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드디어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10년 가량 활동가로 일했었고, 지금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총회를 마쳤다. 활동가로 일했던 약 10년 동안 12월부터 3월까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정말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다. 임원이 되고 난 후로는 내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스트레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중요한 책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그만둔 그 공백을 느낄 수 밖에 업었다. 잘난 척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잘 해왔던 어떤 지점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실무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그 요구를 무시했었다.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계속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긴 시간 내 삶을 바쳐 활동했던 조직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긴 시간 이 조직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에 뭐든 잘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남는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힘들다. 여기서 또 한 번 나이를 깨닫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나를 원하는 곳들이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일을 잘 한다는 자부심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 나이를 감안하고 불러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실무 책임자도 나보다 한참 어릴 것이다. 중간 간부나 실무 책임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채용한다는 선택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


총회 1부 진행을 맡아 대본을 수정하면서 3월 14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찾아봤다. 일본이 만들어낸, 아니 일본의 제과업계에서 만든 화이트 데이 라는 단어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날이라 무시했다. 검색해보니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의 날이라고 기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이 일어난 날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여러 역사 기록들이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칼 맑스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암튼 앞으로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 파이의 날이나 칼 맑스의 기일로 기억해야겠다.


15주년


3.11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15주년이 지났다. 평일이었는데 광화문 인근에서 전국단위 행사가 있었고, 인간 띠 잇기 행사도 있었다. 나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나가지 못했다. 매년 이 맘때 반복하는 말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은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15년이나 지났으니, 후쿠시마 핵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중에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는 폭파된 건물을 약 6개월만에 콘크리트로 덮었고, 콘크리트의 수명 약 30년이 지날 즈음에는 더 확실하게 방사능을 막을 수 있는 소재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덮어 씌웠다. 그래서 실제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 기간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발전소 하나만 폭발했고, 그 용량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발전소 한 기당 용량도 체르노빌에 비해 훨씬 크고 무려 4기가 폭발했다. 그 4기는 모두 설계 수명이 끝나서 폐쇄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명을 연정하여 운영한 발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 폭발이 일어난 1호기에서부터 4호기까지 4기의 발전소와 달리 같은 위치에 있었던 5호기와 6호기는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핵발전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내구도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매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재 인류는 핵발전 이라는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폐기물인 핵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콘크리트 내구 연한)이 끝난 발전소를 폐기하는 기술도 불완전하다. 더욱이 후쿠시마와 같이 좁은 지역에 4기나 되는 고용량의 발전소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유출된 경우 폭발한 발전소의 건물을 덮거나 멜트다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핵연료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기의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난 상태 그대로, 쉽게 말해서 뚜껑조차 덮지 못한 상태로 매 순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냉각수가 그대로 방사능 오염수로 변해 매일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 방사능 핵종의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그냥 방류하고 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넓고 깊어도 매일 버리는 방사능 오염수가 몇 십년 이상 쌓여도 안전할까?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다고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처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51년이 되면 데브리를 수습하고 폐로 처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꽤 높은 확률로 불가능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거짓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아직 공정률 약 30%에도 못 미쳤던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공론화를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며 국민들을 배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러고도 본인은 탈핵(핵발전 산업을 그만둔다는 입장)을 선언했는데, 정작 핵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동의 없이 추행은 저질렀지만 성범죄는 아니다? 이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인간이 버젓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래, 어쨌든 탈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탈핵이라고 떠들었던 문재인과 달리 이재명은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이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해도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 따위, 국민의 건강 따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이다. 이재명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개 돼지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개와 돼지에게 미안해서 금수라고 썼는데, 그러면 오히려 모든 생명에게 미안한 일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씀)  




나이 듦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김없이 "도인"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긴 흰 머리에 흰 수염. 간달프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간달프 만큼 멋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간달프만큼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도인이란 단어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일텐데, 단 하루도 도를 닦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도인에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라고 본다. 감히 도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평범한 범인에게 도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걸 또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는 참 쉽지 않다. 또 다른 반응은 "예술하는 사람" 혹은 "예술가"다. 음, 예술가의 정의는 뭘까? 아니 예술의 정의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남들보다 조금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가 깨달았다. 음악도 딱히 잘했던 적은 없었다. 락 음악을 좋아했고, 멋있어 보여서 기타를 혼자 배우기는 했지만, 농활 갔다가 손가락을 다친 후로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악기는 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한 오륙년 전에 두성을 배워서 노래는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할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평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예술가라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단 하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쩌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그냥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는, 아무 의미 없는 잡글에 불과하다. 역시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겠다.  


