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덜컥 몸살이 걸렸다. 요 며칠 들쑥날쑥하던 기온도 문제였겠지만 새벽에 산에서 하는 운동에 더하여 저녁에 계단 오르기를 추가한 게 원인이 아닐까 싶다. 몸을 돌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갑자기 이렇게 운동량을 늘리다 보니 몸인들 과부하를 견딜 수 있었을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하루였다. 지나친 운동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어제는 지독한 미세먼지까지 퍼부었으니 몸살이 날 만도 했다. 점심을 거른 채 약국에 들러 몸살약을 구입했다. 저녁에는 지인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렇게 한 번씩 앓고 나면 '나'에 대하여 곰곰 되짚어보게 된다. 성동혁 시인의 산문집 <뉘앙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람이 지나가면 많은 종류의 감정이 남는다. 머문 시간에 비해 많은 슬픔을 남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기억이 안 날 만큼 휘발된 얼굴 또한 많다. 무엇이 나의 삶에 더 많은 부분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할 순 없다. 그저 어떤 시간과 풍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나의 기록 방식은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된 시간이 있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된 시간도 있다. 감정만 남긴 시간은 더더욱 많다."  (p.223)


몸은 여전히 으슬으슬 춥고 어깨와 무릎에는 욱신욱신 약간의 근육통이 있다. 약을 사기 위해 약국을 향해 걷고 있는데 인도 가장자리에 텐트처럼 비닐을 치고 농산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추위를 다 막을 수는 없었던지 무릎의 담요를 몸 위쪽으로 계속해서 잡아당기고 있었다. 행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저분들은 도대체 얼마나 팔겠다고 이 추위에 거리로 나온 걸까.


그들 각자의 이름도 모르고, 거래조차 한 적 없으니 그들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서 며칠이 지나기 전에 휘발되고 말겠지만, 나는 그 잠깐의 스침만으로도 한아름의 슬픔을 안게 되었다.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말은 살 만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구차한 낭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추위 속에서 들고 나온 농산물을 팔아야 하는 저 할머니들에게 그런 말은 어쩌면 배 부른 소리쯤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명절이 코밑인데 변덕스러운 날씨가 힘겹게 겨울을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욱신욱신 어깨가 쑤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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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조리 잘하세요.
 

매서웠던 동장군의 기세도 한풀 꺾인 오후, 오늘은 입춘입니다. 오늘 아침 기온도 며칠 전의 기온과는 확연히 달라졌던 까닭에 무거운 코트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듯했습니다. 산의 계단을 지나 능선 부근의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데 등 쪽으로 은근히 땀이 차올랐습니다. 매일 아침 산스장에서 마주치는 멋쟁이 할아버지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지난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하고 멋쟁이 할아버지가 먼저 알은체를 하며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답례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왜 안 보이시나 걱정을 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할머니는 그동안 너무 추워서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며 근황을 전해주셨습니다. "에이, 꽁꽁 싸매고 다니면 안 추워요." 하며 할아버지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툭툭 두들겨 보이셨습니다. "이제 날씨도 풀렸으니 매일 나와야지요." 하는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수풀 속 그늘에는 지금도 녹지 않은 잔설이 희끗희끗 겨울의 잔상을 흩뿌리고 있었지만 어렵게 겨울을 난 사람들은 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책의 줄거리를 되짚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관찰 대상인 '어느 서민 여성'은 사실 저자인 에리봉의 어머니로서 평생 불행한 삶을 사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때 버려졌던 에리봉의 어머니는 고아원에서 성장하다가 열네 살에 학업을 그만둔 후 '무슨 일이든 하는 하녀'가 되었다가 가정부로, 이어서는 공장노동자로 일을 했고 죽을 때까지 공공임대주택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50년에 아버지와 결혼해 55년을 해로했지만 "두 분이 서로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에리봉은 회상합니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가 예전에 알았던 또래 여성과 마주쳐서는 각자의 남편을 향한 '원한과 증오'를 주제로 지치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마리즈 콩데의 자전 에세이 '민낯의 삶'의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왜 남자들은 여자들의 삶을 이렇게 망쳐놓을까?"


