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단정치 못하다고? 그 애 엄마나 할 법한 말이었다. 루앤의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그 애가 '단정치 못하다'라는 말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9" 

 어른은 아이의 거울, 아이 앞에서는 물도 함부러 마시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 사는지 물어볼 때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자가인지 전월세인지 구분할 줄 안다고 한다. <어린왕자>에서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꼬집은 것처럼 그때 어른들이 셈하던 숫자를 요즘은 아이들도 헤아린다.
 그 셈법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보면 주변 어른들의 말투와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우게 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조지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루앤이 조지나에게 상처를 준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아이들의 태도와 변화를 문제 삼으려거든 우리 사회와 어른인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겠다. 

 "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점점 커졌다. 이대로 두둥실 날아올라 천장을 뚫고 새파란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애들과 함께일 수 없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모두들 팔목에 하나씩 두른 팔찌도 나에겐 없다. 이 아이들이 쇼핑몰을 구경하며 팔찌 등을 사는 동안 나는 월그린 할인 매장 화장실에서 내 속옷을 빨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스파게티 가락을 돌리면서 윌리를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96" 

 지금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지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사람은 오히려 그러려니 싶고, 비슷한 삶들 속에서는 어차피 사는게 다 비슷하겠지 싶다. 갑자기 누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한다면야 부러우니 맛있는 밥이라도 한번 사주십사 하겠지만, 더 가졌다고 해서 거리감을 느낄 일도 없다.
 하지만 조지나처럼 어렸을 땐 다른 애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나 다양한 색의 파스텔 세트, 더 커서는 새 핸드폰과 신발, 겉옷 같은 것들도 '나도' 갖고 싶었고 꼭 '나만' 없는 것 처럼 생각하곤 했다. 같이 어울리려면 똑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대화 소재도 빠지지 않고 분위기가 맞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급식실에서 밥 혼자 먹는 일이나 이동수업 혼자 나가는 것, 조별 활동을 자연스럽게 짤 친한 무리들이 없는 것 같은게 아무렇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나이때는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렵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직장인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우울감으로 회사를 가는 길에 사고가 나면 출근을 안해도 될테니 작은 사고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경우가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조지나를 보며 씩씩하고 영리해보이는 아이의 마음에도 우울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조지나가 더는 차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엄마와 다투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어려운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엄마에게 떼를 쓴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조지나의 불만은 그저 철이 없는 어린아이의 투정이 아니었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 조지나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보호와 양육환경에 대한 요구였다.
 같은 장소에서 이틀 이상은 머물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차에서의 생활, 빨래나 샤워같은 개인 위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낮시간 동안 어린 동생의 보호자 역까지 해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조지나가 비어있는 외딴 집에서 부랑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한다. 
 무키 아저씨와 조지나가 빈 집에서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길지 않은 장면에도 책을 읽는 동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 속의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염려했던 문제들은 없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소녀와 성인남성이 주변의 시선이 닿지도 않는 장소에서 있는 장면은 긴장감을 주었다. 
 다른 하나는 조지나와 다투며 엄마가 감정적으로 크게 폭발하거나 지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미 가족을 버리고 가정을 떠난 아빠는 엄마가 느낄 생활고와 책임감의 압박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아빠가 무책임한 짓을 할 수 있었다면 엄마 또한 자신도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조지나는 엄마에게서 불안을 느낀다. "아니, 아무래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 87", "나는 내심 불안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99" 엄마에게서 전해지는 절망과 우울을 민감하게 느끼는 조지나는 결국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가정의 위기가 사회로 옮겨오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 흔들렸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아이들을 잠시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어야 했다. 학교 선생님도 친구 로앤의 엄마도 조지나에게서 변화와 문제를 발견했다. 이들은 그저 조지나에게 괜찮은지 묻거나,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 가정 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을 때 타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벤치 근처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이를 본 모텔 주인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놀고 있고, 성인 배우와 관객들만이 그 불온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순수한지,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되는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도 엉뚱하면서 순수한 조지나를 중심으로 결핍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잃지 않고 마무리 된다. 그 점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더욱 강조하여 드러낸 대비가 되기도 한다고 여겨졌다. 
 책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서도 각 인물들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성숙과 고통 앞에서 멈추지 않는 나아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읽고 감명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난 뒤에 깊이 생각해 볼 수록 동화같지 않은 현실을 동화처럼 풀어냈단 감상이 뒤따랐다. 
 '모든 학교 도서관에 반드시 꽂혀야 할 필독서'라는 소개가 있지만 어른의 시선으로도 아이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동명의 영화로 다시 한 번 감상한다면 더 즐거울 것이다. 미디어에 더 익숙한 세대는 영화를 먼저 보고 그 즐거운 감상을 책으로 확장해 접근해도 좋겠다. 읽고 난 뒤에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0
김선미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부딪혀야지. 부딪쳐도 깨지지 않도록 널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지금은 이 아이가 입김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겼잖아. 네가 널 지켜 줘. 땅에 딛고 선 두 다리에 힘주고 눈에도, 가슴에도, 손가락에도 힘을 빡 주고 계속 널 지켜 내는 거야. 널 욕하고, 때리고, 힘들게 하는 아이들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갈수록 나아질 거야. 약속해. 오늘부터 널 지켜 내는 연습을 하면 시간이 지나 네 앞에 어떤 멍청이가 나타나도 너는 깨지지 않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지켜 줘야 하는 거였구나. 마음이 부서지려고 할 때, 나쁜 마음이 날 잡아먹으려고 할 때, 내가 날 지켜 줘야 했구나. 204" 

