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이름으로 (라울 뒤피 에디션) - 꽃과 함께 떠나는 지적이고 황홀한 여행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라울 뒤피 그림, 위효정 옮김, 이소영 해설 / 문예출판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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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을 가려둔 블라인드를 걷어 바깥의 푸르름을 바라보며 '봄의 이름으로'를 읽었다. 한참을 책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함께 공유하지 못해 안타까울 정도로 계절은 푸르르다. 빗방울이 떨어져 한층 짙어진 녹음 사이로 바쁘게 오가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을 좇다보면 페이지가 멈춰진 채로 시간이 오래도 지났다. 라울 뒤피의 그림과 함께하는 '봄의 이름으로'의 아름다운 표지 그 자체가 서재 책장에 놓여져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었는데, 그보다 더 자연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도록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콜레르의 문장 안에서 꽃은 그가 그리는 관념으로 피어난다. 어떨 때는 이름만 같은 다른 꽃을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라일락이 우리 침실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무례하게 청산가리 냄새를 풍기는 연인이 된다? (66)" 특히 향과 라일락에 대한 표현은 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멈추게 만드는 라일락 향에 대한 평이 너무 잔인하다. '자투리(104)'의 내용에선 한국인의 나물 사랑에 대해 알았더라면 얼마나 놀랐을까,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맛있는 쓰레기통'의 "무청을 무와 함께 생으로 씹어 먹기(105)"는 좀 잘못된 시도였던게 맞긴하다. 

 그동안 팬지를 너무나 과소평가 했던 것은 아니었나, '파우스트(54)' 검은 팬지의 장을 읽으며 생각했다. 비교적 흔한 꽃인 팬지는 작고 노란꽃의 모양이나 색감이 나비같기도 하고, 안에서 밖으로 퍼지는 무늬가 야생동물의 얼굴을 닮은 듯한 귀여운 꽃이지만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질 듯한 꽃잎의 아름다움도 인정하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는데, 팬지에 대해 찾아보다 식용꽃으로 자주 사용되는 종이라 그 이미지 때문이었던 듯 하다. 책에 나오는 검은 팬지는 처음 들어보기에 찾아봤더니 색이 다양하고 화려한 팬지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굉장히 인상적인 화려함으로 돋보이는 꽃이었다. "오! 이 벨벳!" 

 책을 읽는 동안 낯선 꽃들의 이름을 찾아보느라 읽는 동안 바빴다. 몇 해 전부터 자꾸만 식물과 새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누구는 이런 변화가 나이듦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볼수록 아름답고 경이로워 그 전에는 왜 자연에 무심했을까 싶게 좋고 귀해진다. 그러니 그동안 몰랐던 식물과 자연에 대한 책이 보이면 항상 반갑고, 궁금해진다. '봄의 이름으로'를 읽으며 정원과 들판으로 늘 자연과 가까이하며 지냈던 콜레트의 환경이 이런 독특한 에세이를 탄생시킨 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면 부러워다. 그는 이 모든 식물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박완서 작가가 이름 모를 꽃이란 것은 없다며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키워낼만큼의 책임이 없기에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아, 사랑한다는 것에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꽃에 대한 에세이를 앞에 두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곱씹다니. 마침 유투브에서 찾아낸 '아침 봄 재즈' 플레이 리스트도 마음에 들던 비오는 날에,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울 뒤피의 흐드러지는 꽃들을 함께 감상하며 콜레트가 전하는 꽃다발을 가슴으로 안아보자.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여름의 푸르름 속에 향기보다 오래도록 남는 감성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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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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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의 책'은 책과 그 책 안의 정원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냈다. 어느 책에 대해 줄이고 줄여 건조하게 소개하다가도, 그 안에 정원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갑자기 참견하길 좋아하는 이웃처럼 돌변해 땅은 몇 평에 뭐를 어디에 심었고 비료는 뭘 주고 물은 며칠에 한번씩 주는지 캐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여러분 이 작품을 아시나요? 이 작품은 이런 인물이 나오는 저런 내용인데, 그것보다는 거기에 나오는 아무개라는 인물네 집에 정원이 있습니다. 하고 갑자기 관찰자의 시선을 화면의 중앙에서 바깥으로 옮겨오거나 그 밖으로 유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읽다보면 정원에 관심이 많고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오타쿠-구나 싶어진다.
 책에서는 총 26가지의 정원에 대해 소개하는데, 비슷한 형식이 짧게 반복되다보니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는 책에 대해서는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98)] 읽다가 갑자기 눈 앞이 아득해지면서 머리속이 공해지는 체험을 할 때도 있었다. 지금도 저 제목을 다시 쓰느라 세번은 확인했는데, 정말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바르와 페퀴셰(33)], [레겐트루데(211)] 같은 작품들도 생소하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이런 작품들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지고 관심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힙.폴'은... 

