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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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이성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에 의해 초래될 때가 많다. 이성적으로는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수백 번 생각할 수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냥 싫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나는 그 시발점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라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섞임이 자연스러웠더라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런 습성이 지속될 확률은 상당히 높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출이 극도로 제한되면 될수록 그들에 대한 차별이나 분리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회피나 소외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스물세 살, 나는 결국 꿈을 이루었는데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엄마는 갑자기 쓰러져 열흘간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 돌아가셨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열흘간 중환자실 앞을 지키며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신께 기도했다. 부디 엄마를 살려달라고. 의사가 엄마의 머리맡에서 사망선고를 내릴 때 나는 더이상 내 인생에서 신을 믿는 일은 없을 거라 결심했다. 내 남은 시력은 겨우 엄마의 형상만을 감지했다. 나는 손을 뻗어 엄마를 만졌다. 손끝으로 영혼이 사라진 차가운 살결을 더듬어보았다. 단 하루라도 이 사람과 끌어안고 잠들고 싶었다."  (p.102~p.103)


조승리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화가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치솟는다. 그것은 다수의 비장애인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비애인 동시에 공평하지 못한 신의 손길 때문이기도 하다. 15세에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직업인 마사지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써내려 간 이 책은 때로는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화를 돋우기도 한다.


"출산 당시 생활고에 시달렸던 엄마는 나를 보육원에 맡기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엄마는 하루만 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었다. 다음날 또 하루만 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보육원에 보낼 생각이 점차 사그라졌다. 그렇게 60일이 지났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내 어머니도 가슴이 내려앉을 것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지켜냈다. 그리고 장애를 판정받은 날, 엄마는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가슴을 쥐어짜며 통곡했다."  (p.227)


나는 사실 작가의 이름만 들었을 때는 작가가 남자인 줄 알았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 번 읽어볼 만한 괜찮은 책이라는 평을 종종 들었지만, 남성 시각장애인이 마사지사로 일하면서 경험하고 깨달았던 것들을 그저 그렇게 엮은 책이겠지, 하는 지레짐작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계속되는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나는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데서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책의 내용만 좋으면 됐지 작가의 성별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선입견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여성이 마사지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당당히 드러내면서 자신의 애환을 글로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고 믿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환히 웃으며 시술이 끝난 노인을 배웅했다. 뉴스에서는 늘어난 핼러윈 희생자들을 보도했다. 나는 어제의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내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하고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실로 반성합니다.' 나는 내가 겪은 고통을, 희생을, 인내를, 모두가 겪길 바라는 졸렬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간절히 바란다. 밤새워 놀다 지친 그녀가 늦잠을 실컷 자고 일어나는 일요일이 되었기를."  (p.193)


모든 게 평안할 듯 보이는 우리네 삶은 지랄맞아 보이는 순간들과 이따금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겹치고 겹쳐 잘 꾸며진 한 편의 드라마가 되어 추억이라는 책장 속으로 사라진다. 그 지랄맞았던 순간들이 쌓여 누군가의 책장 속에서는 축제가 되고, 또 누군가의 책장 속에서는 아득한 절망이 되기도 한다. '10대 때는 최고의 유작을 한 편 남기고 서른 살 전에 요절하는 게 꿈'이었으나 지금은 '무병장수하면서 누가 봐도 호상이라고 할 때까지 글을 계속 쓰는 게 꿈이자 목표'라는 작가의 희망은 짭조름한 눈물로 간을 맞춘 듯 독자들의 입맛에 착착 감긴다. 2024년 12월 3일, 뜬금없는 계엄으로 전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근 6개월여의 시간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내도록 했던 그 지랄맞은 시간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기를 나는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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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다시 시작 - 잠깐의 멈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Begin Again Series 1
정소령 지음 / 그래더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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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글쓰기를 편입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튜브 영상을 볼 시간은 있어도 편한 시간에 글을 쓰고자 노트를 펼친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익숙함에서 오는 차이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글쓰기를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어느 날 오후, 그림 그리기에 젬병인 내가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면서 스케치북을 펼치는 것만큼이나 막막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어떻게 끝을 맺을지 등 머리를 어지럽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글쓰기의 효과 또는 글쓰기의 혜택일 것이다. 말하자면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익이나 혜택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러한 혜택이 들인 노력이나 시간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확신만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글쓰기를 주저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예컨대 글쓰기로 인하여 삶의 활력을 얻게 되었다거나 전에 비해 여유 시간을 더욱 건전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는 식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혜택에서부터 자신이 쓴 책 덕분에 큰돈을 벌게 되는 것과 같은 확실한 효과가 눈으로 증명되지 않는 한 마냥 주저하던 글쓰기를 무작정 시도할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대체로 진입장벽이 제법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치유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나누는 과정이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매끈한 이야기만 글이 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울퉁불퉁한, 지극히 현실적인 희로애락이 내 글의 존재 가치가 된다."  (p.68)


