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전 대란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부 지역에서 정전이 일어나 긴 시간 동안 전기 없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신호등이 멈춰 차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전철이 멈춰버려 교통이 마비가 되었고, 전화기가 먹통이 되고, 카드 단말기를 쓸 수 없으니 사람들은 물건을 사지도 못하고 식사를 결제할 수 없었다. 밤이 되자 도시가 아니 온 나라가 그냥 깜깜해졌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는 전기 없이 살기 어렵다. 흔히 종말이나 좀비 창궐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제일 말이 안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전기와 통신이 살아있는 점이다. 우리가 전기를 이용하려면 얼마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전기는 아주 민감해서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지 않고 한 쪽이 많아지고 다른 한 쪽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곧바로 블랙아웃으로 이어진다. 2011년 9월 15일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생길 뻔 했었다. 그때 전력거래소에서 다급하게 무작위 순환 단전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전계통 블랙아웃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지금 스페인 정전처럼 당시 우리나라도 전체 정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당시 사고에 대해 사후에 그리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전력예비율이 낮았던 이유는 발전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요 발전소들이 일제히 점검에 들어가 있었다는 언론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 일을 계기로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들을 마구 지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손 꼽히는 기후 악당으로 등극했다.


사실은 발전소가 부족한 것이 전력예비율과 공급예비율을 잘 조절해 운용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는데, 이걸 빌미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잔뜩 짓는 정부라니. 내란으로 물러난 윤석열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핵발전을 떠들어 댔는데, 핵발전이야 말로 이 전력 계통망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이다. 핵발전소는 한번 핵연료봉을 투입하면 몇 년 후에 그 연료봉을 꺼낼 때까지 발전소를 멈출 수가 없다. 하루 24시간 내내 돌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야간에 써야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니까 심야 전기를 싸게 공급했었다. 그리고 밤에 싼 전기로 물을 산 정상에 끌어 올리고 낮에 전기가 필요할 때 그 물을 떨어뜨려서 발전을 한다는 요상한 개념의 양수발전소가 우리나라에 많은 이유도 이 핵발전소 때문이다. 이렇게 한번 가동하면 끄지도 못하는 핵발전소는 유연해야 할 전력망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스페인 정전에 태양광 발전 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태양광은 소위 말하는 변동성, 날씨에 따라 변하는 출력량 때문에 전력망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태양광은 일기예보를 예측 가능하다. 그 유동성 만큼 천연가스 발전을 늘리거나 줄이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게다가 ESS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번 정전의 원인은 전력망을 통제하는 발전회사의 잘못일 것이다. 개별 발전소를 운영하는 태양광 발전 사업자 탓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우리나라 통신 시장에 빗대어 SK, KT, LG 와 같은 통신회사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지 애플이나 삼성 같은 개별 제조사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한전이라는 공기업이 송전과 배전을 다 맡고 있고, 발전도 한전의 자회사들이 대체로 맡고 있어서 전력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국민들이 거의 없다. 다른 나라는 발전회사, 송전회사, 배전회사 대부분 민간 기업들이고, 개인이 직접 특정한 발전회사, 송전, 배전회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모르기 어려울 것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지만, 오늘은 좀 바쁘니 이 정도로 하고. 전력망과 블랙아웃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우석훈 박사가 쓴 소설 [당인리]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우석훈 박사가 무슨 소설을 썼나 하고 의아했는데, 읽어보니 사전 조사를 많이 하고 쓴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여러 해 전에 무슨 티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우 박사님과 단둘이 재생에너지 현황에 대해 짧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에너지 분야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이후에 공부를 많이 하셨나 보다.

















죽음과 그 곁의 노동자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내 주위 지인들도 다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진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환절기에 더욱 그렇다. 얼마 전에도 장례식장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최근 몇 년은 뵙지 못했지만, 우리 조합 초기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의 모친상 연락이 왔다. 현재 조합의 임원들은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었다. 초기 임원들 대부분이 현재는 임원이 아니시니. 그래서 그 분을 아는 내가 대표로 조문을 가기로 했다. 혼자 가기는 조금 그래서 현재 임원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 장례식장에서 집이 엄청 가까운 지인을 데리고 갔다. 조문을 하면서 실수가 있었다. 기독교 식으로 국화를 얹고 기도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습관 때문에 그만 절을 두 번 하고 말았다. 암튼 절을 하고 일어서서 상주와 인사를 나누는데, 그 선생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셨다. 아, 장례식장으로 오는 길에 그 생각이 들기는 했었다. 그 분을 못 뵌지 제법 오래 되었고, 나는 최근에 장발에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실테니 어쩌면 못 알아보실 지도 모르겠다 라고. 암튼 내 이름을 말씀 드리고 우리 조합 이름을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아~~ 아~~~ 하면서 반가워하셨다.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고 못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장례식장에 오면 가끔 우리 부모님을 모실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닥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희정 작가님이 신간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조업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르포인 것 같다.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여기에 올려본다.
















이 외에도 할 말이 많은 날인데, 오늘은 너무 바쁜 날이기도 하다. 금요일에 또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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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너지는 발전보다는 저장 기술의 한계가 가장 큰 난관인 것 같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곳,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 미친듯한 바람이 부는 곳은 많고 또 낙후한 지역일텐데 , 무한정한 대체에너지 자원이 결국 저장 기술의 한계로 그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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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달리기 이야기로


우리 동네 의료협동조합에서 올해도 건강실천단 활동을 한다. 올해가 3년차인가? 일단 나는 3년째 참여하고 있다. 첫해는 달리기 모임, 두 번째였던 작년에는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올해는 무려 3개의 모임에 참여한다. 작년에 이어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은 그대로. 그리고 올해 달리기 모임은 매일 30분 달리는 것이 모임의 기본 룰이라고 했다. 아! 매일 30분이라고! 이거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신청했는데. 일주일에 5번 이라던가, 암튼 가끔은 쉬어줘야 할텐데. 현재 내 체력으로는 매일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도를 조절하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강도를 조절해 일부러 천천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달리기 모임이 이거 하나 밖에 없어서 들어왔다는 다른 사람도 매일 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의견을 남겼다. 마침내 모임지기가 각자 본인의 몸 상태에 따라 가능한 만큼 달리는데, 가능하면 매일 달려보자는 의견이었다고. 88일 동안 매일 달린 사람은 어쩌면 모임지기 한 명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자, 나도 조금 무리라도 같이 달려서 두 명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첫날 30분을 달리자마자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너무 힘들었다. 나로서는, 내 페이스로는 매일 달리기는 절대 무리다.


