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TURN 6
정이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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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의 표지를 보고 한동안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이 어떤 내용일까 의아했다. 절반은 사람의 얼굴을 절반은 나무의 형태를 한 인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그림은, 사람이 나무가 되어가는건지 나무가 사람이 되어가는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판타지같은 얘기처럼 보였다. 환경 오염에 대한 미래 세계의 얘기일까, 신화나 전설같은 판타지일까. 
" 감정이 금지된 겨울의 학교를 녹이는 돌연변이 소녀들의 봄빛 연대와 여름빛 사랑 "
책 뒷편에 적힌 문구를 보며 가을이 섭섭하겠단 생각을 하다가 가을의 결실과 성취는 독자에게 남겨진 몫이라 생각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책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 시도해보자.  

 온통 옅은 보랏빛으로 가득한 책을 읽고선 라일락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순결과 순수, 첫사랑, 우정. 이브와 같은 연보랏빛의 라일락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이 있었다. 그 모든 의미가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 안에 담겨 있었다.
" 캐모마일, 산딸나무, 에델바이스 우리의 사랑은 역경을 극복한다. 아마릴리스, 목련, 시계초, 산사나무 우리의 존엄에 자부심을 가져라. 난초, 동백, 물망초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 달리아, 오렌지 꽃, 글라디올러스, 라일락 불멸하는 사랑으로. 154"
왜 다른 수많은 꽃과 나무 중에서도 라일락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라일락 향을 맡아본 사람은 분명 그 향에 매료되어 왜 라일락이어야 했는지 납득하게 될 것 같았다. 

 기후 위기가 찾아온 미래의 지구. 각지에서 절망과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인간의 DNA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생체코드 기술을 활용해 열성인간을 우성인간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독재자와 그 측근들에 의해 퍼져나갔다. 
 " 여자아이들의 사랑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 불안정한 존재들을 취약하고 혼란하게 만드는 게 바로 사랑이에요. 세상이 지금처럼 어지러운 이유죠. 낭만이나 동성애 따위를 좇는 쓸모없는 행위에 빠져드는 것도 대부분 여자애들이잖아요. 아름답기만 하면 금방 취해버리는 저 나약하고 가냘픈 영혼들을 통제해야 합니다. 14"
 독재자는 사람들의 분노와 고통의 화살을 돌리는 방법을 알았고 기후 위기의 현상을 우성과 열성 인간의 선별과정으로 포장했다. 세상을 우성과 열성으로 나누어 차별해야 마땅함을 내세우는 주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했고, 계엄령을 선포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상 필드 통제 구역에 수감했다. '잿빛라일락법'이 선포되고, 사랑을 말하는 소녀들을 열성 인간으로 분류해 끝없는 겨울이 계속되는 가상 필드에 수감시키는 소녀원이 생겨났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그 곳에서 일어난 저항에 대한 이야기다. 

 독재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계엄령.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소녀들의 연대와 사랑, 책을 읽으며 지난 24년 12월을 떠올렸다.  
 " 식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독재자가 경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나는 드디어...... 그의 얼굴을 목격했다. 삭막한 철제 의자에 앉은 아이들을 뒤로한 그가 연단에 올랐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다. 말투도 아둔했고 언론에서 칭송하는 카리스마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잔인한 힘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혹자들이 의탁한 욕심이었다. 그가 리수와 피로 맺어져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오염된 강물처럼 탁했고, 제 탐욕을 채우는 행위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무딘 인상이었다. 242"
 12.3사태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도 수긍하게 될 정도로 비슷했다. 말도 안되는 주장을 앞세워 난데없는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껏 뻔뻔한 얼굴로 죄의식도 없이 활보하고 다니는 인물과 계속해서 그를 옹호하는 아둔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행태까지 같았다. 그리고 계속되던 추운 겨울날에 갇혀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던 연대와 사랑, 새로운 계절과 시작을 맞이하던 지난 봄을 떠올리게 만드는 저항을 책과 함께 되새길 수 있었다. 