 괴테에서 톨킨으로 이어지는 문학과 정원의 이야기라는 소개에 처음엔 접하게 되는 작품들이 너무 심각하거나 뒷배경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했었다.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부바르와 페퀴셰-19세기 리틀 포레스트] 를 만나고 나니 부담감이 줄어들고 웃음이 나왔다. 읽으면서 귀농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의 '자연인'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떠오르고, 얼마 전 읽었던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황승희'라는 책도 떠올랐다. 전원생활이 참 좋아보이는데 사실 그 모든 좋아보이는 모습에는 비용과 배움, 노동력이 든다. 
환상 위에 엉터리로 심어놓은 그들의 정원은 매번 엉망으로 망쳐지고 만다. "모든 것에 실패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이들이 다시 필경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39)"나는데, 이들의 도전을 웃으며 지켜보다 문득 사람은 왜 낯선 환경에 도전하는 것으로 성취를 이루려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힘과 명성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나는 것처럼, 성공과 이상향은 외부 세계로 향한다. 마치 '길가메시가 불멸의 명성을 얻고자 신들의 영역인 삼나무 산으로 모험을 떠나듯이(200)' 세상이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라는 조언을 해주는(혹은 종용을 하는) 것만 같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성취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도시/귀농 생활에 시달린 이들은 다시 자신이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는 이야기에서 주인공 되기와 현실에서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과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타낸다. 더불어 이 '회귀'는 모든 '떠남'이 성공/주인공을 만드는 수단이 아님을 보여준다. [나무를 심는 사람-도토리 100개를 매일 심는 마음(204)]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꾸준한 성실함으로 이야기와 삶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도 있다. 
 또한 '회귀'는 도시와 전원 둘 중 어느 한 곳에서의 삶이 절대적으로 더 낫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져보지 못한 장점이 있는 새로운 환경보다 안정과 만족을 주는 것은 익숙함이 큰 것일까. 정서와 성향과 같은 내면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은 특히 어린시절 겪어왔던 환경과 체험이 그 사람의 토대가 되어 이를 변화시키려면 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적은 품을 들여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떠남'의 한 갈래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재밌게 살펴 본 정원 중 하나는 [캔디 캔디-스위트 캔디, 근대의 향기(112)]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는 만화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에게 큰 감탄을 했는데 그저 북실한 머리를 한 소녀가 괴롭힘 당하면서 울다가 안운다고 노래하는 인상만 남아있었던 '캔디 캔디'의 전반부 복잡다단한 줄거리를 아주 짧고 간결하게 설명해놓은 덕분이다. 덕분에 이 만화의 배경과 내용을 새로 알게 되었다. '울지 않는' 새로운 여성상의 제시라는 의미와 함께 끝부분에 살짝 언급되는 또다른 강한 여성상 오스칼 덕분에 뒤에 나오는 [베르사유 정원을 보여주는 법-왕의 산책을 따라가기(170)]도 관심있게 읽었다.  
 아쉽게도 [베르사유의 장미]와 오스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 안내서가 저자가 아는 한에서는 "조원가나 정원을 방문한 이의 기록이 아니라 정원의 주인인 왕이 작성한 정원 안내서로는 유일무이하다(173)"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왕의 흥미로 만들어진 안내서란 특수성은 있어도, 보편성과 활용성의 측면에서는 그리 세심한 배려심이 없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유용하지 않다는 점도 재밌다. 
앞선 두 작품은 익숙함을 바탕으로 관심이 갔다면, [레겐트루데-일어나세요, 비 공주님(211)]은 낯선 내용이어서 궁금했다. 나름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접해보았던 것 같은데 '비 공주'라는 동화는 처음 보았다. 종종 절판 도서를 구하거나 헌책방을 다녀와 어린시절 보았던 책들에 대한 향수가 어린 글들을 만난 적 있는데, '비 공주'의 이야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책이 넘치게 쌓인 오래된 헌책방을 지나게 되면 한번씩 둘러보게 될 것 같다. 

