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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디탄
사철생 지음, 박지민 옮김 / 율리시즈 / 2021년 5월
평점 :
'견딘다'는 말은 '살아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딘다거나 오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괴로움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결심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많지 않은 선택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삶은 단순히 살아내는 한 과정일 뿐 주어진 삶을 즐기는 살아가기의 연속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하는 행복은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찰나의 가벼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중국 작가 사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었을 때였다.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은사님이 추천한 사철생 작가의 산문집 <나와 디탄>의 한 대목을 인용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꽤나 인상 깊었다. 시력을 잃은 조승리 작가도 그렇지만 사철생 작가 역시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우리도 삶을 살아내는 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닌데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이 더해진다는 것이기에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를 감명 깊게 읽었던 나는 사철생 작가의 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무 살에 나는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 다른 일도 하고 싶었다. 몇 번 생각이 바뀌었고 결국에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때의 어머니는 젊지 않은 데다 내 다리 때문에 흰머리가 생겼다. 병원에서는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내 치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좋은 비방을 찾아다녀 돈도 많이 썼다. 어디서 이상한 약을 구해 와서 먹고 마시게 하거나 씻고 붙이고 쐬고 맞도록 했다. "시간 낭비 하지 마! 다 소용없다고!" 나는 오직 소설만을 쓰고 싶었다. 소설만이 장애인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p.79 '자귀나무' 중에서)
우리는 종종 별 뜻도 없이 '이해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처지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정작 완벽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빈말에 가까운 그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인사치레에 가까운 그 말을. 나 역시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건 내가 적어도 신분이나 여건상 그 사람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이해하니까 고맙게 생각해,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래 봬도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선함과 너그러움이 있는 사람이야, 하는 정도의 우월의식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은 겉으로 드러난 여러 차이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그와 같은 계급과 차별의식에서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을 때는 남은 평생 방에서 책만 읽고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몰래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나를 달래서 안아 마당으로 데려 나왔다.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 버드나무와 바람을 보니 그 결심은 바로 흔들렸다. 게다가 친구들이 자주 놀러와 바깥세상에서의 온갖 소식을 들려주니 점점 더 마음이 움직였다. 이 넓은 세상에서 휠체어를 밀며 다니는 일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255 '휠체어에 앉아 길을 묻다' 중에서)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싱숭생숭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곤 한다. 하물며 내 몫으로 장애인 한 명을 부담으로 떠안게 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삶도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전해질 테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은 삶의 동력을 잃게 하고 원망과 분노만 쌓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가정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긍정의 선순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헌신과 무한 사랑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파탄과 공멸의 외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범위를 넓혀 보면 한 사회의 구성원 간에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앞으로 살아갈 작은 길조차 가늠하지 못했고, 여동생은 겨우 열세 살이어서 아버지 혼자 이 가정을 짊어져야 했다. 이 20여 년 동안 어머니는 하늘에서 다 지켜보셨을 것이다. 20년 후 모든 것이 안정된 어느 겨울밤, 아버지는 우리를 떠났다. 마치 어머니의 당부를 다 완성하고, 주어진 고통과 노력과 고단함과 외로움을 다 겪어내고 급하게 어머니를 찾으러 떠나신 듯했다. 이 세상에 무덤 하나 남겨두지 않은 어머니를 찾아 서둘러서." (p.200~p.201 '기억과 인상' 중에서)
오늘도 날씨가 무덥다. 주말을 맞는 홀가분함이 없었더라면 날씨로 인해 마음은 더욱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장마철에 물난리를 걱정하기는커녕 비는 구경도 하기 어렵고 메마른 날씨에 기우제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이렇게 마른장마가 지속되다가 수확을 앞둔 어느 시점에 때 아닌 물난리를 만난다면 그보다 더 큰 곤란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릴 비라면 푹푹 찌는 더위도 식힐 겸 이맘때 내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날씨가 덥다 보니 되지도 않을 바람이 점점 늘어만 간다. 돌이켜보면 또 이렇게 힘든 한 주를 살아낸 게 아닌가. 견딘다는 말은 살아낸다는 말의 동의어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