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안내 + 외국어

아마 6월 중순 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 있어서 급히 가야할 상황이었다. 갑자기 덩치가 큰 남성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가왔다. 아마 동남아쪽에서 오신 분일거라고 짐작했다. 이 동네는 관광지와 거리가 먼데, 어쩌다 혼자 여기서 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나 싶었다.

그는 내게 ˝익스큐즈미˝ 라고 말을 걸었다. 길을 물으려는 것 같아서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다가섰다. 그의 한글 지명 발음은 서툴렀다. 두어번을 다시 물어본 후에야 인천의 어딘가 숙소를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인천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동인천의 몇군데 근대문화유산과 월미도 등을 제외하면 거의 가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대중교통으로 인천을 가는 법을 얼른 떠올리지 못했다. 어쩔수없이 나는 인천이 여기서 아주 먼 곳이며, 거기까지 가는 법을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랐다.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앱으로 검색해서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그가 택시를 타거나 누군가 다른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무사히 숙소를 찾아갔기를 바란다.

떠올려보면 부산에 살 때 외국인들에게 길안내를 많이 했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주로 놀았던 곳이 해운대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만났다. 가끔은 그들과 친해져서 함께 해변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런 것들도 다 경험이라고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보이며 다가갈 수 있다. 그때 만난 분으로서는 날 만난 것까지는 행운이었을 수 있는데, 너무 엉뚱한 장소에서 만났다. 아니 내게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론 운이 나빴다.

과거 오늘 쓴 글들

페이스북처럼 북플도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알려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닌데, 신기하게 그게 같은 날짜인 경우가 가끔 있더라.

오늘 알려준 글은 2개인데, 8년전 쓴 글과 3년전 쓴 글이다. 8년전에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 일어난 일들을 쓰면서 그 증상을 난치병 혹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난치 혹은 불치라고 표현했듯이 여전히 이로 인한 해프닝이 생기곤한다. 이제는 이걸로 생긴 각종 곤란하고 난처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 하나를 낼만한 분량이 될 것 같다. 오래전에 엄마를 못 알아보고, 여동생도 못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런 내용이 뷰티 인사이드 라는 드라마에 나오더라.(물론 나는 단 한번씩이었지만, 드라마에선 아예 다른 사람들을 전혀 못 알아본다는 설정으로 항상 못 알아봄) 또 언젠가 전유성 씨의 딸이 띠비에 나와서 ˝아빠가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본다.˝ 고 말했던 걸 봤는데, 막상 화장하고 다니는 큰 아이를 길에서 마주쳤다가 못 알아볼 뻔 했다. 언젠가 우리 딸들이 ˝아빠는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봐요.˝ 라고 말할까봐 겁난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3년전에 쓴 글은 독립운동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 세 분에 대한 이야기로 이 분들의 삶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도 이젠 제법 오래전 일이다. 이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딸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반영했고,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나면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해서 소설로 써야지 하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3년전에 소설로 나왔다. 내가 구상했던 것과는 살짝 촛점이 다르긴하지만.

우리나라는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아주 많은 역사를 잃어버렸다. 미군정에 의해 제대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그대로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오히려 계속 쫓기고 탄압받는, 독립이 아닌 일본과 미국이 바통 터치만 한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수많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묻히고 잊혀졌고, 수많은 친일파들이 많은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그것을 누리고 있다.

역사를 잊은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더 늦기전에 잃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친일파들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들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폰으로 글을 쓰다보니 어제 완성하지 못하고 하루를 넘겨버렸다. 그래서 여기 소개한 글들은 8년전과 3년전 어제 썼던 글들로 정정한다.

오늘도 기분좋은 근육통으로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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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육통으로 시작하는‘과 ‘기분좋은‘을 병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콜라를 마셨더니 콜라만 먹고 취하던데요? ㅎㅎㅎ

덕분에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한 턱...

페크(pek0501) 2020-07-1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으로 글쓰기 불편해서 어떻게 쓰십니까? 짧은 글도 아닌데 말이죠.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합니다. 근육통도 날려 버릴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실수1


지난 주였다. 아침에 겨우 피곤을 물리치고 일어나 힘겹게 씻으러 갔다. 급하게 서둘러 씻고, 이제 면도를 하는 중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급한 연락이라 씻다 말고 한참을 통화하고 급하게 옷을 입고 나갔다. 회의 시간이 간당간당해서 뛰었다. 간신히 회의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해 회의를 했고, 회의를 다 마치고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뺨과 턱과 양쪽 입술 옆의 수염은 다 밀었는데, 콧수염을 덜 밀었다. 아예 안 깎은 것은 아니고, 위에서 내리는 방향으로 한 번은 밀었는데, 밑에서 올리는 방향으로 다시 여러번 조심조심 밀어야 하는데, 그때 하필 전화가 왔고, 전화를 끊자마자 이러다 늦겠다 싶어서 허둥주둥 나왔다.


이러고 뛰고, 버스를 타고, 또 뛰어서 회의 장소로 왔구나. 아! 그때까지는 마스크를 써서 사람들이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회의 장소에서는 서로 충분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기에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회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왜 면도를 하다 말고 왔지? 혹시 수염을 기르려고 그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분명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아무도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준 이는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예비용으로 사무실에 놓아둔 면도기로 남은 수염을 밀었다. 참! 살다보니 별 실수를 다 하는 구나.


실수2


일요일 저녁이었다. 작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나가 일할 생각이었다. 지난 금요일에 다 마치지 못한 일을 다 마치고 월요일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금요일 저녁에 보내도 월요일 아침에 확인할테고, 일요일 밤에 보내도 월요일 아침에 확인할테니.


아이 손을 잡고 걸어서 애들 엄마 집으로 가서, 아이랑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천천히 할일들을 정리하면서 사무실로 걸었다. 미리 머리속으로 정리해 둔 내용들을 도착하자마자 다다다다 두드리기만 하면 빨리 끝나겠지.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와 운동하고 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사무실까지 약 5분 남았을 때, 문득 깨달았다. 사무실 열쇠가 어디 있었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열쇠는 금요일에 출근할 때 입었던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사무실에 나가서 일할 생각이었으면 당연히 열쇠부터 챙겼어야 했는데, 열쇠도 없이 사무실에 어찌 들어간단 말이냐!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갑자기 힘이 확 빠져서 걸을 힘도 없었다. 여태 걸어오면서 정리해 놓은 내용들도 문득 머릿속에서 휙 사라져갔다.


