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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평점 :
" 히스토리카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 또는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학의 필수 요건이며 글이 있기에 과학은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글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지금, 여기에만 묶여 있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8"
책은 총 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고대 세상의 기록은 1200년경까지의 기록물들에 대한 내용, 2장 출판의 르네상스는 책 제작 방식에 인쇄술이 도입된 후 나타난 변화들에 관한 내용, 3장 근대의 고전은 과학책이 대중으로 독자층을 넓혀나간 후의 변화, 4장 고전을 벗어난 과학책은 과학이 전문 분야로 자리잡으며 나타난 변화, 5장 다음 세대는 1980년 경 부터 대중 교육에서 흥미와 정보 전달로 달라지기 시작한 과학책의 경향을 담고 있다. 궁금한 장부터 찾아 읽어봐도 좋겠다.
최근 읽은 책에서는 우리가 글을 씀으로 기억을 하려는 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을 봤다. 적어두었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정보를 머리속에 저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엉뚱한 주장이었는데, 지금 과학의 발전과 글에 대한 내용을 보니 글의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는 특성에 크게 공감했다.
뒤로 이어지는 인쇄술 이야기에서 목판 인쇄술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 868년]을 꼽고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내용은 아쉽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현존 최고의 인쇄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04~751년 추정]인데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다니 아쉽다.
첫번째 장을 읽으며 "로마인들에 관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과학 발전에는 거의 기여한 게 없다는 것(14)"이나 알하킴이 나일강 물줄기를 바꾸겠단 약속을 했다 못 지키게 되자 죽을 때까지 미친 척했다는 일화(78), 피보나치수열의 피보나치가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었다는(84), 그러나 영원히 피보나치로 불리며 고통받는 피보나치의 이야기처럼 소소하게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두번째 장으로 들어서면 "과학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늘 인기가 좋다(96)"는 시작처럼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등장 만으로도 내용 자체가 그냥 흥미롭고 재밌다.
마찬가지로 갈릴레오가 등장했을 때도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피사의 사탑의 낙하 실험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146)"고 보고 있는 내용은 의외였고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같은 장에서 소개되는 다윈의 [식물원]은 삽화도 아름답고 진화론을 떠올렸던 데에 비하면 신선한 접근이 되어주어 반가웠다.
세번째 장에서 근대로 들어오며 돌턴이 등장하는데, 얼마 전 탄소의 원소 기호를 물어오는 일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수헬리베붕탄질산을 내뱉고는 어리둥절 했던 기억이 나 반가웠다. 과학 저술의 범위를 천문학, 물리, 화학에만 두지 않고 생물학, 해부학 저서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다양한 삽화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전에는 다윈의 [식물원]을 소개했다면 3장에서는 [종의 기원]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 익숙한 내용을 만나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목해야 할 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연구에 대해 간략한 안내를 해주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 깊거나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다. "379쪽에 이르러서야 "지금까지 정의한 대로 덧셈하면, 이 명제에 따라 1 더하기 1은 2가 된다." 233 [수학의 원리]"는 내용이 나올 염려는 없는 것이다.
3장 끝부분에 들어서서야 과학에서의 여성에 대해 나오기 시작하는데, 4장은 아인슈타인과 함께 마리 퀴리로 내용을 시작한다. 더불어 레이첼 카슨의 명저 [침묵의 봄]을 만나볼 수 있다. DDT 사용 제한 조치 때문에 모기 박멸의 기회를 놓쳤다는 책의 내용이 사실일지 궁금해졌다.
1976년 첫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소개되는데, 얼마 전 [불멸의 유전자]를 읽었기 때문에 특히 더 반가운 장이었다. 불멸의 유전자가 자연철학자들에게 받는 비난에 반박하는 "과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더이상 감탄하지 않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더 깊이 통찰해 더 큰 감탄을 일으킨다. 288"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장들이 과학이 철학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의 영역으로 넓혀지고 확고해졌는지를 살펴봤다면, 4장은 다시 철학적 사고로 돌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확실히 현대로 오면서 유명한 책들의 제목이 익숙해지고, 어떤 책들은 전체나 일부를 직접 읽어본 것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최신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330)"이는 독자밖에 될 수 없지만 그 조차도 접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 혹시 여러분은 제 설명을 듣고 나면 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저는 왜 여기서 여러분을 귀찮게 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제가 설명할 내용을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왜 거기에 앉아 계시죠? 왜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안 된다고 여러분을 설득하는 게 제 일이기 때문입니다. 후략... 271"
책을 읽다가 문득 지치거나 좌절하게 될 때 경쾌한 어조로 힘을 북돋아주는 문장이었다. 리처드 파인먼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의 서문에 있는 내용이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한 부분을 알고 흥미와 즐거움을 느꼈다면 괜찮은 독서였던 것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세계관의 발달을 수를 셈하려는 시도부터 보고 있는 시작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기록'이 과학 발전과 정리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문자의 발달과정부터 첫 내용이 시작되는 점도 재밌다. 아주 넓은 범위로 시작하는 인류의 발전과정을 이야기로 들려주듯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장점이자 매력이었다.
첨부된 사진, 그림 자료들도 많아서 보는 동안 따로 찾아볼 필요없이 언급된 자료에 대해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료들의 색감이 더해지고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선명해지고 가독성이 좋아지는 변화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에른스트 헤켈의 [자연의 예술적 형상] 삽화들(225-227)을 보다보면 한 가지만 잘해서는 세계사에 이름을 올릴 수 없겠구나 싶어진다. 다만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꽃등에 머리를 확대해서 그려놓은 섬세한 그림(154)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핵심적인 이론, 인물, 저서 등을 키워드로 삼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주제와 크고 두꺼운 책의 무게감에 비해서는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다.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 아는 내용이 많다고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책을 썼다면, 독자인 우리들은 그 부름에 마땅히 응하도록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