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
조이스 애플비 지음, 주경철.안민석 옮김 / 까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자본주의의 경제적 패러다임

 

신자유주의가 비판받으면서 작년부터 자본주의 4.0 등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거론된 적이 있었다. 대안의 핵심은 시장 축소, 정부 확대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앞장선 휴머니즘 회복 등이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금융자본의 폐해 등을 개선해야 하며 정부와 시장이 이전의 자본주의처럼 적대적이 아니고 협력적인 관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자유시장 즉 신자유주의가 비판을 받지만 강한 시장이 칭송받던 시절이 있었으니 역사는 반복하면서 조금씩 진전하는가 보다. 인간의 역사가 이 처럼 반복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으며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인간은 진리에 가까워질 뿐이지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경제를 지배한 논리나 이념은 산업화 이후 시장과 정부의 길항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18세기 산업화 초기에는 정부가 시장을 압도했다. 이른바 중상주의로 국부 축적을 위해 관세와 규제로 수입을 억제하고 식민지 건설을 통해 수출을 촉진했다. 그러나 각국의 소비자를 희생하고 상인과 제조업자만 배불린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가 대두됐다. 시장경제는 수많은 기업과 개인들의 의사결정으로 생산과 소비가 작동되는 경제시스템이며 가격에 의해 조정된다. 애덤 스미스는『국부론』에서 인간은 이기적일 정도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창출하게 된다고 봤다. 이런 시장경제체제에서 사람들은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풍족한 생활수준을 누리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 전체의 후생이 조화롭게 작용함으로써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작동이 중앙통제경제의 계획보다 우월함을 뜻한다.

 

 

 

 

 


애덤 스미스가 구축한 시장경제의 영향력은 산업혁명의 등장에까지 이어졌지만 빈곤 확산, 노사 대립, 경제 공황 등의 문제점이 유발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제멋대로인 '보이지 않는 손'을 결박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야 했다. 그것이 수정자본주의로 시장기능과 정부 통제가 혼합된 경제체제다. 이 이념 또한 소득분배의 불평등, 대량 실업, 자원 이용의 비효율 등으로 결국 미국의 대공황을 초래해 다시 정부가 강해지는 케인즈주의가 등장했다. 독점 금지, 소득 재분배, 정부가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뉴딜정책 등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시장 개입이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고 기업 도산, 물가 상승, 실업 증가 등이 나타나자 애덤 스미스 체제로 회귀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징적 용어인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는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는 것처럼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 선도부문의 경제적 성과가 늘어나면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 등 낙후부문에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말한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안에서 경제적으로 양극화는 오히려 심해져서 중간계층은 점점 빈곤층으로 떨어졌고 상류층과 극빈층의 빈부격차는 더욱 커지는 현상이 심화됐다. 세계경제를 주름 잡았던 미국의 거대 은행 및 금융기관들이 도산을 하게 되면서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나타나고 빈부격차,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신자유주의 폐기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정부가 다시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이념이 대두된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우리가 경제 교과서에서 배우는 자본주의의 역사다. 긴 설명을 다시 짧게 축약하자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이렇게 세 가지의 경제원리로 분류할 수 있다. '자본주의 4.0'을 제안한 아나톨 칼레츠키는 이 세 가지로 축약된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경제 원리가 작동되었던 시대를 구분지을 수 있도록 일종의 경제적 패러다임으로 보고 있다. 시장경제가 등장한 애덤 스미스를 '자본주의 1.0', 경제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제안한 수정자본주의를 '자본주의 2.0',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 3.0'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는 진화하는 시스템으로 인식하고 역사상 네 번째 구조적 전환인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자본주의 4.0'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 4.0'에서는 딱 두 가지를 강조한다.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원칙'을 먼저 지키면서 사회공헌을 경영활동의 하나로 인식하는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만들어내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역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중심인 '시장'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도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세계경제에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자본주의'를 바라본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 모두 틀렸다!

 

'애덤 스미스, 케인즈, 하이에크' 순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경제 패러다임의 과정은 경제를 공부할 때 배우게 되는 내용이며 경제학사에서는 오랫동안 하나의 통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논하는 모든 서적에서도 '애덤 스미스, 케인즈, 하이에크',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단골 인물들이다.

 

이번에 출간된 조이스 애플비『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역시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는 광범위한 역사의 과정을 담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신자유주의를 설명하는 내용에서는 하이에크 대신에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을 언급하는 것만 빼면 자본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논했던 그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 작용했던 특정한 요인에 대한 관점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변동시킨 거대한 경제 체제인 동시에 문화 체제라고 봤으며, 인류의 관행과 사상, 가치와 이념을 뒤흔들어 정치를 변형시켰다고 설명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형성과정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그는 경제학의 역사를 거론할 때 언급되는 애덤 스미스의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스미스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재화를 통해 거래하고 교환하려는 시장경제체제가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고 봤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 형성에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애플비는 시장경제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발달로 서서히 이어져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는 반대로 경제발전이 사람들이 시장을 통해 거래하고 교환하는 문화적 특성을 촉진시켰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축적이야말로 '전통적인 경제활동 방식(중세 유럽의 봉건제와 같은 농촌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생산방식)과 단절하는 첫걸음'(pp 25)이라고 강조한 마르크스의 주장도 반박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원리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유럽의 전통적 사회에서는 생산방식을 혁신하는 데 필요한 문화자본의 축적 그리고 노하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애플비의 반박을 비추어 보자면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인 측면의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있는, 애플비의 관점은 막스 베버의 관점과 일맥상통하다. 저자 역시 스스로 막스 베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로 문화적인 특성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끼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베버 역시 재화를 통해 거래하려는 성향을 지닌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인간관을 부정하고 있고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시장경제의 방식이 존재했다고 가정한 마르크스를 비판했다.

 

중세 말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금융위기까지 방대한 역사를 통해 자본주의의 발달은 애덤 스미스의 생각처럼 '인간의 본성'에 맞는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고 마르크스처럼 역사 발전의 필연적 도달점도 아니다. 이미 도래할 것으로 예정된 불변의 역사가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도 포함된 인류의 문화적 행동이 만든 관행과 제도의 집합일 뿐이다.

 

 

 

 

 '혁신'이라는 새 옷을 입는 것이 두려웠던 자본주의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은 시간에 따라서 변화되는 연쇄적 진보 단계로 파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등장하기 전의 과거의 체제와 다를 수 밖에 없는 인정하게 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귀결로 본다. 하지만 애초부터 자본주의는 헌 옷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서 새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능동적으로 변신할 줄 아는 혁신적인 체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까지 서양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보적인 혁신을 추구하지 않았다.

 

 

 

 

 

피터르 브뤼헐 「월력도 연작 중 두번째 그림 : 곡물 수확, 8월」 1565년

 

 

 

16세기 이전 유럽의 전통 사회에서는 농업이 주된 생산방식의 과정이었다. 인구의 절반이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그 당시 사회 질서 역시 농경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농경 중심 사회에서만 나타나게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근에 의한 흉작이다. 특정한 해에 기근 현상이 나타나게 되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농업에 의지해서 생산되는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수많은 인구들은 아사(餓死)의 공포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점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오랜 세월동안 농경사회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농업을 중시하다보니 당연히 상업은 무시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경제체제를 크게 변화할 수 있는 어떠한 혁신도 꿈꿀 수가 없었으며 농업 중심의 사회 질서를 그대로 순응하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농경 사회 자체가 한순간에 바뀐다는 점이 기근에 의한 흉년이 찾아오는 것보다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고 나면서부터 오랫동안 유지될 것만 같았던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에 새로운 기운이 꿈들대기 시작했다. 대륙 간 교역이 본격화하면서 '자본'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러한 체제 속에서 상공업자의 세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자본에 사적 투자라는 개념이 더해져 최초로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전환점의 시작을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최초로 자본주의에 의한 혁신이 이루어진 시점을 산업혁명이 등장하기 이전을 거슬러 올라 17세기로 정하고 있다. 신. 구교 간의 종교적 갈등 그리고 혁명에 의해 국왕이 바뀔 정도로 정변이 잦았던 내분의 과정 중에도 상인들은 전국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경제질서를 변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에 계몽사상이 등장하게 되면서부터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경제질서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영국이 자본주의를 발달하게 만든 최초의 유럽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불어닥친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비단 유럽 전체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특히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 전력사업을 발전시킨 에디슨, 강철왕 카네기 등과 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 혁신적인 기술가와 사업가들의 등장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유행을 타게 된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 및 사회적 상황에 맞게 딱 어울리는 옷을 입을 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구 경제체제의 질서를 순응하는 낡은 옷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고 혁신을 강조하는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중요해졌다.

