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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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에 다양한 매체에 전문가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 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수면 시간을 지키면 생애 주기에서 여러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져서 덜 아프게 건강하게 한 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을 강조 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매 끼니 건강 식단을 유지 하며 유기농 재료를 구입해서 적절한 칼로리와 조리법에 맞춰 한 끼 식사를 하며 살기 힘들다.

가장 먼저 높은 물가와 비용 대비 시간이 허비 되어서 차라리 간편식과 가공음식을 사다가 에어프라이기에 돌려 먹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간 조차 없거나 모든 게 귀찮으면 다양한 간식 거리를 식사 대신으로 먹기도 한다.

많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매콤하고 쫄깃한 식감의 떡복이와 고소하고 담백한 순대, 야채 김밥 한 줄 그리고 시원한 멸치 육수를 우려낸 오뎅탕을 먹는 낙으로 현실의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뎌 낼 수 있다.

이런 분식을 먹는 날이면 반드시 입 안에 달콤하고 새콤한 디저트가 들어 가야 한다.

마음의 평온함은 누군가의 따스한 위로나 손길이 아닌  혀 끝에서 녹아내리는 달콤함만으로도 충분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한 번에 날려 버리게 된다.

게다가 매일 이런 조합으로 먹는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은 주변을 둘러 봤다.

조조 영화관은 한산했다.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관객 두 명이 더 있을 뿐이다.

그 사람은 다시 스크린을 바라봤다. 화면에선 가을 햇빛이 주인공의 어깨를 밝히고 있었다.

있잖아. 있잖아.....

이번에도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보다 좀 더 힘 줘서 속삭이는 소리였다. 그 사람은 손을 가져가던 젤리 봉지 안을 무심결에 들여다 봤다.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심심풀이로 먹고 있던 곰돌이 모양 젤리, 어떤 젤리와 눈이 마주쳤다.

젤리와 눈을 마주치다니,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마주친 젤리를 집어 올렸다. 스크린을 건너와 쏟아진 햇빛으로 젤리가 맑게 빛났다.

투명한 연둣빛 몸으로 젤리가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너무 기뻐.

-박소희의 <모든 당신의 젤리> 중에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 젤리의 모양은 곰!귀요미 사이즈에 앙증맞은 크기로 단숨에 먹어 버리게 만드는 마성의 젤리다.

광고에서도 멋진 슈트를 빼 입은 어른들이 이 젤리를 먹고 나면 유아들 목소리로 변할 정도로 나이와 세대, 인종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중독 시켜 버렸다.

슈톨렌 포장을 벗겨 얇게 썰었다. 굳이 내가 포장을 뜯은 까닭은 베이커리 카페의 로고 스티커를 떼기 위해서였다. 뻔한 거짓말일망정,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슈톨렌은 밀도가 높아서 얇게 썰수록 맛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얇게라면 얼마큼이지. 손에 자꾸 슈거 파우더가 묻었다. 어머니와 나는 마주 앉아 우물우물 슈톨렌을 먹었다.

나는 십 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 서울에서 파는 독일 빵을 먹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지의 <라이프 피버> 중에서

유럽 어디에서든 한국의 간식거리를 쉽게 사 먹을 곳도 없고 현지에서 파는 간식거리들과 길거리 음식들에 입맛이 적응하고 나면 한국에서 먹었던 간식이나 어린 시절 명절날에 먹었던 한국 전통 과자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서 호텔의 고급 베이커리 샵이나 백화점에 입주한 외국 브랜드에서 파는 디저트 류와 케이크등은 베이커리의 천국인 유럽에서 몇 유로만 지불해도 될 만큼 가격의 압박이 크지 않다.

그곳이 에펠탑이 있는 파리라면 더더욱 한국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이나 정통 과자류는 눈꼽만큼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바게트는 약 1.3유로,  우리 돈으로 1,700원 정도다.

대를 이어서 빵을 만드는 장인들도 많고 화려하면서 참신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재료로 맛나는 빵을 만드는 새로운 제빵사들까지 빵을 구워 팔아서 프랑스에서 빵집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어떤 빵집은 손님이 맛을 보고 가격을 정하라는 빵 가게 부터 시간 대 별로 가격이 차등적으로 부과되는 가게까지 다양한 종류와 가격에 손님을 끌어 모으는 전략을 쓰고 있다.

빵의 천국 파리에서 빵을 먹지 않고 한국식 식단을 차려 먹고 간식도 한국 전통 과자만 먹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나의 프랑스 인 친구의 지인이였던 그 분은 프랑스에서 의상을 공부하고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서 살면서 재단 일을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할 여유가 없어서 직접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 했다.

다른 친구가 그 분이 디자인 한 옷에 관심이 있어서 의상실에 데려 갔던 날, 종이 가방을 건네면서 한국에서 너무 많이 보내 줘서 나눠 먹자며 한국 다과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종이 가방에서 과자 상자를 꺼내는 순간 놀랍게도 제사를 지냈던 큰집 명절날에  먹어보았던 과자들이였다.

조청 맛이 느껴지는 약과, 유과, 생과자, 센베이, 김 맛나는 부각 그리고 제삿상에 올려지는 독특한 식감과 색감을 가진 젤리들을 먹는 동안 설탕과 버터를 들이 부은 프랑스 정통 디저트류와는 맛의 차원이 다른 고소하면서 담백한 맛에 확 빠져 버렸다.

프랑스어가 능통하지 않은 그 분은  단골 손님들과 주고 받는 일상적인 대화를 제외하고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못했고 오로지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파는 데 몰두하느라 의상실에서 날 밤을 새는 날이 많아서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드물 정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손님의 손님을 꼬리를 물고 소개 시켜주니 언젠가 그 분이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며 집으로 초대를 했다.

초대를 받으러 간 날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엘지] 로고가 박힌 한국형 냉장고가 주방 한 구석에 놓여 있었다.

'회사 주재원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 갈 때 버리고 간다고 해서 내가 가져 왔지.

얼마나  좋은지 몰라. 김치도 숙성이 잘 되고 야채 과일 모두 싱싱하게 유지 되고.'

그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분이 차려준 묵은 지 김치찜과 한국 김 그리고 계란 말이와 흰쌀 밥을 정신 없이 먹어 치웠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계란+김+밥

인간이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맛있는 걸 먹고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  낙樂이 아닐까?

아직 이른 아침이기도 해 문 열린 베이커리 카페에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빵 냄새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자 어제 떠나온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벌써 그리웠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류블랴나에 갔을 때 한동안 지속적으로 꾸던 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수의를 입고 감옥에 있다. 어머니는 면회를 온다. 어머니는 큰 피크닉 가방에서 통닭과 김밥 그리고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녹기 전에 먹으렴' 

그 말에 나는 허겁지겁 아이스크림부터 먹는다. 그걸 보며 어머니는 비웃는다.

'디저트부터 먹어 치우는 멍청한 것'

나는 어둡고 어머니는 이물스럽다. 그 꿈을 꾼 날은 동네 카페에 가서 크림이 가득 들어간 크렘나 레지나를 먹었다.

류블랴나 카페에서 흔히 파는, 빵의 반이 크림으로 가득한 부드러운 크림 케이크 그러면 비로소 악몽에서 깨어났다.

-이지의 <라이프 피버> 중에서 

서늘한 바람이 분다.

호빵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종류 별로 골라 먹어도 질리지 않게 다양한 재료로 진화 하고 있는 호!빵!

눈 앞에 먹거리가 있으니 먹는 낙 樂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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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0-01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 책 맛있겠네요.
 
[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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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불탄다. 불타는 건물에서 한 노파가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약탈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여 있어서 밤에도 환하다.

사령관의 사무실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입술이 거무죽죽한 독일인 여성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목과 얼굴에 시커먼 멍이 든 한 소녀가 그녀와 함께 있다. 소녀의 눈은 퉁퉁 붓고 손에도 끔찍한 멍이 있다. 소녀는 본부 통신 중대의 병사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 병사도 그 자리에 있다. 둥글고 붉은 얼굴의 그는 졸려 보인다. 사령관이 그들 모두를 함께 심문하고 있다.

-바실리 그로스만(Vasily Semyonovich Grossman 1905-1964)

1905년 우크라아나 소도시 베르디치프(Berdychiv/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에서 태어난 바실리 그로스만의 가족들은 원래 러시아 땅에서 살았지만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유대인 추방 정책 때 가까스로 우크라이나로 도망쳐 왔다.

이런 집안 분위기로 인해 바실리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유대인식 교육이나 종교관을 심어주지 않았고 자신들도 유대인 예배당을 다니지 않았다.

바실리의 아버지 셰이몬 그로스만( Semyon Osipovich Grossman)은 이탈리아계 유대인 화학 엔지니어 였고(스위스베른공과대학졸업) 어머니 예카데리나 사비예리에브나(Ekaterina Savelievna Grossman/러시아 독일계 유대인) 는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아버지 셰이몬은 사회 민주 당원으로 활동하며 멘셰비키(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한 것으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색채가 짙음) 운동에 가담하고 아들 바실리가 태어나던 해 1905년 혁명에서 동참하며 세바스토폴 의회를 조직원으로 활동한다.(세바스트폴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여 크림 공화국으로 통일한 후 러시아 연방에 가입함)

아버지 셰이몬의 이런 정치적 활동으로 인해 어린 아들이 어떤 참혹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길함에 사로잡힌 어머니 예카테리나는 남편과 별거를 결심하고 1910년 다섯살 짜리 아들 바실리를 데리고 외삼촌이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2년 동안 머문다.

바실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이혼은 하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살며 고 아들에 장래와 미래에 대해 항상 논의 했다.

1914년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베르디치프로 돌아가고 바실리는 아버지가 있는 키예프로 보내진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키예프에서 중등 고등 학교를 다니는 동안 1917년 피의 혁명을 두 눈으로 목격 하고 이상주의 사회국가에 빠진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 한 후 돈배스 광산에서 엔지니어와 안전 문제 진단 전문가로 일한다.

1928년 결혼을 한 바실리는 딸이 태어난 후 광산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모스크바로 떠날 준비를 하지만 아내는 키예프에 머물기 원했다.

당시 소련 정부는 당국의 허가 없이 거주 이주 제한을 시행하고 있어서 바실리 아내는 모스크바로 이주 할 수 없다는 당국의 통보를 받는다.

바실리는 모스크바가 아닌 스탈리노로 가족을 이주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이 또한 아내가 완강하게 거부 한다.

당시 아내는 키예프에서 직장을 다닐 때 직장 동료와 내연 관계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실리는 어린 딸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 버리고 모스크바에서 광산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대학 시절 틈틈이 단편 소설을 써왔던 것 처럼 그는 일 할때도 쉼없이 원고지를 붙들었다.

마침내 지역 문예지에 보낸 원고 중 '버디치프의 마을에서(В городе Бердичеве1967년 단편 영화로 제작됨)라는 단편을 읽은 대문호 막심 고리키와 미하일 불가코프는 바실리에게 직접 연락한다.

1933년 이혼 후 모스크바로 이주한 바실리는 그곳에서 대문호 막심고리키를 만나 그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첫 장편을 완성 한다.

바실리는 엔지니어 일을 그만두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달리며 1936년 중단편집을 모은 작품집과 장편 1권을 출판한다.

