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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불길한 말 ㅣ 문지 스펙트럼
루쉰 지음, 성민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펀트래블에서 기획한 중국근대문학기행에 함께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경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라오서, 곽말약, 마오둔과 상해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루쉰의 발자취를 따라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근대문학기행의 경우는 떠날 무렵에서야 관련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들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중국근대문학기행은 미리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루쉰의 <부엉이의 불길한 말>은 그와 같은 준비작업의 시작입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에는 루쉰이 쓴 산문 10편과 산문시 24편을 담았습니다. 산문은 1907년부터 1936년까지 30년에 걸쳐 쓴 산문 가운데 1920년대 중반의 것을 주로 골랐다고 합니다. 산문시는 1927년에 출간된 <야초>에 실린 24편의 산문시를 모두 실었다고 했습니다.
루쉰(鲁迅, 1881~1936년)은 중국의 소설가로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입니다. 아큐정전(阿Q正伝)과 광인일기(狂人日記) 등 그의 대표작은 중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만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 중국작가들이 가장 존경한다고 합니다.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 시(紹興市)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10대 중반에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국비지원을 받아 공부를 한 뒤 22세에는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기초지식을 배운 뒤에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사상적으로 혁명파에 속하는 반만주족 혁명단체인 광복회에 가입했다. 하지만 간첩혐의를 받던 동포가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는 1년 7개월만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9년에 귀국하여 향리에서 교원으로 일하면서 외국 소설을 반역하는 한편 중국 고전을 연구하다가, 1912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화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루쉰은 구체제를 부정하고 민중정신을 고양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거쳐 스탈린주의로 이행하던 중에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서양 사상의 변천과정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중국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아비판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새로운 소리가 다투어 일어나고 있는데, 특수하고 웅장 화려한 말로써 그 정신을 진작시키고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소개하지 않는 것이 없다. 침묵에 잠겨 움직이지 않는 민족이 있다면, 오직 앞에서 든 천국 이하 몇몇 오래된 나라들뿐일 것이다.(15쪽)”
영국에서는 철학자 로크와 시인 로버트 번스가, 러시아에서는 푸쉬긴이, 폴란드에서는 시인 미츠키에비치가, 헝가리에서는 시인 페퇴피 등이 정치와 종교에 누적된 폐단을 배격하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는데, 과연 중국에서는 정신계의 전사라할 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원의 처방을 받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훗날 서양의학을 공부하고서는 “한의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기당한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51쪽)”라고 했습니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두 작품을 읽은 뒤에 다시 챙겨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 <부엉이의 불길한 말(貓頭鷹的不詳之言)>은 산문시 ‘희망’의 한 대목입니다. “내 어찌 몰랐겠소. 내 청춘 이미 가버렸음을? 허나 몸 밖의 청춘은 그대론지 알았지. 별, 달빛, 뻣뻣해져 추락하는 나비, 어둠 속의 꽃, 부엉이의 불길한 말, 두견의 피울음, 웃음의 아득함, 서랑의 너울대는 춤……. 슬프고 막막한 청춘이라도, 그래도 필경 청춘인 것을.(166-167쪽)” 이 대목은 헝가리의 시인 페퇴피가 이야기한 ‘절망이 허멍한 것은, 희망과 똑 같다’라는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