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회고록 - 당신의 삶 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신지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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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이론에 강한 사람이 있고, 실전에 강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처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미리 이것저것 알아도 보고, 별 소용도 없는 것조차 찾고 또 찾는 바람에 정작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대뜸 일부터 시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다만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저것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안 좋게 끝날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리도 없고, 어차피 잘 될 일인데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시작한다고 해서 결과가 나빠질 리도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누구나 초보자이고, 다른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든 일절 공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리 알게 된 약간의 지식이 나처럼 소심한 이로 하여금 처음 하는 어떤 일을 두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공부란 두려움을 없애는 방편이며, 두려움이란 그 분야를 전혀 모른다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걱정부터 밀려올지도 모른다.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과거에서 어떻게 일관적인 내러티브를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러티브를 시작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내 글을 읽고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없을까?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글로 남기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의심스러운 생각이 솔솔 피어오른다.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야기를 쓴다 한들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 줄까?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 아닐까? 자, 이제 이런 의심은 떨쳐버려도 좋다. 작가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존재다. 여러분도 글을 통해 무언가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글을 쓸 자격과 그에 필요한 도구를 쥐어 주기 위해서다."  (p.19)


저널리스트이자 편집자였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쳐 왔던 윌리엄 진서의 자전적 글쓰기 지침서 <스스로의 회고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글쓰기 작법서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 글쓰기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글쓰기의 기초와 방법론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스스로의 회고록>은 우리들 각자가 살아온 기록을 글로 옮겨보라는 권유이자 그런 욕구를 지닌 이들에 대한 답신이다. 그러나 회고록이라 함은 단순히 자신의 삶의 기억에 대한 기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이 서사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의 글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흥미로운 삶을 경험하면 흥미로운 회고록이 그냥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네 삶에는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술술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무려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원고를 고쳐 썼다. 그는 독자들이 대화를 엿듣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쓰기 기법 - 평론가 마가렛 풀러는 이를 '모자이크 방식'이라 규정했다 - 을 사용했다. 그는 나무꾼으로서 숲 속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로서 숲 속에 가 불멸의 고전을 창작했다."  (p.214)


내 주변에도 은퇴자가 많다. 그들 대부분의 고민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따금 경제적 고민이 끼어들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편하게 "여행이나 하면서 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행도 하루이틀이지 자신에게 남겨진 긴긴 세월 동안 주야장천 여행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돈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은퇴자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물론 10년이고, 20년이고 여행만 다닌다면 경제적 문제가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손에 잡아본 적도 없는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도 없다. 은퇴 이후의 사업이나 부업에 대해서는 은퇴 이전부터 많이 듣고 배워 보았으나 정작 자신을 돌보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옳은'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각자 출발점이 다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변화는 삶의 활력소이며, 꼭 정해진 길만 밟으라는 법도 없고, 세상에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나는 매주 수요일 오후 학생들과 차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학문 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 예일대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 - 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본다."  (p.176)


사실 이 책은 책의 저자인 윌리엄 진서 자신의 회고록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회고록을 본보기로 삼아 책을 읽는 당신도 자신의 회고록을 써보라고 권한다. 그가 말했듯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을 남기면 그 기억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진실이 있다.'라고 쓴 그의 문장 역시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하다. 은퇴 이후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저렴하면서도 가장 유익한 여가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여가 생활이 마냥 답답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사람이 대다수일 터, 훈련이 되지 않은 이에게는 어려운 선택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삶에서 귀하지 않은 게 없는 까닭에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읽고 배울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책을 읽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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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말과 글에도 어떤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이 다소 불편한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이것이 미신처럼 여겨질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가수들도 자신의 인터뷰에서 이따금 '가수는 노래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을 종교와 상관없이 언급하곤 합니다. 물론 연기를 하는 배우도 '배우는 배역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말에 대한 사실을 확신하거나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 그럴듯하다는 뜻으로 가벼이 하는 말일 테지요.


이와 같은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미신처럼 퍼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를 맹신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 변변한 의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런 생각이 지금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이름의 경우에는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요.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험한 이름으로 불려지곤 했습니다. 예컨대 개똥이, 말똥이 등의 이름 같지도 않은 이름이 아이들에게 붙여지곤 했었습니다. 이런 풍습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오션 브엉의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에도 등장합니다.


