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는 말을 남기고  지상에서 26년 8개월을 살다 간 세기의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 ~ 1937 본명 김해경金海卿)은 어릴 때 백부에게 입양된 후 21살 때 본가로 돌아갔기에 그는  동료 문인들 중에 따스하고 인자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기이한 행동을 했다.  

“이상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심리적 고아라는 정체성에 고정될 수밖에 없고, 불가피하게 입양아적 분열증세 상태에 놓인다. 정신을 좀 먹는 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짜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장석주의 '이상과 모던 뽀이들' 중에서

27살이 되던 어느 해 겨울 시인 이상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를 찾는다며 무작정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 도쿄에서  무국적자로 떠돌다가 체포되어 일본 경찰서에 구금되고 만다.

급히 전보를 받은 이상의 아내 변동림이 부랴 부랴 동경으로 건너가고 폐결핵을 앓았던 이상은 아내의 품 속에서 눈을 감는다.

당시 도쿄 제국대학 예술학부에 재학 중이였던 화가 길진섭은 이상의 아내 변동림의 전보를 받고 그의 시신이 안치된 도쿄 제국대학 부속 병원 영안실로 달려간다.

1930년대 최첨단 통신 수단이였던 '전보'는 위급한 시기는 물론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도 유용했던 수단으로 전화가 보급 되기 전 일반 우편을 통한 편지보다 더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다.  


1837년 미국의 발명가 새뮤얼 모스가 전신부호 특허를 얻어 7년 만에  워싱턴 D.C.와 볼티모어 사이에 전신선로를 설치해서  모스 부호 송수신으로 전신사업 시작하면서 '전보'는 전 세계의 통신 수단 서비스로 널리 이용되었다.

전보 (telegraph)는 멀리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tele와 쓴다는 의미의  graphein이 합쳐진 단어로 인류 역사에 150년 동안 쓰였다.

20세기 두 차례 전쟁 이후 전화와 팩스, 휴대폰, 인터넷의 통신 수단으로 서비스가 진화 발전 하면서 1세기 넘도록 인류의 최고 통신 수단이였던 '전보' 서비스가 2023년 12월 종료 되었다.

한국에선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장 빠른 연락 수단이였고 각 가정마다 전화기가 설치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도 전화와 전보는 전 국민의 통신 수단이였다.

기프티 콘으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대에 전보로 격식 있는 메시지를 담아 꽃과 기타 선물을 받는 기쁨이 더 클지 모른다.

전보 통신 시대에는 소식이 전달 되는데 30분 정도 걸렸고 지금 시대에는 단 몇 초면 소식이 전달 되고 단 몇 분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1858년 미국 뉴욕 타임즈  이런 사설이 실렸다.


전보가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피상적이고 돌연 하고 정제되지 않고 너무 빨라 숙고 할 수 없는 전신 정보의 특징이다.

10분 만에 도착하는 조각 뉴스들이  무슨 소용이며 전보 칼럼은 얼마나 시시한가? 죄다 어디는 눈이, 어디는 비가 왔고, 누가 피살되었고, 누구는 교수형 당했다. 같은 내용 뿐이다.

-1858년, 뉴욕 타임스 사설 중에서 

2026년의 뉴스들도 100년 전의 조각 뉴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시대 기자들은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우리 사회의 무질서, 불합리, 부조리를 취재 한 기사 보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고스란히 복사해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각종 포털 뉴스 메인에 올려 놓고 있다.


한 번 출연으로 서민들이 1년 동안 빠듯하게 일해야만 벌 수 있는 소득을  한 번에 벌어 들이는 유명 연예인들과 달리 일반 국민들은 평생 노력해서 근검 절약하게 살아도  내 집 마련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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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에도 종류와 단계가 있다.

