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2년 조선 미술전에서 유화 작품으로  첫 입선 한 박수근은 4년 뒤에 소묘 작품으로 두 번째 입선을 한다.

제 15회 선전 출품작 <일하는 여인>박수근,1936

당시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였던 일본인 다나베는 박수근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했다.

'데생 위에 엷은 색채를 칠해 놓고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았다. 소묘 담채란 이런 것이다.'

일본인 심사 위원 다나베와 달리 한국 심사위원들은 박수근의 작품에 대해 저 마다  혹평을 날렸다.

-어설프게 서양 화풍을 따라 했는지 인물이 화면 중심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안정감이 부족하다.

-흑, 백 색조의 뚜렷한 대비를 시도 했지만 질감이 거칠어서 일관된 색조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그리다가 멈춘 듯이 미완성 작품처럼 보인다.

-수채화도 아니고 수묵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급히 완성한 흔적이 보인다. 기본 데생의 기량이 부족해 보인다.

일본인 심사 위원 다나베는 한국인 심사위원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판화와 사진의 질감을 연상 시키는 박수근의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기법에 후한 점수를 주고 수상작으로 입선 시키지만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실력이 부족하다며 사적인 자리에서 화가에게 질책을 가했다.


한국 근대 미술사의 거장들인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화백들이 활동 하던 시기에 미술학도들은 궁핍하지 않은 비교적 넉넉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해서 가족들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서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서구 미술을 공부한 유학파들이였다.

따라서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 왔을 때 일본에서 배웠던 서양 기법을 마음껏 발휘 하기 위해 일본 제국 미술 협회 지원 아래서 독립전, 자유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미술 시장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일본 유학파 예술가들의 유일한 꿈은 총독부 주관의 관전에 입선 해서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으로 1930년대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 한 이들은 조선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였다.

유학파들과 달리 박수근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농업과 광산업에 종사 했던 부모의 3대 독자로 태어나 서당에서 글을 깨우쳐서 보통 학교에 입학했지만 광산업의 불황과 홍수 피해까지 입게 되면서 집안은 몰락해 버렸다.

교사들의 도움으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박수근은 미술 학교는 커녕 상급학교 진학의 꿈조차 꾸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겼던 미술 교사의 도움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전전하면서도 홀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은 18살 나이에 일본인 심사 위원의 추천으로 조선 미술전에 입선을 한다.

두 번째 역시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만장 일치로 입선을 하게 되자 일본 유학을 갔다 온  화가들은 그의 다음번  출품작을 낙선 시켜 버린다.

제대로 된 화구도 없었고 외국산 제품에 귀한 색조 유화 물감은 만져 본 적도 없었던 박수근은 연필과 검은색 물감으로 절구질을 하고 맷돌을 돌리며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해방 전까지 박수근이 꾸준히 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동안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너무 평범한 소재에 단조로운 색조톤에 기술적으로나 구상적으로 논할 바가 못된다.'며 혹평을 날렸지만 일본인들은 서구적 미술사조를 따르지 않고 향토색이 짙은 독특한 구조와 화풍, 거친 질감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그의 독창성이 후대에 가장 독보적인 화가가 될 것임을 예감 했다.

유학파들이 고향과 출신 나이대 별로 그룹전을 열고 서로의 작품을 구매 해주며 똘똘 뭉쳐서 작품 활동을 펼칠 때 박수근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출품했다.

값비싼 재료들로 덧칠한 유학파들 작품 속에서 박수근 작품은 도드라졌고 어김없이 일본인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어서 유학파들을 제쳐 버리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화가로서 기량을 막 펼쳐볼 시기에 해방을 맞이하고 6,25전쟁 발발로 피난 살이가 시작 되고 박수군이 군산 피난지 부둣가에서 가족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할 때 유학파 예술가들은 통영과 부산, 진주 등지에서 서로의 작품 전시를 열며 부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1953년  박수근은 미8군 CID(범죄수사대) 매점(PX) 초상화부에서  화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올라간다.

1953년 서울 수복 후 재개된 국전에 박수근은 두 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이마를 간신히 덮을 정도로 짧게 머리를 자른 소녀가 등에 강보에 싼 갓난 아기를  업고 있다.

누이 또는 언니의 등에 얼굴을 묻은 잠든 아기를 업은 소녀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간 아비나 어미를 기다리는지  옆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전쟁과 피난, 가족과 친지의 죽음을 겪으며 배고픔을 견뎌 내며 살아 남은 한국인들에게 박수근의 그림은 외면하고 싶은 슬픔이였고 잊어 버리고 싶은 과거 였다.

하지만 미군 피엑스를 통해 박수근의 작품을 꾸준하게 구매 했던 미군 상사들의 부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그의 작품을 구입했고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화구와 물감을 보내 주었다.

전쟁통에 뇌막염으로 큰 아들을 잃고 피난 살이 때 셋째 아들마저 세상을 떠난 아픔을 겪었던 박수근은  여색을 탐한 적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다정 다감한 사람이였고 길을 가다 노상을 하는 상인들을 만나면 갖고 있는 돈을 전부 털어서 좌판에 있는 것들을 구입했다.

박수근은 여타 다른 화가들 처럼 개인 화실도 없었고 재대로 된 화구를 갖춰 놓고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는 일평생 툇마루에서 그림을 그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오면 함께 숙제를 봐주었고 아내가 상을 차리면 함께 먹고 나서 가족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멈췄던 그림 작업을 이어나갔다.

박수근이 살던 집이 마을 구역 계획으로 도로 공사 지역으로 지정되고 툇마루 땅 마저 잘려 나갔을 때 그는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든 후에야 그림을 그렸다.

박수근의 작품의 중심은 전부 평범한 우리 일상의 모습들이다.

 어린 누나가 갓난 쟁이 동생을 업고 있고, 이웃 아주머니들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아기를 업은 어머니가 걸음마를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갯길을 걸어 가거나, 시장 좌판에서 물건을 놓고 파는 여인들까지 그의 모든 예술 속 주인공들은 모질고 고된 삶을 견뎌냈던 우리 어머니들이였다.

양말 조차 신지 않은 채 검정 고무신을 신은 여인이 힘껏 절구질을 하는 모습이 화강암처럼 단단한 삶의 의지로 표현 되었다.

1952년 새해 첫 달, 피난 살이 당시 두 아이를 잃은 박수근이  부둣가에서 받은 품삯으로 겨우 감자 한 자루를 구해 온다.

도마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 놓은 감자 알들 사이에 기다란 칼이 놓여 있다. 피난 살이 중에 겨우 감자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상황을 보여 준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온 박수근은  미군 상사의 아내들이 작품을 구입해 주어서 피난 중에서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귀한 음식을 구해 온다.

