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진화론적 생존 법칙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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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화는 때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적응법을 생각해내며 환경이 제시하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끊임없이 정복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유기체는 조건이 달라질 때 기존 능력을 이용해 새로운 생존 기회를 활용하고, 그 뒤에 자연선택을 통해 그 능력을 조정할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는 유명한 글 <진화적 땜질>에서 진화란 새로운 구조를 발명하는 일보다 기존의 구조를 수정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p.58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어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화두가 되어 진화 인류학, 뇌과학의 시점으로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현장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불완전함’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오래된 전략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30억 년 자연사에서 4번의 대멸종을 견디며 살아남은 개체들은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불완전함 덕분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격변기마다 많은 종이 멸종했지만 동시에 어떤 종은 살아남았다.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기존 환경에서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생물은 약 40억 년 동안 끊임없이 자가재생을 거듭해왔다.  주변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생존하고 번식할 기회를 만들어 '끊임없이 생존'해왔다.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는 언제나 불일치가 존재한다. 다윈은 주어진 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개체수를 넘어서서 비슷한 환경 자원을 필요로 하거나 선호하는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은, 결국 적합한 조건에 사는 유기체가 끊임없이 '생존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갈등은 삶에서 영속적인 요소인 것이다. 유기체는 대물림, 탐색, 이동을 통해 이러한 환경과의 갈등에 대응해왔다. 저자는 말한다. 진화란 가장 뛰어난 일인자를 걸러내는 관문이 아니라, 살아남아 번식하는 모든 개체를 선호하는 헐거운 과정이라고. 완벽함이 아니라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적당함이 현재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해낼 진화적 회복력이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류는 지금 위태로운 시대를 살고 있고, '지속 가능성'에서 '생존 가능성'으로 담론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활방식이 진화를 따르지 않고 '성장은 좋은 것' '적자생존' '기술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사회경제적 방식으로 전환된 사건을 인류세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인류세가 저무는 인류세의 가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기술 인류가 더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세가 빠르게 변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SF소설에서는 오랫동안 종말 이후의 인류 사회를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일을 반복하며 양측의 치명적 결함을 지적했다.              p.407~408


전 지구적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의 거주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한 세기 넘게 경고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문제는 인간이 습관의 동물이어서 환경이 달라져도 행동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와 지구 생물권은 '복잡한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통, 위생, 의료, 전기, 식량, 물, 인터넷 등 기술에 기반한 시설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변화이지만, 우리가 통제하거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역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지구가 임계점을 넘기 직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류가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근본적 문제는 경제 성장과 개발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이 될 것이다. 생존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된 관심사이고, 인간과 생물권이 상호작용할 때 진화의 원리를 택하는 일은 인류의 미래에 가장 중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고 다가오는 변화에 대처하려면, 예상치 못한 조건 변화에 대처할 잠재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화적 잠재력을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추천하며 <사피엔스>를 읽고 좌절한 독자들에게 권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잘 읽히는 책이다. 각 장마다 요약 항목을 두어 한번에 정리해 두어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구성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초기 인류의 역사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전 지구적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놀라운 통찰을 만나보자. 진화적 관점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인류세 다음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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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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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대가 비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나의 책다운 긍지이기도 하다

한낱 물건일 뿐인 내가 진짜 살아 있는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종이로 된 정신인 우리는

이따금 우리 자신이 <덧없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다.                 p.53


페이지를 펼치면 한 권의 책, 그것도 살아 있는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원한다면,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나를 읽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고, 그대야말로 이 여행의 주인공이며, 나의 주인이라고,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고. 아마도 이 책은 긴 여행을 거쳐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해주는 여정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면 계약이 성립된다. 이제 나날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고, 되어 가는 대로 완전히 스스로를 내맡기면 된다. 책이 요구하는 사항은 꽤 긴데, 덕분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렇게 나를 어떻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긴 당부의 페이지가 끝나면 여행이 시작된다. 




첫 번째는 공기의 세계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정신의 힘으로 잠시나마 새가 된 것처럼 날개를 느끼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구름 위에도 올라가 보고, 지구라는 행성을 구경해보기도 한다. 두 번째는 흙의 세계다. 대지로 내려와서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짓는 시간이다. 집을 짓고, 집 안을 꾸미고, 내 서재에도 들어가본다. 세 번째는 불의 세계다. 이번에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을 날아 오른다. 그곳은 온통 노란 불빛과 빨간 핏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적과 싸우고, 체제나 조직에 맞서기도 하고, 질병, 불운과도 싸운다. 마지막은 물의 세계다. 이곳은 온통 파스텔 색조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고, 잊고자 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조상과 우주 그 이전으로 점점 과거로 향한다. 서로 다른 분위기와 감정, 이미지로 가득한 각각의 세계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면서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의 내면이다.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덧붙인다.

