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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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식량 시스템에서 가장 싸고 풍부한 재료는 설탕 같은 단순당,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갈망하도록 프로그램된 재료들이다. 인류가 열량을 얻기 힘든 세상에서 진화해온 탓에, 우리는 지방과 설탕이 많이 든 음식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영국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 중 80퍼센트 이상이 건강에 해롭다. 이는 식품 제조업체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건강에 해로운 식품은 더 쉽게 팔린다.                p.13


우리는 지금 저렴하고 건강에 해로우며 뿌리치기 힘든 가공식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초코바의 종류가 채소보다 많으며,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편식들은 무려 30가지가 넘는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종류의 음식은 대량으로 판매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생산 비용도 저렴하다. 현대인들이 비만이나 식이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자 먹은 음식에 대한 책임이 개인의 잘못된 결정과 의지력 부족 탓이 아니라면,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식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우리의 식욕과 행동이 식량 시스템의 작동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짚어보고, 식량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쉽게 카페에서 살 수 있는 '수제' 샌드위치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그 속에 포함된 성분들을 보면 '수제'라는 말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잠시 어리둥절해 진다. 밀가루, 달걀, 설탕, 효모, 카놀라유, 그리고 맥아밀, 밀 글루텐, 지방산 모노글리세리드, 디아세틸 타르타르산, 텍스트로스..... 등등 이름을 봐도 무슨 성분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목록 중에서 가장 자연 친화적으로 보이는 카놀라유조차 수많은 화학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샌드위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수많은 음식들이 그럴 것이다. 또한 그 수많은 과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소비자가 알 필요 없다고 결정되었을 뿐이다. 또한 재료와 음식들을 구매해서 먹는 우리 또한 그러한 과정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식품 메커니즘의 진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마트의 풍경들이, 음식점의 메뉴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것이 나 자신을 아프게 하고, 지구를 뜨겁게 하고, 어디선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의 식샹 시스템이 이대로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이 찌고 아픈 이유는 살찌고 아프게 하는 먹을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은 우리 손으로 만든 비만 유발 환경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정크푸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아니면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을 바꾸거나. 기이한 점은 첫 번째 선택지가 두 번째 선택지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121


이 책을 읽으며 2주 동안 식단 일지를 작성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얼핏 건강해 보이는 식단도 비가공 식품, 가공 식품, 초가공 식품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가공 식품은 의식적으로 먹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가공 식품의 범위가 넓어서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공 식품이란 고기, 채소, 견과류 등 식물이나 동물에서 직접 얻으며 세척이나 냉동 같은 최소한의 가공을 거친 식품을 말한다. 가공 식품이란 베이컨, 치즈, 과일 및 채소 통조림, 훈제 연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빵 등 비가공 식품을 염장이나 발표, 절임 처리해서 가공한 제품을 뜻하는데, 생각보다 가공 식품에 해당되는 음식들이 많았다. 초가공 식품이란 과자, 디저트, 대량생산 빵, 재가공된 육류 제품, 간편식 등 설탕, 기름 등의 가공 식재료가 소량이 아닌, 요리의 주를 이루는 식품이다. 첨가물이 가미되어 보기 좋고 맛있으며 오래가는 음식인데,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을 내어 중독성이 있다. 


저자는 '변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건강하다거나 지속 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어온 것이 종종 틀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지방이 전지방보다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고, 지역 농산물이 수입 식품보다 탄소발자국이 더 많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식량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오해를 걷어 내고, 무대 뒤편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음식과 오히려 공허해지는 음식에 대해서 돌아보고, 간식이나 '자기 보상 음식' 등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먹고 나면 우울해지는 음식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가공식품이 만든 새로운 질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나쁜 식사의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면, 우리의 식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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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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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에서는 다 죽어.

그리고 다시 한마디 더.

그런데 너는 살았지.

그러면서 난데없이 모유리의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이마로 내려와 있던 머리카락이 엄마 속에 달라붙었다. 그 부드럽던 손...... 그건, 그 와중에도 '엄마의 손'이었다. 미운 엄마, 엄마 같지도 않은 엄마, 못돼 처먹은 엄마...... 개 같은 엄마...... 쌍년 같은 엄마...... 그러나 엄마.               p.106


