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주제들


누군가와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에는 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주로 무엇을 주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까? 그것은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 때문에 만난 거래처 직원과 짧게 날씨 이야기나 뉴스에 나온 이슈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그와 나누는 핵심은 당연히 업무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나 아이들과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주제로 이뤄진다. 그들과 티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꺼리 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 역시 핵심적인 내용을 다루기는 쉽지 않다. 수박 껍질을 간신히 핥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의 대화 주제는 일의 영역과 가족의 영역을 제외하고, 내 여가 시간에 순전히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소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좁혀보자. 여기에서 내용 상으로 몇 개를 건져 보면 다음과 같다.


- 책















요즘 같은 시대에도 지인들 중에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많다. 지인 중에 출판계 종사자가 많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낸 이들 대부분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세부 주제로 들어가보면 철학이나 사회과학 분야를 주로 다루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가끔 문학을 주제로 하기도 한다.


내가 최근에 술 자리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책은 위에 있는 [지혜의 심리학]이다. 김경일 교수는 어쩌다가 영상으로 먼저 만났는데, 영상을 조금 보자마자 그가 설명하는 '인지심리학'이란 학문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그의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고, 책도 구매해서 여러번 읽었다.


요즘은 제법 유명해져서 방송에도 심심찮게 출연하는 모양이더라. 확실히 그의 주장은 참신하고, 그는 청중들의 이목을 잘 끌어오는 스킬을 가졌다. 자기계발서 형식의 편집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글솜씨도 썩 괜찮았다.


술 자리에서(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주로 술자리니까) 그가 주로 얘기하는 몇몇 내용들을 들려주면 대부분 신기하다는 듯 내 이야기에 주목한다. 김경일 교수 덕분에 한동안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음악



몇몇 친구들과는 음악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권해주는 음악은 두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게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취향이 전혀 다른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은 내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며,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주기도 한다.


새로운 노래를 알게 되는 경로이기도 하고, 특정 가수나 장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경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아마 배철수 아저씨가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애청자는 되지 못했다. 평소에는 라디오를 들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주말이나 특정한 행위(운전, 요리 등)를 할 때만 듣는다.


최근에 내가 자주 이야기 한 노래는 위에 소개한 Fifth Harmony 의 [Brave Honest Beautiful] 이다. 아직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하기 전에 발표했던 곡이니 한참 예전 곡이다. 이 노래를 나는 카밀라 카베요가 탈퇴한 이후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 들었던 그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곡 중 하나이고, 항상 벨소리로 저장해두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초기 카밀라 카베요 특유의 발성을 듣는 것이 좋기 때문이고, 이 곡의 독특한 도입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그래서 늘 벨소리로 사용) 또 아래 가사 내용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You can dance like Beyoncé You can shake like Shakir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fearless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So whine like Rihanna Go and pose like Madonna 'Cause you're brave, yeah, you're honest And you're beautiful, you're beautiful girl


비욘세, 샤키라, 리한나, 마돈나라는 슈퍼스타들을 언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 노래의 주제인 "당신도 잘 할 수 있다. 당신은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름답다." 내용이 좋다. 특히 이 노래를 부르는 10대 후반의 청소년 여성들이(핍스 하모니 멤버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 멤버 모두가 1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모두 자기 자신이 이 노래 가사처럼 당당하고 용감하고 훌륭하고 아릅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이미 아이들은 이 노래를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노래 가사들을 설명하면서 아빠가 왜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 들려주고 싶기도 하다. 


- 영화 혹은 드라마


아마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누는 대화는 TV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출판사에 일할 때 만난 사람들 대다수는 TV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나 TV 드라마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집에 TV가 없어서 늘 대화에 소외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어떤 유행어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 나는 거의 구석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비록 TV가 없어서 소외당하긴 했지만,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다시 대화에 끼어들 수 있었다. 영화는 예전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 더구나 요즘은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같은 앱들을 통해 영화, 해외 드라마, 국내 드라마 등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이야기를 하면 정말 내용이 길어질텐데, 요건 언젠가 각 영화 별로 따로 이야기를 쓸 계획을 갖고 있으니, 오늘은 그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내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영화 10개를 한 번 적어보련다. 순서는 매기지 못하겠다. 그저 지금 기준으로 좋았던 영화 중에 10를 선택해본다면 아래와 같다.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욕망의 대지(the burning plain)

페어런트 트랩

어바웃 타임

인셉션

이터널 썬샤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날

가지니

꾸츠 꾸츠 호타해

그 남자의 사랑법(신이 맺어준 인연)


헐리우드 영화가 6개, 인도 영화가 3개, 우리나라 영화가 1개다. 맨 위 2개는 국내 개봉 제목이 엉망이라 일부러 원제를 괄호 안에 넣었다. 맨 마지막 인도 영화 역시 국내 개봉 제목이 와닿지 않는다고 느껴 원어의 제목을 그대로 괄호 안에 옮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언제나 시점이 가장 중요하다. 이 10개는 지금 선택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갔다면 [라빠르망], [레드], [블루], [화이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캣피플] 등의 유럽 영화들이 대거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크쥐쉬토프 키에스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거기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 온갖 공포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좀 더 과거로 돌아가면 홍콩 영화를 비롯한 온갖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드라마도 잠시 언급하자면, 국내 드라마 중에는 거의 본 것이 없어서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긴 하다. 학창 시절과 대학 시절에 간간히 보았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정도를 좋았던 드라마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 수준이 낮긴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좋아했던 여성이 홀딱 빠져 있었던 [마지막 승부]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 말할 수는 있겠다. 그 뒤로는 거의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건너뛰고, 비교적 최근작들 중에서는 [비밀의 숲]이 괜찮은 작품이라 할 것 같다. [시그널] [미스터 션샤인]도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몇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 [미생]은 웹툰으로는 제법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드라마로는 일부 밖에 보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처음부터 쭉 보고 싶은 드라마 이긴 하다.(요새는 이런 걸 정주행이라고 하더라. 그럼 혹시 역주행도 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나마 같이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나의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1994가 그나마 좋았고, 1988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시기인 1997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더라.


아, 요새 유행하는 [킹덤] [인간수업]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도 재미있었지만, 역시나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그냥 재미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해외 드라마 역시 많이 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은 없는데, 해외는 일단 국내 드라마와 달리 엄청나게 자극적인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완전 야하고 완전 잔인한 작품들. [워킹 데드], [왕좌의 게임], [로마], [스파르타쿠스] 등등


또 언젠가 시간이 나면 꼭 봐야지 생각하는 것들은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드라마로 만든 것들인데, 워낙 여러 편의 드라마가 있어서 뭘 봐야할지 정보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유역비가 나오는 [신조협려]는 언젠가 꼭 다 보고싶다.


아참,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센스8]을 참 좋아했는데,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해 시즌2에서 접어버린 것이 너무 아쉽다.


음, 이상이 주로 친구들(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또 어떤 주제들이 있을지는 이 글을 쓴 후에 차차 생각해보겠다. 예전부터 계속 영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글을 쓸 여유를 계속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일단 한 번 시작하고 나면 간간히 이어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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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 없음


날씨의 변덕 때문인지 요즘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봄인데도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밤 기운이 내려가는 일교차가 큰 날씨가 계속되더니, 갑자기 여름인 것처럼 더운 날이 이어졌다. 나만 겨울을 사는 것 같아 깜짝 놀라서 얇은 옷을 입고 다녔더니 다시 또 날이 쌀쌀해졌다. 이게 무슨 봄 날씨란 말인가? 


