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현주 옮김 / 더모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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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무작정 하다 보면 뭔가 이루어질 때가 있다. 그러한 성취에 대해 혹자는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꼴'이라고 한껏 깎아내려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단순히 운만 작동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을까 싶다. 운이라는 것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류의 일들은 대개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라는 기치 아래 반복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그렇고 아이들의 독해력이 그렇다. 짬이 날 때마다 무작정 운동을 하고 책을 읽다 보면 살도 빠지고 시나브로 독해력도 부쩍 향상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의 작가 '사이토 다카시'가 쓴 <훔치는 글쓰기>는 책의 첫머리에서 예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독해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인이 과거에 비해 문자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없는데 정작 독해력과 글쓰기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 것일까? 작가의 평가는 냉정하다. 이와 같은 추세는 비단 일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문해력 저하로 인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한 업체에서 행사와 관련한 게시글에 마음 깊은 사과의 의미를 담아 '심심(甚深)한 사과'란 표현을 썼는데, '심심한'이라는 뜻을 '지루하고 재미없는'으로 오해한 다수의 사람들이 발끈하여 항의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국민의 전반적인 문해력 저하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내가 말하는 '읽었다'의 기준은 '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봤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동자만 움직여 글자를 '본 것'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p.32)


이와 같은 논란의 저변에는 언제나 독서의 부족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곤 한다. 사실 독서가 습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독서를 권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이토 다카시 역시 평소에 관심이 있는 잡지에서부터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렇게 재미를 붙이면 단행본이나 문고본 등 책의 세계로 옮겨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위주로 읽되 자신의 관심사를 서서히 넓혀가라는 게 작가가 권하는 독서 팁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간다.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던 작가는 이 책에서도 글쓰기 관련 노하우에 대해 간략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주어와 술어를 대응시키는 '대응 의식'을 완전히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은 말할 때에도 문장의 꼬임이 적어지게 된다. 거꾸로 문장에 꼬임이 많고 횡설수설하는 사람은 쓰기 훈련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다."  (p.85)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좋은 글쓰기의 기본은 다독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많은 생각과 깊이 있는 사유(多商量)를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 그들이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많은 글쓰기(多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는 더러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상식적인 원리를 꾸준히 실천하고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훔치는 글쓰기>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글쓰기 상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평소 독서와 글쓰기로 단련된 사람은 어휘가 풍부한 덕분에 대화에서도 의미의 함유율이 높은 대화가 가능하다. 의미의 함유율을 높이는 것이 이번 책의 숨겨진 테마이다. 말하기의 잔기술은 말 그대로 잔기술일 뿐, 독서와 글쓰기 기반이 없다면 지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할 수 없다."  (p.177 'EPILOGUE' 중에서)


연일 입춘 한파가 매섭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독서와 필사를 즐기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일견 반갑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처럼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는 시기에는 퇴근 후의 음주 약속을 잡기보다 일찍일찍 귀가하여 따뜻한 방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이 자신의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훨씬 큰 이득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훨씬 더 힙(Hip)해 보이는데 그것 역시 취향의 차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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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의 요체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중요성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 스스로도 반성해야 하는 점이 많은 인간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현실에 있어서 두루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도,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강박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도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와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의도와 당시에 갖는 상대방의 생각을 100%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부터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몸짓이라든가, 시선이라든가 하는, 이른바 말에 동반되는 여러 요소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자주 떠올리곤 합니다. 반대로 내가 말을 할 때 듣고 있는 상대방 역시 나의 생각이나 의도를 곡해하거나 무시할 수 있음을 사실로써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나의 생각을 몰라준다고 섭섭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부류의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위에 언급한 소통의 기본을 소홀히 하거나 완전히 무시하는 인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입니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도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말조차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게다가 자신이 했던 말도 수시로 바꾸거나 하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버티곤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어느 누구와도 소통다운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한 사회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 더없는 불행이자 악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집권한 2년 반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퇴보에 퇴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를 우리 사회에서 영구히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지금 사계절 출판사의 신간 <다이내믹 코리아>를 읽고 있습니다. 2022년 봄부터 시작된 '토론의 즐거움'이라는 모임에서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 지금까지 140여 회의 토론을 이어오고 있다는데, 이 책에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한 13개 토론문이 담겼다고 합니다. 토론자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주식 칼럼니스트, <지금은 없는 시민>을 쓴 강남규 작가, 박권일 연구자, 신혜림 피디, 은유 작가, 이재훈 기자, 장혜영 전 국회의원이 그들입니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은유 작가의 말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짜 시민들이 달려가서 장갑차 같은 거랑 맨몸으로 맞섰잖아요. 그거 보는데 너무 눈물이 나고, 광주항쟁 사진에서 봤던 거랑 겹치면서 이게 어떻게 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압박해왔어요. 제가 아는 활동가도 국회에 달려가서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더라고요. 아는 사람이 거기 있으니까 더 미치겠더라고요."