그렇게 집에서 애들엄마 집으로, 거기서 다시 사무실까지 5분 거리에 있는 어느 골목길로, 거기서 다시 집으로 한시간 하고도 20분 가량을 걸었다. 저녁 산책이라 치기에도 제법 먼 거리였다. 집에 도착해서 땀에 젖은 옷을 벗으며 고민했다.


1. 샤워를 하고 열쇠를 챙겨 사무실을 향한다. / 이미 너무 지쳤다.

2. 샤워를 하고 그냥 잔다. 일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한다. / 이미 마음은 누웠다.

3. 이왕 땀을 흘렸으니 샤워하기 전에 운동을 조금 하고 샤워한다. / 지쳤지만 일단 운동은 조금 하자.


땀에 젖은 옷은 다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운동을 시작하니 관절도 하나도 안 아프고 평소 잘 안 되던 동작들도 너무 잘 되고, 새로 산 케틀벨과 불가리안백을 휘두르는 일이 너무 재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평소보다 훨씬 오래 운동을 하고서야 몸을 씻었다.


운동을 하고 나니 갑자기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뒤져 가볍게 먹을 것을 장만했다. 다 먹고 배를 두들기며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서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이 시간에 잠들어서 새벽에 일어나기는 글렀다. 특히 많이 걷기도 했고, 운동으로 지친 몸이 과연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잠들었다.


실수3


그리고 그 월요일 아침인 어제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강의가 있었다. 다행히 새벽에 깨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다. 그러나 일의 효율이 떨어져서 생각했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강의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오전 강의가 무려 3시간 연강이었고, 오후에도 4시간 연강이었지만, 오후엔 현장 견학 프로그램이라 이동시간이 있었다.


오전 강의 2시간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어서 3시간째 강의를 시작했고, 강의를 다 마친 후에는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을 다 먹고 화장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헉!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 아마 2시간째 마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깜빡했던 것 같다. 깜빡할 일이 따로있지! 그럼 셋째 시간 강의 내내 열려있었다는 얘긴데, 강의장에 있던 삼십여명이 모두 봤다는 얘긴데. 앞에서 강의하는 내 전신을 보면서 이걸 못 봤을 리는 없을텐데, 그런데 왜 아무도 얘길 안 해줬지?


다행히 바지의 구조 상 속옷일 보이진 않았을 것 같고, 그저 열린 상태의 지퍼만 살짝 보였을 것 같은데,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안 볼 사람들이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오후에도 내내 붙어 있어야 했고, 심지어 다음날인 화요일(글을 쓰는 오늘이다.) 오전에도 3시간을 같이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뭐, 지난 일을 어쩌겠나? 정말 오늘 둘째날 강의를 마칠 때까지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해줘서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다.


요즘 왜 이리 실수가 많나! 나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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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7-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들이 외출할 때 많이 하는 실수가 마스크를 안 쓰는 거래요. 예전에 저도 한 번 마스크를 안 쓰고 외출한 적이 있었는데 버스정거장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버스에 탈 때 알았으면 버스 승차 거부당했을 거예요.. ㅎㅎㅎ
 

홈 짐(Home gym)

여름이라 운동 강도를 높이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자꾸 일정 수준에서 운동을 멈추고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이런 정체기를 좀 극복해보려고 큰 맘 먹고 새 운동기구를 3개나 질렀다. 며칠 전 저녁 회의를 마치고 맥주 한 잔 하자는 말을 거절 못 하고 딱 두 잔을 걸치고 12시 무렵 돌아오니, 현관 문앞에 운동기구 3개를 포함한 택배 상자 4개가 놓여 있었다.

술도 한 잔 걸쳤고, 걸어오느라 조금은 지친 상태였는데, 그 밤에 운동기구들이 도착한 걸 보고 갑자기 신이 나서 포장을 풀었다. 케틀벨을 꺼내다가 실수로 쿵 떨어뜨리고는 너무 놀랐고 아랫집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이후로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내친 김에 이번에 장만한 12킬로그램 케틀벨과 17킬로그램 불가리안백으로 가볍게 운동도 했다. 그리고 부피가 큰 불가리안백을 놓기 위해 운동공간을 조금 정리했다. 걸어온 후에 무게를 들었더니 땀으로 온 몸이 젖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보니 이 정도면 홈 짐으로 어느 정도 구색이 맞겠다 싶었다. 비록 공간이 협소해 계속 원하는 벤치프레스용 거치대가 달린 벤치는 사지 못하고 있지만, 그 외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대체로 갖췄다.

1. 실내철봉
가장 부피가 큰 건 바로 이 철봉이다. 일단 높이가 약 2미터 더 높여서 쓰고 싶지만 집 천장이 낮아서 이 정도로 맞출 수 밖에 없다. 양 쪽에 풀업을 위한 바가 달려있고, 한 쪽엔 딥스 바와 레그레이즈를 위한 쿠션도 달려있다. 거의 쓸 일이 없지만 다리 한 쪽엔 푸쉬업을 위한 손잡이도 달려있다. 아, 다양한 당기기 동작을 할 수 있는 튜빙밴드도 달려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동작들을 수행할 수 있고, 생각보다 무게중심도 잘 잡혀있어 안정적으로 매달려 풀업을 할 수 있다.

이전 집에 있을 때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구매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걸 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피로보나 무게로보나 엄청난 짐이 하나 늘었기에 이 집으로 이사올 때 도와주던 후배가 엄청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도 가끔 저것 때문에 방이 좁다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나로서는 이제 방안에 철봉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침에 씻기 전에 한 번 매달리고, 저녁에 씻기 전에 또 한 번 매달리고, 매일 두 번씩 매달리면 정말 기분이 좋다.

