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단련하고 더 단단해져야 해

비상 계엄의 후폭풍이 이 나라를 더 깊은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지경에 와서도 윤석열을 지켜야 한다고, 탄핵은 안 된다고, 당장 본회의 의결에 참여하지 않아도,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잊어버린다고 말하는 빨간당 의원이라는 작자들. 국민들을 개, 돼지로 본다는 뉴스 클립을 보면서 이 표현 왠지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대사였다. 물론 그 전에 누군가 썼을 법만한 대사라서 다른 출처가 더 있을수도 있겠지. 문제는 개와 돼지를 폄하한다는 것도 있지만, 1년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그냥 표를 주더라는 저 말이 실은 사실이라는 점이다. 빨간당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찍어주는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연령대 시민들, 또 파란당으로 나오면 공약도 안 보고 덮어놓고 찍어주는 또 다른 지역과 연령대 사람들. 나는 그들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회 앞에서 이 추운 겨울에 밤새 거리를 지킨 아름다운, 훌륭한 시민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지다가도, 그들 중 대다수가 저 보수 꼴통 민주당 지지자일거라는 생각이 들면 씁쓸하고 허탈하다. 결국 이재명과 박주민과 그외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본질적으로 빨간당 의원들과 다르지 않다. 이준석 같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 조국 같은 위선자가 야당이랍시고 윤석열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우습기 그지 없다.

그래사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넓게 봐야 하고, 단순히 전해지는 이야기를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배우고 더 단련하고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이불 VS 찬바람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달렸다.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발가락 끝부분은 살짝 얼은 느낌이라 한동안 달려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온 몸이 굳어서 스트레칭을 해도 풀어지지 않았다. 이런 날일수록 워밍업을 더 긴시간 꼼꼼하게 해야 하는데,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어 쉽지 않다. 그래도 일단 달리다보면 몸에 열이 나고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달려진다.

그런데 또 달리다보면 확실히 굳어 있는 몸으로는 제대로 된 자세가 안 만들어지고, 자꾸 관절에 부담이 간다는 걸 깨닫는다. 달리기가 쉽지 않은 시기다. 단 하나 좋은 점은 땀이 덜 난다는 것. 역시 무엇이든 장단점은 있다. 무조건 나쁘거나, 무조건 좋은 것 세상에 없다.

윤석열이 멍청하게 계엄을 선포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됐다. 하루하루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이 답답하고 괴롭다. 이 주제에서 벗어나 그냥 뭔가 다른 일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 일단 그 꼴보기 싫은 얼굴과 듣기 싫은 목소리를 좀 그만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에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dbTlla 2024-12-09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불을 박차고 운동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너무 추우니까 이불 안에서 나오고 싶지가 않네요. 그리고 너무 화가 났는데 이제는 포기하는 마음이 되어서 그런가 뉴스도 안 보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 안 듣고 안 보니까 좀 낫긴 하지만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겁니까?
 

요즘은 일찍 잠드는 날들이 많다. 몸도 마음도 춥고 지쳐서 10시 이전에 잠들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아마 거의 10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조금 일찍 잠든 그런 날엔 꼭 서너시쯤 잠에서 깨곤 한다. 아마 3시 40분에서 50분 사이에 깨지 않았을까 싶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었고, 한참 후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휴대폰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자정 즈음에 부재중 전화가 두세개 찍혀있었고, 카톡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앱에 안 읽은 대화가 수백개 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태블릿을 열어 뉴스를 찾았다. 속보나 특보 등의 머릿말을 단 뉴스 동영상들이 많았다. 하나씩 찾다가 그 문제의 영상을 보았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포동통한 얼굴이 비상계엄을 선언한다고 말하는 말도 안되는 영상. 나중에 어디선가 누군가 이 영상을 딥페이크 영상이라 생각했다고 써놓은 걸 보았다. 그래.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를 거의 똑같이 복제해 가짜 영상을 만들수 있다고 하니.

어쨋든 국회의원들이 발빠르게 모여서 계엄해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고 했고,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뉴스도 뒤늦게 보았다. 결국 상황은 이미 다 끝나있었다. 평소 이번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라면서 어떻게 저렇게 상식도 없고 멍청한가 라고 생각하며 참 답답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멍청함 덕분에 이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미리 군대를 움직여 국회를 철통같이 막아놓고,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 등을 총으로 막아섰다면, 서울 시내 주요 건물들과 교차로에 장갑차와 탱크가 즐비한 아침 출근길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 각종 언론사들이 군인들에게 점령당하고 뉴스는 다시 80년대 땡전 뉴스처럼 땡윤 뉴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엄령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戒嚴令 경계할 계, 엄격할 엄. 엄격하게 경계하겠다는 포고령이다. 윤석열이 어제 내리기 이전에 이 나라에 12번 내려졌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장 많이 계엄령을 내린 인간은 독재자 이승만으로 7번이라고 했던가? 그 다음이 독재자 박정희이고 이승만이 7번이면, 아마 박정희는 4번이겠지. 독재자이자 학살자인 전두환이 한번 더 내렸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79년 박정희가 죽은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평화로운 이 나라에서, 아니 물론 누군가는 평화롭지 못했을 것이고, 그건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든 이 나라에서 대체로 대부분의 국민들도 평화롭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계엄령을 선포할 그 평화와는 또 다른 측면이니까. 암튼 정말 아까 누군가 딥페이크라고 의심했다고 할 정도로 이 선포는 뜬금없고 놀라운 것이었다. 게다가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야당 지도부나 대통령실 참모들도 몰랐다는 추측들이 나올 정도로 급하게, 이렇게 그냥 선포할 성질의 포고령이 아닌데. 한 마디로 그냥 촌극이다. 영어로는 해프닝. 문학으로는 꽁트, 방송으로는 코메디극이다.