세상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수두룩하게, 또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 수두룩하게 벌어진다. 매일같이 세상 어디에선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 작품 속 비극도 그렇다. 어느 해 여름, 쓰레기집에서 살던 쓰레기 노인이 사망했다. 도시 괴담 방송을 하는 유튜버가 집을 촬영하다가 무너진 폐가구와 쓰레기에 깔린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구급대와 경찰, 그리고 특수청소업체가 곧 현장에 출동했다. 사람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로 인해 어디든 건드리는 순간 송두리째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은 멀쩡하기만 하다면 대저택이라 불릴 만한 집이었다.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집이었는데, 서구풍으로 공을 들인 석조 저택이라 요즘 집들보다 더 튼튼하게 보였다. 문제는 외벽이고 내벽이고 보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집을 아예 먹어버린 꼴이었다는 거다. 게다가 하필 날씨는 폭염이었다. 별별 날것과 벌레들이 날아 다녔고, 악취와 냄새도 지독했다. 시신을 구조하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들을 일부 치워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덜 죽은 사람이 한 명 발견된다. 마치 살아 있는 유골과도 같은 상태의 사람과 진짜 유골까지 나타난다. 단순 사고로 처리되었을 노인의 죽음은 그렇게 사건으로 전환된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신도 깨닫지 못해서 자신에게조차 비밀이 된 말들. 그 뜨겁고 달콤하고, 그래서 심지어 쩔쩔매는 것 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절절 끓는 철판 위에 볶이는 듯 안달 나 있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함부로였던 마음과 말들. 비밀은 결코 폐기 처리 되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망정 어딘가에 쟁여진다. 부패하고 냄새를 풍기고 벌레가 꼬일망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뒤지고, 찾아낸다.              p.235~236


'공포'를 기반으로 한 장편소설의 새로운 전개를 선보이는 앙스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박민정 작가의 <호수와 암실>이었고, 두 번째로 김인숙 작가의 <자작나무 숲>이 나왔다. 이후에 출간될 라인업에 손보미, 김혜진, 조예은 작가 등의 이름이 있어 매우 기대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2022년에 발표되었던 동명의 단편 소설을 확장하여 다시 쓴 장편소설이다. 단편에서 1인칭 시선으로 '그 집'과 할머니와 자신의 엄마를 응시했던 화자 '나'가 장편에서 '그 집'의 유일한 상속녀 '모유리'가 되고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김인숙 작가는 '단편을 장편화하는 것이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호더 할머니와 사라진 아들, 나와 미혼모 엄마로 이름이 없던 인물들이 하나씩 이름을 가지면서 좀 더 분명하고 다채로운 서사를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래 전 김인숙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해가며 여러 번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예리한 묘사들과 섬세한 문장들, 그리고 생의 이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이 꽤 오랜만에 읽는 것인데, 여전히 마음을 휘젓는 서사에 완전히 몰입하며 읽었다.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해 그것들을 쌓아놓고, 주워온 것도 쌓아놓고, 그러다 보니 커다란 집이 쓰레기로 가득해졌고, 결국 그 속에서 죽어버린 노인의 서사에는 과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누가 노인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인지... 노인의 죽음은 사고인지, 누군가의 의도인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서서히 파헤쳐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란 굉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쓰레기가 가득 덮고 있던 그것들, 그 아래 묻힌 것들을 다 꺼낸다면... 얼마나 많은 슬픔과 비밀이 드러날 것인가. 노인이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지켰는지, 그 거대한 서사가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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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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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적절할까? ... 동물을 도덕적으로 존중하기 위한 기준은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 고통을 느끼는 능력일까, 삶의 의지나 지능일까? 똑똑한 동물의 생명권이 지능이 낮은 동물의 생명권보다 더 크고 귀할까? 인간과 다른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도 중차대한 과제다.                  p.18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다른 모든 생물종보다 우월한 종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수십만 종의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동물을 마치 물건처럼 생산 수단화하고, 생존 기계나 고기 공급원으로 사육한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닭, 소들이 비좁은 우리와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숨긴다. 왜냐하면 보지 않아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며 고통을 가할 권리는 대체 누가 준 것일까. 왜 우리는 반려동물은 귀여워하면서 식탁 위의 고기나 실험실의 동물들에게는 냉담한 것일까. 이렇게 모순된 태도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일까. 


이 책은 동물의 권리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토대에서부터 초기 문화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동물 사육 시설과 도축장, 실험실들을 살쳐 보고 우리가 현재 직면한 난제들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검토한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학문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이든 고인류학이든 동물 생명이 어떤 점에서 인간 생명과 다른지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동뭉 행동학자들은 동물의 인지 능력을 측정한 뒤 인간과 비교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유인원의 지능을 윌와 단순 비교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분자 유전학은 우리에게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침팬지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원숭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과학에서건 많은 사람의 통념적 생각에서건 별로 의심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선을 바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대형 유인원들은 얼마나 인간적일까? 저자는 이를 분자 유전학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과 철학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동물원의 사육 조건은 여전히 많은 점에서 비판받는다. 물론 동물원장들도 섬세한 관람객들만큼 그런 조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고,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서서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원의 비난받을 환경이 아니라 어떤 사육 조건이든 상관없이 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내놓는 것이 원칙적으로 합당한 행위인가 하는 것이다.                p.474~475


