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케이팝 문화를 ‘환상을 사고파는 일’에 비유한다. 케이팝은 나의 현실인데 왜 환상이라는 건지 토를 달고 싶지만…… 또 그것만큼 케이팝을 관통하는 비유는 없다. 먼저 아이돌 멤버의 입장에 서보자. 그들은 콘서트에서, 공개방송에서, ‘버블’에서 팬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여러분’을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건데?... 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이 환상이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p.53~54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그것은 마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덕질의 대상은 각자 취향에 따라 무궁무진하지만, 지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케이팝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케이팝을 바라보는 가장 내밀하고도 뜨거운 시선을 보여준다. <아무튼, 예능>이라는 책으로 만났던 복길이 6년 만에 펴내는 신작 산문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한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 음악을 듣고 현실을 살아내며 벼린 최신의 사유를 더해 완성되었다. 저자는 케이팝 디제잉 공연 ‘슬픔의 케이팝 파티’의 기획자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케이팝 덕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대중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수준높은 통찰도 함께 보여준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이팝 역사에 이름을 남긴 케이팝 아티스트와 그들의 곡을 아우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대다수의 어른이 그럴 것이다. 케이팝은 아이돌이 입은 옷소매 끝자락의 날림까지 미리 계산하는 기획의 음악이다. 그들은 투자와 성과에 민감하기에 언제나 총력전을 펼치고, 그로 인해 우리는 대화나 설득이 아닌 압도되는 방식으로 케이팝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에겐 피로를 느끼는 레이더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몸을 사린다. 케이팝은 그래서 어른의 음악이 될 수 없다.               p.180


케이팝 문화는 환상을 사고 파는 일이다. '환상을 사고파는 일'은 거짓말로 유지된다. 아이돌과 팬은 '우린 서로를 사랑하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피상적인 합의 위에서 관계를 맺는다. 대다수 케이팝 팬은 이 합의를 믿고 따르지만, 그들 중 일부는 왜 그래야 하느냐며 저항한다. 그렇게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아이돌은 그 환상이 깨지지 않아야 먹고살 수 있으니 어떻게든 자신의 진짜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팬은 거기에 같이 장단을 맞추지 말고 계속해서 내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 팬들은 케이팝의 주체이자 객체다. 아이돌을 향한 사랑으로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성공을 위해 발벗고 나서지만, 동시에 산업이 설계한 판 위에서 움직인다.


저자는 줄곧 케이팝의 즐거움을 예찬하면서 동시에 케이팝의 유해함도 지적한다. 지극히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면서, 케이팝이라는 산업 전체를 통찰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식을 토대로 케이팝을 현상이자 문화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케이팝을 들으며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던 역사를 털어놓는다. 기쁠때, 외로울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도 노래 가사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와 닿았던 적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아이돌 콘서트에 가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방송을 챙겨보며 투표를 한 적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케이팝은 일상 속 시간을 함께한 추억이자 기억이다. 오늘도 운동을 하며, 출근을 하며, 케이팝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애정과 애증 사이, '케이팝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언제든 원할 때면 이 아이들을 죽일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 느낌이 참 재미있다. 무거운 돌덩이를 집어 아이들의 두개골을 내리찍을 수도 있고 계단에서 밀어버릴 수도 있다. 칼날에 묻은 버터를 면앞치마에 슥 닦아내듯 이 땅에서 매끄럽게 제거해버릴 수 있다. 참으로 매혹적이지 않은가. 인간은 원하는 대로 서로를 치명적으로 해칠 능력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그 사실이.             p.149