 

 

 

 

 

 자본주의자들의 행동은 반복된다

 

 

 

 

 

아돌프 폰 멘첼  「쇠 압연 공장 (현대판 키클롭스)」 1872~1875년

 

 

 

저자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혁신에 의한 구 질서가 파괴되는 원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 기존에 입었던 헌 옷을 입지 않는다거나 버리게 된다. 그러나 신상에 대한 허영심은 절제되지 않는 과소비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등장했던 증기기관, 자동차, 산업 등이 근대로 이행하게 만드는 '창조적 파괴'의 사례라면 21세기에 이르게 된 지금은 우리 눈 앞에서 컴퓨터,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 기술의 등장이 현대판 '창조적 파괴'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렇듯 '창조적 파괴'의 원리로 작동되던 자본주의도 진보와 성장에 대한 탐욕에 눈이 먼 나머지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이렇다보니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파괴적인 측면은 금융위기, 경제적 불평등, 빈곤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것을 묵인한 채 자본주의는 가차없이 작동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자본주의자들의 행동은 반복된다. 위기가 임박했음에도 그것을 막으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누구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가 어떤 성질을 강화시키는지 말해준다.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낙관주의다. 자본주의의 '정신'은 자신감으로 가득 찬 세일즈맨의 정신에 다름 아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는 않은 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 - 가능하다면 쉬운 방법 - 으로 돈을 버는 것에만 몰두하면 위기와 공황, 대폭락은 불가피해진다.

 

 

 - 조이스 애플비 『가차없는 자본주의 : 파괴와 혁신의 역사』중에서, 까치, pp 452 -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 작동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판을 통째로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위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비판론을 제기하는 측면이 자본주의의 '혁신적 파괴'의 장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실수에서 배우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시장의 자정 기능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냉혹할 정도로 가차없이 작동되는 자본주의의 혁신도 스스로 종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차별적인 '생각없는 혁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가차없는 자본주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조이스 애플비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는 저자의 태도에 대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적 경제의 유동성은 그 아무리 똑똑한 전문가라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리고 저자의 말대로 과거를 공부한다고 해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pp 466)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빈곤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으로 운영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 무하마드 유누스,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부의 배분 및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로 바라봤던 아마르티아 센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한 대안은 공통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에도 문제점이 있다. 대안의 실마리로서 제시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저자는 이 제도 역시 빈민 중에서 그나마 잘 사는 사람들이 혜택을 볼게 될 뿐,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책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이 될 것만 같았던 유누스의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와 그라민 은행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금리가 고리대금 수준으로 높아진데다 가혹한 추심으로 대출 받은 이들이 자살하면서 원래 취지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라민 은행을 역임하고 있었던 유누스가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1억 달러의 기부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명성에 흠집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불명예 퇴진이라는 씁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유누스의 대출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과 문제 제기가 점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말부터다. 원서가 2010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본다면 애플비는 유누스의 대안에 대해서 문제점을 거론했지만 그렇다고 심각할 정도로 몰락에 처하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세운 저자의 대안은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의 내용과 유사한 면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움직이게 만드는 시장 중심의 기능, 즉 혁신에서 비롯된 부의 창출 능력을 유지하되 이에 대한 탐욕을 줄일 수 있는 적절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가차없을 정도로 탐욕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난폭한 성격을 규제하려는 목표와 취지는 인정할 만하나 아나톨 칼레츠키나 애플비 역시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 경제 발전의 공로를 자본주의적 시각으로만 해석하고 있고 여전히 자본주의적 시각의 범위 하에서 해결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안에는 모순적인 측면이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를 '가차 없지만 생각 있는 혁명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진단한 점은 그가 지적했던 '현실을 부정하는 낙관주의'와 별 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남다른 관점만 부각되었을 뿐, 그도 역시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반성하는데만 그쳤다.

 

인간은 경제적 위기를 마주하게 되면 '시장-정부'를 오가는 쳇바퀴를 반복해서 돌려왔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지구에서 작동되고 있는 상태다. 끝없이 가동되고 있는 와중에 환경 파괴, 자원 고갈, 다음 세대에 떠안아야 할 막대한 빚 따위의 호소는 들리지도 않는다. 끝없이 새롭고 독창적인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을 소비해야만 경제가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원리 하에 인간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적인 대안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줄 모르는 자본주의의 '혁신적 파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혁신적 파괴에 대한 맹목적인 예찬에 사로잡혀 이것을 적절하게 규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세상을 파괴해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될 수 있다. 시장경제 내에서 불확실성은 누구에게나 적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이나 개인은 모험을 회피한다. 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 맞서 극복하려는 의지도 약화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앞에서도 설명한 농경사회에서의 상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역사의 선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진보와 발전에 있어서 때때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파괴의 효과는 더욱 심각해지게 된다. 가차없는 자본주의의 작동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지만, 문제가 크게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기존에 유지되어 있는 질서의 체계에 약간의 변화가 있더라도 불확실성의 두려움을 넘어서야 지금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책 한권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처한 모든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또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당위성을 넘어 실제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미완의 과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지적인, 현실적인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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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9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맥거핀 2012-03-1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고 꼼꼼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간만에 들렀더니 배경이 산뜻하게 바뀌었군요~

cyrus 2012-03-20 12:48   좋아요 0 | URL
봄이잖아요 ㅎㅎ 오늘까지 꽃샘추위라는데 생각보다 바람도
괜찮고 햇살도 따사로워서 좋네요. ^^

마녀고양이 2012-03-2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사이러스님의 리뷰는 논문 같아요....
대단하시기도 하고, 그로 인해 좀 딱딱하달까 아니면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면도...
그저 제 느낌이었어요. 오랫만에 들려서 이런 말이라니, 죄송... 아이고.