"어머니가 내게 창밖의 가수, 과자를 든 아이, 옷장 위의 남자, 소파 위의 개들에 관해 말했을 때, 난 거의 같은 생각을 했다. 그녀도 '다 끝났다'고. 그럼에도 나는 신체적, 정신적 노쇠의 과정이 어떤 리듬으로 일어날지 자문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안경...)을 잃어버렸다. 어머니는 달랐다. 그녀는 아주 명석했으며, 기억을 잃지도 않았고, 그녀를 보러 가면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수다를 떨 수 있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대개 조리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환각을 느꼈다."  (p.105)


우리는 대개 자신의 삶이 영원한 듯 생각하거나 끝에 대해 일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일상에서의 행복을 반감시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삽니다. 그렇게 회피로 일관하던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실재하는 어떤 것으로 확인되는 바람에 우리는 몹시도 당황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낮에 점심을 같이 했던 지인 한 분이 이르기를 요양원에 계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병원에 실려 갔고, 위독하다는 의사의 말에 가족 전체가 모였었고, 계속해서 혈압이 떨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죽음이 멀지 않은 듯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게 슬픈 까닭은 그와 함께 다가오는 봄을 맞을 수 없는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을 알린다는 오늘은 입춘. 봄을 닮은 우울이 흐린 하늘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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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새해를 시작하는 첫 달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흘러가곤 합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벌써 1월의 끝자락에 와 있으니 말입니다. 개인의 일상도 그렇지만 세계의 변화도 예전과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국으로 돌변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변화를 주도하는 건 역시 미국이라 하겠습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힘과 무력을 통한 세계의 제패를 달성하려는 듯 피아 구분 없이, 오직 자국의 이익만을 좇아 힘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돈 앞에선 의리도, 양심도, 수치심도, 인간애도, 사랑이나 자비도,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그 어떤 형이상학적 목표도 힘을 잃게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정치가와 그를 추종하는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 정치에서 힘을 통한 지배는 사실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 왔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을 견제하고 약화시키는 역할은 주로 종교와 인간 개개인의 선한 영향력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야만과 이성이 공존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몇몇 종교가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정치의 시녀를 자처하면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타락한 종교인에 의해 야만의 정치는 더욱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지금처럼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의리를 중시하고 신념이 투철했으며, 자신의 양심에 빗대어 말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알았습니다. 정치에도 은유와 낭만이 존재했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크게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했던 건 역시 대한민국의 종교였습니다. 침례교의 목사를 자처하는 김 모 목사와 순복음교회의 이 모 목사, 광화문 집회를 이끌었던 전 모 목사, 최근 들어 정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손 모 목사 등 정치에 기생하는 정치버러지 같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소위 이단이나 사이비로 지칭되던 통일교와 신천지 역시 정치와 결탁하여 세를 확장하고자 했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종교가 자칫 야만으로 흐를지도 모르는 정치를 정화하고 견제하지는 못할망정 앞장서서 야만을 부추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와 결탁했던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의 몇몇 지도자들 역시 호시탐탐 정치에 앞장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종교는 단지 허울이고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이해찬 전 총리의 영결식이 있었습니다.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그였지만 그도 역시 운명의 신이 내린 결정을 피해 갈 수는 없었던 듯합니다. 그는 비록 70대 초반의 조금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행복한 정치인생을 살았다고 자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은 힘들었겠지만 낭만과 의리가 살아 있던 시절에, 종교가 야만의 정치를 앞장서서 부추기지 않던 시절에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에서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종교인들은 우리 정치를 야만의 시대로 이끌어 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야만의 정치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이제 더 이상 종교에서는 찾을 수 없을 듯합니다. 다만 우리는 개개인의 선량한 양심에 기대어 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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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과의 어색한 동거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보니 쉽게 적응하고 가까워지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과거 우리가 어렵고 못 살던 시절 같으면 몸에 걸친 입성도 허술하고, 지금의 추위보다 훨씬 매섭기도 해서 겨울 추위가 아무리 혹독해도 그러려니 하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한겨울에도 도통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터라 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에도 지레 겁부터 나게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추위에 대한 엄살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는 뜻이지요. 강추위도 없고, 반짝하는 추위도 길게 이어지는 법이 없다 보니 추위에 대한 내성이 사라진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오늘은 지난 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른바 V0로 일컬어지던 김건희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재판장이었던 우 부장판사는 퇴임 후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자신이 소유한 법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김건희의 무죄 선고를 내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번 판결로 인하여 그가 판사직에서 물러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김건희 일가의 집사 변호사로 영전할 가능성이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스스로 믿게 되었을 듯합니다. 국민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눈 한 번 질끈 감고 양심과 논리에 반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요. 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퇴직 후에 일용직을 해야 하나 아니면 어느 회사 수위 자리를 알아와야 하나 그도 저도 아니면 아파트 경비라도 부탁해야 하나 등 별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는 게 다반사인데 범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어느 사모님을 무죄로 사하여줌으로써 평생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요.


