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밌게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속으로 당당히도 난 별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일상은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고 때때로 느끼는 압박은 약속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거나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사소하고 고만고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p17)'이라고 예를 들어 8차선 도로를 그냥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하자마자 내가 그동안 가졌던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내게도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생각되는 날 전날에는 잠을 못잔다. 잘자고 좋은 상태로 다음날 일정을 소화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야한다는 압박감이 들고, 그럼 잠이 잘 오지 않고, 잠이 안온다는 압박감에 다음날 내 상태에 영향이 미칠 것을 걱정하고, 결국 초조해져서 더 잠이 안오는 것이다. 장시간 산에 오르거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거나, 기대되는 영화를 보러갈 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것도 일상의 사소한 불안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저자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잘 먹고 잘 자는 생활리듬(p77)'이 깨지는 불안상태였던 것이다. 왜 나는 불안의 이름조차 몰랐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소름끼치게 내 이야기야! 라고 공감한 것이 '집에 손님이 오신다(p30)'였다.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오신다 그러면 불고기 굽고 있는 반찬 차려서 대접하자 이럴 수도 있는데, 손님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고기도 차리고 회도 차리고 반찬도 열개쯤 새로 해서 놓는 거예요. 그러면 준비하다 지쳐버리고 다시는 손님 부르지 말아야지 싶어지죠." 이걸 과잉 반응으로 인한 불안이라고 하는데 정말 집에 누가 오는게 싫은 이유가 청소하다 지쳐서인 나로써는 내 몸이 100의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이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책에서도 MBTI에 대한 얘기(p38)가 나오긴 하지만 그동안 내향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했던 손님싫어 현상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타인과 어울림에 있어 두드러지는 내향적인 면이나 짜증을 느낄 때면 죄의식이 생기곤 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단순히 내가 덜 된 사람이라서만이 아니라 " 내 몸이 '너 오늘 여기까지야' 하고 나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 p43"였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예민하고 짜증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런 면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함께 밝혀둔다. 책에서도 " 성격 문제와 같이 고치기 어려운 것으로 생긴 불안이라고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불안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입니다. p74" 라니 성격보단 체력 문제인 것으로. 

나이에 따라 불안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도 인상적인데 중년기에 겪을 불안에 대한 영화배우 안성기 씨의 이야기(p60)가 공감됐다. 늘 주연만 맡아서 들어오던 배역이 어느 순간 조역으로 달라지면서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그동안 나이듦에 대해 느꼈던 압박과 불안이 떠올랐었다. 여성은 젊고 날씬하고 예뻐야만 한다는 강박을 꿰뚫는 영화인데,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덧칠하다 지우는 데미 무어의 모습에서 강렬한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젊음에서 나이듦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하는 요즘이라 이 불안을 '올 게 왔다(p64)'고 인정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지 책을 붙잡고도 한동안 심란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불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도 불안은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하는 것(p8)'이라 표현한다. '난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를 통해 내 안의 불안을 인지하고, 조금 낮은 기준으로 불안의 원인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불안이 다른 것처럼 책을 통해 다른 것들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교양 100시리즈는 처음 접하는데 말미에 필사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짧지만 알찬 도움을 챙기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소적인 척 정치인들 다 똑같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게 아니라 덜 나쁜놈을 뽑는 것이 선거라고 말했지만 요 몇년간을 보내면서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구나 체감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부작용인가 싶게 선택의 형벌은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왔다. 누군가는 엉망이 된 지난 몇년간을 형벌로써 깨닫지도 못하겠지만 겨울이 길었던만큼 세상이 차고, 앞으로 놓여질 청산의 과제가 여름의 뙤약볕만큼이나 고될 것이다. 뉴스에 곧잘 나오는 국회의 모습, 공약만 번드르하고 버스값조차 모르는 꼴을 보며 정치한다고 나서는 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겨먹는 노릇이라 생각했는데 국정 노트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정치를 한다는 것이구나 비교하며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넷플릭스 순위나, 음악 차트 같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컨텐츠들이 세계 순위권에 올라있다. 부끄러운 한국밈 중 하나인 '두유노김치'나 우리가 보기에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외국인은 오죽할까 싶은 대형비빔밥 만들기 행사 같이 그토록 열심히 했던 헛발질이 어느새 땅에 닿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문화를 알렸더니 자연스럽게 '두유노'하지 않아도 우리를 알아준다. 그 바탕에는 " '노동력보다 사고와 지식의 힘이 시장을 지배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다'는 앨빈 토플러의 언급을 인용했다. 이어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음반, 출판 등 분야별로 한국과 세계 시장 규모를 비교하면서, 우리 문화 산업을 확장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p48" 문화의 힘을 강조한 정책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좋은 컨텐츠만 만들어내면 일본에서 항상 한국은 국가에서 보조해주니까,하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하던데 아마 이 시기를 말하는 듯 하다. 

