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통을 조이는 사랑]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 원제: 爱的噩梦
■ 한국어 제목: 숨통을 조이는 사랑
■ 영어 제목: Suffocating Love
■ 감독: 랴오밍이(廖明毅)
■ 등장인물
○ 남자: 배우는 린바이홍(林栢宏). 작중 이름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는다. 헌책 나눔을 통해 만난 여성과 교제를 시작하고 동거하게 되는데, 이때 여성이 내건 조건들이 숨통을 조일 듯한 것들이었다. 자신이 평소 즐겨 찾아보는 인플루언서가 있고, 새로운 고객 회사의 담당자로 만난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했던(고백했다가 차였던) 여성이 있다.
○ 린아이쉬안: 배우는 린잉젠(林盈臻). 남자 주인공이 고등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그래서 두 차례나 연애편지를 보냈던 여성. 남자 주인공의 새로운 고객 회사 담당자로 우연히 다시 만난다.
○ 바이지아치: 배우는 샹지에루(項婕如) 헌책 나눔을 하면서 여러번 만난 남자 주인공과 교재하다가 그가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권해 동거를 시작한다.
○ 헤이즈 요우리(黑泽由里): 일본식 이름은 쿠로사와 유리(黒沢ゆり) 자막에서는 계속 쿠로사와 유리라고 나온다. 배우는 셰신잉(謝欣穎). 남자 주인공이 평소 동경하며 즐겨 찾는 SNS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일단 감독 이야기부터 해보자. 정말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한동안 제법 좋아하는 영화 중에 상위권에 있었던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편집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 데뷔작은 그 유명한 [괴짜들의 로맨스]이다. 이 영화는 대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었다. 마스크와 비닐 등으로 중무장한 강박증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아주 독특한 내용의 영화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나와서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선하고 멋진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결말은 좀 아쉬웠다. 강박증이란 증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저럴까 싶은 부분도 있었고, 어쩌면 저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갑자기 강박증이 씻은 듯이 낫게 되는 부분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픽션이겠지만. 이 영화 [숨통을 조이는 사랑]이 두번째 영화인지 다른 영화가 더 있는지는 찾아보지 않았지만, 첫 영화와 이 영화까지 보고나니 감독이 어떤 특정한 강박과 통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배우 이야기.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연기는 꽤 괜찮았다. 배역에 적절하게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여겼다. 초반 여주인공인 바이지아치 역을 맡은 샹지에루는 이전에 [버려진 사람들]이란 영화에서 봤었다. 차이웨이라는 경찰 역이었다. 귀엽고 매력적인 외모에 연기력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이웨이 때 보다는 배역에 훨씬 어울리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귀여운 외모의 여자친구가 이렇게 강압적인 요구를 지속하면 과연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을 잘 연기했다. 린아이쉬안 역의 린잉젠이란 배우는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전형적인 사무직 여성의 이미지를 잘 소화했다. 거기에 청소년 시절 남자 주인공의 첫 사랑으로서 아슬아슬 밀당을 하는 부분도 잘 연기했다. 나중에 바람을 피우며 둘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들은 연기와 연출이 제법 좋았다. 남자 주인공과 엮이는 세 명의 여성 중에 제일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즐긴 인물이다. 영화 후반의 주인공인 헤이즈 요우리 역을 맡은 셰신잉은 제일 익숙한 얼굴이었다. 일단 이 감독의 전작인 [괴짜들의 로맨스]에서 여주인공인 첸칭 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화등초상]에서 황바이허 역을 맡았었다. 술집에서 사용하는 일본식 이름은 유리였다. 그러고 보니 이 배우는 화등초상에서도 일본식 이름으로 유리를, 이 영화에서도 일본 이름 유리를 썼네. 화등초상을 볼 때에도 눈에 들어오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괴짜들의 로맨스 때에도 외모와 연기력 모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기묘한 느낌을 주는 배역을 맡아 나름 연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워낙 배역 자체가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는 터라 배우가 오히려 손해를 본 느낌이다.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생기지 않는 인물을 보며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개성있는 외모로 충분한 매력을 발산했다.
이제 제목 이야기를 좀 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원제는 '악몽 같은 사랑'이라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후반의 이야기는 현실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악몽이라고 받아들일 만하다. 전체적으로 내용을 생각하면 당연히 원제가 이 이야기에 제일 적절한 제목이다. 우리나라 제목은 영화 전반부 내용만을 반영한 제목으로 보인다. 아, 물론 후반부 주인공인 헤이즈 요우리 역시 다른 의미로 숨통을 조이기는 하는데, 이건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숨통까지 조이는 느낌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미신에 집착하는 것인지,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 것인지 대화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어 제목은 우리 제목과 같은 맥락이다. 역시 제일 포괄적인 제목은 원제라 볼 수 있겠다.
