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탐구 생활
이다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나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몰라? 나 정도면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인데, 그걸 꼭 연구씩이나 해야 아나? 싶었다. 순간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이미 겪어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완전함에서 누가 몇 조각을 뺏어가 불완전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영포티스러움을 넘어 어린이성/어린이다움/어린이스러움 까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깐 과열된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찬물을/아아를 주입한다. 정신차려, 어른이랍시고 주제넘다. 알고 있다는 착각 대신 주제넘게 굴지말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었다.  

유행했던 말들 중에 '*린이'라는 표현이 거북했다. 유행하는 말들이 으레 그렇듯 또 그때는 그 표현이 가장 찰떡같이 붙어 대체할만한 다른 말이 마땅히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초보/신입이라는 말을 굳이굳이 붙여서 피해다닐 정신은 남아있었다. 그 말이 왜 거북했냐면 카페나 음식점 같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마저도 성인이용자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해 노키즈존을 해도되네 마네 하는 말들로 피곤했던 상황과 겹쳐, 생활 공간에서 아이/어린이를 몰아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을 이해받고 싶은 욕망에는 어린이를 끌어다붙이는 어른의 이기심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로 시작했으면 한거고, 지가 못하면 지 실력이 부족한거지 뭘 거기다 어린이를 가져다붙인담. 

그리하여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 것은 가졌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대해 깨부수는 깨달음의 과정이자, 내 마음과 추억의 방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는건 재밌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잊힌 부분도 많고, 과거에 대한 미화와 추억 보정으로 인해 공정치 못한 기억들만 남았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이불을 걷어차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만큼 수치스러운 기억만 갑자기 생각나던데, 일부러 추억을 떠올리면 꼭 나만한 어린이/청소년도 없었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라떼' 얘기를 할 때면 꼭 묻지도 않은 제 자랑을 늘어놓나보다. 

주인공인 '이다'의 이야기를 읽다가 벼락같이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가 어른에게 혼이 나서 난데없이 억울했던 어떤 날, 같이 있던 친구가 너는 무슨 다리를 그렇게 벌리고 앉아있냐며 이상한 듯 거북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던 묘한 순간의 기억(55)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치마도 아니고 바지를 입고 있는데 왜 그러지? 뭐 어때?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 까지 묻어두었던 언젠가가 불러오기 한 것처럼 기억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넓게 벌린 것도 아닌데 여자가 다리를 모으지 않고 앉았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과 불편한 기분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찜찜했다. 

읽으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이라 놀라웠던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꿈(72)'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9세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니, 정말 성은 본능의 영역이란 말인가? 궁금하면서 내심 당황스럽기도 했다. 더불어 이렇게까지 솔직한 내용을 담아두다니 당시 부반장이었던 친구가 만약 어린이 이다와 동창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책을 읽다 놀라는 것은 아닐까 혼자 대리 수치를 고민했다. 나만 놀라고 민망하고 부산한 와중에 저자는 이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반장'이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결국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덮으며 10계명(102)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어린이를 위한 어떤 존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함부로 신체를 만지지 않을 것, 외모에 대한 언급, 칭찬도 하지 않을 것, 반말을 하지 않을 것,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작가가 꼽은 다섯개의 조항(66)들도 다 괜찮았는데 그 중 몇 살이냐는 질문은 예상 외였다. 특히 어린 나이 대 중에는 습관적으로 저는 몇살이고요, 저는 몇학년이에요. 하는 소개가 나오는 어린이들도 많아 예민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대화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린이었던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 펼쳐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 종종 책을 읽다 멈출만큼 좋았는데,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다면 어떨까?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을까? 예전의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들은 생각도 행동도 생활도 너무나 달라보인다. 요즘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이 노력도 '어르신들은 옛날에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선조들의 뗀석기 간석기 진화를 존중하듯 멀리 떨어진 거리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어린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린이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뭘 좋아하고, 어떨 때 싫고, 어떤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싶은지 이해가 부족했다. 

나 어릴 적엔 어땠더라 추억도 떠올려보고 요즘 애들은 어떻지 가벼운 관심으로 시작했는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앞에 두고 생각할수혹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보편의 규정과 편의를 당연시하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이 되었다. 미성숙이 받는 배려와 편의는 챙기고 싶고 미숙함과 차이점은 배척하고 싶어하는 못난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이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특히 어른에게 자극과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움으로 연결된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의 이상한 중독성‘, 우리의 새로운 길티플래져 <너의 나쁜 무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여기에 있어 창비청소년문학 146
전성현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삶이라는 건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일의 연속인 모양이었다. 52 아직 여기에 있어" 

