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간의 최후 - 세컨드핸드 타임, 돈이 세계를 지배했을 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어릴 적 음악 교과서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있었다. 노래를 배우며 그래도 막연히 내가 어른이 되면 통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고 내가 상당히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분단이 유지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이러다 곧 분단 100년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한국의 분단은 더둑 고착화되는 느낌이다. 통일이 될 것만 같던 시기도 있었다. 70년대의 남북 기본 합의서 작성 때가 그랬고, 90년대에 동구권이 붕괴했을때는 가장 기대감이 컸으며, 김일성이 사망하고 북이 큰 경제위기를 겪었을 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노무현도 방문했을 때, 문재인의 중재하에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났을 때도 그러했다. 하지만 현실은 분단의 고착화다. 이미 북은 남한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를 만큼 거리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아무래도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체제를 띠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래도록 독재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북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큰 혼란을 띠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일부 새터민들이 그런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수도 적고 탈북을 할 만큼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만큼 일반화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렇기에 먼 훗날 북한이 남한과 통일한다면 그 때의 북한 사람들은 사실상 마지막 '붉은 인간'이 될 것이다. 

 책 '붉은 인간'은 대충 구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태동한 2000년대 정도에 러시아인들은 인터뷰한 것을 엮은 책이다. 자료가 방대한 만큼 책의 두께도 상당하다. 모두가 인터뷰를 거의 그대로 실은 형태가 저자의 생각이나 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반응은 사람 수 만큼 다양하지만 동일한 국가에서 동일한 사건을 겪으며 살아온 만큼 몇몇 공통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소련에 대한 강한 향수다. 소련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인터뷰가 과거나치 독일의 침략을 물리치고 경제난 속에서도 미국과 패권전쟁을 벌였으며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고 사회주의 이상을 추구했던 소련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사실 이 제국이 소련 사람들에게 준 것은 고통 뿐이다. 2차 대전은 1천만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었고, 스탈린의 독재는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으로 몰아갔으며, 미국과의 대결은 핵과 인공위성을 만들었음에도 이렇다할 생필품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것음 감내하면서도 유지하고 번성시킨 제국에 대한 애착을 만든 느낌이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무너지고 소련이 러시아로 변모하며 지금의 자본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행한 인물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소련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2000년대 초반의 러시아가 경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러한 상황을 초래한 고르바초프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또한 그가 지나치게 많은 영토와 핵을 해체한 것에 대한 불만도 컸다.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초기에 러시아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들어서며 기대감도 컸던 것 같다. 맥도날드가 생기고 첨단 서구의 전자제품과 다양한 필수품은 눈이 돌아갈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위기로 인해 화폐가치가 폭락하며 그런 대다수의 제품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과거의 화폐로 살 수 있었던 구 소련의 형편없는 제품을 그리워 할 지경이다. 또한 갑작스런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당시 군에 있었던 사람이나 정치에 인맥이 있던 사람들 주요 에너지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눈치 빠른 사람들에게 과도한 이익과 경제적 권력을 몰아주게 되었는데 그에 따른 소외감이 가장 큰 것으로 보였다. 이들을 긍정하는 인터뷰는 전혀 없었고 욕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또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비방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구소련에서는 이렇다할 유흥거리가 없어 사람들은 책과 극장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돈으로 갖가지 유흥거리와 소비거리가 들어오며 문화적으로 일차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타락에 대한 비방이 많았다. 

 독재자들에 대한 애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스탈린은 2차대전에서의 초기 형편없는 대응 및 군사적 실패, 승전 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숙청을 벌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성공적으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강력한 소비에트 국가를 완성시킨 인물론 평가받는 분위기 였다. 스탈린의 가혹함을 말하는 이는 거의 없었고 그리워하거나 칭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의 대규모 숙청은 소위 말하는 할당제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고발하거나 과도한 감시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소로 몰아넣었다. 때문에 소련에서는 과거 서로 동료였음에도 서로 고발을 했거나, 이후 복권되어 돌아와 같이 구소련의 비슷한 직장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공존하며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런 복잡함이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동구권인 민족 전쟁의 장으로 변화하여 체첸이나 아제르바이잔, 동유럽에서 민족 청소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런 잔상을 보며 소련이라는 울타리에서 잘 지냈던 과거를 그리워했고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이었던 사람들의 변화에 경악했다. 

