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에, 2026년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신을 믿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진이 사납다는 미신을 믿어? 오늘 유난히 운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믿어? 이 21세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집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라면을 먹고 출근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건 굳이 밥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출근 전에 밥을 안 먹으면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꼭 출근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생각했었다. 출근하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샀다. 그리고 출근해서 차 키를 받아들고 차에 탔다.

내가 가야할 곳은 매장 세 곳이다. 세 매장에서 각각 몇 건의 배송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두 건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예닐곱 건이 있기도 한다. 평균적으로는 매장마다 서너건 수준이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세 곳의 매장을 단순히 돌기만 해도 1시간 반은 훨씬 넘는다. 각 매장마다 배송건이 적어도 두세 건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일을 하고 있다.

첫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대개 차량이 많아서 막힌다. 거기서 김밥을 먹었다. 평소였다면, 굳이 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싶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어차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입장에서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첫번째 매장 바로 앞에서 주차를 하는데 갑자기 시야 바깥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나는 후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놀랐던 나는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피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야 밖에서 갑자기 끼어들듯이 나타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떠나갔다. 오늘 좀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순간에 처음 했다. 어쨌거나 사고가 나면 무조건 내 손해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두번째 매장에 들렀다가 배송을 간 곳은 아는 사람 집이었다. 친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겠지만, 긴 시간 활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특정 시점에는 친했던, 그리고 여전히 중장기적 관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활동가였다.

이 대목에서 한 편으로 위화감이 생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잘 알고 지냈던, 꼭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던 몇몇 활동가들이 아파트로 이주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로제라는 가수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불러 유명해진 아파트 라는 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위화감은 두 가지 측면이다. 일단 하나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생계 유지조차 어려워 헐떡이는 시대에 같은 활동가라고 생각했던 누군가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는 부분이다.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한편으로 지금 시기가 더욱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에 더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 일을 마치고 잠시 마주쳤던 한 선배는 그 자신과 나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살았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다같이 고민해보자는 말을 했다. 글쎄, 이게 고민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리라.

아, 오늘 하마터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칠 뻔하고(물론 실제로는 좀 더 여유가 있었고, 그도 별 불만없이 돌아갔지만),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잠시 주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쓰려고 했는데, 다 의미없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이 생활도 유지가 될테니. 다른 활동가에 대한 배신감은 사실 의미없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을테니.

고속철도 폭탄 설치 영화 두 편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썼다. 한 편은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이고 다른 한 편은 대만 영화 [96분]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두 영화를 봤던 것은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다. 올해 2월쯤 이 둘을 엮어서 글을 써야지 생각이 들어서 각각 영화를 다시 봤다. 그런데 하필 그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지나쳐버렸다. 다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제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에 완성했다. 평소 내 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지만, 더 제대로 손 댈 시간이 없을 거라고 본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싶은 분을 위한 브런치 글 링크
https://brunch.co.kr/@cb83c338001e498/8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 뭐 하나 좋은 소식 따위 없는 지루한 일상,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살아도 다 거기서 거기인 삷을 살 뿐인 가련한 인간에게 바친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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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어제 하루종일 정부에서 발송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말로 한 번, 영문으로 한 번. 여러차례 왔는데 계속 같은 내용이었다. 낮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광화문에 가지 마라는 내용 같았다. 저녁에 총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왔다.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한 무리의 연예인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세상의 전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통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 옛날에 뉴키즈온더블럭이 우리나라 왔을 때에도 난리라 났었다고 했던가? 압사 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약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 이태원 참사 같은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광화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역할

2월과 3월에는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총회 시즌이라 엄청 바쁘다는 얘길 계속 썼는데, 어제는 내가 회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시민단체 한 곳과 감사를 맡고 있는 협동조합 한 곳의 총회가 겹쳤다. 시민단체에는 미안하지만, 감사로서 협동조합 총회에 빠질 수가 없었다.

여기 조합에서는 거의 매번 서기를 맡아 의사록을 작성해왔다. 어제가 제8회 총회였는데, 아마 내가 서기를 맡은 것이 6번? 7번 정도 될 것이다. 서기라는 역할을 맡아 총회 의사록을 작성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맡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매번 미리 부탁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기분이 나빴다. 최근 몇 년간 계속 그랬었다. 어제는 일부러 노트북을 안 갖고 갔었다. 또 서기를 맡아달라고 하면 노트북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물어보고 말았다. 오늘 서기는 누가 해요? 총회를 총괄하는 이사이자 친한 선배는 너무 당연한 표정과 말투로 니가 해야지. 라고 말했다. 나 노트북 없는데. 라고 했더니 그럼 노트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갖다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서기를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노트북을 가져오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 선배의 차를 빌려서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왔다.