2. 덤벨들
내가 가진 운동기구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들.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고등학교 시절이거나, 대학시절이었을 것 같다. 약 20년전 무일푼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내 커다란 짐 가방에는 무게가 같은 한 쌍의 아령과 무게가 다른 두 개의 아령이 들어있었다. 당시 내 짐을 함께 들어주기위해 서울역까지 마중나왔던 후배는 내 가방에서 아령들이 나오자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 가능해 여러모로 쓰임이 많지만, 최근에는 다른 걸 주로 활용하느라 별로 손을 안 대고 있다. 가끔씩이라도 이용해줘야지.

3. 바벨
바로 앞에 살던 집에서 실내철봉과 함께 구매했다. 술자리와 야근으로 피트니스클럽에 매일 가지도 못하는데, 비싼 돈을 갖다 바치는 게 아까워 차라리 그 돈으로 집에서 운동하자는 마음이었다.

20킬로그램 대봉을 사고 싶었으나 집이 좁아서 15킬로그램중봉을 산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다. 원판은 처음에는 내 몸무게에 살짝 못 미치게 구매했고, 이후에 한 번 더 구매해서 몸무게 이상을 들 수 있도록 갖췄다.

초기에는 무게를 많이 드는 데드리프트와 백스쿼트 위주로 운동했으나, 스쿼트 랙 없이 백스쿼트는 위험해서 낮은 무게로만 시도하게 되었고, 스내치를 열심히 연습했으나, 어느날 무릎을 다친 이후로는 푸쉬프레스와 오버헤드 스쿼트 위주로만 운동한다. 벤치프레스를 못 한다는 점이 늘 아쉽다. 언젠가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간다면 제일 먼저 벤치프레스용 벤치를 들여놓을테다.

4. 완력기
이건 아마도 서울살이 중 가장 먼저 구매한 운동기구일 듯. 일자형 완력기로 원래 용도 외에도 봉으로 활용해 야구배트처럼 휘두르거나, 마치 광선검인양 스타워즈 놀이를 할 때 사용한다. 가끔 기억을 더듬어 총검술을 해보기도 하는데, 길이가 좀 짧아서 아쉽다.

5. 악력기
평택 농사짓는 마을에 살면서 환경단체에 일할 때 구매했다. 당시에 비교적 쉽게 쥘 수 있는 것 말고 힘이 많이 드는 고급자용을 구매했는데,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오른손에 비해 왼속 악력이 형편없이 약했다. 오른손으로는 쉽게 쥘 수 있는 이 악력기를 왼손으로는 몇 개 쥐지 못했다. 이걸로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젠 왼손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나중에 여유가되면 무지개 악력기에 도전해보고 싶은데, 그거 색깔별로 7개 구매하는 것도 돈이 제법 들 것 같다. 물론 내 악력이 상위 단계까지 도전할 정도는 아닐거라서 당장 모든 색깔을 다 구매할 필요는 없겠지만.

6. 벤치
결혼 후 꽤 오랫동안 운동을 안 하다가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같이 많이 먹어서 ˝니가 임신했냐?˝ 혹은 ˝몸매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 등등 구박을 듣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운동을 해야지 마음 먹었을 때 구매했다.

벤치프레스가 가능한 벤치를 정말 사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바벨까지 구매할 엄두가 안나서 그냥 평벤치를 구매했다. 운이 나빠서 발걸이가 불량인 벤치를 받았는데, 교환하기가 귀찮아 그냥 발걸이를 활용하지 않고 다른 운동을 중심으로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운동에는 거의 활용하지 않고 그냥 의자 용도로 쓰거나 물건들(특히 작은 아이 장난감) 놓는 받침대로 쓰이고 있다.

7. 케틀벨
케틀벨 운동을 처음 배운게 10여년 전이었다. 어려서 역기를 배웠기에(꾸준히 하지는 않았고, 그냥 배우기만 했다.) 무조건 역도가 최고의 운동이라 여겼는데, 케틀벨을 배우고 나니 좁은 공간에서 손쉽게 운동하기에 최고라 생각했다.

특히 케틀벨 스윙은 마무리운동으로 이만한 게 없다 싶은 최고의 운동이다. 데드리프트도 바벨보다 훨씬 쉽고 안정적이며 스내치는 또 얼마나 리듬감이 있고 재밌는 지 모른다.

처음부터 25킬로그램을 사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서 당시 애들 엄마가 용인해줄 수준인 16킬로그램을 샀다. 요 무게가 참 애매했다. 스윙을 하기엔 적절하거나 가벼웠고, 데드리프트로는 많이 가볍고, 한 손 스윙이나 스내치를 하긴엔 또 무거웠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12킬로그램과 25킬로그램을 사고 싶었는데, 계속 망설이고 미루다가 이번에 12킬로그램을 샀다. 나중에 언젠가 25킬로그램도 사야지.

8. 추감기 봉
배우 장혁이 몸 만들때 전완근 단련을 위해 사용했다는 바로 그 기구다. 나는 몸통 근육에 비해 팔 다리 근육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다. 특히 운동 좀 했다는 분들은 상완과 전완의 크기가 큰 편인데, 나는 크기를 키우는 방식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팔만 보면 운동을 오래한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남들 이두나 삼두 크기를 보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특히 전완은 키우기가 쉽지 않은데, 전완이 잘 발달된 사람을 보면 특히나 멋있어보인다.

어느날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러저런 운동기구들을 구경하다가 발견하고 바로 주문했다. 고립운동은 내 운동 철학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전완이 발달된 사람은 부럽다. 일단 열심히 해보자.

9. 중량벨트와 모래주머니
발목에 감을 수 있는 1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는 어느날 마트에서 발견하고 구매했다. 발목에 차고 다양한 하체 운동과 풀업과 딥스 등을 할 때 조금의 무게를 주는 용도로 잘 쓰고 있다. 특히 무릎을 높이 올려 제자리 달리기 동작을 할 때 유용하다.

중학교 때 같이 운동하던 친구는 늘 발목에 2킬로그램짜리 추를 차고 다녔다. 그 녀석은 평소 늘 그걸 차다가 달리기 할 때 풀면 훨씬 가볍게 달릴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발목에 달고 다닐 추를 검색해보려다가 관절 통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건 포기했다.