그냥 나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과 달리 조금 독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해도,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고,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굳이 일부러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책 구매
















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소설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팔았던 기억도 없고 버린 기억도 없었다.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오래 전 책을 읽었던 당시에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한 강양구 기자가 원망스러웠다. 중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결말은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알림 등록을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제 한창 바쁠 시간에 알라딘 중고 매장 중 한 곳에 이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은 사야 한다는 생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도 배송비가 아까워서 해당 중고매장에서 책 두 권을 더 담은 후에야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지. 얼른 와라. 이렇게 책을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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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웃

2월과 3월은 총회 시즌이다.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많고 그 중에 일부에서는 운영위원 등 역할을 맡고 있어서 총회 준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몇몇 협동조합에서는 이사와 감사 등을 맡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사를 맡고 있는 조합 두 곳에서는 올해 총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는 모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이지만,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이런 일들로 많이 바빴다. 하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총회 준비 일을 했다. 저녁에 또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간단히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했다. 새벽까지 일을 해도 맡은 일들을 다 끝낼 수가 없었다. 잠시, 아마 한 사십분 가량 졸다가 깼다. 의자를 여러개 붙여서 잠시 누웠는데 막상 누으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한동안 조용한 음악을 켜둔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좀 쉬다가 다시 일을 했다. 아침이 된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공동 사무실을 함께 쓰는 분이 출근하셨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세수도 하고 이를 닦았다. 다시 일에 몰두해 점심 무렵에야 급한 일 두 건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날 저녁에 또 회의가 있어서 고민했다. 집으로 가서 서너시간 쉬다가 돌아올까?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어차피 할일은 남아 있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운동을 하고 씻고 올까? 집에 일단 가면 피곤하니까 다시 나오기 싫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누워있다 나와야지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려서, 회의 시간까지 깨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선택지에서 지웠다. 운동도 몸을 쉬어주지 못해서 오히려 이런 날에 무리하면 다칠 것 같았다. 역시 삭제. 그냥 좀 쉬엄쉬엄 일을 하며 저녁까지 버텨야지 싶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한 십여년 전에는 며칠 연속 밤을 새워 일을 해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일 동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씩만 쪽잠을 자고 일을 했던 일이다.

평소에도 밤에 일을 해야 집중이 잘 되어서 낮엔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를 다니고 밤에 문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잠을 못 자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이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예전에는 밤샘을 하면 집중력이 좀 떨어져도 몸의 피로는 좀 덜 느꼈는데, 요즘은 집중력은 오히려 괜찮은데, 몸의 피로를 확실히 느낀다. 암튼 너무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허리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무선 이어폰을 챙겨 외투를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몇 군데 업무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그 통화들을 몰아서 하면서 주변을 걸었다. 봄이지만 꽃샘추위는 여전해서 제법 쌀쌀했다. 무선 이어폰 덕분에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서너명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를 하면서 골목길들을 돌아다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동료 활동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얻어 먹으러 갔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컵라면 하나를 먹은 후로 첫 끼니였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밥을 먹고 돌아와 일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회의 시간이 다 되었다. 회의는 길었다. 다뤄야 할 건은 많고 합의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지쳤다. 나는 그때 이미 출근한지 36시간이 지나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집중력을 모두 짜내어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음식을 사러 나갔다. 공식 회의 자리에서는 차마 나누지 못했던 날선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래서 뒤풀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의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뒤풀이도 늦게 끝났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이었다. 남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가고 누군가가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눌 말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왜 내 몸은 하나 밖에 없을까? 내 몸을 복제해서 하나 더 만들어 일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에게 하루 종일 일을 시켜서 서너명이 할 일을 커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쎄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아직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일을 잘 해도 혼자 완결지을 수 없다고 본다. 나도 이번에 많은 일을 맡아서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써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봐야 했다. 내 기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설프게 만든 문서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빈 문서를 하나하나 채우는 것이 더 낫다 싶었다.