하지만 참 좋은 페이퍼입니다.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cyrus 2012-03-20 12:54   좋아요 0 | URL
ㅎㅎ 죄송하긴요, 저도 글 쓰면서 그렇게 느껴왔는데요.
소설 리뷰 같은 건 내용에 대한 느낀점을 쓰면 되니깐 쓸만한데
인문, 사회과학 도서 같은건 정말 쓰기 어려운거 같아요.
나름 책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서 적는다고 쓴거 같은데
쓰다보면 내용이 길어져있고요,,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적게 적으면
그 책을 읽어보려는 독자들한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봐
그것이 또 걱정이고요, 글을 쓰면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ㅎㅎ 역시 습관이라는게 무서운거 같습니다. ^^;;

그래서 저는 마고님 같은 분의 이해심이 담긴 지적을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시지 말고
틀린 부분 있으면 지적해주고 고쳐주세요 ^^

꽃도둑 2012-03-2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대에서 조한혜정 교수랑 우석훈 교수의 주도로 <경제인류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었어요, 여러 강사들이 초빙되었는데요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혹은 대체할만한 것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었지요.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내리막길로 달리는 자본주의를 세울 수는 없으리라는 암담함 속에서도 이제 가파르지 않은 평지가 가까이 왔다는 희망 속에서 이 강의를 지켜보았는데요. 아나톨 칼레츠키의 4.0은 글쎄요..탐욕만 줄이려는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 과연 효력이 있을까? 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행동은 반복될텐데요...그죠?...^^

cyrus 2012-03-21 19:28   좋아요 0 | URL
저도 4.0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대안이라고 보는 낙관적인 생각에서는 저도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론만 따져 본다면 실제로 일어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
하지만 지금 현 상황으로봐서는 서로 등을 돌렸던 노사가 마주쳐서
화해와 상생의 악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요즘 경영학 수업에 <노사관계론>을 배우고 있는데 교수님 말씀으로는
정부나 언론이나 경영학자들이나 노사 관계 문제를 바라보면 공통적으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드물다고 하더군요..

카스피 2012-03-20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원칙'을 먼저 지키면서 사회공헌을 경영활동의 하나로 인식하는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군요.
하지만 현실을 보자면 국내 굴지의 목 기업은 직장인은 열심히 회사 발전에 이바지하다가 스스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자발적으로 사표를 쓰라는 내용을 빙빙 돌려서 회사 다이어리에 적어놓은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직원들 반감와 외부의 눈때문인지 언젠가 부터 없어졌지만 그 정신이야 어디 사리지겠어요ㅡ.ㅡ

cyrus 2012-03-21 19: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업 이익에 집중하는 혁신에 매달리게 된다면 회사 내 조직원들은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죠. 요즘 사회적 기업, 인간적인 면을
내세우는 기업을 강조하고 있는데,, 글쎄요,, 취지느 좋으나 그것이
노사관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에는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2-03-22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는 사회학 경제사에도 정통한 학자인데 그는 마르크스와 베버의 자본주의 발달에 관한 연구가 통념과는 달리 많이 겹치고 상호보완적이라고 했습니다.그가 쓴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한길사)을 참조하세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 관한 논쟁을 다룬 해외거장들의 논문집이 하나 있는데 절판이네요.경제사 공부할 때 정말 좋은 책인데...

cyrus 2012-03-23 20:35   좋아요 0 | URL
한길사에 나온 기든스의 책, 언젠가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에요.
노자님 말씀대로 그 책에 마르크스랑 베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일단 마르크스와 베버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고 읽어보려고 해요.

최근에 막스 베버와 관련된 책을 알라딘에 검색해봤는데요, 정말로
절판된 책이 꽤 있더군요. 그래서 중고샵을 통해서 구입하려고 해요. ^^
 

 

 

 

 

 

 

 

 

 

 

 

 

 

 

 

 

 

며칠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조르조 데 키리코와 후안 미로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책을 구입했다. 요즘 관심 있는 미술사조가 초현실주의다. 르네 마그리트의 미술에 관한 책을 읽다가 거기에 '조르조 데 키리코'라는 화가의 미술에 대해서 궁금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정말 운이 좋다. 키리코의 미술을 알 수 있는 책이 국내에 딱 한 권이 있었다니. 키리코도 초현실주의 미술사조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유명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피카소, 마그리트, 달리에 비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아서 아쉽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키리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마그리트도 키리코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마그리트의 그림들 중에는 데 키리코의 화풍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도 있다.

 

 

 

 

 

조르조 데 키리코 「사랑의 노래」 1914년

 

 

 

 

 

 

르네 마그리트  「기억」 1938년

 

 

 

 

 

 

 

 

 

 

 

 

 

 

 

 

 

 

 

마그리트는 키리코를 열렬히 추종할 정도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키리코는 형이상학파의 양식을 구축함으로써 몽상적인 화풍을 구사하였다. 연관성 없는 대상물을 주관적으로 끼워맞춰 몽환적인 고독적 세계를 재구성하였는데 마그리트를 포함한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키리코와 마그리트, 이 두 사람은 화풍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과정도 닮은 점이 많았다.

 

 

 

 

 

 

 

조르조 데 키리코  「어린 아이의 머리」 1914년

 

 

 

 

 

 

 

르네 마그리트  「연인」 1928년

 

 

 

 

둘 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통이 우울증을 유발하였다.

 

 

키리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평생동안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되었고다. 마그리트는 키리코보다 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얼굴에 하얀 천으로 덮힌 채 익사한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오늘날 마그리트 관련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자살이라고 보고 있다) 원인 모를 어머니의 죽음이 지울 수가 없는 기억의 상흔으로 남게 되어 우울증을 유발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며 그러한 상흔의 표상은 하얀 천으로 얼굴을 덮힌 인물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둘 다 서로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배척당했으며 스스로도 그들과 관계를 단절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키리코는 자신의 화풍과 유사한 마그리트의 작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한다. 그러한 면모는 마그리트에 보낸 키리코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친애하는 동료이자 선생님,

 

 귀하의 12월 31일자 친절한 편지에 대한 답신이 늦어진 데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귀하의 흥미 있는 전시회를 보았고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귀하의 그림들은 '초현실주의 회화'로 널리 알려진 많은 그림들이 그러하듯이 재치가 있고 보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귀하께서 곧 로마로 오실 거라고 드 코르테 씨가 알려 주셨습니다. 그때 귀하를 개인적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여.     

 

 

 - 수지 개블릭『르네 마그리트』시공아트, pp 77~78 -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편지에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마그리트와 키리코 그리고 초현실주의와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마그리트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을 것이다. 키리코의 답신이 늦은 것도 기분 나쁜 마당에 자신의 화풍을 스스로 교류를 거부했던 '초현실주의 회화'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키리코는 의도치 않게 마그리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아마도 키리코는 마그리트의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마그리트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 된다고 볼 수 있다.

 

 

글의 내용이 갑자기 마그리트와 키리코 이야기로 잠깐 옆으로 새고 말았는데 중고샵에서 구입한 키리코와 후안 미로에 관한 미술 관련 도서가 예경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20세기 미술의 발견' 시리즈에서 나온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요즘에는 마로니에북스, 시공아트, 한길아트 등 예술 전문 도서 출판사에서 유명 화가들의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개론서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데 예경역시 지금도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미술 관련 도서를 소개하는 출판사이며 '20세기 미술의 발견' 시리즈는 아주 오래 전에 나온 미술도서 시리즈다. 1995년에서 1996년에서 출간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6, 17년 전에 나온 것이다.

 

 

 

 

 

 

 

 

 

 

 

                              

                  

 

 

 

 

'예경'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예경에서 나온 잘 알려진 미술 관련 도서가 E.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다. 책을 구입할 때 출판사에 대한 정보도 알아보는 편인데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판형 크기는 큰 편인데 일반 화보집의 크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주황색 커버를 벗긴 상태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림만 있는 화보집이 아니다.

책의 초반부에는 화가의 생애와 미술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다.