크리스마스를 세 달 앞두고, 거대한 엔저 저택에는 새 가정교사가 도착한다. 중세시대에 지어진 엔저 저택에서 위니프레드 노티가 할 일은 게으르고 버릇없는 두 아이에게 프랑스어와 바느질을 가르치고, 잠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간 엄수의 중요성이나 예의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 저택에는 그 동안 가정교사들이 꽤 많이 왔다가 그만두었다. 그 이유가 아이들 때문인지, 고용주인 파운즈 부부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 달 안에 이 집 안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겉모습만 보면 빅토리아 시대 숙녀다운 품위를 유지하는 가정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위니프레드 노티의 내면에는 오래 억눌려 있던 어둠이 있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악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겠지만, 대부분 그걸 길들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과 폭력적인 충동을 드러낸다. 상냥하게 히죽 웃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끔찍한 상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자신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물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여태껏 어떤 상황에서도 울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에게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두려움이 없기에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양심의 가책이나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따위는 해본 적이 없으니까. 현대적인 의미에서 완벽한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겠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사이코패스라니.... 작가는 대체 어떤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일까. 




노동하는 남자와 여자들은 통속적인 싸구려 소설을 찾아 다닐 것이다. 내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섬뜩한 묘사는, 최악의 끝을 궁금해하는 집요한 병적 호기심의 소유자들을 달래줄 것이다. 동전 한 닢의 여유도 없는 어린 노동자들은 딱지 앉은 손으로 번 돈을 각출해 얇고 더러운 소책자를 사서 돌려가며 읽을 것이다. 골상학자들은 내가 귀족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은 그들도 살인을 꿈꿀 수 있다는 걸, 살인이 남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될 것이다.                 p.270


어떤 상황에서도 죄책감이나 도덕적 고뇌를 하지 않는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 쉽게 공감이나 이해를 하긴 어렵다. 그래서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지 않는 편이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곡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심리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읽는다면 '불편한 이야기에서 야릇한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에서조차 유머러스한 독백을 툭툭 내뱉으며 분위기 전환을 시켜주는 것이 이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데,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광기로 가득찬 사악한 주인공 캐릭터였다. 


클라이막스의 무시무시한 살인 장면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했다. '화려한 발레 무대에서 몸을 휘두르고 팔다리를 뻗고 머리를 홱홱 돌리는 장면처럼' 연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내장이 한 줌의 장미 꽃잎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진다'는 지문에서 완벽한 광기가 느껴져서 오싹해졌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마치 교향곡의 경쾌한 합창처럼 울려 퍼지는 이 장면은 압도적인 여운을 남겨 준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도 만들어져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는데, 영상화된 버전은 더 음산하고 오싹할 것 같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버지니아 페이토는 ‘고딕 블랙코미디의 마녀’라고 불린다. 블랙코미디와 심리 스릴러를 결합한 이 작품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광기를 걷잡을 수 없이 터뜨려버린다. 이 작품은 악마가 건네는 일종의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이기도 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 셜리 잭슨,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자의 서늘한 뒤통수,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가를 처음 깨닫는 긴장한 목덜미, 내가 알던 모든 말들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게 된 뜨거운 정수리. 무엇보다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을, 법열로 들끓고 있을,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눈동자.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델 것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그 장면을 보면서 저 큰딸만큼이나 조용히 그러나 머리에서 번개가 치듯이 놀랐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p.24~25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에게 '이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괴물은 왜 자신을 태어나게 했느냐고,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왜 이름도 주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고독한 삶에 대해 토로한다. 이 작품을 쓴 메리 셸리는 여성 작가의 창작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쓴 글임에도 익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다.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괴물의 운명과 자신의 '이름 없이' 책을 펴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운명은 묘하게 겹쳐진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렇게 이름을 빼앗긴 존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 길리어드의 권력층 남자들은 시스템을 이용한 신원 조회를 통해 가임기 여성들을 잡아 와 시설에 가둔다. 아기가 잘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 임신 능력을 가진 여자라면 귀중한 존재지만, 그들은 소중하니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가지고 있다. 시녀로 분류된 여자들은 지난 삶의 인간관계 전부와 평생 쓰던 이름을 빼앗긴다. 새 이름은 아기 없는 높은 계급의 불임 부부에게로 파견, 배치되면서 주인 남자 이름 앞에 전치사 '오브'만 붙은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임신과 출산이다. 사람에게 '오브'를 붙여 소유물로 지칭한다는 작명 시스템이 오싹해지는 작품이었다. 시녀들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이름의 지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시녀들에게 이름이란 뺏어도 되고 지워도 되고 바꿔도 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이름을 외던 원수들을 찾아가 어떤 다른 이의 얼굴로 자유자재 변환해서 단호하게 처단한다. 아리아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가, 얼굴 없는 자가 되었다가, 여러 얼굴을 가진 자가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 