우리의 뇌는 사실 추상적이고 현실을 과하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어서 하나하나 글로 써보지 않으면 조금 힘겨워 보이는 대부분의 일들을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섣불리 예단하게 된다. 불안이나 슬픔의 원인도 글로 써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과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치유나 위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정소령의 에세이 <쓰기로 다시 시작>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글쓰기의 동인(動因)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글쓰기 관련 서적이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거론하는 이유는 글쓰기는 단순히 그 효과만 강조해서는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쓰기 관련 서적은 많지만 정작 글쓰기의 장으로 많은 이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책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겠지. 그때는 이 책에서 말한 것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왜 달라졌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책을 쓸 당시와 지금 사이에 많은 시간이 지났고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해야지. 성장하는 중이라고, 나는 생명 없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서 계속 달라지고 있다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나를 두려워하느라 지금을 쓰지 않는 겁쟁이가 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도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p.176~177)


'마케터로 살다가 엄마가 되면서 일을 그만뒀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정소령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이끈 순간들에 대해 꾸미지 않고 비교적 소박하게 그리고 얼버무리지 않고 또박또박 밝히고 있다. 자신 명의의 수입이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학창 시절의 취미와도 같았던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다는 작가. 책의 목차만 보아도 작가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 글은 일상의 기록, 책은 인생의 단편 "나를 글에 담아보기로 하다.", 2. 나만의 정의, 표현, 생각 정리하기 "우리는 모두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다.", 3. 처음의 다짐을 놓지 않는 법 "누구나 어떻게 쓸지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4. 결국, 글과 책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 "함께 쓰고 읽고 느끼면 된다."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아 글쓰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을 담아 써 내려간 책이니 말이다. 나의 쓰는 날을 탈탈 털어 담았다. 처음부터 잘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처음이 없으면 더 쉽게, 혹은 더 잘 쓰게 될 내일도 없다. 그러니 이 책을 덮으면 몇 문장이라도 쓰기 시작해보자. 글쓰기의 시작을 시작할 당신을 응원한다."  (p.227 '에필로그' 중에서)


나 역시 돈도 되지 않는 블로그를 십 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물론 돈이 목적이었다면 진즉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영리를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 까닭에 나의 생각이나 하고픈 말을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 그 누구에게도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가까운 사람이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써야 할 말과 써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는, 이른바 자체검열의 과정이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글쓰기의 재미나 자유로움을 쉽게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소통하며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겪어왔던 것이다. 정소령 작가의 <쓰기로 다시 시작>을 읽는 내내 길다면 길었던 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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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여행산문집
김소연 지음 / 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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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성향이나 취향과도 관계가 있을 터이다. 옷이나 가방을 고를 때도 나의 기준은 언제나 '튀지 않고 무난한 것'으로 귀결된다. 영화를 고를 때도 '액션 대작'이라거나 '이제껏 볼 수 없었던'과 같은 지극히 과장된 표현이 들어가면 잘 끌리지 않는다. 그런 까닭인지 공포영화는 거의 보지 않거나 기피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렇게 굳어진 취향은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내가 즐겨 읽는 책의 서사마저 결정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자극적이지도 않고, 세상 어디에나 있을 듯한 평범한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이유를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남들이 보면 세상 진부한 이야기라고 타박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어린아이도 아닌 내가,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은 줄잡아 서너 권쯤은 읽은 듯하다. 시집이 아닌 산문집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 나는 어쩌면 시인이 펴낸 산문집은 거의 다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한 시인에 대한 탐사 아닌 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시인이 쓴 산문집 <마음사전>을 우연히 읽은 후였다. 한 단어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매우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를 자신의 생각에 곁들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마음사전>은 책으로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지만, 나는 그 책을 읽은 직후의 소감으로 저자인 김소연 시인이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그처럼 섬세한 감각을 지닌 작가의 책이라면 작가가 쓴 다른 어떤 책을 읽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어림했었다.