첫날이었던 22일 화요일은 지구의 날이었다. 지구의 날이라서 그랬는지 비가 왔다. 비가 미세먼지를 씻어주고, 가뭄에 시달리는 봄을 적셔줬다. 그날 저녁에는 아이들을 만났다. 애들 엄마와 작은 아이가 새로 이사 간 아파트 근처에는 아주 큰 공원이 있다. 예전에 살던 곳에도 바로 근처에 큰 공원이 몇 개 있었다. 정말 파주에는 큰 규모의 공원이 많다. 그리고 최근에 개통한 GTX 종착역인 운정중양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운정중앙역에 내려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만나는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면 금방 그 아파트를 만난다. 몇 차례 걸어 다니면서 이 공원이 달리기 하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건강실천단 첫 날이었던, 지구의 날 밤에 집으로 돌아오기 전 그 공원에서 30분 달리기를 했다. 큰 아이는 그 공원의 한쪽 끝에서 버스를 타고 원룸으로 돌아가는데,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외진 곳 인데다, 밤이라 애들 엄마는 늘 내게 큰 아이가 버스 탈 때까지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그날도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달렸다. 한동안 불광천만 달리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른 곳을 달리니 색다른 기분이 들어 좋았다.


예전에 짧은 거리를, 그러니까 2~3 킬로미터 정도만 달렸던 시절에는 여기저기 아무 곳에서나 달렸다. 우리 동네에는 큰 공원이 아예 없고, 적당히 달릴 곳이 거의 없다. 나는 동네 골목길들을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운영했던 달리기 모임에서는 주로 혁신파크에서 달리기를 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부터 장거리 달리기, 적어도 5~6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기 시작하면서는 그 정도 거리를 달릴 곳이 불광천 밖에 없어서, 매번 불광천을 달렸다. 


불광천을 달리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천변 산책로를 따라 한강까지 연결이 되니 10킬로미터 이상 20킬로미터 이상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거리를 늘려 달릴 수 있다. 달리는 동안 신호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들 때문에 조금 붐비는 시간대만 피하면 한가로운 길을 달릴 수 있다. 단점은 방금 말한 사람들과 자전거들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달리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매번 같은 곳을 달리다 보니 익숙함과 함께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일부러 거리를 확 늘려서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도 그런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이번에 파주에서 공원을 달려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일단 달리는 경로를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다. 외곽으로만 돌 수도 있고, 중앙을 가로 질러 갈 수도 있고, 외곽과 안쪽 산책로를 섞어서 돌 수도 있고, 방향을 반대로 틀어서 오르막 길을 반대로 오르내리도록 바꿔줄 수도 있고. 하나의 길을 한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같은 길을 돌아와야만 하는 단조로운 불광천에 비해 이 공원은 정말 재미있었다.


다만 불광천을 뛰고 나면 잠시 거점에서 세수하고, 물을 마시며 쉬다가 집까지 걸어서 돌아오면 되는데, 파주에서 공원을 뛰고 나면 대중교통을 통해 돌아와야 하는데,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30분 달리기를 마치고 세수를 하고 바람에 땀을 말리고 운정중양역으로 향하기는 했지만, 분명 내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났을 것이다. 아무리 평소 땀 냄새가 안 나는 편이라고 이야기를 듣긴 했어도, 그래도 바로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면 냄새가 안 날 수 없을 것이다. 평소 밤 11시가 넘어서 운정중앙역에서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거의 없기는 했는데, 어떤 날엔 한 칸에 나 혼자 타고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역으로 갔는데, 그날 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때는 비교적 초기라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암튼 가는 도중에 좌석이 거의 다 찼고, 결국 내 옆에도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았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옆 자리의 사람은 내가 내릴 때까지 특별히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불편했을 수도 있겠지.


둘째 날이었던 어제는 불광천을 달렸다. 저녁 8시까지 매장을 보는 날이었는데, 마침 매장 안 테이블에 책 모임 사람들이 9시까지 모임을 하겠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 분들이 알아서 매장 문을 잠그고 가시라고 안내하고 나는 퇴근 했었지만, 어제는 나도 할 일이 남아있어서 그냥 9시까지 매장을 보면서 일했다. 책 모임을 마친 분들이 뒤늦게 매장에서 몇 가지 제로웨이스트 물품들을 구매하고 나서, 달리기를 하러 갔다. 책 모임에 속한 분 한 분과 일부러 달리기를 하려고 오신 분이 또 한 분. 이렇게 여성 두 분도 달리기를 하신다고 해서 같이 30분 달리기를 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니 출발 지점에서 동시에 출발해서 딱 30분 되는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두 분이 어느 정도 달리시는지 궁금해서 잠깐동안은 함께 달려보면서 자세를 좀 봐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기엔 길을 막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두 분의 속도도 예상보다 많이 느렸다. 그냥 내 페이스 대로 달려야겠다고 생각을 바꾸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첫날 파주에서는 540 페이스로 5.4킬로미터를 달렸고, 둘째 날 불광천에서는 539 페이스로 5.4 킬로미터를 달렸다. 일부러 의식한 것도 아니고 속도는 계속 들쭉날쭉 변했는데, 결과는 거의 똑같이 나왔다. 요즘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달리면 대체로 530에서 540 정도 페이스로 달리게 되는 것 같다. 거리가 3킬로 정도 되면 몸에 열이 오르며 페이스가 올라 510 이나 500 까지 올랐다가,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지치면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540 에서 550 정도까지 떨어지는 듯. 마지막까지 여기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결국은 전체 페이스는 540 정도가 만들어 진 것 같다. 전날 뛰고 연달아 뛰는 거라서 둘째 날이 더 힘들 줄 알았는데, 첫날이 훨씬 더 힘들었다. 둘째 날은 그냥 달릴 만하다고 느꼈다. 뒤에 일정이 없었다면 아마 거리를 늘려 한 8킬로미터 정도 달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딱 30분에 맞춰 끝냈다.


