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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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다 인연과 때가 있어서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도 내 손에 들어와 읽히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고, 어떤 책은 그마저도 인연이 닿지 않아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기도 한다.  일본 작가 오가와 이토의 소설 <츠바키 문구점>도 그런 종류의 책 중 한 권이다. 나는 사실 이런저런 통로를 통하여 일독을 권유하는 말을 수차례 전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 쏟아내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수도 없이 들어왔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을 기회는 좀체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책의 제목만 익숙해질 뿐이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의 게으른 천성에 더해 남들이 좋다고 하면 일부러 뻗대고 보는 반골 기질이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2025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블로그에 짧은 글 한 편을 올리는 일조차 힘에 겨워할 테지만 나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책을 읽는 것도 어렵고 어쩌다 읽은 책도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게 어찌나 힘이 들던지... 사실 <츠바키 문구점>을 다 읽은 후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 저마다의 삶을 이루고 그와 같은 이들의 특별하지 않은 삶을 후대의 누군가는 또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마치 대한민국의 평범한 이를 대표하는 영희와 철수의 생각처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만 떠오를 뿐 별다른 게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하면 <츠바키 문구점>을 읽은 독자 대부분이 그렇게 느긋하고 편안한 일상이 주는 기쁨을 첫 번째 감상으로 꼽았다면 작가의 의도가 100% 달성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드는 것이다.


"그날 오후, 초인종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지면에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는 최고의 자장가이다. 최근 며칠 내내 점심때가 지나면 꼭 비가 온다. 나는 9시 반에 츠바키 문구점을 연 뒤, 손님이 드는 상태를 보면서 안쪽 부엌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일과다. 아침은 따뜻한 차나 약간의 과일 정도로 때워서 점심때는 비교적 든든하게 먹는다.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어서 안쪽 소파에 누워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잠시 눈만 붙일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깊이 잠든 것 같다. 반년이 지나 이곳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긴장감이 풀린 탓인지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잠이 쏟아진다."  (p.15)


소설의 주인공은 '포포'. 아직 미혼의 젊은 여성이다. 어린 시절, 편지를 대필해주는 선대(할머니)로부터 서도를 익히던 포포는 엄하고 무섭던 선대의 교육에 반발하여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선대가 세상을 뜬 후 오래된 동백나무 옆의 낯익은 문구점으로 돌아와 편지를 대필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포포는 편지를 써달라고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영혼이 담긴 편지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연에 맞게 편지지를 고르고, 필기도구를 선택하고, 봉투를 정하고, 우표를 붙이는 것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진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잠시나마 의뢰인이 되어 그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공 굴리기 인생이란 쇼타로 씨 아버지가 예전에 잘 사용했던 말이다. 지구를 공에 견주어 자신은 그 위를 자유롭게 걷는 인생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다. 온 세계를 날아다니는 바쁜 자신의 인생을 유머로 감싸서 작은 웃음으로 바꾸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주문을 적는 종이였던 멋없는 이면지는 수제 대지에 붙였다. 글씨 주위는 압화로 장식하고, 겉에도 전부 압화로 채웠다. 그 위에 얇은 종이를 포개서 양초로 코팅했다."  (p.203)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대필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 여인 포포의 단순한 일상과 겹쳐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시종일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제공한다. 이웃집에 혼자 사는 바바라 여사를 비롯하여 의뢰인이었던 남작이나 빵티 등 가까운 사람들과 야유회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지금은 없는 선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있는 한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터놓았던 선대의 인간적인 고민과 손녀 포포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그 빛바랜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언젠가 먼 미래에서 오늘이라는 날을 돌이켜보면, 분명 엄청나게 특별한 하루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아직 '그 안'에 있어서 그걸 잘 모르지만."  (p.270)


