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 점토판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철의 제국. 3000년 만에 그 역사적 봉인이 풀리다! 더숲히스토리
쓰모토 히데토시 지음, 노경아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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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제국하면 인류 최초의 철기문명을 열었다고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근동 혹은 중동지역(유럽인의 시각에서 본)은 인류 4대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문명이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생긴 4대문명에 대한 관심은 이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그런 관심에서 나온 책읽기였습니다.


제국(帝國)이라하면 국가, 즉 왕국을 휘하에 둔 상위국가의 개념입니다. 즉 문화와 민족이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통치권을 행사하는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시황제의 진나라, 서양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를 최초의 제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정의에 따라 주나라와 페르시아와 같이 이들보다 앞선 국가들도 제국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제국은 어느 나라인가. 지금의 바그다드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드를 중심으로 한 아카드제국을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이라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6천년에서 5천년 사이에 수메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등장하여 동기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문명을 열었는데, 아카드의 사르곤왕이 기원전 2334년 무렵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제국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아카드제국은 약 200년 정도 지속이 되었지만 피지배국을 강압 통치하여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 기원전 2150년 무렵 이란고원에서 온 구티족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나일강 유역에 등장한 이집트는 대략 기원전 3600년 무렵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왕국이 성립했으며, 두 왕국이 통합된 기원전 3200년부터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기원전 22세기까지를 고왕국 시대, 이어서 힉소스인에게 정복당한 기원전 1800년까지를 중왕국 시대라고 하고, 독립된 뒤 기원전 16세기로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를 신왕조라고 구분하는데 신왕조시대에 이르러 이집트가 제국의 정체를 갖추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히타이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헷족을 이르는데 기원전 18세기 무렵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왕국을 이루었고, 기원전 14세기 무렵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시리아 북서부을 거쳐 레바논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의 히타이트 제국은 이집트, 아시리아제국과 함께 근동지역의 3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은 기원전 1180년경 와해되면서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 8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히타이트 제국에 관하여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소개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왕국의 등장으로부터 제국의 형성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이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에서 발흥하였다고했는데, 10년전에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는 히타이트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의 주요 유적이 주로 튀르키예의 중, 동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여행은 주로 중부에서 서부 해안을 갔기 때문입니다.


히타이트제국이 붕괴하게 된 원인으로 해양민족의 내습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집트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가설이라고 합니다. 언급된 해양민족으로는 루카(Lukka), 카르키야(Karkiya), 펠레셋(Peleset), 세켈레쉬(Shekelesh), 셰르든(Sherden), 웨셰쉬(Weshesh), 에크웨쉬(Ekwesh)와 데이엔(Denyen), 테르커(Tjerker)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혹은 에게해 심지어는 시칠리아에 근거들 둔 부족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 부족의 내습만으로 막강했던 히타이트제국이 무너졌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고 가뭄과 같은 기상재해와 함께 역내 부족들 사이의 갈등으로 제국이 피폐해졌기 때문이 으들의 내습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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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의 불길한 말 문지 스펙트럼
루쉰 지음, 성민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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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트래블에서 기획한 중국근대문학기행에 함께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경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라오서, 곽말약, 마오둔과 상해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루쉰의 발자취를 따라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본근대문학기행의 경우는 떠날 무렵에서야 관련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들을 모두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중국근대문학기행은 미리 준비해보기로 했습니다. 루쉰의 <부엉이의 불길한 말>은 그와 같은 준비작업의 시작입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에는 루쉰이 쓴 산문 10편과 산문시 24편을 담았습니다. 산문은 1907년부터 1936년까지 30년에 걸쳐 쓴 산문 가운데 1920년대 중반의 것을 주로 골랐다고 합니다. 산문시는 1927년에 출간된 <야초>에 실린 24편의 산문시를 모두 실었다고 했습니다.


루쉰(鲁迅, 1881~1936)은 중국의 소설가로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입니다. 아큐정전(Q正伝)과 광인일기(狂人日記) 등 그의 대표작은 중국문학의 고전이라 할 만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 중국작가들이 가장 존경한다고 합니다.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 시(紹興市)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지만, 10대 중반에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국비지원을 받아 공부를 한 뒤 22세에는 일본으로 유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기초지식을 배운 뒤에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사상적으로 혁명파에 속하는 반만주족 혁명단체인 광복회에 가입했다. 하지만 간첩혐의를 받던 동포가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는 17개월만에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9년에 귀국하여 향리에서 교원으로 일하면서 외국 소설을 반역하는 한편 중국 고전을 연구하다가, 1912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화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루쉰은 구체제를 부정하고 민중정신을 고양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거쳐 스탈린주의로 이행하던 중에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을 읽다보면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서양 사상의 변천과정을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중국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아비판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세계를 돌아보면 새로운 소리가 다투어 일어나고 있는데, 특수하고 웅장 화려한 말로써 그 정신을 진작시키고 그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소개하지 않는 것이 없다. 침묵에 잠겨 움직이지 않는 민족이 있다면, 오직 앞에서 든 천국 이하 몇몇 오래된 나라들뿐일 것이다.(15)”