해마다 봄이면 여름을 대비해 몸 만들기에 들어가는데, 올해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2월부터 4월까지는 아주 낮은 강도로 운동을 이어가며 서서히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하기 위한 워밍업 단계를 밟고 있었다. 4월 말부터 워밍업을 끝내고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간 운동을 제대로 못했기에 운동에 대한 욕구가 컸다.


그런데 4월 말부터 갑자기 몸 컨디션이 나쁘다 느껴지더니 한동안 괜찮았던 관절 통증도 다시 시작되었다. 관절이 여기저기 아프니 움직이는 것이 힘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어지간하면 다음으로 미뤘다. 예전 같았으면 밤에 자다가도 나갔을 술자리를 초저녁에 거절하고, 집에 들아가 일찍 잠드는 나를 보면서 참 낯설었다. 이건 어쩌면 정신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운동에 대한 욕구도,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심지어 성욕 마저도.


지금도 머리로는 매일 5km씩 달리고, 풀업과 에어스쿼트와 케틀벨 스윙을 하고, 이틀에 한 번씩 데드리프트와 스냇치와 클린앤저크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버피를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낸다. 일도 하기 싫지만, 안 할 수는 없으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글도 쓰이지 않는다.


뭐, 살다보면 이런 시기도 있는 거겠지. 바쁘게 살아온 만큼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거겠지. 잠시 이러다가 또 다시 이런저런 욕구들이 솟구칠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


노안


처음엔 스마트폰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려는데 촛점이 맞지 않고 흐리게 보였다. 안경을 낀 상태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벗었더니 잘 보였다. 밤에 불을 끄고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 불을 켜고 폰으로 SNS를 들여다 보려는데, 이때도 안경을 낀 상태로는 촛점이 맞지 않았다. 안경을 벗으니 비로소 잘 보였다.


처음엔 왜 그런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바로 노안이었다. 언젠가 술 자리에서 나보다 서너살 많은 선배가 아직 노안이 오지 않았냐고 자신은 40대 들어서자마자 노안이 왔었다고 신기해하며 캐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드디어 나에게도 노안이 왔구나.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손님이 온 것 같은 느낌이지만, 만약 거절할 수 있다면 결고 맞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인간은 노화를 거역할 수 없는 법. 이제 나는 노안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 서글퍼진다.



어버이 날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온다. 가끔 이런 날을 왜 굳이 만들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1년에 딱 하루만 그 의의를 생각하며 나머지 364일은 모르고 살아도 된다고 면죄부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건 올해도 어버이 날이 지나갔다. 부산 부모님께는 계좌로 약간의 용돈을 보내드리고 전화를 드렸다. 멀리 있어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는데,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 자식 입장에서 늘 불효자일 수 밖에 없다.


마침 어버이날이 금요일이라 저녁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만나자 마자 손수 이쁘게 꾸민 작은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맛있는 걸 먹으려고 근처 식당들을 돌아다녔는데, 식당들이 모두 꽉 차서 빈 자리가 없었고, 그 중 몇몇 식당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도 했다. 어버이 날이라 유독 저녁 시간에 손님이 몰린 것 같았다.


아이들과 어떻게 할 지 조금 고민하다가 마침 빈 자리가 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고기를 구워 먹이려는데, 큰 아이는 요즘 고기가 먹고 싶지 않다며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길래 냉면도 시켜줬다. 작은 아이와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후에야 찬찬히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들을 열어봤다. 각자의 편지는 그 나름대로의 정성이 느껴졌다. 해마다 받아보는 편지는 어쩔수 없이 형식적이지만, 또 어쩔수 없이 그 진심을 담는다.


이번 큰 아이의 편지는 유독 그런 느낌이 강했다. 아이가 갑자기 쑥 커서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 곧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여러가지 일들을 같이 할 거라는 글을 읽으며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걸 참느라 혼났다.


그 와중에 동네 선배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반가운 척을 했다. 여러모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분이신데,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동네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곤 했었다. 이번엔 형수님과 두 분이서 들어오셨다. 우리 자리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는 걸 보고 나는 아이들과 떠들며 남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한참 후에 그 선배가 우리 자리로 와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털어넣고, 막 고기쌈을 입 안 가득 넣은 직후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선배는 아이들에게 만원짜리 한 장씩을 쥐어주셨고,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입안의 음식을 급하게 씹은 후 안 주셔도 되는데 라고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선배는 술 한 잔 따라주겠다며 내 술잔을 채워주고 돌아갔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 선배와 약간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술 자리에서 조금 다툼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나 대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이 명확했고, 그 선배 역시 자신의 입장에서 조금도 양보가 없었다. 그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그냥 봉합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가 왜 굳이 내 자리로 건너와 술잔을 채워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입장을 바꿔 내가 그였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테지만.


꽃, 사진, 우중충한 날씨


지난 주말에는 큰 아이가 몇 해전에 다녀왔던 수목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해서 함께 다녀왔다. 날씨가 좋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날이 흐려서 그런지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열심히 놀았다. 놀 수 있을때 놀아야지. 또 언제 이렇게 놀겠나.


생각해보면 이제 정말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은 금방 자랄테고, 다 자라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곧 자라서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테니. 나는 또 그만큼 늙어 예전처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할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이가 말했다. 다음에 날씨가 쨍한 날에 다시 오자고. 그러자. 그땐 오늘보다 더 열심히 더 재밌게 놀자꾸나.



언어 천재의 두 번째 책

_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15개가 넘는 외국어에 통달했고, 25개가 넘는 언어를 우리말로 옮겼다. 그냥 소개 글만 읽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해졌다.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난 후에는 그의 유머 감각이라던가,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빨리 주문해서 읽어보고 싶다.
















이 책 제목을 보면서, 또 평소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면서 느끼는 건 유쾌한 태도가 삶에 미치는 여향이 무척 클 것이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나는 썩 유쾌하지 못한 인간이다. 늘 무표정이고, 늘 진지한 태도로 무언가를 고찰한다. 내 일상에서 웃음이라고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 뿐이다. 나도 평소 유쾌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



어제 책장을 조금 정리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이런 책도 샀던가 싶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예전에는 책을 사면 발췌독이라도 조금씩 해놓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놓고 한 번 펼쳐보지도 않은 책들이 늘아나고 있다. 꼭 읽고 싶어서 산 책이라면 분명 기억이라도 할텐데, 이런 책이 있었나 싶은 책이라면 그닥 큰 고민없이 샀던 모양이다.


