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엄마가
일리아나 잰더 지음, 안은주 옮김 / 리드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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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편지 안에 담긴 내용은 개인적이고 은밀해 보인다. 엄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내게 거의 말해 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사정이 있었어."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엄마의 소설을 읽어서 아는데, 그 사정은 엉망진창이었을 거다. 비평가들은 엄마가 '탁월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 그 상상력은 완전히 맛이 간 쪽에 가깝다.               p.24


베스트셀러 작가인 엄마가 사고로 죽었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팬들은 진심으로 슬퍼했고, 출판사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자체 홍보팀을 투입한 상태다. 신문들은 온갖 종류의 터무니없는 이론을 내세우며 헤드라인을 뽑아냈고, 추모식이 열리고 있는 추모관 밖으로 파파라치와 열성팬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런데 딸인 매켄지는 엄마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엄마와 친했던 적이 없었던 매켄지는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문학계에서는 뛰어난 천재였고, 팬들에게는 여왕이었지만, 아빠에겐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었고, 아빠 쪽 가족에겐 나쁜 년이었으며, 딸은 그런 엄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죽은 엄마로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비밀을 알고 싶니? 사랑을 담아, 엄마가.... 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죽은 엄마로부터 편지는 계속 오고, 결국 매켄지는 직접 과거를 조사해나가기 시작한다. 편지는 계속 이어졌지만, 어딘가 애매모호하고 이상했다. 엄마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원고의 필체와 확인해보니 분명 엄마의 필체가 맞긴 했다. 편지를 읽어 나갈수록 더 궁금한 것들만 늘어났다. 엄마는 살아 있을 때 마치 매의 눈으로 아빠를 지켜보는 것 같았고, 아빠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보이지 않게 조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빠한테 물어보더라도 아빠가 뭘 알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엄마는 이해가 안 가는 나쁜 년이었고, 뛰어난 천재였고, 팬들에게는 한없이 따스했다. 그래서 엄마의 시신이 발견된 후 며칠 동안 매켄지는 말문이 막힌 상태였다.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신의 삶에 갑자기 생긴 공허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슬퍼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편지가 계속 이어지면서 엄마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만큼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과연 죽은 엄마의 편지 속에 숨겨진 비밀은 뭘까.




"알았어, 하지만......" 이건 진짜 엉망이다.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겠는가? "그럼, 그녀는?" 나는 호수 쪽 어딘가를 향해 모호하게 고갯짓을 했다.

토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때때로 토냐는 그녀에게 잘못 걸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토냐의 표정이 사악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미소를 거둔 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사라져 줘야지."                p.312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였나? 라는 질문을 엄마가 죽고 나서야 하게 된 상황부터 안타깝다. 왜 함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왜 딸은 엄마를 증오스러운 존재로 여기며 살았을까. 매켄지는 엄마의 편지를 읽어 나가면서 점차 불길한 의심을 하게 된다. 엄마가 과거에 뭔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어떤 범죄와 연루된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엄마는 살인자야.'라는 끔찍한 생각이 시작되면서 그 어두운 생각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게다가 엄마의 서재에서 협박의 내용이 담긴 종이가 발견되고, 아빠는 뭔가를 몰래 찾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와 아빠가 숨기고 있는 비밀은 뭘까. 


이 작품은 독립 출판으로 나왔다가 오로지 '재미'만으로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 아마존 범죄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굿리즈’에 18만 건에 달하는 독자평이 달리고, 전 세계 35개국에 수출되는 등 최고의 스릴러로 자리잡았는데... 그 화려한 이력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시작부터 롤러코스터를 타고 달리는 기분으로 도파민 터지는 서사를 폭풍같은 전개로 보여준다. 엄마가 쓴 잔인한 소설들이 사실은 엄마의 범행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오싹해진다. 애초에 엄마의 추모식 날, 죽은 엄마로부터 편지가 왔다는 것부터 섬뜩한 일이지만 말이다. 중반을 넘어설 때즈음 드러나는 진실이란 생각보다 꽤나 충격적이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준비된 여러 겹의 반전 또한 강렬하다. '스릴러 소설에 바라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작품' 이라는 누군가의 찬사가 결코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자, 이 작품을 선택한 당신의 탁월한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이 비밀은 당신의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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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가 너무 많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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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능력을 써서 어떤 사내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혼자 알아냈다고 칩시다. 그 사내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의 그 개인적인 지식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그럴 경우, 당신은 그 사내를 고발하겠습니까?"

