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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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신의 허점을 찾아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 헤매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뀐 상황에서 그 결과를 어쩔 수 없는 처분처럼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작가는 이따금 너무나 낯선 설정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작가가 설정한 상상력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변주되는 것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의 설정은 유교주의 지배를 받는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마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으냐." 그때 등에 으슬으슬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나무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섹스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순간 시아버지는 움찔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그러고는 슬며시 웃었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났다.  (p.20)


그렇다. 일주일 전에 결혼한 쇼코와 무츠키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이탈리아어를 번역하는 쇼코는 알코올 중독자인 동시에 조울증을 앓고 있다. 의사인 무츠키는 지나친 결병증을 지닌 사람인 반면 동성애자로서 동성 애인인 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짓말이라고는 도무지 할 줄 모르는 무츠키는 쇼코가 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사실대로 말해준다. 잠들기 전 침대 시트를 다림질하는 일을 제외하고 음식이면 음식, 청소면 청소 집안의 모든 일은 무츠키가 도맡아 한다.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무츠키에게 쇼코는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무츠키를 위해 곤과의 관계를 허락하기도 하고, 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형식적인 아내이기는 하지만 무츠키는 이와 같은 쇼코의 배려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차는 한밤중을 똑바로 달린다. 오늘 밤 곤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쇼코의 기분을, 나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끔찍하도록 긴 하루였다. 어머니의 가시 돋친 목소리와 장인의 험악한 표정, 눈물짓는 장모의 손수건 모양과 고개 숙인 아버지의 옆얼굴. 후회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쇼코에게 말한다. 일찌감치 등받이를 뒤로 넘기고 기댄 곤은 코를 골고 있다. 입은 반쯤 열려 있다."  (p.200)


무츠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쇼코의 마음은 점점 무츠키에게 기운다. 육체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그와 함께 지내는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츠키는 쇼코의 절친인 미즈호를 통하여 쇼코의 옛 애인인 하네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쇼코는 미즈호와 그녀의 아들 유타, 그리고 하네기 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게 된다. 이 모든 게 무츠키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된 쇼코는 크게 화를 내고 미즈호와는 절교를 선언한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무츠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장인 장모와 시어머니는 결국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츠키와 쇼코는 남들과 다른 자신들의 관계에 심한 압박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자, 왠지 맥이 축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핌즈를 전자에일에 섞어 마신다. 가능하면 무츠키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협력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봐야 하룻밤만 넘기면 되는 일이다. 나는 반짝반짝 닦인 바닥에 엎드리고 누워, 베란다 너머로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뺨이 싸늘해서 상쾌한 기분이다. 눈을 감고 온몸으로 귀 기울인다. 정겹고 청결하고 편안한 방의 기척. 이러고 있으면 무츠키에게 안겨 있는 것 같다."  (p.211)


