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어쩌다 좀비영화를 네 편이나 보고 말았다. 토요일에 두 편, 일요일에 두 편. 모두 넷플릭스에서 보았다. 지난 새벽에 쓴 글에서 소개한 두 편은 인도네시아 좀비영화 [불사의 약]과 필리핀 좀비영화 [아웃사이드]였다. 이번에는 일요일에 본 태국 좀비영화 [지암]과 스페인 좀비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렇게 두 편을 살펴보고, 맨 마지막에는 주말에 연속으로 본 네 편의 좀비영화를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어제 본 두 영화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좀비영화라는 점과 위기에 처한 가족이 좀비 세상을 맞은 이야기 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늘 두 편은 좀비와 싸우는 액션이 주요 내용이란 공통점과 또 제목을 정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지암]부터 보자. 감독 및 배우 정보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자. 찾아봐도 쓸만한 정보가 없었다. 어제 본 두 동남아 좀비영화는 영화 초반에 어느나라 영화인지 궁금해하며 봤다. 필리핀 영화는 초반 대사가 다 영어였고, 그 다음에 나오는 타갈로그어를 전혀 몰라서 감을 잡지 못했었다. 인도네시아 영화는 처음에 분위기만 보고 태국 영화인가 생각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약간 동남아 느낌이 나는 영화는 지금까지 태국 영화 밖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국영화는 액션 영화와 호러 영화를 중심으로 한 십여편 정도를 봤었다. 그런데 대사를 듣다보니 아는 단어들이 들렸다. 어, 이거 바하사 인도네시아 잖아.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건, 말레이시아어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면서 인도네시아 영화 맞구나 했었다.

반면에 [지암]은 맨처음 나레이션을 들을 때부터 태국 영화라고 알았다. 태국어를 알지 못하지만, 태국어 특유의 발음은 알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레이션이 세계관부터 설명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며 해양 생태계가 붕괴되고 전세계는 식량난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정은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하여 근미래를 잘 설계했다고 본다. 실제로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과학기술도 의지도 없다. 매우 빠른 속도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는데, 대부분 그 심각성을 못 느끼는 아이러니한 블랙 코메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태국은 고립된 환경에서 어떤 특정한 한 인물이 식량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었고, 그래서 태국만이 거의 유일하게 잘 살아남았다는 듯한 뉘앙스를 담은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여기서 과거 태국의 이름인 시암이란 단어가 나온다. 태국 정부는 과거 위대한 시암처럼 더 훌륭하게 이겨낼 거라며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듯한 내용이다. 구체적인 단어나 표현을 다를지 몰라도 뜻은 그랬다.

여기서 이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지암은 태국의 과거 이름인 시암에서 첫 글자만 좀비의 Z 를 붙여 만든 제목이다. 즉, 좀비 세상이 되어버린 태국을 뜻한다. 이런 작명법은 뒤에서 다룰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붙인 제목은 영어 제목인 [Valley of the dead] 를 번역한 것이지만, 원제는 [Malnazidos] 이다. 이 단어를 구글 번역에 넣어봐도 뜻이 나오지 않았다. 실제 스페인어에 없는 단어라 당연한 결과였지만, 원제의 뜻이 궁금했던 나는 좀 당황했다. 그러다 저 영화 제목이 시암에서 지암이 된 것을 보고 감이 왔다. 다시 번역앱에 malnacidos 를 넣어봤다. ˝개자식들˝ 이란 욕설이 나왔다. 원어의 어감이 궁금해서 좀 더 검색해보니 영어의 ˝bastard˝ 나 ˝wretch˝ 에 해당하는 욕이라고 했다. 이 욕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최대한 어감이 비슷한 C 자리에 좀비를 뜻하는 Z 를 넣어서 좀비를 향한 욕을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이 두 영화 모두 잘 만든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하며 정한 [죽은 자들의 골짜기] 는 너무 재미없는 제목이다. 원제를 그대로 가져왔다면 더 좋았겠다.

다시 [지암] 으로 돌아가서 조금만 더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주인공들을 살펴보자.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현재보다 퇴보한 근미래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부부, 아니 결혼했다는 언급은 없고, 둘 다 반지를 끼고 있지는 않으니 동거 중인 연인일지도 모른다. 다만 여주인공은 반지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기는 한다. 암튼 이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완전한 빈민가처럼 나온다. 여주인공이 수도 방콕에서도 꽤 큰 규모의 병원 의사인데도 그렇다. 그것도 병원장이 인정하는 유능한 의사인데도? 이건 좀 설정 오류인 것 같다. 이렇게 큰 병원의 유능하고 유명한 의사가 가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망해버린 근미래 세계라도. 아니 오히려 그런 세상일수록 의사는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질만한 직업일 것이다. 의사인 여주인공 린이 가난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남주인공 싱이 돈을 위해 폭력에 노출된 위험한 일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는 설정을 맞춰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무에타이 선수였고, 돈을 위해 불법 경기에도 나갔던 것으로 나온다. 현재도 해안에서 도시로 물품을 운반하는 화물차의 경호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치안이 엉망이라 도시로 들어오는 화물차는 무기를 가진 깡패들의 습격을 받는데, 주인공이 맨손으로 모두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영화가 이 남자와 좀비들 간의 액션을 보여주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린이 일하는 병원에서 좀비가 등장한 이후로는 싱이 좀비들과 싸워 린을 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이 액션 장면들이 썩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에타이는 맨몸 무술이다. 끝없이 몰려드는 많은 수의 좀비를 상대로 맨몸으로 싸운다? 아무리 무에타이 고수라 해도 그게 가능할까? [부산행] 에서 마동석도 맨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기는 했지만, 그는 좀 어설프긴 해도 맨살이 직접 좀비들에게 닿지 않도록 아주 최소한의 방어구(?)를 갖추고 있었다. 아니 하다못해 장갑이라도 하나 끼고 주먹질을 하면 안 되나? 영화마다 설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 좀비에게 물리지 않더라도 상처를 입어도 감염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좀비의 피나 체액이 몸 안으로 들어가도 감염이 된다. 주먹질을 하다가 주먹이 좀비의 이빨에 맞아 살갗이 긁히거나 살짝 벗겨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좀비를 제압하려면 머리를 관통하거나 뇌에 타격을 입혀야 하는데, 맨주먹과 발길질로 한방에 좀비를 제압하기에는 두개골이 너무 단단하지 않은가? 아무리 무술 고수라도 아니 오히려 무술 고수라면 무조건 무기를 들어야 할텐데, 싱은 링거를 걸어두는 쇠꼬챙이를 활용하거나 소화기를 무기처럼 쓰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맨몸으로만 싸운다. 물론 팔꿈치와 무릎을 잘 쓰는 무에타이 특유의 동작들로 조금은 더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명확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좀비는 유난히 약한 것처럼 느껴진다. 좀비의 외모는 아주 흉측하기 짝이 없고, 물고기를 닮아 유난히 가로로 길게 찢어진 입에 아주 날카롭고 큰 이빨을 가진 인상적인 외모의 좀비들이 맨 몸으로 싸우는 단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건 아주 심각한 오류다. 좀비는 머리가 으깨지거나 관통되지 않으면 죽지 않는 불사와도 같은 존재이며 사람보다 강한 힘을 쓰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이 떼로 몰려오니 경찰이나 군인들도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걸 한 사람이 맨 몸으로 상대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곤봉이나 삼단봉 아니 그냥 짧막한 쇠꼬챙이 하나라도 들고 싸웠으면 훨씬 편하게 영화를 봤을텐데.

이외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 전세계가 식량난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느 한 사람 덕분에 태국만 위기를 극복했다는데, 그 방법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다. [설국열차] 처럼 단백질바 라도 개발해서 나눠준걸까? 아닌게 아니라 영화 초반에 유난히 바퀴벌레가 우글우글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불길한 느낌의 생선을 먹고 최초의 좀비가 나타난다는 설정인데, 이것도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바다가 오염되어서 그렇다던가 뭔가 이유가 있었어야 했다. 또 병원에 진입한 특공대가 폭탄을 설치해 건물을 폭파시키는데 이 큰 건물을 폭파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폭탄을 건물 지하에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영화의 가장 절정부에 해당하는 액션 장면에 있다. 옥상에서 진입한 특공대가 중요한 인물을 데리고 헬기로 탈출하려는 장면인데, 주인공 남녀와 특공대가 각자 좀비떼와 싸우다가 마주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감독도 좀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유난히 빠르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이 딱 마주치는 장면에서 싱은 왼쪽 어깨에 총을 맞는다. 총을 든 이들은 특공대 밖에 없으니 이들이 쏘았을텐데 왜 그랬는지,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 직전 장면까지 특공대는 계속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공격받고 있었으니 외모상 싱이 좀비가 아니란 것은 알았을 것이다. 아, 아니 다급하면 헷갈릴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실수로 쏘았다고 해도 좋다. 일단 총에 맞은 것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 다음에 왜 린은 자신의 남편 혹은 연인이라고 특공대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필요하다는 중요인물의 말 한마디 때문에 곧바로 탈출하지 않고 좀비떼와 싸워가며 린을 구하러 왔는데, 왜 린을 지켜주고 있던 싱을 공격하는 걸까? 왜 린은 해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을까? 이어서 특공대의 대장과 싱이 아주 멋있게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핵심인데, 이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왜 둘이 싸우지? 바로 옆에 좀비떼가 있는데,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 말이 되나?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싱은 린을 보호하고 있던 사람인데. 소수의 특공대원들이 차례로 좀비떼들에게 당하고 좀비랑 싸울 사람이 부족한데, 왜 특공대 대장은 굳이 멀쩡한 사람이랑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걸까?그리고 왜 좀비들은 이 둘이 결투를 벌일 동안 습격을 멈춘걸까? 카메라가 둘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에 집중하는 동안 좀비들은 엉거주춤 곁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 순간까지 주위에 있던 좀비들이 모두 제압당하고 잠시 좀비들이 없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면 싸우는 컷들 사이에 주위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좀비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넣어줘서 관객들이 이해하도록 보여줘야 한다. 이건 연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싱이 헬기를 타지 않은 것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처음에 싱이 싸우는 과정에서 물렸구나. 그래서 헬기를 포기하고 그냥 보내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장면들과 맨 마지막 쿠키 영상까지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헬기를 안 탄 거냐고?