"고발하지 않을 겁니다." 다아시는 주저 없이 말했다.             p.120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치유술사와 마술사들의 컨벤션이 열리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마술사들이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마술사 숀 오로클린은 약속 시간에 객실 문을 두드렸는데, 갑자기 안에서 쉰 목으로 내지르는 듯한 느낌의 비명이 울려퍼진 것이다. "마스터 숀! 도와줘!"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문은 자물쇠가 잠겨 있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쇠를 가지고 왔지만 잠금 주문에 걸려 있는 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결국 지배인이 도끼를 가지고 와 문을 부쉈고, 객실의 정중앙에 선혈이 고인 웅덩이 위로 런던시의 주임 법정 마술사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문제는 죽은 사람을 제외하면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방안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전혀 없었고, 방문은 문을 잠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로 잠겨 있었으며, 열쇠는 방안에 떨어져 있었다.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몇 초 뒤에 복도로 사람들이 뛰쳐나왔기에, 뭔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문들도 모두 안에서 잠금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기에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범죄가 벌어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도 수많은 마술사가 집결한 곳에서, 완벽한 밀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일까. 


자물쇠가 잠긴 밀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 칼에 찔렸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고 싶어할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와 다툰 사람은 없었을까. 그런 이유로 현장의 최초 발견자이자 죽은 이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숀 오로클린이 런던탑에 수감된다. 그 소식을 접한 다아시 경이 동료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급히 런던으로 달려오는데,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응. 누가 이 친구를 죽였는지는 나도 아네." 다아시가 말했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군."

"살해 동기를 얘기하는 건가?" 본트리옴프가 물었다.

"오, 동기가 뭔지는 알아.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동기 뒤에 숨은 진짜 동기라네.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

본트리옴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p.375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41번째 작품으로 랜들 개릿의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나왔다. 랜들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는 총 네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중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셰르부르의 저주>, <나폴리 특급 살인>, 그리고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이십여 년 전에 국내에 소개되었었지만, 오래도록 절판이어서 아쉬웠었다. 이번에 원문의 맛을 살린 정교한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로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SF 작가로 유명한 랜들 개릿의 대표작이자 가장 인기가 높은 '다아시 경' 시리즈는 "SF보다는 특수설정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판타지와 탐정소설의 가장 좋은 점만을 결합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실제로 배경만 SF적인 설정이고, 스토리 자체는 현대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고전 미스터리로서의 장벽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가 '영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이어져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이 작품은 현실의 '과학'과 유사한 방식으로 '마술'이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각자가 가진 탤런트는 모두 달랐는데, 그 능력 또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인 수사관 다아시 경 또한 탤런트는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캐릭터이다. 절대적인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마술사들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었고, 흑마술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특수설정' 속에서 다아시 경은 번뜩이는 추리력을 바탕으로 불가능 범죄 해결에 도전한다. 


그는 '불가능한 가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그다음부터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셜록 홈스의 대사를 변주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마술적 재능없이 날카로운 통찰력과 논리만으로 해결하는 점은 현대의 미스터리 해결방식이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술이 과학을 대체한 세계이기 때문에, 극중 법정 마술사가 현실의 법의학자 또는 범죄분석관의 역할을 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대체역사와 본격 미스터리의 조합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마술이라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등장하지만, 고전 퍼즐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를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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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가 너무 많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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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마술 사이에서, 대체역사와 본격 미스터리의 매력적인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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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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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는 각 개인의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노키즈 존에 입장을 거부당했던 어린이도 언젠가는 청년이 된다는 사실, 노인을 '연금충'이라 부르는 청년도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삶의 진리이자 역설이다. 나이에 있어서, 누구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나이라는 억압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관계를 규정해 온 나이라는 오래된 문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넓은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1