영국에서는 철학자 로크와 시인 로버트 번스가, 러시아에서는 푸쉬긴이, 폴란드에서는 시인 미츠키에비치가, 헝가리에서는 시인 페퇴피 등이 정치와 종교에 누적된 폐단을 배격하고 사상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는데, 과연 중국에서는 정신계의 전사라할 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원의 처방을 받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훗날 서양의학을 공부하고서는 한의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사기당한 환자와 그 가족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51)”라고 했습니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두 작품을 읽은 뒤에 다시 챙겨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 <부엉이의 불길한 말(貓頭鷹的不詳之言)>은 산문시 희망의 한 대목입니다. “내 어찌 몰랐겠소. 내 청춘 이미 가버렸음을? 허나 몸 밖의 청춘은 그대론지 알았지. , 달빛, 뻣뻣해져 추락하는 나비, 어둠 속의 꽃, 부엉이의 불길한 말, 두견의 피울음, 웃음의 아득함, 서랑의 너울대는 춤……. 슬프고 막막한 청춘이라도, 그래도 필경 청춘인 것을.(166-167)” 이 대목은 헝가리의 시인 페퇴피가 이야기한 절망이 허멍한 것은, 희망과 똑 같다라는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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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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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국립 레지온 도뇌르 고등학교와 파리정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샤를 페팽교수가 쓴 책입니다. 페팽교수는 방송과 강의를 통하여 철학을 알리고 있어 프랑스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제의 빛이 없으면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어제가 과거에만 속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는 가버리지 않는다. 우리를 이루는 것은 현재보다 과거의 지분이 더 크다.(9)”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경험이 풍부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잘 지내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과거 속에서살지 않고 과거와 더불어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1, 과거의 현존들, 2부 과거와 마주하기, 3부 과거와 나아가기 등,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과거라는 것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재구성된 기억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뇌과학에서 밝혀낸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기억 현상에 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인용하고 있는데, 기억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 행동에 요긴한 기억들을 끊임없이 선별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인용했습니다. 철학에서 이야기한 기억에 관한 내뇽을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억과 연결하기도 합니다.


2부는 우리가 순수하게 현재의 순간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현재를 살아가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잠재되어 있는 기억이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대목을 인용하여 과거라는 기억을 되살려내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인용하여 일화기억을 잃은 여주인공 리타의 사례를 보면서 일화기억을 잃은 내가 진짜 나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파스칼의 유명한 명제를 가져와 나는 기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억은 곧 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과거를 곱씹지 말자라고 하는 새로운 제안을 가져옵니다. 아픈 과거에 매달리다 보면 현재의 삶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습니다. “술꾼은 과거에서 도망치려고 술을 마시곤 한다. 이별이나 실패, 굴욕이나 사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 그는 삶의 비극을 감추려고 술을 마신다. 이 방법도 처음에는 통한다.(113)”라는 대목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 술에 의지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던 대목입니다.


아픈 과거에 매달린다거나 잊기 위해 무언가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과거라는 기억과 싸우기를 멈추고 수용할 수 있을 때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어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과거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작업을 기억의 재공고화라고 말합니다.


흔히 기억은 절대로 틀림이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입니다만, 사실 기억도 주체의 의도에 따라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3부에서는 과거라는 기억을 재공고화하여 삶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되찾은 시간>에서 이야기하는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171)”라는 대목을 인용합니다. 저자는 과거와 함께 사는 묘를 터득한 사람은 어제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 세계에서 얻은 것, 그 세계에 두고 온 것으로 인해 자못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236)”라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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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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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일본근대문학사조의 변천과정을 짧게 요약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민중예술은 다이쇼 시대(1912~1926)의 중반에 인본주의와 민주주의적 시대사조의 영향으로 대두되었는데,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적 불안으로 노동문학이 일어났고, 이어서 1920년대들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발전했다가 군국주의 성향이 강화되면서 정치권력의 탄압으로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가니코센(蟹 公船)은 게잡이 공선인데 문파랑에서는 게 공선으로 제목을 삼은 것은 조금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양선단은 통상적으로 어획을 하는 조업선과 조업선이 잡은 해산물을 현장에서 가공하는 작업선으로 구성이 되는데, 가니코센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공선은 작업선으로 조업선을 싣고 가서 조업현장에서 바다에 내려놓아 조업을 하도록 했던 것 같습니다.