우선 바이지아치가 남자 주인공에게 요구한 10가지 규칙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 양치나 세수한 후에 세면대와 바닥 닦기
2. 내가 아침으로 뭘 만들던 다 먹기
3. 아침 먹고 꼭 설거지 하기
4. 직장에서 2시간마다 위치 보내기
5. 내가 문자를 보내면 바로 답장하기
6. 실시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번호를 사진으로 보내기
7. 집에 오면 휴대폰과 지갑을 탁자에 올리고 곧바로 샤워하러 가기. 샤워하는 동안 나는 폰과 영수증을 확인 할거야
8. 아침처럼 내가 차린 저녁도 다 먹기
9. 내가 샤워하는 동안 너는 집안 머리카락을 제거해
10. 내가 자면 너도 내 옆에서 자야 해. 휴대폰이나 컴퓨터는 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나 건드리지 마(혼전순결)
규칙 1번은 사람마다 생활방식이 다르니까 이해할 수 있다. 화장실을 사용한 후에 굳이 물기를 닦아내는 건 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화면에선 화장지(티슈)를 쓴다. 걸레가 아니라. 비싼 티슈를 화장실 바닥 물기 제거에 쓴다. 게다가 주인공 커플은 첫 데이트부터 영화를 안 보고 환경보호 전단지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했는데, 화장지를 저렇게 막 쓴다고? 환경 보호를 위해 헌 책 나눔을 하다가 만나 연인이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칙 2번은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음식이니 기본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음식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반복적으로 계속 하다보면 잘 하게 되는 법. 문제는 입맛이 없는 날이 있을 수도 있고, 배탈이 나거나 아파서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점. 영화에 그런 내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픈 사람에게 다 먹을 것을 강요한다면 이거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이건 무조건 그냥 헤어지고 만다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규칙 3번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이건 뭐 굳이 규칙으로 정하지 않아도 누구나 꼭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을 만들어줬다면, 설거지는 당연한 일.
규칙 4번부터 이건 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2시간마다 연락을 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거기에 더해 위치를 전송하라니! 현실에서 이러면 이건 배우자를 의심하는 정신병인 의처증이나 의부증이라고 여길 것이다.
규칙 5번도 그냥 내 연락에는 가능하면 빨리 답해줘 라는 측면이 아닌 정말로 곧바로 답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말이 안 된다. 일단 업무상의 미팅이나 회의 같은 것들에 참여하는 시간이 있을 것이고, 전화기를 휴대하기 어려운 환경들도 있을 것이다.
규칙 6번은 좀 이해가 안 되는 규칙이다. 실시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왜 숫자를 찍어서 보내지? 차라리 영상통화를 하라는 것이 훨씬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영화에서도 실제로 이 규칙을 실천하는 장면은 더 나오지 않는다.
규칙 7번. 아! 나는 여기서부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전화기와 지갑을 놓고 씻으러 들어가면 전화기와 영수증을 뒤져본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다. 일단 영수증은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아직 결혼하기 전이고 동거 상태인데, 집은 여성의 소유이고, 남성은 공과금 등을 낸다. 생활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식사의 경우 외식은 남성이 내고, 집에서 먹는 경우 장을 보는 건 여성이 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왜 남성의 일상적인 지출을 감시하는 거지? 내 경우 결혼생활 내내 애들 엄마와 나는 각자 자기 수입으로 알아서 살았지만, 집안 살림을 위한 돈은 둘이 계속 의논하며 같이 부담했다. 서로 단 한번도 서로의 지출을 살펴보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뭐, 내 경우에는 뭔가 다른 곳에 쓸 수 있을만큼 돈을 벌지도 못했지만. 암튼, 그래 영수증은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전화기를 본다는 건 지금 현재 시대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영화 [완벽한 타인]이 떠오른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리메이크작 [완벽한 타인]을 먼저 보고 나중에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 [Perfetti sconosciuti]도 보았다. 친한 친구들 부부 동반 모임에서 장난으로 시작한 놀이, 전화로 연락 온 내용을 공유하는 놀이를 하고, 그로 인해 서로 큰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내용은 정말 그럴듯하고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고 실제로 어떤 모임에서 그렇게 해봤다는 증언도 들었었는데, 영화처럼 극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서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규칙 8번. 이건 2번과 마찬가지다. 다만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한다거나, 저녁마다 일정이 생긴다거나, 회식이 생긴다거나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규칙 9번. 뭐 청소는 매일 할 수 있다. 다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의 비중을 따져보면 길이가 짧은 남성에 비해 길이가 긴 여성의 비중이 클 수 밖에 없다. 머리카락을 길러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방에 내 머리카락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지고, 예전에 짧았던 시절에 비해 너무 눈에 잘 띄었다.