 스티커와 저주? 요즘 스티커하면 다이어리 꾸미기만 떠오르는데 저주와 나란히 놓이니 어쩐지 어색했다.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MZ식 부적이 스티커 같은게 되려나? 이런 궁금증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 첫 의뢰 내용을 보고그만 시루야, 하다가 시루 선생님!하고 부르고 싶어졌다. 꼴보기 싫은 직장 동료를 제거하는 의뢰비용이 30만원이라니? 심지어 5명 정도 되는 인원을 살짝 손봐주는(?) 비용도 80만원이다.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정도 비용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이 아니라,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저주를 하는 나쁜 행동은 본인의 정서에도 좋지 않으니까 건강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해보도록 하자. 

 주인공 시루는 민속학자인 엄마 몰래 손에 넣게 된 저주책과 칠보로 장식 된 펜을 가지고 저주의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만든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셈과 인터넷은 잘하는 시루는 이 스티커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생각해냈고, 사용자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서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몇백까지 가격을 붙여 저주 판매를 시작한다. 시루는 나름 기준을 세워 저주를 판매하지만 저주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악의와 거짓을 목격하고 저주팔이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때 사람들에게 붙은 저주 스티커를 떼어내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밥을 먹는 소우주였다. 만든 사람과 붙인 사람 외에는 볼 수 없는 저주 스티커를 볼 수 있고 떼어낼 수도 있는 우주의 등장과 함께 스티커에 얽힌 과거와 반작용이 드러나며 시루의 갈등도 깊어진다. 

 고등학생인 시루와 우주에게 맡기기엔 너무나 큰 사건으로 일이 번져가지만 나름의 용기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무모함은 한 편의 모험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반쯤은 빈말인 가슴속의 상처를 쏟아내던 시루는 정말 세상을 흔들만한 저주의 위해 앞에서,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치기어렸던 마음을 정리하고 한층 성장하게 된다. 저주가 모이면 큰 재해가 일어난다는 '스티커'의 설정은 얼마 전 보았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혼문'과 비슷해보였다. 이쪽은 반대로 긍정적인 힘이 모여서 세상을 지키는 '혼문'이라는 방패막이 생긴다고 했는데, 저주가 모여 재해가 되는 것도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과 비슷한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어서 흥미로웠다. 