더불어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서는 요즘 여러 생각이 든다. 확실히 우려했던 만화, 음악 같은 것들엔 오히려 영향이 덜하지만 술, 여행, 알 수 없는 일본풍 식당이나 술집 같은 것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 김 대통령이 "최 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이미 많이 돌려보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께서도 금서 읽어 보셨죠? 저도 많이 읽었습니다. 금서의 정의는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인기 있는 책'입니다. 금서를 없애려면 단속할 게 아니라 그냥 풀어 줘야 합니다. 금서는 풀리는 그 순간부터 인기가 없어져서 사람들이 읽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똑같다고 봅니다." p53" 금서에 관한 생각은 확실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보다 더욱 욕망하게 된다는 시각이 맞지만, 청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있는 와중에 일본문화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되는 세대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 

책에 어쩔 수 없이 탄핵 당한 전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노트 내용을 보다가 윤석열이 제1야당 대표와 회담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내용(p123)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진다. 공교롭게도 또 12.3인 비상계엄과 국제 사회의 위태로운 행보로 박살이 난 경제는 10조원 규모의 추경 필요성을 화두로 올려놓았다. 요즘 쓰레기 파파라치 때문에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 언론사 세무 조사를 강행(p193)했던 것처럼 장기고액체납자들부터 과거 친일파 부당이득, 재산 환수 등 세수 확보를 위한 현명한 방안을 21대 당선자는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언론사 세무 조사에 있어 추징만 좀 많이 당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3개 언론사 사주 구속(p210)까지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단 소회에 웃음이 나왔다.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특히 다음 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이야기(p215)가 최근 탄핵된 대통령의 행보와 비교되어 읽혔다. 국민들은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청와대를 돌려주겠다며 아까운 청와대 자리만 날리느라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찾아볼 수도 없는 행태에, 공부하고 시험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에 서는 것보다 격부터 갖추고 인성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현재의 교육방식도 뿌리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꽤 유명하게 퍼져있는 대통령의 '문패p100' 일화는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도 일부 함께 알려져 있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감탄이 나올만큼 진보된 사고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보육을 강조한 모성 보호법과 여성의 경제활동 필요성 역설p106'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뒤로 페미니즘의 움이 트려는 시도 끝에 이에 반발하는 역풍이 불어 갈등이 깊어지고 사회의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어 있으니 앞으로의 인식 개선 또한 멀다. 

각 장의 내용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국정 노트의 복사본이 그대로 실려있는데 보고 놀랐다.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곁들인 조사나 어미, 간단한 한자와 간간히 적힌 영어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같은 사람은 이 중요한 노트를 대통령이 직접 미리 보여주었대도 아무 소용없었겠구나 싶어졌다. 다행이도 책에는 저자가 독자를 위해 직접 한자 내용을 하고 싶다. 솔직히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이를 어떻게 타개해나가려 했는지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왜 여기에 이 돌을 두었는지, 몇 수 앞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는지 시류를 읽어나가는 힘이 마치 바둑 풀이를 보는 느낌이다. 6월을 앞두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을 가다듬으며 읽어보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읽은 책을 모아서 분류한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과 간직할 것. 대부분은 욕심껏 간직하는데 읽으면서 누군가가 떠오르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주거나 혹은 새로 한 권을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요즘은 책장 빈자리가 위태로워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말을 왜 하냐면, '화가들의 꽃'은 책장이 무너져도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처음 책을 펼쳐보고 책인지 꽃다발인지 모를 화사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매혹적이고 다채롭고 관능적이고 강렬하고 감각적이며 암튼 좋은 수식어가 와르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테면 그림도 좋은데 그것도 명화들 중에 더욱이 꽃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었다니! 좋은것에 좋은것을 더하면 더더욱 좋기밖에 더하나? 게다가 이 색감을 고스란히 살려내려 작정한 듯한 재질이라니. 푸른숲 정말 무서운 곳이다. 

