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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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 참신하다." 1,500쪽이나 되는 방대한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 스푼>을 번역하기도 했고, 평소 이탈리아 요리하기를 즐기는 음식 평론가로서 단박에 느낀 감상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원래 마늘은 요리 초반에 향만 우려내는 용도다. 올리브기름을 팬에 달구고 칼등이나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누른 것을 넣어 1분쯤 두었다가 건져버린다. 정석은 이렇다만, 교도소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이처럼 큰 제약 속에서도 급식 외의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에 힘입어 교도소만의 별도 요리법과 음식이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               p.74~75


<실버 스푼>, <패밀리 밀> 등 세계적인 요리사들의 책을 번역하고, <한식의 품격>, <미식 대담> 등 음식에 관한 저서를 써온 음식 평론가이자 번역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는 어떨까. 저자는 음식을 통해 영화를 기억하는 특별한 감상법을 제안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초코파이, <헤어질 결심>의 중국식 볶음밥, <아메리칸 셰프>의 쿠바식 샌드위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하울정식, <신세계>의 송아지 스테이크, <올드보이>의 군만두,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왕과 사는 남자>의 사약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음식에 초점을 맞춘 글들이 색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읽게 해주어 매우 흥미로웠다. 


영화 속 음식은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기도 하고,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며,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역할도 한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잠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데 활용되기도 하고, 인물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관객들이 공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음식이 함께 했다. 어린 시절 처음 가족끼리 외식이라는 걸 했던 동네의 경양식 집, 동생은 느끼하다고 했지만 나는 너무 맛있었던 돈까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독립했을 때, 첫 직장에서 첫번째 월급을 받았을 때, 첫 남자친구와 근사한 데이트를 했을 때 등등... 뭔가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거나, 오래 기억해두고 싶은 순간에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 이는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순간들에도 음식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음식과 요리를 이해하는지라 나에겐 엄청 사무치는 장면이었지만 한편 깊은 회의가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 장면, 특히 달걀로 클라리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특히 황백지단의 식문화가 거의 사라져버린 우리에게는 낯설고 공감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 서양 요리 세계에서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 분리는 아직도 굉장히 흔한 일이니 좀 나을까? 달걀의 흰자는 수분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노른자는 지방이 대부분이다. 두 구성 요소의 성질이 확연하게 다르므로 음식과 요리에서도 역할이 분명하게 갈린다.                p.245~246


좋은 영화를 보고 길을 나서면 언제나 그 여운에 마음 한구석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인물들이 먹었던 음식을 요리해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올드 보이>의 군만두를 비롯해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는 음식이 유달리 두드러져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감독이 추구하는 특유의 미학과 어우러질 때 드러나는 멋과 디테일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저자는 <헤어질 결심>의 볶음밥 장면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고 만다. 해준이 자신의 집에서 나름 솜씨를 부려 밥을 볶아내는데, 서래는 딱 한 입만 먹고 넌지시 내친다. 볶음밥이 너무 엉터리였으므로 만든 사람도 경계해야 마땅했다고 이해하면서, 이런 볶음밥을 만들면서 '중국식' 볶음밥이라 너스레를 떤다니 박찬욱 감독이 미워질 정도였다고 말이다. 저자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제대로 된 중국식 볶음밥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세 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설명해준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거뜬히 한 접시를 비울 수 있을 것 같아, 저녁 메뉴는 중국식 볶음밥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음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이야기이기에 일반적인 영화 리뷰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주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나온 음식을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레시피나 배경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더 특별한 시간이었다. 최신 영화부터 오래 전 명작까지 다양한 영화들과 함께 만찬을 벌인다는 점도 좋았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도, 음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음식으로 영화를 읽어내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새로운 감각으로 영화를 음미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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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원 없이 7개 국어를 정복했다 - 어떤 언어든 입이 트이는 외국어 독학법
서영훈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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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는 지적 퍼즐이다. 언뜻 무질서하게 흩어진 단어들이 사실은 제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낱말 하나가 의미 없는 기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호들이 조금씩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두세 개의 단어가 만나 작은 뭉치가 되고, 그것이 문장이 되며, 이어서 문장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짜낸다. 그 흐름 속에서 암호를 하나씩 풀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더 나아가, 억양 하나, 조사 하나, 어순의 작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차릴 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짜릿함이 밀려온다.               p.25