"저한테는 예나 지금이나 별명이 많았죠. '리틀독'은 란 할머니가 부르시는 별명이었어요. 누가 당신 자신과 딸에게 꽃 이름을 지어주신 분으로 하여금, 그 손자는 '개'로 부르게 했을까요? 자신의 것을 경계하는 여인, 바로 할머니였죠. 아시겠지만 란 할머니가 자란 마을에서는 아이가 종종 무리에서 가장 작거나 허약하면, 저처럼요, 가장 경멸할 만한 것들을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악마, 유령아이, 돼지코, 원숭이, 들소머리, 후레자식...... 리틀독은 그만하면 부드러운 축에 들었죠. 그렇게 한 것은,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악령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뭔가 흉측하고 섬뜩한 존재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으면, 그 아이를 살려준 채 그 집을 지나칠 거라는 이유에서였어요.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너무 가치가 없어 건드리지 않고 살려둘지 모를 어떤 것을 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죠."  (p.35)


나이가 들고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하나둘 깨우쳐 간다는 것은 경계하고 저어하는 일들이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해가 갈수록 남에게 하는 말 한마디조차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말이 씨가 될 수도 있고,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런 것까지 모두 신경 쓰면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며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말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의 수명은 짧기만 할 뿐입니다.


황사의 영향인지 아침부터 뿌옇던 하늘은 오후가 되어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뚝 떨어졌던 아침 기온은 낮이 되자 제법 오른 듯합니다. 변덕이 심한 봄 날씨.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아들은 런던과 파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아들이 유럽을 향해 떠난 지 벌써 보름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염려와 기도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과 글에도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서로에게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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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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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맘에 드는 작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예정에도 없던 '전작(全作) 읽기'라는 걸 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 작품을 읽는 순서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작가가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단박에 싫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못 믿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른 작품은 어떻게 순서를 정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데뷔작을 어떤 순서로 정하느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데뷔작은 자신의 전체 작품 중에서 남에게 자주 내보이기 싫은 '아픈 손가락'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미숙한 문체와 과한 의욕으로 인한 비약적인 구성 등 돌이켜보면 당장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가 바로잡고 싶은 결함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문제는 비단 작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것이 문제라고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뭔가 어색한데'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마련이다. 물론 데뷔작부터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라면 그런 문제점을 느끼기 어렵지만, 데뷔는 한참 전에 했었는데 그동안 인기작을 한 권도 내지 못하다가 어떤 한 작품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작가라면 데뷔작에 대한 독자의 낮은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을 쓰는 일도 기술임을 감안할 때 연륜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한 번쯤 읽어본 독자라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뭐가 있는지 알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거쳐왔다. 몇 권 되지도 않지만, 각각의 책들이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엮인 까닭에 책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나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이 너무나 쉬웠던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었다. 정제된 문장과 다층적인 의미의 언어 선택, 그리고 절정과 결말의 순한 이어짐, 책을 덮은 후에도 길게 이어지는 여운 등으로 인해 나는 '이게 뭐지?' 하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주제의식,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교훈 등 책을 읽은 후의 묘한 흔들림으로 인해 간단한 리뷰를 쓰는 일조차 힘에 겨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를 미루고 있다. 기약도 없이 말이다.


"호흡이 차분해졌다. 옆방에서 커튼이 파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창문을 열어놓고 갔다. 풀려나려고 애를 쓰느라 솜털 이불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알몸이었다. 이불에 발이 닿지 않았다. 냉기가 들어와서 집 안에 퍼지며 방을 채웠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차가운 공기는 밑으로 내려오지, 그녀가 생각했다. 결국 떨림이 멈추었다. 온몸이 무감각해졌다. 그녀는 혈관 속의 피가 느려지고 심장이 쭈그러드는 것을 상상했다. 고양이가 침대에 펄쩍 뛰어오르더니 매트리스 위를 돌아다녔다. 누그러진 분노가 공포로 변했다. 그 역시 지나갔다."  (p.37 '남극' 중에서)


