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판에 뛰어들고픈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달리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격언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지금처럼 딱 들어맞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신념이나 가치관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웬만한 일로 분열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보 정당의 경우 구성원 개개인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이 일어나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신념이나 가치관 혹은 도덕성의 기준에 따라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치적 약자의 입장에 있을 때, 더욱 강하게 뭉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 정당은 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였을 때, 나눌 수 있는 돈과 권력이 많지 않은 까닭에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리멸렬하거나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성향으로 볼 때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공히 그들이 자체적으로 분열할 공산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최근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의 내부 움직임을 보면 그런 양상이 명확해진다. 그들의 자체적인 분열을 획책하고 유도한 것이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쪽의 계략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중대한 이권이 걸린 검찰과 언론의 움직임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민주당 내에서 당권에 도전하는 신흥세력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졸렬한 계획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대해진 민주당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한 적정한 시점과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유도했던 어둠의 세력이 의도한 바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사실 행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명실공히 여당으로서의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 권력을 잡았던 선례가 없다. 그런 까닭에 정당 구성원이나 지지자들 대부분은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당내의 권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위기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장밋빛 미래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민주당을 분열로 이끄는 것은 너무도 쉬워 보인다.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만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나 명망 있는 정치비평가, 민주당을 지지하고 확실하게 그들의 의사를 전파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나 단체만 제거한다면 민주당은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비열한 방법이라고 하겠지만 언제나 이인자인 누군가 또는 그 아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누군가를 부추겨서 '일인자인 아무개만 제거하면 당신이 곧바로 일인자가 되는 거야'라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구슬리거나 약간의 돈과 권력으로 그들을 유혹한다면 만년 이인자인 그들을 너무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부상했던 조국을 제거하였고, 진보진영의 잔잔바리 유튜버들로 하여금 빅 스피커인 김어준과 최욱을 공격하게 하여 매불쇼가 휴방을 결정하도록 종용하였고, 가장 영향력 있는 유시민 작가를 공격함으로써 노무현 재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였다.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여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처음에는 청년재단 이사장인 오 씨의 개인적인 일탈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잔잔바리 유튜버들의 동시다발적인 공격과 그것으로 인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실망과 배신감 또는 치욕 등의 감정은 봉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하고 말았다. 30년 이상 민주당을 지지하고 언제나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던 나도 다시는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반대 진영의 국민의힘을 지지할 리는 없지만 민주당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게 사실이다. 그들 역시 국민의힘과 하나 다를 게 없음을 이번 사태를 통하여 확인했다. 민주당 당원은 아니었지만 내 주변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오던 사람들 역시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된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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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살이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 공존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깊은 사유와 철학적 고뇌가 담긴 문장 또는 문학적 은유나 통찰을 담은 문장은 대중의 지지와 선택을 받기 어렵다. 소수의 선호층만 존재할 뿐 대중으로부터의 폭넓은 인기는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므로 좋은 책일수록 읽는 사람이 적고, 대중으로부터의 관심은 멀어진다. 이와 같은 역설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작가의 체력을 소진하는 측면이 있다. 현대인의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이런 까닭에 독자가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과 안목이 필요하다.


"전에 마음에 드는 어려운 책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은 북서 해안에 있는 한 섬에서 보낸 사흘 동안을 묘사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한 섬에서 시작했다가 글의 대부분을 다른 섬에서 썼다. 그 책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의 상당 부분은 시로 쓰였다. 책의 주제는 '영원과 시간의 관계' 그리고 고통받는 무고한 사람들에 관한 문제였다. 한때는 그것을 산문으로 펴낼 작정도 했었다. 그러나 산문이 너무 강렬하고 강조되는 바람에 산문으로 묘사하는 세계에 너무 많은 의미가 함축됐다. 그래서 한두 단어를 더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졌다. 나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 작품에 어떻게 매일 한 문장이나 한 문단을 덧붙일 수 있을까? 글의 어조는 격하고 들떠 있었다. 그것이 놓여 있는 방 쪽을 바라볼 때마다 졸렸다."  (p.79~p.80)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는 글 쓰는 이로서의 작가가 갖게 되는 고뇌와 생활 방식 등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쓰고 있다. 글쓰기의 기술과 요령을 다루는 책은 많지만 글을 쓰는 주체인 작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책은 흔치 않았던 까닭에 애니 딜러드가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꽤나 흥미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글 쓰는 이의 환경과 생활 방식, 글로 쓰이는 대상(사물, 타인, 때로는 자신)과의 교감, 의식의 흐름과 통찰력, 작가로서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열정과 깨달음 등을 매우 솔직하게 들려줌으로써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나 기성 작가들에게 다소나마 힌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학을 공부한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상을 놓칠 수가 없다. 햄버거를 사거나 비행기를 타면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보고한다. 그는 자신이 읽을 책을 주의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그가 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배울 것을 조심해서 선택한다. 결국은 그것이 자신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12)


