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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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자의 서늘한 뒤통수,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가를 처음 깨닫는 긴장한 목덜미, 내가 알던 모든 말들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게 된 뜨거운 정수리. 무엇보다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을, 법열로 들끓고 있을,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눈동자.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델 것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그 장면을 보면서 저 큰딸만큼이나 조용히 그러나 머리에서 번개가 치듯이 놀랐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p.24~25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에게 '이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괴물은 왜 자신을 태어나게 했느냐고,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왜 이름도 주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고독한 삶에 대해 토로한다. 이 작품을 쓴 메리 셸리는 여성 작가의 창작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쓴 글임에도 익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다.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괴물의 운명과 자신의 '이름 없이' 책을 펴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운명은 묘하게 겹쳐진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렇게 이름을 빼앗긴 존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 길리어드의 권력층 남자들은 시스템을 이용한 신원 조회를 통해 가임기 여성들을 잡아 와 시설에 가둔다. 아기가 잘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 임신 능력을 가진 여자라면 귀중한 존재지만, 그들은 소중하니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가지고 있다. 시녀로 분류된 여자들은 지난 삶의 인간관계 전부와 평생 쓰던 이름을 빼앗긴다. 새 이름은 아기 없는 높은 계급의 불임 부부에게로 파견, 배치되면서 주인 남자 이름 앞에 전치사 '오브'만 붙은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임신과 출산이다. 사람에게 '오브'를 붙여 소유물로 지칭한다는 작명 시스템이 오싹해지는 작품이었다. 시녀들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이름의 지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시녀들에게 이름이란 뺏어도 되고 지워도 되고 바꿔도 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이름을 외던 원수들을 찾아가 어떤 다른 이의 얼굴로 자유자재 변환해서 단호하게 처단한다. 아리아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가, 얼굴 없는 자가 되었다가, 여러 얼굴을 가진 자가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 

마침내 스승이 말하던 그 순간,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p.208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속 이름없는 괴물부터 소유격 전치사로 이름 붙여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시녀 이야기>, 영화 <윤희에게>, <허공에의 질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를 외치는 김소월의 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20편의 작품 속 '무명의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준다. 괴물, 여성, 망자... 이름 없는 존재와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사유는 한때 나를 스쳤던 이름들과 서로를 부르는 우리의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호명하며 살아가는 이름들, 함부로 붙여진 이름, 빼앗긴 이름, 금지된 이름, 부르지 못한 이름, 부르면 안 되는 이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 내가 지은 내 이름, 남이 부르는 내 이름.... 우리의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에 내려 앉은 마음과 허공에 뜬 목소리.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어진다. 


초등 학교 시절에 같은 반에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이름이라 그런지 가끔 그런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단순하게 키에 따라 큰00, 작은00라고 부르곤 했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 앉고 했던 터라 난 큰00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왜 재는 이름이 나랑 같아서 이렇게 불리도록 상황을 만든 걸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같은 사람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성까지 같은 경우는 잘 없었고, 아주 가끔 성은 다른데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냥 친밀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름이란 참 이상한 관계성을 부여하는 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름은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성과 특별한 관계성, 사회적 맥락이 모두 교차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닿게 만들고, 서로를 구별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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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아버지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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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나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애쓸 것이다. 내가 알아낸 비밀이 너무 성가시기 때문이다. 내가 비밀을 공개하면 기존의 모든 주장들이 무너지면서 학계 전체가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건 진리의 문제다. 진리에 맞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진리를 아무리 물속에 처박으려 해도 결국엔 다시 물위로 떠오르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대,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 1권, p.57


