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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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이 빠른 아기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걷지도 못하는 쪼끄만 놈이 말은 어찌나 빨리 배우는 지. 어찌나 얇미웠는지 모른다아이가." 다른 아기들은 이미 걸어다녔을 시기에 나는 걷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요구가 많은 아기였다는 것이다. 다른 아기였다면 직접 몸을 움직여 했을만한 일을 나는 직접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어른들을 부려먹어서 얇미웠다는 얘기다.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가 들어 아이 둘을 키워보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큰 아이는 꼭 나를 닮았는지 말을 일찍 배웠고, 걷는 것이 느렸다. 그 녀석은 뒤집기도 느렸고, 배밀이도 늦었고, 기어다니는 일도 비교적 느렸다. 그런데 유난히 말을 일찍 배웠다. 녀석 보다 한참 늦게 태어난 아기들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데, 녀석은 조금 걸으려고 시도하다가 멈추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아나." 라고 말했다. 어서 와서 나를 안아서 옮기라는 얘기다. 녀석에게 아빠는 자신을 안아서 옮겨주는 캐리어(이동수단)였다. 그제서야 왜 엄마가 나를 얆미웠다고 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는 달리 일찍부터 몸을 잘 쓰는 편이었다. 녀석은 이를테면 행동파였다. 힘이 어찌나 쎈지, 걸어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자기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물건들을 번쩍 번쩍 들고 다녔다. 큰 아이와 비교하면 오히려 말이 느린 편이라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큰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아이는 처음에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늦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훨씬 빨리 배운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언니의 존재 때문이었다. 언니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어른과는 달리 자신과 비교적 가까운 존재가 사용하는 언어를 늘 함께 듣기 때문에 말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몸을 쓰는 쪽과 말로 해결하는 쪽 둘 중에 나는 말을 선호하는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일종의 성향이나 개성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일종의 외국어라고도 볼 수 있는 사투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접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들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행연습처럼 가볍게 자판을 두드려 보련다.


2. 언어는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익히는 것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공부하듯이 배운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냥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 모국어다. 하지만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혹시 환경이 여러 언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국어는 공부하듯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그렇게는 잘 익혀지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방법. 그것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이번 생에서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꿈을 꾸며 여러 나라의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엿보고, 맛보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다.


3. 영어와의 첫 만남


역시 시작은 영어였다. 영어와의 첫 만남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민학교 때는 여름방학마다 동생과 함께 한동안 외갓집에서 지내곤 했다. 외갓집에 놀러오면 딱 하루 정도만 재미있고, 나머지는 지루했다. 친구도 없고 별로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내 외삼촌만 결혼 전이어서 외갓집에만 오면 늘 막내 외삼촌에게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는데, 어느 날 너무 버릇없이 구는 조카를 견디지 못한 외삼촌이 내게 손찌검을 했고, 나는 또 나대로 화가 나서 어른인 외삼촌에게 덤벼들었던 사건이 벌어졌다. 그 후론 더더욱 방학 때 외갓집에 오면 심심해졌다. 그런 어느 날 외삼촌이 티비를 보고 있는데, 뭔 알아듣지도 못할 말만 잔뜩 나오는 것을 보았다. 화면만 보아서는 뉴스인 것 같았는데,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알파벳을 국민학교 6학년에 처음 배웠고, "헬로"나 "하우 아 유" 같은 인사말도 중학교에 입학해서야 배웠다. 그보다 한참 어렸던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내가 영어가 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당시 막내 외삼촌은 일종의 영어공부로 AFKN을 봤던 것 같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는 그 채널이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외삼촌이 없을 때에 그 채널을 찾아 보려고 동그란 두 개의 채널을 이리 저리 따라라락 돌려댔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나오는 채널이 진짜 몇 개 되지도 않았는데, 돌아가는 채널의 수는 뭐가 그리 많았는지 동그란 채널의 손잡이를 쥐고 이리저리 찾아봐도 그 채널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기억이 난다.


주말 아침에는 그 AFKN 채널에서 만화가 나왔다. 배트맨과 슈퍼맨과 원더우먼과 그외 이름을 알 수 없는 근육질의 아저씨들이 이상한 색깔의 쫄쫄이 옷을 입고 나오는 만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저스티스 리그의 만화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나와 동생은 주말 아침마다 외삼촌에게 그 채널을 찾아달라고 해서 그 만화를 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냥 재미있었다. 가끔 외삼촌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몇 마디 번역을 해주기도 했다.