대신 맨몸운동에서 무게로 부하를 주고, 특히 풀업과 딥스에 활용하기 위해 중량벨트를 구매했다. 중량조끼를 살지, 벨트를 살지 고민했으나, 조끼는 아무래도 갑갑하고 불편할 것 같았고, 집에 있는 다양한 크기의 원판을 활용하기 좋아서 벨트로 결정했다.

10. 불가리안백
운동은 하고 싶은데, 관절통증으로 못 하는 날엔 다양한 운동 동영상을 찾아본다. 어느날 불가리안백 운동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거 하나로 정말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는 점, 주로 코어를 활용하고 온 몸의 협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 운동 원칙에 딱 맞았다.

그래도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일단 집이 좁아서 부피가 큰 이 아이를 막 돌릴 운동 공간이 아쉬웠다. 지금 운동공간은 큰 방의 한쪽 구석에 운동기구들을 몰아놓고 전신 거울 하나를 걸어놓은 곳인데, 이 아이를 돌리려면 방 중앙으로 나와야 하는데, 거긴 거울이 없어 동작을 제대로 익히고 체크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않았다. 정품이라고 인증받은 제품을 사려면 너무 비싸서 이것저것 많이 검색해보고 고민하다가 중국산 저렴한 제품을 구매했다. 잘은 모르지만 일단은 만족스럽다.

다만 무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처음부터 17킬로그램을 샀는데, 확실히 초보자에겐 무리인 것 같다. 사실 불가리안백을 시작할 때 남성은 12킬로, 여성은 8킬로가 적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처음엔 12킬로를 사려고 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꿔 무게를 늘렸다.

지금은 일단 이 아이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고중량에 적합한 동작 중심으로 익히고, 나중에 조금 시간을 두고 12킬로그램을 하나 더 구매해야겠다.

11. 기타 운동 보조용품들
관절통증에 시달리게 된 이후로 각종 보호대들(발목, 종아리, 무릎, 손목)과 장갑은 필수가 되었다. 이외에도 맨몸운동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밴드들이 있고, 스트레칭 할 때와 버피를 할 때 바닥에 까는 요가 매트 등이 있다.

또 자주 하지 않는 스트레칭 동작할 때 참고하려고 사놓은 스트레칭 책이 3권이나 아령들 옆에 놓여있다.


이렇게 적어놓고나니 의외로 운동기구가 많고 여기에 들인 돈도 많구나 싶다. 여기서 더 갖추고 싶은 것들은 ① 벤치프레스용 벤치 ② 샌드백 ③ 대봉(올림픽 규격) ④ 짐볼 등이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겠지. 무엇보다 더 넓은 집이 필요할 것이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운동하려면 바닥 매트 시공도 꼭 필요할 것이다.

가끔 하루종일 먹고, 운동하고, 쉬고 또 먹고, 운동하고, 쉬고 이렇게 반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불가리안백을 받고 요 며칠의 내가 그렇다. 일터에서도 계속 운동 동작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토요일 아침 기분좋은 근육통을 느끼며, 오후에 할 동작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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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한번 지도 편달 받아야겠다 ㅎㅎ 😎

감은빛 2020-07-07 19:40   좋아요 0 | URL
제가 감히 지도 편달까지 할 입장은 안 되겠지만,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소인이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겠나이다. ㅎㅎ

다락방 2020-07-0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운동을 언제나 응원합니다. 뽜샤! 전완근 홧팅!! 💪

감은빛 2020-07-07 19:4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 덕분에 일요일엔 오버트레이닝을 해버렸나봐요.
저는 정확히 이틀 후 아침에 근육통이 오는 편인데,
오늘 아침에 근육통으로 꽤나 힘들었습니다. ㅎㅎ

비연 2020-07-05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홈트 완전체를 가지고 계신 듯!

감은빛 2020-07-07 19:44   좋아요 0 | URL
인간은 늘 욕심이 앞서나봐요. 비연님.
철봉만 사면 좋겠다 싶다가 철봉을 사면, 바벨을 사고 싶고,
바벨을 사면 좋겠다 하다가 바벨을 사면 또 케틀벨을 사고 싶고,
케틀벨을 갖고 나면 불가리안백을 갖고 싶고.
이거 무한 반복인 것 같아요. ㅠㅠ
 

햇빛이 주는 급여


코로나19로 다들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지인들 중에 학교 방과후 교실 강의가 주 수입원인 분들이 있는데, 올해 코로나 상황으로 이분들은 전혀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기 전에 많은 영세 상인들이 마찬가지 입장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알 수 없고, 전세계적인 유행이 계속 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18년 2월쯤 정보공개센터에서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서 회원들의 직업을 묻는 질문을 이렇게 적었었다. "당신의 수입은 어디로부터 나오나요?" 그리고 객관식 보기가 여러개 있었는데, 사장에게서(회사원), 국민에게서(공무원), 독자의 구독료 및 시청료(언론인), 학생들의 등록금(교원), 고객, 손님, 소비자(자영업), 시민의 후원(활동가), 그때 그때 달라요(프리랜서), 누가 수입 좀 줬으면(백수, 구직자) 이런 식이었다. 여기서 프리랜서와 백수의 답변 문구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랫동안 활동가로 살았고, 한동안 출판사 사장에게 월급 받는 회사원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협동조합 실무 활동가로 살고 있어서 내가 고를 답은 보기에 없었다. 그래서 기타 란에 체크하고 직접 답을 적었다. "햇빛에게서(에너지협동조합 활동가)" 라고.


작년 봄에 신입활동가로 들어와서 최근 1년을 조금 넘긴 동료 활동가와 최근에 술을 마시다가 남들은 다들 수업이 줄어들어서 어려워하는데, 우리 조합은 매출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대화를 나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많고,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점은 월급 걱정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햇빛만 비치면 매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해가 잘 나면 "오늘도 우리 발전소들이 열심히 돈 벌어주겠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다 흐린 날들이 이어지면 흐린 날씨 때문에도 우울해지지만, 발전소가 안 돌아가서 더욱 슬퍼진다. 코로나 상황에도 해는 쨍쨍 잘 뜨므로 매출 걱정은 없다. 그래서 내 월급 걱정을 안해도 좋다. 