아, 이외에도 따지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 시간과 지면이 아까우니 그만하자. 감독은 어쩌면 맨몸 무술이 돋보이는 액션 장면을 멋지게 넣고 싶었는데, 좀비들이랑 싸우는 장면에서는 이게 별로 인상적인 합이 나오지 않으니 특공대 대장이랑 멋진 액션씬이라도 넣자고 생각했던 것일까? 암튼 여러모로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아서 아쉬운 영화였다.

이제 다음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로 넘어가자.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만약 좀비가 등장했다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했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하면 이란 가정에서 출발하는 드라마 [킹덤] 시리즈가 연상되었다. 드라마 상에서 정확한 시점이 제시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은 일어나기 전이 배경일거라고 생각했었다. 또 실제 역사가 아닌 문학작품에 좀비를 등장시켜서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도 생각났다.

스페인 내전은 내전이라 부르지만, 유럽 전체에서 많은 나라들이 참전했었고, 전체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공화제 민주주의 등이 부딪힌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을 배경으로 좀비물을 만들다니 이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이 영화를 보기 전 내 생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기대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독창성과 장점을 괜찮게 살린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라고 해서 원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마누엘 마르틴 페레라스라는 작가가 2012년에 쓴 [Noche de Difuntos Del 38] 이란 소설이란 것 외에 다른 정보는 찾지 못했다. 아, 게임이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는 여러모로 만듦새가 썩 좋지는 못한데, 원작 소설은 인물들을 잘 살리고 스페인 내전이란 복잡한 시대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다.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은 좀 독특한 인물 구성이다. 일단 주인공인 한 로사노 대위는 전형적인 전쟁영화 혹은 액션영화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을 대변하는 변호사 출신 군 법무관이다. 실전 경험이 없어 손이 부드럽고 깨끗하다는 묘사가 나온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많이 배운 인물(다른 말로 먹물) 답게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리고 눈치도 빠른 편이라 흐름을 잘 읽고 일행을 이끌어간다. 파시스트 진영의 꽤 높은 직책의 간부이지만, 프랑코와 그 세력에 대해서는 다소 불만이 있는 듯하다. 그의 동생은 공산주의 세력에 복무하고 있다는 대사도 있었다.

여주인공은 공산주의 진영의 의용병으로 마지막까지 이름은 나오지 않고 다만 타락한 사제 즉, 성직자를 죽였다고 사제 킬러라고 불린다. 그 사제가 자신의 어린 여동생을 건드려서 죽을만큼 어떤 벌을 준 것처럼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를 사제 킬러 라고 부르지만, 자신이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잘 싸우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맨 마지막에 좀 뜬금없는 로사노 대위와의 애정 행각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영화니까 넘어가주자.

공산주의 진영의 리더는 철도 노동자 출신 중사이다. 이 인물도 이름이 안 나왔던 것 같다. 약간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으나,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꽤 괜찮은 지휘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패색이 짙은 이 전쟁의 판도를 잘 읽고 있으며, 적이라도 불필요한 희생은 줄이려는 생각이 있다.

비중은 좀 적었지만 멋있는 인물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파시스트 진영의 무어인이자 무슬림인 라피르 일병이다. 저격수로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맨 마지막에 행방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아마 무사히 살아남은 것 같다. 마지막에 열차 위를 뛰어다니며 가장 크게 활약하는 인물이다.

다른 한 명은 공산주의 진영의 행동대장 같은 위치에 있는 미겔 안드레우 라는 인물이다. 정규군이 아닌 의용병이라 계급은 없다. 늘 다이나마이트와 성냥을 갖고 다녀서 성냥이라 불린다. 입대 전에 오토바이 경주로 유명한 레이서였다. 아내와 갓난 아기였던 아들이 파시스트 세력의 폭격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에 폭탄이 잔뜩 실린 차 안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자폭한다.

이외에도 로사노 대위가 데리고 다니는 어린 운전병이자 정비병이 있고, 중간에 합류하는 파시스트 진영의 간부(중위?)가 한 명 있고, 사나운 성질의 수녀도 등장한다.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체격이 크고 힘이 쎈 소련 출신 의용병이 비교적 초반에 좀비에게 당하고, 미국인 사진 기자도 퓰리쳐 상을 노리고 조작 사진을 찍으려다가 좀비에게 당한다. 그리고 공산당에서 직접 파견나온 것으로 보이는 참모(?)도 등장하는데 전형적인 원칙주의자이며 꽉 막힌 인물이며, 그에 알맞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영화에서는 좀비 사태의 원인을 나치 독일로 설정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결혼식이 열리는 작은 시골마을에 독일군이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살하는 끔찍한 모습이다. 여기에 어떤 파란 가루가 포함된 가스를 살포해 좀비를 만들었다. 이후 로사노 대위와 공산주의 진영 중사 일행이 만나고, 비록 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이 나온다.

전쟁을 치루는 군인들이니 당연히 총으로 무장했고 덕분에 좀비들을 상대로 제대로 잘 싸운다. 물론 많은 수가 끝없이 달려드는 좀비를 상대로 탄약이 모자라는 등 차례로 당하기는 하지만, 이번 주말에 본 좀비영화 네 편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제대로 싸웠다. 그리고 서로 적으로 목숨 걸고 싸우는 군인이지만,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올랐다. 중반 이후에 조금만 더 인물을 잘 살리고, 결말을 제대로 연출했다면 훨씬 더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크다.

이 영화의 만듦새가 이렇게 좋지 않은 건 아마 제작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비들이 정말 하나도 무섭지 않고 별로 긴장감도 들지 않는다. 좀 더 예산을 써서 제대로 좀비들을 꾸미고, 연기자들도 좀 더 잘 지도했다면 훨씬 그럴듯한 장면들이 나올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이 영화의 어설픈 결말 부분은 시나리오 자체가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직전 장면까지 잘 싸웠던 일행들이 유독 마지막에 멍하니 있거나 도망만 다니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 전투에 임할 때 어마어마한 좀비떼가 덮쳐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터널 입구를 막아놓지 않고 그냥 터널로 들어온 것과 터널로 진입하기 직전에 잔뜩 쌓여있는 보급품 상자들에서 총기와 탄약을 보급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는 장면 등은 명백한 오류다.

자, 이제 주말에 몰아본 좀비영화 네 편을 종합적으로 비교해보자. 일단 좀비영화니까 좀비 얘기부터 하자. 네 개의 영화 중에 가장 형편없는 좀비는 필리핀 영화 [아웃사이드]의 좀비다. 느리고 전투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주인공 가족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이 좀비들은 좀비로 변하고 직전에 한 말로 짐작되는 짧은 말을 반복한다. 사람을 보면 바로 습격하지 않고 먼저 말을 한다. 이렇게 예의바른 좀비라니!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면, 필리핀은 좀비예의지국이라 불러야겠다. 그 다음 한심한 좀비가 등장하는 건 태국 영화 [지암]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정체모를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어서 그런지 물고기처럼 입이 가로로 넓게 찢어져 날카로운 이빨들이 강조된 외모는 정말 흉측하기 짝이 없는데, 변변한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주인공 한 명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은 참 답이 없다. 아무리 상대가 주인공이라 해도, 그 주인공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밀라 요보비치도 아닌데, 단 한 명을 상대를 못 하다니!세번째로 무기력한 좀비는 마지막에 소개한 스페인 영화 [죽은 자들의 골짜기] 좀비들이다. 이 좀비들도 느리고 떼로 덤비는 것 외에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나마 이 정도로 점수를 준 건 마지막 장면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가 덤벼들어 군대를 완전히 박살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가장 강력한 좀비는 인도네시아 영화 [불사의 약] 이다. 이 좀비들은 일단 엄청 빠르게 뛰어다니고, 물린 후에 좀비로 변하는 속도도 빠르다. 결국 한 마을을 완전히 장악했고, 아마 머지않아 나라 전체를 아니, 바다를 건너 다른 섬으로 옮겨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카르타가 있는 제일 큰 섬만은 장악할 것이다.