"솔방울 옆에는 달팽이 껍질이 있다. 달팽이 껍질 옆에는 도토리가 있다. 마모된 사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단지 사물들이 아니다. 허리를 굽혀 내가 그것을 주워 들었을 때의 내 감정들이 그것들을 바라볼 때면 재생이 된다. 그것들은 마치 과거의 나에게 가끔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우체국 같다. 그 여름은 어땠니. 누군가 내게 물어올 때에 빙그레 웃으며 보여줄 수 있는 대답의 일부이다."  (p.225)


내가 이번에 읽은 <그 좋았던 시간에>는 작가가 쓴 여행 산문집이다. 어떤 일정한 기간에 특정 지역을 방문하여 쓴 산문집이 아니라 작가가 방문하였던 여러 도시와 그곳에서 느꼈던 시인의 감성이나 사진들이 책의 지면을 메우고 있다. '경주 노서동 사거리 봉황대 앞에서 살았'던, '관광지가 고향'이었던 소녀는 이제 관광객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있는 셈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가 경험하고 쓴 여행의 기록이지만 2부에서 선보이는 일기 형식의 기록은 특별하다. 인도에서 보낸 두 달여의 기록이 날짜와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인드라간디 공항의 새벽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두렵던 마음이 안도감으로 바뀌자 무거운 배낭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아홉시 반에 로비에서 만나자던 인도인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아침부터 파하르 간즈를 헤매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고서 길을 찾는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쉼터 주인의 말씀이 백번 옳았다."  (p.126)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읽는 특별한 이야기로 전환되는 매개는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다. 나른하고 평범한 시간 속에서 특별하게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감각, 결코 변하지 않는 듯한 풍경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감성으로 채색할 수 있는 능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기관을 내가 원하는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평범한 이야기를 누구나 읽고 싶은 특별한 글로 재탄생하게 하는 비법이다. 나는 사실 김소연 시인의 그러한 감각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일기를 쓰려고 수첩을 꺼냈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기에 쓸 말이 하나도 없어서 수첩은 펼치기만 했다가 다시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세사르 바예호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는 신이/ 아픈 날 태어났습니다'라던 그의 문장을 떠올리고 그런 문장이 어떤 순간에 태어났는지에 대하여 상상해보았다. 더없는 햇살 아래에서 나 말고도 그런 식으로 벤치에 누워 있었거나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던 것도 같다."  (p.63)


기신기신 흐르는 시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여행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여행이 '우주를 독식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건 여행지에서건 우리가 소비하는 시간은 뭐 그리 다를까마는 우리는 다만 자신의 집보다는 여행지에서 몸으로 감각하는 느낌의 강도가 크게 상승할 뿐이다. 우리가 시인의 여행 산문집을 읽는 까닭은 여행지에서의 시인은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없는 예민한 감각이 즉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시인의 특별한 감각이 그려내는 평범한 일상과 특별하지 않은 풍경이 나른한 나의 감각을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소박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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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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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까지만 하더라도 한낮 기온은 조금 더운 감이 없지 않았으나 아침, 저녁 기온은 제법 낮았었다. 나는 화요일 아침에도 월요일에 입었던 도톰한 운동복을 그대로 챙겨 입고 아침 운동을 나섰는데, 등산로 입구의 계단을 채 오르기도 전에 막심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보다 10도는 높아졌을 것 같은 날씨. 하늘은 잔뜩 흐렸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습도마저 높았다. 운동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등허리에 땀이 차서 운동복은 금세 축축해졌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느닷없다. 앞으로 기온은 차츰 올라 소소리바람이 치는 어느 가을날 아침, 열어 두었던 안방 창문을 서둘러 닫을 때까지 우리는 한동안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에 시달릴 것이다.


그렇게 산의 초입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던 나는 산의 능선에 있는 산스장에서 땀범벅이 된 몸으로 운동을 시작하려는데 땀냄새를 맡은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귓가를 맴돌았다. '벌써 모기라니!' 어찌어찌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데 목이 쉰 듯한 멧비둘기가 '구구구구' 울었다. 백수린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다 읽은 지가 여러 날 지났는데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빴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나의 천성적인 게으름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여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뒤라스를 읽던 여름을 기억한다. 눈부신 어느 날, 불탄 책 한 권을 발견한 소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글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 소년은 책을 읽어나가며 인생이란 헛되고 헛될 뿐이라는 삶의 비밀을 깨닫고 어른이 되어버린다. 파괴와 결별을 겪으며 어른이 되기 전 아직 모든 것이 완벽했던 유년 시절의 한순간을 그리는 이야기. 뒤라스의 글을 읽고 번역하던 날들의 여름은 아름답고, 덧없는 계절이었다."  (p.32)


1부 '나의 작고 환한 방', 2부 '산책하는 기분',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들려주는 양 담백한 문체로 부드럽게 이끌어 간다. M 이모를 통해 알게 된 언덕 위의 작은 동네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 작가가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과 공동주택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월동준비며 제설작업, 재개발로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르는 동네의 현실 등을 담담히 그리고 있는 1부와 작가가 17년 동안 함께 했던 반려견 '봉봉'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한 소회를 담은 2부, 한 사람의 '여성' 혹은 '여성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자각과 한계를 다루는 3부. 어쩌면 그것은 특별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특별하지 않은 독자들의 삶에 슬몃 얹어 놓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이윽고 이제 5월은 내가 사랑하는 두 명의 사람이 태어났고, 내가 사랑하는 두 명의 사람이 떠난 계절이 되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물론 그 일들은 모두 각기 다른 해에 일어났지만 앞으로 내가 갖게 될 모든 달력에 그들의 생生과 사死는 열흘도 채 되지 못하는 짧은 시간 안에 전부 기록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5월이 되면 어김없이 매번 이 사실을 떠올리리라. 인생이란 탄생과 죽음 사이를 날아가는 화살이라는 사실을. 그 가냘픈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과녁에 꽂힌다. 하지만 우리는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p.161~p.162)