집에 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다 읽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해야겠다. 비록 기획안만 써놓고 말지라도 그 기획안을 쓰는 동안이라도 묵은 책들을 다 읽으리라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테니. 그 의지가 얼마나 갈 지 모르지만,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


흐린 날의 오후: 우울함


언젠가 직장인이 가장 우울한 날이 수요일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은 날이 흐려 기분이 더 우울한 것 같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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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자주 가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장례식장일 것이다. 오래전 친구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3일장을 치루는 내내 친구 곁을 지키며 허드렛일을 했었다. 오래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리고 또 몇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이혼한 이후였지만) 장례식장을 지켰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장례식장에 갈 일이 점점 더 많이 생긴다. 아마 한 달에 한 두번은 가는 것 같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자주 부고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자주 가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부고 연락을 받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또래 지인들 중에서, 엄청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나다니!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그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누구보다 성실하고 아름다웠던 그의 삶이 떠올랐다. 하필 부고가 날아든 날이 만우절이었다. 설마!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아니. 그런데 사람 목숨 갖고 장난치는 짓을 내가 아는 누군가가 할 리는 없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이게 현실이구나. 장난이 아니구나. 꿈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영정을 향해 두 번 큰 절을 올리는 나 자신의 모습은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빈소에서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에 갔더니 마침 빈소에서 그의 지인들이 추도식을 열고 있었다. 그가 다양한 활동을 했던 사진과 영상들을 모아 추모영상을 만들어 상영하고 있었다. 저 화면 안에서 환하게 웃는 이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친한 선배 한 명이 지인 대표로 추도사를 낭독했다. 진심을 담은 그의 말들을 들으며 다들 눈물을 흘렸다. 영상을 보면서 울던 이들이 영상이 끝나고 잠시 울음을 그쳤다가, 추도사를 들으며 다시 울었다. 나도 그랬다. 영상을 보면서는 눈물이 맺혔다가 멈췄는데, 추도사를 들으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원인 불명의 쇼크사라고 했다. 자다가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문득 어느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문을 마치고 아까 추도사를 낭독했던 선배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햇다. "너도 조심해라. 너도 혼자 사니까 자다가 갑자기 저렇게 가도 아무도 모르잖아. 게다가 너도 스트레스 엄청 심하잖아." 추측하건데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들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인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이었다. 늘 소리없이 조용히 세상에 꼭 필요할 일을 해왔던 사람. 언제나 성실하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했던 사람. 언제나 낮은 곳을, 그늘진 곳을 향했던 사람. 누구보다 냉철하지만 또 누구보다 따뜻했던 활동가였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냐고 따지고 싶다.


그날 밤 친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크게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차마 그의 영정 앞에서는 소리내어 울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도 슬픈 마음에 떠들고 놀지는 못했어도 울지는 않았는데, 집에서 혼자가 되니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내세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의 영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부디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런 날이 올 수 없겠지만, 다시 그와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헛된 바람을 가져본다.



선거운동


아마 녹색당에 탈당계를 낸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국가혁명배당금당' 조끼를 입은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본 선거 기간이 되기 전이라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할텐데, 선거법 상 사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가 과연 선거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이 먼저 들었다. 두 번째는 '저런 당'도 선거운동을 하는데, '우리당(이미 탈당계를 내 놓고도 이런 표현이라니)'은 대체 뭐하는 건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어서 우습게만 생각했던 허경영 씨의 그 당이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이어서 든 생각은 무심결에 떠오른 위 두 가지 생각에 대한 반성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거운동원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게다가 '저런당'이라는 혐오 표현을 쓰다니! 이것 역시 큰 잘못이었다.


탈당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는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녹색당 창당에 참여한 이후로 선거기간에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작년부터 나는 지역에서 후보를 내고 선본을 꾸리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많이 노력했었다. 비록 당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결국 후보를 내는 것에 실패하고 탈당을 했지만, 만약 내 노력이 성공했다면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기간인데도 선거운동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코로나19로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도 침체되어 있고, 나 역시도 여러가지 상황들이 겹쳐 우울하고 또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감정은 선거가 끝나야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과연 선거가 끝난다고 회복이 되긴 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선거 당일 두 번의 술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완전히 취해 돌아와 잠들었다가 깨고 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마음 깊숙히 가라앉아 있던 돌덩이 하나를 치운 듯한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날 술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우울증 때문에 미칠 것 같았는 지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 같다. 그걸 들어주었던 지인들은 고생이 많았겠지만, 덕분에 나는 조금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 공간에 남기지는 않으련다. 이 사회도 나도 여러모로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는 시기이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나날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했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난무해 더 심각하게 양당제로 고착화 되어 버린 선거 결과(물론 한 쪽이 참패하면서 양당제 고착화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전과 비교해 소수 정당의 의석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가 참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이러려고 선거 개혁을 위해 애썼던가 싶은 허탈한 마음이 든다. 한 편 유래없이 많은 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그 위성정당이라는 결과도 너무나도 참담하면서도 웃기다. 역시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그 어느 희극작품보다 더 웃기다. 에이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주저리 주저리 써놓았네. 이제 그만.


운영위원장


작년 이맘때 내가 쓴 글을 보면 한동안 녹색당 지역 운영위원 직을 맡지 않고 잠시 활동당원으로만 남아 있었다가 다시 지역 운영위원장이라는 당의 공식 직책을 맡았다는 글을 썼었다. 이제는 탈당했지만, 지난 1년 동안 나는 당원들이 뽑아준 선출직 운영위원장이라는 직책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활동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또 다른 단체의 운영위원장이라는 부담스러운 직책을 맡았다. 정말 안 맡고 싶었고, 여러 번 고사했음에도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고사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활동하리라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큰 역할을 잘 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억지로 떠맡은 자리를 과연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왼손 사용


엄마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나는 양손잡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왼손을 쓸 때마다 할머니께서 내 손을 탁 하고 쎄게 때렸다고 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내가 왼손을 쓰지 않고 오른손만 쓰게 되었다고 했다. 왼손을 주로 썼던 시절의 습관은 커서도 남았다. 


학창시절 야구를 할 때, 우타석에 들어가면 어깨와 팔을 휘두르는 느낌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분명 난 오른손잡이인데도 그랬다. 내 자세를 유심히 살펴본 친구가 좌타석에 들어가보라고 해서 좌타자로 배트를 휘둘렀더니 한결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몇 몇 특정한 동작들은 오른손으로 하면 오히려 힘을 주기 어렵고 왼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힘도 잘 전달되는 것을 느낀다. 이건 어쩌면 오랫동안 굳어온 습관 때문일 것인데, 글씨를 쓰고, 밥을 먹는 등의 중요한 것들은 다 오른손으로 바꿨고 그 습관이 굳어졌지만, 자잘한 몇몇 행동들은 여전히 왼손을 사용해왔고 그 습관이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오랫동안 오른손만 주로 쓰는 것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왼손 사용이 무척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친한 형이랑 오랜만에 만났다. 그 형은 일하다가 오른손 중지를 다쳐서 부분 깁스로 고정한 상태였다. 손이 그러니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을 먹거나 씻는 일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는 왼손으로 젓가락지를 잘도 하면서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왼손으로도 젓가락질을 그렇게 잘 하냐고 물었더니, 군대에 있던 시절 고참이 밥을 너무 빨리 먹는다고 갈구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명령해서 그때부터 그 고참이 제대할 때까지 왼손을 젓가락질을 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엄청 오래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그 형은 오른손을 다쳐서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왼손으로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만화방에서 읽었던 이현세 화백의 어느 권투 만화가 떠올랐다. 그 만화의 주인공인 오혜성(일명 까치)은 한때 잘나가다가 무슨 일로 한동안 링을 떠나있다가 다시 복귀한 복서였다. 그가 체육관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 몸을 만들면서 동시에 중요하게 했던 일이 왼손 젓가락질로 콩을 집는 일이었다. 왼손을 오른손만큼 능숙하게 사용해야 권투를 잘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인공이 한동안 왼손 젓가락질에 매달렸던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왜 또렸이 기억하냐면 당시 내가 권투와 태권도를 섞어 놓은 족보 없는 이상한 격투기를 배우고 있었고, 그때 나는 그 격투기를 잘 하기 위해 권투 자세를 익혀야 했는데, 만약 그 왼손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권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며칠 시도해보다가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형이 왼손으로 능숙하게 밥을 먹는 장면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형에게 늦은 나이지만, 복서로 나가 보라는 말을 해볼까 하다가 참았다. ㅎㅎ) 이후로 나도 가끔 아주 가끔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터치 패드를 조작하는 등 일상에서 왼손을 조금 더 사용하려고 의식하곤 한다. 늦은 나이의 복서는 내가 시도해 볼까나? 대학 시절 학과 교수님 중에 연장자에 속했던 교수님 한 분은 아주 늦은 나이에 아마추어 복서로 데뷔해 조그만 지역 대회에서 상도 받았었다. 당시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는 샌드백이 걸려있었고, 글러브가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었다.