이번 대통령 이전에 겪어본 대통령들 중에서, 아니 이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다시 미군정의 지배를 받은 후에 새 정부를 구성한 날 이후로, 즉 건국 이후로 단 한 명도 멀쩡한, 제대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내 대답은 아니, 없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노태우까지는 언급할 가치가 없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나름의 공과 과가 있겠지만 둘 다 과가 크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다. 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혹은 사회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말하는 노무현은 내 기준으로 최악의 대통령이다. 새만금 파괴, 경부고속철도 건설로 금정산, 천성산 파괴, 이라큰 파병과 김선일씨 피살 사건, 부안 핵폐기장 갈등 등 큰 싸움들에 직접 참여했었고 그외 작은 싸움들도 끝없이 많았다. 물론 이명박과 박근혜도 당연히 좋은 대통령은 아니었고, 그들 시대에도 크고 작은 갈등과 싸움은 많았지만, 내 기준으로 최악은 단연 노무현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에도 어쩌면 저 인간은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말로 진지하게. 이명박은 이름 명박을 알파벳으로 mb라고 부르며 메모리 용량이 2메가 밖에 안된다고 2메가로 많이 불렸다. 아무리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나도 종종 그렇게 부르며 그 갑갑한 시절을 견뎠던 것 같다. 이명박은 한편으로 외모 때문에 쥐에 비유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건 사실 좀 심각한 외모 비하라서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되었다. 아마 당시에 나는 약간의 거부감은 느끼면서도, 한두번쯤은 그 비유를 썼던 것 같다. 박근혜도 참 답이 없다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상식이 부족하고 멍청했는데, 박정희의 공주라는 의미로 공주님이라 불린 것 외에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통용되는 다른 멸칭들이 분명 있었겠지만,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사용한 적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암튼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문재인까지 참 답답하고 갑갑한 인간들이었는데, 이번에 윤석열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고 있자니, 그들은 오히려 양반이었구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전에 타짜 2편이 나왔을때 1편과 비교해 완전 망작이라고, 어떻게 타짜라는 이름을 달고 이 따위 영화를 만들 수 있냐고 엄청 안타까워 했었는데,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3편이 나오자, 2편은 오히려 아니 차라리 훌륭한 명작이라고 칭찬할 수준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3편이 총체적으로 엉망인 것이고 이건 뭐 망작의 작 글자를 붙이는 것이 어색한 그냥 쓰레기였다. 타짜2는 3편에 비해 엄청나게 잘 만들기도 했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추억이라는 개념으로 우리 뇌에서 한번 더 아름답게 포장하는 작업을 거치며,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타짜2와 타짜3 처럼 느껴진다. 이 정도로 엉망인 인간이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아 있다보니 차라리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 나았다는 착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 비교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이 그만큼 나쁜 인간이라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또한 딱 그만큼 나쁜 인간들이었으니까.

계엄령 선포 이후 벌어진 한바탕 촌극이 국회 계엄해제 결의안 가결 기준으로 약 3시간, 공식적으로 다시 해제 선포 기준으로 약 6시간만에 마무리 되었다. 또 온라인 어디선가 누군가 이걸 기네스북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과연 이보다 짧게 끝난 계엄령이 있었을까?

자, 이제 윤석열은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지금 시점에서 그에게는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체포를 당할수도 있고, 탄핵을 당할수도 있고. 그 외에 다른 어떤 길로 가더라도 그 자리를 더 길게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미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이라는 그리 썩 좋지않은 전례를 겪었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라는 사실이다. 문재인이 그렇게 무능하게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윤석열도 없었다.

지금부터 다가올 혼란의 시기가 두렵다. 특히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고 이 자리에 새롭게 앉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걱정스럽다. 빨간당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파란당이 마치 자신들이 선인양, 진보인양, 국민을 위하는 척 위선을 떨어대는 모습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과연 이 나라는 언제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인류가 멸종하기 전에 가능할까? 모르겠다. 아마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yamoo 2024-12-0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누가 카톡에 올려준 영상으로 봤는데...첨엔 이게 뭐지..하다가 혈압오르다가..
조소를 금할 수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네요..ㅎㅎ
탄핵이 압당겨질 사건을 쳐버렸으니...내란죄로 처벌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네요..

감은빛 2024-12-04 17:0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자멸이라고 썼어요.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하기 싫어서 그랬다는 얘기와 술먹고 그랬다는 설이 도는데, 당연히 둘 다 아니겠지만, 정상적인 판단을 절대 아니죠.

법적 해석으로 처벌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처벌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희선 2024-12-05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서 이 일을 아셨군요 그동안 계엄령 많았군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제 밤에 보고 무슨 저런 일을 했네요 시간이 흐르고는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제돼서 다행이기는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희선

잉크냄새 2024-12-0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의 상황이 기가 막혔다면 오늘은 기가 차네요. 전 쿠데타보다도 그 이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더 두렵고 치가 떨리네요. ‘쿠데다, 까짓것 그냥 한번 해봤어‘ 라고 말하는 반란수괴와 ‘쿠데타, 까짓것 오죽하면 했겠냐‘는 부역자들, 그리고 그 뒤에서 ‘쿠데타, 까짓것 한번 해봐, 오빠‘ 라고 반란수괴를 가스라이팅 했을 대통년까지. 절망적이네요.
 

지난 오늘 공간에 글이 없는 날

자주 쓴 내용이지만, 어쩌다 북플을 열면 꼭 지난 오늘 메뉴를 열어본다. 과거 오늘 내가 뭘 썼을까 궁금하기 때문에. 많을 때에는 대여섯개 있고, 적을 때는 오늘처럼 없다. 과거 11월 마지막날은 언제나 바빴나보다. 알라딘 서재를 거의 20년 했을텐데, 글을 한번도 안 썼다. 물론 1년 중에 그런 날이 좀 있을 것이다. 내가 북플에 매일 들어와보는 것도 아니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끔 들어온 날 중에도 몇번 봤었다. 지난 오늘 공간이 오늘처럼 비어있는 날들.