손 편지를 쓰거나 받는 일이 희귀해졌다. 우편함에는 각종 고지서와 홍보 전단지들로 가득 찼다. 고지서나 청구서 등도 전자메일로 받기 때문에 우편함은 갈수록 본연의 기능을 잃고 적적해졌다. 생일 축하도 카톡 문자나 인터넷 선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우리는 갈수록 서로의 체온을 잃고 가슴은 허전해져만 간다. 게다가 계엄과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독서도, 글쓰기도 귀찮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상태를 언제까지고 지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만 그칠 뿐 의지가 되어 나를 일으켜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평범한 일상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츠바키 문구점>을 읽고 있노라면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썼던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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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
이호선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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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쉽게 리뷰를 쓸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비록 내가 유명 블로거는 아니지만 혹여라도 나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책에 대해 꼭 들려주고 싶은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자와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방향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의 내면에서는 이제 '쓰기 어려우면 쓰지 않아도 되잖아' 달콤한 말로 꼬드기는 악마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비교적 의지가 강하지 않은 나는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곤 합니다. 책을 읽고 단 한 줄의 기록도 남기지 않은 책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도 그런 책들 중에 한 권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리뷰를 쓸 수 없는 책들은 대개 책의 내용이나 방향이 직접적으로 나의 내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부분적으로나마 감춰져 있던 나의 단점을 파헤치고, 드러내고, 때로는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외치며 개선을 요구하기도 하는 그런 책들. 나의 선천적인 게으름은 그런 책들을 무시하라고 강하게 명령하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리뷰를 쓰는 대신 매번 안 읽은 책인 양 무시하는 쪽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게으름에 부합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나는 그렇게 나의 내면에 잠재하는 선천적인 게으름과 타협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으로 관계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나이 들수록 복잡해지는 인생에서 더 많은 갈등과 고민을 직면하게 됩니다. 마흔이 되어도 불혹은커녕 늘 '혹'하고, 오십이 되어도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지혜가 찾아오는 대신 문제가 '지천'이지요.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사람들 때문에 한숨이 나오고요."  (p.6 '들어가며' 중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나 역시 나이만 먹었지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영 젬병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맺고 유지해야 할 관계는 그럭저럭 지속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나 마음에도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늘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겨우 이어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이자 활발한 강연 활동과 방송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이호선 교수의 저서 <이호선의 나이 들수록: 관계 편>은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했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1장 "나는 나를 환대해야 한다" - 나와의 관계, 2장 "가족은 정서적 공동체다" - 가족과의 관계, 3장 "나이 들수록 우정은 중요하다" - 친구와의 관계, 4장 "만나고, 관찰하고, 공부하라" - 사회적 관계 등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나이 들수록 어렵게만 느껴지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조언하는 '관계 지도서'라고 하겠습니다.


"오래 건강하게 돈까지 잘 벌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오랜 친구를 잘 챙겨야 합니다. 성인기 우정은 개인의 전반적인 웰빙과 심리적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알고 계시다고요? 그러나 자세히 들으면 지금부터 친구를 보는 눈동자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질 겁니다. 성인기의 우정이 '아, 인생 살 만하다'라고 말하는 '인생의 웰빙'에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p.169)


나는 사실 이 책의 저자인 이호선 교수를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듯합니다. 방송에서 저자는 개그맨 뺨치는 찰진 입담과 핵심을 찌르는 상담으로 청중을 사로잡곤 했습니다. 물론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유머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전달 수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책에서의 저자는 웃음기 쏙 뺀 언어로 논리와 근거를 통한 설득에 주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익히 알던 저자의 모습이 아닌 듯했습니다. 그것은 방송과 지면의 간극만큼이나 생경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면에서 만나는 저자의 진지한 모습에 더 마음이 끌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방송에서의 산만한 모습이 책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싯돌로 불 피우기 위해서는 두 개의 부싯돌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부싯돌을 둘 다 움직일 필요 없이 하나만 움직여도 불꽃이 살아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사회적 체온이 떨어진 친구가 생각난다면 뜬금없는 안부 전화, 안부 문자 한 통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많은 MZ분들이 그러시죠. "이걸요? 제가요? 왜요?" 일명 'MZ의 3요'라고 많이들 얘기하시죠? 그러나 우리의 어색한 용기가 나와 누군가의 생명의 불꽃을 다시 피워냅니다. 그래서 어느 쪽 부싯돌이 되든 나만의 만트라로, 두 개의 취미로, 구원 행동으로, 또 우리의 도움 전화로 사람을 살리는 행동들을 꼭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p.296 '나가며' 중에서)


