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흐린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합니다. 할끔할끔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듯 시차를 두고 이따금 비가 내렸고, 더웠던 날씨를 의식한 듯 바람도 제법 불었습니다.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지는 날씨가 어제오늘 길게 이어졌던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던 국민의힘 어느 정치인의 마음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코미디와 같았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은 하나같이 참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저것이 과연 대한민국을 3년이나 다스렸던 집권 여당의 모습인가, 하는 자괴감이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나 그렇지 않은 시민들 모두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일절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뻔뻔함과 오만함은 저들이 과연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맞긴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들게 했습니다. 내란을 주도했던 총리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여전히 일반 민심을 등진 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입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 <빈 자리>를 읽고 있습니다. 130쪽도 안 되는 이 얇은 책을 나는 며칠째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 바라보게 되는 거칠고 험한 풍파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사유하고 싶다는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해수면의 거친 파도를 지나 햇볕도, 소리도 없는 심해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다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잠시나마 누려보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일 속에서, 휴가 속에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소모된다. 시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속에서 소모된다. 그러나 어쩌면 글쓰기는 다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시간을 잃는 것과 매우 가까운 일이지만, 또한 시간을 온전히 들이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남아서 눅눅해진 시간을 조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 순간은 감미로워지고 모든 문장은 축제의 밤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영혼은 길 위에 흩어진다. 길을 잃어 헤매기도, 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단 하나의 단어가, 단 한 차례의 숨결이 흩어진 영혼을 다시 모은다. 왕의 만찬처럼 풍요로운 말, 맛의 정수를 담은 사랑의 글자."  (p.112)


국민의힘의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던 그가 불과 일주일 만에 강제로 물러나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했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을 듯합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 이 일이 마무리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마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흔들리는 삶으로부터 심한 멀미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야비한 술수와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를 권해 봅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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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5-05-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오늘 산 책이네요. 비가 주룩주룩 오는 주말이라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읽고 싶네요. ^^
 

지난 일요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인근 유원지에 외출을 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사람들은 많았다. 화요일까지 길게 이어지는 연휴. 나들이를 나온 연인들과 가족 단위 행락객의 얼굴 표정은 여유가 넘쳐나는 듯했다. 과분한 햇살에 다소 더위를 느낄 수도 있었지만 호수 저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휴일 오후의 느긋함과 낭만을 한껏 부풀게 했다. 청국장에 해물파전을 곁들여 푸진 점심을 해결한 우리는 캔 음료를 하나씩 들고 호수 옆 벤치에 앉았다.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나른한 햇살을 밟으며 30여 분 걸었다. '귀차니즘'이 어깨를 짓누르는 걸 억지로 참았다.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80%가 건강이다. 그러나 사실 일상에서 '귀차니즘'과 멀어질 수만 있다면 건강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귀차니즘'과 거리를 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귀차니즘'에 넘어갔을 때 우리가 느끼는 안온함과 푸근함은 다른 어떤 유혹보다 강하다. 결국 우리는 중독성 강한 '귀차니즘'에 GG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귀찮지만 지금 청소를 하자'라거나 '귀찮지만 지금 설거지를 하자'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귀차니즘'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건강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점심을 함께 했던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며 동의를 구하는 듯 다른 이의 표정을 살폈다. 가급적 정치 얘기를 삼가는 식사 모임의 기본 금도를 깬 그 사람의 직업은 변호사. 그는 자신의 주장에 합리적 논거를 덧붙이기 위해 듣기 싫은 말을 한참이나 중언부언 이어나갔다. "각자 알아서 하면 될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설득할 일은 아니잖아요?" 하고 누군가 한 사람이 타박을 주자 그제야 본인도 머쓱한 듯 말을 그쳤다.


대선 국면에서 그 실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엘리트 기득권층이 갖는 욕심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노력은 정말 집요하다. 그들 개인의 욕심 앞에서 국가 공동체의 발전은 눈곱만큼도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들 개인의 욕심을 나라의 안녕이나 발전으로 잘 포장해 온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해 그와 같은 거짓 포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거짓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윤석열의 승리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야 그 모든 행위가 다 국가를 위한 작은 희생이었다고 선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국가도, 국민 전체의 행복도 모두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행복은 국가 이익에 우선한다. 그것이 그들의 행동 양식일 뿐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신들만 행복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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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05-0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먹으며 정치 이야기하다 급체해서 병원을 삼일이나 다닌 적 있어서요..급동감합니다! ㅎㅎ

꼼쥐 2025-05-09 13:3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셨으면... 간혹 안하무인의 무례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검고 선명하던 나뭇가지가 연녹색 봄의 물결로 차츰 흐릿하게 변해갑니다. 장한 햇살과 나날이 높아만 가는 기온이 흐릿하던 나뭇가지의 형체마저 완전히 지워버리는 날 우리는 어쩌면 짧았던 봄의 여운을 못내 아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등산로에는 은사시나무 씨앗이 잔설처럼 쌓이고, 도로변 가로수는 이팝나무꽃으로 하얗게 물들었습니다. 그렇게 2025년의 4월이 가고 있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 오가는 등산로에는 잘게 부서진 가랑잎이 마치 김가루처럼 흩날립니다. 나는 그 가랑잎의 잔해를 밟을 때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쳐야 온전하던 가랑잎이 저렇게 부서지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거운 체중으로 눌러야 저렇게 형체도 없이 부서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런 의문은 정확한 답을 찾고자 하는 물음이 아닙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 인간의 무자비함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삶을 지속하는 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일회성의 반성과 자책의 감정이 조금쯤 포함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강 작가의 산문집 <빛과 실>을 읽고 있습니다. 170쪽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이기에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책이라면 뭐든 일단 사놓고 보는 성마른 성격의 나이기에 구매 일자와 완독 일자는 매번 크게 차이가 나곤 합니다. 책이 발효가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책의 출간 일자에 맞춰 일찌감치 사 두었다가 묵히고 묵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슬그머니 읽게 되는 까닭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사치라면 사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내 삶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호사는 어쩌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마음껏 사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그 기쁨에 홀려 십오 분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p.95~p.96)