어찌보면 세상에서 제일 안정적이고 멋진 직업이 아닌가 싶다. 해만 뜨면 돈을 버는 직업. 나에 비해 한창 젊은 동료 활동가에게 나랑 같이 오래 일하자고. 이 분야가 점점 성장하는 만큼 당신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릴거라고 했다.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젊은 친구가 금방 다른 일로 눈을 돌려버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친구도 이 일에 관심이 있고, 일도 재밌어하는 듯 보인다.


일식


시간이 참 빨리 간다. 6월 21일 일요일 오후에는 부분 일식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그날을 기다렸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애들 엄마가 아이들과 동해안으로 놀러간다고 했다. 아이들 없이 맞는 주말은 오랜만이었다. 토요일 저녁에 ㄹ동네 술꾼들과 오랜만에 술을 진탕 마시고, 일요일 오전은 잠으로 보냈다. 오후에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책을 읽으며 일식을 기다렸다.


눈 손상을 피하기 위해 미리 셀로판지로 색안경을 만들어두라는 얘길 듣고도, 그냥 썬글라스로 보면 안 되려나 라는 매우 안일안 태도로 기다렸는데, 썬글라스로는 눈이 아파서 볼 수 없었다. 다시 검색해보니 과자 봉지 등 비닐 포장재로 봐도 잘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비닐 쓰레기 봉투를 뒤졌는데, 과자 봉투는 없었고, 그나마 깨끗한 상태의 포장재는 일회용 마스크 포장재였다. 이걸 잘라서 눈에 대고 보니, 오! 잘 보였다. 신기했다. 비록 부분 일식이고 달이 해를 가린 부위가 많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 신기한 느낌은 무척 강하게 나를 흔들었다.


개기일식을 쫓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개기일식을 본 것이 살면서 가장 좋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냥 신기하다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부분 일식을 한 번 보고 나서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 개기일식은 2035년 9월 2일에 볼 수 있다. 다만 전국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평양을 지나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근처를 지나간다고 한다. 그때까지 통일이 되거나,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해져서 평양에 여행을 가거나, 정 안되면 고성 통일전망대에 놀러라도 가서 꼭 개기일식을 보고 싶다.


부분 일식을 보고 그 신기한 광경을 아이들에게도 보라고 전화를 했다. 깨끗한 비닐 포장재를 찾아서 보라고 했다. 큰 아이는 한참 후에 본인도 봤다고 너무 신기하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중에 2035년 개기일식 이야기를 해 줬더니, 그때는 꼭 아빠랑 같이 볼거야 라고 답했다. 글쎄 그때가 되면 아이의 나이가 서른쯤일텐데, 그럼 내 나이는. 음. 과연 아이가 나같은 늙은이랑 어울려줄지 모르겠다.


책모임


지난 주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책모임에 참석했다. 이상하게 책모임이 있는 날마다 다른 일정들이 자꾸 생겨서 한동안 못 나갔는데, 최근에는 가능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책을 읽고, 탈당 후에 자주 보지 못하는 옛 녹색당 동지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다. 당시 지역 녹색당 핵심 멤버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해왔던 책모임과 등산모임 등은 탈당 후에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나는 위에 언급한 이유로 다른 일보다 이 모임들을 우선해 가능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번 책모임에서 접한 신간 소식 중에 [1분 과학 읽기]가 있다. 일간지 기자인 저자가 긴 시간 과학 소식을 연재한 글을 엮었다. 원래 과학에는 전혀 관심없던 내가 생태학과 환경 문제에 관심 가지면서 생물학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에너지협동조합 일을 하면서 물리학과 전자기학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번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 과학이 생각보다 재밌다는 걸 깨달았다. 열역학, 양자물리학, 천문학 등으로 점점 관심이 확장되었다.


이 책에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어서 읽자



한편 그날 원래 다루기로 했던 책은 대실망이었다. 이렇게 적어서 미안하지만, 솔직히 만화로서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책이었다. 대체 왜 만화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참가자들은 실제로 채식을 하거나, 부분적으로 채식을 실천하거나, 채식에 대해 오랫동안 접해 온 사람들이 대다수여서 기초적인 내용들을 다루는 책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만화로서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텐데, 오히려 만화여서 더 전달력이 떨어지는 모양새가 되어서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에 대해 대다수가 동의했다.
















따로 리뷰를 쓰지 않을테니,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는 평을 여기 남긴다.


김종철 선생님 별세


지난 목요일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가짜 뉴스와 잘못된 상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군가 실수로 잘못 전달한 내용이 퍼진 거겠지. 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날 저녁에 지인들 다수가 조문을 다녀온다고 갔다. 나도 따라 조문을 가고 싶었지만, 그날 저녁에 포럼에서 발표를 맡았다. 내가 한창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있을 무렵 지인들은 장례식장으로 갔다.


포럼을 무사히 마치고, 장례식장을 다녀온 지인들과 밤 늦게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어찌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나요? 


유감스럽게도 선생님과는 서로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둘 있는데, 그보다 좋은 기억들을 더 많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언젠가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해 제대로 녹색정치를 펼치면 선생님과 함께 기뻐해야지 생각했는데. 정말 마음이 무너진다. 선생님의 별세도. 지금의 녹색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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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7-0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의 여파 때문인지 독서모임 분위기가 많이 죽었어요. 모임 참여자도 많지 않고요. 이번 주 금요일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전날이나 당일에 불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감은빛 2020-07-07 19:39   좋아요 0 | URL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상황이 벌이지고 있죠.
그리고 기후변화(위기)로 인해서도 온갖 재앙들이 벌어지고 있구요.
오늘 아침 중국과 일본의 홍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나마 독서모임이라도 있어서 서로 얼굴 보고 위안을 삼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바람돌이 2020-07-0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빛이 주는 급여 좋네요. ^^
전 일식날 선글라스 두개 겹쳐서 봤어요. ㅎㅎ

감은빛 2020-07-07 19:40   좋아요 0 | URL
네, 바람돌이님.
해가 뜨는 한 저는 월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이 일을 그만둔다면 달라지겠지만. ㅎㅎ

선글라스 두 개를 겹치는 방법이 있군요.
아쉽게도 저는 선글라스가 하나 밖에 없네요.
다음 일식 전에 하나 더 장만해야 겠어요. ㅎㅎ
 

다름의 가치


여러 사람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일의 생산성과 속도 면에서 보면 답답함이고, 사람으로 보면 안타까움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고 일이 성사되도록 논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의 말은 거의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반복하면서 논의를 방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외로 후자의 사람들을 생각보다 자주 보게 된다. 우리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전제 하나만 깨달아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 안타깝다.


