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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고 말하기 -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의사소통에서 단어나 문장으로 구성되는 언어적 수단보다는 표정, 몸짓, 제스처, 눈맞춤, 자세, 터치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말하는 이의 태도나 표정이 맘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 말의 내용은 이해했지만, 내용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말의 내용은 전적으로 말하는 이의 책임이지만,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영역은 상당 부분 '상호작용적'입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공동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p.126~127
SNS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AI가 인간의 표현 방식을 모방하는 시대, 디지털 네트워크가 점점 확장될수록 정작 소통의 토대가 되는 비언어적 구조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쉽게 분노하며, 사소한 심리적 상처에도 흔들린다. '좋아요'라는 가짜 감탄, 분노와 적개심의 '어그로', 의미없는 억지 '추천' 등 자극적 맥락에 익숙해지면 진정한 감탄의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은 무엇일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이 책에서 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라는 소통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발달심리학, 진화인류학, 사회학 등의 연구를 넘나들며 감탄과 존중의 소통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소통이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율과 감각의 교차편집과 같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말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라고 하니, 나머지는 모두 비언어적 요소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늘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고, 상대와 소통하지 못해 어긋나고, SNS를 통해서 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소통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가 소통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소통에 문제가 많은 소통 전공의 심리학자'라고 소개한다. 그런 그가 소통에 관한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이다.

소통의 절반이 언어가 아닌 공간과 몸짓으로 완성된다면, 반대로 소통을 파괴하는 길 또한 명확해집니다. 상대가 필사적으로 허공에 그리는 생각의 지도를 싹 무시해버리면 됩니다. 상대방의 눈도 보지 않고, 손의 움직임도 보지 않는 겁니다. 상대방의 소통 시도를 무시하듯 정면을 응시하거나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는 이가 열심히 만들어내는 소통의 공간이 아주 간단히 무너져 내립니다. 함께 보기는 단순히 '같은 것을 본다'의 차원이 아닙니다. 상대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표정의 미세한 조율이 있어야 '함께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p.277~278
'강한 것'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이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책들이 사랑받으면서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한때 서점가를 휩쓸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진화의 최종 승자가 '다정한 자'인 이유, 이와 같은 친화력의 핵심은 '눈맞춤'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눈에만 있는 흰자위때문에, 인간이 지구를 정복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공막을 숨기기 때문에 눈동자와 구별이 어렵다. 시선의 방향을 다른 동물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간은 흰 공막으로 시선의 방향을 분명하게 노출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만, 인간에게는 복잡한 사회적 소통을 발달시키고 지구의 정복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타인과의 '함께 보기'를 가능케 하여 다른 유인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했다.
이 책은 이렇게 눈맞춤뿐만 아니라 터치,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 등 우리가 잃어버린 상호주관성의 원형 6가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다. 단순히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 개념을 현실과 충돌시키며 낯설고 예리한 각도로 세상과 인간을 읽어낸다. 미키마우스와 아톰의 눈동자가 특별한 이유, 신경심리학적으로 가짜 미소인 모나리자의 미소, 장난감이 세상의 축소판인 이유, 망하는 회사일수록 회의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큰 차이가 없는 MBTI의 진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소통'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대화의 기술, 관계를 살리는 칭찬법 등 공감과 소통, 감정 등을 표현하는 '기술'로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소통을 기술이 아닌 존재의 조건으로 재정의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통의 가장 오래된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인간만이 지닌 비언어적 소통의 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에서 자꾸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주관과 객관을 뛰어넘는 소통의 기초가 궁금하다면, AI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상호주관성을 되찾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