암튼 나를 붙잡았던 동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48시간은 아니었고, 출근한지 한 44시간 정도 후에 퇴근이었다.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작은 종이 가방이 놓여있었고, 꽃 한송이와 떡 한 팩 그리고 작은 쪽지가 있었다. 뭐지? 이건 누가 보낸 걸까? 나에게 꽃을 보낼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건 아마 튤립인가? 꽃에 문외한이라 뭔지 알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와서 쪽지를 열어봤다. 이번에 이 낡은 빌라 4층에 새로 이사온 이웃이라 적혀있었다. 그래서 떡을 돌린 거구나 하고 이해했는데, 그런데 꽃은 왜? 이 빌라가 워낙 낡아서 이번에 그 집이 내부 수리를 좀 오래 했던 것 같다. 공사 소음이 꽤 오래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떡을 돌린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꽃은 왜 돌렸을까?

어쨌거나 정성이 대단한 이웃이라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이웃이랑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시대에 떡과 함께 꽃을 돌리다니. 나는 이 집에 이사온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얼굴을 아는 곳이 아랫집 밖에 없다. 이삼년 전에 두 번이나 누수 문제가 생겨서 자주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윗집과도 누수 문제로 소통했었는데, 그 집은 이후에 이사 나가고 새 이웃이 들어왔는데, 이 분들과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옆집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어르신 부부이고, 늘 함께 지내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자식들이 오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가며 얼굴을 마주쳐서 인사는 나눴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서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안그래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이 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이번에 떡과 꽃을 돌린 이웃과 인사를 나눌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사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교롭게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꽃을 받았다. 하나는 작은 아이가 줬다. 2월 초 내 생일에 주려고 직접 만든 꽃이었다. 이 재료들을 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지만, 털실과 철사 등을 활용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받은 조화는 지금 사무실에 놓아뒀다. 이번에 받은 생화는 현관에 놓아뒀다. 덕분에 한동안 사무실을 오가며 선물 받은 꽃들을 보게 되겠네. 피곤하고 힘든 날 꽃 한 송이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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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0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떡을 돌리시는 이웃이 계시는군요. 저 인간의 마음을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다니요....
삼월에 읽는 봄볕 같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감은빛 2026-03-15 13: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떡을 먹었습니다.
꽃은 현관 앞에 두고 매일 오가며 한 번씩 보고 있어요.

잉크냄새님의 댓글이 마치 한 편의 시 같네요.
고맙습니다!
 

어떤 실험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한동안 놓쳤던 에너지 관련 소식들을 잔뜩 긁어 모았다. 트위터는 초반에 잠시 쓰다가 그만뒀고, 인스타그램도 아주 가끔 달리기 기록이나 운동 기록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고 있다. 스레드는 달리기 관련 소식들을 접하기 위한 용도로 아주 가끔 접속한다. 페이스북은 아주 오래전에는 가끔 일상 기록이나 생각 등을 올렸지만, 한 10년 가까이 개인 이야기를 올리지는 않고 있다. 활동 내용 공유만 가끔 하고, 에너지 관련 뉴스들을 공유하는 정도.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지도 않으면서 끊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팔로우 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전문가들 때문이다. 이 분들이 종종 공유하는 여러 소식들. 본인이 쓴 칼럼들 등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고, 내가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이 분들을 통해 주요 뉴스들을 접할 수 있다.


오늘은 어쩌다 정치인 박지현 씨의 페이스북을 보게 되었다. 2월 25일에 올린 게시물이던데, 아주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밝혀 놓았더라. 그는 이 게시물을 쓰기 며칠 전에 자신의 사진(게시물 상의 표현으로는 자신으로 보이는 사진) 2장을 올리고 이 사진들이 AI 작업물로 보이는지, 실제 자신의 사진으로 보이는지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었다. 이 게시물을 먼저 읽고 나서 해당 사진을 찾아보니 댓글이 50개나 달렸더라. 그는 절반 이상이 AI 가 '아닐 것' 이란 댓글이었다고 결과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럼 그 사진 두 장은 다수의 댓글이 추정한 것처럼 AI 작업물이 아닌 실제 사진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 3장을 넣고 2,400원을 결제한 후 십여분만에 열 장의 사진을 얻었고, 그 중 자신의 평소 스타일과 가장 유사한 사진 두 장을 공유했다고 적었다. 그가 결과를 밝힌 것처럼 자신을 실제로 아는 사람들, 자신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사진을 실제 자신의 사진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실제 사진이어도 어차피 보정은 들어가지 않느냐”는 댓글도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예 카메라 어플이 아예 보정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젠 그냥 사진을 찍어도 내 모습이 아니라 보정된 가상의 나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박지현 씨는 보정된 결과물이라도 실제 나를 찍은 것이라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것과는 다르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이렇게 흥미로운 실험을 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인공지능으로 인물 사진들을 만들어 내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최근 정치인들이 설 명절에 한복 입은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올린 경우를 예로 들며 이렇게 손쉽게 존재하지 않는 사진을 만들어 공유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만약 누군가가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면 스튜디오 대여 비용부터 메이크업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바디 프로필을 찍을 만한 몸매를 만드는 비용도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사진을 넣고 만들어 달라고 한다면 박지현 씨가 지불한 2,4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인물 사진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딥페이크 음란물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사진을 이용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사진을 인공지능에게 넣는 것은 어떤가? 그 당사자는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사용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실제 사진인지, 만들어 낸 가상의 결과물인지 알지 못한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알라딘 연간 통계