거의 모든 문화학자가 공통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다. 더 높은 힘에 대한 믿음과 죽음의 두려움은 인간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자는 제인 구달과 대화를 나누면서 침팬지에게도 낭만적인 사랑, 종교적 감정, 신앙 같은 것이 존재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직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구달이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놀라웠다.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적으로 무언가에 사로잡힌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감정조차 분명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오성, 사고력과 판단력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절대적 척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동물을 몸의 노예로 설명하는 철학적 전통은 길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동물의 확정적 차이에 의구심을 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동물도 처음부터 도축되고, 사냥감이 되고, 쫓기고, 독살되고, 귀여움을 받고, 훈련을 받고, 공포를 주거나 경탄의 대상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눈과 분류 체계 안에서만 동물에 대해 정의 내린다. 우리 행성의 생물은 주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분류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 사랑>은 선별된 특정 종에게만 맞추어진 협소한 감정일 뿐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멸종시키고 먹어 치우고 독살한다. 그렇다면 가슴의 도덕에는 어떤 감정과 동물에 대한 어떤 정서적 이해가 깔려 있을까? 모든 대목들이 공감되고, 이해되고, 감탄스러웠던 책이다. 동물권, 동물 윤리에 대해 다루는 책들을 꽤 읽어 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폭넓게 사유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생물과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적으로 살펴보고, 인간과 동물의 윤리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민한다.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어렵지 않게 너무너무 잘 읽히는 책이었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책이 국내에 꽤 많이 출간되어 있는 편인데, 이번에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말 글 잘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저자의 책들을 몇 권 주문했다. 철학을 다루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많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앞으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무조건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과학책, 철학책, 인문학책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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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장소
나희덕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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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앉던 벤치에는 사람 이름 대신 '케 세라 세라'라는 글자만 음각되어 있다. 마음이 무겁거나 우울할 때 그곳에 앉아 도리스 데이의 그 노래를 혼자 읊조리다보면, 마음 한끝에서 밝은 기운이 생겨나곤 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모든 잘될 거라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눈앞에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냥 흘러가라고, 괜찮다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놀랍지 않은가, 평범한 의자에 적힌 한 문장이 그런 위로를 베풀어준다는 것이.               p.14


나희덕 시인은 산책과 여행이 삶을 견디게 하는 두 가지라고 말한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따라가며 풍경을 받아들이고, 그러다 마음의 장소를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른다고. 이 책은 바로 그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2017년에 나왔던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를 전체적으로 손보고 글을 보태어 나온 개정판이다. 글과 사진의 배치도 달라졌고, 표지도 아름다워져서 새책처럼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나희덕 시인의 시집만 만나온 터라, 이번 산문집을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시인은 한 해 동안 런던에서 즐겨 걸었던 템스 강변에 있는 벤치 등판에는 누군가를 기리는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고, 평범한 의자에 적힌 한 문장에 시인은 위로를 받는다. 보통 그 벤치에는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를 기리기 위한 문장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시인이 즐겨앉던 벤치에는 사람 이름 대신 '케 세라 세라'라는 글자만 음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은 기분에 자신이 죽은 뒤에 묘비 대신 벤치를 놓아달라고 자식들에게 말했을 정도로 인상깊은 장소였다. 또 영국 바스에 있는 생긴 지 삼백 년도 더 된 빵집에서 빵에 깃든 역사와 기억을 맛보았던 경험과 어제의 친구와 오늘의 친구가 만나 내일의 친구가 되었던 순간에 나누어 가진 스페인의 수제품가게에서 골라온 반지의 추억, 아일랜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책을 읽던 노인을 통해 떠올린 소설에 대한 이야기 등 시인이 만난 장소와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디 딱 적당한 온도로 마음을 데워 주었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마음의 장소라는 게 있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곳.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남 강진에 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다. 그곳과의 인연은 꽤 긴 편이다. 십여 년 전 지인의 안내로 월출산 아래 멋진 동백숲이 있는 집터를 가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낮은 돌담과 작은 오두막이 있는 그곳에 이따금 혼자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 집터를 구입할 사정은 안 되지만, 마음으로는 그곳에 수없이 집을 짓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p.190