더불어 세상의 이치는 우리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건을 두고 누구나 비슷한 감정과 생각만 떠올린다면 우리는 늘 그 범주에서 머물뿐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누군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감정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에 호응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성이 생기고, 그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런 다름의 가치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연인이나 부부라해도, 부모 자식간에도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거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친한 사이라면 보다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과 감정이 있다. 그런데 각자의 감정과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쩌면 사고방식 혹은 수용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기준


나는 확실히라고 말해도 좋을만큼 남들과 좀 다른 기준들이 있다. 물론 삶에서 모든 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남들과 좀 다른 면들이 두드러지는 측면들이 있다.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늘 남들이 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나는 의문이 많았다. 그래서 별난 놈이라거나, 괴짜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남들과 가장 다를 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으로서의 일을 선택할 때 돈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터를 찾을 때부터 이후 일터를 옮길 때마다 급여조건은 거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어떨 때에는 식비는 고사하고 교통비도 안 될 돈을 받고 환경단체에서 일할 때, 누군가 막노동 이삼일 뛰고 한 달 내내 놀아도 그 보다는 많이 받겠다고 했다. 결국 그 단체에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돈 때문은 아니었다. 단체 내부에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발견했고, 이를 문제제기했지만, 윗선에서 덮어버리면서 내부 고발자인 내가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그 단체를 그만둔 후에 급여 조건이 훨씬 좋은 다른 시민단체에 들어간 뒤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앞의 단체에 오래 일하지 않고 그만둔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긴 했다.


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무래도 생활비를 걱정할 수 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좀 더 급여가 많은 일을 찾거나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면 반드시 매달 양육비를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돈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돈이 조금 부족해도, 아니 많이 부족해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생각까지 하면서 그 일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기준이라는 얘기다.


앞서 교통비도 안 될만큼의 급여를 받았던 단체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돈을 조금 모아두었었다. 그 단체 활동가로 있을 때에도 외부 강의나 원고 등을 끊임없이 알아보곤 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그 단체에서 내가 지속가능할만큼의 급여 수준을 만들어 가고 싶었고, 만들어갈 자신도 있었다. 지금의 일터도 마찬가지다. 처음 여기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었던 선배들이 물었던 제일 핵심 질문은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이 급여를 받고 생활이 가능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과 병행해 부수입이 생길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을거라고 답했다. 실제로 가끔 교정교열 일거리를 병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급여만으로는 생계비를 다 감당하기 어려워서 은행 대출을 이용하고, 지인들에게 단기간 돈을 빌리기도 했다. 나중에 이혼하고 따로 월세방을 얻으면서는 양육비와 내 생황비를 감당하기 위해 이런저런 부수입거리를 많이 찾기도 했다. 다행히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최저임금도 많이 오르고, 내 급여도 많이 올라서 최근에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과거에 빌렸던 돈은 대부분 짧은 기간 안에 다 갚았다.


수포자


누군가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수포자'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수포자였다. 국민학교 2학년때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매일 남들 다 하교한 후에도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지만, 결국 다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구구단을 모른다. 술자리에서 구구단 게임을 하면 나는 무조건 빠져야 한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구구단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가 정말이냐고 막 질문을 해대길래 실제로 대답을 못했다. 그때 일행들의 표정과 반응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보충수업시간에 국영수 성적에 따라 우열반을 나눠서 운영했다. 나는 국어는 전교 등수가 거의 1등이어서 최상위 등급반(소위 서울대 반이라고 불렀다.)에 들었고, 영어는 전교 등수 상위권에 속하는 두번째 등급반(소위 연고대 반이라고 불렀다.)에 들었는데, 수학은 아예 대학 공부 자체를 하지 않는 최하위 등급(여기는 소위 말하는 별칭조차 없었다.) 반에 속했다. 왜냐하면 수학은 전교 등수가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한번은 중간고사에서 수학 0점을 받았다. 충격이었던 건 모든 문제를 실제로 다 풀어서 답을 썼는데 0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나는 수학 점수가 낮은 것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다고 포기하고 살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평생 수학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내 머리에서 수학이라는 카테고리를 깨끗하게 지웠다.


내 기준에서는 수학이란 일상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어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를 것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수학과 관련한 지식이 꼭 필요한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큰 아이가 초등 4학년 즈음부터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역시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된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마 작년부터였던 것 같은데, 수학 숙제를 물어봐서 살펴봐도 알수가 없었다. 큰 아이는 지금도 가끔 수학 숙제를 하다가 내게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아빠는 모른다를 반복한다. 만약 살펴보고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백만번이라도 살펴보겠지만, 나는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다.


최근에는 친한 거래처 담당자와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코싸인' 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부피와 면적과 각도 이야기였는데, 그 분이 이래저래 설명을 하시다가 "코싸인을 적용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계산하면 000가 나오는데"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전 부분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던 나는 코싸인이란 단어가 나온 후로는 아예 막혀버렸다. 음, 평생 수학은 쳐다보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일하다가 코싸인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사실 내가 그 부분에서 세부적인 계산을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부분은 그 분이 알아서 잘 계산해주시고, 나는 그 자료를 받아서 이후 업무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그 분이 내게 그 부분을 계산식까지 나열하며 설명하실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몸에 잘 맞는 옷 


