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티모와 완쯔요
지난 주 월요일이었다. 일정이 없는 날이라 늦잠을 자고 여유있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펼쳐 들고 있었다. 유튜브는 내가 처음 선택한 음악 이후로는 내가 종종 듣는 음악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알고리즘에 의해 다른 전혀 모르는 음악들 등을 섞어서 무작위로 들려준다. 뭐 어차피 책이 집중하다 보면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잘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차피 별로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잠시 책에 집중하면서 빠져들고 있을 즈음에 업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며 음악을 멈췄다가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재생을 시켜보니 나온 노래가 한동안 자주 들었던 펑티모의 노래였다. 펑티모는 한 5년 정도 전에 엄청 자주 들었던 인터넷 가수였다. 그러니까 주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해 부르는 개인 방송을 올리는 가수였다. 귀여운 외모에 엄청난 가창력을 가졌으며,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자신의 목소리와 음역대에 맞춰 잘 응용하는 음악 감각도 뛰어난 분이다. 우리나라에는 고양이 송이라는 동영상으로 유명해졌다고 하고, 나는 데시파시토 등 팝송들을 커버한 동영상들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엄청 유명해지고 나서는 돈도 많이 벌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본인 노래도 내고, 방송도 출연하곤 했다. 우리 복면가왕을 수입해가서 만든 가면 쓰고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에 토끼탈을 쓰고 나와서 노래 두어곡을 불렀는데, 그중 공심(空心)이란 노래를 듣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남성 가수인 광택이란 분의 노래인데, 펑티모가 평소 방송할 때도 여러 번 불렀던 곡이었다. 곡이 좋기도 하고, 본인도 자신이 있으니 방송에서 불렀겠지. 정말 잘 불렀기 때문에 내 기준에서는 광택의 원곡보다 이 펑티모 버전이 더 좋았다. 펑티모 버전이 평소 방송에서 불렀던 것도 여러 동영상이 있고, 아까 언급한 가면 쓰는 방송에서 부른 버전도 있고, 또 최근에 어느 연말 시상식 같은 무대에서 부른 버전도 있고 다양한데, 유튜브에서 이 여러 버전들을 하나의 리스트로 만들어서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펑티모 외에 다른 가수들이 부른 버전들도 찾아보게 되었고, 여러 남녀 인터넷 가수들의 동영상들을 들었다. 제법 잘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남성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원곡 가수인 광택보다 못했고, 여성들은 펑티모와 비교하는 순간 대체로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다 귀가 번쩍 띄인 것이 완쯔요 라는 인터넷 가수가 부른 버전이었다. 펑티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어떤 소절들은 펑티모보다 더 유려하게 넘어가기도 했다. 다만 펑티모는 아까 얘기한대로 여러 번 불렀기 때문에 버전이 많은데 비해 완쯔유 가 부른 곡은 하나 밖에 찾을 수 없었다. 암튼 그래서 펑티모와 완쯔유가 부른 공심을 리스트로 만들어 두고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펑티모도 그렇고, 이 완쯔유 라는 가수도 이미 본인의 곡을 냈기 때문에 인터넷 가수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비록 여전히 개인 방송을 주로 하지만, 티비 방송에도 나오는 가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리고 인터넷 개인 방송의 음향 장비와 반주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티비 방송 프로그램 못지않게 잘 부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그만큼 이 사람들이 음악적으로 다른 가수들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나는 유튜브 외에 다른 인터넷 방송을 보지 않고, 유튜브도 주로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들 그리고 몇명 영화 채널을 주로 보고, 대부분은 음악을 듣는 용도로 이용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플랫폼으로 개인 방송들을 보고 있고, 그중 유명한 디제이들은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린다고 들었다. 이미 뉴스에도 본 적이 있는데, 어느 유명한 방송 플랫폼의 여성 디제이에게 어느 남성이 교제를 전제 조건으로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의 후원(별풍선?)을 했다가 나중에 사기로 고소했다는 소식도 접했었다. 참, 신기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웹툰으로도 유명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마스크 걸]에서도 주인공이 인터넷 개인 방송을 열어 인기와 더불어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영화 채널 중에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유튜버(본인 표현)가 되었다고 대기업 연봉보다 유튜브로 버는 수입이 더 크다는 사람도 있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올리는 것을 공부해서 그 정도의 수입을 벌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다 싶었다. 그리고 곧 뉴스에서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1순위가 압도적으로 유튜버 라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프로게이머 였다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각 세대가 가진 생각, 어떤 가치관들이 크게 달라진다고 느낀다.