그래서 내년 오늘 북플을 열어볼 나를 위해 자판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요즘 내 상태가 좀 아니 많이 바닥을 찍고 있어서 사실 뭔가 쓸 거리가 별로 없는데, 그냥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보자.

미래의 나에게

우리는 3차원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1차원과 2차원 그리고 3차원까지는 인지 아니 인식이라고 해야할까? 암튼 그냥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은 알 수 없다. 많이 궁금했다. 4차원을 산다는 건 어떤 방식일까? 누군가 고차원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전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가고, 과거에서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차원에서는 시간의 축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어떻게 시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 글을 열어볼 나를 생각해본다. 내년 오늘이거나, 아니면 내후년 오늘이거나, 아니면 그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해 오늘이거나. 혹시 오늘 쓴 글의 어떤 내용이나 키워드 때문에 검색으로 찾아서 열어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시간이 많은 어느 날 작정하고 특정 기간의 글들을 쭉 일어보다가 열어볼 수도 있겠지. 그게 언제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 오늘처럼 끝 모를 바닥에 쳐박혀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비록 나는 몸도 마음도 어떤 측면으로 봐도 밑바닥에 추락해 위가 보이지 않지만 괜찮다. 또 다시 괜찮아지고 또 잘 살아지고 또 언젠가는 다시 행복해지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

고차원의 어떤 세계를 살아가는 어떤 존재가 아닌 수많은 과거를 안고 미래를 향해가는 우리 인간은 끝없이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희망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 희망을 조금씩 조금씩 줄였다. 계속 줄였더니 이제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것이 그렇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그냥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의 나는 그럴수 있을까?

배려하는 사람

최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인 사람들. 일부러 배려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 행동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냥 주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듣는 것이 좋고, 만약 그 사람이 내게 뭔가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면, 정말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반성한다. 나 자신은 왜 늘 저러지 못할까? 나는 왜 모나게 생겨먹어서 남에게 상처주는 일만 잘 할뿐, 왜 남들을 배려하고 도와주지 못할까? 나도 존재만으로 좋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노력해야 하겠지. 뭐든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일은 없으니.

11월은 좀 끔찍한 달이었다.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꼬이고 망하고 무너질 수 있을까? 12월이 되면 뭔가 좀 바뀔까? 그냥 하루가 더 지날 뿐인데 우리는 숫자를 달리 붙여서 새로운 달이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라도 이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른 오늘이 지나가고 내일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겠다.

달이 바뀌는 것이 내게 어떤 주술이나 마법처럼 다른 계기를 만들어 주길.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이 더 활기차게,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나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언젠가 이 글을 열어볼 미래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의 간절함이 전해지기를. 그런 마음으로 또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4-11-3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해가 저에게 운이 없는 해로 느끼고 있어요. 초반부터 지금까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새해가 되면 좋겠단 생각을 해요. 운수가 바뀌지 않을까 싶어서요.ㅋㅋ
작년까지 몇 년 동안은 운이 좋다고 느꼈어요. 새해는 어찌될지 궁금합니다.

희선 2024-12-05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해 11월 마지막 날은 이번보다 좋기를 바랍니다 다음해를 살다 보면 괜찮아지기도 하겠지요 더 안 좋으면 안 될 텐데...


희선
 

김장도 안하고 김장했던 추억만 더듬는 아침

며칠 전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다가 아주 오랫만에 에스와이오(자판 변환하기 귀찮아 한글로) 님의 글을 읽고 반가운 마음에 여러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오늘 아침에 에스(이젠 다 두드리기 귀찮아 첫글자만)님께서 일일이 답을 달아주셨다. 그거 읽으러 북플을 열었다가 지난 오늘 메뉴도 열어봤다.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은 다섯개였다. 그중 김장 이야기가 세개나 있었다. 마지막 글이 2022년 글이었는데, 그 글에도 지난 오늘 쓴 글들 중 두개에 김장 이야기가 있었고, 오늘 김장 이야기를 썼으니, 내년 오늘은 세개의 김장 이야기를 읽겠다는 내용을 썼었다. 그 내년, 그러니까 작년 11월 28일에 이 글들을 다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글은 쓰지 않았네.

2022년 오늘 기준 과거에 쓴 두 번의 김장은 모두 잊지 않고 자잘한 부분까지 꽤 잘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두 번이 내 평생 가장 힘들었던 김장 1위와 2위로 꼽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저 마지막 글인 2022년을 포함해 최근의 김장들은 모두 잘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그냥 운동(사회를 바꾸는 활동이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기도 하고)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고, 해가 갈수록 김장에 익숙해져 고수들이 다 된 동료 활동가들이 생겨서 내 역할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크게 기억에 남을 활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지어 올해는 그 김장에 참여하지 않았다. 작년에는 아마 잠깐 얼굴만 비쳤던 것 같다. 작년에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었는데, 억지로 시간을 조정해서 잠깐이라도 얼굴 도장을 찍었던 것이고, 올해는 아예 시간이 안 맞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초기에는 다들 김장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내가 꼭 필요한 상황이어서 미리부터 내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근 몇 년은 다들 김장 도사가 다 되어 내가 꼭 필요하지 않아서 내 일정을 미리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과거에 남겨둔 글을 읽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는건 좋은 것 같다. 특히 한밤에 애들을 재워두고(실제로는 억지로 방에 몰아넣고 얼른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애들 엄마랑 둘이서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김장을 하고 뒷정리를 했다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저 날의 사소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당시 우리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 긴 시간동안 둘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서로 거의 말이 없었다.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시점에 억지로 꺼내듯 말했다. 그나마도 나는 주로 제안하는 애들 엄마에게 알았다고 답하고 말없이 묵묵히 몸을 움직였을 뿐, 먼저 입을 연 것은 꼭 필요한 순서나 재료에 대한 언급 뿐이었다. 써놓은 걸 읽어보면 김장을 대강 마친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고, 고무 다라이들과 각종 통들과 엄청나게 많은 그릇들을 다 씻고 정리를 마친 건 4시였다. 그러고 애들 엄마는 피곤해서 씻고 바로 잠이 들었다고 썼는데, 나는 오히려 너무 피곤해서 더 잠이 안와서 씻고 누웠다가 한참 후에 나와서 깡소주를 서너잔 들이붓고 다시 들어왔다고 썼다. 그 기억이 오늘 아침 새삼 사무치게 느껴진다. 그래. 그런 날이, 그런 순간이 있었지.