1937년 작가 연맹에 가입하던 해 선배 작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바실리는 연맹의 중간 간부급 지위에 올라가며 스탈린 상 수상 후보에도 오르지만 이 상은 스탈린 스스로 부르주아들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킨다며 없애버린다.

바실리는 활발하게 작가 연맹 간부로 활동 하며 창작열을 쏟아 붓던 시기에 아내의 친구 올가 거버와 내연 관계에 빠지고 올가가 남편 보리스와 이혼 절차를 밟기 전에 혼인 신고를 해버린다.

1937년 문화 예술계 인사 사상 검증 대상자 였던 올가의 남편 보리스는 당국에 체포되자마 전처인 아내 올가와 함께 반체제 운동을 했다는 거짓말을 한다.

올가가 당국에 체포되자마자 바실리는 재빨리 올가가 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의 법적인 아버지로 나서서 강제로 고아원으로 보내기 직전에 두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켜 버린다.

바실리는 두번째 아내 올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증인들을 찾아 다니며 문화 예술계 인사 사상 검증을 지휘하는 총지도부에게 직접 찾아가 수백장 가까운 증거 자료를 제출 하는 용기를 발휘 했다.

1937년 당국에 함께 끌려 갔던 동료들이 모두 형장에 이슬로 사라졌을 때 올가만 풀려나와 남편 바실리 곁으로 돌아갔다.

아내 올가의 무죄를 입증 할 정도로 바실리 그로스만은 스탈린 체제에 철저하게 입맛에 맞는 작품을 발표하며 사상적 의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스탈린 체제에서 모든 인민들이 공정한 자유과 노동에 합당한 댓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진정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실현을 꿈꾸었다,

바실리는 수많은 동료들이 탄압 받거나 끌려가고 사라지는 순간에도 소비에트 정권에 절대적으로 협력하며 2차대전 종군 기자로 참전 하기 전까지도 스탈린 정권이 내지르는 말을 그대로 믿었고 그들의 행동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발행하는 '레드 스타'지에 소속된 기자로 활동하던 첫해 1945년 1월 29일 부터 시작된 포즈난 대 공세에 참여한 제8근위군에 동행 취재를 하는 동안 소련군들이 포즈난의 시민들에게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상세하게 기록하며 스탈린 정권의 악마의 얼굴을 마주 하게 된다.

도시 전체가 폭격을 당해 무고한 시민들이 떼 죽음을 당해 피로 물든 도시에서 전투 중이였던 소련병들이 밤 낮으로 진군 하며 눈에 보이는 데로 약탈과 강간, 음주를 즐기는 광란의 전쟁터 한 가운데 있었던 바실리 그로스만은 죽음의 목격자였다.

1942년 독일 나치군 침공으로 초토화되 버린 스탈린그라드 남부 전선에서 레드 스타지 기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바실리 그로스만은 독일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처참한 죽음을 유대인 반 파시즘 단체가 발행하는 유니티지에 정기적으로 기고 하며 독일 나치군의 만행을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자가 된다.

1942년 가을 부터 겨울까지 나치에 맹렬하게 대항하는 군대는 오로지 스탈린의 붉은 군대 뿐으로 전 세계의 희망이 된 소비에트 당국은 바실리 그로스만의 홀로코스트 취재를 한편으로 눈감아주고 서방 국가들이 나치에게 집중 할 때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쳐 집단 농장 정책을 밀어 붙인다.

당국의 신임을 받은 바실리 그로스만은 1944년 트레블린카 죽음의 수용소를 직접 방문 답사 해서 그곳 가스실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무장봉기를 일으켜서 죽음의 수용소를 탈출한 이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취재한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 취재를 마치자 마자 언론인 일리야 에렌버그와 함께 '지옥의 트레블린카'라는 기사를 러시아 잡지'깃발'(зна́мя )에 기고하고 곧바로 홀로코스트에 끌려간 이들의 이름과 신상 목록을 작성해나가는 작업에 착수한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이런 방대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인명 사전 작업을 알고 있었던 소비에트 연방은 전세계 나치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붉은 군대로 위장하고 적극적으로 이사전을 발행하는데 협조해준다.

무신론자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했던 바실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독일계 유대인이여서 공산 정권 치하에서 굉장히 위태로운 위치에 있었음에도 공산 정권이 저지르는 고통과 잔혹함을 픽션의 형태로 고발 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1953년 스탈린이 죽기 전까지 앞으로 어떤 운명이 자신에게 불어 닥칠지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1943년 바실리는 스탈린그라드에 관한 서사적 성격의 작품 집필에 착수 하고 1952년 잡지 '새로운 평화'(Novy mir)라는 잡지에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За правое дело/영어판2019년 '스탈린그라드'로 출간됨) 라는 타이틀로 출간 한다.

당시 '새로운 평화' 잡지 발행인이였던 뜨바르도프스키와 파데프( 작가 총연맹 사무국장) 이 두 사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출간 후 반응도 꽤 호평적이여서 바실리 그로스만은 다음 작품 출간 까지 약속 받는다.

1953년 2월 전 지역에 삼엄함 감시령이 내려지고 특히 소리 소문 없이 유대인 출신 인사들이 사라진다. 바실리는 직감적으로 이번에는 자신마저 숙청 명단에서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 직감한다.

드디어 3월부터 사상 검증에 불려간 바실리는 유대인들의 국가관이 소련 연방 체제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조목 조목 밝히라는 압박을 받는다.

바실리를 집요하게 압박했던 사람은 바로 작가 총연맹 사무국장인 '파데프'(알렉산더 파데예프Alexander Alexandrovich Fadeyev(1901-1956년)로 그는 스탈린에 의해 작가 조합장으로 임명되어 스탈린정책에 반하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의 체포를 허가하는 수많은 서류를 통과 시킨 인물이였다.

반면 파데프는 유대인 작가 색출자 명단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바실리 그로스만은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게 막아주었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갑작스럽게 정치적 기류가 전과 다르게 흘러 가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라며 바실리를 압박하는 한편 자아 비판성 편지만 받고 바실리를 풀어준다.

1954년 파데프는 바실리의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1959년에 완성하는 대작 '삶과 운명'작품의 전편작/스탈린그라드)를 책으로 정식 출간 할 수 있게 승인해준다.

파데프의 도움으로 스탈린 사후 비로소 바실리 그로스만은 자신의 이름을 내고 책을 출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소비에트 정부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엄청난 호평을 받는 작가가 된다.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라는 작품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버금 가는 대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여러번 재판을 찍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린다.

책을 직접 사서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신문에 연재 되기도 할 정도였다.

1955년 바실리는 ''위대한 노동자'라는 상을 당국으로 부터 수여 받는다.

바실리는 이렇게 작가적 명성을 얻는 시기에 두 번째 대작 작품을 쓰고 있었다.

그 작품은 바로 '삶과 운명'으로 두 전체주의 세력인 나치즘과 스탈린 체제 공산주의 정권에 지배를 받았던 1942년 가을부터 1943년 봄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모스크바에서 카잔으로 피난 온 물리학자 시트룸과 그 가족들이 겪은 대중동원, 강제노동, 대학살의 참상을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독일과 소련의 수용소로 각각 나눠 사실적으로 전개 시켜 나간다.

등장 인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알렉산드라 샤포슈니코바는 혁명 전 지식인 집안 출신으로 뼛속까지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가족이 작품의 중심 인물들이다.

소설의 스토리는 두 가지 중심축으로 나눠져 있다.

하나의 축은 러시아 노동 캠프와 물리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알렉산드라 블라디미로브나의 첫째 딸 루드밀라 니콜라예브나 샤포슈니코바( Lyudmila Nikolaevna Shaposhnikova) 의 삶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중심축은 루드밀라의 여동생 예브게니아의 전 약혼자와 전 남편인 정치 위원장 크리모프와 대령 노비코프라는 인물을 통해 소련의 정치와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정치위원장인 크리모프는 볼셰비크 혁명 끝자락에 서있었던 인물로 스탈린그라드 도시가 소련 체제의 중심부로 기획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이들 가족의 친인척들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공포 정치를 실현 시켜나갔는지 누가 혁명을 주도 했는지, 누가 권력을 배신했는지 누구의 밀고로 수용소로 보내졌는지 시계추처럼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특정 시기를 관통했던 한 가족의 전쟁과 사랑의 연대기로 읽혀 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로 꼼꼼하게 짜여진 사실을 기록한 작품으로 1942년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기 까지 1년 여 동안의 끔찍한 순간을 기록한 무자비한 폭력 체제에 복종했던 시대의 증언록이다.

무고한 시민 사회의 자율을 억압하고 개인의 목숨을 짓밟아 버린 국가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자유를 통제해서 개인의 운명을 바꿔버렸는지 종군 기자로 격전의 현장 스탈린그라드에서 목격한 바실리 그로스만의 피눈물이 담겨 있는 책으로 여주인공 루드밀라의 남편이자 핵물리학자인 빅토르 파블로비치 시트룸( Viktor Pavlovich Shtrum)는 작가 바실리 자신의 모습을 많이 투영 시켰다.(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영어판은 '스탈린그라드로 출간'작품 속 주인공)

1941년 바실리 그로스만은 벨라루스 서부 전선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첫번째 전투 날 하늘에서 검은 폭탄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바실리 그로스만은 독일 군복으로 바꿔 입고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살아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바실리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지 모르는 작품에 몰두 해서 체제를 향한 저항과 투쟁의 삶을 선택한다.

'전쟁이 발발하여 독일군이 벨라루스를 공격하였을 때, 이코니코프는 전쟁 포로들의 고통과 유대인 학살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코니코프는 다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인이건 안면이 없는 타인이건 가리지 않고 유대인을 숨겨줄 것을 애원했고, 그 자신 역시 유대계 여인들과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힘썼다.

곧, 밀고로 체포된 후 운 좋게 교수형을 면하게 된 이코니코프는 이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중에서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체제 속에 공포로 인간의 자유를 지배해버린 독일 나치와 소련 스탈린은 서로 서로 경쟁하듯 군사 능력을 키우고 인민을 착취해서 군비를 비축하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 상호 불신과 증오를 무서운 속도로 키워나간다.

​<삶과 운명>의 1부 1장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러시아에 있는 수백 만의 시골 이즈바(통나무집) 가운데 서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유사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고유하다. 똑같은 두 인간, 똑같은 두 송이 들장미는 상상할 수 없다…… 삶은 그 고유성과 독특성을 폭력으로 지워 없애려는 곳에서 고사(枯死)한다."

이 작품에는 실존 인물들도 등장 시켜서 결코 작가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허구의 스토리가 아니라 스탈린과 히틀러 독재 정권 지배 하에 살았던 전선의 병사와 후방의 시민들은 물론, 독일군과 소련군 장군들, 양쪽 수용소의 수감자들,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수뇌부에 이르기까지 2차대전에 관계된 모든 종류의 인물을 소설로 소환했다.

극한의 폭력과 학살을 앞둔 상황에서 어제의 이웃이 오늘은 적이 되어 서로를 밀고 하고 서로의 양식을 훔치고 살아 남기 위해 총과 칼을 겨누는 순간에도 마지막 남은 감자 한 알을 나누는 사람들, 자신의 집에 기어들어 온 죽기 직전의 포로를 목숨을 걸고 보살펴 살려내는 우크라이나의 시골 노파의 모습 속에서 끝까지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삶과 운명을 천 페이지 분량의 압도적인 필력으로 펼쳐 보인다.