봄날씨처럼 포근한 주말 오후입니다. 다음 주는 강력한 입춘 한파가 예고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미 2년 반이라는 긴 겨울을 겪어 왔던 까닭에 큰 두려움 없이 다가올 한 주를 맞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잠깐 동안의 추위를 견디면 곧 봄이 온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우리 사회에서도 암적인 존재를 걷어내고 말하는 이의 의도와 생각을 잘 읽으려 노력하는 새로운 사람을 최고 권력자로 맞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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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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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연령 제한이 있을까? J.M. 쿳시의 소설 <폴란드인>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될 질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사랑에도 연령 제한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몇 살부터 몇 살까지를 적정 연령대로 인정해야 할까. 물론 개인별, 혹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나 관습에 따라 어느 정도의 편차는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면서 판단하거나 수용하는 사람의 견해차 역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소설을 '사유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쿳시는 자신이 쓴 소설에 지나치리만치 깊은 사유와 깨달음을 담는다. 그것은 쿳시 소설의 매력인 동시에 소설 감상에 주어지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들이 만난 날 저녁, 택시에서 그의 손이 닿던 감촉을 생각해본다. 그녀는 그가 헤로나에서 그녀를 반겼을 때 그녀의 볼에 닿던 입술의 감촉을 생각해본다. 마른 뼈가 닿는 것 같은 느낌. 살아 있는 해골이랄까. 오싹하다. 그녀에게도 해골이 있다. 그러나 그의 것과 다르게, 그녀의 것은 흐릿하고 만져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무 메마르고 열정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그에 대한 그녀의 최종적인 평가일까? 그녀가 남자에게서 원하는 것은 열정일까? 열정이 내일이라도 불현듯 나타나 격렬한 진짜 열정임을 드러낸다면, 그녀의 삶에는 그것을 위한 자리가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p.67)


40대의 스페인 여성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70대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비톨트.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음악 서클 임원이었던 베아트리스는 초청 연주자인 비톨트를 환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음악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40대의 은행가 남편을 둔 베아트리스와 쇼팽을 새롭게 해석하고 연주하는 독신의 피아니스트 비톨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음악회가 끝난 뒤 의례적인 저녁 식사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이후 비톨트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적극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베아트리스는 비톨트에 대해 별다른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편 비톨트는 서툰 영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이르자 자신이 직접 연주한 쇼팽의 b단조 소나타 오디오 파일을 보내기도 하고, 자신과 함께 브라질로 떠나자고 하는 등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인 구애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베아트리스는 마요르카에서 연주회가 있었던 비톨트를 가족의 별장으로 초대하여 일주일을 같이 보낸다. 별장이 위치한 소예르는 마요르카에서 가까운 휴양섬이었다. 그후 베아트리스는 그와 냉정하게 결별한다.


