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개나리를 비롯한 여러 봄꽃이 피어나는 것은 물론 버드나무 가지에도 연녹색 물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다 보니 과거에는 차례대로 피던 봄꽃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산수유가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제 순서에 맞춰 차례로 개나리, 목련, 매화, 벚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갑자기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다 보니 왠지 정신이 없고 계절을 즐길 만한 여유도 차츰 사라지는 게 아닌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서 쓰던 짐을 옮기느라 아침 일찍 운전을 하여 군부대에 갔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의 난제, 이를테면 대학 입시, 병역, 취업, 결혼 등 시기에 따라 마주쳐야 할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인 '병역'을 무사히 해결한 듯합니다.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아들은 공군으로 입대하여 21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듯합니다. 전역에 앞서 외출을 나온 아들의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받아 차에 싣는 감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라거나 '요즘 군대를 어디 군대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군 생활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사실 혈기왕성한 그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18개월이나 21개월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테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소담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어느 초봄의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빠진 바람이 변덕스레 방향을 바꾸며 불어왔다. 플랑드르의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군대처럼 몰려다닌다. 그 구름 뒤 어딘가에 달이 빛나겠지. 하루 종일 나는 불안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나는 간절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품었던 형상들을, 에바 부인을, 데미안을 생각했다. 미루나무에 기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구름의 전쟁터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중 하늘에서 움찔대는 별의 빛이 점점 커다란 그림, 솟아오르는 그림의 연속을 연출했다. 나는 맥박이 이상할 정도로 희박해졌음에서,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뎌진 피부에서,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어떤 인도자가 나를 굽어보고 있음을 느꼈다."  (p.266)


내일 전역을 하는 아들은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요즘이지만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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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3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회가 새로우시겠습니다. 대학 들어갈 때부터 종종 아드님 이야기를 쓰셨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덧 군대 전역이군요. 제 아이는 코로나 한창일때 군 복무를 해서 입소식도, 전역식도 참석 못해보고 온라인으로만 구경했답니다. 이제 어른이네요.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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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관람이 웬만한 영화 관람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에 조예가 깊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전시실에 놓인 작품을 쭈욱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멎게 만드는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빠져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두 점의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작가가 내게 건네는 수많은 말과 생각들을 내가 미처 주워 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시공간을 잊은 채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주변 관람객의 소곤거림도, 자리를 뜨는 여러 관람객의 발소리도, 이따금 들리는 안내 방송도 전혀 들리지 않고, 시간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만다. 어릴 적 술래에게 '얼음'이라고 외쳤던 그 순간처럼.


얼만 전에도 나는 대전에서 열린 앤디 워홀 전시회를 다녀왔다.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회의 기획도 재미있었지만, 인쇄물로만 보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실물로 직접 보게 되는 감흥은 왠지 모르게 신나고 반가웠었다. 앤디 워홀 전시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면 그 직후 읽기 시작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는 나의 가슴을 가볍게 짓눌렀다. 나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이따금 책을 손에서 놓고 베란다로 나가 깊은숨을 내쉬곤 해야만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지나치게 빈곤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안젤름 키퍼'는 늘 그런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어떤 예술가의 이름보다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극히 기념비적이며, 시간으로 가득 차 있고, 역사로 무겁게 짓눌려 있으며, 사적인 것, 하찮은 것, 개인적인 것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p.13)


어떤 예술이든 작가와 관객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놓인 작품은 생소한 두 사람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어떤 작가는 때로 작품 속에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사적인 어떤 것을 일절 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독자나 관객에 대한 배려나 예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까. 2023년 국내에서 열린 안젤름 키퍼의 국내 첫 전시회에 나는 가지 못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의 전시회 소식도 듣지 못했다. 당시에 나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를 읽는 동안 나는 온라인에 떠도는 안젤름 키퍼의 작품과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우리가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면서 굳이 전시회를 찾는 까닭은 실물을 직접 보는 것과 영상이나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은 실로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무와 숲에 대한 집착은 1960년대 말부터 줄곧 지속되어 왔다. 그는 숲과 함께 육십 년을 보냈다. 나는 그가 그린 숲이 신화의 숲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던 숲, 게르만족이 로마인들과 싸워서 이겼던 숲, 나치가 '독일적인 것'을 연출하는 데 이용했던 숲, 그리고 절멸 수용소들이 위치했던 숲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키퍼 자신의 숲이라는, 그가 할아버지와 삼촌, 숙모, 사촌들과 어울려 살았던 곳의 숲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p.73)