 책에서 "정원은 자아의 확장이요, 내면의 반영(42)"이라는 말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식물과 관련된 책들을 반기며 살펴보고 있지만 사실 내 집에는 살아있는 식물이 하나도 없다. 식물을 돌보는데에 전혀 재주가 없어 아까운 생명을 없애느니 아예 들이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가지지 못한 탓에 더욱 식물과 관련된 책들을 반기게 된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스스로의 정원을 돌보기 포기한 사람의 자아와 내면은 게으르고 메마른 것 이상의 황폐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만든 문장이었다. 하지만 정말 더는 살아있는 식물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식물을 담은 책을 하나씩 책장에 올려두고 나만의 정원으로 삼는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정원을,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책을 꿈꾸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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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TURN 6
정이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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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의 표지를 보고 한동안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이 어떤 내용일까 의아했다. 절반은 사람의 얼굴을 절반은 나무의 형태를 한 인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그림은, 사람이 나무가 되어가는건지 나무가 사람이 되어가는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판타지같은 얘기처럼 보였다. 환경 오염에 대한 미래 세계의 얘기일까, 신화나 전설같은 판타지일까. 
" 감정이 금지된 겨울의 학교를 녹이는 돌연변이 소녀들의 봄빛 연대와 여름빛 사랑 "
책 뒷편에 적힌 문구를 보며 가을이 섭섭하겠단 생각을 하다가 가을의 결실과 성취는 독자에게 남겨진 몫이라 생각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책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 시도해보자.  

 온통 옅은 보랏빛으로 가득한 책을 읽고선 라일락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순결과 순수, 첫사랑, 우정. 이브와 같은 연보랏빛의 라일락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이 있었다. 그 모든 의미가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안에 담겨 있었다.
" 캐모마일, 산딸나무, 에델바이스 우리의 사랑은 역경을 극복한다. 아마릴리스, 목련, 시계초, 산사나무 우리의 존엄에 자부심을 가져라. 난초, 동백, 물망초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달리아, 오렌지 꽃, 글라디올러스, 라일락 불멸하는 사랑으로. 154"
왜 다른 수많은 꽃과 나무 중에서도 라일락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라일락 향을 맡아본 사람은 분명 그 향에 매료되어 왜 라일락이어야 했는지 납득하게 될 것 같았다. 

 기후 위기가 찾아온 미래의 지구. 각지에서 절망과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인간의 DNA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생체코드 기술을 활용해 열성인간을 우성인간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독재자와 그 측근들에 의해 퍼져나갔다. 
 " 여자아이들의 사랑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 불안정한 존재들을 취약하고 혼란하게 만드는 게 바로 사랑이에요. 세상이 지금처럼 어지러운 이유죠. 낭만이나 동성애 따위를 좇는 쓸모없는 행위에 빠져드는 것도 대부분 여자애들이잖아요. 아름답기만 하면 금방 취해버리는 저 나약하고 가냘픈 영혼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14"
 독재자는 사람들의 분노와 고통의 화살을 돌리는 방법을 알았고 기후 위기의 현상을 우성과 열성 인간의 선별과정으로 포장했다. 세상을 우성과 열성으로 나누어 차별해야 마땅함을 내세우는 주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했고, 계엄령을 선포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상 필드 통제 구역에 수감했다. '잿빛라일락법'이 선포되고, 사랑을 말하는 소녀들을 열성 인간으로 분류해 끝없는 겨울이 계속되는 가상 필드에 수감시키는 소녀원이 생겨났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그 곳에서 일어난 저항에 대한 이야기다. 

 독재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계엄령.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소녀들의 연대와 사랑, 책을 읽으며 지난 24년 12월을 떠올렸다.  
 " 식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독재자가 경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을 목격했다. 삭막한 철제 의자에 앉은 아이들을 뒤로한 그가 연단에 올랐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다. 말투도 아둔했고 언론에서 칭송하는 카리스마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잔인한 힘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혹자들이 의탁한 욕심이었다. 그가 리수와 피로 맺어져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오염된 강물처럼 탁했고, 제 탐욕을 채우는 행위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무딘 인상이었다. 242"
 12.3사태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도 수긍하게 될 정도로 비슷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앞세워 난데없는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껏 뻔뻔한 얼굴로 죄의식도 없이 활보하고 다니는 인물과 계속해서 그를 옹호하는 아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행태까지 같았다. 그리고 계속되던 추운 겨울날에 갇혀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던 연대와 사랑, 새로운 계절과 시작을 맞이하던 지난 봄을 떠올리게 만드는 저항을 책과 함께 되새길 수 있었다. 

