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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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에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외친다. "어이, 복사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의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알고 있나? 제레미가 이 책의 서론에서 이미 얘기했다고? 오케이, 좋아. 그런데 나는 복사에너지뿐만 아니라 빛까지도 불연속적인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했어. 이 알갱이를 '광자'라 부르기로 했고 말이야. 분위기 파악했으면 다들 멍하니 서있지만 말고 빨리 가서 물리교과서를 새로 써야지!"                     p.39


양자물리학은 모든 현대 기술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물리학 덕분에 우리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망원경 너머 저 먼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올해는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자역학은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이론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의식과 평행우주에서 자유의지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적 렌즈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과학 이론을 불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레미 해리스는 박사과정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졸업 전에 실리콘밸리로 진출해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 때 양자역학을 주제로 한 논문 여러 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었고, 현재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진행되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식이나 원리 자체를 다루기보다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과 철학적 의미에 관해 탐구한다. 매우 유쾌하고 위트있게 쓰여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양자역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지만, 또 엉뚱하고 황당하고 엄청난 이야기들이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향하게 해주는 것이 양자역학이라면, 저자는 바로 그 방식으로 우리를 양자역학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우리는 다중우주 어딘가에 자신이 속해있다고 느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선택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양자적 사건의 결과였다. '그런 결정을 내린 주체는 분명히 나 자신이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그래서 간간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부심이나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실체가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주체의식'을 스스로에게 심어주기 위해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다.              p.230


사실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도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양자역학은 쉽지 않다. 그래서 100년 가까이 과학자들의 의연이 엇갈리고 있으며,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싸우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이 분야이다. 실제로 양자역학 초창기에 '주류'를 점유한 물리학자들은 "붕괴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말라"거나 "닥치고 계산이나 하라"면서 골치 아픈 문제를 덮어 버렸다. 정작 본인들도 심기가 몹시 불편했지만, 옳은 답만 내놓는 문제투성이 이론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계산된 값이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와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현실적인 해석에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어의 붕괴이론이 양자역학의 확고한 해석으로 자리 잡았고 그 밖의 새로운 해석은 모두 배척되었다. 


누군가가 의문을 표하면 “닥치고 계산이나 해!(Shut up and calculate!)”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던 바로 그 물리학계에 통쾌하게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양자역학을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매우 유쾌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역자가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웃어보긴 난생처음'이라고 했겠는가.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기업가이기 때문에 저자는 물리학계의 권위에 도전해도 크게 피해 볼 것이 없는 입장이다. 그런만큼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보어를 '양자역학의 발전을 저해한 빌런' 취급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범한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설명이 필요한 이론에 대해 간단하지만 귀여운 그림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현대 물리학계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은 양대산맥이라고 할만큼 중요하고, 또 그만큼 내용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어 아주 흥미진진했다. 이제 어디가서 나 양자역학이 뭔지 조금 알아, 라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주 만물의 근원인 양자역학을 이해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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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
나태주 지음 / 니들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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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러분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잠시 실망했더라도, 기죽지 말고 사세요. 살다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꽃을 피우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좋은 세상이 있지 않을까요? 이건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자존감의 문제이지요. 자존감이란 게 뭡니까?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남도 높일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거예요... 자존감이란 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하고 높이는 마음입니다.            p.47


나태주 시인의 글과 칼 라르손의 그림이 만나 아름다운 책이 탄생했다. 자세히 볼수록, 오래 볼수록 더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은 EBS 클래스ⓔ <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을 문장으로 풀어 옮긴 것이다. 20분짜리 연속 강좌 12회분이 고스란히 인생수업 12강으로 재탄생했는데, 각각의 챕터들은 자존감, 결핍, 행복, 터닝포인트, 가족, 성공 등 열두 가지 인생의 주제에 대한 시인만의 답이기도 하다. 시인은 강연의 포커스를 '오늘을 사는 젊은 청춘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맞추었다고 말한다. 힘들고 고단한 나날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것은 젊은 층이든 그렇지 않든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라는 시, '풀꽃'을 쓴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와 짧은 분량으로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읽을 수 있어 시를 잘 모르더라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말투도 시만큼이나 다정해서 노시인이 들려주는 인생의 지혜가 담백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나태주 시인은 시를 통해서 세상 곳곳에 높여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애틋한 사랑에게 안녕을 전하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시인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살포시 가져와 시로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들을 이루고 있는 언어들이, 감정들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혹시 지금 겪는 고난 덕분에 다소 억울하고 화가 나더라도, 조금 더 참고 견디면서 언젠가 이 고난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쥐여 준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는 살아날 확률 10만 분의 1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살아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생에는 이런 반작용도 있다고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꿈꿔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아름다워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우리 옆에 남아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축복이 되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노래와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p.161


