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술사가 너무 많다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능력을 써서 어떤 사내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혼자 알아냈다고 칩시다. 그 사내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의 그 개인적인 지식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그럴 경우, 당신은 그 사내를 고발하겠습니까?"
"고발하지 않을 겁니다." 다아시는 주저 없이 말했다. p.120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치유술사와 마술사들의 컨벤션이 열리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마술사들이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마술사 숀 오로클린은 약속 시간에 객실 문을 두드렸는데, 갑자기 안에서 쉰 목으로 내지르는 듯한 느낌의 비명이 울려퍼진 것이다. "마스터 숀! 도와줘!"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문은 자물쇠가 잠겨 있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쇠를 가지고 왔지만 잠금 주문에 걸려 있는 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결국 지배인이 도끼를 가지고 와 문을 부쉈고, 객실의 정중앙에 선혈이 고인 웅덩이 위로 런던시의 주임 법정 마술사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문제는 죽은 사람을 제외하면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방안에는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전혀 없었고, 방문은 문을 잠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로 잠겨 있었으며, 열쇠는 방안에 떨어져 있었다. 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몇 초 뒤에 복도로 사람들이 뛰쳐나왔기에, 뭔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문들도 모두 안에서 잠금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기에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범죄가 벌어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도 수많은 마술사가 집결한 곳에서, 완벽한 밀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누구일까.
자물쇠가 잠긴 밀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 칼에 찔렸다. 그렇다면 그를 죽이고 싶어할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와 다툰 사람은 없었을까. 그런 이유로 현장의 최초 발견자이자 죽은 이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숀 오로클린이 런던탑에 수감된다. 그 소식을 접한 다아시 경이 동료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급히 런던으로 달려오는데,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응. 누가 이 친구를 죽였는지는 나도 아네." 다아시가 말했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군."
"살해 동기를 얘기하는 건가?" 본트리옴프가 물었다.
"오, 동기가 뭔지는 알아.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동기 뒤에 숨은 진짜 동기라네.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
본트리옴프는 이해하지 못했다. p.375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의 41번째 작품으로 랜들 개릿의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나왔다. 랜들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는 총 네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 중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셰르부르의 저주>, <나폴리 특급 살인>, 그리고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이십여 년 전에 국내에 소개되었었지만, 오래도록 절판이어서 아쉬웠었다. 이번에 원문의 맛을 살린 정교한 번역으로 새롭게 단장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로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SF 작가로 유명한 랜들 개릿의 대표작이자 가장 인기가 높은 '다아시 경' 시리즈는 "SF보다는 특수설정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판타지와 탐정소설의 가장 좋은 점만을 결합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았는데, 실제로 배경만 SF적인 설정이고, 스토리 자체는 현대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고전 미스터리로서의 장벽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국과 프랑스가 '영불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이어져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이 작품은 현실의 '과학'과 유사한 방식으로 '마술'이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각자가 가진 탤런트는 모두 달랐는데, 그 능력 또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인 수사관 다아시 경 또한 탤런트는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캐릭터이다. 절대적인 힘과 권력을 쥐고 있는 마술사들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었고, 흑마술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특수설정' 속에서 다아시 경은 번뜩이는 추리력을 바탕으로 불가능 범죄 해결에 도전한다.
그는 '불가능한 가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그다음부터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셜록 홈스의 대사를 변주한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마술적 재능없이 날카로운 통찰력과 논리만으로 해결하는 점은 현대의 미스터리 해결방식이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술이 과학을 대체한 세계이기 때문에, 극중 법정 마술사가 현실의 법의학자 또는 범죄분석관의 역할을 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대체역사와 본격 미스터리의 조합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마술이라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등장하지만, 고전 퍼즐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를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