4. 공부가 아닌 영어


앞에서 말했듯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건 중1때였고, 그때부터 영어는 시험과 하기 싫은 공부라는 느낌으로 연결되는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시 영어에 눈을 뜬 것은 팝송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여성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여전히 영어는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고, 공부 한다는 행위 자체를 워낙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노래를 듣고, 가끔 가사를 찾아보는 것 외에는 영어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온 후에 이제 나도 슬슬 영어 공부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남들은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나 토익, 토플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니라 토익, 토플은 시도 조차 할 생각을 못했고, 어학 연수는 가끔 꿈을 꾸지는 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꿈꾸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나마 비정기적으로 몸쓰는 일을 해서 용돈을 벌거나,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다가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큰 맘 먹고 회화 학원을 다녔던 것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 학원에서 만난 여러 선생 중 두 명의 선생이 내게 큰 복이었던 것 같다. 레벨 테스트를 거쳐 처음 만난 선생은 교포 출신 강사였는데, 정말 수업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 덕분에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공부가 아닌 익힘의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레벨이 올라가서 만난 여러 원어민 강사들 중에 또 한 명, 내게는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나보다 서너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것 같다. 키가 크고 덩치가 엄청나게 컸고, 옅은 금발 머리칼의 미국 남성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학생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같이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면서 친해졌다. 수업 시간에 영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그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읽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자신이 생겼다. 비록 그의 말을 금방 다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차분하게 그가 원하는 것을 같이 찾아줄 수 있었다. 그 무렵 해운대나 광안리 등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영어를 잘해서 말이 잘 통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해변의 분위기와 약간의 알코올과 약간의 친절함과 조금 자만심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무리는 대학 미식축구팀이라고 했는데, 정말 키가 크고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어쩌다 광안리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한국인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내가 구경하다가 끼어들어서 말렸고, 다행이 주먹다툼까지 이어지기 전에 경찰들이 출동해서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도와주었다고 생각해 맥주를 권했고, 나는 그들에게 소주를 권했다. 같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에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오래 나눴다.


5. 외국어 익힘의 한계


대학에 복학한 후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레 영어가 멀어졌다. 꾸준히 영어를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들과 영어 펜팔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좋아하는 팝 가수들의 홈페이지에 등록된 팬들의 이메일 주소를 골라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10통을 보내면 절반은 답이 왔고, 길지 않은 메일을 대여섯 차례 주고 받은 후에는 2명 정도만 남았다. 그럼 다시 10통 가량을 대륙 별로 골고루 배분해서 보내기를 반복했다. 내 목표는 꾸준히 대화를 주고 받는 외국인 여성을 각 대륙별로 1명 이상씩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당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여러 통의 메일을 주고 받다보면 시간이 갈수록 내 영어가 얼마나 미천한 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어휘력이 딸려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소화하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대륙 별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영어 외에 그들의 문화와 모국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2002년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을 월드컵의 감동이 있었던 그 해, 나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었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 영어 통역으로 자원활동을 신청했는데, 의전팀으로 발령을 받아서 귀빈들 요즘 말로하면 VIP를 주로 모시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남들보다 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유명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의전팀 내에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온 후배들도 있었고,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나서서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의전팀 내의 다른 언어 통역들과 친해져서 여러 나라 말들을 야금야금 조금씩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당시 의전팀에는 4개 언어 통역 자원활동가들이 있었는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였다. 나는 지금도 당시에 배웠던 간단한 인사말 표현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재밌게 지내던 어느 날, 결정적으로 영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따라 의전팀에 일이 많았다. 여러 나라 귀빈들이 연달아 방문해서 영어를 잘 하는 후배들이 대부분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갑자기 영어 통역 요청이 들어왔다. 한 기자가 동티모르 축구팀 취재를 하는데 통역을 부탁한 것이다. 원래는 이런 일은 의전팀 업무가 아니므로 거절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제대로 통역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나는 어떻게 등이 떠밀려 통역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 볼만한 수준의 대화가 오갔는데, 점점 국제 정세와 정치적인 내용들이 오가며 내 수준을 한참 뛰어 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결국 제대로 말을 옮기지 못하면서 동티모르 축구팀 감독과 우리나라 기자 사이에서 얼굴이 빨개져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되면서 내가 영어를 하겠다고 설쳤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언론사에 일했던 그 기자가 아마 당시의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했을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영어를 향한 내 관심을 아예 끊어버렸다.


6. 중국어


대학 시절 중국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인들을 가끔 접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그들 중 한 명에게 그룹으로 중국어 스터디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스터디 비용을 마련하면 우리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원어민에게 수업을 들을 기회가 생기고 그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바쁜 학교 생활이 이어지며 점점 스터디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와 나 둘만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에 나 혼자서 그에게 약속한 비용을 다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곧 그 스터디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에게 중국어를 배웠던 그 몇 달이 꽤 재미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의사소통에 크게 불편함이 없어서 개인적인 친분도 꽤나 쌓았다. 그는 "오빠" 라는 발음을 "어빠"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억양으로 대화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그가 늘 "어빠는 발음이 좋아요." 라고 자주 칭찬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중국어를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갖고 있다.


한 가지 근거 있는 자만심을 들어보자면 부산 출신이라 중국어 성조에 유리하다. 이건 유명한 중국어 강사(이 사람도 부산 사람)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 나름 근거가 있다 여긴다. 실제로 나는 성조가 헷갈리긴 해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일 큰 한계는 한자다. 우리가 어려서 배운 한자도 아니고, 지금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암튼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중국어를 붙들었다가 다시 그만두고, 다시 붙들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는 그와 함께 공부했던 교재가 있다. 언젠가 독학으로 중국어를 마스터 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7. 일본어


지인 중에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라고 해야할까? 그들의 영향 덕분에 나도 일본 만화를 제법 보았다. 종이 만화책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화려한 그림과 함께 성우들의 연기를 듣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친한 후배 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애니를 워낙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인 녀석이 있다. 당시 녀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에반게리온이 녹화되어 있는 비디오 테이프였다. 정식 발매된 비디오도 아니어서 화질이 조악하기만 했던 그 이십여개의 비디오 테이프들을 녀석은 목숨보다도 아꼈다.