해마다 1월에는 알라딘 서재 연간 통계를 살펴봤었다. 1년 동안 내가 쓴 글이 몇 개인지 그리고 글자수로 따지면 몇 자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내가 작년에 글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년 2025년에는 과연 글을 몇 개사 썼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더니 25년 통계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더라. 작년 1월에 확인했던 24년 통계가 여전히 나를 반겼다. 음, 알라딘이 이제 서재 관리를 안 하는 증거가 되려나?


궁금해서 알라딘이 언제부터 연간 통계를 내기 시작했는지 살펴봤더니 2011년 부터였다. 그래서 알라딘이 집계해 준 기록들을 긁어 모았다. 그리고 작년에 쓴 글은 직접 세었다. 57개였다. 24년에는 24개 밖에 안 썼던데, 그에 비하면 많이 썼구나. 2011년 이전에는 어땠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썼던 건 2004년이었던데, 그 해에 7개의 글을 쓴 후로 몇 년 동안 글을 안 썼더라.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쓴 글도 직접 세었다. 가장 많은 글을 쓴 해는 2011년이었고, 78개를 썼었다. 그 다음이 12년으로 63개, 그 다음이 작년인 25년이었다. 가장 적은 글을 쓴 해는 2009년으로 5개 밖에 안 썼더라. 그 이후로는 적어도 20개 이상은 썼더라. 아, 2020년에 17개가 두 번째로 적은 해였네. 이왕 조사한 김에 엑셀로 표를 만들어봤다. 글을 거의 쓰지도 않았으면서 부끄럽게 뭐 이런 걸 공유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기록이라서 올려본다. 알라딘이 25년 통계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일은