토요일인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온 몸으로 기분 좋은 근육통을 느꼈다. 이 감각 참 오랜만이다. 오늘 근육통을 느꼈다는 얘기는 이틀 전인 목요일에 강도 높은 운동을 했다는 뜻이다. 나는 정말 정확하게 이틀 후에 운동 부위에 근육통을 느낀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면서 한여름이 아닌가 싶다. 더워서 이불을 안 덮고 잤다가 약간의 감기 기운을 느끼긴 했는데, 또 잠들 무렵에는 더워서 자꾸 이불을 안 덮게 된다. 얇은 여름 이불이라도 마찬가지다. 올해 여름은 엄청 더울거라는데,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재작년 여름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유튜브에서 운동 동영상을 주로 보는 편이라 유튜브를 딱 켜는 순간 '운동 동기', '모티베이션' 등의 단어들이 붙은 영상들이 눈에 띈다. 주로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들이 멋지게 운동하는 모습, 몸매를 뽐내는 모습 등을 담은 것들이다. 보면서 '멋지다!', '예쁘다!' 감탄은 하지만, 그걸 보면서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운동을 할 때도 확고한 기준이 있다. 근육의 크기를 키우는 운동인 고립운동과 펌핑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온 몸의 협응력을 기르고 특정한 기능을 살리는 동작들을 선호한다. 주로 몸체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코어 단련을 우선 순위로 둔다.


내게 제일 큰 운동 동기부여는 사실 여름 옷이다. 몸에 잘 맞는 옷. 여름 옷은 몸매가 잘 드러난다. 예전부터 반팔 옷은 몸에 붙는 옷을 좋아해서, 대부분 그런 옷이다. 내 기준에서 제일 보기 싫은 것이 배 나온 사람이 몸에 붙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아마 남들도 대부분 싫어하지 않을까. 그래서 항상 여름을 대비해 봄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몸매 관리를 하곤 했다. 올해도 4월부터 운동을 했다. 나름 꾸준히 하긴 했는데, 운도을 본격적으로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운동 강도를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준비운동을 통해 예열을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운동 강도를 높여 본운동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만 몸 컨디션이 그만큼 올라오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제대로 본운동을 해보지 못하고 운동을 끝내는 날들이 많았다. 여기에는 이제 고질병이 되어버린 관절통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 몇 년전부터 관절을 크게 다친 이후로, 관절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겁이 나서 원하는 동작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무리했다가 또 관절을 다치면 몇 달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공포가 생겼다.


운동 수행 능력 저하


그렇게 봄을 다 보내고 이른 더위와 함께 여름이 왔는데, 여름 옷을 딱 입으려고 보니 영 핏이 살지 않는 거다. 상대적을 몸에 덜 붙는 옷을 입으며, 날렵한 몸매를 잘 뽐낼 수 있는 멋진 옷을 입기 위해 운동 강도를 좀 높여야지 생각한 것이 지난 주였다.


그 전부터 달리기와 맨몸 운동 중심으로 몸을 좀 만들어 놓았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운동에 들어가도 큰 무리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너무 오래 쉬어서 그랬는지 내 몸의 운동 수행 능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이제는 늙어서 운동도 마음대로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서러웠다.


어쩌면 다시 조금씩 꾸준히 하다보면, 다시 조금씩 운동 능력이 올라가긴 할 것이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서둘러서 오버 트레이닝을 해버리면 꼭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올해 여름은 망했다는 것. 몸에 잘 맞는 예쁜 옷을 올해 여름에는 못 입을 확률이 클 것 같다. 지금 예상은 그렇다. 어쩌면 만에 하나 당장 다음주에 또 몸 컨디션이 확 올라가서 운동에 불이 붙고, 술을 좀 줄이면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레길


몇 주 전에 친하게 지내는 몇몇 지인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예전에 지역 녹색당에서 만든 등산모임이었는데, 이젠 그 모임에 속한 이들이 모두 탈당했다. 탈당은 했고, 이젠 더이상 녹색당 등산모임은 아니지만 그 멤버들은 꾸준히 산에 가고 있다. 그 모임의 초기 운영자로서 최근 몇 년간 거의 산에 가지 못한 입장에서 기회가 되면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주말 마다 아이들과 지내느라 산행은 꿈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애들 엄마가 장인어른 산소에 아이들과 함께 가야한다고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을 데려갔고, 일요일은 하루종일 비어 있는 날이 생겼다.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북한산에 자주 다녔다. 아랫쪽 평탄한 길에서는 양쪽에 아이들 손을 잡고 걷고, 비탈길에서는 작은 아이를 안고, 큰 아이 손을 잡고 올랐다.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운 곳에서는 하나씩 안아서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셋이 산에 다니는 일이 내게는 일상의 즐거움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힘들어했고, 무서워했다. 결국 나 좋자고 계속 싫어하는 아이들을 산에 끌고 가는 일은 안된다고 결론 내리고 산을 포기한 지 제법 오래되었다.


암튼 아이들 없이 친한 사람들과 둘레길을 걷는 것도 참 좋았다. 일행 중 친한 형이 그냥 둘레길만 걸으면 재미가 없으니 중간에 바위 하나만 올라서 등산다운 등산을 맛만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안그래도 평탄한 둘레길을 걷는 건 너무 심심하다 느끼던 참이었으니. 비탈길과 바위길을 30분 가량 올라가서 중턱쯤의 바위에 올랐다. 거기서 그 형이 준비해 온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를 즐기다가 내려와서 둘레길을 마저 걸었다.


올라갈 때는 빠르게 잘 올라갔다. 어려서부터 산동네에 살았기에 산을 잘 타는 편이라고 늘 자부해왔었다. 꽤 오래 산을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내려올 때가 문제였다. 이놈의 무릎과 발목이 자꾸 신경쓰여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뛰어서 내려왔을 길을 천천히 내려오는 것 만으로도 힘들었다.


