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별쌤 최태성의 한국사신문 1 : 선사~통일 신라와 발해 - 시간을 넘나드는 생생한 역사 뉴스
송진욱 그림, 김우람 글, 최태성 기획 / 아이스크림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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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몽과 그의 아내 소서노 사이에는 온조와 비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주몽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유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후 유리는 고구려의 제2대 왕이 되었습니다. 왜 주몽은 유리를 태자로 책봉했을까요? 오늘은 고구려 유리왕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유리왕께서는 갑자기 나타나 주몽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태자로 책봉되었지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p.38


황산벌 전투를 앞둔 계백 장군을 만나 승산이 있는지 물어보고, 신라에게 배신당한 백제 성왕의 심정을 들어보고, 극과 극으로 평가가 나뉘는 연개소문을 만나 그가 전략가인지 독재자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역사 속 주요 사건 현장을 취재하고 그 인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면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이번에 나온 <큰별쌤 최태성의 한국사신문>은 서술형 역사책과 달리 짧고 임팩트 있는 기사 스타일로 전개되어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사' 하면 자연스레 제일 먼저 떠올려 지는 이름인 최태성은 누적 수강생이 700만 명에 달하는 역사 강사이다. 대한민국 수능 역사 1타 강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타 강사답게 그의 책들은 강의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너무 재미있게 한국사를 풀어낸다. 


이 책은 역사 속 주요 사건을 마치 오늘 벌어진 일처럼 기사로 정리하고, 역사 속 인물을 인터뷰하고, 광고도 실어 보고, 칼럼도 수록했다. 큰별쌤이 직접 기자가 되어 취재한 것처럼 생생하게 쓰여있어 어린이 독자들이 어려운 한국사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먼저 각 호 신문의 핵심 사건과 기사 제목을 볼 수 있는 헤드라인이 구성되어 있어 한 눈에 핵심 사건을 볼 수 있다. 이어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된 주요 사건들을 신문 기사로 만나본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큰별 기자가 당대의 인물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인 큰별 인터뷰이다. 마무리는 큰별 기자의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취재하며 얻은 내용을 들려주는 큰별 칼럼이다.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표현한 광고 기사와 삽화 또한 한국사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켜 준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왔습니다.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대군이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인 황산벌까지 진군해 왔다고 합니다. 의자왕은 계백 장군에게 황산벌을 지키라는 중대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계백에게 주어진 병력은 고작 5,000명뿐. 그는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고자 출전을 결심했습니다. 지금부터 전투에 임하는 계백 장군의 각오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황산벌에 주둔한 신라군은 5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계백 장군님께는 군사가 고작 5,000명뿐입니다. 과연 승산이 있을까요?               p.110


이번에 첫번째 나온 책은 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와 발해에 해당되는 부분을 다루고, 앞으로 계속 근현대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책 속 내용을 시대의 흐름대로 정리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한국사 연표도 부록으로 받을 수 있다. 선사 시대와 삼국 시대, 그리고 통일 신라와 발해에 대한 내용이 정말 잘 정리되어 있고, 귀여운 일러스트들도 포함되어 아이들 눈에도 쏙 잘 들어올 것 같은 연표이다. 


선사 시대에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신석기인들이 어떻게 농사법을 터득하게 되었는지, 단군왕검은 어떤 고조선을 꿈꾸었으며, 알에서 나왔다는 신비한 탄생 이야기로 유명한 주몽은 고구려를 어떻게 건국했는지,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전술과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동성왕이 신라 왕족과 결혼한 이유와 신라 백성들에게 듣는 삼국 통일의 의미 등 교과 연계 학습은 물론 당시 인물들의 가십거리까지 만날 수 있다. 



역사는 단순히 오래된 과거 이야기가 아니고, 그냥 외우는 과목도 아니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이다. 어린이들이 역사를 좀 더 재밌고, 의미 있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아이들이 역사를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과 연결된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책이라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흥미가 생기도록 만들어 준다.