사회적 인식과 관습에 얽매인 관계 속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과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곤. 책을 읽는 독자는 무겁고 착잡한 기분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물론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동화적 결말로 끝이 나고는 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속이 터질 듯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그저 힘에 겨울 뿐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쇼코를 보면서 '우리가 육체적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사랑할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가 역시 비슷한 문제를 거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개인의 성적인 취향이나 기호를 떠나 서로의 영혼을 깊이 관찰하고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처럼 서로의 순수한 영혼에 이끌려 플라토닉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날씨가 조금 풀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무색하게 바람에 섞인 한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시린 느낌을 더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추위 때문에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겨울을 온전히 사랑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쇼코와 무츠키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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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불던 칼바람의 기세가 오늘 낮부터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한 한파가 길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몇몇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주가지수 5000을 가볍게 돌파하였다는 소식과 내란범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마냥 느슨하게만 보여 답답했는데, 재판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국민과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눈높이에서 내란범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재판 결과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검찰이나 사법부는 재임 기간 중에 받을 수 있는 국민의 신망이나 존경보다는 퇴임 후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사적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나 재벌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을 감아왔고, 이를 통하여 소위 엘리트 그룹의 부정부패는 공고히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판사나 검사 역시 퇴임 후에는 그들 그룹에 소속되어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 인맥과 교류 속에 대대손손 권력과 부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의 편에 선다는 건 어지간한 결단이 아니고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이인자였던 한 전 총리만 보더라도 온갖 비리에 대한 설이 무성했지만 단 한 번도 처벌되지 않고 지금껏 호의호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역시 엘리트 그룹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던 까닭입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을 담당했던 이진관 판사 역시 온갖 유혹과 회유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도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한 전 총리가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여 호가호위를 꿈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법부의 정의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질끈 눈을 감은 채 소수 엘리트 그룹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단 한 번 안면을 몰수한다면 자신은 물론 자손 대대로 탄탄대로를 걷게 될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친다는 게 어디 쉽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진관 판사는 정의와 이를 열망하는 국민 다수의 편에 섬으로써 퇴락하는 사법부의 신뢰를 다시 살렸음은 물론 국민의 염원을 일부 해소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내란에 가담했던 모든 정황을 밝히고 그들 모두에 대한 처벌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답답했던 국민의 마음이 조금쯤 풀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만 같았던 2026년 1월도 벌써 마지막 한 주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아주 작은 희망을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주일의 혹독한 칼바람 속에서 몇몇 따뜻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용기는 우연히 발견된 작은 희망의 결합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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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마음 있는 사람
정기현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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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편집자가 인기 작가로 탈바꿈하는 사례는 불가능하거나 희귀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흔한 사례도 아니지만 말이다. 타인이 쓴 글에 대해 조언하고 격려하는 일과 자신이 직접 나서서 글을 쓰는 일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해 보면 일 때문이든 취미로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당연히 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양자 사이에 서로 긴밀한 연관은 있을지언정 '반드시'로 귀결되는 건 아닌 듯하다. 나 역시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그닥 즐기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이걸 평생의 업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나의 이런 성향은 책을 읽고 숫제 기록도 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을 오래도록 유지시켰던 바, 어떻게든 이를 고치고 바로잡겠다는 명목으로 오죽하면 영양가도 없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정기현 작가 역시 스타 편집자에서 신인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난 나의 감회는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자' 결심하거나 생각해서 나온 글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쌓이고 쌓였던 것이 자연스레 넘쳐흘러서 비로소 세상에 나온 책일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인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때가 되어 마땅히 나와야 할 게 나왔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이 끝없이 걷는 모습으로 일관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기은, 새미, 승주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들이 마주하는 다른 풍경들을 끊이지 않고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나온 시간과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탓인지, 아니면 교회에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자주 오는 것인지, 낯선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끝나지 않는 긴긴 얘기를 늘어놓았다. 교회에 와서야 털어놓는 이야기라는 것이 대개 먹고사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나 그 나름대로는 충분히 무거운 것들이라 이들의 장황한 이야기는 붕 떠올라 당사자만 아는 리듬대로 흘러갔다."  (p.83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중에서)


정기현의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비롯하여 '빅풋', '발밑의 일', '검은 강에 둥실',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농부의 피',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바람 부는 날' 등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신인 소설가인 만큼 소인(小人) 새미가 임준섭의 집에 숨어들어 지내는 며칠 동안 인간이 소인의 존재를 눈치채면 그 즉시 처단된다는 그들만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새미는 왠지 그에게는 정체를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임준섭을 불러보는데, 그는 의외로 차분하기만 하고, 집안의 고요가 깨져 기쁘다는 듯 행동한다는 내용의 '발밑의 일'처럼 실험적인 작품도 선보인다. 물론 큰 발을 갖고 있는 새미가 발 때문에 흐려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슬픔을 다룬,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빅풋'과 같은 작품이 작품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신발 자체로만 본다면 그리 무시무시한 크기까지는 아니었는데도 새미를 먼저 알고 새미 없이 그 신발들을 보게 된다면 그 뒤로도 한동안 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신발들이었다. 새미는 여전히 실종 상태인데 발 크기에 놀라 마땅한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둔 것처럼 보일까봐 나는 신발들이 선사한 놀라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p.15 '빅풋' 중에서)


