킷사텐이라는 시간 - 천천히 짙어지는 도쿄의 오래된 커피 공간
가와구치 요코 지음, 송유선 옮김 / 리틀프레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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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젠가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현지인들로만 바글바글한 카페를 간 적이 있다. 아침 일찍 갔었는데, 토스트와 달걀 등을 커피와 함께 세트로 판매하고 있었고, 출근 전에 들른 직장인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브라운 톤의 세월이 묻어난 느낌이라 차분하고, 가성비도 좋았던 아침 식사로 기억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킷사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킷사텐이란 일본의 복고풍 카페를 부르는 말이다. 보통 세월이 묻어나는 노포 카페들로 우리나라의 다방같은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국내에서는 일본식 레트로 카페들을 킷사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킷사텐에서는 음료나 디저트뿐만 아니라 샌드위치나 나폴리탄 스파게티 등 식사 종류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여행객들이 조식을 먹기 위해 들르기도 한다. 




보통 킷사텐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실내 공간을 갖고 있어 요즘의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허름하면서도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면 킷사텐을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어렴풋한 커피의 향, 음식이나 디저트의 냄새,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과 조용한 대화 소리,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음악, 온기 혹은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 등 냄새와 소리와 온도가 혼연일체 된 그 분위기를 '킷사의 향'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이 설명만 듣더라도 킷사텐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이 될 것이다. '도쿄의 길목 아래, 이미 떠나간 이들의 소박한 기억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활기가 한 킷사텐에서 교차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이 책은 여행 가이드이자 에세이처럼 읽히기도 해 더 좋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일본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이 책은 도쿄의 킷사텐 77곳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서와 휴식의 공간, 매력적인 한 접시, 재즈 킷사, 명곡 킷사의 시대 등 각 킷사텐의 매력을 중심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간다, 진보초, 주오선, 교외의 킷사텐으로 위치 별로도 정리했다. 도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킷사텐을 따라가는 여정이 자연스럽게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듯한 느낌이다. 천천히, 고요한 공간에서, 시간의 밀도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커피를 음미하며 킷사텐의 풍경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각각의 장소마다 위치와 휴무, 영업시간, 메뉴에 대한 소개가 별도로 수록되어 있고, 킷사텐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진들과 대표 메뉴의 사진도 볼 수 있어 도쿄에 방문하게 된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은 실용적인 책이기도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일부러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커피를 마시는 일은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그래서 '킷사텐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마음의 호사'라는 문구가 참 와 닿았다. 변함없이 가게를 이어온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바꾸는 게 귀찮을 뿐"이라는 답변을 들려주는 주인의 모습에서 묵묵하지만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고, 만약 내가 독서를 하고 싶은데 옆에 시끄러운 두 사람이 앉아 있다면 어쩌냐는 질문에 "사회란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는 주인의 인생관 또한 빙그레 미소짓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또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자신들의 경영 철학이 '일기일회'라고 대답한 킷사텐이었다. 일주일에 여섯 번 찾아오는 단골손님에게든, 처음 방문하는 손님에게든 이 순간은 단 한 번뿐이기에, 마음을 다해 정성껏 맞이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면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신주쿠역 서쪽 출구에 있는 다지마야 커피점이다. 언젠가 도쿄에 가게 되면 꼭 가볼 예정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 킷사텐을 가보며 오래된 커피 공간의 매력, 킷사텐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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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수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서아람 지음, 쏘우주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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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양초등학교 급식은 누군가 급식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레전드 급식'으로 유명해졌다. 방송사에서 영양사 은빈쌤을 취재하겠다고 찾아와서, 짧은 인터뷰가 뉴스에 나가기도 했다. 메뉴부터 랍스터 버터구이, 수제 불고기 버거, 돈가스 덮밥, 베트남 쌀국수 등 단 하루도 같은 메뉴가 나오는 날이 없었고, 디저트마저 예술이었다. 망고 셔벗, 크림 찹쌀떡, 미니 팥빙수 등 영양가는 물론 맛은 어찌나 좋은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급식 시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소금투성이 소시지가 나오는가 하면, 회오리 감자가 든 통이 갑자기 없어져 삶은 감자로 대체하기도 하고, 주방에 있는 국자가 모두 사라져 버려 종이컵으로 마라탕을 배식하느라 국물이 다 흐르고 난리가 난다. 급기야 이상한 메뉴들이 잔뜩 쓰인 식단표까지 등장하며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는데, 이러다 통째로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쇄 급식 테러'가 이어진다.