다음은 좀비가 되는 원인이다. 어차피 좀비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원인을 무엇으로 돌리던 설득력을 객관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 단순히 작중에서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 라는 점을 살펴보자. 네 작품 중에 [아웃사이드]는 좀비 발생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미 좀비 세상이 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무엇을 원인으로 두더라도 어차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어려울테니 아예 원인은 언급조차 안 하는 전략이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하겠다. 그럼 가장 설득력 없는 좀비 발생 원인은 바로 [지암]이다. 무언가 정체를 알수 없는 생선을 먹고 좀비가 되는데, 이게 무슨 생선인지 왜 그런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럼 이 세계관에서는 불안해서 아무런 생선도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설득력이 약한 원인은 [불사의 약] 이다. 이 불사의 약이 어떻게 작용해서 좀비가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건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네 편 중에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 이다. 실험을 통해 만들었다는 설정은 앞의 [불사의 약]과 같지만, 여기에서는 나치 독일이란 존재가 더해져 더 무게를 실었다. 요 좀비 발생 원인 부분은 언젠가 시간날 때 더 많은 작품을 두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다음은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매력으로 평가해보자.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지도 포함해서 보겠다. 가장 매력을 잘 살리지 못한 인물들은 [불사의 약]이다. 나름 독특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거기서 더 잘 펼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에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면서 프로포즈를 하고, 그 와중에 그걸 받아주는 황당한 연출이 나온 젋은 연인의 경우 이럴 거라면 애초애 왜 이렇게 비중을 높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지암]이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꼴찌로 생각했었다. 사실 세계관 설정은 열심히 했는데, 인물 설정은 오류 투성이다. 이유는 앞서 얘기했으니 반복하지 않겠다. 꼴찌였는데, 3등이 된 건 이 영화가 조금이라도 나아서가 아니다. 제법 흥미로운 설정의 인물들을 너무 살리지 못한 [불사의 약]이 너무 괘씸해서 순위를 내렸다. 그 다음 2등은 [아웃사이드]이다. 여기도 너무 과도하게 남편의 형에게 집착하고, 아이들에게 좀 냉담한 아내라던가, 어릴적 학대를 당했던 고향집에 너무 쉽게 집착하는 남편이라던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이긴 한데,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는 방향성만은 잘 살렸다고 본다. 마지막 그래도 괜찮게 인물들을 살린 영화는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이 이야기도 위에서 했으니 반복하지는 않겠다.

마지막으로 다른 요소들 다 제쳐놓고 순전히 재미의 측면에서만 보고 평가해보겠다. 일단 [지암]을 가장 낮은 순위로 두고, 그 다음에 [아웃사이드]를 두겠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아웃사이드]가 가장 잔잔하고 어쩌면 지루한 이야기이고, [지암]은 반대로 재미있을만한 액션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지암]이 그만큼 액션을 잘 살리지 못한 측면도 크고, [아웃사이드]의 이야기가 그만큼 신선한 접근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다음으로 [불사의 약]을 2위로 두겠다. 작은 시골 마을에 좀비가 나타나 마을이 그야말로 완전히 망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담았다. 물론 아쉬움이 많은 영화지만, 살짝 내려놓고 보면 그나마 볼만하다는 생각이다. 네 편 중에 그래도 재미를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는 건 [죽은 자들의 골짜기]이다. 결말의 전투 장면이 너무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래도 꽤 재미있었다.

어쩌다 우연히 [불사의 약]을 본 것을 시작으로 주말을 좀비영화 네 편과 함께 보내 버렸다. 넷플릭스가 이후로 [아웃사이드]를 추천해주더니, [죽은 자들의 골짜기]와 [지암]까지 보여주면서 좀비 주말을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나 [지암]을 앞부분 한 1/3 정도 지점까지 보다가 그만두었었더라. 병원에서 싱이 린을 구하기 위해 좀비들과 싸우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당시에도 나는 좀비들과 무에타이 전사의 액션 장면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서 딱 그만둔 것을 보면. 저 위에서는 맨몸으로 싸운다는 걸 강조해서 지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인공 혼자 싸운다는 것도 문제다. 좀비는 쉴 새 없이 떼로 덤비는데, 이에 혼자 맞서서는 도무지 승산이 없다. 어떻게든 동료를 모아서 팀으로 맞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들을 놔두고 특공대 대장과 일대일 결투를 한 것은 이 영화 최대의 실책이다.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너무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 역시 폰 자판으로 글을 두드리는 일은 어렵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한번 오타가 난 글자는 수십번 반복해도 계속 같은 오타가 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폰 자판도 엄청 빠르게 잘 치던데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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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1-13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비영화의 경우 영미 영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안 보는 걸 원칙으로 삼아서 넷플에 가끔 태국이나 타국 좀비영화가 소개되긴 하지만 안 보게 됩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좀비영화도 잘 안보기기에...ㅎㅎ 28일 후, 28주 후, 좀비랜드 정도 되는 작품들을 보다보면 다른 나라 작품은 재미가 없더라구요. 몇번 시도는 해 봤지만 보다가 그만 두게 되더군요..ㅎㅎ

감은빛 2026-01-14 03:07   좋아요 0 | URL
야무님, 말씀하신 [28일 후], [28주 후], [좀비랜드] 이 세 작품 모두 저도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28년 후]는 조금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트릴로지 중 첫 영화라고 하니 감안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대하고 봤던 [좀비랜드: 더블탭] 는 정말 기대를 많이 해서 그랬는지 실망이 컸습니다.

저는 영미권 영화 중에도 B급, C급 영화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중간한 영미권 영화보다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않은 다른 언어권, 다른 문화권의 영상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 글에도 쓴 것처럼 저는 야무님과 반대로 영미권 영화나 우리나라 영화였으면 오히려 안 봤을 것 같아요. 글에서는 비판을 많이 했지만, 저는 언급한 네 작품 모두 보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불사의 약]과 [아웃사이드]

넷플릭스에서 좀비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았다. 날은 춥고 감기 기운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보니 뭔가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웠다. 암튼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볼만한 영화가 뭐 없나 생각하다 고른 영화가 [불사의 약]이었고, 이걸 다 보고 나서 영화 정보 페이지에서 유사한 영화라고 보여주는 영화들 중에서 [아웃사이드]가 눈에 띄어 클릭했다. 둘 다 딱 시간 때우기 괜찮은 영화였다. [아웃사이드]는 살짝 지루한 면이 있는데,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아서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둘 다 좀비영화이지만, [아웃사이드]는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좀비 때문에 망해버린 세상에서 불화로 깨어질 위기에 처했던 한 가족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다룬 이야기다. [불사의 약]은 좀비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작은 마을 하나가 좀비로 초토화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기도 불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족이 나온다. 그러네. 이 두 영화가 좀비영화이기도 하지만, 위기에 처한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먼저 보았던 [불사의 약] 부터 이야기 해보자.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 영화다. 처음에는 분위기만 보고 태국영화인가 생각했다가 대사를 듣고 인도네시아 영화라고 알아차렸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인도네시아 말을 익히곤 했었다. 원제는 [Abadi Nan Jaya] 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이라고 나온다. 영어 제목은 [The Elixir] 이다. 엘릭서는 연금술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로 불로장생의 약을 의미한다고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했던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그건 넥타르 라는 이름의 신들이 마시는 음료였다.

영화는 한 제약회사에서 만든 시제품을 두 명의 회사 중역에게 배달하라고 지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한 명은 사장이고, 다른 한 명은 영화 맨 뒷부분에 등장하는 사람으로 아마도 상무이사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 시제품이 바로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이다. 제약회사의 사장은 이제 회사를 매각하고 은퇴할 예정인 노인이었다. 이 약이 배달되는 날은 공교롭게도 회사 매각을 결정하는 서류에 사인을 받기 위해 사위와 딸이 방문하는 주말이었다. 그리고 이날 사장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 촌장 집에서는 무언가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고,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잔치에서 음식을 나르고 설겆이를 하는 젊은 여성 한 명이 이 마을 파출소에서 일하는 젊은 경찰에게 삐진 상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사장 가족에게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처음에는 얼굴들이 낯설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이 가족 좀 독특한 구성이었다. 사장의 현재 아내는 사장의 딸과 어려서부터 절친이었다. 언제인지 시점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장의 아내가 죽고 나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것이다. 대화를 보면 사장의 딸은 당연히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고, 경어를 쓰지도 않는다. 딸은 절친이 자신의 아빠와 결혼한 후로 마음의 문을 닫고 말도 섞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남들에게 말할 때에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사장의 아들, 그러니까 딸의 오빠도 이 현재의 사장 아내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다. 여동생의 친구라서 당연한 걸일까? 오직 사장 딸의 남편, 즉, 사위만 장모님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원어에서는 달리 부르는 걸 번역 자막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사장 딸과 그 오빠가 모두 이 아내의 이름이나 애칭을 부르는데, 사위는 그러지 않는다. 영화 초반 최고의 갈등 요소는 이 두 사람의 불화이다.