1950년대 중서부 지역 중에서 부잣집들만 먹을 수 있었던 굴비가 박수근 집의 밥상에 올라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불후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박수근은 동시대 부유한 지주와 대상인 집안의 유학파 출신들보다 불평등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박수근이 예술가의 삶을 살았던 시대는 1930년대 초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로  파란만장한 삶의 파고 때문에 그의 건강은 1950년대 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간경화와 신장염이 악화 되어 백내장의 후유증을 겪었던 박수근은 예술가로 활짝 날개를 펴기 시작할 무렵에 한 쪽 눈을 실명한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박수근은 한 쪽 눈으로 고향땅 양구에서 행상을 나가는 어미의 손을 잡고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 옆을 지나갔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붓을 든다.

1960년에 완성한 <귀로> 작품은 마치 세월의 흔적으로 낡고 헤진  흑백 사진을 연상 시키며   지나간 시간의 아련한 감정의 잔흔 처럼 거친 물감의 질감이 화폭에 새겨져 있다.

49세 되던 해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실명한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던 박수근은  51세 되던 해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박수근이 떠난 1965년. 그 해 10월 유작전이 열리고 그의 작품 앞에 어느 중년 여인이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고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 후퇴 후 텅 빈 최전방 도시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은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다.

-박완서의 <나목> 중에서 


 평생 여성과 나무를 즐겨 그렸던 박수근은  생계를 위해 아이를 위해 팔을 들어 올린 여인들의 따스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산이 갖고 있지 않는 나무의 곧고 강직한 모습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나목(裸木) 은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겨울 나무를 의미한다.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곧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고 수직으로 늘씬하게 쭉쭉 뻗은 나무 만이 치열한 경쟁의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 남지 못한다.

 굴절되고 절단된 가지, 바로 갈등과 궁핍의 상징이다.

모두가 굶주리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에 박수근은 아이들이 쓰다 버린 몽당 연필로 올곧게 성장하지 못한 채 잎사귀 하나 없이 처절할 정도로 앙상하게 가지만 남겨진 나무들만 그렸다.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불멸의 작품들을 만들어낸 박수근이 그러 했고 그의 작품을 활자로 완성한 박완서 작가도 봄을 기다렸다.

2026년 매서운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오고 사회 곳곳은 저마다 분열과 갈등으로 앞으로 저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고민과 아픔 어려움을 겪으며  힘겨운 나날을 살아 가고 있다.

겨울을 맞은 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곧 따스한 바람이 불고 태양의 길이가 길어지는  봄이 오면 새 잎이 돋고 새로운 꽃을 피우듯 2026년 봄을 기다린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 밭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닮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박완서의 <나목> 중에서 

‘강변’(19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론은 어쩌다
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 책을 고를 때 누군가의 추천에 솔깃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끌리는 데로 책을 선택 할 때가 있다.

단순히 책 제목이 좋아서, 또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만듦새가 좋아서 그리고 작가의 이력이 독특해서 등등의 이유로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나 장르의 작품을 선택 할 때가 있다.

무더운 여름에 출간 된 아밀 작가의 <멜론은 어쩌다>의 책을 선택한 건 제목이 내포한 청량한 과일의 맛이 아닌 작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였다.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분명으로 영미문학을 번역하고 있는 이 작가는 창작과 번역, 현실과 환상 사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오고 가며 작품을 출간 하고 있다.

단편 소설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청소년 문학상 동상을 수상 하고 단편 소설 <로드킬>로 2018년 SF 어워드 중 단편 소설 부문 대상 을 수상 했다 2021년 첫 소설집 <로드킬>은 2025년 영국에서 번역 출간 되었다.

이 정도 이력을 갖춘 작가의 역량에 큰 기대를 갖고 선택한 단편집 <멜론은 어쩌다>를 읽기 시작했다.

총 8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에는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만 읽어도 이 책의 장르를 하나로 규정 할 수 없다.

-이성애자 인간과 레즈비언 뱀파이어 사이의 복잡 미묘한 우정을 담아낸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첫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섹스 로봇을 집에 들인 부치의 일상을 기록한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을 뿐 별다른 야심 없는 마녀가 위험한 의뢰에 휘말리며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인형 눈알 붙이기〉

수록된 단편 중에 가장 긴 J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야간 산책>까지 읽고 나면 도대체 작가가 추구 한 이야기의 서사와 세계관이 무엇?인지 종 잡을 수 없는 혼돈에 사로잡힌다.

책 뒤표지에 새겨진 추천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인물들의 활약이 눈길을 사로잡는 가운데 더욱 경쾌하고 능청스러워진 서사가 빛난다."

“갓 씻어낸 제철 과일처럼 신선한 상상력과 곧 그 껍질을 저며낼 칼처럼 예리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야기” 사이를 유영하다 보면 오래도록 기다려온 “마녀의 소설”의 탄생에 함께 축배를 들게 될 것이다."

추천사에 등장한 [경쾌하고 능청스러워진 서사] [ “마녀의 소설”의 탄생]이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맨 첫장 부터 읽어 보면 전부 3인칭 시점으로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 상태를 묘사한 문장들을 주욱 나열 한 단편 부터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설명조로 등장 인물의 상황을 속사포 같이 쏟아 낸 단편 그리고 편지 형식의 단편까지 다양한 시점과 문체를 실험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8편 중에 그나마 완성도가 있어 보이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윤은 손이 유난히 작았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치명적인 핸다 캡이었다. 만약 누가 여덟 살의 나윤에게 너는 일찍 초경을 할 것이고 성장판이 일찍 닫힐 것이고 그래서 열두 살 이후로는 키가 크지 않을 것이고 손도 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더라면 나윤은 피아노를 포기 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그 대신 여덟 살의 나윤이 들었던 말은 "어쩜 그렇게 잘 치니" "신동이구나" "엄마 아빠가 어떻게든 뒷받침 해줄게. 열심히 하렴"이었다.]

-아밀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중에서

이야기의 흐름은 첫 문단에 등장 시켰던 손이 작은 여자 아이가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피아노를 쳐서 세계 무대로 나간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는 나윤이가 교습소에서 배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원에 들어가서 국제콩쿠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그리고 유명 음반사와 계약을 맺어 앨범을 출시하고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이야기로 흘러 간다.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여성, 인종 차별, 남들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성격의 나연이 피아니스트로 어떻게 성장해서 험난한 세상에서 어떤 상태로 살다가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사십대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손이 작은 피아니스트 나윤은 대중에게 잊혀져서 레슨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자신처럼 손이 작은 아이가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찾아 온 어느 날 나윤은 야무진 꿈이 있던 지날 시절에 만났던 차원이 다른 마녀를 생각하며 자신 앞에 있었던 넘을 수 없는 벽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 본다.

마지막에 실린 분량이 가장 긴 편지 형식의 단편 <야간 산책>은 설정은 독특하다.

