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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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배경의 한 남자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권총을 발사 하듯 그의 손에 들려진 라이터에 불꽃이 솟아 있다.

독일의 현대미술가이자 전 세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는 20세기 회화 작품을 21세기적 세계관에 투영시킨 미래 지향적인 예술가다.

회화 장르에서 시작한 그의 예술은 사진처럼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법으로 세상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남자의 자화상부터 소녀가 된 자기 딸의 뒷모습을 사진에 기초해 화려한 색채, 그윽하고 안정감 있는 톤, 정교한 붓질로 아름답게 재현 해서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들(photography based painting)'을 독특한 장르로 승화 시켰다.

(c)Gerhard Richter's 'Betty,1988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은 사진 원본에 붓질을 해서 이미 완성된 작품에 덧칠 하는 연출 기법으로 마치 21세기 디지털기기로 사진을 보정 하듯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완성한 작품은 사진일까?회화 일까? 아니면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일까?

(c) Mieno Kei

미대를 졸업한 뒤 광고 회사에 다니던 ‘카논’은 상사의 괴롬힘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하고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 편집부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특집기사를 맡게 된다.

여름이 시작 되기 몇 달 전인 3월 3일 히나마쓰리 축제에 맞춰 시작한 전시회 <늦여름> 안내장을 발견한 카논은 전시장을 찾아 가고 미스터리한 화가가 남긴 작품 <늦여름> 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의 크기와 사진같은 세밀한 기법에 탐복한다.

그림 속 모델이 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해서 죽음의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화가 '나유타'의 특집 기사를 맡게 된 카논은 그의 실체를 취재하는 동안 나유타의 독특한 사진 회화 작품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와이 슌지의 <제로의 늦여름> 중에서

‘사신’(死神)으로 불리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의 이야기를 쫓는 ‘아트 미스터리’ ‘제로의 늦여름’에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가 남긴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는 회화적인 언어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테스크한 나유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비교적 좋아하는 그림이 있었다.

<까마귀 공원>이라는 작품이다.

어린 소녀의 초상화로, 티 없는 귀여움이 어딘지 후지이 쓰토무(일본 서양화가)의 작품을 연상 시킨다.

도록의 같은 페이지에 실린, 또 다른 소녀를 그린 <카나리아의 집>과 마치 한 쌍처럼 보인다. 어둑한 방에 있는 소녀를 심플하게 그린 <카나리아의 집>에 비하면 <까마귀 공원>에는 다소 독특한 구상이 엿보인다.

눈동자에는 쓸쓸함이 가득하고 입은 일자로 다물렸다. 손에 든 한 장의 사진에는 소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소녀는 웃고 있다.

회화적인 언어로 미술 작품을 묘사했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유괴와 행방불명의 덫이 곳곳에 깔려 있어 오싹하다.

미술 기자 카논이 나유타가 남긴 작품 세계에 빠져 들 때마다 작품 속 소녀들은 행방 불명 되거나 살해 당해서 피해 가족들의 삶은 산산 조각이 나버린다.

'훌륭한 그림은, 한 눈에 압니다. 뭐랄까, 사체인데 살아있는 것 같았죠. 대단한 거죠. 언제가 되든 어디서든 꼭 공개하고 싶은 그림이네요. 하고 제가 말했을 겁니다. 얼마 후 아드님이 직접 연락해왔어요. 그림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작가명은 '나유타'가 좋겠다. 뭐, 그런 얘깁니다.'

유화를 사용해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기 위해 본인의 사진을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잡지와 신문, 책에 수록딘 실제 이미지를 스크랩 해서 붓으로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버리거나 흘려버리는 기법으로 생생하면서 선명한 리얼리티 경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그는 이런 사진 회화적인 작업을 통해 광란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갔던 어린 시절의 시간부터 종전 후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독일의 모습을 반영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에는 예기치 못한 선택과 우연, 영감 그리고 파괴의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화가의 시선으로 해석된 세상을 보게 만들었다.

화가 나유타는 왜 죽었을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왜 유괴 되거나 살해 당했을까?

화가는 증거로 작품을 남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남긴 작품에는 '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누구도 구하지 못해. 그런 저주'가 걸려 있는 것일까?

가세가 붓을 들고 가시와기 슈조의 그림과 마주했다. 그의 붓끝이 거장의 세계에 닿는다. 붓이 움직인다.

사는 동안 한 번 쯤은 어떤 작품 앞에서 매혹 당하거나 일순간 마음에 무언의 감정이 솟아 날 때가 있다.

형언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을 그린 화가의 심성은 어떤 상태 였을까?

글로 묘사된 나유타의 그림을 머릿 속으로 상상 하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행동을 추측해 보고는 내가 붓을 잡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배경은 어떤 색으로 처리 했을 까..

이젤을 세워 놓고 작품을 완성 하고 나서 사진으로 작품을 찍어두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린 나유타,만면에 웃음을 띤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 또는 그녀가 긴 머리칼을 헝클어뜨린 채 춤을 추고 있는 작품들....