소설의 압권은 제2부 16장에서 작가의 모습을 투영시킨 시트룸이 이꼰니프가 읽는 글을 통해 인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지상에 사는 사람 대다수는 선(善)을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선, 그것은 어디에 있나? 누구에게 선이 주어지는가?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인종에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공공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나의 선이 너에게는 악이고 내 민족의 선이 네 민족에는 악일 수 있을까? 선이란 영원하고 변함없는 것인가? 아니면 어제의 선이 오늘은 악이 되고 어제의 악이 오늘은 선이 되는가?]

작가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선이 존재하는지 묻고, 선의 이상이 인종과 종교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설명하면서 기독교의 교리를 이용한 사회주의 체제를 맹렬하게 비난한다.

“그 교리는 그 자체로 악을 행한 사람들의 모든 범죄보다 더 많은 고통을 초래했다 나는 지옥에서 내 믿음을 버렸다 내 믿음은 소각로의 불꽃에서 나왔으며 가스실의 시멘트를 통과했다.

나는 인간이 악과의 싸움에서 무력하지 않음을 보았고 강력한 악이 인간과의 싸움에서 무력함을 보았다.

인간의 역사는 악을 이기려는 선의 싸움이 아니었다 인간의 역사 이는 인간성의 작은 씨앗을 빻아 가루를 내려 하는 거대한 악에 맞선 싸움이다 하지만 아직 인간 속의 인간적인 것이 말살 되지 않았다면 악은 이미 승리를 확신 할 수 없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중에서

<삶과 운명 > 속의 모든 인물들은 전체주의에 포위되어 전체에 대한 개인의 복종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자율을 억압하고, 국가가 지시하는 전체라는 추상적 이념에 대한 복종 만을 강요받는다.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도 노동수용소에 갇히고 나치 강제수용소의 히틀러 친위대(SS) 장교가 러시아인 죄수에게 나치는 스탈린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한 나라에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농민의 자유를 파괴해야 한다. 스탈린은 주저하지 않고 수백만의 농민을 숙청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독일 국가 사회주의 운동을 방해하는 적임을 알았다. 그래서 수백 만의 유대인을 청산했다.”

서방 국가들이 나치에 대항에 전세계의 자유를 찾기 위해 피를 흘리는 붉은 군대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실상은 두 개의 전체주의, 즉 파시스트 나치와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싸움이였다.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 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무자비한 방법으로 생명을 몰살 시키는 전체주의 속에서 끝까지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다.

치열한 전쟁터 속에서 온 몸으로 겪은 고통과 대량 학살을 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 온 주인공 시트룸은 고향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들은 여전히 말없이 걸었다. 그들은 함께 있었다. 단지 그 이유로 주위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졌고 봄이 왔다.

고요함 속에는 지난해에 태어났다가 죽은 나뭇잎, 실컷 내리다가 그친 비, 지어졌다가 비워진 둥지, 어린 시절, 개미들의 노고, 여우와 솔개의 배반과 약탈, 만인이 만인에 맞선 세계 전쟁, 하나의 심장 속에서 태어난 그리고 이 심장과 함께 죽어버린 선과 악, 토끼와 전나무 몸통을 떨게 했던 폭풍우와 천둥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봄은 햇빛 비치는 들판에서보다 숲의 차가움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가을의 고요함보다 이 숲의 고요함 속에 더욱 큰 슬픔이 있었다. 아무 소리 없는 이 침묵 속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통곡과 삶의 맹렬한 기쁨이 들려 왔다.]

작가는 작품 속 등장 인물들의 삶과 운명 속에서 거대한 악의 권력에서 자행하는 살육들이 결국에는 인간의 본성에 드리워진 선 함으로 인해 악의 힘이 아무리 커도 연약한 생명 전체를 정복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자가 되어 삶은 계속된다고 믿었다.

1933년 법과 질서를 강조 하며 가장 도덕적이고 순혈주의 국가 될 것임을 선포했던 독일 제 3제국은 과학기술의 발달, 각종 자원의 효율적 활용, 히틀러의 독재를 앞세워서 한 때 유럽의 강국으로 비상했지만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패전으로 끝났다.

집은 불탔고, 살림살이는 약탈 당했고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은 강간을 당하거나 살해 당했고 수 만 명은 소련으로 끌려가 15~16시간 씩 강제 노동으로 단 몇 백 명만 겨우 살아 남았다.

2년 동안 전쟁 중의 독일 국민들 절반을 약간 웃도는 이들이 죽었고, 생존자 중 절반을 약간 밑도는 여자들이 강간 당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벌어진 인간 비극의 규모는 이 책에 서술 된 숫자로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살아남아 포로가 된 나치 수뇌부들 모두 '기만 당했고 배신 당했고 우리 모두 나치즘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 책에 서술 된 전쟁터의 참혹함과 사망한 장병의 숫자와 전후 국제정세의 변화로 전쟁을 인식하곤 한다.

역사 기록엔 민간인 사망 숫자가 포함되지만, 숫자는 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유럽 각국의 영토를 점령 하기 시작했고 1939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뒤이어 1941년 소련을 침공한지 8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거 2023년 팔레스타인의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가자 지구를 공격하면서 세계의 화약고의 불길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전 세계는 또다시 지난 세기처럼 두 개의 전쟁에 휘말려 있다.

19세기 전쟁터에서는 영웅들이 승리하고 평화가 왔지만, 영웅이 사라지고 평화도 없는 20세기는 눈부신 과학의 시대를 열은 아인슈타인과 게슈타포와 가스 수용실 그리고 집단 수용소와 시베리아 형장을 탄생 시킨 히틀러와 스탈린의 시대 였다.

21세기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인류의 삶과 운명의 양 축에 지난 세기가 낳은 스탈린 나치의 망령들의 샴쌍둥이들인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며 대 반격을 시작했고 정교한 폭탄 장치와 최첨단 무기와 드론으로 AI전쟁의 위력을 보여준 이스라엘은 공격과 살육의 대상을 가리지 않고 2차 대전의 나치 못지 않게 최악의 인명 살상을 자행하고 있다.

전쟁과 대량 학살, 집단 말살을 온 몸으로 겪은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의 마지막 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아직 어둡고 춥지만 곧 문이 열리고, 덧창이 열리고, 빈집은 어린애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로 가득 차며 생기를 띨 것이다.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동동 거리는 발소리가 울릴 것이고, 확신에 찬 주인이 집 안을 걸어 다닐 것이다.

그들은 빵을 담을 바구니를 든 채 서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류는 항상 고통과 고난을 겪어 왔지만 시간이 흘러가듯 삶은 항상 계속되고 행복과 평화는 생명의 전령인 봄처럼 찾아 왔다.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 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압도적 악의와 공포 속에서도 본능처럼 흘러나오는 선한 행위에서 나오는 희망, 저항, 사랑으로 삶은 곧 자유 인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마야코프스키, 나데즈다 만델스탐은 단 한번도 전쟁이나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 한 적 없이 외부자 시선으로 작품을 쓴 작가 였다면 바실리 그로스만은 소비에트 연방의 폭력과 억압 살육 정책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작가였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항상 기록 하며 '삶과 운명' 초고를 잡지'깃발'(зна́мя ) 편집장에게 보내는 것과 동시에 중앙 위원회 문화 담당 부서에도 원고를 보냈다.

당시 제1공산당 서열 1순위였던 흐루쇼프가 서방 이웃 국가 정상들과 만나며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던 시기여서 국내 문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시기라면 출판이 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바실리는 편집장에게 시간을 질질 끌며 지체하지 말고 출판 할 것을 종용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검토 하고 검열 하는데 거의 1년이 지나도록 바실리는 어떤 소식조차 못 듣는다. 정확히 1년 반이 지나서 당국으로 부터 짧막한 메시지를 받는다.

그 메시지에는 '반 체제적인 성격의 이 작품 출간을 불허 한다. '라는 딱 한줄 짜리 문장이 적혀 있었다. 1961년 2월 두 명의 KGB비밀 경찰이 바실리 집에 들이 닥친다.

바실리와 가족들을 현관문에 결박 시켜두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타이핑이 쳐진 모든 종이를 압수 해버린다. 심지어 찢어버린 종이 조각은 물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까지 가져가 버렸다. 타이핑 기기에 넣는 카본 페이퍼와 타이핑 먹지까지 압수해갔다.

바실리는 당국으로 부터 당신의 작품은 이 백년후에나 출간 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후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의 원고 어디서 누구 손에 있는지 조차 모른 채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19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 박람회에 원고의 판본이 공개 된다.

누군가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의 원고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어 서방 세계로 몰래 유출 시켰다는 사실을 당시 소련 연방 문화국 담당자 였던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가 공식적으로 인정 했다.

1989년 동독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바실리 그로스만의 지인들은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은 원고를 조금씩 서방으로 유출했다고 고백하면서 마침내 진실이 알려진다.

암 투병 중이였던 바실리는 설사 자신의 원고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더라도 명작으로 인정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글을 썼다. 1955년에 완성한 '모든 것은 흘러 간다' 라는 작품은 러시아 혁명의 시대 부터 레닌 혁명의 시대에 희생자 였던 러시아 농노들의 고단하면서도 서글픈 삶을 유려한 문체에 담았다. 소비에트 작가들이 스탈린의 폭압 정치를 맹 비난 했던 것 과 달리 바실리는 작가 중에 최초로 소련 사회를 악마의 소굴로 만든 설계자로 레닌을 지목했다.

말년에 바실리는 병든 몸을 이끌고 취재한 아르메니아 지역에 관한 르포타쥬' 무사하길 바라며'(peace be with you)와 단편들을 완성하고 소련 당국은 바실리 그로스만의 에세이들은 철저한 검열을 거쳐 부분 부분 발행을 하며 서방 세계에 숙청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 시켜 주었다.

폭압적인 소비에트 정권에서 용케도 살아 남았던 바실리 그로스만은 누군가 자신의 원고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서방 국가에 안전하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온몸에 암이 퍼져서 자신의 책이 공식적으로 출간 되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1964년 9월14일 눈을 감는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한 1942년 9월 하순경 부터 43년 3월 부터 4월까지 불과 육개월 남짓한 시간을 담은 대작 <삶과 운명> 속에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와 유대인 절멸을 위한 가스실 운용, 스탈린 시대의 가혹한 숙청과 노동교화수용소의 참상,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적 국가권력에 굴종 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내면, 히틀러와 스탈린의 심리 상태까지 2차대전의 다양한 측면들을 생생한 필체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순히 전쟁 이야기를 넘어 전체주의 시대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운명을 담은 대 서사다.

이 백년 후에나 당신의 작품은 빛을 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던 소련 공산당들에 대항해 피로 물든 펜 촉으로 폭력의 시대를 기록한 바실리 그로스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잊혀 지면 안되는 불멸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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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8-13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너무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더라구요.
스콧님 글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 읽고 리뷰를 읽어서 그런지 이해가 너무 잘돼요~~^^

2024-08-13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4-08-13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작품 하나하나에 어울어져 있는 폭 넓고 깊은 배경지식에 매번 읽을 때마다 경탄을 합니다. 이번엔 바실리 그로스만 이란 작가에 대해 잘 배우고 갑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 합니다. _()_

2024-08-13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8-14 0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삶과 운명》 보시는 분이 조금 보이던데, scott 님도 보셨군요 이런 소설 쓰기 쉽지 않았겠습니다 이게 다른 나라에 전해져서 다행이네요


희선

2024-08-21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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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F장르물의 거의 모든 상을 휩쓸고 있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1986년생으로 도쿄 대학에서 이과로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교양 학부로 옮기고 대학원에서 문화 연구를 전공했다.

