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색환시행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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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를 겹겹이 쌓아 올림으로써 작품에 얽힌 전설과 '저주'의 효력을 견고하게 하는 <밤이 끝나는 곳>.

역시 끌린다.

그렇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꺼림칙한 것에 홀리고 불길한 것에 끌려가는 법이다.                p.75


사람들 사이에서 ‘저주받은 작품’으로 알려진 소설이 있다. <밤이 끝나는 곳>이라는 소설을 영상으로 제작하려고 하면 재앙과 같은 사건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몇 년에 한 번은 이 작품을 영상화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세트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생겨 배우와 스태프들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시작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한 각본가가 그 직후에 자살하는 바람에 제작이 엎어진 경우도 있었고, 배우가 다른 배우를 죽이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져 촬영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으며, 화재 장면을 찍고 있을 때 카메라맨이 급사한 경우도 있었으니, 정말 작품에 누군가 저주라도 내린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밤이 끝나는 곳>은 베일에 싸인 작가 메시아이 아즈사가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곽 '추월장'에서 세 명의 엄마와 살았던 '나'의 회상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기묘한 분위기의 환상 소설이다. 세 명의 엄마는 엄마이면서 엄마가 아니다. 낳아준 엄마는 종일 꼼짝 않고 앉아서 새장만 바라보고 있고, 호적상 엄마는 무표정으로 여관 카운터를 보고 있으며, 공부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실질적으로 키워준 엄마가 있다. 낳아준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키워준 엄마도 어딘가 비뚤어져 있어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고, 표면상의 엄마는 체면치레를 하기 위한 행동밖에 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혼자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어느 날부터인가 눈으로 본 것을 스케치하는 법을 배웠고, 그때부터 종종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시초가 되고 만다. 유혈이 낭자하고 섬뜩하지만 어딘가 마음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둔색환시행>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마음 또한 사로잡는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멈출 수는 없었을까. 피할 수는 없었을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뉴스를 보고 안타까워서 의문이 들어.

하지만 본인들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을 테지.

피할 수 없어. 벗어날 수도 없어.

누군가 수건을 던져주는 사람이 없는 한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어코 그곳에 다다르는 수밖에 없네. 그런 상황도 확실히 존재하지.

그 두 사람도 그런 걸 봐버린 게 아닐까.

그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은 마에 홀려버린 게 아닐까.           p.482


《둔색환시행》은 온다 리쿠가 “일본에는 영화감독들이 욕심내지만 막상 판권을 사고 작업에 들어가면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하게 되는 저주에 걸린 소설이 있다는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된 소설로 무려 15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이 설정에 맞추어 작품 속의 작품 개념으로 짝을 이뤄 쓰인 소설 《밤이 끝나는 곳》도 함께 출간되었다. 리버시블 커버에 작가 이름을 메시아이 아즈사라고 표기한 것까지 실제하는 작품처럼 완벽하게 만들었다. 《밤이 끝나는 곳》은 288페이지, 《둔색환시행》은 652페이지이다. 먼저 저주 받은 소설인 《밤이 끝나는 곳》을 읽고,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여정을 담은 《둔색환시행》을 읽은 다음, 다시 《밤이 끝나는 곳》을 읽으면 더 재미있다고 해서 <밤이 끝나는 곳>을 먼저 읽어 보았다. 하지만 <둔색환시행> 중간 중간 <밤이 끝나는 곳>의 본문 일부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꼭 먼저 읽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하다. 