알라딘 이웃들의 댓글들

지난 오늘 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댓글들이다. 나는 그리 글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데, 그럼에도 감사하게 댓글을 남겨주시는 이웃들은 늘 계셨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인사이거나 다소 형식적인 말 한마디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마음을 전하는 표현일수도 있다.

오늘 읽은 다섯개의 과거 글들에 달린 여러 댓글들 중에 잊을 수 없는 댓글이 둘 있었다. 하나는 식당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어쩔수 없이 계속 듣게 된 옆자리 일행들의 대화와 실존주의 철학책 이야기를 쓴 글에 달린 댓글인데, 그 분은 그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 분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어떻게 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남길 수 있는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해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라는 부러운 감정을 느꼈다.

두번째는 긴 시간 꾸준히 내 서재 글들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한 이웃님이 자신의 첫 댓글이라고 적어주신 것이다. 그랬구나. 다소 긴 댓글 마지막에 약간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첫 방문이예요. 라고 쓰셨다가 나중에 그 밑에 다시 아니, 첫 댓글이예요. 라고 달아두셨다. 그거 안 쓰셨다면 그 분께서 언제부터 내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하셨는지 알 수 없었을텐데, 덕분에 그 시작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 분께서는 이 글을 읽으실까? 그래서 본인이 그렇게 썼던 사실을 기억하실까? 나는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예상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것 또한 재미있다.

두번째 달리기 대회

일요일에 두번째 달리기 대회에 나갔다. 9월 초 첫 대회 때에도, 대회 며칠 전부터 계속 관절 통증이 심했고, 대회 당일 컨디션도 안 좋았었다. 심지어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 강남에서 기후정의행진을 했었고 그날 관절 통증에도 긴 거리를 뛰고 걷고 한 탓에 다리를 절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암튼 그 첫 대회를 진통제를 먹고 억지로 뛰었는데, 그 경험이 내게는 무척 낯설고 흥미롭고 성취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참고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그 뿌듯함이 엄청 컸다. 그래서 올해 안에 한번 더 다른 경기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알아보고 예약한 것이 이번 두번째 대회였다.

첫 대회와 이번 대회 모두 10킬로미터 코스였다. 첫 대회 때에는 준비과정에서 9킬로까지는 뛰어보았으나 한번에 안 쉬고 뛰었던 것은 아니고, 중간에 제법 오래 쉬고 호흡과 체력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안쉬고 10킬로를 온전히 뛰었던 것은 그 대회가 처음이었다. 첫 대회를 제대로 준비한 건 7월 말부터였다. 시간으로 치면 약 한 달 반인데, 두번째 대회를 신청하고 준비한 기간도 거의 한 달 반이다. 첫 대회 때는 막판에 거의 2주를 관절 통증이 심해 달리기를 못 했었다. 이번 둘째 대회 때에도 마지막 약 10일 가량 달리기를 못했다. 하지만 둘째 대회 준비는 그 전에 꽤 착실하게 했었다. 첫 대회 때 중반 이후 체력이 딸려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기 때문에 이번엔 준비를 잘하자고 마음 먹었었다. 누군가 조언했다. 10킬로를 잘 뛰고 싶으면 그 두 배를 뛰라고. 그러면 자연스레 대회에서 10킬로 정도는 잘 뛸 수 밖에 없다고. 그 말 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10킬로를 뛰고 나니 그 정도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나는 꾸준히 거리를 늘려갔다. 마지막으로 뛴 거리는 19킬로였다. 막판에 제법 힘들기는 했지만, 엄청 재밌었고 중간까지는, 그러니까 10킬로를 넘겨 거의 13킬로 정도까지는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이번 두번째 대회는 내가 기대한 목표는 어렵지않게 달성하리라.

둘째 대회날 새벽에 일찍, 그러니까 채 2시도 안 되어 잠이 깼다. 더 자고 한 대여섯시쯤 일어나도 되니까 더 자려고 누워 있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일어나서 몸을 움직였다. 전반적으로 몸이 안 좋았지만 특히 왼쪽 무릎과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대회 시작 한 시간 전에 진통제를 먹을 계획이었다. 미리 다 챙겨둔 가방을 엎어서 준비물들을 하나 하나 다시 챙겼다. 이건 없어도 되려나. 어, 그거 어딨지? 뭔가 더 필요한데 빠뜨린 것 같은데. 입고 나갈 옷을 미리 깔아두고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그냥 나가지 말고 진통제 먹고 잠이나 잘까. 아니면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 나갈까.

결국 나는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고 대회 장소로 향했다. 이번 대회는 출발선과 결승선의 위치가 달랐고, 가방과 겉옷 등을 보관할 물품보관소는 결승선에 있었다. 출발선과 결승선은 버스 두 정류장 정도 거리였다. 나는 사람들이 이 추운 아침에 겉옷을 벗어두고 얇은 달리기 복장으로 어떻게 버티는 지 궁금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반팔이나 민소매 위에 얇은 일회용 비닐 우비를 입고 인도에서 뛰고 있었다. 가끔은 두툼한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보였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나도 계속 고민한 것이 바람막이를 입고 출발선으로 갈지, 그냥 안 입고 버틸지였다. 분명 달리기를 시작하고 조금만 지나 땀을 흘리기 시작하면 벗어서 허리에 감고 뛰어야 할텐데 그게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기능성 셔츠 하나만 입고 버티기에는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시간과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람막이 대신 비닐 우비를 입고 뛰다가 땀이 나면 그냥 거리에 버리려고 하는 구나 깨달았다.

