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 주제로 떠올라 온종일 그 열기가 식지 않았던 하루. '경제는 심리'라는 사실을 반영하듯 주가는 크게 올랐고, 사람들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정체된 대기 탓에 어제까지만 해도 크게 높았던 미세먼지 농도도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함께 크게 낮아졌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 평온한 일상을 반년 만에 되찾은 사람들의 여유로운 몸짓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와 같은 평온한 일상이 꾸준히 반복될 수 있음이 하나의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얕은 조바심이 언제 다시 대상도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비난과 조롱과 폭력의 언어를 쏟아내게 될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성마른 성격과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잠시 걱정했었다. 안규철의 저서 <사물의 뒷모습>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경구를 발견한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이 어떻게 끝날지를, 그 일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추는 법을, 말하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잊는 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뭔가를 이루고 소유하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과 헤어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시 멈춰야 하는 시간, 우리가 배우지 않았던 것들을 위해 지평선 너머를 응시해야 하는 시간이다."  (p.224~p.225)


이재명 대통령의 첫날 행보에 유난히 관심이 쏠렸던 하루였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인간의 됨됨이는 그가 취하는 하나하나의 행위, 몸짓과 표정, 그 숨결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모든 것에 대한 비교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20대 대통령이었던 윤석열 씨의 취임 첫날은 어떠했던가. 국민들을 향한 그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그가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 불과 3년 전의 일이었지만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가 유난히 돋보였던 건 그에게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다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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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6-0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224~p.225)의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꼼쥐 2025-06-08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연히 읽게 된 책이지만 <사물의 뒷모습>에는 이런 좋은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누구나 읽어볼 만한 책이죠. 댓글 감사합니다.^^
 

사전투표 이틀째,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투표소에 들렀다.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어제에 비해 투표 열기는 다소 주춤해진 모습이었다. 어제 서둘러 투표를 했던 사전투표 선배(?)들의 조언 아닌 조언 '지금 가면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거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나는 투표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점심을 굶거나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기줄은커녕 도착하자마자 신원 확인과 함께 투표지를 발부받았음은 물론 곧바로 빈 기표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사천리로 투표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은 듯했다. 길게 대기줄을 섰던 어제의 경험 탓에 많은 이들이 점심시간을 피했거나 본투표로 날짜를 변경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화요일에 있었던 대통령 후보자 3차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의 저급한 발언으로 인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물론 그러한 말들의 대부분은 이준석 후보를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던 TV토론에서, 그것도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심야시간도 아닌데 그와 같은 저열하고 납득하기 힘든 표현으로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트렸다는 건 백 번 양보해도 이준석 후보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되짚어봐야 할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나 싶다. '이준석'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동안 윤석열과 이준석을 경험함으로써 소위 명문대 출신자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에 대해 한번쯤 반성해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한 사회의 지도자를 선출함에 있어 학벌은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겸허히 수용하고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좋은 품성과 인격, 그리고 좋은 인재를 발굴하는 안목, 이러한 것들에 더하여 학벌마저 좋다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여 학벌을 1순위로 놓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오히려 고졸 출신 대통령이라고 그렇게 폄훼하고, 놀리고, 깎아내리려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발자취는 우리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가.


자랑 같지만 나는 중학교 입학할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다. 형제도 많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던 내가 학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학금밖에 없었다. 나의 선친은 나뿐만 아니라 형들에게도 국민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그만 다니고 돈을 벌으라 하셨고, 아버지 몰래 가족이 힘을 합쳐 어찌어찌 중고등학교를 보낼 수 있는 여력도 한두 사람에게 그쳤던 까닭에 막내나 다름없었던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아주 먼 과거의 일이지만 오직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성장기가 나 개인에게는 옳았을지 몰라도 사회 전체로 볼 때는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었음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그 어린 시기에 오직 자신의 생존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이웃이나 사회를 돌아볼 여유가 없이 성장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지극히 이기적인 한 인간을 사회 구성원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는 걸 자랑으로 떠벌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부끄러운 과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준석 후보는 다만 공부만 잘하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일 뿐이다. 결국 그가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꿈꾼다는 건 이준석 본인에게도, 우리 사회 전체에게도 불행한 일이 될 뿐이다.