소설집 '아직 여기에 있어'는 독특하다. 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종이로 이루어진 책으로 나와있다는 사실이 마치 오파츠*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 '스페이스 크랙'처럼 다른 세상과의 틈에서 끌어온 듯한 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을 댈 수 없는 홀로그램이나 오래된 신기루를 통해서 들여다봤어야 맞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불안정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른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환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이어진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질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언젠가 식물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나 그 줄기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이 울렁였던 것은 '나무의 시간'을 읽는 동안이었는데, 울창한 식물과 그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인간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경외 역시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식물들도 화학신호와 뿌리, 미생물 등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받은 듯 했다.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모여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하늘을 보면 서로의 가지와 잎이 옆 나무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빛과 바람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거리를 둔다던 '수관기피'현상도 떠올랐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 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물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담긴 감정 키트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엘은 한 달 전부터 사랑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슬픔과 절망을 장기 구독해 국가 보건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123 감정 구독자"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단편은 '감정 구독자'였다. 들어가보고 싶다,기 보다는 감정을 구독한다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가장 많이 신청된 감정은 뭘까, 한가지 감정만을 골라 오래도록 구독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뭘까, 구독하는 감정마다 값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감정이 비쌀 때 사람들은 그 대체로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모두가 감정을 구독해야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무슨 감정을 접하게 해줄까, 어떤 감정도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깊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직은 덮어두고 싶었던 단편도 있었다. '이별 박물관'이 그랬는데, 실제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어 읽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여기에 있어'를 읽는 동안 오래도록 마음 속에 품어온 미래를 조심스럽게 펼쳐내보인 듯한 섬세함이 엿보였다. 이 상상력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짝 비틀어 바라보고 싶다면 '아직 여기에 있어'를 추천한다.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 s'를 약칭하여 '시대를 벗어난 유물들'을 의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랑, 파도 트리플 35
이서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주인공은 아주 오래 전에 먼 미래의 지구를 구했던 영웅이었다. 근 30년만에 스크린에서 마주한 그는 중년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군인으로 살아오면서 마주한 수많은 죽음을 두고 그는 질문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죽음의 대상은 나일수도 있고 내 옆의 누군가일수도 있다. 죽고 사는 일은 우연에 가까운 순간에 좌우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아남은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선을 넘은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죄책감, 그리움, 신을 흉내 내는 놀이 같은 불온하고 불경한 경계를 그려내는 '방랑, 파도' 역시 비슷한 질문을 한다.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으며, 확고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생에 대하여 기꺼이 바다에, 땅 위에, 하늘의 이 편과 저 편으로 선을 그어가며 생과 몰의 간극을 가늠한다.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진 인연과 갚지 못한 해원, 사는 것처럼 묶여있고 자유로운 것처럼 죽은 사람들이 오래된 마을에 얽혀있다. 

" 나는 묻고 싶었다. 종종 굽어살피시는지. 이곳을, 이 어둑한 곳을. 그러나 거대한 존재는 내 슬픔을 주워주지 않는다. 거둬 가주지도 않는다. 보살펴주지도 않는다. 슬픔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51" 

세 이야기가 마치 순서가 흐트러진 한 이야기나 다름없이 얽혀있었다. 담요 위에 늘어놓은 패를 이리저리 섞어 세 몫으로 나눠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 달리보이기도 하고, 끊어진 것 같았던 흔적이 이어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백이나 반이나, 혹은 지애나 지환이나, 향자나 미자나, 혜란이나 소녀나, 최씨나 최형원이나 모두가 그 위에서 섞였다 짝이 되었다 다시 흩어져나가는 화투패처럼 알 수 없는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한 판 놀려졌다. 어떨 때는 서로 묶여 점수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맞지 않아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뜻밖에 어그러져 그대로 묶인 채 멈춰있기도 하면서.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배워도 모를 규칙 앞에서 이렇게 뒤집힌 내 패도 언젠가 날 수 있을지 자꾸만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판이 어떻게 끝이 날지 숨죽이며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 불행한 사람은 불행으로 인해 고통받고, 불행한 사람이라는 사실로 인해 한 번 더 고통받는다. 불행한 사람이라는 낙인은 고약한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가지각색의 이유로 각자 불행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신의 불행을 능숙하고 훌륭하게 감추는 요령을 고요히 단련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고백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으며 고급 도자기처럼 집 안에 고이 모셔두고 아주 정성스럽게 갈고 닦는다. 누군가 이걸 알아채거나 눈치채지 않도록 비밀스럽고 신중하고 교묘하게. 106" 