그리고 3일째인 오늘은 하루 쉴 예정이다. 아침에 고민을 좀 했다. 런닝 복장을 챙겨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 외부 일정이 없는 날엔 아침에 그냥 런닝 복장 그대로 출근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침에 구청 공무원들과 면담이 잡혀 있어서 평상복을 입고 나와야 했다. 오늘은 저녁까지 매장을 보고, 마치고 곧바로 워크숍에 참여해야 한다. 워크숍이 끝나는 시간은 아마 9시 반. 뒷 정리를 하고 나면 아마 10시. 어제보다도 더 늦은 시간이다. 그리고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먼 길을 가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달리기는 무리가 될 것 같았다.


요즘 계속 평일에는 잠이 모자라고, 주말에 몰아서 자고 있다. 그냥 출퇴근만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인데, 매일 달리기를 하려면 체력을 더 길러야 할 것이다. 아마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점점 익숙해지긴 하겠지.


시 쓰기와 글쓰기


건강실천단 첫 날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제목으로 시를 하나 써보고 싶다고. 달리면서 머리 속으로 시를 써봤다. 나중에 전철에 타서는 폰을 꺼내 메모장에 두드렸다. 빠르게 완성하고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큰 아이에게 보여줬다. 큰 아이의 평가는 "시가 아니라 에세이 같아요." 였다. 음, 뭐 꼭 칭찬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 딴에는 시라고 생각하고 쓴 글이 '시'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조금은 실망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내 기준에서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날이 바뀌기 전에 '하루 시 한 수 읽기' 모임에 그 시를 공유했다. 그리고 큰 아이가 평가한 저 문장을 그대로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모임 구성원 중 꾸준히 달리기를 하시는 여성 선배님 한 분이 반응을 남겨주셨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달리기 '시'를 잘 읽었다고 쓰셨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라고 일부러 강조했다는 점. 예전에 철인3종 경기에도 여러 차례 나갔었다고 들었고, 평소에 시를 많이 읽으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다. 달리기와 시 이 두 가지 주제에서 그 분과 나는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재치있는 반응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나서 생각했다. 결국 나는 시를 계속 쓸 사람은 아니다. 다음날 생각해보니 큰 아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내가 선택한 단어와 문장은 시 보다는 산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평생 시 보다는 소설에, 산문에 더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늘 산문을 쓰는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겠지.


아래는 엊그제 쓴 시


달리기 / 감은빛


긴장되는 마음, 

심호흡이 필요해

가벼운 제자리 뛰기

준비운동

그리고 출발선


자, 이제 가자

눈은 조금 멀리 전방을 주시하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가슴과 허리를 쭉 펴고

발이 땅을 박차고 나간다

양 팔은 접은 채로 자연스럽게 흔들어

너무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가지 않게

아주 가볍게

옆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


자, 이제 조금씩 속도를 올려

빠르게 다가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내 온 몸으로 부딪쳐 왔다가 

아주 짧은 순간 안아준 후에 떠나가는 바람

양 옆을 스쳐가는 나무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숨이 헐떡여지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세상 어떤 무엇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두 번에 걸쳐 힘차게 숨을 내뱉어

배 속 깊은 곳까지 숨이 닿았다가

내 온 몸으로 산소를 전달해야 해


호흡과 심장 박동과 발을 내딛는 속도를 맞춰

내 몸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주목해

나는 온 세상의 기운을 받아 계속 달릴 수 있어


달리는 동안 나는 

힘차게 물을 박차 오르는 날치가 되고,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쉬지 않고 날아가는

흑꼬리도요가 된다

명왕성을 지나 오르트구름을 향해가는 

보이저1호가 되기도 하고,

심해와 물 위를 오가는 개복치가 되기도 한다


점점 숨이 차고 발이 무거워지면

호흡을 깊게 유지하고

아주 조금씩 속도를 줄여야 해

바로 발을 멈추지 말고

저 멀리 목표를 정하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나가야 해


달리기를 멈추면

바로 앉거나 눕지 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어보자


땀이 식으면

이제 세상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차오를거야

지구를 사랑하고, 우주를 사랑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달린다

        


3월 말에서 4월 초에 혁신파크 공공성 지키기 투쟁 관련 글을 써 달라고 청탁을 받았었다. 그때 개인적인 감성을 많이 담아서 글을 써봤다.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 개인적인 내용이 많았다. 친한 사람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인 서너명에게 글을 보내며 한번 읽어봐 달라고 했다. 반응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개인적인 내용들은 좀 들어내고, 내가 잘 알고 있는 전문적인 내용들을 좀 더 보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들에게 보내긴 했었다. 내가 봐도 글이 중구난방이었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쨌든 담고 싶은 느낌이 있어서 일부러 개인적인 기억들을 담아서 개인적인 감상을 넣었던 것인데, 그게 전체적인 글에서는 군더더기 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그들의 조언처럼 그걸 다 들어내 버리기는 싫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마감일은 훌쩍 지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느낌의 글을 쓰지도 못하고, 조언을 해준 사람들의 의견대로 글을 고치지도 못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다. 군더더기 처럼 느껴지는 내용을 조금은 과감하게 지우고 에너지 이야기 부분을 좀 더 보완했다. 하지만 전체 글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여전히 어정쩡한 느낌은 남아있었다. 그렇게 글을 보내고 나서는 미련을 버렸다. 나중에 기고 글을 올리는 과정에서 에너지 부분이 조금 더 보완된 수정안이 돌아왔다. 누군가 수정해준 덕분에 지인들의 조언들처럼 무게 중심이 그쪽으로 좀 더 가있었다. 뭐, 어차피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서 그대로 다 수용했다.  


이번 기고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느꼈다. 나, 참 글을 못 쓰는구나. 그리고 의외로 내 주위에 글을 잘쓰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또 하나 느낀 것은 나이가 들면서 좀 쓸데없는 버릇과 고집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쓰다 보면 꼭 서론이 길고, 잠시 엉뚱한 이야기로 샜다가 돌아오는 나쁜 버릇이 들어 있다는 걸 느낀다. 그냥 혼자 쓰고 읽을 거라면 어떻게 쓰던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특정한 목적과 특정한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글이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는 나는 자꾸 그 방식을 바꾸려는 생각보다는 그걸 통해서 색다른 느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재주는 따르지 않는데 엉뚱한 것을 이루고 싶어하는 바보 같은 모습이다.