소설 '빅풋'에서 새미는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발에서만 자세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대표성이 발의 크기가 아님을 은연중에 밝힌다. 동네 곳곳에서 발견되는 '김병철 들어라'로 시작되는 낙서를 보면서 기은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김병철'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사연을 찾아 나서게 되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기은이 자신이 새로 발견한 사실을 준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그린 '슬픈 마음 있는 사람'과 여름방학에 꾸었던 꿈을 소재로 다룬 '검은 강에 둥실', 뻐꾸기와 파쿠르의 상상력을 다룬 '마음대로 우는 벽세계', 우연히 발견한 비옥한 땅을 보면서 자신에게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승주의 이야기를 다룬 '농부의 피', 외고를 목표로 노력해 온 승주가 어느 날 노는 아이들의 무리인 '버들치'와 어울리게 되면서 달라지는 삶의 패턴을 그린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재건축을 하기 위해 펜스가 쳐진 아파트 단지를 멀리 돌아 출근하는 대신, 펜스를 뚫고 한가운데로 걸어보자고 결심한 승주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그린 '바람 부는 날' 등 작가는 다양한 소재에서 얻은 여러 상상력을 통해 우리 삶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길에도 성격이 있다면 고갯길은 무척이나 음흉한 성격일 것이다. 꼭대기에 다다를 때까지 너머의 풍경을 감춘 채 고개의 이쪽 면만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일 누군가 푸른 초목이 무성한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이유는 내리막길에도 그 녹빛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그 너머가 바위산이면 어떡하려고? 얼음산이라면? 절벽이라면?"  (p.264 '바람 부는 날' 중에서)


며칠째 날이 무척이나 차다.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갑작스럽거나 느닷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삶에서 받는 충격으로 인해 방향을 잃고 멈춰 서거나 기운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좋은 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네 모습을 비유적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한 편의 소설이 가리키는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멈추어 서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 지쳐버린 자신의 삶을 잠시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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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조금 내렸습니다. 가볍고 건조한 눈이었습니다. 아파트 인근의 차도와 인도는 비교적 따뜻했는지 내리자마자 금세 녹아 비가 내린 듯 젖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내리는 눈의 방향이 이리저리 흩어졌습니다. 등산로 초입의 계단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조금씩 눈이 쌓이고 있었고, 계단을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자국이 지문처럼 남았습니다. 등산로와 등산로 주변의 낙엽 더미에도 눈이 쌓여 어둠에 지친 숲을 깨우고 있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월요일에 내몰린 차량들이 새벽부터 도로를 질주하고, 아파트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어느 노동자의 손에는 불이 붙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지 만 12년이 되었건만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담배 연기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언젠가 지금의 삶에 나른한 권태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쩌면 멀리하던 담배에 불을 붙여 진한 연기를 가슴 한가득 빨아들일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누구도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정기현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묘사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자주 걷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익숙한 골목골목을 무작정 걷는 느낌입니다. 도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에 익숙해진 도시인이 자신의 보조에 맞춰 익숙한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생경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낡은 현수막에 실린 어느 정치인의 구호나 전봇대에 나붙은 과외모집 광고 등 우리는 도시 곳곳에 남은 여러 문장들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새미는 보리밭 쪽으로 걸었다. 보리밭 반대쪽 산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 길도 아빠 차 타고 매번 지나던 길이라 영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걸어본 일이 없어 새미는 할머니와 매일 걷던 보리밭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할머니와 걸을 때에는 보리밭 길 정도야 선산으로 가기 위한 통로라는 것밖에 다른 의미가 없었지만 혼자 걸으려니 그 길까지도 지나치고 마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p.120)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은 때로는 시간의 경과마저 잊게 합니다.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였을 때에는 시간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후라는 걸 우리는 너무 늦은 나이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익숙했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말마다 내가 사는 도시 전체를 다 돌아볼 수는 없겠지만, 자주 지나치던 공원이나 천변을 느린 속도로 걸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아주 느린 속도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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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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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물건을 살 때마다 종이 영수증을 꾸준히 받다 보면 소비 행위가 한결 위축되는 걸 느낀다. 하루에도 주머니 가득 쌓이는 영수증 더미를 보면서 아연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종이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다. 무분별한 소비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보겠다는 구차한 명목이 아니라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겠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말이다. 계산을 마침과 동시에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는 금액을 확인하는 정도의 단순한 용도에 그칠 뿐이고, 불필요한 소비는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던 습관은 완전히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목에 가시처럼 걸리던 마음속 죄책감을 없애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은 '23세부터 매일 영수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2025년 48세가 될 때까지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책에는 40세가 된 정신 작가가 서울을 떠나 포틀랜드로 향하는 2017년 3월 27일의 미국행 비행기 항공요금 937,800원의 영수증으로 시작된다. 책의 저자는 세 명이다. 글을 쓴 주인공 정신과, 정신의 영수증뿐만 아니라 배경 사진을 담당한 사이이다 작가, 그리고 영수증과 사진을 모아 정신이 쓴 글과 함께 배치한 공민선 디자이너가 그들이다.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어쩌면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말이다.