사장은 회사에서 보낸 시제품인 약을 먹었고, 잠시후 흰머리가 검게 변하고, 주름진 얼굴이 펴졌다. 젊어진 것이다.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고, 나중에 다른 가족들도 모두 놀란다. 사장은 이 약 덕분에 젊어지자, 회사를 매각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가족들에게 전한다. 이 젊어지는 약으로 대박을 터뜨릴 거라고도 했고, 늙은 몸이 다시 젊어졌으니 은퇴할 생각이 없어질만도 하다. 하지만 평생 일을 해본 적도 없고 아빠 재산으로 고가의 장난감이나 사 모으고, 게임에 빠져 사는 아들은 반발한다. 회사를 팔면 아빠가 자신에게도 돈을 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 이 회사의 공장 중 하나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위와 딸도 반발한다. 알고보니 사위는 이 회사를 매입하려는 다른 회사의 여성과 외도한 것으로 나온다. 딸은 사위와 이혼하고 이 회사를 판 돈으로 자신의 사업을 할 계획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사장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그대로 매각을 했다고 해도 그 돈을 자식들과 사위에게 나눠줬을까?

딱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제목, 불사의 약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이후로는 그냥 좀비가 생기고, 퍼져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불사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맨 먼저 불사의 약을 먹었던 사장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며, 좀비로 변하고 그 집 고용인들과 가족들을 공격한다. 우왕좌왕하다가 고용인 한 명이 물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피를 뒤집어쓴다. 그리로 아들을 물려고 하다가 아들 손에 들려있던 석궁에 머리가 관통되어 움직임을 멈춘다. 영화의 제목인 불사의 약을 먹었는데, 좀비가 되어버린 것인다. 어쩌면 좀비를 불사의 존재로 볼 수도 있을까? 이 영화와 이따 다룰 영화 [아웃사이드] 모두 하반신과 분리되어 상반신만 움직이는 좀비가 나온다. 거의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머리를 제외한 다른 신체가 분리되어도 죽지 않는다. 오직 머리를 공격했을 때에만 움직임을 멈춘다.

이후의 내용은 좀비가 점점 퍼져가고, 주인공 일행은 좀 바보같이 억지로 살아 남는다. 파출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초반에 잠깐 등장했던 젊은 여성의 남자친구가 경찰이라서 활약을 좀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 파출소의 경찰들과 또 구조요청을 받고 지원을 나온 이웃 파출소의 경찰들 모두 아무것도 못 하고 손쉽게 좀비들에게 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에 주인공 일행 세 명이 파출소에서 보호장비들을 착용하고 총기와 방패 등을 챙겨 나서는 장면이 나올 때, 이제서야 좀 속 시원하게 싸우는 장면이 나오려나 했는데 아니었다. 이들은 너무도 무기력하게 수많은 좀비들에게 포위되고 아무것도 못 하다가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내려 겨우 살아남는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개연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답답하고 무기력하다. 애초에 불사의 약이란 개념 자체가 현실성이 없고 이걸 먹었는데 왜 좀비로 변하는지도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으니,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 안에서 나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물리 법칙이 작용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다. 전체적인 전개가 좀 많이 답답한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은 모습이다. 맨 마지막에 약간 신파로 빠질 것 같은 장면이 나오는데, 다행히 아주 짧게 쿨하게 넘어가더라. 이거 하나는 칭찬할 만하다.

인도네시아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라 전반적으로 답답한 상황이었어도 그냥 봤다. 만약 우리나라 영화나 영미권 영화가 이 모양이었다면 그냥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감독이나 배우 등의 정보를 조금 찾아보기는 했는데, 우리말로 된 정보는 많지 않았고 익숙치 않은 인물들이라 그냥 넘어가야겠다. 내용은 많이 유치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은 대부분 다 좋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작은 시골마을 하나만 좀비가 퍼진 상황인데,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자 대도시에 살고 있는 이 제약회사의 또 다른 중역, 맨 처음에 시제품을 보낸 또 다른 인물에게 배달된 약병이 비워진 모습을 카메라가 클로즈 업하며 보여준다. 곧 대도시도 좀비 세상이 될 예정이다.

다보고 나니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생각난다. 연상호 감독이 이후에 만든 [반도]를 완전히 말아먹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규모의 이야기를 디테일을 살려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여기서 욕심을 부려 큰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영화는 한 작은 시골마을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라, 한 편의 촌극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촌이 시골이란 의미의 촌이 아니란 걸 굳이 밝혀야 하는 걸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이 영화는 작은 이야기라서 그나마 그럭저럭 봐줄만한 영화였다고 본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이 감독이 연상호 감독처럼 이 영화 이후의 내용, 그러니까 도시에서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거나 나라 전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라면 누군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 대화를 주고 받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있는데, 그에게 대신 좀 전해달라고 할까? 한국의 연상호 감독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자, 이제 두 번째 영화로 넘어가자. [아웃사이드]는 필리핀 영화다. 맨 처음 티비 화면으로 결혼식 장면을 비출 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라서 이게 어느 나라 영화인지 알 수 없었다. 결혼식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준 후에 한 가족이 어느 시골 빈 집, 낡은 빈 집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저택이라 부를만한 집에 도착하는 장면 부터 시작한다. 아, 여기서부터 좀 한 숨이 나온다. 이제 시작인데, 이 영화 호흡이 너무 느리다. 주인공 가족의 아빠가 공구 하나 들고 이 집을 살피는데, 느릿느릿 너무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이 가족은 중년의 아빠와 엄마 그리로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큰아들과 한 여덟살이나 아홉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아들까지 네 명이다. 이 집은 아마 아빠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으로 보인다. 아빠는 자신의 부모님을 찾으려고 아주 천천히 집을 살핀다. 이층 침실에서 먼저 아버지를 발견한다. 손목에 좀비에게 물린 자국이 보이는 오른손에 권총을 쥐고 있다. 죽은지 그리 오래 되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오른손에서 은색 권총을 빼내고, 왼손에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시계를 빼낸다. 슬퍼하는 기색은 전혀없다. 혹시 아버지가 아닌가? 모르는 집을 찾아온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방을 나와서 초첨이 아직 그에게 맞춰져 있어서 뒤쪽 배경이 흐릿하게 보일때 사람인 듯한 형체가 잡히고, 곧이어 그가 ˝엄마˝ 라고 불렀을 때 내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이 좀 이상했다. 눈에 흰자위가 없이 검은색으로 채워졌고, 관자놀이 쪽에 뭔가 뽈록뽈롤 돋아올라 있었다. 전체적으로 낯빛이 어둡고 수척한 모습이 딱 좀비였다. 그리고 엄마가 말을 했다. ˝미안해˝ 잠시 후 또 미안하다고 반복했다.

그렇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말을 한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대화하거나 사람과 대화하는 건 아니고, 한 두 마디 말을 그냥 끝없이 반복한다. 아마도 죽기 직전에 한 말을 계속 반복하는듯 보인다. 아니 그러니까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한 말. 이 엄마는 누군가 좀비에게 물리고 자신이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자신의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손목을 물었겠지. 그 남편은 침대 위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주 긴 시간 왕래가 없었던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영화는 좀비영화이지만, 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좀비는 한 마디의 대사를 한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단역 배우로 좀비 역을 맡았다면, 좀 당황했을 것 같다. 좀비라 당연히 대사 없이 이상한 소리만 내면 될 줄 알았는데, 한 줄 뿐이지만 대사가 있다니! 좀비인데 이 대사 감정처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죽기 직전 대사니까 슬프게? 아니면 왜 하필 나야 하는 심정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야하나?

주인공 남자 엄마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첫번째 좀비이고, 두번째 좀비는 철책으로 길을 막아놓은 곳에서 등장한다. 모래주머니로 쌓은 참호 안에서 나온 군인 좀비는 통행증을 보여달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무척 신사적이다. 다른 영화의 좀비들은 사람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달려들어 물기 바쁜데, 이 좀비들은 절대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아주 예의 바르게 먼저 말을 건다. 그것도 천천히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준다. 마치 이런 것 같다. ˝나 좀비야. 나 여기 있어. 내가 지금은 여기 있는데, 곧 너를 물어뜯으려 달려들 예정이야. 그러니 잘 대비하고 있어. 나 곧 간다.˝

나중에 등장하는 많은 좀비 무리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데, 그중에 신부 아니 목사라고 해야하나? 암튼 성직자가 있었다. 이 성직자 좀비는 신이 어쩌고 하는 상대적으로 긴 대사를 반복한다.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지만, 성직자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근데 성직자 좀비라니 좀 재미있는 모습이었고, 게다가 설교를 반복해 말하는 성직자 좀비라니 아주 참신한 설정이었다. 그외 몇몇 좀비들은 피하라고 하거나, 저쪽이라고 방향을 알려주는 등 어쩐지 마지막 순간이 그려지는 대사들을 갖고 있었다.