박사과정 시절에 쓴 작품 <유트로니카의 이면>이 일본 장르 문학 출판사 하야카와가 주최 하는 SF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계로 뛰어들었다.

오가와 사토시는 약 2년에 한 번 주기로 장편과 단편을 발표하는 동안 요시카와 에이지상과 일본 SF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고 야마다후타로상을 받고 나서 마침내 <지도와 주먹>으로 나오키상까지 거머쥐었다.

2015년 부터 2022년까지 약 6년에 걸쳐 이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는 일본 내에서도 오가와 사토시가 유일무일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그의 작품 팬층은 굉장히 탄탄해서 출판 즉시 주요 문학상과 서점대상 후보로 줄줄이 올라간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너의 퀴즈>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까지 수상해서 SF물과 미스테리, 역사물까지 거의 모든 장르 분야의 상을 휩쓸었다.


2022년 나오키 상과 야마다 후타로 상까지 2관왕 수상작인 <지도와 주먹> 만주 땅으로 건너간 일본인 통역사와 만주 철도망을 러시아까지 확대 하려는 차르 정부에게 고급 정보를 넘겨 주기 위해서 파견된 러시아 국교회 소속 신부 그리고 삼촌에게 속아서 만주로 오게 된 손오공과 중국 동쪽 지방의 봉촌이라는 곳에서 온 <이가진>까지 지도에도 없는 어느 섬을 무대로 러일 전쟁 전야 부터 시작에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50년의 세월 동안 흔적 없이 사라져서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지략과 살육의 전쟁을 다룬 SF 공상 역사 소설이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특정 사건과 몇몇 인물들이 이런 선택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역사는 이런 식으로 흘러 가서 현 시대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 SF 공상 역사물인 <지도와 주먹> 작품에 앞서 출간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2022년 대망의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의 시놉시스 같은 작품이 있다.


[1844년 1월 9일 오전 10시 30분. 지금부터 워딩턴 공장 습격에 관련한 맨체스터 특별 순회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단편 <거짓과 정전>의 첫 장면은 사회주의 혁명과 마르크스 주의 핵심 사상을 응집 시켜서 공산주의 시대를 낳게 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 맨체스터 순회 법원 재판석 피고인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재판에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선 인물은 쿡 앤드 휘트스톤식 전신 기사인 새뮤얼 스톡스로 정전의 수호자인 앵커로서 법정 증인석에 앉아 있다.

독일 에르멘 앤드 엥겔스 방적공장의 경영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시니어의 아들이자 방직공장의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재판석에서 이런 변호를 시작한다.


[저는 이 법정에서 유럽에 존재하는 흉악한 인간이 아일랜드인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이미 아일랜드인 수십 명이 순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지만 독일인인 치고가 저지른 죄는 그저 날뛴 것 뿐인 아일랜드인들보다 더 악질적입니다. 피고인은 폭동을 빌미로 사업 경쟁 상대의 공장을 파괴함으로써 엥겔스 공장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올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공방이 오고 가고 나서 마지막 증인 발언 시간에 정전에서 기사 스톡스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는 지금 증인석 자리에 서있는 스톡스는 정전의 수호자의 중계자에게 메시지를 받고 나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 년 전 부터 기다리고 준비 해 왔다.

이 정전기사는 지난 육백 년에 세월에 걸쳐 활동하면서 1884년 1월 마침내 영국 맨체스터 법원 재판석에서 '역사 전쟁'을 종결 시키는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반 세기의 시간이 흘러 미국과 소련 스파이들이 모스크바 한 가운데서 주요 연락책과 긴밀하게 연결해서 서로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고 있던 중 한 소련인 과학자 안톤 페트로프가 미국 CIA에게 포섭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최신 기술을 넘기려고 하던 중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다.


'우르마노프형 정전 가속기로 전자를 고압 방출하면 특정 조건 아래 전자가 사차원 공간을 통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원리는 전자를 임의의 과거 일시, 장소로 방출할 수 있고 기술을 활용하면 초광속으로 과거와 통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온다.

안톤 페트로프는 직접 시현을 해보는데 전자를 이용해서 지난 시절에 살아있던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하던 중 미래에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되자 그는 마침내 자신과 비밀리에 접촉 중인 CIA요원 화이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기기 작동을 두루 살피며 시험 해 보는 동안 소련 과학자 페트로프의 주변 인물들이 KGB비밀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어 소식조차 알지 못한 상태가 되고 서서히 포위망이 페트로프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백년의 세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영국 맨체스터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선고형을 확 뒤집어 버릴 수 있다면 현 세상에 공산주의라는 사상도 국가도 전멸하게 될까?


[역사는 때로 중대한 양자 택일을 강요 당한다. 전쟁인가, 비전쟁인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정직인가, 거짓인가, 대통령이 아니어도 황제가 아니어도 판단을 그르칠 때가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엥겔스가 실제로 유배형에 상당 하는 행동을 했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는 유배형을 받았어야 했다. 그는 마르크스를 수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가와 사토시의 가상의 SF역사물의 시작은 만약에 이 인물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만약에 이 장소에 이런 사람이 살게 되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오키 수상작 <지도와 주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君は満洲という白紙の地図に、夢を書きこむ

너는 만주라는 백지 지도에 꿈을 써넣는다.

단편 <거짓과 정전> 역시 작가가 백지의 종이 위에 공산주의는 만유인력처럼 특정 인물(뉴턴)이 없었어도 존재했을까? 아니면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특정 인물(찰스 디킨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일 뉴턴이 없었더라도 만유인력은 발견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유인력은 이미 케플러 같은 앞선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찰스 디킨스가 없었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불후한 성장 서사가 없었기에 당대 영국 땅에서 어떤 작가도 어린 고아 어린이가 어른들의 불법적인 행위와 노동에 착취 당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다.

따라서 찰스 디킨스의 존재 자체가 <올리버 트위스트> 작품과 같은 의미이기에 ‘역사적 필연성’은 존재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헤겔의 사상을 계승한 무신론 철학자 마르크스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에 정통했던 엥겔스 이 두 인물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주의는 탄생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공장에서 일어난 폭동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엥겔스의 모습에서 시작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했던 냉전시대까지 조망한 <거짓과 정전>에는 역사에서 공산주의를 없애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그리고 현대 역사를 변형 시키려는 사람과 전송 수단 통신 기기인 ‘정전’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서로 대립하며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발상으로 마지막 장까지 긴박감을 향해 종횡무진 질주하는 SF 역사 스파이 스릴러 물이다.

장편으로 늘려 써도 좋을 만큼 재치 넘치는 설정과 기발한 전개, 여러 상황들이 역사적 시간대별로 절묘하게 들어 맞아 움직인다.

능숙한 조련사처럼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인물들끼리 주고 받는 대사 그리고 복잡한 과학 구조 원리와 기술적인 관계를 특정 상황에 대비 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상황이 발생 할 수도 있구나 라고 수긍 시킬 정도로 치밀할 정도로 논리적이다.

2019년에 발표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출간 즉시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뽑혔고 수록된 단편 <마술사>는 중국 최대 SF어워드인 은하상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한 줄기 빛

-시간의 문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마술사>와 <거짓과 정전> 두 단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들은 기발한 설정이나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 작품들은 아닌 그저 작가가 여분의 시간에 아이디어 구상처럼 쓴 것 처럼 밋밋한 맛이 느껴지지만 문장과 전개 방식은 뛰어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되고 뒷맛도 개운하다.

나는 매해 미국에서 출간 되는 《Asimov’s》나 《FSF(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같은 기나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고 있고 로커스상,필립 케이 딕 상,네뷸러와 휴고상 수상작들은 최신작품 부터 지난 시절 수상 작품들까지 전부 섭렵해서 읽었다.

특히 전 세계 SF작가들이 출간하는 단편들 중 한 해동안 출판된 SF 단편 작품들 가운데 수작들만 모은 SFnal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편집자 조너선 스트라한이 발행하는 잡지)의 최근 출판된 것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일본 문학상 작품 중에 꾸준히 읽는 수상작들은 아쿠타가와와 나오키,일본 추리협회 대상 그리고 가끔씩 요시카와 에이지와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문고본으로 출간 되기 전 단행본부터 구입해서 읽고 있다.

일본은 최근 십 여년 동안 주요 문학상 작품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수상작들 대부분이 역사물이 대세로 메이지 시대 말기의 청춘 미스터리, 신기술을 차용한 미래 사회를 펼쳐 보이는 본격 미스터리,러 일 전쟁, 2차 세계 대전의 어느 유럽 도시,환상과 괴물이 날 뛰어다니는 미래의 가상 도시, 인구 소멸로 인간이 사라진 도시,이상 기후 변화로 강과 바다가 범람해서 지하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 1945년 종전 직전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오사카 어느 마을,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 소 전쟁터에 나서 소련 여성 스나이퍼 부대까지 현 시대가 아닌 지난 세기와 미래 시대를 넘나드는 대 서사 SF역사 공상 소설물들이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베스트 순위에 올라와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자신의 소설 원칙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SF의 재미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가치관이 붕괴되는 듯한 감각을 맛보는 데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마술을 선보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마술사 >단편에서 아버지에게 마법을 가르친 스승 맥스 월턴은 '마술사가 해선 안 되는 일 세 가지'를 반드시 잊지 말라고 당부 했다.


-마술을 선보이기 전에 설명해선 안된다.

-같은 마술을 반복해선 안된다.

-트릭을 밝혀선 안된다.


나 역시 단편 <마술사>의 마술 스승 맥스 월턴 처럼 오가와 사토시의 <거짓과 정전>에 담겨진 모든 단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2015년 이후 부터 활동한 오가와 사토시에게 일본의 메이저급 작가들은 입을 모아 '천재'라며 매번 발표하는 작품마다 달려들어 가장 먼저 읽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열렬한 책벌레로 주변 사람들 중에 자신만큼 책을 읽은 사람이 없다고 자부 할 정도로 독서광 중에 광인이였다.

그는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여분에 남은 시간 동안 소설을 끄적이다가 일단 시작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를 짖자 라고 결심하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그는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 하겠구나, 지금 시대에 이런 작품이 잘 팔리고 읽혀 지는 구나를 전혀 염두 해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파고 들어 쓰고 고치는 동안 스스로 재미가 붙어야 작품을 완성하는 성향으로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손바닥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집요하게 달려들어 시대 상황과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한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지도와 주먹>을 읽은 심사 위원들이 모두 제자리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칠 때 그는 이 정도 열심히 썼는데 라는 자신감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스스로 다져나간 창작 주먹이 단단하다.

그럼에도 매번 한 작품을 탈고 할 때마다 영혼의 밑바닥부터 창작의 샘까지 바싹 말라버려서 다음 작품을 집필할 때면 맨 땅에서 헤딩 하듯 맨 주먹으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정신 상태로 회귀하는 작가다.


[모모야마는 문화를 사랑했다. 영화도, 소설도, 음악도, 패션도, 미술도 모두 좋았다. 자신은 어째서 문화를 사랑하나. 모모야마는 ‘불필요해서’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없다고 굶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것’이 자신들의 생활에 색채를 부여하고 있었다.]