 " "언젠가 네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네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작은 존재인지 알게 될 거야. 사랑하는 이의 고통 하나 덜어줄 수 없는 게 인간이야. 네가 아기일 때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었어. 그 작은 몸이 아프다고 엉엉 우는데, 난 그 고통의 반도 가져올 수가 없었지. 그 자리의 한계를 자각하는 게 사랑이야."
  "그럼 사랑은 굉장히 쓸쓸하고 초라한 것 아닌가요?" 104"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사랑을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사랑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 중 씁쓸하고 외면하고 싶은 짙은 감정들도 함께 보여준다. 은주에 대한 이브의 마음은 어떤 빛깔을 가질까, 리수와 은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런 감정도 사랑이 맞을까, 사랑은 어떤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속에 사랑을 품고 온 마음으로 세상의 다채로움을 받아들이는 소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사랑은 성실함이자 신뢰라는 말을 곱씹었다. 사랑이 불멸하는 건 매일의 자리에서 연속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얼어붙지 않았다. 매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하여 계속 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리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브의 얼굴을 빚었다. 155"

 겨울만이 계속되는 고립된 학교에서 펼쳐지는 소녀들의 저항은 어떻게 피어날까. 처음 다소 낯설었던 설정에 익숙해지고 나니 안에 숨겨진 다양한 코드들이 하나둘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은주가 남긴 플로리오그라피 코드, 아이들의 비밀 게시판인 낙원과 가드너, 저항의 상징인 이브의 존재, 은수를 적대시하면서도 주시하는 리수의 비밀, 이브를 향한 은수의 동경과 은수가 가진 비밀의 정체가 한데 얽혀 꽃이 가득한 새로운 세계 안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을 읽는 동안 지나가버린 짧은 봄을 떠올렸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겨울이 지날 무렵 제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대로 피어나던 꽃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피었다. 약간은 느지막히 진항 향기를 담아 꽃망울을 터뜨리던 라일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을 읽는동안은 코끝에 다시 그 향이 맡아지는 듯 했다. 언제나 짧아서 아쉬워했던 라일락이 피는 계절의 한 가운데로 초대하는 소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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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동해 - 동해 예찬론자의 동해에 사는 기쁨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2
채지형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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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허는 있으나 운전은 하지 못하면서 이상하게도 국도라는 말은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마음속의 인상으로 고속도로는 연휴 때면 수많은 차들로 막히는 하지만 번듯한 휴게소가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길이고, 국도는 어느 길이고 들어서면 한적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 낡고 오래된 휴게소마저 무대같은 길처럼 느껴진다. 물론 운전자에겐 안 막히는 길이 가장 가슴 설레는 길이겠지만. 그래서 작가가 동해를 처음 찾을 때 20분은 더 걸려도 국도를, 이름부터 멋진 38번 국도를 선택했다는 부분에서 반가웠다. 우리 뭔가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단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선곡을 만났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손에 꼽게 좋아하는데, 삽입곡인 calling you 이야기에 반갑다 못해 설레었다. 
 
 " 오뚜기칼국수도 할머니가 운영하신다. 도와주는 분이 있지만, 할머니가 진두지휘하며 칼국수를 낸다. 한 그릇 비우고, 두 손으로 돈을 드리면 "고맙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고 덕담을 건네신다. 같은 말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들으면 결이 다르다. 정겹고 친절하고 사랑스럽고. 두 식당에 사람들이 줄 서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65" 