그때 그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다 늙어서 그러니까 30대 초반 쯤에 건담에 빠졌다. 컴퓨터에 건담 애니를 잔뜩 받아놓고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점점 일본어가 들렸고, 몇몇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몇몇 일본 영화와 다른 장르의 애니에도 관심이 생겼고, 조금씩 조금씩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일본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 일본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에 머물렀다. 다른 언어는 가끔씩 미치도록 빠져드는 순간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일본어는 그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접한 영상물이 바로 일본어였다. 주위에 일본어를 공부한 친구나 후배들도 많고, 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배우지만, 거기서 한 발씩이도 더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언어가 일본어라고 하더라. 뭐, 나는 그 일정 수준까지도 못 가본 입장이지만,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양가 감정이 든다. 영어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잘 알아듣는 말이 바로 일본어일텐데 말이다.


8. 독일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신승훈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 시작할 때 "Ich liebe dich so wie du mich am A bend und am Morgen" 이란 가사 알아듣는 것 외엔 아무런 쓸모도 재미도 없었던 것이 독일어였다. 물론 한 때의 겉멋에 취해 철학을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철없는 시절 얘기였다.


대학에서 맑스(예전엔 마르크스라고 불렀는데, 뭐가 맞는 표기인지 모르겠다.)를 공부하던 선배들이 자본론을 원서로 읽는다는 원대하고도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하던데, 한때 나도 그런 헛바람이 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철없는 시절 한 때였을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환경운동단체에서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를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유람선을 타고 부산항에 들어와 이틀을 머물며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첫날 강연 전까지 꼭 경주를 가보고 싶다고 했단다. 경주까지 그를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신입활동가였던 내가 제일 시간이 많았고, 영어를 쪼금 할 줄 아니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벽에 부산항으로 마중을 나가니, 그 분이 아내와 함께 유람선을 내려왔다. 아주 젊잖은 노부부였으며, 자신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들 부부와 아침 일찍부터 저녁에 강의 시작 전까지 같이 지내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그들처럼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고, 재생에너지 분야의 선진국인 독일에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들을 경주의 유명한 문화재들로 안내하면서 내 짧은 영어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그냥 일상적인 의사소통만 간신히 가능했다. 지금은 관광지에 영어를 비롯한 다국어 안내 책자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던데,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그들의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암튼 그 날 이후로 독일어를 다시 공부해야지 생각했지만, 바쁜 활동가의 삶에 공부라는 사치를 부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독일어 번역가를 만나서 연애를 했고, 그와 결혼을 계획하면서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에 하나가 독일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두어 차례 공부를 하고 왔는데, 여전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다시 공부하러 가고 싶어했고, 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분야와 환경운동의 경험을 쌓고 싶었다. 비록 당장 경제력이 없어서 쉽지 않은 계획이었지만, 젊음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산 자락의 괴테 인스티튜트에 등록해 독일어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아예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었는지 기본적인 문법들은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든 독일에 가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지만, 역시 사람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우리는 각자 일들로 바빠졌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괴테 인스티튜트를 중단했고, 여자친구에게라도 배우겠다던 아니 혼자서라도 조금씩 익히겠다던 다짐도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키웠고, 둘째를 낳았고, 키웠고 그리고 이혼했다. 그 긴 시간 어딘가에서 종종 우리는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자던 생각들을 다시 되새기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도 너무 바빴다. 게다가 둘 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 돈 버는 일 외에도 자기 관심 분야의 다양한 활동들을 놓지 않고 살았다.


최근까지 일부러 독일어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독일어를 생각하면 그때 괴테 인스티튜트를 다니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 생각나고, 그러면 괜히 서글퍼져서 그랬다. 몇 달 전에 외국어 공부 어플에서 다양한 언어들을 선택해서 놀면서 독일어를 한 번 해봤는데, 확실히 조금이라도 공부했던 거라서 훨씬 재미있다 여겨졌다. 


이제 아마도 남은 평생동안 독일에 공부하러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비행기 이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방출을 생각하면 여행으로도 독일은 가면 안 될일이다 싶다. 그냥 천천히 조금씩 독일어 단어와 표현들을 알아가는 재미로 살련다. 이젠 그런 것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9. 힌디어


한때 같은 단체에서 일했던 선배 활동가 중에 인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분이 있었다. 그 양반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인도 영화에 조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개의 인도 영화를 접한 후 나는 그 선배보다 더 인도 영화에 빠져들었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본 영화들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는 모두 인도영화일 것이다. 이상하게 다른 영화들은 반복해서 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인도영화는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꾸츠 꾸츠 호타 해]는 수십 번 봐서 특정 구간은 인물들의 행동을 다 외울 정도다. 인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힌디어를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정식 개봉한 인도 영화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자막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자막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힌디어를 공부해보겠다고 책을 하나 샀는데, 문자를 보는 순간 그냥 바로 포기했다. 이건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이걸 어떻게 외우고 익힐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냥 문자를 익히는 일은 포기하고 순전히 재미로 발음으로만 힌디어를 조금씩 들여다보며 따라한다. 어쩌다 영화에서 자주 접했던 단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몇 달 전 외국인 채팅 앱에서 대화를 나눈 인도 여성과 힌디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것과 몇몇 인도 영화와 배우 이야기를 나눈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10. 스페인어