깨어 있으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

인류는 어쩌면 그런 쪽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p.127


오래 전에 <여행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실험적인 에세이가 4원소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 입었다. 독창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 네 개의 세계를 네 가지 컬러의 내지와 글씨체로 만들었다. 공기, 물, 불, 흙 4원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책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가격까지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공기의 세계는 산뜻한 초록색, 흙의 세계는 따뜻한 브라운, 불의 세계는 강렬한 레드, 물의 세계는 시원한 블루 컬러의 내지로 만들었다. 내지 컬러만 다른 게 아니라 각각의 세계는 글씨체도 각각 다르다. 그래서 하나씩 떼어내면 4권의 다른 책이 될 것만 같은 구성이다. 각각의 세계를 상징하는 컬러는 표지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색감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표지 디자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보적인 상상력을 그대로 물질화시켜서 보여주는 북디자인이라니.... 작가만큼이나 디자이너에게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책이다.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이 가진 물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현실로 구현시켜 준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직접 알려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이 우리를 데려가는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니 거의 유일무의하지 않을까. 열린 책들의 디자인은 매번 감탄하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코 손에 꼽을 만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책이 주는 물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작품은 꼭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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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지구를 먹어치우는가 - 초가공식품과 식품산업이 만들어낸 게걸스러운 인류의 탄생
헨리 딤블비.제미마 루이스 지음, 김선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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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식량 시스템에서 가장 싸고 풍부한 재료는 설탕 같은 단순당,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갈망하도록 프로그램된 재료들이다. 인류가 열량을 얻기 힘든 세상에서 진화해온 탓에, 우리는 지방과 설탕이 많이 든 음식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영국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 중 80퍼센트 이상이 건강에 해롭다. 이는 식품 제조업체가 사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건강에 해로운 식품은 더 쉽게 팔린다.                p.13


우리는 지금 저렴하고 건강에 해로우며 뿌리치기 힘든 가공식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초코바의 종류가 채소보다 많으며,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편식들은 무려 30가지가 넘는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종류의 음식은 대량으로 판매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생산 비용도 저렴하다. 현대인들이 비만이나 식이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자 먹은 음식에 대한 책임이 개인의 잘못된 결정과 의지력 부족 탓이 아니라면,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식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우리의 식욕과 행동이 식량 시스템의 작동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짚어보고, 식량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쉽게 카페에서 살 수 있는 '수제' 샌드위치를 생각해 보자. 실제로 그 속에 포함된 성분들을 보면 '수제'라는 말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잠시 어리둥절해 진다. 밀가루, 달걀, 설탕, 효모, 카놀라유, 그리고 맥아밀, 밀 글루텐, 지방산 모노글리세리드, 디아세틸 타르타르산, 텍스트로스..... 등등 이름을 봐도 무슨 성분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목록 중에서 가장 자연 친화적으로 보이는 카놀라유조차 수많은 화학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샌드위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수많은 음식들이 그럴 것이다. 또한 그 수많은 과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소비자가 알 필요 없다고 결정되었을 뿐이다. 또한 재료와 음식들을 구매해서 먹는 우리 또한 그러한 과정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식품 메커니즘의 진실을 알고 나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마트의 풍경들이, 음식점의 메뉴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것이 나 자신을 아프게 하고, 지구를 뜨겁게 하고, 어디선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의 식샹 시스템이 이대로 계속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이 찌고 아픈 이유는 살찌고 아프게 하는 먹을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은 우리 손으로 만든 비만 유발 환경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정크푸드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주변 환경을 바꾸거나, 아니면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을 바꾸거나. 기이한 점은 첫 번째 선택지가 두 번째 선택지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121


이 책을 읽으며 2주 동안 식단 일지를 작성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얼핏 건강해 보이는 식단도 비가공 식품, 가공 식품, 초가공 식품으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가공 식품은 의식적으로 먹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가공 식품의 범위가 넓어서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가공 식품이란 고기, 채소, 견과류 등 식물이나 동물에서 직접 얻으며 세척이나 냉동 같은 최소한의 가공을 거친 식품을 말한다. 가공 식품이란 베이컨, 치즈, 과일 및 채소 통조림, 훈제 연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빵 등 비가공 식품을 염장이나 발표, 절임 처리해서 가공한 제품을 뜻하는데, 생각보다 가공 식품에 해당되는 음식들이 많았다. 초가공 식품이란 과자, 디저트, 대량생산 빵, 재가공된 육류 제품, 간편식 등 설탕, 기름 등의 가공 식재료가 소량이 아닌, 요리의 주를 이루는 식품이다. 첨가물이 가미되어 보기 좋고 맛있으며 오래가는 음식인데,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을 내어 중독성이 있다. 