어릴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2개 국어 이상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래서 영어 공부도 꾸준히 했고, 각종 외국어 학습에 관련된 책들도 정말 많이 찾아 읽었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제껏 내가 읽어온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고,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어 감탄하며 읽었다. 40대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일하면서 외국어 7개를 정복했는지가 궁금해서 시작한 책인데, 언어에 관한 뛰어난 통찰력까지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스스로 언어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어떻게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7개 언어를 하게 된 것일까. 


그는 하루 단 30분과 자투리 시간만 있다면 어떤 언어든 6개월 만에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언어의 문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도 조용히 넓어진다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미뤄둔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질 것이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져본 적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배우고, 제2외국어로 일본어, 프랑스어 등을 배워 왔지만, 정작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과 마주하게 되면 얼음처럼 굳어서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하지만 당장 생계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 외국어 공부를 매일 꾸준히 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게다가 꽤나 열심히 공부를 해왔다고 생각해도, 막상 자격증 시험을 보거나, 해외에서 활용해보려고 할 때는 정작 입을 떼기도 어렵고 말이다. 저자는 열심히만 한다고 입이 열리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외국어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기술을 아낌없이 알려준다. 




우리 뇌는 새로운 결정을 매우 귀찮아한다. 매번 '오늘 언제 공부하지?' '뭘 하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뇌는 피로를 느끼고 회피하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필요한 결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환경과 습관을 '자동화' 해야 한다. 샤워, 아침 식사 같은 익숙한 습관 뒤에 공부 루틴을 붙여 보자. 뇌는 그것을 더 이상 '새로운 일'로 인식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 후, 식탁에서 원서 한 쪽을 읽는다.' 이런 습관 연결하기는 뇌에 명확한 신호를 준다. '커피 마시기'라는 익숙한 행동이 새로운 습관의 방아쇠가 된다. 뇌의 거부감이 사라진다. 이렇게 연결된 습관은 놀랍도록 쉽게 반복된다.                 p.217~218


이 책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학원, 유료 앱, 학습지 같은 뻔한 강제성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철저히 ‘혼공러’의 관점에서, 혼자서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독학 방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알려 준다. 유료 결제 없이도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는 법, 바쁜 일상 속 틈새 시간을 활용하는 시간 관리법, 단어 1개로 수십 개의 어휘를 확장하는 효율적 암기 기술, 복잡한 문장도 막힘없이 말하게 만드는 회화 훈련, 외국어 공부를 ‘ 놀이’로 만드는 두뇌 활용법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 활용해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저자는 언어 하나를 배우는 순간, 새로운 방 하나가 생기고, 그 방에 들어갈 대마다 자신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언어가 달라지면 목소리의 톤, 웃음소리, 몸짓까지 달라진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차분하고 신중하지만, 영어를 쓸 때는 조금 더 외향적이고, 스페인어로는 한없이 따뜻해지고, 프랑스어로는 진지해지며, 일본어로는 겸손해지고, 중국어는 호탕함을, 이탈리아어는 용기를 준다고 말이다. 


