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전시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수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트레이시 에민의 <잠>은 이듬해 터너 상을 수상하며 설치 미술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1980년대 후반 런던 왕립 예술 학교를 졸업한 트레이시 에민(1963-)은 지극히 사적이면서 자기 고백적인 작품으로 전시 되는 순간 부터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주요 일간지 예술 파트에 문제가 되었던 작품에 대한 기사가 실릴 정도로 유명세를 몰고 다녔다.

1990년대 영국의 거부 찰스 사치가 소유한 사치 갤러리 소속 아티스트로 선정  되면서 단독 전시를 열게 된다.

(c)Sleep, Tracey Emin,1998

  방에 있던 침대, 텐트를 전시장으로 옮겨온 트레이시 에민은  지난 시절에 함께 살았던 애인들의 이름, 생일, 전화 번호, 중절 수술 당시 입원했던 병실 호수 그리고 낙태한 아이의 성별까지 낱낱이 새겨 넣어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벗어던진 스타킹, 애완견 물품들, 담배꽁초, 콘돔, 먹다 남긴 음식, 깡통 같은 쓰레기물까지 고스란히 전시된 <잠>은 1999년 터너 상을 수상 하자 과연 이 설치물이 이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이런 걸 과연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는지를 놓고 여러 전문가들끼리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의 논쟁 틈에  영국의 권위 있는 법의학자들까지  끼여 들어  트레이시 에민이 텐트에서 살던 시절에  발생한 특정 사건을 유추 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터너 상을 수상한 설치물 <잠>은 범죄 과학 수사대원들에게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될 것이라는 의견까지 튀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논란과 분쟁이 서로 충돌하는 사이에 트레이시 에민의 텐트 일명 <잠>이라는 설치물은 옥션에서 80만 파운드(대략 한화로 13억원)에 팔려서 10년 후에 이 작품은 누군가가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했다.

80만 파운드에 구입한 익명의 구매자는 텐트 안에 있었던 벗어던진 스타킹, 애완견 물품들, 담배꽁초, 콘돔, 먹다 남긴 음식, 깡통 같은 쓰레기물까지 고스란히 가져가 버리자 마침내 트레이시 에민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과거에 내가 어떤 상태 였는지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되새기는 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 합니다.

어떤 이들은 손으로 구체적으로 그리고 구상하지만 저는 제 주변의 물건을 통해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트레이시 에민

숱한 화재를 몰고 다니며 예술계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트레이시 에민처럼 사치 갤러리 소속된  데미언 허스트는 1988년   <프리즈(Freeze)> 전시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 yBA) 상을 수상한 이래로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For the Love of God), , 포름알데히드용액에 박제한 상어(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등 파격적인 개념미술로 세상을  끊임없이 놀라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연일 미디어에 얼굴이 도배 되는 예술가가 된다.

1986년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의 컬러를 원형으로 표현한 회화 '스팟 페인팅 시리즈(Spot Painting)’를 시작으로 데미언 허스트는    ‘비주얼 캔디(Visual Candy)’ ‘베일 페인팅(Veil Painting)’ 작품을 연이어 펼쳐 보이며 본격적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등장한 예술사조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하더니 2019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러 전시 일정이 취소되자 그는 두툼한 브러쉬 스트로크를 들고 높이 5.5미터, 너비 7.3미터(18피트 x 24피트)에 물감을 찍어 나갔다.

자극적인 오브제로 섬뜩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지” 라는 원론적 질문을 하게 만드는 데미언 허스트는   대중과 평단의  비판과 찬사를 몰고 다니며 대중 문화의 흐름을 영리하게 읽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깊이 각인 시키는 뛰어난 데미언 허스트의 상어는 미술 교과서에 등장 하고 심오한 철학을 품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박은 해골은 다양한 상품의 굿즈나 의상 도안으로 도용 될 정도로 공공재 같은 이미지가 되었다.

1863년  ‘올랭피아’로 명암이나 원근을 최소화하고, 평면적인 색과 대담한 구도를 통해 회화를 현실의 창이 아닌,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게 했던 마네는 19세기 프랑스 정통 화단의 주류 세력과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작품을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누구보다 과감하게 기존 예술의 규범을 깨뜨려나갔다.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데생을 하며  낭만주의 화풍에도 많은 영향을 받은 드가는 마네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며 시류에 편승하거나 기존의 고루한 예술 기법을 모방 하지 않고 스스로 예술의 길을 개척했다.

전 세계인들 중에서 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해도 마네와 드가의 이름은 알고 있고 설령 이름은 알지 못해도 광고나 잡지, 여러 매체에서 작품을 마주 할 기회가 아주 많다.

