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 플랜더스
다니엘 디포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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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빠 말이 참 놀랍네." 그의 여동생이 말했다. “하지만 베티에겐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는데, 그로써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요즘은 결혼 시장이 우리 여자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말하자면 어떤 아가씨가 미모, 좋은 가문, 훌륭한 가정교육, 위트, 양식, 예의범절, 겸손함 등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아니 최대한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해도, 돈 한푼 없는 빈털터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거지. 앞에서 말한 모든 덕목이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요새는 오로지 돈만이 여자의 추천장이야. 이익은 몽땅 남자가 다 차지하고.”                  p.38~39


<로빈슨 크루소>라는 고전 명작으로 알려진 대니얼 디포의 또 다른 작품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1719년 작품이고, <몰 플랜더스>는 172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28년간 홀로 무인도를 개척해 나가는 한 남자에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디포는 수차례 사업에 실패해 큰 빚을 지고 평생 고생했고, 채무로 인해 여러 차례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태어난 장소이자 결국 갇히게 되는 장소인 뉴게이트 감옥이 바로 같은 장소이다. 실제로 디포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접하게 된 갖가지 범죄자가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여주인공의 일생을 몇줄의 문장으로 오약해 두었다는 점이다. 뉴게이트 감옥에서 태어나 육십여 년에 걸친 파란만장한 생애 동안 어린 시절을 제외한다면 십이 년은 매춘부로, 다섯 번은 남편의 아내로(그중 한 번은 친동생의 아내였다), 십이 년은 절도범으로, 팔 년은 버지니아의 중범죄 유형수로 살았으며, 마침내 부자가 되어 정직하게 살다 회개자로 삶을 마쳤다. 단 네 줄의 문장으로 이 캐릭터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짐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 설명문이라면 그 의도가 적중한 셈이다. 감옥에서 태어나 하녀, 정부, 매춘부, 소매치기, 좀도둑 생활을 전전하다 유배형을 선고받는 캐릭터라니.... 이토록 드라마틱한 삶이 또 있을까. 




이 무렵 나는 정말이지 참으로 행복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범죄생활을 그만둘 때가 되었음을 자각하기만 했다면 그리될 수 있었다는 소리다. 내 선생은 종종 내가 영국의 같은 업계 사람들 중 가장 부자라고 말하곤 했고 나도 그렇다고 믿었다. 내게는 현금만 700파운드에 그것 말고도 옷들과 반지들, 금은제 식기류, 금시계 두 개가 더 있었다. 물론 모두 훔친 것들이었다. 아아! 그때라도 회개의 은총을 입었더라면 그동안 저질러온 어리석은 짓들을 돌아다보며 다소라도 개심할 여지가 남아 있었을 텐데.                   p.381


몰 플랜더스의 어머니는 절도죄라고 이름 붙일 것도 없는 지극히 가벼운 도둑질로 중범죄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에는 사소한 절도죄도 사형부터 선고하는 게 관례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유배형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임신을 이유로 감형을 간청했고, 칠 개월간 형 집행을 면제받았는데 그 사이에 몰 플랜더스가 태어났다. 아이를 낳고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는데, 덕분에 몰 플랜더스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아가 된 셈이다. 다행히 좋은 '보모'를 만나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어느 부유한 부인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나이는 어렸지만 해야 할 일을 민첩하게 잘했고, 훌륭한 바느질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예쁘기까지 했다. 