감사는 총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그 보고서를 낭독한다. 나는 총회 시작 전부터 의사록을 작성하느라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감사 보고 순서가 되어 기록을 멈추고 감사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집에서 감사보고서가 있는 쪽수를 찾으면서 감사도 맡고, 서기도 맡아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저에게 한 가지 역할만 맡겨주세요. 서기는 다른 사람이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총회가 진행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정돈된 말투로 고쳐서 기록하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총회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뒷풀이 음식을 먹거나 할 수 있지만 서기는 나중에 정리하려고 미뤄둔 내용을 마저 기록해야 하고, 놓친 내용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여러차례 점검해야 한다. 총회가 끝나고도 꽤 긴 시간 내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서 먼저 뒤풀이를 시작해 먹고 마시고 놀고 있었다. 엎드려 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미리 부탁하지도 않고 너무 당연하게 일을 맡기는 태도와 남들 다 놀 때에도 혼자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누구도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정말 내년에는 절대 서기를 맡지 말아야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준비하는 총회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서기를 맡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미리 부탁하면서 매번 맡겨서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 당일 뭔가 불편한 점은 없는시 신경써서 챙겨주고, 총회 끝나고 내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 할 때 고생시켜 미안하고, 수고 많았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내가 서기를 주로 맡아온 협동조합은 총회 의안이 상대적으로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야하는 조합은 총회 안건이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매번 서기를 맡아주는 그 친구가 아니면 그 내용을 즉각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 외에는 정말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매번 미안한 마음에도 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일을 겪으며 역지사지 라는 말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부터 그 친구에게 훨씬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을지, 정 안되면 내가 서기를 맡더라도 한 번은 서기를 맡지 않고 맘 편히 총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총회 시즌도 마무리되어 간다. 다음주 토요일에 임원을 맡고 있는 총회 하나를 더 마치면 드디어 지겨운 총회 시즌이 끝난다. 어제 뒤풀이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에 나처럼 겹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우스개 소리로 법이나 조례로 몇 개 이상 역할을 못 맡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도 좀 퇴근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암튼 이제 일주일 남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토요일이지만 또 회의하러 가야한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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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계속 문자를 받고 있어요.BTS 세계투어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무료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많은 아미들이 좋아한다고 합니다.특히나 BTS가 가지 않은 중국의 경우 중국의 이미들이 광화문 콘서트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광화문 일대의 숙박시설과 식당가들은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네요.BTS의 광화문 콘서트가 일대 직장인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인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6-03-2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기라는 일이 일은 일대로 하고 티는 나지 않는 일인 것 같아요. 예전 중국생활 초기 총경리 아침 회의 서기를 맡았는데 토씨 하나 틀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총경리 때문에 아침 회의가 지옥같았던 일이 떠오르네요. 다음부터 돌아가며 하세요. 그래야 서기라는 일의 험난함을 알겁니다.
 

시간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능력

요즘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삼 우리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깨닫는다. 어느 외국어가 어렵지 않겠냐만, 우리 말은 특히 더 어렵다고 본다. 한자를 배우며 그간 한자어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였구나 생각하며, 우리말을 반백년 배운 사람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했다.

예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이 서재에 몇 번 글을 썼었다. 인지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우리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저장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 일상 전체를 통으로 엮어서 인식하고 기억한다고. 그래서 뭐라도 조그마한 차이점이 있어야 그 날을 다르게 인식하고 따로 기억하고, 매번 거의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그 날들은 나중에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날은 있을 수 없겠지만, 거의 차이가 없는 날은 제법 있을 것 같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일터에 출근한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매일 같지는 않겠지만, 몇가지 음식들 중 반복 선택해 점심을 먹는다. 오후도 역시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고 야근을 하던 퇴근을 하던 그렇게 하루가 간다면, 그 하루들의 연속되는 일상은 별개의 하루 하루로 인식하고 저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과 겪어본 일이 많아서 점점 더 개별적으로 따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거라고.