 " "언젠가 네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네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작은 존재인지 알게 될 거야. 사랑하는 이의 고통 하나 덜어줄 수 없는 게 인간이야. 네가 아기일 때 고열에 시달린 적이 있었어. 그 작은 몸이 아프다고 엉엉 우는데, 난 그 고통의 반도 가져올 수가 없었지. 그 자리의 한계를 자각하는 게 사랑이야."
  "그럼 사랑은 굉장히 쓸쓸하고 초라한 것 아닌가요?" 104"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은 사랑을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사랑을 하며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 중 씁쓸하고 외면하고 싶은 짙은 감정들도 함께 보여준다. 은주에 대한 이브의 마음은 어떤 빛깔을 가질까, 리수와 은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런 감정도 사랑이 맞을까, 사랑은 어떤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가슴속에 사랑을 품고 온 마음으로 세상의 다채로움을 받아들이는 소녀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사랑은 성실함이자 신뢰라는 말을 곱씹었다. 사랑이 불멸하는 건 매일의 자리에서 연속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얼어붙지 않았다. 매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하여 계속 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리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브의 얼굴을 빚었다. 155"

 겨울만이 계속되는 고립된 학교에서 펼쳐지는 소녀들의 저항은 어떻게 피어날까. 처음 다소 낯설었던 설정에 익숙해지고 나니 안에 숨겨진 다양한 코드들이 하나둘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은주가 남긴 플로리오그라피 코드, 아이들의 비밀 게시판인 낙원과 가드너, 저항의 상징인 이브의 존재, 은수를 적대시하면서도 주시하는 리수의 비밀, 이브를 향한 은수의 동경과 은수가 가진 비밀의 정체가 한데 얽혀 꽃이 가득한 새로운 세계 안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을 읽는 동안 지나가버린 짧은 봄을 떠올렸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겨울이 지날 무렵 제 순서를 기다리며 차례대로 피어나던 꽃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피었다. 약간은 느지막히 진항 향기를 담아 꽃망울을 터뜨리던 라일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을 읽는동안은 코끝에 다시 그 향이 맡아지는 듯 했다. 언제나 짧아서 아쉬워했던 라일락이 피는 계절의 한 가운데로 초대하는 소설, '열세 번째 계절의 소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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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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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를 피해 카페로 책을 가져가 읽는 동안 카페 어디선가에선 알람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공간 음향, 요란하게 돌아가며 원두를 갈고, 프라푸치노를 말아대는 소음들 사이로 알람 소리만 유난히도 신경이 쓰였다. 열대야에 뒤척였던 지난 밤 모자랐던 잠이 카페의 시원한 실내 온도 덕분에 그제서야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때마침 그 알람 소리가 나와 같은 핸드폰 기종의 공통 알람 소리여서 아침마다 듣던 그 지긋지긋한 소리이기도 해서였다. 짧게 쓰여지긴 했지만 소설 두 편 정도는 충분히 다 읽을 시간 동안 소음들 사이에서 은은히 울려퍼진 알람 소리는 대체 누구의 것이었을까. 환청처럼 이어지는 소리에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진 핸드폰에 몇번이고 귀를 붙여보기도 했다. 설마 이 빌런이 나는 아니겠지. 

 '아뇨, 아무것도' 안에 있는 단편들은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다른 소음들 사이에서 충분히 묻혀 지나갈수도 있을만한 어떤 특정한 소리가 계속해서 신경을 거스르는 느낌, 살짝 어긋난 타일이나 삐져나온 선, 혼자만 엇박으로 들어가는 동작 같이 눈길에 튀는 것들. 어떨 땐 무심히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한번 눈에 들어오면 자꾸 마음에 걸리고 가끔은 그 모남이 웃음을 주기도 하는 소설들이다. 어떤 결말은 이게 뭐야, 싶기도 하고 어떤 결말은 이래서 그랬구만.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그리고 종종 이런 웃음 코드에 웃고마는 내가 싫어지게 웃기기도 하다. 가게의 '게' 자만 나와도 성호를 긋는다(108)는 말에 낄낄 거리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구겠는가.) 110" 