내 친구 중 한 명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한참 열심히 영상을 찍곤 했었다. 그 친구 나름대로 뭔가 독창적인 아이템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만들었다고 느껴지긴 하는데,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었다. 결국 구독자가 많이 늘지 않고 정체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이 친구는 영상 찍고 편집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초기에 유명한 유튜브 채널 중에는 혼자 콘티 짜고, 찍고, 편집하는 일을 다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면, 최근에는 각각의 영역을 맡아하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분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잘 하는 채널이 점점 더 늘어나면 그냥 개인이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개성만 믿고 혼자 뛰어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앞서 말한 한동안 영상을 찍던 친구가 그 당시에 내게도 사진이나 영상을 꾸준히 찍어두고 나중에 편집하는 방법을 배워서(그렇게 어렵지 않다면서) 너도 영상을 올려보라고 권했다. 당시에는 제법 열심히 운동을 하던 시기여서 운동하는 사진과 영상을 기록해두라고 그렇게 반복해서 말하길래, 나도 삼각대 겸 셀카봉을 사서 혼자 이런저런 운동하는 사진들과 짧은 영상들을 찍기도 했다. 언젠가 동영상 편집하는 법을 배울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컴맹에 가까운 내가 그런 고급 기술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저 사진을 좀 남겨두자는 마음에서였고, 이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가끔 올리기는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지인이 자주 모이는 사람들을 모아서 사회적 이슈나 시사 상식 등에 대해 떠드는 영상을 찍자는 제안도 여러 차례 했었다. 이 친구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었고, 영상도 제법 잘 만드는 사람이라 촬영과 편집은 확실히 문제가 없었고, 어떤 컨텐츠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냐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친구는 여러 차례 나에게 진행을 맡아 달라고 하면서 각 회차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잘 섭외해서 중요한 사안들을 짚어주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었다.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재미있게 진행할 자신은 없었지만, 매끄럽게 어색하지 않게 진행할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영상을 찍으려면 사전에 대본도 꼼꼼하게 작성해야 하고, 전문가 섭외도 하고, 그 전문가들과 조율도 잘 해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일이 바빠서 그 정도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답을 좀 애매하게 했던 모양인데, 나중에 이 친구가 이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며 늘 꺼내는 말이 진행을 맡기려고 했던 내가 거절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엎어진 거라고 내 탓을 하곤 했다.
사실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닌 그저 내 여러가지 활동들을 정리해두는 용도로라도 사진이나 영상을 어딘가에 올리곤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달리기 결과는 매번은 아니라도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고, 다른 운동은 이제 귀찮아서 따로 찍지는 않고 있는데, 조금만 더 신경스고 조금 더 부지런해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생각으로는 그렇고 현실은 늘 생각이나 예상과는 다르기 마련이긴 하다.
환자를 돌보는 고마운 사람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새콤달콤]이란 영화를 봤다. 그저 그런 흔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마지막 반전이 생각보다 신선하고 괜찮았다.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와 반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고 비슷하게 이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약 20년 전에 단편소설로 쓴 적이 있었다. 내가 쓴 몇 안되는 소설 중에서도 단연 제일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소설을 보여줬던 지인들의 반응도 나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암튼 그래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썩 좋지도 않았다고 느꼈다. 단 한 명 간호사 역을 맡은 여주인공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약 4년 반 전에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당시에 나는 갈비뼈가 여러대 부러져서 스스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 일으켜줘야 일어나 앉을 수 있었고, 걸을 수 없었고, 몸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그때 하루에 두어번 간호사나 인턴(혹은 레지던트인지 암튼 나는 이들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들이 내 몸을 옆으로 굴려서 몸을 뒤집어 줬다. 나 혼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하필 그때 코로나가 제일 심한 시기였고, 내가 입원한 병원은 또 코로나 환자가 많은 병원이라 보호자가 병원에 상주할 수 없었다. 이게 한 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지만, 몸을 혼자 가누지 못하는 나로서는 많이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 시기에 자주 찾아와서 뭐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봐주고 챙겨주는 인턴이 있었다. 어찌나 친절하게 잘해주는지 그 사람이 정말 너무 고마웠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내 몸의 상처나 통증 등 중요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챙겨주고 모습 덕분에 정말 천사처럼 느껴졌다. 저 [새콤달콤]이란 영화를 보면서 여주인공이 환자에게 잘해주는 모습 때문에 갑자기 그가 생각이 났다. 나중에 퇴원하면 꼭 어떻게든 은혜를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매번 그 병원에 갈 때마다 그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결국은 한번도 찾아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실례가 될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기도 했다.