지금은 가수도 곡명도 기억나지 않지만, 80년대 말에 반복해서 들었던 스페인어 노래가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그 노래가 너무 너무 듣고 싶어져서 어렴풋이 생각나는 구절로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그 노래를 찾지 못하겠다. 이 바쁜 시기에 이 긴 글을 두드리다가 갑자기 그 노래를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을 또 사로잡혀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결국 포기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 옛날 들었던 카세트 테이프는 벌써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고, 지금와서 그 노래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 앞으로 평생 그게 누구의 노래였는지, 제목이 뭐였는지 궁금해 하면서 살아야 하다니! ㅠㅠ)  


영어와는 또 완전 다른 그 어감이 참 좋았다. 그래서 막연히 언젠가는 스페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로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리마에서 자주 스페인어를 들었다. 뭐 그렇다고 그 분량이 많았던 것은 아닌데, 잊을만하면 듣고 떠올리게 만드는 빈도라고 해야하나.


애들 엄마와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아직 이혼 하기 전, 같이 살던 시절 그가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어, 영어를 이미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배웠고, 점점 다른 언어들로 관심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지금은 그 후로 또 어떤 언어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스마트 폰 언어 익힘 앱을 깔고 위 다른 언어들을 야금야금 배우면서 조금씩 천천히 다른 언어들로 확장해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스페인어를 해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무척 재미있었다. 독일어보다 쉬워 보였고, 프랑스어만큼 발음이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속도로 익혀 나간다면 영어를 제외한 유럽 언어들 중엔 스페인어를 제일 빠르게 익힐 것 같다. 조금 찾아보면 콘텐츠 찾기 쉽고 많아서 문화적으로 즐길 요소도 많을 것이다.


11. 인도네시아어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외국인들들 중에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인도네시아 여성이었다. 그를 통해 인도네시아 공용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가 비교적 배우기 쉽다는 말을 들었고,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어를 빨리 배우는 편이라는 말도 들었다.


호기심에 한 번 시도해봤는데, 발음이 어렵지 않고 문장 구조가 단순해서 익히기가 어렵지 않아보였다. 게다가 특유의 억양과 느낌이 좋았다. 한 번은 무료 인터넷 강의를 몇 개 연달아 봤는데, 강사가 설명을 무척 효과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라 기초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어쩌면 오래 붙들고 있었던 중국어나 일본어 보다 인도네시아어를 더 익숙하게 여길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12. 터키어


채팅 앱을 통해 만난 터키계 독일 여성과 대화하다가 터키어를 배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한국어랑 어순이 같아서 금방 배울 거라는 얘기였다. 그의 말만 믿고 시도해봤는데, 총체적으로 어렵더라. 발음도 쉽지 않고 단어들이 긴 편이고, 단어의 변화가 무쌍해서 문법부터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손대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냥 호기심에 시작한 것이니 천천히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에만 만족하며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는 재미를 즐기려 한다.


13. 프랑스어


한때 좋아했던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서 저 언어는 어떻게 저렇게 섹시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언어는 프랑스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아무튼, 외국어]의 저자도 불어불문과를 전공해 그나마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중에는 프랑스어를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순서와 비중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어 발음은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하다. 조금 노력해봤는데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알아듣고, 이걸 어떻게 발음하나 난감할 때가 많다.


다 늙어가는 처지에 가장 섹시한 언어 따위 제대로 익힐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냥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재미 중심으로 보련다.


14. 러시아어


북유럽과 동유럽의 많은 언어들을 조금씩 욕심을 내려고 할 때, 문득 든 생각이 그럼 러시아어는? 그랬다. 살면서 한 번도 러시아어를 배워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일단 내지르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바쁜 삶에 워낙 많은 언어를 동시에 찔끔 찔끔 보고 있으니, 가장 나중에 그것도 흥미가 생겨서가 아니라 왠지 러시아어 정도는 한 번씩 봐줘야지 싶은 의무감에 보는 거라서 가장 속도가 느리거나 거의 안 볼 확률도 높을 것 같다. 암튼 일단 시작했으니 시작이 반이다.


15. 그래서 어쩌라고?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 제대로 언어는 익히는 일도 아님을, 언어를 익히는 가장 나쁜 방법 중에 하나임을 안다. 그러니 이쯤 와서 내 목표는 저 많은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긴 글을 두드리는 것은 그냥 나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단어와 새로운 문장을 접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또 다양한 언어들을 비교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이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나도 외국어를 주제로 한 책 한 권 낼 기회가 생가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욕심은 마음 속 깊숙히 남겨둔다.



마무리는 요즘 완전 자주 듣는 노래로 하자.



<내용 추가>


16. 몽골어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중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아니면 일본어 뒤에 몽골어가 들어갔어야 했다. 몽골에서 보낸 강렬한 기억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다양한 몽골인들과 소통했던 이야기들. 내 또래였던 몽골 경찰과 밤새 몸짓으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 한국, 몽골, 일본 3개 국가 사람들이 참여하는 문화교류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해프닝들.