"글을 한 번 쓰고 나면/몇 번을 수정해요//체에 거르면 고운 것들이 내려앉듯이/수정 후에는 고운 글이 됩니다//체에 남아 있는/거친 것들은 읽어보면 웃음이 나서/고운 것들만 세상에 내보내요//"  (p.166)


정신이 소비한 영수증과 움직인 장소가 찍힌 사진, 그리고 메모에 가까운 정신의 글이 토막처럼 실린 이 책을 정말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읽는다면 넉넉잡아 30분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진과 사진 사이, 영수증과 영수증 사이의 여백이, 때로는 정신 작가의 짧은 메모가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책에서 벗어난 독자의 시선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좇을 수도 있고, 멍한 시선으로 오래전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을 벗어나 문득 책 바깥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인해 책을 완독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소요되는 책이다.


"새로운 답을 만날/장소에 거의 다 왔다//길을 건너며/답의 뒷모습을 먼저 보았는데/크고//순한 느낌이다//나는 옆모습을 어서 보려고/빨리 길을 건너갔다//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자/아이스크림은 소외되어 녹아내렸다//2019년 7월 19일 오후 5시 12분/아이스크림 두 컵/11.00$/Smitten Ice Cream//"  (p.177)


과거에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광고인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광끼>의 자문이자 모델이 되기도 했던 20대의 정신은 40대의 나이가 되어 방황하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단 한 명의 '당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던 정신은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 '위정편'에 이르기를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고 하였는데 작가 정신은 자신의 나이 사십에 비로소 '혹함'을 배우려 했다. 흔들림을 배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야 했던 작가 정신의 삶은 한 장의 영수증 속에, 그 영수증과 함께 남은 장소와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다. 내가 소비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던 어느 카페나 식당의 낡은 영수증 속에 나의 삶도 잠들어 있는 것이다.


"내가 23세/엄마가 47세일 때/아빠는 우리 식구의 삶에서/몇 주 후 사라진다// 엄마의 마음에는/화가 찼지만/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마음에/무엇이 있었는지 느끼기가 어려웠다//엄마는 나에게 아빠까지 되어야 했고/나는 엄마에게 남편까지 되어야 했다//빌런은/우리에게 10년 후 나타나/자신의 지난 일을 덮어두었다//"  (p.210)


영수증도 발급되지 않는 2026년 1월 18일 일요일의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 본다.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의 가치로 살았던 것일까. 설렁설렁 가볍게 보낸 시간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지는 오후, 약하디 약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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