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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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히라노게이치로 #현대문학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를 그린 그림이 있다. 변호사 기도 아키라가 그 그림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한 사람의 뒷모습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이야기를 듣고 그의 삶의 궤적을 논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그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주인공 기도 아키라는 리에의 부탁을 받고 한 남자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하는 변호사다. 죽은 남편의 정체를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리에는 아픈 아이가 죽자 치료 문제로 서로 의견이 달랐던 남편과 이혼 후 본가로 내려와 문구점을 운영하였다. 3년여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리에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를 다니구치 다이스케로 알았다. 남편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이름을 사용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을 시간에도 그는 왜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리에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유토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말해주고 싶었다. X에 관한 조사를 하던 기도는 재일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받았던, ‘재일교포 3라는 아이덴티티에 관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관한 깊은 고민을 한다.



 

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는가. 그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조사하는 과정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과 X라는 남자에 관하여 깊은 이해를 하는 시간이다. 추리 형식의 소설이며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사를 시작한다. 미스즈를 만나 다이스케와 사귀었던 일련의 과정을 듣는다. X가 다이스케를 죽이고 그의 신분을 도용했는지 의심하는 한편 우연히 참석했던 사형수들의 전시회에서 어떤 그림을 마주한다. 리에의 남편이었던 X와 화풍이 비슷한 그림이었다. 사형수의 그림을 토대로 그가 저질렀던 살인 기사의 사진을 보고 X가 고바야시 겐기치의 아들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후 어머니의 성을 이어 받은 그의 이름은 하라 마코토였다. 그는 과거 복싱 유망주로 이름을 올렸으며 그마저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은 X가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소설이 변호사, 기도 아키라의 시선으로 사건의 정황, 현재의 감정들을 담았다면 영화는 하라 마코토가 처한 상황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느꼈을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뭇매, 아버지를 꼭 닮은 거울 속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그를 하라 마코토가 아닌 살인자 고바야시 겐기치의 아들로 보았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와 낙인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버리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경우,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을 위한 브로커가 존재했는데,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라 마코토와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상황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전히 앳되고 미남인 츠마부키 사토시와 특별한 매력이 있는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꽤 괜찮았다. 거짓된 삶을 살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거라는 안도감에 공감하지 않았나. 뭇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삼나무를 베는 작업, 다른 사람의 이름일망정 아들과 딸, 아내와 소소한 삶을 누렸던 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가 아닌 한 남자의 소박한 삶이었다.



 

죽은 자는 자기 쪽에서는 부를 수 없고 그저 불러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정확하지 않은 죽은 자는 어느 누구도 불러줄 수 없어서 그만큼 한층 더 깊은 고독 속에 있는 것 같았다. (106페이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남자의 혼란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봐주길 기대하는 남자의 외침 같았다. 김연수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읽은 후 히라노 게이치로의 매력에 빠져 읽은 책이다. 오래전 구매 후 읽지 않은 결괴를 꺼내어 읽을 시기가 된 것 같다.

 

 

#한남자 #히라노게이치로 #현대문학 #책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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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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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창비



 

생명에 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주로 인간을 거론한다. 그것도 아니면 동물 정도다. 하지만 자연 속의, 인간과 동물이 죽고 새로 태어나도록 그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나무일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서 죽을 때까지 나무는 한자리에서 지켜본다. 어디 인간뿐일까. 새들이며 동물들이 나무에서 쉬었다 가고 또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은 한낱 미물일 뿐이다. 그저 잠시 자연을 누리다가 사라질 뿐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않은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개똥지빠귀라는 새였다. 추운 나라에서 남쪽 나라로 날아온 개똥지빠귀의 뱃속에는 팽나무의 열매가 있었다. 폭설이 내리던 날,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빈터에 떨어져 죽었다. 이른 봄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에서 싹이 트고 실 같은 뿌리가 생겼다. 여름이 되자 줄기가 나고 잎사귀가 자라 점차 나무의 모습이 되어갔다. 큰 나무 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산다. 개똥지빠귀의 무리가 오고 가며 팽나무 가지에서 쉬고 배가 고프면 열매를 먹는 동안 팽나무의 나이테는 겹겹으로 쌓인다. 팽나무가 육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조선은 천주교 박해와 동학 운동을 겪고 새만금 개발까지 지나온다. 팽나무는 할매 나무가 되어 그늘이 되어주고, 안식처가 되어준다.