소설가인 주인공 고즈에는 변호사인 남편의 소개로 <밤이 끝나는 곳>의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2주간의 크루즈 여행에 참석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재혼이었는데, 남편의 전처가 해당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자살한 작가였다.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은 열 명 정도로 몇몇은 친척, 혈연관계였고, 모두를 연결하는 매개체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이다. 영화감독, 여배우, 프로듀서, 영화 평론가, 출판 편집자, 만화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소설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집착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고즈에는 관계자들을 취재해 일종의 논픽션을 쓸 생각인데, 그들을 통해 소설에 얽힌 새로운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작품을 둘러싼 새로운 해석을 비롯해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사고들, 그리고 딱 한 작품만 발표하고 사라져버린 작가 메시아이 아즈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 작품의 제목인 <둔색환시행>은 모호함의 세계와 크루즈 여행의 검은 바다를 상징하는 둔색(鈍色), 그리고 선상 밀실 미스터리를 향한 환시행(幻視行)이 조합되어 만들어졌다. 온다리쿠는 ‘둔색’이라는 말은 그 애매함을 나타내려고 만들었다며, '애매함을 견디는' 것이 어른이 갖춰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아무리 마음이 불편해도 아무도 도망갈 수 없는 완벽한 밀실인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거짓말의 탑 위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여정이자, 하나의 창작물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창작자로서의 철학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메타픽션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새로운 대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 보시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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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를 가꾸고 돌보는 그림
마키토이 지음 / 현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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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이라 여겼던 사소한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행복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날부터

나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p.215


마키토이 작가가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365일 매일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로 '종이로 하는 드로잉'을 통해 식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식물들을 데려와 키우다가 고양이 덕분에 그것이 어렵게 되자 그림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검은 펜으로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1년 반 정도 반복하니 단조롭고 지루해져 알록달록 컬러가 있는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그리면서 기법을 달리했다. 가위로 오리다 보니 본래 식물에서 형태가 단순화되었고, 실제 식물이 아닌 상상의 식물도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숲 속의 귀요미 버섯, 하늘하늘 고운 양귀비, 망사 드레스를 입은 망태 버섯, 작고 앙증맞은 은방울꽃, 포니테일 팜 나무, 땡땡이 무늬가 사랑스러운 베고니아 마큘라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매일 만든 작품들이 일요일에는 그 주의 정원으로 재탄생한다.  자연이라는 팔레트에서 컬러를 고르고 조합하는 일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색감과 형태로 만나는 식물들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일 한 장씩 그린 그림이 모여 한 주의 정원이 만들어지는 컨셉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하루의 식물들이 일주일의 정원에서 배치된 모습 또한 새로운 작품이 되어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걸.

매일 걷고 몸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내가 절대로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이뤄내는 일.

가능한 기적.                p.369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매일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되는 것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마키토이의 작품들도 근사하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책도 아주 예쁘게 만들어졌다. 펼침성이 좋은 누드각양장으로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제본의 간섭 없이 작품들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에 이르는 시간이 담겨 있는데, 계절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주로 꽃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줄무늬가 매력적인 수박 페페, 아프리카 괴근 식물인 스테파니아 에렉타, 길쭉한 잎이 매력적인 필로덴드론 파트리시에, 물방울 무늬가 사랑스러운 베고니아 마큘라타, 잎맥이 선명하고 예쁜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그리고 엄청난 크기로 자라나는 몬스테라까지... 익숙한 식물들도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무엇이든 해야 무슨 일이든 생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니 과정이 어떻든 계속해나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문제긴 하다. 마키토이 작가는 매일 한 장씩 작품을 채워가는 것을 '나'라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 여기고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식물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너무 와닿고, 공감이 되고, 예뻐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식물들을 돌보는 건데... 가장 반가운 순간은 조용했던 아이가 신엽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얼음처럼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새순을 올리느라 너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식물들처럼 천천히, 느리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매일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뭔가를 일 년간 매일 같은 시간을 들여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끔은 막막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에는 뭐든 하나 정도는 꾸준히 하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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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플레임 1 엠피리언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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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온갖 시인들이 찬양하는 것처럼 엄청난 행복감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건 상대방도 나를 사랑할 때뿐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내가 아끼는 모든 사람과 모든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비밀을 지키고 있다면? 사랑은 결코 얌전히 죽어주지 않는다. 그저 너무나도 비참한 절망으로 바뀔 뿐이다. 내 가슴속의 아픔이 바로 그것이다. 비참함. 왜냐하면 사랑의 뿌리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내일에 대한 희망. 가능성에 대한 희망. 내 모든 것을 믿고 맡긴 사람이 그 신뢰를 부드럽게 보살피고 지킬 것이라는 희망. 희망이라는 망할 것은 드래곤보다 더 죽이기 힘들다.               p.32