 다수가 소련을 옹호했지만 그 체제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 전쟁에 끌려가 처참한 상황에 맞이한 것, 수용소에 억울하게 끌려가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하는 사람도 소수 있었다. 사실 대다수가 그러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음은 언급한 것처럼 소련이라는 국가가 그것을 감내할 만한 것이었다는 집단적 생각에 갇혀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책은 무척 길기에 읽기가 쉽지 않다. 몹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같이 공존했다. 지금의 한국에는 큰 의미가 없지만 언젠가 통일 한국에서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부분이 많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맞이한다. 그리고 그 직전까지 건강을 다시 회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사실상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에서 버티는 세월이 상당히 늘어났다. 이는 사실상 고통의 연장에 가깝다.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가족들과 친지들 주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오래도록 앓던 증상이 갑자기 터지며 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과거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시기도 빨랐지만 현대의 죽음은 외롭고 고통을 받는 기간이 길어졌다.

 인간은 분명 죽게 설계되어 있기에 나이가 들수록 생체지표가 급격히 나빠진다. 일생동안 턱근육은 40%, 아래턱뼈는 20%가 소실되어 약화된다. 이처럼 치악력이 약해지기에 인간은 나이가 들면 탄수화물 위주의 씹기 쉬운 식품을 위주로 섭취하고 이는 충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선진국 사람은 대개 60세가 되면 평균 치아의 1/3을 손실하고 84세가 되면 40%가 손실된다.   

 그리고 혈관에도 문제가 생긴다. 나이가 들면 뼈와 이의 칼슘은 소실되나 다른 부분인 혈관과 관절, 근육, 심장판막, 폐 등에는 오히려 축적된다. 특히 혈관에 칼슘이 쌓이면 혈관 자체가 좁아지고 뻣뻣해져 고혈압이 유발된다. 그래서 65세가 되면 인구의 절반이 고혈압이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털이 하얗게 된다. 이는 색소세포의 감소때문이다. 색소세포는 수명이 수년 정도인데 젊을 때는 줄기세포가 이를 충분히 대체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 줄기세포도 부족해져 50세 정도가 되면 머리의 절반에 흰머리가 된다. 그리고 피부세포에도 검버섯이 생긴다. 피부세포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점차 사라져 잔여물이 뭉쳐서 황갈색의 피로푸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는 땀샘의 기능을 저하시키기에 나이가 들수록 일사병과 더위에 취약해진다. 

 그리고 노인은 잘 넘어진다. 매년 35만의 미국인이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상을 읿고 이중 40%가 요양원행이 되며 20%는 다시 걷지조차 못하게 된다. 노인이 넘어지는 이유는 균형감각의 쇠퇴와 근육약화 네 가지 이상의 처방약을 복용하기 때문이다. 이 3가지 요인이 모두 있다면 1년 사이 낙상확률은 100%이고, 1가지만 갖고 있다면 확률은 12%로 떨어진다. 

 이처럼 나이가 들며 인간은 노인병이 다가온다. 하지만 미국에서 노인병 관련 전문훈련과정을 마치는 의사는 1년에 300명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의사와 병원은 노인병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노인병은 재정안정성에 크게 관련한다. 미 메디케어의 25%가 수명이 마지막 1년에 이른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막판 1-2개월에 집중된다. 즉, 고통스러운 연명에 상당한 의료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리를 하고 몸에 좋은 것을 먹고 하지만 그 시기를 다소 늦출 분 누구나 신체가 기능을 서서히 잃어 더 이상 일상을 할 수 없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 더 이상 자율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오래도록 가족과 같이 살고 아이들을 키워낸 집에서 떠나게 되며, 자신과 같이 했던 가족 및 주변사람들과 떨어져 외롭게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거나 건강상 큰 위기를 겪게 되면 세계관 및 주변에 대한 행동이 변화한다. 어리고 성장기에는 자신이 못하던 것을 하려하고 도전적이며 관계를 넗히는 등 성장지향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거나 고령이 되고, 건강상의 큰 위기를 겪고 나면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 하고 사회적 관계도 좁혀서 기존에 친했던 주변인들과의 만남을 늘리는 등 안정지향적으로 변화한다. 

 때문에 책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개인적인 욕심 및 가족의 욕심으로 무리한 연명과 과도한 치료보다는 호스피스 등을 이용하고, 자신의 활동력을 온존하는 쪽으로 하여 가급적 자율적인 삶과 주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놀랍게도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수명을 연장하고 개인의 자율적인 생활시기를 늘렸다.

