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는 소설 -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순간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홍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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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똑바로 가는 공은 없어요."

말을 꺼낸 게 무안해질 만큼 차가운 대답이었다.

"제발 부탁인데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지 마쇼. 축구든 골프든 마찬가지야. 그런 건 전부 쓰잘데기없는 일이라고. 인생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냥 인생을 제대로 살아."               - 김홍, '인생은 그라운드' 중에서, p.29


돔 구장 확충을 위한 국민 희망 체육 펀드는 원금 보장과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만에 사기라는 게 밝혀졌고, 개막전 당일 야구팬들은 경기장 출입구에 붙은 빨간색 가압류 딱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 프로 야구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로야구 관중수 1300만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야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김홍 작가의 <인생은 그라운드>에서는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살면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 적도 없고, 항상 뭘 해도 상관없고 안 해도 상관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야구가 전국민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게 야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인 아니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비롯해서 쇠락해 가는 탄광촌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역도를 하고 있는 여학생, 익사할 뻔했던 기억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엄마의 수영 강습권으로 수영장에 들어서게 된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향해 달리는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한파 속에서 골목을 헤매는 인턴 기자, 부상으로 일을 잃은 요가 강사 등 이 책에는 달리고, 버티고, 실수하고, 헤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포츠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한 승자들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몸으로 살아 내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발을 뻗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기꺼이 발을 내미는 순간, 멈춰 서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신발 끈을 묶으며 일어서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달려가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내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함일 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안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 주기를,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 김혜나, '가만히 바라보면' 중에서, p.223


창비교육의 테마 소설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작품들을 선별해서 엮어 왔다. '우정'을 소재로 함께 걷는 소설, '가족'을 소재로 끌어 안는 소설, '노동'을 주제로 땀 흘리는 소설, '이별'을 주제로 손 흔 드는 소설 '재난'을 테마로 기억하는 소설, '환경'을 테마로 숨 쉬는 소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었다. 이번에 나온 <달려가는 소설>은 '스포츠'를 테마로 한 7편의 단편 소설을 묶었다. 김홍, 이수정, 김기태, 최아현, 김유담, 장류진, 김혜나 작가가 그려내는 야구, 수영, 역도, 풋살, 볼링, 쇼트트랙, 요가를 소재로 한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프로 야구가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야구를 혼자 하려는 고군분투, 우연히 양도받은 수영 강습권으로 어린 시절 호수에 빠졌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 순간, 들어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리기 위해서 시작한 역도,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죽은 오빠의 삶을 이해하게 하게 되는 경험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포츠에는 기록과 통계로는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며, 빛나는 장면들 뒤에는 오늘을 살기 위해 달리고, 헤엄치고, 버티는 몸의 서사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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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미워했던 여름 래빗홀 YA
이로아 지음 / 래빗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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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좋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때로는 미움받고 싶었다. 바라건대 그 미움은 질투와 경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면 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속내를 읽히지 않는 사람. 뒤집어 말하자면, 결코 무엇도 들키지 않는 사람.             p.48


연제는 친구들의 손금을 봐 주다 선생님의 호출로 갑작스럽게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 연제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적도 없고 모시는 신도 없었다. 연제는 엄마가 진짜 무당이 아니라 빠른 눈치와 유창한 언변으로 일종의 브랜딩을 해 사업을 해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집에 있던 연제에게 저 높은 곳에서 희고 노란 불꽃 같은 것이 추락했다. 천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천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엄마는 신의 심부름꾼이었는데, 주제를 모르고 저지른 실수가 하나 있다. 그것을 찾아 바로잡으면 깨어날 것이다. 그때까지 너에게 네 엄마의 알량한 재주를 빌려주마."