오늘 원고료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돈이 들어오면 아이들과 맛있는 것 사 먹어야겠다.


※ 목요일에 글을 써서 등록하기를 눌렀는데, 글이 올라가지 않았다. 금요일인 오늘 확인하고 다시 등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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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4-2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감성의 하루키의 수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글 모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은빛 2025-04-30 20:09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늘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덕분에 달리기 글을 꾸준히 모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희선 2025-04-26 0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 시 한 수 읽기를 하셔서 시도 쓰셨나 봅니다 요새 즐겁게 하는 달리기로... 날마다 30분씩 달리기 쉽지 않겠습니다 날마다 30분이나 한시간 걷기는 그나마 괜찮을 텐데... 날마다 못한다 해도 자주 달리시겠군요


희선

감은빛 2025-04-30 20:11   좋아요 0 | URL
사실 시를 써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는데,
그날 갑자기 달리기에 대한 시를 써야지 생각이 들었어요.
역시 매일 달리는 것은 무리였어요.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달리기로 했어요.

희선님, 늘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5-04-26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일 달리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 같아도 한편으론 무리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황영조 김독님이 말씀하시더군요.안전한 주법으로 건강하게 달리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5-04-30 20:12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 저도 매일 달리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서 이삼일에 한 번씩 쉬기로 했어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4-27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격일 걷기 운동을 하는데 요즘은 1주에 4~5회 걷는 것 같아요. 강좌 수강, 운동 가는 날, 친정 가는 날, 장보는 날 등이 있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는 6천보 이상 걸으면 무리라서 그 이하로 걸어요. 나이 들었거나 체력이 약한 이들은 격일 운동이 좋다고 하네요. 중요한 건 자기 몸컨디션에 알맞은 운동이겠지요.
시, 잘 읽었어요. 왜 시가 아닐까요? 산문시, 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죠. 원고료 타시는 기쁨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신문 기고를 할 때마다 들어왔던 원고료가 참 좋았어요.

감은빛 2025-04-30 20:15   좋아요 1 | URL
큰 아이는 시를 전공하는, 그러니까 좀 더 엄격하게 시에 대해 고민하는 녀석이라, 본인 기준으로는, 본인이 생각하는 틀에서 시라는 범위에 애매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어요. ㅎㅎㅎㅎ

6천보 이상 걸으면 무리가 되나봐요. 저는 거의 매일 8천보 이상 걷고, 달리기를 하는 날이면 대개 1만5천보를 넘어가요.

재미도 없는 긴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페크님,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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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걷기


아침에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버스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 버스 노선이 한참을 밖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자주 오는 노선이 아니기도 해서 걷는 것이나, 버스를 타는 것이나 시간으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앱에서 알려준 기준으로 걸어서 47분, 버스 노선 2개를 갈아타고 가면 38분 정도. 하지만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나는 가는 길을 대부분 걸어봤기 때문에 47분이 아니라 40분도 안 걸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괜히 멀리 빙 둘러서 버스를 탈 필요없이 그냥 바로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리라 생각했다. 덕분에 아이들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를 오랜만에 걸었다. 내가 걸었던 시간이 딱 학생들 등교 시간이었다. 그 길에 중학교 2개와 고등학교 3개와 초등학교 3개가 차례대로 나왔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친구들과 무리지어 가거나, 혼자 가는 모습이었지만, 초등학생들은 부모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젊은 아빠가 여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아이들이 예전에 졸업한 초등학교를 향해 걷는 모습을 보았다. 절로 옛날 생각이 났다. 이제 성인이 된 큰 아이와 아직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방과후 교실에서 집을 데리고 왔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젊었겠지.  잠깐 추억에 잠겨 걷는 사이에 걸음이 느려졌다.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에 딱 맞출 수는 있어도, 조금 미리 도착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중에 만나는 작은 교차로에서 보행 신호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답답했다. 결국 신호가 바뀌면 뛰고 또 신호등을 만나면 대기하면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했다. 뛰어가는 건 쉬운 일이지만,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빨리 걸어보니 이건 또 뛰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어려운 일이더라.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내 계산보다 1분 늦은 4분 전에 도착했다.


약 1시간 가량 일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은 더 멀었다. 우리 집에서 일터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에서 20분 가량 걸린다. 그럼 약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까? 지름길을 알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암튼 버스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아침에 왕복한 것 만으로도 1만보를 넘게 걸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 시간 계산이 좀 이상해졌다. 1킬로미터 정도는 한 6분이 채 안되어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후로는 자꾸 거리 계산을 달리기 기준으로 하게 된다. 실제로는 어디를 가던 그 거리를 다 뛰지는 않고, 반 이상은 걸으면서도. 일터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치며 보니 재개발 구역에 묶여 넓은 구역이 철거되어 있었다. 그 언덕 위 달동네를 살피며 우리 가족이 살았던 그 집도 철거 되어버린 건가 하며 한참을 머리를 굴려보았다. 위치 상으로 보니 확실히 철거된 것이 맞았다. 그 집 다음에 살았던 곳, 언덕 위에서 조금은 아래로 내려온 위치에 있는 다세대 주택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동네를 지나쳐 한 20분 이상 걸으면 이혼 한 후에 내가 살았던 집들이 위치한 골목들이 있었다. 그 집들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겠지. 새삼 이 동네에 참 오래 살았구나 싶었다. 20년을 훌쩍 넘겼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아직은 부산에 살았던 날들이 조금 더 많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이젠 서울에 살았던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지금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 중 다수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서울로 온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이미 고향에 살았던 시간보다 서울에 살았던 시간이 더 긴 사람들이다. 나는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고, 중간에 군대도 다녀왔고, 대학 졸업 후에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것도 부산이었기에 서울에 올라온 시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었다.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걸어 다녔던 작은 골목들을 걷다 보니 우리집이었던 곳들 뿐 아니라, 친했던 지인들의 집들도 대부분 기억났다. 대부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이었다. 골목길과 그 안의 낡은 건물들은 대부분 그대로였지만, 그 건물에 들어선 가게들은 거의 대부분 바뀌어 있어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예전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곳도 있었다. 오래 전 버스 종점이었던 곳,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선 낯선 곳 맞은 편에 있는 낡은 중국집은 예전 간판 그대로였다. 과연 주인도 그대로일까? 맛은? 언젠가 다시 여기를 찾아와 옛 맛을 떠올리려 애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스타일