이쯤에서 잠시 인식(認識)과 인지(認知)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나는 앞서서 계속 인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느낌상 인지보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인지를 그대로 넣어도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단어이고, 고유의 뜻이 있을텐데 사전만 찾아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을 좀 더 엄격하게 구분해 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내 기준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3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 이미 시민단체 실무자로서는 해볼 수있는 어지간한 업무를 두루 익혔고,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더불어 출판사에서도 영업관리와 마케팅 기획 그리고 편집까지 여러 일들을 익혔었다.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이 알고 있는 일들, 해봤던 일들만 경험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내 인식과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젊은 시절엔 전국단위 사업에 대응하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지만, 30대 중반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좁아지고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혼 후의 내 삶은 그 이전에 비해 아주 단순해졌다. 아니 개인적인 삶. 즉, 사적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공적 영역 확 늘려서 그냥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

암튼 큰 변화 없이 10년 정도를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와서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하루 하루가 길어진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뇌가 시간을 정상적으로 인식하는구나 싶다.

물론 당연히 이 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어떻게든 일상에서 자주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여 뇌가 그냥 다른 일상들과 엮어 뭉뜨그려 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점점 늙어가는 처지에 그 노화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고, 시간이 이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느끼는 일이 너무 싫고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2월과 3월은 마치 퇴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딱 다음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총회가 하나 있고, 담주 토요일에 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올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총회들이 모두 끝난다. 4월이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벌써부터 모든 주말에 일정이 생겼고, 평일 저녁에도 회의 등 일정들이 생기고 있다.

좀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내 뇌가 아, 이날은 좀 특별한 날이구나 하고 인식해 기억할텐데, 매번 저녁마다 일정이 생겨 무언가 집중해 일하다보면 또 같은 일상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겠다. 변화를 주자. 의미를 두자. 내 소중한 일상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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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리하시면 번 아웃이 옵니다.감은빛님 바쁘신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건강을 챙기시면서 일 하시길 바래요.

감은빛 2026-03-21 11:11   좋아요 0 | URL
벌써 여러차례 번아웃이 왔었지요. 작년에 진짜 좀 심각하게 무력감에 빠져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요.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6-03-2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경험을 한데 묶어 덩어리로 기억하고 덩어리의 패턴이 생길수록 개별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적어지니 삶이 기억되지 못하고 더 빨리 흐르는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의견에 공감하게 되네요. 여행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네요.

감은빛 2026-03-21 11:16   좋아요 0 | URL
여행이 필요한 것도 맞고, 일상을 마치 여행처럼 살아가는 기술? 능력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렸을 때는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에 가 있어도, 내가 그 풍경을 즐길 마음이 아니면 다 소용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일상


드디어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10년 가량 활동가로 일했었고, 지금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총회를 마쳤다. 활동가로 일했던 약 10년 동안 12월부터 3월까지 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정말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다. 임원이 되고 난 후로는 내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의 입장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음의 스트레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직접 중요한 책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그만둔 그 공백을 느낄 수 밖에 업었다. 잘난 척을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지만, 내가 잘 해왔던 어떤 지점들이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젠 실무자가 아님에도 나에게 어떤 책임을 맡아 달라는 요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는 그 요구를 무시했었다. 현재 실무를 맡고 있는 활동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계속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 생각없이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어떤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긴 시간 내 삶을 바쳐 활동했던 조직이 한 순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누가 뭐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긴 시간 이 조직의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에 뭐든 잘 할 자신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이어갈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남는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계비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힘들다. 여기서 또 한 번 나이를 깨닫는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는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았어도 여기저기 나를 원하는 곳들이 제법 많았다. 남들보다 일을 잘 한다는 자부심은 대학시절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이 나이를 감안하고 불러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한 실무 책임자도 나보다 한참 어릴 것이다. 중간 간부나 실무 책임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채용한다는 선택은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


총회 1부 진행을 맡아 대본을 수정하면서 3월 14일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찾아봤다. 일본이 만들어낸, 아니 일본의 제과업계에서 만든 화이트 데이 라는 단어는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는 날이라 무시했다. 검색해보니 원주율을 의미하는 파이의 날이라고 기념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이 일어난 날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다른 여러 역사 기록들이 살펴보다가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칼 맑스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모두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암튼 앞으로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름으로 기억하기 보다 파이의 날이나 칼 맑스의 기일로 기억해야겠다.