3.1절 연휴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던 리뷰 한 편을 쓰기 위해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거부감이 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자연스러운 글이 아니라 나오지 않는 글을 억지로 쥐어짠 듯한 억지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 듯한 저자의 바른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도리질을 치는 치기 어린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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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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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몇 쪽을 넘기기도 전에 들었던 생각은 '어라, 이 책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하는 기시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책의 표지나 제목은 전혀 눈에 익지 않다는 사실. 일본어에 문외한인 내가 한국어로 번역도 되기 전에 원서로 읽었을 리도 만무하고. 그렇게 나는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일본 북쪽 홋카이도 산간지방인 도마자와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것도, 주인공인 무코다 야스히코가 등장하는 것도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나의 무딘 기억력을 감안하더라도 어디선가 분명 읽었던 게 틀림없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2017년 1월에 <무코다 이발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소설. 나는 그해 2월에 책을 읽고 리뷰를 쓴 바 있었다.(https://blog.aladin.co.kr/760404134/9113944)


"'무코다 이발소'는 홋카이도 중앙부에 있는 도마자와 면에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1950년부터 내려오는 옛날 이발소다. 주인인 야스히코는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스물여덟 살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로 사반세기에 걸쳐 부부 둘이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p.5)


나의 무딘 기억력 덕분에 나는 지루한 줄 모른 채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하는 안물이나 지명은 낯이 익었지만 줄거리는 도통 기억나지 않았던 까닭에 나는 마치 오쿠다 히데오의 갓 나온 신간소설을 이제 막 받아 든 것처럼 설렜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두 번 읽게 되었다. 전혀 뜻하지 않았던 일인데 말이다. 나의 기억력은 형편없는 것이어서 이처럼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되거나 전에 구매했던 책을 다시 구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그마저도 무뎌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마는 쿨한 경지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아무튼.


과거 탄광 덕에 번성했던 도마자와는 한때 인구 8만을 거느린 일본 유수의 탄광도시였으나 1960년대 후반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석유로 전환되고 값이 싼 석탄이 해외에서 유입되는 바람에 경쟁력을 잃고 쇠퇴 일로에 접어들게 된 불운의 마을이다. 인구 유출이 계속되면서 열 군데 이상 잇던 마을의 이발소도 이제는 단 두 군데만 남게 되었다. 장래성이 없다고 판단한 야스히코 역시 자신을 끝으로 문을 닫을 생각이었다. 맏딸인 미나는 도쿄에서 의류 회사에 다니고 중학생 시절부터 절대 이발소를 잇지 않겠다고 하던 아들 가즈마사 역시 삿포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설에 귀성했던 아들이 고향에 돌아와 이발소를 물려받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야스히코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소설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역에 남은 고령의 원주민들에 대한 의료 문제, 지역에 남은 젊은 사람들의 혼인 문제, 영화 촬영으로 시끌벅적해진 마을, 도마자와 출신 젊은이의 사기 행각 등 시골 마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사건 사고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마을 청년과 공무원의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 뇌일혈로 쓰러진 기하치 씨, 중국인 신부를 맞이한 노총각 다이스케, 고향으로 돌아와 조그만 술집을 연 사나에, 도마자와를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의 수상 소식, 도마자와 출신 젊은이의 범죄 등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오쿠다 히데오의 담백하면서도 간결한 문체가 더해져 비교적 술술 읽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우리가 직면한 지역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시골의 암담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야스히코는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동네 사람들끼리 으르렁거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피차 머리가 식어 이성을 되찾으면 태도를 굽힌다. 포기하는 면도 없지 않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으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맞은 무라타도 진짜로 상해 신고를 할 리는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용서할 것이다."  (p.210)