그 순간 좀 화가 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비도 안 오는데 바람 잠시 막겠다고 그렇게 많은 비닐 쓰레기를 만들다니! 나는 마지막까지 하던 고민을 손쉽게 해결했다. 나는 그냥 바람막이를 입고 뛰다가 허리에 두르리라. 그래서 남들처럼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았는데, 그 얇은 바람막이 잠바 하나라도 없었다면 짧지 않은 대기 시간을 버틸수 없었으리라. 출발 시간 이전에 미리 도착해서 몸을 풀면 몸에서 열이 좀 나서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에는 그날 아침이 너무 쌀쌀했다. 게다가 미리 도착해서 준비운동을 하고, 어느 정도 몸을 푼 후에도 시간은 많이 남았다. 추위에 떨며서 제자리 뜀박질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꽤나 지겹고 또 추웠다. 마침내 시간이 다 되었고, 10킬로 코스 출발선에서 그 앞의 하프코스 참가자들 세개 조 모두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대회 주최측은 사전에 전체 참가자들에게 공식 기록증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요청했다. 몰랐는데 풀코스와 하프와 10킬로는 모두 기록증의 유효기간이 다르더라. 당연히 거리가 긴 하프와 풀코스가 더 기간이 길고, 10킬로는 거리가 짧은 만큼 유효기간도 짧더라. 암튼 나는 9월 초 첫 대회의 기록증 밖에 없으니 그걸 보냈다. 나중에 조 편성 기준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고 내가 불필요한 일을 했구나 생각했다. 10킬로 코스 기준 조 편성 기준은 A조가 40분 이내, B조가 1시간 이내, 그리고 기록증이 없거나 1시간 이상 기록인 사람들이 C조라고 나와있었다. 내 첫 대회는 1시간을 조금 넘겼기 때문에 나는 기록증을 보내던, 보내지 않던 그냥 C조였다.

자, 이제 다시 대회 당일 아침 출발선에 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조인지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의 배번호표에는 참가번호 앞에 알파벳 A가 적혀있었다. 그러면 나는 A조라는 말인가? 나는 기록으로 보면 분명 C조여야 맞는데 왜 내가 A조에 배정된 것일까? 이거 나중에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해졌다. 꼭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멀리 있는 진행요원을 찾아갔다. 대회 시작 직전이라 정신이 없는 진행요원에게 내가 무슨 조인지 묻자, 그는 내 번호표를 가르키며 당연하다는 듯 A조라고 말하고 바쁘게 자리를 옮겼다. 아니, 나도 눈이 있으니 글씨는 읽을수 있다고! 문제는 내 기록으로 왜 내가 맨 앞조에 속해 있는지 그게 궁금했지만, 그 진행요원이 그것까지 확인해 줄 수는 없기에 다시 얌전히 빈 공간을 찾아 수많은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나중에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 내가 B조나 C조였다면 목표 달성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A조 무리 중에서 약간 뒤쪽에 있었는데,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자꾸 길을 막아서곤 해서 많이 신경쓰였다. 만약 뒤쪽 조에서 달렀으면 훨씬 더 심하게 사람들 틈에서 뛰던 흐름을 놓치곤 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착오였거나, 아니면 기록증을 제출한 사람이 적었거나, 아니면 전체 참가자 숫자가 너무 많았거나. 어느 경우라도 이번에 내가 맨 앞조에 속한 건 운이 좋은 거였다.

대회 당일 아침은 생각보다 더 쌀쌀했다. 발가락 끝부분과 손은 많이 시렸다. 약간이라도 두께가 있는 장갑은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아주 얇은 흰 장갑을 준비했는데, 얇아서 움직이기는 편했지만, 너무너무 손이 시려웠다. 그런데 달리는 와중에 바닥에 버려진 두툼한 장갑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사람들은 땀이 나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비닐 우비 버리듯이 장갑도 막 버리고 뛰는구나. 그날 내가 챙기길 잘 했다고 생각한 것 하나는 귀도리? 방한 귀마개였다. 흔히 넥워머라고 내 생각에 좀 어색한 영어 이름을 가진, 다른 말로는 뭐라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도 같이 구비해서 가져갈까 말까, 입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그건 안 입기를 잘 했던 것 같다. 달리기 시작한지 약 2킬로도 못가서 바람막이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었고, 귀마개는 잠시 목으로 내렸다가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4킬로 즈음부터 귀마개를 완전히 벗어서 팔에 끼우고 달렸다. 나는 다른 부위보다 유난히 귀가 시려워 것을 잘 참지 못해서 매년 겨울에는 방한용품으로 헤드폰을 항상 쓰고 다닌다. 만야 저 귀마개가 없었다면 대기시간과 초반 레이스에서 내 기량만큼 달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구매할 때 화면으로 보내 안 쓸때에는 팔에 끼우고 다닐 수 있다고 사진도 나와있었는데, 팔에 끼우고 달리다보니, 얘가 자꾸 돌아가고 움직여서 많이 신경쓰였다. 달리기 대회는 어떻게든 1초라도 기록을 더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조금이라도 신경 쓸 거리를 안 만들어야 한다. 중반 이후로는 차라리 손에 들고 뛰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고, 확실히 마음이 더 편했다.

