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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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나 과학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지배력이 가장 강하고 그로 인하여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20세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하고 묻는다면 글쎄요? 하는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주식 격언에도 있는 것처럼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니까요. 인류의 힘이 가파르게 상승했던 20세기를 지나쳐 온 우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시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물론 AI와 같은 초자연적인 과학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퇴장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며칠,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는 내내 나는 문득 지난 1세기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크고 작은 분쟁도 많았고, 지역에 따라 생존의 위기에 처한 나라도 있었지만, 지구 전체로 볼 때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안정된 시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와 같은 힘의 밑바탕에는 어쩌면 다정함이나 사랑과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깔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불쑥 들었던 것입니다.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P.381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그렇습니다. 20세기를 주로 살았던, 말하자면 20세기 토박이 작가인 박완서는 그녀가 썼던 어떤 글에서도 어머니 손길과 같은 다정함이 묻어나곤 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주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의 온도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작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기발한 표현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시대의 정서를 잘 포착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기 작가가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작가는 불혹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테지요.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내 고독한 환호에 딴 사람들도 합세를 해 주었다. 푸른 마라토너 뒤에도 또 그 뒤에도 주자는 잇따랐다. 꼴찌 주자까지를 그렇게 열렬하게 성원하고 나니 손바닥이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P.172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중에서)

박완서 작가의 애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작가의 삶을 비교적 길게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그녀의 글을 예사로 읽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허망하게 잃었던 작가가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보였던 절절했던 심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천주교 신자인 작가가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라도 당신은 있어야 해.'라고 썼던 당시의 피폐했던 삶과 끝내 그것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썼던 작가의 고백을 나는 마치 내가 겪은 일인 양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에는 언제나 사랑이 넘쳤습니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사랑이 있는 시대, 사랑이 있는 정치, 사랑이 있는 역사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고로 우리는 사랑이 있는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역사에 사랑이 개입해 본 적이 있나요. 우리 정치사에 사랑이 있어본 적이 있나요?"  (P.158)


21세기를 갓 시작한 우리는 정말 주변의 사랑을 모두 잃은 채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정치권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대의 작가들 중 많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잃고 극단적인 편가름과 서로에 대한 증오만 키우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국민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대 '자유주의 세력과 동료 시민'으로 양분하여 내 편이 아닌 자는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학계나 예술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박완서 작가는 어쩌면 사랑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사랑의 장으로 이끌었던 21세기의 마지막 작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증오와 파멸뿐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서막은 그렇게 열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이제 현실이 아닌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을 듯합니다. 단지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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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로 병원보다 더 적격인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병원의 목적이 원래 아픈 이를 치료하는 것이 전부인지라 병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자신의 몸 어딘가가 아프거나 혹시 아프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온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 처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건강이나 생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과도하여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대함 또는 평소라면 있었을지도 모를 인내와 여유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저 멀리 내팽개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병원에 도착하여 진료를 받고 최후까지 남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신체에 대한 안위와 철저한 이기심뿐, 여타의 다른 품성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자신 한 몸 챙기기도 바쁜 사람이 주변의 다른 사람까지 살필 여유가 어디 있겠냐고 항변한다면 뭐 나로서도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니까.