동성애가 당연한 세상에서 이성과 비밀 연애를 시작한 여성이 등장한다.

중학생 시절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폭언에 시달릴 때면 밤마다 공원에 가서 아코디언을 든 악사 조각상과 대화를 하고 왈츠를 춘다.

학교가 끝나자 마자 혼자 그 공원에 가서 그 악사 조각상이 따라주는 뜨거운 차를 마시 기도 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기이한 감정의 교류를 하게 된다.

이 여성의 편지 형식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읽다보면 동성끼리 결혼해야 하는 세상에 이성인 남성에게 육체적 끌림을 느끼는 여성이 망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남편이 등장한다.

여성은 지겹고 흉측하고 같이 있기가 따분해서 견딜 수 없는 생물 같은 남편,숨겨둔 애인이 있고 아내 몰래 내연녀와 여행을 떠난 남편 ,얼굴도 모르고 존재 하지 도 않는 허구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학창 시절의 동성 친구에게 편지로 망상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심정을 고백한다.

결국 독자는 마지막 그녀가 J라는 친구에게 부치지 못하는 이 편지글이 동성과 결혼 하는 세상에 이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어느 망상가의 독백 수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마지막 단편을 완독하고 나서 책 뒤표지에 적힌 추천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범상치 않지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눈앞의 벽을 제각기 방식으로 훌쩍 뛰어넘는 모습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거대하고 깊이 있는 서사나 묵직한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이 책을 선택 하지는 않았다.

문학의 다양성이 풍부해져서 독자들에게 책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많이 출간 되는 것은 실로 기쁜 일이다.

하지만 흥미 위주의 서사나 독특한 설정의 장르도 좋지만 차근 차근 읽는 맛을 느끼게 하면서 사유를 쌓아 올릴 수 있는 작품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례로 넷플릭스를 왜 보나. 차라리 이 책을 읽으면 되는데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작가들의 책이 많이 출간 되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멜론바, 여름에 먹어도 가을에 먹어도 맛있는 멜론바

그러나 이 책은 <멜론은 어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25-09-2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책 샀어요^^
메로나는 정말 맛있죠 ㅎㅎㅎ

scott 2025-09-21 12:5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메로나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이 책은 ....
 
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넷플릭스 알고리즘 영상으로 밥 딜런이 기타를 메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다큐멘터리가 떠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영상의 시작은 1970년대 정치적 사회적으로 대 혼란에 휩싸였던 거리 시위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 하다 불쑥 불쑥 밥 딜런이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을 하는 모습의 장면들이 교차 시키면서 흘러간다.

첫 등장에서 밥 딜런은 이미 40여년 전에 있었던 공연 일 뿐 별 의미가 없었다며 스치듯 말한다.

1975년 롤링 선더(thunder revue) 투어에 탑승한 이들은 밥 딜런을 비롯해서 조니 미첼, 시인 엘렌 긴즈버그, 조안 바에즈, 패티 스미스 등 30여 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미국 전 지역의 무대를 누볐다.

당대 청춘의 화신으로 불리며 청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던 밥 딜런은 화려한 무대가 아닌 소형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투어에 나섰던 공연이 열린 지역마다 밥 딜런은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한 소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연에 나선 연주가들의 명성에 비해 표값이 싸서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거의 없었다.

식비 정도만 벌 수 있는 무대에서 밥 딜런은 4행으로 이어지는 대화 같은 노래( isis)를 읊조린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노래의 절정은 위에 언급한 대화체 가사가 끝나고 나서 청중을 향해 "YES"를 크게 외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연을 이어 가던 밥 딜런은 '여러분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다면, 다시 이 사람이 거리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한 뒤,'Hurricane'을 부른다. 밥 딜런이 지칭한 이 사람은 1960년대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의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루빈 카터를 일컫는다.

1966년 복싱 선수 루빈 카터는 살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데도 단지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 있었던 흑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범죄 혐의를 뒤집어 썼다며 분노의 여론이 들끓어 올랐었다.

밥 딜런은 거리 시위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관객들의 눈을 바라 보며 인종 차별로 얼룩진 세상의 부조리를 노래에 실었다.

다큐멘터리는 롤링 선더 투어를 떠났던 밥 딜런의 모든 공연을 연도별로 보여주면서 같은 무대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음악가들과 시인들의 모습을 마치 기념비에 이름을 새기듯 교차 시켜 펼쳐 보인다.

그 시절 밥 딜런과 함께 연주 하고 노래를 불렀던 연주가들과 시인들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헝클어지고 구겨진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기타 하나만 달랑 메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여 줬던 그 시절의 음악가들과 시인들은 큰 수익을 가져다 준다거나 명성을 드높이는 무대가 아니여도 세상을 유랑하며 대중들과 소통했다.

밥 딜런은 별 의미가 없었던 공연이라 했지만 그가 이끌었던 선더 레뷰 투어 시절에는 음악과 시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 했던 시대였다.

20세기에 살았던 밥 딜런 세대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려면 직접 발로 뛰고 버스에 올라타서 공연장에 찾아 가야 했지만 21세기에는 손 안에 영상으로 때와 장소, 시대를 넘나들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듯이 손으로 터치만 하면 순간 이동이 가능해져서 손으로 만지고 넘기는 책도 읽지 않고 보는 행위가 되었다. 휘리릭 빠른 속도로 무엇이든지 재생하고 터치 하다 보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 졌다.

세상을 찬찬히 읽기 보다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톡 메시지창을 열고 스레드 피드백을 보다 여기 저기 앱 창을 터치 하며 분당 수십건의 이미지들이 영사기처럼 눈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런 행위가 연속으로 이어지는 동안 나는 과연 어제 그리고 그저께 무엇을 읽고 보았을까...

20세기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종이 신문을 읽었지만 21세기에는 폰으로 재미와 흥미를 주는 짧은 영상을 보거나 시즌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혼자 키득 거린다.

우연히 지하철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 키득 거려서 슬쩍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폰의 영상을 보았다. 낚시꾼이 낚시 바늘에 고기 밥을 꿰어 강물에 던지더니 순식간에 팔뚝 크기 만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 낚시꾼이 강물에 낚시대를 던질 때마다 최상 크기의 대어가 걸려 들었다.

영상에서 그 낚시꾼은 이렇게 소리 질렀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문득 그 영상을 훔쳐 보던 나는 읽다 멈춘 책으로 다시 돌아 왔다.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

그러나 가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닥터로우

폰만 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져 보인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던 시대에 태어나 청춘을 보냈던 밥 딜런은 연주장에서 만나는 팬들에게 불친절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뚜렷한 목적이나 사상 없이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 하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어디에서든 바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있다.