당시 교수님 연세가 몇 이었을지 궁금해서 글을 두드리다가 검색해봤다. 헐! 결과는 무척 충격적이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다니! 당시에 그렇게 늙어 보였는데, 아니 실제로 아주 늙은 교수님이라고 여겼었는데. 내가 벌써 이렇게나 늙어버렸구나.


다시 운동 시작


약 2주 전부터 슬금슬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각종 관절 통증이 가끔 괴롭히고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시작은 아니고, 서서히 몸을 만들어가며 워밍업을 하는 단계다. 요즘은 특히 달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무릎 부상 이후 약 1년 8개월. 그동안 뜀박질을 제대로 못해서 좀이 쑤셨다. 다시 달리다가 또 부상을 당할까봐 무섭기도 했고, 가끔 뛰어야 할 상황에서 유연성과 심폐지구력 때문에 예전처럼 제대로 뛰지 못하기도 해서 이젠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다시 뛰어보니 되더라. 신나서 며칠 연속 뜀박질을 이어하고 있다.


나이키 런닝 앱을 깔았더니 총 거리와 평균 속도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알려줘서 내가 이렇게 달렸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운동장이나 트랙을 도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달리는 것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다. 골목에서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신호에 걸려 멈춰서야 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단조로운 운동장이나 트랙보다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다만 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멈춰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렇게 내 뜀박질 경로와 각 단계의 속도를 알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용량이 큰 뇌를 가진 이유는 달리기 위해서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다.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에 비례해 짧은 시간 다양한 변수에 대비해 빠르게 판단하고 이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잠시 머뭇거린다면 다음 순간 큰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르게 달리면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 내 다음 행보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용량이 큰 뇌가 필요한 거라고 이해했다.


달리기는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인 운동이다. 내 몸(지방)을 태워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것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특히 차량의 흐름과 교통 신호라는 변수에 힘입어 버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모른다.


물론 달리기보다 더 재미있는 운동도 많다! 케틀벨과 바벨과 덤벨과 철봉 등 한동안 장식품이나 빨래 걸이로 사용했던 녀석들을 다시 원래 용도로 사용할 때가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 아마 여름 중반쯤에는 뽐낼만한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술과 관절통증과 야근과 과로라는 장애를 잘 넘어간다면, 아마도)


책, 사고 팔기 그리고 찾기


좁디 좁은 작은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 근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아무래도 좌식 탁자에 오래 앉아 일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책상을 들여놓기 위해 바닥에 탑 무더기처럼 쌓여있던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책정리를 시작하면서 이제 다시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을 팔거나 버리려고 내놓았다. 생각보다 많았다. 불과 2년쯤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싸들고 왔던 책들이었다. 그 2년 사이에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길래 나는 꽤 많은 책들을 정리해서 내놓았을지 궁금하다.


팔 수 있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 매장에 팔아보려고 앱에서 바코드를 찍어보니, 대다수의 책들이 판매불가 상태이거나 팔더라도 1천원 남짓 아주 낮은 가격으로 나왔다. 새삼 이 책들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겨우 그 가격에 내놓아야 하는가 싶어서 도로 책장에 꽂은 책들도 제법 된다. 그래도 책상 놓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책들을 큰 가방 두 개에 우겨넣었다. 몇 년 전에 비해 매입가격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그렇게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알라딘 중고매장을 향했다. 무사히 책을 팔고 또 중고책 2권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런데 직원이 그 중 한 권을 찍어보더니 이전에 구매했던 책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속으로 '구매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내가 사놓고도 기억 못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니지 싶은 생각에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럼 그 책은 빼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책이 읽고 싶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찾아보았다. 팔거나 버릴 책들을 골라내면서 대체로 책들을 훑어봤기 때문에 그 책이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여기며, 내가 놓친 구역이 어디인지 파고들었다.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몇 시간을 책장을 훑으며 집중했건만 그 책을 찾지 못했다.


다음날에도 퇴근 후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전날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놓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다시 꼼꼼하게 찾았다. 그래도 없었다. 그쯤되니 '그래. 분명 내가 그 책을 산 기억이 없는데.' 싶었다. 알라딘에 들어와 구매 목록을 살폈다. 온라인 구매와 중고 매장 구매 내역이 모조리 포함되어 있으니, 만약 내가 이 책을 샀다면 여기 어딘가에 나와있을 것이다.


또 없었다. 구매 목록에 없다는 말은 내가 이 책을 알라딘에서 산 적이 없다는 뜻이다. 분명 2000년 내가 알라딘에서 처음 책을 샀던 목록까지 두번이나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없었다. 이쯤되면 바코드가 잘 못 붙어있었거나, 기계 오류이거나, 직원 실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어느 경우든 나는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놓쳤고, 며칠에 걸쳐 집안 책장을 여러번 뒤지고 알라딘 구매 목록을 두 번이나 뒤지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적어도 서너권은 넘게 읽었을 것이다.


다시 그 중고 매장에 가면 그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직원을 찾아서 따지고 싶은데, 얼굴도 이름도 기억 못 하는데 어떻게 따질수 있을까? 그 책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이젠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렸다.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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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4-2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장 좀 보태면 오늘은 정말 날씨조차 겨울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배운 일에 정신나가 있는 동안, 감은빛님께도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네요.
당연히 아시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지요.
늘 건강 챙기세요^-^

감은빛 2020-04-24 10:28   좋아요 0 | URL
요새 바람이 정말 겨울 바람처럼 차가워요. 일교차도 너무 크구요. 이게 정말 봄날씨가 맞나 싶네요.