급식을 너무 좋아해서 '두 번 급식'을 먹는 걸로 유명해서 두식이라는 별명이 붙은 두식과 모든 일에 적극적인 학습회장 수영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경찰인 두식의 아버지에게 범인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물어보고, 두 사람은 흩어진 단서들을 조합하기 시작한다. 




두식은 편의점 뒤쪽 쓰레기장에 버려진 네모난 은색 통이 회오리 감자가 가득 든 통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마침 골목 끝에 누군가 휙 지나가는 듯했지만, 그림자밖에 보지 못했다. 그리고 온갖 알레르기로 급식에 불만도 많고, 보건실에 자주 가는 예민이, 유튜브로 급식실에 일어난 사건을 올리면서 구독자가 늘어난 다나 등 수상한 점이 보이는 용의자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과연 연쇄 급식 테러 사건 수사대, 일명 급수대는 범인을 찾고 예전처럼 맛있는 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될까. 


의심이 가는 상황에 놓인 용의자를 불러서 심문을 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수집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는 등 아마추어지만 아이들의 수사는 꽤나 적극적이고, 원칙을 따르고 있어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특히나 매일의 급식 메뉴가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급식 메뉴를 둘러싼 소동을 그리고 있어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를 쓴 작가이자 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이력을 가진 서아람 작가의 신작이다. 그래서 수사하는 절차와 수사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경찰에 대한 아이들의 궁금증도 따로 정리해두었다. 경찰은 어떻게 되는지, 경찰이 되려면 뭘 잘해야 하는지, 수갑은 언제 사용하는지,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무엇이 다른지 등등에 대한 궁금증을 극중 인물들의 통해 대답하는 형식으로 들려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경찰과 수사에 대한 필수 정보도 배울 수 있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법과 정의, 사건을 쫓는 어린이를 위한 법학 동화 '우리들의 시작' 시리즈는 두 번째 책이다.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에 이어 <우리들의 수사를 시작하겠습니다>가 이번에 나왔고, 곧 <우리들의 소송을 시작하겠습니다>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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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스즈키 고지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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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게이코는 문득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어디선가 한 번 본 적이 있는 광경. 아니, 경치는 다르다. 한쪽은 도시 교외에 있는 주택가의 한구석, 한쪽은 인가가 흩어져 있는 동네에 외따로 자리 잡은 단독주택. 그저 자아내는 분위기가 비슷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5년 전, 집단 사망 사건이 발생한 폐가를 찾아갔을 때 감지했던 것과 똑같은 냄새가 주변에 가득했다. 그 원천은 집을 둘러싼 식물들이었다. 이상하리만치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              p.97


잠깐의 사랑으로 대형 출판사라는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잃고 딸의 친권만 간신히 사수해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처지가 된 게이코는 탐정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잡지 기자 시절에 얻은 취재력과 인맥으로 경험을 쌓아 탐정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든 생활고의 원인을 만든 겐스케가 찾아온다. 함께 저지른 불륜이었는데 그는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고 일과 가정 양쪽을 지켜냈기에 두 사람의 사이에 좋은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방세가 석 달이나 밀려서 사무소 유지조차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가 가져온 일감을 덥썩 받아들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친구의 부모로부터 혹시 존재할 지도 모르는 손녀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15년 전 아들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죽은 뒤 실의에 젖어 사는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꽃다발이 도착했는데, 아들에게 당시 연인이 있었기에 혹시 손주가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손주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사람 찾기의 일반적인 시세를 훌쩍 뛰어넘는 보수에 게이코는 15년 전 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조사는 15년 전에 있었던 작은 신흥 종교 단체의 신도들이 집단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연결된다. 단체의 이름은 '꿈꾸는 허브 모임'으로 식물을 주로 다루며, 온건한 교의를 표방해 인근 주민과 마찰도 없었고, 여성 신도만 모아서 조촐하게 운영하던 교단이었다. 사건은 당시 본부 시설에서 공동 생활하던 8명 중 7명이 정원 여기저기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제삼자의 흔적은 전혀 없었고, 내부에 수상한 점도 없었으며, 부검을 한 이후에도 명확한 사인을 확정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진화의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알기 쉬운 색의 변화는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경고를 통해 식물은 자신들의 의도를 전하려는 것이죠. 중요한 건 귀를 잘 기울여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겁니다. 식물이 인간에게 기대가 남아 있다면 몰라도, 이미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었다면 끝입니다. 거추장스러운 인간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난리법석을 피워도 이미 늦은 겁니다. 더는 손쓸 방법이 없어요.               p.253


