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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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방패 #이마무라쇼고 #북스피어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성을 쌓으려는 새왕.

어떤 방어도 깨트리는 총을 만들려는 포선.

최고의 방패최강의 창을 만드는,

두 천재 장인의 대결을 그린 소설.



 

이러한 홍보 문구에 낚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 북스피어 대표가 쓰는 책 홍보 글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닿아 글자 하나 빠짐없이 읽게 하는 능력이 있다. 북스피어 대표의 글을 읽으면 항상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읽지 않아도 왠지 구입해야 할 것 같다. 이 또한 대표의 역량일 것이다. 두께감이 특히 마음에 드는 책들이 많다.

 



1984년생의 작가 이마무라 쇼고는 댄스교실에서 청소년들에게 춤을 가르쳤다. 가출했다 돌아온 제자가 했던 말에 자극을 받아 나오키상을 꼭 받겠다고 선언했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가 '시대 소설이라면 많이 읽어 자신 있었다'는 말에 자극을 받아 읽은 책이다. 또한 시대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시리즈잖나. 침대맡에 책을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은 책을 이제야 끝맺게 됐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시대 소설(다른 나라의)이란 것도 꾸준히 공부하듯 읽다 보면 매력에 빠지게 되어 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과의 관계, 역사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의 장면이 하나의 영화 화면처럼 펼쳐졌다.

 






16세기 일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활약하던, 다이묘들이 전쟁을 일삼았던 센고쿠 시대. 다르게 보자면 조선을 침략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을 싸움을 하는 장수가 아닌 돌을 이용해 석축을 쌓는 장인과 총포를 만드는 장인의 시선으로 소설을 썼다. 신선한 발상이다. 우리가 역사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앞장서서 싸우는 장군과 그 부하들만 보았지 돌을 쌓는 장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상대편 진영에서 성을 빼앗기 위해 철포를 쏜다. 만약 상대편의 군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성을 쌓아둔 곳이 철포에 맞아 무너지면 돌을 쌓는 장인들이 나타나 석축을 쌓는 걸 반복한다. 목숨이 위태로울 법하지만, 두려움을 이기고 돌을 쌓는다. 직접 성안에 들어가 석축을 쌓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상대편과 전쟁을 하듯 무너진 돌을 주워 석출을 쌓는 광경이 특이하였다. 또한 철포를 만드는 장인도 석축을 무너뜨리기 위해 상대편의 진영에서 포를 쏘아 무너뜨리고자 했다. 무사와 장인들은 별개의 존재로 보았는데 이처럼 상대편에 서면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돌의 목소리를 듣는 교스케는 겐사이의 제자로 들어가 행수의 친척인 레이지를 제치고 도비타야의 후계자가 되었다. 석축을 쌓는 일은 떼기조, 쌓기조, 운반조로 나뉘어있다. 교스케는 다양한 일을 거치며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석축을 쌓는 일은 돌에 번호를 붙여가며 틈새를 막는 작업이다. 직접 대어보지 않고도 원하는 숫자를 불러 석축의 빈틈을 채운다. 총포를 만드는 장인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다. 반면 석축을 쌓는 일은 무사 뿐 아니라 농부들을 포함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며 보호하는 일이다. 성이 무너지면 농부를 포함한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족을 잃는다. 교스케 또한 그렇게 부모를 잃고 누이동생을 잃었다. 총포를 만드는 장인과 교스케가 마주 보며 대화를 하듯 포를 쏘고, 석축의 틈을 메우는 장면은 이 소설의 압권이다.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시대 소설도 이처럼 재미있다는 것을 느낀다.



 

두 사람 모두 전쟁이 사라지도록 만들겠다는 이상은 같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은 크게 다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 (476페이지)

 



새의 강펄처럼. 무너뜨리고 또 무너뜨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쌓는 겁니다. (625페이지)

 



만약 교스케와 겐쿠로가 같은 편에 서서 싸웠다면 큰 발전은 없었을까. 다른 진영에서 마주할 수 있어 이들의 대결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알고 읽으면 책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센고쿠 시대를 검색해 읽고 이 소설을 읽는다면 이해하기가 빠를 것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기억하기가 쉽지 않지만 메모해가며 읽다 보면 이해가 빠르다. 소설에 집중하여 새왕 교스케와 포선 겐쿠로의 긴박한 대결이 지켜보다 어느 순간 소설의 마지막에 이른다. 띄엄띄엄 읽는 것보다 주말 같은 시간에 몰입하여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시대 소설도, 재미있네!