 

 

 

 

책은 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대중들로부터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며 팔리지 않게 되면 품절 또는 절판을 맞게 된다. 예경의 '20세기 미술의 발견' 시리즈도 그 중의 하나인데 지금까지도 많은 책을 쏟아내고 있는 출판사의 실정을 본다면 시리즈의 절판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알라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시리즈는 『조르조 데 키리코』와 『오스카 코코슈카』뿐이다. 나머지 프랜시스 베이컨,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살바도르 달리, 마그리트는 절판이다. 하필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읺은 화가 시리즈 두 권만 살아남았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해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정보는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와 교제했다는 사실이다. MBC '서프라이즈'에서 본 것 같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말러의 아내가 세기말 예술가들로부터 구혼을 받았을 정도로 예술가들의 '뮤즈'였다는데 자세한 내용은 따로 알아봐야겠다)

 

『호안 미로』같은 경우에는 정말 운이 좋게도 중고샵에서 건진 것이다. 회원 중고샵이 아닌 알라딘 중고샵에서.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책이 알라딘 중교샵에서 판매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리고 회원 중고가격이 좀 센 책도 있다. 그 책이 바로 『칸딘스키』와『마그리트』 인데 2만 원을 넘는 가격으로 책정되고 있다. 마그리트 관련 책을 모으고 싶은 나로써는 그저 군침만 흘리고 있다.

 

사실 절판된 화가의 시리즈들은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유명한 화가들이며 그들의 그림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개론서는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래된 책이 절판되었다고 해서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지만 이 시리즈를 구입한 나로써는 시리즈를 모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쉽게 느껴진다.

 

 

 

 

 

 

 

책 커버 뒷날개에 있는 시리즈 목록,

근간 예정인 시리즈가 11권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예술가 시리즈로써

장기적으로 꾸준히 출간할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나온 시리즈들이 거의 절판, 품절 상태를 맞게 되다보니

근간 예정 도서들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아쉬운 점은 예경의 '20세기 미술의 발견' 시리즈에는 원래 더 나올 수 있는 책이 있었다. 말 그대로 '근간' 예정인 책들인데 출판될뻔한 화가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파울 클레, 페르낭 레제, 마르셀 뒤샹, 카시미르 말레비치, 조르주 브라크,

막스 에른스트, 후안 그리스, 재스퍼 존스, 피에트 몬드리안, 에드바르트 뭉크,

안토니 타피에스.

 

총 11권이다. 적지 않은 권수이다. 지금도 책 커버 뒷날개에 보면 20세기 미술의 발견 시리즈 목록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근간' 예정으로 나온 책들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때 이른 '절판'을 맞게 되었다. 이 미술 도서 시리즈가 재출간하지 않는 이상 근간 예정 도서들의 출간 소식을 들을 수 없을거 같다. 근간 예정 도서의 화가들을 보면 안토니 타피에스를 제외하면 유명한 화가들이다. 그리고 몇 몇 화가들은 지금까지도 개론서 한 권이라도 소개되지 않은 것도 있다. 말레비치, 막스 에른스트, 후안 그리스, 재스퍼 존스 같은 경우에는 이들의 미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심도 있게 소개한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에른스트 같은 경우에는 열화당에서 나온 개론서 딱 한 권이 있지만 이 책 또한 절판이다.  

 

지금도 미술가들을 소개한 개론서 시리즈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러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미술 분야 또는 화가들이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예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화가들의 전시회만 많이 열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실물로 직접 보고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하나의 그림 속에 담겨져 있는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미적 양식과 가치 그리고 예술혼(魂)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술가들의 생애와 업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술 세계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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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시루스! 훈늉해!
다시 구할 수 없다니 씁쓸하군. 잘 샀네.ㅠ

cyrus 2012-03-19 12:30   좋아요 0 | URL
아직은 많이 공부해야 할 수준이에요. ^^
시리즈 중 남은 한 권도 절판되기 전에 얼른 구입해야겠어요.

비로그인 2012-03-1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프로필 사진을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는데, 이제 알았네요! ''
사람의 뒷모습을 자주 그린 화가라고 들었는데... 하여간 미술에 대해서는 극히 무지해서 이 페이퍼 읽는 동안 새롭고 또 재밌었어요. 평소에 이 사람 그림 참 좋다고 생각한 화가가 있는데, 한 번 그와 관련된 미술서적을 찾아봐야겠어요. 그나저나 예경시리즈가 절판되어서 안타깝네요.. 워낙 다른 시리즈가 많아서 그런가 ㅠ ㅠ

cyrus 2012-03-19 12:33   좋아요 0 | URL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일생과
미술 세계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그리고 그 화가에 대해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면도 알게 되는 것도
기분이 새롭기도 하답니다. ^^

아무래도 예경 이외에도 화가들을 소개하는 시리즈가 많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는가봐요. 그래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말 좋은 시리즈가
될 수 있었을텐데,, 그것이 무척 아쉽기도 합니다.

차트랑 2012-03-1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틈틈히 읽고 있는 중인데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정말 듬직한 책입니다요..

cyrus 2012-03-19 12: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가격이 비싸지만 소장가치도 있어요.
책장에 꽂혀 있으면 집주인이 미술에 관심이 많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

아이리시스 2012-03-1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리즈가 있었군요. 좋은 정보예요!!^^
저는 인상파 화가들을 좋아하는데 시리즈에 있는지 봐야겠어요.

cyrus 2012-03-19 12:35   좋아요 0 | URL
시중에 나오고 있는 화가 시리즈에는 인상파 화가들이 있을거에요.
문득 생각난건데 미술사조별로 화가들을 묶어서 소개하는 시리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 눈에 특정 미술사조의 화가들을
파악할 수 있잖아요. ^^
 
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품절


그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솟아오르던 분노의 순간을 다시 살(生)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 내가 살아오던 인생이 그 말로 집약되어 버린 데 몹시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던 내가 어쩌자고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렵혀진 종이에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박쳐둘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 준 셈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중략) 그의 표정이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던 셈이다. 나는 내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았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를 동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 인 조르바』pp 14, 열린책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그리스 인 조르바』에서 시인인 '나'는 자유로운 인간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고 난 후부터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미완성인 채 수없이 원고 뭉치를 만지작거렸던 시인은 그동안의 글쓰기 인생에 대해서 회의를 품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조르바와 동행함으로써 책에만 골몰하게 파묻혔던 '책벌레' 생활을 청산하고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유의 바다에 뛰어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조르바는 시인을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 그를 '책벌레'라고 부른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만 표현할 줄 밖에 모르는, 거대한 사회에 직접 부딪혀 행동하지 못한 사회적 숙맥을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 다 겪어 본 천하의 조르바도 제대로 모르는 사실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알고 책만 읽는 사람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르바처럼 자신의 생각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은 문학을 소홀히 하거나 낮추어 보지 않았다.




-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중에서 -


혁명가와 운동가로만 알려진 체 게바라가 시를 썼다는 사실은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프랑스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소포클레스, 랭보, 세익스피어에 심취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던 '열혈남아'였다.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로 혁명운동에 동참한 그는 목숨을 건 전투중에도 괴테, 보들레르 등의 책을 베낭속에 갖고 다녔다. 적군의 총알이 자신의 심장을 뚫릴지도 모르는 전장 한가운데서 늦은 밤에 등불의 기름을 낭비하면서까지 괴테 전기를 읽고 있는 체 게바라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혁명가의 색다른 면모이다.

일기에는 수많은 전투기록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간결한 시 같은 글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쓴 시에는 일찍부터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혁명가의 진지한 내면고백이 담겨 있다.


