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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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러분에게 남은 시간은 2,500주, 길어야 3,000주입니다.” 네이더가 젊은 청중에게 말했다. 그들은 남은 인생을 활용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어떤 마음이 들길 바랄까? 네이더는 ‘하찮지만 값비싼 일’을 들이대며 최고 금액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 재능을 팔아넘기는 식으로 자신을 막 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분은 인생을 허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p.111


<휴먼 카인드>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통념에 반기를 들며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믿음을 현실의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선한 야망(Moral Ambition)’을 제시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시대이다. 저자는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재능과 시간을 구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분하고 의미 없는 일이나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직업에 매여 있는 당신에게,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자기최면을 끝내라고 말이다. 그는 세상을 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선한 야망'이라 지칭하고, 어떻게 용기를 내고, 행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사학자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브레흐만은 이 책에서 인류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활동가들의 유산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어떻게 현실의 변화로 연결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야망과 이상이 만나는 커리어를 설계하고, 먼저 용기를 내고, 타인에게 행동을 요청하는 것으로 선한 야망을 전염시키는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혁신을 둘러싼 다섯 가지 착각으로 인지의 착각, 선의라는 착각, 올바른 명분의 착각, 순수함의 착각, 시너지의 착각을 제시하며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저자는 말한다. 재능은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야망은 날것의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요한 것은 이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라고 말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막대한 짐을 짊어져야 한다. 우연히 21세기를 살게 된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만큼 미래를 구축할 거대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이 몇 세기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이 세상에 태어난 1170억 명 중 이 세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1퍼센트에 속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 1퍼센트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곳에 있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지만 인정하자. 우리는 지금 역사적 기로에 서 있으며 미래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p.316~317


앨라배마주 몽고베리의 어느 평범한 날, 재봉사였던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 탔다. 세 정거장이 지났을 때, 버스 기사는 흑인 승객들에게 말했다. 백인 승객들이 앉을 수 있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버스에 있던 흑인 승객들은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킨 파크스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의 작은 저항은 흑인들의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시켰고 결국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과격한 시위 대신, 차분한 영웅이 되어 백인들의 시위 참여를 도모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사회운동에 전념해왔었다. 불의를 멈추기 위해 단순한 저항이 아닌 전략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역사를 바꾼 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작은 움직임을 끝까지 이어간 사람들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선한 야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은 행동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다음 세대로 이어질 서사의 일부가 되라, 미래가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라, 시대가 요구하는 돌격대의 일원이 되어라... 등 미래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주는 저자의 이야기는 대단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자기 자신을 바꾸도록 독려하는 자기계발서는 많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회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 대단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저자의 대담한 선언이 충분히 그럴 듯 하게 느껴지고, 선한 야망이 실현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고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선한 인간 본성은 한 사람의 선한 행동으로 시작되어 바이러스처럼 퍼져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재능의 낭비를 멈추고 변화를 일으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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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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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 영원한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인다. 열심히 말을 걸어 보고, 기분을 추측하고, 왜 화가 낫는지 몰라 쩔쩔매고, 먹은 것과 싼 것을 토대로 건강 상태를 짐작하고, 서로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새로운 언어를 고안해 보고, 다투기도 하고,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 반응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천천히 길들어 가는 것이다.             김영글, '오전의 고양이' 중에서, p.18~19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이제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식물을 돌보는 이들에게는 '식집사'라는 애칭이 붙었다. 그만큼 동물과 식물이 취향이나 소유의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돌보고 관계를 맺는 일은 끊임없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게 하고, 한계와 마주치기도 하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과정이다. 


이 책은 『시사IN』에 2년간 연재되었던 칼럼 '반려인의 오후'를 다듬고 몇 편의 글을 보태 엮은 것이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각각 고양이, 식물, 개와 함께한 이들의 일상을 담아 진정한 '반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미술작가 김영글은 요다, 모래, 녹두,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길고양이 셋과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이루었다. <오전의 고양이>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작은 감동과 각성과 분투가 담겨 있다. 고양이를 인간의 뜻대로 훈련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 행동을 유도하거나 반응을 예측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모레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고양이로 필요할 때는 애정과 관심을 요구하며 애교를 부리지만,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칠한 태도로 사람의 말을 무시한다. 겁이 많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요다, 식탐 많고 순한 녹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공존하고 있다. 