 [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은 읽고 난 뒤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어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날지 않는/못하는 새'들이 등장해서 심각하게 토론을 한다. 펭귄이니 칠면조니 하는 새들이 나오자 새삼 이 책이 이런 소설집이었어? 싶어졌다. 새들은 심각한데 보는 나는 귀엽게 느껴졌다. 닭이 이 모임에 들어와도 되는가 아닌가를 주제로 토론이 치열해질수록, 날기는 커녕 요즘은 걷기도 힘든 인간도 덩달아 심각하게 읽다가 결국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웃긴다. 사실 이런 내용과 개그가 취향이기도 하다. 표지나 제목만 보고 뭔가 더 심각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덕분에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빠졌다. 그 다음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묘하거나 오싹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단편들도 마치 책에서 언급된 '전설의 고향'이나 '토요미스테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이야기속으로'나 '테마게임', '드라마 스페셜'같은 짧은 단막극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 나열된 프로그램들 다 아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기분도 들테니 '아뇨, 아무것도'도 만나보시라.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인데, '젊은 사람들은 서로의 시간을 서로 좀 뺏고 뺏겨도 된다(185)'는 말도 인상적이고 은근히 몽글몽글한 결말이 재밌었다. 등을 밀어주는 어느 한 순간, 작은 계기 없이는 달라지기 어려운 굳어진 관계가 점차 풀려나가는 변화를 지켜보는 게 좋았다. 다양한 글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여러맛을 맛보듯 글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무심하고 적당한 완급 조절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제목과 표지가 진입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냥 겉만 봤을 때는 사회문제를 다룬 책인줄 알았다. 노동자나 난민, 그도 아니면 청소년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것만 같았다. 표지에 그려진 인물은 울거나 땀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고, 띠지에 있는 문구도 오해를 부추긴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숨을 안 쉬고 있는 거지?" 세상사에 쪼이고 쪼여서 숨 막힌단 표현 같았다. 나만 이런 오해를 하는걸까. 막상 읽어보면 제목도, 띠지의 문구도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 이게 이렇게 모여서 이런 오해가 생기니 아쉽다 싶었다. 가끔 요즘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소설이란 단어에 알러지가 있지만 않다면, 2025 하반기 동안은 추천 목록에 꼭 '아뇨, 아무것도'를 넣을 것이다. 읽어보세요. 

 감상을 쓰면서 '어긋남'이란 표현을 썼는데 책 뒷편에 바로 그 키워드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웠다. 책 한복판에 가나다 순서대로 후기나 다름없는 '작가의 말'을 또다른 단편들 중 하나처럼 넣어둔 작가가 어이없는데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긋남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서. 1이라고 입력해서 1이 출력되었구나. 재밌게, 읽는다는 부담은 전혀 없이, 신선하게 읽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을까봐 안타까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졌다. 특히 여름볕이 지나치게 쨍하고 밤마저 무더워서 어디 가기도 싫어지고 시원한 실내에서 심심함을 달래고 싶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책을 안 읽어서 갑자기 길고 깊은 책들은 집중도 안되고 부담스러울 것 같아 망설이는 사람에게, 가벼운 웃음코드나 어이없는 말장난에 여지없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묘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가벼운 미스터리물을 은근히 선호하던 사람에게 좋은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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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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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한 소설집 관련된 영상을 보다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아마 가장 마지막에 작품이 실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앞에서부터 읽다 자신의 글을 안 읽을수도 있으니 뒤에서부터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그 말이 참 부주의하다 여기면서도 이렇게 기억에 남아 '서른 번의 힌트'를 앞두고 이번엔 뒤에서부터 읽어봐야지 싶었다 

 "난 안간힘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다. 딸은 어쩌다 전화를 거는 은전을 베푸신다. 그럼 나는 걱정부터 앞서 그렇게 물어왔던 것이다. 뭘 묻고, 뭘 묻지 말아야 할지도 어려워 내가 변사처럼 혼자서 떠들긴 했었다. 엄마 노릇을 흉내라도 내려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거구나. 381" 

 세상 모든 딸들은 엄마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까? 책을 읽다 문득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엄마를 사랑만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엄마보다 내가 더 많이 말하던 그 때, 내 모든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의 품에 안겨 쏟아내던 날들. 나는 어땠더라 되새겨보게 만드는 '길 위의 에트랑제'가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금은 목이 메었다. 