400년간 전쟁 중인 이 나라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20살이 되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는 법이 있다.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는 힐러, 서기, 보병, 라이더라는 4개의 분과가 있었고, 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라이더들이 위계상으로 가장 높았다. 그 속에서 무기로 만들어지고 연마되는 그들은 포로미엘 왕국과 그들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벌이는 맹렬한 침략 시도로부터 국경을 지켜야 한다. 당연히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 영리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평생 서기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령관인 어머니에 의해 자의와는 상관없이 라이더 분과에 지원하게 된다. 오빠와 언니 모두 뛰어난 라이더였는데도, 바이올렛은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병을 갖고 있어 이곳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너무도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던 바이올렛은 매 순간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를 되뇌이며 버텨낸다. 




그렇게 자신을 노리는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암투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바이올렛은 2학년이 된다. 난간다리를 건너던 순진한 여자애는 1년 동안 모든 시련을 견뎌내며 살아남아 이제 조금씩 드래곤 라이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6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빠가 살아서 등장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바이올렛은 숨겨졌던 추악한 역사와 믿었던 친구의 배신을 마주하며 새롭게 등장하는 난관들을 헤쳐 나간다. 반역자의 아들인 제이든과의 관계도 더욱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그의 끝없는 비밀과 침묵은 바이올렛은 점점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포스 윙>이 바스지아스 군사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었다면, <아이언 플레임>은 학교 밖의 새로운 환경에서 위기에 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어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켜야 하는 드래곤 라이더들은 과연 누구를 믿고 누구와 함께 싸워야 할 것인가. 자,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내 핏속에 두려움이 아닌 희망이 흘렀다.

우린 해낼 수 있다. 해내고 있다. 최초의 여섯이 보호석을 활성화시킨 방법을 진술한 책을 손에 넣었고, 그다음에는 제이든을 설득해서 코딘으로 날아가 루미너리를 확보할 것이다. 제이든이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결국엔 그렇게 할 것이다. 휴가를 받을 방법만 생각해내면 된다. 그때까지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끼리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무기를 밀수해서 내보내고, 나바르 안에서 입지를 쌓을 것이다. 아레티아는 며칠 안에 보호막을 갖게 될 것이다. 확신이 있었다.              p.441


<해리포터>와 <트롸일라잇>을 잇는 작품이라는 호평과 함께 아마존에서 엄청난 화제였던 바로 그 작품! ‘엠피리언(Empyrean)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포스윙>에 이어 <아이언 플레임>은 두 권으로 나눠 1권이 이번에 나왔고, 2권은 12월에 출간되고, 세 번째 이야기 <오닉스 스톰>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포스윙>이 두툼한 하드커버에 무려 662페이지라는 분량이었기에, <아이언 플레임>이 분권되어 나오니 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1권이 488페이지나 되지만 말이다. 특히나 이번에는 깜짝 선물로 정식 표지 안쪽에 일러스트 버전 표지가 숨겨져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포스 윙>은 로판계의 쓰리스타 '에나 작가'의 버전으로, <아이언 플레임 1>은 <데못죽> 일러스트레이터 '텡 작가'의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41만 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고, 뉴욕타임스 66주 연속 베스트셀러, 시리즈 드라마 제작 중, 그리고 각종 사이트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독자들을 매혹시킬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와 마법, 음모와 액션,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골고루 보여주며 드래곤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로서도 매력적이고, 작고 약한 한 소녀의 성장 서사로도 흥미진진하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한 생존 투쟁을 하기엔 너무도 작고 연약한 존재였던 바이올렛은 자신의 뛰어난 머리와 기억력을 이용해 온갖 방법들을 찾아내고, 드래곤의 선택 이후 제이든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오랜 전쟁을 끝낼 최강의 무기로 연마될 드래곤 라이더의 진짜 훈련은 2학년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점도 이 작품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판타지, 모험, 서스펜스와 로맨스... 그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치명적이고 중독성있는 이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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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윌 파인드 유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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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로 맨해튼의 맑은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빨간색 조명으로 빛나고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숨 막히게 아름답다. 전부 다 그렇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고마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길들여졌을 뿐이다. 우리는 익숙해진 것을 당연히 여긴다. 인간의 본성이다. 이 멋진 야경을 좀 더 즐기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감옥에 갇힌 신세로 살아도 상관없었다. 매슈가 죽었고, 그건 내 탓이었기 때문에 시궁창 같은 삶을 살아도 만족했다.               p.230~231