특검의 15년 구형에 대하여 1년 8개월을 선고한 것을 보면 재판장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가상하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불공정한 판결이 아니었느냐고 말이지요. 돌이켜보면 요양원을 운영하던 그의 오빠 역시 수십억 원을 횡령하였지만 불구속 송치되었고, 요양원 운영에 깊이 관여하였고 동종 전과도 있는 그녀의 엄마는 검찰에 숫제 송치조차 되지 않은 걸 감안할 때 김건희에 대해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정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일반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고 결과이겠지만 말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한 것'이라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법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였던 김건희에 대해 사법부는 한없이 초라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녀에게 한껏 낮은 자세로 머리를 조아렸던 것입니다. 일개 공무원 신분인 그가 퇴임 후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구걸하기 위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한낮에도 바람이 몹시 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화끈화끈 열이 오릅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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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불던 칼바람의 기세가 오늘 낮부터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한 한파가 길게 이어지고는 있지만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추위 속에서도 우리는 몇몇 반가운 소식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였던 주가지수 5000을 가볍게 돌파하였다는 소식과 내란범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마냥 느슨하게만 보여 답답했는데, 재판부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국민과 같은 생각을 갖고 같은 눈높이에서 내란범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재판 결과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검찰이나 사법부는 재임 기간 중에 받을 수 있는 국민의 신망이나 존경보다는 퇴임 후에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사적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 왔던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나 재벌이 저지른 비리에 대해서는 적당히 눈을 감아왔고, 이를 통하여 소위 엘리트 그룹의 부정부패는 공고히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판사나 검사 역시 퇴임 후에는 그들 그룹에 소속되어 막대한 부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 인맥과 교류 속에 대대손손 권력과 부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의 편에 선다는 건 어지간한 결단이 아니고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이인자였던 한 전 총리만 보더라도 온갖 비리에 대한 설이 무성했지만 단 한 번도 처벌되지 않고 지금껏 호의호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도 역시 엘리트 그룹의 일원으로 대접받았던 까닭입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을 담당했던 이진관 판사 역시 온갖 유혹과 회유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도 역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갈등이 없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한 전 총리가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여 호가호위를 꿈꾸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법부의 정의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질끈 눈을 감은 채 소수 엘리트 그룹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단 한 번 안면을 몰수한다면 자신은 물론 자손 대대로 탄탄대로를 걷게 될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친다는 게 어디 쉽기만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진관 판사는 정의와 이를 열망하는 국민 다수의 편에 섬으로써 퇴락하는 사법부의 신뢰를 다시 살렸음은 물론 국민의 염원을 일부 해소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내란에 가담했던 모든 정황을 밝히고 그들 모두에 대한 처벌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답답했던 국민의 마음이 조금쯤 풀렸던 것은 사실입니다.


엊그제 시작한 것만 같았던 2026년 1월도 벌써 마지막 한 주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에서 겪게 되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아주 작은 희망을 우연한 기회를 통하여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주일의 혹독한 칼바람 속에서 몇몇 따뜻한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용기는 우연히 발견된 작은 희망의 결합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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