우리는 연령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는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장소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로, 청년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기적인 존재로, 중년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는 존재로, 노인은 무력하고 쇠퇴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인 것 같다. 자기를 인식하는 데에도, 남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하다못해 지하철을 타는 데도 나이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이 책은 틀딱충, 개저씨, 삼포 세대, 영포티, 급식충, 잼민이 그리고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유아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저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나이는 그 자체로 매우 제한된 의미만 지니는 변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그토록 나이를 묻는 걸까. 장유유서의 수직주의적 교류 문화는 이제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아이는 미성숙하고, 청년은 노력과 열정이 부족하며, 중년은 꼰대처럼 꽉 막혀 있고, 노년은 퇴화의 시기로 보기만 하면 우리는 삶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그리고 중년 및 노년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갈 때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p.321


요즘 자주 들리는 '영포티'라는 말은 사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40대를 긍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젊은 척하려는 중년층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해 모욕적으로 지칭하는 '할매미'라는 노인 혐오 표현도 있고, 무례하거나 인성이 좋지 않고 예의가 바르지 않은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잼민이'는 심신이 저연령층 같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으로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는 점이 유독 아쉬운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대 간 협력과 교류를 위해 사회 제도를 만들어 나가고, 법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그동안 무심히 답습해 온 연령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 은폐된 현실을 더 예민하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이란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인 것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엔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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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모든 두려움
알렉스 핀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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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맷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낡은 술집 앞에 있었다. 갈라진 벽 틈으로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생각은 칼라와 조던 필과 나이트 샤말란과 영화 속 인물들의 운명으로 두서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살아남은 것이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p.334


아름다운 십 대 소녀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었다. 그녀는 하우스 파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둔기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소녀의 남자 친구 대니가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했다는 목격이 있었고, 범행을 입증할 물리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그는 누명을 쓰고 기소되었다. 소도시의 미식축구 스타였던 그를 주인공으로 <폭력에 물든 세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지만, 진짜 용의자들은 제대로 조사를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7년 뒤, 그의 가족들이 휴가차 떠난 여행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이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방학 날짜가 맞지 않아서 함께 가지 못한 동생 맷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데, 부모님과 동생들은 다 죽고, 형은 교도소에 가 있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게 된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가스 누출 사고로 보였으나, 지역 경찰들은 비협조적이고, 시신도 바로 넘겨주지 않았으며, 현장이 연출되었음을 암시하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사고가 아니라 범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체 누가 그의 가족을 죽이고 싶어 한 것일까. 멕시코 당국에서는 시신을 인계하기 전에 직계 가족이 직접 와서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데, 어쩐지 정보 공유에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맷은 어쩔 수 없이 멕시코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의문의 습격을 받거나 납치당할 뻔하는 등 여러 번 위험한 일들을 겪는다. 공항으로 데리러 온다던 영사관 직원은 나오지 않았고, 경찰서에 갔더니 담당자가 없다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한다. 정말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맷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다 나뿐 꿈인 것만 같다. 아주 나쁜 꿈. 가족의 죽음이 품은 비밀은 무엇일까. 맷은 무사히 사건의 진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내가 집착한다고, 광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기적인 바보라고. 하지만 당신 아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 아들이 남은 평생 교도소에 갇혀 살아야 하고 당신은 아들이 무죄라는 걸 온몸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당신 가족이 무너졌다면 어떨까요? 그런 맨 끝에 남은 마지막 두려움까지 직면한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끝까지 죽도록 싸우거나.               p.559


이 작품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알렉스 핀레이의 데뷔작이다. 현재 법학 교수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기에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미디어와 대중의 공모를 통해 한 가족의 삶이 ‘콘텐츠’로 소비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이다. 일가족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서두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고,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교차 진행하며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찾아 나간다. 겹겹이 쌓인 복선과 플롯이 정교하게 흘러가며 스릴러라는 장르의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홀로 남겨진 맷의 현재 시점과 과거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교차 진행시킨다. 여러 시점을 오가며 전개되는 서사를 통해 감춰졌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매우 속도감있게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57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이야기의 밀도가 굉장히 높다. 차근차근 잘 따라가며 이야기의 호흡을 느끼면 더 스릴 넘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가 현재보다 과거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맷의 엄마와 아빠, 여동생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그들을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반전과 캐릭터, 속도감있는 전개와 탄탄한 구성까지 폭발적인 스릴러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니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진짜 재미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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