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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를 가꾸고 돌보는 그림
마키토이 지음 / 현암사 / 2024년 10월
평점 :
지루함이라 여겼던 사소한 순간들이
지나고 보니 행복이었다는 걸 알게 된 날부터
나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p.215
마키토이 작가가 2022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365일 매일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로 '종이로 하는 드로잉'을 통해 식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식물들을 데려와 키우다가 고양이 덕분에 그것이 어렵게 되자 그림으로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검은 펜으로 드로잉을 시작했는데, 1년 반 정도 반복하니 단조롭고 지루해져 알록달록 컬러가 있는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그리면서 기법을 달리했다. 가위로 오리다 보니 본래 식물에서 형태가 단순화되었고, 실제 식물이 아닌 상상의 식물도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숲 속의 귀요미 버섯, 하늘하늘 고운 양귀비, 망사 드레스를 입은 망태 버섯, 작고 앙증맞은 은방울꽃, 포니테일 팜 나무, 땡땡이 무늬가 사랑스러운 베고니아 마큘라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매일 만든 작품들이 일요일에는 그 주의 정원으로 재탄생한다. 자연이라는 팔레트에서 컬러를 고르고 조합하는 일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색감과 형태로 만나는 식물들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일 한 장씩 그린 그림이 모여 한 주의 정원이 만들어지는 컨셉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하루의 식물들이 일주일의 정원에서 배치된 모습 또한 새로운 작품이 되어 감탄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없다는 걸.
매일 걷고 몸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내가 절대로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이뤄내는 일.
가능한 기적. p.369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매일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되는 것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마키토이의 작품들도 근사하지만, 그것을 담고 있는 책도 아주 예쁘게 만들어졌다. 펼침성이 좋은 누드각양장으로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제본의 간섭 없이 작품들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에 이르는 시간이 담겨 있는데, 계절의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주로 꽃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줄무늬가 매력적인 수박 페페, 아프리카 괴근 식물인 스테파니아 에렉타, 길쭉한 잎이 매력적인 필로덴드론 파트리시에, 물방울 무늬가 사랑스러운 베고니아 마큘라타, 잎맥이 선명하고 예쁜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그리고 엄청난 크기로 자라나는 몬스테라까지... 익숙한 식물들도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무엇이든 해야 무슨 일이든 생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니 과정이 어떻든 계속해나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문제긴 하다. 마키토이 작가는 매일 한 장씩 작품을 채워가는 것을 '나'라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 여기고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식물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마음이 너무 와닿고, 공감이 되고, 예뻐서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식물들을 돌보는 건데... 가장 반가운 순간은 조용했던 아이가 신엽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이다. 얼음처럼 가만히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새순을 올리느라 너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식물들처럼 천천히, 느리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매일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뭔가를 일 년간 매일 같은 시간을 들여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끔은 막막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에는 뭐든 하나 정도는 꾸준히 하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