독자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작업이니 체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의 체력이 떨어지면 그가 쓰는 글은 그에 비례하여(때로는 그 이상으로) 추락하고 만다. 예컨대 젊은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시로 씀으로써 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김지하 시인도 말년에 이르러서 글을 쓰지 못할 처지에 처하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기도 했고, '철도원 삼대'를 썼던 황석영 작가 역시 그의 작품이 형편없어지자 유튜브에 출연하여 엉뚱한 사설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노화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작가 역시 늙어감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자신의 체력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이 작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체력적으로나 시간관리의 측면에서나 다른 작가의 모범이 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실로 존경스럽기만 하다.


"글 쓰는 이는 지붕 너머를 바라보거나 구름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긴 사다리를 오른다. 그는 책을 쓰고 있다. 신발 신은 발이 한 번에 하나씩 둥근 발디딤대를 딛는다. 그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의 발은 가파른 사다리의 균형을 느낀다. 허벅지의 긴 근육이 사다리의 동요를 막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할 일을 하며 꾸준히 오른다. 끝에 도달하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햇빛이 그에게 쏟아진다. 밝고 광활한 광경에 그는 놀란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아래쪽 풀밭 위에 놓인 사다리의 두발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기겁한다."  (p.39~p.40)


한낮 더위가 한여름의 그것처럼 무섭다. 바야흐로 체력이 중요한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체력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더위에도 지쳐 자신이 할 일을 마저 하지 못한다면 장마 뒤에 찾아오는 무더위에는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작가의 글도 이와 같아서 체력이 떨어진 작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금세라도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기운이 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맘에 들어 꾸준히 팬을 자처하던 내가 이제는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을 듯하여 포기하게 된 작가도 여럿이다. 하루키도 언젠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슬픈 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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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가웠습니다. 볼일이 있어 낮에 잠시 외출을 했던 나는 녹색 신호등을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 그늘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폐지 리어카를 끄는 어느 노인이었습니다. 흰색 야구모자에 얇은 긴소매 티셔츠를 입고, 크고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걸쳐 입은 노인은 옷에 자주 오물이 묻는 탓인지 앞치마도 꼼꼼히 챙겨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옷 밖으로 드러난 손과 얼굴은 온통 까맣게 타서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햇빛 속에 있었는지 자연스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로 무거워 보이는 폐지 리어카를 어떻게 끌 수 있을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노인은 횡단보도 근처의 작은 상점에서 모아 놓은 종이 상자를 말없이 뜯고 차곡차곡 간추려 리어카에 싣고는 준비한 노끈으로 단단히 묶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녹색 신호등이 켜진 것도 몰랐습니다. 노인이 떠나면 나도 길을 건너야지 생각했습니다. 종이 상자를 모두 싣고 바로 출발하려니 생각했던 노인은 자신이 종이 상자를 뜯고 간추리느라 인도에 떨어뜨렸던 작은 쓰레기들을 하나 남김없이 줍고 있었습니다. 그의 굽은 허리에 강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뼈만 앙상히 남은 마른 체구인 까닭인지 땀은 흐르지 않는 듯했습니다. 오히려 건조하고 푸석푸석한 피부에 굵은 핏줄만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다시 녹색 신호등이 켜지자 노인은 힘겹게 폐지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를 따라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폐지 더미 뒤에 숨어서 슬쩍 리어카를 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습니다. 애니 딜러드가 쓴 <작가살이>를 읽고 있습니다. 나는 작가가 꿈이거나 책을 쓰겠노라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작가의 삶에는 이상하게 끌립니다.