 요양원의 문제도 지적한다. 대부분의 요양원 및 요양병원은 다수가 좁은 곳에서 생활하여 개인적 생활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반려동물이나 식물등의 반입도 엄격히 제한되며 식생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에게 화장실과 공간을 개인적으로 허용하고 반려동물과 식물도 반입이 가능하며 때때로는 본인이 원하는 건강에 좋지 않은 불량식품을 허용한 요양원이 노년의 환자에게 훨씬더 좋았다. 이 경우 역시 수명과 자율적 생활이 가능한 시기가 연장되었다. 요양원이 갇힌 노인들이 모두의 반대에도 그토록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다.

 한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수명이 긴 나라다. 하지만 유교문화의 붕괴와 과도한 의료, 무수한 낮은질의 저렴한 요양원, 가족의 분리, 상대적으로 낮은 건강수명, 노인 빈곤 등으로 많은 노인들이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 하고 있다. 과도한 치료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하고 그들을 집과 적어도 죽음이 가까워진 순간에는 가족과 함께하자는게 책의 요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은 개별 작품에 대해 풀어놓은 책은 많이 없지만 그 작가와 사조, 예술사를 다룬 책은 많다. 반면 문학은 개별작품 하나하나가 재밌거리이자 공감거리지만 그 작가와 문학사를 다룬 책은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책 '문학의 역사'는 서양, 특히 영국문학에 집중해 그 역사와 흐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 읽고나니 역으로 고대부터 한국문학사의 흐름을 다룬 책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의 문학에 대한 깊이와 혜안도 높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저자는 문학이 세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의 정점에 다룬 인간의 지성이라 했다. 참으로 그런 것 같다. 사람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느끼며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을 잘 반영하며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상당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을 반영하고 같으면서도 다르며, 직접적이기도 하고 간접적이기도 하다. 

 최초의 문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신화다. 신화는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문학은 사실상 이런 기능을 계승했다. 신화는 불가사의한 세계의 원리를 나름 설명함으로써 의미 없이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 의미 부여를 한다. 신화의 구성요소는 두 가지로 일단 플롯이 있어서 발단, 전개, 갈등, 해결 등의 구조가 있다. 그리고 신화는 지금의 관점에선 허무맹랑하지만 반드시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신화는 서사시로 계승된다. 최초의 서사시는 '길가메시 서사시'로 추정된다. 서사시는 영웅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매우 오래되고 엄선된 텍스트다. 서사시는 역사상 전환기에 나타나는데 이 전환기는 바로 고대국가의 탄생 시기다. 고대국가는 자신들의 탄생 이유를 정당화하고 신격화해야 했는데 이런 근본적 이상을 담은 영웅형태로 이를 표현했고 이것이 서사시다. 때문에 서사시는 아무나라나 만들지 않는다. 훗날 위대한 제국으로 성장할 나라의 탄생이 기록된다. 사실 대부분의 나라가 서사시를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살아남은 정복 제국의 서사시만 남기에 그럴 것이다. 문학적 서사시는 찬가와 비가로 나눠지며 길고 영웅적이며, 민족주의적이고 시적이다. 서사시는 보통 후대가 그리워하며 되돌아보고 싶을 정도로 지나가 버린 위대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서 동서양의 제국들은 이런 서사시로 인해 과거의 영광의 시대를 항상 그리워한다. 그럴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비극은 단지 끔찍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비극으로 이야기가 굴러가게 되는 요소를 갖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무엇을 묘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묘사하는냐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즉, 비극적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나 필연처럼 그럴듯하게 다가와야 한다. 그래서 비극의 주인공들은 대개 판단착오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르고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얼마든지 그랬거나 그럴 수 있기에 필연적이고 공감을 불러오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래서 비극은 두려움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은 절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기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비극이다. 그래서 비극의 공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오늘 날 영국문학은 700년 전 제프리 초서에게서 출발한다. 초서는 17세기 무렵 잉글랜드 주민들이 비로소 단일한 언어로 쓰고 말하기 시작한 시점의 사람이다. 그래서 초서의 문학은 영국 문학일 뿐만 아니라 영어로 쓰인 문학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서 이전 문학은 작가를 딱히 가지지 않았는데 초서 이후로 작가가 분명이 생겨난다. 초서는 개인적으로 유복한 삶을 살았지만 1380년이 되어서는 운을 잃고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재능있는 사람에게 이런 한직의 시간은 집필의 시간이 된다. 초소는 켄트에 틀어박혀 위대한 시인 켄터베리 이야기를 쓴다. 이 작품은 인쇄기 이전에 나온 것이라 필사본만 존재하고 직접 쓴 육필은 전해지지 않는다. 