15주년


3.11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15주년이 지났다. 평일이었는데 광화문 인근에서 전국단위 행사가 있었고, 인간 띠 잇기 행사도 있었다. 나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일이 꼬여서 나가지 못했다. 매년 이 맘때 반복하는 말이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이 사고를 수습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은 아직 이 정도로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15년이나 지났으니, 후쿠시마 핵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중에 가장 유명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에는 폭파된 건물을 약 6개월만에 콘크리트로 덮었고, 콘크리트의 수명 약 30년이 지날 즈음에는 더 확실하게 방사능을 막을 수 있는 소재로 돔 형태의 구조물을 덮어 씌웠다. 그래서 실제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새어나온 기간은 약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발전소 하나만 폭발했고, 그 용량도 후쿠시마에 비하면 적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발전소 한 기당 용량도 체르노빌에 비해 훨씬 크고 무려 4기가 폭발했다. 그 4기는 모두 설계 수명이 끝나서 폐쇄되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수명을 연정하여 운영한 발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 폭발이 일어난 1호기에서부터 4호기까지 4기의 발전소와 달리 같은 위치에 있었던 5호기와 6호기는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핵발전소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내구도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매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만 현재 인류는 핵발전 이라는 기술을 감당할 수 없다.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폐기물인 핵연료봉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명(콘크리트 내구 연한)이 끝난 발전소를 폐기하는 기술도 불완전하다. 더욱이 후쿠시마와 같이 좁은 지역에 4기나 되는 고용량의 발전소가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이 유출된 경우 폭발한 발전소의 건물을 덮거나 멜트다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핵연료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도 없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4기의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난 상태 그대로, 쉽게 말해서 뚜껑조차 덮지 못한 상태로 매 순간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쏟아붓는 냉각수가 그대로 방사능 오염수로 변해 매일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 방사능 핵종의 반감기가 10만년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는 바다에 그냥 방류하고 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가 넓고 깊어도 매일 버리는 방사능 오염수가 몇 십년 이상 쌓여도 안전할까? 그리고 몇 십년이 지난다고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처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을까? 과연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51년이 되면 데브리를 수습하고 폐로 처리를 할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꽤 높은 확률로 불가능 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거짓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고,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이라는 인간이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아직 공정률 약 30%에도 못 미쳤던 신고리 5호기와 6호기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가 나중에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공론화를 하겠다고 헛소리를 하며 국민들을 배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러고도 본인은 탈핵(핵발전 산업을 그만둔다는 입장)을 선언했는데, 정작 핵발전소는 계속 짓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동의 없이 추행은 저질렀지만 성범죄는 아니다? 이게 한 나라 대통령이란 인간이 버젓이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래, 어쨌든 탈핵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탈핵이라고 떠들었던 문재인과 달리 이재명은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한다. 비상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의지를 배반하는 행위이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이렇게 국민들을 기만해도 자신의 지지율이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 따위, 국민의 건강 따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 것이다. 이재명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금수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개 돼지라는 표현을 쓰려다가 개와 돼지에게 미안해서 금수라고 썼는데, 그러면 오히려 모든 생명에게 미안한 일인데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그냥 씀)  




나이 듦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김없이 "도인"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긴 흰 머리에 흰 수염. 간달프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는데,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간달프 만큼 멋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간달프만큼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도인이란 단어는 도를 닦는 사람이라는 뜻일텐데, 단 하루도 도를 닦아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은 실제 도인에게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라고 본다. 감히 도인으로 불릴 자격이 없는 평범한 범인에게 도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걸 또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는 참 쉽지 않다. 또 다른 반응은 "예술하는 사람" 혹은 "예술가"다. 음, 예술가의 정의는 뭘까? 아니 예술의 정의는 뭘까? 나는 어렸을 때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의 한계를 깨닫고 곧바로 포기했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남들보다 조금 잘 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는가 깨달았다. 음악도 딱히 잘했던 적은 없었다. 락 음악을 좋아했고, 멋있어 보여서 기타를 혼자 배우기는 했지만, 농활 갔다가 손가락을 다친 후로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악기는 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시도할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한 오륙년 전에 두성을 배워서 노래는 조금, 그러니까 아주 조금 할 줄 안다고 말할 수준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평범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세상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러니 미술로도 음악으로도 예술가라는 단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나마 단 하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기에 어쩌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다. 내가 쓰는 글은 그냥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는, 아무 의미 없는 잡글에 불과하다. 역시 예술가라 부를 수는 없겠다.  


