치적 브레이크도 없었다. 그래도 사회민주주의 정부를 갖고 있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이런 충격이 조금 덜했지만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영국과 미국은 그 변화가 컸다. 빈부격차는 크게 확대되었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같이 상승하던 노동계층의 임금 상승은 멈춰버렸다. 

 신자유주의는 사실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직은 모든 걸 집어삼키지 않았던 능력주의도 크게 강화시킨다. 능력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딱 걸맞는데 상류층의 타고난 지위와 사회문화적 자산과 생산수단으로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하고 더욱 강화하는 것을 능력으로 정당화해주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일자리를 잃게된 다수 노동자의 딱한 처지 역시 능력 부족으로 정당화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을 비롯해, 미국, 다른 서구사회, 한국의 노동자들은 안정적이던 제조업 자리를 잃고 불안정한 자영업이나 서비스업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작업장이 균질적이지 않고 모두 파편화되어 있어 연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최근에 등장한 플랫폼 노동은 이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들의 힘든 상황 역시 능력주의로 정당화 된다. 세계화로 인해 서구선진사회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으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된다. 이들은 해당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상대적으로 저임금으로 자국인은 기피하는 어렵고 힘든 노동을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흔들리는 저소득 노동계층에게 이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받아들여지며 또한 그런 측면도 실제 있다. 때문에 개도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서구선진사회의 하층노동계급은 서로 갈등관계가 된다. 

 그리고 노동은 이분화한다. 소수의 상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운이 좋았던 이들은 정규직으로 자리하며 여전히 상대적 고소득과 안정성을 유지하지만 다른 이들은 매우 불안정하고 급여도 적은 비정규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정규직들은 비정규직과 연대하기 보다는 능력주의의 관점에서 이들을 오히려 폄훼한다. 또한 이런 관리직 위주의 정규직들은 자신들을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한층 더 위의 계층은 중간계층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책 차브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런 중간계층들은 노동계층을 차브라 부르며 멸시하고 이들과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한다. 또한 이들의 실패를 거시 정책의 따른 흐름으로 보기보다는 능력의 부족함 혹은 성실함의 부족 혹은 자기 관리의 부족으로 치부하게 된다. 때문에 혐오가 생겨나며 이들에게 자리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강한 의구심도 갖게 된다. 하지만 책 차브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들의 어려움의 상당수는 영국의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잘못된 복지로 인한 세수 손실도 크지만 부유층의 탈세로 인한 재정적 피해는 무려 5배나 더 크나 언론은 이를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달라졌다. 과거엔 주요 선진국에서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학력과 신분은 무척 상향되어 최근엔 언론인, 법조인, 기업인, 교수 정도 출신들이 정치인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 과거 노동조합이 강할 땐 지역과 그 지역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지역지가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지역의 경제기반이 무너지고 언론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지금은 거의 중앙지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중앙지의 기자와 언론인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이다. 이런 사람들이 소위 차브로 불리는 노동계층에 대한 이해가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해결책은 무척 요원하다. 4차 산업 혁명의 흐름은 제조업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고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그나마 남아 있는 정규직 관리직들도 그런 시대엔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기업과 자본가 사회 상류층의 힘은 쏠림 현상으로 인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연대나 중산층의 형성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혹여 수요를 보존하기 위해 정치권과 기업계가 다시 기본 소득같은 것을 실행하여 많은 여가를 누리고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서로 연대를 하는 새로운 중산층 시민계층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시나리오다. 과연 기본 소득을 할지 의문이며, 기본 소득을 한다해도 그들이 건강한 시민계층으로 자리 잡을지도 의문이고 모든 것이 개인화하며 매우 파편화한 지금의 시대에 동질적 문화란게 생겨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는 미중 패권 갈등에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티인 전쟁, 그리고 이로 촉발된 고물가로 인해 경제가 무척 어려워진 상황이다. 십수년간 이뤄진 양적완화로 인한 돈파티로 부풀려진 자산가격과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이것을 이자부담과 상환부담에 시달리는 얼마 남지 않은 중산층들이 이 파국을 어찌 헤쳐나갈지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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