신문 기사 형식으로 한국사를 풀어 낸다는 것도 신선하고,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한번에 볼 수 있게 해주어 사고력과 문해력까지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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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그렇게 살지 마라 - 좋은 삶을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52가지 태도
롤프 도벨리 지음, 엘 보초 그림, 장윤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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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자기 통제라는 전염병을 앓고 있다. 자기계발서 중 절반은 자발적 동기 부여를 설파한다. '당신의 한계를 허물어라','자기 통제의 힘','동기 부여의 신화'같은 제목이 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한다... 책을 보고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가? 그건 중추 신경계가 '이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명확하게 말해주는 신호다. 그렇지 않다면 수백만 년의 진화가 왜 이런 감정을 발전시켰겠는가? ... 동기는 외부에서 와야 한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부에서 샘솟지 않는다.             p.20


인생이 시들어 가는 걸 보고 싶다면 어떤 일이 생겨도 그냥 무시하고 방치하면 된다, 불행하게 살고 싶다면 하루속히 평판과 명성을 망가트리면 된다,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지름길은 천하의 나쁜 놈처럼 거만하게 굴면 된다, 우아하게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좌절하는 대신 그걸 더욱 큰 계획의 일부로 여겨라, 나쁜 습관 또한 당신 인격의 일부이니 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라, 어리석은 목표를 잔뜩 세우고 거침없이 전진하라... 자기계발서에서 할 법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로 시작하는 말들로 가득한 이 책은 '우리 삶을 망치는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관점을 뒤집는 방식으로 우리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잘못된 걸 계속 고수하라고 말하면서, 나쁜 걸 더 하라고 부추기면서 말이다. 저자는 부정적인 조언이 긍정적인 조언보다 더 분명하고,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원리로 이 책을 썼다. 내면의 나약한 자아를 믿어라, 소셜 미디어에 빠져라, 자기연민에 빠져라,는 식의 글을 읽다 보면 강경한 어조에 당황스럽다가도, 잘되는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안 되는 길을 피하면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가 버려야 할 52가지 태도에는 각각 글의 핵심을 강렬하게 전달해 주는 일러스트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시각적 이미지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글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화려한 원색으로 저자의 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은 꽤 기억에 오래 남는다.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충고의 긴 리스트에 지치지 않도록 해주기도 하고 말이다. 




인간은 긍정적인 일보다 부정적인 일에 훨씬 더 강하게 반응한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부정적인 것은 우리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건 기껏해야 기분만 좋게 할 뿐이다. 먼 옛날, 수렵꾼과 채집인들 중에서도 분명 긍정적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검치호랑이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유전자 풀에서 퇴장 당한 이들 말이다. 살아남은 건 겁 많고, 걱정 많고, 의심 많은 자들이었다. 이들의 후예가 바로 우리다. 그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p.195


현재의 인생을 놓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과거에 머무르면 된다. 과거는 익숙하고 안전하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결과를 알 수 있어 편하다. 떠난 사랑, 놓친 기회, 다 자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자꾸 불러내며 아쉬워하자는 말을 듣는다면, 누구나 그럴리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 속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제대로 된 오늘을 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살면서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까. 가능한 한 적게 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신 과거를 자원으로 활용하면 된다.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필요 없는 환상은 떨쳐내자. 그래야 비로소 지금을 생생히 살고, 미래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암울한 시절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뒤에서가 아니라 앞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인생은 고되다. 실패는 당연하다. 개인사도 그렇고,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오늘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좌절하는 대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잘되는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안 되는 길을 피하면 된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스스로 성공을 걷어차고, 스스로 자기 삶을 망치고 있는가. 저자는 말한다. 불행은 셀 수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은 피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무심코 해오던 나쁜 습관이나 태도를 버리고, 삶의 방식을 바꿔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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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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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산다. 살기 위해 단순해진다. 그럴수록 한쪽은 더 무례해지고 한쪽은 더 어그러지지만 별수 없다. 해독제 못 찾으면 빨리 진통제라도 먹어야 하니까.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근본적인 치유를 한다는 게 가족끼리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가부장제의 기운에 눌려도, 외모 품평의 대상이 되어도, 학력 차별을 당해도, 직업의 귀천이 있음을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느끼지만 티 낼 수 없다. 가족끼리는 괜찮다는 건,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와 같은 뜻이니까.              p.60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 세상'에 길들여지면 기존과 달라지는 상황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부여하는 역할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달라야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사 노동의 평등을 위해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식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용감하게 응시해왔던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여자도 군대를 가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말은 대부분 왜 남자만 차별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그 자체가 남성 중심 사고이다. 그런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고통의 평준화 정책에 어떤 사회적이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군대 갈 아들에 대한 불안이, 딸도 군대 가면 감쪽같이 사라진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여성'도'라고 하는 순간, 그건 무조건 남자'만'이라는 추임새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왜 여자만'이라는 해묵은 구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여성은 '여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었고, 남성은 '남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지 않았다. 그러니 여성은 혜택'만' 누린다는 접근은 몰역사적 이해인 거고, 성차별적 편견을 활용해 사회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해법을 근시안적으로 만들게 되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 군대를 간들 '진정한 성평등'이 실현될 리도 없고 말이다. 