-오가와 사토시의 '무지카 문다나' 중에서


오가와 사토시의 <기억과 정전>은 2024년 상반기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지나온 시간의 흐름과 앞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우리 모두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고의 발상과 시간 여행이 주는 즐거운 감각을 일깨워 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 <거짓과 정전> 2014년 한계도 경계도 없이 폭발하는 상상력을 꼭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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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4-22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작가로군요 젊기도 하고 @_@;;; 작가도 작가지만 scott님 존경합니다. 뱅글뱅글 @_@;;;;

scott 2024-04-22 17: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문나잇님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뱅글뱅글 @_@

희선 2024-04-23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설이라는 것도 없어도 되는 거군요 그래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그저 살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이건 언제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음악 미술 여러 가지가 나타났겠지요


희선
 
풀코스 창작론
미우라 시온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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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연극을 전공한 작가 미우라 시온은 졸업을 앞두고 출판사에서 편집 보조일을 하던 중 그녀의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편집자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2000년에 발표한 첫 장편<격투 하는 사람에게 동그라미>는 원고를 들고 가자마자 편집자가 그 자리에서 단행본 출간을 결정 했을 정도로 신인의 미흡함이 거의 없는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으로 출간 즉시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아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미우라 시온은 습작 시절이나 출간 거절의 경험 없이 곧장 베스트 작가 대열에 들어가서 2006년에 발표한 장편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 했고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인들이 주는 대상을 차지 하며 문학성과 대중적 인기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후 발표하는 장, 단편 작품들 모두 여러 문학상을 휩쓸며 데뷔 5년 차 부터 단편 소설 부분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굵직한 문학상을 두루 심사하며 데뷔 20년 만에 2020년 나오키 상 심사위원으로 위촉 되었다.

미우라 시온은 20년이 넘는 창작 기간 동안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소설 뿐만 아니라 일상에 대한 에세이, 여행기, 서평집을 출간하며 데뷔 이후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글을 출간하고 있다.

이 정도의 글쓰기 살력이라면 당연히 창작론, 작법서를 출간해도 될 정도이고 주변의 강력한 바램으로 드디어 전방위적인 글쓰기 실력으로 무장한 미우라 시온의 <풀코스 창작론>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창작의 비결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 했다.

미우라 시온은 가장 먼저 창작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우선 순위에 '퇴고'를 '풀코스 창작론'의 첫 번째 접시에 담았다.

창작물을 완성본으로 세상 밖으로 내놓기 전에 반드시 여러 번 해야 하는 건 '오탈자' 수정으로 작가들 대부분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야가 좁기 때문에 원고를 여러 번 수정하고 퇴고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코스 접시에 담기는 건 '매수 감각'으로 그녀가 제시하는 단편의 기준은 원고지 60매다.

이 분량을 단숨에 쓸 수 있는 창작자들이 있을 테지만 쓰지 못하는 이들은 매일 원고지 10매를 채울 정도의 끈기와 성실함,포기 하지 않는 근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원고지 10매는 A4 용지 10장 분량으로 보통 출판사에서 소설이나 에세이를 의뢰하는 기준이 150매(소설), 20매(에세이)다.

단편 소설 신인 응모작의 기준이 50-60매이니 창작자는 원고지 1매에 어느 정도의 스토리 분량을 담을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연습, 쓰고 또 써야 한다.

작가가 강조하는 매수 분량 감각을 키우는 연습이 왜 중요하냐면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한 스토리도 매수에 차지 않으면 스토리의 전체적인 서사와 균형이 맞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도중에 툭 끝이 나기 때문이다.


창작 코스 세 번째 접시에 담기는 건 '단편 소설'의 상황과 감정을 문장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영감이 떠오르는 방식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

  1. 등장 인물 간의 대화, 처한 상황등이 떠오른다.

  2. 등장인물에 관한 정보나 내용이 아닌 어떤 감정이나 작품의 분위기, 주제 같은 것이 떠오른다.

미우라 시온은 글을 쓸 때 2번에 해당되는데 단편의 경우 도입부의 시작이 결말까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결말을 구상했다면  구성 단계부터 지나치게 세세하게 묘사하지 말아야 한다.

허구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현실감을 불러 일으키려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문자화 시키지 말고 그려내고 싶은 감정이나 주제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장면을 구성해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유려하게 이끌고 가야한다.

60매 기준의 단편은 도입부(독자들을 단숨에 작품 세계로 끌어당기는 부분)-심장(이야기 전개가 물살을 타는 부분)-결말(여운을 자아내거나 웃음, 슬픔, 연민의 감정으로 마무리)인 3단 구성으로 진행 마무리 해야 한다.

그럼 네 번째 창작 코스 접시에 담겨진 미우라 시온의 단편 <작은 별 드라이브>의 첫 도입부를 읽어보자.


[정말로 물정 어둡게도, 나는 가나의 죽음을 한동안 알아채지 못했다.]


첫 문장을 읽은 독자들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1인칭 시점, 화자의 감정을 어렴풋이 알아채고 <가나>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다음 이야기의 중심부를 읽어 보자.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길 가다 만나도 유령처럼 서로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들에게 나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고 내게 있어 그들도 마찬가지다. 밤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저승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령-죽은 사람-밤의 거리-저승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첫 도입부에 등장한 화자인 '나'와 '가나'라는 두 인물 중에서 누군가는 유령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가나에게 남은 '좋아한다'는 감정은 언젠가 옅어질까? 감정이 사라지면 가나도 완전히 사라질까?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라는 것 같기도, 내 심장 박동이 멈출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고 있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두 가지 마음을 품은 채 별 하늘 아래서 차를 몰았다.]


읽혀지는 이야기마다 각기 다른 리듬이 있는데 첫 문장에서 시작된 리듬이 이야기의 실타래를 따라 마지막 결말에 다다랐을 때 여운이 느껴지게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면 독자들은 다시 맨 첫 페이지로 돌아가 책장을 넘기게 된다.

미우라 시온의 창작 풀코스는 퇴고 부터 시작해서 매수 감각 능력을 키우는 것, 단편의 완성도를 높이는 법으로 진행되어 시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창작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매몰 되어 시야가 좁아져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일탈 하지 말아야 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장편의 매수는 1000매가 기준으로 이 정도 분량에서 시점을 정확하게 선택하지 않으면 전체 이야기가 무너져 버린다.

따라서 미우라 시온은 일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 할 때 상황 별, 장소별, 인물 별 묘사를 뒷받침해 줄 양념 같은 요소를 알려준다.

소설을 쓰는 방법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형식이 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요령이 있어야 하고 말과 글에는 논리가 정연 해야 읽혀지기에 그저 어떤 규칙이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두루뭉술하게 써나간다면 그 글은 한 편의 읽혀지는 이야기가 되지 못한다.

미우라 시온은 일본에서 작가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와세다 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학부에서 영화(시나리오)를 전공했고 오가와 요코도 같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

타 대학에 비해 와세다 대학 출신 문인들이 많은 이유는 이 대학에 특별 영상관이 있는데 이곳은 유명 고전 명화부터 영화사에 기록되는 훌륭한 영화나 영상 자료를 전부 볼 수 있고 아카이브 도서관까지 있어서 미우라 시온도 오가와 요코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대학 시절에 엄청난 양의 영화와 영상물을 보았고 이는 후에 글을 쓰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미우라 시온은 영화를 통해서 장면 전환과 사건의 실마리를 부각 시키는 법과  대사 처리하는 법을  배웠고 거리나 실내를 묘사 할 때는 도로의 상태와 가구의 배치 위치등을 종이에 그린 후에 그 그림을 보며 글로 스케치하는 연습을 하며 터득해 나갔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단 한 번에 시작 한다 해도 원고지 20매를 채우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다양한 작품을 읽고 거리나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하고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분석하라는 조언을 한다.

이런 습득 과정이나 연습 없이 곧바로 휘리릭 써내는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읽어서 재밌는 글이 다른 이들이 읽어서 재밌어 한다는 보장이 없다.

소설가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주제와 인물의 형태가 잡히면 그 안의 세상을 창조 해나가야 하고 그렇게 완성된 글에 전체 스토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제목을 제대로 붙여야 이야기의 생명력에 색깔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 미우라 시온은 연재 작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는 즉시 검토와 수정 편집이 완성되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작가로 출판계에서 흥행 보증 탑에 들어가는 몇 안되는 스타 작가다.

일본의 문학 시장은 연재의 시험대에 여러 명의 작가들 작품을 올려 놓고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 보고 나서 정식으로 종이책으로 출간이 확정하는 시스템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도 연재 제의를 주저 하지 않는 이유는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 확인하며 작가의 좁은 시야가 아닌 읽혀지고 팔리는 이야기를 완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 시온이 대학 졸업 전에 완성한 첫 장편 <격투 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는 그녀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서점 주인이 어느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마라톤이 열리는 곳으로 달려가 눈과 귀로 경기 상황을 스케치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원고를 처음 읽은 출판사 편집부는 출간을 결정하고 나서 여러 부분을 지적을 했다.

처음으로 글을 썼던 미우라 시온은 모든 걸 묘사해서 늘어지는 문장, 모든 걸 설명해서 지루해지는 문장,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문장을 쳐내고 잘라내고 수정하면서 문장을 지속적으로 다시 쓰고 또 쓰는 동안 불필요하게 이어진 여러 문단을 간결하게 줄여서 그 안에 상황과 인물의 심리,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한 번에 쓰는 법을 배워 나갔다.

작가는 그렇게 고쳐 쓰는 동안 등장 인물의 생각과 감정 , 행동을 떠올리며 독자는 이 문장을 어떻게 읽을지 상상하면서 쓰기 시작하자 묘사의 정도나 분량, 빈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데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과 마음 자세로 글을 쓰는지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헤아리고 이를 글로 표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끈기가 창작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 생각한다.

한 인간이 실제로 경험 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고 자료 조사 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글 쓰는 이들은 무한의 상상력을 펼쳐서 자신이 있는 장소를 너머 시 공간을 넘나들며 타인의 인생을 제 2의 창작의 시선으로 보며 쓸 수 있어야 한다.

스포츠, 음악, 수학 같은 경우 어린 시절 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십 대 나이에 영원불멸한 작품을 써내는 이들은 극 소수 이고 십 대 초반부터 출판 시장을 장악하는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들 역시 드물다.

글을 쓰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언어 능력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습득해서 글 쓰는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만일 톨스토이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지 않고 전쟁터를 나가지 않았다면 불멸의 작품을 써내지 못했을 것이고 창창한 미래를 앞두었던 도스토옙프스키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시베리아 유형지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그는 작가의 길이 아닌 군인의 길로 갔을 것이다.

보이는 풍경, 경험한 일들에서 일어난 다양한 감정들 모두 언어화 되어 문장으로 빚어 져서 깊이 있는 사고와 감정을 성숙 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고 상상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과 폭넓은 독서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글쓰기는 어떤 분야보다 더 많은 시간과 다양한 경험의 축적 되어야 가능한 분야로 수학의 공식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법칙도 규율도 형식도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쓴다고 해서 읽혀지는 글로 완성되지 않는다.