저자는 '변화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건강하다거나 지속 가능하다고 철석같이 믿어온 것이 종종 틀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지방이 전지방보다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고, 지역 농산물이 수입 식품보다 탄소발자국이 더 많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흥미로웠던 것 같다. 식량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오해를 걷어 내고, 무대 뒤편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만족스러운 음식과 오히려 공허해지는 음식에 대해서 돌아보고, 간식이나 '자기 보상 음식' 등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먹고 나면 우울해지는 음식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가공식품이 만든 새로운 질병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나쁜 식사의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면, 우리의 식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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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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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에서는 다 죽어.

그리고 다시 한마디 더.

그런데 너는 살았지.

그러면서 난데없이 모유리의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이마로 내려와 있던 머리카락이 엄마 속에 달라붙었다. 그 부드럽던 손...... 그건, 그 와중에도 '엄마의 손'이었다. 미운 엄마, 엄마 같지도 않은 엄마, 못돼 처먹은 엄마...... 개 같은 엄마...... 쌍년 같은 엄마...... 그러나 엄마.               p.106


세상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수두룩하게, 또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 수두룩하게 벌어진다. 매일같이 세상 어디에선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 작품 속 비극도 그렇다. 어느 해 여름, 쓰레기집에서 살던 쓰레기 노인이 사망했다. 도시 괴담 방송을 하는 유튜버가 집을 촬영하다가 무너진 폐가구와 쓰레기에 깔린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구급대와 경찰, 그리고 특수청소업체가 곧 현장에 출동했다. 사람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로 인해 어디든 건드리는 순간 송두리째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곳은 멀쩡하기만 하다면 대저택이라 불릴 만한 집이었다. 지어진 지 100년 가까이 된 집이었는데, 서구풍으로 공을 들인 석조 저택이라 요즘 집들보다 더 튼튼하게 보였다. 문제는 외벽이고 내벽이고 보이는 데가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집을 아예 먹어버린 꼴이었다는 거다. 게다가 하필 날씨는 폭염이었다. 별별 날것과 벌레들이 날아 다녔고, 악취와 냄새도 지독했다. 시신을 구조하기 위해서라도 쓰레기들을 일부 치워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덜 죽은 사람이 한 명 발견된다. 마치 살아 있는 유골과도 같은 상태의 사람과 진짜 유골까지 나타난다. 단순 사고로 처리되었을 노인의 죽음은 그렇게 사건으로 전환된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신도 깨닫지 못해서 자신에게조차 비밀이 된 말들. 그 뜨겁고 달콤하고, 그래서 심지어 쩔쩔매는 것 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절절 끓는 철판 위에 볶이는 듯 안달 나 있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함부로였던 마음과 말들. 비밀은 결코 폐기 처리 되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망정 어딘가에 쟁여진다. 부패하고 냄새를 풍기고 벌레가 꼬일망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걸 뒤지고, 찾아낸다.              p.235~236