<연옥>....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제 몸에 불을 붙이고 불길에 휩싸여 춤추는 사람을 촬영해서 사진으로 현상하고 마지막 붓으로 완성한 화가 나유타.

영화 감독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은 겨울의 계절이 시작되면 생각나는 영화‘러브레터’와 ‘릴리슈슈의 모든 것’, ‘립반윙클의 신부’, ‘키리에의 노래’ 등 거의 모든 자신의 작품의 원작을 직접 쓸 정도로 일찌감치 글쓰기 재능을 인정받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화가 나유타가 실제로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회화를 완성하듯 이와이 슌지 감독은 미스터리한 예술 세계를 그린<제로의 늦여름>에서 카메라 촬영 기법처럼 스토리를 전개 시켜 나가면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인 언어로 묘사했다.

Overpainted photograph 17. Nov. 99 ©Gerhard Richter 2017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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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트 영매탐정 조즈카 2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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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남자의 실루엣만 봐도 영상이나 책을 읽지 않았어도 실존 하지 않는 어떤 인물 보다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라는 걸 전 세계인들은 알고 있다.

셜록홈스라는 인물은 실존하지 않지만 그가 소설 속에 살았던 주소는 실제 하고 있고 그 주소가 있는 장소에 세워진 집은 셜록 홈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어 박물관까지 차려져서 전 세계 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세상에 실존했던 어떤 역사적인 인물들도 탐정 셜록 홈스의 필적할만한 캐릭터가 되지 못한다.

허구의 인물을 창조한 작가 코난 도일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영원불멸한 가상의 인물을 창조 할 수 있었을까?

1882년 영국 포츠머스에 병원을 개업한 코넌 도일은 환자가 찾아오지 않아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고심 끝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첫 작품부터 정통 역사 소설에 도전하고 모아 둔 돈을 탈탈 털어 출간하지만 책이 팔리지 않아서 자리만 차지 하고 있으니 흔적도 없이 서점 진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변에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한 코넌 도일은 시를 쓰기 시작하고 그 시들이 쌓여서 어느새 100편 넘는 시를 발표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도전한 분야는 추리 소설로 평소에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던 분야에 코넌 도일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린다.

그렇게 탄생한 코넌 도일의 첫 추리 장편이 '주홍색 연구'로 서점 가판대에 진열하자 마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책이 되고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출간 독촉에 떠밀려 써낸 두 번째 장편 '네 개의 서명'도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사람들은 코넌 도일이 창조해낸 캐릭터 셜록 홈스에 열광하며 사슴 사냥꾼 모자에 파이프를 문 셜록 홈스 패션을 흉내내는 남자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뒤이어 나온 단편모음집 '셜록 홈스의 모험'은 코넌도일을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게 만들며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 놓았다.

광팬들은 새 책이 출간 될 때마다 서점에 구름같이 모여들고 코넌 도일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는 스타작가가 되었지만 얄팍한 대중 소설 작가 보다 굵직한 역사 소설가로 남기를 원했다.

마침내 코넌 도일은 더 이상 자신의 소설에 셜록 홈스를 등장 시키기 않기로 결심하고 1894년 출간한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를 죽여버린다.

광팬들에게 셜록 홈스가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숙적 모리아티와 함께 추락사 하는 장면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였다.

소설을 연재하던 잡지사들은 구독 거부 사태에 직면하고 광팬들의 항의로 마음고생에 시달리던 코넌 도일은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보낸다.

아들의 편지를 받은 어머니는 답장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코넌, 네가 힘든 걸 잘 알겠다. 그런데 도대체 왜 셜록 홈스를 죽인거니?"

어머니에게 답장을 받은 코넌 도일은 7년을 버티다가 결국 셜록 홈스를 살려낸다

괴물 개의 전설과 그에 휘둘리는 인간의 속성을 그린 '바스커빌가의 개'에 드디어 홈즈가 다시 등장한다.

"나는 지금까지 수사력의 범위를 현실 세계로 제한하고 이 세상의 악과 맞서 싸워 왔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가상의 괴물이라면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존재 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에 푹 빠져버린 독자들의 비 이성적인 심리적 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경험했던 코넌 도일은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인 영적인 힘에 대해 깊이 연구 했다.

셜록 홈스는 마치 접신을 한 영매 처럼 낯선 사람을 한 번 훑어보는 것 만으로 직업과 성격은 물론 최근에 다녀온 곳이나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처음 본 사람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 셜록 홈스의 이런 능력은 사건마다 초인적인 추리력을 보여 줘서 읽는 독자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 주었고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가 되었다.

의학을 공부하고 진료실도 운영했던 코넌 도일은 자신 창조한 홈스처럼 이성과 논리로 무장 했던 인물이 아니였다.