 관심있게 보아둔 이름인 최진영 작가의 '무명'을 읽은 날 아침엔 70대 노인이 열 살짜리 초등학생을 유괴하려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초등학생의 엄마에게 저지되어 미수에 그쳤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람들이 역겹다며 저런 인간은 죽어야 된다는 댓글을 달아놓은 것을 수백개는 넘게 봤는데, 첫 시작이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로 시작해서 아이러니했다. 가능성과 사실들. 

 '불펜의 시간'은 읽는 내내 기분이 나쁜 내용이었다. 기현이 어떤 야구를 하건 희롱과 무시를 당하는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기현의 내면이 어떻던 진호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의 신이 진호를 버리기 전에 인간의 범위에서도 버려진 것은 아니었나, 진호뿐만이 아니라 지긋지긋하리만큼 저속하게 그려진 야구부원들 전부. 

 이와 비슷하게 주원규의 '외계인' 역시 야구선수와 배가 부푼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의 환영을 말한다. 실제 야구 선수들이 치던 사고도 떠오르니 연달아 읽으면서 야구 성적도 중요하지만 사람 좀 되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좋지만 최소한의 학습과 인성 교육도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을 최근 더 자주하게 되어 읽으며 부러 더 심각했다. 

 여러 작품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단숨에 읽어내려가다보면 어느새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이 다 끝나있다. 읽다보니 문득 어느 재밌는 장편의 도입부만 골라 읽은 느낌도 드는데, '서른 번의 힌트'안의 작품들이 작가들이 예전에 수상했던 한겨례문학상 당선작의 내용을 모티프로 써 내려간 단편들이기 때문인 듯 하다. 

 책의 뒷표지 날개에 언제 어떤 작가가가 무슨 작품으로 수상했는지 목록이 나와 있으니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 먼저 만나보거나, 읽은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작가의 수상작을 다시 찾아봐도 좋겠다. 모든 수상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어보았던 작품의 또 다른 갈래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인상적인 재회였고 재미있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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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먼 이름에게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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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인간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납게 짖어 대지 않는, 나를 굶기지도 걷어차지도 않는 인간을. 
나를 씻기고 먹이는,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는, 밤이면 곁을 내주고 함께 잠드는,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울고 싶게 하는 인간을. 그러나 그를 사랑할수록 내 반쪽에 차오르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는 어쩌다가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 26"

 첫 시작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면, 마지막은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다. 이 작은 개의 이야기는 번식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되어 한 인간의 집으로 입양되면서 시작된다. 짧게 줄인 문장 안에도 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해 이렇게까지 이용당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는 부조리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성토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웠던 번식장에서의 시간부터 자신을 보살피는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과 함께하기까지 작은 개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작은 개는 번식장의 학대에서 살아난 생존자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되는 질문이 지금껏 이어져 온 인간과 개, 두 세상의 첫 만남을 찾아 시간을 거스른다. 오래 전 야생에서 생활하던 늑대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사냥하던 인간 무리에게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으로. 작은 개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현장에서도 그를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데, 그런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곁에 있는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게 만들기도 했다. 

 고대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시튼의 동물기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늑대왕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떠올라 금새 읽어나갔다. 먼 옛날 인간이 생존을 위해 늑대들의 습성을 따라했고, 늑대들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했다는 주고받음을 잘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세상'이 동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지, 또 그 세상에 맞춰 살아가게 된 첫 시작은 어떠했는지를 '나의 먼 이름에게'는 그려내고 있다. 냄새를 맡아서 동족을 확인하거나, 두려울 때의 본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 애견 카페 앞에서 견종으로 구분되는 차별 등 개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고 썼으리라 짐작된다.   