영국과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 해외 여러 도시들부터 한국의 회산 백련지, 전주 한옥마을, 전남 백운동 별서정원 등 곳곳의 글과 사진으로 만나면서 함께 그곳들을 걷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야말로 방구석에서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 자주 들르던 자선가게에 있던 장애로 심하게 일그러진 손가락을 가진 남자, 사람이 살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된 집 정원에 있던 낡은 초록색 소파,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데려온 백 년이 넘은 괴종시계,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연인들이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주는 다리,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를 지닌 포아스화산이 잘 보이는 공터에 둘러앉아 했던 시 낭독회 등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은 시인의 시선들이 우리를 그 각자의 순간 속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시적 언어로 재해석된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색깔과 사연을 가지고 있어 짧은 이야기 속에도 그들만의 드라마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 뻗어 닿는 곳에 놓아두고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마다 한번씩 다시 읽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사람은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찾아가는 자신만의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나희덕 시인이 걸으며 만난 그리운 장소들을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장소'를 떠올리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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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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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날을 조바심 내며 기다리기 마련이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실제 닥치면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움음 훨씬 못 미치기 마련이니까. 애타는 기대감이 내심 실망감으로 바뀌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자체보다 기대감 자체가 진정한 보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이런 실망의 순환을 수없이 경험해야 한다. 숨죽인 기다림이 보상의 전주곡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보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환상은 무너지고 마법은 깨진다.              p.57


열한 살 다윈은 학교에서 친구에게 멍청하다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정학 수준의 학칙 위반이라는 소릴 듣는다. 피어슨은 아들을 데리러 학교로 가서 교감에게 퇴학 처분도 각오해야 하니 앞으로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이 모든 소동은 정신평등주의 운동때문이다. ‘정의로운 시대’의 가면을 쓴 가짜 공평은 모든 교육 기관의 시험을 없애고, 차별적인 표현을 쓸 수 없으며, 숙제를 하지 않아도,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해도 야단을 칠 수 없게 만든다. 분열과 편견을 조장하는 환경을 만든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금지되고, 지능 같은 개념도,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도 판단할 수 없고, 만들어지는 모든 콘텐츠가 검열되는 세상이 되었다. 대학의 영문과 교수인 피어슨은 무시험 입학제를 비롯해서 정신평등운동에 광적인 학생들로 인해 일이 점점 힘들어 지고 있었다. 


피어슨과 에머리는 십대 때부터 단짝 친구로 40년 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에머리는 지역 방송국 진행자로 피어슨의 집에 식사를 하러 오면서 남자친구를 데려온다. 에머리는 아름다운 외모 만큼이나 연애를 자주 했는데, 이번 남자친구인 로저는 극작가였다. 그들은 식사 중에 인지 불평등이 금지된 현재 세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날카롭게 대립을 하게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 자칫 실수했다가 경력을 구렁텅이에 빠드릴까봐 조심 중이라는 에머리, 자꾸 선을 넘나들며 현재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한다는 피어슨의 남편 웨이드, 그러다 로저와 피어슨이 대립하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는 피어슨에게 로저가 '얼간이'라는 말을 했다고 혐오 발언은 삼가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신평등주의에 대해 대놓고 반감을 가지고 있는 피어슨과 사회적 위치때문에 조심하는 에머리, 그리고 이 운동이 대체 해로울 게 뭐가 있느냐며 그것에 동의하는 로저... 급기야 그 상황은 에머리와 로저가 문을 닫고 나가버리기에 이르는데... 피어슨은 오랜 친구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 국민이 명백한 거짓말을 통째로 수용하는 현실로 인해 필연적으로 다른 거짓말이 통용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는 진실로 향하는 통로를 끊어버렸고, 그로 인해 진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다. 즉, 우리의 대표자는 어떤 말을 해도 되고 어떤 주장을 옹호해도 된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 이 주장 하나만 있으면 사실이 된다. 실제로 참인 것이 아니라 참이기를 바라는 것을 옹호할 때, 우리는 모든 선진 경제가 번영을 일구게 해준 과학적 방법론과 결별한다.                 p.345


<케빈에 대하여>에서 모성의 금기를 부쉈던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이번 작품에서 평등이라는 사회적 금기와 현대의 성역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여호와의 증인 광신도였던 부모로 인해 신앙이라는 이름의 복종에서 탈출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녀의 딸 루시는 평등의 이상이 종교적 광신 수준의 열풍을 일으키는 사유의 결핍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다. 십대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절친과의 사상 대립, 소통이 단절된 모녀 관계 등을 통해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개인의 기질이 사회와 충돌할 때 겪게 되는 고통과 우정의 붕괴를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똑똑하다면, 그 사회는 이상적인 걸까? 평등의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평등은 언제나 선한 걸까? 


가장 친밀했던 존재가 가장 정확한 적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너무도 친밀한 사이였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슴 아픈 아이러니다. 에머리의 가족이 열여섯 피어슨의 삶을 구해줬기에, 그 고마움을 수십 년 동안의 우정이 쌓여 오는 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었던 피어슨이기에 두 사람의 우정이 무너지는 상황은 엄청난 타격이 된다. 또한 엄마의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딸이 사회복지국이 피어슨을 고발하게 되는데... 적개심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딸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작품은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짓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친구 사이와 모녀 관계라는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통해 풀어내고 있어 더 파격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가 만들어 졌다. 여전히 가장 섬뜩하고 불편한 영역을 정면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신작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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