목표가 없으면 달리기에 기록을 낼 수 없고 목적이 없으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나는 2024년 2월 1일 부터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 <굿바이, 부다페스트>을 쓰기 시작했다.

https://tobe.aladin.co.kr/s/9373


두 번째 창작 소설을 써 나가면서 미우라 시온이 차려 놓은 글쓰기 코스 요리를 하나 씩 맛보고 나만의 창작 접시에 담아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창작의 완주를 마치기로 결심했다.

창작론에 관한 비법을 알려주는 책과 영상물, 글쓰기 훈련 클래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넘치지만 직접 써보지 않고는 창작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쓴다고 해서 창작이 완성 되지 않는다.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은 항상 열려 있고 누구든지 쓸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자신만의 이야기의 우물이 차 올랐다면 프로 작가의 글쓰기 비법도 참고 하면서 창작의 우물을 퍼 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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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0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이 책 나온 거 봤는데, scott 님은 벌써 보셨군요 이 책이 scott 님이 글 쓰기에 도움을 주겠습니다 한국은 이백자 원고지지만 일본은 기본이 사백자 원고지였던 것 같은데... 그런 거 생각해야 할 듯합니다 지금은 원고지는 별로 말 안 하는 듯하지만... 지금은 거의 A4로 말하거나 몇 자라고 하는군요 영어는 글자수(낱말수)로 말하는군요 이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거네요 쓰는 게 중요하지...

새로 쓰시는 소설 끝까지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2-24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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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2월 크리스마스 날을 앞둔 시기에 독일의 파울루스 장군의 제 6군이 볼가강에서 소련의 붉은 군대에 포위 되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독일 나치 정권은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큰 부대가 자신들이 파괴해 버리고 짓밟아 버린 스탈린그라드의 스텝 지대에서 전멸 당할 운명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사실이 독일 전 국민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독일 국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크리스마스는 금욕과 이념적 결의를 다지는 날로 바뀌어야 한다며 '독일 크리스마스(German Chrismas)'를 선포한다.

2년의 시간이 흘러 1944년 12월 16일에 개시 된 서부 전선, 아르덴 대공세로 나치 수뇌부는 마침내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믿었다.

나치 군부대의 자체 기술로 개발한 경이로운 신 무기와 마취 가스가 전선의 승기를 잡았다는 들뜬 소문까지 퍼지면서 그동안 독일이 당했던 모든 설욕을 만회 하고 적을 섬멸 시킬 보복 태세를 갖췄다고 생각했다.

독일군이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처칠과 루스벨트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평화협정으로 타협을 보겠다는 헛된 꿈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히틀러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서부 전선 아르덴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날씨는 연합군의 편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진군을 수월하게 한 연합군은 육로 이동의 공간을 확보하며 대규모 공군력 배치를 순조롭게 마친 후 단 일주일 만에 독일군의 공격의 기세를 확 꺽어 버렸다.

1945년 1월 1일, 전선이 붕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베를린 시 전체에 돌자 베를린 시민들은 감히 '새해' 축하 인사를 입 밖으로 내뱉거나 '기쁨을 위하여' 라고 외치며 건배의 잔을 부딪치지도 못했다.

1945년 1월, 마침내 독일 부사관은 '우리가 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항전을 다짐했다.

동부 전선에 배치된 전투원들은 소련의 붉은 군대가 점령지에 도착 하는 순간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파괴 되어버리는지 이들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할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히틀러나 국가사회주의, 제3제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폭탄으로 파괴된 도시에 갇힌 약혼자나 어머니, 가족을 위해 싸우지도 않았다. 우리는 단지 두려움 때문에 싸웠다. 우리 자신을 위해 싸웠다. 진흙과 눈이 가득 찬 구덩이 속에서 죽지 않으려고 우리를 위해 싸웠다. 우리는 쥐처럼 싸웠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소속 알자스 출신 고참병의 증언 중에서

1944년 여름, 동부 전선 승리로 독소 전쟁의 승기를 잡은 스탈린의 남은 목표는 오로지 베를린 점령이였다.

파시스트 격퇴를 위해 연합군과 손을 잡은 스탈린은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팀에 스파이를 침투 시켜 베를린 외곽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에서 실험 개발 중인 독일 원자력 기술을 빼앗는 것이 이 전쟁의 최고의 목적이자 목표였다.

스탈린은 만약에 이 연구소에 미군이 먼저 도착해서 붉은 군대의 ‘전리품’을 가로채려 한다면 연합국의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베를린 진격을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스탈린의 집착은 가히 편집광적이었다.

그는 베를린 선점을 위해 4월 초까지도 연합국 사령관들에게 소련군의 주 공세가 남부전선에 집중될 것이니 베를린에는 2급 부대만 보낼 것이라는 거짓말과 기만 전술, 심리전으로 안심 시킨다.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우라늄이 부족했던 소련은 잔혹하게 짓밟은 우크라이나 땅에 자원이 얼마만큼 매장되었는지 조차 확인할 시간이 없었을 정도로 하루라도 빨리 폭탄을 제조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1월 24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시가 전에서 독일 나치부대와 붙어 도시를 지켜낸 추이코프 장군은 포즈난 점령을 명령 받았다.

1월 27일, 추이코프 장군이 이끄는 부대가 오데르강을 건넜다.

2틀 후 1월 29일, 기차를 타고 동프로이센으로 피난을 떠나는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란민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1월 31일 영하 30도까지 떨어지자 전차 바퀴가 굴러 가지 못할 정도로 눈더미가 산처럼 쌓여갔다.

확성기를 크게 틀은 선전차가 시민들에게 가능한 빨리 도시를 떠나려고 경고 하자마자 기차에 서로 올라 타려는 피란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 당해 서로의 발에 밟혀 죽은 시신으로 넘쳐 났다.

1월 29일 부터 2월 19일까지 베를린 시민들의 도시 탈출은 하루 4만 명에서 5만 명으로 대략 80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살던 곳을 버리고 운명의 탑승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들 피란민들 중 3분의 2는 굶어 죽었거나 압사 당해 죽었고 일부는 동사 상태가 되어서 기차 역마다 눈처럼 시신이 쌓여졌다.

단치히로 몰린 피란민 역시 수만 명은 살아 남지 못한 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항구 속에 완전히 단절 되어 굶어 죽거나 간신히 눈밭을 걸어 목숨을 걸고 다른 도시로 탈출해서 겨우 살아 남았다.

동부 전선이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무너졌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철도 노동자들과 동부에서 온 피란민들에게 끔찍한 참상의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차츰 괴벨스의 선전방송을 믿지 않고 영국 BBC에서 송출 하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기 시작한다.

거짓 선전의 최전선에 서있던 괴벨스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장황한 연설을 늘어 놓으면서도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베를린을 떠나고 싶어 했다.

1월 29일 부터 힘러의 지시를 받은 나치 친위대는 수상한 행동을 하거나 저항 운동을 벌이는 세력을 잡아 공개 처형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베를린에는 나치를 추종하는 광신자들과 소련 붉은 군대의 신념을 믿는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어디로도 피란을 떠나지 못한 채 도시 방공호와 숲 속 그리고 거주 지역에 파 놓은 흙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긴 시민들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새로운 선전 구호를 외치는 순간 독일 제 17군의 사단이 붉은 군대 공격에 겁을 먹은 포병들부터 달아 났다.

가까스로 철군한 제 17군의 뒤를 바짝 뒤쫓아 온 주코프 부대는 독일군이 버리고 간 각종 무기들과 전리품을 챙겨 포즈난을 철저하게 짓밟고 약탈하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손쉽게 점령한 포즈난에서 붉은 군대 소속 소련병들은 약탈, 방화 그리고 여성과 아이, 노약자들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집단으로 강간범죄를 저지른다.


[모든 것이 불탄다. 불타는 건물에서 한 노파가 창문에서 뛰어내린다. 약탈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여 있어서 밤에도 환하다.

사령관의 사무실에서 검은 옷을 입고 입술이 거무죽죽한 독일인 여성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목과 얼굴에 시커먼 멍이 든 한 소녀가 그녀와 함께 있다. 소녀의 눈은 퉁퉁 붓고 손에도 끔찍한 멍이 있다. 소녀는 본부 통신 중대의 병사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 병사도 그 자리에 있다. 둥글고 붉은 얼굴의 그는 졸려 보인다. 사령관이 그들 모두를 함께 심문하고 있다.]

-바실리 그로스만(Vasily Semyonovich Grossman 1905-1964)


바실리 그로스만은 우크라이나 소도시 베르디치프(Berdychiv/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 출신으로 2차 대전 당시 소비에트 연방군이 발행하는 '레드 스타'지에 소속된 기자로 활동하던 첫해부터 붉은 군대에 짓밟혀서 지옥과 아비규환으로 변한 베를린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죽음의 목격자였다.

그는 1945년 1월 29일 부터 시작된 포즈난 대 공세에 참여한 제8근위군에 동행 취재하면서 소련군들이 포즈난의 시민들에게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최전선에서 전투 중이였던 소련병들은 밤 낮으로 진군 해서 도착한 시가 전에서 눈에 보이는 데로 약탈과 강간, 음주를 즐겼다.

이런 광란의 피바다는 앞으로 펼쳐지게 될 끔찍한 베를린 점령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1월 30일, 히틀러는 마지막으로 독일 국민에게 연설을 마치고 난 후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소련의 주코프 선두 부대가 너무나도 쉽게 메제리츠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오데르 강만 건너면 수도 베를린 함락은 시간 문제였다.

1월 31일 오전 7시 30분, 비스와집단군 사령부에 '적의 전차로 가득 찼다'는 소식을 받고 긴급히 정찰기를 출동 시키지만 이미 소련군 전차 한 대가 베를린 시내 중심을 맹렬한 속도로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고위 간부들과 장교들의 도주와 도피를 잠재우기 위해 힘러가 시장부터 처형을 집행하는 동안 나치군 장군들은 붉은 군대에 포로가 되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버렸다.

2월 1일 드디어 '스탈린이 나타났다.'라는 소문이 베를린 시 전체로 퍼지자 친위대 핵심 고참병들이 수도를 사수 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나선다.


'우리는 세상 끝에 와있다.'


저항할 무기는 커녕 어디로도 피란을 떠나지 못한 베를린 시민들은 전쟁의 피로가 가득 쌓인 채 굶주리고 헐벗은 붉은 부대원들에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소련은 승리 했지만 도시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누구든 눈에 띄는 데로 체포해서 고문했고 집단 강간하고 생매장 시켜 버리며 무엇이든 닥치는 데로 불태우고 부수고 짓밟았다.

이 소식을 들은 괴벨스는 분노에 떨며 죽은 베를린 시민 숫자 만큼 수용소에 갇혀 있는 소련군 포로들을 전부 처형하고 싶어 했다.

히틀러는 이를 승인 했지만 그의 참모들은 이런 극단적 조치는 후에 서방국에 원조나 협조를 받는데 불리하게 된다며 극구 말린다.

괴벨스는 처형을 하지 못하게 되자 소련군을 상대로 화생방전 테러를 준비하며 드레스덴에 주둔 중이 특수 부대원들을 소집한다.

이 시기에 서부 전선에 주둔 중인 영국과 미국 소속 부대원들은 최대한 느리고 신중하게 전진하며 붉은 군대 보다 속도를 늦췄다.