데이비드 버로스는 자신의 세 살짜리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5년째 복역 중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으며, 무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잘못이므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 시궁창 같은 감옥에서 해방된다 해도 자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자신의 아들이 여전히 죽고 없는 세상에서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5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 면회를 신청하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혼한 아내의 동생 레이철이 사진 한 장을 보여줬고, 그 속에 한 소년이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아들 매슈가, 여덟 살 소년의 모습으로. 


매슈는 선천성 혈관종으로 오른쪽 얼굴에 모반이 있었다. 사진 속 소년 역시 더 작고 색이 옅기는 하지만 같은 위치에 모반이 있었다. 기자인 레이철은 보스턴 경찰국의 전문가에게 미래 얼굴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로 매슈의 5년 후 모습을 보여달라고 의뢰했고, 그것이 사진 속 아이와 거의 일치했던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매슈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건 이전에 데이비드와 레이철은 각별히 사이가 좋은 형부와 처제 사이였었다. 데이비드는 아들이 살아 있다고 확신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말한다. 레이철과 그가 이 사진 속 아이에 대해 더 알아내야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대부이기도 한 교도소장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그리고 목숨을 건 탈출을 계획하는데, 과연 그는 아들을 되찾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누가 그를 함정에 빠뜨린 걸까. 그의 아들은 정말 살아 있는 것일까? 





가족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 가족 말이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걸 부인하는 사람은 미쳤거나 거짓말쟁이다. 말로는 막연한 대의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대의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그렇고 사실은 남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게 편리할 때를 제외하고. 안 믿긴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자문해 보라. 당신의 자식 혹은 손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몇 명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가? 한 명? 다섯 명? 열 명? 백만 명?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한다면 그날 밤 거트루드가 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p.386


이 이야기는 데이비드의 1인칭 시점과 그외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번갈아 교차 진행시키며 빠르게 진행된다. 재미있는 건 이 롤로코스터를 출발시켰던 첫 문장이다. “나는 내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5년째 종신형을 복역 중이다. 스포일러 경고: 내가 죽이지 않았다.”라는 데이비드의 고백으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었고, 결정적인 증언을 한 증인까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비드를 믿었던 가까운 이들조차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던 거라고, 의도하지 않았던 범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 날 죽었다고 믿었던 그의 아들이 살아서 어딘가에 있다고 의심될 만한 사진이 있었고,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사투가 시작된다.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할런 코벤의 신작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다. 수많은 등장 인물은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있고, 결국에는 퍼즐처럼 연결이 된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플롯은 막판에 가서야 단순하게 정리가 되며, 끝을 향해 달릴 때까지 지루할 틈이란 단 한 순간도 없다. 비밀과 배신, 반전과 폭로, 위선과 거짓말, 그리고 스펙터클한 액션까지 골고루 잘 담겨 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다. FBI 콤비와 경찰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는 가운데, 데이비드는 자신의 과거로 향한다.  오직 '내 아들을 구한다.'는 목적을 위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며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쓴다. 자본의 논리에 움직이는 현대 사회에서 상류층이 범죄에 개입되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 없다. 그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과 가족을 지켜낼 지 지켜보는 일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현실성때문일 것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 없이, 모든 캐릭터와 사건이 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가는, 잘 만든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할런 코벤의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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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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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게 정묘했다. 어떻게 이런 필치가 가능할까... 이런 작품, 나라면 평생 걸릴지도 모른다. 뭔가 찰나의 덧없음이 있다. 가령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다면 실로 한순간일 터인데, 그 한순간이 이렇듯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언제까지고 그곳에 머문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훌륭하게 그리려는 생각도, 사실적으로 옮기려는 의도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다 찍은 사진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방에 걸어봤어, 하고 말하는 듯한, 내일 다시 찾아오면 그림은 사라지고 벽만 남아 있을 것 같은, 불안정한, 순간의 흔들림 같은 무언가가 그림을 숨 쉬게 했다. 나는 불가해한 매력에 사로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p.37