어제는 저녁나절에 외출을 했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었다. 지인을 만나고 헤어진 후 밖에 나와 보니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는 꽤나 먼 거리. 마음 같아서는 비를 맞으며 느긋하게 걷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 빗속을 빠른 속도로 달려 차에 도착했을 때는 어깨가 다 젖어 있었다. '우르를 쾅!' 천둥이 치는 요란한 저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달리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렇게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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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선선하던 날씨는 원래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듯 다시 더워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워지고 습도마저 높아지는 여름철이면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쾌지수'가 그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가 일부러 기온을 올리거나 작심하고 습도를 높인 것도 아닌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괜스레 짜증을 내거나 잦은 화풀이를 하면서 신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같은 인간에게 되돌려주곤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원래의 고통(무더위)에 상응하는 짜증을 타인으로부터 자연스레 건네받음으로써 두 배 혹은 세 배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이나 명상 서적 등에서는 분노 혹은 화의 원인을 다양한 데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갈등, 좌절, 불공정한 대우, 잘못된 인식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타인의 행동에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어리석은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화를 낸다는 건 자신이 속한 사회와 사회 구성원의 행동 양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입니다. 무지하거나 어리석다는 뜻이지요. 어제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민주당 당직자들의 선거운동을 방해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민주당원들을 자신의 차량에 매달고 무모하게 도망침으로써 자신의 내부에 쌓인 화를 풀어보려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20대라는 얘기를 듣고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세상에 대해 미숙하고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나이니까요. 그렇게 법적인 처벌을 몇 번 받다 보면 그도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치깡패'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심심찮게 퍼져나가곤 했습니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에서 동원한 깡패들을 일컫는 말이었지요. 그들은 주로 야당 후보의 연설 현장을 찾아 깽판을 치고 연설을 듣는 청중들을 쫓아버리곤 했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던 시절이었지요. 윤석열 정부가 통치했던 지난 3년 동안 정부 여당은 국민들에게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사실을 주입하려 애썼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부지법을 폭력으로 점거하기도 하고, 어제처럼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여 막무가내식 폭력을 행사하는 이도 나타났던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치깡패'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걸 원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조승리 작가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미친 정치인들이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고, 사람이 다칠 것을 뻔히 알면서 사람을 매달고 차를 내달리는 이런 지랄맞음이, 이런 지랄맞음들이 쌓여 이 세상을 축제의 현장처럼 시끄럽게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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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울타리는 넝쿨장미로 가득합니다. '붉음'이라는 두 글자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마치 도장을 찍듯 꾹꾹 눌러 담는 꽃의 자태에 나는 새삼 감탄하곤 합니다. 만만치 않은 꽃의 무게를 감당하는 장미 넝쿨은 그저 그늘로서만 존재합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듯 푸르름만 유지한 채 선명한 보색대비를 위해 전면에는 언제나 꽃의 '붉음'이 드러나도록 애쓸 뿐입니다. 여름에 피는 까닭에, 여름을 대표하는 까닭에 넝쿨장미는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을 닮았습니다. 꽃을 꺾어 가까이에 두고 감상하고픈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건 어쩌면 넝쿨장미의 '붉음'이 나를 유혹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붉음'이란 모름지기 중독성이 강한 색깔이라고 믿었던 나의 오래전 생각도 어쩌면 그런 까닭에서 연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이 코앞입니다. 그럼에도 선거 분위기는 그저 차분하기만 합니다. 국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도록 지시했던 내란 우두머리는 자신의 잘못을 망각한 채, 아니 어쩌면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만큼 미친 자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거나 낄낄대면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속했던 정당의 인물들 역시 자신들의 과오를 망각한 채 그를 두둔하거나 자신들을 지지해달라고 읍소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탈을 썼다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을까요. 자신들의 죄를 고하고 국민들께 용서를 비는 게 마땅한 도리이거늘 자격도 없는 후보를 내세워 지지를 호소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며, 반성의 의미로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마땅한 도리였을 것입니다.


남유하 작가의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조금 읽었습니다. 진도를 쭉쭉 낼 수 없었던 건 슬픔의 돌부리가 나의 발길을 툭툭 걸어 자주 비틀거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렸고, 울먹울먹 억지로 울음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나는 속이 까끄름하고 마음이 심란하기만 합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허방을 짚는 것처럼 덧없고 허망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전이 판정을 받고 나서 우리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는 그런 아슬아슬한 나날을 '죽음 이행기'라고 불렀다. 죽음 이행기에서는 타인의 눈에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엄마의 자살 방법에 대해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눴듯이."  (p.44)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그는 유죄시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해진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그럴 테지만 이 재판이 제발 빠르게 진행되어 그의 꼴을 우리 사회에서 더는 볼 수 없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토요일 오후, 비가 한 차례 내렸고, 날씨는 제법 선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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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짓궂었던 탓인지 피는 꽃들이 비실비실 생기가 없고, 언제 피었다 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지고 만다. 그런 느낌이 든다. 봄의 절정을 알리는 벚꽃의 개화기에도 한두 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미처 감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지고 말았고, 아카시아 꽃이 만개한 요즘에도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려서 버선발 같은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가 하면 더러는 줄기째 떨어지기도 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게다가 화려한 자태를 오랫동안 뽐내던 철쭉과 영산홍도 올해는 그 기한이 어찌나 짧던지 지금은 메마른 꽃잎만 겨우 매달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간간이 비가 내렸고,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우르릉 쾅!' 벼락이 치기도 했다. 그나저나 대선이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의 워낙 일방적인 우세 탓인지 선거 분위기는 과열되거나 격화되지 않고, 그저 차분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란을 주도했던 정당이 해산도 되지 않은 채 다시 또 후보를 낸다는 것도 지극히 비정상적인데, 그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내란 우두머리였던 자가 지금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가 속한 정당에서도 그를 내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다들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을 아직 들춰보지도 않은 채 작가의 산문집을 인근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는 종종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다. 그러다 보니 구입한 책은 그 순서가 마냥 뒤로 밀려서 숫제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의 변명은 이렇다.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바로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몇 권의 책을 덥석 빌린다. 구매한 책은 반납 기일이 없지만, 대여한 책은 언제나 기일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대여한 책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구매한 책은 결국 순서에서 밀리고 밀리다 때론 잊히기도 하고, 구입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읽히기도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된다.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난로를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p.193)


백수린 작가의 글은 따뜻하다. 소설에서나 산문집에서나 작가의 부드러운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신의 글에 자신이 지닌 본래의 성품을 담는다는 건 삶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자신의 글과 삶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글이 추구하는 방향에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인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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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16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알라딘이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자꾸 밀리고 있고 매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먼저 읽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꼼쥐 2025-05-17 12:50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도 저와 비슷하시군요. 저 역시 그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한 보따리 쌓여 있습니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