바람이 부는 데로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원곡의 멜로디를 심하게 변형해서 그의 오랜 팬들 조차 알아 듣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평론가들은 밥 딜런이 나이를 먹어서 목소리가 이전 같지 않다며 전성기를 지난 퇴물로 가는 중이라고 혹평을 날리기도 하고 노환으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등의 조롱을 해댄다.

밥 딜런은 전성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대에 오를 때 마다 천 개의 버전을 부르는 가수로 자신의 원곡을 원석을 다듬듯이 끊임없이 다듬으며 단 한 순간도 멈춰 선 적이 없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한다.

다듬지 않고 야생적이고 즉흥적으로 무언가 시도하고 실패 하기도 했던 그 시절을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는 무심코 알고리즘 추천 영상으로 뜬 걸 봤을 뿐인데 불쑥 불쑥 내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출 퇴근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폰 영상으로 밥 딜런이 부르는 노래를 흥얼 거렸다.


그녀는 말했지. "당신, 어디 있었던 거야?" 난 말했지. "그냥 여기저기."

그녀는 말했지. "당신, 달라 보여." 난 말했지. "음, 그런가."

그녀는 말했지. "당신은 떠났잖아." 난 말했지. "자연스러운 거야."

그녀는 말했지."머무를 거야?" 난 말했지."당신이 원한다면, 그럴게."


같은 곡을 시대에 맞게 고치고 음을 변형 시키는 밥 딜런이 음반에 새겨진 음악이 아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세상을 유랑한 모습을 시공간을 초월해서 보던 나는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는 한 여름에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홋카이도 행 기차에 올라 탔을 때 딱 한 권의 책만 가져갔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물살을 타고 납작한 무언가가 떠내려 오고 있다.

젖은 콘트리트 벽에 먼저 오른쪽 발꿈치가, 이어서 골반의 튀어나온 부분이 조금 늦게 오른쪽 어깨가 접안에 실패한 작은 배처럼 부딪힌다. 그것이 만일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회색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는 하늘을 역광의 실루엣으로 가로질러 가는 잠자리가 보였을 것이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사람이 없으니까 떠내려 온 것을 보고 놀라는 목소리도 없다.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소리가 무표정하게 관망하는 투명한 덩어리가 되어, 벽에 눌려 붙어 있는 양 어깨를 냉정하게 쑥 밀어 낸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몸이 물살을 탄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어둠을 향해서 아득히 먼 곳에서 온 거야' 라고 하듯이 속도까지 덧붙여서 나란히 뻗은 발끝부터 망설임 없이 취수로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간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강물에 시체 같은 무언가가 떠내려 오는 장면으로 시작 되는 이 작품의 다음 장을 넘기면서 누군가가 죽어서 곧 경찰이 출동하겠지라고 짐작하며 이야기의 방향이 살인 추리극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물가에 비추던 빛이 일렁이다 점점 그 소리가 커져서 학교 수영장에서 반 학생 전원이 발장구를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의 방향이 역류하다가 급격하게 증폭 되는 순간 우편물을 배달 하기 위해 한 여성이 배달차에 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배달할 코스를 머릿속 빨간 펜으로 한달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그녀의 이름은 무요 게이코

서른다섯 살에 그녀는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십삼 년간 일한 도쿄의 종합상사를 퇴사했다.

중학 시절 삼 년 간 홋카이도로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동부에 위치한 에다루에서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었던 게이코는 아이누어의 울림이 남아 있는 그 곳이 울고 싶을 만큼 그리워서 퇴사 후 홋카이도의 작은 산촌마을 안치나이로 터전을 옮긴다.

비정규직 우편배달부로 홋카이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 게이코는 머릿 속에 지명을 읽어 가며 우편물을 배달한다.

호로카나이-오토이넷푸-도마코마이-시무캇푸-바시쿠루-아칸-사로마-맛카리

게이코가 배달하는 지역은 육 백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홋카이도에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오지다.

오래 전 척박한 홋카이도 땅에 원주민을 몰아낸 일본 정부가 타지역 주민에게 땅을 개척하면 소유권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해서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는 곳이였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이코는 휴일이면 낚시용 운동화를 신고 강가로 나가 플라이 낚시대를 던지지만 곤충 모양 미끼를 매달은 낚시대에는 자그마한 산천어만 낚였다.

기차는 달리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게이코의 시선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거목으로 무성한 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원시림 속으로 들어 간다.

들리는 것도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활자 속을 유영하면서 눈 앞의 세계가 전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으로 펼쳐졌다.

한 여름의 홋카이도의 들판엔 게이코가 마주 했던 사슴떼가 아닌 양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밖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초록 빛으로 일렁 거리는 저 드넓은 초원을 정처 없이 걸어가면 숲 속 어디 쯤에 있는 게이코를 만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집집마다 불평과 하소연을 하는 노인들에게 우편물을 배달 하던 게이코에게 어느 날 강가에 자리한 목조 가옥에 수수께끼 같은 "프랜시스"와 함께 살고 있는 가즈히코를 만난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채집해서 오디오로 재생 시키는 가즈히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게이코는 그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알래스카의 빙하가 무너지는 굉음 소리를 듣고 런던 교외 증기기관차가 내지르는 기적 소리를 듣고 열광적인 남미 축제의 군중 소리를 듣는다.

가즈히코의 목조 가옥에 있는 오디오가 재생되는 동안 나는 그 곳의 온도와 습도, 바람 그리고 나지막이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 나온 나는 가즈히코가 게이코에게 요리 해 준 그 음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제미나이에게 묻고 지도앱을 켜서 알려주는 방향을 따라갔다.


한 소끔 삶은 소꼬리를 넉넉한 물로 파의 녹색 부분과 같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기름을 걷어내고 약한 불로 약 네 시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마쓰시에 마사시의 <가라앉은 프랜시스> 중에서


징기스칸이라는 전용 냄비에 어린양고기를 구워서 파를 가득 넣은 요리를 먹은 나는 가즈히코가 들려주었던 프랜시스 터빈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태양이 꽤 기울어서 계곡의 그늘에는 이미 밤의 색깔이 번져 있었다.

강의 소리가 차다. 집과 오두막 사이는 경사가 져 있어서 발께에 있는 완만한 층계가 횡목으로 만들어져 있다.


게이코가 발밑을 살펴 보면서 내려가는 동안 나는 가즈히코가 자물쇠를 따고 미닫이 문으로 들어가는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계단 몇 개를 내려가니 오두막 바닥에 중앙에 굵은 파이프에 연결된 기계가 보였다.

암모나이트 내부에 대향의 차가운 물이 두께와 중량을 수반하고 흘러 들어 오면 고저 차가 속도를 내어 힘으로 물을 출력 시킨다. 전력이 부족한 홋카이도 오지의 전력을 책임지는 이 기기를 가즈히코는 수차 기계를 발명한 프랜시스 터빈의 이름을 차용해서 프랜시스라 불렀다.