"글쓰기는 한 줄의 단어를 펼쳐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줄은 광부의 곡괭이이고 목각사의 끌이며 의사의 탐침이다. 글 쓰는 이가 휘두르는 대로 그 줄은 그에게 길을 파서 내준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땅에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막다른 골목일까, 아니면 진짜 주제를 찾아낸 것일까? 그 답은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내년 이맘때쯤 나타날 수도 있다."  (p.11)


코스피 지수가 8,000을 넘고, 어느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6억여 원을 준다지만 우리 사회의 이면에는 여전히 죽음의 그림자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그러나 갈수록 메말라가는 인정으로 인해 아직 오지도 않은 성하(盛夏)의 더위가 마치 살인마의 칼끝처럼 두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노인의 폐지 리어카를 밀며 나의 양심마저 그 수레에 두고 돌아선 듯 느꼈습니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웠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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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 - 명상과 마음 경영이 내 삶을 바꾸기까지
오선우 지음 / 보민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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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는 언제나 한아름의 슬픔과 아쉬움이 남는다. 영원한 이별이건 잠깐 동안의 이별이건 이별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주문(呪文)처럼 외며 쓸쓸한 날들을 견딘다. 오선우 작가의 에세이 <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는 시종일관 유쾌한 문체로 이어지지만 사실 그 많은 맑음 속에는 언뜻언뜻 흐림의 글자들이 어른거린다. 아무리 성격이 좋고 유쾌한 사람일지라도 타고난 성격이 그러할 뿐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살다 갈 수는 없는 일,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저마다의 무늬처럼 제각각의 아픔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게 마련이다. 대학을 마치고 20대 중반에 독일로 떠났던 작가는 40대 후반이 되어 귀국한다. 실은 3주간의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낼 요량으로 귀국한 것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한때 모델로도 활동했던 예쁜 동생에게 암이라는 중병이 찾아온 것이다.


""엄마, 내가 가도 나 때문에 울지 마셔, 난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거야. 신나게 갈 거야. 난 하늘에 뜬 달이 꼭 눈 같아. 내가 엄마를 하늘에서 보며 늘 보호해 줄게. 엄마 고마워." 그것이 동생의 마지막 인사일 줄은 엄마도 몰랐다. 그렇게 너무 어이없게 동생이 가버렸다. 암 투병 5년을 넘겨 가족들이 모두 한숨 놓은 상태였다. 어제까지 말하고 함께 웃던 동생이 없다. 갈 것을 알고 있었는지 다음날, 동생이 주문한 옷이 택배로 도착했다. 검은색의 상하의로 한 벌이다. 동생에게 그 옷을 입혀 보냈다."  (p.22)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동생이 떠나고 5개월 만에 아빠도 떠나셨다. 이젠 낯선 곳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으로 한순간에 공간 이동을 한 작가는 몸과 마음이 폐허가 된 채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고, 이것이 힘들어 독일로 떠나려던 작가를 다시 눌러 앉힌 건 "너까지 가면 어떡하니..."라는 엄마의 한마디였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명상이었다.