몇 달 전에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을 때 일이다. 당시 나를 맡았던 간호사가 내게 무척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마취 주사를 맞을 때 꽤 아프다고 주의를 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어 토닥토닥 나를 달래듯 두드려줬다. 그 손길이 나는 정말 고마웠다. 그때 여러모로 좀 힘든 시기이기도 했고, 많이 우울한 때였는데, 그의 그 손길이 나를 많이 위로해줬다고 느꼈다. 그는 그저 직업으로서 간호사의 일을 조금 더 신경써서 잘 대해준 것이겠지만, 내게는 그 작은 행동이 엄청 큰 위안이 되었다. 앞서 교통사고로 입원했던 때의 그 인턴과 방금 말한 이 간호사 두 사람은 아마 평생 은인으로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제 같은 치과에서 나를 담당한 다른 간호사가 내게 재미있는 행동을 했다. 처음 진료를 시작한 의사가 나에게 간단한 조치를 하고 간호사에게 뭔가를 지시한 후에 잠시 다른 환자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그 후로 나는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건 사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그 긴 기다림이 신경쓰였는지, 내게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칫솔질 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고도 다시 한참을 더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게 새하얗고 조그마한 인형 하나를 건네줬다. 앙증맞고 귀여운 그 인형을 주면서 그는 내게 심심하시니까 이거 조물락 만지고 계세요. 라고 말하며 손아귀 힘을 기르는 운동도 되구요. 이거 이렇게 쥐고 계시면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구요. 나중에 치료 받으시다가 통증이 와도 이거 안고 계시면 괜찮으실거예요. 그리고 엄청 귀엽잖아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으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 흰머리와 흰수염이 가득한, 누가봐도 중년의 아저씨인 나에게 자그마한 귀여운 인형을 건네는 그의 행동이 좀 많이 웃겼다. 그가 내 손에 그 인형을 쥐어주고 가버렸기 때문에 나는 어쩔줄을 몰라하면서도 그냥 인형을 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냥 그가 시킨대로 조물락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인형은 정말 귀여웠다. 우리 작은 아이에게 주면 딱 좋아할만한 인형이었다. 치료를 다 받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그 간호사 생각이 났다. 나름 나를 신경써서 잘 해주려고 한 행동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 일도 앞서 언급했던 사례들과 함께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이 글은 어제 쓰기 시작했지만, 절반 정도 쓰고 회의를 들어가느라 완성을 못했고, 회의를 마친 후에는 또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결국 하루를 넘겨버렸다. 그리고 오늘은 3월 11일 후쿠시마 핵 폭발 사고 14주년이 되는 날이다. 다른 기억해야 할 날들이 많지만, 이 날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날이다. 이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전혀 수습을 못하고 있다. 핵폭발로 날아간 건물 지붕을 덮지도 못하고 있고,(참고로 체르노빌 핵폭발 사고 때에는 약 6개월만에 뚜껑을 덮어서 더이상 방사능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막았었다.) 매일 매순간 방사능이 새어나오고 있다. 아마도 일본 정부는 몇 백년이 지나도 이 사고를 수습하지 못할 것이다. 잠시만 근처에 머물러도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능에 노출되기 때문에 직접 사람이 들어가 작업을 할 수 없고, 로봇이나 기계를 보내도 방사능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녹아버린 핵연료봉이 어디어 어떤 상태도 있는지도 파악하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긴 시간 알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이 사고 이후로 방사능이라는 치명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아, 할말이 너무 많지만, 오늘은 너무 바쁜 날이다. 일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