평범이 죄인 세상이다. 실제, 특출 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전투인데 말이다. 이들이 좀 안정적으로 살아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생애 과정에서 지루한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죽은 학자들만 등장하는 대학의 인문학 강의에 한 번쯤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웃과 연대하고 인류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심신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평범이라도 했기에 가능하다. 평범에서 하나만 삐끗해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라는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p.196~197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할수록 타인에게 날카로워지고, 학력 차별 비판에 공부 못해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며 반박하고, 빈부 격차 지적에 자본주의 사회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건 인간성과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눈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생각과 언어의 간편함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버리는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고민한다. 우리는 빈부격차에 대해 지적하면 “북한에 가라”라는 빈정거림이, 비정규직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그런 일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라는 조롱이,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서는 "너만 힘든 것도 아니다"라는 냉소가 돌아오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망가진 소통과 납작한 대화에 대해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공정은, 어감부터가 단호하다.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세상에서 약자들을 지켜주는 방패다. 사람들이 공정이란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회는 조금이라도 살 만한 세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단어가 '차별하는 것이 공정이다'라는 문장으로 소비된다. 차별을 옹호하는 이들은 불평등의 이유를 개인의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 권리 지켜준다고 비장애인이 힘들다고 말하고, 동성애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면 이성애자가 불편하다고, 임대 아파트 때문에 자기 집값 오르지 않으면 책임질 거냐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싫어할 자유, 혐오할 자유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 식이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공정과 연대의 가치가 제대로 사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공정이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고, 연대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매도해 약자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걸 막는다면 폭력은 더 교묘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차별과 혐오의 정당화 등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납작한 말들'이 등장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납작한 말들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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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일하는 나와 글 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
하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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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은 가장 눈에 띄는 동시에 가장 희미한 옷이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전경에서 물러나 배경이 되고, 그래서 거기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된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며 그건 결코 슬픈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유니폼을 입고 배웠다.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희미해질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 오직 일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 주는 이상한 해방감. 때로는 그걸 통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기도 한다... 투명 망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오늘도 내게서 한 걸음씩 멀어진다.               p.48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화려한 이력이 담긴 이력서부터 보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이력서를 가득 채운 것은 전부 마트 행사 이력이다. 하현 작가는 파견직으로 냉장두유, 와인, 세탁 세제, 소형 가전제품, 초당옥수수, 파인애플, 냉동피자, 전통차 등을 팔면서 글쓰기를 해왔다. 이 책은 그렇게 14년 동안 여덟 곳의 마트에서 근무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대 사회의 신분이나 다름없는 정규직 타이틀을 포기하고 마트 계약직으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마다의 기구한 팔자를 자랑하며 돈도 잃고, 집도 잃고, 사랑도 잃어버린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트로 향한다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부잣집 사모님이 갑자기 닥친 시련으로 한순간 '마트 아줌마'로 전락하는 상황, 다들 드라마에서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장면은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한달음에 달려와 이런 대사를 한다. "당신이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해!"


그렇다면 '이런 일'이란 무엇일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작가가 마트에서 일하기 위한 면접에서도 "나이도 어리고 스펙도 괜찮고...... 아무리 봐도 여기서 일할 사람 같지 않은데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것도 작정하고 던진 뾰족한 말이 아니었기에, 여기서 일할 사람 같은 건 뭘까..라고 생각하며 마트에서 돈을 벌게 된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고. 그렇다면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작가는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재희 언니의 말대로 이곳에는 미래가 없었다. 마트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현재일 뿐이었다. 오늘의 성실은 단지 오늘만을 보장했다. 버틴다고 해서 대단한 경력이 되지도, 쌓인다고 해서 내세울 만한 기술이 되지도 않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내일도 내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마트를 떠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걸. 그럼에도 외면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그 막막함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이 두렵고 불편했다.              p.145


사람들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매번 마트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덕분에 마트에서 근무하는 동안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잘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대부분이 중년 기혼 여성인 마트에서 작가는 매순간 생각한다. 파견직과 계약직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해,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여성과 청년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마트는 직원을 존중하는 직장이 아니었고, 마트에서 일하며 마주하는 손님들 또한 툭 치면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화풀이 대상으로 직원을 대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곳에서 버텨내봤자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버틴다고 해서 대단한 경력이 되지도, 쌓인다고 해서 내세울 만한 기술이 되지도 않는 일. 그럼에도 마트에서의 노동은 정직하다. 일곱 시간 반 근무, 한 시간 식사, 삼십 분 휴식. 작가는 정직한 노동의 세계로 인해 글쓰기를 통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장을 얻는다.