아이젠하워는 5월 초까지 해빙 기간이기 때문에 라인강을 쉽게 건너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라인강 서쪽에 둑을 쌓는데 꼬박 6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군이 라인강 철교를 손상 없이 점령하는 동안 교활한 스탈린은 얄타 회담 자리에서 미국과 영국 지도자들 앞에서 온갖 연기와 술수를 부리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 지도자들은 스탈린 부대가 독일 수도를 먼저 점령하게 된다면 독일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게 되어 미국과 영국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쉽게 진군 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내가 스탈린을 다룰 수 있다.'라고 장담했던 루스벨트의 판단은 오판이였다.

복수의 칼을 갈았던 붉은 군대는 분노와 환희를 내지르며 베를린을 가로질러서 동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을 무찌르고 쳐부수고 있어요. 적들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은신처로 달아나고요. 난 삶을 너무나 사랑해. 나는 아직 오래 살지 않았어. 겨우 열 아홉 살이야. 나는 종종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과 싸워. 나는 싸웠고 지금까지는 승리를 거두고 있어. 난 포병 경찰병이고 넌 그게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거야. 간단히 말하면 나는 수시로 내 포대의 포격을 조정하고 그 포탄이 표적에 명중할 때에만 희열을 느껴.'


2월6일, 스탈린은 얄타에서 주코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오데르 교두보에서 베를린을 지나 동부로 진군 중이였던 주코프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라는 스탈린의 명을 받아들인다.

붉은 군대에게 동프로이센을 포위 당한 독일군은 아직 완전하게 패배 하지 않았다.

하지만 2월의 첫 주가 지나자 히틀러가 느닷없이 주요 요새 도시들을 지정하더니 포위된 병력이 도시에서 철수 하는 걸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자 물자 보급로가 막히면서 비행기 연료가 부족해서 모두들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소련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2월 18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전에서도 살아 남았던 독일 병사들은 200킬로 밖에 있는 소련군이 진군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더는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목표물을 바로 코 앞에 둔 스탈린은 '17세 부터 50세까지 일 할 수 있는 모든 독일인들을 납치 해서 노동현장터'로 보내는 계획을 실행 한다.

붉은 부대는 자신들 땅에 파괴된 전선을 복구하고 밭을 갈고 집을 세우기 위해 진군 하는 지역 마다 독일 남자들은 모조리 납치하고 강제로 끌고 가버렸다.

5만9536명의 독일인들이 소련 점령지인 서부지역인 우크라이나 땅으로 끌려 가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강제노역으로 끌려간 여성과 아이들은 수용소 감시병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고 성병을 앓고 불구가 되었다.

이들 중에 2만 명은 독일 동부 지역의 주요 공장의 기계들을 뜯어서 소련으로 향하는 기차에 싣는 노동에 투입되었다.

소련의 광폭의 살인과 강간을 두 눈으로 목격한 독일 국민들은 목을 매 자살을 하거나 손목을 그어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렸다.

베를린에서만 9만 5000명에서 13만명 정도가 강간을 당했고 저항하면 그 자리에서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 버렸다. 이 중 1만 명 정도가 대부분 자살로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소련군은 독일에 대한 복수의 명목으로 집단 강간을 하거나 한 여성을 수십명이 강간했지만,이 범죄 행위를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은 채 방조 하거나 가담했다.

소련군 소속 의사 ,종군 기자들도 집단 강간을 자행했지만 이들은 소련 당국으로 부터 어떤 처벌을 받지 않았고 성병에 걸렸을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지위를 박탈 당했을 뿐이였다.

붉은 군대가 지나간 자리엔 포탄 자국, 전차 캐터필러와 군용 트럭의 바퀴 흔적, 그리고 시신들로 넘쳐났다.

4월 21일 토요일 아침, 연합군의 마지막 공습이 끝난 지 두 시간이 지난 후 오전 9시 30분, 히틀러의 친위대 부관인 오토 귄셰는 잠에서 막 깨어난 히틀러가 화가 난 상태에서 대기실 벙커에 불쑥 나타나 호통을 치는 소리에 놀란다.


'무슨 일이야? 이 포격은 어디에서 하는 거야?

'소련군이 벌써 그렇게 가까이 왔다고?'


덜덜 떨고 있는 히틀러는 여전히 붕괴되고 있는 전선이 유지 되고 있다는 부셰의 말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1000여명의 친위부대원들 중에 간신히 40명만 목숨을 건졌다.

4월 21일 밤, 총통 관저로 불려온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베를린을 떠나라고 설득할 생각으로 그는 이미 자신과 아내 마그다 그리고 6명의 자녀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결심을 했다.

4월 24일, 겨우 소련 전차 몇 대를 파괴한 노르트란트 사단 '헤르만 폰 잘차' 중기갑대대의 제 5충격군의 한 사단장은 이렇게 기록했다.


'자비라곤 없는 피비린내나는 격렬한 전투였다.'


독일 곳곳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베를린 시민들은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제국의 마지막 화장용 장작더미의 불쏘시개가 되고 있었다.


'포격이 끝난 후 이어진 고요함은 이내 굉음과 함께 요란한 폭음이 쏟아지면서 시신이 불타는 냄새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 였다.'


4월 25일, 붉은 군대가 노이쾰른을 짓밟고 지나가는 동안 도로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4월 26일, 시가지 상점 마다 목을 매 달은 시신들이 즐비 했고 건물 밖으로 몸을 던진 시신들이 도로에 넘쳐났다.

4월 30일, 제국의사당이 무너지기 직전 끔찍한 상황을 보고 받은 히틀러는 자신의 작은 벙커 거실에서 점심식사전 개인 부관인 돌격대 지도자 오토 귄셰에게 자신과 부인 에바 브라운의 시신 처리에 세심한 지시를 내렸다.

점심 식사 후 히틀러는 침대에 누워있는 부인 에바 곁으로 갔다.

귄셰가 나오자 괴벨스, 보어만, 크렙스 장군, 부르크도르프 장군과 두 명의 비서들이 차례로 들어가 총통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히틀러가 머리에 총을 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후 3시 15분 히틀러의 하인과 귄셰, 괴벨스, 보어만이 히틀러가 머물렀던 거실로 들어갔다.

'총통이 불타고 있어. 가서 보지 않을래.'

불붙은 종이와 헝겊들이 두 명의 시신 위로 떨어지자 귄셰, 괴벨스, 보어만은 마지막으로 흩날리는 총통의 시신 조각을 바라보며 경례를 했다.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불붙은 전투는 격렬하게 치러져서 오월 자정 이전에도 붉은 깃발을 꽂지 못할 정도로 독일군의 마지막 저항을 소련 측에서 예상하지 못했다.

잔뜩 술을 먹은 채 비틀거린 상태로 수류탄 방향을 잘못 던진 소련군에 의해 병사들이 상당수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정도로 붉은 부대원들 모두 오합지졸이였다.

5월 1일 베를린 남부에서 독일 제9군의 마지막 잔여 병력이 저지선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하고 있었고 숲 속에선 여전히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독일군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모든 것을 잃은 독일군은 히틀러가 자살한 지 이틀이 훨씬 지난 후에야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왜 절대적으로 복종했지? 이런 비겁한 지도자에게 왜 충성을 맹세했지?'


5월 2일 브르쿠너의 7번 교항곡에 맞춰 대제독 되니츠가 독일 국민에게 고하는 연설을 시작한다.


'히틀러 총통이 군대의 선두에서 싸우다 사망했다. 내가 그의 계승자다.'


종말이 왔음을 직감한 괴벨스는 친위대 의사 쿤츠를 부른다.

'빨리 합시다. 시간 없어요.'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는 아돌프 히틀러 1934년 5월 29일이 새겨진 황금 담배 케이스를 집어든다.

요제프와 마그다 괴벨스는 쿤츠가 모르핀 주사로 자신의 아이들 여섯 명을 찌르는 걸 확인 한 후 두 자루의 발터 권총을 집어 들었다.

요제프 괴벨스는 아내 마그다를 권총으로 쏜 후 청산가리 앰플을 씹었다.

약속한 대로 이들은 슈베만 부하가 뿌린 휘발유에 활활 타올라 제3제국의 마지막 화장재가 되었다.


'흐리고 춥고 비가 오는 이날은 연기 속에서 불타는 폐허 사이에서 거리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수백 구의 시체 사이에서 분명 독일이 무너지는 날이다.'

                                                                                      -바실리 그로스만

5월 3일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괴벨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여섯 명 자녀의 시신은 발견되었지만 히틀러 시신의 행방은 묘연 했다.

같은 날 제1벨라루스 전선군 장군들이 총통 관저를 급습했을 때 끝 부분을 네모지게 짧게 자른 콧수염에 앞머리가 눈썹 위까지 내려오는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 시신의 양말이 꿰매져 있다는 이유로 히틀러 시신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장교들은 모두 처벌 받았다.

5월 5일 마침내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 시신과 독일 셰퍼드 한 마리와 강아지 한 마리가 포탄으로 뚫려진 구덩이에서 발견됐다.

연합군 보다 히틀러 시신을 먼저 발견한 스탈린은 소련에서 소환한 치과의사와 병리학자들의 조사를 재차 확인하고 100퍼센트 맞다는 확인을 받자 영원한 비밀 유지 명령을 내린다.

스탈린이 베를린을 점령 하자 마자 가장 먼저 선점 한 곳은 독일 국립은행과 모든 실험실, 작업장, 공장들이였지만 그들이 빼앗고 뜯어내고 도려내고 훔쳐낸 것들은 소련 땅으로 건너가 녹이 슬어 버리거나 휴지 조각이 되거나 어떤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대한 고물 덩어리가 되었다.


'사회주의는 다른 나라의 기술 인프라를 죄다 가져가도 그 자체로는 이득이 될 수 없다.'


붉은 군대를 해방군으로 생각했던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이들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약탈과 강간을 저지른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자신들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놀라워하기도 하고 고마워 하기도 하는 모순적 모습을 보였다.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들의 우두머리는 자신들 머리에 총을 쏘거나 독약을 먹고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살아 남은 독일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과 상처, 트라우마를 끌어 안고 살아야만 했다.

결국 소련은 승리했다.

​전선에서 매일 날아오는 죽음의 소식은 모든 이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어서 스탈린 통치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독일 땅에서 훔쳐간 귀중품과 물품들을 들고 돌아간 고향 땅에 영웅 대접을 받게 될 거라는 즐거운 고민을 했지만 1945년 6월 부터 4개월 동안 13만 5056명의 붉은 군대의 병사와 장교들이 '반혁명 범죄'로 군사 재판에 세워졌다.

각 전선의 전쟁 포로와 소련 추방자들, 강제 징용으로 끌려 온 이들은 100여개의 수용소에 각각 1만명씩 수용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독일 국방부 소속 포로들은 겨우 37명만 살아 남았고 11명은 다시 체포되어 군사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46년 12월 1일부터 시작된 독일과 소련의 포로 교환으로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반평생동안 '잠재적인 국가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했다.

몸과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양 국가의 국민들과 달리 독일과 소련 정치 지도자와 군사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서방 연합군 측의 심문에도 이들은 자신들은 부당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로 '실수'는 인정하지만 범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범죄는 나치와 친위대에 의해 저질렀다는 말만 반복하며 모든 심문관에게 '볼셰비즘'이라는 공동의 위험에 맞서 미국과 영국이 독일에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교하려 들었다.

