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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평점 :
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쯤 비상 계엄이 선포 되고 하늘에선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국회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고 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담장을 넘은 국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 가고 시민들이 몰려가 군 경찰을 온 몸으로 막는 사이 자정을 넘긴 시각인 12월 4일 오전 1시쯤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술톤 얼굴의 내란수괴범이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 해제 선언을 한 직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탄핵안 1차 표결이 이뤄진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 2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12월 14일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12월 14일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내어 지켜냈고,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국격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십조에 달하는 국가 경제적 가치는 하루 아침에 모래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으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단 한번 울려보지 못한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에서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낭독 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라 전체를 비상 계엄이라는 수렁 속으로 끌고 간 내란의 주역들의 실체가 사주, 역설, 무속과 관련 인물들이라는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권력자가 비 상시적이고 비 이성적인 무속 비선 라인을 통해 내란을 모의 하고 계엄을 선포 하고 군병력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체포 하고 감금 할 계획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이 시국에 영화도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다섯 번 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말을 잃은 여자가 손톱을 바싹 깎은 손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동안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그 연약한 부분은 각자 만이 안고 있는 지난 시절의 상처, 사고로 인한 것 일 수도 있고 기억의 저 너머 고통의 한 순간 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는 모든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 해야 우리는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고전이라 일컫는 세기의 소설들은 '실패자의 기록물'이다.
한강 작가에 앞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 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 하며 불행과 불운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실패자의 기록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친 파도에 맞서 낚시 줄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삶이 형편 없다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은 날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을 쏴 죽인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 비난 할 수 없다.
주인 달링턴 경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집사 업무에 매달렸지만 결국 주인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그의 경력과 인생에도 금이 가 버린다.
역사는 승리자의 말과 행동 그 결과만 기록 하지만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도 뜻하는 데로 생이 흘러 가지 않는 실패의 여정을 보여 준다.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두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첼로의 장례식. 한 무더기 국화꽃 사이 그녀의 영정 사진은 흐릿해서 더욱 애련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녀 아버지의 퀭한 눈은 허망했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을 지키던 너는 꼿꼿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서늘한 눈빛은 얼음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삐죽 고개 들던 악의는 눈물로 덮혔다.
-이선영의 <그물을 거두는 시간> 중에서
오랫동안 불화를 겪다 이혼 후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최윤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모 ‘선임’으로부터 자서전 집필 의뢰를 받는다.
조카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 하기 위해 지난 과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모 선임이 결혼 날짜를 잡은 아들에게 초대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하지만 뜻밖에도 이모 가족에게 깊게 패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과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모의 과거를 알게 되는 동안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는 남자가 찾아와 윤지가 애써 지워버렸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 당한 듯 성장의 순간 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온 악의였다.
언제나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강탈 당했던 이모 선임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에게 현금 인출기 취급을 받을 뿐 아내 어머니라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조카 선임은 가족들에게 외면 당해 쓸쓸하면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모 선임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미성숙 했던 청춘 시절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지는 드문 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춰나가던 중 자신 안에 움트고 있었던 악의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이모 선임은 자서전 집필에 필요한 구술을 전부 하고 나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
이모 선임은 자서전 출간을 통해 지난 시절 사랑을 품었던 미란에게 참회를 하자 조카 윤지는 자신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스무 살, 자신의 손아귀에 사랑을 쥐고 싶었던 윤지는 수진을 걱정하는 선재를 미워 했고 K를 사랑하느라 선재를 외롭게 하는 수진을 증오 해서 희대의 악녀인 수진의 인생을 파멸 시키고 싶어 했다.
결국 윤지는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형사들에 쫓기고 있었던 선재와 수진의 은신한 거처를 밀고 해버리고 두 사람의 삶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린다.
내면은 항상 청춘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윤지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선재에게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난 시절 그가 학교 도서관에서 읽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떠올린다.
늙어가는 대가로 얻게 된 젊음의 가면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늙은 형상으로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범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서서 단 2분 사과를 하고 계엄의 정당화에 대한 변명은 20분간 늘어 놓았다.
내란수괴범을 옹호 하는 변호인단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 오면 착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2022년 3월,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며 인간에게 충성 하지 않는 다는 자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란을 선동하는 괴물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자 노력할 시간이나 기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뜻하지 않은 것을 겪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 받아 혈세로 먹고 살았던 권력자와 무속 신앙으로 연결된 자칭 영적인 지도자라는 이들로 인해 국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순간 국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고 나갔고 촛불을 들었다.
이 세상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모두 인내 하고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 가고 있다.
소설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 버린 이들을 직접 찾아가 참회 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참회>는 범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빌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크사마(ksama)가 한국 불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참혹할 참(慘)와 뉘우칠 회(悔)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서 용서를 빈다는 의미로 확장 되었다.
기독교에서 < 속죄>는 어떤 죄라도 책임을 지고 신에게 고해 하고 고백해서 속죄를 해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란수괴범은 국민 담화문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 했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 하고 있는 내란 수괴범은 앞으로도 영원히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와 속죄를 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건 법과 질서, 정의 그리고 자유가 지켜 지는 민주주의다.
내란 수괴범의 운명은 헌재 재판소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