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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
김종구 지음 / 위커리어북스 / 2026년 4월
평점 :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파악하는 '나'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다. 예컨대 '나'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이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괴리는 개인의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관계가 넓어짐에 따라 그 폭이 점차 축소될 수는 있지만 나의 관점과 타인의 시선이 완벽하게 일치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정의는 그 기준이나 조건에 따라 매우 가변적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이마저도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AI의 발전이 가져온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우리는 존재에 대한 믿음마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만약 '나'를 내 행동 패턴, 선호, 반응의 총합으로 정의한다면, AI는 분명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나'를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 무언가를 의미있다고 느끼는 감각, 무엇을 위해 살겠다고 선택하는 의지로 정의한다면 AI는 나를 예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알 수는 없다." (p.26)
파사컨설팅그룹 대표이사이자 20년간 산업 현장의 변화 한가운데에서 영업, 마케팅, 조직 리더십의 본질을 탐구해 온 김종구 작가는 자신의 저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를 통하여 AG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상하는 기술에 매몰되거나 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은 채 나를 지키고. '나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만 굳건한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쓰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AI의 출현 이전부터 제시되었어야 할 문제이지만, 언제부턴가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예상을 늘 앞서가는 까닭에 AI가 보편화된 이 시점에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섰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참 뒤늦은 감은 있지만 말이다.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계에서,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는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빠르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천천히 하는 것, 최적화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깊이 돌보는 것, 생산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 이것들이 비효율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조건이 된다." (p.302)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고, 게으르며, 끝없이 편한 것을 추종한다. 우리가 구축한 자본주의 체계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 정서를 끝없이 이용한다. 자본주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구를 이용하여 부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넘지 말아야 할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에 부응하여 가상현실(VR)이나 검색 기술은 이미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지 오래되었고, 언제든 명령만 내리면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물론 실제와 같은 영상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가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AGI가 완전히 실현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편리해졌는데도 여전히 직접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AI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도 굳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더 많이 살아가는 것이다. 잃지 않기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도록.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중심이 단단한 사람은 휩쓸리지 않는다." (p.102)
경쟁이란 오직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연전연패하는 모습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던 시점부터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쟁보다 더 위험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이란 게 참으로 보잘것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추락한 인간 가치를 고양하고 AGI 시대에도 변함없이 '인간다움'의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38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궁극적인 질문에 닿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갈수록 패턴화되는 대중 속의 '나'가 아니라 나만의 특성을 지닌 '1/80억'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