올해 홋카이도에서는 재난에 가까운 폭설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다. 제설작업을 하던 노인이 눈에 파묻혀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것이 비단 이웃 나라만의 일일까.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은 나날이 증가하고 이에 대처할 노동력을 지닌 젊은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시로 빠져나가는 현실. 어쩌면 오쿠다 히데오의 <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만 달리 하면 그것은 곧 우리나라 현실을 다룬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처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대를 이끄는 거대한 기치와 인생을 뒤흔드는 불같은 정열, 혹은 타인을 앞서는 빛나는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 무코다 이발소에서 오늘도 드나드는 동네 사람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을 기하는 야스히코처럼, 정든 동네와 땅에 대한 사랑과 사람들끼리 따스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와 오늘 하루를 뿌듯하게 사는 작은 성취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p.317~p.318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의 무딘 기억력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두 번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 나는 언젠가 육체의 늙어감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눈이 침침하고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타인의 약점을 세세히 보지 않게 하는 것이며, 청력이 약해져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속닥거리는 험담을 듣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차츰 희미해져 가는 기억력으로 인해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꼭 나쁘기만 할까. 그런 까닭에 육체의 노화는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이루겠다고 욕심을 부리느냐고 꾸짖고 질책하는 하나의 바로미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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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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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동과 시제에 의해 빚어지는 넓은 간극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예컨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려는 사람 사이의 간극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양자 사이의 간극은 너무 넓어서 섣부르게 정의하거나 예단하는 것은 물론 '어떠했으면' 하는 가정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대척점에 있는 많은 것들과 그들 사이의 까마득한 간극을 조금씩 깨우쳐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스러진 상념들이 가는 햇살 속 먼지처럼 부유하는 아침. 나는 쉽게 잊히는 기억들을 한 줌 끌어 모아 서평을 빙자한 한 편의 글을 써본다.


"내가 처음 당선 소식을 들은 날, 내 어머니가 전화를 받은 장소가 떠오른다. 노래방, 내 어머니도 가는 곳. 한 번의 농담과 또 한 번의 농담, 그다음 번의 농담으로 삶의 품위를 지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이 어머니를 짓누를 때, 내 어머니가 놀러 가지 않고 살러 간 곳. 먼 옛날에는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었겠지. 그러니 언젠가 삶의 어느 질곡에서, 노래방 한구석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 당신이 조금 목말라하는 것 같다면,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내가 사겠다."  (p.52~p.53)


나는 대개 시인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때론 소설가의 산문집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때가 있다. 정유정 소설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이나 소설가 신경숙의 <아름다운 그늘> 등이 그랬다. 그들의 공통점은 늘 소설만 쓰던 작가가 드물게 선보인 산문집이라는 특징이 있다. 소설과 산문집을 번갈아가며 출간하는 작가에게는 없는 매력이 그들에게는 있다. 글로 쓰고 싶었지만 끝내 쓰지 않았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가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어 시중에 나왔을 때, 그 책을 읽는 독자가 받는 인상은 무척이나 각별하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엔터키를 치면 마법처럼 종이 한 장이 더 생긴다. 누군가의 문장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 우리 마음에는 빈 공간이 생긴다. 옛날 사람들의 문장이 우리 이야기가 되고, 나의 삶이 내 것이 되는 정갈한 자리가. 그 자리에 선배가 적어놓은 말들은 또 얼마나 정답고 재밌는지. 책 앞머리에서 선배는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살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묻는다."  (p.143)


2002년에 등단한 작가가 이후 17년 동안 보고 느낀 여러 '이름'을 기록한 이 책은 '나를 부른 이름'의 1부와 '너와 부른 이름'의 2부를 거쳐 3부 '우릴 부른 이름들'로 끝을 맺는다.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1부에서 작가는 자신의 부모님과 고향 등 유년 시절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첫 당선 소식을 듣고 가족에게 전했을 때의 떨림과 아련함을 떠올리기도 한다. 2부에서는 소설가 김애란과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부에서는 작가가 겪은 구체적인 경험과 느낌들이 되살아난다. 읽었던 책과 즐겨 쓰는 문구와 뉴스에서 들었던 소식들...