최근에 태양광 사업에 대해 상담을 하러 오신 분은 퇴직하신지 몇 해 지났다고 말씀하셨다. 즉, 거의 70세 정도 되신 분이라고 이해했다. 말씀하시는 말투나 태도가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예의를 잘 갖춘 분이라 생각했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헤어지기 직전에 그 분이 다소 조심스러운 말투로 "혹시 연배가 어떻게 되시는지?" 라고 나에게 물었다. 그분 표현으로 내 얼굴은 젊어 보이는데, 풀어헤친 장발은 온통 흰 머리에, 수염도 흰 수염이 많으니 나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니, 젊은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나이가 많은데 동안인 것인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곧 50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럼 젊으신 분이 맞군요. 라고 하셨다. 아, 이 흰머리와 흰수염 때문에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이 정도 일 줄 몰랐다. 그렇구나. 나 70대 어르신이 보기에도 헷갈릴 정도로 많이 나이 들어 보이는구나. 장발에 수염을 고수하는 일이 쉽지 않구나.


며칠 전에는 옷을 예쁘게 잘 입은 젊은 여성이 매장에 왔었다. 그 분은 매니저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월차라서 왔다고 말했다. 일부러 찾아왔는데, 하필 그날은 매니저님 휴무일이었다. 하루종일 내가 혼자 매장을 보는 날이었다. 그 분이 처음에 약간 쭈뼛거리며 어색해 하시길래, 편하게 계시라고 하고 나는 일을 보려고 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매장에 방문한 듯 최근에 새로 들여놓은 물품들을 신기한 듯 감탄사를 내며 살펴보길래, 하나 하나 설명을 해드렸다. 그렇게 좀 떠들고 나니 둘 다 조금은 어색함이 사라졌다. 그 분이 나를 좀 유심히 보시더니 문득, 스타일이 엄청 멋지세요. 라고 말을 했다. 멋지다는 말은 예의 상 한 말이겠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 인 것은 맞을 것이다. 그 말을 하고서는 내가 좀 더 편해졌는지, 이젠 내 눈치를 안 보고 매장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펴보더라. 나는 편하게 구경하시고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라고 하고 일에 집중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젊은 여성 손님이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분이 찾는 물품을 찾아드리고 질문에 답을 하고 어쩌고 하는 동안 이 예쁘게 옷을 잘 입은 분은 나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고 나가셨다. 매니저님께 말씀 전해드린다고, 누구라고 전할까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가셔서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매니저님께 전달했는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간다고 했다.


최근에 여기저기서 매장으로 탐방을 와서 30분에서 1시간 사이로 우리 협동조합과 매장에 대해 설명을 할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탐방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활동가들로 나와 친한 사람들이었다. 탐방을 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조합과 매장을 더 널리 알릴 수 있고, 우리의 활동을 홍보하면서 더 힘을 받을 수도 있을테니. 하지만, 아무리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잘 하는 편인 나라도 연달아 계속 사람들을 맞이하고, 설명하고, 질의 응답하고,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일단은 힘이 들고, 아무런 댓가도 없이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렇게 탐방을 오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기준인 강사비 혹은 탐방비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게 참 애매하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이라면 그런 요구를 할 수 있겠지만, 다 친한 활동가들 사이에서 그런 요구는 어려운 일이다.


암튼 그래서 여기저기 여러 단위에서 찾아 올 때마다 짧은 강의와 질의응답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때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장발에 수염이라는 외모에 대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본다. 흰머리와 흰수염도 한 몫 했을 것이고. 거기에 20년 넘게 활동가라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면모, 연구자나 이론가가 아닌 실천하는 사람으로서의 면모에 대한 어떤 느낌과 시선이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눈에 확 잘 띄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 좀 평범한 모습이었을 때에 비하면 정말 튀는 외모다. 그래서 더욱 바르게 행동하고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한다. 이런 튀는 스타일로 잘못된 언행을 하면 쉽게 드러나고 오래 기억될 수 밖에 없다.


지지난 주에도 한 팀, 지난 주에도 한 팀, 오늘도 한 팀. 3주 연속 많은 사람들을 모시고 설명하고 떠들다보니 오늘은 좀 많이 지친다. 안 그래도 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곤한 날이고, 일이 많은 날이었는데,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시간을 자꾸 뺏기다 보니 해야할 일들은 또 하지도 못했다.


일은 남았는데, 다음 회의를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일단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은 이동하면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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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4-2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목을 걸어보면 느껴지는 게 있어요. 전혀 의식하지도 못했던 어떤 기억들이 살아날 때가 있어요. 나의 뇌 속에서 건져 올려지지 않던 어떤 이미지와 기억들이 골목을 걸음으로써 어떤 연상 작용에 의하여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걸음과 뇌 작용의 상관관계적인 해석보다는 골목이 오래도록 품고 있던 기억을 느끼게 된다는 다소 비과학적인 믿음에 더 기울게 됩니다. ㅎㅎ

감은빛 2025-04-30 20:18   좋아요 0 | URL
골목이 오래 품고 있던 기억을 느낀다는 말씀이 너무 좋네요. 와!!
잉크냄새님이 예전에 중국에 있던 시절의 골목 이야기 썼던 글 생각이 나요.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가서 읽어볼게요.

페크pek0501 2025-04-23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을 못 잔 날은 일의 양을 줄여야겠더라고요. 저의 경우 잠이 보약이에요.
말하는 건 쉽게 지치는 일이죠. 요즘 더욱 그걸 느껴요. 말할 때 에너지 소비가 많음이 느껴져요.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 초반에 말을 잘 하다가 끝에 가서는 듣고만 있게 됩니다.ㅋㅋ

감은빛 2025-04-30 20:19   좋아요 0 | URL
요즘 평일에는 잠이 너무 모자라요.
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깨는 편이고,
꿈에 시달리다고 해야 하나, 꿈 속을 헤맨다는 느낌의 꿈을 자주 꾸네요.

