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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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랑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겨ㄹ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p.16~17


이 작품을 17년 전에 초판으로 읽었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을 사용했던 표지도 아직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좀처럼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읽다 보니 문장들은 고스란히 기억이 났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상상해주는 거라고,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가는 거라고.... 아마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해되지 않았을, 혹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을 문장들을 꽤 긴 시간만큼의 삶을 살아낸 뒤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왜 작가가 사랑은 오해라고 했는데, 왜 사랑은 상상력이 될 수밖에 없는지 이제 나는 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작품을 다시 처음부터 읽으며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반느>의 개봉을 앞두고, 양장 특별판으로 나온 이번 개정판에는 소설 속 ‘나’와 ‘그녀’, 요한의 17년 후 이야기를 더해 더욱 특별하다.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이라니... 정말 설레이는 장치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디렉터스 컷과 같은데, 독자들이 본 내용의 결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려는 작가의 특별한 기획이라고 한다.  또한 이 소설만을 위한 BGM 음반을 제작하여 QR 코드로 수록했다. 머쉬룸 밴드의 음악 네가지 트랙을 들어볼 수 있다. 음악과 함께 소설을 읽으면, 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색다른 읽기 경험이 될 것이다. 영화는 캐스팅 소식 외에 스틸컷이라든가 아직 더 알려진 정보가 없어서 매우 궁금하다. 소설의 분위기를 어떻게 살릴지, 영상화된 버전에서는 어떤 것들이 달라질지도 기대가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재의 내 삶이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다. 어렴풋이 의식이 돌아오던 때의 느낌이 떠오르고... 희미하게나마 시력을 회복하던 때의 감각도 떠오른다. 그 모두가 기적이라고 의사나 간호사들은 얘기했었다. 실은 어떤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파반느>로서의 나의 여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비록 느리고 장엄해도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p.379~380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을 보고 싶은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었다. 이 소설의 제목은 거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작가는 같은 화가의 또 다른 작품 <시녀들> 속 마르가리타 왕녀 곁에 선 키 작은 시녀의 모습에서 다시 영감을 이어받아 이 소설을 썼다. 죽은 ‘왕녀’ 곁에 선 ‘시녀’가 상징하는 것은 비단 주인공의 못생긴 연인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뻐지고 싶고, 부유해지고 싶었던 지나간 우리의 모습들, 촌스럽고 시시했던 그 모든 시절의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얼굴을 사랑하도록 태어났다. 하지만 그건 너무 불공평한 시합이다. 외모에 관한 한, 누구도 자신을 방어하거나 지킬 수 없으니까. 첫눈에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첫인상으로 대부분의 시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니,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조건이라면 너무도 불공평하다. 그리고 그 불공평함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특히나 가혹하다. 작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인간관계가 어려울 정도로 못생긴 여자와,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두 명의 청년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외모 경쟁에서 불리한 여성들, 나아가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이기도 하다. 긴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작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초판은 무려 65쇄가 발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작품을 만나보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이 그 기회다. 아름다움의 바깥에서 시작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지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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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세계사 - 문명의 탄생부터 국제 정세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김도형(별별역사)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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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중국은 이 많은 불리함을 딛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까요? 중국 공산당도 이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까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세계 질서 가운데, 어떤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미래의 패권을 쥐게 될지 상상해 본다면 역사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p.53


6,000년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책이다. 역사 스토리텔러 김도형(별별역사)이 문명의 탄생부터 현대까지 다섯 가지 키워드로 세계사의 흐름을 재구성했다. 얽히고설킨 방대한 역사에서 흐름을 읽기란 쉽지 않은데, 인류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힘은 존재한다. 바로 지리, 전쟁, 종교, 자원, 욕망이 그것이다. 이 책은 그 다섯 가지 힘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새롭게 해석했다.