'공포'를 기반으로 한 장편소설의 새로운 전개를 선보이는 앙스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박민정 작가의 <호수와 암실>이었고, 두 번째로 김인숙 작가의 <자작나무 숲>이 나왔다. 이후에 출간될 라인업에 손보미, 김혜진, 조예은 작가 등의 이름이 있어 매우 기대하고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2022년에 발표되었던 동명의 단편 소설을 확장하여 다시 쓴 장편소설이다. 단편에서 1인칭 시선으로 '그 집'과 할머니와 자신의 엄마를 응시했던 화자 '나'가 장편에서 '그 집'의 유일한 상속녀 '모유리'가 되고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김인숙 작가는 '단편을 장편화하는 것이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호더 할머니와 사라진 아들, 나와 미혼모 엄마로 이름이 없던 인물들이 하나씩 이름을 가지면서 좀 더 분명하고 다채로운 서사를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래 전 김인숙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해가며 여러 번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예리한 묘사들과 섬세한 문장들, 그리고 생의 이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작품이 꽤 오랜만에 읽는 것인데, 여전히 마음을 휘젓는 서사에 완전히 몰입하며 읽었다.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해 그것들을 쌓아놓고, 주워온 것도 쌓아놓고, 그러다 보니 커다란 집이 쓰레기로 가득해졌고, 결국 그 속에서 죽어버린 노인의 서사에는 과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누가 노인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인지... 노인의 죽음은 사고인지, 누군가의 의도인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서서히 파헤쳐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이란 굉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쓰레기가 가득 덮고 있던 그것들, 그 아래 묻힌 것들을 다 꺼낸다면... 얼마나 많은 슬픔과 비밀이 드러날 것인가. 노인이 어떤 마음으로 그것들을 지켰는지, 그 거대한 서사가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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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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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적절할까? ... 동물을 도덕적으로 존중하기 위한 기준은 대체 무엇이어야 할까? 고통을 느끼는 능력일까, 삶의 의지나 지능일까? 똑똑한 동물의 생명권이 지능이 낮은 동물의 생명권보다 더 크고 귀할까? 인간과 다른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고도 중차대한 과제다.                  p.18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다른 모든 생물종보다 우월한 종으로 여기는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수십만 종의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동물을 마치 물건처럼 생산 수단화하고, 생존 기계나 고기 공급원으로 사육한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닭, 소들이 비좁은 우리와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숨긴다. 왜냐하면 보지 않아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며 고통을 가할 권리는 대체 누가 준 것일까. 왜 우리는 반려동물은 귀여워하면서 식탁 위의 고기나 실험실의 동물들에게는 냉담한 것일까. 이렇게 모순된 태도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일까. 


이 책은 동물의 권리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토대에서부터 초기 문화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동물 사육 시설과 도축장, 실험실들을 살쳐 보고 우리가 현재 직면한 난제들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검토한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학문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이든 고인류학이든 동물 생명이 어떤 점에서 인간 생명과 다른지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동뭉 행동학자들은 동물의 인지 능력을 측정한 뒤 인간과 비교하면서 거의 모든 점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유인원의 지능을 윌와 단순 비교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분자 유전학은 우리에게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침팬지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원숭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과학에서건 많은 사람의 통념적 생각에서건 별로 의심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선을 바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같은 대형 유인원들은 얼마나 인간적일까? 저자는 이를 분자 유전학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과학과 철학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동물원의 사육 조건은 여전히 많은 점에서 비판받는다. 물론 동물원장들도 섬세한 관람객들만큼 그런 조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고,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서서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동물원의 비난받을 환경이 아니라 어떤 사육 조건이든 상관없이 동물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내놓는 것이 원칙적으로 합당한 행위인가 하는 것이다.                p.474~475


거의 모든 문화학자가 공통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다. 더 높은 힘에 대한 믿음과 죽음의 두려움은 인간만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자는 제인 구달과 대화를 나누면서 침팬지에게도 낭만적인 사랑, 종교적 감정, 신앙 같은 것이 존재할 지에 대해 질문을 던직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구달이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놀라웠다.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적으로 무언가에 사로잡힌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감정조차 분명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과 오성, 사고력과 판단력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절대적 척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동물을 몸의 노예로 설명하는 철학적 전통은 길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동물의 확정적 차이에 의구심을 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동물도 처음부터 도축되고, 사냥감이 되고, 쫓기고, 독살되고, 귀여움을 받고, 훈련을 받고, 공포를 주거나 경탄의 대상이 되려고 태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의 눈과 분류 체계 안에서만 동물에 대해 정의 내린다. 우리 행성의 생물은 주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분류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 사랑>은 선별된 특정 종에게만 맞추어진 협소한 감정일 뿐이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멸종시키고 먹어 치우고 독살한다. 그렇다면 가슴의 도덕에는 어떤 감정과 동물에 대한 어떤 정서적 이해가 깔려 있을까? 모든 대목들이 공감되고, 이해되고, 감탄스러웠던 책이다. 동물권, 동물 윤리에 대해 다루는 책들을 꽤 읽어 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폭넓게 사유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생물과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적으로 살펴보고, 인간과 동물의 윤리학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고민한다.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지만, 어렵지 않게 너무너무 잘 읽히는 책이었다.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책이 국내에 꽤 많이 출간되어 있는 편인데, 이번에 처음 만났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말 글 잘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저자의 책들을 몇 권 주문했다. 철학을 다루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많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앞으로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무조건 믿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과학책, 철학책, 인문학책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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