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알베르 카뮈 지음, 안건우 옮김 / 녹색광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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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알베르카뮈 #녹색광선

 

살면서 내가 계엄령을 겪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엄령을 내렸던 이의 탄핵을 바라보는 초유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독재를 꿈꾸는 지도자가 존재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일상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보지 않던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를 보며 세상에, 이런 일이~!’란 말을 반복했다. 자유롭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자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 싶었다. 소설인지 희곡인지 알지 못했고, 알베르 카뮈의 책이라는 것만 알았다. 책을 읽으려고 펼쳐보니 희곡이었다. 이방인에 이어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페스트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프랑스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인 장루이 바로의 연출을 위한 초안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결과물이다.





 

에스파냐의 카디스에 혜성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카디스에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 뒤 독재자 페스트가 비서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총독은 카디스를 페스트와 비서에게 이양하고 도망쳤다. 즉 카디스를 버렸다. 비서는 페스트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선별하여 가슴에 표식을 남겼다. 표식 하나는 의심자, 둘이면 감염자, 셋은 말살자다. 표식은 페스트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페스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감시 대상이며 사랑같은 건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카디스는 혼란에 빠졌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사랑하는 사이이며 판사인 빅토리아 아버지에게 결혼 허락을 받았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비서에게 말했다가 겨드랑이 밑에 표식을 받았다. 술주정뱅이 나다는 그들의 부름에 사람들을 선별하는 업무를 부여받았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느냐 말이다. 그러나 디에고는 표식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페스트라는 독재자는 공포를 극복한 사람에게 나타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혼란스럽고 두려운 도시에도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비상계엄령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국회로 달려갔다.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계엄령 해제를 의결하기 위한 표결에 참여했다. 그리고 탄핵 결과만을 앞둔 이때 계엄령은 얼마나 적절한 책이냐 말이다. 계엄령은 용기를 북돋는다. 용기를 잃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국회 앞, 헌법재판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현재 상황에 대한 희망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용기, 물러서지 않는 저항정신이 우리 민주주의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뒤엎으려 하는 자가 있었고, 그를 옹호하는 세력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카뮈의 계엄령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책이다. ‘전체주의 억압에 관한 극적인 은유에 가깝다.’라고 했다. 에스파냐 내전을 재현하는 듯한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가 이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래의 문장에 나타나 있다.

 



그러니까, 결함이 있다고요.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체계의 결함이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고 저항하기만 해도 삐걱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체계가 멈춰 버린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죠. 하지만 어쨌든, 삐걱거린다는 거죠. 때때로 작동이 완전히 정지될 수도 있는 거고요. (131페이지)

 



체제에 순응하고 살기보다는 공포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의이며 살아갈 힘이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페스트라는 독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를 따르는 자들의 행태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현재에 꼭 읽어야 할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가벼운 바닷바람이 불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것이다. 그게 간절한 바람이다.

 

 



#계엄령 #알베르카뮈 #녹색광선 ##책추천 #문학 #희곡 #안건우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 #프랑스희곡 #전체주의 #에스파냐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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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동화 발도로프 그림책 12
그림 형제 지음, 다니엘라 드레셔 그림, 한미경 옮김 / 하늘퍼블리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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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그림동화 #그림형제 #다니엘라드레셔 #하늘퍼블리싱

 