내가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의 리뷰를 쓰기로 작정하고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을 억지로 끌어모으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유튜브 영상에서 보는 봉하마을은 노란 물결의 추모 인파로 가득하고 나는 문득 '사람의 변화도, 계절의 변화도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어느 날 당신 곁에서 누군가가 떠나듯 벌써부터 치솟는 여름 더위에 대한 공포는 어느 가을날 아침의 소소리바람과 함께 멈출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단단한 과거 속에 갇힐 것이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스무 살이었던 나의 빈곤한 상상 속 마흔과는 다르지만 나의 40대가 즐겁고 신나는 모험으로 가득하리란 걸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p.224~p.225)


사나흘 더웠던 날씨는 오늘 다시 수그러들었다. 때 이른 더위가 미안했던지 주말을 맞는 사람들에게 선선한 날씨를 선물처럼 풀어놓는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한 주를 살아냈다. 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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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의 시대 - 미래 화폐의 승자가 만들어낼 거대한 부의 물결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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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반쯤 전, 그러니까 2021년 9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올린 경험이 있다. 로또복권은 사지도 않지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여담이지만 내가 내 돈을 내고 로또복권을 샀던 건 지금껏 살면서 두세 번쯤 된다. 처음 로또복권을 샀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로또복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창기의 어느 날 은행(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주택은행)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동기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서 거금(?) 1만 원을 투자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한 게임당 가격이 2,000원이었고, 복권 담당이었던 친구는 반 강제적으로 1만 원의 복권 구입을 종용했었다. 그 후에 두어 번 샀던 것은 주로 회식이 파한 자리에서 삼삼오오 편의점에 들러 서로의 행운을 점쳐보기 위한 하나의 재미 혹은 놀이 차원에서였다.


복권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샛길로 빠졌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2021년 당시 나는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많지 않은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귀가 얇은 사람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코로나 시기에 주식에 투자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나는 그 돈의 일부를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게 일평균 거래금액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일평균 거래액이 주식시장의 거래액을 초과하였다는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 돈은 역시 돈이 모이는 곳에서 벌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이나 단순한 인간이다. 투자라는 게 사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 일인데...


나는 그렇게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투자금 전액을 통장으로 이체했고, 묘하게도 내가 암호화폐에서 손을 뗀 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도 연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후 암호화폐는 나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적어도 2024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트럼프의 재선 이후 1억 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야말로 쳐다볼 수 없는 넘사벽의 투자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경제 스토리텔러이자 비트코인 투자자이기도 한 김창익이 쓴 <비트코인의 시대>를 읽어보자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짐작했겠지만 투자는 과거 데이터와 미래 전망에 대한 함수다. 2025년 초 비트코인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비트코인이 큰 폭으로 올랐고, 이 같은 추세가 적어도 당분간 유사하게 반복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p.27)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테지만 책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암호화폐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화폐의 본질을 파헤치고, 비트코인의 달러 대체 가능성과 비트코인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변화 및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트코인 현상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트코인이 직면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너지 소비 문제, 확장성 문제, 규제 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의 영웅 서사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비트코인은 페트로달러라는 구체제의 모순에서 태동했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와 비트코인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능케 한 이유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몰락시킨 페트로달러 체제, 즉 세계화의 종식을 선언하며 미국인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p.143)


책의 목차를 읽어 보면 대략적인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1장 '비트코인,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되다', 2장 '비트코인은 오를 수밖에 없다', 3장 '트럼프는 왜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었나', 4장 '비트코인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5장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6장 '비트코인의 시대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점에서 왜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 즉 이 시대를 왜 비트코인 시대로 명명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국면이 지나면 비트코인 투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인플레이션 헤징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 관점에서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개미들의 영역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이때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p.396 '에필로그' 중에서)


계엄령 이후 대통령의 파면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선 국면에 있는 우리나라는 모든 게 불안정한 시기이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국에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 경제는 극도의 혼란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투기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변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전에는 비트코인이라면 말도 꺼내기 전에 손사래부터 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투자 방법과 전망을 묻는 걸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익의 저서 <비트코인의 시대>는 비트코인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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