규칙 10번은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함께 잠을 잔다는 의미는 섹스를 하던 하지 않던 잠자는 시간 만은 서로 함께 한다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집에 와서도 밤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분명히 있고, 불면증 처럼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아무리 혼전순결을 이해하고 동의하고 실천한다고 해도, 성인 남녀가 한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섹스는 하지 않아도 안아줄 수는 있는 거 아닌가? 팔베게를 해준다거나, 영화에 나온 것처럼 옆구리에 손을 대는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지 않나?
자, 여기서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생각해보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고, 사랑하게 된 사람이고, 만약 여기서 헤어지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멋진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는데, 혹은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이런 조건을 요구한다면 과연 응할 것인가? 성별과 성향과 생활 방식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런데 대체로는 아무리 멋진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그만두지 않을까? 영화는 애초에 이 정도의 집착에 맞춰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감독이 집착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나게 집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작의 강박증이라는 증상에 대해 과장은 있다고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하는 개연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바이지아치가 남자에게 그렇게 심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바이지아치는 다만 남성과 본격 교제를 하기 전에 다음 내용들을 말한다. 혼전순결을 인정할 수 있는지 묻고, 본인은 채식을 한다고 알리고, 또 지병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심장 질환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영화 내내 그는 집에만 있고 거의 외출을 하지 않으며, 초반에 남자와 헌책 교환을 위해 만날 때에도 늘 택시를 타고 와서 책만 교환하고 바로 다시 택시를 타고 가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 그리고 본인이 조금 별난 구석이 있다고 표현한다. 이 별난 구석이 번역 자막의 표현이고, 원문인 중국어로는 어떤 표현인지, 어떤 뉘앙스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동거를 시작해 남자가 집에 들어온 첫날 남자가 외출복 차림으로 침대에 눕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고 심각해진 바이지아치가 남성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것이 자신이 별난 구석이 있다고 한 말 기억하느냐고 묻고는 위 규칙 10가지를 말한다. 이게 별난 구석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인가?
앞서 나는 바이지아치를 전반부 주인공으로, 헤이즈 요우리를 후반부 주인공이라고 표현했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하니 전반부와 후반부 이렇게 둘로 나눠서 주인공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중반부 주인공으로 린아이쉬안을 넣어야 할 것 같다. 린아이쉬안은 중반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동거를 시작하고 초반에 숨통을 조이는 규칙들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과정이 조금 나오다가 말고 갑자기 바이지아치의 비중은 확 줄어든다. 갑자기 린아이쉬안이 등장하면서 남자는 바이지아치를 속이고 몰래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만남 초반에 아이쉬안이 남자에게 학창시절 받았던 편지들을 보여주며 기억하냐고 묻는 장면 등 장난 섞인 밀당을 이어가는 과정은 괜찮았다. 그러나 갑자기 결혼을 앞둔 아이쉬안이 단지 권태기라는 이유만으로 오랜만에 만난 남자에게 갑자기 마음을 열고 급격하게 바람을 피우는 과정은 좀 납득하기 어렵다. 본인은 아주 오래 사귄 연인이 따로 있는데, 과거에 자신이 거절했던 남자에게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끌린다고? 이거 너무 손쉬운 전개이고, 너무 심각한 주인공 몰아주기 아닌가.
그리고 남자가 바이지아치에게 아이쉬안과의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려고 마음 먹고 아이쉬안과 둘만 소통하며 몰래 사용해온 전화기를 탁자에 두고 출근했다가 돌아온 다음에 갑자기 완변한 판타지로 장르가 바뀐다. 갑자기 남자와 함께 누운 여자의 등에 그러니까 오른쪽 어깨 뒤쪽에 토끼 문신이 보이고 남자는 자다가 깨서 토끼탈을 쓴 사람에게 불려가서 소원을 빌라고 강요당한다. 토끼탈은 탈을 벗어 보이더니, 소원을 빌었는지, 그게 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리볼버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남자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다음 순간 남자는 아침에 눈을 뜨는데, 바이지아치인줄 알았던 등을 돌린 채 잠들었던 여성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여성은 바로 자신이 동경하며 자주 방문했던 SNS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 헤이즈 요우리였다. 하, 여기쯤에서 이 영화가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수습할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수습을 하겠지 설마 수습을 안하지는 않겠지라고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여자친구와의 동거가 거의 감옥 수준이어서 그랬는지 이번에 남자는 혼자 살고 있었고, 여자친구인 요우리는 사소한 부분까지 자신을 잘 챙겨주는 엄청 자상한 사람이었다. 수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점심때 도시락을 일터로 갖다주고 물도 꼭 챙겨주며, 가끔 자신의 집에 들러 저녁을 냉장고에 챙겨 넣어주고 이불과 베개 등 침구를 정리해주는 등 모든 것들을 다 챙겨준다. 그러면서도 사진 작가로서 멋진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현실에서 여자친구였던 바이지아치는 자신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었는데, 이 헤이즈 요우리는 요염한 속옷을 입고 남자를 유혹하더니 육체 관계를 가진다. 그리고 나중에 요우리는 임신을 해서 남자와 함께 병원에서 초음파 영상을 보고 태아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듣는다.
