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언 허스트가 2007년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자마자  전 세계 문화 예술계는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그 이유는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던 18세기 30대 중반에 죽은 남자의 진짜 해골에  백금으로 주조하고 8610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 했기 때문 만은 아니다.

데미언 허스트의 예술의 오브제가 된  이 해골의 치아 상태가 놀랍게도 죽었을 때 나이였던 30대 중반에 멈춰져 있었기 때문이였다.

전문가들과 시민 운동가들 그리고  기타 단체에서는 데미언 허스트에게 맹공격을 퍼붓는 것과 달리 대중들은  해골에 백금으로 주조한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이 해골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지금까지 백금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이 해골은 현재 서울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들고 있다.








데미언은 소재를 하나의 상징으로 삼고 상황 설정을 통해 언어적 유희를 즐긴다. 그것으로 그는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지금까지는 없던 예술 언어의 제안, 제시, 그것을 데미언은 즐기고 있다.

-데미언 허스트와의 인터뷰 중에서

전시장에서 직접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한 영상에 스크립트를  삽입하고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나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 했다.

그 프로젝트는 일명 다이아몬드 드림 만들기💎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을 너무 너무 사랑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재 창조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스핀 오프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사라 바론의 "로봇 드림"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의 도발적인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애니메이션 로봇의  사랑을 위하여 (제1화)💎🤖가 3월 29일 오전 8시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호기심 많은 갈색 쌍둥이 강아지 두 마리가 신비로운 "EZ-어셈블" 키트를 개봉하는  그 순간을 많은 이들이 시청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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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맴버로 1980년에 발매한 싱글 “Riot in Lagos”는 초기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의 요체가 되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앨범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 음악과 하우스 장르 음악의 붐을 일으켰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미래 과학 기술이 인간 개인의 삶을 통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담았을 정도로 시대를 예견 했던 선구자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타면서  전 세계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을 벗어나 일본 오키나와 민속 음악, 드뷔시(Debussy)로 대표되는 클래식 음악, 유럽의 테크노 음악, 아시아 권역의 음악에 두루 관심을 두고 전 세계의 음악인과 교류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 나갔다.

 민족음악과 전자음악을 섭렵하고 YMO 활동을 통해 ‘앙팡 테리블’로 떠오른 1970년대, 영화음악 작곡가로 명성을 날린 동시에 자기 실험에 몰두한 1980년대,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1990년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자각과 사회적 활동에 더욱 충실한 2000년대, 그리고 진화한 음악으로서의 소리를 탐구한 2010년대를 지나서 그가 세상을 떠난 현재까지 세상은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은 알지 못해도 그의 음악은 어디에서나 흘러나온다.

1984년 도쿄 시부야 지하철역 개찰구의 기계적인 소음을 지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를  추모하는 사운드를 듣는  31초의 시간  동안  거장의 청춘 시기를 통과 했던 그  '시대의 공기'를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과 사운드를 정교하게 기획하고 설계했다.








2015년 일본 치쿠마 출판사 문고본으로 발행된  <skmt 사카모토 류이치는 누구인가>라는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기억에는 독특한 회로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햇빛이나 색, 질감, 공기…. 그것들이 한꺼번에 상기되어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는 없고 기억 속에만 있는 어떤 풍경을 떠올리는 마음의 상태 나는 모종의 영화를 봤을 때라든지 모종의 음악을 듣거나 모종의 그림을 봤을 때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 생길 수 있어요. 뭔가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뇌의 화학적인 상태라는 것은 독특하고, 어딘가에 잘 쓰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갑자기 다시 활성화돼서 나오는... 예술이란 '그리움'과 결부 되어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AI와 공존하는 이 시대는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어서 사물과 사람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성이 사라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예술적 영혼은 시공간을 넘어 시각적 영상으로 완성했다


1984년, 32세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엘리자베스 레너드 감독의 렌즈를 통해 "도쿄의 소리"를 찾고 있던 시기에 바다 건너 미 대륙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뉴욕 소호에서  1984년 새해 벽두부터  인공위성 생중계 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전 세계로 송출 하면서 음극선관(CRT)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재 편집하고 있었다.








영상 초반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아트 미학으로 재 해석해서 전자 홀로그램으로 타고 도쿄 타워를 질주해서    1984년 도쿄 시부야로 들어가 32살의 사카모토 류이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거장이  세상에 남긴  영원한 소리에 대한 헌사로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한 영상이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는 나에게 예술  그 이상을 가르쳐주었다.