매운 맛의 단계를 표시하는 국제 식품 표준 기준인 '스코빌 지수(Scoville heat unit:SHU)'에 의하면

1단계 순한 맛(GHU 30 미만)-2단계 덜 매운 맛(GHU 30∼45 미만)-3단계 보통 매운 맛(GHU 45∼75 미만)-4단계 매운 맛(GHU 75∼100 미만)-5단계 매우 매운맛(GHU 2000이상)으로 단계별 매운맛 지수로 나눠진다.

1912년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이 세상에서 어떤 고추가 매운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만든 스코빌 지수를 공포 영화에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토마토 공포 지수 95%를 기록한 영화 ‘백룸’의 첫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촛점이 흔들리며 카메라 기기를 만지는 소리가 부산스럽게 들린다.

친구들과 공포영화를 촬영 중인 순간에서 시작되는 단편 <백룸> 오프닝 장면을 지나면 어떤 공간에 발을 디딤으로써 우연히 백룸이라는 평행 세계에 떨어진다.

어떤 벽을 통과하자  방치된 공간이 나오고  조명도 벽지 색깔도  한없이 으스스해 보인다.

저조도의 형광등 아래 온통 광기 어린 노랑으로 물든 벽과 축축한 카펫.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 어두운 통로와 지하 수영장, 용도를 알 수 없는 빈방, 하늘이 막힌 중정을 둘러싸고 실내로 나 있는 빽빽한 창문들…. 

무작위로 분할 된 약 6억 제곱 마일의 빈 방 속을  시간과 공간 개념이 무너진 채로 떠돌게 되는 백룸(backroom)은  텅 빈 공간처럼 보이면서도 ' 들어오면 안되는 곳을 들어온 것 같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드는 기이한 공간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낯선 이 공간에서 서서히 궁금증과 호기심이 증폭 되는 순간  사람의 소리를 흉내 내는 괴이한 생명체가  출몰한다.

2022년 1월, 유튜브 채널 <케인 픽셀즈>에 <백룸>(The Backrooms(Found Footage))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9분 짜리 단편영화는 케인 픽셀즈를 운영하는 17살 감독 케인 파슨스가 고등학교 방학 기간 동안에 제작해서 단숨에 조회수 몇 만 단위 조회수를 기록했다.

9분 짜리 초 단편 영화 <백룸>은 수많은 온라인 방랑객과 게임 유저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세계 거대한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 공간으로 급작스러운 모션 혹은 장면이 전환되는  노클리핑(통과할 수 없는 물체와 공간의 표면을 뚫고 진입하는 게임 속 치트 혹은 버그 현상)같은  게임의 문법에 충실하게 맞춰 정교한 계산으로 촬영된 영화다.

호러 명가'로 불리는 제작사 A24가  ‘더 백룸즈(파운드 푸티지)’라는 장편서사로 확장한 이야기의 시작은  할인가구점을 운영하는 남자 클라크와 그의 심리치료사 메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클라크 선장의 오스만 제국'이란 싸구려 가구점을 운영하는 클라크는 떠나버린 아내 때문에 자존감 부족, 자기혐오에 시달라더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클라크는 상담사 메리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는 동안 조금씩 치유되는 듯 했지만 , 자신이 임대해 운영 중인 가구점 지하에 '통과 가능한 벽'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벽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기형적인 복도를 따라 늘어선  방을 지나면 또 방이 나오는 공간이였다.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공간을  조사하던 클라크는 상담사 메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정체불명의 뭔가에게 쫓기다 결국 실종된다. 

클라크가 사라지자 메리는 클라크를 찾기 위해 그의  매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백룸'의 입구를 발견한다.

미궁 속에서 헤매던 클라크는 미쳐 버리고 그를 찾아 나선 메리는 기이한 그곳 백룸에서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영화 백룸에서는 어떤 끔찍한 살인이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노란 벽지로 이어진 백룸 공간은 벽으로 가려져 있지만 제대로 된 문이 없기에, 뒤편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고 백룸 뒤엔 또 다른 백룸이 있기에  그 공간을 헤매고 있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가는 동안 내내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없기에 뒤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도시 생활은 빠르게 움직이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공포들은 아주 많다.