처음 배우는 일로 많이 바쁘고 정신없으실텐데, 그 와중에도 책 읽고 글쓰는 모습 보면 신기하고 대단해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2020-04-2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4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4-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구입했다고 나오는 건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산 적이 있는 게 아닐까요? 회원 명을 함께 공유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어느 작가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구입하긴 했는데 집에서 책을 찾아낼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또 구입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도 책 한 번 찾으려면 힘들어서 다시 안 볼 책은 버려야겠다고 다짐을 하곤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아까운 내 자식들 같아서...ㅋ
재택 근무 하시니 좋은 점도 있겠습니다. 장례식장은 저도 적응이 안 되더군요. 참 어려운 장소입니다.
운동하신다니 좋아 보이십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도 좋지요.

감은빛 2020-04-24 10:33   좋아요 1 | URL
패크님, 가족이 제 계정으로 샀더라도 구매목록에는 나와야 하는데, 없어서 뭔가 오류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한동안 자율 출근제로 일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 며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끝났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염려하는 마음


최근 여러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받거나, SNS를 통해 괜찮은지 묻는 연락을 받는다. 한 이삼년 가량 서로 연락을 못하고 지낸 사람들도 있었고, 몇 달 만에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칠팔년 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이들이 자꾸 연락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내 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기에, 최근 내 선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을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분은 아주 걱정스런 눈빛과 말투로 내게 "정말 괜찮으시냐?"고 "너무 힘드실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위로와 격려 몸짓을 전했을지도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해 둘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2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어색하게 대화만 주고 받았다. 이 분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실은 이 상황은 좀 어색했다. 약간 다른 얘기지만 나는 늘 여성들의 공감능력에 감탄하는데, 이 분이 내 상황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신지 몰랐고, 그래서 이 분의 진심어린 걱정에 한 편 놀라웠고, 한 편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들었던 결정을 내렸던 날엔 최근 유난히 가까워진 지인들을 밤 늦게 만났다. 처음에 두어명이 시작했던 술자리는 점점 판이 커져서 나중에는 10명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친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가장 자주 의견 다툼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한 동지는 술집에 들어오자 마자 나를 부둥켜 안고 등을 토닥였다. 갑작스런 포옹에 조금 놀랐지만, 나도 힘껏 그를 안았다. 그 역시 나 처럼 많이 괴롭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어렵고 슬픈 선택을 먼저 내렸던 사람이었다. 


그 날 밤엔 코로나19 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러 사람들과 여러 차례 서로 껴안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울고 웃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평생 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껴안고 울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실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염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한 편으로 너무 낯설기도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친밀함을 공유하는 사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텐데, 가끔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 SNS를 통해 몇 년 만에 한 분이 연락을 했다. 앞에도 썼듯이 그때 이후로 그런 연락들이 많이 오긴 하는데, 이 분은 그리 친한 관계가 아니었고, 잠시 알고 지내다가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그가 갑작스레 건넨 위로의 말은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무슨 말로 답을 써야할 지 몰라서 무척 오래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고, 그날 밤 술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문득 생각나서 폰으로 답을 하려다가 또 답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결국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쓴 답은 그냥 무척 고맙다는 표현 정도였다. 뭐라 더 쓰고 싶었으나 쓸 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이별, 어떤 슬픔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내게 위로와 염려의 마음을 전하는 이유는 최근 내가 공개적으로 어떤 이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게는 그것이 이별이었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랑하는 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것과 함께 동고동락한 8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아니 실은 그 긴 시간동안 마음이 맞는 좋은 인연을 수없이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기에, 한 사람과의 사랑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의 사랑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모든 시작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이었던가! 나는 이 사랑에 끝이 있을거라고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내가 공개적으로 이별을 선언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너무너무 슬프고 아프고 힘들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매 순간 한숨을 내쉬고, 매 시간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덮쳤다. 내 잦은 음주를 자주 걱정하고 잔소리하는 친구는 이번만큼은 "술을 그만 마시라."거나 '술을 좀 줄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속 버리지 않도록 조심히 먹어"라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대 도 내가 술이라도 먹어야 속이 문드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란 걸 짐작했을 것이다.


잘 쓰는 글과 못 쓰는 글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가 쓴 공개적인 이별 선언이 무척 잘 쓴 글이라고 추켜세워줬다. 그 글은 내 가장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풀어쓴 것이었다. 사실 그 글을 쓰기 전에, 그러니까 공개 이별 선언 전에, 이별을 하리라고 마음 먹기 전에, 이별 대신 어떻게든 이것과 함께 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며,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을 때에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그때는 내 글이 꼭 필요한 시기였는데, 나는 이상하게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고, 글이 써지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해야 했었던 말과 써야했었던 글은 아마도 아주 논리적인 글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자꾸만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이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도저히 논리적인 말과 글을 토해낼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이별 선언 후에, 앞서도 말한 최근 급격하게 친해진, 이 일련의 흐름에서 같은 입장을 견지한 소수의 그룹들은 단체로 공개 이별 선언을 다시 쓰기로 했다. 그 글을 내게 써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해서는 더는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대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는 선배에게 요청했다. 그는 바쁘다고 하면서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은 정말 너무나도 잘 쓴 글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대체 누가 쓴 거냐고 궁금해 할만큼 대단한 글이었다. 평소 그 선배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도와줘서, 그 선배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결국 도와줄 이를 찾지 못해 그냥 썼다면 얼마나 망신이었을까? 내 개인의 소회를 담은 글과 여러 사람들이 모인 집단의 입장을 담은 글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입당신청서와 탈당신고서


그렇다. 최근 나는 녹색당 전국사무처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2011년 늦가을부터 녹색당 창당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내가 당을 탈당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실은 도저히 더는 방법이 없다 여겨서 주위 여러 지인들이 이미 탈당을 정해놓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이 이야기는 강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나는 그랬다. 현재 탈당한 많은 당원들 중에서도 나는 마지막까지 당에 남았으면 좋게다. 탈당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랬다. 나는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창당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닌지 8년 6개월만이다. 작년 늦가을 좀 이상하고 수상한 흐름이 느껴진다고 생각한지 6개월만이다. 어! 이러다 이 당이 망하거나 쪼개질 지도 모른다고 여겨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행동해야지 하면서, 그동안 바빠서 못가던 각종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이다. 


그리고 나는 많이 노력했다. 평일 저녁에도 자정 가까이 이어지는 회의들, 주말을 다 바쳐야 하는 회의, 일요일 오후 1시에 시작해서 새벽 4시 40분에 끝난 회의(그것도 대전에서), 또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난 회의(또 대전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회의를 한다면서 카톡으로 10시간 넘게 이어지는 회의들, 심지어 3일 연속으로 짧으면 5시간 길면 8시간 이상 있었던 시간들. 그 외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나왔던 수많은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


탈당신고서라는 문서를 받아놓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문득 녹색당과 함께한 기나긴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참을 멍하니 빈 화면을 쳐다보다가 다른 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까 언급한 개인적인 탈당 소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글은 내가 얼마나 녹색당을 사랑했는지를 구구절절히 밝혀놓은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글이었다고 본다. 짝사랑에 실패한 후에 적은 연애편지.


탈당신고서를 보내면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당에 들어올 때는 입당신청서를 쓰고 당을 나갈 때는 탈당신고서를 써야할까? 어쩌면 신청과 신고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까?


