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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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탐정 역을 맡는 캐릭터도 그래. 직업이나 성격으로 차별화하기는 하지만 수수께끼 풀이 자체는 누가 설명해도 마찬가지인, 개성 없는 장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애초에 누구나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면 본격 미스터리로 성립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어. 결국 탐정 캐릭터들도 '모범 답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걸지도 몰라."

그렇기에 복각과 재현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추리소설에서 독창성이란 무엇일까?               - 아오사키 유고, 〈끈, 밧줄, 로프〉 중에서, p.36


한 아파트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시체는 아파트 근처 바다에 면한 운송 회사 창고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산책로 아래에서 발견한다. 여러 정황 증거상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사건이 있었던 날 밤 아파트 안에 있던 사람은 29명이었다. 그 중에서 구속에 사용된 로프 도구에 착안해 아파트 쓰레기 배출 상황을 조사했고, 의심이 가는 인물 세 명이 용의자로 좁혀 진다. 셋 중에 어떤 것이 범행에 사용된 증거품인지 알 수 없어, 후보 세개를 순서대로 끈, 밧줄, 로프라고 정하고 조사가 시작된다. 추리소설가인 아리스와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의 케미와 논리적으로 추리를 해나가나는 과정이 돋보이는 아오사키 유고의 작품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는 '나'는 사년 만에 대학 시절 미스터리 연구회에서 함께했던 친구 에이지의 연락을 받게 된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내가 쓴 소설을 발견했다며, 제사가 있어서 도쿄에 가는데 잠깐 보자는 거였다. 대학 시절 에이지는 내향적인 성격이었던터라 먼저 만나자는 약속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잠깐 얼굴을 보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뒤, 회사로 경찰 두 명이 찾아온다. 그들은 미우라 해안 별장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며, 에이지를 아느냐고 묻는다. 살해당한 사람은 에이지와 호적상 부자관계로, 재산을 노리고 접근해 에이지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던 거다. 동기는 분명한데, 완벽한 알리바이를 깰 수가 없어서 경찰이 찾아온 거였다. 과연 에이지는 '나'를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이용한 걸까. 알리바이 트릭을 테마로 한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수께끼를 고민하는 과정이나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못하면 즐거움이 반감하는 모양이다. 

물론 독서는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행위지만 미스터리는 작가가 곳곳에 설치한 복선을 찾아내거나 논리적 해결을 끌어내기 위해 작품에 설정된 현실성의 수준을 해석하는 등, 그 작품에서는 신이라 할 수 있는 작가와 사고의 캐치볼을 즐기는 측면이 있다. 혼자서 하는 것 같지만 거울 뒤편에 존재하는 작가와 추리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 이마무라 마사히로,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 중에서, p.418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데뷔 35주년 기념 헌정 작품집에 엄청난 작가들이 모였다. <지뢰 글리코>의 아오사키 유고, <창궐>의 이치호 미치, <기억술사>의 오리가미 교야, <엘리펀트 헤드>의 시라이 도모유키, <방주>의 유키 하루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의 아쓰카와 다쓰미, 그리고 <시인장의 살인>을 쓴 이마무라 마사히로까지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일곱 명이 참여해 그야말로 미친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이 기획 자체나 멤버 이름을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란 것은 완성된 작품을 읽었을 때였습니다.”라며 "기예가 뛰어난 작가들이 작정하고 유희를 즐기면 이런 작품이 나오는구나." 하고 작품에 대한 찬사를 남겼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표현해 온 캐릭터나 다양한 설정, 세계관을 사용해 각자의 스타일대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 최근에 읽었던 앤솔러지 중에서 가장 퀄리티가 훌륭한 작품집이었다. 지금의 미스터리 시장을 주도하는 젊은 작가들이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대작가에게 바치는 헌사로 쓴 작품들이기에 수준 높은 미스터리들이 탄생하게 된 것 같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를 소재로 활용한 작품들이 많아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일상 미스터리, 괴담이라는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알리바이 트릭, 다잉 메시지의 비밀 등 여러 종류의 미스터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직접 작품 해설을 썼는데, 원작자의 시점에서 들려주는 감상도 매우 흥미로웠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잘 모르더라도 이야기를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추리, 미스터리 물을 좋아한다면 이 멋진 기획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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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텔레패스
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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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령이 보이세요?"