그렇다. 표제작인 '남극'을 비롯하여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클레어 키건의 데뷔작이다. 그러나 많은 독자와 평론가들이 데뷔작에 내리는 박한 평가를 클레어 키건은 가뿐히 피해 가는 듯하다. 오히려 과분하다 싶은 칭찬과 돋보이는 추천사 등으로 인해 작가의 이름이 묻히는 느낌이다. 사실 빼어난 실력의 작가 곁에는 신랄한 평을 아끼지 않는 독한 평론가가 있어야 더 좋은 작품을 끊이지 않고 출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의 애독자인 나로서도 그녀의 데뷔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소 비약적인 구성과 특이한 소재의 선택 등은 '역시 데뷔작은 데뷔작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하는 작가는 사실 다소 평이하다 싶은 소재와 구성, 그리고 웅숭깊은 문장 등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불안이 작가로 하여금 자극적인 소재나 특이한 구성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나는 정신 병원을 계속 찾아간다. 복도에서 나는 소독약 냄새, 간호사들의 고무창 신발, 일요일 신문을 두고 다투는 소리가 좋다. 어머니는 광기가 핏줄에 흐르는 것이라고 항상 말했고 나는 양가에서 그것을 물려받았다. 내가 그곳에 가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 익숙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약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곳을 아주 조금 받아들이는 것이다. 백신처럼 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직시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든 대비할 수 있다."  (p.124~p.125 '폭풍' 중에서)


표제작인 '남극'은 남편과 가정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과감한 일탈을 시도하는 이야기로 술집에서 만난 남자의 집으로 가 욕망을 해소한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사건이 전개되고 만다. 폭풍을 먼저 감지할 만큼 예민했던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사망 이후 그 예민함이 광기로 변하여 가족 전체를 뒤흔들게 되고, 자신 역시 어머니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딸은 불안을 관리하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내용의 '폭풍'과 오래 살던 집을 철거하고 개발을 진행하려는 시에 맞서던 할머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을 처리한다는 내용의 '불타는 야자수' 등 클레어 키건의 문학적 특징과 섬세함이 드러나는 단편들이 줄곧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소년은 바깥으로 나가서 별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별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천사라고 말했다. 엄마는 하느님을 믿었다. 사람들은 엄마가 천국에 갔다고 했다. 소년은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집은 꽉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비어 있었다. 엄마가 꽃병에 꽂아둔 스노드롭이 있고, 아버지를 위해 다려서 나무 옷걸이에 걸어둔 셔츠도 있고, 안락의자 밑에 엄마의 털 슬리퍼도 있었다."  (p.317 '불타는 야자수' 중에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인기 작가 중 한 명이 된 정유정 작가의 데뷔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작가의 다른 작품 몇몇을 읽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겨우 읽었던 게 문득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 그 책은 차라리 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작가가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독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평균 이하의 작품을 쓸 때도 있고, 인생작이라고 할 만큼 기대 이상의 멋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가 맘에 든다고 해서 예정에도 없던 '전작 읽기'를 시도한다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항상 나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내놓을 거라는 기대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가. 설령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이 나왔다 할지라도 조용히 다음 작품을 기다려주는 게 독자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들어 그가 쓴 글이 예전처럼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세월의 무상함을 함께 느끼며 슬퍼하는 것도 현명한 독자로서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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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게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꽤나 어린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 아침에 눈만 뜨면 밭에 일을 하러 가거나 학교나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생존이 절실했었고, 삶의 목표 역시 생존에 근접한 것들로 채워지던 시기였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죽음은 일상처럼 가까웠고,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어느 한 곳에 소속이 되고자 필사적이었습니다. 반드시 번듯한 직장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식당일 수도 있고, 동네 인근의 공장일 수도 있고, 두어 평 남짓의 작은 밭뙈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학교나 직업훈련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소속될 수 없었던 어린애나 노인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그 시절의 죽음은 대개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은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집 안 곳곳을 낮게 떠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집 안에 혼자 남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기를 쓰고 엄마의 뒤꽁무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곧 있으면 형과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온다는 말만 남긴 채 말입니다. 더디기만 했던 나의 걸음 속도로 당시에는 젊었던 엄마의 걸음을 따라잡는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걸음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거리가 멀어진 엄마의 귀에 들릴 수 있도록 악을 쓰고 울거나 크게 넘어지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대략 그 시절에 배웠던 듯합니다.