그는 신과 대화 할 수 있다는 ‘접신’을 신봉하며 심령술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마녀 법 폐지에 앞장섰다. 협심증을 앓아 정원 산책도 힘들어했지만, 북유럽으로 심령 순회를 떠날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생애 마지막 4분의 1을 심령술 전도사로서 살다 갔다.

만약 실제 세상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초능력자가 등장해서 첨단 수사 기법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미제 사건을 해결 하게 된다면 현장의 증거물과 범행 동기 그리고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논리에 부합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죽은 자의 마지막을 본다거나 아예 피살자의 혼을 불러오는 영매가 자칫 억울한 이들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범죄 사건에 거짓말 탐지기는 도입이 되어도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수사 현장에 투입되지 않는다.

단,미국의 FBI도 난항을 겪게 되는 수사에 최면술과 심리 요법을 통해 목격자의 기억을 더듬어서 무의식 중에 잠재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 내기도 한다.

조즈카 히스이 신비로운 비취색 눈동자를 갖고 있는 그녀의 직업은 영매 탐정, 사건을 해결 하러 나갈 때마다 컬러 렌즈를 착용하고 패션 잡지 화보에 등장 할 정도로 화려하게 차려 입는다.

비취색의 신비로운 눈빛으로 영적인 시공간을 꿰뚫어 보는 그녀의 능력은 '인버트(invert)

즉, 사건의 발생 동기를 거꾸로 추적해 나가면서 법과 논리를 뒤집어 버리며 오리 무중한 사건의 실체를 밝혀 내는 명 탐정이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들과 수사 담당자들 앞에서는 영적인 능력으로 진상을 미리 파악하고 나서 이성적인 논리에 맞춰 사건의 퍼즐을 하나 하나 수집해서 사건의 최종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신중하게 접근 하면서 자신의 영적인 세계를 현실의 세상에서 충족 시켜 줄 누군가를 통해 사건을 해결 할 뿐이다.

추리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사건 발생 시점 부터 막연하게 범인이 누군지 찾기 시작한다. 일단 잠정적으로 이 사람이 범인일 것 같다는 의심을 갖고 나면 작가가 곳곳에 설치 해 놓은 논리를 따라 가기 보다 독자 스스로 정해 놓은 잠정적 범인의 행적을 쫓는데 급급하다.

따라서 독자 이기도 한 작가들은 첫 시작부터 이 사람이 범인이다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추리 소설은 추리를 즐기기 보다는 <반전>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의외의 범인과 의외의 결과, 흔히들 독자들의 허를 찌르고 뒤통수를 때리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치밀한 논리와 두뇌 싸움의 대열에 독자들도 가세 하게 만들며 읽는 쾌감까지 느끼게 만든다면 시리즈 작품이 나올 때까지 목을 빼고 기다릴 것이다.

일본 추리 소설계에선 갖가지 초현실적인 설정을 동원한 이른바 ‘특수설정 미스터리’가 대세로 영적 능력의 매력적인 여성 탐정이 주인공인 <영매 탐정 조즈카>는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시작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 등 도서차트 5관왕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적 능력을 갖춘 영매 조즈카는 세상을 뒤 흔들어 버릴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가령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피해자가 살해 당한 장소에서만 기운을 느낄 수 있고, 또 영혼과의 공명 여부도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추리소설가 마코토와 짝을 이뤄서 여러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따라서 독자들은 영매 탐정의 영적인 능력이 보여주는 비 이성적인 논리와 현장 답사를 하며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과 증거물을 토대로 논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소설가 마코토의 합동 수사 과정을 함께 추리해 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상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된 <영매 탐정 조즈카>는 영적인 능력 때문에 친구도 없고 스스로 저주 받은 존재라 느꼈지만 범죄 수사에 기여 하면서 비로소 세상을 만나게 되고 사건 해결의 논리적 실마리를 찾아주는 소설가 마코토와 우정과 애정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흘러 넘치는 청춘 소설과 사이코 스릴러 탐정물을 혼합한 새로운 추리물이다.

추리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보다 더 끔찍한 범행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 시대에 영적인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답답한 현실을 토로 하러 가는 이들이 몰려 가고 있다.

유툽에 무속, 무당, 샤머니즘이라는 단어 키워드로 검색하면 총천연색 한복과 알록 달록한 방울을 흔들고 부채를 펼치는 한국 무속인들 영상들이 수백개가 좌르륵 뜬다.

이들 무속인들은 현재 가장 핫한 연예인들, 인기 몰이를 하는 배우들, 급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정치인들 그리고 재벌들 사주를 분석하는 영상들이 많고 어떤 무속인들은 적중률 90퍼센트 이상을 보이며 유명인들의 운세를 미리 예측하기도 한다.