천사의 고지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엄마에게 진짜 능력이 있었다니.. 연제는 한번도 엄마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한겸이 반찬을 잔뜩 싸들고 찾아온다.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했다며, 보냉 가방 안에 주황색 반찬 통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연제는 우연히 한겸의 과거와 미래에 놓인 죽음의 순간들을 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한겸을 지켜온 건 엄마가 써준 부적 덕분이었는데, 그게 바로 '엄마의 실수'였던 것이다. 죽었어야 하는 한겸을 억지로 살려 놓은 대가로 엄마가 쓰러진 거였다.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한겸의 운명에 자신과 엄마까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 한겸이 죽으면 엄마는 깨어날 것이다. 연제는 한겸을 죽음에서 구하고 싶다는 마음과 그 죽음에 얽혀 있는 엄마를 향한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가 그런 식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내 삶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일마저도 실은 나와 아무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를 죽을 듯 괴롭게 만들었던 일의 시작과 끝은 사실 내 손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p.127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귀신 붙게 해 주세요> 등의 작품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이로아 작가의 신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에 열아홉이라는 나이는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친구가 죽는 미래를 보게 되었다면, 그 죽음을 막기 위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 한다면 어떨까. 한겸은 아홉 살때부터 모두가 죽을 것이라 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곤 했다. 엄마는 매년 한겸에게 부적을 보냈고, 그것이 천사가 말한 '엄마의 실수'였다. 한겸이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몇 번이나 되살아나며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멀리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쓰러진 지금, 한겸에게는 더 이상 엄마의 부적이 없다. 그러니 연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한겸은 자신의 운명에 잡아먹히고, 엄마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운명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수. 운명대로 돌아갔을 세상. 일찍이 정해진 대로 펼쳐졌을 미래. 그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선택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연제가 느끼는 원망과 미안함, 애정과 후회가 뒤섞인 마음을 고스란히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과연 연제와 한겸은 엇갈린 운명을 바로잡고 무사히 스무 살을 맞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이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 속으로 잘 녹아들어 섬세한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어 미워해야만 했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서툴지만 순수했던 열아홉의 여름방학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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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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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케이팝 문화를 ‘환상을 사고파는 일’에 비유한다. 케이팝은 나의 현실인데 왜 환상이라는 건지 토를 달고 싶지만…… 또 그것만큼 케이팝을 관통하는 비유는 없다. 먼저 아이돌 멤버의 입장에 서보자. 그들은 콘서트에서, 공개방송에서, ‘버블’에서 팬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여러분’을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데?...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p.53~54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그것은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덕질의 대상은 각자 취향에 따라 무궁무진하지만,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케이팝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케이팝을 바라보는 가장 내밀하고도 뜨거운 시선을 보여준다. <아무튼, 예능>이라는 책으로 만났던 복길이 6년 만에 펴내는 신작 산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 음악을 듣고 현실을 살아내며 벼린 최신의 사유를 더해 완성되었다. 저자는 케이팝 디제잉 공연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케이팝 덕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대중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수준높은 통찰도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이팝 역사에 이름을 남긴 케이팝 아티스트와 그들의 곡을 아우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대다수의 어른이 그럴 것이다. 케이팝은 아이돌이 입은 옷소매 끝자락의 날림까지 미리 계산하는 기획의 음악이다. 그들은 투자와 성과에 민감하기에 언제나 총력전을 펼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대화나 설득이 아닌 압도되는 방식으로 케이팝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에겐 피로를 느끼는 레이더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몸을 사린다. 케이팝은 그래서 어른의 음악이 될 수 없다.               p.180


케이팝 문화는 환상을 사고 파는 일이다. '환상을 사고파는 일'은 거짓말로 유지된다. 아이돌과 팬은 '우린 서로를 사랑하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피상적인 합의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대다수 케이팝 팬은 이 합의를 믿고 따르지만, 그들 중 일부는 왜 그래야 하느냐며 저항한다. 그렇게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아이돌은 그 환상이 깨지지 않아야 먹고살 수 있으니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팬은 거기에 같이 장단을 맞추지 말고 계속해서 내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 팬들은 케이팝의 주체이자 객체다. 아이돌을 향한 사랑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발벗고 나서지만, 동시에 산업이 설계한 판 위에서 움직인다.


저자는 줄곧 케이팝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동시에 케이팝의 유해함도 지적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면서, 케이팝이라는 산업 전체를 통찰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토대로 케이팝을 현상이자 문화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케이팝을 들으며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던 역사를 털어놓는다. 기쁠때, 외로울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도 노래 가사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와 닿았던 적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을 챙겨보며 투표를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케이팝은 일상 속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자 기억이다. 오늘도 운동을 하며, 출근을 하며, 케이팝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애정과 애증 사이, '케이팝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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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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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든 원할 때면 이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 느낌이 참 재미있다. 무거운 돌덩이를 집어 아이들의 두개골을 내리찍을 수도 있고 계단에서 밀어버릴 수도 있다. 칼날에 묻은 버터를 면앞치마에 슥 닦아내듯 이 땅에서 매끄럽게 제거해버릴 수 있다. 참으로 매혹적이지 않은가. 인간은 원하는 대로 서로를 치명적으로 해칠 능력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그 사실이.             p.149


크리스마스를 세 달 앞두고, 거대한 엔저 저택에는 새 가정교사가 도착한다. 중세시대에 지어진 엔저 저택에서 위니프레드 노티가 할 일은 게으르고 버릇없는 두 아이에게 프랑스어와 바느질을 가르치고, 잠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간 엄수의 중요성이나 예의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 저택에는 그 동안 가정교사들이 꽤 많이 왔다가 그만두었다. 그 이유가 아이들 때문인지, 고용주인 파운즈 부부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겉모습만 보면 빅토리아 시대 숙녀다운 품위를 유지하는 가정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위니프레드 노티의 내면에는 오래 억눌려 있던 어둠이 있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겠지만, 대부분 그걸 길들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과 폭력적인 충동을 드러낸다. 상냥하게 히죽 웃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끔찍한 상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자신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물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여태껏 어떤 상황에서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두려움이 없기에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양심의 가책이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따위는 해본 적이 없으니까. 현대적인 의미에서 완벽한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겠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사이코패스라니.... 작가는 대체 어떤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일까. 