옛날 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동화를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해서, 이 나이가 되어도 아름다운 그림동화책 표지와 그림만 보고서 펀딩 구매 버튼을 눌렀다.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책인 줄 알았더니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었다. 그림 판형이 크고 상당히 얇다는 점. 글씨 또한 커서 아이가 앉아서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동화책을 읽고 났더니 아이들 어린 시절에 동화책 한 권을 스무 번이고 읽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으려나. 아이들에게는 그림 동화책을 읽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과 읽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아름다운 그림동화는 그림형제의 동화가 총 열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미술치료실을 운영하기도 했던 독일 작가 다니엘라 드레셔의 아름다운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개구리 왕자, 라푼젤, 찔레꽃 공주, 은화가 된 별, 재투성이 아셴푸텔, 오누이, 별별 털복숭이, 백설공주, 숲속의 세 난쟁이, 홀레 할머니. 동화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여 어린이들의 교육 효과와 더불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게 하는 힘이 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용들을 읽다 보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 많아서 조금 웃었다. 예를 들면, 백설공주에서 난쟁이들이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해도 공주는 왜 매번 열어주느냐 말이다. 나쁜 왕비의 꾐에 넘어가는 백설공주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한 개만 팔아달라고 하는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위 착해서’,라고 해두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라푼젤이 상추를 뜻하는 독일어라는 것이다. 찔레꽃 공주는 우리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읽어왔던 동화다. 동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일반적인 동물이 아니다.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나 중요한 예언을 하는 생물로 비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왕비님에게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나 예쁜 공주님을 낳으실 거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공주가 태어나고 열세 명의 지혜로운 요정들을 초대해 대접해야 하는데 열두 개의 황금 접시만 있었던 임금님은 열두 명의 요정들만 초대할 수 있었다. 초대받지 못한 요정이 기분 나빴던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공주님에게는 열두 번째 요정이 남아 있어서 물레에 찔려도 죽지 않고 백 년 동안 잠을 잘 수 있었던 거다.

 



우리가 신데렐라라고 알고 있는 재투성이 아셴푸텔은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에 가깝다. 왕자에게 신붓감을 찾아주기 위해 열었던 무도회에 자기도 가고 싶다고 말한 용기를 보라. 하지만 새어머니를 얻은 아버지는 왜 이리 무능한지 모르겠다. 자기 딸이 계모에게 하녀 취급을 받고 재투성이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게 없느냐 말이다.

 



별별 털복숭이에서 공주도 진취적인 여성이다. 아름다운 왕비가 죽자 왕은 왕비와 똑같이 닮은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신하들은 깜짝 놀라서 나라가 망할 것이라며 왕을 말렸다. 하지만 왕이 뜻을 굽히지 않자 공주는 그 결정을 미루기 위해 세 가지 옷을 달라고 했다. 왕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자 얼굴과 손을 검게 칠하고 도망쳤다. 여기에서도 무도회는 빠질 수 없다. 무도회가 열리자 공주는 얼굴과 손의 검댕을 지우고 털가죽 외투를 벗었다. 빛나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무도회 장소로 가 왕자와 춤을 추었다. 자기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나섰다. 아름다운 공주와 춤을 춘 왕자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건 안 비밀.

 



예전에 어떤 책에선가, 유리관 안에 누워있는 백설공주에게 키스를 하는 왕자를 가리켜 시체 애호증 환자라고 말하는 걸 읽었다. 오늘 백설공주를 다시 읽으니 섬찟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죽은 백설공주가 누워있는 관을 달라고 한 저의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동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그 시대의 세태를 들려준 것만 같았다. 물론 백설공주는 목에 걸린 독사과를 뱉고 살아날 거라는 결말을 알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동화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읽힌다. 동화 속 공주가 되어 왕자를 찾아 헤매는 상상을 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계모이고 어딘가에 친엄마가 살아 있을 것 같은 상상을 안 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동화가 우리에게 이런 상상을 심어 주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못한다. 자기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계모, 그룹의 수장으로 올리려는 계모가 현재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동화가 가진 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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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너지 패권 전쟁
양수영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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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너지패권전쟁 #양수영 #다산북스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트럼프 2기 시대가 되었다. 트럼프가 파리 기후협약에 탈퇴했던 1기에 이어 2기에서도 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대선 공약으로 이미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던 트럼프는 탄소 감축 정책이 아닌 에너지 개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우리나라도 온도낮추기 등 탄소 저감 정책을 독려한다. 전년도보다 에너지를 적게 쓰면 탄소 포인트 등으로 돌려주는 제도인데 해마다 기온의 상승으로 포인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후 환경에 관심을 가져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에너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이 책을 읽었는데 잘한 일인 것 같다.



 

에너지 패권전쟁은 예고된 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고, 뜨거워지는 만큼 전력 사용은 증가한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한다. 석유 및 천연가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천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전량 수입해야 하는데 에너지 자원을 얻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에너지의 역사를 비롯해 미래의 에너지 자원과 그 대책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총 네 장의 자원으로 살펴보는데 첫째 석유 전쟁, 둘째 천연가스 전쟁, 셋째 탄소 전쟁, 넷째 생존 전쟁이다.