우리는 때로 너무 잘하려고만 해서 힘들어지곤 한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도 살면서 필요한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행복이란 가까운 곳, 내 안에 있는 것이며, 사랑이란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 자존감이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높이는 마음이며, 좋은 시는 책이 아닌 인생 속에 있다고 시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쓸쓸해져서야 보이는 풍경이 있고, 버림받은 마음일 때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럴 때 평소에 안 듣던 음악을 찾아 듣고,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사는 건 매번 만만치 않은 일이고, 사랑 역시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절대 없다. 일상이 전쟁처럼 치열하고, 사는 게 매일매일 너무 바쁘지만, 그래도 가끔은 한숨 돌리고 마음의 여유를 좀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스웨덴의 국민 화가 칼 라르손이 그린 많은 작품들은 아내 카린과 함께 손수 꾸민 집과 8명의 아이들의 일상 풍경들을 주로 담고 있다. 마당에서의 대가족 점심 식사, 강가에서의 뱃놀이, 그림 같은 집안에서의 홈 파티, 아내와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 정원에서 뛰노는 풍경, 강아지와 함께 하는 일상 등.. 너무도 따뜻하고 예쁜 풍경들 속에서 행복이 묻어 나온다. 스웨덴의 목가적인 풍경과 소소하고 평범한 가정의 모습들은 우리의 일상과 꽤나 많이 닮았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고 불렸던 칼 라르손의 그림과 소박하고 긍정적인 나태주 시인의 글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그 감동은 배가 된다. 


누구에게나 생은 단 한번이기에 인생은 다 처음 살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도 서툴고, 부모 노릇도, 선생 노릇도, 자식 노릇도 다 그런 것이다. 처음이라서 모두 서툰 것이다. 세상은 서툰 것 투성이고, 서툴다고 잘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내 나이는 나에게 처음인 것이라 서툰 것이 당연하고, 그것을 새로움으로,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인생의 지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의 어떤 시기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빡빡한 일상에 쉼표를 만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고단한 삶을 헤쳐나갈 응원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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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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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관한 당신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결론을 내자면, 오늘날 불평등의 높은 수준에 관해 당신이 언급한 수치는 맞습니다만, 100년 전에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200년 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고요. 그러니까 길게 보면 진보가 이뤄진 것입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진보는 언제나 엄청난 정치적 투쟁과 사회적 운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진보는 계속 이런 식으로 이뤄질 겁니다. 좋은 소식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도 이긴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p.12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왜 부와 권력은 불평등을 허락하는 걸까. 불평등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2024년 5월, 세계적인 두 사상가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경제대학교 교수 토마 피케티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과 교수 마이클 샌델은 각각 <21세기 자본>과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서도 꽤나 친숙한 지식인들이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평등과 불평등, 진보’를 키워드로 열띤 토론을 펼쳤는데, 그것을 편집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피케티는 평등과 불평등 문제에 낙관적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불평등이 있지만, 길게 보면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왔다고 말이다. 샌델은 재분배와 탈상품화에 관한 하나의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불평등이라는 문제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식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피케티와 샌델은 불평등의 세 가지 측면인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늘날 심화된 격차 문제를 짚어내며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한다. 