 '스티커'는 흡입력마저 접착력 못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내용인지 살짝 훑어볼까 하고 잡았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음 장, 다음 장 넘어가다 다 읽어버렸다. '저주는 스릴, 쇼크, 서스펜스!' 이 모든 것들을 다 챙겨 넣은 고자극, 꿀잼 보장 청소년 소설이 등장! 초판 한정으로 책꾸 스티커도 증정하고 있다. 사실 스티커 실물 보고 약간 제작 감성을 의심하긴 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조금 귀여워보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시루랑 우주 얼굴 말고 개미떼랑 구름, 스마일 넣어주시지! 다크웹 저주 구매 작성 양식 넣어주시지! 하지마요, 가까이 오지 마요, 말 걸지 마요 스티커 만들어주시지! 하고 아쉬운 마음도 남았지만, 책표지는 이미 잘 꾸며져 있는 관계로 스티커는 잘 보관해보기로 한다. 저주의 신이 퍼트린 저주책이 아직 더 남아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스티커'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득찬 재미와 반전, 약간의 감동까지! 모두 담은 '스티커'를 여름과 함께 할 청소년 도서로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터널의 밤 - 네덜란드 은손가락상 수상작
안나 볼츠 지음, 오승민 그림,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넷이었지만 셋이 되었고, 우리가 넷이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는 도입부는 '터널의 밤'이 정해진 슬픔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알려주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독일의 공습을 받고 있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죽음과 폐허가 된 일상이 담겨 있으리란 예감은 했지만 엘라와 로비, 제이, 크윈을 차례로 만나며 그 애들이 넷에서 셋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단 생각을 했다. 이 소년소녀들의 만나 함께 폭격을 버텨내는 상황은 만화 '세븐시즈'*를 떠올리게 했다.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 우리는 이 슬픔과 고통을 우리의 것에 비추어 함께 이해해주는데, 반대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저들에게 얼마나 이해받고 있는가를 떠올리면 씁쓸하다. 하켄크로이츠가 왜 티셔츠의 무늬로 사용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배경으로도 소모되어서는 안되는지, 욱일기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서양인들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읽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우리 것을 훔쳐가 이렇게 잘 보존하고 전시해놓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것은 얼마나 더 귀히 다루겠는가**했던 문장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의 역사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이를 마땅히 함께 존중하고 분담하도록 하면서 같은 시기의 일본이 행한 침략과 착취, 비인도적 행위를 연결해내지는 못하는 점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가 과거를 두고 어떤 반성과 교훈을 얻었던간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정당이 다시금 힘을 얻고 있고, '지나간 역사'로 일컬어지던 파시즘이 불길한 역사의 반복을 향해 그림자를 뻗어나가는 흐름을 보인다.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들이 있고, 그 안에 우리와 같은 언어와 뿌리를 가진 사람들도 군인으로 생명을 빼앗으며 동시에 잃어가고 있다.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이권을 놓고 다투며 갈등과 긴장의 양상이 흐르고 있다.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도 국민을 향해 총부리가 겨눠지고, 한 사람의 시민이 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는 밤이 지났다. 평화를 말하는 모든 의미있는 것들 문학, 음악, 미디어, 선행, 생명까지도 차갑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 그래도 평범한 우리들은 이렇게 책을 읽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터널의 밤'은 그런 의미를 전해준다. 

마구간 소년이 많이 등장하고 강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크윈의 귀족적인 면모를 상쇄해줄 인물이 아니라 새장161를 한번 더 드러나게 해주는 인물로 작용하는 부분이 좋았다. 

얼마 전에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다. '화이트 버드'***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터널의 밤'과 배경, 인물이 비슷했다. 전쟁 상황에서 유대인인 여자주인공 사라가 독일군에게 끌려갈 위험에 처했을 때 남자주인공 줄리안과 그의 가족이 그녀를 돕는다. 줄리안 역시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하다. 줄리안은 예쁜 소녀인 사라를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사라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알리지 못했다. 이 짧은 소개만으로도 소아마비로 특수신발을 신고 다니는 엘라와 지나치게 잘생겨 땀냄새까지도 달콤한 소년 제이가 떠오를 것이다. '터널의 밤'을 감명깊게 읽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스크린으로 옮겨 환상적인 동화처럼 -그러나 그 슬픔을 찬연하게 담아낸 이 영화를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세븐시즈, 타무라 유미'가 뭐냐면, 이 설명이 필요한 분은 그냥 보세요. 물론 저는 요즘 행복한 사이다 형식이 아니면 못보는 병에 걸려 감상을 중단하긴 했지만 괜찮은 만화입니다. '터널의 밤'은 특히 '겨울 팀'을 떠오르게 한다.
** 뺏어 온 것도 잘 보관하고 또 그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들 것에 대한 애착은 말할 나위도 없겠구나. 이미 많이 빼앗긴 우리들은 그나마 남은 것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돌이켜보아야 하겠군'하고 말이에요. 17. 서장 빠리에 오세요 중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창비
***화이트버드, 2025개봉 
동명 원작소설 '화이트 버드'와 같은 작가의 데뷔작 '아름다운 아이'가 각각 영화 '화이트 버드', '원더'로 만들어져 이어지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볼보와 볼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0
김혜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고 슬퍼라, 책장을 덮으려니 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정해진 상처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저 조금 어떤 인물인지 더 알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수에게 너무했다 싶었다. 조금 덜 아픈 인물로 그려주었어도 좋았을텐데, 세상에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차마 건축가를 꿈 꿀 줄도 몰라 포클레인 기사가 되고싶었던(142) 소년에게,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온종일 굶어도 가만히 있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던 어린아이였던(135) 소년에게 참 너무했다. 처음엔 애꿎은 포클레인에 돌을 던지던 주현이가 안타까웠는데 나중엔 나도 어딘가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졌다. 

