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주식해드립니다 - S대 경제·심리 전공 17년 차 감성 투자자의 손실 방지책
이민수(입금완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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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급만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이것은 벽산건설의 아픔으로 얼어붙은 주식에 대한 마음을 녹여낸 내면의 음성이었다. 나의 직장 생활의 시작에 있었던 '그래도 한군데라도 붙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은 잠시뿐이었고, 군대에서 받던 월급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그대로인 앞자리 숫자가 몇 달째 반복되고 나니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기대의 언덕에 올라서 바라본 월급은 한없이 낮아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기대와 실망이 만들어 낸 그 틈 사이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주식이 파고들었다.               p.71


며칠 전에 코스닥 지수가 1000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코스닥 지수가 1000을 넘은 것은 2021년 이후 4년 만의 일로, 코스닥 시장의 신뢰 회복과 활성화를 의미한다. 최근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하며 자금이 중소형주로 이동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하는데, 주식의 가파른 상승세에 투자에 갓 입문하려는 '예비 개미'도 늘고 있다. 그런 초보 투자자, 예비 개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나왔다. 




'불안 개미를 위한 간접 체험형 오답 노트'를 표방하는 이 책은 17년 차 감성 투자자의 눈으로 초보 개미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오랜 시간 블로그에 글을 썼고, 유튜브 '입금완료' 채널을 운영하며 30만 팔로워를 즐겁게 해준 저자는 자신의 험난했던 주식담을 웃프게 풀어낸 영상으로 공감을 받아왔다. 그는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사실 주식을 대하는 심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는 있지만, 손실을 마음대로 입고 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었을 때 심리적 손실이라도 막아내기 위해 긍정 회로를 가동해야 했다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며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다. 자신의 주식 경험과 감상을 통해 누군가는 손실이라는 수업료를 조금 아끼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가 나를 주식 소비자로 불러주었을 때, 나의 손실은 비로소 지나간 소비가 되어 잊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상처 난 계좌에도 사랑이 올까요." 라는 주식 소설을 쓰게 된다면 활용하고 싶은 결말 중 일부이다. 손실이 난 주식 투자를, 그저 비싸고 감가상각이 빠르게 일어나는 피규어를 사봤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는 뜻이다. 주식을 배수하는 상황에서의 나는 투자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소비자처럼 행동했지만, 그 투자의 결과도 소비의 결과처럼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쉽지가 않았다.             p.229


이 책은 사례편, 유형편, 이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수 방법에 대해 정리한 사례편, 개미의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유형편, 그리고 주식 투자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다룬 이별편이다. 우선 1부에서는 직접 매수법, 좋아 매수법, 솔깃 매수법, 적금 매수법과 박쥐 매수법, 물타기 매수법, 복습 매수법 등 다양한 유형으로 정리해 두어 적극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다양한 투자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부에서는 주식 매매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개미의 마음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불안형, 확신형, 감정형, 쇼핑형으로 구분해 불안한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확신에 기반한 자신감이 성공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 각각의 상황에 맞는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엄청난 수익을 약속하거나, 이대로 하면 대박이 난다는 장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가급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방 접종의 차원에서 이 책을 이끌어 나간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직관'에 기반한 투자법들의 사례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월급만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순식간에 돈을 잃고, 마음고생은 덤인 주식 투자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그 이유가 비슷할 거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고, 미리 실패들과 리스크를 파악해 둔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투자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식에 처음 입문한 순간부터 수십만 원의 수익으로 기뻐하던 초보 개미 시절을 거쳐 잘못된 물타기로 수천만 원의 손실을 겪었던 경험까지... 저자가 17년 동안 경험했던 과정을 책 한 권으로 모두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무조건적인 수익을 약속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돈은 잃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초보 개미들과 예비 개미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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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루시 워즐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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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총잡이'나 '큰언니' 등의 환상은 엄마와 언니가 낯설고 무서운 존재로 바뀌는 애거사의 상상이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환상은 애거사의 탐정 소설의 특히 현대적인 어떤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셜록 홈스 소설에서는 범인이 희생자가 직접 아는 사람들의 범위 밖에 있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살인범이 믿었던 가족 가운데 한 명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               p.46