약 8킬로 지점에서 나는 페이스메이커 둘을 만났다. 첫 대회 때에 10킬로 코스는 60분 기록의 페이스메이커만 운영한다고 공지했었다. 그날 나는 뒤쪽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페이스메이커를 만나지 못했었다. 이번 대회는 10킬로 코스에도 여러 구간의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했는데, 나는 그중 50분이라고 적힌 풍선을 달고 뛰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남녀 한 쌍으로 둘은 완전히 같은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페이스메이커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왜 50분이지? 나는 계속 520페이스(그러니까 1킬로를 5분 20초에 뛰는 속도)로 뛰고 있었는데, 50분 페이스메이커는 500으로 뛰어야 하잖아. 내가 순간적으로 좀 빨리 달렸다고 해도 이제까지 8킬로를 520 정도로 뛰었는데, 500을 그것도 나보다 앞에서 먼저 출발한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기록 욕심이 나서 순간적으로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50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러나 나는 520도 아주 살짝 오버페이스였다. 아마도 이들 페이스메이커 두 명은 뭔가 이유가 생겨 살짝 뒤쳐졌던 것이리라. 내 예상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페이스를 올렸고 순식간에 내게서 저만치 멀어졌다. 나는 쫓아가보고 싶었지만, 이미 지쳐서 오히려 더 페이스가 떨어지려하고 있었다.

여기가 내 최대 고비였다. 8킬로에서 9킬로까지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자꾸만 발이 멈추려고 하는 걸 억지로 움직였다. 잠깐만 아주 잠깐만 걷자는 유혹을 뿌리쳤다. 이 추운 날씨에 비싼 신발 신고 이러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고 나 자신에게 다그치며 멈추지 못하도록 막아야했다.

9킬로를 지나서는 막판 스퍼팅이란 걸 해보고 싶었으나 이미 그럴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생각에 대회 시작전에 대기하면서 추위에 버티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쓴 것 같았다. 추위에 유난히 약한,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올라온 내가 제 기량을 펼치기엔 날이 생각보다 추웠다. 첫 대회는 정말 너무 더웠고, 둘째 대회는 좀 추웠다. 내년에는 좀 달리기 좋은 계절에 대회를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결승선을 지났다.

둘째 대회를 신청할 무렵 내 올해 목표는 10킬로 60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이었고, 그걸 이 대회에서 달성하고 싶었다. 그런데 10월에 15킬로 이상 뛰기 시작하면서 이미 그 목표는 달성을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숫자가 되었다. 이제 좀 여유있게 뛰어도 50분 후반대는 나왔다. 그래서 목표를 55분으로 조정했다. 이번 대회에서 그 목표를 달성했고, 그 사실이 정말 기뻤다. 드디어 해냈다! 날도 춥고 많이 힘들었는데 결국 해냈다. 이제 내년에는 50분을 목표로 달려야지. 그리고 좀 더 자신이 붙으면 하프에도 도전해봐야지. 기록 신경 안 쓰고 천천히 뛰면 지금도 하프 충분히 뛸 수 있는데, 대회에 나가면서 기록을 신경 안 쓸 수는 없는 법. 지금처럼 6분대가 아닌 5분대 페이스로 하프를 뛸 수 있도록 만든 후에 대회에 나가야지.


사람들은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다.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비밀의 나
- [완벽한 타인] 마지막 자막

눈이 많이 왔다. 뉴스에서 120년? 암튼 11월 폭설로는 기상관측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눈이 많이 온 밤에 영화 [완벽한 타인]을 다시 봤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판권이 팔리고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진 영화라고, 22개국 버전의 내용을 비교하는 영상을 봤다. 그게 아마 2년전 영상이었는데, 그사이 또 다른 나라들에서도 더 찍었을테니, 지금은 그 숫자가 한두개 이상 더 늘어났겠지. 그 영상을 보고나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찾아봤다.

처음 봤을 때 엄청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부분 연출이 이번에는 좋더라. 특히 눈 덮힌 도로에 차가 신호에 걸렸다가 다시 출발하는 장면. 난 눈을 참 싫어하는데, 화면에 담긴 눈은 가끔 좋더라. 화면이니까. 나랑 직접 상관이 없으니까.

원작인 이탈리아 영화도 꼭 찾아봐아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판이 로컬라이징을 꽤나 잘 했다고 하던데, 두번째 보니 디테일을 참 잘 살렸더라. 물론 아까 말한 22개국 버전 비교 영상을 보면 원작 설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꼭 우리나라 판본의 디테일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원작을 보고 싶은 것이고. 두번째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더라. 뭐,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연기를 잘 했는데, 특히 유해진, 염정아, 이서진 이 세명이 조금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이서진. 저렇게 바람둥이 연기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감독이 마지막 자막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넣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엔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반지가 돌아가는 장면 이후 상황이 바뀐 내용들과 자막은 잘 이어진다고 본다.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 보여주고 어렵고, 더 적나라한 표현을 넣을 수 없었겠지만, 당연히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누구나 세가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어떤 모습을 얼마나 보여주느냐, 숨기느냐에 따라서 미세하게 다른 내가 될 것이고, 또 보여주고 숨기는 양상과 형태에 따라서도 내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일터에서 안면만 있거나 철저히 공적 관계로만 얽힌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행동하는 내 모습과 일터 동료들 중에서도 나이를 떠나 친한 사람들과의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친구들과의 나, 아주 친한 절친과 있을 때의 나는 모두 다르다. 거기서 가족들과 나 역시 또 다르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을 때의 나도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벌써 연말이 다 되었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가고 새해가 오겠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는 또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 그냥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연말은 되도록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4-11-2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플에서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에 쓰여진 글들이 참 사람을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제가 쓴 그때의 글도 그렇지만 그 글에 달려있던 지금은 보이지 않으시는 많은 분들의 댓글이 또 사람을 추억에 빠지게 합니다. 아득해져요.

감은빛 2024-11-28 15:06   좋아요 0 | URL
제가 북플이란 어플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피씨로 알라딘에 들어왔을 때에는 볼 수 없는 지난 오늘 메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점수를 줍니다.