그냥 나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수는 없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과 달리 조금 독특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해도,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고,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굳이 일부러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아무리 듣기 좋은 이야기도 계속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책 구매
















분명히 집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소설의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고 싶어 찾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팔았던 기억도 없고 버린 기억도 없었다.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을 찾고 또 찾았는데 없었다. 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오래 전 책을 읽었던 당시에 아무런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러웠고, 갑자기 이 책을 소개한 강양구 기자가 원망스러웠다. 중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왜 결말은 기억나지 않을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알림 등록을 해두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어제 한창 바쁠 시간에 알라딘 중고 매장 중 한 곳에 이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왔다. 아무리 바빠도 이 책은 사야 한다는 생각이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에도 배송비가 아까워서 해당 중고매장에서 책 두 권을 더 담은 후에야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면 읽고 있던 책들을 다 제쳐두고 이 책부터 먼저 읽어야지. 얼른 와라. 이렇게 책을 기다려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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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3-16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예술가의 기일은 기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철학자의 기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구요..ㅎㅎㅎ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고정적인 월급 200만원의 가치. 요즘 200따리 월급충 300따리라고들 무시하지만 개인사업자로 순수익 200만원을 번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경험해 봐서....월급 200만원을 저는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200만원의 고정급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개인 사업을 해 보면 그 돈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은빛 님에게 공감 만배 입니다!

감은빛 2026-03-21 11:22   좋아요 0 | URL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내 죽음을 기억하고 내 삶을 곱씹어준다면 그건 성공한 인생일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필립 케이 딕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엄청나게 많은 단편소설을 쓴 것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는 글을 써서 팔수 있을 정도의 재능과 인기가 있었지만, 나는 과연 무엇을 팔수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야무님.

chika 2026-03-16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직장에서 정년까지 버티기를 할꺼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이 먹고 정규직으로 월급받으며 생활하기는 쉽지 않네요. 아이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늙으신 부모 공양도 꽤 많은 금액이 필요한지라....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전쟁이 지속되고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고 삶이 피폐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잊고 살고 있다는 것도 맘이 편치는 않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거야,라는 체념이 지배적인지라....
뭔가 씁쓸한 댓글을 남기고 있는 것 같아 또 맘이 편하질 않고...

그냥, 오랫만에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좋겠구나, 부러워하는 마음을 남기며 저는 이만.... ^^;;;

감은빛 2026-03-21 11:27   좋아요 0 | URL
그 기다리던 책을 받았는데요. 이미 두 번이나 읽었던 책이라 익숙한 표지를 다시 보고, 목차를 쭉 훑어본 후로 손도 못대고 있어요. 아침에 나와서 새벽에 들어가고, 겨우 몇시간 쉬지도 못하고 또 집을 나서야 하는 처지에 책을 읽는 여유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네요.

정년이 없이 일을 해야하는 먹고 살 수 있는 삶인데, 세상은 일거리를 주지 않네요. 이 모순을 어찌 개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요.
 

새 이웃

2월과 3월은 총회 시즌이다.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많고 그 중에 일부에서는 운영위원 등 역할을 맡고 있어서 총회 준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몇몇 협동조합에서는 이사와 감사 등을 맡아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사를 맡고 있는 조합 두 곳에서는 올해 총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는 모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이지만,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이런 일들로 많이 바빴다. 하루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서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총회 준비 일을 했다. 저녁에 또 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간단히 늦은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했다. 새벽까지 일을 해도 맡은 일들을 다 끝낼 수가 없었다. 잠시, 아마 한 사십분 가량 졸다가 깼다. 의자를 여러개 붙여서 잠시 누웠는데 막상 누으니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한동안 조용한 음악을 켜둔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좀 쉬다가 다시 일을 했다. 아침이 된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는데 공동 사무실을 함께 쓰는 분이 출근하셨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세수도 하고 이를 닦았다. 다시 일에 몰두해 점심 무렵에야 급한 일 두 건 정도를 마무리했다. 그날 저녁에 또 회의가 있어서 고민했다. 집으로 가서 서너시간 쉬다가 돌아올까? 오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어차피 할일은 남아 있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운동을 하고 씻고 올까? 집에 일단 가면 피곤하니까 다시 나오기 싫어질 것 같기도 하고 잠시 누워있다 나와야지 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려서, 회의 시간까지 깨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선택지에서 지웠다. 운동도 몸을 쉬어주지 못해서 오히려 이런 날에 무리하면 다칠 것 같았다. 역시 삭제. 그냥 좀 쉬엄쉬엄 일을 하며 저녁까지 버텨야지 싶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한 십여년 전에는 며칠 연속 밤을 새워 일을 해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일 동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씩만 쪽잠을 자고 일을 했던 일이다.

