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 (365 일력 에디션)
케이크 팀 지음 / 케이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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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주어인 문장의 힘>을 필사책으로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365 일력 에디션으로 돌아왔다. '내가 주어인 문장'이라는 제목처럼 이 일력은 '나'를 주어로 한 문장을 매일 만날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365일 동안 '나'를 주어로 한 긍정 확언과 시대를 초월한 명언을 함께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나는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나치게 과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등 자신을 긍정하고 격려하는 문장들이 한국어, 영어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일력은 명언의 주어를 나로 바꾼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를 주어로 한 긍정적인 문장, 즉 '확언'은 우리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 읽어도 좋고,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다. 매일의 작은 습관이 자존감을 높여주고,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만년일력으로 제작되어 연도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어 더 좋다. 책상 위 달력처럼 매일 한 장씩 넘기며, 일상 속 루틴으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나'를 주어로 하는 긍정 확언이 한국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고, 하단에 명사들의 지혜를 담은 명언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한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말을 메모하거나, 긍정 확언을 필사해볼 수 있도록 빈 공간도 충분히 있는 일력이라 매일 한 문장씩 직접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어를 나로 바꾸어 필사하는 것은 위인들의 지혜를 내 삶에 직접 적용하며, 내가 쓰는 대로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매일 한 장씩 일력을 넘겨 가며 긍정의 메시지로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도 좋고, 에너지도 더 생길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핑계 대지 않는다, 나는 나로 살아갈 때 가장 빛난다, 나는 비판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나는 나의 잠재력을 믿고 어떤 도전이든 이겨 낸다 등 한 장씩 넘기며 오늘의 문장을 읽다 보면 내 기분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만 같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서 만들어 내는 나의 특별한 1년을 위해, 꼭 필요한 일력이 아닌가 싶다. 


새해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이 일력과 함께 매일 1%씩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나만의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매일 달라지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일력의 장점이다. 해마다 두고 볼 수 있는 만년일력이라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일력이다. 365일 동안 매일 새로운 지혜를 만나며 긍정 확언을 되새기는 시간을 통해 작년보다 더 주도적인 삶을 사는 한해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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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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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루나도 이 생각 때문에 괴로울까? 아니면 루나는 이런 일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는 데 능숙한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파커는 함정에 빠졌다.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에 갇힌 두 마리의 쥐 같았다. 서로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상대의 비밀을 누설하면… 결국 둘 다 망가지게 될 테니까.          p.75


니콜라는 자신과 아들 파커의 유대 관계가 특별하다고 항상 확신했다.  친밀감과 이해가 있다고 믿을 만큼 가까운 모자 관계였으니 말이다. 어릴 때부터 파커는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 뭐든 하는 걸 좋아했고, 엄마를 챙기는 마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하지만 파커가 루나와 결혼한 뒤로는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졌다. 결혼한 지 9년 동안 그들의 집에 들른 횟수는 겨우 두 자릿수가 될까 말까였고, 아들 집에 초대받은 횟수는 더 적었다. 루나는 부유한 부모 덕에 풍족하게 자란 딸이었고, 파커와 결혼한다는 것부터 탐탁치 안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콜라는 가끔 손자인 바니를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파커와 루나 부부가 파티장에 가기 위해 바니를 맡기러 왔다. 파커는 돌아가면서 단둘이 할 말이 있다며, 내일 오전에 들르겠다고 말을 한다. 


그날 새벽, 경찰이 니콜라와 칼을 찾아온다. 파커와 루나가 교통사고를 당해 위중한 상태라는 거였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파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니콜라는 엉망진창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일 리 없어. 그럴 리 없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당분간 바니는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사로부터 집 열쇠를 받아 가려는데, 정신이 든 파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거기... 가지...마세요."라고. 하지만 니콜라는 바니의 장난감과 옷들을 챙기러 파커의 집에 가고, 그 집이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는 사실과 파커와 루나가 각 방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은 왜 이모든 사실을 자신에게 숨겼던 걸까. 짐을 챙겨 나오려다 이웃들이 쓰레기봉투를 내놓은 걸 보고 쓰레기를 버려주려다가 자신이 주었던 사진이 버려져 담겨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쓰레기 봉투를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루나의 물건들과 함께 봉투에 담긴 사각 스카프가 나온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스카프 같았다. 최근에 계속 보도 되었던 살인 사건의 증거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스카프가 아들의 집에 있었던 걸까? 




그땐 삶이 참 단순했다. 나는 파커를 그 애 자신보다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 파커는 자기 삶에 우리를 들이지 않았고, 어쩌다가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준 것들은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신중하게 고른 것들이었다. 파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가지고 놀았고 내가 전부 다 괜찮다고 믿게끔 했다.