TV 밖으로 기어 나오는 귀신이 나오는 《링》으로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호러의 제왕’ 스즈키 고지의 신작이다. '지구 생명의 역사를 식물의 시점에서 다시 본다면, 세계가 자아내는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세계의 구조를 근원부터 뒤흔들며 대담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도쿄 도내의 한 맨션에서 의문사 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은 내부에서 자물쇠를 잠근 밀실 상태였고, 부검을 했지만 사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요코스카의 자위대 관사에서 비슷한 의문사가 또 발생한다. 돌연사한 두 남성은 모두 서른살 이라는 젊은 나이에 지병도 없었다. 이 사건은 15년 전에 있었던 작은 신흥 종교 단체의 신도들이 집단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연결된다. 15년의 간격이 있는 두 사건에 공통적인 인과 관계는 무엇일까. 


탐정 게이고, 사건에 대해 르포를 썼던 작가 우에하라, 물리학자 츠유키, 주간지 기자 유리까지 네 사람이 함께 단서를 좇으며 사건의 실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스즈키 고지는 존재하지 않는 문자로 기록된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책인 보이니치 필사본, 남극에서 채취된 얼음 속 미생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돌연사 등을 인류의 문명과 언어의 기원, 그리고 과학적 정보들을 토대로 매력적인 스토리로 탄생시켰다. 제목인 '유비쿼터스'란 어디에든 있다는 뜻이다. 지구 생명체의 총중량 중 99.7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이 극소수인 동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면 어떨까. 스즈키 고지는 놀라운 상상력을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전개를 통해 현실로 구축시켜 보여준다. 인간의 문명을 식물의 시점에서 다시 읽는 다는 설정만으로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스즈키 고지는 이 작품을 4부작 시리즈로 구성했다고 한다. 2부는 미국, 3부는 대항해 시대, 4부는 인류의 우주 진출을 그릴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차원의 공포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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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낯선 동행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11
김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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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설명할 길 없는, 알 수 없이 불길한 기운이 온몸을 조여 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자신이 어딘가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들어와 있다는 기묘한 감각이 짙어졌다. 창밖으로는 새벽 공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골목의 가로등 불빛은 하나둘 꺼져가고, 세비야의 새벽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             p.94


스물아홉 혜성은 소규모 영상 회사에 다니다 젊은 대표의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인해 퇴사를 결심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공감해주지 않던 남자친구와도 3년 동안 지속했던 관계를 끝냈다. 부모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생활비도 스스로 벌어야 했기에 해외여행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퇴직금을 받고 전 재상의 반 이상을 투자해 스페인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혼자 해외 여행을 가는 것이 불안해 여행 카페를 통해 또래의 동행자를 구하지만, 정작 낯선 동행자는 바르셀로나 공항에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상대가 담당했던 호텔조차 예약이 취소된 상태, 어쩔 줄 몰라 하며 호텔 문을 나선 시간은 새벽 2시였다. 낯선 곳에서 잔뜩 긴장한데다, 머릿속 한구석에 최악의 가능성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 


윤길우라는 그 남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혜성을 도와준다. 자신이 예약한 한인 호스텔에 데려가 숙박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를 구하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친구가 연락이 안 되고, 그 친구가 예약한 호텔이 취소가 된 상태라는 걸 말해주자 그는 친구가 사기 친 거 같다고 카페에도 글을 올리고, 신고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관광지 티켓은 혜성이 예약한 터라 다음날 사그라다파밀리아 티켓이 두 장이었고, 길우와 함께 가게 된다. 길우는 여행 경험이 많아 보였고,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일도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이 낯선 도시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위안에 기대고만 싶은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과연 혜성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동행과의 여행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혜성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 앉아 몇 시간을 돌려보며 편집하던 영상 속의 그곳에 와서 추로스를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실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화면 너머로 보던 것의 실체를 마주하자 그 진실이 생각보다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첫 여행도,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서글퍼졌다.                  p.158~159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해 세비야, 그라나다, 마드리드를 거치는 여행의 여정을 혜성과 길우는 함께 한다. 지효가 부재한 자리에 길우가 들어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행자가 된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도 되고, 도움도 되고,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지를 함께 관광하며 남녀가 설렘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것이, 나타나지 않은 지효에 대한 불안,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길우에 대한 의심, 그리고 본능적인 불안과 이상한 예감까지 이런 저런 감정들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 알람브라궁전, 플라멩코의 선율 등 낭만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더 혜성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혜성이 느끼는 그 감정을 책을 읽는 독자들이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오싹해지는 순간이다. 