의문의 시신이 물에 떠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삼십대의 여자와 남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하며 갈등하고 고뇌 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기다리고 있던 눈이 내리고 봄 안 개가 어슴푸레하게 하얗게 밝은 하늘 위로 펼쳐 지고 시커먼 흙이 햇빛의 열을 축적해서 붉고 옅은 초록빛을 띤 열매를 맺는 여름, 장마가 없는 홋카이도의 푸르른 대지에서 들려오는 벌레 울음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게이코는 가즈히코가 들려주는 소리에 푹 빠져 있던 어느 날 마을 전체의 불이 꺼지고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세상의 수 많은 소리들이 활자 밖으로 튀어 나온다.

갑자기 불빛이 없어졌다.

집과 발전소를 포함한 주변 일대가 암흑에 휩싸여다.

그 직후였다. 눈 앞에 펼쳐진 안치나이 마을 전체가 몇 초 차이의 파도를 보이면서 차례차례 빛을 잃어갔다. 밀밭을 쓸어가는 바람보다 훨씬 더 빨리 안치나이의 불빛이 전부 사라졌다.

프랜시스가 물에 가라앉은 것이다.

가즈히코가 수집한 세상의 다양한 소리들은 홋카이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청량한 여름 바람을 지나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흩어져서 새 하얀 눈처럼 흩날린다.

두텁게 얼어 붙은 얼음이 서서히 녹아 내리는 순간 , 몇 억이라고도 몇 조라고도 할 수 있는 수 많은 별빛들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몇 천 년 전에도 몇 만년 전에도 밤 하늘에 빛났던 별빛은 홋카이도의 원시림을 내려다 보며 아낌없이 온 세상에 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모두 배낭 하나에 전부 다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걸 배낭에 짊어지고 떠난 길에서 마주한 세상은 현실에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잊게 만든다.

폰으로 본 세상이 아닌 내 발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마주한 땅과 하늘 그리고 별빛들은 숨을 쉴 때 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둘러싼 세상의 진심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9-08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딜런이 노래로 세상을 바꿀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대가 실제로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해 절망하고 힘들었겠죠. 그래서 지금 별거 아닌 공연이었다고 스스로 폄훼하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자기가 할수 있고 좋아하는 일로 세상이 더 나아진다고 믿을 때 인간은 얼마나 행복한 지요.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생각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변화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것들에 대해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듯 해요. 하지만 저는 제 세대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룬것도 분명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세상과 제 딸이 살아가는 세상은 분명 다르니까요.

홋카이도 다녀오셨군요. 저는 겨울 홋카이도만 다녀왔었는데 여름 홋카이도도 좋네요. 이런 여행과 책 이야기를 읽다보면 혼자만의 호젓한 여행이 믹 부러워지는데 저는 또 여행은 막 같이 하는게 좋아서 아마 꿈만으로 그칠거 같습니다. ㅎㅎ

scott 2025-09-21 12:54   좋아요 0 | URL
꿀맛 같은 방학 있는 사회인이 부럽습니다 ㅋㅋㅋ
시간 쪼개고 쪼개서 여행을 가도
내집 내방이 최고 ^^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년에서 성인이 된 남자는 규방 출입을 허락 받고 전족 한 성인 여성과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긴다.

남자들은 발에 입을 맞추거나 발가락 냄새를 맡으며 감각적인 흥분을 했던 경험을 친구들과 서로 교류했다.

-<채비록 제 4편>중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 되어 왔던 중국 여성들의 뼈를 깎는 신체적 고통이였던 '전족'은 1895년, 청일전쟁이후 밀려 들어온 선교사들과 서양인들이 야만적인 행위라며 '여성과 아동' 신체에 대한 엄청난 가해를 지적하면서 반 전족 운동이 시작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은 무너졌지만 혁명의 주역들인 쑨원, 장빙린(章炳麟), 쑹자오런(宋敎仁) 등 혁명파 인물 대부분이 여성의 인권과 권리는 장래의 문제라며 ‘보류’ 또는 ‘지연’시켜 버리며 여성의 삶을 왕조 시대에 맞춰 놓고 순종과 정절을 강조 했다.

혁명 이후에도 엄마들은 자신의 딸들의 발을 강제적으로 접어서 10센티 크기의 전족용 신발에 넣어 버렸다.


오래전 부터 중국 남성들은 여성의 작은 발이 주는 은밀한 즐거움과 성적 유희를 즐겼다.

상류층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의 발 크기와 첩의 발 크기를 비교 하며 발이 더 작은 발을 가진 어린 여자를 찾아 다녔다.

전족이 성행한 명대에는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과 서문경의 정사장면을 읽은 당대 중국 남성들은 반드시 전족을 한 여성을 아내나 첩으로 맞이 했다.

남성에게 여성의 전족은 여성미의 최고 표준이며 한족의표지시였고 조신함의 상징으로 뒤뚱거리는 모습은 남성을 흥분시켰다.

혁명이 시작되자 남성들은 변발에서 해방되어도 여성들을 전족에서 해방 시키지 말아 달라는 청원이 중국 전역에서 빗발쳤다.

3촌 크기(약 7센티)의 발은 어른 손바닥 크기 보다 작지만 수 많은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 서도 중국 역사에서 여성들의 발 크기가 '3촌'에서 더 커졌던 적이 없었다.

1930년대 일본이 대륙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중국 대륙 여성들도 일본과 맞붙어야 한다며 반전족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공산당 주도하에 수많은 여성들이 대장정과 항일전쟁, 그리고 내전에 동원되어 활약하며 신중국 수립(1949)을 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 시키는데 크게 일조 했지만 이들을 생활 현장의 생산 노동자로 떠밀어버렸다.

1950년대 말 대륙 전체에 불어 닥쳤던 '대약진운동'에서 현장 생산 노동자들이 였던 여성들은 강제 유산, 낙태를 당하거나 극도로 위험한 공장에 투입 되어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다. 이러한 비극은 문화대혁명(1966~76)시기에도 이어져서 중국 여성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부녀정책’의 대리자로만 취급 받았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 ‘페미니즘’은 ‘부녀주의’ 또는 ‘여성주의’라는 용어로 사용 하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 서구 학계에서 사용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부녀주의',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 하는 이유는 공산주의에서 페미니즘은 곧 부르주아의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중국 학계에서는 '여성의 눈으로 보는 여성 해방 사상'이라는 다소 긴 의미가 내포된 용어를 사용 하며 여성 인권에 서구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인권 사상을 배제 시키고 있다.

중국은 '여성'이라는 단어 보다 '부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산당의 지도로 여성의 삶을 '자각 시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초대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중국을 통치 하기 시작한 마오쩌둥은 남자와 여자는 각각 하늘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라며 사회 전역에 남녀 구분과 차별 철폐 운동을 실시 했지만 역사가 되어버린 전족이 또 다른 형태로 여성의 삶을 억압해 오고 있다.