 " 그날 주현은 어른이 되는 장거리 경주에서 동수가 막 자신을 추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3이 되자 동수는 운 좋게 일찌감치 지역의 작은 건설 회사에 현장 실습생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그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수의 첫 근무지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거기서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에게 치킨을 사 주었다. 53" 

 처음 일을 시작했을때,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먹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었다. 월급이 적으니 큰마음을 먹었어도 사줄 수 있는 음식은 고작해야 치킨이며 피자나 중식 요리 정도였었다. 몇만원을 계산하면서도 가끔은 손을 떨어야했는데 그때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음식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비싼 식당에 가서 밥을 사도 그만큼 뿌듯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동수가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이에게 치킨을 사주었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던 것처럼, 또 어떤 어리고 꿋꿋한 사회초년생들이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날이면 적금, 교통비, 식비, 학자금, 공과금, 월세 사이에서 몇만원을 살짝 빼들고 한턱 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 그날 밤 한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당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하러 간 거야. 용기가 필요했어. 당신 말대로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게 위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도 해 보고 싶어. 당신이 가까이에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아.
그는 메시지를 읽고는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130"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은 모두에게 숙제다. 주현이나 동수, 은수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길 위에 서서 여전히 이 길이 맞는지 제각각의 방향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볼보와 볼보'가 좋은점 중 하나는 어른이 된 인물들의 시간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나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종훈이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도 다른 아이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게 숨김없이 드러내어 종훈이 동수를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은수의 삼촌도, 느닷없이 아이를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괴물같던 은수의 아빠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한나도 나이를 먹고 저절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도 세상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다시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과 의지처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말한다.  

 친구를 두고 혼자만 어른이 될 수 없어 방황하던 주현이도, 세상과 부딪혀 영혼이 다치고 혼자가 된 종훈도, 친구에게도 제 속내를 털 어놓지 못하던 은수도, 한때는 누군가의 꿈을 위한 표가 되어줄 수 있었던 은수의 아빠도 모두가 삶을 살아내기 위한 통을 겪어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결국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서 하나같이 애틋해진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만큼만 해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이 가끔은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수가 닫았던 마음을 열고 다시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종지부를 찍었던 종훈과 한나가 다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방황하는 주현이에게 기회와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이 있어준 것처럼, 은수가 친구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길은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 어린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클라우디아의 비밀'이 나왔을 때(15) 반갑고 슬펐다.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 책을 언제부터 책장에 꽂아둔 채로 다시 열어보지 않았을까. 분수대에 들어가 몸을 닦으며 사람들이 던져둔 동전을 줍던 장면을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하고 아껴주겠지,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볼보와 볼보'도 성숙하고 치열한 인물들이 유리창이 깨진 볼보 포클레인과 털이 잔뜩 엉킨 강아지 볼보를 두고 조심스럽게 얽혀 결국 서로의 방향이 되어주고 더 아래로 주저앉지 않도록 안전망이 되어 주는 관계성에 위로받고 공감해줄 것이다. 모두가 애틋해서 한참동안 표지를 눈으로 덧그렸다. 어린아이가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이 빼곡하고 순수한 표지의 그림이 볼수록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을 울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청소년도서를 만나보고 싶다면 '볼보와 볼보'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지의 힘 꿈꾸는돌 42
이선주 지음 / 돌베개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너, 나 좋아하냐?" 
유익표는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p14" 