평소에는 가요를 거의 듣지 않지만, 아주 가끔 슬픈 노래들을 찾아 듣는다. 가요를 크게 둘로 나눈다면 내가 부를 수 있는 노래와 부를 수 없는 노래로 나눌 수 있다. 남성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은 대체로 부를 수 있다. 취향이 아니라 부르지 않는 노래가 많기는 하지만 랩이 들어가는 노래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여성 가수들의 노래들은 음역대가 달라서 부르기 어렵다. 음을 낮춰 불러도 어려운 곡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부를 수 없는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박화요비의 [그런 일은] 이 떠오른다. 이 노래가 나온 시기에는 정말 영미권 팝송만 들었고, 가요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는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이 노래였다. 박화요비 라는 가수가 참 매력적이라 느꼈던 것은 그가 부른 [wild flower] 를 들었을 때였다. 컬러 미 배드가 부른 곡을 참 좋아했었는데, 박화요비의 곡도 참 좋았다. 박화요비가 부른 노래 중에 이 [wild flower] 와 [careless whisper]를 참 좋아했는데, 그 다음으로 좋아한 노래가 [그런 일은]이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 듣는데, 다른 가수들의 커버곡들이 보이길래 하나씩 찾아 듣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정유진 이란 가수의 곡이었다. 영상의 설명을 보니 디아크 라는 그룹의 메인보컬이었다고 한다. 목소리도 아주 좋고, 감성도 좋았다. 그리고 깨끗하게 올라가는 고음도 인상적이었다. 이 어려운 노래를 이 정도로 부르는 걸 보니 정말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거리에서 찍은 영상이라서 더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웬디 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메인보컬인 것 같다. 와! 이 분도 노래를 정말 잘 하더라. 정유진도 엄청난 노래 실력이라 느꼈는데, 웬디는 그를 훌쩍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량도 더 좋고 곡에 대한 해석도 더 좋았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래포구 포장마차에서 회와 소주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던데 야외에서 이렇게 라이브를 잘 하다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세번째는 닝닝이라는 가수였다. 에스파 멤버라고 한다. 아마도 중국인인 것 같은데, 한국어 발음이 거의 완벽해서 놀랐다. 확실히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앞서 본 정유진과 웬디가 워낙 잘해서 이 두 사람 보다 먼저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네번째는 박혜원이었다. 이 영상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 박화요비 노래를 아무나 시도할 수 없을텐데 라고살짝 걱정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후반부의 고음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곡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다섯번째는 미연이라는 가수였다. 이 분도 어느 유명한 그룹의 보컬이었는데, 예전에 어느 예능에 나왔던 걸 본 기억도 있는데.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귀찮다. 음색은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후반부 고음은 아주 많이 아쉬웠다. 원곡보다 키를 낮췄음에도 고음을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솔지라는 가수의 곡을 들었다. 와! 음색도 감성도 그리고 곡의 해석도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6명의 가수가 부른 [그런 일은]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어려운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모두 다 나름의 좋은 점들이 있어서 하나의 리스트로 만들어 두고 가끔 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웬디 버전이 가장 좋았고, 솔지 버전이 그 다음, 세 번째는 정유진이었다. 이 세 사람의 노래들을 한번씩 더 듣고 원곡인 박화요비의 곡을 찾아 들었다. 아, 박화요비의 목소리를 딱 듣는 순간 앞서 들었던 노래들은 그냥 다 의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원곡의 감성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애써 만들어 놓은 새 리스트를 들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읽고 있는 책들  


이상은 늘 자본에 저항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자본에 종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자본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많이 했었다. 하지만 급여를 받는 은행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대안 은행이라는 개념을 10여년 전에 접했을 때에도 대출에 대해서만 생각했었고, 돈을 보관하는 곳으로서 대안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시도가 있었더라. 빈고라는 협동조합은 그 역사도 무척 오래되었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다. 2년 전에 조합원으로 가입했지만, 특별히 활동을 하지는 못했었는데, 작년에 [자본의 바깥] 책 출간 소식을 접한 후로 여기서도 뭔가 활동을 좀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을 통해 용산 해방촌 빈집 이라는 독특한 운동에서 시작한 '빈마을 금고'가 빈고의 원래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얼른 읽고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꼼꼼하게 읽어야겠다.


2월 중순에 참여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대의원 총회에서는 [나이 들고 싶은 동네]라는 책을 받았다. 우리 주치의인 무영 님과 활동가 어라 님이 함께 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미처 찾아볼 여유 없이 시간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쓱 살펴보니 대체로 내가 알고 있던 동네 이야기였다. 그래도 책으로 다시 읽으니 다 알던 이야기도 새롭게 느껴졌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이제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새삼스럽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야금야금 조금씩 익히다보니 한자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는 어렸을 때 한자를 외우지 않았을까? 왜 대학 시절에 한자로 된 전공책들을 읽으면서도 한자를 외울 생각을 못 했을까? 나이 들어서 뒤늦게 한자를 익히려고 하니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무턱대고 그냥 한자를 외우려니 너무 재미가 없었다. 한자를 좀 더 재미있게 익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때, 누군가 공유한 한시를 읽었다. 아! 한시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한자를 익히는 재미가 생길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한시를 읽는 것과 한자 익히는 재미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단 시를 좀 더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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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6-03-06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정말 공감합니다. 일본어든 중국어든 중급 이상 올라가려면 한자 실력이 바탕이 되야 하는 것 같아요. 매번 봐도 헷갈리는 글자들이 있더라구요. 저는 아주 쉬운 어린이나 청소년용 책을 읽거나 아니면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으면 읽는 속도는 더뎌도 재미를 조금씩 붙일 수 있더라구요. 한시도 참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6-03-15 13:40   좋아요 0 | URL
거리의 화가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책에 한자 적어두신 사진 봤어요. 멋집니다!

말씀하신 방법들을 저도 해볼게요.
저는 주로 앱으로 중국어와 일본어를 익히고 있는데,
아주 쉬운 수준의 글을 반복해서 읽고 있기는 합니다.