소설을 20억 부나 판 사람이면서 공문서에 직업을 적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주부'라고 적었던 사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늘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관점을 유지하며 평생 평범한 척하며 살았던 사람, 20세기에 여성에게 요구되던 규범을 깨드리고 세계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조용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던 사람,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추리소설 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끊임없이 폄하되고 지속적으로 오해되어온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해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추적한 정밀한 기록이다. 생존 인물들의 인터뷰와 신문 기사, 크리스티 기록보관소, 내밀하게 주고받은 편지까지 끌어모아 애거사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성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이나 전원지대다.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에서는 과도한 폭력, 잔인함, 노골적인 성적 묘사 등이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생활감과 유머,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이웃과의 트러블은 늘상 있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떠드는 가십 거리에 불과하다.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는 하드 보일드나 누아르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이라서, 독자에 따라서는 너무 미지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평온한 일상이 살인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의 위협을 받을 때 독자들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살인과 의문,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 본성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그때가 크리스티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애거사가 어떻게 삶을 흡수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했는지, 어떻게 캐릭터를 빚고, 어떤 배경에서 트릭을 떠올리며, 어떤 순간에 살해 수법을 결정했는지 그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애거사가 지극히 평범한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 방식이 작품의 특성과 성격을 만들었던 것이다. 




애거사는 일단 노트에 메모를 했다. '느닷없이 플롯이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모자 가게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 멋진 아이디어를 노트에 끼적인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그런데 결국 그 노트를 잃어버리고 만다.' 애거사는 또 '욕조에 누워서 사과를 먹고 차를 마시고 주위에 종이와 연필을 늘어놓고' 플롯을 구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p.406


추리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데, 보편적 스토리 구성, 클리셰로 정착된 전개 방식 등 추리소설의 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 중에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크리스티는 참으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썼고, 여러 편의 걸작이 존재한다. 영어권에서만 10억 부가 넘게 팔렸고, 10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상당히 많다. 크리스티는 50여 년간 70여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 희곡, 여행기 등을 집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약 1세기 전의 소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새로운 번역서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비밀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모든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 그러니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비밀스럽고 다층적인 애거사 크리스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저자는 애거사의 소설 속 집이 안전과 반대되는 것을 표상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와 시대적 배경을 짚어보고, 애거사가 소설 속에서 어둡고 불편한 감정을 확고하게 다루게 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떠난 이스탄불과 바그다드까지 소설의 배경을 창조해낸 여행의 순간들과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만든 행방불명 소동의 비밀에 대해서, 그리고 조제실에서 일하며 독약을 연구했던 전시 간호사였던 시절도 들여다본다. 그렇게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여왕의 삶과 세계가 드마라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게다가 책의 외형도 너무 아름다운데, 일반적인 책 판형보다 훨씬 큰 양장본인데다 표지 이미지가 정말 근사해서 굉장히 고급스럽다. 초판 한정으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한 콜렉터스 리스트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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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맨해튼을 걷다! - 애니메이션 속 건축물 현실화 프로젝트
NoMaDoS 지음, 요시카와 나오야 그림, 서희경 옮김 / 소보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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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건축이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영위되고, 그 안에서 다채로운 경험이 창출되는 공간 그 자체다. 따라서 기능을 넘어 감성을 담아야 하는 건축물은 필연적으로 복합성과 정교함을 요구한다. 이처럼 다층적 요구에 정밀하게 부응해야 하기에 건축계획, 구조, 시공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도 깊은 검토 과정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한 사람의 발상이나 감각만으로는 결코 건축물을 완성할 수 없다.               p.98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분홍색과 크림색으로 된 호텔, <아가씨>에서 서양식 건물과 일본식 목조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로 된 대저택, 건축가의 상상력이 곧 세계의 물리법칙으로 구현되는 <인셉션> 등 우리는 종종 스크린 속의 경이로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공간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주제가 되기도 하며, 서사를 진행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단순한 감상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작품의 세계에서는 건축물들에 상상력이 더 극대화된다. 현실로 구현할 수 없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으니 말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걸어 다니는 도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요 배경인 신들이 찾는 온천 여관 등 작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바로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건축물들이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건물들을 통해 재미있고 놀라운 건축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닌텐도 슈퍼 마리오 시리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주술회전>, <원피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총 13편의 만화, 영화, 게임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한 건축물들을 통해 건축의 진정한 매력을 느껴보면 어떨까. 