아들의 간단한 수술과 병간호를 위해 요 며칠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병동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감수해야만 했었다. 2인실의 병실에 입원을 하였던 게 지난 월요일, 화요일에 수술 일정이 잡혀 있던 까닭에 입원 수속과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병실 생활에 접어들었는데, 함께 병실을 쓰게 된 초로의 환자분과 인사를 나눌 때까지만 하더라도 앞으로 닥칠 며칠이 내게 얼마나 험난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단하게 씻을 장소를 찾았다. 각 병실의 화장실은 환자만 사용할 수 있고, 보호자는 별도로 마련된 화장실과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밤늦은 시각까지 샤워실의 물소리가 크게 들렸고, 같은 병실의 환자분은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 탓인지 속이 울렁거린다며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게다가 간호사를 수시로 호출하여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간호사에게 온갖 짜증을 다 쏟아내기도 하였다. 나는 이런저런 소음과 불편한 잠자리, 제대로 씻지도 못한 찝찝함으로 인해 좀처럼 잠이 들 수 없었다.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어찌나 좁던지 돌아 누울 수도 없고, 허리가 아파 오래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잠을 한숨도 못 잔 채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소란 속에서도 수술을 앞둔 아들은 깊이 잠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수술을 마친 아들은 수액과 진통제 등을 연결한 여러 개의 관과 검사 장비로 인해 불편하고 욱신거리는 통증에 짜증이 날 만도 했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자신의 화를 속으로 삭이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폐암 1기로 자신의 폐 1/3을 절제했다는 옆의 환자는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전혀 호전되지 않은 듯 보였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었던 아들은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에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퇴원 절차에 들어갔다. 하루를 쉬더라도 집에서 쉬었으면 하고 바라던 나도 아들의 의견에 적극 지지 의사를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입원 4일 만에 병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44번째 맞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 그날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한데 희생자들을 폄훼하고 부정하려는 세력들이 지금도 여전히 준동하고 있다. 가족을 잃은 유족이나 생존자들의 아픔을 내 것인 양 가슴에 보듬지는 못할지언정 상처를 후벼 파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병원에서의 누적된 피로 탓인지 까무룩 졸음이 쏟아진다. 1980년의 아픔을 모르는 듯 하늘은 그저 푸르기만 하다. 한낮의 기온은 초여름처럼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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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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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말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데는 어떤 유명인사의 말도 있겠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어떤 인물, 즉 '롤 모델'의 역할이 크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감화시키는 말보다는 모범이 될 만한 누군가의 행동, 더 나아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이 각자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백 번의 말보다는 열 번의 시범이, 열 번의 시범보다는 단 한 번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모범이 되는 행동을 선보이는 훌륭한 부모를 가졌을 리 만무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울 만한 감동적인 체험을 할 기회가 모든 아이들에게 주어질 리도 만무하다. 그러므로 시간이 더디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할지라도 누군가의 말에 의한 교육은 비교적 공평하고,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겠다.


"안데르센은 특히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들을 여러 편의 동화로 발표했습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많은 상처를 받은 만큼, 다른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그런 잔혹동화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가 이런 잔혹동화 속 숨은 의미를 알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가며 다시 부모가 된 뒤에야 잔혹동화 속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을 깨닫게 되겠지요. 어쩌면 이마저도 인생의 풍파를 다 겪은 후에서야 동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그게 우리들의 인생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p.12~p.13 '프롤로그' 중에서)


북 큐레이터이자 고전문학 번역가인 박예진 작가가 쓴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은 Part. 1 '인간을 파멸시킨 욕망 잔혹동화', Part. 2 '목숨과 맞바꾼 사랑 잔혹동화', Part. 3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마법 잔혹동화', Part. 4 '사유에 묻히게 하는 철학 잔혹동화' 등 총 4부로 나누어 각 파트에 각각 네 편의 잔혹동화를 배치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오늘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안데르센의 명작 열여섯 편이 등장한다. 책에는 제목만 들어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등도 있지만, '부시통'과 같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동화도 실려 있다.


"sentence 280

Everything has its beauty, but not everyone sees it. The difference in appearance doesn't matter, as long as you have a good heart.

모든 것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보지는 못하죠. 외모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훌륭한 마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p.221)


이 책은 어쩌면 이제 막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책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화의 전체 스토리를 뚝 떼어 놓은 채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동화이다.'라는 동화 속 문장을 이해하기에는 아이들의 인생 경험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화 속에 내재된 특별한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채 오직 재미 하나만으로도 안데르센의 동화에 한껏 빠져들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누군가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로운 시간을 갖게 하는 그런 풍경이 그려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다 자란 어른이 아이의 시점으로 되돌아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매개로 인생의 의미를 곰곰 되짚어보는 책인 셈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찾고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그의 동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p.266~p.267 '에필로그' 중에서)