 내용은 1387년 4월 순례자 29명이 런던의 템스강 남안의 타바트 여관에 모이며 시작한다. 이들은 4일 간 100마일의 순례에 나서 켄터베리 대성당의 순교자 토머스 베케트의 묘지까지 갈 예정이다. 긴 여정인 만큼 1명 씩 가는 길에 이야기 두 개, 오는 길에 이야기 두 개 씩 총 116개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이들은 다양한 직종, 성별, 신분을 지녔기에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내포한다. 이야기는 다소 외설적이기도 사회 비판적이기도 엉뚱하기도 하나 막판엔 주임신부의 고결하고 진지한 설교로 다행히 마무리된다. 안전장치가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6년차에 태어났다. 그의 시대는 신교와 구교의 전환기였고, 왕위 계승에 대한 혼란기였다. 엘리자베스 1세가 독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왕위 계승에 대한 소재로 가득차 있다. 다양한 고민의 반영인 셈이다. 그는 운문에 각운이 없는 무운을 사용했다. 그래서 일상언어의 유연함과 시의 장중함을 모두 갖춘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작품에서 독백을 탁월하게 사용하여 무대 위 인물들의 마음 속을 능숙히 보여준다. 

 18세기 들어 영국에서는 문학 창작과 관련한 법과 상업적 틀이 생겨난다. 이를 위해서는 3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문학 시장이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시장이 생기려면 당연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문해력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문해력을 갖게 해줄 교육기관도 필요하다. 또한 문해력을 갖춘 이들을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게 인쇄술과 저렴한 종이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게 갖춰진게 18세기 였다. 그리고 1713년부터 영국에는 저작권 법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최초의 창작물은 저자가 소유하고 타인은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해졌다. 초기 저작권은 보호기간이 매우 짧았지만 차츰 연장되었고 오늘날에는 사후 70년으로 규정되었다. 

 유럽에서 원류 소설이라 할 만한 작품은 5가지다. 데카메론,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돈키호테, 천로역정, 오두노코다. 그리고 영문학에서 소설 장르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것은 대니얼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는 무엿상과 자본주의, 기업가의 시대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를 개발하여 큰 부를 이루는데 이는 기업과 정신과 연관된다. 

 1789-1832년의 문학을 낭만주의라고 일컫는다 1789년은 프랑스 혁명의 해로 낭만주의는 바로 이데올로기에 중심을 둔 최초의 문학 운동이다. 이데올로기는 한 무리 또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의 삶에 기준이 되는 신념이나 집합이다. 그래서 낭만주의에는 국가를 넘어서는 세상을 바꾸려는 신념이다. 하지만 낭만주의 문학에는 이데올로기가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감정과 심리에 매혹되어 있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은 6권의 소설을 썼는데 모두 여주인공이 누구와 결혼할지가 주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좁은 주제의 세밀한 표현때문에 그의 작품을 세밀화에 비유한다. 오스틴의 모든 소설에서는 여자주인공의 결혼 문제가 주요 관심사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폭이 좁은에도 오스틴의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정작 그 주제를 매우 재밌고 흥미롭게 잘 다뤘다는 점과 도덕적 진지함에 있다. 도덕적 진지함은 복잡한 상황과 문제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료하게 제시했다는 것이다. 

 찰스디킨스는 지폐나 우표에 초상이 있을 정도로 위대한 작가다.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매년 100만권 이상의 책일 팔릴정도로 생명력이 있다. 그가 위대한 이유로 작가는 다섯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로 오랜 작가 기간 내내 무척 창의적이었다. 둘째는 올리버트위스트처럼 어린이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어린이가 얼마나 쉽게 상처받고 멍드는지, 어른과 달리 어린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 보는지를 작품으로 깨닫게 했다. 셋째는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기에 민감했고 이를 반영했다. 넷째는 소설이 사회를 반영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이해한 최초의 소설가라는 점, 다섯 번째는 인간이 그래도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미국문학은 영국 문학의 아류처럼 초기에 여겨지기도 했지만 전혀 다른 자연과 정치체제를 가졌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른 존재다. 미국문학의 출발점은 여작가인 앤 브레드 스트리트로 파악된다. 그는 계몽한 청교도의 딸로 여자도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정신 속에서 교육을 많이 받았다. 청교도주의는 미국 문학의 주춧돌이다. 19세기 청교도 주의는 뉴잉글랜드에서 초워룾의자들의 작품을 통해 문학으로 피어났다. 바로 삶의 진실은 일상적인 세상의 것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다. 자유는 다양한 면면에서 시를 포함한 미국적인 모든 이념의 본질로 이는 미국의 자유시로 이어진다. 자유시는 압운을 벗어던 진 시로 형식면에서 파격적이다. 