그래도 주말에는 모자란 잠을 자는 편입니다.

희선 2025-04-25 0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걸어가는 것과 버스 타고 가는 게 비슷한 시간이 걸리면 걸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걸어가면 조금 힘이 들지만 버스를 타면 힘이 덜 드는군요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도 괜찮은 듯합니다 감은빛 님은 따님들 어렸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군요 어릴 때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도 지나가면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지금도 나중에 떠올릴 좋은 기억 많이 남기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5-04-30 20:21   좋아요 0 | URL
그쵸? 걸으나 버스 타나 비슷하면 걷는 것이 낫죠?
저는 멀리 나가지 않고 동네에서 일한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거의 매일 걸어다니고 버스나 지하철을 거의 타지 않아요.
가끔 버스를 탈 일이 생겨도 걸어서 얼마나 걸릴 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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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했더니 11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14년 4월 15일에 내가 페이스북에 아래 글을 올렸다고 알려줬다. 딱 보자마자 이 글에 쓴 그 순간이 기억났다. 그 무렵의 아이는 유독 나를 많이 따랐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큰 아이를 저렇게 안아 올릴 수 있는 시절로 딱 한 번만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부러워진다. 그 집안 남성들은 모두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데. 그런 능력 나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어렸을 때로 자주 돌아가서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다.


딸과의 5분 데이트


점심 먹고 졸릴 무렵,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마치고 방과후교실 가는 중이라고, 아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어디냐고 물었더니, 횡단보도 건너는 중이라고,

어딘지 딱 감 잡았다.

마침 일하는 곳에서 2~3분 거리다.

천천히 걸어가면 곧 아빠가 갈 거라고 말하고 뛰어나갔다.

아이는 멀리서 나를 보자마자 막 뛰어왔다.

만나자마자 번쩍 안아 들었다가 내렸다.

손잡고 천천히 걸어서 딱 5분 동안 데이트했다.

동네에서 일하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2014년 3월에 나는 4년 넘게 일했던 출판사에서 해고 당했다. 잡지만 내던 잡지사였었는데, 단행본 출판을 위해 나를 영업자로 고용했던 곳이었다. 나는 심각한 적자였던 잡지를 정상적인 유통 체계를 구축해 흑자로 돌려줬고, 단행본을 꾸준히 내면서 흑자 폭을 크게 증가 시켰다. 초기에 사장은 나를 마치 구세주처럼 대했다. 그러다가 해가 가면서 유통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나니, 사장은 이제 내가 불필요한 사람처럼 느꼈나 보다. 내가 내 모든 인맥과 능력을 총 동원해 잘 만들어 놓은 그 체계는 사실 내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를 해고 하고 나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출판사를 그만두게 된 무렵에 나와 아주 친했던 동네 친구가 녹색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었다. 녹색당 창당에 함께한 후에 나는 녹색당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었다. 구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했던 그 친구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동네에서 정치를 한다면 정말 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물론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당연히 그 친구가 당선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여러 당원들은 그 친구가 10% 이상 득표해서 선거 비용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도 당연히 불가능 할 거라고 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9.7% 였던가 암튼 9% 이상 득표율을 달성해서 내가 아는 소규모 진보 정당 후보 중에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고, 조금만 더 나왔으면 정말 50%를 보전 받았을 텐데, 라고 아쉬워 하기는 했다.


암튼 3월에 출판사에서 해고를 당한 시점의 나는 구의원으로 출마하겠다는 친구에게 선거운동을 함께 해달라고, 구체적으로는 선거 사무실의 사무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필 그 시점에 해고를 당하다니! 이건 선거운동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 같은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늘 대중교통으로 3~40분 이상 가야 하는 일터로 출근하다가,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선거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어 삶이 많이 달라졌다. 선거 사무실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당시 큰 아이가 다니던 학교와는 5분 거리였다. 당시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아빠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짧은 순간 아이가 걸어가는 경로를 머리 속으로 그렸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서서 아이에게 뛰어나갔다. 아이는 멀리서 나를 보고 뛰어왔고,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를 안아 올렸다. 사랑하는 딸과의 5분 데이트.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이 역사적인 16일이었다. 우리는 뉴스에서 뒤집혀진 배를 보면서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을 대부분 구출했다는 오보를 믿었다. 사실은...... 사실은...... 아, 눈물이 나려고 한다. 우리는 선거운동을 하다가 식당에서 뉴스를 보았고, 오후 선거운동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며칠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 저 글을 읽으며 행복했던 짧은 데이트를 떠올렸다가 곧바로 그 다음날이 그날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급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 이런 기분으로 다시 일하기 쉽지 않다. 끊어버린 담배가 다시 땡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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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5-04-1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오보에 속았던 기억, 뉴스가 배들이 마구 가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던 가짜의 기억과 함께 아직도 제대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화가 납니다.

한 명이 구축한 체계는 그 사람이 없으면 무너지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기민한 사장이었다면 그 인간성과는 별개로 그 인맥과 체계를 빼앗아올 생각을 할텐데 당시 사장이 욕심은 많았어도 감은 좀 딸렸나 봅니다. 저도 초기사무실에서 원년맴버로 일하다가 나와서, 그리고 속아서, 나올 때 그 비열한 자의 행동이 기억이 나네요...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시간이 훌쩍 흘러서 성인이 되어가는 자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5-04-21 14:07   좋아요 1 | URL
11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세월호 사고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죠. 그저 잠수함 충돌은 아닐 거라는, 어마어마한 과적과 불법 개조로 인해 복원성이 무너진 선체가 원인일 거라는 추측만 남았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터라 어쩌면 영원히 그 진실을 밝혀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잠수함을 탓하는 음모론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착실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뉴스타파의 기사를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게스트님도 비슷한 경험을 겪으셨나 봐요. 저는 나중에 그 사장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혼자 어쩔줄 몰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인 것을 그것도 모르고 나를 해고 했나 싶어서 어이 없기도 했고, 그냥 사람이 그거 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했어요. ㅎㅎㅎㅎ

2025-04-23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30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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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대회

지난 토요일 양천마라톤 대회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10킬로미터 코스. 이 대회는 풀코스는 없었지만, 하프 코스, 10킬로미터, 5킬로미터에 더해 커플런(10킬로)과 페밀리런(5킬로) 부문도 있어서 개인이 아닌 여러명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꾸준히 함께 달릴수 있는 지인들이 있다면, 이런 부문에 참여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대회에서 기록을 중요시 하다보니 어쩐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그냥 달려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서로 서운해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날 달리다가 중간에 아마도 커플런 참가자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일정 시간 함께 있었다. 중간에 여성 참가자가 조금 속도가 쳐져서 내가 앞으로 치고 나간 후로는 마주치지 못했었다.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잘 달릴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그 남성 참가자는 커플런이라 여성과 속도를 맞출수 밖에 없었겠지.