출처: South Korea's young shamans revive ancient tradition with social media ,.reuters,2024.0608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문 직종인 점술가는 철학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21세기에 가장 멋지고 세련된 인생 상담소로 발빠르게 변모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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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04 17: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라는 직업도 어느 정도 소위 신기가 있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작가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깊이 파헤치다 보면 작품이 이성의 영역을 벗어 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님, 추리 소설과 영적 탐정에 관한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scott 2024-11-04 18:24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려면 예지력과 신기가 있어야 독자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뚝 떨어지고 있네요
마힐님 건강 잘 챙기세요 ^^

희선 2024-11-05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셜록 홈즈는 많은 사람한테 영향을 주고 그걸로 다른 소설이 나오기도 했군요 소설뿐 아니라 만화도... <카모노하시 론의 금단 추리>에서는 모리어티 집안과 홈즈 집안 후손이라는 설정이 나오더군요 카모노하시 론이... M 집안은 범죄 집안으로 모리어티 후손...

영매탐정이지만... 다음은 말하지 않아야겠군요 첫번째 책 본 사람은 다 알겠지요 scott 님은 두번째 책 만나셨군요 첫번째 뒤에서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게 맞기도 했어요 그건 범인이군요


희선
 
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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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극심한 가난 속에 떠돌이처럼 친구들의 집을 오고 가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악상으로 작곡했다. .

그는 악상이 떠오를 때면 친구와 식사 도중에 메뉴판에도 음표를 그렸고 잠을 자던 중에 악상이 떠올라 밤새 작곡하다가 새로운 곡이 떠오르면 앞서 작곡했던 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방탕한 생활로 얻은 매독 후유증으로 인해 건망증이 매우 심해진 슈베르트는 쓰던 곡을 곧잘 잊어버린 경우가 많았고 평생 동안 자신의 피아노를 8개월밖에는 가지지 못해서 대부분의 곡을 기타로 작곡하거나 허밍으로 음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세상에 남겨 놓은 실내악곡은 악기로 연주되는 가곡 처럼 악기 특유의 음색으로 노래하듯 울린다.

애절한 선율로 가득 찬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는 음악가들에게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듣고 싶은 곡으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장례식 때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C장조 D.956, 작품163/2악장 아다지오를 연주 해 달라고 부탁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조셉 선더스는 자신의 무덤 비석에 이 곡 제1악장의 제2주제를 새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슈만은 때 이른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슈베르트 사촌 형에게 찾아가 자필 악보를 보여 줄 수 없냐고 부탁했을 정도로 듣는 이들에게 한 없는 슬픔과 애수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최고의 음악가 였던 베토벤의 시대에 태어난 슈베르트는 웅장한 화음으로 가득 채우는 화려한 교향곡 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의 악기로 구성된 실내악 화음에서 악기 고유의 음색으로 침울하면서도 풍성한 소리의 화음을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작품은 후대의 낭만파 음악의 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c) Untitled Blue, Green, and Brown ,Mark Rothko,1953

색면 추상화 작품을 남긴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한 가지 또는 두 세가지 색 만으로 세기의 작품을 완성했다.

물감 몇 개와 캔퍼스 그리고 붓만 손에 쥐고 있으면 누구나 칠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어린 시절 부터 물감 섞이 놀이를 해 본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색의 배합만으로 완성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인다.

하양과 빨강의 색이 겹치면 분홍빛이 나오고 빨강과 푸른색이 뒤섞이면 보라 빛이 나오고 푸른색을 더 많이 배합하면 질흙 같은 검은 빛이 나온다.

마크 로스코는 가장 먼저 커다란 붓으로 흰 색 캔퍼스 바탕에 흰색과 갈색을 뒤섞은 밑바탕 색을 칠하고 붉은 빛을 덧칠해서 분홍빛을 나오게 하고 마지막 붉은 선홍색을 제법 큰 면적으로 칠하고 스펀지에 물을 적셔서 번지는 기법을 구사했다.

마크 로스크의 단순해 보이는 색감과 기법을 상세하게 분석 해 보면 세상에 쏟아져 내리는 빛을 시시각각으로 분석해서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c) UNTITLED NO. 17, Mark Rothko,1961

도형의 윤곽선이 뚜렷하지도 않고 경계선 조차 선명하지 않는 이 작품은 도형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도 없고 색의 조화도 그리 썩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

윤곽선은 뭉개져서 성기게 칠해져 있지만 묘하게도 자세히 바라 볼 수록 색의 경계선이라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크 로스코는 작품의 이름을 정하지 않고 숫자로 표기 했지만 스케치 노트에 '비극, 황홀경, 죽음' 같은 단어를 적고 나서 '황홀한 죽음'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써 놓았다.

고대 건축 양식과 연극, 음악에서 회화적 영감을 얻었던 마크 로스코는 초기 시절엔 엄격한 형식에 얽매여서 완벽한 구도를 갖춘 작품을 완성 하는데 몰두 하다 차츰 구상주의적이면서 사실주의를 표방한 회화에서 벗어나 오선지 위에 화음을 그려 넣은 음표처럼 색과 형태가 층을 이루고 차례 차례 배열되는 수직성을 갖춘 추상 주의 작품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그는 붓을 들고 캔퍼스 앞에 설 때면 슈베르트의 실내악 음악을 틀어 놓고 오선지에 음표를 채워 넣는 물감을 덧칠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감미롭게 흘러가는 선율 속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불협화음과 함께 조성이 바뀌어 버린다.