마네와 드가보다 1세기 전에 한반도에서 태어난 겸재 정선의 작품은 교과서와 1000원권 지폐 등 일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지만 거기까지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천원 지폐에 등장하는 수묵 풍경화 외에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 평생 동안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를 올라가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둘러보며 산세를 따라 대각선과 원형 구도를 사용해 그렸고, 산봉우리 명칭을 적거나 길을 표시해나갔다.

1751년 76세에 접어든 겸재 정선은 인곡정사 너머로 비 안개 걷히며 환히 드러나는 인왕산의 준수한 자태는 몇 겹으로 붓질을 가하면서 그 붓질은 각도만 달리해서 농묵으로 폭포와 바위에 슬쩍 강약의 리듬을 주어 인왕산 바위 봉우리의 양감과 질감 그리고 음영까지 실감나게 묘사했다. 

겸재 정선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한양(서울)의 풍경과 자신이 부임한 전국 각지의 명승지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끝없이 다듬으며 장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필법과 화풍을 그리는데 주저 하지 않았다.

중국 화풍을 모방하는데 만 몰두 했던 조선의 화가들은 모조리 겸재 정선의 화풍을 교본으로 배워서 한반도의 지형을 펼쳐 보이는 지도에 비로소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나무와 산의 형태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일 평생 동안 금강산을 세 번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린 겸재 정선은 평생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1000점 넘게 그리며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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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번잡한 거리는 물론이고 극장가나 대형 쇼핑몰마다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건 바로 뽑기 기계들로 가득 찬 ‘가챠’숍이다.

가챠 숍은  무심코 들려서 딱 한 번만 뽑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 갔다가 뽑고 싶은 귀여운 것을 갖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르게 만들어서 지갑을 탈탈 털어내는 개미굴과 같은 곳이다.

작고 앙증 맞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서 한끼 식사 가격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날리게 만드는  ‘가챠’숍은  ‘찰캉찰캉’이라는 뜻의 일본어 ‘가챠가챠(ガチャガチャ)’에서 유래 했다.

가챠는  캡슐토이를 뽑는 기계에 동전을 넣고 레버를 돌릴 때 철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한 손에 쥐어지는 캡슐 안에 미니피규어·인형문구류 등 다양한 장난감이 담겨 있다.

일본 경제 부흥기인 1965년에 가챠숍이 등장하기 전 뽑기 기계는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껌이나 사탕 같은 것을 구입하기 위해 무인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던 뉴욕의  무인판매기는 음료수나 신문,잡지 같은 소비재 상품을 취급하는 기계로 발전했지만  일본으로 건너 오면서  손 안에 쥘 수 있는 장난감을 뽑는 기계로 바뀌었다.

대형 쇼핑몰에 장난감을 납품하던 일본 회사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샘플 장난감을 작은 플라스틱 모형에 넣어서 뽑는 방법을 시도 했다가 기계 앞에서 떼를 쓰는 아이와 원하는 걸 뽑기 위해 아낌없이 동전을 쏟아 붓는 부모의 심리를 알아차렸다.

폭발적인 소비자들 반응에 중소 규모의 장난감 납품 회사는  장난감 전용  뽑기용 기계를  만들어서  일본 전역에 퍼뜨렸다.

이 뽑기 기계는 1985년 한국 땅으로 건너 와서 구멍가게나 문방구 앞에 설치 되었고 이 기계는  어린이들의 호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가 도래하자 아날로그 시절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였던 뽑기 기계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소비자는 귀여운 것에 열광하고, 깜찍함에 지갑을 열고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굿즈를 손에 넣기 위해 오픈런을 하거나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열성을 보인다.

손 안에 비서 같은 인공지능이 24시간 상주 하는 시대이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빠르게 파악한 기업들은 앞다투어서 작고,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은 다양한 상품의 굿즈를 출시 하고 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본뜬 인형 굿즈나 콘서트에 가서 열광하고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굿즈 키링을 가방이나 휴대폰에 매달고 다니면서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을 부적처럼 매달고 다니는 인간의 삶에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걷고 움직이고 활동하는 휴머노이드가 등장 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 샤오펑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2025 AI 데이 행사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2세대 아이언이  걷는 모습을 세상에 공개 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미국 로봇 기업 피규어AI가 개발한 휴머노보이드는  물류센터 현장에 투입되어서 인간 노동자들 틈에 끼여서 함께 일하고 있다.

2016년 3월 한국의 바둑 기사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국을 펼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어느 새 우리 곁에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단계의 기계 인간이 등장했다.