 전세사기, 취업 사기, 피싱 사기 같은 사기범죄일 수도 있고 기껏 이사 간 집에서 창을 열자 따스한 햇빛 대신 신축 건물 현수막을 마주하게 되거나, 잠들 시간마다 윗층에서 울려 대는 층간 소음 그리고 늦은 밤 귀가 길에 내 뒤를 밟고 쫓아오는 낯선 사람까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네*버 전문가 상담 서비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분야 1위는  운세·사주, 2위는 타로다.

대로변마다 즐비한 간판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부동산-미용실 그리고 타로와 역술집으로 전국 서비스업 사업체 중에서 1인 사업체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 하고 있는 건 점술업이다.

지난해 발간된 국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국내 최대 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경천신명회)에 정기 회비를 낸 회원 가입 무당이 30만명,전국에 무속과 점술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총 1만 194명에 달한다.

 정식 사업체 등록을 하지 않고 지인들을 상대로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을 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대략 80만명에 달하고 주역과 점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 수강생까지 합하면 전국에 걸쳐 사주와 점을 치는 숫자는 대략 10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직업으로 무속과 역술을 선택하고 있는 20대 MZ세대들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가 존재 하지 않았던 시절엔 부모나 친척 지인을 따라 점집에 다니거나 호기심에 친구들과 함께 가본 다거나 답답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용한 집을 알고 있다는 소문을 따라 갔다.

 현 시대 무당과 역술인들이 개설한 유튭 알고리즘을 따라 가다 보면 사주‧역술‧명리학 유명인들과 연예인들의 기가 막힌 사주나 현재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점술 뿐만 아니라  대권·국운 예언까지 거침없이 영역을 확장 하고 있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통해 신년 운세나 타로점을 보며 현실의 답답함을 토로하거나  미래에 어떤 운이 찾아 오는지 무엇을 피해  대비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게 되었다.

한국인에게 무속과 점술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사회적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한 강구책이였고 보이지 않게 믿고 의지 하는 존재였다.

 각종 예능 방송에서 '신'과 연애하고 대화하고 상담하고 수사하고 예측하는 다양한 샤머니즘이 중심인  예능들이 쏟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무속과 역술은 일기예보처럼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듣고 볼 수 있다.

운세, 사주는 굿과 부적 같은 액막이를 벗어나 현대인들의 정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상담하고 해소하는 점술은 마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일 순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을 받는 것과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술인들은 과거의 지나간 것과 현재의 상태에 대한 건 대체로 적중률이 높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지나치게 과장 하거나 자극해서 액땜이나 복을 불러 모으는 부족, 굿판을 벌이는 방향으로 유도 한다.

점술가의 말을 믿고 부적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큰 맘 먹고 굿을 해도 현실의 고통이나 미래의 골치덩어리들이 싹 사라지지 않는다.

무당의 말을 믿고.....

역술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나면 

왠지 사기 당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 적당히 재미와 흥미로 점을 보는 건 나쁘지 않지만 한 치 앞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운세가 꽉 막힌 상황에 막다른 골목,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무사히 빠져 나오고 싶다는 간절함에 점술가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거금을 탈탈 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운세가 막혔을 때나 무언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무서운 영화나 공포 영화를 보거나 맵고 얼큰한 국물에 면발이 쫄깃한 음식을 한 그릇 먹어 치우면 세상 만사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불 맛이 스며든 고기 한 점 입 속에 넣고 나면 공포심, 두려움 갖은 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혀 끝에 살살 녹는 맛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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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서 걷고 움직인다.

이런 일련의 자연스런 행동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핵력)이라는 4가지 형태의 힘에 의한 것으로 걷고 움직이는 호모 사피엔스들은 매일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과 강력의 힘에 의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힘인 중력(gravity)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데 필요한 구심력의 원천으로 인간이  발바닥을 땅에 밀착 시켜 주게 만드는 힘이다. 