"이젠 일상 속 마음 경영을 통해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을, 욕망을 타인 보듯 객관적으로 흥미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화나는 내가 그 화에 휘둘리지 않고, 그 화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흥미롭게 나를 바라볼 때 여유롭게 대응해 가는 나를 만난다. 스톱! 하고 멈추면 습관적으로 내려던 짜증과 불만을 다룰 수가 있게 된다. 이건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이해하는 일이었고, 무의식 속에서 올라오는 익숙한 반응들과 패턴들은 나도 모르게 실행되는 자동 재생 목록 같은 거였다."  (p.106)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모든 생명체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치솟는 화를 어찌하지 못한다. 나의 뜻에 반한다는 것, 나의 의견과 다르다는 건 언제나 화를 유발한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내가 화를 내는 것처럼 상대방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작디작았던 화는 증폭되고 확대된다. 이 세상은 마치 저마다가 배출하는 화의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세상이 온전하게 굴러가게 하려면 누군가는 화를 멈추어야 한다. 배턴 터치를 하듯 건네받은 화를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화를 내는 자신을 보면서 '그럴 수 있어' 하고 쿨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명상이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나를 올바르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오선우 작가의 <우당탕탕 독일여자 명상기>는 명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쓴 책인 동시에 자신처럼 위기에 처한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마음 처방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게 유독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그때는 참 사는 게 버거웠습니다. 곰곰이 나를, 그리고 내가 살아온 방식을 보니 감정이 나를 불태웠고, 냉랭하게 했으며, 가끔은 이 삶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불쑥 올라오는, 또는 욱하고 올라오는 그 감정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관계가 끝이 나 버렸고,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천 년 동안 빛이 비추지 않았을 것 같은 어두운 동굴에 혼자 있는 것처럼 절망스러웠을 때, 그때 명상과 마음 경영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p.120~p.121)


명상은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소원하던 나 자신과의 관계도 나아지게 한다.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하던 사람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적당히 눙치고 넘어갈 수만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 역시 좋아질 것은 분명하다. 짜증이나 화가 쌓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변할 수 있는 첫걸음은 역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불완전한 나와 불완전한 당신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또다시 찾아온 주말, 누군가로 인해 당신에게 내재되었던 화가 불끈 치솟는 일 없이 평온한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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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인생의 많은 굴곡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실수도 많았고, 중요한 분기점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한 적도 있었습니다. 곰곰 되짚어 생각해 보면 그와 같은 판단의 이면에는 늘 개인의 욕심이 나 자신의 눈을 가렸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합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비슷합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다 보니 각자의 건강이나 은퇴 후의 계획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됩니다. 때로는 정년이 없는 정치 쪽으로 기웃대는 친구도 있고, 사업이나 취업 쪽을 계획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이따금 지자체장 선거에 나서는 친구나 지인을 만날라치면 임명직 자리를 부탁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꽤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자체장이 임명하는 자리를 탐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은 듯합니다. 그것은 여당이나 야당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양태를 보입니다. 지자체장이 임명하는 자리가 생각보다 넓고 그 수가 많은 까닭에 나 하나쯤 부탁을 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지자체장이 이럴진대 대통령은 오죽하겠습니까. 여러 루트로 줄을 대고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일까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최근 유시민 작가를 향해 막말을 쏟아냈던 오 모 씨만 하더라도 명예직인 청년재단 이사장직에 오르더니 연봉 3000만 원에 2년 임기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 이사에 더하여 금융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이름을 올려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캠코나 금융발전위원회는 대개 금융이나 자산 전문가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의 금융 경력이라곤 수소차 기업 니콜라 주식에 투자하여 큰 손해를 본 것 외에는 딱히 없는 듯한데 그가 그런 자리를 꿰찼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시민 작가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크게 잘못된 말을 한 바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패륜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도 벼슬이라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까닭이겠지요. 나는 요즘 오선우 작가가 쓴 <우당탕탕 독일 여자 명상기>를 읽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나에겐 나에겐 너무나 버겁게만 느껴졌다. 난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에도 또 엄마가 되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철부지 같았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우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아빠가 옷 한 벌을 사주셨단다. 엄마는 그 이후에도 공항에서 매번 우셨다."  (p.51)


아침에 운동을 하기 위해 산에 올랐을 때, 1940년생인 멋쟁이 할아버지가 올해 80세인 소녀 할머니에게 오늘 데모하는 데 같이 가지 않겠냐며 은근히 같이 가주십사 부탁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관위의 안일한 대처가 8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주요 관심사가 되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나게 하였습니다. 유시민 작가에게 막말을 쏟아냈던 오 모 씨는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일까요 뒷일 걱정은 하지 않은 채 상스러운 말을 쏟아내더군요. 말은 마음의 창이자 본인 심성의 거울입니다. 그런 인성의 소유자가 민주당을 지킨다는 걸 생각하면 민주당도 생명을 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나기 예보가 있었는데 비는 여전히 내리지 않고 쨍한 햇살만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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