 19-20세기 미문학은 강렬하고 독특한 자기규정을 하는데 이는 프론티어 논지다. 자신들의 본질적 특성과 가치가 문명이 서부로 확장하는 투쟁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실상 거의 모든 카우보이 소설과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 미국은 지역도 넓은 만큼 문학도 지역색이 뚜렷하다. 윌리엄 포크너와 캐서린 앤포터로 대표되는 남부 문학, 뉴욕의 유대인 문학, 서부해안 문학이 그러하다. 

 문학은 사회역사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록자 역할을 한다.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뿐만 아니라 그 일데 대한 국가의 복잡하고 유동적인 반응도 새겨넣는다. 전성기의 제국주의와 그 직후의 포스트 제국주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영국인에게는 자부심과 수치심이 불안정하게 출령였고 문학에 이것이 반영되었다. 

 전쟁은 시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최초의 위대한 시일 일리야드도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제1차 대전에는 영시가 가장 많이 쓰여졌다. 1차 전쟁은 매우 끔찍한 전쟁이었고 사람들은 국가주의와 영웅주의에 매몰되어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장의 작적은 구시대적 전략사고를 가진 장성들로 인해 인력을 갈아넣는 소모전에 불과했다. 양쪽은 깊은 참호를 파놓고 서로 포를 쏘았고, 쓸데없이 기관총으로 무장한 적진에 병력을 뛰어넣게해 소모시켰다. 저자는 이런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전쟁시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이런 전쟁시를 탄생시킨 병사들의 수천만 생명보다 과연 이 전쟁시가 가치가 있을지를 되묻는다.

 레이 브레드 버리의 화씨 451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화씨 451은 저절로 종이에 불이 붙는 온도다. 주인공은 소방관으로 통상적이지 않게 불을 끄기 보다는 책을 태우는 일을 한다. 책을 태우는 것은 과거의 이상한 생각들을 막아 이상향을 구축하려는 독재적 사회 때문이다. 항상 독재자들은 모든 사상을 정리하고자 책을 태운다. 진시황이 그리고 히틀러가 그러했다. 주인공은 책을 태우다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보게 되고 그것을 읽고 독자이자 사회의 반역자가 된다. 그는 숲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공동체게 숨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책 하나하나를 외워서 자신이 스스로 위대한 책 자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책은 언제든 소각되어 모두 없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 우리의 문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
바츨라프 스밀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온난화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매년 여름 기온은 최고 기온을 갱신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올 여름이 앞으로의 일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거론한다. 온난화의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다. 교육, 생산성, 의료, 수명, 농업, 범죄, 복지, 군사, 치수, 총체적 경제성장 등 거의 사실상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인류의 안녕에 탄소의 감축은 매우 중대하게 관여한다. 하지만 인간은 문명 발달 과정에서 특히,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 상당히 화석 연료에 의존해왔고 이는 언급한 전 분야에 깊숙이 새겨져 있기에 탈탄소는 매우 어려운 실현 과제다. 

 책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인간 문명의 발달사의 여러 부분을 살핀다.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화석연료에 의존하는지 그리하여 탈탄소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찰하고 소위 일부 선진국들이 제기하는 탈탄소 목표가 실현 가능성이 적은지를 짚는다. 이처럼 문명사를 통해 인간의 탄소 의존도를 잘 드러낸다는 점이 이 책의 특별함이다.


1. 에너지

 책은 먼저 에너지를 살피다. 우주엔 열역학 법칙이 있다. 1법칙은 우주의 에너지나 물질은 전환될 뿐 절대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이며 2법칙은 그 에너지의 유용성이 점차 사라지는 방향으로 무질서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이런 우주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무질서하게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일부 중력장의 뭉침으로 물질과 에너지가 모여 항성계와 은하, 생명을 잉태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명은 에너지를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전환하는 장치다. 

 그리고 이 생명 중 하나인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 체제는 자원으로부터 에너지를 추출해 가공하고 상품과 서비스로 구현되는 에너지로 바꿔가는 체제다. 그래서 인간의 경제 체제엔 에너지가 중요 요소가 되며 인류가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나서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600년경 인간은 작물 이외의 석탄에서 열을 얻기 시작한다. 1850년이 되어서도 총 연료 에너지의 7%만 석탄이었고 축력이 50%, 인력이 43%였다. 1950년에 이르러 화석연료가 일차 에너지의 75%를 차지하게 된다. 