내 나이 열 다섯 살때
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
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체 게바라 '나의 삶' 중에서, 『먼 저편』(문화산책) 수록)



보다 잘 사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꿈은 문학을 좋아했던 남미의 혁명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학 관련 상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문학상, 그 영예를 차지했던 문학의 거장들도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출신 문학전문기자인 사비 아옌과 스페인 출신 사진기자 킴 만레사는 3년여 동안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16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과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대담들을 모은 책의 제목이 『16인의 반란자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읽기 수월한 책이 많지 않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들의 가벼운 인터뷰를 먼저 접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문학 세계를 이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잘못된 정치이든 폭력적인 민족주의든 어떤 형태로든 권위에 저항을 한다. 부당한 권위 앞에 맞서서 '펜'이라는 훌륭한 무기에서 비롯되는 문장의 힘도 지니고 있지만 대부분 작가들은 망명이나 이민 등을 선택해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반란자가 되기도 한다. 문학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고 사회에서 소외된 것들과 그 사회의 지배 논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올바른 의식은 기득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폄하당하기도 한다. 1995년 수상자인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는 점점 부당한 권위 앞에서 시들어져만 가는 포르투갈인들의 정신을 염려스러워한다. 하지만 그의 조국은 그의 문학과 생각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라도 '좌파'의 논리라고 규정짓는 우리나라 사회처럼 우리보다 좀 더 성숙한 사회의식을 형성한 서구 역시 이데올로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내 책들이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해요. 그들은 나만 이데올로기적이고 자기들은 아니라는 거요. 그들은 나만 이데올로기적이고 자기들은 아니라는 거요. 그들은 가톨릭은 그렇지 않다고, 급진적 신념이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나는 오로지 이데올로기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거나 공산당이라는 거요. 그런 그들에게 나는 할 말이 있어요. 삼라만상에는 거의 자라지 않는 나무도 있는데, 그건 그 나무가 이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아, 그렇다고 해서 세쿼이아가 올리브나무보다 낫다는 건 아니오. 그 반대도 아니고."
(주제 사라마구, pp 30)

1997년 수상자인 이탈리아의 다리오 포는 권력에 맞서기 위한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무기로 '풍자와 웃음'을 택했다. 고위층의 권위의식을 신랄한 말투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희곡을 쓴 작가답다. 현재 그는 이탈리아의 민주화 운동에 힘쓰고 있으며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풍자는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요. 광대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화형에 처해졌어요. 권력은 유머를 견디지 못해요. 하물며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통치자들조차 마찬가지요. 웃음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줘요." (다리오 포, pp 87)


다리오 포만큼이나 터키의 오르한 파묵 역시 특유의 유머로 오만한 엘리트들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터키 극우주의자들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을 정도로 경호원의 동행이 필요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호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평소에도 그가 긍정적인 마음과 유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머와 웃음 속에는 세상에 대한 직설적이고도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숨겨져 있다.





"또한 나는 경박한 자들을, 저 위에서 종교와 문화적 신념과 특권층이 아닌 계층들을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상류층을 증오해요. 나는 엘리트들의 오만함에 분노해요. 그들은 교만과 자존심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고 민주주의와 문화를 파괴하고 있어요. 그건 서양이 이라크나 다른 나라들에게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요.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의 오만하고 천박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요." (오르한 파묵, pp 104)


1999년 수상자 귄터 그라스는 정작 참된 세상의 발전을 방해하는 적을 99%의 세계를 지배하는 1%의 존재, 즉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마당에서 자신의 텃세인마냥 휘젓고 다니는 자본가들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권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 사회 불평등 구조에 대한 세계적인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지금, 그라스의 생각은 세계인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처럼 들려진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소. 민주주의의 적은 극우와 극좌,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로부터 자유의 내용물을 비워내고 있는 것은 거대기업과 은행들, 입법권을 쥐고 흔드는 정치권력이란 게 증명되고 있어요. 우리를 쫓아내는 기업들은 자기들의 주가가 오르는 동안, 모두한테 익숙해진 파렴치한 타락행위를 일삼고 있어요. (생략) " (귄터 그라스, pp 210)


중국 출신의 가오싱젠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권력이 있으면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도 마찬가지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해 정치권력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권력에 직접 맞서기보다는 망명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적인 존재를 위한 기본 조건마저 허락하지 않는 절대 권력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서 창작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나약해요. 반면에 정치권력은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나를 짓밟을 수 있어요.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유일한 희망은 도피요. 나는 도망자이지, 영웅이 아니오. 도피하지 않았으면 그들은 나를 바퀴벌레처럼 짓밟았을 거요. 나를 체제에서 벗어난 탈퇴자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지만, 나는 탈퇴자가 아니며 정치적으로 맞서지 않았어요. 나는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자유인으로서의 작가이며, 내가 거부했던 권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들마저 불허하는 절대권력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쳐야 했어요,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멀어져야 했고, 창작을 위해서 망명을 해야 힜어요. (생략)" (가오싱젠, pp 170)




주제 사라마구 부부


다리오 포 부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부부



새로운 사회개혁을 꿈꾸는 혁명가 또는 반란자들에게는 그들의 의지를 꺾으려고 하는 적대 세력이 존재하지만 이에 맞서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지원자 또는 조언자가 있기 마련이다. 『16인의 반란자들』의 인터뷰는 단순히 16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활동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항상 그들을 오랫동안 바라 봤고 지켜 본 인생의 동반자들 덕분에 16인의 작가들이 저항의식을 갖춘 반란자가 될 수 있었다. 렌즈 속에 담겨진 몇 몇 작가들 부부의 사진은 흐뭇하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끈끈한 작가들의 부부애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작은 볼거리 중 하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소설이 단지 하나의 문학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삶에 대해 느끼는 문제에 대해 싸워 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은 사상이나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구축한 허구적인 세계로 이루어진 장르가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 삶을 둘러싸 일어나고 있는 실제 세계의 모습도 있다. 그리고 사회 문제가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써 문학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글은 현실의 가려진 허위를 벗겨내 진실을 알리는 파급 효과를 지니고 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문학에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 살면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에게 멘토를 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나라의 지성과 먼저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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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내 맘대로 좋은 책 탑5안에 드는 책이다.ㅋㅋ

cyrus 2012-03-16 22:0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이 책 덕분에 작가들의 소설들이
얽어보고 섶어졌여요. ^^

잘잘라 2012-03-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엇! 이 책.. 포기했었는데.. 결국.. 다시 보관함으로~~~ ㅋㅎ

cyrus 2012-03-17 12:48   좋아요 0 | URL
네, 꼭 읽어보셔요. 위에 스텔라님도 말씀하셨지만 정말 좋은 책이에요 ^^

감은빛 2012-03-2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갖고 있는 책입니다.
시루스님의 멋진 소개 덕분에 조만간 장바구니에 담게 될 듯 하네요. ^^
 

 

 

 Scene #1  노마드한 대학생활

 

노마드는 머물지 않는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노마드는 소유하지 않는다. 언제나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노마드는 정주의 편안함을 버리고 자유의 불편을 택한다. 

 