 '언제라도 동해'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먹는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이유도 있다. 사소한 한 마디이지만 덕담 한 마디를 건네주시는 마음에 묵호에 가게 되면 꼭 '오뚜기칼국수'에 가봐야지 마음 먹게 되었다. 요즘은 이런 사소함이 참 반가운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어느 층의 이웃이 고개를 까닥여 가벼운 인사만을 건네도 그게 참 고맙고 좋다. 그런 마음도 "설명하기 힘들지만 느낌으로나마 어렴풋이" 공감되는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다보면, 동해가 작가를 끌어들여 집어삼킨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마음속에 담겨져있던 동해에 대한 마음을 부르고 불러 동해로 향하게끔 만든 것 같은 수많은 부름이 곳곳에 있었다. 강연, 한달살기, 책방, 후배 오사, 동식 선배의 도움, 심지어 책방 개업에 맞춰 찾아온 손님들까지 전부 동해가 보내온 신호같았다. 이곳을 찾아오고, 머물고, 사랑하라고. 꽃을 건네며 축하를 나누었던 서호책방의 사장님 이야기를 보며 배우 박정민이 출판업계의 매력에 대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로를 경쟁상대로 보고 이기려하지 않고 좋은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것에 더 열심인 사람들이라 좋다고 했었는데, 그 꽃이 바로 그런 의미같아 보였다. 
 한동안 크게 난 불 때문에 모두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갔던 날들이 있었다. 오래된 절이 불에 탔을 때 눈물을 참지 못하시던 스님의 모습, 피할 줄도 모르고 피해를 입은 동물들, 안타깝게 스러져 간 소중한 생명을 뉴스에서 볼 때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는데 작가가 경험한 화재 현장의 모습(123)은 실제적인 공포도 함께 느껴졌다. 잎새바람을 찾아가다 벼랑 끝에 차가 걸린 일(66)이나 나도 겪어본 적 있는 이석증 증상(208)도 덩달아 심각하게 읽었다.
 반면 읽으면서 웃게 만든 부분도 있었는데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인 '라면 먹고 갈래요'를 '라면 먹을래요'로 바꿔버린 부분(147)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라면 먹고 갈래,하는 물음은 의미심장해 보이는데 라면 먹을래,하고 물으면 무슨 라면? 계란 몇개 넣을건데?하고 답해야할 것 같은 실전이다. 마음이 잘 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감도 잘되고 이입도 잘되어 '언제라도 동해'를 읽는 동안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온 여행지는 홍천의 '행복공장(160)'이다. '내 안의 감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1.5평 되는 공간에 혼자 들어가 오로지 독서를 위한 자발적 격리? 수감?을 체험할 수 있는 숙소였다. 밥도 방문에 달린 배식구를 통해 건네 받아 해결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 친구와 절을 찾았다가 언뜻 들어온 무문관 수행과 비슷했다. 나는 깊이가 얕아 도전해보기도 망설여지지만 친구라면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을 하며 읽었다. 

 책은 4장에 가서야 동해를 방문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라며 열가지 제안을 건넨다. 그제서야 아, 이 책 여행책이었지! 되새긴다. 그러니 지금껏 보여주었던 동해와 동해살이의 매력은 뭐 별 것 아니었다는 듯이, 더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여행지로서 즐길 수 있는 동해의 매력은 줄이고 줄여 이 정도 있으니 골라보세요,하고 자랑하는 듯 했다. 특히 해파랑길은 몇 해 전부터 걸어보고 싶어 사진첩에 저장해두었던 곳이라 눈에 밟혔고, 무릉별유천지의 라벤더 밭이 뽐내는 그림같은 풍경도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게 되었다. 
책문화축제, 북크닉, 강연, 낭독회에 근처 사장님들과의 소소한 차모임까지 작가는 바쁘고도 활력이 넘치는 성향을 맘껏 뽐내며 현지인의 삶을 즐긴다. 길을 가다가도 가자미를 건네받는 묵호의 슈퍼스타(144)가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직접 100퍼센트로 즐길 동해의 삶을, 오히려 120퍼센트로 나눠받는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여행지, 맛집을 키워드 삼아 여행 떠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목적지를 정착지로 만들어버린 작가의 '언제라도 동해'를 꼭 만나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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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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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를 피해 카페로 책을 가져가 읽는 동안 카페 어디선가에선 알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공간 음향, 요란하게 돌아가며 원두를 갈고, 프라푸치노를 말아대는 소음들 사이로 알람 소리만 유난히도 신경이 쓰였다. 열대야에 뒤척였던 지난 밤 모자랐던 잠이 카페의 시원한 실내 온도 덕분에 그제서야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때마침 그 알람 소리가 나와 같은 핸드폰 기종의 공통 알람 소리여서 아침마다 듣던 그 지긋지긋한 소리이기도 해서였다. 짧게 쓰여지긴 했지만 소설 두 편 정도는 충분히 다 읽을 시간 동안 소음들 사이에서 은은히 울려퍼진 알람 소리는 대체 누구의 것이었을까. 환청처럼 이어지는 소리에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진 핸드폰에 몇번이고 귀를 붙여보기도 했다. 설마 이 빌런이 나는 아니겠지. 