 요즘 책을 읽을 때 뜻대로 진도가 안나가면 어디든지 들고 다니면서 한줄 읽고 다시 다른 일을 하고 늘 같이 다니려고 해보는데, '화가들의 꽃'은 그냥 좋아서 안고다녔다. 어딜 펼쳐봐도 빤히 들여다보게 되고, 예뻐서 홀리듯이 보고 또 보게 된다. 이런 제가 이상해보이겠지만 정말 책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게다가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입은 닫고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실행하듯 설명은 간결하고 작품은 풍부하다는 것이다. 

 페이지 전체가 작품으로 가득한 곳을 펼쳐놓고 있자면 시각부터 시작된 강렬함이 마음까지 스트로크로 전달된다. 책멍도 가능하다. 레이철 레비 '장미(p96/97)'들을 보고 있자면 향이 진해지다 못해 살짝 단내가 섞인 장미의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꽃은 그 자체로 균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섬세히 그려낸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지만 스탠리 비엘렌의 '라눙쿨루스(p84/85)'들이나 이본 히친스의 '짙은 색 양귀비(p80/81)'같은 작품을 보면 단순함이 주는 매력도 느껴진다. 

 얼마 전 다녀온 불교박람회에서는 주로 연꽃이나 모란이 그림 속에 등장했는데 마찬가지로 책에서 만나는 연꽃, 모란, 국화등 익숙한 꽃들은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서양 쪽에서는 수선화나 팬지, 백일홍 등의 낯익은 꽃들도 등장하지만 특히 장미와 양귀비가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화가들의 꽃 동양편도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개나 자수로 표현된 꽃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정말 화려하고 예쁠텐데. 

 영화 '콘클라베'를 보며 사람은 오래된 것, 거대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 압도당함을 느꼈는데, '화가들의 꽃'은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새 만개한 봄꽃들을 보며 봄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지만, 어느 계절인들 또 안 어울릴까 싶다. 봄을 맞아 책장에 시들지 않는 꽃을 간직하고 싶다면 '화가들의 꽃'을 선택해봐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른p5'다며 걱정했지만, 고종 황제가 즐겨 먹은 간식이라는 컨셉으로 카페들이 종종 있을만큼 생각보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넘어와 향유되었음은 잘 알려져 어색하지 않다. 책에서 다루는 디저트들은 지금도 즐겨먹는 것들이라 각 장에 맞는 간식을 준비해두고 책을 함께 읽어나가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 두 소설을 고려하면 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었음도 알 수 있다. 지금 커피에 설탕을 타서 마시면 커피 맛을 모른다고 눈치를 주겠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세련된 입맛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정제당이 생산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p19"  아메리카노에 시럽 넣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아메리카노는 소화제이자 뒷맛없는 간식이고 다음날 쓸 체력을 미리 끌어다 쓸 수 있는 현대인의 필수품인데, 거기에 단맛을 넣으면 먹은 것을 싸악 내려주지도 못하고 들쩍지근한 뒷맛이 남으며 쌉싸름히 퍼지는 각성효과가 반감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라떼는 달아도 된다. 재밌는 점은 앵무새설탕이니 머스코바도니 하는 설탕들이 요즘도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는 기호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p54"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바로 저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판다'는 것이 한동안 커피업계의 핵심으로 작용했다. 커피 맛이 일정 수준 이상 보편화되고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기준은 가게의 분위기와 편의성에 더 중점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맛있는 커피를 파는'에도 관심이 나뉘어졌는데, 에스프레소 바는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등장했다가 유행을 타면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이상과 메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센비키야라는 가게가 지금도 도쿄 긴자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116)된 것을 보니 가보고 싶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도 센비키야의 메론이 먹고싶다 할 정도의 상징성이 느껴질까. 메론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참외로까지 이어지는데, 한국산 참외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80퍼센트 이상이 일본에서 수입한 개량종 긴센 마쿠와우리를 은천참외라는 이름으로 생산, 개량해나간 것이었다는 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127) 긴센 마쿠와우리가 은천참외가 되었다가 차매라는 이름으로, 코리안멜론으로 다시 외국에 알려지게 되는 과정을 보면 싫든좋든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이 느껴진다. 요즘 이 메론과 비슷한 위치의 과일이라면 망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간식으로 소개된 만주와 호떡은 묘한 대비를 보인다. 둘다 당시 5전하는 값싼 간식거리인데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만주는 고학생들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는 것, 호떡은 중국인들이 비위생적으로 만들어 좋지 않은 간식거리란 인식이다. 위생이야 지금까지도 유명한 이문설렁탕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서민들 간식거리가 다 비슷했을 텐데, 호떡의 이미지가 유달리 안좋은 것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인상을 부정적으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영향은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호떡이 더 잘 팔렸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호떡이 더 친숙하고 좋은 것으로 보아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나보다.  