혼자 떠나는 해외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면, 이 작품을 읽으며 그 기대감이 파사삭 부서지게 될 것 같다. 로맨스처럼 흘러가던 분위기가 점점 스릴러로 변해가는 느낌이랄까. 사소한 불안감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오싹해지는 공포감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며 서늘한 서스펜스를 보여준다. <현대문학 핀 장르>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은 <마당이 있는 집>, <여기서 나가>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김진영 작가의 신작이다. 그 동안 만나온 작품들이 굉장히 호러스러웠다면, 이번 작품은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이야기라 더 흥미롭게 읽었다. 야기는 완벽했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의심이 커져 가면서 매력적인 심리 서스펜스를 보여줬던 <마당이 있는 집>, 사람들의 욕망이 집착으로, 그 집착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던 <여기서 나가> 모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작품 역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전작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신선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핀 시리즈 장르소설선 라인업에 김나현, 김서해 작가도 있어서 매우 기대가 되는데, 올해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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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당하기 숙제 스콜라 어린이문고 47
이수용 지음, 이해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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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태양이가 기다리던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그런데 신나게 놀 생각에 들뜬 태양이에게 단짝 친구 성하가 자신은 방학 숙제부터 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4학년 공통 방학 숙제는 '도전 일지 쓰기'였다. 심통이 난 태양이는 성하보다 먼저 숙제를 해버리기로 하고,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한 남자가 거절당하는 걸 두려워하다 거절에 익숙해지기 위해 100일 동안 거절당하기 프로젝트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 남자는 백 번을 시도하고 거절당하니 실패가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소감을 말한다. 태양이는 생각한다. 승낙받는 게 아니라 거절당하는 거라면 아주 쉬울 거라고. 




부탁을 거절해 줄 사람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었다. 태양이는 공책과 연필을 들고 거실로 간다. 엄마, 나 방학했으니까 게임 아이템 사줘. 엄마, 방학한 기념으로 치즈 폭탄 피자 시켜 줘. 엄마, 나 방학 대까지 버티느라 고생했으니까 한번 업어 줘. 엄마에게 타박을 들으며 턱도 없는 부탁을 이어가고, 거절당하고, 그걸 공책에 옮겨 적다 보니 숙제가 그냥 끝나 버릴 것 같았다. 공책에 쓴 걸 훑어보는데 어쩐지 양심에 찔려서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기로 한다. 거절을 열 번 당하되 각기 다른 사람에게 당하는 걸로 말이다. 


그렇게 빵집에서 찹쌀 도넛으로 목걸이 모양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고, 자전거 가게에서 최고로 비싼 자전거를 타 봐도 되냐고 물어보고 거절당하고, 분식집에서 백 원짜리 핫도그도 만들어 팔아 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한다. 들어줄 리가 없는 부탁을 하고는 쏜살같이 도망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장난처럼 시작한 태양이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태양이는 도전을 거듭하면서 타인의 부탁을 무조건 거절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자신이 거절당하려고 한 말에 대해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분이 묘해지기도 하고, 남의 부탁은 다들 귀찮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거절을 하면서 미안해하거나 한참 뒤에 다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태양이는 방학 숙제를 하며 앞으로는 거절당해도 기분이 조금은 덜 상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도 다 그만한 사정이 있을 테니까. 


겉보기에 무뚝뚝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려면 직접 말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부탁이든 해 보기 전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세상은 도전하고 부딪힐수록 넓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남에게 부탁하는 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거절이라도 당하면 주눅이 들어서, 다음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뭔가를 포기해 본 적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무섭고 두렵기만 했던 거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다.  거절을 자주 당하다 보면 전처럼 거절에 쉽게 상처받지 않게 되고, 거절하는 상대방 입장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긴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절을 받아들이는 연습인 것이다. 이야기속 태양이는 여러 번의 거절을 통해 세상에는 승낙과 거절만 있는 게 아니라 '봐서'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거절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펼쳐지는 태양이의 여름 방학 이야기를 통해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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