 



할매라는 제목 때문에 어렸을 적 할머니를 떠올리지 않았나. 작품 속 할매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육백 년을 같은 자리에서 지켜온 팽나무를 가리킨다. 자연의 순환과 격동의 한국사를 망라한 작품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팽나무는 모든 걸 지켜본 존재다. 정지아 소설가는, 이 소설은 생명그 자체가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군산의 팽나무는 고유한 생명을 이어오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서낭당이라고 하여 나무를 향하여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말하는 팽나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적산가옥과 근대건축물을 보기 위해 군산을 방문하였으나,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설계한 장소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소설 속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및 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도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며 우리의 염원을 말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팽나무의 존재는 어쩌면 아서왕의 전설에서의 멀린과 비슷하다. 즉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서 격동의 시기를 바라본 팽나무는 우리들의 할매와 같다.

 



유 신부는 혼자서 폐허의 길 흔적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동이 훤하게 터서 낮게 깔린 구름 틈새로 주황빛 아침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마을 터의 가장 안쪽 철망과 대숲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검은 몸을 뒤틀고 서 있는 고목이 보였다. 방지거 신부는 아! 하며 잠깐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팽나무에 안기듯이 두 팔을 벌리고 뺨을 대보았다. 그때 그는 분명히 나지막한 쉰 목소리를 들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216~217페이지)

 



이 책을 읽고 하제 당산마을의 할매 나무인 팽나무 사진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6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할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골네 뿐 아니라 하제 마을 모든 사람의 염원인, 뿌리 깊은 인연의 고리를 보게 되었다.

 



생명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또 스러진다. 스스로 갯벌에 들어가 칠게의 먹이가 된 인간, 그것을 먹은 칠게를 새가 잡아먹고, 새는 나무 아래서 생명을 다한다. 새의 주검은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 나무의 뿌리를 굳건하게 한다. 생명의 순환 과정을 엿보는 듯하다. 마치 불교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작품으로 인해 새만금에 새로운 활기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작품 하나가 주는 반향을 기대해 봐도 될까. 사라지는 갯벌, 자연의 위기에서도 버티고 선 할매 나무의 저력을 믿어보고 싶다.



 

 

#할매 #황석영 #창비 #책추천 #소설추천 #한국문학 #한국소설 #서낭당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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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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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 세계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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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세계 #김연수 #히라노게이치로 #북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두 작가가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연결의 기획 크로스시리즈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우리나라의 김연수와 일본의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협업 작품이 출간되었다. 작가가 가진 고유한 특성의 글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공통의 주제인 책이라는 주제를 통해 각각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비교적 짧은 책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비교하며 확장된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작가의 짧은 소설 한 편과 크로스 인터뷰를 통해 서로의 작품을 보고 드는 생각들을 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김연수 작가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공유한 키워드는 윤리적 딜레마. 예술적인 부분과 윤리를 별개로 구분해야 하는지 갈등 구조를 통해 그 고민을 보여주었다.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졌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다.



 

김연수 작가는 파산과 구속을 각오하고 폭로에 나선 손동하라는 인물을 통해 그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생각의 변화 등을 말한다. 중학생이었던 손동하가 아빠와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타며 과거의 시간으로 간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 서울의 친척집에서 만난 정혜인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정혜인에게 들려주다 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의 뒷이야기를 편지로 전해주는 한편 아픈 엄마의 기억을 떠올린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평생 연구했던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큐레이터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진을 발견하고 그에 대처하는 일들을 말한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도록에서 발췌한 내용 등을 구분 지어 설명하여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작품을 썼다. 전시회를 앞둔 사진작가의 아틀리에에서 아동 성 포르노로 짐작되는 사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외부에 알리는 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관해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그 사진을 전시했을 때 여전히 살아있을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의 예술성과 별개로 윤리적인 면에서는 완전하지 않으냐는 갈등과 고민의 기록이다.



 

비록 전시회를 진행하지 않고, 손동하의 인터뷰를 공개하지는 못하였지만, 소설 형식을 빌려서라도 알리고 싶은 이들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두 작가가 참여한 크로스 시리즈라고 하여 한 명의 주인공을 통해 파생되는 서로의 생각을 다룬 소설이려니 여겼다. 하나의 주제로 엮은 다른 소설이며 인터뷰를 통해 서로의 작품을 토론하는 방식이다.

 



우리들의 실패에서 김연수 작가는 경험하지 못한 과거는 아직 오지 않는 미래와 마찬가지입니다. (35페이지)라고 하였다. 암에 걸린 엄마가 오래 살기를 바랐던 손동하와 재혼한 엄마가 그 집에서 행복하기를 바랐던 정혜인의 미래는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는 그저 우리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아서왕의 전설이었다. 마법사 멀린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모든 미래를 알고 있었던 멀린이 목적을 가진 니뮤에를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나무속에 갇혔다. 미래를 알고 있어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건지도.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은 미투 운동과 더불어 소년의 나체 사진이 불러오는 윤리적 파장에 대하여 말한다. 생리적 혐오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법하다. 미성년자 보호의 관점과 아동에게 성적 관심을 가졌던 이들의 몰락, 예술로 승화될 수 없는 경계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살핀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의 무지란 역설적으로 너무나 많은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요? 독자에게 주인공의 미래가 무한히 열려있음을 보여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중 하나의 미래를 선택하겠죠. 그 과정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논리나 공적인 정의감이 아닌 사적인 잉여의 감정이 개입한다면 필연적으로 합리적 해석이나 선과 악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이야기 자체로서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지 않을까요? (201~203페이지)