마치 생명체처럼 발이 달려 걸어 다니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마법사 하울이 친구인 불의 악마 캘시퍼와 함께 사는 이동식 공유 주택이다. '이곳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상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작중에서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성이었지만, 건축계에도 한때 하울의 성처럼, 혹은 훨씬 거대한 건축물이 도시 중심부를 활보하는 모습을 구상한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이러한 발상은 건축의 고정된 형태와 영구성을 해체하려는 급진적인 시도로,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유동적인 도시를 제안했다.               p.180


사실 애니메이션 속 건축물들은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엄청난 상상력으로 구축해낸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그러한 공간 설계 안에, 현실 건축의 영감과 원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냥 단순히 멋진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상의 공간에 숨겨진 실제 건축의 법칙과 아이디어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전문적이고 어려운 내용보다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고,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의 카나메 마도카 저택은 모더니즘 건축의 전형적인 저택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5원칙이 자연스럽게 실현된 것이다. <슈퍼 마리오 시리즈>에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방문하게 되는 쿠파성에 견줄 만큼 독특한 실제 건축물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헌터X헌터>에 등장하는 지상 251층짜리 천공투기장으로 고층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건축사에 남을 큰 논쟁을 일으킨 작품 <주술회전>에 나오는 주술 고등전문학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요새 건축,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이동식 공유 주택을 참조해 건축계에 전율을 일으킨 언빌트 건축의 사례들을 살펴보는 시간도 흥미진진했다. 


가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환상적인 공간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도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판타지의 영역을 넘어, 미래 건축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가능성을 묻고 있는 거라면, 앞으로 미래에 현실로 구현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첨단 기술과 혁신이 만나 이러한 작품 속에서처럼 독창적이고 견고한 건축물의 시대가 펼쳐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 건축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들을 길잡이 삼아 상상의 공간에 숨겨져 있던 현실 건축의 세계를 발견해 나간다면 좋을 것 같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온 건축물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 궁금했다면, 우리가 사랑했던 세계는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그 과정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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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교유서가 시집 4
기혁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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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의미의 자리에 위로와 이해가 놓이는 날이면 귀하게 여긴 자들이 몰려와 읽고 말하고 울었다 한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혼잣말로도 상처 주는 일이 없었다... 한겨울 취객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죽었으나 그것조차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다 한 장씩 찢겨 아무렇게나 뭉쳐진 후 다시 기분의 화로에 던져지곤 했다 오랫동안 그뿐이었다 겨울은 망각의 계절이었다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p.36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다. 소후에 시인의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는 연두색,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는 빨간색, 리사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는 핑크색인데, 기혁 시인의 <소설책>은 하얀색이다. 표지 빛깔에 맞는 컬러로 그라데이션을 준 내지가 특히 예쁜데, 이번에는 오렌지빛깔로 내지를 만들었다. 


시인은 '12.3 내란을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소설보다 더 진짜처럼 버티고 있는 세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를 쓸 순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시집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시집인데 제목이 '소설책'이라 읽기도 전부터 궁금했다. 시집의 제목이 '소설책'인 것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인데, 이 시집에는 더 놀라운 시가 숨어 있다. 시 한편이 무려 32페이지짜리다. 이렇게 긴 시를 만난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시였다. 또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로서의 '소설'에 대한 탐구와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장르에 대한 사색도 담고 있다. 현대시작법, 신파 소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작가주의, 보던 소설 타임스, 문학 연구자, 액자식 구성, 멜로드라마, 독자와 목차, 서평가 등 시의 제목부터 흥미진진한 시집이었다. 




나무로 만든 종이 위에/나무라는 글자를 쓰면 슬프다/소설이 되지 못한 나무가 실패한 문장을 접고/접힌 기억이 모여 종이비행기가 되어 날아갈 때/나무의 고향에선 나무끼리 사랑하고/두 발로 걸어가 연인의 어깨를 감싸고/밤마다 초록색 외계인이 찾아오는 꿈을 꾼다는데/이상하지? 씨앗의 자유로움을 기억할 때 잎새는/주어가 되었다가 푸름을 지닌 결말이 되었다가 아슬아슬한/서술어가 되지              -'비소설' 중에서, p.73


'소설책의 쓰임'이라는 시도 너무 재미있었는데, 각종 받침, 표절 연구, 범죄의 모방과 예방, 촬영용 소품, 1인당 독서량이 시력 감퇴에 미치는 원인, 주고 싶지만 받기 싫은 선물, 대중교통 활성화 등 시인의 번뜩이는 재치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시집은 글보다 여백이 더 많기에 금방 읽어 버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은유와 상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이 시집은 서사를 가지고 있는 소설처럼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시들로 가득해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더딘 편이다. 천천히 곱씹으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아껴 읽고 싶은 시들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페이지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단 몇 줄로 축약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시'라면, 그렇게 함축된 문장과 문장 사이, 쓰여지지 않은 더 많은 말들이 들려오는 것이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시집처럼 말이다. 