한시는 아주 조금씩 아껴 보고 있어요.

잉크냄새 2026-03-10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에서 중국어가 가능한 동양인과 서양인을 만나 보면 가장 큰 차이가 한자인 것 같아요. 동양인은 쓴다는 느낌인데 서양인은 그린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중국어가 미흡하던 시절 서양인과 필담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획의 순서와 상관없이 그리는 한자를 보며 학창 시절 연습장에 그려보던 알파벳이 떠오르더군요.

감은빛 2026-03-15 13:45   좋아요 0 | URL
힌디어와 아랍어를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다가 문자를 써보는 단계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저에게는 그냥 그림이더라구요. 그림을 문자로 익히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자는 획순을 따라야 하는 것이 또 어려운 지점이라 생각해요. 어렸을 때도 그래서 한자 공부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 한자를 쓸 때 획순이 헷갈려서 틀리곤 합니다.

중국어를 잘 하시는, 그리고 아마도 영어도 제법 잘 하시는(하실 것으로 보이는) 잉크냄새님 부럽습니다!
 

오늘 글 쓰기


3월 초에는 서재에 글을 쓰지 않은 날이 모여있는 것 같다. 엊그제 삼일절 아침에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슨 글을 쓸 것인가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가장 손 쉬운 방법으로 예전에 쓰던 글들 목록을 검토했다. 쓰다가 중간에 그만둔 글들은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인 글도 있지만, 더 조사나 내용 보완이 필요한 것도 있고, 쓰다가 자꾸 엉뚱한 내용으로 빠져서 중간에 그만둔 것들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쓰다가 멈춘 것을 다시 쓰려고 하면 처음 그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날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볍게 고쳐 쓸 수 있는 글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뭐든 새 글을 써야 했다.


마침 당일이 삼일절이었다. 예전에 친일 문제와 독립운동에 대해 누군가와 오랫동안 진지하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아침에 접했던 뉴스들이 생각났다. 이란의 독재자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보복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뉴스도 접하고 영어에도 익숙해지려고 가끔 BBC 뉴스를 본다. 마침 트럼프의 입장을 전하는 BBC 뉴스 클립이 있어서 클릭했다. 처음에는 앵커와 리포터가 상황을 요약해 전했는데, 중간 이후부터 트럼프가 떠드는 영상으로 넘어갔다. 아, 너무 듣기 싫은 목소리와 꼴 보기 싫은 얼굴이라 바로 꺼버리고 싶었지만, 뭐라 떠드는 지 궁금해서 잠시 살펴봤다. 대통령 꼴을 보기 싫어서 뉴스를 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이명박 시절 부터다. 이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거치며 뉴스를 멀리하고 살았다. 물론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뉴스를 안 보고 살 수는 없다. 뉴스를 보기는 하되, 대통령이 직접 나오는 장면은 가급적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 글을 쓰면서 최근 약 6개월 가량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는 갈등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까?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필요하다. 의견을 나누는 것은 서로를 비난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은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 조금씩 입장을 좁혀가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대개 본인 주장만 계속 반복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그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라고 매 순간 옳은 주장만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나도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썩 좋지 않은 의견을 낼 수 있다. 가끔은 실수로 오판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의견을 나누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각자 다른 의견들이 조금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꼭 등장하는 빌런들. 절대 자신의 의견을 굽히려 하지 않고, 거의 무한 반복 같은 이야기만 떠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점심 무렵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쓴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글을 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뭐 내가 매번 글이 없는 날에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아니라서 무리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까 저녁에 예정된 회의가 예상보다 아주 일찍 끝났다. 그리고 이후에 만날 사람은 다른 회의가 있었다. 나도 어차피 그 시간 동안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시간에 마칠 것이라 예상했었던 거다. 그가 회의에 참여할 동안 나는 시간이 비었다. 서둘러 노트북을 열어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빈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쳐다봤다. 음, 뭘 쓸까? 일단 제목부터 쓰자. '오늘은 짧게' 라고 쓰고 정말 짧은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일단 어쨌든 두드리기 시작하자. 두드리다 보면 뭐든 내용이 나오겠지.


