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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냉소적인 척 정치인들 다 똑같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게 아니라 덜 나쁜놈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말했지만 요 몇년간을 보내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구나 체감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인가 싶게 선택의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왔다. 누군가는 엉망이 된 지난 몇년간을 형벌로써 깨닫지도 못하겠지만 겨울이 길었던만큼 세상이 차고, 앞으로 놓여질 청산의 과제가 여름의 뙤약볕만큼이나 고될 것이다. 뉴스에 곧잘 나오는 국회의 모습, 공약만 번드르하고 버스값조차 모르는 꼴을 보며 정치한다고 나서는 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겨먹는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국정 노트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구나 비교하며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넷플릭스 순위나, 음악 차트 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컨텐츠들이 세계 순위권에 올라있다. 부끄러운 한국밈 중 하나인 '두유노김치'나 우리가 보기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싶은 대형비빔밥 만들기 행사 같이 그토록 열심히 했던 헛발질이 어느새 땅에 닿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문화를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두유노'하지 않아도 우리를 알아준다. 그 바탕에는 " '노동력보다 사고와 지식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다'는 앨빈 토플러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음반, 출판 등 분야별로 한국과 세계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서, 우리 문화 산업을 확장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p48" 문화의 힘을 강조한 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좋은 컨텐츠만 만들어내면 일본에서 항상 한국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니까,하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하던데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듯 하다.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려했던 만화, 음악 같은 것들엔 오히려 영향이 덜하지만 술, 여행, 알 수 없는 일본풍 식당이나 술집 같은 것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 김 대통령이 "최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미 많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금서 읽어 보셨죠? 저도 많이 읽었습니다. 금서의 정의는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인기 있는 책'입니다. 금서를 없애려면 단속할 게 아니라 그냥 풀어 줘야 합니다. 금서는 풀리는 그 순간부터 인기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똑같다고 봅니다." p53" 금서에 관한 생각은 확실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보다 더욱 욕망하게 된다는 시각이 맞지만,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와중에 일본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는 세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책에 어쩔 수 없이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노트 내용을 보다가 윤석열이 제1야당 대표와 회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내용(p123)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진다. 공교롭게도 또 12.3인 비상계엄과 국제 사회의 위태로운 행보로 박살이 난 경제는 1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화두로 올려놓았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강행(p193)했던 것처럼 장기고액체납자들부터 과거 친일파 부당이득, 재산 환수 등 세수 확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을 21대 당선자는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언론사 세무 조사에 있어 추징만 좀 많이 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3개 언론사 사주 구속(p210)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단 소회에 웃음이 나왔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특히 다음 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p215)가 최근 탄핵된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어 읽혔다. 국민들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며 아까운 청와대 자리만 날리느라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에, 공부하고 시험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에 서는 것보다 격부터 갖추고 인성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현재의 교육방식도 뿌리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꽤 유명하게 퍼져있는 대통령의 '문패p100' 일화는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도 일부 함께 알려져 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감탄이 나올만큼 진보된 사고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육을 강조한 모성 보호법과 여성의 경제활동 필요성 역설p106'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페미니즘의 움이 트려는 시도 끝에 이에 반발하는 역풍이 불어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인식 개선 또한 멀다.
각 장의 내용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국정 노트의 복사본이 그대로 실려있는데 보고 놀랐다.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곁들인 조사나 어미, 간단한 한자와 간간히 적힌 영어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은 이 중요한 노트를 대통령이 직접 미리 보여주었대도 아무 소용없었겠구나 싶어졌다. 다행이도 책에는 저자가 독자를 위해 직접 한자 내용을 하고 싶다. 솔직히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를 어떻게 타개해나가려 했는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왜 여기에 이 돌을 두었는지, 몇 수 앞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는지 시류를 읽어나가는 힘이 마치 바둑 풀이를 보는 느낌이다. 6월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