결국 아름다운 미모와 허영심이 그 집의 두 아들과 엮이게 만들고 만다. 큰아들의 정부가 되고, 막내아들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 생활 5년 차에 남편이 죽게 된다. 플랜더스 부인이 된 이후로 여러 남편을 거치고, 아이를 낳으며 살게 되는데 그 과정 또한 한 사람의 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하다. 여러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결국엔 딸린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게 되어 12년간 도둑 노릇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잡혀 감옥에 가고, 사형 대신 유배형을 받게 된다. 감옥에서 태어나 바로 고아가 된 소녀가 일흔이 될 때까지의 삶이 오백 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에 담겨 있다. 고전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줄만한 드라마틱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몰 플랜더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실존 인물의 자서전인 것처럼 회고하는 방식으로 쓰여있다. 작품이 시작되기 전에 작가의 긴 서문 또한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런 수법은 18세기 초반의 산문 픽션 작가들, 특히 대니얼 디포가 즐겨 쓰던 수법이라고 한다. 실화라고 주장하지만 등장인물, 사건, 상황 등이 모두 허구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존 인물의 회고록이라고 착각해도 좋을만큼 현실감 넘치는 매력적인 서사임에는 분명하다. 이 작품은 사실주의 소설의 효시로 꼽히며 디포를 '영국소설의 아버지'로 자리매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는 디포에 대해 '외국 작품을 모방하거나 각색하지 않고 문학적 모델 없이 창작활동을 벌인 최초의 영국 작가'라고 말했으며, 버지니아 울프는 이 작품에 대해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영국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주인공 캐릭터이다. 덕분에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자립적인 여성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계속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몰 플랜더스라는 캐릭터는 1718년에 교수형을 당한 악명 높은 여자 소매치기 몰 킹을 모델로 탄생했다고 한다. 가진 것도 의지할 것도 없는 밑바닥 인생에서 사회적 경제적 자립을 쟁취하고자 고군분투한 서사로서도 흥미롭고, 온갖 불리한 악조건에 내몰린 여성의 당대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두툼한 페이지를 자랑하는 고전임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점도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은 이유이다. 재미있는 고전을 찾고 있다면 꼭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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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 플랜더스
다니엘 디포 지음, 류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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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주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보여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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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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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러분에게 남은 시간은 2,500주, 길어야 3,000주입니다.” 네이더가 젊은 청중에게 말했다. 그들은 남은 인생을 활용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어떤 마음이 들길 바랄까? 네이더는 ‘하찮지만 값비싼 일’을 들이대며 최고 금액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 재능을 팔아넘기는 식으로 자신을 막 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분은 인생을 허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p.111


<휴먼 카인드>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통념에 반기를 들며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을 현실의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선한 야망(Moral Ambition)’을 제시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다. 저자는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재능과 시간을 구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분하고 의미 없는 일이나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직업에 매여 있는 당신에게,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자기최면을 끝내라고 말이다. 그는 세상을 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선한 야망'이라 지칭하고, 어떻게 용기를 내고, 행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학자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브레흐만은 이 책에서 인류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활동가들의 유산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어떻게 현실의 변화로 연결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야망과 이상이 만나는 커리어를 설계하고, 먼저 용기를 내고, 타인에게 행동을 요청하는 것으로 선한 야망을 전염시키는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혁신을 둘러싼 다섯 가지 착각으로 인지의 착각, 선의라는 착각, 올바른 명분의 착각, 순수함의 착각, 시너지의 착각을 제시하며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저자는 말한다. 재능은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야망은 날것의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요한 것은 이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라고 말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막대한 짐을 짊어져야 한다. 우연히 21세기를 살게 된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만큼 미래를 구축할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이 몇 세기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이 세상에 태어난 1170억 명 중 이 세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1퍼센트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 1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곳에 있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지만 인정하자. 우리는 지금 역사적 기로에 서 있으며 미래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p.316~317


앨라배마주 몽고베리의 어느 평범한 날, 재봉사였던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 탔다. 세 정거장이 지났을 때, 버스 기사는 흑인 승객들에게 말했다. 백인 승객들이 앉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버스에 있던 흑인 승객들은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파크스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의 작은 저항은 흑인들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시켰고 결국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과격한 시위 대신, 차분한 영웅이 되어 백인들의 시위 참여를 도모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사회운동에 전념해왔었다. 불의를 멈추기 위해 단순한 저항이 아닌 전략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바꾼 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을 끝까지 이어간 사람들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선한 야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은 행동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다음 세대로 이어질 서사의 일부가 되라, 미래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라, 시대가 요구하는 돌격대의 일원이 되어라... 등 미래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대단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자기 자신을 바꾸도록 독려하는 자기계발서는 많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대단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저자의 대담한 선언이 충분히 그럴 듯 하게 느껴지고, 선한 야망이 실현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고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선한 인간 본성은 한 사람의 선한 행동으로 시작되어 바이러스처럼 퍼져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재능의 낭비를 멈추고 변화를 일으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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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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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 영원한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인다. 열심히 말을 걸어 보고, 기분을 추측하고, 왜 화가 낫는지 몰라 쩔쩔매고, 먹은 것과 싼 것을 토대로 건강 상태를 짐작하고, 서로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새로운 언어를 고안해 보고, 다투기도 하고,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 반응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천천히 길들어 가는 것이다.             김영글, '오전의 고양이' 중에서, p.18~19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이제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식물을 돌보는 이들에게는 '식집사'라는 애칭이 붙었다. 그만큼 동물과 식물이 취향이나 소유의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돌보고 관계를 맺는 일은 끊임없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게 하고, 한계와 마주치기도 하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과정이다. 