'지리'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결정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사례를 들려주고, 이탈리아, 일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인류사의 전환점이 된 '전쟁'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 본다. 영국, 스페인, 인도, 파키스탄을 통해 '종교'가 만든 문명과 갈등의 역사를 살펴보고, 네덜란드와 아프리카의 역사를 통해 '자원'이 부와 파멸을 동시에 가져온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욕망'이 만든 제국의 흥망성쇠는 광대한 영토로 세계를 지배했던 몽골제국의 몰락과 세계 최악의 빈곤국이 된 북한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세계사 책들은 범위가 너무 방대해서 재미있게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들만 중요한 키워드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인류의 역사를 드라마틱한 다큐로 본 느낌'이라는 추천사처럼 영상에 익숙한 이들도 지루할 틈없이 볼 수 있을 만한 세계사책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까지, 세계의 화약고라 평가되던 곳들이 연이어 폭발하고 있습니다. 짧았던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싹틉니다. 그래도 전 세계의 노력을 통해 최대한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하는 분위기가 다시 오기를 바랍니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언제나 더 많은 희생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p.151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록 전 세계는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된 요즘이다. 과거와 현재, 우리와 세계는 거대한 인과의 사슬로 묶여 있고, 현재와 미래를 잘 살아 나가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그러니 이제 세계사는 선택이 아닌 꼭 필요한 고양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의 배경과 현재에 대해서도 미, 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 더욱 주목받는 지정학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2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이 무려 4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지금의 시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꼭 알아야 하는 주요 사건들을 연표로 정리해, 한눈에 알아보도록 했고 연표와 지도, 명화, 사진 등 100여 개의 도판을 수록해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힌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뉴스의 중심에는 늘 '역사'가 있다. 중동 분쟁, 미·중 패권 경쟁, 유럽의 정치 위기와 같은 이슈도 결국 역사를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이기에 국경 밖 사건이라고 해서 결코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세계사인 것이다. 하지만 딱딱한 정보의 나열이라면 푹 빠져서 읽기 쉽지 않다. 지루하지 않게, 외워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이해하는 이야기로 만나는 세계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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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뇌과학 - 더 좋은 결정을 만드는 가치 판단의 비밀
에밀리 포크 지음, 김보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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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먹을지 초콜릿케이크를 먹을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인간의 뇌가 '객관적인' 규칙만을 따른다면, 두 음식의 포만감이나 칼로리만 신경쓰면 된다. 실제로 이런 식의 사고는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가중치가 부여된 요소들을 바탕으로 공통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샐러드와 초콜릿케이크의 주관적 가치를 산출하며, 그 결과 가치가 더 높은 쪽을 선택한다.              p.44~45


우리는 매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중요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이것과 저것 사이,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주말에 업무를 더 하는 것과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에 가는 것과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것 중에서 고민하고, 당장 식사 메뉴를 뭘로 할지, 이동 시에 어떤 교통수단을 탈지, 쇼핑할 때 물건을 고르면서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도 그 대신 다른 일을 먼저 하게 되고, 더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루게 되고, 잠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홀린듯 스마트폰을 들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하고, 심지어 왜 그런 선택을 반복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선택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왜 선택하는지를 결정짓는 뇌 체계의 핵심을 탐구한다.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밀리 포크는 우리의 결정이 뇌 속에 자리한 ‘가치 체계’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일상의 의사 결정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뇌과학적으로 살펴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택이 개인의 취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목표,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맥락 등 여러 요인 속에서 끊임없이 체계화되고 재구성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게 느끼는가’를 기준으로 주변 사람들, 사회적 규범, 반복된 경험 등을 토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뇌의 가치 체계에 의해 계산된 결과이며, 가치 체계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여러 정보를 모아서 가장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선택지를 자동으로 고르는 것이다. 




... 우리의 일 분, 한 시간,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쌓여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자녀의 학교 연극을 보러 갈 것인가, 아니면 이사회에 참석할 것인가? 동료가 비열한 발언을 했을 때 소리 내어 말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을 지킬 것인가? 밤늦게까지 일할 것인가, 아니면 친구를 만날 것인가? 상원의원에게 전화해서 당신의 의견을 알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이 책에서 계속 살펴보았듯이 각각의 선택은 우리가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입력값을 넣어 가치 산출한 결과다.               p.307