노동하는 남자와 여자들은 통속적인 싸구려 소설을 찾아 다닐 것이다. 내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섬뜩한 묘사는, 최악의 끝을 궁금해하는 집요한 병적 호기심의 소유자들을 달래줄 것이다. 동전 한 닢의 여유도 없는 어린 노동자들은 딱지 앉은 손으로 번 돈을 각출해 얇고 더러운 소책자를 사서 돌려가며 읽을 것이다. 골상학자들은 내가 귀족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은 그들도 살인을 꿈꿀 수 있다는 걸, 살인이 남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될 것이다.                 p.270


어떤 상황에서도 죄책감이나 도덕적 고뇌를 하지 않는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 쉽게 공감이나 이해를 하긴 어렵다. 그래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지 않는 편이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곡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심리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읽는다면 '불편한 이야기에서 야릇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에서조차 유머러스한 독백을 툭툭 내뱉으며 분위기 전환을 시켜주는 것이 이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데,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광기로 가득찬 사악한 주인공 캐릭터였다. 


클라이막스의 무시무시한 살인 장면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했다. '화려한 발레 무대에서 몸을 휘두르고 팔다리를 뻗고 머리를 홱홱 돌리는 장면처럼' 연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내장이 한 줌의 장미 꽃잎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진다'는 지문에서 완벽한 광기가 느껴져서 오싹해졌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마치 교향곡의 경쾌한 합창처럼 울려 퍼지는 이 장면은 압도적인 여운을 남겨 준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도 만들어져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는데, 영상화된 버전은 더 음산하고 오싹할 것 같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버지니아 페이토는 ‘고딕 블랙코미디의 마녀’라고 불린다. 블랙코미디와 심리 스릴러를 결합한 이 작품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광기를 걷잡을 수 없이 터뜨려버린다. 이 작품은 악마가 건네는 일종의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이기도 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 셜리 잭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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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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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것을 알게 된 자의 서늘한 뒤통수,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가를 처음 깨닫는 긴장한 목덜미, 내가 알던 모든 말들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게 된 뜨거운 정수리. 무엇보다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을, 법열로 들끓고 있을,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눈동자.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델 것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그 장면을 보면서 저 큰딸만큼이나 조용히 그러나 머리에서 번개가 치듯이 놀랐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p.24~25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에게 '이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괴물은 왜 자신을 태어나게 했느냐고,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왜 이름도 주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고독한 삶에 대해 토로한다. 이 작품을 쓴 메리 셸리는 여성 작가의 창작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쓴 글임에도 익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다.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괴물의 운명과 자신의 '이름 없이' 책을 펴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운명은 묘하게 겹쳐진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렇게 이름을 빼앗긴 존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 길리어드의 권력층 남자들은 시스템을 이용한 신원 조회를 통해 가임기 여성들을 잡아 와 시설에 가둔다. 아기가 잘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 임신 능력을 가진 여자라면 귀중한 존재지만, 그들은 소중하니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가지고 있다. 시녀로 분류된 여자들은 지난 삶의 인간관계 전부와 평생 쓰던 이름을 빼앗긴다. 새 이름은 아기 없는 높은 계급의 불임 부부에게로 파견, 배치되면서 주인 남자 이름 앞에 전치사 '오브'만 붙은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임신과 출산이다. 사람에게 '오브'를 붙여 소유물로 지칭한다는 작명 시스템이 오싹해지는 작품이었다. 시녀들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이름의 지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시녀들에게 이름이란 뺏어도 되고 지워도 되고 바꿔도 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이름을 외던 원수들을 찾아가 어떤 다른 이의 얼굴로 자유자재 변환해서 단호하게 처단한다. 아리아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가, 얼굴 없는 자가 되었다가, 여러 얼굴을 가진 자가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 

마침내 스승이 말하던 그 순간,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p.208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속 이름없는 괴물부터 소유격 전치사로 이름 붙여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시녀 이야기>, 영화 <윤희에게>, <허공에의 질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를 외치는 김소월의 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20편의 작품 속 '무명의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준다. 괴물, 여성, 망자... 이름 없는 존재와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사유는 한때 나를 스쳤던 이름들과 서로를 부르는 우리의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호명하며 살아가는 이름들, 함부로 붙여진 이름, 빼앗긴 이름, 금지된 이름, 부르지 못한 이름, 부르면 안 되는 이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 내가 지은 내 이름, 남이 부르는 내 이름.... 우리의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에 내려 앉은 마음과 허공에 뜬 목소리.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어진다. 


초등 학교 시절에 같은 반에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이름이라 그런지 가끔 그런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단순하게 키에 따라 큰00, 작은00라고 부르곤 했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 앉고 했던 터라 난 큰00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왜 재는 이름이 나랑 같아서 이렇게 불리도록 상황을 만든 걸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같은 사람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성까지 같은 경우는 잘 없었고, 아주 가끔 성은 다른데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냥 친밀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름이란 참 이상한 관계성을 부여하는 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름은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성과 특별한 관계성, 사회적 맥락이 모두 교차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닿게 만들고, 서로를 구별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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