카논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자신의 그림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광고 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엉뚱한 요구를 해대는 상사와 불륜이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게 되자 그만 질려서 퇴사를 하게 된다. 이후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 편집부에 수습기자로 들어가게 되지만, 기획이 채택될 때까지는 딱히 보수가 있는 게 아니라 불안정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 화가들을 인터뷰하고, 작품을 취재하며 잊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특집기사 작업을 맡게 되는데, 뱅크시처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화제의 작가에 대한 심층 탐구 기획이었다. 


얼굴도 이력도 공개하지 않는 수수께끼의 화가가 있다. 그가 그린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얘기가 떠돌아 ‘사신’이라 불리며 도시전설의 주인공처럼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작품이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고, 임종 직전의 인물을 그리거나 해부중인 인체를 모티프로 한 작품도 있었다. 그가 그린 작품의 모델들은 전부 이미 세상에 없다. 게다가 그에게는 인터넷상의 가십 따위는 깨끗이 잊게 만드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오라가 있어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루었고,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천재 복면 화가의 이야기를 쫓는 아트 미스터리이다.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는 소설가로서도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는데, 이번 작품으로 첫 미스터리 소설에 도전했다. 수습기자인 카논은 본명도,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복면 화가의 정체를 추적하게 되면서 점점 더 그의 작품과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모습은 닮기 어렵고 뜻은 닮기 쉬우니."

"그게 뭐예요?" 가세가 물었다.

"다카나시 씨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 마음을 흉내 내기는 쉽지만 형상을 흉내 내는 일이야말로 어렵다는 뜻이래. 어떻게 생각해?"

가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마음과 형상을 분리해 생각한 적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잘 넘기기는. 분명 그는 그게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리라....... 아마도. 나는 평범한 인간이라 잘 모르지만.               p.377


카논은 고교 미술부 후배였던 가세를 취재 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천재 복면 화가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에도 종종 동행하게 되는데, 어느 날 가세가 이런 말을 한다. "뭔가 그, 언뜻 현실 세계와 상관없어 보이는, 그저 망상이나 꿈 같은 그것들이 의외로 현실에 이리저리 개입해서 때로 이 세계를 바꿔버리는 일도 있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요."라고.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실은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고, 나아가 세계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영 알쏭달쏭한 이 말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일순간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그림 작품처럼, 뭔가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에 새겨지는 게 있는 그런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저주를 그리는 사신이라는 금단의 도시전설을 따라가는 미스터리 서사 자체도 흥미진진했고,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서적인 부분도 어딘가 설레는 부분이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무언가 와락 전해지는 그런 그림과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이와이 슌지는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순식간에 매혹시키곤 하는데, 그런 감각을 소설에서 표현할 수 있을까, 에서 이 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실제로 소설을 집필하는 데 모티프가 된 미에노 케이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가 표지 이미지로 사용되었는데,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도 상당히 큰 도움을 주는 그림이었다. 이와이 슌지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면모와 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이 작품을 더욱 독특한 미스터리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와이 슌지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색다른 미스터리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와이 슌지의 작품들을 좋아했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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