여기까지는 다 잘 된 거처럼 보이는데, 여기에 반전이 등장한다. 알고보니 헤이즈 요우리는 남자의 집 곳곳에 특히 베게 속이나 침대 밑 등 수십개의 부적을 두었던 것. 매번 요우리가 침구를 정리했던 이유는 부적을 갈아넣기 위했던 것. 그리고 남자에게 주었던 물과 도시락 등에도 부적을 태운 재가 섞인 물을 부어서 주었던 것도 발견한다. 여기서 남자는 요우리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다시 바이지아치를 그리워한다. 우연히 자동차 매장에서 바이지아치가 다른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했지만,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자동차 판매원이었던 토끼탈과 단 둘이 만나 왜 네가 소원을 빌 수 있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영화 초반 바이지아치는 한가지 단순한 행동을 1백만번이던가? 그만큼 반복하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뽁뽁이를 터트리는 행위를 반복하는데, 늘 2~3천번 수준에서 숫자를 잊는다고 했었다. 바이지아치는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그리고 갑자기 만난 학창시절 알고 지냈던 여성과의 관계 등을 짐작하며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인지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가 며칠 후에 돌아오는데, 돌아온 날 남자가 남겨두고 간 전화기를 확인하고 이 관계가 이미 끝났다고 깨닫는다. 그는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뽁뽁이를 소원을 빌 수 있는 만큼 터뜨리고 토끼탈을 마주치자 소원을 빌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소원을 말한다. 즉, 남자가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바이지아치가 그걸 소원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던 것.
그리고 토끼탈은 다시 남자에게 리볼버 권총을 쏜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이번에는 등을 돌린 채 누운, 오른쪽 어깨 뒤에 토끼 문신이 있는 여성이 과연 누구일까? 남자가 손을 뻗자 여성이 그 손을 잡아 자신의 옆구리에 놓아두는데, 다음 순간 그 손을 더 당겨 자신의 배로 옮기고 그 배는 임신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여보세요? 여기서 영화가 끝나면 어쩌라는 거죠? 예? 대체 뭘 말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드신 건가요? 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에서 토끼를 가져온 것은 뭐 알겠는데, 토끼 문신은 뭘까? 영화 후반 남자의 집에 걸려 있어서 자주 보이던 웜홀이란 글씨가 적힌 포스터는 아마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영화 중반쯤에는 평행이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니, 마지막에 여성의 얼굴을 안 보여준 것은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에서 임신한 여성은 헤이즈 요우리 뿐이었으니, 그 사람일 확률이 제일 높겠지. 문제는 남자가 처음에도 그리고 두번째에도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왜 처음 소원을 빈 이후로 여성이 헤이즈 요우리로 바뀌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남자도 그를 보고 놀라는 장면을 보면 그가 바이지아치 대신 헤이즈 요우리랑 같이 살고 싶다거나 사귀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던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헤이즈 요우리가 왜 그렇게 무속에 빠져있는지, 왜 남자에게 그렇게 심하게 집착하는지 등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린아이쉬안은 헤이즈 요우리의 등장 이후로 아예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열린 결말이라고 포장하기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놓지 않았다. 이건 그냥 만들다가 말고 그냥 방치해놓고 열린 결말이야 하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앞부분과 중반까지는 꽤 괜찮았고, 후반부도 결말 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보고는 크게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남자가 세 명의 개성있는 그러나 집착이 강한 여성을 만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면 좀 다르게 풀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묻고 싶었던 것은 외모와 겉으로 보이는 측면에서 멋진 여성이라면 아니 성별을 떠나서 완벽한 이상형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사람인데, 강박과 집착이 심해도 만날 것인지 하는 질문일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선택은? 나는...... 어차피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 일테니까 그냥 상상해본다면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저 아름다운 세 여배우 중 한 명과 교제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받아들일 수 있지도 않을까. 어쩌면이니까 실제로 일어날 일은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