이 기법은 놀라울 정도로 마크 로스코가 색을 다루는 기법과 매우 흡사한데 강렬한 색조의 대비를 통해서 그림이 걸려 있는 장소에 따라 색의 움직임과 활력이 달라진다.

마크 로스코 그림 앞에 서면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두 가지 또는 세가지 색 사이의 경계선이 여러 층으로 겹쳐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직사각형의 가장자리에서 감정이 요동치듯 일렁이는 강렬함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c)Rothko Chapel, Houston, 1971

스스로 생을 마감 한 마크 로스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예술은 분명 예술이 작용하는 시대의 모든 지적 과정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크 로스코(1903-1970)

마크 로스코가 세상에 남긴 예술의 지적 영감을 받은 세기의 작가가 있다.

나는 1970년 11월 27일 생이다.

처음 내 생일을 삼촌에게 말했을 때, 삼촌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책장에서 두툼한 화집 한 권을 꺼내 왔다. 날카로운 책장에 손을 베이지 않기 위해 삼촌은 면장갑을 끼고 책장을 넘겼다.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야.

삼촌이 말했다.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으로 망명했고 1970년 2월 25일에 죽었어. 그러니까. 이 사람이 죽던 날을 전후해서 너는 처음 생겨 났겠구나.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중에서


작가 한강이 2005년 가을 무렵부터 구상에 들어간 <바람이 분다. 가라>는 2007년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연재를 시작해서 이듬해 가을까지 일 년 반 동안 연재하다 다시 일 년 남짓의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새로 고쳐서 장장 4년 6개월여의 긴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새벽의 미시령 고개에서 사십 년이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차례의 자동차 사고를 둘러 싸고 그에 얽힌 인물들의 내밀한 사연이 진실을 캐묻는 화자 이정희의 기억과 힘겨운 행보를 따라 전개되는 이 작품은 촉망 받던 한 여자 화가의 의문에 싸인 죽음을 두고,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치르듯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잠자코 그림을 들여다 보았다. 화면의 가운데가 분할 되었고 서로 다른 색채의 커다란 사각형 두 개가 바탕색을 향해 번지며 스며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색채가 번지게 하기 위해서 붓 대신 스펀지를 쓰기도 했다고 해.

색채들의 충돌이 인간의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감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시작도 끝도 없던 혼돈이 방금 갈라져 피 흘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그토록 단순한 구도의 비구상 화면에서 극적으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중에서


“그날 새벽 폭설이 그 모든 흔적을 덮었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바람이 분다. 가라>는 촉망 받던 여류화가 서인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그녀의 친구 이정희와 서인주의 죽음을 신화화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신전에 올리려 하는 남자 강석원의 감정의 흐름들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충돌하고 부딪치면서 격렬한 숨과 서사의 파동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꿈틀거린다.

작가 한강은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매 순간 흔들리고 번민 하는 삶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 서 있는 당신은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살아내는 것으로 진실한 빛을 얻을 수 있는가?

이 그림을 처음 마주 하는 순간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가 살짝 뒤로 물러 섰다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림을 바라 보는 동안 캔퍼스를 가득 채운 색들에 서서히 스며 들어간다.

마치 성소 앞에 서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하듯 그저 거대한 그림의 색 앞에서 하염없이 밀려 드는 감정의 선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전시장 밖을 나오니 바람이 불어 온다.


이 바람은 어디서 불어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 번의 삶에서 여러 인생을 살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디 마디 끊어지는 것이었다고,

어떤 마디의 기억들은 전생처럼 멀고 어둑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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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0-31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님의 작품 분위기랑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정말 잘 어울리는것 같아요! 한강의 회화버전이 로스코이고, 로스코의 소설 버전이 한강이라고 할 정도로요!ㅎ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ㅎ

scott 2024-11-04 18:25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잘계신거죠!
마크 로스코 전시를 서울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서울 나들이로 ^^

Falstaff 2024-11-01 0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슈베르트의 D.956 아다지오 악장. 오랜만에 듣습니다.
도라이 쿳시는 이 아다지오 악장 자체가 섹스라고 주장하느라 상대로 하여금 그만 김이 팍, 새버리게 만들었다지요. ㅋㅋㅋ

scott 2024-11-04 18:26   좋아요 2 | URL
퐐스타프님에게 슈베르트의 아다지오는 ㅎㅎㅎㅎ

Falstaff 2024-11-04 18:37   좋아요 2 | URL
아이작 스턴에 대한 경의지요 뭐. ㅋㅋㅋ
 
악스트 Axt 2022.1.2 - no.040, 커버스토리 한강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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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스웨덴 한림원 측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한 작가 한강은 여러 달 전에 참석 의사를 밝힌 포니 정 시상식의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고는 겸손하면서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시간이 지났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작품이 이토록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연일 매진과 품절의 소식이 날아 오고 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열 달 정도에 걸쳐서 이룬 백만부 판매 고지에 단 몇 일 동안 분당 수십권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작가의 출간 작들은 1994년 첫 시집을 발행 한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꾸준한 필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인 것이다.