마침내 스승이 말하던 그 순간,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p.208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속 이름없는 괴물부터 소유격 전치사로 이름 붙여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시녀 이야기>, 영화 <윤희에게>, <허공에의 질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를 외치는 김소월의 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20편의 작품 속 '무명의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준다. 괴물, 여성, 망자... 이름 없는 존재와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사유는 한때 나를 스쳤던 이름들과 서로를 부르는 우리의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호명하며 살아가는 이름들, 함부로 붙여진 이름, 빼앗긴 이름, 금지된 이름, 부르지 못한 이름, 부르면 안 되는 이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 내가 지은 내 이름, 남이 부르는 내 이름.... 우리의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에 내려 앉은 마음과 허공에 뜬 목소리.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어진다. 


초등 학교 시절에 같은 반에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이름이라 그런지 가끔 그런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단순하게 키에 따라 큰00, 작은00라고 부르곤 했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 앉고 했던 터라 난 큰00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왜 재는 이름이 나랑 같아서 이렇게 불리도록 상황을 만든 걸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같은 사람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성까지 같은 경우는 잘 없었고, 아주 가끔 성은 다른데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냥 친밀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름이란 참 이상한 관계성을 부여하는 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름은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성과 특별한 관계성, 사회적 맥락이 모두 교차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닿게 만들고, 서로를 구별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를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들의 아버지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나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내가 알아낸 비밀이 너무 성가시기 때문이다. 내가 비밀을 공개하면 기존의 모든 주장들이 무너지면서 학계 전체가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건 진리의 문제다. 진리에 맞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진리를 아무리 물속에 처박으려 해도 결국엔 다시 물위로 떠오르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대,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 1권, p.57


저명한 고생물학자 아제미앙 교수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범인의 자취도,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살인자는 준비된 흉기가 아니라 범죄 현장에서 대용물을 구했다. 범죄 수법이 여러 가지 점에서 동일한 사건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그렇게 수사는 시작되자마자 종결되었다. 살인 사건에 관심을 둔 것은 마침 위층에 살던 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였다. 신참 기자인 그녀는 이 살인 사건이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랑자의 소행이 아니라 누군가 교수의 입을 막고 싶어 하는 자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던 교수가 어떤 비밀을 발견해 세상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부장은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며,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어떻게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는가, 에 대한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이다. 결국 한 선배가 그녀에게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을 가진 은둔 기자 이지도르 카첸버그를 소개해준다. 하지만 기사를 안 쓴 지 적어도 10년은 되었고, 탑처럼 생긴 건물에서 은둔 생활 중이라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둘 지는 알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함께 살인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인류가 오만하게 쌓아 올린 역사와 과학적 업적, 언론과 산업계의 추악한 기득권을 뒤흔드는 음모의 서막이었다. 과연 교수는 무엇을 알게 되었기에 살해당한 걸까. 그는 인류 진화의 비밀을 풀어 줄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켰던 걸까. 300만 년 동안 감춰져 있던 미싱링크를 둘러싼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뭔가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를 진보시킨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뤼크레스의 느닷없는 질문에 이지도르가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걸 겁니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체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체제를 문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따라서 그것을 변화시킬 이유도 없는 거고요......」

그는 큰 칼을 사용하여 길을 틔우며 활기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 2권, p.58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은 강한 신체도, 날카로운 이빨도, 몸을 보호해 줄 털도 없는 벌거숭이로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류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아 남게 된 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최초의 인류에 대해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책은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인간은 언제 나타났을까. 일반적으로 현생 인류과 그 조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중간 단계의 존재를 가리켜 '미싱 링크'라고 한다. 진화의 어느 한 단계에 존재했다고 가정될 뿐 실제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 일반을 뜻한다. 그런데 한 고생물학자가 오랜 연구 끝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미싱 링크, 빠진 고리라고 부르는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을 공개한들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을 아연실색게 할 비밀이므로, 모두들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야 한다. 물론 그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만 말이다. 