 가만히 읽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쉽게 마음을 열고 웃어주지 않으려 했는데 금방 웃어버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했던 익표와 여준이는 학폭이 아니었고 3년 동안 삐지고 달래던 사이가 회복됐으니 안심이었는데, 어른의 색안경도 함께 빠지는 장면이었다. 애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이 문제였다. 하지만 익표의 잘못은 분명했다. " 애들은 유익표가 하는 말은 다 거짓으로 들었기 때문에 유익표가 나와의 사이를 인정하자 우리 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 뜻밖의 효과였다. p127" 익표야, 대체 어떤 삶을 사는거니? 

 매번 웃음이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검지의 힘'은 정말 재밌다. 게다가 그 안에 감동도 가득하다. 이렇게 짧고 잘 읽히는 글 안에 재미와 감동, 게다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다 채워넣은 이 장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막상 청소년 시기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문학과 고전 명작, 머리 터지는 SF, 자극적인 추리소설 같은 것을 읽느라 몰랐던 것이 아쉽다. 살짝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어설프게 요즘 유행하는 말 같은 걸 끼워넣지 않은 덤덤함도 매력이다.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데 주변 아는 청소년중에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것이 안타깝다. 

 " 슬정아가 웃었다. 슬정아처럼 잘 안 웃는 애들의 장점은 한번 웃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뿌듯함을 안겨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웃겼어, 하는 뿌듯함. 성적이 오를 때보다 남을 웃길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p43" 책 읽다가 깜짝 놀랐다. 광대 역할을 하느라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남들 얘기에 웃어주는 역할이 추구미였다. 이루질 못해서 그렇지. 웃기는 애는 우스운 애 되기도 쉽다는 씁쓸한 현실과 웃기는 애보다 웃어주는 애가 더 매력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다 웃기고 나서 알았다. 잠깐의 뿌듯함 때문에 지은 수치의 산이 백두산은 아니어도 동네 뒷산 만큼은 된다. 남은 생은 평탄화 작업 하는데 써야지. 

 '검지의 힘'에서도 이별이 나오는데, 하지와 영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며칠 전 사거리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고 반가워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르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은 언제 늙고 어른이 되는가 했더니 그 모습이 풋풋하고 예뻐보이면 그때 되는가보다 싶기도 했다. 요즘은 길다가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예뻐보인다. 어두운 골목길에서는 좀 무섭고.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교할 때 헤어져놓고 동네 길목 어딘가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웠던 얼굴들, '야'하고 뛰어가 온몸을 내던져 서로를 안으며 반겼던 투명함. 

  그렇게 세상 영원할 줄 알았던 친구들과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책을 읽으며 차례대로 '강물처럼 흘렀다'(3. 우정은 강물처럼 흐른다). " 초등학교 3학년에 만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의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나간다. 나비와 함께 나의 일부도 떠나보낸 듯 공허했다. 그러나 따라갈 수는 없다. 친구는 그곳에서, 나는 여기에 남아 각자의 인생을 꾸려 갈 것이다. p123" 하지와 영인의 이별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예감도 없이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된 인연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정리된 인연들이었지만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말 해주고 꼭 한 번 안아줄 걸 아쉬웠다. 그저 가끔 마음으로나마 '친구의 미래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나는 하늘의 구름처럼 온몸으로 친구를 축복(124)' 할 수 밖에. 

 청소년도서를 좋아하는데 가끔은 읽다가 지칠 때도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 계기가 되어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오를 때다.  조금 기분 나쁘고 말았던 혹은 그때는 별 생각 없던 사소한 일들이 기억도 나지 않고 있다가 단 한 장면을 통해 떠오른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도서를 읽을 때 되살아나는 것들은 어쩐지 그중 가장 예리하고 연약한 부분을 찔러온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소설들이 그냥 검지라면, 청소년도서는 특별히 힘이 센 검지라서 가끔 부주의하게 '검지의 힘'을 써버렸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찔릴 것이 두려워 읽지 않기엔 너무 재밌고 매력있는 책이다. 검지의 힘을 옮길 때처럼 간절하게, 이 매력을 전달하고 싶다. "(읽어) 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