그래서 학력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끝내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편견입니다. 우리가 다른 형태의 편견들을 떨쳐버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사람들이 학력주의를 생각 없이,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동의 존엄성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재생하는 데 중요한데요,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 곧 문제는 재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불공정만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91


샌델은 사회적, 경제적 삶의 지나친 상품화를 걱정해야 할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지나친 상품화는 돈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사람들이 교육과 의료, 정치적 발언권과 같은 기본재에 접근할 수 없게 차단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판매할 상품으로 여긴다면 그것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이들의 접근권을 저해하고, 그 재화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피케티는 고등 교육 분야의 상품화에 대한 샌델의 말에 동의하며 의견을 보탠다. 20세기에 탈상품화가 작동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교육과 의료 분야라고 말이다.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탈상품화가 잘 작동한 것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일하도록 하는 내적 동기가 금전적 동기나 이윤 동기에 의해 파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은 기부 입학은 왜 문제가 되는가? 능력주의는 어째서 위험한가? 소득과 임금 격차는 어떻게 사회적 격차를 불러오는가? 부자들과 거대 기업의 조세 회피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 정서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진정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등 지금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피케티가 샌델이 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와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고, 샌델이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읽을 때마다 늘 혼란스러웠다고 그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 자체는 매우 짧은 분량이라 부담없이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액기스만 담아낸 것이라 여러 번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불평등 전문가인 정치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한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두 석학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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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 아카넷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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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를 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전염병은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사람을 죽여 왔으며, 인류의 진화를 이끈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다. 바이러스와 상호작용하는 인체 세포 부위에서는 인류가 침팬지와 갈라져 나온 뒤에 발생한 모든 유전자 변이의 30퍼센트를 바이러스가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p.21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난 1만 3,000년 동안의 인류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총, 균, 쇠'를 꼽았다. 왜 인류 역사는 대륙마다 다르게 전개되었는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해 인류 문명을 바꾼 세 가지, 총(군사력), 균(전염병), 쇠(과학기술)로 설명했다. 그런데 총과 쇠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균, 균, 균이다. 


이 책은 '균이 총칼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인 미생물은 단순히 질병, 부패, 죽음을 일으키는 매개체만이 아니다. 실제로 무수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고 여러 문명을 약화시켰지만, 그 폐허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고 번성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 아니 모든 형태의 복잡한 생명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경제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지난 5만 년의 인류사를 살펴본다. 현생인류의 출발인 호모사피엔스 시대부터 종교개혁, 산업혁명, 자본주의의 형성 등을 거쳐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최근까지 역사의 주요 변곡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지구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수많은 미생물에 둘러싸여 있다. 일부는 우리를 돕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른 미생물들은 우리를 해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인류와 전염병 간의 오랜 투쟁이 반드시 비극이나 심지어 익살극으로 끝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쁜 결과를 피하려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인류 멸종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p.343


17세기 초,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렌즈 순서를 바꾸면 아주 작은 사물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미생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하늘의 별과 행성을 관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본격적으로 인간이 미시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뒤였다.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상이자 과학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은 자신이 사고파는 직물의 품질을 검사하기 위해 렌즈를 개발했다. 그리고 우연히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세계의 중요성을 과학자들이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0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가 포도의 발효, 우유의 산패, 육류의 부패 등 다양한 과정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인간은 이미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서식하던 행성에서 진화했다. 해를 끼칠 수 있는 미생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만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인류 진화의 초기에는 여러 종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현재 우리 인류와 같은 종인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면역 체계를 획득했기 때문이니 말이다. 우리 몸은 미세한 생명체로 완전히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체 세포보다 약 40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이 수치의 10배 이상이다. 이러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는다. 함께 진화하며 서로 긴밀하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렇듯 세계에서 가장 미시적인 존재인 균의 관점에서 다시 쓰는 인간의 서사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게다가 이 책은 원서에는 없는 컬러 화보 32컷을 엄선해 수록했는데, 균의 막강한 영향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인류 최초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한 순간에 대한 자료, 알타미라 동굴 벽화, 최초의 농부들이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의 스톤헨지, 고대 도시의 전염병을 그린 미술 작품, 로마의 전염병을 묘사한 그림, 몇 세기에 걸쳐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중세 혹사병으로 인해 국경에 설치한 페스트 장벽, 중세의 지도, 런던의 콜레라와 코로나19에 대한 사진까지 만나볼 수 있다. <사피엔스>, <총균쇠>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이 책도 꼭 만나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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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감각 - 식물을 보고 듣고 만질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들
캐시 윌리스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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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동물을 어루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을까? 이웃집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처럼 거리낌 없이 공원의 나무를 껴안아야 할까? 원예가 나이를 떠나 모든 사람의 건강에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원예 치료는 우울증이나 기억 상실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의 건강 개선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p.163