테렐지와 고비사막의 멋진 경치들과 고비 사막에서 추위에 떨었던 밤의 기억 등. 짧은 시간에 비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몽골어도 프랑스어, 러시아어와 마찬가지로 발음의 벽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러시아 키릴 문자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 꽤 오랫동안 가장 배우고 싶은 외국어 1순위는 늘 몽골어였는데, 여전히 익혀보고 싶다는 욕심은 남아 있는데, 진입장벽이 무척 높은 언어이고, 현재 나는 그 진입장벽을 넘기 위한 여유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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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0-02-1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요즘 읽은 페이퍼 중에 최고인데요. 근데 저 비행기 타고 독일 갈 건데;;;;;; 막 죄스러워졌어요. 제가 아는 선배는 몽골 가서 아주 잘 지내고 있던걸요. 한때 막 좌절하는 선배를 봤는데 몽골어 때문에_ 지금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듯 마구 말하는 걸 보고 역시 언어는 습관이다 했어요.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라로 2020-02-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렇게 다양한 언어를 접해보셨다니 읽으면서 (아이패드로 읽고 있어서) 계속 이 언어가 마지막이겠지,,,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언어도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잘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저에겐 그런 능력이 없어서 늘 찝쩍(?)대다가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자포자기 하는 것 같아요. ^^;;
어쨌든 지금 러시아어를 배우신다 하셨는데 응원합니다! 제 딸아이와 사위 (제가 사위를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ㅎㅎㅎㅎㅎㅎㅎ)는 러시아에서 만나 결혼을 했답니다. 둘 다 러시아어를 하는데 (사위가 더 잘 해요) 서로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위가 딸의 발음이나 뭐 그건 걸 고쳐주려고 하면 자존심 강한 딸이 괜히 기분 나빠하는 뭐 그런 상황인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
아무튼 언어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저도 할말이 많네요. ^^;; 하지만 여기까지하고 다음을 기약할게요. 오랜만에 감은빛 님의 글이 반가와 수다가 이어졌어요. 호호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

2020-02-2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감은빛 > 꿈,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한 그 기억!

알라딘이 내가 9년 전에 이런 글을 썼다고 알려준다. 실제로 당시에는 이 비슷한 내용의 악몽을 자주 꾸었는데, 요즘은 거의 악몽을 꾸지 않는다.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하다. 언제나 삶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극적이라는 사실을 해 바뀌고 며칠 지나지않아 깨닫는다. 올해는 연초부터 정말 스펙타클하구나. 차라리 이 가혹한 삶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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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안 맞잖아

큰 아이는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패드로 만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누워서 폰으로 외국어 단어를 따라하고 있었다. 몇개의 단어를 다 익히고 나면, 짧은 음악이 나왔다. 나는 외국어를 따라했듯이 그 음악 멜로디를 따라했다.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터키어, 인도네시아어, 힌디어, 스페인어 이렇게 여러개의 언어를 돌아가며 몇 개의 장을 따라했고, 매번 그 멜로디를 따라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 멜로디를 따라할 때마다, 큰 아이가 쳐다보며 ˝왜 그것까지 따라해?˝ 라고 물었다. 나는 ˝그냥˝ 이라고 답했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그냥 따라했으니. 아이는 매번 내가 그 음악을 따라할 때마다 한 마디씩 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반응이 재밌어서 그 짧은 음악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따라했다.

계속 하다보니 아이가 조금 언성을 높이며 ˝아니 왜 그걸 따라하냐고.˝ 라고 했다. 듣기 싫다는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재밌어하는 표현처럼 들리기도 했다. 제대로 말해주시 않으면 사람 생각은 알수 없는 거니까. 나는 그냥 계속 진도를 나가 다음 단어들을 따라했고, 아이도 다시 드라마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 장이 다 끝나자 또 그 음악이 나왔고, 나는 또 따라했다. 아이는 ˝아니, 음이 안 맞잖아!˝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이는 맞지않는 음으로 반복해서 따라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것이었다.

큰 아이는 신기하게 어릴 때부터 한번 들은 음악의 계이름을 바로 알아내곤 했다. 절대음감이라고 해야하나? 처음 들은 노래도 바로 따라할 수 있었다. 기타를 튜닝할 때마다 음을 잘 찾지 못해 애를 먹는 나로서는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아, 물론 기타를 거의 치지 않기 때문에 튜닝할 일 역시 거의 없지만) 아이는 음이 맞지 않는 것에 민감한 편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따라했던 그 소리가 거슬렸던 것이리라. 나는 아이처럼 절대음감이 아니니 아이가 얼마나 거슬려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수동형, 피동형 문장이나 맞춤법,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보면 거슬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에 그 음악을 따라할 때는 최대한 음을 맞추려고 노력해본다.

이 자리 앉아도 될까요?

지하철을 여러번 갈아타고 몇 군데를 오갈일이 있었다. 붐비는 열차, 완전 만원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꽉 끼어있었던 열차가 대부분이었지만, 도중에 텅 비어서 앉아갈 수 있는 열차도 있었다. 한 번은 완전 만원 열차를 탔는데, 도중에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왕창 내려서 숨 쉴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분이 일어나면서 자리가 났다. 나도 앉고 싶었지만, 서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서있기 힘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 그냥 서있었다.