은둔형의 내향적인 작가 한강의 오래전 인터뷰들과 영상들, 기고글, 그리고 직접 작사 작곡을 한 음악까지 모두 화제가 되고 있고 지인들에게 추천한 책들, 아버지 생일 날 선물한 책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책들의 판매 부수가 올라갈 정도로 작가 한강의 말과 글은 읽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시대에 찾아 읽는 열정의 불을 지펴 놓았다.

2년 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작가가 문예지 Akt에 실린 인터뷰 글을 다시 읽어 보니 단 한 순간도 세상을 향한 따스한 눈길을 거둔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작별>을 쓰게 된 계기는 먼저 눈사람이 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눈은 녹잖아요. 무엇이 이 사람을 녹게 할까? 이 사람을 녹게 하는 건 따뜻함이고 사랑이죠. 그러니까 눈사람에게는 뜨거움이 죽음인 거죠. 따뜻함이 죽음이고 눈물이 죽음이고, 사랑이 죽음이고 그걸 생각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 할 수 있었어요.

-한강 인터뷰 중에서


작가 한강은 언젠가 독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사는 대로 소설을 쓰진 않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어렴풋이 떠오르는 형상, 강렬한 이미지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그 이미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 때 메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싸우는 소설이야 들썽 들썽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전진하고...

이렇게 메모해 나가면서 이미지들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서서히 그 이미지들이 움직이며 제게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틀이 갖춰져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동안 죽음 가까이 갔다가 절반을 살고 절반은 죽은 상태로 되었다가 마지막 순간 마침표를 찍을 때 불을 켜고 현실의 제 삶으로 되돌아 옵니다.'

-한강

(c)La vegetariana - Daria Deflorian

채식주의자를 연극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2018년에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유명 여배우가 추천한 한강의 책을 읽자 마자 강렬한 감동에 휩싸여서 연극 버전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한다.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채식주의자를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읽고 나서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심리를 깊이 이해 하기 위해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고 영혜의 마음, 그녀의 언니와 형부의 마음 그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겹겹이 감춰진 감정의 실타리를 하나 씩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죽는 게 왜 그렇게 끔찍한가요?(Why is it so terrible to die?)

-채식주의자


30년 동안 작품을 써온 한강의 글을 단 몇 줄만 읽어도 작가 고유의 문체에 담긴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필력은 언어로 만들어 놓은 감각 그 자체다.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한강의 작품들은 시적인 산문 속에 드리워진 기괴한 아름다움에서 뜨거운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어서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엔 삶으로 가는 소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해 하기 위해서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은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 한강의 작품엔 교향곡처럼 음표가 있고, 주제가 있다. 돌아오는 후렴구도 있다. 매번 인간성, 운명, 자매의 사랑, 전쟁과 폭력 등의 후렴구가 계속 돌아온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말한다.”

30년 전에 발표한 작가 한강의 첫 시 <서시>의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 안고

오래 있을 꺼야.


언제 어디서든 흘러 넘치는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시대에 우리들 각자는 몇 날 몇 일 동안 화제의 중심에선 인물이나 즐겨보는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한 것을 검색하고 찾아 보며 웃고 즐기는 것에 익숙하다.

인간이 창작한 활자에 새겨진 이야기 속에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언제인가...

한 없이 버거울 정도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 속의 그 남자, 그 여자는 누구의 삶이였던가....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소설들 속에 수천, 수 만명의 사람들이 박제 되어서 누군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줄씩, 한 점씩 세상 밖으로 튀어 나와 말을 걸고 웃고 울며 함께 걷는다.

'누군가 앞으로 뭘 쓸 거냐 라고 물을 때 마다 저는 항상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라 대답하죠.

막 소설 한 편이 끝나려고 할 때 괄호 속에 들어가 있던 모든 것이 둑을 넘듯 조용히 몸속으로 다시 흘러 들어올 때 언제나 저는 더 머뭇거리고 싶어지고 더 쓰고 싶어지고 더 숨을 불어 넣고 싶어집니다.'

-한강,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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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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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바다'(Sea of Fertility)는  달의 동반구에 있는 달의 바다 중 하나로 행성 달의  다른 바다들과 달리 '메스콘(중력이 유난히 강한 곳)'이 없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문예 월간지 ' 신초'에 '풍요의 바다' 대작 연재를 시작하고 제 1편  '봄눈'의 마지막장 말미의 부기에 '풍요의 바다'는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를  전거로 삼은 꿈과 전생을 다룬 이야기라는 부연 설명을 붙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는  1965년부터 시작해서 1971년까지 총  4부작을 완결 하는데 5년 정도에 시간이 걸렸고 원고용지 총 6000장을 넘긴 대작이다.