그런데 이제, 지금껏 파커가 내게 둘러댄 모든 것들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289


니콜라와 파커는 언제나 끈끈한 관계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자신의 아들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믿지만, 대체 왜 경찰이 찾는 스카프가 아들의 집에 있었던 것일까. 왜 파커는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집에 가지 말라고 경고를 했던 걸까. 니콜라가 자신을 질식시키려고 위협하는 수많은 감정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병원에서 파커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이 온다. 니콜라는 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파커를 만나고, 파커는 스카프를 당장 버리라고, 누라가 자신을 망가뜨릴 거라는 말을 남긴다. 루나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까. 파커는 왜 스카프를 당장 버리라고 했을까. 니콜라는 파커가 끔찍한 범죄에 연루되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엄마와 책임감 있는 시민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과연 니콜라는 불쌍한 젊은 여자의 목숨을 빼앗아 간 의문투성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증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숨가쁘게 교차 진행된다. 파커와 루나 부부, 그들의 부모인 니콜라와 마리,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시점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진다. 루나는 발견된 스카프를 증거로 남편을 경찰에 신고하고, 마리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사위와 그 집안을 정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니콜라는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일 리 없다는 믿음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파커가 부모와 거리를 두고 숨기려고 했던 게 뭔지,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가 심했던 루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탄탄한 복선과 숨 가쁜 전개,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치지 않는 서스펜스와 반전까지 극강의 롤러 코스터같은 작품이었다. 심리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를 많이 읽어온 독자들은 스토리가 중반쯤 이르면 대부분 결말에 대해 눈치를 채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중 시점 구조를 영리하게 활용해 거의 후반부에 도달할 때까지 진상을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단 한 페이지도 건너뛸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하는 심리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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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처형의 역사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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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고안된 고문 및 처형 기구의 자세한 디테일과 함께 전설로 전해지는 기구까지 총망라한 책이다. 고문이나 처형 자체보다는 고문 및 처형 기구의 세부적인 내용을 소개하고자 자료를 모으고 집필했다. 


이러한 것들은 주로 사극이나 시대극을 통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종류가 많다니 새삼 인간의 잔악함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이러한 기구들은 엄청난 고통을 오랫동안 지속시키며 쉽게 죽지 않게 한다는 특징이 있기에,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이 책은 고대 세계부터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의 고문 기구 및 처형 방법을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방법만 104가지에 달한다. 각각의 자세한 디테일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개골 분쇄기, 장화 고문, 스페인 장화, 프레스 야드, 리사의 철관, 고뇌의 배, 고양이 채찍, 심문 의자, 마녀의 거미, 팔라리스의 황소, 터커 전화기 등 이름만으로 쉽게 그 방법을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구들이 수록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각각의 기구가 개발된 경위와 역사적 배경지식에 대해 상세하게 해설하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림을 통해 기구의 사용 방법과 목적, 희생자에 미친 효과를 수록했다. 다양한 나라의 고문과 처형 기구를 다루고 있어, 기구와 각 문화와의 연관성도 엿볼 수 있다. 


이미지만으로 상상이 되는 부분이 있어 그림 자체는 끔찍하지만, 왼쪽 페이지의 해설을 읽으면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울 것이다. 




정교한 구조와 아름다운 장식적 요소로 오늘날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기구도 있었고, 언뜻 보면 짚단이나 삶기 전의 라면처럼 보이기도 한 삼끈 100가닥 정도를 묶어서 만든 호화로운 기구도 있었다. 동물이나 곤충을 이용한 형벌도 있었고, 술꾼에 대한 처벌로 사용된 주정뱅이의 망토라는 것도 있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 잔인한 처형 기구들은 시대별로 당시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인상깊게 읽었다.


편안한 기분으로 술술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창작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로서는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영화를 만드는 경우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소재로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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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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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엄마. 저도 한때는 지식이 모든 걸 명료하게 해줄 거라 믿을 만큼 어리석었죠. 그러나 어떤 것들은 겹겹의 통사론과 의미론 뒤에, 세월과 시간 뒤에, 잊히고 구출되고 조명되는 이름들 뒤에 덮여 있어, 단순히 상처가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는 그걸 드러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 말은, 가끔 저도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p.92~93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가닿기 위해. 비록 한 단어 한 단어 쓸 때마다 엄마가 계신 곳에서 멀어질지라도. 왜냐하면 나는 영어를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영어로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가닿지 못할 고백들, 전해질 수 없는 말들,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에는 가난한 아시아계 소년으로서의 성장기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만든 한 소년과의 만남 등 엄마가 알 수 없었던 많은 시간들이 담겨 있다. 


할머니는 전쟁통에서 성노동자로 일하며 딸을 키웠고, 현재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하지만 가끔씩 정신이 돌아올 때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리고 '리틀독'이라는 별명으로 나를 불렀다. "자, 이번 이야기는 말야, 리틀독. 널 정말이지 멀리로 데려가줄 게다. 준비됐니?" 할머니의 어휘로 만들어져 나의 상상력으로 움직이는 영화가 펼쳐진다. 어쩌면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이런 할머니와의 시간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열일곱 살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네일숍에서 일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었기에 자주 폭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 폭력 조차 자신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라고 믿었다. 엄마는 아들이 영어를 배우고 강해지기를 바랬다. 그 기대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해내지 못한 많은 일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삼대에 걸친 가족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는 고통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소년은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그곳은 아름다운 나라'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상처 입은 것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마치 제가 아직 소유해본 적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약속받은 듯 이끌렸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면, 그로부터 결국 하나의 신을 만들어낸대요. 하지만 엄마, 만일 제가 늘 원했던 전부가 저의 삶이었다면요? 저는 다시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무언가가 우리가 그것들을 아름답게 여겨왔다는 이유로 사냥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p.318