 

 


#새왕의방패 #이마무라쇼고 #북스피어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소설 #일본문학 #나오키상 #시대물이이렇게재미있을리가없어시리즈 #연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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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시 일상시화 6
서효인 지음 / 아침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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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시 #서효인 #아침달



 

우리와 같은 층을 공유하는 옆집은 나 보다 15년 이상의 연배를 가진 부부다.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는데 마주친 건 고작 10번 정도 되었으려나. 그분들이 움직이는 시간대와 출근 등으로 우리의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산책길에 나서다 산책하고 들어오는 그분들과 마주친 게 몇 번이다. 예전 같으면 이웃사촌이라고 하여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지금은 연배도 다르고 어려운 이웃일 뿐이다. 아마 옆집 어른들도 그렇게 여기지 않으실까.

 



이웃이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이웃과 시라는 제목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민낯이 그대로 보인다고 해야겠다. 드문드문 관찰할 수 있으면서 다소 먼 관계. ‘시와 생활이 서로 건너는 방식을 탐구하는 일상시화 시리즈로 시인 서효인이 이웃을 바라보는 여러 단상들을 추억의 에피소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주제를 달리하여 쓰는 산문 <아무튼>과 비슷한 시리즈로 보인다. 대신 일상시화 시리즈는 시인이 쓰는 산문이라는 게 다르다. 마치 시를 읽는 듯 간결한 문장이 돋보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다. 아마도 시인의 이름만 보고 구매한 산문일 것이다. 시인의 산문을 읽었었고, 시도 읽었었지만 산문이 더 좋았다. 산문에서 가족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이모네 가족, 할머니,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모들의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 한동네에 살면서 서로의 집을 오가고, 각 집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아마 이모들 이야기를 이 책에서 처음 읽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가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녔다는 게 신기했다. 특히 이모네 가족들과 임자도에 배를 타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읽고 반가움을 느꼈다. 엄마 산소가 거기 있어 갈 때마다 대광해수욕장에 들러 해변을 거닐다가 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과거 이십 대 시절, 친구들과 대광해수욕장으로 여름 휴가를 가서 텐트를 빌려 12일 동안 술만 마셨다는 건 안 비밀.

 








한여름의 민어는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참치회나 연어도 좋아하지만, 민어회는 정말 차지고 고소하다. 고추장,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넣은 고추장 양념이나 소금에 참기름을 넣은 참기름장에 두툼한 회 한 점을 찍어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해마다 가족의 생일이 끼어있는 초여름에서 늦여름까지 민어회를 챙겨 먹는다. 뼈와 무를 넣어 푹 고아 끓인 민어탕은 한여름의 보양식이다. 삼계탕보다 더 자주 먹는 민어회에 관한 이야기를 시인의 산문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익숙한 장소, 추억이 깃든 장소를 책에서 마주하는 그런 마음을 알려나. 막 아는 척 하고 싶고, 반갑다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을.



 

과거의 기억은 역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이에게 가닿는다. 좋아하는 작가이자 출판인이기에 그가 쓰는 모든 글을 읽고 싶어진다. 작가주의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웃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에 공감하며 마치 내가 느낀 것처럼 해가 되지 않는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효과가 있다. 발걸음 소리, 음악 소리, 말소리. 생활소음 이라지만, 아래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건 기본이란 걸 다시 느낀다.

 



드라마 속 영희를 보며 울었다는 글이 와 닿았다. 나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때, 영희와 영옥에게 이입되어 많이 울었다. 작가가 느끼는 마음은 달랐으리라. 그 감정이 전해져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는데, 그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교묘하게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기억이 떠올라 큰소리로 엉엉 울게 되는. 그런 마음을 우리는 안다.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을 읽는다는 건 우리에게도 그 진심이 전해진다. 공감하며 더 좋은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다가 작가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다. <거실에게 공을 함부로 튕기던 아이> 글에서 아랫집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은 무엇인가요?’ 너무 궁금하다. 이 글이 작가님에게 가닿기를.



 

 

#이웃과시 #서효인 #아침달 ##책추천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한국시 ##시집 #산문 #산문집 #일상시화 #연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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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고작 계절 (<여름은 고작 계절> 윈터에디션)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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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고작계절 #김서해 #위즈덤하우스

 



감정이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렸다. 중학교 1학년, 시골에서 전학을 간 나는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쭈뼛거렸던 시간이 몇 달은 갔다. 화장실 갈 때, 점심 먹을 때 혼자서 다니면 외롭다 못해 괴롭다. 나중에야 친구들이 생겨 어울려 다닐 수 있었다. 예민한 시기의 친구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일깨운 소설이었다. 더군다나 인종이 다르면 우리가 상상해왔던 것보다 그 이상이라는 걸 이렇게 소설에서 배운다.