1부'봄눈'의 시대 배경은  1910년대 전후로  스무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는 기요아키가  그다음 이야기에서  특정 신체부위에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서  친구 혼다 시케쿠니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차는 벌써 도쿄 시가에 들어 섰고 하늘은 선명한 남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새벽녘 하늘에 걸린 구름은 도회의 지붕위로 길게 뻗쳐 있었다. 혼다는 한시라도 빨리 차가 도착하기를 빌면서도 이번생에 다시는 없을 기이한 하룻밤이 밝아오는 것이 아쉬웠다. 잘못들었나 싶을 만큼 몹시 미약한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 왔다. 아마도 사토코가 벗은 신발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모래 소리 같았다. 혼다에게 그 소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모래 시계 소리처럼 들렸다. 

-미시마 유키오의 <봄 눈>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의 제목은  달리는 말(奔馬)로  한국어로는 분마 일본어로는 혼바로 읽는다.

풍요의 바다 2부를 읽던 중에 한자어 사전을 뒤적이다가 [달리는 말 奔馬]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이 단어가  나왔다.

 빨리 달리는 말.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도 아니거니와 그간 지삼만이 저질렀던 저열한 방법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의 분마(奔馬) 같은 독주에 이를 갈며 분노하기도 했으나 실상 윤도집이 환이를 위험시하고 있는 것에는 다소 한계를 넘는 것이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 중에서 

부끄럽게도 토지 7권에서 읽다가 멈추었고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을 읽다가  奔馬(분마)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고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풍요의 바다 2부를 집필한 기간은 1966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로 이 기간동안 일본은  잿더미가 된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활기차게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경제 굴기를 내세웠던  '쇼와시대'가 배경이다.

이 시기에  발생했던 '혈맹단 사건'이 2부작 '달리는 말'의 핵심 주제로 집필 당시 미시마는 직접 수첩과 녹음기를 들고 사건을 취재해서 사실을 바탕으로 '신풍연의 난( 일명 사족 반란) 메이지 시대 때 번의 사족들이 일으켰던 난에서 활약했던 인물들 170명중에 난을 주도 했던 인물 '경신당' 세력파를 작품에 핵심인물에 투영 시켰다.


미운 사람을 죽이는 건 간단하다. 비열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적의 인간적 결함을 들어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구라하라의 커다란 악은 자기 안전을 위해 세이켄 학원을 매수하는 작고 하찮은 악과 연결되어서는 안 됐다. 신풍련의 젊은이들도 구마모토 진대 사령관을 결코 그런 작은 인격적 결함 때문에 죽이지는 않았다.
이사오는 괴로움에 신음했다. 아름다운 행위란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가. 자신은 아름다운 행위를 할 가능성을 불합리하게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저 그 한 마디 때문에!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전작 '봄눈'의 기요아키가  환생한 '이사오'가 애독하는 각종 정치서 교육서 철학서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품에 서술한 일부 책들은 미시마 유키오가 다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메이지 시대 때 넘쳐 흘러 들어온 각종 서양 서적들을 까막눈에서 조금 벗어난 사무라이들이 번역하거나 성직자들과 신부들이 번역한 것들을 이리 저리 짜집기한 사상의 잡서였기 때문이였다.

이런 번역물을 참고 삼아 작가  미시마도 작품에서 사상의 범람의 시대에 표류 했던 잡서들을  '이사오'가 읽게 만들었다.

1부 <봄눈>에서 일본 귀족들의 덧없고 허무한 감정을 펼쳐 보였다면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시대를 변혁 시키겠다는 기세로 펄펄 끓어 오르는 혁명가들과 광신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피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는 11세기 말 헤이안 시대 스가와라노 다카에의 딸이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으로  이야기의 중심 축은 윤회의 전생담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이야기의 커다란 틀을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전체 구성으로 가져왔다.

미완성의 삶을 살다 간 인물이  그다음 번 시대에는 다른 모습으로 동일한 신체 특징을 갖고 시대를 초월하며 다른 인물로 살아간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 (1910년 전후)부터 1975년 여름까지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불교의 윤회설에  투영 시켜서   일본 근현대사의 모습을 병풍처럼 엮었다.