20세기 후반 신표현주의 미술운동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한 그이지만 안젤름 키퍼는 사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법학도였다. 1966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그가 1970년 뒤셀도르프에서 요제프 보이스의 제자가 되면서 늦은 나이에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우선 거대한 작품의 크기에 압도된다. 고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그이지만 키퍼는 짚, 납, 도료, 재, 점토 등을 이용하여 캔버스 위에 텍스처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


"존재하는 것의 내면에 다가가 비밀을 밝히려는 예술 속에서 그 심연은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압도한다. 아마도 다른 어떤 이의 그림에서보다 고흐의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에게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줄 몰랐기에 붓질 하나하나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라는 예술을 바닥부터 다시 발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림과의 투쟁 자체가 가시화되는데, 키퍼는 그 투쟁을 예술의 핵심이자 모든 것의 기원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은 곧 보는 자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포착될 수 없고, 그 비밀에는 결코 닿을 수 없기에,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술은 오직 원래의 통찰력이나 비전의 일부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항상 그 비전을 거스르기에 비전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형태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행위에는 언제나 파괴가 동반된다."  (p.170)


우리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날 다른 대체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 경기와 같은 육체적인 방식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권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육체가 20대의 젊음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결국 예술작품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존재하는, 그러면서도 끝없이 유동하는 이 삶의 본질에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은 채 끝없이 탐구할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패전국 독일의 폐허에서 태어난 안젤름 키퍼는 나치 시대를 다룬 작품을 종종 선보이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나고 자랐던 독일의 숲과 강이 그에게 심어준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와의 유대를 통하여 안젤름 키퍼 자신과 그의 작품에 대한 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키퍼의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작가의 표현과 통찰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어느새 3월도 다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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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온은 여전히 차고 건조하다. 나는 요 며칠 바쁘고 힘들었다. 삶의 언저리에서 맴맴 맴을 돌다가 아무런 맛도 감각하지 못한 채 맹탕의 날들을 흘려보내는 듯한 느낌. 그렇게 맴을 도는 사이 거리에는 목련의 봉오리가 벙글고, 매화도 해끗해끗 봉오리를 틀고 있다. 감각하지 못하는 여러 날들을 보내고 나면 건조한 삶에 거뭇거뭇 튼 흔적이 남는 것 같다. 손등이 터서 까슬해지는 것처럼.


며칠이면 끝날 것 같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말을 바꾸면서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듯하고, 국가의 최고 권력을 철저히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했던 윤석열과 김건희의 방식을 먼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보고 배웠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구치소에 있는 윤석열은 트럼프로부터 교육비를 받아도 좋을 듯하다. 식탐이 많은 사람이니 사식이라도 넉넉하게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할 수도 있겠지.


마쓰이에 마사시의 <거품>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그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진한 감동을 받았었다. 그 후에도 나는 작가의 소설 두어 권을 더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같은 깊은 인상은 받지 못했다.


"나한테는 고정해줄 압정pin이 없다., 라고 가오루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줄 것이 없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매일 학교를 다님으로써 임시로 압정이 주어졌었다. 체육 특별활동부에 들어가고 운동을 하며 날이 새고 날이 지고 녹초가 되면, 좀 더 나를 꽉 고정하는 압정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둬버리면 어떻게 될까? 압정이 빠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늘하늘한 얇은 종이나 같다. 학교에서 박리되어 바람에 날리고, 강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서 가라앉는다. 바닷물에 녹아서 가루가 된다."  (p.61)


한낮 기온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더러 목격된다. 일부러 과시하려는 태도일지도 모르지만, 한낮 기온은 그들의 허세를 받아줄 만큼 넉넉히 올라 있다. 어스름이 내리는 걸 보니 또 하루가 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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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6-03-2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어 공부하면서 원서로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였어요.필사하면서 읽어서 1년이상 걸렸는데,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 소설이에요. 조금씩 따뜻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전 아직 추워요.
잘 지내고 계시죠? ^^