 짧은 분량과 익숙하면서도 섬세한 삽화, 여운을 남기는 내용이 한 번 읽었어도 자꾸만 책에 손이 가게 만든다. 자신 곁의 소중한 존재가 어떤 마음으로 나의 세상에 편입되어 왔을지, '나의 먼 이름에게'를 읽으며 가늠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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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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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뿌리가 있어요. 나한텐 분명한 뿌리가 있다고요. 이렇게 말한 뒤 나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사람들은 나만보면 뿌리가 없냐는 노래를 해대기 시작했어요. 인생이 좀 꼬였다고 해서 딱히 다른 뭔가를 시도해 볼 수도 없는 애한테 뿌리를 잊고 사는 거냐는 말을 해댔다고요. 그사람들이 말하는 '뿌리 없음'이란 시장의 야채상이 나에게 건네는 곤니치와라는 말하고 같은 거예요. 나에 대한 인종 검사를 수행하려는 행동이라고요. 137"
 
 [ 1950년대 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미혼모인 어머니는 아이가 입양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곧 병원에서 문제를 발견한다. 어머니는 백인인데 아이가 흑인 혼혈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작은 도시는 아이에 관한 소문으로 들썩인다. 아버지는 누구이며, 왜 이 어머니는 입을 열지 않는가? 출판사 소개글] '어느 아이 이야기'의 큰 줄기 중 하나인 이 사건을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본 탓에 한동안 의아했다. 어차피 생모는 아이에 대한 권한을 포기했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나? 싶었던 것이다. 출산 후 친권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입양을 희망하면 기본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생모와 분리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사는 계속해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야만 할까, 캐럴은 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일까. 흑인과 어울렸다는 불명예 때문에? 백인과 어울린 흑인이 감수해야할 위험에서 상대방을 방어하기 위해서? 
 
 소문만으로도 도시가 들썩일 정도의 일인데 실제 캐럴이 부주의하게 누군가와 가졌을 만남이 조용히 이루어졌다는 점은 의외다. 보고서를 읽다보면 코의 모양 머리결, 피부와 눈의 색, 심지어 IQ 측정값을 통틀어 대니얼이 누가봐도-가시성으로 물라토*이고, 실제로도-생물학적으로 물라토라면,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인이 왜 필요한지 역시 의문이 된다. 대니얼의 아버지가 어떤 인종이던 대니얼의 가시적 입양 조건은 달라지지 않는다. 혹 대니얼의 아버지가 흑인이 아니고 대니얼도 물라토가 아니게 된다면 부여받게 되는 새로운 정체성은 가시적 조건을 상쇄할 수 있는 권리증이 되는가. 마치 이 아이는 물라토의 외형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물라토가 아닙니다, 하는 주의문구가 적힌 꼬리표와 함께. 하지만 그 꼬리표를 위해 혹은 친부모의 확실한 신원 기록을 위해,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한 과정은 꼬리표보다는 확실히 대니얼과 캐럴에게 악조건이 되었다.  

 솔직한 감각으로는 그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해서 이게 얼마만큼이나 큰 사건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에멧 틸 사건**'이 1955년, [미시시피 버닝***]의 배경이 1960년대였었다고 하니 대니얼의 출생은 그 이상의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보고서는 집요하게 아이의 출생을 파고든다. 그 의도는 아이에게 '적합한 가정'을 찾아주기 위함에 초점이 맞춰진 선량함을 두르고 있다.
" 우리는 아이에게 맞는 입양 부모를 찾기 전에 생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할 수 있는 한 강하게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서로에게 적합한 아이와 부모를 맺어 주는 것입니다. 최선의 경우는 입양 부모와 아이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거죠.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가정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럴 경우에만 이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36"
 그러나 그 선량한 의도는 인종차별로 재단되어 있다. 아이의 성장에 대한 세심한 관찰, 입양처를 찾아주기 위한 물색 마저도 눈금자 아래(257) 놓여진 수치를 피할 수 없었다. 보고서를 읽으며 기대었던 선량함은 차별과 시혜의 그늘에서 종내 불유쾌함을 남겼다.  