'하나의 음으로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소리에서 멜로디나 양식이나 비트가 생겨나서 음색의 조합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두 개의 음 이상을 넘어서면 소리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 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저에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195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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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빈 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아몬드 꽃을 좋아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한 선물로 이 꽃을 그렸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하루라도 빨리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 쬐는 봄이 오기를 바라지만 매년 봄바람에 휩쓸려 날아 온 초미세먼지로 뒤덮인 매쾌한 공기에 봄이 찾아 온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무더운 여름이 오든 말든  연일 강추위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새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 왔듯이 봄을 기다리든 미세먼지에 휩싸이든 말든 이 계절의 시기는 결국 다음 계절의 시기로 넘어가버린다.

변화 무쌍한 날씨 처럼 인간이 처한 상황 역시 어떤 마음을 갖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2023년 1월 22일 부터 쓰기 시작한 <모닝 페이지>는  2026년 3월 2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AM 12:00 자정에 발행해왔다. 투비컨티뉴드 사이트가 다운이 되었을 때도 글이 저장이 되지 않아 날아가 버렸을 때도  사이트가 불안정해서 예약해 놓은 글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을 때도  투비 컨티뉴드에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해왔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자정 시간에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는 동안 머릿속이나 입으로 쓰지 않고 두 손을 쉼 없이 움직이며 썼다.

어떤 날은 천 자 이상을 썼고 어떤 날은 이천 자, 그리고 어떤 날은 천 자를 채우지 못했지만 1000편의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하루 몇 시간을 할애해서 쓸 때도 있고 단 몇 분 만에 쓸 때도 있었다.

러시아의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매번 새 작품의 원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겨 줄 때 마다 들었던 소리는 바로 '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원고 분량이 정해져 있다.'라는 말이였다.

특정 직업이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우리가 내뱉고 사용하는 언어의 양은 정해져 있기에 문자와 톡 메시지가 아닌 한 페이지 이상을 오로지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200여 페이지의 단행본 분량을 채우는 글자 수는 대략 150,000자 정도로 이 숫자를 쌀로 환산 하면 27가마니 정도 분량이다.

SNS 시대에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마주 하지 않은 채 여러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살아 간다.

마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듯  반 만 공유된 약간의 신뢰를 품고  지각의 안개 속에서 살아간다. 

감각의 데이터는 욕망과 믿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굴절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사고가 형성되고 이는 전혀 다른 곳에서 왜곡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는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기억하며 거기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정적인 이곳과 다르게 전 세계인들이 드나들고 있는 유튜브 채널 세계도   우연한 만남, 우연한 발견, 우연한 통찰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세상의 모든 인연이 우연이듯 내가 운영하는 채널에도 나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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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정확히 다섯 시를 넘어가면 머릿 속에 불이 켜지고 천천히 팔 다리를 움직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루를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한 것 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부터다.

집에서 먼 거리(지하철로 30분, 버스로 50분)에 있는 학교에 통학하는 동안 몇 번을 제외하고는 교문이 열리는 시간에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학급 친구들 보다 2시간 먼저 교실에 도착 하니 그날 해야 할 것,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사용했고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를 언제 ,몇 시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

세상의 반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하루 4시간만 잤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루 11시간씩 자면서 연구 활동과 저술, 강연을 펼치며 세기의 업적을 세웠다.

자연의 세상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먹이를 찾는 습성을 가진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로 나뉜다.

자연계에서 새벽 부터 활동하는 부류들은 극소수들로 대부분 천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해가 지고 난 후에 활동하는 습성을 가진 부류들이 더 많다.

개개인의 생체 시계는 모두 달라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 잠을 자야만 하루 종일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다.

늘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하루에는 하루 종일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고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듯 각자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는 생체 시간이 있다.

2009년독일의 한 연구 기관에서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데 이는 마치 눈동자 색깔, 머리카락, 신장 크기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개개인 마다  수면 시간과 활동시간이 다르고  연령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개개인의 몸속에 내재된 고유 생체 시계에 맞춰 활동 할 수 없다.

나처럼 아침형 생체 시계를 가진 부류들은 오후 5시부터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기에 자정에 가까워 질 수록 집중력과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잉글랜드부터 이집트 그리고 대서양 해안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이어지는 대 제국을 통치하고 지배 했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시간에 침대로 돌아갔고 늦은 오후 시간에 일어나 대부분의 일을 처리 했다.

당시 로마인들의 하루의 시작은 오전 6시로 공공 기관의 시작은 오전 9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의 첫 구절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뒤이어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 어떤 곳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 보다 더 평화롭고 더 한적한 피신처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 피신처를 자신에게 대비하고 원기를 회복하라. 

그리고 <명상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너는 5막이 아니라 3막 만을 마쳤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과는 달리 3막에서 인생이 끝이 날 수 있고 3막의 지루함과 고단함의 고비를 넘어가면 전과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 진다.

2026년 1월 27일에 개설한  첫번째 유튜브 채널에 숏츠 영상을 올리고 지금까지 이 채널에 동영상 106개를 올렸고 두번째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는 지금까지 127개 영상을 올렸다.