사실 퇴근과 함께 끝나는, 절대 집까지 따라오지 않는 일이란 거의 없지 않을까. 퇴근 시간을 딱 맞춰 지킬 수 있는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하현작가처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마트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선명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읽고 쓰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삶을 위해 기본적인 생활 정도만 가능하게 하는 월급을 받으며 살아온 방식을 존중한다. 누구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자신의 꿈과 보람을 얻게 해준다면 그 선택이 옳은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내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작가의 고민이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마트가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이 투영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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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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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서양의 기원으로 간주하지만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투키디데스가 묘사한 고대 그리스 세계는 그와 달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세계였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아테네 정치가들이 장려한 세계관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우리>와 <그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에 의해 세계가 갈라졌다는 시각을 고수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인의 후손이자 그들로부터 서양 문명의 계보를 이었다고 여겨진 자들은 정작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p.56~57


법률로 노예제를 보장하고 인종주의를 그 구조의 핵심적인 신념으로 삼는 식민지 사회에서 흑인 노예이자 젊은 여성인 열여덟 휘틀리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백인 식민지인 가운데 다수는 10대 흑인 소녀가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가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밝히라는 대중의 요구도 거셌다. 그래서 법정에 모여 자신이 쓴 시집의 저자임을 증명하도록 소환된 것이다. 인종, 나이, 성별 탓에 여론은 불리했지만, 결국 휘틀리는 승소했다. 그리고 1년 뒤에 마침내 그녀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휘틀리의 생애와 저작은 서양 문명이라는 발상에 담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써 생물학적 서양이라는 이념에 도전한 것이니 말이다.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니냐 맥 스위니는 이 책을 통해 휘틀리 처럼 서양 문명의 경계선에 있던 열네 명의 삶과 저작을 통해 <서양 문명>으로 알려진 거대 서사를 낱낱이 풀어헤친다. 일반적으로 서양사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암흑의 중세와 찬란한 르네상스를 거쳐 계몽주의 시기 유럽과 근대화된 대서양 연안 국가를 지나 산업혁명,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계보로 읽어낸다. 하지만 이 책은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아랍의 최초 철학자, 포르투갈에 맞선 북아프리카의 왕 등을 통해 그동안 감춰졌던 서양이란 역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소개된 인물들 중에 헤로도토스,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프 워런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처음 들었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서양이라는 개념과 서양 문명이라는 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특정한 이념적 기능을 수행했기에 17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면서 구성되고 대중화되었다. 그것은 서양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제공했으며, 그 신화는 수준 높고 영광스러운 과거를 바탕으로 지배를 정당화하고 예속을 합리화하는 이념적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이념적 기능은 쓸모를 잃었다. 오늘날 서양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인종적 억압이나 제국주의적 패권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원 신화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 결과 서양 문명에 대한 서사를 근대 서양의 자유 민주주의 원칙에 더 알맞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p.455


<서양>은 어떤 지리적 위치나 문화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보통은 어떤 문화적 요소 및 정치적, 경제적 원칙을 공유하는 근대적 국민 국가를 일컫는데 사용된다. 우리에게 서양사는 언제나 단일하고도 선형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기준이 되어 <서양>이라는 이름은 진보와 합리성, 보편의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저자는 주류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서양이라는 개념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우리가 당연히 서양이라 여겨 온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16세기 후반에서 시작된 서양과 비서양의 구도는 18세기에 정착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양이라는 이름은 점차 하나의 권위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이란 역사는 과연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지금과 같이 정의된 걸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서양사의 외피를 걷어 내고, 그 안에 감춰진 민낯의 역사를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서양의 역사와 문명을 인류의 중심이라 여기는가? 그 인식은 과연 사실인가? 이 책은 서양 문명이 지닌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서양의 기원을 검증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형적 족보라는 환상을 벗겨 낸다. 그리고 서양 문명이 이념적 도구로 작동한 방식을 생각하고, 그것이 출현해 오늘날 익숙한 거대 서사로 발전해 나간 과정을 추적한다. 수천 년 역사를 조망하는 책이기에 분량도 상당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결코 수월하게 읽힐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감춰져 온 진정한 서양 문명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었다. 자, 역사에 드리운 왜곡과 오해를 걷어내고, 진짜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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