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모든 것을 즉각 해결할 수 있다. 특히 가장 편리한 것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담은 은 판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옛날만 해도 부유하거나 정신적으로 귀족인 사람만이 믿을 만한 초상화를 그려 간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뛰어난 인물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초상화를 그렸지만 오늘날에는 사진 덕택에 멍청이들마저도 날이 갈수록 자기 모습을 많이 만들어낸다. 더군다나 모든 이들이 자기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오히려 사진을 전혀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당신을 돋보이게 해준다.]
-허먼 멜빌 <피에르>
1839년 폭스 탤벗에 의해 발명 된 사진기가 1888년 대중을 위한 상업용 사진기로 등장 하면서 주로 상류층의 소유 품 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가족 사진첩, 엽서, 예술 작품, 각종 물품 분류 작업 자료 용, 인류학적 기록(식 민지역의 착취 수단으로 )범죄 기록을 위한 경찰 수사를 비롯해 군대의 정찰과 전쟁 기록 그리고 뉴스 보도등으로 널리 활용 되었다.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세상을 뒤 흔들 만큼의 파급력을 갖추게 된 것은 두 차례 발발 했던 세계 대전 시기로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사진은 증거가 되었고 역사의 증언이 되었다.
전쟁 이후 사진은 글과 말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 시선을 사로 잡으며 여론을 형성 하기도 했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선동과 조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을 활용해 해당 사건을 복제함으로써 그 사건의 독특한 혹은 순간적 특성을 부정하려는 경향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공간적 혹은 인간적으로 사물들을 '좀 더 가깝게' 가져오려는 요구는 거의 강박관념에 가깝다. 근접 사진을 찍음으로써 그 대상을 복제하려고 하는 욕망이 전례 없이 증가 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통해 인간은 특정 이미지를 보여주는 세상과 연결 되어 현상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세상의 모습을 축소 하거나 확대 시킬 수 있고 과장 시키거나 진실을 왜곡 시킬 수 있다.
[사진은 우리가 현대적이라고 여기는 환경을 구성하고 더욱 강화하는 대상들 중 가장 신비한 대상일 것이다. 사진은 진정 포착된 경험이라 해야 할 것이며, 사진기는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의식에게는 이상적인 무기가 된다]
-수전 손택
필름을 교체하는 카메라기기 시대에는 '사진'이 하나의 도구 였다면 디지털 기기 시대에 '사진'은 개개인의 일상과 추억의 흔적을 남기는 수단이자 누구나 손쉽게 접근하고 소비 할 수 있는 이미지 시대가 되었다.
가상의 이미지를 통해 상품을 소비 하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사물과 사람의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 한다.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의 이미지들이 주는 정보들은 간접적인 체험으로 이어져서 이전 시대와 달리 이제 사진은 자신이 곧 이미지가 되어 이미지를 통해 보여 지는 자신의 존재가 더 현실적인 모습 처럼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이 기록한 것들은 현재와 미래를 과거와 만나게 해준다. 하지만 사진은 과거의 기록 뿐만 아니라 현재를 이해 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에 사진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왜곡된 이미지로 소유 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통해 보여 지는 이미지들 폭력 사건,대형 폭발 사건, 범죄 현장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는 마치 망원경에 부착 된 줌 렌즈 처럼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마치 영화관에 앉아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겪고 있는 결핍과 실패, 불행,고통,불치병에 걸린 이들을 보며 저곳이 아닌 이곳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카메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삶을 재생하는 기계는 사실 삶을 저버리고 있다. 우리는 악마를 받아들이며 선에 숨 막혀 한다.]
-월리스 스티븐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지는 자극적이고 소비 지향을 추구하며 계급 간의 차별과 인종, 성 의 갈등을 통해 무한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생산성을 증가 시켜서 소비를 촉진 한 것으로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지는 정치적 경제적 통제 수단으로 어떤 도구로도 대체 할 수 없다.
각종 SNS에 넘쳐 나는 이미지들은 욕망과 호기심을 분출 시키는 일종의 감정 표현의 수단이 되어서 아무리 넘쳐 나도 절대로 고갈 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제 세상은 사물보다 형상을 원본보다 복제를 현실보다 표상을 본질보다 가상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진기가 신의 시선을 대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고도의 자본주의 기술이 신을 사진 속에 넣을 수 있는 기술력을 발휘 할 수 있게 될까?
인간은 기억을 보존 하기 위해 손으로 그림을 그렸고 문자를 발명 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기록을 통해 역사를 이어나갔다.
기억은 결코 도구가 될 수 없다. 개개인의 기억은 마치 땅바닥에 남겨진 발자국이 남긴 흔적처럼 실제에 대한 하나의 해석, 머릿속에서 선별적으로 추려져 있는 또 다른 이미지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사진은 인간의 기억과 달리 그 기억에 담긴 해석이나 의미를 보존 하지 못한다.
시간 안에서 일어 난 것, 시간 안에서 설명된 서사를 지닌 것만이 비로소 사진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존재 하는 어떤 시간의 틈새는 잊혀져 버리는 것, 즉 인간이 겪은 길고 긴 고통 스러운 순간이나 경험을 잊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사라져 버린 기억을 되살려 내고 싶을 때 우리는 사진기에 찍혀진 이미지를 꺼내 본다.
어쩌면 사진기가 신처럼 인간의 삶을 두루 살펴서 기록하고 기억해내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이전에는 오직 유명 인사들만 찍던 사진을, 은 판 사진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정확하게 같게 보이도록 총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한 장의 사진 만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