다른 맥락에 놓인 문장, 주객이 전도된 상상력, 근거를 잃어가는 소설, 쓰이지 않는 이야기의 결말, 이미지의 비좁은 틈새로 파고드는 텍스트, 소설이 되지 못한 나무... 낱낱의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호흡과 리듬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가슴을 통과해서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 시간이었다. '소설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시는 금이 간 현실을 미화하는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여러번 읽었던 시집이다. 읽을 때마다 달라지는, 읽을 수록 행간에 숨어 있는 진실이 보이는 그런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시집에 소설을 불러들인 이유가 궁금하다면,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시집을 만나보고 싶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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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란 무엇인가?
디르크 회르더 외 지음, 이용일 옮김 / 교유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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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들어오는 이주와 나가는 이주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이러한 이주의 복합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것은 "고국"에서 타국의 "새로운 세계" ─ 많은 신화들이 가정하듯,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진다 ─ 로의 일방적인 이주 경로만을 제시한다. 이주는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의 소수민족 집단촌으로의 이동이나 제약이 있는 구세계에서 무한한 새 기회의 땅으로의 이동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주"라는 개념은 다양한 선택들을 함의하고 있다.             p.30~31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를 가로질렀던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부터 시작해 초기 농경시대의 이주들을 비롯한 선사시대 이후로도 도시화 과정 동안, 상호문화적 접촉과 순환 무역, 식민 정복 사회를 거쳐 19세기에는 이주 체계들이 전 지구적으로 작동했고, 20세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난민 발생, 순혈주의, 강제 노동 이주로 계속 되어 왔다. 


언젠가 미등록 장기체류 이주아동을 다룬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부모의 체류자격 상실, 난민 신청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체류자격이 없는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한다.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30만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니 생각보다 꽤 많은 수이다.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어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에 본인 명의의 핸드폰 개통이 어렵고, 보험 가입이 필요한 수학여행을 가거나 QR 체크인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도 할 수가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교육받을 권리는 갖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아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들도 꽤 많이 읽었는데, '이주'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이 정도였다. 




이동하는 남성과 여성의 관점과 삶들을 진지하게 고려함으로써 인종과 젠더의 중요성과 민족국가들의 상당한 권력이 주목을 끌게 되었고, 학계는 지난 20년간 이러한 각각의 쟁점들을 더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스스로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를 결정할 때 글로벌하게 생각하는 이주민들은 거의 없는 반면, 이주민들 이 맞닥뜨리는 권력을 가진 국가들은 그렇게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 다양한 시점에서 서로 연결된 사회들 또는 국가들을 넘나들며 느슨하게 공유되는 이주 체제들의 일련의 변화를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p.250~251


문학, 영화, 혹은 뉴스를 통해 난민과 이주노동자, 디아스포라 등 '이주'라는 단어는 위기나 갈등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 정도의 개념으로만 생각해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이 책은 인류가 살아온 긴 시간 속에서 인류 역사 전반을 관통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놀라웠다. 이주사 연구의 선구자인 회르더와 하르치의 역작인 이 책은 이주를 특정 시대의 문제나 정책적 대응 대상으로 축소해 온 기존의 시각을 재검토하고, 학제간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사실 '이주사'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우리와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주'란 본래 살던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국가간, 민족별로 움직이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부모님 집에서 본인의 대학으로 이동했거나, 출신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도 모두 이주에 해당하니 말이다. 그렇게 수 세기와 수천 년에 걸친 이주의 형태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주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주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 삶의 본질적 조건이라면, '이동'을 인류 역사의 상수로 놓고 세계사를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흔히 이주민을 ‘뿌리 뽑힌 자’ 혹은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문제적 존재’로 인식해왔다면, 이 책이 그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의 각 단계에서 보이는 이주의 특징과 의미를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구성이라, 역사와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호모 사피엔스부터 21세기 난민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내는 역사 이야기가 이주사에 대한 입문서로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사회학적이고 인류학적으로 이주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역사 속 이주라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현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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