구원투수 등판


작년 가을부터 어떻게든 당을 살려보겠다고 나섰던 내게 남은 것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 사실 작년 늦가을 내가 이 문제를 인지하고 회의 체계에 본격적을 참여하기 시작했을때, 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 중 몇 몇이 이런 표현을 썼다. "결국 저 사람이 등판했네." 저 '등판' 이라는 표현은 마치 나를 구원투수 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친한 지인 중에는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그대로 쓴 사람도 있었다.


그랬다. 부끄럽지만 당시엔 나도 스스로를 마치 구원투수 처럼 여겼다.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판 안에 들어가 같이 노력하다보면 분명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이기도 했다. 그 실마리를 잘 풀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에 구원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투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애초에 내 능려으로 부족한 일이었다. 아니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책임


어쨌거나 나는 실패했고,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부당한 과정과 흐름들에 대한 책임은 언젠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내가 떠나지만 그들의 명백한 잘못은 분명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글이 또 엄청 길어질 것 같다.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이어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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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3-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쉬세요.

감은빛 2020-04-20 18:32   좋아요 0 | URL
거의 20일만에 답글을 드려요.
20일이나 늦었지만, 저를 위해 한 말씀 남겨주신 그 마음,
무척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2020-03-3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동안의 사랑!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그냥 지금은 많은 생각보다는
푹 쉬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감은빛 2020-04-20 18:33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음 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수연 2020-03-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어요 감은빛님, 오래 쉬지 못하셨으니 충분히 휴식 취하시면 좋겠어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건강 꼭 챙기시면서요.

감은빛 2020-04-20 18:34   좋아요 0 | URL
수연님, 고맙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쉬고 싶었는데,
몸은 쉬어도 마음이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더라구요.
다만 많이 먹는 것 만큼은 원없이 먹었답니다.

답이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단발머리 2020-03-3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감은빛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은빛 2020-04-20 18:35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2020-04-18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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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이 빠른 아기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걷지도 못하는 쪼끄만 놈이 말은 어찌나 빨리 배우는 지. 어찌나 얇미웠는지 모른다아이가." 다른 아기들은 이미 걸어다녔을 시기에 나는 걷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가 많은 아기였다는 것이다. 다른 아기였다면 직접 몸을 움직여 했을만한 일을 나는 직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어른들을 부려먹어서 얇미웠다는 얘기다.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 아이 둘을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큰 아이는 꼭 나를 닮았는지 말을 일찍 배웠고, 걷는 것이 느렸다. 그 녀석은 뒤집기도 느렸고, 배밀이도 늦었고, 기어다니는 일도 비교적 느렸다. 그런데 유난히 말을 일찍 배웠다. 녀석 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아기들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데, 녀석은 조금 걸으려고 시도하다가 멈추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나." 라고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서 옮기라는 얘기다. 녀석에게 아빠는 자신을 안아서 옮겨주는 캐리어(이동수단)였다. 그제서야 왜 엄마가 나를 얆미웠다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일찍부터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녀석은 이를테면 행동파였다. 힘이 어찌나 쎈지, 걸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자기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물건들을 번쩍 번쩍 들고 다녔다. 큰 아이와 비교하면 오히려 말이 느린 편이라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큰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아이는 처음에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훨씬 빨리 배운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언니의 존재 때문이었다. 언니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는 달리 자신과 비교적 가까운 존재가 사용하는 언어를 늘 함께 듣기 때문에 말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몸을 쓰는 쪽과 말로 해결하는 쪽 둘 중에 나는 말을 선호하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일종의 성향이나 개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일종의 외국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투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접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들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행연습처럼 가볍게 자판을 두드려 보련다.


2. 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익히는 것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배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냥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 모국어다. 하지만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시 환경이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국어는 공부하듯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그렇게는 잘 익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것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번 생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엿보고, 맛보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


3. 영어와의 첫 만남


역시 시작은 영어였다. 영어와의 첫 만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민학교 때는 여름방학마다 동생과 함께 한동안 외갓집에서 지내곤 했다. 외갓집에 놀러오면 딱 하루 정도만 재미있고, 나머지는 지루했다. 친구도 없고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내 외삼촌만 결혼 전이어서 외갓집에만 오면 늘 막내 외삼촌에게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는데, 어느 날 너무 버릇없이 구는 조카를 견디지 못한 외삼촌이 내게 손찌검을 했고, 나는 또 나대로 화가 나서 어른인 외삼촌에게 덤벼들었던 사건이 벌어졌다. 그 후론 더더욱 방학 때 외갓집에 오면 심심해졌다. 그런 어느 날 외삼촌이 티비를 보고 있는데, 뭔 알아듣지도 못할 말만 잔뜩 나오는 것을 보았다. 화면만 보아서는 뉴스인 것 같았는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알파벳을 국민학교 6학년에 처음 배웠고, "헬로"나 "하우 아 유" 같은 인사말도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배웠다. 그보다 한참 어렸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내가 영어가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당시 막내 외삼촌은 일종의 영어공부로 AFKN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는 그 채널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외삼촌이 없을 때에 그 채널을 찾아 보려고 동그란 두 개의 채널을 이리 저리 따라라락 돌려댔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나오는 채널이 진짜 몇 개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채널의 수는 뭐가 그리 많았는지 동그란 채널의 손잡이를 쥐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그 채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기억이 난다.


주말 아침에는 그 AFKN 채널에서 만화가 나왔다. 배트맨과 슈퍼맨과 원더우먼과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근육질의 아저씨들이 이상한 색깔의 쫄쫄이 옷을 입고 나오는 만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저스티스 리그의 만화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나와 동생은 주말 아침마다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만화를 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재미있었다. 가끔 외삼촌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몇 마디 번역을 해주기도 했다.


4. 공부가 아닌 영어


앞에서 말했듯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중1때였고, 그때부터 영어는 시험과 하기 싫은 공부라는 느낌으로 연결되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시 영어에 눈을 뜬 것은 팝송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성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여전히 영어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 한다는 행위 자체를 워낙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노래를 듣고, 가끔 가사를 찾아보는 것 외에는 영어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온 후에 이제 나도 슬슬 영어 공부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남들은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나 토익, 토플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라 토익, 토플은 시도 조차 할 생각을 못했고, 어학 연수는 가끔 꿈을 꾸지는 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나마 비정기적으로 몸쓰는 일을 해서 용돈을 벌거나,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다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큰 맘 먹고 회화 학원을 다녔던 것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학원에서 만난 여러 선생 중 두 명의 선생이 내게 큰 복이었던 것 같다. 레벨 테스트를 거쳐 처음 만난 선생은 교포 출신 강사였는데, 정말 수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공부가 아닌 익힘의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레벨이 올라가서 만난 여러 원어민 강사들 중에 또 한 명, 내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보다 서너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것 같다. 키가 크고 덩치가 엄청나게 컸고, 옅은 금발 머리칼의 미국 남성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생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같이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졌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읽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자신이 생겼다. 비록 그의 말을 금방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차분하게 그가 원하는 것을 같이 찾아줄 수 있었다. 그 무렵 해운대나 광안리 등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영어를 잘해서 말이 잘 통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해변의 분위기와 약간의 알코올과 약간의 친절함과 조금 자만심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무리는 대학 미식축구팀이라고 했는데, 정말 키가 크고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어쩌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국인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내가 구경하다가 끼어들어서 말렸고, 다행이 주먹다툼까지 이어지기 전에 경찰들이 출동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해 맥주를 권했고,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에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오래 나눴다.