요즘 대학 생활이 즐거우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작년보다 공부해야 할 양이 많은데다 개강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써부터 과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늘 하루하루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자기위안식 위로로 학교 생활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하고 있다. 아직은 견딜만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팀별 과제가 많아지게 되면 언제 '멘탈 붕괴'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주간에 경영학 수업을, 야간에 행정학 수업을 듣게 되는데 강의실을 여러 번 왔다갔다하는 경우가 많다. 경상대에 있다가, 도서관에, 또 행정학 수업 듣으로 행정대로... 이게 하룻동안 내가 넓은 캠퍼스 내에서 이동하는 경로다. 가끔은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읽고 싶은 책이 소장되어 있다면 사회과학대나 자연과학대 도서관에도 들리기도 한다. 대학 생활 3년째에 접어들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건물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조형예술대다. 조형예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으면 가보겠지만 사실 행정학과 학생이 조형예술대 건물을 간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면서도 웃기다. 올해는 발길이 뜸하지만 1학년 때는 공대 건물도 많이 드나들었다. 그 곳 건물 사무실에서 친한 동기와 선배들이 근무를 했기 때문에 친분상(?) 그 건물을 자주 찾아갔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캠퍼스에 오면 거의 가만히 있었던 적은 없었던거 같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제외하면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 곳이나 이동했다. 혼자든 동기 친구들이랑 같이 가든 이 놈의 몸뚱아리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사실 도서관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나름 공부할 분량을 집중적으로 암기할 수 있는 특정 시간이 있는데 왠만하면 1시간 이상은 안 하는게 원칙을 삼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고 난 뒤 머리 식힐 겸 도서관 옆에 위치한 매점의 벤치에서 수다 떨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문 밖으로 나가 당구를 치고 있다거나 볼링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어디 한 곳에 정착하거나 안주하는 생활이 줄어든 거 같다. 독서할 때도 그렇다. 책 많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대다수 가지고 있는 독서 습관이지만 한 권만 끝까지 읽는 것보다는 두 권 이상 같이 읽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5권을 동시에 함께 읽는 편인데 그 중에서 끝까지 읽는 책은 많아야 두 권이고 아예 완독을 하지 못한 것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관심 있는 책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크 아탈리는 정처 없이 방황하며 유랑하는 것이 역마살이 낀 불우한 인간의 역정이 아니라 500만 년 동안 유전자 속에 내장되어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유랑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가 나오게 된다. 노마드적 삶이 인간의 특수한 생존 양식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삶의 양식인 것이다. 그는 미래의 인류는 하이퍼 노마드, 정착민, 인프라 노마드의 세 부류로 나누어 질 것으로 예언한다. 많은 정보를 창출하고 향유하는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부유하게 유희적으로 살아가는 극소수의 하이퍼노마드, 농민, 상인, 공무원, 의사, 교사 등의 정착민 그룹 , 반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 다니는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의 극빈층의 인프라노마드, 이 세 부류다. 하이퍼노마드들은 미래의 상업적 노마디즘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제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고 있다.

 

지금의 일상을 아탈리가 제시한 세 가지 유형의 노마드형으로 비추어 본다면 하이퍼노마드다. '창의적인 직업'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을 토대로 거기서 새로운 정보로 도출하여 과제를 준비해야 하는 일과라면 하이퍼노마드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자면 노마드한 대학 생활이라는 것이다.

 

주간 경영학 수업이랑 야간 행정학 수업 사이에 공강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을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짬이 나면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도 한다. 요즘 블로그 활동이 뜸한 건 너무 바쁜게 아니라 집의 컴퓨터가 또 다시 맛이 갔다. 얼른 고쳐야하는데 일과 절반이 학교라서 서비스를 부를 시간이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도서관 컴퓨터에서 알라딘 블로그 쓰기가 여간 불편하다. 항상 집에서만 블로그를 활용하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서관 컴퓨터에서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란 여간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블로그 활동을 하기가 힘들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친구들이 보면 그들은 내가 과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Scene #2  도서관에서 우리 과 학생을 찾는 방법

 

이런 일상을 지내나보니 개인적이면서도 은둔(?) 활동을 하기에 편하다. 간혹 나를 찾는 동기들의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 녀석들은 항상 나를 찾지 못한다. 한 곳에 머무르는 성격이 아니라서 항상 특정한 장소에 만나면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기들에게 항상 캠퍼스 도서관에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 그런지 몇 몇 녀석들은 도서관에 와서 나를 찾게 되는데 허탕만 치는 경우가 많았다. 운 좋으면 도서관 건물 안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내 동기 친구들을 찾을 수 있다.

 

우리 학교 도서관 내부를 설명하자면 2층은 논문들이 보관되어 있는 참고자료실, 3층은 사회과학, 언어자료실(사회과학, 소설 분야 도서 비치), 4층은 인문. 과학자료실(인문학, 과학 분야 도서 비치)로 나뉘어져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2층에서 4층을 주로 사용한다. 2층은 과제와 관련해서 자료를 찾을 때, 3층과 4층은 각 층에 비치된 책들을 읽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행정학과 학생들은 항상 3층에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행정학 관련 도서는 3층 사회과학 자료실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3층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처럼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4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많이 오게 되는 시험 기간을 제외하면 4층 과학 자료실에서 우리 과 학생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논문과 학술잡지가 비치된 논참고자료실 역시 자주 애용하는 학생을 찾기가 드물다. 어처구니 없게도 내 몇몇 동기들 중에는 도서관 2층 자료실의 존재에 대해서도 모르는 녀석도 있었다!  2층 자료실에 최고 성능의 프린트 기기가 있는데도 이러한 용도의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요즘 우리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도서관 체험 교육을 하고 있다. 도서관의 내부뿐만 아니라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검색 방법, 신입생으로서의 독서 경험의 중요성 등 학생들에게 도서관을 애용하여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과에서는 거의 늙어버린 '아저씨'나 다름 없는 우리 동기들도 도서관 체험 교육 좀 받았으면 좋으련만... 이건 뭐, 복학생도 아니고 도서관 안에만 들어오면 어리버리해지는 녀석들 보면 웃기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

 

 

 

 

 

....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방금 폰에서 친구의 카톡 메시지가 떴다.

 

....  배고파 ....   밥 먹으로 가잔다 ....  -_-;;

 

 그래, 일단 밥 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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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다. 난 학교 때 학교를 싫어해서 주말과 방학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녔다.
그런데 4년 전 시나리오 배우러 다녔을 때 처음으로 공부하러 어딘가를 다닌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딱 두 가지만 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애하고.ㅋㅋ
얼마 전 김연수 작가 보러 갔다왔는데 그가 그런 말을 하더군.
싫은 책 억지로 읽지 말라고. 좋아하는 책만 읽어도 다 못 읽는다고.
맞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넌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ㅎㅎ

cyrus 2012-03-16 01:04   좋아요 0 | URL
저는 졸업할 때까지 연애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보면 연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만 하면 할수록 정말 암울해지네요 ㅎㅎ


stella.K 2012-03-16 11:33   좋아요 0 | URL
니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면 돼.
너를 좋아해 줄 사람 기다리지 말고.
별 도움 안 되는 말이지?ㅋㅋ

cyrus 2012-03-16 22:1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인거 같아요 ㅎㅎ 그런데 쉽지가 않아 보이죠?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3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자연재해, 기근, 종족분쟁은 선진국의 정부나 국제원조 기구, 국제여론 등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은 점차 망각의 제물이 되고, 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잊혀버리지. 그리고 깊은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돼. 처음에는 강했던 국제적인 연대감도 시들해지고.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152 -

 

 

 

 

 

 

 

 

 조용히 닫혀버린 세계의 창문

 

 

 

 

 

 