첫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두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처음 채널을 시작 할 때 내가 직접  영상의 콘텐츠를 기획해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편집과 음원 그리고 음성과 자막 생성 삽입까지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 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해서 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장르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로봇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운전 할 때 지도 역할을 해주는 네비게이션을 비롯해서 집안에 로봇 청소기가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듯이 나를 대신해서 주문을 하고 심부름도 하고 함께 거리를 활보 한다 해도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하고 부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어떻게 영상으로 제작할지 기획 하기 시작하고 영상 작업을 위한 스크립트를 짜고  프롬프트 작성을 하며 여러 버전의 편집본을 제작 해 둔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돈을 벌고,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비탈리 카스넬슨의 <죽음은 통제 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 할 수 있다> 중에서

이 세상이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데로 움직이지 않지만 내가 기획했던 것들을 입체적인 결과물로 만드는  동안 나라는 인간은 세상의 단 하나 밖에 없는 크리에이터, 즉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24시간이다.

24시간 동안  각자의  삶에 맞는 목적과 행위, 사고를 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겨우 2막이 시작 되었는데 2막에서 끝이 날 수 있는 것도 인생이다.

그러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조언처럼 지금의 내 인생이 몇 막에서 끝이 나버릴지 모르니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 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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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6-03-22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튜버되셨군요!ㅎ 일단 실버버튼까지 쭉 달리시죠! 응원할께요! 구독!ㅎ 조아요!ㅎ

scott 2026-03-22 20:27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오랫만입니다!
구독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
실버버튼은 너무 멀어 보이지만 열심히 해 볼 생각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
 


자신의 아내를 친구 이자 시인인 사토 하루오에게 양도 하겠다는 기사를 신문에 게재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친구 사토 하루와 사랑에 빠져버린 아내 치요코를 주도 면밀하게 관찰 하며 <여뀌 먹는 벌레>라는 작품을 집필한다.

 
'별일 아니다. 그녀와 결혼하고 부터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어떻게 이혼해야 할지 하는 문제 만을 계속 고민하며 살아왔다. 헤어지려는 일념밖에 없는 남편이었다.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의 냉혹한 모습이 가나메 자신에게도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해 주지 못하는 대신 모욕감 만큼은 결코 느끼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썼지만, 여자한테 그런 배려가 가장 커다란 모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여뀌 먹는 벌레> 중에서 


준이치로는 상인과 정치인에게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하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는 말을 남기고 첫 번째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 하고 스무 살 연하인 문예지 기자와 결혼을 한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이 합의하여 치요코는 준이치로와 헤어져 하루오와 결혼하기로 하였기에 알려 드리오며, 준이치로의 딸 아유코는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쌍방의 쿄류는 종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적당한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 피로연을 갖고자 하며, 그 일은 추후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치요코,사토 하루오

                                 <아사히 신문> 1930년 8월 19일자


준이치로는 두번째 결혼 역시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생활 중에 알고 지냈던 네즈 마쓰코 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거상의 딸이였던 네즈 마쓰코는 가세가 기울어져 갔던 시기에 정략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이를 지켜 보았던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으로 부터 해방 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 잡히고 두 사람은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마흔 한 살 생일 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스물 다섯인 마쓰코와 결혼 도장을 찍고 서로 부부가 된 그날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자신을 하인으로 불러 달라는 계약서를 내민다.


준이치로는 절대로 아내 마쓰코 보다 먼저 밥을 먹거나 숟가락을 들지 않았고 그녀가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앉지 않았다.

아내가 식사를 할 때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야 밥을 먹었다.

 
'이처럼 슌킨은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였지만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심술궂게 행동하지 않았다. 유난히 사스케를 대할 때만 그녀의 심술이 심해졌는데 원래 그런 기질이 있는 데다 사스케만이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기에 그를 가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스케 또한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필시 그녀의 유난스러운 심술을 응석으로 여기며 일종의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슌킨 이야기> 중에서 


세번째 결혼한 아내와 주종 관계를 맺은 준이치로는 아내 마쓰코를 관찰 하며 <슌킨 이야기><장님이야기> <갈대 베기>를 집필한다.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 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 주는 유일한 별, 여자 없이는 내게 시도 예술도 없다. 마쓰코... 내 육신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나의 삶, 나의 사상, 이념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다.'



준이치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세키'를 항상 그리워 했다.

대단한 미모에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결혼 생활로 인생의 빛을 발하지 못했던 어머니 '세키'의 삶의 조각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 시키며 유년 시절의 기억의 조각을 맞춰 나갔다.


1942년에 발표한 작품 <세설>은 마쓰코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탄생 되지 않았다.