마지막 4부작은 1970년 시대를 다룬 '천인오쇠'天人五衰)는 천인이 죽을 때 쯤 나타나는 다섯 가지 쇠하여지는 모양(模樣)을 의미 하는데 첫째  몸에 빛깔이 흐려지고, 둘째 나쁜 냄새가 나며, 셋째.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넷째 화만이 마르며, 다섯번째  스스로에 자리가 즐겁지 않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할복 자살했지만 마지막 '천인오쇠'는 1971년 1월에 실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풍요의 바다 1부, 2부를 연달아 읽고 폭풍 눈물을 흘리며 일본에도 이런 서사 구성을 갖춘 문학이 탄생했다면 탐복 했지만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 군국주의를 외치며 웃통을 벗고 돌아 당기는 동안 집필했던 3,4부작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영역본 1,2부는 미국 번역가 마이클 갤러 (Michael Gallagher1930년생)가 번역해서 1973년 미국에서 이 책으로 내셔널 북어워드를 받았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로 3년 남짓 일본에 체류하며 영어를 가르쳤고 한국 부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었다(전쟁 당시 낙하선 부대원으로 전쟁 후에는 선교 목적으로 체류함)

마이클 갤러는 미시마 책 두 권을 번역한 후 엔도 슈사쿠 책을 번역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면서 일본 출판사 고단샤에서 출간한 영어 일본어 사전을  편역 했을 정도로 일본어 천재 였다.

3부 '새벽의 사원'의 번역은  두 명의 일본어 전공 학자들이 공동 번역을 했다.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인 세실리아 세가와 세이글레( Cecilia Segawa Seigle)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자 하와이 주립대학에 동아시아 언어 문명사학과에 학과장으로 그녀는 이 번역으로 일본정부가 수여하는 온갖 훈장을 목에 주르륵 걸으며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번역자 DE Saunders은  1919년생으로 정통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 하다가  불교에 입문해서 일본어에 빠진 학자다

마지막 4부 번역은 일본어 번역가로 유명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로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수상 할 수 있게 만들며 미국 출판계에 일본 소설 붐을 일으킨 인물이다

에드워드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해병대 어학장교로 일본 파견 당시 온갖 서류를 해독하려고 일본어를 배웠다.

미군은 에드워드의 뛰어난 일본어 실력과  번역을 통해서 일본 문화를 익힐 정도로 그는 일본의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다.

에드워드는 종전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외교관 시험에 단번에 합격 한 후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일본문학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1948년 그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일본 정치인들에 파벌과  귀족, 화족들의  재산서류들을 분석 하는 일을  담당(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 재벌 기업들에 사유재산을 추적하는 일도 함)하며 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공부하는 열혈 학구파로 살았다.

그렇게 일본의 모든 걸 섭렵하겠다는 기세로 달려 든지 단 2년 만인 1950년부터 '겐지 모노 가타리'를 줄줄 읽기 시작하자 동시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만들며 노벨상 후보에 일본 작가들의 이름을  올려놓는 인물이 된다.

일본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추앙 받는 동안 에드워드는 일본의 전범 국가 이미지를 지워주고 문인들을 배출하는 문명국 이미지를  이 시기부터 덧칠 해 주기 시작하며 친일 도널드 킨과  손잡고 미국 문학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일본 문학들이 영미권으로 진출하는데 큰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 작품을 미국 내셔널 북어워드를 수상하게 만들며 일본 정부로 부터 각종 훈장 메달을 줄줄이 목에 걸고  '사마'로 칭송 받는 인물이 되고 도쿄 도지사는 2006년에 도쿄 인근 섬을 뚝 떼어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한테 준다고 하자 그는  미국 생활을 모조리 정리하고 일본에 영구적으로 살기 위해 이주한다.

에드워드는 반 평생 일본에서 거주 하는 동안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서 밀반출까지 하며 한국의 고미술과 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모순된 인물이였다.

1968년 10월 18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 지던 날 에드워드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등반하고 있었을 정도로  지진 발생이 빈번한 일본보다 바다 건너 한반도의 산과 바다를 누비면서 심신 건강을 유지 했던 기인이였다.

2007년 산책 도중에 넘어져서 4개월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뜨기 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섬에 있는 도서관에 유품 500여점을 기증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계가 역사와 이념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계획대로 방사능 오염수를 착실하게 정확한 시간에  일정량을 쏟아 버리고 있고 세계 문화 유산에 조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강제로 내몰아 버린 사도 광산을 등재 시켰다.

2024년 나라의 독립을 되찾은 지 80년 만에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념으로 갈라 놓고 일본을 배려 하는 기이한 외교 정책을 펼치자 오히려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 할 정도로 한국의 대일 외교 전략은 세계 무대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순수란 꽃 같은 관념, 박하 맛이 강한 양치액 같은 관념, 자상한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리는 듯한 관념을 서슴없이 피의 관념, 부정을 베어 쓰러뜨리는 칼의 관념, 대각선으로 내리치는 동시에 튀어 오르는 피바람의 관념, 또는 할복의 관념으로 이어 주는 것이었다. ‘꽃처럼 지다’라고 할 때, 피범벅이 된 시체는 곧 향기로운 벚꽃으로 변한다. 순수란 얼마든지 정반대의 관념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순수는 시(詩)다.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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