이 기계 인간은 위험한 작업을 하는 공장부터 인간의 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노동 시장에도 투입 될 것이고 스포츠 무대에서는 인간을 대신해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그리고 무기를 장착 하면 전쟁터로 뛰어들어 터미네이터 같은 괴물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로봇 청소기와 스팀 건조기를 구입하듯 집안의 도우미를 상주 시키듯 로봇 인간을 구입하며 집집 마다 기계 인간과 동거하는 가구 수가 늘어 나게 될 것이다.

로봇이 상주 하는 미래의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숙제를 함께 봐주고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 해 주는 상주 로봇의 옷을  반려 동물의  옷을 구입 하듯 로봇의 옷을 구입할 것이고 아이는 언제나 함께 있어주는 로봇에게 인형 옷을 입히듯 역할 놀이를 하게 될 것이다.

돌봄과 학습 그리고 인간을 대신 하는 노동 현장에서 함께 공존하게 될 미래의 반려 로봇과   여행을 하며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상상 너머의 일이 아닌 실현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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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채널을 빠른 속도로 돌리다 보면 거의 비슷한 주제, 배경, 상황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예능인들, 배우들, 가수들, 스포츠 선수들의 여행-명사 초청 토크쇼-먹방-집 구하기-스포츠 게임-노래와 춤 오디션 방송 프로그램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스토리를 따라 갈 필요도 없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고 극적인 재미나 눈물을 쏙 뺄 정도로 감동을 자아 내지 않지만 일단 틀어 놓기만 하면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장사하고 운동하고 산 속에서 생활하는 이야기에 중독되어 버린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예능 프로그램들이 한국 공중파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 만큼 넘쳐 나지 않는다.

영국은 스릴러, 탐정, 서스펜스 물 드라마 시리즈 물이 큰 인기를 끌 정도로 BBC라디오 채널에선 항상 서스펜스와 스릴러 물의 라디오 드라마들이 매 시즌 청취율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미국은 좀비와 공포물에 심취한 시청자들이 아주 많은데 서점에서도 공포물 장르 코너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을 정도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영유아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  아기를 웃게 만드는 것보다   공포감을 줘서 울리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증명 되었다.

그만큼 인간의 감각과 지각 능력엔 위험과 공포를 감지 하는 능력이 타고났다는 증거 일 것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달콤한 멜로물 보다 스릴이 넘치거나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영상물에 시선이 고정된다.

하지만 이따금씩 공포물을 찾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조직 생활이 불러 일으킨 소통의 단절의 벽에 부딪쳤을 때 공포물을 찾아 본다.

가령 나는 어제 이런 스토리에 집중했다.

1994년, 18세기부터 사람들을 죽여온 초자연적 존재 블레어 위치에 대한 전설을 취재하러 갔다가 사라진 3명의 영화학과 학생들이 바로 그 신비의 블레어 위치가 있는 버키츠빌 숲에 들어간 후 실종된다. 그리고 1년 후 그들이 찍은 필름이 발견되고  사라진 젊은이들이 남긴 영상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스토리가 전개 되는 동안 영상은 심장 박동 보다 더 빠르게 흔들리면서 또렷하지 않은 사람의 형체가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공포물의 대가 스티븐 킹은 공포의 차원을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했다.

-역겨움

잘린 목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볼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뭔가 끈적거리는 물질이 팔에 닿았을 때.

-무서움

초현실적 상황, 공룡 크기의 거미들이나 죽은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다닐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거대한 집게발 같은 것이 당신 팔을 잡아 당길 때

-두려움

집에 돌아와 보니 물건들이 모두 비슷한 물건으로 바뀌어 있음을 보았을 때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누군가 등 뒤에 있는 것 같다.


스티븐 킹이 구분한 세 단계 공포 중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공포감은 '두려움'이다.

오늘 출근 길의 두려움, 업무에 대한 두려움, ....

여러 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까지 일일이 모두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내 안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달이 바뀔 때마다 모든 것들이 야금 야금 오르고 있다.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 할 때면 지난달 보다 몇 백 원 숫자가 더 찍혀 있다.

마트와 편의점에 들어가 늘 상 구입했던 물건의 가격표를 보고 놀란다.

몇 묶음, 몇 덩어리, 몇 상자들이 이제는 몇 개와 몇 알만 구입하게 되었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하며 착실하게 세금을 내며 오늘은 무사히 버텨 냈다 해도 내일의 삶은 어떤 두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세계 한 곳에서는 전쟁과 기근, 재난 상황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는 오늘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비하지 못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이 세상은 초자연적인 세상에서 발생하는  어떤 공포물보다 더 공포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죽어가던 아침 나절 벌떡 일어나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번에 먹어 댔다.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 댔다.