브런치


최근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라는 틀이 있다고 알게 된 후 언젠가 여기 글을 써보자 하고 생각한 지 약 2년 정도가 지났다. 작년 가을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여기다 써볼까 고민했다. 알라딘 서재는 처음에 책 이야기를 중심을 글을 썼다. 그 당시에는 일상 이야기를 쓰는 다른 블로그가 있었다. 일상 이야기를 쓰던 블로그가 문을 닫은 후에 한동안 어디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알라딘 서재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책 이야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고, 갑자기 쓰려니 글 쓰기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알라딘 서재는 어떻게든 다시 이용하고 싶었다. 


브런치는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연재하듯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내가 꾸준히 정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분야가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 이야기는 꾸준히 쓸 수 있겠지만, 이건 애초에 알라딘에 쓸 주제이다. 일상 이야기도 가능한데, 일기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써야겠다. 가능하면 사회 현상과 연결해서. 원작이 있다면 원작과 비교해도 좋고, 같은 주제의 영상물이 여럿이라면 서로 연결해서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에 본격 글을 쓰기 전에 여기 서재에 두어 번 연습하듯 글을 썼었다. 작년 말부터 썼던 몇 개의 영화 혹은 드라마 이야기들이 그 연습이었다.


이제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야지. 요즘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떤 영화로 어떤 주제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늘 느끼지만,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힘든 일이다. 매번 잘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모르는 해법 같은 것은 없다. 그저 계속 읽고 쓰기를 반복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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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04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런치 드시러 가시더라도 알라딘에도 꾸준히 남겨주세요. ㅎㅎ

감은빛 2026-03-06 08:0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현실의 브런치가 그렇듯 온라인의 브런치도 생각보다 뭐가 없더라구요. 직접 겪어보니 깨닫게 됩니다. 브런치에 힘을 많이 빼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처럼 알라딘과 브런치에 같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서 영화 관련 글은 이제 거기에만 쓸 생각입니다. 알라딘에는 계속 쓰던 글을 쓸게요. 언제나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삼일절의 첫 뉴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독재자가 죽었다는 내용이었고, 이어서 이란의 반격으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화면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이 고귀한 일을 했다고 떠벌리고 있었다. 저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겠지. 애초에 대통령에 당선될 정도로 지지자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것이겠지. 누군가는 독재자를 죽이고 이란 국민들을 구한 것이니 잘한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억압받는 이란 국민들이 직접 혁명을 일으킨 결과라면 무조건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코 이란 국민들을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공습으로 독재자와 그 부하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도 폭탄이 떨어져 무고한 학생들도 죽었다. 트럼프의 이 공격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저지른 것이다.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뉴스를 보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시키고 다시 선거를 했는데, 자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고도 했다. 그 전까지 여당인 자민당이 소수이고, 야당 연합이 다수였던 상황이 다카이치와 자민당에게 유리하게 바뀐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손쉽게 야당 연합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이유로 꼽는 의견이 더 많다. 일본의 평화 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표적인 정책이다. 일본 국민들은 과연 전쟁을 원하는 걸까? 다시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으며 대일본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비록 지금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윤석열이 처음 등장해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으며,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까지 되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나 다카이치의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중국의 시진핑이 이렇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모습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국민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걸까? 왜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정에는 관심 없는 멍청한 지도자를 선택했던 걸까?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현재 트럼프 정권에서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집행에 반발하는 시위가 많은 지역으로 번졌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푸틴과 시진핑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초기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겠지만, 일본에도 다카이치와 자민당에 맞서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이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행위와 선택의 결과이다.

오래전에 누군가와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손쉽게 친일파를 비판하면 안 된다며, 만약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친일 행위를 할 거라고 했다. 누구나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고, 잘 살기 위해 친일 행위를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친일 행위에도 수위와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일본제국의 이익에 도움을 주면서, 우리 국민들을 탄압하고 생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다. 즉, 우리 국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수많은 선조들이 만주와 간도로 넘어갔던 이유는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리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버리고 척박한 땅을 찾아가는 선택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범죄다. 만약 법으로 범죄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저지르면 안 되는 것이다. 인륜이나 도덕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더라도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다. 그걸 비난할 수 없다고 누구나 그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친일 행위를 했을 거라고 말하는 건 그 인간이 딱 그 정도로 자신만 아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활동했다는 사실만 봐도 어불성설임이 당연하다. 비록 살아남기 위해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이 부당하게 이 나라를 삼킨 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날이 바로 오늘 삼일절이다. 우리가 이미 다 배웠듯이 삼일만세운동은 겨우 하루 있었던 것이 아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탑골공원 인근에 있던 사람들만 참여한 국지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전국으로 그리고 해외로 확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전 국민의 저항이었다.