"안 보이는데."

"유령을 믿으시는 건가요?"

"몰라. 그러니까 조사하는 거지."

내 질문에 하루코 씨는 그늘 한 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p.58


금요일 밤, 퇴근 준비를 하던 카렌에게 직장 동료가 말을 건다. “이상한 괴담 들으러 가실래요?” 남동생이 대학교 오컬트 연구회 소속인데, 동아리에서 괴담을 들려주는 이벤트를 일요일에 한다는 거였다. 무서운 걸 보러 혼자 가기 싫다는 말에 함께 가기로 하고, 괴담 발표회에 참석하게 된다. 다른 괴담들은 평범했지만, 한 여학생이 홀로 등장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괴담은 오싹했다. 오직 카렌에게 들려주는 괴담인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로, 그녀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틀 후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 거실에 있는데 침실 쪽에서 '철퍽'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비릿한 개골창 냄새가 난 것이다. 그렇게 엿새가 지나는 동안 매일 밤 이상한 소리와 냄새가 시작된다. 


그렇게 시달리다 해결할 방법이 없자, 초자연현상으로 고민하는 분들의 제보를 받는다는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라는 곳은 대학교 초심리학 연구실과 제휴해 초자연현상의 실태를 조상한다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한편 의뢰를 받은 고시노와 하루코는 조그만 영화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취미라고 하기엔 꽤나 전문적이었는데, 전직 형사인 탐정과 한때 초능력 소년으로 유명했던 초능력자와 친분이 있었고, 대학교 연구실과도 소통하며 초자연현상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그들의 카렌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해나가면서, 그 동안 괴담 발표회에서 카렌처럼 지목당해 괴담을 들었던 이들이 모두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실종된 다섯 명은 모두 실종되기 전에 카렌과 똑같은 현상을 체험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상황이었던 거다. 괴담을 듣는 것만으로 사람이 실종되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 가운데 나는 뭔가가 마음에 걸려서 속이 탔다.

아까 대화하다가 뭔가 알아차릴 뻔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머릿속을 맴도는 정보의 조각을 잘 짜맞출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발상의 꼬리를 붙잡기 위해 고전적인 방법에 의지하기로 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저기, 죄송한데요, 그, ESP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존재하는 거죠?"                p.173


이 작품은 일본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도쿄소겐샤’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21세기 일본에 걸맞은 걸작’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개최한 '소겐 호러 장편상' 수상작이다. 작품을 쓴 가미조 가즈키는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로 호러문학에 빠진 후 호러 기사와 단편소설을 써왔다. 그러다 사와무라 이치가 심사위원이라는 이유로, 난생처음 장편소설을 집필하여 소겐 호러 장편상에 응모해 수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호러로서도 오락소설로서도 아주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심사위원 전원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각종 미스터리 차트를 휩쓸며 최고의 호러소설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하려는 학문인 초심리학이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다. 괴담과 초자연능력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추리 과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 특히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유령이 정말 존재하는지, 저주라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그걸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시각은 크게 달라진다. 유령이나 저주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해도, 그것을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과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초자연현상이 실제로 벌어졌으니,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증명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굉장히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그 과정이 재미도 있거니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오싹함도 갖추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던 작품이었다. 현지에선 후속편 <폴터가이스트의 죄수>가 출간되었고, 작가는 현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국내에서도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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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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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원래 사는 게 연기에 가까운 거라고 일러주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사랑도 듬뿍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여사는 자신이 연기를 아주 지독하게 못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매번 사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너희는 말이야. 지금 혼란스럽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돼."                  p.107


이중일은 어릴 때부터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꿈꿨지만, 지방의 응급구조학과를 나와 여섯 번째 고시에 실패하면서 노력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은 사설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온갖 환자를 대형 병원으로, 요양 병원으로, 정신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사설 구급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아주 절실했고 치열했기 때문에, 그런 환자와 보호자들을 이송하는 동안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대하거나, 싸움을 중재하며 얻어맞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현장에 있다가 집에 오면 모든 게 허무했다. 잔뜩 사다 놓은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별다른 취미도 없어 통장에는 푼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가끔 절연한 부모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의 이상한 평화에 만족했다. 