 화석연료의 사용은 근대에 폭발하는데 19세기 60배가 늘어나고 20세기엔 16배가 늘어 산업화 이후 지난 22년간 총 1500배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인간이 사용하는 유효에너지의 공급 총량도 크게 증대한다. 1800년 일 인당 0.05기가 줄, 1900년 2.7, 2000년 28, 2020년 34기가줄에 이른다. 34기가 줄은 상당히 큰 에너지다. 800kg의 원유 또는 1.5톤의 역청탄, 60명의 성인이 밤낮없이 일년 내내 일해야 만들어내는 에너지다. 

 이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를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는데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은 2020년의 경우 구름이 많이 끼자 태양광이 11%만 작동하여 화석연료로 전기의 48%를 충당해야 했다. 덴마크 같은 소국은 평소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다가도 기상이 안좋은 경우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근 국가들과 전기를 교류할 수 있으나 독일처럼 큰 경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중 풍력도 쉽지 않다. 풍력은 태양광보다 위치가 더 한정되는데 그러다보니 소비지와 멀리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장거리 직류송전과 고전압 송전장치가 필요하며 이는 상당한 낭비를 낳게 된다.  


2. 식량 

 20세기의 녹색혁명으로 세계의 영양은 크게 개선되었다. 영양부족은 1950년 65% 1970년 25% 2000년 15% 2019년 8.9%로 크게 줄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간 인구는 두 배 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인구가 늘면서 영양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식량생산이 엄청난 증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식량증대에도 화석연료가 깊이 관여한다. 농업에는 농기계와 강철, 운성을 위한 철도와 선박, 그리고 무기비료의 공급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이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19세기만 해도 씨를 뿌린 경작지 1ha당 연간 27시간의 인력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수확의 전 과정까지는 연간 최소 120시간의 인력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업 전과정에서의 화석연료의 투입으로 같은 면적당 인력은 겨우 2시간 이하가 필요하다.

 질소는 모든 생물의 생육에 필요하다. 질소는 대기에 충분하나 문제는 이것이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개 비활성화 상태이나 매우 소수의 자연과정에서만 활성화한다. 바로 번개가 치는 것인데 그러면 번개에 닿은 공기부분에서 질소산화물이 생성되고 이것이 빗물에 녹아 땅에 흡수되어 질산염이 형성된다. 다만 번개가 자주 치는게 아닌 만큼 자연적으로는 이것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질소를 땅에 공급하는 다른 방법은 콩과 식물의 뿌리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질소를 쪼개 암모니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질산염이 된다. 그리고 효율이 낮은 다른 인위적 방법은 인간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땅에 뿌리는 것이다. 다만 배설물의 질소함량이 매우 낮아 대량살포가 필요하다. 헥타르당 10톤이 기본이다. 

 이런 상태에서 1909년 프리츠 하비가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다. 그 덕에 녹색혁명이 일어났고 지금의 과도한 인구 부양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우주의 모든 것은 결국 전환인만큼 엄청난 양의 식량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밀가루 생산을 위해서는 낱알을 걷어내는 도정을 하고 이 과정에서 질량이 25%감소한다. 80g의 통밀에서 밀가루 58g이 나오는 셈인데 여기에 디젤유가 80ml정도 필요하다. 이 밀가루가 빵으로 구워지고 그 과정에서 원재료와 완성재료가 이동, 포장, 유통되는 전과정을 감안하면 빵 1kg에는 무려 210ml의 디젤유가 투입된다. 

 그리고 축산도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지난 50년간 소나 돼지보다는 닭의 가축사료 효율이 크게 개선되었다. 1950년 3:1이었지만 지금은 1.82:1이다. 이는 매우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이나 닭의 품종을 개량해 식량이 될 몸만 커지고 걷지 조차 못하는 기형적 닭은 양산한 결과다. 그 결과 닭이 겪는 고통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 닭고기도 먹을 수 있는 부분만으로 계산하면 사료와 :1수준으로 떨어지고 사료, 운송, 도축, 가공, 조리의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 1kg의 닭고기에 원유 300-350가 필요하다. 빵보다는 높지만 고기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소와 돼지고기는 여전히 닭에 비해서는 크게 전환효율이 떨어진다. 