각종 조명과 컴퓨터, TV, 전화 같은 첨단 기기와  천둥 번개와 같은 자연 현상의 근원이 되는 힘인 전자기력(electromagnetic)은 중력의 질량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서로 부딪칠 때 느껴지는 감촉이나 진동, 그리고 온도의 변화로 느끼는 추위, 더위 같은 힘에도 작용을 한다.

강력(strong force)은 양성자와 중성자 내부의 쿼크(quark 하나의 핵자-양성자 또는 중성자는 3개의 소립자 즉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들을 단단하게 결속 시켜 주면서, 동시에 양성자와 중성자를 원자핵 속에서 강하게 결합시켜 주는 힘이다.  

 약력(weak force)은 우라늄이나 코발트 같은 원소에서 방사능 붕괴를 일으키는 힘으로 원자 스케일의 근거리에서만 작용하고 거리가 멀어지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힘이다.

매일 각기 다른 장소와 상황 속에서 힘을 주거나 빼기도 하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어제처럼 반복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의 발현이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핵력)에 의한 상호작용에서 발생되는 힘으로 거대한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힘이다.

현대인들은 태양이 보내주는 빛 보다 각종  전자기기, 스마트 폰에서 나오는 빛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 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 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으로 지금  이 글을 눈으로 읽고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도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원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난 후 커피 원두를 갈아 내린다.

커피가 완성 될 때까지 두툼하게 자른 빵에 버터나 잼을 바른다.

만일 이 세상에 중력이 없다면 빵을 들고 있다가 손을 놓자마자   빵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정지 상태에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빵과 커피를 먹고 집을 나서는 동안 한 손에 스마트 폰을 꼭 쥐고는 화면을 응시하는 이 모든 것들이 중력과 전자기력에 작용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중력을 거슬러서 살 수도 없고 전자기력 없이는 어떤 글도 읽지 못하고 빛조차도 인식하지 못한다.

태양의 빛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이 빛은 지구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광분 만큼 떨어져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이라 부른다.

인간이 1년 동안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 해도 태양의 빛의 속도를 절대로 따라 잡지 못한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우주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매일 찬란한 빛을 내리쬐게 만드는 태양의 빛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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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와 넓이 , 길이에 몸을 맞춰 어떤 상황에서도 스르륵 빠져나가는 고양이는 신기한 동물이다.

위협적인 짐승과 맞닥뜨리는 순간이면 옆으로 위로 점프해서 도망치거나 도망 칠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몸을 한껏 부풀려서 상대를 제압해 버린다.

열려진 문틈 사이로 얼굴을 쑥 내민 고양이에게 문을 열어 주면 항상 꼬리 끝을 문 안 쪽에 남겨둔다.

이런 습성은 나름 고양이스러운 관계 맺기로 잠시 나갔다 돌아 온다는 의미다.

동네 곳곳을 다니다 보면 빵집 앞을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 튀김 가게 앞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떡집 앞에서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 친다.

분명 이 고양이들은 한 때는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랑스러운 이름, 귀여운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매일 앞 발로 귀 뒤를 긁고 혀로 온 몸을 핥으며 외모를 각별하게 관리하는 동물계 중에 최고의 나르시즘을 갖고 있는 고양이를 단 한 번이라도 품 속에 안아 본 사람은 알고 있다.포동 포동 폭쉰 폭신한 냥이 발바닥ฅ🐾의 촉감이 주는 따스한 느낌을 ...

 고양이가 불행한 곳엔 인간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들이여, 부디 행복하기를 ฅ🐾


늙은 모그가 들어와서 신문 위에 앉는다.

사람 좋아하는 늙고 뚱뚱한 고양이

쓰다듬어 주면 자기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조은 에이킨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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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 모네와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와 친구들 1871-1900 예술가들의 파리 1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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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7월, 성난 파리 시민들이 절대왕권의 첨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1854년 혁명과 전쟁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산업혁명으로 도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 파리는  17세기 런던시 재정비에 영감을 얻은 오스만 남작이 17년 동안 진행했던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정비되었고 각종 도시 기반 시설들이 구축되면서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했다.