2010년 10월 29일 새벽 12시 50분 경. 광산에 69일 간 매몰되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33인의 칠레 광부들 이야기를 끝으로 MBC '김혜수의 W'은 방송을 처음 시작한 지 5년 만에 폐지되었다. 방송에서 'W'의 마지막 메시지가 전해졌다. 평화, 반전 그리고 희망이었다. 'W' 5년의 역사를 되짚는 영상물도 공개됐다. 프로그램 진행자 김혜수는 클로징멘트로 "W에 힘이 되고 싶었다. 짧은 만남, 시청자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오래전부터 프로그램 폐지설과 관련된 갖가지 논란이 거셌던 것과 비교해 조용했다. 종영 사실은 방송 말미 진행자의 짧은 작별인사로 전해질 뿐이었다. 'W'는 늦은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었고 시청률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매주 금요일만 되면 피곤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꼭 '본방사수'했다. 단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김혜수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다. 'W'는 세계 대륙별 곳곳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시사 소식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세계의 창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해외 시사 프로그램 중에서 기존에 있었던 해외 시사 정보를 뉴스 형식으로 전달되는 진행 방식을 탈피한 수준 높은 교양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비록 낮은 시청률과 높은 제작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MBC 경영진에겐 얼른 폐지하고 싶은 골칫거리였지만.  세계의 평화, 반전 그리고 희망에 대한 염원을 간직한 채 'W'는 늦은 밤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우연의 장난일까?  폐지된 ‘W'의 빈자리에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채워지게 되었다. 그 당시 케이블 채널의 '슈퍼스타 K' 열풍을 공중파인 MBC도 무시 못했던 것이다. 오디션. 재능 있고 끼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목표를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오디션에 참가한 100만 명의 인물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 최종 우승하게 되고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는 우승자, 단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논리가 지배된 지나친 경쟁주의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모습과 별 반 다를 게 없다. 'W'에는 신자유주의의 힘에 사로잡혀 고통과 억압을 당하는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신자유주의'라는 화려한 옷을 걸쳐 입었지만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더욱 더 불평등, 빈곤 그리고 기아에 허덕여야 했다. 심지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같은 민족들끼리 서로 총을 겨눠야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 (EBS를 제외한) 3사 공중파 방송 중에서 ‘W'만큼의 수준 높은 해외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유일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남게 된 KBS 2TV의 '세계는 지금은' 마저도 존립성이 위태위태하다. 지금은 토요일 아침 8시에 방송되고 있지만 원래는 금요일,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밤 8시 20분부터 방영했다. 'W'보다는 시청자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좋은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조한 시청률의 부진을 면치 못했나보다. 토요일 아침으로 개편된 이후 방송 분량은 전보다 축소되었다.

 

'W'의 폐지 그리고 '세계는 지금'의 개편 확정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에 불과할 뿐이다. 세계 지구촌의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안방으로 전달하는 공익성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거나 점점 방송 분량이 줄어드는 현상을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 개편 그리고 방송 제작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송국의 선택에도 잘못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부족한 인식 탓도 간과할 수 없다. 한반도 땅 덩어리를 넘어 저 멀리 바다 건너 세상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인식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심지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대륙까지도 'K-Pop' 열풍의 근원지인 한국의 문화를 주목하고 있는 반면에 정작 우리는 그런 나라들의 문화를 제대로 바라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광, 여행 가고 싶은 동경의 국가 아니면 먹고 사는 데 있어서 자신과 별 상관없는 남의 나라일 뿐이다. 그나마 여행지로 가고 싶고 많이 알고 있는 나라는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뿐이다. 부르키나파소, 라이베리아, 르완다를 알고 있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난한 나라들을 찾아가 보거나 그런 나라에서 살아 보지 않은 우리는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을 죽어가게 만드는 영양실조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북 내에서 금기시되는 기아

 

 

 학교에서는 기아문제를 가르치는 일이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건가요?

 

 

 맞아. 일종의 터부로 여겨지지. 이런 현상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단다. 브라질의 조슈에 데 카스트로(전 FAO 이사회 의장)은 1925년에 이미 자신의 유명한 저서 『기아의 지리학』에서 이 '금기시되는 기아'를 언급했지. 그의 설명은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야.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82~83 -

 

 

장 지글러의『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단지 드라마에 출연한 현빈이 이 책을 서 너 번 읽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건 아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기아 문제의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인 사정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여러 가지 잘못된 원인들을 다각도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대중의 잘못된 시선도 기아 문제를 금기시하려는 인식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북한의 기아 실상을 소개하는 교육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북한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한 채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설명만 언급할 뿐 뼈만 보일 정도로 말라가는 북한 아이들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가난, 정부가 배급하고 있는 식량마저 손대지 못하는 기아의 실태를 우리나라 학생들이 제대로 알지 못할 우려가 있다. 비단 학생들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의 기아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외국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폐지는 세계 기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만들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하는 원인이 된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굶주릴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이 3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일보, 2011년 12월 1일자) 이 수치는 작년에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된 600만명의 절반 수준으로, WFP와 FAO가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작년보다 8.5% 증가할 것이라는 추산치를 반영한 것이다. 보고서 내용만 봐도 희망적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세를 감안한다면 죽한 민의 기아 문제가 보고서의 내용대로 낙관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워보인다.

 

WFP 보고서에서 제시한 수치를 토대로 식량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곡물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규모가 지난 해에 비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 발생하더라도 자체적 핵 억지력을 포기하지 않을 북한 정권의 노선을 고수하게 된다면 아무리 곡물 생산량이 증가한다 해도 기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자연 재해의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는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물 재배에 피해를 줄 뿐더러 대량으로 난민이 발생할 시, 문제는 심각하다. 물 난리 속에 살아남아도 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굶주림에 의한 죽음뿐이다. 더욱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백두산 화산 폭발 조짐에도 어떠한 피해 방지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는 정권의 태도가 북한 기아 주민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현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 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면서 식량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건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길을 핵무기 문제와 결부시킴으로써 북한 내 기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북한 기아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남한 정부나 굶주리는 주민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 핵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노선을 주민들이 '위대한 수령'의 은혜에 입고 있다는 날조된 언론으로 무마하려는 북한 정부나 상황은 다를 뿐 기아 문제를 금기시하는 인식과 태도는 비슷하다.  

 

 

 

 

 

 기아 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세계질서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당하는 사회적 고통이 굶주림이다. 그래서 기아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이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다. 세계인구의 7분의 1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120억명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식량은 풍부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를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다. 세계시장에서 농산품의 가격은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 투기꾼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높은 식량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부자나라들은 자국의 농민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며 남아도는 농산물을 폐기처분하거나 생산을 제한한다. 식량가격이나 생산량 결정, 식량의 공평한 분배에 구호기구는 속수무책이다. 세계시장만이 힘을 갖고 있고 그 시장은 잔인하다.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 자들도 있다.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ℓ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제값을 주고 사겠다는데도 협력을 거부한다. 미국이 사회주의 개혁 정책으로 미국기업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칠레 군부의 쿠데타를 도왔고 아옌데는 1973년 대통령궁에서 최후를 맞는다.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장교 토마스 상카라도 인두세 폐지와 토지 국유화로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만들었지만 역시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친구에게 살해당했다.

 

이 두 사건은 '민영화, 규제철폐, 예산감축'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경전이 어떻게 해서 제3세계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와 높은 유아사망률로 이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국주의적 자세를 멈추지 않는 선진국과 곡물자본이 굶주려가는 나라를 둘러싸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곡물시장의 '균형가격'을 맞추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반군에 대한 지원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기아의 비극이 실은 부패로 유지되는 그 나라 정부와 관료,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거나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코 관심을 갖지 않는 국제사회가 저지른 '범죄'라는 분석은 여러 사례로 명백하게 입증된다.