시적인 문장들로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를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던 <기쁨의 황제>를 쓴 오션 브엉의 첫 소설이다. 국내에는 2019년에 소개되었었지만, 이번에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이 작품은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성소수자인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민자 가족들이 대부분 그렇듯, 부모는 영어를 잘 못하고, 아들은 영어로 글을 쓰고 말하며 살아 간다. 이 작품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인 것도 그 이유에서다. 폭력이 일상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들려주며, 베트남 전쟁으로 얼룩진 가족의 역사 등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 '엄마가 이 글을 읽을 일이 없다는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몇 대에 걸려 대물림된 전쟁의 트라우마와 비극적인 가정사, 폭력 또한 궁극적으로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고백은 섬세하고, 시적인 언어들로 서술된다. 이야기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것, 글쓰기가 결코 견뎌낼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슴 아프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특히나 문장이 너무 좋았다. 꼭 밑줄 그을 펜을 준비하고 읽어 보기를 권한다. 작가이자 뮤지션인 김목인이 번역을 했는데, 옮긴이의 말에서 그의 시를 함께 읽는다면 이 작품을 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의 첫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도 이미 출간이 되어 있어서 바로 주문했다. 게다가 번역이 안톤 허라서 더 기대가 된다. 오션 브엉의 <시간은 어머니>라는 시집도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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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와이프
어설라 패럿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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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때 결혼했던 여자가 모두 전처는 아냐. 한때 누구의 아내였는지를 아는 것보다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 여행을 가거나 교향곡 연주회에 가는 걸 좋아하는지 따위를 아는 게 더 중요한 여자들이 있어. 그런 여자들은 전처가 아니지.'

그녀가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넌 전처야, 팻. 너를 떠난 남자와 한때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너에 대 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고…… 다른 모든 걸 설명하니까."            p.14~15


1929년 출간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당시 <위대한 개츠비>보다 네 배 이상 판매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화제였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어설라 패럿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함께 1920년대 재즈 시대를 그려낸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어설라 패럿은 실제로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이혼녀>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전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대화로 흥미로운 서두를 보여준다. 한때 결혼했던 여자가 모두 전처는 아니라고, 누구의 아내였는지를 아는 것보다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 여행을 가거나 교향곡 연주회에 가는 걸 좋아하는지 따위를 아는 게 더 중요한 여자들은 '전처'가 아니라는 거다. 당시의 여성들은 누군가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대부분의 것들을 설명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혼 후 '다시 사랑에 빠졌거나 더 이상 남편을 생각조차 안 한다면 전처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의 독립적인 삶의 즐거움에 대해,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대어 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인 한 존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거다.  결혼식 때 약속한 ‘영원한 사랑’과 ‘절대 순결’을 내던져버리고 “남자들처럼 모험을 위해, 순간적인 즐거움을 위해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니... 이 작품이 발표 당시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타오르는 성냥불에 비친 그의 얼굴은 냉정해 보였다. 내가 알던 소년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패트리샤, 당신은 나를 당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로 생각하겠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기 인생을 망치지. 아마도.'

"음. 당신이 내게 준 상처가 너무 컸어. 하지만 많은 걸 가르쳐주기도 했지."              p.228


패트리샤와 피터에게 아기가 생겼을 당시, 그들의 나이는 스물두 살, 스물한 살이었다. 피터는 아기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지 걱정하거나, 아내가 얼마나 망가질지, 다시 예뻐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며 무척 불안해했다. 패트리샤는 아기에게 푹 빠졌지만, 어느 순간 의욕을 상실한 듯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친정집에서 아기와 3개월을 보낸 뒤 다시 뉴욕으로 올라왔지만, 이틀 만에 아기가 죽는다. 피터는 패트리샤가 아기 때문에 너무 많이 운다며 짜증스러워 했고, 패트리샤는 피터가 아기 때문에 전혀 슬퍼하지 않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3년 동안 서로를 사랑했고, 4년 차의 절반 동안 서로를 미워했고, 결국 이혼한다. 두 사람은 어릴 때 결혼했고, 둘 다 직장을 다니면서 술과 담배, 댄스파티, 쇼핑을 즐기며 살았지만, 아기를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남편의 외도 등 여러 가지 일들로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패트리샤는 이혼 후에도 여전히 젊고 예뻤으며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았다. 그렇게 이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여성, ‘엑스와이프’의 삶이 펼쳐진다. 


이 작품은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동시대의 작가이기에 그들은 그릴수 없었던, 오직 여성 작가이기에 가능했던 '현대 여성'의 시점을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파탄 난 결혼, 낙태, 원나잇 스탠드 등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었을 것이다. 직업적으로, 결제적으로, 낭만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굉장히 현대적이라 놀라웠다.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과 ‘절대 순결’을 내던져버린 여성의 해방을 경쾌하게 그려내는 서사 자체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피츠제럴드의 시선을 여성의 관점으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라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말처럼 색다른 고전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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