이 책은 『시사IN』에 2년간 연재되었던 칼럼 '반려인의 오후'를 다듬고 몇 편의 글을 보태 엮은 것이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각각 고양이, 식물, 개와 함께한 이들의 일상을 담아 진정한 '반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미술작가 김영글은 요다, 모래, 녹두,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길고양이 셋과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이루었다. <오전의 고양이>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작은 감동과 각성과 분투가 담겨 있다. 고양이를 인간의 뜻대로 훈련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 행동을 유도하거나 반응을 예측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모레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고양이로 필요할 때는 애정과 관심을 요구하며 애교를 부리지만,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칠한 태도로 사람의 말을 무시한다. 겁이 많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요다, 식탐 많고 순한 녹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공존하고 있다. 




식물을 나름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식물의 삶에 연결된 크고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이 '작은' 혹은 '약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임을 알아간다. 이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그러므로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을 연결해 나가는 일일 테다. 인간이 자신과 전혀 다른 식물의 모습으로부터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식물이 나름의 인간이고, 인간 역시 나름의 식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희제, '오후의 식물' 중에서, p.195


문화비평가 안희제는 손에 물과 흙을 묻히며 매일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상을 통해 플랜테리어가 아닌 홈 가드닝으로 식물에 다가간다. <오후의 식물>에서는 식물과의 공존을 통해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나날이 그려져 있다. 식물은 전보다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 노년층의 취미로 많이 여겨져 오던 식물 기르기가 이제 올드한 것이 아니라 힙한 취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반려식물과의 생활은 즐거움만이 아니라 동네에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안겨준다. 깊은 관찰과 일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책임을 식물과의 삶 안에서 고민할 수 있는 글이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만화가 정우열은 노견 풋코와 긴 세월을 함께해왔다. <저녁의 강아지>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별의 과정이 담겨 있다. 동네 빵집을 향해 질주하던 풋코는 열여덟 살에 접어들며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고, 서서히 다가오는 끝을 준비해 간다.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족처럼 지냈던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로 보냈던 적이 있기에, 나 역시 그 말을 오래도록 믿어왔다. 굉장히 오래 우리 곁에 있어 노견이 되어 떠났기에, 막판에는 여기저기 불편한 부분이 많은 상태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간 우리 토토는 불편한 부분 하나 없이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맞아줄 거라고, 그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존재와 '반려'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품이 많이 들고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와 함께 하려는 그 마음이 우리를 더 나은 어딘가로 이끌어 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돌봄과 생명에 대해, 진정한 반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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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는 소설 -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홍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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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똑바로 가는 공은 없어요."

말을 꺼낸 게 무안해질 만큼 차가운 대답이었다.

"제발 부탁인데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지 마쇼. 축구든 골프든 마찬가지야. 그런 건 전부 쓰잘데기없는 일이라고.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냥 인생을 제대로 살아."               - 김홍, '인생은 그라운드' 중에서, p.29


돔 구장 확충을 위한 국민 희망 체육 펀드는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사기라는 게 밝혀졌고, 개막전 당일 야구팬들은 경기장 출입구에 붙은 빨간색 가압류 딱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 프로 야구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로야구 관중수 1300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야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김홍 작가의 <인생은 그라운드>에서는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면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 적도 없고, 항상 뭘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야구가 전국민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야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인 아니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비롯해서 쇠락해 가는 탄광촌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도를 하고 있는 여학생, 익사할 뻔했던 기억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엄마의 수영 강습권으로 수영장에 들어서게 된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한파 속에서 골목을 헤매는 인턴 기자, 부상으로 일을 잃은 요가 강사 등 이 책에는 달리고, 버티고, 실수하고, 헤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포츠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한 승자들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몸으로 살아 내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발을 뻗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꺼이 발을 내미는 순간,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신발 끈을 묶으며 일어서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달려가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내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함일 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안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 주기를,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 김혜나, '가만히 바라보면' 중에서, p.223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작품들을 선별해서 엮어 왔다. '우정'을 소재로 함께 걷는 소설, '가족'을 소재로 끌어 안는 소설, '노동'을 주제로 땀 흘리는 소설, '이별'을 주제로 손 흔 드는 소설 '재난'을 테마로 기억하는 소설, '환경'을 테마로 숨 쉬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달려가는 소설>은 '스포츠'를 테마로 한 7편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김홍, 이수정, 김기태, 최아현, 김유담, 장류진, 김혜나 작가가 그려내는 야구, 수영, 역도, 풋살, 볼링, 쇼트트랙, 요가를 소재로 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혼자 하려는 고군분투, 우연히 양도받은 수영 강습권으로 어린 시절 호수에 빠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순간, 들어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서 시작한 역도,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죽은 오빠의 삶을 이해하게 하게 되는 경험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포츠에는 기록과 통계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며, 빛나는 장면들 뒤에는 오늘을 살기 위해 달리고, 헤엄치고, 버티는 몸의 서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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