 

에너지 패권을 위해 전쟁이 발발했다. 태평양전쟁이 석유 확보에 주력하던 일본과 이를 저지하려던 미국이 석유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었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친 것도 에너지 때문이다. 러시아는 석유 생산량 1위인 미국과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이다. 천연가스 생산량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러시아는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1위인 미국에 비해 소비하는 물량이 적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와중에도 아직 건재하다는 게 이를 말해준다. 전량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저자는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앞으로 세계의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하면서 에너지 패권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미국이나 러시아에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앞으로 석유를 쓰지 않는 시대가 올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석유로 누리는 온갖 혜택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석유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거라는 모순된 말을 한다. (210페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 천연가스가 비교적 저렴하다고 알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해 들어올 거라고 여겼는데, 만약 천연자원이 고갈하여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전쟁 상황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 같았다. 부족한 자원을 충족하고자 원자력발전소 확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하여 말했다. 우리나라에 천연자원이 매장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탄소 감축을 실현하려면 저탄소 에너지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태양광발전을 계속 확대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절약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를 포함해 먼 미래까지 우리의 삶을 위해서다.



 

에너지 최대 소비국이며 에너지 최빈국인 우리나라가 에너지 자원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후 위기를 위한 재생 에너지와 탄소 감축 요구의 필요성이 커진다. 에너지 문제가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에너지 사용을 자제하고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지 않겠나. 탄소배출의 주범과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미래의 자원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었던 중요한 시간이었다.

 


 

#세계에너지패권전쟁 #양수영 #다산북스 ##책추천 #인문 #경제사 #경제경영 #자원 #에너지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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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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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잔혹극 #루스렌들 #북스피어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7페이지)




 

짜릿한 소설의 첫 문장이다. 활자중독이라고 할 만큼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인물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굉장히 불편할 거로 여겨진다. 한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간 여성이 글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인 것처럼, 커버데일 일가가 유니스 파치먼을 채용하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은 커버데일 일가가 유니스 파치먼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이 시간 순서대로 나온다. 커버데일의 안주인 재클린이 하녀를 구하면서 편지에서 보이는 의문점을 전혀 찾지 못하는 것이 재앙을 불러왔다. 질문을 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많은 조짐이 있었으나 놓친 거다. 불행은 이처럼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들 가족의 미래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커버데일 가족의 저택에 처음 도착한 날 유니스의 방에 있던 텔레비전이 그녀를 더 폭력적으로 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항상 바라 마지않았던 텔레비전이 눈앞에 있었고, 하필이면 텔레비전을 처음 켰을 때 화면에 총을 든 남자가 등장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어휘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폭력과 총이 등장하는 장면을 맞닥뜨리고 난 뒤 그녀의 폭력성을 자극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처럼 조앤 스미스를 친구로 둔 점일 것이다. 텔레비전의 폭력과 총, 종교에 빠져있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조앤 스미스를 만난 것부터 비극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갖춰진 상태에서 커버데일 가족은 비극의 운명을 선택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주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를 피하려는 버릇은 몸에 깊게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따뜻한 마음이나, 타인을 향한 애정, 인간적인 열정이 솟아나는 샘은 이러한 이유로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 이제는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이러한 자신이 상태가 인쇄물이나 책, 손으로 쓴 글자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74페이지)

 




발췌문장처럼, 유니스에게 활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위협이었으며 폭력적이었다. 유니스는 활자만 빼면 재클린을 포함한 커버데일 가족에게 완벽한 하녀였다. 그릇이며 바닥, 침대 시트 등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청소했다. 다만 재클린이 쓴 쪽지의 내용이 두려워했으며, 급한 일로 회사에서 서류를 준비해달라는 조지의 전화가 폭력적으로 느껴진 건 당연했다. 글자를 모른다는 걸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죽음이 아니었지만, 치밀하게 움직인 게 되었다. 커버데일 가족을 죽인 뒤, 조앤의 흔적을 지우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흔적을 지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집에 찾아온 형사에게 차를 대접하며 사건이 추이를 관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활자를 몰랐기에 살인자로 체포되었다.