저명한 고생물학자 아제미앙 교수가 자신의 집 욕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범인의 자취도,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살인자는 준비된 흉기가 아니라 범죄 현장에서 대용물을 구했다. 범죄 수법이 여러 가지 점에서 동일한 사건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그렇게 수사는 시작되자마자 종결되었다. 살인 사건에 관심을 둔 것은 마침 위층에 살던 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였다. 신참 기자인 그녀는 이 살인 사건이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랑자의 소행이 아니라 누군가 교수의 입을 막고 싶어 하는 자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던 교수가 어떤 비밀을 발견해 세상에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부장은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며,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어떻게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나타났는가, 에 대한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말이다. 결국 한 선배가 그녀에게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을 가진 은둔 기자 이지도르 카첸버그를 소개해준다. 하지만 기사를 안 쓴 지 적어도 10년은 되었고, 탑처럼 생긴 건물에서 은둔 생활 중이라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둘 지는 알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함께 살인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인류가 오만하게 쌓아 올린 역사와 과학적 업적, 언론과 산업계의 추악한 기득권을 뒤흔드는 음모의 서막이었다. 과연 교수는 무엇을 알게 되었기에 살해당한 걸까. 그는 인류 진화의 비밀을 풀어 줄 마지막 퍼즐을 완성시켰던 걸까. 300만 년 동안 감춰져 있던 미싱링크를 둘러싼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뭔가에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를 진보시킨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뤼크레스의 느닷없는 질문에 이지도르가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걸 겁니다. 자기들이 살고 있는 체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체제를 문제 삼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따라서 그것을 변화시킬 이유도 없는 거고요......」

그는 큰 칼을 사용하여 길을 틔우며 활기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 2권, p.58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에 등장한 인류의 조상은 강한 신체도, 날카로운 이빨도, 몸을 보호해 줄 털도 없는 벌거숭이로 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류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류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아 남게 된 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최초의 인류에 대해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책은 이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인간은 언제 나타났을까. 일반적으로 현생 인류과 그 조상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중간 단계의 존재를 가리켜 '미싱 링크'라고 한다. 진화의 어느 한 단계에 존재했다고 가정될 뿐 실제로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생물종 일반을 뜻한다. 그런데 한 고생물학자가 오랜 연구 끝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미싱 링크, 빠진 고리라고 부르는 그것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을 공개한들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을 아연실색게 할 비밀이므로, 모두들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켜야 한다. 물론 그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만 말이다. 


어떻게 지구에는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존재하는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어떻게 시작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생명의 출현과 인류의 진화로 이어지며 다양한 영역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문명을 구축한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한 점들이 많다. 이 작품은 우리의 그러한 궁금증에 소설로 대답을 들려준다. 과학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가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현대의 정밀한 추리극과, 수백만 년 전 평원에서 생존을 도모하던 원시 인류의 나날을 교차 진행시키며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보여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그리고 과학적인 정보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다. 출간된 지 이십 년이 넘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롭게 읽히는 작품이라니 놀라웠다. 개정판이 나오면서 표지뿐만 아니라 판형도 달라졌는데, 실제로 보면 상당히 아름답다. 손에 잡히는 그립감이 딱 좋은 비율이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도 딱 좋다. 새로운 장정과 판형으로 만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니버스의 기원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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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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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랑 언니 없이 나 스스로 알아낸 사실이지. 패턴을 살펴보고는 몇 세대 전에 기록된 나의 운명을 읽어 냈지. 너랑 나,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니까.            p.95


여섯 달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이어지고 있는 남극와 과학 기지, 입자 물리학자 엘사는 40시간 동안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불면으로 인해 신경이 잔뜩 곤두서고 불안한 상태였다. 엘사는 박사 후 과정 중인 물리학자로 이번에 벌써 세 번째 남극행이었다. 이곳에서 엘사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구성 요소인 중성 미자를 관측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과학이 일종의 생존 수단이었다. 과학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기 때문에, 자신이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거짓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이민했고,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민자로 자라왔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한국 설화 속 여자들의 비극과 집안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것과 가장 멀리 있는 과학 속 합리와 실증 속에서 살아가기로 한 거였다. 


엘사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빨간 옷을 입고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함께 일하게 된 몽골 출신의 대학원생 사샤였다. 그런데 엘사는 그 여자에게 친밀감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끼며, 마치 전생이나 후생에서 만났던 것 같은 어떤 익숙함으로 불안한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함은 오랜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샤사가 오래 전 어떤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까. 엘사는 사샤가 운전하는 설상차를 타고 이동하며 생각한다. 사샤는 잊힌 과거에서 온 신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곁에 있는 아름다운 몽골 여성이라는 현실이라고. 눈과 바람으로 인한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사위가 새하얗기만 해서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빙판에 균열이 생기듯 떠오른 기억으로 인해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마냥 도망칠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무섭지만 좋아하는 거잖아요?」