 

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라고 한탄하는 가스미의 말이 떠오른다. 후회를 해보지만 미래의 세대와 공유해야 한다고 여기는 말에 공감한다. 추진했던 전시회 작업이 비록 무기한 연기되었어도 훗날 누군가에 의해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 조금은 안타깝겠지만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던 가스미의 선택을 존중하는 바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에 관한 질문을 건네는 작품이었다.



 

 

#근접한세계 #김연수 #히라노게이치로 #북다 #책추천 #소설추천 #크로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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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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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요네스뵈 #비채



 

스노우맨부터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어온 지 꽤 오래됐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 해리 홀레가 연쇄살인범을 만나는 순간 완벽해지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해리 홀레에게 열광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된 해리 홀레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열세 번째 시리즈 블러드문이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 붉게 빛나는 블러드문. 피처럼 붉은 세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다시 해리 홀레에게 매료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면 믿어줄까.



 

연쇄살인범을 잡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는 해리 홀레는 형사로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나 인간으로서는 완벽하지 못하다. 알코올의존증에 빠져있고, 연인을 잃은 비통함에 비틀거린다. 연인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외국의 어디 구석진 곳에 있다가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이면 홀연히 나타난다. 형사들은 그를 그리워하고, 살인사건을 쫓는 그의 능력을 기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술집에서 해리 홀레를 발견할 수 있다. 배우였던 루실과 어울리며 그의 돈 문제에 얽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오게 된다. 부동산 재벌 뢰드의 살인 혐의를 개인적으로 조사한다는 명목이었다. 뢰드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시체로 발견된 여성과 실종 중인 여성에 대한 사건이었다. 루실의 빛을 갚아준다는 조건을 걸고 오슬로에 도착해 수사팀을 꾸린다. 심리학자 스톨레 에우네와 택시기사였던 외위스테인 에이켈란, 비비스라는 별명으로 불린 강력반 형사 트룰스 베른트센으로 죽음을 앞둔 스톨레의 병실이 본거지다.



 

시리즈를 계속 읽다 보면 등장인물이 낯설지 않다. 해리 홀레의 연인이었던 라켈과 그의 아들 올레그, 카트리네 브라트와 비에른 홀름 등이다. 트룰스 베른트센은 비리 경찰이면서도 묘하게 해리와 인연이 있다. 동료이자 친구였던 비에른과 라켈이 죽어 절망에 빠져있던 상태다. 그렇지만 이제 해리는 외위스테인의 조언에 따라 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해리는 연쇄살인범을 알아보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다. 큰 키, 비쩍 마른 몸매, 그의 파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자들은 반하고 만다. 법의학연구소에 있는 알렉산드라 스투르드자도 해리가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들어줄 정도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수많은 복선을 깔아두고 소설이 진행된다. 독자들은 과연 누가 복수에 눈이 먼 프림일지 나름의 추리를 하게 된다. 카트리네가 만나는 아르네? 아니면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요나탄이 의심스럽다. 예상을 빗나갔다. 요 네스뵈는 항상 해리의 주변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게 독자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경찰과 경찰 주변에 있는 사람이 살인범이라고 생각하지 못하지 않나. 살인범은 가까이에서 해리를 지켜보며 조종했다.



 

후각착오증이 있는 해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게 머스크 향기였다. 해리는 그 불협화음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소설에서 머스크 향과 더불어 중요한 모티프가 바로 기생충이다. ‘톡소플라스마 곤디이라는 기생충으로, 프림은 기생충이 든 자신의 배설물, 즉 장액과 효소를 사용하여 감염시킨다. 기생충의 주 숙주는 두려움을 잊는다. 감염자가 주 숙주를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낯선 사람인데도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다가갈 수밖에 없다. 희생자들이 거부하지 않고 깊은 숲속으로 기꺼이 따라갔던 것처럼.

 






살인자인 프림은 십대 때 새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새아버지와 이혼하는 게 싫어 그것을 모른 척했던 엄마에 대한 상처가 깊었다. 사업 감각이 뛰어나 승승장구하는 새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천천히, 느리게,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며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죽이는 그 냉정함이 두려웠다. 혹 어떤 이들은 프림의 상처가 깊지 않았냐고 말하겠지만,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죽음을 포기했던 것처럼 타인의 삶도 소중한 것이다.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이의 상처와 고통 그로 인한 복수는 걷잡을 수 없다. 그리고 살인은 더욱 정교해지고, 자기가 계획했던 대로 행동한다. 보통의 인간인 해리 홀레에게 늘 매료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해리가 해결하는 사건과 살해 동기에는 눈살이 찌푸린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볼 때마다 안타깝다. 해리는 이제 고통 속에서 조금씩 벗어나 다시 형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미래의 해리에게 희망의 빛이 비친다. 아울러 성직 칼라의 남자가 뭔가 의심스럽지 않나. 다음 행보를 기다려 보자.