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 좀비가 죽기 직전 한 마디를 반복한다는 설정은 꽤나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아까 소개한 영화 [불사의 약]에 거의 주인공 비중으로 나오는 젊은 연인은 마지막에 함께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프로포즈를 하는데, 남성이 반지를 꺼내 여성의 손가락에 힘들게 끼워주고 손을 맞잡은 채,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게 각자 여러 좀비들에게 뜯어 먹히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좀비가 된 이 연인이 이쪽 영화로 넘어오면 이 두 좀비는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 고백을 하는 아주 로맨틱한 좀비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저쪽 좀비와 달리 이쪽 좀비는 상대적으로 외모도 덜 혐오스럽다. 어쩌면 남녀 모두 외모가 괜찮은 배우를 섭외해 사람들을 홀리는 역할로 해도 재미있겠다.

앞의 영화도 답답한 측면이 많다고 했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 가족의 상황 자체가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태다. 영화 첫장면에 비디오 녹화 장면으로 나오는 결혼식은 이 부부의 결혼식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을텐데, 첫째 아들은 남편의 아이가 아니고 남편의 형님과 아내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아들이다. 영화 중간에 둘째가 첫째랑 같이 옛날 사진첩을 보다가 삼촌(우리식으로 부르면 큰아버지)과 형이 닮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부러 캐스팅을 그렇게 했겠지만, 첫째를 연기한 배우도 아빠를 연기한 배우랑 거의 안 닮았고, 중간에 짧게 나오는 아빠의 형으로 나온 배우랑 닮았다. 그리고 첫째가 지금 청소년인데, 아내는 여전히 남편보다는 그의 형을 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이 부부는 긴 시간 불화를 겪고 있고, 그 와중에 좀비 사태가 터졌다. 여기서 더 화가 나고 짜증나는 건, 찌질한 남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다. 그는 둘째는 아들로 대하지만, 첫째는 마치 남의 집 아이 대하듯 한다. 또 아내는 남편한테 너무 지친 나머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은 바깥이란 뜻이다. 남편은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던 집으로 가족들을 데려왔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갇혀있곤 했던 지하실에 들어가면 여전히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고, 땀을 비오듯 흘린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죽고 없는 이 집에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아내와 첫째 아들은 이 집에 언제까지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고 하루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을 찾아 대피소로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내는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남편의 형이 북쪽으로 대피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집착하고, 첫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북쪽으로 간다고 해서 역시 북쪽에 집착한다.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이 집에 계속 머물 것인가? 대피소를 찾아 위험한 밖으로 나갈 것인가?

남편의 아버지는 사탕수수 농장주였다. 집 바로 옆에는 닭장이 있어서 매일 계란을 먹을 수 있다. 농장주였던 부모님이 식량을 좀 비축해두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먹거리 걱정은 덜하다. 그리고 펌프로 깨끗한 식수도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그럼 사실 굳이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대피소를 찾아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모든 상황들보다 가장 큰 장점, 좀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곳이다. 이 좀비 세상에서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까? 영화 후반부에 부상당한 군인 한 명이 도움을 청하러 온다. 그는 이 집에서 차로 반나절 떨어진 대피소에서 왔다고 했다. 보급품을 구하러 군인들이 나섰다가 좀비들의 습격에 모두 죽고 혼자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도 아내와 첫째는 집을 나서서 대피소로 가려고 한다. 아마도 일개 분대 규모는 되었을 군인들이 몰살당했는데, 차량도 무기도 없이, 대피소의 위치도 모른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앞의 영화처럼 이 영화에도 개연성이 떨어지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제법 있다. 답답한 측면들도 꽤나 있다. 그나마 앞의 영화는 줄창 좀비들과 부딪히며 빠른 전개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흐름도 너무 느리다. 좀비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긴장 요소인데, 이것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기에는 그 힘이 좀 약해 보인다. 이 영화도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았다. 아역들도 나쁘지 않았다. 영화 후반에 아내와 첫째가 단 둘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둘이 약간 서먹한 듯 하면서도 서로의 정이 느껴지는 모습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괜찮은 장면이라 본다.

필리핀 영화도 인도네시아 영화 만큼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맛이 느껴진다. 필리핀어? 아니 타갈로그어 라고 해야하나? 암튼 이 언어는 아는 단어가 전혀 없지만, 대사에 영어를 굉장히 많이 섞어써서 알아듣기가 편했다. 이 영화도 감독과 배우들 정보를 찾아보기는 했으나 딱히 얘기할 만한 내용이 없어 넘어가자. 아, 한 가지. 아내인 아이리스 역의 배우는 이름이 뷰티 곤잘레스라고 영어로 쓰여있었다. 영화 시작할 때도 읽었고, 끝나고 배역이 올라갈 때도 확인했다. 아마도 곤잘레스가 성인 것 같은데, 그럼 이름이 뷰티인가? 혹시 필리핀에서는 혹은 사람 이름이 때는 다르게 발음할까? 그럼에도 이름의 철자가 아름답다는 단어와 완전히 같다는 건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아름 이란 이름을 많이 쓰는구나. 어쩌면 그리 어색한 이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 번에 몰아서 본 두 영화가 평소 접한 적이 거의 없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라는 점, 둘 다 좀비영화라는 점 등이 재미있어서 북플 앱을 열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폰 자판으로 이렇게 긴 내용을 두드린 내 자신을 칭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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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11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사의 약‘을 먹고 ‘좀비‘가 된 건 방향은 틀리지만 불사라는 결과는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1-14 02:5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의 말씀이 딱 제 생각입니다.
제목은 좋았으나, 그 만큼의 완성도를 만들지 못한 것이 아쉽더라구요.

카스피 2026-01-1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남아산 좀비영화라니 좀비도 세계화가 되나보내요.내용만 읽어도 무척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6-01-14 02:56   좋아요 0 | URL
영미권 국가들에서 비영어권 국가들의 영화나 문학을 잘 접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국가들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적은 것이 사실이죠. 저는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다양한 문화권, 언어권의 작품들을 편견없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척은 아니지만, 제가 글에 적은 것처럼 신선한 느낌도 있고, 볼 만 합니다. ㅎㅎㅎㅎ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 영화 [악의 꽃]


넷플릭스 시리즈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1을 재미있게 보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죽음을 무릅쓰고 게임을 벌여야 하는 이세계를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 데스 게임을 벌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들이 돈 때문에 어쩔수 없이 데스 게임에 참여했다면, 여기 등장인물들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자신이 어떻게 온 지도 모른 채 데스게임에 강제로 참여하도록 강요받는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이 게임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고 참가했다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탈락자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여기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등장인물들도 어느 순간 갑자기 이상한 세계로 옮겨와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탈락자가 곧바로 죽는 모습에 놀라고 겁을 먹는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시즌 1 공개일이 2020년 12월이었고, [오징어 게임] 첫 공개일이 2021년 9월이었다. 내용과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게임을 이겨 살아 남아야 한다는 데스 게임을 펼치는 내용의 드리마가 한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약 9개월 사이에 차례로 공개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오징어 게임]은 원작이 따로 없는 창작물인데, 이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원작인 만화를 각색해서 만든 시리즈였다. 원작은 아소 하로 라는 작가의 [임종나라의 앨리스] 라는 만화다. 