양천구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대회장소까지 버스 타고 약 1시간 10분 거리라고 지도앱이 알려줬다. 집결시각은 7시 50분 대회 시잘은 하프코스가 8시 30분. 10킬로 코스라 8시 40분이었다. 미리 가서 옷도 갈아입고, 짐을 맡기고, 몸을 풀어야 하니 8시 전에 도착해야 원활하게 준비할 수 있겠지. 미리 받은 번호표와 기록칩과 함께 경품 응모권이 있었고, 안내문에는 경품 응모권은 7시 50분까지 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경품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 알 수 없지만, 참가자가 수천명일텐데 내가 당첨될 확률은 없다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포기했다.

금요일 저녁에 파주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그랬는지, 약간 뭔가 더 먹고 싶은 생각에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서 들어와 씻고 먹었다. 평소라면 안 먹었게지만, 다음날 아침 대회에서 달릴 생각을 하니, 아침에는 뭔가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 차라리 밤에 먹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 전날엔 거의 매번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린다. 꿈을 꾸면 자꾸 늦잠 자고 시간에 쫓기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 암튼 새벽 늦게에 잠이 들었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깼는데, 너무 피곤했다. 두 개의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가 세번째 알람을 듣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 이번에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양쪽 무릎이 다 안 좋았다. 씻기도 전에 관절 통증이 있을 때 먹는 진통제부터 찾았다. 지금까지 달리리 대회 마다 무릎이 안 아픈 날이 없었다. 매번 진통제를 먹고 뛰었었다.

속을 비우고, 씻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이주전 불광천 대회에서 간식으로 받은 작은 쵸코바가 남아 있길래, 달리기 시작 전에 먹으려고 챙겨 넣었다. 대회 장소인 안양천 변 축구장은 버스를 내려 한참 걸어야 했다. 지도를 보고 낯선 길을 찾아가다보니 멀리서 스피커를 통해 진행자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니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참가자 수에 비해 이동식 화장실은 수가 너무 적었다. 보통 이렇게 화장실 앞에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여성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남성은 줄이 짧은데, 여기는 아예 여성은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남성들은 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 지인과 떠들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남자들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만큼 이 대회에 남성 참가자가 많다는 뜻이겠지. 화장실을 다녀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겼다. 짐 맡기기 직전에 챙겨온 작은 쵸코바를 먹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챙겼던 진통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물도 없이 삼켰었다.

안내문에 각 코스 출발지나 나와있지 않았다. 대회 장소를 배회하는 사이에 이미 하프 참가자들은 출발했다. 그 다음이 10킬로 출발이었다. 사람들이 우루루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갔다. 정말 많았다. 저 멀리 앞쪽에 노란 풍선들이 몇 개 떠있었다. 페이스메이커들이었다. 안양천 천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불광천 보다는 넓었지만, 그래봐야 차도를 막고 치루는 대회에 비해서는 길이 좁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길은 좁으니 막힌 길을 뚫고 가기가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출발을 하고 보니 시작부터 앞쪽 사람들의 늦은 페이스 때문에 자꾸 발이 느려졌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람들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순간 실수로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서 쉽지 않았다. 간혹 뒤에서 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아예 길 바깥의 화단으로 넘어가서 달리길래 나도 그렇게 길 밖을 한참 뛰었다. 사람들을 제치며 1킬로를 조금 지났을 즈음에 1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 하, 이제 1시간 10분이라고. 내 목표는 52분이니 얼마나 더 서둘러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계속 사람들에게 막혀서 느려졌다가 눈치를 보며 추월하느라 에너지를 더 쓰는 느낌이었다. 앞이 뚫리면 속도를 내고, 막히면 양 옆 구석을 살피며 치고 나갈 틈을 모색했다. 3킬로미터 즈음부터 조금 원활하게 달릴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아예 앞이 막히는 일이 적었다. 나는 대략 510 페이스로 달렸다. 이제부터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510은 무조건 오버페이스였다.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후반에 지쳐서 죽을 듯이 힘들거라는 것을.

이주전 불광천 대회에서 대체로 520 페이스로 달려서 내 목표였던 53분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후반에 지쳐서 페이스가 쳐지는 통에 54분으로 들어온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520 이나 510이나 둘 다 후반에 지치는 건 마찬가지일 터.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더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 겪었던 다른 대회보다 급수대가 많았다. 처음엔 급수대를 만날 때 마다 한 모금이라도 마셨는데, 매번 이렇게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고 물을 마시면 안 될 것 같았다. 평소 달릴 때에는 15킬로 이상도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달리는데, 이렇게 자주 물을 마실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중간부터 과감하게 급수대를 지나쳐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반환점을 돌아 6에서 7킬로미터 사이 즈음 최고 속도였다. 500에 가까운 정도. 7킬로를 지나 8킬로를 향해 가면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오른발 앞쪽에 물집이 생길듯 통증이 느껴졌다. 늘 그랬다. 대회가 아니라 그냥 혼자 달릴 때에도 딱 8킬로 즈음에 지치고, 물집이 생길 것처럼 아팠다. 속도를 어느정도 낼 때에는 그랬다. 속도 욕심을 안 내고 좀 여유있게 6분대 페이스로 달리면 10킬로를 넘겨도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20킬로 정도까지는 달렸으니까.