잠시 후 뒤에서 어느 여성이 ˝이 자리 앉아도 될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손짓으로 앉으시라고 답했다. 자리가 비면 말도 없이 앞에 있던 사람을 밀치고 앉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렇게 물어보고 앉는 사람은 처음보는 것 같다. 심지어 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각도 상 그 분이 내 귀를 못 봤을리 없었는데, 그렇게 물었다. 다행히 내가 듣던 음악 볼륨이 작아서 그 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분이 자리에 앉고 일행인 여성들이 함께 와서 서느라 나는 옆으로 조금 물러나야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눴고, 그 소리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내게 들렸다. 음, 자리를 양보한 대신 나는 서있던 자리에서 밀려나고 소음 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계단

가끔 무릎이 아픈 날이면, 계단과 내리막길이 정말 두렵다. 무릎이 아프기 전에 나는 계단을 좋아했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부실했던 나는 따로 하체운동에 시간을 투여할 여유가 없으니 뜀박질과 계단 오르기로 하체 운동을 대신했다.

지하철 6호선은 계단이 높고 가파른 역이 많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며 그걸 타고 오르는 사람들보다 먼저 계단 끝까지 올라가는 걸 즐겼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도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사람들보다 빨리 가는 일은 쉬울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근력을 바탕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계단을 올라야한다. 매일 퇴근길 계단이 높고 가파른 역에서 계단을 오르며 연습을 했다. 몇일이 걸렸는지 몇달이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결국 계단을 오르며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오르는 사람들보다 항상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단 오르기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계단을 오르며 근육을 쓰고 나면 그 감각이 좋았다. 뜀박질 후 가쁜 호흡 속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나 근력운동 후 약간의 통증과 함께 느끼는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런데 무릎이 아픈 이후로는 계단을 예전처럼 빠르게 오르내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예전처럼 뜀박질을 즐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예전처럼 빠르게 에어 스쿼트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거울

몇 년 전이었다. 한창 운동을 즐기던 때였고 매일 아침 공복에 속을 비우고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은 아름다웠다. 근육이 크지 않으면서도 선명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내 몸을 보는 일이 이 재미없고 힘든 세상을 견디는 작은 만족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무릎을 비롯한 관절 통증으로 운동을 못한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먹는 양과 횟수가 줄어서 살이 빠졌고, 그래서 날씬한 몸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근육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거울로 내 몸을 보는 일이 즐겁지 않다. 오히려 자꾸 줄어드는 근육 때문에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래도 최근에는 관절이 안 아픈 날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서 조금씩 다시 운동을 시작해보고 있다. 워낙 오래 쉬어서 당장 예전처럼 힘을 쓸 수는 없었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보면 다시 운동을 즐기던 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관절들이 다시 운동을 버텨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을거라는 절망감이 들 때도 있고,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부딪히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그게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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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20-01-1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관절에 좋은 약을 좀 드세요.
나이 많아지면 제일 소중한게 관절입니다. 특히 무릎관절이 중요하죠,
그린홍합이나 msm 그외에도 요즘은 관절을 위한 효과 좋은 약들이 많더군요.
몸매는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안아픈게 제일 중요해지는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답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ㅎ ㅎ
 


아빠는 끄곰이


최근 작은 아이는 웹툰의 영향을 받아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런걸 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현세, 이상무 화백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의 딱 지금 작은 아이 나이였다. 그때는 소년 만화 잡지들이 종이로 출간되던 시기여서 만화책을 보면서 비슷하게 배껴그렸는데, 작은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거의 법칙]이라는 웹툰을 보고 가족을 특정한 캐릭터로 그려서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만화를 그린다. 아마 애들 엄마가 그 웹툰을 아이에게 알려줬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가 내게도 보여줘서 함께 봤다. 직장생활을 하는 젊은 여성의 가족들 중 할머니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시골로 귀촌하면서 할머니와 단 둘이 동거를 하게 된 계기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살구를 좋아하셔서 별명으로 살구라고 부르고, 캐릭터도 살구 모양으로 그렸다. 만화가 본인의 캐릭터는 나무늘보로 그렸고, 그의 절친한 친구는 뭐였더라, 수달이었던가 뭔가 물에 사는 작은 동물이었던 것 같은데, 암튼 그런 식으로 그리면서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서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가는데, 그 따스한 시선과 일상의 잔잔한 재미들이 꽤 괜찮았다.


아이가 내게 보여준 부분은 앞 부분 조금이어서 나중에 시간 날때 최근 소식을 찾아보려 검색했더니 중간부터 거의 연재가 이뤄지지 않다가 얼마 가지 않아 완결이 되었던데, 살펴보니 살구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마지막화 내용이었다.


암튼 그 만화에 영향을 받은 작은 아이는 엄마와 언니와 자신의 캐릭터를 각각 만들었는데, 아마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만든 느낌이었다. 엄마는 소를 귀엽게 형상화 한 캐릭터로 엄마가 소띠라서 그랬던 것 같고, 언니는 토끼로 그렸는데, 아마 언니가 귀여운 토끼 이미지를 원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자신은 다람쥐로 그렸다. 언니가 귀엽다고 다람쥐라고 부르며 볼을 잡아당기곤 했기에 그렇게 정했으리라.