준이치로는 <세설>이라는 작품 이전인 1910년대 발표한 작품에는 여성 숭배, 페티시즘,마조히즘에 몰두 하며 발에 집착하는 변태 성욕자들을 등장 시켰다

1923년 어머니의 외모를 쏘옥 빼닮은 마쓰코, 그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 하고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에 몰두 한다.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집필 구상을 마친 <세설>은 아내 마쓰코의 실제 자매들의 모습 속에 간사이 지방의 상류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세설>은 셋째 유키코의 혼담 문제가 중심이지만 사계절의 흐름을 통해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일상을 영상기를 돌리듯 펼쳐 보인다.
 












'이곳 아시야 부근은 원래 대부분이 숲이나 밭이었는데 다이쇼 말 무렵부터 조금씩 개발한 땅이다. 그래서 이 집의 뜰도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옛 모습을 전해 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세 그루 들어서 있고 서 북쪽으로는 이웃집 정원수들 너머로 롯코 일대의 산이나 구릉이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유키코는 우에혼마치의 큰집으로 돌아가 너댓새 있다가 돌아오면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생기에 넘치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녀가 지금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쪽으로는 잔디밭과 화단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동산이 꾸며져 있다. 그 동산에는 희고 가느다란 꽃이 달린 공조팝 나무가 정원 석 사이에 있는 마른 연못으로 드리워져 있고 연못가에는 벚꽃과 라일락이 피어있었다. 벚꽃은 사치코가 워낙 좋아하는 꽃이라서 비록 한 그루라도 뜰에 심어 집에서 꽃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 두세 해 전에 심은 것이다. 벚꽃이 필 때는 그 나무 밑에 의자를 내놓고나 모포를 깔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매년 꽃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라일락은 눈처럼 만발해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라일락 나무 서쪽으로는 아직 움이 트지 않은 백단향과 벽오동이 있고 그 남쪽으로는 프랑스어로 <세렌거>라고 하는 일종의 관목이 있었다. 유키코의 프랑스어 선생님인 쓰카모토 부인이라는 프랑스 사람은 자기 나라에 흔한 세렌거 꽃을 일본에 와서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뜰에서 보니 신기하다면서 아주 정겨워했다. 그래서 유키코도 이 나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고, <세렌거>가 일본어로 는 <사쓰마우쓰기>라는 댕강목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꽃은 항상 공조팝나무나 라일락이 진 뒤, 별채의 울탈 옆에 있는 황매화나무와 거의 동시에 피어서 이제야 겨우 어린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쓰마우쓰기> 너머는 슈토르츠 씨네 뒤뜰과의 경계라서 철망을 쳐놓았는데 그 철망을 따라 벽오동 아래 잔디밭에 오후 햇볕이 화창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준이치로의 <세설> 중에서 


<세설>은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라 선다.

80세로 생을 마감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는 여자를 나보다 높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우러러 볼만한 존재가 아니면 여자로 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


1960년 <세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샤르트르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다른 일정을 미루어 놓고 준이치로가 묻혀 있는 곳부터 찾아 갔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들 시냇가 풀숲으로 쭈욱 들어가 보았다. 그 주변은 희미한 어둠에서 시시각각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 가는 미묘한 때였다. 그때 양쪽 기슭의 수풀 속에서 반딧불이가 휙휙 참억새 높이로 낮게 활 모양을 그리며 시내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한줄기 시냇물을 따라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한없이 양쪽 기슭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거진 키 큰 풀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위쪽으로는 날아오르지 않고 물을 쫓아 낮게 날아다닌 탓이었다.

새까맣게 어두워지기 직전 움푹 들어간 시냇물 수면에서 짙은 암흑이 기어 올라오고 아직도 근처의 풀이 움직이는 모양이 어슴푸레하게 시각에 느껴졌을 때였다. 멀리멀리 이어지는 시내 끝까지 무수한 선을 그리면서 양쪽으로 뒤섞이며 점멸하고 있던 유령 같은 반딧불은 지금도 꿈속에 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는지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정말 오늘 밤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것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를 보러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반딧불이 잡이는 꽃놀이처럼 회화적인 것이 아니라 명상적인 것이라고 해야 좋을 것인가. 그런데도 옛날이야기 속 세계처럼 어린아이 같은 면은 있지만..... 그 세계는 그림으로 그리기보다 음악으로 연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토나 피아노로 그런 느낌을 작곡한 것이 있어도 좋을 텐데.....'

-세설 중에서

<세설>은 1940년대 이전의 일본 문학에서 무시되고 멸시 되고 간과 되었던 여성의 모습, 그녀들의 일상과 문화를 한 순간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 처럼, 가볍게 흩날리는 가랑 눈 처럼 세파의 폭풍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섬세한 필체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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