여기서부터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수백번 발을 멈추고 걷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꼭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다. 시작할 때 너무 뒤쳐져 있었기 때문에 내 속도를 내기 어려웠고, 중간에 오버 페이스를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9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이제 1킬로 남았는데 너무 지쳐서 발이 무거웠다. 이때부터 길 옆에서 응원하는 분들이 계셨다. 저 멀리서 볼 때 부터 모든 참가자들을 응원하면서 커다란 손 모양 장갑을 끼고 하이파이브를 유도하는 일행 세 명이 보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갔지만 한두명 정도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길가로 옮겨가며 그들 세 사람과 힘껏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들의 응원을 통해 어떻게든 다시 힘을 끌어내고 싶었다. 물론 그건 아주 잠시였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서 얼마 못 가 다시 속도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어느 할아버지가 길가에 서서 이제 450미터 밖에 안 남았다고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계셨다. 내가 지나칠 때에도 힘내라고 응원해주셔서, 나도 억지로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려 보였다. 다시 조금 더 힘을 냈다. 이제 저 멀리 결승선이 보였다. 조금 더 페이스를 올려보고 싶었지만, 이미 한계였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추월했다. 반환점을 돈 후에 긴 시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온 참가자였다. 내가 지쳐버린 이후로 한동안 안 보여서 이미 저 멀리 앞으로 치고 나간줄 알았는데, 그동안 내 뒤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막판 스퍼트를 올리길래, 나도 억지로 다시 발을 더 빨리 움직이려 노력했다. 드디어 결승선을 지났다.

정말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천천히 걸어서 완주 메달을 받고 간식을 받았다.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맡겼던 짐을 찾고 난 후에야 비로소 축구장 한쪽 구석 바닥에 앉았다. 처음에 확인한 기록은 51분이었다. 작년 11월 말 대회 54분, 이주전 불광천 대회 역시 54분. 내 목표는 52분이었는데 목표는 달성했다. 그리고 개인 신기록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내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지역정당의 총회가 있었다. 아침부터 다른 운영위원들은 총회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에 나만 혼자 달리기 대회를 하러 와있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은 1월이었고, 나중에서야 총회 날과 대회가 같은 날인걸 알았지만, 대회가 오전이라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온 것이었다. 목표는 달성했으니, 기분 좋게 총회를 준비하러 갔다. 물론 곧바로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에 한참을 쉬었고, 겨우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을 때 버스를 타러 갔다. 달리면서 안양천 양 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불광천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버스에서 이번에 목표를 달성한 원인을 생각해봤다. 평소보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무릎도 양 쪽이 다 아팠었다. 진통제를 먹고 나아지긴 했지만. 엊그제 그러니까 대회 이틀 전에 약 7.5킬로를 뛰었는데, 그게 주요했던 것 같다. 대회를 앞두고 일부러 딱 7에서 8정도만 뛰어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몸의 회복 흐름과 부하의 관점에서 내가 최대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날 이삼일 전에 약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 정도의 강도로 운동을 하면 내 몸이 그 운동의 100퍼센트를 낼 수 있다고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오후에 총회에서는 사전행사 진행을 맡았다. 버스를 내려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옷 갈아입고 바로 다시 나갔다. 총회를 마치고는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기록을 세웠기에 용서해 준다고, 만약 기록을 못 세웠으면 용서 안 했을거라는 지인의 장난 섞인 축하를 기분 좋게 받았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오늘 월요일에 다시 문자가 왔다. 어, 이번에는 다시 1분 가량 기록이 줄어있었다. 다시 받은 기록증의 숫자는 50분이라고 나왔다. 와! 이건 정말 예상 못 한 기록이었다. 51분이나 52분은 그렇게 되려고 달린 거니까 이해할 수 있는데, 50분은. 내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에는 나오지 않았던 등수가 오늘은 나왔다. 나는 사실 이게 더 궁금하긴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첫 대회와 두번째 대회 모두 전체 참가자와 성별로 등수를 매겼을 때 절반보다 살짝 앞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얼마나 나왔을지 궁금했다. 세번째 대회인 불광천 대회는 아예 등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등수가 비어있길래 나중에 집계되면 나오겠지 싶었다. 자, 그래서 등수는? 10킬로미터 코스 전체 참가자 2228명 중에 229등. 10킬로미터 남성 참가자 1366명 중에 196등.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성적이다. 전체 순위로는 절반이 아니라 상위 10퍼센트로 가까이 올랐고, 남성으로도 20퍼센트 안에 들었다.

작년에 두 번, 올해 두 번 총 네 번의 대회를 뛰었다. 한 번은 너무 더웠고, 한 번은 너무 추웠다. 딱 적당히 뛰기 좋은 날 있는 대회를 고른 것이 이번 양천 대회였다. 정말 딱 뛰기 좋은 날이었다. 오후에는 비 예보가 있었는데, 실제로 비가 왔고, 일요일 새벽에는 눈도 왔다. 나는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달리려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다행히 오전에는 살짝 흐리기는 했지만 날씨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 대회를 잘 골랐던 나를 칭찬하며, 신기록을 세운 것도 칭찬한다. 이제 다시 꾸준히 달리고 가을에 또 괜찮은 날씨에 괜찮은 대회 하나를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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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5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요일이면 날씨도 좋지 않았던것 같은데 신기록을 달성하셨다니 축하 드립니다^^

감은빛 2025-04-15 13:3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토요일 오전에는 날씨가 아주 나쁘지 않았어요.
오후가 되어서 안 좋아졌어요.

희선 2025-04-15 0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릎 아프면 달리기 안 좋을 것 같기도 한데, 그때만 많이 아팠던 거기를 바랍니다 기록보다 건강하려고 달리면 더 좋겠습니다 이런 말이라니... 하면 기록이 좋기를 바랄 듯합니다 그냥 혼자 달릴 때보다 대회는 긴장이 조금이라도 되겠지요 많이 될지... 좋은 기록 나온 거 축하합니다 생각한 것보다 잘 나와서 기쁘셨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5-04-15 13:36   좋아요 0 | URL
희선님, 제 무릎 통증은 달리기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평소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하는데, 꼭 중요한 달리기 대회 날에는 아프더라구요.
대회 날에는 긴장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 흥분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루피닷 2025-04-15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키로 PB 달성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2025-04-15 13:37   좋아요 1 | URL
루피닷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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