 

IMF 여파로 이민을 결정했던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다. 낯선 나라에서 친구도 없고 영어가 서툰 제니는 있는 듯 없는 존재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시아인이라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놀리는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든 무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제니가 보인다. 이를 악물고 영어를 공부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한나가 학교로 왔다. 아이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는 한나를 보면서도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애써 감췄다. 한나는 아이들이 해나라고 부르자 자기 이름은 해나가 아닌 한나라고 말했다. 한나는 제니와는 다른, 의사 아빠, 학예사인 엄마를 두었다. 직장을 떠도는 아빠, 청소 일을 하는 엄마와 함께 남의 집 지하에 사는 제니와 다르게 한나는 경제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학교 아이들 틈에서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 그저 말이 통하지 않은 한나를 무시하고, 배척할 뿐이다.



 



제니와 한나가 생활하는 학교는 여러 인종이 모여 있다. 아시아인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학교에서 친구들 무리에 끼고 싶어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깝다. 같은 아시아인을 무시하고 백인 아이들 틈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그 마음은 누구라도 공감할 부분이었다. 자기를 놀리는 말을 하는데도 애써 미소를 짓고 있는 한나를 바라보는 제니는 웃지 말라고, 한 대를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나의 모습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화자 제니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회고록이자 반성문이라 일컫는다. 15년 전, 호숫가에서 쓰러진 한나를 죽도록 패며 소설이 시작된다. 각양각색으로 변화하는 지난 삶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건만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제니가 한나를 처음 만났던 시간으로 안내한다.



 

제니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한나는 제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통역해주길 바라고 어려운 과제를 도와주길 바란다. 이를 악물고 영어 공부를 했던 제니는 한나가 영어 실력이 더딘 게 못마땅하다.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언어가 통하는 게 기본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노력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한나의 말은 제니에게는 핑계처럼 들릴 뿐이다. 한나를 바라보는 제니의 눈길은 안타까움 혹은 한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한나를 멀리하면서도 애틋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후회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다.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발악하듯 무리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과 친구를 지켜보는 애틋함이 공존할 것이다. 결말이야 다르겠지만, 속수무책으로 다가온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악몽처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찬란했던 지난 여름을 되새기는 것은 위무의 시간이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친구를 떠올리는 일을 추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통은 회한이 되어 제니를 감싼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천국은 언제나 밖에 있고, 집은 지옥이다. (9페이지)

 



여름은 고작 계절인데 한나는 그 안에서 많은 감상을 얻는 것 같았다. 나는 한나의 마지막 여름을 손에 쥐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중략)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고 상상했다. 한나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의 날씨를 떠올렸다. 그러자 모든 게 여름의 조각들로 보였다. (314페이지)



 

한 사람의 지난 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빨려가듯 들어가 두 소녀의 청소년 시절을 지켜보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인종차별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가. 아니다. 둘러보라.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우리 또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지 않은지. 가해자로 인식되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 소설이 왜 사랑받는지 알겠다. 아프면서 감동적인 이야기다.

 

 


#여름은고작계절 #김서해 #위즈덤하우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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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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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녕가 #이영희 #델피노

 



사건 사고가 쉬지 않고 터지는 어수선한 연말이다. 어떤 게 진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평소처럼 누구 편을 들지 않고 그저 아무 일 없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평온한 나날이 좋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럴 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 한 곡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시름일랑 저만치 사라져버릴 것이다.

 



화녕가()는 소설가 이영희의 신작으로 윤심덕 같은 노래 신파극 가수가 되는 게 꿈인 화녕의 이야기다. 소설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로 겉으로는 일본을 위하는 척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라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 인서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의 아들이지만 그게 부끄러워 조선 이름 현성으로 불리고 싶은 이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간다.

 






노래가 좋은 화녕은 경성의 음악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재후가 마작만 하는 줄 알았더니 비밀리에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일본 헌병대에게 잡혀갔을 때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는 아버지의 핏빛 유언과 함께 유모 채단을 살리기 위해 처형당하는 아버지 앞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헌병대장에게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화녕은 나라 잃은 백성을 위해 노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노래로 시름을 잊고 위안을 얻길 바랐던 것이다. 정작 나라를 빼앗아 간 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서글펐다. 화녕에게 노래할 장소를 마련해주려는 인서는 진주에서 이름난 부잣집 남초시네 손자다. 인서를 바라보는 누이 인예는 할아버지의 재취 서씨 부인처럼 갖지 못할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비밀리에 나라를 위한 일을 하는 한편, 겉으로는 일본인의 편에 서는 듯한 행동을 하는 이 땅의 청춘들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마음이 공존한다.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교만함이 뿌리째 흔들린다.