내가 물리학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인간으로, 시시하면서도 기적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우리 어머니의 불행은 미미하다. 역사가는 개개인의 생애를 넘어 문명과 시대의 탄생, 죽음을 고민하고, 물리학자들은 우주적 규모의 시간을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은하계에서 온 별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죽은 몸 한 조각은 부패하여 헬륨이 되고 다시 우주를 가로질러 여행할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경이롭다.               p.428~429


엘사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여자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며 파멸했다.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종을 칠 때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가 아이 울음 소리, 혹은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에밀레종에는 설화가 있다. 제작 과정에서 스님이 꿈을 꿨는데, 종에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했고, 실제로 아이를 청동을 끓이는 쇳물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물속으로 뛰어든 심청의 이야기와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겨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의 이야기 등 옛날이야기 속 여자들은 모두 어떤 목적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다. 


이 작품의 원제는 〈포클론Folklorn〉으로, 가족의 고독, 문화적 증후군, 가족에게 갇힘을 의미한다. 작가는 불합리한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도망쳐왔음에도 결국 자신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세대가 거듭하면서 되풀이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앤절라 미영 허는 어릴 적 듣고 읽은 한국 설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 작품에서는 신화와 과학 사이를 오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앞으로 나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분량이 꽤 많은 편인데다 이민자의 삶과 역사, 인종과 정체성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담겨 있어 수월하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안 만나온 어떤 여성 서사보다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였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으로서도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는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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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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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오전 10시만 되면 출입구에 모여들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중앙 현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기다린다.            p.62~63


프랑스 동부 시골 마을의 숲 가장자리에 있는 오르탕시아 요양원에는 최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그러니까 일요일에 면회객이 하나도 없는 노인들의 가족에게 전화해 그들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알린 것이다. 작년 12월 25일에 시작된 이 일은 이후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요양원에 도착하면, 영면해 있어야 할 집안의 어른이 예기치 않은 자손의 면회에 행복해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각각의 면회 횟수를 헤아린 뒤 전화를 돌린 것처럼 말이다. 




스물한 살 쥐스틴은 오르탕시아 요양원에서 삼 년째 일하고 있는 요양 보호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조부모 손에 자랐다. 사촌인 쥘의 부모도 함께 사고를 당했기에 남동생처럼 같이 조부모와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쥐스틴은 낮에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노인들의 두런거림 속에서 책을 읽고, 토요일 밤이면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다. 쥐스틴은 요양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호실 할머니 엘렌이다. 사람들은 아흔이 넘은 엘렌을 '바닷가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루종일 바닷가 파라솔 밑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엘렌은 쥐스틴에게 자신의 모든 삶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엘렌의 말수가 줄었다. 마치 삶이라는 노래가 음반의 끝에 이르러 볼륨이 줄어드는 것처럼.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밤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p.308~309


<비올레트, 묘지지기>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발레리 페랭의 데뷔작이다. <비올레트, 묘지지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작은 마을의 묘지지기인 한 여성의 삶과 묘지를 찾는 이들의 추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시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삶이 교차되고, 빛과 어둠이, 부재와 존재가 한데 어우러져 놀랍도록 아름다운 마법을 보여줘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데뷔작 또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니 과연 '역주행'이 될만한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비올레트, 묘지지기>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실과 슬픔, 고통과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렌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쥐스틴은 그녀의 삶을 파란 공책에 받아 적는다. 이야기는 과거 엘렌의 삶과 현재가 교차 서술된다. 난독증을 앓던 엘렌은 뤼시앵을 만나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글을 익히게 된다. 점자책을 통해서 알파벳을 만지면서 익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태어나는 기분,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어들이, 문장들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독서가 빗장을 풀어 그녀의 몸짓과 행동까지 완전히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파란만장했던 엘렌의 삶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쥐스틴의 현재 삶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쥐스틴은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에 정황상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는데, 경찰이 수사를 벌였던 사건이었다는 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쥐스틴에게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걸까. 그렇게 요양원의 거짓 부고 사건과 쥐스틴의 과거 부모님 사고에 대한 미스터리와 엘렌의 이야기에 얽혀 있는 비밀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아름답고도 슬픈 서사가 펼쳐진다. 


흔히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는 그많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서관 서가마다 수많은 책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경험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의 세대가 겪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그것 또한 함께 살아 있다. 그래서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쥐스틴의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쥐스틴은 모두에게 두 가지 삶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삶과 말이 침묵 뒤로 사라지는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삶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기억들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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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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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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