그날도 환자와 보호자를 이송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고, 두 사람은 기필코 휴게소에 들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통증이 심해 공황 증세를 보인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들은 휴게소에서 잎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었고, 그는 놀라 아연실색해 그들에게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얘기를 듣다 보니 보호자가 환자의 차를 10년 넘게 몰았다고, 구급차를 몰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다 그들에게 구급차를 빼앗기게 되는데, 어쩌다 보니 도망치려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휘말려 구급차를 자신의 의지로 내어주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완벽하게 그들의 편이었기 때문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중일은 환자의 탈출에 공범이 되기로 한 걸까. 




그리고 근정에게 물었다. 너는 이 모든 게 진심인 거냐고. 근정은 정말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는 보통 이런 걸 진심이라고 하지 않아? 근정의 물음은 너무나 간결했고, 그래서인지 더욱 명백하게 느껴졌다. 문주는 도대체 이런 걸 진심이 아니면 무엇을 진심이라 하겠느냐고, 응당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면서도 자꾸 미심쩍었다. 또한 자신이 그 미심쩍은 마음을 결코 지울 수 없다 는 것이 너무 의아했다.              p.282~283


함께 사는 가족이든, 영원을 약속한 연인이든, 뭐든 해주고 싶은 친구이든, 믿고 의지되는 동료이든 간에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대를 믿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소연 작가의 신작 소설집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한패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 나온다.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차마 관계를 끊지는 못하며, 상대의 말에 불만과 분열을 경험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그의 편에 서기로 한다. 어딘가 수상하고 불가피해 보이는 이들의 연대를 우리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타인을 돕는 것이 곧 자신을 돌보는 행동이 되고, 누군가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결정하는 것이 결국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극중 시터로서 극진하게 할머니들을 돌보는 희지에게 한 보호자가 한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희지 씨, 그러지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정말로. 그래서 괜찮은 거예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했지만 그럼으로써 깎이는 마음을 도로 채우는 법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적이 나 역시 있었기에 마냥 소설 속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졌다. 동시대의 가장 최전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소연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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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균형 - 불안과 기쁨, 슬픔과 행복 사이 삶의 온도를 맞추는 일
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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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쌓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과 삐끗한 선과 그럼에도 계속하는 시간. 그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을 만든다. 창작에서 완벽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다. 도착점은 늘 멀지만, 그쪽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단 하는 것. 그리고 아닌 것을 알아내는 것. 그 정도면, 오늘의 작업은 충분하다.              p.162~163


세상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은 거짓말처럼 매일 봐야 한다거나, 웃고 있을 때 실패를 마주하거나, 평안한 한낮에 불행이 쳐들어오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럴 때마다 툭툭 털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게 삶이기도 하니 말이다.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과 <무명의 감정들>에서 불안의 세계를 헤매던 캐릭터 '무명'이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느슨한 균형>이라는 제목처럼 삶의 균형을 잡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의 균형이라는 건 양쪽을 반으로 뚝 나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하루 중 절반은 슬프고 절반은 기쁘면 되는 그런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균형을 잘 잡는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표지 이미지에서도 보이더니, 시소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삶의 균형은 더 그렇고 말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건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인 것 같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불안과 기쁨 사이에서, 슬픔과 행복 사이에서, 그리고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살고 있다. 누워 있으면 묘한 죄책감이 들고, 일을 하면 냅다 눕고 싶고, 사소한 것에 쉽게 기쁘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금세 울적해진다. 직장인과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다 전업 작가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저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가꾸며 그 속에서 균형을 잡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작가는 불안과 기쁨, 슬픔과 행복 사이에서 스스로 굳게 서기 위해 균형을 다잡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극적이다. 각자의 일정과 마음의 여유, 서로를 향한 온기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조건들을 맞추기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된다. "나중에 한번 보자"는 말들이 기약 없이 흩어지는 나날 속에서, 마침내 마주 앉은 시간은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깝다. 함께 있는 동안 삶의 속도는 기분 좋게 헐거워진다. 서두르지 않고, 이 시간이 어떤 결과를 남길지 따지지 않는다.               p.279