한낮 기온이 초여름 날씨처럼 더위를 느끼게 하는 요즘, 계절이 걷는 속도는 인간의 인식 속도를 한참이나 앞서가는 듯합니다., 냉정한 자연의 속도가 무감각한 인간의 속도를 앞서기 시작한 건 어쩌면 꽤나 오래전에 비롯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남극>에 나오는 문장을 옮겨봅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그곳에 있었고, 건초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이 어떻게 15년 동안 어머니를 멍들게 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내가 똑같이 잔인한 눈을 가졌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만큼 싫다고 했다."  (p.121 '폭풍' 중에서)


당시의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한참이나 앞질러 걸었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같은 속도로 걷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걸음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품과 같았던 자연은 이제 우리 인간의 속도를 한참이나 앞질러가고 있습니다. 앞선 속도가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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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8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
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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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본 교리라고 하면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로 집약될 수 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로 대표되는 사성제에서 고제(苦諦), 즉 삶이 곧 괴로움(生卽苦)으로 이해되는 까닭에 태어나고(生苦), 늙고(老苦), 병들고(病苦), 죽고(死苦), 이별하고(愛別離苦), 함께하고(怨憎會苦), 획득하지 못하고(求不得苦), 오음에 집착하는(五陰盛苦) 고통은 삶 전체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팔고(八苦)라고 일컫는 이 고통은 원인이 있으며(集諦), 대중은 이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알지 못함'의 상태를 벗어나는(滅諦) 것을 열반이라고 하며 이것이 곧 멸성제(滅盛諦)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알지 못함'인 반면 이것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멸하기 위한 길(道諦)로 제시되는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 즉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올바른 견해(正見), 올바른 생각(正思惟),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행동(正業), 올바른 생활방식(正命),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마음가짐(正念), 올바른 집중(正定)을 통하여 인간의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존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함으로써 이를 따르는 대중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게 하겠다는 불교의 원대한 꿈은 일견 타당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엄격히 지키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방식은 우리네 삶을 원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지침서인 동시에 누구나 알아야 할 생활 철학인 셈이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나는 불교가 부처님에게 각자의 소원이나 빌고 의식에 필요한 제문으로서 경전을 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타의 종교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아 왔다. 그리하여 나는 비록 나의 종교이자 신앙으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몸이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던 스님과의 유대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교 서적을 뒤적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일에 대하여 마음의 부담이나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불교 신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불교 신자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없다. 이 책에 담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당신의 믿음을 전혀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제시된 가르침을 실천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침착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p.15 '머리말' 중에서)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의 저자인 토니 페르난도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분인 듯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수면의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면서 네 차례나 임시 출가하여 승려로 수행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불교에 대한 지식으로만 따진다면 나와는 비교가 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앞에서 말했던 팔정도는 다시 세 가지 범주인 계(戒), 정(定), 혜(慧)로 나뉜다. 윤리적 행위를 나타내는 계(戒)에는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속하고 정신집중을 나타내는 정(定)에는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그리고 지혜를 나타내는 혜(慧)에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가 포함된다. 저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목차를 정한 듯하다. 1부 '正見----바른 견해', 2부 '戒----계', 3부 '布施----보시', 4부 '定----정', 5부 '慧----혜', 6부 '慈悲----자비'의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부처님 말씀과 더불어 이에 알맞은 저자의 상담 사례를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취하지 말아야 한다. 맑은 정신에서 신중한 생각과 말, 행동이 나온다. 이는 타인에게 안전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  (p.132)


우리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의 수가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뿐만 아니라 불교라면 체머리를 흔들던 젊은이들에게도 그 이미지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시쳇말로 우리나라의 사찰이 힙한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이와 같은 성과의 이면에는 물론 불교계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만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더는 없겠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나간 게 아닌가 싶다.


"크든 작든, 충격적이든 사소하든, 우리는 모두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병을 겪고, 외로움을 느끼고, 오해받기도 하며, 걱정과 불확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육체와 정신을 갖고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그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p.310~p.311)


해가 길어지면서 한낮 기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낮 기온은 벌써 초여름을 방불케 한다. 봄인가 싶던 계절은 저만치 앞선 여름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짐짓 걱정이 되는지 '올여름은 얼마나 더우려고 벌써부터 이래?' 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더위도 더위지만 더위로 인한 불쾌지수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점심 식사를 친한 친구와 함께했었다. 오전에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친구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의 친구는 한밤중에 심장마비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도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전에도 사고로 죽은 친구는 있었지만 병으로 죽은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겉보기에 우리의 삶이 단단하게 유지되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만큼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사는 우리는 또 얼마나 허황된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가. 기우는 햇살이 사무실로 짓쳐 들고 있다. 블라인드를 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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