한 동네 안에서 어느 집 사정이 어떤지 들여다보듯 알고 지내던 시절부터 오래도록 자라왔던 탓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듯 해도 다 알고, 소문이 비밀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 갑갑하고 싫었던 때가 있었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산다는 것도 그것과 비슷해보였다. 요즘은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내 집에 어떤 불행을 도자기처럼 모셔두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두지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자유롭고 편하냐고 하면 그보다는 어딘지 섭섭하고 심심한 마음이 더 잦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모르는 불행과 아무도 관심없는 낙인 마저도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단절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우리 생은 서로가 얽혀 한 판 위에서 이리저리 섞여 패가 맞듯 부딪혀가며 싸우고 놀아야 그제야 점수도 나는 것 같다. 문구점 노인의 부인에게서 향자에게 그리고 소녀에게로 전해지는 이 놀이는 이렇게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방랑, 파도'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점은, 방금 스스로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나갈 수 없게 되는, 점차 과거의 기억만 남기고 가까운 것들은 잊어버리는, 평생 사방이 물인 곳에서 한번 물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했던 것을 후회로 남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가는, 소중히 하던 것을 기꺼이 '너 가져라'하고 내주어도 괜찮을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부는 바람에 긴 치마폭이 흔들리는 것, 구름이 바다 위를 지나가는 것, 해초가 비밀스럽게 흔들리는 것, 모래가 바닷물에 적셔드는 것, 우리가 늙어가는 것. 99"처럼 자연의 여상한 흐름 안에서 당연한 이치에 따라 늙어가고 또 죽는 일을 자연스럽게 상상해보게 만든다.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릴 흔드는 파도 같기도 하구나, 위를 타고 휩쓸리면서 사는구나.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서 생을 지나보낸다는 것이 이럴 수도 있구나, 이 이야기를 위해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된다(163)'는 것을 그토록 오래 속으로 쌓아왔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짧지만 삶에 대한 울림을 남기는 깊이 있는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누군가가, 심지어 내가 나를 믿기 전부터,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그 누군가가 그저 내 엄마일지라도. 74" 

언젠가부터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 느껴지는 것들은 시작하기 어려워졌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그런 씁쓰레한 느낌을 오히려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해진 불행을 향해 가는 듯한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져 괴로웠다. 우리의 오귀스트에게 쌓여가는 약간의 불운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황망한 생의 종착점 같은 것들이 미묘했다. 어쩐지 '오라질, 운수가 좋더라니'*하던 나쁜 결말의 암시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이어지는 에바의 이야기를 볼 때도 자꾸만 머뭇거리던 그 망설임이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될까봐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도 에바의 삶은 그만의 궤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오귀스트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 에바의 삶이 쓰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낮의 불운' 안에서의 모든 주인공들은 서로의 궤적이 아주 잠시 겹치거나 때로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렇게 한알씩 꿰어지는 구슬처럼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줍다보면 내 주변의 사람들도 좀 더 이해하고 싶어진다. 내가 보고 있던 상대방의 단면을 통해 내렸던 판단과 단절이 아쉽고, 타인의 내면에 담겨 있을 깊은 우주를 기대하고 궁금해지게 만든다. 사람에 대한 이해하고 싶어지는 마음, 새삼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를 읽고 보고 쓰고 그려내는 이유가 아니었던가 깨닫게 된다. 

" 라셸은 우리 안에 거하는 악이 개인적이면서도 일반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떤 이들이 원래부터 능숙한 고문관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녀는 이 남자가 괴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순간도 의심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도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91"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래의 남자와 철조망 소녀'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반짝이지 않는 크리스마스트리 꼬마전구(46)'같은 소녀이지만,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를 끌어안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야기 안에서 소녀는 두 사람 몫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는 경쾌함이 마음에 들었다. 살의를 멈추고 목숨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도도 없었지만 그저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 순간 가장 반짝이는 빛이 되지 않았던가.  

'타는 듯한 수치심을 일찌감치 배워야했던(139)' 젤리의 그 날, 잊을 수 없는, 처음 택시를 탔던 날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불행한 결말이 정해져있는 것처럼 암시를 하는 전개를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했는데, 젤리의 이야기는 올랭프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던 사람 중 한명이 된 것처럼 그 갑작스러운 동요, 차가운 당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충격을 받았다. 차라리 미리 알았더라면, 하고 바랄만큼. 

" 나는 젤리를 믿는다. 차 안에는 플라스틱 나부랭이들, 아기 카 시트, 뜯어보지도 않은 우편물이 있고 조수석 바닥에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들이 나뒹군다. 빈 캔과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가 글로브박스 안에 있고, 트렁크 안에는 파란색 크라프트지에 싸인 정체불명의 생일 선물이 있다. 그리고 젤리의 마음은, 왜 아니겠는가, 언제나 파란색 크라프트지에 싸인 그 미지의 생일 선물과 비슷할 것이다. 소중하고 헤아릴 수 없는 그 무엇, 그렇지만 망가지지 않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그 무엇과. 156" 

하지만 이 비정한 불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래 깔려있는 작은 다행을 더듬어보게 만든다. 한 사람의 온 생을 관통하는 할퀴어 불거진 끔찍한 상처를 들이밀면서, 친하지도 않은 친구의 생일 파티에 어린 동생까지 떠맡겨 오게 된 변수를 두고, 동시에 이것이 삶이고 어떠한 벌이나 유감 때문이 아니라 때로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이 일어나는 일임을 이해하게 한다. 베로니크 오발데가 탁월한 이야기꾼임을, '한낮의 불운'이 짧지만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은 전보다 소설을 적게 읽게 되었는데, 도파민과 짧은 영상에 중독되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손바닥 안의 화면을 들여다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면, 보고 싶고 기대되는 뭔가를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면, 우리가 바라고 기다려왔을지도 모르는 삶의 이야기를 '한낮의 불운' 안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