열정과 회피가 공존하며, 행복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는 감정 상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 얘기처럼 공감되는 지점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향형과 외향형 사이를 왕복하며, 비뚤어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고, 제대로 쉬는 법을 하나씩 배워 가는 중인 작가의 모습은 캐릭터 '무명'을 통해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른이 되면 안정된 직업이라든가, 삶을 영위하는 지혜라든가, 여유로운 마음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된 우리는 알고 있다. 가끔은 이를 꽉 물고 노력하고, 참아내고, 책임지고, 쟁취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내야만 겨우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들이다. 단단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멋지게 자신을 지켜가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는 '할 순 있는데 지침'이 있다고 한다, 라는 문장을 읽으며 빵 터졌다. 작가가 이런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할 순 있는데 은은하게 지쳐서 일단 생각만 하는 상태라고 썼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페이지를 공감하며 읽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 계획은 많은데 실행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싶고,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돌아보면 결과가 시원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찌저찌 해내는 날들... 아마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내용만큼이나 책의 외관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었다. 한 손에 잡히는 판형과 사철제본으로 되어 있어 페이지를 펼칠 때, 넘길 때 모두 너무 편했다.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불안의 세계를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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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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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자기 과시적이지 않은 사람에게서 우아함을 느낀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거슬리는 몸짓이나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우아한 사람이다. 우아함이란 주체가 드러내는 진정한 자연스러움에 대한 찬사로, 그런 사람은 가식 없이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진솔한 모습으로 매력을 풍기며, 조용히 평온함을 퍼뜨리는 능력이 있다.              p.61


우리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간의 소통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 현대인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일상의 꽤 많은 시간을 화면 속 세상에서 보낸다. 인터넷과 SNS의 일상화로 전 세계는 물론 개개인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약해졌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저하되었다. 이렇게 정신적 빈곤에 처한 현대인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스페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인 저자는 그에 대한 처방으로 우아함의 가치를 되살린다. 우아함은 가식 없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기품처럼 내적으로 타고난 본질적 특성과 교육을 통해 형성된 도덕적 고귀함 및 단순함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뜻한다. 저자는 우아함의 본질인 지적인 사고와 판단이 현실 속 삶을 붙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 부수적인 목표이거나, 덕 있는 삶의 결과 혹은 뜻밖의 행운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각종 스크린이 사회와 일상에 보편화되기 이전 시대의 행복은 삶의 여정 속에서 찾아 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올바르게 살고 행동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쾌락과 욕망의 개념을 반드시 포함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행복 개념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의 행복은 삶에서 집착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것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행복을 얻는 일은 개인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행복을 얻는 일 자체를 행운으로 여겼으므로 그렇지 못할 때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포스트 행복은 이 방정식에서 ‘행운’이라는 요소를 제거했고, 자유주의 이념의 원격 조종을 받아 성공은 긍정적인 사고와 연결하고, 실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p.249


우리는 지금 물리적 국경도, 가상적 국경도 사라진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과도 즉시 연결될 수 있고, 상품과 유행, 이념 등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해서, 더 나은 정보를 얻을 능력까지 향상된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기술 산업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다. 다양한 기술의 발달은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노력과 시간을 절약해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 부족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며, 시간이 줄어 들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역설적 흐름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형태의 소셜네트워크는 사생활 보호와 과시욕, 자율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역학에 빠지도록 만든다. 겉보기에는 행복을 얻을 기회가 훨씬 많아졌음에도, 삶의 기쁨은 더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게 된 것이다.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고, 정신 건강 문제도 더욱 늘어났으며, 도시 거주민들 사이 연결성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빈곤 상태를 해결해 줄 방안이 '우아함'이라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세련됨, 단정함, 상냥함, 평온함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아함이라는 가치가 사람들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개인이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판단하는 지적인 사고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결핍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맞서는 사유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이 책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우아한 사람은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또한 우아함은 단순히 미적인 감각에만 국한되지 않고, 윤리, 정치, 사회적 상호 작용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올바른 선택을 위한 통합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우아하게 생각하고 사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잘 살려고 애쓸수록 왜 더 불안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면, 현실 속 삶을 단단히 지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이 책을 통해 우아함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삶의 지향점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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