둘레길의 막바지에 단계적으로 높이가 높아지는 철봉 3칸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꼭 철봉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당연하다는 듯 우리는 철봉에 매달렸다. 키가 제일 작은 형이 제일 아랫칸 철봉에서 뒤돌아오르기 기술을 시전했다. 나도 중간 높이 철봉에서 같은 동작을 했다. 이어 후배가 제일 높은 칸에서 더 어려운 동작인 머슬업을 했다. 그쯤하고 그냥 내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턱걸이를 누가 많이 하느냐 얘기가 나왔다. 형은 시도해보다가 하나도 못하고 말았다. 후배는 머슬업 하느라 힘을 다 써버렸는지 역시 턱걸이를 하나도 못햇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집에 실내 철봉이 있어도 옷걸이, 빨랫대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예전에는 아침에 눈 뜨면 매달리고, 집에 들어와 씻기 전에 매달리고 하루 두 번씩은 매달렸건만, 어깨 통증을 핑계로 참 오래 외면해왔다. 과연 몇 개나 할 수 있을지 나로서도 궁금했다. 결과는 3개. 힘을 더 쓰면 한 두개는 더 할 수 있었을텐데, 모양 빠지게 막 끝까지 힘을 쥐어짜내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혼자였다면 당연히 도저히 더 안 당겨질 때까지 당겨서 운동했겠지만. 옆에 있던 형이 역기 드는 사람이 그 정도는 해야지 라고 한 마디 하길래 좀 부끄러웠다. 어깨 관절 통증 핑계와 예전이었다면 어쩌고 하면서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날 이후로 다시 실내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가끔 크고 무거운 빨랫대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서 더 열심히 매달렸다. 어깨와 손가락 마디 통증 때문에 원하는 만큼 운동이 잘 되지는 않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다시 예전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겠지.


화상 회의


토요일 아침인데, 화상 회의가 하나 있었다. 어쩌다 올해 운영위원장을 맡게 된 단체 운영위 회의를 오늘로 잡았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화상 회의를 하는 것으로 바꿨다. 화상 회의라는 게 참 익숙해지기도 어렵고, 잘 운영하기는 더 어렵고 좀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더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잠든 아이들 이마에 입맞추고 책을 읽었다. 머리 맡에 쌓아둔 책 여러 권 중에서 딱 손에 잡히는 책이 이 책이었다.
















단편 SF 소설집인데, 첫 작품부터 흥미진진하고 짜임새도 좋다고 느꼈다. 이 작가 이름을 많이 들었는데, 역시 이름이 알려질만한 필력이더라.


나중에 큰 아이가 깨서 학원 갈 준비를 했고, 작은 아이는 깨자마자 팬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재료와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나는 책을 더 읽다가 아이들 밥을 챙기려 했는데, 큰 아이는 늘 그랬듯이 안 먹고 그냥 나가버렸고, 작은 아이는 팬 케이크를 만들어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곧 화상 회의를 해야 하니, 알아서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화상 회의라 집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니 참석률이 높았다. 다들 편안한 옷차림에 머리도 조금씩은 헝클어진 모습. 평소 회의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작은 아이가 팬 케이크 재료를 사러 가겠다고 해서 이것저것 당부하느라 접속이 조금 늦었는데, 딱 들어가자마자 "드디어 위원장님께서 접속하셨네요."라고 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회의 진행을 위원장인 내가 해야하는데, 사전에 실무책임자에게서 회의 안건을 전달 받지 못해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화상 회의는 왠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영 자신이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대표님께 진행을 부탁드렸고, 대표님께서 회의 진행을 맡아주셨다.


다행히 특별히 중요한 논의 안건이 있는 건 아니어서 문서로 회람한 보고 안건들을 짧게 브리핑하고 공유해야 할 정보들을 나누고, 한 두 건의 짚어야 할 상황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운영위원들이 대체로 화상 회의가 익숙하지가 않아 원활한 회의 진행이 어려웠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이후 또 인류를 덮칠 다른 전염병들 때문에 화상 회의에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나는 아무래도 좀 자신이 없다. 회의주의자라고 불릴 만큼 회의를 많이 하는 편이고, 회의 진행에도 익숙한 편인데, 화상 회의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것도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 지긴 하겠지.


회의 중간에 작은 아이 팬 케이크 만들기를 도와주느라 자주 자리를 비웠다. 반죽이 적당한지를 봐주고, 타는 냄새가 나서 가스레인지 화력 조절을 해주고, 처음 구운 케이크를 살작 맛보고 맛있다고 폭풍 칭찬도 해주었다. 자꾸 작은 아이가 와서 회의 장면이 신기한지 막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여러모로 오래 기억에 남을 토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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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6-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거운 여름에 여전히 뜨겁게 살고 계시는 감은빛님 ㅎㅎㅎㅎ
맨날천날 일 많다 돈 저다 징징거리는 syo놈을 부끄럽게 만드시네요ㅠㅠ
어른이란 그런 것인가요...ㅎㅎㅎ

감은빛 2020-06-15 16: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syo님이나 저나 마찬가지로 그저 먹고 사는 사람이죠.
저도 맨날천날 이런저런 일들로 징징거린답니다. ㅎㅎ

오늘도 한여름처럼 덥긴 한데,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좀 낫네요.

페크(pek0501) 2020-06-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꼼꼼히 다 읽었어요. 필력이 좋으십니다. 글쟁이의 끼를 봤다고나 할까요.
저는 어떤 땐 글이 쓰고 싶어도 글 쓸 게 참 없구나, 하는데
감은빛 님은 글 쓰기로 작정하시면 마구마구 글이 흘러 나올 것 같습니다.
어깨에 힘을 풀고 쓰신 것 같으면서 글이 바른 자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마치 제가 평가자라도 된 것 같네요. 양해하시길...ㅋ
술술 읽혀서 잘 읽고 갑니다. 모름지기 글이란 이렇게 술술 읽혀야 하는 거죠.

감은빛 2020-07-07 19:35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어요. 페크님.
괜히 이 긴 글 때문에 페크님의 소중한 시간을 뺐었다고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입니다.
양해라뇨? 무슨 말씀을!
언제든지 얼마든지 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저로서는 오히려 영광이지요. ^^

늘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6-30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일상에서 겪는 일과 함께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저는 점점 머리가 굳어가는지 글도 책도 겨우 쓰고 읽습니다. 그나마 독서와 운동 이 두 가지는 잘 챙겨서 늙어서 가는 날까지 잘 가져가고 싶네요.ㅎ

감은빛 2020-07-07 19:37   좋아요 0 | URL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아요.
댓글 남기신 것 보고 답글 남겨야지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훌쩍 일주일이 지나가버렸네요.

운동과 독서는 살아가는 한 계속 가져가야 할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알라딘에 열심히 운동하시는 동지가 있어 든든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