꼼쥐 2026-03-27 07:05   좋아요 0 | URL
march 님 반갑습니다. 예스 블로그에서는 자주 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소설 분량이 꽤나 많은데 그걸 일본어 원서로 필사하면서 읽었다니 대단하세요. 보람도 있으셨겠지만 말이죠. 아침 저녁으론 아직 쌀쌀하죠.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블로그를 통해서이지만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난데없는 꽃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는 것도 잠시 계절은 금세 여름으로 넘어가곤 합니다. 아파트 화단에 핀 산수유꽃을 보면서 나는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어제는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BTS 팬들이 모여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지만, 많은 사상자가 난 대전의 화재 참사와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전쟁 참화 속에서 노래하며 웃고 즐겨도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대인의 기본적인 속성이 극단적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 지상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그들과 연관된 몇 배, 몇십 배의 사람들이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을 텐데, 그런 것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 칭해야 할까요. 그들도 과연 정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폴리마켓의 예측 도박 사이트에서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여러 사안을 놓고 각각 수천만 달러짜리의 내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이들을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여름, 그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일기에 부모로서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숨김없이 씀으로써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독자들에게 알린 바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 그 어떤 말로도 치유할 수 없는 참척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 처절한 기록이 담긴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는 독자라면 화재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먼 타국 유가족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쯤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츰 정상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지요.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p.18)


"그 애를 잃고 나서 아직 고기를 입에 넣은 적이 없다. 소화가 안 된다는 핑계였지만, 그 애가 죽던 날 밤,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유난히 맛있게 등심구이를 아귀아귀 먹은 생각을 하면 진저리가 쳐져서 생전 고기를 먹을 것 같지가 않다. 집에서처럼 따로 눌은밥을 좀 끓여달래서 먹었지만 누린내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p.87)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되는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가 문득 떠오릅니다. 중동 전쟁이 끝나는 어느 시점에 이란의 어느 작가 역시 그렇게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잔인함과 속절없는 슬픔과 고통을 뒤로한 채 이란고원의 폐허 속에서도 이름없는 꽃이 피어나겠지요. 전쟁의 포화가 멎은 어느 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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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2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6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번역 에세이
김남주 지음 / 이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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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에세이가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의 편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번역했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원작자 다음으로 많은 지식을 소유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 그 책에 대해서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전혀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고려할 때, 번역가와 일반 독자 사이의 지식 편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가는 자신의 본업인 번역 이외의 다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또는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에세이는 대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너무 어렵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번역가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일반 독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서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카뮈의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주석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어떤 것이다. 그런 만큼 역자는 이 글에서 또다시 그런 '쓸데없음'을 범하지 않으련다. "그런 작품은 하나의 호소와도 같아서 우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정을 강요하고 당혹시키며 자기변명을 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어떠한 회피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P.76)


그럼에도 내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는 까닭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다. 때로는 한동안 책과 멀어졌던 까닭에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시큰둥한 마음이 들 때, 혹여라도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좋은 책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을 구하고자 함이다. 김남주의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남주 번역가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과연 무사히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가죽 끈이 없는 부리망 때문에 화자의 걱정대로, 우주 어딘가에서 양 한 마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왕자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왕자는 다시 이동하는 철새 떼를 타고 장미꽃 없는 자기 별을 떠나 자기가 길들인 여우도 있고, 화자도 있는 이 지구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아, 이 책의 내용을 적은 엽서를 교환하던 그 시절, 금빛 대신 푸른 머플러를 어린왕자처럼 꼭 그렇게 한 번만 목뒤로 넘겨 둘렀던 그 친구를 이 지구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P.169~P.170)


자신을 일러 '느린 번역가'라 칭하는 김남주 번역가는 <오후 네시>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를 <나를 보내지 마>를 통해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현대고전 작품 역시 번역해 왔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 하나는 내가 군에 복무하던 당시, 모 여대 불어불문학과에 다녔던 아내가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여러 권을 부대로 가져와서 읽은 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고를 타자기로 쳐서 아내에게 주었었다. 아내는 내가 쓴 그 어설픈 논문 초고를 바탕으로 어찌어찌 살을 붙여 논문을 완성하였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김남주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를 살아오는 동안 번역은 내 밥벌이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 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  (P.9 '첫 책을 내면서' 중에서)


사실 이 책은 번역가가 쓴 리뷰에 가깝지만 작가의 삶이 책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 에세이가 아닐 수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전문 번역가가 지닌 지식과 일반 독자인 내가 소유한 지식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이따금 어려운 문장에 갇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기도 했지만, 번역가의 수고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를 수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나는 책에서 빼곡히 옮겨 적은 도서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그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책을 대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잔뜩 욕심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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