이렇게 언어를 공부 개념이 아니라 삶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특히 공감되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힌다는 건 그 언어 위에 쌓은 수백 년, 수천 년의 문화와 역사를 접하는 일이라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이 책이 알려주는 대로 하루 20분에서 30분씩 반복하는 간단한 루틴만으로도 장기적 효과가 충분하다면, 2년에서 3년에 한 번씩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보고 싶다.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세상에는 배워보고 싶은 외국어가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다른 언어를 배우면서 또 나의 세상은 얼마나 넓어질지 기대가 된다. 저자가 알려주는 '혼자서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독학' 방법은 직접 책을 구매해서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습관을 만들고, 루틴을 완성하고,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각인되는 암기의 기술과, AI, 앱, OTT를 활용한 공부법 등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 볼 수 있는 기술들이 가득하니 말이다. 외국어 때문에 주눅 들어본 적이 있다면, 작심삼일을 이기는 습관 자동화 시스템이 궁금하다면, 돈 안 들이고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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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 복종 본능에서 깨어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행동과학
수니타 사 지음, 이윤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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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선생님의 부당한 요구나 아버지의 지나치게 엄한 명령에 '아니요'라고 말하려 시도했다가 결국엔 감정을 억누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랐던가?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반박하고 싶다가도 분위기를 깨거나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반대 의견을 삼켜버렸던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대신 내 손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상처를 내고 뺨 안쪽을 물어뜯을 정도로 참았던 적은 또 몇 번이나 있었던가?              p.59


누구나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하거나, 순종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따르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박하지 않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순응했던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순종은 착한 것, 저항은 나쁜 것이라는 개념을 배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부모의 지시를 따라야 했고, 교사들의 권위에 복종했으며,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만 목소리를 냈다. 사실 우리의 세계는 순응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각종 제도와 법규는 우리가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순종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부당한 요구를 수용해야 하거나, 특정한 선택을 강요 받을 때,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 출신 조직심리학자 수니타 사 박사는 저항이란 '그 어떤 압박에도 자신의 참된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방대한 역사적, 실험적 근거와 최신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진정한 나'로 사는 법을 알려준다.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부터 챌린저호 폭발 사건, 인종차별에 맞선 로자 파크스 사례 등 방대한 사례들을 통해 순응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저항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알려준다. 물론 타인이 기대하는 바를 거스르면 종종 대가가 따른다. 타인에게나 심지어 자신에게 비합리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때론 '감정적'이거나 '까다롭게' 비칠 수도 있다. 어쩌면 직장이나 관계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한 '아니요'를 말하는 것으로 인종차별이 덜한 사회가, 여성이 더 안전하게 느끼는 공공장소가, 윤리적 거래를 중시하는 하업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순응하도록 타고났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갇혀 있지는 않았다. 순응이 우리의 기본값일 수는 있지만 근육을 단련하듯 저항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우리를 순응하게 만드는 압박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진정한 '네'가 무엇인지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해와 자기 인식, 노력, 연습이 작용하지만, 순응=착한 것, 저항=나쁜 것이라는 공식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순응이 나쁘고 저항은 실제로 좋을 수도 있는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고난 기본값을 바꿀 수 있다.               p.138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현실이 이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냉혹한 진실을 배워간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항상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이 핵심 가치를 반영하지 않거나 스스로 되고자 하는 모습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다. 머릿속에서 이건 내가 아니야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우리의 가치관이 말하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우리에게 경고를 보냈다. 우리 모두에겐 이와 같은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고 그 목소리에 따라 자신에게 진실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믿는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저항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짧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질문. 바로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진정한 '아니요'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시선을 외부로, 즉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세상으로도 돌려야 한다. 


저자인 수니타 사 박사도 순응하고 복종하며 '착한 모범생'으로 자라났고 주변 사람들이 권하는 대로 의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교에 진학하여 스스로 세상을 헤쳐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순응해 온 무언가와 다르게 생각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대학교 3학년 때 의대를 휴학하고 복종과 권위, 반항에 관한 연구를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그 후 20여 년간 심리학을 연구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착한 아이로 남을 것인가? 나다운 어른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동의와 순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진정한 '네'와 진정한 '아니요'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그때 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후회해 본 경험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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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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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클레어는 또다시 발이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사무치는 슬픔 때문이었다. 인간도 자기 자식은 저렇게 살뜰히 돌보는 모양인데. 오래전 브릭베인이 길바닥에서 죽어 가던 클레어를 발견했을 때, 클레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돌보는 이는커녕, 사후 세계에서 기다리는 이도 없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대체 왜 나는 사랑받지도 못하고 고통계에서 영원을 보내야 하는 걸까?                p.101~102