가난한 환경으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까닭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양성애적 애정 문제로 인해서 실연의 상처를 오랫동안 안고 살아야 했던 안데르센. 불행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 경험들이 오히려 삶의 은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동화를 탄생하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된 삶의 진실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던 인간의 욕심, 절제되지 않는 욕망, 쉽게 부서지는 인간의 허영심 등은 어른들에게 주는 안데르센의 따끔한 교훈인 셈이다. 나는 박예진 작가의 저서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내내 안데르센으로부터 각성의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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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 - 고단한 하루 끝, 숙면 기원 에세이
미내플(유민애) 지음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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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피곤이 아침 기상시간에 몰리던 시기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혹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하는 그 짧은 시간에 쌓인 피로가 집중되다 보니 시간을 넘겨 더 잘 수만 있다면 나의 운명을 악마의 유혹에 팔아넘길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장점도 있었다. 잠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 뿐 일단 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뿐했고 하루를 별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단지 일어나는 순간이 힘들었을 뿐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일과에서 쌓인 피로가 저녁 귀가 시간에 집중된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일단 귀가하면 그때부터 만사가 귀찮고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해진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언제나 그렇듯 습관처럼, 뇌 속에 주입된 일과의 반복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것처럼 하루를 거뜬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시기가 지나고 좀 더 나이가 들자 하루의 피로는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동행이 자연스러운 불치병처럼 말이다. 피로가 풀려 개운하다거나 가뿐하다는 느낌은 옛날 옛적의 동화 속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주일의 피로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 시간에 더 깊은 피로감으로 몰려온다는 점이다. 친척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행사에 참가하느라 쉴 시간이 없었던 주말이면 다음 주에 견뎌야 할 시간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진짜 휴식을 취하려면 지금 머릿속에 가득한 걱정부터 내려놓자. 물론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걱정에 휩싸일 때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 시간만 흘려보내곤 하니까. 그러나 걱정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몸의 긴장이 풀릴 수 없다. 휴식답게 휴식할 수 없다."  (p.30)


자기계발 유튜버이자 고민 상담가로 잘 알려진 미내플(유민애) 작가의 저서 <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를 택배로 받았던 건 어제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던 나는 나도 모르게 후루룩 다 읽고 말았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가볍다거나 한 번 빠르게 읽고 구석으로 던져버려도 되는 그런 책도 아니다.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맞춤 처방전을 제시함으로써 같은 시기를 통과하는 젊은 세대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 이어 1장 '고단했던 하루 끝, 나를 보듬는 시간', 2장 '나를 괴롭혔던 건 너일까? 나일까?', 3장 '일단 자고 내일 생각해 볼 것'에 이어 에필로그 성격의 '땡스 투'로 끝을 맺고 있는 이 책은 각 장의 소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젊은 시절에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과 관계, 그것으로부터 오는 여러 고민들과 불면의 나날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저자 자신이나 주변의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여러 날 잠들지 못하고 피곤에 절어 다른 문제까지 야기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물론 해결하지 못한 어떤 문제로부터 매번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꾸준히 동력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계기로 삼는가가 중요하다.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시한폭탄 같은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다. '패배자가 될까 봐', '남들이 무시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자신을 몰아붙인다. 몸과 마음의 근육이 제대로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에 불을 지핀다면, 머지않아 번아웃으로 향하는 지름길로 가게 될 것이다."  (p.163)


어떤 특정한 고민은 그 시기가 지나면 유효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고민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셈이다. 결혼을 하지 못했거나 때를 놓친 채 50대가 된 사람이 있다면 결혼은 이제 그에게 큰 고민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가벼운 주제로 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이런 고민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종국에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죽음'도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나는 책을 통하여 배웠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의 바이오리듬도 변하고 젊은 시절처럼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숙면의 가장 큰 적이라는 고민을 적절히 조절하고 해결하는 일은 내게도 필요한 듯 보인다.


"내 문제를 어떻게든 마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때, 내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려고 노력할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때, 오래 울기를 그만둘 때 세상은 언제나 더 또렷해졌다."  (p.215)


피곤해서 저녁 일찍 취침에 들었지만 이유도 없이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눈은 더 한층 말똥말똥해지고 잠은 구만리 밖으로 달아나는 날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낮에 활동량을 늘리고, 햇빛을 쪼이는 시간을 늘려도 소용이 없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고 있음이다. 피곤은 이제 익숙한 배우자처럼 상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미내플 작가의 책 <오늘도 잘 잤으면 하는 너에게>를 뒤적이며 찡한 마음으로 '더 좋은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내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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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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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움직임>에서 작가 조경란이 그리고자 했던 가족은 소설 속 주인공인 '나'(신이경)가 가꾸던 작은 화단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힘이 없는 까닭에 주변의 어떤 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가족. '담배꽁초와 빵봉지들'이 쌓인 척박한 환경이지만 거름을 주고 잘만 돌보면 언젠가 분꽃, 채송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만 가득했던 가족. 그러나 시름시름 앓던 엄마를 잃고 외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새로 꾸린 가족은 '가족'이라기보다는 혈연관계라는 외피를 두른 '이상한 동물원'에 가까웠다.