 대니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혹은 어떤 인종인가에 대한 선량한 추적은 구분지어짐으로 비롯되었고, 구분하기를 위함이다. 읽는 내내 계속되었던 조앤의 시선(20/136), 대니의 거울(148), 질비아의 스케치(263)처럼 '바라보기'가 강조된 장면들이 떠오른다. 눈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 혹은 선입견을 생각해보자. 단지 인종의 문제를 떠나, 오히려 인종에 대한 정보는 훨씬 직접적이다. 성별, 나이, 언어, 옷차림, 표정, 시선, 귀금속 같은 소지품, 손톱이나 피부, 머리결같은 것들, 심지어 생김새마저 타인을 판단하는 항목이 된다. 인종적으로 소수자 위치의 삶을 경험해보지도, 불일치하는 '뿌리'에 대한 질문과 심판도 받아보지 못한 탓에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서일까, 넘어가보지 못한 한 걸음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때문에 도리어 가시적 조건들을 확장해 인간이 어떠한 분류없이 오직 한 명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혹은 어떤 분류는 괜찮고 또 괜찮지 않은가. 선입견과 구분짓기의 '모든' 틀에서 벗어난다면 그 끝은 획일성 외에 무엇이 남는가. 자신을 인종과 국적과 같은 틀에서 벗어나 오직 한 명의 개인으로 봐달라는 말은 오히려 자신이 '규정짓는 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말로 들린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외모와 내면의 분리/불일치 - 이 부분에 이르러 성정체성 문제가 떠올랐다. 
" 가끔은 내 자신이 주장하는 나와 실제 내가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착시 같은 존재, 늑대 가죽 속의 양, 나는 그런 변장 속에서 태어났다. ...중략... 어쨌든, 만약 내가 만들어진 환상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내 외모가 착각이고 내 내면이 진실인가 아니면 정반대로 내 외모가 진실이고 내 영혼은 그 반대인가라는 문제 말이다. 주변 세계가 나에게 보이는 반응에서 출발하면, 즉 사람들이 내 내면과는 맞지 않는 내 외형에 먼저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서 출발하면, 나의 외모가 옳고 나는 옳지 않은 것이다. 감히 생물학이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40"
이들의 주장과 갈등도 같은 부분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규정짓는 대로 인정받기'. 하지만 주변 세계가 그 모든 불일치를 수용할 수 있는가? 수용해야만 하는가? 이 불일치로 인해 가시성이 멍에(135)가 된다면 그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눈 위에 멍에를 씌운 채 후각과 촉각에 의지해(101)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남겼다.  

 대니얼이 스스로를 백인으로 여긴다해도 그의 신체에 흑인의 특성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대니얼만이 아니다, 서양인에 비해 췌장 크기가 작은 동양인은 당뇨에 취약하다. 눈동자 색에 따라 빛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흑인은 피부암 발병율이 낮다, 같은 차이는 그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마저도 '수치에 의존해 인간을 분류하려 드는 선입견'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아쉽다. 그가 자신을 백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규정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지금도 일정 부분 그렇겠지만, 미국인이 곧 백인이었던 배경이었다면 왜 그가 스스로를 백인처럼 증명(명예백인 148)하려 했을지에 대한 이해가 된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에 비해 머리속을 떠돌던 생각을 어느 하나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것 같아 여러모로 아쉬웠다. 처음 책을 읽으며 꽤 먼 시선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느끼던 거리감에 비해 책의 무게가 깊었던 듯 하다. 암실문고의 선정은 남다르다. 
  

* 물라토 백인과 흑인 혼혈 1세대
** 1955년 백인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었다는 이유만으로 린치를 당해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10대 흑인 소년 에멧 틸 이름을 딴 사건. 2020년 인종적 증오범죄에 근거한 사적 린치를 처벌하는 '에멧 틸 법'이 입법 되었다
*** 영화 [미시시피 버닝(1988)] 1964년에 일어난 흑인 인권 운동가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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