성근 숲이 조금 더 울창해지면 나는 숲 속에서의 신비를 지금보다 더 자주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볕뉘 때문입니다. 어두컴컴한 숲의 그늘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 어쩌면 그것은 한강 작가가 썼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신비로운 감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붑니다. 이팝나무 가로수의 흰색 꽃물결이 저쪽으로 밀려났다 금세 되돌아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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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풍경은 꽤나 을씨년스럽습니다. 바람이 몰아치고 이따금 빗방울이 흩날립니다. 부쩍 낮아진 기온 탓에 사람도, 식물도 한껏 움츠러든 모습입니다. 봄 날씨는 으레 변덕스러운 것이지만 만개했던 벚꽃이 지고 4월도 중순인데 이런 살풍경한 날씨는 좀체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바람 탓인지 우산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거리를 지나갑니다.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후 조바심을 치던 사람들은 다들 안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가슴을 졸이지 않고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겠구나, 마음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자가 관저에서 머무르며 지인이나 가까운 여당의 정치인들을 불러 면담을 하는 등 우리가 낸 아까운 세금을 축내고 말았습니다. 재임 기간으로도 모자라 파면 후에도 자신의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마치 자신의 쌈짓돈인 양 펑펑 써대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절친이었던 이완규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 지명한 한덕수의 행태는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짓이었습니다. 내란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채 내란에 가담했거나 동조했던 자들의 비호 속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말의 퇴근 시간을 골라 관저를 빠져나왔던 내란 수괴 윤석열의 퍼포먼스는 가히 가관이었습니다. 얼빠진 어린 학생들을 도로변에 도열시키고 자신이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그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모습, 아크로비스타 사저에 도착한 후에도 주민들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꼴을 보면서 '도대체 저 인간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인간으로서 갖는 생각이라는 것을 저 인간도 하기는 하는 걸까? 하도 술을 많이 먹어서 이제는 생각마저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파면 선고 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야당과 여당의 정치인들은 이제 본격적인 대선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진즉부터 궂은 날씨가 예보된 까닭에 나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한 채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대건의 장편소설 <급류>를 읽고 있는데 생각처럼 빠르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정치에 한눈을 파느라 책을 멀리했던 시간이 독서 습관마저 형편없이 망쳐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구름이 질러 가는 하늘에선 이따금 빗방울이 흩날리고, 바람은 여전히 싱싱 소리를 내며 거칠게 스쳐갑니다. 학교 운동장에선 어린 학생들이 몇 시간째 공을 차고 있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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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 지나면서 해는 조금씩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도 캄캄한 어둠이 채 사라지지 않았던 지난달 초의 시간이 꽤나 멀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새벽 기온은 여전히 차고 냉랭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주말 외출을 나오는 아들을 차에 태워 집으로 향하던 길 갑작스레 내리는 눈발에 잠시 아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펑펑 내리는 눈과 휘몰아치는 바람에 시야가 어두워졌던 것도 잠시, 터널을 지나자 사납던 눈발은 간 데 없고 운동회 뒤끝에 날리던 색종이 꽃가루처럼 힘없는 눈이 이따금 흩날릴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곤두박질쳤던 기온은 금세 회복되어 한낮에는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이맘때의 산은 한 폭의 점묘화와 같습니다. 채 형체를 갖추지 못한 어린 새순이 마치 가는 붓으로 찍은 연녹색 점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형태가 선명한 가지 주위로 어른어른 녹색의 점들이 모여 묘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무수히 흩뿌려진 연녹색의 점들 사이로 청설모의 분주한 몸놀림이 새벽을 열고, 음색이 고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흥을 돋웁니다. 등산로 입구에 만개한 개나리에 이어 계곡의 진달래도 새초롬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2025년 4월 4일 11시.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기일이 잡혔습니다. 지난한 날들이었습니다. 이 험난한 과정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우리의 일상 저변에는 민주주의 제도가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1987년 이전의 권위적인 군부독재 체제로 회귀한다는 건, 그와 같은 체제하에서 살아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나브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꿈꾸고 그려왔던 이상적인 제도를 향해 나아갈 뿐 오던 길을 되돌려 전체주의 망령이 우글대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12.3 내란을 통해 명징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눈 소식에도 봄은 오듯이 민주주의에 익숙한 우리의 일상은 어느 미친 자의 계엄령에도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달라도 일상에 깃든 민주주의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이 지켜왔던 일상을 소중히 유지하고자 할 뿐입니다. 새봄에 점점이 찍힌 연녹색 물결처럼 우리의 작은 소망들이 대한민국의 산하를 빼곡히 채우고 있습니다. 어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오늘을 맞고 싶을 뿐이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아가고자 할 뿐입니다. 그 작은 소망을 파괴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끊이지 않는 시간의 연속선상에 나의 일상을 가벼이 얹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가벼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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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3 0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13 14: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