한때 유행했던 밸런스 게임은 두 가지 극단적인 선택지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 대답하는 것이다. 저자는 뇌의 '가치 체계'에 대해 설명하며, 가치 산출을 일종의 밸런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설명한다. 고양이 혀와 롤러스케이트 중 어느 쪽을 만질 것인가. 세상의 모든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능력 중 어느 쪽을 가질 것인가. 세상 모든 책과 영화를 다 가지고 무인도에서 혼자 살기와 미디어 없이 단 한 사람과 함께 살기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밸런스 게임을 즐기는 가벼운 상황부터 날마다 실생활에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상황까지, 가치 체계는 우리의 선택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선택지의 가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추적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려는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한 뇌의 작동 원리를 통해 우리가 어떤 순간에 무엇을 더 가치 있게 느끼는지, 변하고 싶어 하면서도 왜 특정한 선택을 반복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가치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한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알게 될테니 말이다. 뇌가 어떤 선택지에 부여하는 가치는 절대적인 고정값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나 교육 수준, 성격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그보다는 맥락과 문화에 더 크게 좌우된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가치 산출이 어디에 집중하게 할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뇌가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는 법이 궁금하다면, 뇌의 가치 체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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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법을 어길 때 - 과학, 인간과 동식물의 공존을 모색하다
메리 로치 지음, 이한음 엮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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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셀리스는 동물이 공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역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고를 받고 갔는데 곰이 사람을 깔고 앉아 물어뜯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았지요. <총으로 쏘나요?> 그러자 그는 답했어요. <사람과 곰 중에서 어느 생명이 더 중요한지 판단할 권리는 내게 없어요.>」 인도에서는 해마다 약 5백 명이 야생 코끼리에게 죽는다. 정부는 유족에게 보상을 하지만, 코끼리를 살처분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주는 서벵골이다. 지난 5년 동안 403명이 사망했다. 아마 답은 거기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p.74


텃밭과 과수원을 침입해 농작물과 과일을 약탈해 고소당한 모충,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파문당한 곰, 돼지의 살인 재판, 쥐에게 발부해 굴 안으로 쑤셔 넣은 퇴거 영장, 양조업자들이 초록색을 띤 한 바구미종에게 제기한 소송.... 이것은 실제로 법정에서 재판으로 다루어진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옛 법 제도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증거라기보다, 인간과 야생 동물 사이의 갈등이 대처하기에 무척 곤란한 특성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이는 중세부터 수 세기 동안 고심했음에도 여전히 흡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사람이 의도를 갖고 만든 법을 자연이 어길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 조치일까?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로 평가받는 메리 로치는 콜로라도 애스펀의 뒷골목부터, 인도령 히말라야산맥의 어느 마을, 성 바오로 광장까지 인간의 법과 동식물의 본능이 충돌하는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 책을 썼다.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일으키는 동식물을 <자연의 범법자>들로, 인간의 법과 동식물의 본능이 충돌해 벌어진 사고를 <사건 현장>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인간과 야생 동물의 갈등을 수습하는 전문가, 곰 관리자, 나무 벌목 및 발파공, 포식 동물의 공격을 조사하는 법의학 수사관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탐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일으키는 동식물은 정말 <자연의 범법자들>일까? 사실 진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아닐까?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그리고 인도적인 행동인지를 거의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침입하는 야생 동물, 또는 누군가가 들여온 야생 동물을 죽였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쥐와 생쥐를 윤리적으로 다루고 인도적으로 <안락사>하는 상세한 절차를 마련해 쓰고 있지만, 우리 집과 뜰을 침입하는 설치류나 미국너구리를 처리하는 공식 표준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부사항은 퇴치업자와 <야생 동물 방제업자>에 달려 있다. 후자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모피 구입을 꺼리고 덫 사냥꾼들이 가정의 고미다락에서 다람쥐 잡는 일로 돈을 벌기가 더 쉽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온 직업이다.              p.357~358