죽은나무숲에 사는 클레어는 '죽다 만' 여우다. 트럭에 치일 때 한쪽 귀와 한쪽 눈만 간신히 건졌다. 반대쪽은 눈알이 제멋대로라 놋쇠 줄이 대롱대롱 달린 외알 안경을 걸치고 다녔다. 털이 듬성듬성한 가죽을 가리려고 망토도 하나 장만했다. 표면이 고르지 않은 자주색 벨벳 망토였다. 클레어는 사고 당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후 세계로 떠나는 대신 영혼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벌써 6년 째 홀로 오두막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찾아오는 떠도는 영혼들을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일을 하고 있다. 텃밭에서 다채로운 버섯을 키우고, 사람들이 버린 책을 주워와 읽으며 고요하게 반복되던 일상은 어느 날 오소리 영혼 생강촉새가 나타나면서 달라진다. 


사후세계의 내 영역은 평화계, 쾌락계, 발전계, 고통계였는데, 이상하게도 생강촉새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자꾸만 돌아오는 거였다. 영혼의 어깨에 앞발을 살포시 얹으면, 사후 세계의 허락 아래 상대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엇는데, 오소리에게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라면 떠도는 영혼은 초대받지 않는 한 클레어의 오두막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후 세계의 모든 규칙을 깨부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오소리는 계속 되돌아왔다. 마침 '죽은나무숲에 있는 자는 영영 사라지리라'는 헤스터파울의 예언도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다들 헤스터파울의 예언을 두고 떠들어 댔는데, 죽은나무숲에 있는 건 클레어 혼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레어는 생강촉새를 데리고 예언자 헤스터파울을 찾아 가기로 하는데, 과연 예언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며, 오소리의 영혼이 숲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런데 사후 세계는 왜 이런 걸 보여 준 걸까? 회상은 오직 영혼의 운명을 헤아릴 때 쓰이는데, 이번 회상의 주인공은 클레어 자신이었다. 나더러 대체 뭘 헤아리라는 걸까? 클레어는 닫빛처럼 창백한 아이의 뺨을, 망토 자락을 움켜쥔 작은 주먹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의 엄마가 클레어에게 스웨터를 덮어 주었듯, 클레어 역시 아이에게 망토를 덮어 주었다. 다정함이 다정함으로 되돌아간 셈이랄까. 업보의 완성이었다. 선이 한 바퀴를 돌아 원이 되었다.                  p.310


성격도, 스타일도 너무 다른 클레어와 생강촉새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살아 있을 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 클레어는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다 인간들이 다니는 길에 가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생쥐를 쫓아 큰길에 들어선 순간,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고, 트럭에 부딪히며 고통에 고통이 이어졌다. 클레어를 친 트럭은 사라져버렸고, 죽은 생쥐를 집으려고 용을 썼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오소리 한 마리가 그 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그렇게 홀로 죽어가던 차에 전임 길잡이인 브릭베인이 나타나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었고, 평생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본 적이 없던 클레어는 그렇게 죽은나무숲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생강촉새 역시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존재도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올해 뉴베리 아너 수상작이다. 뉴베리상은 매년 가장 뛰어난 아동 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세계 최고의 상이지만, 사실 어른들에게도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작품 역시 아동 문학의 카테고리 안에만 두기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먹먹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 그만큼 감동할 일도, 눈물을 흘릴 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웬만한 수준의 작품이 아니고서야 심금을 울리는 경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며 정말 오랜 만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프고, 아름답고, 유쾌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까지 우리가 이야기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는 작품이었다. 살아 있을 때도 늘 혼자였던 여우는 죽어서도 여전히 혼자지만, 오소리와의 이상하고도 다정한 우정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슬픔을 짊어지는 법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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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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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야생동물을 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선입견이 없어야 할 뿐 아니라 인간이 동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야생동물이 인간과 비슷할 거라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과학자에겐 더욱 그렇다. 자연주의 작가 헨리 베스턴이 말했듯 동물은 우리 형제가 아니고 우리보다 하급자도 아니며, 삶과 시간의 그물에 함께 갇힌 다른 족속이자 지구의 찬란함과 고난을 함께하는 동료 수감자다.              p.178