20세기 등소평 집권 이후 줄곧 유지 되고 있는 중국의 대국화는 서양이 강요한 근대적 가치들을 대신해 유교적 인본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여성의 인권은 서양에 의해 강요받은 인권이 아닌 중화 사상에 뿌리를 둔 인권 '부녀주의'사상에 근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 공화국 여성의 인권이 세계 인권의 기준에 맞출 수 없고 이들이 주장 하는 인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 가치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왜 남자들이 여자에게 전족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딸에게 전족을 시켰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하이힐 착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족 하는 이유 한 가지는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차이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전족 관습이 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적 흥분도 중요한 이유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전족하면 질이 좁아져 '처녀'와 성관계를 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서구 남자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의 종종걸음을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이며 만족감을 느끼는데, 전족도 유사한 만족감을 주었다. 레비에 따르면 "아장거리는 발걸음과 뒤뚱거리는 엉덩이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레비는 전족한 아내를 둔 남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전족 발걸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 하이힐 걸음걸이에 대한 시각과 매우 비슷하다. ... 중국 남자들은 망가진 발을 갖고 놀고, 입을 맞추고, 쪽쪽 빨고, 입에 집어넣거나 페니스 주변에 갖다 대고,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와 아몬드를 끼워 먹고," 발 씻은 물을 마시는 데서 성적 쾌락을 얻었다. 로시에 의하면 전족으로 얻는 만족감 중에는 여자가 망가진 발에 생긴 '굳은살 벗겨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있었다. 이는 발 페티시를 가진 현대 남자가 하이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전족을 강요한 또 다른 동기는 여자의 모든 자유와 독립성을 제한해 '정조'를 지키려 함이었다. 전족은 일종의 '정조대'처럼 작용했다.여자들은 전족이 초래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딸의 발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발을 작게 하지 않으면 결혼할 남자를 찾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아내감으로 여겨졌다.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어릴 때 가족에게 팔려 성매매 되는 용도로 길러지는 여자아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전족을 했고, 발이 작을수록 성매매 될 때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렇게 결혼의 형태건 성매매의 형태건 남자들이 서로 간에 여자를 팔고 거래하는 한 전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 중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부와 지위로 나눠지는 계급에 따른 신분 차별과 특정 피부색은 노예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차츰 와해 되고 사라진 것은 150년이 채 되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반면에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고 하이힐의 굽을 낮추고 브래지어를 벗고 피임을 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펼친 역사는 고작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가사 노동과 육아에 시달렸던 여성들의 삶이 신분제 계급과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강대국인 미국이나 1분에 한 번 꼴로 여성이 남자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매를 맞는 인도와 이슬람 국가들이나 10분에 한 번 꼴로 가족 폭력에 시달리거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어 살해를 당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 여성 해방을 지지하는 수준과 사회 인식은 2세기 전 노예 해방을 지지 했던 수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노예를 부려 먹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것처럼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을 가하며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 아무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듯이 현 시대에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억압을 주장하면 해묵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자연의 이치와 본성의 차이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라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도시화된 국가의 교육 받은 사람들이나 자신을 진보주의나 사회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나 가정에서 남성은 야망과 모험심 독립심, 합리성을 집중적으로 훈련 받고 학습하기 아주 좋은 환경에 노출 되어 있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양보, 참을성, 친절함과 상냥함을 갖춘 여성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부추기며 강요 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차별과 억압에 맞서서 불굴의 의지로 남자의 능력을 넘어선 위대한 여성들도 많지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거나 근육질에 신체적으로 용감한 모습이나 전쟁 터에서 맹 활약을 하며 전투에 직접 참가 하는 여성의 모습이 드라마, 영화, 광고에 등장한 것이 미디어 매체 역사상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의 활동을 제약했던건 여성의 특수한 생물학적 책임인 출산과 안전한 육아를 위해 실용적 방안에서 비롯 되었지만 문명의 발달과 국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심리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목적과 수단으로 정교하게 편협한 관습과 사상을 단숨에 부숴 버리기 힘들게 고착화 시켜 왔다.

1972년 7월 느슨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며 파리에서 스페인어로 편집해 발간하는 정치 문학계간지 <리브레> 편집자들이 다섯명의 여성들에게 보낸 질문에 응답한 수전 손택은 1년 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 해서 1973년 <파르티잔 리뷰>에 '여성이라는 제 3세계'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 했다.

당시 기고한 글에서 수전 손택은 여성 해방을 위한 모든 진지한 계획은 해방이 그저 평등(진보적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은 권력의 문제다. 남성 권력이 약화되지 않는다면 여성은 해방될 수 없다. 여성 해방은 남성이 독점한 권력을 여성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의식과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로써 권력 자체의 속성까지 변해야 하는데, 유사 이래 권력이 내내 성차별적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공격성과 신체적 강압을 선호하는 규범적이고 소위 선천적인 남성적 취향과 동일시되고 전쟁과 정부, 종교, 스포츠 상업의 영역에서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의 형식및 특권과 동일시 된다.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주장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의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해방이 아닌 진압일 뿐 피상적인 변화는 기존 권위를 위협하는 분노를 매수 해서 불안정하고 지나치게 억압적인 규칙을 개선하는 것은 기존의 지배 형태를 재생성 하는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에 더해 수전 손택은 남성의 지도와 지지, 승인을 받는데 익숙한 여성은 성별과 피부색을 가리지 말고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수전 손택이 활발하게 페미니즘 운동을 펼쳤던 시대에는 흑인이 백인의 공공 장소에 자유롭게 드나든다거나 백인 전용 학교에 등교 하거나 특정 지역에 거주 할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성은 여전히 어떤 변화나 영향을 사회나 가정에 끼치게 될 경우 주변과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남성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걱정을 하는 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역사적으로 계급 차별 철폐나 해방이 저항에 부딪치지 않았던 적이 없었듯이 어떤 지배 계급도 싸우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특권을 먼저 내려놓지 않았다.

애초에 국가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 자체가 남성의 절대적인 특권 위에 세워졌고 남성은 더 나은 사회와 가족을 위해서라는 조건을 내세워서 공정한 결정이라는 이유로 특권을 내려 놓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남성들은 마지 못해 여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 했고 교육의 기회를 열었고 전문직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1세기 들어서 고도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룩한 세상에서 '성 해방'과 '성 차별'의 개념이 sns세상에서 점점 불명확하게 희석 되어 버렸다.

아름다움과 젊음이 돈과 상품으로 널리 소비 되었던 시대를 지나 손 안에 폰으로 볼 수 있는 영상과 숏폼에 점령 당한 세상에서 여성의 신체와 몸은 좋아요와 싫어요의 갯수로 극혐과 찬양의 두 가지 정서로 갈라져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이 서바이벌 게임화 되었다.