책상 위에 화분 하나를 놓아두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식물을 바라보면 인지 수행력이 향상되고, 나무를 만지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맨손으로 정원일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이 책은 식물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해준다. 옥스퍼드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자연이 우리 몸에 정말 이롭다는 것을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선구적이고 중요한 연구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과학적으로 밝혀낸다. 무엇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우리의 감각이 자연과 상호작용할 때 우리 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알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창밖을 바라보고 싶은 충동이 있는 것 같다. 창밖에 녹지가 펼쳐져 있다면 더욱 그렇다. 어째서 그런 걸까? 왜 교실이나 업무 공간에서 자연 풍경이 내다보이면 주의가 그리로 쏠릴까? 우리를 잠시나마 지금 여기서 벗어나게 하는 풍경의 힘이 궁금했다. 2016년에 일리노이 대학교 연구진은 교실 창문에서 보이는 풍경이 학생들의 인지 기능과 성취 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로 한다. 그들은 5개 고등학교의 학생 94명을 무작위로 교실 셋 중 하나에 배정한다. 나무가 있는 녹지가 내다보이는 곳, 빈 벽이 내다보이는 곳, 그리고 창문이 아예 없는 곳 세 군데였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주의력과 생리적 스트레스 수준이 비슷했지만, 활동을 마칠 무렵에는 현저한 차이가 나타났다. 창밖으로 자연 풍경과 녹지가 내다보이는 교실의 학생들이 나머지 두 군데의 학생들보다 시험 결과가 훨씬 좋았으며 평가 과정에서 높아진 스트레스 수준도 한층 빨리 떨어졌던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자연 풍경을 볼 때 일어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생물학적 기초 지식부터 시작해 의학과 심리학적 요인을 분석하며 그야말로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해준다. 




집과 온실에 이국적인 식물을 전시하는 취미는 조지 시대와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20세기까지 대유행했다. ‘응접실 야자수’는 많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식 요소로 떠올랐으며 남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다양한 야자수나 양치류, 기타 튼튼한 식물을 총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사람들의 열광은 식물 자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물화가 벽을 장식하고, 아르누보 건축물이나 윌리엄 모리스와 같은 디자이너의 영향으로 벽지, 가구, 패브릭에도 자연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이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p.212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물을 만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아기를 가게에 데려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지고 싶어하는 이유도 인간은 촉각을 통해 학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촉감은 어떨까. 우리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동물을 어루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심리적 안정 효과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휴대전화 원예 게임과 실제 흙을 채운 화분에 식물을 심는 활동을 하게 하고 생리적, 심리적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 심박 변이, 피부 번도도, 체온을 즉정하고 기분 빛 불안 수준을 설문지로 확인해보았다. 그 결과 아이들은 원예 게임보다 실제 식물 놀이를 할 때 생리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었다. 또한 더 편안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불안도 현저히 줄어드는 심리적 안정 효과도 나타났다. 


저자는 그 밖에도 식물을 만지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최신 연구 데이터를 통해 일상에서 녹색 식물을 보고 만지는 일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주고 정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경관의 효과부터 시작해 우리가 식물의 색을 어떻게 감각하고 다양한 색상의 식물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등 우리의 감각 별로 장을 나누어 설명해준다. 자연의 다양한 색채가 우리의 웰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허브나 장미 등 식물의 향이 어떻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지, 새 소리와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지닌 특별한 효과와 식물을 만지고 쓰다듬을 때 우리의 심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 우리의 오감과 식물이 맺는 관계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자연을 실내에 들이는 인테리어가 중세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플랜테리어가 수백 년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기했다. 이 책은 우리를 치유하고 지탱하는 식물의 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조목조목, 탁월하게 정리하고 있다. 덕분에 누구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식물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꾸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초록에 끌리는 과학적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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