무단 횡단 하는 동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쓰러질 위험이 있는 나무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비행을 방해하는 새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쓰레기통을 뒤지는 곰을 포획해 다른 지역에 풀어놓으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까. 사람들은 경작지를 보존하기 위해 혹은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해, 새를 독살하거나 소음, 레이저, 폭발물 등으로 괴롭히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또한 개체수 관리를 위해 시행되는 면역 피임법을 포함해 각종 동물 피임법의 경우는 부작용의 위험은 물론 윤리적인 논란도 안고 있다. 동물에 의해 사람이 다치거나 죽게된 경우, 대부분은 동물을 사살하는 걸로 마무리가 된다. 사람을 해치는 동물의 운명은 어떤 경우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처벌보다는 예방이 더 낫다. 양쪽 종에게 가장 안전한 방안은 서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동물은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따르는 존재다. 그들은 본래 타고난 대로 행동하는 단순한 동물들이다. 먹고, 싸고, 보금자리를 짓고, 자기 자신이나 새끼를 지킨다. 하지만 우연찮게 그 본능을 따르는 행위가 인간에게 또는 인간의 집이나 작물에 피해를 주는 순간 불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사람과 도시에게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야생 동물에게는 곤경을 안겨 준다. 2백여 국가의 동식물 약 2천 종이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하고 있다. 각 갈등마다 상황 배경, 종, 걸려 있는 문제, 이해 관계자가 다르기에 해결 방법도 제각각 달라야 한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갈등을 '과학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 자연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며, 진정한 공존은 과학적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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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의학 공부 -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필수 해부 개념
켄 애시웰 지음, 고호관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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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북의 '그림으로 과학하기' 시리즈 신간이다. 물리, 화학, 생물 공부와 수학의 대수와 기하 편이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의학 공부 편이다. 그림으로 모든 이론을 정리하는 시리즈라서 아이가 보기에도, 어른이 보기에도 너무 좋은 시리즈이다. 


과학 문해력은 글로 읽을 때보다 그림을 볼 때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난다고 한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은 문자보다는 이미지로 정보를 습득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에, 필수 과학 개념을 엄선해 인포그래픽으로 압축한 이 새로운 과학책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의학의 기초인 해부를 그림으로 압축해 설명하고 있다. 해부학이란 몸을 절개하고 그 안을 더 자세히 보고 이해하는 학문이다. 몸을 자르고, 관찰하고, 육안으로 보이는 장기와 부위를 묘사하는 것이 해부의 시작이다. 해부학은 시각적인 과학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선명한 색채와 간결한 표현으로 인체 구조의 핵심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신체의 각 부위가 다른 구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배울 수 있다. 


인체 해부학에서는 피부계, 골격계, 근육계,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비뇨계, 생식계, 면역계, 림프계, 내분비계를 다룬다. 이 책은 우리 몸의 기본 요소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마인드맵으로 장별 내용을 정리해 개념 간 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주어 좋았다. 단 두 페이지로 각 장의 모든 내용들을 한꺼번에 정리해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는데, 얼굴근육이 어떻게 얼굴의 표정을 만드는지, 모든 척추동물의 뇌줄기의 구조가 비슷하다는 것과 사람은 약 1만 가지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후각 또는 냄새는 맛과 마찬가지로 화학적 감각인데, 우리의 후각은 다섯 가지 맛만 느끼는 미각보다 훨씬 민감한 감각이었던 거다. 폐의 구조는 어떠하고, 소화관에는 어떤 기능이 있으며, 콩팥은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는 지 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은 <태어난 김에 생물 공부>에 이어 고등 생명과학의 중요한 개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어,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에게도, 의학에 관심이 있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누구나 부담 없이 읽으며 의학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정확한 설명으로 개념 이해를 도와주며, 그림으로 정리해 가장 과학적인 학습법을 제시하고 있다. 글이 아니라 그림이 중심이기 때문에 한번 보면 쉽게 잊혀 지지도 않는다. '그림으로 과학하기' 시리즈는 미국의 학습서 명가 베런스에서 모든 연령의 학습자들이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보다 쉽고, 재미있게, 효과적으로 과학 공부를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시리즈를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의학을 접하게 된다면, 의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테니 말이다. 선명한 색을 활용한 인포그래픽, 중요도에 따라 시선의 흐름을 유도한 배치, 딱 필요한 것만 군더더기 없이 원포인트으로 설명해주고 있으니 사실 지루할 틈이 없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잘 쓰인 책이라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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