식물을 나름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식물의 삶에 연결된 크고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이 '작은' 혹은 '약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임을 알아간다. 이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그러므로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을 연결해 나가는 일일 테다. 인간이 자신과 전혀 다른 식물의 모습으로부터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식물이 나름의 인간이고, 인간 역시 나름의 식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희제, '오후의 식물' 중에서, p.195


문화비평가 안희제는 손에 물과 흙을 묻히며 매일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상을 통해 플랜테리어가 아닌 홈 가드닝으로 식물에 다가간다. <오후의 식물>에서는 식물과의 공존을 통해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나날이 그려져 있다. 식물은 전보다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 노년층의 취미로 많이 여겨져 오던 식물 기르기가 이제 올드한 것이 아니라 힙한 취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반려식물과의 생활은 즐거움만이 아니라 동네에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안겨준다. 깊은 관찰과 일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책임을 식물과의 삶 안에서 고민할 수 있는 글이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만화가 정우열은 노견 풋코와 긴 세월을 함께해왔다. <저녁의 강아지>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별의 과정이 담겨 있다. 동네 빵집을 향해 질주하던 풋코는 열여덟 살에 접어들며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고, 서서히 다가오는 끝을 준비해 간다.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족처럼 지냈던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로 보냈던 적이 있기에, 나 역시 그 말을 오래도록 믿어왔다. 굉장히 오래 우리 곁에 있어 노견이 되어 떠났기에, 막판에는 여기저기 불편한 부분이 많은 상태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간 우리 토토는 불편한 부분 하나 없이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맞아줄 거라고, 그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존재와 '반려'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품이 많이 들고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와 함께 하려는 그 마음이 우리를 더 나은 어딘가로 이끌어 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돌봄과 생명에 대해, 진정한 반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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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는 소설 -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홍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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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똑바로 가는 공은 없어요."

말을 꺼낸 게 무안해질 만큼 차가운 대답이었다.

"제발 부탁인데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지 마쇼. 축구든 골프든 마찬가지야. 그런 건 전부 쓰잘데기없는 일이라고.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냥 인생을 제대로 살아."               - 김홍, '인생은 그라운드' 중에서, p.29


돔 구장 확충을 위한 국민 희망 체육 펀드는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사기라는 게 밝혀졌고, 개막전 당일 야구팬들은 경기장 출입구에 붙은 빨간색 가압류 딱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 프로 야구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로야구 관중수 1300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야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김홍 작가의 <인생은 그라운드>에서는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면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 적도 없고, 항상 뭘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야구가 전국민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야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인 아니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비롯해서 쇠락해 가는 탄광촌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도를 하고 있는 여학생, 익사할 뻔했던 기억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엄마의 수영 강습권으로 수영장에 들어서게 된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한파 속에서 골목을 헤매는 인턴 기자, 부상으로 일을 잃은 요가 강사 등 이 책에는 달리고, 버티고, 실수하고, 헤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포츠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한 승자들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몸으로 살아 내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발을 뻗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꺼이 발을 내미는 순간,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신발 끈을 묶으며 일어서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달려가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내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함일 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안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 주기를,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 김혜나, '가만히 바라보면' 중에서, p.223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작품들을 선별해서 엮어 왔다. '우정'을 소재로 함께 걷는 소설, '가족'을 소재로 끌어 안는 소설, '노동'을 주제로 땀 흘리는 소설, '이별'을 주제로 손 흔 드는 소설 '재난'을 테마로 기억하는 소설, '환경'을 테마로 숨 쉬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달려가는 소설>은 '스포츠'를 테마로 한 7편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김홍, 이수정, 김기태, 최아현, 김유담, 장류진, 김혜나 작가가 그려내는 야구, 수영, 역도, 풋살, 볼링, 쇼트트랙, 요가를 소재로 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혼자 하려는 고군분투, 우연히 양도받은 수영 강습권으로 어린 시절 호수에 빠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순간, 들어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서 시작한 역도,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죽은 오빠의 삶을 이해하게 하게 되는 경험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포츠에는 기록과 통계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며, 빛나는 장면들 뒤에는 오늘을 살기 위해 달리고, 헤엄치고, 버티는 몸의 서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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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했던 여름 래빗홀 YA
이로아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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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미움받고 싶었다. 바라건대 그 미움은 질투와 경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면 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속내를 읽히지 않는 사람. 뒤집어 말하자면, 결코 무엇도 들키지 않는 사람.             p.48


연제는 친구들의 손금을 봐 주다 선생님의 호출로 갑작스럽게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연제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었다. 연제는 엄마가 진짜 무당이 아니라 빠른 눈치와 유창한 언변으로 일종의 브랜딩을 해 사업을 해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집에 있던 연제에게 저 높은 곳에서 희고 노란 불꽃 같은 것이 추락했다. 천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천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엄마는 신의 심부름꾼이었는데, 주제를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하나 있다. 그것을 찾아 바로잡으면 깨어날 것이다. 그때까지 너에게 네 엄마의 알량한 재주를 빌려주마."