 

 

 자연도태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진보의 신화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 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자연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38 -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에 인구 법칙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인구론』을 발표했는데, 세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산아제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가 지원은 중단되어야 하고,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맬서스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기아 문제에 있어서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지구의 여러 가지 환경 요인이 변화함에 따라 생물 종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종이 변하는 원인을 설명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통해 종의 변화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원리는 사회도태 논리에도 적용하게 된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하여 자연에서의 적자생존처럼 사회에서도 사회도태가 발생하고 경쟁에서 생존한 자들의 역사는 진보해 나간다는 생각했다. 기아의 위협이 없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촌 기아 문제에 대해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자연도태설에서 비롯된 잘못된 '기아예찬론'은 기아 문제에 대한 책임회피일 뿐이며 비양심적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저자는 그러한 인식 속에 숨겨진 무의식적 인종차별주의가 기아 문제를 외면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세계의 기아 문제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최우선 과제는 먹을 것을 섭취하는 일이다. 너무도 뻔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굶주리는 기아의 어린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이 말 역시 기아 문제를 해결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비극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머니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자급자족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안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자급자족 경제를 고집하다가 국가 경제가 몰락하고 주민들을 굶주리게 만든 북한의 역사를 기억해본다면 썩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기아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인프라 정비'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다시 한 번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제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중략)  아프리카 남쪽에는 엄청난 땅들이 놀고 있다. 그 땅들은 투자가 없이는 경작되지 못할 것이다. FAO의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정상적으로 경작되는 땅은 7억 헥타르 정도인데, 작은 투자로도 경작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나무를 베거나 보호 구역에 손대지 않아도 말이다. 현재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하고 있는 농경 기술이 있다면 토지를 중대하게 손상(살충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다량의 비료를 사용하거나)하지 않고도 민감한 지역을 보호하고 환경 시스템의 재생력을 고려하면서 남쪽에서 경작지를 늘릴 수 있다.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167~168 -

 

 

 

 

기아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황폐한 자연 조건, 전근대적 농업 시스템이나 후진적 정권의 미숙한 국가 운영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식량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철도를 세우거나 인간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땅에 농작물들을 심는다면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식량이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자급자족 경제 대안의 허점처럼 '인프라 구축'을 강조하는 대안 역시 과거의 실례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상황에서 비롯된 오류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의 바람이 유럽 대륙을 휩쓸게 되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세계로 진출, 자본 창출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강 열강들은 그 당시 미개한 아프리카 대륙을 개척하기 위한 사업 수단으로 철도를 건설하였다. 넓은 땅에 철도를 세워 놓음으로써 그 곳에서 자라나고 생산되는 식량들을 손쉽게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서강 열강의 기업들은 철도 건설 목적을 아프리카의 토착민들에게 식량을 쉽게 제공할 수 있고 배 불리게 먹을 수 있는 '공공 사업'이라고 말했찌만 거짓일 뿐이었다. 주민들을 위한 공공 사업은커녕 철도 건설에 수많은 토착민들의 노동을 착취했다. 결국에는 철도 사업은 식량 생산을 통한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지극히 기업을 위한 사업의 일환인 것이다.

 

세계 여론을 동원하면서까지 모든 경제 지배자들이 서로 합의 하에 기아 문제가 심각한 제3세계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기아 무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대국들이 인프라 구축에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협약과 회의를 통해서 인프라 구축을 마련하는 데 힘 쓰면 좋겠지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사례처럼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장 지글러의 대안은 기아 문제 해결에 있어서 분명히 현실에서 필요한 해결책인 것은 사실이나 벌
써 자본의 무시무시한 힘에 이끌려 간 채 '경제 불황'의 질환을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 세계의 상황을 봐서는 현실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그만큼 세계의 기아 문제는 모든 국가가 서로 머리를 맞싸매어 오랜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식량지원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라는 대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진부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세계의 부를 탐식하고 있는 '사회지도층'들이 주원처럼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 비판서를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읽게 될 날이 과연 찾아 올까?

 

 

 

콜럼비아 대학 최우수 졸업생으로 졸업한 수재에다가, 가난한 사람을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김주원(현빈 분).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여자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길라임(하지원 분)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그녀의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는『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을 서 너번 정도 읽어가면서 접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현실'에 대해서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가상하지만 그녀의 가난은 책 한 권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평생 '몸'으로만 먹고 살아온 길라임과 달리 평생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해 온 김주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육체가 뒤바뀌는 기괴한 현상을 겪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성별의 몸을, 그것도 전혀 다른 계급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상대방의 몸을 '입고' 살아가야하는 비현실적이고도 우발적인 사고가 역지사지의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에 두 사람 간의 신체가 서로 바뀌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주원은 라임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장 지글러의 책을 세 번 이상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가난'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남의 '가난'에 대해서 어떠한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첨단의 미디어를 향유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진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는 '가난'의 비극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무지에 너무 관대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전쟁이라고 배웠지 기아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없었다. 이런 무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책이다.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가슴으로 지구촌 최악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은 새롭게 대학생 필독 도서로 입에 오를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주원처럼 단순히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원 역을 맡은 현빈처럼 나름 폼 나게 독서하기 위해서 유식해 보이면서도 심각한 제목이 달린 이 책을 '읽은 척'하지 않길 바란다. 실제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가난'에 대해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목도해야 할 전지구적인 사회 문제, 바로 '기아'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텔레비전 속 다큐멘터리나 해외 토픽을 통해 볼 수 있는 '타인의 삶'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불편하고도 잔혹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들은 조금은 오래된, 세계적인 시차가 어긋나 있지만 시간만 다를 뿐 최악의 상황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책은 금융자본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인권을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W'의 창은 닫혀버린만큼 기아 문제의 심각성과 신자유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 책만큼은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대학생들이라면 이 책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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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1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참 무지 맘에드는 리뷰를 만나는군요.
이 책은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추천도서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기아문제는 단순한 굶주림의 문제가 아니라
세게 경제가 굴러가는 작동원리인 것을 알게합니다.

누군가가 굶주려줘야 다른 누군가의 배가 부르다는
그야말로 인간 최악의 걸작품 인 것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작동원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언제 그 희망이 보일지...

cyrus 2012-03-16 01:07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대학생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이죠.
이 책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된 지글러의 다른 책들도 좋고요 ^^

저는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식량 조달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는 수 없이 기아 문제를
미화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도 안타깝고요.
무엇보다도 식량을 무기로 삼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려는
정치권력들의 작태가 씁쓸했습니다.

stella.K 2012-03-1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김주원이가 콜롬비아 대학교 출신이었나? 웃겨.ㅋㅋ
이책 참 불편했어.ㅠ

cyrus 2012-03-16 01:0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냥 지나치는 작은 정보도 기억하고 있는 편이에요.
웃긴 게 사실 장 지글러의 책을 읽는 현빈의 모습을 TV에서 본 것도
친구들이랑 곱창 먹다가 잠깐 봤던거에요. 제가 은근히 기억력이
좋은 편이거든요 ^^

그런데 막상 현빈처럼 책을 읽어보니 그리 편안하게 읽을 책이
아니더군요 ^^;;

아이리시스 2012-03-15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제목 기억 안나던 책이네요ㅋㅋㅋ 한비야님의 추천도서라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도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이후로 음식은 웬만해선 적게 먹고(꾸역꾸역 먹어도 결국 탈나거나 도로 나온다는;;) 조금만 해서 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도 노력해요!! 책 읽는 동안에는 쌀을 좀 싸들고 여행을 가야하나;; 가서 밥을 해줘야지;; 생각까지 들었던 슬픈 책이었어요.

cyrus 2012-03-16 01:13   좋아요 0 | URL
아~~~ 알겠어요! 아이리시스님 서재 댓글 남기다가 장 지글러의 책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아 문제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불편했어요. 막상 기아 문제 해결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지만 한비야씨처럼 직접 그 곳에 가서
적극적으로 해결한다는 게 어렵잖아요. 최근에는 몇 몇 아프리카 국가에
여행을 금지하는 규정도 내리게 되었고요,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유니세프 같은 곳에서 기금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거 같아요 ^^;;

차트랑 2012-03-16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암울하게 하는 것은
화폐전쟁의 쑹홍빈은 유니세프마저도 첨단 경제 저격수의 일부라더군요
제가 아는 학생 중 하나가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ㅠ.ㅠ
정말 이거..ㅠ.ㅠ

하긴 케인즈가 세상을 더 굶주리게하는 데 앞장서는 인물인데
말다했지 뭡니까요

그나저나 그 기억력,
쩜 많이 부럽습니다 ㅠ.ㅠ