이로 인해 10대 시절부터 sns를 사용한 청소년들은 쉽게 상처 받으며 미를 기준으로 하는 게임 때문에 자신의 타고난 외모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스스로 굶주리거나 신체 불균형이 될 정도로 운동에 빠지거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기도 하고 인플러언서들이 사용하는 화장 도구나 옷, 성형 시술을 따라 하는 식으로 중독성이 강한 게임에 빠져 버린다.

시대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국의 공통된 아름다움은 젊음이고 이상적인 젊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거울 속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사회적으로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이 유독 여성에 대한 외모에 적용 되어서 여성의 성격과 관심 본질에 까지 깊이 영향을 미쳤다.

이와 달리 남성의 외모를 향해 잘생겼다 같은 말이 널리 통용 되어서 남성에게 젊음과 건강함은 유능함이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다.

나이가 들어도 경륜에 따른 노련함이 표출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 부터 손과 발, 두 상의 크기 얼굴 형, 가슴, 엉덩이, 눈의 크기 목의 길이 피부색의 밝기와 어두움 그리고 머리카락 숱과 길이에 따라 사회적인 잣대와 시선에 불안해 하고 조바심 치며 때로는 절망하며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낱낱이 뜯어 보고 분석한다.

어떤 부위는 성형 시술로 고쳐서 사회적으로 칭송 받는 미의 기준에 들어 맞는다 해도 어떤 부위는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경우 오로지 완벽한 아름다움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편향된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특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곳은 도처에 널려 있어서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아름다움이 대다수 여성이 추구하도록 권장 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남성도 선 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쓰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유니섹스 뉴노멀 시대라 해도 여성에게 화장과 몸치장은 사회적 의무여서 매력을 유지 하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름다움을 유지 하는 여성에게는 유능함과 전문성, 권위를 갖게 만드는 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난을 가하고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스토커에게 살해 당해도 법적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법의 잣대는 여전히 18세기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개는 제 몸의 크기도 몰라서 작은 개가 큰 개를 향해 짖거나 공격할 때면 큰 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문이 열려진 공간을 유유히 빠져나가다가 꼬리 몇 센티 미터 정도만 문 안쪽으로 남겨 두고 주인을 향해 신호를 보낼 정도로 자신의 몸 길이를 정확하게 안다.

자신의 몸 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온 몸의 털을 세우며 몸의 크기를 배로 불릴 수 있는 고양이는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 하고 있다.

한 쪽 다리로 귀를 긁거나 혀로 네 발을 핥으며 몸 단장을 하는 고양이는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서 민첩하게 대처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양이가 아닌 개와 비슷하다.

자신의 몸 크기나 모양이 어떻게 변해 갈지 잘 알지 못해서 유명 모델이나 셀럽의 외모를 미의 기준으로 삼고 극단적인 노력과 시술을 강행하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각국의 문화마다 이상적인 기준을 가진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고 나름대로의 차별과 억압이 존재 한다.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미국은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갖춘 국가 이면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할 때면 남편의 성을 따라 쓰는 아내가 암묵적으로 남편이 지지하는 선거 정당에 투표하는 수동적인 경향이 여전히 존재 한다.

노골적으로 성과 인종을 차별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을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미디어 매체는 물론이고 광고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협한 미의 기준을 우수한 신체 조건이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의 광고 캠페인에 푸른 눈 금발 머리에 여성 모델이 청바지를 입으며 "청바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때때로 머리 색, 눈동자 색, 성격까지 결정한다"라는 내레이션을 하다 파란 눈이 클로즈업업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여성 모델은 이렇게 말한다.


"내 청바지는 파란색이다(My jeans are blue)"


또 다른 광고에서는 'Great Genes'라는 문구 아래 'Genes'이라는 단어가 줄로 지워지는 대신 'jeans'라고 덧 씌워지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재 미국은 푸른 눈, 금발의 백인 여성을 지배하는 강한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 성조기를 쥐고 흔들며 비 백인계나 소수자, 약자, 장애인들 그리고 영주권자들과 공부와 직장 때문에 단기 거주 하는 이들을 차별하거나 내쫓거나 체류 비용을 배로 내라고 요구 하고 있다.

인류는 인간이 된 순간부터 신체를 장식해왔다.

머리에 꽃을 꼽고, 몸에 문신을 하고 눈꺼풀을 검게 칠하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속옷을 입고 계절에 따른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신발을 신었다.

신분과 부의 규모에 따라 신체를 꾸미고 장식하는 것이 달라져 왔고 21세기의 아름다움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것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서 국가마다 공통된 게임의 규칙은 여성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의 영원성이였다.

자본 소비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권력화 시켜서 남성의 손에 관리 되어 온 여성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동시에 세뇌 당한 아름다움은 여성을 가두는 족쇄이자 신화였다.

과학 기술과 의술이 발전 할 수록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인식도 빠르게 바뀌어 가듯 앞선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녀들의 어머니들 세대와 달리 인공 지능 시대에서 아름다움은 누구나 손쉽게 수정하고 보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들이 오랫동안 쐐기처럼 사회 규범에 박아 놓은 것을 준수 하며 안전과 특권을 보장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았던 순수의 시대는 지나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성은 남자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야심을 품고 실천하는 모습을 스스로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많은 여성과 남성이 우리 사회의 언어와 행동,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수전 손택(1933-200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8-1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족에서 수전 손택 그리고 오늘의 여성에 이르는 글이 너무 훌륭해서 숨 참아가며 읽었네요

scott 2025-08-21 12: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5-08-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족의 비애와 고통.ㅜ.ㅜ
리뷰를 읽고 나니 다시 바라봐지는 수전 손택의 책이군요.

scott 2025-08-21 12:46   좋아요 1 | URL
전족 참으로 기이하고 기괴합니다!



마힐 2025-08-2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군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중국 배낭 여행을 했었어요. 그때 어느 소도시 기차역에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어떤 남자가 제 앞에서 새치기를 하더라구요. 순간 당황했지만 더 황당했던 것은 창구에서 표를 팔던 여성 직원이 부리나케 뛰쳐나오더라구요. 그 여성 직원은 새치기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치고 욕을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싸대기를 후려 쳤어요. 옆에서 저는 순간 문화적 충격을 먹었답니다. 모택동이 말 했다는 “妇女能顶半边天“ 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지요.
싸대기를 맞은 남자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줄 뒤로 가서 서더라구요.
그 이후 부터 저는 모든 여성들 앞에서는 고분하기로 했답니다. ㅎㅎ
scott 님 글을 읽으니 예전 일이 떠올랐네요.