 '아뇨, 아무것도' 안에 있는 단편들은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다른 소음들 사이에서 충분히 묻혀 지나갈수도 있을만한 어떤 특정한 소리가 계속해서 신경을 거스르는 느낌, 살짝 어긋난 타일이나 삐져나온 선, 혼자만 엇박으로 들어가는 동작 같이 눈길에 튀는 것들. 어떨 땐 무심히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한번 눈에 들어오면 자꾸 마음에 걸리고 가끔은 그 모남이 웃음을 주기도 하는 소설들이다. 어떤 결말은 이게 뭐야, 싶기도 하고 어떤 결말은 이래서 그랬구만.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그리고 종종 이런 웃음 코드에 웃고마는 내가 싫어지게 웃기기도 하다. 가게의 '게' 자만 나와도 성호를 긋는다(108)는 말에 낄낄 거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구겠는가.) 110" 

 [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은 읽고 난 뒤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어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날지 않는/못하는 새'들이 등장해서 심각하게 토론을 한다. 펭귄이니 칠면조니 하는 새들이 나오자 새삼 이 책이 이런 소설집이었어? 싶어졌다. 새들은 심각한데 보는 나는 귀엽게 느껴졌다. 닭이 이 모임에 들어와도 되는가 아닌가를 주제로 토론이 치열해질수록, 날기는 커녕 요즘은 걷기도 힘든 인간도 덩달아 심각하게 읽다가 결국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웃긴다. 사실 이런 내용과 개그가 취향이기도 하다. 표지나 제목만 보고 뭔가 더 심각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덕분에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졌다. 그 다음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묘하거나 오싹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단편들도 마치 책에서 언급된 '전설의 고향'이나 '토요미스테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이야기속으로'나 '테마게임', '드라마 스페셜'같은 짧은 단막극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나열된 프로그램들 다 아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기분도 들테니 '아뇨, 아무것도'도 만나보시라.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인데, '젊은 사람들은 서로의 시간을 서로 좀 뺏고 뺏겨도 된다(185)'는 말도 인상적이고 은근히 몽글몽글한 결말이 재밌었다. 등을 밀어주는 어느 한 순간, 작은 계기 없이는 달라지기 어려운 굳어진 관계가 점차 풀려나가는 변화를 지켜보는 게 좋았다. 다양한 글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여러맛을 맛보듯 글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무심하고 적당한 완급 조절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과 표지가 진입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냥 겉만 봤을 때는 사회문제를 다룬 책인줄 알았다. 노동자나 난민, 그도 아니면 청소년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것만 같았다. 표지에 그려진 인물은 울거나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고, 띠지에 있는 문구도 오해를 부추긴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숨을 안 쉬고 있는 거지?" 세상사에 쪼이고 쪼여서 숨 막힌단 표현 같았다. 나만 이런 오해를 하는걸까. 막상 읽어보면 제목도, 띠지의 문구도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 이게 이렇게 모여서 이런 오해가 생기니 아쉽다 싶었다. 가끔 요즘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소설이란 단어에 알러지가 있지만 않다면, 2025 하반기 동안은 추천 목록에 꼭 '아뇨, 아무것도'를 넣을 것이다. 읽어보세요. 

 감상을 쓰면서 '어긋남'이란 표현을 썼는데 책 뒷편에 바로 그 키워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웠다. 책 한복판에 가나다 순서대로 후기나 다름없는 '작가의 말'을 또다른 단편들 중 하나처럼 넣어둔 작가가 어이없는데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긋남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서. 1이라고 입력해서 1이 출력되었구나. 재밌게, 읽는다는 부담은 전혀 없이, 신선하게 읽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을까봐 안타까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졌다. 특히 여름볕이 지나치게 쨍하고 밤마저 무더워서 어디 가기도 싫어지고 시원한 실내에서 심심함을 달래고 싶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책을 안 읽어서 갑자기 길고 깊은 책들은 집중도 안되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 망설이는 사람에게, 가벼운 웃음코드나 어이없는 말장난에 여지없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묘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가벼운 미스터리물을 은근히 선호하던 사람에게 좋은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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