그리고 아이는 내게 물었다. "아빠는 어떤 캐릭터로 할까?", 나는 아이가 애들엄마를 소로 그린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아빠는 용띠니까 용으로 해줘."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더니, 아빠는 곰이 어울린다고 북극곰으로 그리겠다고 했다. 왜 북극곰이냐고 물으니, "아빠는 북극곰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 라고 답했다.


기특하게도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아빠가 하는 에너지 운동이 지구를 살리고, 북극곰을 살린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 이면에 숨은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덩치가 큰 남자 어른인 아빠는 아무래도 곰의 이미지와 비슷할 수 밖에 없음을. 게다가 겨울이면 집에서 군대 제대할 때 가져온 깔깔이를 입고 늘 누워서 뒹굴거리는 모습을 주로 보기 때문에 더욱 곰 이라는 이미지에 가깝게 느꼈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암튼 그래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는 북극곰 캐릭터를 부여받았고, 아이는 캐릭터 이름을 '끄곰이'라고 지었다. 참고로 엄마는 '움마', 언니는 '단토끼', 자신은 '람쥐'라고 이름을 지었다.


부모 참관 수업


이미 한참 지난 이야긴데, 그간 서재에 글 쓸 여유가 없어서 이제서야 끄적인다. 지난 달 중순 즈음 아이가 낮에 전화를 걸었다. 왠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곧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부모 참관 수업이 열리는데, 엄마는 그날 바빠서 올 수 없다고 했단다. 엄마 대신 아빠가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내 기억엔 작년에도 내가 한 번 부모 참관 수업을 갔었다. 그때도 애들 엄마가 바쁘다고 했었다. 일정을 보니, 그 시간에는 비어있었지만, 앞의 일정을 마치고 가면 시간이 빠듯했다. 그리고 사실 무척 바쁜 시기여서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가 꼭 와달라고, 엄마 아빠 아무도 안 오면 안된다고 하길래, 어쩔수 없이 가겠다고 약속했다.


당일 학교로 갔더니 예상대로 아빠는 나 혼자였다. 작년에도 그랬다. 대부분은 엄마들이 왔지만, 가끔 할머니들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참여하는 반 외에 다른 반에 또 거의 한 명 꼴로 아빠들이 있었다.


아이가 속한 반은 뭔가 작은 물품을 만드는 공예 수업 같은 것이었고, 그날은 손거울을 만들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하나씩 만들도록 시킨 후에 부모들에게도 따로 또 하나씩 만들라고 제안했다. 어쩔수 없이 나도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거울을 하나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참 불편한 일인데, 선생님도, 주위에 앉은 다른 엄마들도 어쩐지 나를 어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나는 열심히 거울을 만들었고, 나중에 완성해놓고 보니 제법 잘 만들었더라. 선생님은 아마 일부러 그랬겠지만, "어머! 아버님, 너무 잘 만드셨네요!" 라고 호들갑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강의, 원고, 교정지, 일, 일, 일, 서류, 서류, 서류


연말부터 그 다음해 3월까지는 정말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시기다. 매일 야근이고, 매일 철야고, 매일 잠이 모자라고, 매일 죽을 것처럼 피곤한 날이다. 지난 주에는 주초에 좀 무리를 했다가 감기몸살에 걸려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팠다. 살면서 그렇게 심하게 아팠던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창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아파 누워버리는 바람에 일이 더 밀렸다. 


사실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아플 일도 없었을텐데,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문제다. 이번 주에도 또 이틀 연속 철야하고, 하루는 저녁 늦게 들어가고 다시 이틀을 밤샘 작업했다. 지금 또 몸과 마음의 피로가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몸은 어쩔수 없더라도 마음의 스트레스라도 좀 풀어보고자, 이 바쁜 시기에 여기다 이 글을 쓴다.


게다가 올해는 유난히 외부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내일 오전에 잡힌 강의까지 이번 주에만 강의가 3건이다. 일주일에 3건의 외부 강의라. 이런 일이 또 생길까 싶을 정도로 강의가 몰린다. 바쁜 시기가 아니라면 강의를 하는 건 나도 좋아하는 일이고 부수입이 생기니 감사한 일이지만, 이 바쁜 시기에는 내 몸과 마음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청탁 받은 원고와 교정지도 있고, 연말 안에 마무리지어야 할 무수한 행정서류와 기획서와 보고서들이 까마득히 멀리까지 줄을 서있다.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냈으면 최근 몇 주간은 거의 술도 못 마셨다.



절판도서 구매


절판도서 알림 설정을 해놓았더니 부산 어딘가의 중고 매장에 책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떴다. 나는 일을 하다말고 곧바로 배송 주문 후 결제부터 했다. 그리고 3일 후에 책을 받았다.