 

유니스의 유년 시절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니스에게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문맹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활자 때문에 두려워하고, 문맹을 감추려 다른 사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니스 파치먼의 폭력성과 공격성은 기본적으로 잠재된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활자잔혹극은 이처럼 한 사람으로 인하여 비극을 초래했고 한 가족이 몰살당했다.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유니스의 문맹을 일찍 알았더라면 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에게 글을 가르쳤을 것이고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모든 상황에 만약이란 가설을 세워본다.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는 거에 안타까움을 표해본다.




 

역시, 마포 김사장의 말발(혹은 글발)에 속아 구매한 책이다. 북스피어의 책은 순전히 마포 김사장의 글을 보고 구매하게 된다.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글발이라고 해두자. 짜릿하고 재미있다. 루스 렌들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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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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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의인터내셔널 #김기태 #문학동네

 



2024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게 김기태 작가의 보편 교양이었다.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센세이셔널한 느낌이었달까.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 즉 심각하다 못해 내가 어떤 이야기를 읽었나 고민에 빠지는 게 아닌, 보통 사람들의 풍경들이 보였다. 심각한 상황보다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작품을 원할 때 적재적소에 나타난 거 같았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고팠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위안 혹은 공감이랄까.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주는 느낌이었다. 한 권의 작품을 읽었을 뿐인데, 더 출간된 작품이 없나 찾아보게 만드는 작가였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 장르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순문학에서도 추구하는 주제가 달라졌다. 퀴어나 SF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나와 읽는 즐거움이 커 독자로서 만족한다.





 



전부터 소개팅 프로그램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SOLO> 출연자들이 인터넷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하던데,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서 따온 듯한 롤링 선더 러브는 상당히 위트있는 작품이었다. ‘사랑이 좀 하고 싶다는 맹희가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 신청하며 일어나는 내용이다. 맹희가 자기를 가리켜 나 조맹희. ~.’로 시작하는 말은 왜 이리 웃기냐 말이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썼던 과거의 어떤 날들이 떠올랐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즐거움의 한순간을 롤링 선더 러브에서 즐겨보시라.

 



음악성과 대중성을 접목한 아이돌 가수의 등장은 많은 이들을 열광시킨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그가 만든 음악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굿즈 뿐만 아니라 팬덤을 형성해 그들과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김기태의 소설에서는 아이돌 음악에 관련된 내용이 두 편 실려 있어 음악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거로 보였다. 로나, 우리의 별세상 모든 바다가 그렇다. 잠실에 모인 세모바의 팬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하쿠와 그날 만났던 영록과 나누었던 대화가 그를 해진으로 이끌었다.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순간과 바닷물의 차가움이 공존한 세상과 닮아있는 것 같다. 코로나를 거치며 TV 채널에서는 수많은 경연이 넘친다. 특히 한 장르의 음악 경연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오래전에 발라드 가수였던 이들이 트로트로 전향해 애쓰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내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 권의 소설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무겁고 높은에서는 제2의 장미란 같은 역도를 꿈꾸는 소녀가 나온다. ‘오늘도 미래를 듭니다라고 외치는 송희다. 왜 하필 무거운 걸 들겠다고 하는지, 100킬로그램을 드는 자신을 상상하는 송희에게 좋은 소식을 기대해보지만, 세상은 냉정하다. 그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드는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을 송희에게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기대해본다.



 

, 팍스 아토미카의 주인공이 나라면 정말 힘들 거 같다. 현관문 앞에 선 남자, 자기가 직접 문을 닫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수없이 되뇌는 남자의 모습을 보라.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온전히 전해졌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서도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음악은 많은 이들을 아우르는 분야인 것도 같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진주와 니콜라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특별한 삶이 아닌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 주변 인물을 볼 수 없다. 가난이라는 이름을 밝히기보다는 그저 삶을 이야기한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지난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독일인의 시에서 유래한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밈이 압권이었다. 궁색한 사정을 안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조금 슬펐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의 희망은 당장은 요원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을까.

 



김기태 작가의 이름을 알게 한 게 이 작품이었으니.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이렇듯 이름이 자꾸 오르내릴까.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중요한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작품들을 읽고 났더니 그의 장편은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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