1933년 법과 질서를 강조 하며 가장 도덕적이고 순혈주의 국가 될 것임을 선포했던 독일 제 3제국은 과학기술의 발달, 각종 자원의 효율적 활용, 히틀러의 독재를 앞세워서 한 때 유럽의 강국으로 비상했지만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패전으로 끝났다.

집은 불탔고, 살림살이는 약탈 당했고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은 강간을 당하거나 살해 당했고 수 만 명은 소련으로 끌려가 15~16시간 씩 강제 노동으로 단 몇 백 명만 겨우 살아 남았다.

2년 동안 전쟁 중의 독일 국민들 절반을 약간 웃도는 이들이 죽었고, 생존자 중 절반을 약간 밑도는 여자들이 강간 당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벌어진 인간 비극의 규모는 이 책에 서술 된 숫자로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살아남아 포로가 된 나치 수뇌부들 모두 '기만 당했고 배신 당했고 우리 모두 나치즘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 책에 서술 된 전쟁터의 참혹함과 사망한 장병의 숫자와 전후 국제정세의 변화로 전쟁을 인식하곤 한다.

역사 기록엔 민간인 사망 숫자가 포함되지만, 숫자는 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나치의 종말을 부른 베를린 함락에 대해 그동안 많은 책이 기록하고 증언했지만,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원제 Berlin: The Downfall 1945) 히틀러의 나치제국이 연합국 소련의 대 반격으로 수도 베를린이 함락되면서 최후를 맞는 순간을 세세한 군사적 상황과 작전, 지휘관들의 활동과 태도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기록보관소의 자료, 개인들의 일기·회고록에 담긴 현장의 참혹한 순간의 생생한 목소리까지 담아내 마치 반세기전 참혹한 전쟁터를 목격하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역사는 항상 결론을 강조한다.'

이 말은 종전 직후 전범으로 체포된 알베르트 슈페어(1905-1981)가 미국측 연합군 소속 심문관들 앞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토로한 말이다.

슈페어는 히틀러가 세운 제3제국의 눈부신 성취와 업적들이 소련의 침공으로 가려지고 부서지길 원치 않았다.

1942년 1월 히틀러는 소련 붉은 군대가 돈강의 루마니아 전선을 돌파하면서 독일의 모든 실패가 시작되었다고 연설하면서도 정작 스탈린그라드 도시 양쪽의 무장 해제된 지역을 내버려둔 동맹들 탓으로 돌리기만 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결코 인정하지 않은 채 괴벨스의 입을 통해 악마같이 교활한 선전 선동으로 독일의 젊은이들을 나치즘 선봉대에 내세워 총알 받이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펼친 우리 군의 모든 작전 중 최고'라며 6월 24일 소련군 승리 축하 퍼레이드 행사를 벌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승리의 주역들이 올라타고 행진하는 흰색 말을 타지도 않았고 행사 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불타 버린 시신을 극비리에 방부 처리해서 이송 해서 영구 보관 중이였던 소련 당국은 1970년 마침내 완전하게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소련군 소속 치과의사가 히틀러의 시신이라는 걸 확인했던 히틀러의 턱은 스메르시가 간직하고 두개골은 NKVD가 보관했다.

히틀러 몸통 나머지 부분은 불태워져서 재가 되어 하수도로 흘러 들어갔다.



'나는 끔찍한 인상을 받았다. 불길과 연기, 연기, 연기, 수많은 전쟁 포로, 얼굴엔 비참함이 가득했고, 많은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비통함은 개인적인 고통일 뿐만 아니라 붕괴된 나라에 속한 국민의 고통이기도 했다.'

                                                                                             -바실리 그로스만

독일 나치군 침공으로 초토화되 버린 스탈린그라드에서 레드 스타지 기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설적인 종군 기자이자 작가 바실리 그로스만은 벨라루스 서부 전선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전투 전에서 독일 군복으로 바꿔 입고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살아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바실리는 체제를 향한 저항과 투쟁의 삶을 선택하고 1000페이지의 압도적 분량의 대 장편 '삶과 운명(Life and fate) ' 이라는 작품 집필에 몰두한다.

'삶과 운명'의 모든 등장인물은 거대한 전체주의에 포위된다.

공산주의 신봉자도 노동 수용소에 갇혀버리고 , 나치 강제수용소의 히틀러 친위대(SS) 장교가 러시아 포로 수용소에 갇히기도 한다.

나치는 러시아인 죄수에게 스탈린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하고 러시아 비밀 경찰은 나치 친위대 장교를 체포하며 '억울 하다면 히틀러 한테 말하라'고 조롱한다.

스탈린은 이 땅에 사회주의 혁명 정신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농민과 인민의 자유를 파괴해야 한다고 외친다.

스탈린의 추종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수백 만의 농민과 인민을 숙청 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이 독일 국가 사회주의 운동을 방해하는 적이라며 수백 만의 유대인을 학살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두 개의 전체주의, 파시스트 나치와 스탈린주의 공산당들 두 형제들의 싸움이였다.


'인간의 역사는 악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선의 싸움이 아니다. 거대한 악마가 선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인간의 영혼까지 부숴버리기 위해 싸우는 전쟁이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전쟁>중에서


이 책 <베를린 함락, 1945>의 저자 앤터니 비버는 전쟁에서 일어난 개인의 어떤 행위에 관한 일반화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은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 자료와 기타 증거물을 통해 알고 있는 것 보다 그 비극과 참상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일상의 평화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내용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극도의 고통을 겪은 이들의 울부짖음과 슬픔, 처참함과 잔혹한 짓을 술에 취해 약에 취해 군의 명령으로 살아 남기 위해 저지른 이들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아이와 여자들을 보호 해 주려고 점령지 건물을 통째로 사수 했던 장교도 있었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보급품을 나눠주었던 병사들도 있었다.

악마와 천사의 모습이 모두 교차하는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었다.


냉전시대가 도래하자 대다수 독일 국민들은 나치 친위대들과 소속 대원들 그리고 기타 민간인들이 저지른 모든 죄들이 시기를 잘못 선택한 탓으로 여기며 수십 년에 걸쳐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를 복원하고 복구하면서 끊임없는 반성과 토론을 통해 자국의 과거사를 인정하며 진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베를린 곳곳에 모든 역사의 흔적을 복원하며 국가사회주의 나치의 반인륜적 독재와 광란의 흔적들, 엄혹 했던 동서냉전 시절 대결의 현장 그리고 역사적인 독일 재통일과 그 이후 눈부신 통합 과정 등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기억하고 반성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서베를린 지역 그루네발트 역은 나치 시절 1만7000명이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로 이송된 역으로 1945년 3월 27일 마지막 열차가 테레지엔슈타트로 떠나기까지 이 역에서 베를린에서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독일철도(DB)는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에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지역에서 자라던 자작나무들을 옮겨 심어 놓고 나치에 부역 했던 지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박물관에 그 역사를 전시하고 강제노역 배상기금 조성에 참여하며 그루네발트 역에 ‘선로17’ 기념 조형물을 기증하고 매년 관련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나치 독일의 심장부였던 베를린 곳곳에는 이름 모를 어느 광장 바닥이나 길모퉁이, 숲 등 무심코 지나면 잘 마주치지 못할 곳에도 기억의 징표들이 선명하게 남아서 후대인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독일은 20세기 최악의 전쟁을 두 차례나 저지른 전범국이지만 치열하게 과거를 되돌아 보며 헌법 맨 앞장에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새겨 놓고 역사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다.

베를린에는 독일 과거사와 관련된 공식 등록 기념물만 무려 1만 2000개가 있다.

2023년 9월 1일은 간토 대지진에서 대학살이 자행 된지 100년이 되었다.

우리는 정확히 몇 만명, 아니 몇 백만 명의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의 손에 잔혹한 죽음을 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베를린을 함락 시켰던 소련은 붕괴되었고 전쟁의 세기, 20세기는 끝이 났지만 2022년 2월 20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1년 반 넘게 전쟁을 끌고 있다.

소련의 스탈린이 베를린의 매장된 우라늄과 핵 자원 기술을 노렸던 것처럼 현재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도 우크라이나를 집어 삼키기 위한 제 1목표물 역시 자원이고 기술이다.

러시아 부대 소속 살인 병기들은 우크라이나 땅에서 약탈과 방화,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


광란의 전쟁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진정 지구 상에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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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9-12 0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한 나라에서는 사람이 많이 죽었겠습니다 소련군이 독일에 갔을 때 저지른 일은 처벌도 안 받고... 전쟁이 그렇게 만들었군요 전쟁이어서 사람은 이상해지기도 하고, 그런 때여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겠습니다 모두가 같지 않기도 하다니, 그런 건 좀 슬프네요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 그걸 후대에 전하고 반성하기도 하는데, 일본은 그러지 않네요 부끄러운 역사여도 제대로 알고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개인의 일도 그런가 싶은 생각이...


희선

scott 2023-09-12 12:26   좋아요 0 | URL
그냥 죽인 것이 아닌 영혼까지 해부하듯 죽였습니다 ㅠ.ㅠ
처벌은 커녕 인간 사냥하듯 술에 취해 약에 취해 지구 종말이 온 것 처럼 무고한 이들을 죽이고 살육하고 ㅠ,ㅠ

독일 지금까지 반성과 철저한 역사 교육을 통해 후대에 전쟁 인간이 일으킨 가장 사악한 짓이라는 걸 일깨우는데
일본은 열도가 사라지는 순간에도 반성조차 안할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3-09-12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전쟁의 기록을 읽는 이유를 잘 알려주는 책이네요. 집에 있는 엔터니 비버 책들이 어찌나 벽돌책인지 사놓고 안 읽었는지라 이 책도 그리될까봐 망설이고 있어요. ㅎㅎ

scott 2023-09-12 12:27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반갑!
이 책도 두툼한데
벽돌 부피는 아닙니다 ㅋㅋ
전 2틀만에 완독하고 재독과 재독을 거듭 하고 있는 중^^

바람돌이 2023-09-12 12:44   좋아요 1 | URL
700쪽리 넘는 책을 이틀만에... 스콧님 넘사벽입니다. ^^

scott 2023-09-12 17:24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속도가 좀 빠릅니다 ^ㅎ^

새파랑 2023-09-12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45년 베를린에는 무시무시한 집단들이 다 모여있었군요. 2차세계대전 이야기는 자주 접하는데 볼때마다 흥미진진하고 안타깝습니다 ㅜㅜ

2023-09-12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3-09-12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갔다가 다시 보관함으로 던지는 무한루프 중인 책인데^^;;; 벌써 다 읽으시고 멋진 리뷰까지@_@; 역시 scott님 @_@;;;;;;

scott 2023-09-13 11:20   좋아요 1 | URL
문나잇님 !
이 책 다시 장바구니로 go~@@@go~@@@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캄솨
@ㅅ@

어쩌다냥장판 2023-09-13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저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건데 역시나 벌써 읽으셨네요
두께가 장난 아닌거 같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

2023-09-14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아라거북이 2023-09-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에 읽은 책인데 드디어 번역이 됐더라구요. 그런데 바실리 그로스만을 다룬 저 책은 어떤 책인지 여쭤바도 되는지요? 그로스만이 쓴 두 권의 소설 Stalingrad, Life and fate 그리고 A writer at war 이 세 권만 가지고 있는데 저 책은 아예 다른 책으로 보입니다.

2023-10-07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7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