오늘 삼일절을 맞아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비록 내란을 저지른 세력들이 구속당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빨간당은 그들을 옹호하고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독재 지지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마 많이 겹쳐지겠지만,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인간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을 숭배하는 인간들도 많다. 심지어 학살자 전두환을 옹호하고 노태우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인간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 지지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걸로 착시를 불러 일으켰던 사람들은 과연 괜찮았을까? 노무현은 김선일 씨 납치 사망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전쟁에 참여하는 파병을 강행했다.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가 저지른 노동자 탄압과 환경 파괴를 생각하면 절대 존경한다 말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문재인은 어떤가? 우유부단이라는 단어를 인간으로 만들면 그라고 불릴 정도로 국정운영을 엉망으로 했고, 박근혜를 몰아냈던 촛불의 의지를 모조리 배신했던 인간, 수많은 시민들이 외쳤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팽개쳐버린 인간이었다. 지금 민주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윤석열을 욕하지만, 결국 윤석열을 만든 것은 문재인이었다. 과연 지금 이재명은 어떨까?

누구든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외에 다른 것들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일부러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이렇게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누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내 주위에는 빨간당 지지자도 없지만, 파란당 지지자도 많지 않다. 특히 이재명 집권 이후로 일부러 민주당 지지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에 빌붙어서 의석을 얻은 기본소득당과 진보당도 민주당만큼 싫어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늘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아니 내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데, 결국 나중에 이렇게 많은 표를 얻는 것을 보면 이상할 수 밖에.

내가 빨간당보다 파란당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중성과 거짓말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당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여러 파벌이 있고, 다른 의견들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 정당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당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필연적으로 노동자인 국민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코 진보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아주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럼에도 늘 국민들에게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마치 국민들을 위하는 척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접하기 위해서이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한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현황을 다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누군가 제시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결국은 어떤 틀에, 그가 속해있는 상황의 한계 안에 갇혀있을 확률이 높다. 그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늘 다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단 먼저 의심하고 깨어있으려고 애쓰는 삶은 피곤하고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갇혀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언제나 그 틀을 벗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집단이나 세력이 언제나 같다고 느껴진다면 한번쯤 의심해보고 다른 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항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건 선택이니 타인이 참견할 수 없는 영역일 수 있다. 지금 보면 정치도 종교에 가깝다. 사람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 없이 그저 당의 색깔만 보고 무조건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보다 더 굳건해 보인다.

작년 가을부터 여러 갈등 상황에 긴 시간 시달리고 있다. 사람은 참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하지만 바뀌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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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01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럼프의 이번 폭격은 올 중간선거시 지지층의 결집을 위해서 한 행동이지만 이란 독재자의 죽음을 보고 이란국민들이 춤추고 노래했다는 뉴스를 보고 트럼프의 입장예서 그나마 폭격의 정당성을 건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은빛 2026-03-06 07:5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요. 아무리 손바닥으로 달을 가려도 그 이면을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겠지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을 생각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잉크냄새 2026-03-01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친일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변호하고 미래의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행위라 생각해요.

감은빛 2026-03-06 07:55   좋아요 0 | URL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당시엔 어느 지역 고위공직자의 자녀라 딱히 본인의 역할은 없는 젊은 시절이었었어요. 그 당시에도 화가 났던 건, 이런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요한 직책을 맡아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이 나라는 참 쉽지 않네요.

cyrus 2026-03-02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꺼번에 나올수록 마음 단단히 잡아야겠어요. 자신과 다른 생각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맞다면서 기고만장할 것이고, 이를 악용해서 거짓 뉴스와 음모론을 퍼 나르는 선동꾼들이 판을 칠 거예요. 일단 나 자신이라도 한계와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면서 올바르게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공부해야겠어요. 최근 밀의 <자유론>을 다시 읽으면서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다른 생각은 솔직히 거부감은 느끼지만, 그래도 제대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마주 봐야겠어요.

감은빛 2026-03-06 07:5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알라딘 서재에서 10년 이상 글로 소통하며 다양한 대화를 나눠서 오히려 현실에서 만난 인연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루스님께서 쓴 글을 읽으며 늘 제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요. 올해도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