"만약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를 향한 감정, 이 의심스러운 길로 접어들게 만든 감정은 무엇일까? 굳이 말해야 한다면, 그녀는 그것을 연민이라 하겠다.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는 그를 가엾게 여겨 연민의 감정에서 그의 욕망을 채워주었다. 그랬던 거다. 그것은 그녀의 실수였다."  (p.130~p.131)


'나는 당신의 이름을 입술에 머금고 죽을 거요.'라고 말하는 나이 든 남자의 순수한 고백은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쿳시의 소설이 늘 그렇듯 사랑의 결말은 언제나 쓸쓸하고 건조하다. 중년의 베아트리스가 비톨트에게서 느꼈던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 그것은 어쩌면 열정이 사라진 형식적이고 의도된 사랑,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각자가 지금까지 느꼈던 헛헛한 감정을 해소시켜 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기계적인 행위에 명명된 과분한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이 든 사람의 사랑이란 각자의 감정을 모태로 탄생한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심각할 게 없다. 사랑은 우리가 바라볼 때조차 과거 속으로, 역사의 깊은 안쪽으로 물러나는 마음의 상태, 존재의 상태, 현상, 경향일까? 폴란드인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심각하게 사랑에 빠졌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한지 모른다. 그러나 폴란드인 자신도 역사의 잔재, 욕망이 진정한 것으로 평가받으려면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암시가 있어야 했던 시대의 잔재다. 그녀, 즉 베아트리스 즉 그의 애인은 어떠한가? 그녀는 확실히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p.139)


길었던 설 연휴 이후 너무도 쉽게 맞이한 주말의 오후. 나는 겨울 나목의 메마른 가지 위에 존 쿳시가 명명한 허울뿐인 사랑을 걸어 두고 나른한 시선으로 한참 동안 응시했다. 탄탄했던 육체의 수분이 빠져 쭈글쭈글 주름이 지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시나브로 열정을 잃고 차츰 형식만 존재하는 빈 껍데기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싱거운 하늘엔 낮달처럼 긴 침묵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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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탄생과 더불어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현생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의 체험을 통해 내게 주어진 기억들을 확인함과 동시에 다음 생을 위해 그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가는 게 맞는지도 모릅니다. 내게 주어진 하루는 그렇게 현생의 기억을 확인함과 동시에 다음 생을 위해 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말하자면 체험을 통해 기억에 대해 확인하는 절차와 망각을 통해 다음 생을 준비하는 일련의 상반된 행위들로 채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침묵의 한 허리를 베어 내려는 듯 눈이 내립니다. 어제 내린 눈 위로 다시 쌓이는 눈송이들. 연초에 내리는 눈을 일컬어 예로부터 우리는 풍년을 예견하는 서설(瑞雪)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을 통한 이동이 보편화된 요즘 눈은 단지 교통을 방해하는 하나의 장애물일 뿐 풍년에 대한 기대나 눈발에 섞인 고요를 감상하는, 그런 낭만은 남아 있지 않은 듯합니다. 더구나 명절 연휴에 내리는 폭설이라니요! 내리는 눈을 막거나 제지할 방법이 따로 없는 까닭에 우리는 애꿎은 하늘만 원망하게 됩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섞여 이따금 설 명절을 준비하는 음식 내음이 전해집니다. 아파트의 어느 집에선가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있을 테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산문집 <미오기傳>에 대한 여운이 남아 김미옥 작가의 다른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읽었던 책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이 책은 다른 이의 서평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책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이 주가 되는 것은 맞지만 책을 읽었을 때 떠올랐던 자신의 기억이나 생각을 주로 담았던 까닭에 제시하는 책의 성격이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서평이 채워지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러므로 독자는 작가가 서평을 빙자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엄마는 납골당을 무서워했다. 유골함이 찬장 안에 들어가 갇힌 거라고 여겼다. 둘째 오빠의 납골당에 다녀온 후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설날 아침에 엄마는 형제들 앞에서 나를 붙들고 울었다. 땅 한 평 없는 이내 신세, 양념통보다 못한 이내 팔자, 뜨거운 불에 태워 손바닥만 한 찬장에 넣지 말고 차라리 길에 뿌려라. 술 취한 형제가 빚쟁이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이 집안에 빚이 있었다. 부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엄마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형제들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다녔지만, 손가락만 잃었다. 대출을 받아 식당도 했지만 망했다. 가출하기 전날 내 책을 찢으면서 엄마는 울었다. "다른 집 딸들은 오빠들 뒷바라지로 집안을 일으킨단 말이다." 최종학력 국졸인 세 오빠 중 한 명은 자살했다. 엄마와 살고 있는 두 형제도 암 투병에 알코올중독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합니다. 우리의 삶이 태어나면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온전한 기억들을 삶을 통해 하나하나 재현하고 그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김미옥 작가는 정말 제비뽑기의 운이 지지리도 없는 박복한 여인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휘몰아치던 눈발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눈발의 세기가 약해졌다 강해지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김광림의 시 '산 9'가 떠오릅니다. '한여름에 들린/가야산(伽倻山)/독경(讀經) 소리/오늘은/철 늦은 서설(瑞雪)이 내려/비로소 벙그는/매화(梅花) 봉오리//' '어' 하는 사이에 2025년의 새해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까치설날', 눈보라에 섞여 제수용 전 내음이 진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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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인생공부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김태현 지음,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작 / PASCAL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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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깨달음은 대개 개개인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야만 체득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독서나 타인의 경험을 경청하는 것과 같은 간접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을 과연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더러 있다. 개인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각성과 독서를 통한 인지는 그 의미나 깨달음의 깊이 면에서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각성은 개인의 삶을 뿌리째 흔드는 까닭에 이전과 이후의 삶의 방향과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반면 인지는 다만 삶에 대한 개인의 시선을 다르게 할 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 서적을 열심히 읽는 사람도 책을 쓴 저자의 성공에 결코 이르지 못하는 까닭도 그런 차이가 아닐까 싶다. 물론 독서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신의 다양하고 직접적인 체험에 치열한 독서가 더해진다면 그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어떤 세계관이 생성될까? 사실 전 인류를 통하여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은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겠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책으로 남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런 책은 대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널리 읽히게 된다. 그와 같은 책 중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아닐까 싶다. 토스카나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7세 때부터 라틴어를 배워 고전을 탐독했던 그가 피렌체 공화정의 외교를 담당하는 공직자로 근무하는가 하면 스페인의 침공으로 인한 몰락을 경험하기도 했던 그였기에 인간 개개인의 심리와 습성, 대중의 태도와 경향 등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개인의 생존과 안녕을 담보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어떤 본성을 지녔으며 이를 통제하는 권력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군주론>이다.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물론 인간 본성을 다룸에 있어 인간의 보편적인 품성을 다룰 뿐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처럼 지극히 악독한 인간이나 테레사 수녀님처럼 지극히 선한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내면은 생각지도 않은 채 인간의 악한 품성을 다룬 책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간은 극단적으로 악하지도 않고, 극단적인 선량함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때로는 적당히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비겁하거나 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참아내기도 하는 게 보통의 인간임을 마키아벨리 역시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철학적 사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인생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경험이 세상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상황과 인간의 행동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권력을 유지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P.46)