이 책의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33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에 대해 가르쳤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논문을 쓰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정교수직을 반납하고 메인주 숲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숲속에 혼자 살며 직접 노동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을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베른트 하인리히는 뛰어난 생물학자였고, 그래서 그가 숲에서 발견한 것들은 소로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메인주 숲 한가운데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숲속 곳곳을 관찰했다. 그렇게 40년간 자신만의 특별한 연구 일지를 써 내려갔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식물, 곤충, 조류, 포유류, 그리고 삶을 위한 전략이라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저자가 평생 토록 숲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200년이 지났으니, 현대판 소로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1만 제곱미터 짜리 콩밭을 매일 새벽 5시부터 정오까지 김을 매고 괭이질을 하며, 소중히 돌보았다. 콩밭을 돌볼 때면 날아가는 산비둘기들에 매료되기도 하고, 갈색지빠귀의 노랫소리도 듣고, 흙을 파헤치다가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는 점박이 도룡뇽 한 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숲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황자작나무는 어떻게 다른 나무들이 살지 못하는 바위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숲속 나무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저마다 색다른 생존 전략을 발전시켜왔다. 




울새의 알이 왜 파랗고 임금딱새의 알이 왜 흰색에 암갈색과 자주색 얼룩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어렵겠지만, 알의 패턴이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선택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뜻한다. 새알의 착색이 지금 각기 다른 단계로 진행 중인 여러 진화 경로도 보여주는 셈이다. 사람의 붓 솜씨로 낼 수 없는 이 다채롭고 아름다운 외관은 미관적으로도 관찰하는 우리 눈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알록달록 물들인다.                p.316


애벌레가 잎사귀에 남긴 암호를 분석하는 관찰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시작은 애벌레들은 어떻게 건조한 사막의 열기와 햇빛 속에서 굵고 통통하고 촉촉한 몸을 유지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애벌레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키워보기도 하고, 밤이든 낮이든 이동해 잎사귀를 먹는 모습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벌레가 잎을 먹는 방식과 그것이 애벌레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애벌레들은 이동 패턴과 외형의 변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포식자의 위협에 대응하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새가 즐겨 먹는 애벌레는 자신이 갉아먹은 잎의 흔적을 위장했고, 그렇지 않은 애벌레는 숨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고 너덜너덜한 잎사귀를 남겼던 것이다. 




까마귀를 관찰하기 위해 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지켜보고, 새둥지를 조사하기 위해 절벽 근처에 굴을 파고 들어가며, 다친 딱다구리를 구조해주고 이후 딱따구리와 소리를 내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수액빨이딱따구리와의 대화는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스위치를 끈 것처럼 갑자기 끝나버린다. 애초에 야생딱따구리와 신호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했다는 것부터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저자의 모험이 너무도 다양하고 드라마틱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는 흔히 숲이라고 하면 나무부터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무가 숲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결핍의 좋은 점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는 것 또한 놀라운 통찰이라고 느꼈다. 나무가 숲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존재인 것은 맞지만, 실은 전체를 이루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숲에는 그 밖에도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먼지만 한 크기의 작은 벌레도, 스스로 서지 못하는 덩굴도, 사체를 먹고 사는 송장벌레도, 단풍나무 수액을 핥고 다니는 다람쥐도 숲에선 모든 존재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순간 누구든 친구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밖으로 나가 자연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며 관찰하고 탐구할 때만 배우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생물학자가 숲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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