[오징어 게임]은 처음에 1개 시즌으로 완결이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워낙 큰 인기를 얻어서 후속 시즌 제작이 결정되었고, 감독이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고려하다가 두 번째 시즌을 두 개로, 그러니까 시즌 3까지 제작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시즌 3까지 다 본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감독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것이라고 본다. 시즌 2에서 등장인물들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라도 넣어야 하니 분량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하나의 시즌으로 완결을 짓지 못해 시즌을 하나 더 늘려서 시즌 3까지 가져갔는데, 그 결과가 너무 기대에 못 미치게 나왔다. 그에 비해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처음에 시즌 2에서 완결되는 것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시즌 3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좀 의외였다. 이미 시즌 2에서 완벽하게 결말이 나왔는데, 여기서 더 무슨 할 이야기가 남았다고 후속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세 번째 시즌도 [오징어 게임] 세 번째 시즌처럼 아주 처참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주인공들을 다시 보더랜드로 돌려보내 죽음의 게임에 참여시키기 위해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전혀 개연성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끌고 간 이후의 게임들도 썩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시즌 1과 2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보더랜드로 갔던 것은 운석 충돌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사상태에 빠졌기 때문으로 나오는데, 시즌 3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보더랜드로 왔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니 그러니까 여주인공 우시기와 남주인공 아리스가 왜 갔는지는 다소 억지스럽게 보여주는데, 두 주인공과 함께 게임을 펼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설명이 없다는 얘기. 이번에는 왜 한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보더랜드 라는 곳은 사람들이 죽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을 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 겪게 되는 어떤 세계라고 나온다. 게임에서 탈락하거나, 비자를 연정하지 못하고 소멸당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가사상태에 빠져 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이라는 것. 죽음의 게임들을 거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결국 가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가 된다. 아, 게임을 끝까지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데, 하나는 이 보더랜드의 국민으로, 그러니까 더는 비자를 연장하지 않아도 되는 영주권을 보장받는데,대신 다음 체류자들이 오면 죽음의 게임을 준비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 살아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서 없이 [오징어 게임]과 비교해가며 시즌 별로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썼는데, 이제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 알아보자. 감독은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와 [킹덤] 시리즈의 사토 신스케이다. [아이 엠 어 히어로]를 인상적으로 봤었고, '킹덤' 시리즈 중에서는 첫 영화인 [킹덤]만 봤었다. 이 '킹덤' 시리즈는 원작 만화가 아주 큰 이야기일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원작 만화 등장인물들의 외모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모습들이 거슬려서 후속 영화들을 더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주인공 아리스 료헤이 역은 야마자키 켄토가 맡았다. 사토 신스케 감독의 '킹덤' 시리즈의 주인공도 이 배우가 맡았다. 여주인공인 우사기 유즈하는 츠치야 타오가 맡았다. 시즌 1의 주요 인물들인 아리스의 친구들과 시즌 2에서 활약하는 비치의 여러 인물들까지 소개하려고 찾아보니 인물들이 너무 많다. 배역과 인물 소개는 그냥 패스하자.


이 시리즈의 내용이 죽음을 걸고 게임을 치루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차례로 등장하는 게임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게임들을 클리어 하면 트럼프 카드를 한 장 받는다. 이 카드의 모양과 숫자에 따라 게임의 정체성과 난이도를 추측할 수 있다. 카드 모양에 따른 게임 분류는 다음과 같다.


1. 스페이드: 체력전. 신체 능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2. 다이아: 지능전.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3. 클로버: 단체전.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

4. 하트: 심리전.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게임


트럼프 카드에 들어가있는 숫자는 각 게임의 난이도를 의미한다. 숫자가 높을 수록 난이도가 높아 탈락자가 발생활 확률이 높아진다. 참가자들은 카드의 종류와 난이도에 따라 비자 만료 이전에 게임에 참가해 비자 만료일을 연장시켜 놓는 것이 좋다.


시즌 1은 독특한 설정과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도쿄의 모습 등 시각적인 모습들이 인상적이어서 흥미로웠고, 게임들도 이야기 전개에 적절하게 잘 맞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시즌 2는 본격적으로 '비치'라는 집단과 보더랜드의 국민들이 드러나는데, 이야기가 갑자기 확 팽창되는 느낌이 드는 것에 반해 제시되는 게임들은 시즌 1만큼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다. 비치의 수많은 등장인물들도 제각각의 쓰임을 다하지 못한 채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조금 아쉽다. 그럼에도 전체 이야기를 잘 갈무리해서 크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완결을 지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반면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시즌 3은 애초에 만들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진행에서 자꾸 구멍이 보이니 몰입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 세 번째 시즌에서 그나마 좋았던 것들은 새로운 등장인물들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배우가 타마시로 티나였다. 모리카게 레이 라는 배역을 맡아 '좀비 헌트' 게임에서 처음 등장했다. 


드라마를 모두 본 후에 이 배우가 궁금해 찾아보았다가 한참 나중에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 [악의 꽃]을 보았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였다. 유명한 시집의 제목이라 눈에 띄었고, 내용이 궁금해서 보았다. 이 영화도 만화 원작이 있었다. 나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이거 원작 만화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루고 영화의 기본 정보부터 살펴보자.


감독은 이구치 노부로 라고 한다. 혹시 이전 연출작 중에 아는 작품이 있나 봤는데, 내가 본 것은 없었다. 남자 주인공인 카스가 타카오는 이토 켄타로가 연기했다.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연기력이 제법 좋았다. 여자 주인공인 나카무라 사와는 타미시로 티나가 연기했다. 이 배우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 에서의 모습 때문에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같은 반 친구이자 초반에 비중 있게 나오는 사에키 나나코는 아키타 시오리가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서 중간부터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점점 더 집중력이 떨어졌다. 아무리 청소년의 일탈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상식적인 선을 아득히 넘어서는 모습이다. 물론 세상 어딘가엔 이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로 보여지던 사에키 나나코 조차도 어느 시점부터 이유를 알 수 없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는 그냥 평범하게 공감할만한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아무것도 없이 보았지만, 원작 만화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거대한 괴물 눈동자가 등장한다. 이런 연출은 원작 만화가 있는 경우에 사용한다고 느꼈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 원작을 각색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던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일단 초반에 중학생이었던 주인공들이 갑자기 고등학생으로 넘어가서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되는 토키와 아야(이토요 마리에가 연기함)의 분량이 애매하고, 크게 공감할만한 사건 없이 문득 여자친구 자리를 꿰어 차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영화의 분량 상 원작 만화의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으니, 이렇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 인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특히 후반에 카스가가 나카무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이 토키와도 함께 가는데, 왜 함께 가는 것인지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원작 만화는 단행본 11권으로 완결된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는 거의 망작이라 여길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의외로 원작 만화는 평이 좋고 판매량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겠지. 어느 정도 유명하고 평이 좋았으니, 영화로 만들어졌겠지.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원작이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이번에는 정말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모르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좀 미친 인간들이 미친 짓을 막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할 수 있겠다. 얘네들이 교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숲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있는 여름 축제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등 이 아이들의 미친 짓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스가가 나카무라를 찾아갔을 때 함께 갔던 토키와 까지 셋이서 미친듯이 서로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왜? 이 영화에 계속 좀 어중간한 수위의 폭력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그런 장면들도 언제나 설득력이 없었는데, 이 장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그 다음 장면에서 카스가와 토키와가 기차역에서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보면 이 아이들의 옷이 마치 새 옷처럼 깨끗하다. 바닷물에 빠지고 모래사장에서 뒹굴었던 아이들이 어떻게 몇 시간 후에 저렇게 깨끗한 모습으로 기차를 기다릴 수 있을까? 옷 뿐 아니라 얼굴도 머리도 너무 깨끗했다. 그냥 이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 세계인가? 셋 중 누군가가 마법사라서 마법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쿠키영상에 혼자 해변에 남은 나카무라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카무라 역시 깨끗해진 옷과 얼굴, 머리카락을 보여준다. 아니 방금 바로 그 해변에서 셋이서 미친듯이 서로 물에 빠뜨리고 쓰러뜨리며 난리를 치고는 왜 금방 다시 깨끗해졌어? 혹시 그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 상상이나 꿈인가? 감독의 의도는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현실에서 세 명이 어딘가에서 씻었다면,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을 이유가 없고, 만약 옷까지 세탁한 거라고 한다면 적어도 하루 이상 시간이 더 흘렀어야 했다. 하긴 이런 걸 굳이 따지고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이 초반부터 끝까지 이렇게 말이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굳이 뭘 결말을 두고 쓸데없이 개연성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영화에서 사에키가 토키와를 보고 누군가와 닮았다는 말을 해서, 실제 배우들은 하나도 안 닮았지만, 작중에서 토키와가 나카무라랑 닮은 설정인가 생각했는데, 나무위키 원작 만화 설명에 그렇다고 나오더라. 이걸 영화에서 제대로 연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저렇게 대사 하나로 넣으면 과연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타마시로 티나를 보려고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연기를 미친 듯이 잘 하더라. 그 살벌한 눈빛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영 별로였지만, 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아침 일찍부터 알라딘 서재에 접속해서 과거에 내가 쓴 글들을 많이 찾아 읽었다. 2011년에서 2013년 사이에 꽤 괜찮은 글들을 썼더라. 특히 '시와 함께 읽는 추억' 게시판의 글들은 '이달의 당선작'에 많이 뽑혔더라. 운이 좋았거나, 이달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분의 취향에 우연히 잘 맞았거나 그랫을지도 모르지만. 


브런치에 글을 한번 써볼까 생각 중이다. 그런데 뭘 쓸까?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연재하듯이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무엇을? 이라는 단계에서 막혀버렸다. 조금 더 고민해보고 해가 바뀌면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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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31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리스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일본 추리작가 야리스가와 아리스네요.말씀하신 작품은 만화로 예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드라마로 보아도 무척 재미있을것 같네요.

감은빛 2026-01-14 02:50   좋아요 0 | URL
아, 추리작가 이름이기도 하군요. 나중에 한번 찾아볼게요.
일본은 참 만화 원작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 것 같아요.
최근에 우리나라도 웹툰 원작 영화나 드라마가 많죠.
그런데 문제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원작 만큼의 수준을 살린 작품이 잘 나오지는 않는 듯 합니다.