완전히 형태가 다르지만 페이스북은 웹으로 접속해도 지난 오늘 올린 글들을 보여주는데, 알라딘도 웹에서 그것까지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조금 돈을 쓰면 웹에서 구현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훨씬 많을텐데, 돈을 쓰기 힘든 구조이겠지요.

yamoo 2024-11-2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풀이 과거 오늘 쓰여진 글들을 날라다 주나 보죠? 저는 북플을 안하다보니 과거 내가 오늘 쓴 글이 뭔지 몰라요.

댓글...맞아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페이퍼나 리뷰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댓글을 달아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당시 생각도 새록새록 나구요..^^

여전히 달리기 열심히 하시네요..저는 달리기는 영~~ 취미가 없어서뤼...화이팅 하십쇼!!

희선 2024-11-30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컴퓨터로만 쓰니 예전에 제가 뭘 썼는지 그런 거 모릅니다 어쩌다 우연히 볼 뿐입니다 그게 더 나은 듯도 하고, 알려주는 게 나은 듯도 하고... 둘 다 나름대로 괜찮겠지요

김장 잘 담그시는군요 갈수록 그걸 하는 사람이 줄어들겠습니다 조금 하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달리기는 추울 때는 기다릴 때 힘들겠습니다 비닐 비옷을 길에 버리는군요 그건 생각하고 입었으면 좋겠네요 버리지 않고 자기 몸에 묶고 달리면 좀 나을 텐데... 감은빛 님이 바라시는 기록이 나와서 기쁘셨겠네요 달리기만 해도 좋을 것 같지만, 하다 보면 기록이 좋기를 바랄 것 같네요 앞으로도 즐겁게 달리기 하시기 바랍니다

위쪽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사는 곳은 비만 왔습니다 겨울이니 비보다 눈이 오면 좋을 텐데 했어요 눈도 조금 날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못 본 거네요


희선

페크pek0501 2024-11-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절 통증이 있을 땐 쉬셔야지요. 우리 몸은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면 좋은 컨디션으로 돌아옵니다.
몸 자체의 치유 능력 때문이지요. 겨울에 걷기만 해도 열이 나서 땀이 날 때가 있는데 달리기를 하면 얼마나 열이 날까 싶네요. 아무쪼록 운동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사시길...^^
 

오늘도 달리기


11월 24일 대회가 다가오니 한편으로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달려서 좋은 기록을 올려야 할텐데 라고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아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과 관절 통증 등이 겹쳐서 달리기를 거의 못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꼭 달리기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토요일에도 또 통증이 심했다. 어떻게든 나가서 조금이라도 달려보고 싶었지만, 결국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서 포기했다.


일요일 아침에 오늘은 꼭, 반드시 달리기를 하리라 다짐을 했다. 역시나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제를 먹고라도 나갈 생각이었다. 더구나 일요일에는 JTBC 마라톤과 평화 마라톤이 있는 날이라, 점심 때가 지나서 기록증 사진들이 단톡방과 SNS 등에 엄청나게 올라왔다. 지인 중 한 명이 제이티비씨를 또 한 명이 평화 마라톤을 나갔고, 두 사람의 기록을 보면서 나도 오늘은 꼭 달려야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적을 때 달리려고 기다리다 보니 오후가 다 갔고, 저녁 무렵에 더는 못 기다리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갔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더웠는데, 일요일 저녁은 조금 쌀쌀했다. 물론 조금 달리다보면 금방 땀이 날테니 상관없다. 잠바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천변 산책로로 내려와 몸을 풀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달리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달려보고 상태를 봐서 오늘의 목표를 정하리라. 일단은 15킬로미터까지는 무조건 가고, 가능하면 17킬로까지는 가보자 생각했다. 첫 1킬로까지는 가볍게 천천히 뛰었고, 2킬로 정도에서 어느정도 워밍업이 되어서 슬슬 속도를 올렸다. 생각보다 훨씬 몸이 가벼웠고, 기분이 좋았다. 3킬로를 지나면서 생각했다. 오늘 무조건 17킬로 이상 갈 수 있겠구나.


양화대교


지난 번 15킬로를 달렸을 때, 양화대교 바로 앞에서 돌아섰었다. 그때 다리를 쳐다보며 다음엔 양화대교를 뛰어서 건너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양화대교를 건너보고 그 다음에 어디로 계속 갈지 즉흥적으로 고르자 생각했다. 다리는 가벼웠고, 숨도 그렇게 가쁘지 않았다.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하며 인터벌 훈련하듯이 뛰었다. 지난 번에 15킬로 때는 거의 일정하게 페이스 540으로 달렸었다. 물론 중간에 조금 속도를 냈다가 다시 평균 속도로 돌아오기도 하고, 막판에는 지쳐서 속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나중에 구간별 기록을 자세히 보니 거의 일정하게 달렸었다. 이번엔 일부러 속도를 높였다가 다시 줄이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5분대 페이스는 유지하고 싶었는데, 중반 이후로 그러니까 양화대교를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페이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양화대교의 인도는 무척 좁았다. 게다가 보행자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유도 공원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전거를 끌거나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번에 월드컵 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아무도 없는 다리 위를 달리는 것이 너무 좋아서 전력질주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뛰었었다. 그런데 양화대교에서는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선유도 공원으로 들어갔다. 아주 오래 전에 아마 10년도 더 지난 옛날에 여기 놀러 왔었다는 사실만 기억나고 공원의 모습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두워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달리다가 막다른 길에 접어들어서 다시 돌아나와야 했다. 바깥으로 크게 도는 길을 찾아서 달렸는데, 저녁 시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차라리 좀 더 있다가 아예 밤이 되어서 나올걸 하고 후회했다. 불광천 산책로는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지만, 한강으로 나오면 좀 적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많았고, 여기 양화대교와 선유도 공원 역시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달리기가 어려웠다. 양화대교로 돌아가기 않고 선유도 대교인가? 남쪽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발견하고 거기를 건넜다. 그리고 한강의 남쪽을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양화대교를 만나 이번엔 건너왔던 길의 반대편 인도를 향해 계단을 올랐다. 양화대교를 건너서 돌아왔을 때 11킬로미터를 찍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든 생각이 오늘 어쩌면 하프를 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였다. 그래. 22킬로를 한번 가보자. 아니 적어도 20까지는 가보자 생각하고 불광천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뛰었다. 20킬로를 뛰려면 약 1킬로만 더 동쪽으로 갔다가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산수를 잘 하지는 못 하지만 아마도 맞으리라 확신했다. 달리다보니 저 멀리 서강대교가 보였고, 여의도의 여러 건물들과 국회가 보였다. 국회가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서 12킬로를 찍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양화대교 아래를 지나고 무슨 군함있는 곳을 지나서 슬슬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 아직 돌아가려면 멀었는데, 벌써 지치다니! 어떻게든 갈 수 있을거라고. 오늘 꼭 20킬로를 찍겠다고 마음 먹고 열심히 달렸지만, 페이스는 계속 떨어졌다. 달리다보니 자꾸 소변이 마려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신경이 쓰였다. 벌써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었는데 또?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기 앞에 섰는데 역시 나오지 않았다. 아까 분명 소변을 보았는데 왜 자꾸 마려운 느낌이 들까? 다시 옷을 입고 세면대에서 얼굴의 땀을 씻었다. 이런 형태의 간이 화장실들은 좁고 세면대가 출입문 바로 앞에 있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데, 출입문이 일부 열리더니 밖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달렸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물을 떠서 목 뒤쪽에 붓고 허리를 펴고 화장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남자 청소년 두 명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아! 얘네들이 화장실에 들어오려다가 내 긴 머리를 보고 여성이라 생각하고 멈칫 했구나. 그리고 다시 확인했겠지. 분명 남자 화장실인데 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둘이서 수군거리고 있었구나. 내가 그들을 스쳐 지나는데, 한 명이 말했다. 거봐! 남자였잖아 라고. 