얕은 지형지물들을 굽어보면서 천천히 날아갔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죽음도 빌려 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김종삼의 <또 한 번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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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는  1986년 앤디 워홀과 협업 하는 마케팅을  시작으로 현대 미술계에서 떠오르는 아티스트나 거장과 함께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하는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 뱀상어 사체를 넣은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데미언 허스트는  앱솔루트 브랜드를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 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하는 포름알데히드 약품을 이용하는 데미언 허스트와 달리 세상을 향한 정치적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담벼락에 하고 있는 뱅크시(Banksy)는 얼굴과 본명 모두 베일에 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수집가가 앞다투어 작품을 구입하고, 여러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에 관한 작품을 그릴지 예고 없이 낙서처럼 그리는 뱅크시는 공공장소의 공공시설에서  쓰다 남은 철근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담벼락,이나 전봇대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길거리에서 많이 보는 화려한 그래피티와는 조금 다른 뱅크시가 사용하는 이 스텐실 기법은 글자나 무늬 모양을 오려내고 뚫린 부분에 물감이나 스프레이 라커를 뿌리는 기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볼 수 있는 뱅크시의 작품은 수집가들과 예술 애호가들의 가장 갖고 싶은 작품이면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는 작품이다.

누군가 훼손하기 전에 뱅크시의 그림이 그려진 구역 담당 직원들이   공공 장소 외관 질서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보존 하지 않고  곧바로 지워버린다. 이런 희소성 때문에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작품에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효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국가에 소속된 미술관이나 고급 갤러리에 갇혀 있는 ' 영구 보존 예술'의 권위와 큐레이터들의 작위적인 설정과 설명을 거부한 뱅크시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거리로 뛰쳐나가 그래피티 아트를 새기듯 

다양한 오브제로 그의 예술관이 담긴 패러디들이 끊임없이 제작 생산되고 있다.

오로지 그림으로 세상의 편견을 거둬내기 위해 거리 낙서를 시작 했던 키스 해링은 공공기물 훼손으로 여러번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세상은 그의 작품에 놀라워 했다.

키스 해링은 높은 가격에 팔리는 유명 작가가 되었어도 그는  언제나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반핵, 반전,인종 차별 반대. 에이즈 차별 반대, 성소수자 인권에 앞장서며 모든 걸 세상에 주고 갔다.

팝아트 특유의 명료한 선과 색채로 인종과 언어를 벗어나 전 세계 누구든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함께 그릴 수 있게 만든 키스 해링의  그림을 오마주한 토스트 영상을 제작해 보았다.

도마 위 네 개의 토스트에  선명한 원색으로 채워지는 키스 해링의 팝아트가 많은 시청자들이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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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맴버로 1980년에 발매한 싱글 “Riot in Lagos”는 초기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의 요체가 되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 음악과 하우스 장르 음악의 붐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미래 과학 기술이 인간 개인의 삶을 통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담았을 정도로 시대를 예견 했던 선구자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타면서  전 세계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게 되었다.

2015년 일본 치쿠마 출판사 문고본으로 발행된  <skmt 사카모토 류이치는 누구인가>라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하나의 음으로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소리에서 멜로디나 양식이나 비트가 생겨나서 음색의 조합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두 개의 음 이상을 넘어서면 소리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 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제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음악은  빛의 입자가 되어 공명의 시간 속으로  부유 하는 먼지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유전적인 질환으로 서른 살 무렵 부터 시력에 이상이 생겼던 드가는 왼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고 나서 염료를 섞거나 광택을 내지  않아도 되는 파스텔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스텔로 겹겹이 색의 층을 만들어서 입체적인 회화 효과를 내기 시작한 드가는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 했고  밀랍과 찰흙을 만지면서 자신이 즐겨 그리던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형해 나갔다.

오페라단의 하급 발레 무용수로  무대 뒤 소품 같은 존재 였던 무용수 마리는 3년 동안 드가의 모델이자 뮤즈 였지만 소녀의 인생은 안타깝게도  비루하고, 참담했다.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에 드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업실 옷장  속에 갇혀 있었던 작은  밀랍상은 조각가 알베르 바르톨로메의 손을 거쳐 청동상으로 주조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수가 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언젠가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생의 한복판에서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경고를 담은 바니타스 회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데미언 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약과 같다. 사람을 치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데미언 허스트

자연의 생명 주기에 맞춰 탄생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제각기 다른 생의 시간을 갖고 있다.

영장류인 인간은 이를 가리켜 '운명'이라고 말하며 한 순간이라도 생명의 기능이 연장 되기를 바란다.

죽음의 시간은 내가 어느 날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 될 수 있고, 그리고 돌연 몸에 병이 생겨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을 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외치고 어떤 이들은 종교의 힘, 믿음으로 버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생의 끝자락까지 바라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아 간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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