 사실 놀라운 것은 채소다. 채소는 고기보다 훨씬 나쁜 전환효율을 보인다. 토마토 재배에는 묘목, 비료와 농약, 물과 난방, 노동력, 시설이 필요하다. 이건 생산이고 역시 수확, 유통, 가공, 조리의 전과정을 생각하면 토마토는 1kg당 650ml의 원유를 쓴다. 때문에 온난화를 생각하는 채식주의자는 야채, 과일보다는 곡물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토마토는 단위 면적당 비료도 옥수수의 10배나 요구한다. 

 어류도 효율성이 낮다. 새우나 랍스터는 놀랍게도 1kg당 10리터의 원유를 필요로 한다. 최악인 셈이다. 정어리나 고등어 같은 표영성 어류는 1kg당100ml의 원유가 필요하고, 초식어류는 300정도이지만 참치, 농어, 연어같은 인기 육식어류는 무려 2리터 이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부 국가의 열악한 상황은 낭비를 더 부추긴다. 저소득 국가는 식물 저장방법이 낙후하고 냉장시설이 부족해 상당한 식품이 시장에 도달하기도 전에 폐기딘다. 전 세계의 식물 폐기량은 엄청난데 뿌리작물, 열매, 채소의 50%, 어류는 1/3, 곡류는 30%, 식용육, 유제품의 20%가 폐기된다. 이 중 가정에서 버리는게 30%d이고 나머지는 생산, 유통, 가공과정에서 버려진다. 


3. 시멘트,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

 위 네 물질은 현대 사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라도 없다면 문명은 상당한 곤란을 겪는다. 문제는 이 네가지 필수품이 생산과정에서 대량의 탄소를 배출한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은 깨지지 않고 늘어나는 성질과 열가소성으로 인해 널리 쓰인다. 그 생산량은 1925년 2만톤이었으나 지금은 4억톤이 넘는다. 거의 모든 가전제품, 자동차, 항공기에 대량 사용한다.

 강철은 탄소함량이 많이 연성이 낮고 인장강도가 약하다. 하지만 강철빔은 화강암 기둥보다 15-30배의 무게를 지탱하고 인장강도는 알루미늄의 7배, 구리의 4배다. 내열성도 훨씬 강하다. 여기에 철은 지각에 풍부하나 무려 5%나 된다. 강철은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데 1톤당 50kg의 탄소를 배출한다. 세계적으로 연간 900만 메가톤의 강철이 생산되는데 여기서 배출하는 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7-9%에 달한다.

 시멘트는 커다란 가마에 분말 석히석과 점토나 혈암, 폐기물을 넣고 1450도 이상에서 가열해 생산한다. 이를 소결하면 용해된 석회석과 알류미노 규산염이 클링커에 남고 이를 곱게 빻으면 시멘트가 된다. 시멘트와 물, 골재를 섞은 것이 콘크리트인데 이는 압축에는 잘 견디나 장력에 약해 툭하면 금이 간다. 장력을 위해 철근으로 보강하는데 건설현장에서 그렇다. 

 

4. 세계화

 인간은 고대부터 꾸준히 교역을 해왔다. 하지만 전지구를 연결하는 세계화는 4가지의 근본기술로 가능해졌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디젤엔진, 제트여객기 추진에 사용하는 가스터빈, 대형벌크선과 컨테이너 수송, 컴퓨터의 활용과 정보처리의 비약적 발전이다. 

 초기 증기기관 수송선은 효율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무겁고 부피가 큰 석탄을 선적해야 했기에 화물을 실을 칸이 부족했다. 그러다 증기선의 외차를 대신한 스크루 장치의 도입으로 증기선이 강신이 범선에 우위를 차지한게 1897년이다. 디젤엔진이 개발되지 이 증기선보다 연료를 적게 실고 효율은 2배에 달해 재급유가 필요없이 장거리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살아있는 가축 및 냉장육류도 교역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가스터빈은 연료를 압축공기의 흐름속에 분무하여 고속으로 기계 내에 확산한 뒤 나가며 고온가스를 만들어 낸다. 보잉747에 이것에 설치되었는데 더 큰 추진력과 적은 소음을 내었다. 기존 가스터빈 이전의 비행기들은 규모가 커졌지만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고도가 낮아 난기류에 시달렸다. 747은 1548기 생산되어 50년간 전 세계로 50억명을 수송한다. 