 라무네는 병이 특이해 처음 마셔보기 전까지는 꽤 궁금해했던 것 같은데 막상 마셨을 때는 개봉하기 묘하게 불편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인상이 남지 았았었다. 사이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초콜릿에 대해서는 연인들의 디저트라는 이미지에 대해 재밌게 읽었지만, 하필이면 일본과 이야기가 얽혀 있어 모 기업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제품을 판매하면서 우리나라의 제품만 적은 양, 저품질의 성분을 사용하고 그 이유로 '한국인의 입맛엔 저렴한 식물성 유지가 더 잘 어울린다'는 답을 내놓았던 사건만 떠올라 씁쓸하기만 했다. 이어지는 계절 디저트들 고구마와 빙수의 소개는 무난히 읽었다. 일본식 빙수에 대한 인상은 사이다에게 자리를 빼앗긴 라무네와 비슷한데 간 얼음에 시럽을 뿌려 색은 예쁘지만 다양한 토핑의 빙수들에 익숙해진 입맛에는 실망스러운 맛이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디저트들이 아직까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친숙하면서도 새롭게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공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점점 옛 한글 표기법들도 눈에 익숙해지고 요즘의 디저트 문화와 비교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여러 자료를 찾아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음이 느껴진다. 일부 사진 자료들이 컬러로 실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역사박물관이나 군산, 인천 등의 관광지 방문을 즐겨하는 취향의 독자라면 책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론을 읽는 과정은 처음 자유론의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읽기에 익숙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읽어왔지만 읽기만 해도 괜찮았던 여타의 독서들과는 다르게 이해의 과정이 필요했다. 읽으면서 남들 다 자유론 찾아 읽는 대학시절에 뭐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때 안 읽어보고 이제와 초면인 책을 공부하듯 읽어내야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읽는 행위가 이해의 과정으로 소화되지 못하겠다 싶을 때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세번 읽어볼 작정이었으나 한번 읽고나니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은 시점이 지나고 난 뒤였다. 사실 읽으면서 인상깊은 부분을 따로 옮겨적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는데, 책의 대부분을 옮겨적은 것이 아닌가 싶게 많은 분량이었다. 초반에 읽으면서 옮겨적었던 부분들은 사실 그렇게 많은 부분을 기록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지 않아 다시 봤을때 딱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면 서평 내용에서 제외했다. 

자유론을 읽기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언론과 대중의 행태였다. 마침 '들어가는 말'에서 " 하지만 이제 누군가는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에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유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p8"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의문이 가졌던 부분을 짚어주었기에 매력을 느꼈다. 대중의 심판이라는 도마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언행과 삶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일부의 정보만을 가진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가 드러나 상황이 반전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 공중은 비난받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편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선호만을 고려하며 가장 냉담하게 판단을 내리곤 한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어떤 행위를 자신에 대한 피해로 여기고, 이를 자기감정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며 분개한다. p166" 타인의 상황이나 사건의 진실같은 것은 중요치 않고 순간에 끼친 감정과 기분이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간이 된다. 

더불어 자유를 혐오와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 지점이 있는데, " 어떤 것이 행동 규범이 되어야 하는가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장 분명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어떤 두 시대도, 그리고 어떤 두 나라도 같은 결론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 특정 시대, 특정 국가에서 내린 결론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선 놀라운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대나 특정 국가의 인민은 이를 두고 마치 인류가 원래부터 합의해왔던 주제인 양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성취한 규범을 자명하며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여긴다. p26" 부분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였다. 솔직하자면 트렌스젠더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와 같은 입장이 우파 포퓰리즘과 폭력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차별주의와 함께 언급되어 p255 마음이 쓰였다. 이는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와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 젠더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시대로 해석될지 궁금해졌다.  