인문학자 김태현이 쓴 <군주론 인생 공부>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없애고 그의 사상이나 철학을 좀 더 깊이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 안내서'와 같은 책이다. 물론 <군주론>의 문구 일부를 발췌하고 해석함으로써 <군주론>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군주론>의 핵심 문장과 그 글에 숨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진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지혜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 책을 통해 <군주론>의 명제들이 단순한 역사적 기록들이 아니라,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지침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P.9 '이 책의 구성' 중에서)


총 4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PART 1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말아라', PART 2 '복수는 상대가 두려워할 정도로 심하게 해야 한다', PART 3 '적은 항상 내부에 있으니 측근을 경계하라', PART 4 '때로는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고 행동하라'의 소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명한 군주가 갖추어야 할(또는 준비해야 할) 올바른 대처법과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운명이 우리의 절반을 지배할지라도, 나머지 절반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형성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균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열쇠입니다."  (P.205)


명절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고, 뜻하지 않은 오해로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휴마다 공항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있노라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만나서 지지고 볶고 싸우느니 차라리 안 만나고 안 싸우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항변할 이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결국 그들과는 영영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각오해야 한다. 어떤 이는 가족 모임에서 피해야 할 주제로 '정치, 종교, 스포츠'를 들던데 그런 논쟁적인 주제를 피하는 것은 물론 타인과 비교하는 언사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가족에 대한 작은 배려이자 에티켓임은 물론 개인의 품성을 가늠하는 시험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 차라리 인문학자 김태현의 <군주론 인생 공부>를 일독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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