"만일 문학에 전통이란 게 있다면 그중 우리가 이어나갈 게 있다면 그건 단순히 소재나 형식이기 전에 사람과 이 세계를 대하는 어떤 태도 혹은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죽은 자를 기리려 한다는 건, 잘 묻으려 한다는 건 결국 삶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겐 '나는 죽은 사람 편'이라는 저 말이 우리 문학의 아프고 소중한 유산 그리고 전통으로 느껴진다."  (p.292~p.293)


나의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그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그것은 곧 내가 불러줄 새로운 이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며칠 전에는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렸다가 마지막으로 둔 곳이 기억나지 않아 휴대폰을 찾는 데 반나절을 소비하기도 했다. 바빠서 정신없이 서두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다들 위로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실 앞에서 그저 망연할 따름이었다. 언젠가 나의 기억력도 수명이 다하여 '삐뽀삐뽀' 비상신호를 울리며 한도 초과를 알릴 테지만, 적어도 그날까지는 '잊기 좋은 이름;들을 다정히 불러주고 싶다. 그 이름들 중에는 어쩌면 내가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는 이름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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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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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도 이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아는 뉴스 맞춤형 시대가 되고 말았다. 플랫폼이 알아서 영상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자신의 성향이나 정치이념에 맞지 않는 뉴스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불리한 뉴스는 애시당초 뉴스 취급도 받지 못한다. 정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평소 정치 뉴스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던 많은 국민들에게도 강제적으로 어느 한 편을 선택하도록 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극단적인 편 가르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업무 외에는 사적인 말조차 건네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갈수록 개별화되는 플랫폼 알고리즘 속에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콘텐츠는 사라져간다는 것, 도파민 ROI 시대에 뉴스의 가치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정확히 민주주의의 지향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인정투쟁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데 반해 주목경쟁은 사람들의 관심 그 자체를 좇는다는 박권일의 지적과 정치인들이 숙성시킬 시간이 없이 콘텐츠의 전반적인 질을 떨어뜨린다는 정주식의 지적 역시 이 가설을 지지한다."  (P.43)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티는 일'을 일컬어 우리는 '정치'라고 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더욱 갈등을 부추기고 반목과 대립을 조장하는 데 힘을 쏟았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향해 반국가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자신들을 향한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권력으로 비호할 수 있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은 효과는 분명했다. 국민들을 이념적 내전 상태로 치닫게 함으로써 피아의 구별을 용이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12월 3일 그날 밤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환호했고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좌절했다. 희망과 좌절을 냉정하게 파악할 때 허약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그만큼 소중히 키워가야 할 우리 민주주의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 이 토론에 없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과 희망 없는 비관이다."  (P.397)


2022년 봄 '토론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의 모임으로 치유 모임처럼 만나 2025년 1월까지 140여 회의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는 그들. 정주식 칼럼니스트를 비롯하여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 <소수의견>을 썼던 박권일, CBS 뉴미디어 <씨리얼>의 신혜림 PD,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 <한겨레21>의 이재훈 편집장, 장혜영 전 국회의원이 그들이다. 책에 실린 13개의 테마, -'도둑맞은 집중력'과 뉴스의 위기, '죽은 개가 돌아왔어요' 복제견 찬반논란, 양당제를 돕는 중도정치의 역설, 정치인 향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유, 인구 문제를 과장함으로써 은폐되는 것들, 카리나는 몇 살부터 연애하면 됩니까?, 진보정치는 왜 망했을까?, 영피프티는 언제까지 젊을까?, 거부권 중독 윤석열 대통령의 심리 상태, 대한민국이 양궁협회처럼 운영된다면..., 사람들이 <흑백요리사>에 열광한 이유,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계엄국과 응원봉,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는 어쩌면 윤석열 정부의 집권 전반에 대한 커다란 이슈들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 아쉬웠던 점은 참가한 토론자들의 이념 성향이나 지향점이 매우 유사했다는 것이다.


"이 혼란의 끝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잇을까. 우리가 겨울에 본 것은 국가적 아노미 상태에서도 질서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힘이다. 분명한 것은 당연한 미래는 없으며 어떤 세계와 결별할지 어떤 세계와 마주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일곱 논자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청사진이 담겨 있다. 우리의 여정이 더 나은 공동체를 열어가는 데 작은 실마리를 전할 수 있길 희망한다."  (p.9 '여는 글' 중에서)


토론 문화가 사라진 자리에 폭력과 증오가 싹트고 있다. 대결과 반목이 일상처럼 꿈틀대는 이 시기에 우리가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구심점은 과연 무엇일까? 폭력과 증오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번영의 세계로 이끌어 줄 리는 없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의 발전은 안중에도 없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도 토론 문화가 되살아나서 좌와 우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는 날이 올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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