페크pek0501 2026-01-01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리스 인 보더랜드], 이것 찾아봐야겠군요.
요즘 브런치에 글 쓰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응원합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하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6-01-14 02:52   좋아요 1 | URL
페크님께서도 올해 하시는 일 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에 대해 계속 고민 중입니다.
일단 뭐가 되든 시작해보자는 생각 중이구요.
지금 조금 여유가 없는데, 곧 시도해봐야죠.
 

노래가 좋아

재작년 그제 쓴 글을 엊그제 북플로 읽었었다. 북플의 지난 오늘 코너를 보다보면 평소엔 글이 없거나 소수의 글이 있는데, 신기하게 요맘 때는 과거 오늘 쓴 글들이 좀 있는 편이다. 연말이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더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무렵, 그러니까 한 이십여년 가까이 전에는 아이들과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로 적었었고, 중간에 꽤 긴 시간동안은 거의 글을 안 썼다가 한 칠팔여년 전부터 다시 간간히 글을 썼었다. 암튼 엊그제 다시 읽을 글은 아마 서너개쯤이었다. 한 십오년쯤 전에 쓴 글은 작은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때 추운 날씨에 아가인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있었던 얘기들을 적어 놓았더라. 그 전후로 책 이야기를 쓴 해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맨 처음 얘기한 재작년, 그러니까 23년에 쓴 글이었다. 그 글에 몇 가지 주제가 담겨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곧 있을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란 내용이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한동안 내가 노래를 꽤 잘 한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무대 경험 두 개를 적어 놓았다. 둘 다 대학시절이었다. 그때 정말 뼈저리게 내가 결코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니 오히려 한참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리고 또 적어 놓았던 건 졸업 후 환경단체에 들어가서 첫 신입활동가 교육에서 불렀던 노래. 그 노래 덕분에 친해진 동기이자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형님이 있었고, 그 형이랑 같이 일하다가 알게 된 사람과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나는 결혼으로 이어준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야기도 그 글에 간략하게 적었더라.

그 다음으로 재작년 엊그제 시점에서 곧 있을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부를 노래를 준비할 예정이라 적었었다. 그 글에서 말한 그 송년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긴 시간만에 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호흡이나 발성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으나 큰 실수는 없었고 노래를 들었던 청중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 특히 노래가 후렴구에 이르렀을 무렵 누군가 불을 꺼버렸고, 사람들이 저마다 폰을 열어 손을 들어 머리 위로 흔들었다. 딱 거기 쯤에서 아주 살짝 음이 흔들렸었는데, 그렇게 불을 꺼줘서 사람들 얼굴이 안 보이니까 좀 더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사람들이 흔드는 폰 불빛만이 밝으니 분위기도 더 살아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더욱 분위기에 심취하게 되었으리라.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는데, 아마 한 칠팔년 전쯤 두음으로 고음을 부르는 법을 배워 익혔다. 그 후로도 꾸준히 더 고음을 부를 수 있도록 연습했고, 어떻게하면 좀 더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 덕분에 한 사오년 전부터는 두음을 좀 더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경험도 쌓였고, 남성 음역대에서 어지간한 고음의 노래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잘 부르는 것은 다른 것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기를 원하지만, 나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주로 듣는 음악과 부르는 음악이 다르다는 것. 평소에 내가 주로 듣는 음악은 외국 노래들이다. 젊었을 때는 주로 영미권 팝 음악을 주로 들었고 최근 몇 년은 주로 일본과 중국 노래들을 듣고 있다. 아주 가끔은 평소 잘 들어보기 어려운 다른 여러 언어의 곡들도 일부러 찾아 듣는다. 우리나라 가요는 일부러 듣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손이 가지않는 느낌이다. 특히 내가 부르길 좋아하는 락 성향이 강한 곡들은 더 자주 듣지 않는 편이다. 어떤 노래를 잘 부르려면, 그 곡을 많이 자주 듣고 잘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새로운 노래를 통 익히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주로 90년대 노래들이다.

그나마 최근에 2000년대쯤의 유명한 락발라드 몇 곡을 배워 익혀서 조금 익숙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노래들마저도 지금 시점에서는 한참 옛날 곡이 되어버렸다. 뭐 사람이 옛날 사람이니 노래가 옛날 노래인 것은 어쩔수 없나 싶기도 하다. 아주 가끔은 주로 듣는 일본 노래나 중국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서 연습을 해보는데, 중국노래는 가사를 다 외우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 한계에 부딪혔고, 일본 노래는 상대적으로 가사는 외울만했다. 그럼에도 영어 노래처럼 익숙하게 부르기는 어렵더라. 생각해보니 그나마 내가 가사를 좀 외우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부를 수 있는 외국 노래들도 죄다 옛날 노래들 뿐이다. 영어 노래들도, 일본 노래들도, 정말 불러보고 싶어서 열심히 가사를 공부해봤던 중국 노래도.

저 맨앞에 언급한 글에도 썼었는데, 주위에 노래를 잘하는 지인들이 많다. 거의 가수처럼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도 두어명 정도 있고, 한 분은 오래전부터 투쟁 현장 작은 무대들에서 노래를 불러온 분이기도 하다. 이 분들과 어울리다보니 과거와 달리 계속 겸손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불러보면 꽤 괜찮다 싶다가도 나중에 이 사람들이 부르는 걸 들으면, 역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각할 수 있다.

가수가 되어 본 꿈

오늘은 아니 어제는 초저녁부터 잠이 와서 졸면서 영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그러다 일찍 잠이 들어버렸다. 도중에 두어번 깼는데, 금방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가 아까 두 시쯤 완전히 깼다. 잠에서 깨기 직전에 꾼 꿈에서 나는 가수였다. 곡을 쓰려고 하는데, 어떤 지점에서 막혀있었고, 어느 작은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 특정 지점에서 내가 원하는 발성이 나오지 않아 전반적으로 꿈 속의 나는 뭐든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연습실을 같이 쓰는 어느 밴드와 같이 연습을 해보았고 꽤 괜찮은 피드백을 받고, 이제 준비했던 그 공연 무대에 올라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아무리 작은 무대여도 관객은 많았고, 너무 떨리고 긴장이 되는 와중에 이제 리허설을 하러 가야하는데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더니 점점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없게 되었다. 한참 괴로워하다가 이게 꿈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고 멍하니 있다가 엊그제 읽었던 그 글이 생각나 이 꿈이랑 연결해서 글을 써야겠다 싶어서 폰을 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는데, 오래 전에 골방에서 혼자 소설 습작을 하던 시절에 끄적였던 글 중에 밴드를 중심에 두고 쓴 글이 있었다. 키도 크고 멋진 외모의 기타리스트와 천재라 불리는 베이시스트, 그리고 드럼은 음 드럼은 기억이 안 나네. 글의 주인공은 평범한 외모에 노래 실력도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어떤 특유의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보컬이자 세컨 기타였다. 여기에 밴드의 주변 인물들과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성,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 그리고 기타리스트의 팬들, 베이스 연주자의 팬들. 막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이 얽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니 자꾸 디테일에서 막혔다. 실제 밴드를 해본 적이 없으니 혼자 골방에서 아무리 애를 써봐도 구체적인 묘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전에 노래패를 해보기는 했지만, 분위기와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통기타를 쳐보기는 했지만 전자기타를 쳐본 적이 없어서 주인공인 두 기타리스트의 행동 묘사에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은 나중에 밴드를 한번 해보고 써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평생 밴드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다. 장담할수는 없겠지만, 남은 인생에서도 밴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다 늙어가는 처지에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들테니.

갑자기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졌으나, 이 새벽에 그럴 수는 없는 법. 얼른 잠이나 다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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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30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래도 잘 하시고 중국어도 공부하신다니 중국 노래 추천 2탄 들어갑니다.
1.她来听我的演唱会(그녀가 내 콘서트를 들으러 왔어요) - 张学友 - 4대 천왕인 장쉐요우 노래는 듣기도 좋지만 따라 부르기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사실 一千个相信的理由가 더 유명합니다.
2.传奇 (로맨스)- 王菲 - 대만이 등리쥔이면 대륙은 왕페이라고 할 만큼 대륙의 자존심입니다. 노래가 다 좋습니다. 红豆,微风细雨 도 좋아요.
3.刚好遇见你(마침 그대를 만나) - 李玉刚 - 리위강의 원곡도 좋고 펑티모의 여성스러운 노래도 좋습니다.
4.可惜不是你(당신이 아니라 아쉬워요) - 梁静茹 - 이 가수 노래 중 勇气도 좋아요
5.隐形的翅膀(숨겨진 날개) - 张詔涵 - 뮤직 비디오도 좋아요