원양어선단은 지금도 장기간 바다에 머물고 작업시간이 불규칙하고 작업강도도 높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근무기강이 엄하다고 합니다. 하물며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하던 근대 일본에서는 노동현장의 분위기가 끔찍할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일본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바야시 다키지(小林 多喜二)가니 코센(蟹工船, 게잡이 공선, 1929)1926년 홋카이도의 게잡이 공선 하쿠아이마루(博愛丸)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 작품에서는 게잡이 공선에서 일하는 다양한 노동자 집단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을 탄압하는 주체는 회사에서 파견된 아사카와 감독과 그 수하들이다. 이들은 조업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을 통제합니다. 바다에서는 조난당한 배를 구조하는 일은 요청을 받는 즉시 현장으로 출동하는 것이 기본인데 감독은 선장을 욱박질러 조난당한 배를 버리고 조업현장으로 직행하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게잡이 공선에 탑승한 다양한 노동자들과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설명하는데, 승선인원이 남녀노소로 다양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도호쿠지방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어 흘러든 사람들로 핍박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피해의식에 절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사카와 감독의 강압에 저항하지 못하던 노동자들은 조업선에 탔다가 조난을 당해 러시아에 상륙했던 어부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바뀌어 있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게잡이 공산의 노동자들과 공유하면서 노동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조업과 작업에서 태업을 벌이는데 성공을 하게 되고, 결국 노동자들이 감독의 핍박에 저항하여 거사를 하게 됩니다. 잠시 몸을 숨겼던 감독은 해군 함정이 다가와 수병들이 승선하여 선상반란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을 잡아가면서 반란은 간단하게 수습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어두컴컴할 때부터 일터로 내몰렸다. 그리고 곡괭이 끝이 힐끗힐끗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주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했다. 근처에 세워져 있는 감옥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특히 조선인은 심장들에게도, 같은 동료 인부(일본인)들에게고, ‘짓밟히는대우를 받았다.(83)”라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는 노동자들의 인권에 무게를 두었을 뿐인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두고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Working Poor)…… 혹시 이 현상이 게 공선아닌가요?’라고 변죽을 울리고 있습니다만,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조차 되어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군국주의가 횡행하던 100년 전의 일본사회의 노동현장을 현재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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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학생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전규태 옮김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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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언급되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습니다만, 얼마 전에 읽은 야기사와 사토시의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에서 여주인공 다카코씨가 읽었다는 여학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여학생은 동명의 소설집에 실려 있는 중편소설입니다. <여학생>14편의 중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4편의 소설의 화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100엔짜리 화폐가 화자인 단편 화폐의 경우에도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인 작가가 여성을 화자로 삼은 것은 그만큼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있지 않으면 여성독자들의 호응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성 독자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여성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에 긴가민가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은 14명의 여성을 통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실격>에서도 짚었습니다만, 이 책에 실린 화자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 등롱의 경우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경계하고 있으니까요.(9)”라고 시작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믿음을 주는 일도 상호적인 것이라서 내가 상대를 믿어줘야 상대도 나를 믿어주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결국 화자는 상대를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심어주었던 것이겠지요.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상대로부터 오해를 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표제작인 여학생의 화자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듯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책의 내용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나는 책에 쓰인 것들에 지탱하며 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그 책에 골몰하게 되어, 신뢰하고 동화되고 공감하면서 거기에 내 삶을 얹어버리고야 만다.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순식간에 그 책에 동화돼버린다. 남의 생각을 도둑질하여 내 것으로 슬그머니 고쳐내는 재능은 나의 유일한 특기다.(34)” 비판적 책읽기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퀴리 부인>, 나가이 가후의 <묵동 기담>,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드 데아미치스의 소설 <쿠오레>, 프랑스 작가 조제프 케셀의 소설 <메꽃> 등을 인용하고 있는데 <메꽃>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가이 가후의 <묵동기담>에 대하여 내용은 결코 못마땅하거나 불쾌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거들먹거리는 꼴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마음에 들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65)”라고 적고 있는 것은 작가가 화자의 입을 빌어 슬쩍 비꼬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모진 마음을 먹고 순간 자살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아아,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알게 될 것을, 조금만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자연히 알게 될 인데…….’하고 아쉬워하곤 한다.(74)”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스스로 삶을 마치는 선택을 한 것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오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지요.


세 번째 작품 벚꽃잎과 마술피리는 언젠가 한번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자매 간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편 지요조에 한국인이 등장하는데, 길을 묻는 화자에게 길안내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부자연스러운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은 혼고(本鄕)의 가스가초에 가는 길 안내였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한결 더 고맙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일본 사람은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으니까 그저 모른다고 지나쳐버리곤 하는데, 이 한국인은 잘 모르는데도 내게 어떻게든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어 진땀을 마구 흘려가면서 열심히 알려주려고 있으니까요.(168)” 어찌되었건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벚꽃잎과 마술피리에서 도고제독의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일거에 격멸하는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표현한 반면, ‘128에서는 전후 일본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읽을 수 있습니다. “짐승 같이 아둔한 미국 군대가 이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일본 국토를 어름어름 걸어 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못 견디겠다. 이 신성한 땅을 한 치라도 밟는다면 녀석들의 다리는 썪어 문드러지리라(219)” 이런 시각은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듯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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