1875년 파리에 대리석 장식과 금박 장식의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에 부유한 특권층이 몰려 갔다. 

온 몸을 완전히 가리는 긴 드레스를 차려 입었던 귀족 여성들과 달리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팔 다리를 드러내고 얇은 재질에 의상을 걸친채 춤을 추니 이들을 보기 위한 남성들이 발레 공연장을 찾았다.

정기권을 구입한 남성 관객들은 공연 시작 전이나 막간 또는 휴게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무용수들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냈다.

이들 틈에 화가 드가도 끼여 있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드가는 공연이 시작 되기 전 무대 뒤와 계단, 관람석에서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을 빠른 손놀림의 파스텔 스케치로 그렸고 늦은 저녁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당시 발레단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10대 어린 소녀들은 주로 노동 계층에서 선발 되었는데 일곱살 또는 여덟살 때 부터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가난한 가정 환경에 부모로 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발레단의 소녀들은 온 종일 공연 연습에 몰두 해야 했다.

3년 동안 드가의 작업실에서 화가의 뮤즈였던 열 네 살 마리는  1865년 파리 9구역에서 태어났다.

당시 파리 9구역은 화려하면서 웅장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훨씬 전 부터 각지에서 모여든 일용직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 사기꾼, 협작꾼, 부랑아들 그리고 매춘부들이   토끼 굴보다 더 비좁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한 공간에서 붙어 살았다.

드가의 뮤즈였던 마리의 부모는 벨기에계 이민자로 아버지는 재봉사였고 어머니는 세탁부였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는 어떤 법적 장치나 도덕적 관념조차 없던 시절이였다.

가난하고 헐벗은 가정에 아이들은 공장과 농촌, 부유한 가정의 하녀, 카페와 술집에 팔려 갔던 그 시절에 마리의 엄마는 남편 사망 후 자신의 세 딸을 모두 발레단에 보내 버렸다.

 1869년 파리 9구역에 개장한 음악홀 폴리베르제르에 술과 음식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들어서자 이곳에 부르주아, 예술가,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자 바텐더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폴리 베르제르의 바의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를 유심히 관찰했다.

2층으로 나눠진 공간에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는 조명 빛 아래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도 바텐더 쉬종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으로 손님이 요청에 쉼없이 응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던 마네는 작은 스케치 북에 쉬종과 주변 배경을 빠르게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마네는 부산스럽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쉬종을 작업실로 초대 했다.

쉬종은 근무가 없는 날에 마네의 작업실로 찾아가 모델을 섰고 마네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장에서 작업했던 스케치를 토대로 작품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네의 주변 사람들은 폴리 베르제르의 바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혼란 스러워 했고 비평가들은  원근법을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1863년  ‘올랭피아’로 명암이나 원근을 최소화하고, 평면적인 색과 대담한 구도를 통해 회화를 현실의 창이 아닌,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게 했던 마네는 전 생애에 걸쳐서 프랑스 예술계를 뒤 흔들며 숱한 화제와 혹평에 시달려 왔다.

1881년 제6회 파리 인상주의 전시에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가 등장 했을 때 평론가들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La petite danseuse de quatorze ans)조각상을 향해 “원숭이가 있어야 할 곳은 (전시장이 아닌)동물원이지 않은가.” 라며 드가를 향해 신랄한 악평을 쏟아 부었다. 

마네와 드가는 정통 화단의 주류 세력과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누구보다 과감하게 기존 예술의 규범을 깨뜨려나갔다.

역사는 마네와 드가가 살았던 이 시기를 낭만과 영광의 시대, 벨 에포크(belle poque)라 부르며 두 거장이 남긴 그림의 가치는 현 시대 인간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신의 경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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