감은빛 2026-01-14 02:4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두번째 노래 추천 정말 고맙습니다!
연말 연초에 제가 좀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직 다 들어보지는 못 했어요.
조만간 다 들어보고 저번처럼 글 하나 남길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페크pek0501 2026-01-01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럼을 배우고 싶었는데 팔에 테니스 엘보, 병이 있어서 팔을 많이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포기함. 그런데 12월에(벌써 작년이군요.ㅋ)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음악회에 갔었는데 클래식, 이었음에도 드럼을 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황홀했어요. 다른 악기와 함께 연주하는 건데 제 귀에는 드럼만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그리고 큰 북 소리도 어찌나 좋던지... 물론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와 연주하니 더 좋게 들렸겠지만 아무튼 멋졌어요. 뭔가 잘한다는 것을 부러워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을 습작,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군요. 디테일 때문에 작가들이 자기 경험을 소설에 쓰는 경우가 많을 듯합니다.^^

감은빛 2026-01-14 02:48   좋아요 0 | URL
와! 페크님. 드럼 너무 좋죠. 얼른 테니스 엘보가 나아서 드럼을 배우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기타를 조금 배우다 말았고, 이후로 긴 시간 손을 놓고 있어서 이젠 코드도 많이 잊어버렸지만, 언제나 다시 시작하면 금방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꼭 소설이 아니라도 글을 계속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 꼭 기회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하루종일 외국어랑 놀기

뉴스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고 하더니 어제랑 오늘 정말 춥다. 오늘은 진짜 하루종일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고 지냈는데, 그럼에도 춥다. 이 낡은 집은 단열 효과가 거의 없어서 집안에 있어도 밖이랑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추워도 너무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하루종일 있었다. 중간에 계속 고민을 하긴 했다. 운동을 하러 나가볼까? 달리기를 좀 해볼까? 그러다가도 그냥 화장실만 다녀와도 너무 추워서 다시 이불 안에 쏙 들어가서 꼼짝도 못하고 말았다. 책을 좀 읽으려고 펼쳤는데, 이불 속에는 좀처럼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손이 나오면 손이 시렵고 이마가 나오면 이마가 시렵다. 온 몸이 모두 이불 속에 들어가 있어야 그나마 견딜수 있다. 결국 책은 포기.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는 것도 포기.

어제 밤에 일찍 잠들어서 그랬는지 새벽에 깼다. 얼굴 통증이 좀 있어서 일찍 깼는지도 모르겠다. 악몽 비슷한 꿈을 꾸기도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통증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눈을 감고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있으니 통증이 더 강하게 느껴져서 폰을 가져다 언어 익힘 앱을 열었다.

무슨 일이든 매일 똑같이 열심히 하기는 어렵다. 내가 아무리 외국어랑 노는 것을 좋아해도 매일은 쉽지 않다. 사실 꽤 오랫동안 좀 건성으로 임했다. 그동안 소홀했던 것이 마음에 걸려 최근 며칠간은 다시 제대로 해봤더니 새삼스레 재미를 느꼈다. 최근에 새로 깔아본 여러 개의 앱들 중 무료로도 적당히 쓸 수 있는 앱들을 골라내느라 이것저것 시도를 좀 해봤던 것이 다시금 언어 익힘의 재미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유료 결제를 안 하면 사용하기 어려운 앱들을 골라 지우는 것으로 시작해 여러 앱들을 이용해 외국어랑 놀기 시작했다. 새로 설치한 앱들 외에 오랫동안 써왔던 앱들, 그러나 하루라도 안 들어오면 난리치는 듀오링고 외에 꽤 오랫동안 접속도 하지 않았던 앱들을 모두 한번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앱에서는 영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일본어로, 또 다른 앱에서는 중국어로 놀다보니 거의 하루가 다 갔다. 중간에 배를 채우기도 했고 아주 잠깐 졸다가 깨기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모두 외국어랑 놀았다. 도중에 인도네시아어와 독일어를 손을 대보고 싶어서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한동안은 이 세 언어에 좀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여유로운 날이 아니면 하루에 세 개 언어를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그러면 또 한동안 잊어버릴테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잘 동하지 않는다. 일단은 이 세 언어를 좀 더 잘 할 때까지 다른 언어들은 좀 참아보자.

일본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익히려는 건 한자 때문이다. 어차피 일본어를 공부하려면 한자를 알아야하는데, 한자를 따로 공부하면서 다시 중국어에 손대는 건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어는 꽤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는데, 최근에 영어를 너무 안 써서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 익힘 앱까지 11개의 앱으로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어랑 놀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맞추는 것도 있고, 일반적인 강의를 듣는 것도 있다. 네이티브 어린이 기준의 아주 쉽고 짧은 글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있고, 단어나 표현을 암기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도 있다. 대체로는 문제를 푸는 것이 많다. 며칠 전에 쓴 글에 인공지능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 현실에 대한 내용을 적었었는데, 나도 한 이삼일 정도 인공지능과의 외국어 대화를 즐겼다. 최근에 설치한 앱 중 두 개가 무료 버전에서도 일정한 분량의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제공하고 있다. 유료 결제를 해야만 대화 기능을 제공하거나, 처음 한동안만 제공하고 나중에는 결제를 꼭 해야하는 앱들은 모두 삭제했다.

한 이삼일 인공지능과 외국어 대화를 해보며 느낀 것은 인공지능들이 아첨을 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칭찬을 계속해줘야 이 앱을 지속적으로 더 많이 이용할테니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겠지. 그걸 잘 알면서도 인공지능이 내 외국어 실력을 칭찬하면 순간순간 우쭐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다. 한 일본어 익힘앱의 인공지능은 지속적으로 내 발음을 칭찬했다. 사실 일본어는 상대적으로 발음이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발음이 막 그렇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다니. 참. 또다른 앱에서는 영어로만 대화를 했는데, 이 인공지능은 내가 설명을 잘 하는 편이라고 계속 칭찬했다. 이 둘 말고 지워버린 다른 앱들도 비슷했다. 이렇게 계속 칭찬을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인공지능의 대화 방식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추운 날 이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나에게 누군가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 대화라는 것이 너무 뻔하고, 별로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직접 그 나라로 가서 네이티브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수 없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그나마 괜찮은 대안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여러 업체에서 이렇게 앱들을 만들어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거겠지.

한동안은 외국어랑 노는 재미에 좀 더 빠져 지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놀면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도 익힐수 있으니, 알고 있는 단어와 표현들을 사용해볼 수 있으니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마지막으로 놀았던 앱에서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대화하면서 내가 오늘 하루종일 세 개의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에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비교해가며 어떤 상황인지 대화를 나눴다. 영어는 가장 오랜 시간 공부했고, 한때는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그후로 긴 시간 다 잊어버려 이젠 다시 어려운 언어가 되어버렸다. 일본어는 가장 늦게 시작한 언어이지만, 오래전부터 보고 들어온 경험이 있어서 가장 빠르게 익히고 있는 언어다. 가끔은 영어보다 더 쉽게 원하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중국어는 가장 익히기 어려운 언어. 배운지 오래되었지만, 아주 가끔 중간에 생각날 때 짧은 시간 다시 들여다보다가 다시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언어. 이 인공지능이랑 영어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새삼 내가 지금 이 정도의 단계에 머물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에게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한자를 사용하며, 같은 한자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던 내용을 덧붙여본다. 이 글을 쓸때 언젠가 다락방님 서재에서 우유를 여러 외국어로 쓴 댓글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예시를 우유로 먼저 들었다.

Milk is 우유(牛乳) in Korean. In Japanese, ぎゅうにゅう(牛乳) is milk. It‘s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different. In Chinese, milk is Niúnǎi(牛奶). It‘s also the same character, but Chinese people changed it to be simpler. The pronunciation is also different. It‘s so interesting that these three nations use the same character, but the pronunciation is so different.

There are so many words like this. For example, ˝exercise˝ is 운동(運動) in Korean. It‘s うんど(運動) in Japanese. It‘s Yùndòng(运动) in Chinese, and it‘s the same character in Korean and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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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12-28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인공지능한테 칭찬을 받으시다니...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닌지요...ㅋㅋ

잉크냄새 2025-12-28 11:28   좋아요 2 | URL
오호! 인공지능이 칭찬한다는 건 왠지 가스라이팅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ㅎㅎ

감은빛 2025-12-30 11:49   좋아요 1 | URL
페크님, 인공지능한테 받는 칭찬은 좀 묘하더라구요. 설마 사랑에 빠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실재하는 인간은 아니니까요.

감은빛 2025-12-30 11:50   좋아요 1 | URL
잉크냄새님,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자신의 앱을 더 많이 자주 쓰라고 하는 것일테니까요.

cyrus 2025-12-29 0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독서 모임에 가면 AI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들을 만나게 돼요. 철학을 독학하는 지인은 독서 모임 자료를 만들 때 철학 개념을 간결하게 정리한 AI를 많이 참고했답니다. AI가 내용을 정리하는 속도가 빠르고, 답변도 잘 해주니 조만간 종이책을 안 읽고도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예요. ^^;;

감은빛 2025-12-30 11:51   좋아요 1 | URL
시루스님, 그렇더라구요. 어디를 가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다는 걸 느낍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지만, 그 결과물을 맹신하거나,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