 



소설의 배경이 된 진주가 어떤 곳인가.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노래를 부르는 화녕 이지만, 아마 그런 까닭으로 적장을 안고 남강에 빠졌던 논개가 떠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역사의 배경이 짙게 드리운 진주와 남강이 배경인 까닭이다. 노래로 아픈 마음을 달래는 화녕과 나라 잃은 백성을 위해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행동할 줄 아는 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겠나.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과연 개인의 삶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행동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개인이 있기에 나라가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바라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이 달라지듯, 국가를 이루는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개인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경험과 사회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거다.



 

절제된 문장으로 근현대의 역사를 인물 묘사와 함께 절묘하게 그려낸 소설이었다. 아울러 작가만의 특징인 꽃말을 매개로 한국 현대 가요사를 잇는 저항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화녕가 #이영희 #델피노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연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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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 알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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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알마

 



2025년 노벨문학상은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터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사탄탱고는 헝가리 출신 벨라 타르 감독이 1994년에 만든 영화 <사탄탱고>(러닝타임은 438시간) 원작 도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헝가리의 공산권이 해체(1989)되기 이전(1985)에 발표된 작품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앞서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가의 데뷔 소설이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소설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1장부터 6장까지, 2부에서는 6장부터 1장까지 역순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원을 그리며 추는 춤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소설의 목차를 춤의 순서라고 한 점이 인상적이다. 악마와 춤을 추는 집단 농장 사람들과 그들에게 영웅 혹은 메시아적 인물로 비치는 이리미아시가 추는 춤을 상상해본다. 춤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는가.

 



몰락한 농장 사람들이 이리미아시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이리미아시는 희망없는 사람들의 가망없는 상황을 구제해 줄 목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리미아시는 일 년 하고도 반 년 전에 죽었다고 소문이 났으나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치 메시아를 기다리듯 희망에 차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앞서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처한 상황을 보여준 바 있다. 정부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의심을 받아 그들에게 내쳐졌다.



 

이리미아시는 왜 농장 사람들에게 메시아처럼 여겨지는가. 그 또한 농장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서투르고 사기꾼이 분명해 보이는데 무엇에 씐 것처럼 이리미아시를 기다리는 장면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다. 농장 사람들은 누구라도 붙잡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의사만 유일하게 이리미아시를 가리켜 사기꾼이라고 일컫는다. 농장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여 각자의 기록을 남긴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의사의 시선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주요 인물을 보자. 먼저 슈미트 부인은 타락을 상징하는 인물에 가깝다. 다르게 보면 몰락한 집단 농장의 배경과도 비슷하다. 후터키며 술집 주인 등을 유혹해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리미아시다. 이리미아시가 나타나는 순간 순한 양이 되어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그저 이리미아시를 위해 묵묵히 따를 뿐이다. 이리미아시의 존재가 아이러니다.



 

에슈티케는 호르고시네 막내 아이다. 호르고시의 두 자매 머리, 율리와 서니 그리고 엄마는 어린 에슈티케를 보살피지 않는다. 서니가 거짓말로 에슈티케가 모아둔 돈을 갈취한다. 이를 알게 된 에슈티케는 자기가 죽인 고양이를 데리고 저택으로 가 쥐약을 먹고 죽는다. 에슈티케의 죽음은 불온한 세상에 대한 외침이다. 악마와 탱고를 추는 사람들은 에슈티케가 죽기 전 술집을 들여다보아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진창길에 빠진 의사만 걱정할 뿐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어린 여자애는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저물어가는 공산 체제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이리미아시가 농장으로 돌아온 이유는 명백하다. 농장 사람들이 힘들게 벌어온 돈을 가로채겠다는 의도였다. 더군다나 술집에 도착했더니 모두 다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에슈티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에슈티케의 죽음을 이용한다.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며 그들의 죄책감을 일깨운다. 에슈티케의 죽음을 미래에 대한 희생자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현혹해 그들이 가진 돈을 갈취하고 그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듯했다. 리더에게 의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리미아시를 맹목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작품 홍보 글에서는 작가를 가리켜 현존하는 묵시록의 대가'라고 했다. 헝가리의 공산 체제를 비판하는 묵시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의 메시지는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 인간을 '미래를 여는 메시아'로 보는 건 여러 종교에서도 나타났다. 초월적인 존재로 여기나 결국은 사기꾼일 수밖에 없는 것. 공산 체제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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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0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