지난 달에 산 10여 권의 책들 중 절반은 한 번 펼쳐보지도 못했다. 이 책은 또 언제 펼쳐보려나. 어려서 나는 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곰을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다. 곰 외에도 여러 동물들이 동면을 하지만, 유독 곰을 떠올린 건 겨울잠을 자는 대표적인 동물이라서였겠지. 작은 아이가 그려준 캐릭터 그림을 보며, 차라리 진짜 북극곰이 되어 겨울 내내 잠만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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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고 일은 줄어들지 않아


한동안 야근을 안했다. 일은 많이 밀려 있었지만, 일부러 야근만은 피했다. 쭈욱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건물에서 늘 야근하는, 자주 밤샘하는 이웃 일터 몇몇 분들이 저녁 8시나 9시쯤 퇴근하는 나를 보며 "왜 요즘은 야근 안 해요? 맨날 야근하던 사람이."라고 묻기도 했다. 그렇다고 저녁 시간을 푹 쉬거나 한 것도 아니다. 저녁에 외부에서 회의가 있었던 날도 있었고, 집에서 일터 일이 아닌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있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피로에 찌든 몸과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관절 통증까지 매일 야근을 할 몸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야근을 자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일단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시기이기도 하고, 낮엔 회의와 찾아오는 사람들과 강의 등으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고, 저녁에도 이것저것 급하게 치고 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늘 새벽이 되곤 했다. 정작 밀린 일은 계속 손을 대지 못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급격하게 느껴진다. 지난 번에는 딱 하루 밤새 일하고, 오전에 현장 답사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친분이 있는 업체 담당 부장님께서 나를 딱 보더니 곧바로 "밤새 일하고 오신 거예요?" 물었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아보였으면 첫 마디가 저 질문이었을까? 그리고 또 다른 날엔 밤새고 오후 늦게까지 일한 후에, 집에서 조금만 쉬다가 다시 밤에 일해야지 했는데, 다음날 늦은 아침까지 깨지 못하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에만해도 3일 연속 밤새 작업하며, 잠깐씩만 졸아도 잘 버텼다. 3일 연속 밤샘 작업하고 하루 쉬고, 또 3일 연속 이런 식으로 일을 이어가기도 했다. 최고 기록은 87시간 동안 연속 일하면서 집에는 잠깐씩 들어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나왔던 것. 물론 그 시간에 잠깐씩 졸았던 시간은 포함되어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예정보다 훨씬 늦게 퇴근하면서도 애초에 생각했던 일의 10분의 1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 밖에 있었고, 오후에 사무실 돌아와서도 두 건의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 건마다 그 정도로 시간이 걸릴줄 몰라서 둘 다 시간이 더 걸리는 바람에 나는 컴퓨터 앞에 전혀 앉아보지도 못했고, 앞 타임의 방문자는 논의를 다 마치지 못하고 다시 날짜를 잡았고, 뒷 타임의 방문자는 제 시간에 도착하고도 나를 기다리느라 한참을 시간을 허비했고, 결국 서로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에 쫓겨 대화를 나눠야했다. 결국 또 해야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금요일은 아이들을 만나는 날인데, 기다리는 아이들이 혹시 배고파할까봐 걱정이 되어 마음이 급했다.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애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토요일인 내일 발전소 청소를 가기 위한 준비물들을 챙기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 한 두건을 마친 후에 퇴근했다. 가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으니, 밤엔 애들하고 장난치고 놀다가 자야겠다. 내일도 발전소 청소를 마치고, 하루종일 고생한 나를 위해 술 한잔 해야하니 또 일은 못 하겠구나. 일요일 저녁에 애들을 보내놓고, 지역 녹색당 운영위원회 회의 자료를 만들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서 사무실로 가서 밤새 일을 해야겠다. 일요일 밤을 사무실에서 보내면 월요일부터 또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겠지. 분명 밀린 일을 다 처리하려면 며칠을 밤을 새도 모자랄거야. 


그리고 그 생각 그대로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보내고, 지금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사실 어제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전날 발전소 청소 하느라 무리해서 등과 어깨쪽에 근육통이 있었고, 시원찮은 무릎과 발목으로 수백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느라 관절 통증도 있었다. 너무너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맡아 놓은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급하게 안건지를 만들어놓고 회의 장소로 갔다.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 춥고 비까지 내려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는 길어졌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사무실로 출발했고,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분명 가볍게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었고, 회의하면서도 간단한 간식을 먹었는데, 사무실 오자마자 급격하게 배가 고팠다. 졸릴 것을 대비해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면서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등을 잔뜩 사서 먹었다. 집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과식을 하고도 자꾸 뭔가가 먹고 싶었다.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밤새 일을 했음에도 별로 피곤하지는 않다. 공동사무실에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능률이 좋을때 일을 더 해야지 생각했는데, 아까 마을에서 활동하는 선배 한 분이 불이 켜진 우리 사무실 문을 열고 밤새 일한 거냐고 물어서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흐름이 깨져 버렸다. 잠시 쉬며 담배를 피우고 이왕 흐름이 끊어진 것, 알라딘에 짧은 글이나 하나 남겨야지 생각했다.


사실 쓰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었는데, 그걸 다 쓰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여, 그냥 금요일부터 바쁘게 지낸 주말 이야기를 짧게 전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월요일인 오늘도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있다. 그리고 아마 오늘도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해야할 것 같다. 과연 언제 집에서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일단 빨리 일이나 계속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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