화장실에서 시간을 제법 뺏겼고, 양화대교를 오르내리는 네 번의 계단에서도 제법 시간을 지체했다. 게다가 아직 돌아갈 길의 반도 못 왔는데 지쳐버렸다. 이때 오늘 5분대 페이스는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14킬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해보니 지금까지 페이스는 640 정도였다. 속도를 다시 높여서 620까지는 만들자고 생각했으나 이미 지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쯤부터 갑자기 발등에서 조금씩 통증을 느꼈다. 발의 피로도가 한도를 넘어서 발에 있는 작은 인대와 근육들이 놀란 모양이었다. 15를 넘어 16, 17 킬로를 지나면서는 약간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조금 회복된 느낌이 들면 다시 뛰고, 또 쥐가 날 듯한 느낌이 들면 걸었다. 이렇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해서 18킬로를 지났고, 마지막 2킬로는 속도를 좀 내보자 하고 뛰었는데, 역시 원하는 만큼은 되지 않았다. 


역시 무리였구나. 오늘은 그냥 17이나 18에 만족하고 20까지 욕심을 내지 말았어야 했다 하고 생각했지만, 11킬로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해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에는 발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무시하고 그냥 뛰었다. 이게 정말 쥐가 나면 큰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그냥 밀어붙였다. 숨이 너무 찼고 다리는 무거웠다. 너무 힘들었다.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흰머리 휘날리며


19킬로 지점을 지나면서 이제 1킬로 남았다.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며 또 속도를 높였다. 정말 이제는 남은 힘을 쥐어 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속도를 잠깐 높였다가 금방 지쳐서 느려졌다. 너무나도 걷고 싶었지만, 참고 계속 뛰었다. 그렇게 한참 죽을 것 같은 몸과 마음으로, 억지로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왼팔을 붙잡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멈춰섰고, 돌아보니 최근 몇 년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발을 멈추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순간 갈등했다. 남은 1킬로를 마저 뛰어갈테니, 저 끝에서 만나자 라고 얘기하고 다시 몸을 돌려서 뛸 것인가? 아니면 이미 너무 지쳤으니 그냥 여기서 멈추고 이 녀석과 함께 걸어갈 것인가? 머리는 1번을 원했으나, 몸은 2번을 원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2번을 택하고 달리기 기록 앱을 멈췄다. 19.45킬로미터였다. 출발점까지 남은 거리는 아마도 1.3 에서 1.5정도 될 것 같았다. 20을 찍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처음 목표였던 17은 훨씬 넘었으니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녀석과 함께 걸으며 여기 왠일이냐고 물었더니 서울시가 만든 9988이란 앱에 8천보를 찍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걷고 있는데, 갑자기 흰머리를 그것도 긴머리를 휘날리며 뛰어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한 눈에 나라고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는데, 내가 못 듣고 뛰어서 지나가버려서 뒤따라 뛰어와서 잡은 거라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라는 표현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까 간이 화장실 앞에서 당황했던 아이들도 생각났다. 약 1킬로를 걸으며 호흡을 회복하고 다리 근육을 풀어주려 애썼다.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나는 얼른 뭐든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


이제 대회까지 채 3주도 남지 않았다. 아니 아직 3주가 남았으니 조금 더 훈련할 수 있다. 지금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1주일 남은 시점까지 열심히 달려보고 그때 기록을 보고 대회 목표를 정해야겠다. 19킬로미터를 뛰었다고 지인들에게 열심히 자랑을 했다. 나를 장거리 달리기로 이끌었던 형이 이제 너는 하프를 뛰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형, 저 아직 20까지는 못 갔어요. 라고 답했다. 물론 이렇게 꾸준히 달리면 내년 초에는 하프 정도는 뛸 수 있겠지 싶다. 그럼 풀코스는? 나중에 풀코스를 달릴 정도의 실력이 되면 그때 고민해봐야겠지. 불과 3달 전만 해도 내가 풀코스를 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이젠 상상 정도는 해볼 상황이 되었다니! 어쨋든 이렇게 점점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몸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정말 좋다. 앞으로도 즐겁게 달려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