어떻게 지구에는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출현과 인류의 진화로 이어지며 다양한 영역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문명을 구축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많다. 이 작품은 우리의 그러한 궁금증에 소설로 대답을 들려준다. 과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가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현대의 정밀한 추리극과, 수백만 년 전 평원에서 생존을 도모하던 원시 인류의 나날을 교차 진행시키며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보여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다. 출간된 지 이십 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작품이라니 놀라웠다. 개정판이 나오면서 표지뿐만 아니라 판형도 달라졌는데, 실제로 보면 상당히 아름답다. 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딱 좋은 비율이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딱 좋다. 새로운 장정과 판형으로 만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니버스의 기원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머니랑 언니 없이 나 스스로 알아낸 사실이지. 패턴을 살펴보고는 몇 세대 전에 기록된 나의 운명을 읽어 냈지. 너랑 나,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니까.            p.95


여섯 달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이어지고 있는 남극와 과학 기지, 입자 물리학자 엘사는 40시간 동안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불면으로 인해 신경이 잔뜩 곤두서고 불안한 상태였다. 엘사는 박사 후 과정 중인 물리학자로 이번에 벌써 세 번째 남극행이었다. 이곳에서 엘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구성 요소인 중성 미자를 관측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과학이 일종의 생존 수단이었다. 과학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기 때문에, 자신이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거짓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이민했고,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민자로 자라왔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한국 설화 속 여자들의 비극과 집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것과 가장 멀리 있는 과학 속 합리와 실증 속에서 살아가기로 한 거였다. 


엘사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빨간 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함께 일하게 된 몽골 출신의 대학원생 사샤였다. 그런데 엘사는 그 여자에게 친밀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며, 마치 전생이나 후생에서 만났던 것 같은 어떤 익숙함으로 불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함은 오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샤사가 오래 전 어떤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까. 엘사는 사샤가 운전하는 설상차를 타고 이동하며 생각한다. 사샤는 잊힌 과거에서 온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곁에 있는 아름다운 몽골 여성이라는 현실이라고. 눈과 바람으로 인한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사위가 새하얗기만 해서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빙판에 균열이 생기듯 떠오른 기억으로 인해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마냥 도망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무섭지만 좋아하는 거잖아요?」

내가 물리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인간으로, 시시하면서도 기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우리 어머니의 불행은 미미하다. 역사가는 개개인의 생애를 넘어 문명과 시대의 탄생, 죽음을 고민하고, 물리학자들은 우주적 규모의 시간을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은하계에서 온 별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죽은 몸 한 조각은 부패하여 헬륨이 되고 다시 우주를 가로질러 여행할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경이롭다.               p.428~429


엘사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여자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며 파멸했다.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종을 칠 때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가 아이 울음 소리, 혹은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에밀레종에는 설화가 있다. 제작 과정에서 스님이 꿈을 꿨는데, 종에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했고, 실제로 아이를 청동을 끓이는 쇳물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심청의 이야기와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겨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의 이야기 등 옛날이야기 속 여자들은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포클론Folklorn〉으로, 가족의 고독, 문화적 증후군, 가족에게 갇힘을 의미한다. 작가는 불합리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도망쳐왔음에도 결국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세대가 거듭하면서 되풀이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절라 미영 허는 어릴 적 듣고 읽은 한국 설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 작품에서는 신화와 과학 사이를 오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앞으로 나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분량이 꽤 많은 편인데다 이민자의 삶과 역사, 인종과 정체성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담겨 있어 수월하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안 만나온 어떤 여성 서사보다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였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으로서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