5. 외국어 익힘의 한계


대학에 복학한 후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영어가 멀어졌다. 꾸준히 영어를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들과 영어 펜팔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팝 가수들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팬들의 이메일 주소를 골라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10통을 보내면 절반은 답이 왔고, 길지 않은 메일을 대여섯 차례 주고 받은 후에는 2명 정도만 남았다. 그럼 다시 10통 가량을 대륙 별로 골고루 배분해서 보내기를 반복했다. 내 목표는 꾸준히 대화를 주고 받는 외국인 여성을 각 대륙별로 1명 이상씩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여러 통의 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영어가 얼마나 미천한 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어휘력이 딸려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소화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대륙 별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영어 외에 그들의 문화와 모국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2002년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을 월드컵의 감동이 있었던 그 해, 나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었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 영어 통역으로 자원활동을 신청했는데, 의전팀으로 발령을 받아서 귀빈들 요즘 말로하면 VIP를 주로 모시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남들보다 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유명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의전팀 내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온 후배들도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나서서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의전팀 내의 다른 언어 통역들과 친해져서 여러 나라 말들을 야금야금 조금씩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당시 의전팀에는 4개 언어 통역 자원활동가들이 있었는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였다. 나는 지금도 당시에 배웠던 간단한 인사말 표현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재밌게 지내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영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따라 의전팀에 일이 많았다. 여러 나라 귀빈들이 연달아 방문해서 영어를 잘 하는 후배들이 대부분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 통역 요청이 들어왔다. 한 기자가 동티모르 축구팀 취재를 하는데 통역을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일은 의전팀 업무가 아니므로 거절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 통역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나는 어떻게 등이 떠밀려 통역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 볼만한 수준의 대화가 오갔는데, 점점 국제 정세와 정치적인 내용들이 오가며 내 수준을 한참 뛰어 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국 제대로 말을 옮기지 못하면서 동티모르 축구팀 감독과 우리나라 기자 사이에서 얼굴이 빨개져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되면서 내가 영어를 하겠다고 설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언론사에 일했던 그 기자가 아마 당시의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했을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영어를 향한 내 관심을 아예 끊어버렸다.


6. 중국어


대학 시절 중국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인들을 가끔 접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그룹으로 중국어 스터디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스터디 비용을 마련하면 우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원어민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그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바쁜 학교 생활이 이어지며 점점 스터디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와 나 둘만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에 나 혼자서 그에게 약속한 비용을 다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곧 그 스터디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중국어를 배웠던 그 몇 달이 꽤 재미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의사소통에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꽤나 쌓았다. 그는 "오빠" 라는 발음을 "어빠"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대화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그가 늘 "어빠는 발음이 좋아요." 라고 자주 칭찬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갖고 있다.


한 가지 근거 있는 자만심을 들어보자면 부산 출신이라 중국어 성조에 유리하다. 이건 유명한 중국어 강사(이 사람도 부산 사람)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 나름 근거가 있다 여긴다. 실제로 나는 성조가 헷갈리긴 해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일 큰 한계는 한자다. 우리가 어려서 배운 한자도 아니고, 지금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암튼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중국어를 붙들었다가 다시 그만두고, 다시 붙들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는 그와 함께 공부했던 교재가 있다. 언젠가 독학으로 중국어를 마스터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7. 일본어


지인 중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영향 덕분에 나도 일본 만화를 제법 보았다. 종이 만화책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그림과 함께 성우들의 연기를 듣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한 후배 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를 워낙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인 녀석이 있다. 당시 녀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에반게리온이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정식 발매된 비디오도 아니어서 화질이 조악하기만 했던 그 이십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들을 녀석은 목숨보다도 아꼈다.


그때 그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다 늙어서 그러니까 30대 초반 쯤에 건담에 빠졌다. 컴퓨터에 건담 애니를 잔뜩 받아놓고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본어가 들렸고, 몇몇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몇몇 일본 영화와 다른 장르의 애니에도 관심이 생겼고, 조금씩 조금씩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본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에 머물렀다. 다른 언어는 가끔씩 미치도록 빠져드는 순간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일본어는 그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접한 영상물이 바로 일본어였다. 주위에 일본어를 공부한 친구나 후배들도 많고, 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배우지만, 거기서 한 발씩이도 더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언어가 일본어라고 하더라. 뭐, 나는 그 일정 수준까지도 못 가본 입장이지만,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양가 감정이 든다. 영어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잘 알아듣는 말이 바로 일본어일텐데 말이다.


8. 독일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신승훈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 시작할 때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 bend und am Morgen" 이란 가사 알아듣는 것 외엔 아무런 쓸모도 재미도 없었던 것이 독일어였다. 물론 한 때의 겉멋에 취해 철학을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철없는 시절 얘기였다.


대학에서 맑스(예전엔 마르크스라고 불렀는데, 뭐가 맞는 표기인지 모르겠다.)를 공부하던 선배들이 자본론을 원서로 읽는다는 원대하고도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하던데, 한때 나도 그런 헛바람이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철없는 시절 한 때였을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유람선을 타고 부산항에 들어와 이틀을 머물며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첫날 강연 전까지 꼭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경주까지 그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신입활동가였던 내가 제일 시간이 많았고, 영어를 쪼금 할 줄 아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벽에 부산항으로 마중을 나가니, 그 분이 아내와 함께 유람선을 내려왔다. 아주 젊잖은 노부부였으며, 자신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들 부부와 아침 일찍부터 저녁에 강의 시작 전까지 같이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그들처럼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고, 재생에너지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들을 경주의 유명한 문화재들로 안내하면서 내 짧은 영어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그냥 일상적인 의사소통만 간신히 가능했다. 지금은 관광지에 영어를 비롯한 다국어 안내 책자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던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암튼 그 날 이후로 독일어를 다시 공부해야지 생각했지만, 바쁜 활동가의 삶에 공부라는 사치를 부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독일어 번역가를 만나서 연애를 했고, 그와 결혼을 계획하면서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에 하나가 독일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두어 차례 공부를 하고 왔는데, 여전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다시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고,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와 환경운동의 경험을 쌓고 싶었다. 비록 당장 경제력이 없어서 쉽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젊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산 자락의 괴테 인스티튜트에 등록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아예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문법들은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든 독일에 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역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우리는 각자 일들로 바빠졌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괴테 인스티튜트를 중단했고, 여자친구에게라도 배우겠다던 아니 혼자서라도 조금씩 익히겠다던 다짐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키웠고, 둘째를 낳았고, 키웠고 그리고 이혼했다. 그 긴 시간 어딘가에서 종종 우리는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자던 생각들을 다시 되새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도 너무 바빴다. 게다가 둘 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돈 버는 일 외에도 자기 관심 분야의 다양한 활동들을 놓지 않고 살았다.


최근까지 일부러 독일어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독일어를 생각하면 그때 괴테 인스티튜트를 다니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생각나고, 그러면 괜히 서글퍼져서 그랬다. 몇 달 전에 외국어 공부 어플에서 다양한 언어들을 선택해서 놀면서 독일어를 한 번 해봤는데, 확실히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거라서 훨씬 재미있다 여겨졌다. 


