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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1월
평점 :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산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시간이면 멋쟁이 할아버지가 어김없이 나타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기 위해 누웠는데 할아버지 역시 내 옆자리에 눕는 게 보였다. 천천히 자세를 잡으면서 다 누울 때까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는 가벼운 신음을 연달아 내고 있었다. 길게 누워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으면서 내게 묻기를, '나는 아직 누울 때 당신처럼 아프지는 않겠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 안에는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는 어디에 눕더라도 아프지 않았고, 윗몸일으키기쯤이야 수십 번쯤 거뜬히 해치웠었다는 뉘앙스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아프지 않다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누운 채 어깨며 허리며 몸 이곳저곳을 두들기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산스장' 곳곳을 빠르게 돌고 있었다. 아침 기온이 낮고 건조하던 며칠 전과는 다르게 비가 온 후 기온이 빠르게 오르는 바람에 때를 만난 모기들도 덩달아 신이 난 모양이다. 1940년생인 할아버지의 마른 체구에서 빨아먹을 피가 얼마나 있다고 극성스러운 모기떼가 앵앵거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문득 싫증이 나고, 미약하던 의욕마저 뚝 떨어져 사는 게 그저 덤덤하게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나는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 하루키 역시 독자들에게 없는 기운이라도 짜 내서 으쌰으쌰 열심히 살아보라고 권하는 건 아니지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되뇌고, 겉도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낱낱의 문장을 손가락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도 기운을 내서 한 번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는 홋카이도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고, 그는 오타루에서 태어난 동급생과 결혼했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식물의 씨앗이 변덕스러운 바람에 날려 운반되듯이, 우리도 역시 우연이라는 대지를 목표도 없이 방황한다." (p.56 '그녀의 거리와 그녀의 면양' 중에서)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내가 이따금 생각이 날 때마다 펼쳐보는 책이다. 물론 '4월'이라는 특정한 달이 제목에 포함된 까닭에 그해 4월에 읽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매년 4월마다 이 책이 떠오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짧은 18편의 소설이 실린 이 책은 하루키의 열혈 독자들에게는 꽤나 인기가 있는 편이어서 하루키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된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히라주쿠의 뒷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와 스쳐 지나간다. 그다지 예쁜 여자는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모르긴 몰라도 이미 서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50미터 앞에서부터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인 것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내 가슴은 불규칙하게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P.21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하루키 소설의 장점은 그의 소설이 분명 현실을 다루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에서 미세하게, 이를테면 현실의 공간에서 반 발자국쯤 떨어진 듯한 인상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실에 지친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현실로부터 살짝 떨어져서(또는 현실을 잠시 잊은 채로) 독서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로부터 발을 뺀 채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현실로 복귀해야겠다는 마음이 슬몃 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처방은 그의 에세이에서도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당신이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 나는 관여하지 않겟어' 하는 식의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다.
"5월의 태양 아래를, 양손에 운동화를 들고 낡은 방파제 위를 걸어가면서 나는 예언한다. 너희는 무너져버릴 것이다, 라고. 몇 년 뒤인가, 몇십 년 뒤인가, 몇백 년 뒤인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은 언젠가 확실히 무너져버린다.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메우고, 우물을 메우고, 죽은 사람의 혼 위에 너희들이 세워 올린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콘크리트와 잡초와 화장터의 굴뚝, 그것뿐이지 않은가." (P.120 '5월의 해안선' 중에서)
'삶의 권태기'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시시때때로 일상이 지겨워지고 나른한 권태에 짓눌리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우울증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외투에 붙은 먼지처럼 가볍게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고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의 나른한 지겨움은 조금씩 정도를 높여간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할 때 하루키의 책은 그와 같은 증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처방책이 될 수도 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일단 한 번 그의 작품에 빠져들어 볼 필요가 있다. 속는 셈 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