천사의 고지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엄마에게 진짜 능력이 있었다니.. 연제는 한번도 엄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한겸이 반찬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다.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했다며, 보냉 가방 안에 주황색 반찬 통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연제는 우연히 한겸의 과거와 미래에 놓인 죽음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한겸을 지켜온 건 엄마가 써준 부적 덕분이었는데, 그게 바로 '엄마의 실수'였던 것이다. 죽었어야 하는 한겸을 억지로 살려 놓은 대가로 엄마가 쓰러진 거였다.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한겸의 운명에 자신과 엄마까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한겸이 죽으면 엄마는 깨어날 것이다. 연제는 한겸을 죽음에서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죽음에 얽혀 있는 엄마를 향한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가 그런 식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내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일마저도 실은 나와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를 죽을 듯 괴롭게 만들었던 일의 시작과 끝은 사실 내 손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p.127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귀신 붙게 해 주세요> 등의 작품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로아 작가의 신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에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죽는 미래를 보게 되었다면, 그 죽음을 막기 위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 한다면 어떨까. 한겸은 아홉 살때부터 모두가 죽을 것이라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곤 했다. 엄마는 매년 한겸에게 부적을 보냈고, 그것이 천사가 말한 '엄마의 실수'였다. 한겸이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몇 번이나 되살아나며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멀리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쓰러진 지금, 한겸에게는 더 이상 엄마의 부적이 없다. 그러니 연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한겸은 자신의 운명에 잡아먹히고, 엄마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수. 운명대로 돌아갔을 세상. 일찍이 정해진 대로 펼쳐졌을 미래. 그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연제가 느끼는 원망과 미안함, 애정과 후회가 뒤섞인 마음을 고스란히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과연 연제와 한겸은 엇갈린 운명을 바로잡고 무사히 스무 살을 맞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속으로 잘 녹아들어 섬세한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어 미워해야만 했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서툴지만 순수했던 열아홉의 여름방학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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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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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케이팝 문화를 ‘환상을 사고파는 일’에 비유한다. 케이팝은 나의 현실인데 왜 환상이라는 건지 토를 달고 싶지만…… 또 그것만큼 케이팝을 관통하는 비유는 없다. 먼저 아이돌 멤버의 입장에 서보자. 그들은 콘서트에서, 공개방송에서, ‘버블’에서 팬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여러분’을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데?...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p.53~54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그것은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덕질의 대상은 각자 취향에 따라 무궁무진하지만,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케이팝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케이팝을 바라보는 가장 내밀하고도 뜨거운 시선을 보여준다. <아무튼, 예능>이라는 책으로 만났던 복길이 6년 만에 펴내는 신작 산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 음악을 듣고 현실을 살아내며 벼린 최신의 사유를 더해 완성되었다. 저자는 케이팝 디제잉 공연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케이팝 덕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대중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수준높은 통찰도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이팝 역사에 이름을 남긴 케이팝 아티스트와 그들의 곡을 아우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대다수의 어른이 그럴 것이다. 케이팝은 아이돌이 입은 옷소매 끝자락의 날림까지 미리 계산하는 기획의 음악이다. 그들은 투자와 성과에 민감하기에 언제나 총력전을 펼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대화나 설득이 아닌 압도되는 방식으로 케이팝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에겐 피로를 느끼는 레이더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몸을 사린다. 케이팝은 그래서 어른의 음악이 될 수 없다.               p.180


케이팝 문화는 환상을 사고 파는 일이다. '환상을 사고파는 일'은 거짓말로 유지된다. 아이돌과 팬은 '우린 서로를 사랑하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피상적인 합의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대다수 케이팝 팬은 이 합의를 믿고 따르지만, 그들 중 일부는 왜 그래야 하느냐며 저항한다. 그렇게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아이돌은 그 환상이 깨지지 않아야 먹고살 수 있으니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팬은 거기에 같이 장단을 맞추지 말고 계속해서 내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 팬들은 케이팝의 주체이자 객체다. 아이돌을 향한 사랑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발벗고 나서지만, 동시에 산업이 설계한 판 위에서 움직인다.


저자는 줄곧 케이팝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동시에 케이팝의 유해함도 지적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면서, 케이팝이라는 산업 전체를 통찰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토대로 케이팝을 현상이자 문화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케이팝을 들으며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던 역사를 털어놓는다. 기쁠때, 외로울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도 노래 가사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와 닿았던 적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을 챙겨보며 투표를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케이팝은 일상 속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자 기억이다. 오늘도 운동을 하며, 출근을 하며, 케이팝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애정과 애증 사이, '케이팝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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