이제 아마도 남은 평생동안 독일에 공부하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방출을 생각하면 여행으로도 독일은 가면 안 될일이다 싶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 독일어 단어와 표현들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련다. 이젠 그런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9. 힌디어


한때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선배 활동가 중에 인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분이 있었다. 그 양반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인도 영화에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의 인도 영화를 접한 후 나는 그 선배보다 더 인도 영화에 빠져들었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들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는 모두 인도영화일 것이다. 이상하게 다른 영화들은 반복해서 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인도영화는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꾸츠 꾸츠 호타 해]는 수십 번 봐서 특정 구간은 인물들의 행동을 다 외울 정도다. 인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힌디어를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정식 개봉한 인도 영화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자막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자막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힌디어를 공부해보겠다고 책을 하나 샀는데, 문자를 보는 순간 그냥 바로 포기했다. 이건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이걸 어떻게 외우고 익힐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냥 문자를 익히는 일은 포기하고 순전히 재미로 발음으로만 힌디어를 조금씩 들여다보며 따라한다. 어쩌다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몇 달 전 외국인 채팅 앱에서 대화를 나눈 인도 여성과 힌디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것과 몇몇 인도 영화와 배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10. 스페인어


지금은 가수도 곡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말에 반복해서 들었던 스페인어 노래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노래가 너무 너무 듣고 싶어져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구절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그 노래를 찾지 못하겠다. 이 바쁜 시기에 이 긴 글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그 노래를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또 사로잡혀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결국 포기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 옛날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는 벌써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고, 지금와서 그 노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앞으로 평생 그게 누구의 노래였는지, 제목이 뭐였는지 궁금해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ㅠㅠ)  


영어와는 또 완전 다른 그 어감이 참 좋았다. 그래서 막연히 언젠가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리마에서 자주 스페인어를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닌데, 잊을만하면 듣고 떠올리게 만드는 빈도라고 해야하나.


애들 엄마와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아직 이혼 하기 전, 같이 살던 시절 그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 영어를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배웠고, 점점 다른 언어들로 관심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지금은 그 후로 또 어떤 언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스마트 폰 언어 익힘 앱을 깔고 위 다른 언어들을 야금야금 배우면서 조금씩 천천히 다른 언어들로 확장해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해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재미있었다. 독일어보다 쉬워 보였고, 프랑스어만큼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속도로 익혀 나간다면 영어를 제외한 유럽 언어들 중엔 스페인어를 제일 빠르게 익힐 것 같다. 조금 찾아보면 콘텐츠 찾기 쉽고 많아서 문화적으로 즐길 요소도 많을 것이다.


11. 인도네시아어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외국인들들 중에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인도네시아 여성이었다. 그를 통해 인도네시아 공용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가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라는 말도 들었다.


호기심에 한 번 시도해봤는데, 발음이 어렵지 않고 문장 구조가 단순해서 익히기가 어렵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특유의 억양과 느낌이 좋았다. 한 번은 무료 인터넷 강의를 몇 개 연달아 봤는데, 강사가 설명을 무척 효과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라 기초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 붙들고 있었던 중국어나 일본어 보다 인도네시아어를 더 익숙하게 여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12. 터키어


채팅 앱을 통해 만난 터키계 독일 여성과 대화하다가 터키어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국어랑 어순이 같아서 금방 배울 거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만 믿고 시도해봤는데, 총체적으로 어렵더라. 발음도 쉽지 않고 단어들이 긴 편이고, 단어의 변화가 무쌍해서 문법부터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손대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냥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니 천천히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만족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는 재미를 즐기려 한다.


13. 프랑스어


한때 좋아했던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서 저 언어는 어떻게 저렇게 섹시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도 불어불문과를 전공해 그나마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는 프랑스어를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순서와 비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 발음은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하다. 조금 노력해봤는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알아듣고, 이걸 어떻게 발음하나 난감할 때가 많다.


다 늙어가는 처지에 가장 섹시한 언어 따위 제대로 익힐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냥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재미 중심으로 보련다.


14. 러시아어


북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언어들을 조금씩 욕심을 내려고 할 때, 문득 든 생각이 그럼 러시아어는? 그랬다. 살면서 한 번도 러시아어를 배워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일단 내지르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바쁜 삶에 워낙 많은 언어를 동시에 찔끔 찔끔 보고 있으니, 가장 나중에 그것도 흥미가 생겨서가 아니라 왠지 러시아어 정도는 한 번씩 봐줘야지 싶은 의무감에 보는 거라서 가장 속도가 느리거나 거의 안 볼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암튼 일단 시작했으니 시작이 반이다.


15. 그래서 어쩌라고?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 제대로 언어는 익히는 일도 아님을, 언어를 익히는 가장 나쁜 방법 중에 하나임을 안다. 그러니 이쯤 와서 내 목표는 저 많은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긴 글을 두드리는 것은 그냥 나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문장을 접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다양한 언어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나도 외국어를 주제로 한 책 한 권 낼 기회가 생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욕심은 마음 속 깊숙히 남겨둔다.



마무리는 요즘 완전 자주 듣는 노래로 하자.



<내용 추가>


16. 몽골어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중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아니면 일본어 뒤에 몽골어가 들어갔어야 했다. 몽골에서 보낸 강렬한 기억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다양한 몽골인들과 소통했던 이야기들. 내 또래였던 몽골 경찰과 밤새 몸짓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 한국, 몽골, 일본 3개 국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교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해프닝들.


테렐지와 고비사막의 멋진 경치들과 고비 사막에서 추위에 떨었던 밤의 기억 등. 짧은 시간에 비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몽골어도 프랑스어, 러시아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의 벽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 키릴 문자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꽤 오랫동안 가장 배우고 싶은 외국어 1순위는 늘 몽골어였는데, 여전히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은 남아 있는데, 진입장벽이 무척 높은 언어이고, 현재 나는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여유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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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0-02-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요즘 읽은 페이퍼 중에 최고인데요. 근데 저 비행기 타고 독일 갈 건데;;;;;; 막 죄스러워졌어요. 제가 아는 선배는 몽골 가서 아주 잘 지내고 있던걸요. 한때 막 좌절하는 선배를 봤는데 몽골어 때문에_ 지금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듯 마구 말하는 걸 보고 역시 언어는 습관이다 했어요.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라로 2020-02-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렇게 다양한 언어를 접해보셨다니 읽으면서 (아이패드로 읽고 있어서) 계속 이 언어가 마지막이겠지,,,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언어도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잘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저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서 늘 찝쩍(?)대다가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자포자기 하는 것 같아요. ^^;;
어쨌든 지금 러시아어를 배우신다 하셨는데 응원합니다! 제 딸아이와 사위 (제가 사위를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ㅎㅎㅎㅎㅎㅎㅎ)는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을 했답니다. 둘 다 러시아어를 하는데 (사위가 더 잘 해요) 서로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위가 딸의 발음이나 뭐 그건 걸 고쳐주려고 하면 자존심 강한 딸이 괜히 기분 나빠하는 뭐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언어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저도 할말이 많네요. ^^;; 하지만 여기까지하고 다음을 기약할게요. 오랜만에 감은빛 님의 글이 반가와 수다가 이어졌어요. 호호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2020-02-2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