"이 목욕탕집에 처음 왔을 때 내게 유일하게 위안이 됐던 건 이 화단뿐이었다. 사과 궤짝만 한 작은 화단에는 담배꽁초와 빵봉지들이 널려 있다. 나는 매일매일 화단에 물을 주고 쓰레기들을 골라낸다. 지금은 분꽃, 채송화가 한창이다. 곧 봉숭아도 몽우리를 터뜨릴 것 같다."  (p.19)


완전한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스무 살의 '나'는 목욕탕집 일 층의 단칸 셋방의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한다. 일 층에는 여섯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고, 이 층은 목욕탕, 삼 층은 안마시술소가 운영되고 있다. 다락방이 있는 외갓집에는 결혼도 하지 않은 외삼촌과 이모, 외할아버지가 함께 산다. 늑막염을 앓고 있는 외삼촌은 매일 한 움큼의 알약을 털어 넣고, 밤마다 흉몽에 시달리는 이모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 '나'는 허허벌판의 벽돌공장에서 블록벽돌을 만드는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농협에서 하루 종일 돈을 세고 퇴근하는 이모는 책상도 없는 단칸방에 엎드려 새벽까지 외국어 공부를 하고,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산책을 다녔던 샛강과 할아버지의 벽돌공장, 문득문득 마주치곤 했던 장님들과 삼촌의 여자, 그리고 다락방이 있던 어두운 집과 남자의 방이 떠오른다. 그 밖에 더 이상 기억할 게 없다. 기억할 게 많은 사람들은 떠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툭툭 털어내버린다."  (p.85)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했던 '나'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화단을 가꾸고, 기차역을 서성이기도 하고, 앞방 남자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나처럼 우편물이 오지 않는 앞방 남자는 가느다란 안전줄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다. 남자 방의 열쇠 하나를 훔친 '나'는 남자가 없는 방에서 이불에 밴 남자의 체취를 맡기도 하고, 3개월이나 밀린 방세 중 한 달치를 남자 몰래 대신 내주기도 한다. 책상을 사기 위해 이모의 지갑에서 몰래 빼돌려 오랫동안 모았던 돈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를 위해 검정고시 교재를 사다 주었던 이모는 어느 날 회사 근처로 나를 불러 점심으로 냉면을 사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 농협에 맡긴 고객의 돈을 들고 앞방 남자와 함께.


"서랍에서 검정고시 학습지를 꺼내 읽다 보면 또 시간이 갔다. 꽃들은 다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작고 까만 씨앗들도 떨어져 있지 않다. 아전부터 쓰레기통이었던 것처럼 담배꽁초며 과일 껍질들만 쌓여 있다. 모종삽으로 화단 흙을 쑤석거린다. 잔돌멩이가 많고 시멘트 조각들이 박혀 있다. 이 거친 흙을 뚫고 한때 꽃들이 피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묵묵히 흙을 파헤친다. 삼촌의 오줌이라도 몰래 뿌리고 싶다. 거름이 필요할 것이다. 내년 봄에도 나는 이 작은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있을까."  (p.98)


<움직임>에서 작가 조경란의 문체는 사뭇 건조하다. 건조하고 짧은 문장들이 흩어지는 모래알처럼, 같은 혈연이지만 함께 섞일 줄 몰랐던 외갓집 식구들처럼 내내 서걱거린다. 그럼에도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인 '나'를 통하여, 내가 가꾸는 작은 화단을 통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가족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도,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도 배우지 못했지만, 때가 되면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응원하는 관계.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 5월. 꽃잎을 떨군 아까시나무는 제 소임을 다한 듯 제법 원숙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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