밀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이 '낮은 계층을 끌어올리고 높은 계층을 끌어내리(p143)'는 교육의 확장과 통신 수단의 발전이 개별성을 위협하고 동질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 모든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방식이나 소수의 방식에 따라 구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이 있다면, 그의 삶을 설계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양과 같지 않다. 심지어 양조차도 서로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게 제작된 것이 아니거나, 창고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지 않은 한, 몸에 꼭 맞는 코트나 신발을 얻을 수 없다. p134"
" 정부가 모든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교육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 일반적인 국가 교육은 사람들을 틀에 넣어 서로 똑같이 찍어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에 불과하다. p206" 등의 내용은 요즘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과거보다 의무 교육 기간이 더 늘어났으며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교육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복지로 여겨진다. 코로나를 겪으며 아주 기본적이라 여겨졌던 사회규범들이 제대로 학습, 훈련, 체득되지 않은 세대의 사례들을 보니 어느 정도 비슷한 기초 교육을 통한 지식과 교양이 '서로 똑같이 찍어내는 과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하나 지금의 관점으로 논쟁적이라 여긴 부분은 " 이와 관련해 우리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단순히 신체를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정신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할 합당한 전망 없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불행한 자녀와 사회에 대한 도덕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p205" 는 내용이다. '가난하면 아이를 낳지말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런 생각은 꽤 확고하여 "생명을 낳는 행위 자체는 인간 삶에서 책임이 가장 큰 행위 중 하나다. 이러한 책임을 맡아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생명을 낳으면서, 그 생명에게 최소한의 바람직한 삶을 누릴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이는 그 생명에 대한 범죄다. 더하여, 인구 과잉이거나 과잉 위협에 처한 국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행위는,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심각한 범죄다. p210" 뒤이어 다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인구절벽 위기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범죄가 되는가? 인구의 과잉이 아닌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는 사회를 밀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앞서 말했던 '특정 시대의 규범을 자명하고 정당하게 여기는 것p26'을 연상시킨다. 

슬프게도 밀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다수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면이 있는데, "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다. (비록 반대할 수 없는 문구는 아니지만) 저급함이나 취향의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중략.. 비록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행동이 그를 어리석거나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개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판단하고 느끼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그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사전에 경고해주는 일은 그를 도와주는 일이다. p153" 현세태를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히 순진한 생각으로 보인다.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무식논란 등에 빗대어 봤을때 요즘 나타나는 양상은 부끄러움이 없다. 도리어 남의 성과/앎을 경멸하고 경고하는 행위들이 대다수에게 일어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뒤로하고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기 보다, 잘난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말을 쓰는지 행위자를 비난한다. 밀도 이런 흐름에서라면 화살을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결이지만 개별성에 대한 내용 중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자기 유형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다른 유형의 우월성에 주목하거나,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하여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끌어내는 첫 번째 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p140"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제법무아가 떠올랐다. 이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자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불교의 용어이지만, 그 '조건' 너와 나의 다름 즉 개별성이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비슷하게 여겨졌다. 앞서 꼽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을 동서양에 공통된 철학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읽는 동시에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생했다. 읽고 난 뒤에 주의깊게 생각하고 앞뒤문장을 살펴 이해의 과정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지적 능력 문제인지 주의력 결핍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혹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 분은 말씀주세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세번 읽었더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가도 더 나은 서평을 쓰는 행위로 이어질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구분짓길래 (인간 대다수는 지적 능력이 중간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성향 역시 중간 수준이다. 그들은 비범한 일을 할 정도로 강한 취향이나 바람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p136) 읽는 와중에 멈칫했는데 다 읽고 나서 재독하는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가지고 살펴봤던 '해제-21세기에 왜 <자유론>을 읽는가? p223'의 내용에서 바로 그는 천재였다는 단언을 보고 깨달았다. 밀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수 없고 그들에게서 느낀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였다. 물론 해제의 내용은 그동안 읽은 내용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였으나, 밀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오가는 회전문 같은 정리였다. 보름 정도를 꼬박 쓴 독서였는데 느슨하면서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휴식형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공산당선언' 같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