 

 

#블러드문 #요네스뵈 #비채 ##책추천 #유럽소설 #북유럽소설 #스릴러소설 #해리홀레시리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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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6-03-16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스뵈 해리홀레 시리즈의 광팬이었으나..!!갈수록 스토리상 여혐이 거슬려 결국 손을 놓게 되었었는데.. 블러드문은 괜찮은가요? 브리즈님 후기 보니 또 다시 읽고 싶은 해리홀레시리즈..🥹
 
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7
문지혁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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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소설은 자전적인 내용과 허구의 경계에 있는 것 같다. 작가 문지혁이 주인공인 소설과 아내의 이름으로 짐작되는 이름 때문에 이게 소설인지, 작가의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작가가 살아온 이야기와 허구의 내용이 혼재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다. 초급 한국어중급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나이트 트레인에서도 작가가 등장한다. 작가가 대학생이던 1999년 호텔팩으로 21일간 유럽여행을 떠났던 이야기와 과거의 흔적이 들어있는 상자를 아버지로부터 받은 현재, 그리고 여행지에서 썼던 액자 소설, 이 세 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나타나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 첫사랑이었던 O와 함께 보았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던 기차. O가 이별 선물로 건네주었던 은반지를 버릴 곳은 빈의 대관람차 안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여행기다. 아마도 여행의 목적을 첫사랑의 기억을 버리러가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버리러 떠났던 것처럼 주인공 도 첫사랑의 상징인 은반지를 버리러 가는 여행을 선택했다. 여행지의 야간열차 안에서 만났던 전수진은 그의 여행지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가 쓰고 있던 소설의 주인공도 이라는 이름이었다. 호텔팩 동료 중에서 E가 유일하게 같은 대학교였다. 마치 우연처럼.






 

작가의 이야기 같아서일까. 비교적 짧은 소설이기 때문일까. 작가가 여행한 장소의 에피소드와 반지를 버리러 간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연이 낯설지 않다. 한번 스치고 갈 인연이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인연이 평생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포 선라이즈>처럼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사랑에 빠질 수도 있잖은가. 야간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부터 설레지 않은가 말이다.


 

각자의 사연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이다. 반지 원정대의 프로도처럼 반지를 쥐고 여행에 나섰던 주인공처럼, 전수진은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떠나왔다. 군대를 마치고 온 경상도 형들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행 온 누나들 외에 유일하게 E만 여행의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 E가 은혜라는 이름으로 불린 순간 독자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여행의 목적이란 다르지 않다고.


 

계속 쓰는 것과 계속 쓰지 않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 둘 사이를 오가는 것. 움직였다가 멈추는 것. 떠난 자리로 돌아오는 것. 여행에 관한 기록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알게 되는 것은 말하자면 여행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여행만이 가치 있다. 여행만이 존재한다. 다른 것은 없다. (13페이지)

 


아마도 여행을 못 가서 인가보다. 여행에 관한 TV 프로그램, 여행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에 관한 설렘, 낯선 장소의 두려움과 긴장감, 그곳에서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가 그리운지도 몰랐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청춘들의 여행이야말로 <비포 선라이즈>같은 여행이 아닐까.


 

더불어 작가는 세 가지의 패턴으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글쓰기에 관한 것들을 말한다. 3인칭 전지적 시점. 여행지에서 노트를 꺼내어 습작의 시간을 갖는 것. 우연히 쓰게 된 소설의 주인공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이름이 같다는 것? 여행이 주는 묘미와 우리가 보았던 영화의 감동이 여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를테면 사람과의 인연 같은 것이다.


 

액자 소설과 과거, 현재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현재의 일상, 과거의 추억, 습작소설의 모든 것. 습작 소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순간 새로운 시작점에 서게 된다. 과거의 인연이라고 여겼던 E가 현재의 은혜로 나타나는 순간. 독자는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이것은 연애소설이라고. 다른 사람을 잊기 위해 갔던 여행이 결국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인연이었다는 것. 버렸다고 생각했던 은반지를 점퍼 주머니에서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 (11페이지)

 


 

인생이라는 여행지에서 어떤 여행을 하게 될 것인가. 우리가 선택한 여행은 아주 사소하지만, 또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 같다.

 


 

#나이트트레인 #문지혁 #현대문학 #현대문학핀시리즈 #핀소설 #한국문학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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