 1973년에서 2019년 세계 해상무역은 3배 증가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초기 컨테이너선은 겨우 1968개를 적재하나 지금은 2만 3756개를 적재한다. 컨테이너는 배에 물건을 실고 내리는 것을 매우 규격화하여 항만의 작업을 매우 효율화하였다. 그리고 이는 세계 교역의 증대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런 세계화 과정 모두 많은 탄소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저자는 인간이 여러 위기를 과소 평가하고 일부는 과대 평가함을 다른 장에서 드러내기도 하며 인간이 탄소배출의 축소에 얼마나 어리석고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설명한다. 문명이 탄소에 깊게 얽혀 있어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물론 원전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위험의 무시는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긴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차 대전 중 이런 저런 학살로 죽임을 당한 유럽의 유대인 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6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지금 유대인이 모여 건국한 이스라엘 인구가 900만 정도란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다. 책 '죽음의 수용소'는 한 유대인이 수용소에 직접 수용되어 겪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좀 더 수용소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여, 실상을 잘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저자는 이미 그런 책은 충분히 많아 자신은 다른 관점에서 책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은 1부는 수용소에서 겪은 단상이고 2부는 로고 테라피라는 저자가 심리치료를 위해 적용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2부는 그저 그랬고, 1부의 내용이 좀 더 다가왔다.

 저자는 수용소로 향하며, 기차에 다른 유대인들과 수용된다. 너무나도 좁은 곳에 수용되어 기차로 며칠을 가며 그들 모두는 제발 아우슈비치만큼은 피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들은 아우슈비츠에 수용된다. 처음 며칠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말도 안되게 적은 음식으로 연명한다. 아마 그들 대다수를 바로 죽일 예정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수용된 이들은 차례로 양 줄로 선별된다. 선별 당시 저자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한 쪽은 죽음의 줄, 다른 한 쪽은 연명의 줄이었다. 노역을 견딜만큼 건장하고 건강해 보이는게 생존의 조건이었다. 실제 건강해보이는 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한 수용소 동료는 저자에게 유리 조각으로 할 지언정 매일 면도를 하고, 얼굴을 자주 문질러 붉게 보이게 하라고 했다. 그래야 건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용소엔 카포란 이들이 있었다. 나치와 수용자의 중간자인데 같은 유대인 수용자이면서도 나치에 협력해 중간 관리자 같은 역할을 했다. 다만 이들은 어쩔 땐 나치보다도 더욱 악랄했다는 점이다. 물론 간혹 착한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나치가 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기에 악랄한 자로 바로 교체되었다. 그래서 카포는 더욱 악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조금 더 나은 연명가능성과 식량, 물자, 노역의 면제 등을 얻었고 이를 위해 동포를 괴롭힌다.

 저자는 직업이 그래도 의사였기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의사이니 여러 가지 할일이 있었고 나치 군인과도 약간은 교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좀 더 죽은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늘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나갔는데 그의 아내는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수용소에 수감되며 거의 바로 처분된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저자는 죽을 위기에서 동료에게 아내에게 남기는 마음을 담은 유언을 외우게 하기도 한다. 수용소에는 전기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바깥을 볼 수 있다. 이건 좋으면서도 좋지 않다. 차라리 높은 담장이면 바깥은 보이지 않아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담장이 없었기에 아름다운 바깥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나는 갇혀서 언제 나갈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봄이면 만발한 꽃과 자연은 묘한 감정을 낳게 했다.

 사람들은 전기 철망에만 기대면 고압전류로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툭하면 가해지는 강한 고통속에 묘하게도 자살 시도 따윈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고통 속에서도 언젠간 나갈 수 있다라는 강한 희망을 품기도 한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즈음이나 연말이면 묘하게도 그런 막연한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기가 끝나면 유독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마음대로 최후의 희망을 품고 버티던 이들이 그것이 오지 않자 희망이 사라져 숨도 같이 끊어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군대 생각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내가 가진 경험과 저자의 경험 중 가장 유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는 비교가 되진 않는다. 한국 군대는 정해진 기한이 있고, 자주는 아니지만 휴가란 것도 있으며, 어느 정도의 위생과 식량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이곳에 온 것에 대한 비자발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유의 강한 박탈, 비인간적 취급, 상급자 등에 의한 괴롭힘이다. 군생활을 하며 부대 내에서 쇼생크 탈출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다들 죄수와 비슷한 처지에 상당한 공감을 하며 봤는데 한 병사가 우리랑 진짜 비슷하다고 신세 한탄을 했다. 그걸 들을 한 간부(아마 부사관이었던 것 같다)가 강하게 화를 냈다. 니네가 죄수냐고. 근데 죄수 같았다. 그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전역이란 걸 해서도 그리 오래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꿈을 꾸는게 아닐까. 아직 집에 못갔다는 꿈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