2025-08-21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송인과 연예인들이 개인 유툽이나 SNS에서 가장 많이 공개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즐겨 먹는 거나 챙겨 먹는 식습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습관일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인지도나 유명세에 따라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가서   화제 영상이 될 경우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파급 효과 때문에 각종 PPL이 붙는다.

어떤 유명인이 광고 효과를 노리고 먹고 마시고 요리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마다 그 영상을 보는 이들의 머릿 속에는 저렇게 먹으면 자신들의 모습이 지금 보다 좀 더 나아지거나 젊어지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난다.

미국 IT 사업가이자 백만 장자인  브라이언 존슨은  40세가 되던 해인 2013년 ‘브레인트리’라는 자신의 온라인 결제 플랫폼 회사를 8억달러(약 1조5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고 이베이에 팔았다.  단숨에 돈방석에 앉은 브라이언은 자신의 신체 나이를  18세 청춘으로 되돌리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다.

일명 ‘회춘(回春)’ 프로젝트를 시작한  브라이언 존스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오전 11시까지  천천히 음식물을 2250칼로리(kcal)정도  섭취하고  4~5시간가량 '집중된 사고'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그는 외출 할 때는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고 햇볕을 차단하는 SUV용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매일 100여알의 영양·보충제를 복용하고, 매주 3회 고강도 운동을 하는 브라이언 존스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

오후 8시 30분에는 반드시 취침을 하는 그에게 매달린 의사들은 총 30여명으로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체지방 스캔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는다.

 브라이언 존스는 익명의 젊은 기부자에게 혈장을 수차례 수혈 받은 후  4년 젊어진 신체를 갖고 나서 자신의 열 일곱 살 짜리 친 아들의 피를 수혈 받는다.

17살 아들의 피를 1 리터 수혈 받은 브라이언은 피에서 분리한 혈장을 투여 받아서  46세 나이를 37세 육체로 되돌렸고   피부는 28세 구강 상태는 17살, 폐활량은 18세 수준 까지 되돌렸다.

브라이언이 매년 회춘 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쏟아 부은 돈의 액수는  27억에 달한다.

돈을 쏟아 부은 만큼 젊어지고 있는 브라이언의 회춘 프로젝트를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 몇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생명공학 기술, 새로운 장기를 이식해 젊게 살아갈 수 있는 의료 기술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을 바꿔 젊음을 되찾아주겠다는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게 발전 한 곳은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노인성 치매 같은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가장 높은 곳도 미국이고 사회 세대별, 인종별 그리고 거주 지역에 따른 빈부차이가 가장 큰 곳도 미국이다.

이에 대해 어느 유명 셰프가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을 조리 해 먹는 걸로 비교 하기도 했다.

영국의 어느 유명 셰프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아침이나 브런치로 즐겨 먹던 스크램블을 먹다가 문득 국가 별로 각기 다른 조리 상태의 스크램블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장 먼저 계란 2-3개, 버터, 소금 정도만 넣는 스크램블을 조리 할 때 영국식은 계란을 풀면서 버터를 첨가 하고 중불에서 달궈진 팬에 계란 물을 부으면서 빠른 속도로 조리 기구로 젓는 동안 약불로 조절하면서 완성한다.

프랑스 정통 스크램블 조리법은 과정이 좀 다르고 복잡한데 찬물을 냄비에 넣고 끓여 놓은 다음에 그 위에 스텐리스 볼에 계란을 넣고 조리용 거품기로 천천히 휘저으면서 소금을 넣고 생크림이나 우유를 첨가한다.

마지막 충분히 달궈진 팬에 계란물을 붓고 빠른 속도로 휘저어서 완성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계란 소비를 하고 있는 미국식 스크램블은 달궈진 팬에 버터를 넣고 계란을 그 위에 깨고 소금을 조금 넣고 조리기구로 휘 젓는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나 일반 식당은 이런 조리법으로 완성하지 않겠지만 대다수 일반 미국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스크램블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계란물을 만들지 않는다.

왼쪽 사진부터 영국식 계란 스크램블 가운데는 프랑스식 스크램블 마지막 오른쪽은 미국식 스크램블이다. 

계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크램블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조리 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스타일의 스크램블이 아닌  색다른 스크램블을 해 먹어 보겠다며 유명인들의 유툽이나 팔로잉 하는 이들의 흔적을 뒤져 보았다.

(C) JohnnySun

캐나다 캘거리 태생의 조니 선은  대학에서 공학과 건축학 그리고 도시 공학을 공부 했지만 일러스트와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를 하며 설치 예술을 하는 만능 재능인이다.

2017년 지구를 관찰 하러 온 외로운 외계인이 다양한 생명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 <내가 외계인이면 다들 외계인>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의 그림을 그려 주면서 대중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C) JohnnySun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대본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다양한 활동을 폭넓게 펼치기 때문에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걸 종종 잊곤 해서 이동 중에 끼니를 때울 때가 많지만 어린 시절 중국계 부모가 항상 집에서 조리 해주었던 계란 요리가 그의 소울 푸드다.

조니 선이 부모님에게 배운 스크램블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프라인팬을 화구에 올리고 약불로 가열한다.

살짝 달궈지면 식용유나 녹인 버터를 두른다

그동안 계란을 깨서 그릇에 넣고 잘 풀어준다.

살짝 달궈진 프라인팬에 붓고 천천히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쉬지 않고 계속 젓는다.

계속 젓는데 변화가 없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무슨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백만장자나 억만장자 같은 부자들처럼 회춘 프로젝트에 쏟아 부을 돈이 없는 이들에게 완전 식품에 가까운 계란은 그야 말로 음식을 통해 회춘을 꿈꿔 볼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다.

세상에서 가장 손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저속 노화 속도를 유지 하며 회춘을 꿈꾼다면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한 판을 꺼낸다.

노란 계란물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휘젓고 있는 계란을 응시하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젓는다.

멈추면 계란이 눌러 붙어 타버리니 무조건 계속 젓자!

돌고 도는 계란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프라인 팬에 휘도는 계란을 젓고 있는 내 마음도 빙빙 돈다.

적절하게 끈적한 상태로 완성한 스크램블을 접시에 담는다.

 5분 정도면 완성되는 요리.

계란 스크램블을 입 속에 넣으면서 몸 안의 회춘 시계를 앞으로 돌리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먹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8-11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침에 계란 먹으라는거죠. 저는 스크램블도 귀찮아서 저녁에 미리 삶아놓은 계란입니다. 저는 브라이언 존슨이라는 사람처럼 살바에야 그냥 노화를 택하렵니다. 좀 엽기적이고 편집광같애여. ㅎㅎ

scott 2025-08-16 00:4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조단위 부자가 아닌 바람돌이님과 저는 계란 한 판으로 회춘의 시계를 앞으로 ㅋㅋㅋ

돈이 넘 많아서 온 몸에 덕지 덕지 하고 있는 조단위 부자들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