평소에도 밤에 일을 해야 집중이 잘 되어서 낮엔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를 다니고 밤에 문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 하루나 이틀 정도 잠을 못 자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이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예전에는 밤샘을 하면 집중력이 좀 떨어져도 몸의 피로는 좀 덜 느꼈는데, 요즘은 집중력은 오히려 괜찮은데, 몸의 피로를 확실히 느낀다. 암튼 너무 오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허리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무선 이어폰을 챙겨 외투를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몇 군데 업무 통화를 할 일이 있어서 그 통화들을 몰아서 하면서 주변을 걸었다. 봄이지만 꽃샘추위는 여전해서 제법 쌀쌀했다. 무선 이어폰 덕분에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서너명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를 하면서 골목길들을 돌아다녔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동료 활동가가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얻어 먹으러 갔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컵라면 하나를 먹은 후로 첫 끼니였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밥을 먹고 돌아와 일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회의 시간이 다 되었다. 회의는 길었다. 다뤄야 할 건은 많고 합의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금방 지쳤다. 나는 그때 이미 출근한지 36시간이 지나서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집중력을 모두 짜내어 원활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노력했다.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몇몇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음식을 사러 나갔다. 공식 회의 자리에서는 차마 나누지 못했던 날선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래서 뒤풀이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의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뒤풀이도 늦게 끝났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이었다. 남아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돌아가고 누군가가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눌 말도 많았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왜 내 몸은 하나 밖에 없을까? 내 몸을 복제해서 하나 더 만들어 일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인공지능에게 하루 종일 일을 시켜서 서너명이 할 일을 커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글쎄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아직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일을 잘 해도 혼자 완결지을 수 없다고 본다. 나도 이번에 많은 일을 맡아서 도움을 받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써보니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봐야 했다. 내 기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설프게 만든 문서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빈 문서를 하나하나 채우는 것이 더 낫다 싶었다.

암튼 나를 붙잡았던 동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48시간은 아니었고, 출근한지 한 44시간 정도 후에 퇴근이었다. 집에 오니 현관문 앞에 작은 종이 가방이 놓여있었고, 꽃 한송이와 떡 한 팩 그리고 작은 쪽지가 있었다. 뭐지? 이건 누가 보낸 걸까? 나에게 꽃을 보낼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이건 아마 튤립인가? 꽃에 문외한이라 뭔지 알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와서 쪽지를 열어봤다. 이번에 이 낡은 빌라 4층에 새로 이사온 이웃이라 적혀있었다. 그래서 떡을 돌린 거구나 하고 이해했는데, 그런데 꽃은 왜? 이 빌라가 워낙 낡아서 이번에 그 집이 내부 수리를 좀 오래 했던 것 같다. 공사 소음이 꽤 오래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떡을 돌린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꽃은 왜 돌렸을까?

어쨌거나 정성이 대단한 이웃이라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이웃이랑 마주쳐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시대에 떡과 함께 꽃을 돌리다니. 나는 이 집에 이사온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얼굴을 아는 곳이 아랫집 밖에 없다. 이삼년 전에 두 번이나 누수 문제가 생겨서 자주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윗집과도 누수 문제로 소통했었는데, 그 집은 이후에 이사 나가고 새 이웃이 들어왔는데, 이 분들과는 아직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옆집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살고 있는 어르신 부부이고, 늘 함께 지내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성인이 된 자식들이 오간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가며 얼굴을 마주쳐서 인사는 나눴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서 얼굴이 기억이 안난다. 안그래도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이 분들을 알아볼 수 없다. 이번에 떡과 꽃을 돌린 이웃과 인사를 나눌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사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교롭게도 며칠 사이에 두 번이나 꽃을 받았다. 하나는 작은 아이가 줬다. 2월 초 내 생일에 주려고 직접 만든 꽃이었다. 이 재료들을 뭐라 부르는 지 잘 모르겠지만, 털실과 철사 등을 활용한 것 같았다. 아이에게 받은 조화는 지금 사무실에 놓아뒀다. 이번에 받은 생화는 현관에 놓아뒀다. 덕분에 한동안 사무실을 오가며 선물 받은 꽃들을 보게 되겠네. 피곤하고 힘든 날 꽃 한 송이 덕분에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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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10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떡을 돌리시는 이웃이 계시는군요. 저 인간의 마음을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다니요....
삼월에 읽는 봄볕 같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감은빛 2026-03-15 13:3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떡을 먹었습니다.
꽃은 현관 앞에 두고 매일 오가며 한 번씩 보고 있어요.

잉크냄새님의 댓글이 마치 한 편의 시 같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